100원으로 장례 준비하는 법
고이장례연구소 송슬옹 대표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적 있으세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이고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가기 마련인데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소개할 고이장례연구소의 송슬옹 대표는 치열한 진심으로 장례를 연구하며, 이 질문에 "장례 과정에는 따뜻함 하나만 있으면 된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장례가 단순한 의식을 넘어 고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기리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현 상조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투명하고 합리적인 시장을 만들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송슬옹 대표가 꿈꾸는 정직한 장례 시장과 새로운 장례 문화에 관한 이야기, 함께 살펴보시죠!
🗺️ 진심을 배우는 업(業)
| 어떤 계기로 상조 산업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아버지가 장례지도사로 활동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장례에 익숙해지면서 죽음을 필연적이고 객관적인 현상 자체로 받아들였죠. 직접적인 관심을 두게 된건 저 역시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후였어요. 스무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과정에서 장례에 문제의식을 느꼈죠. 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오신 분들은 누구신지 왜 오시는지조차 몰랐어요. 모든 의례가 저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형식이었죠.
게다가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자주 찾아뵙지 않았던 터라 당신이 돌아가신 뒤 커다란 죄책감과 우울을 마주했어요. 미안하고 고마웠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일상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거죠. 처음 경험한 죽음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도 몰랐고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었던 순간은 할머니의 첫 기일이었어요. 가족과 함께 울면서 할머니의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죠.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 보고 느꼈던 할머니의 모습을 듣다보니 당신의 삶이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를 더 잘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었죠. ‘장례식 때 이랬어야 했는데’ 싶더라고요. 치유는 의미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장례식의 본질이 형식보다 의미에 가까워야 하는 이유죠. 지금의 장례식은 이와 거리가 멀고요. 장례를 더 의미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 산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 장례지도사를 꿈꾼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대학을 오래 다니면서 휴학을 3년 했고, 그동안 스타트업 2곳에서 일했어요.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을 통해 성장의 순간에는 늘 고객이 있음을 체감했어요. 저의 꿈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무얼 원하고 어떤 지점에서 어려워하는지 살펴야 함을 몸으로 배웠죠. 우선 고객과 가까이에 있으면서, 내가 진심으로 해보고 싶었던 장례지도사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이후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장례지도사는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하는 구조라, 고객을 직접 데려오기가 참 어려워요. 어떻게 고객을 데리고 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알고 있는 장례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지식인 답변을 시작했어요. 한 달간 매일 답변을 달았죠. 그렇게 하다가 처음으로 장례 상담 요청을 받았어요.
| 첫 번째 고객을 지식인 활동 중에 만나신 건가요?
맞아요. 제가 평생 장례지도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이기도 해요. 처음 맡은 장례이다보니 마음에서 우러나 했던 일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에게도, 저에게도 정말 중요한 일인 만큼 잘 해드리고 싶었죠. 장례 전에 필요한 것, 장례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의 세세한 내용을 담은 가이드와 손편지를 전해드렸어요.
또, 제가 만약 이분들의 가족이라면 뭐가 필요할지 생각해봤어요. 빈소를 차리지 않고 가족끼리만 하는 장례였는데요. 보통의 장례에서는 가족들이 고인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입관식 때 조문객으로부터 헌화를 받아요. 그런데 ‘우리 아빠만 받지 못하면 씁쓸하겠다’고 짐작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족분들이라도 따로 헌화할 수 있도록 꽃을 한 송이씩 준비해뒀어요. 이런 작고 사소한 부분들을 알아봐 주셨고, 감사함을 표현해주셨죠. 마지막 날 화장터에서는 관이 들어가고 고인의 아내분께서 무너지셨는데, 그 감정이 저에게까지 전이된 나머지 저 또한 화장터가 떠나가도록 울었어요. 상주분께서는 오히려 저를 위로해주셨고요. 그때만큼은 저도 이분들의 가족이었고, 이 가족의 장례지도사였던 거예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당시 여자친구이자 현 아내에게 ‘나 평생 장례지도사 해도 되겠다’고 말했어요. 서울대 출신이라는 학력 필요 없고, 이게 가장 행복하다 싶었죠. 그간 많은 걸 팔아보았음에도 장례 서비스를 제공하고 판매했을 때 너무 행복했고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어요.
| 장례지도사에서 고이장례연구소 창업으로 나아간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경험한 장례는 다른 거 필요 없이 따뜻한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되는 서비스였어요. 저도 이 일을 더 잘하고 싶으니 기존 회사들을 찾아가 배우려 했죠. 장례식장 알바를 뛰기도 하고, 상조 회사에도 프리랜서로 영업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당시 채용을 위해 만났던 한 상조회사의 대표님께서 ‘여기 전쟁터야. 이 시장은 저가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상조 산업은 기본적으로 하청이 반복되는 구조로, 고객을 미리 설득해 기존 상품에서 다른 옵션을 더 팔아 돈을 벌고 있었어요. 추가 옵션을 팔지 못하면 장례지도사 개인은 돈을 벌지 못했고, 마케팅비도 굉장히 많이 들었죠. 상조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오는 순간이었어요.
제가 꿈꿨던 특별한 장례는 나중의 일이구나 싶었어요. 지금은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상태였으니까요. 장례 서비스는 따뜻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부족한데, 무언가를 더 팔려는 마음이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이걸 바로잡야겠다 결심한 뒤로는 구조 자체에 화딱지가 나더라고요. 장례지도사들이 무언가를 팔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회사로서는 디지털 혁신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죠. 잘못된 시장을 바로잡고 좋은 장례 서비스를 시장 내에 표준화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이를 실현할 수단인 비즈니스로 고이장례연구소를 시작했습니다.
🔬 본질에 집중하는 장례
| ‘고이’라는 이름이 굉장히 잘 어울려요.
고이는 한글로 ‘편안하고 순탄하게’라는 뜻이에요. 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른 방식은 아니었고,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를 어떤 말로 표현할까 고민하다 자연스레 튀어나왔어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돌아가신 분을 잘 보내드리는 것, 그게 다구나, 그래서 고이구나 싶었죠.
| 왜 ‘연구소’라는 명칭을 사용하세요?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동시에 기준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가운을 입는다고 연구가 아니라 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게 연구인 것 같아요. 더 나은 장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회사였으면 해서 연구소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고 이름에 상조가 들어가지 않았으면 했어요. 상조만으로는 우리의 비즈니스를 설명하기 어려우니까요. 말이 주는 힘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하는데, 상조 산업에 묶이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더 큰 꿈을 갖고 있고, 더 많은 걸 하고 싶거든요(웃음).
| 지금의 장례·애도 문화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희는 지금까지 투명하고 정직한 장례서비스 제공에 초점을 맞추고 달려왔어요. 다른 시장은 가격을 정찰제로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장례는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이었어요. 노잣돈이나 수고비를 요구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잘못된 지점을 하나씩 바로잡는 일이 가장 시급했죠. 지금은 이걸 비즈니스로 해결하고 있는 과정이에요.
앞으로의 3년은 상조 산업의 더 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요. 상조 회사는 고객이 회사에 미리 맡겨 놓은 돈인 ‘선수금’을 갖고 있는데요. 올해 3월을 기준으로 상조 업계 선수금 총합이 9.5조 원에 달해요.
그런데 상조 회사는 이 돈으로 대주주 펀드에 출자하거나 관계사 대여금, 주식 매입 등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등 고객이 낸 돈을 임의로 운용해왔죠. 이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꾸준히 제기됐어요. 실제로 2022년, 업계 10위권이었던 ‘한강라이프’가 폐업, 도산하면서 위험이 현실화된 적이 있고요.
운용을 무리하게 하다가 투자 손실을 본 상조 회사도 있었어요. 고객이 서비스를 해지하면 위약금을 주거나 환급을 진행해야 하는데 지급능력을 상실한 상황이 된 거예요 지급도 못 하고 폐업한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이 떠안죠. 이런 문제를 바로잡고자 해요.
| 복잡해보이는 문제 같은데요. 고이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시나요?
상조 회사의 본질은 장례 서비스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상조회사는 가전제품이나 상품을 주겠다며 미리 고객을 데려오죠. 고객은 혹해서 가입하고요. 정작 메인 비즈니스인 장례는 하청이 얽힌 구조이니 돈을 벌지 못하고 있으니, 선수금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상조 회사들은 결국 금융업을 하는 거예요. 혹은 장례 마케팅을 하는 정도거나요. 저는 이게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봐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장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매일매일 다른 노력을 하는 게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이에서 출시한 서비스가 바로 ‘100원 상조’예요. 장례 준비에 100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었죠. 3만 원씩 낼 필요 전혀 없고, 별도의 운용 없이 100% 예치하고, 중간에 해지해도 100%를 다 돌려 드리고 있어요. 다행히도 100원 자체에 관심을 가지신 분들도 있고, 고이가 이걸 왜 하고자 하는지까지 이해해주시고 가입한 분들도 계세요. 선한 가치가 순환한다고 믿어요.
더불어 그간 정규화되지 않았던, 오프라인에서 사람이 하던 일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자동화하고 스케일업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 결과로 정보의 데이터화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혁신을 일궈내고 있습니다.
| 고이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고객이 원하는 건 제대로 된 장례예요. 그러니 서비스의 본질인 가격과 품질로 승부하고 있죠. 상조회사의 서비스 평균 가격은 500만 원인데, 저희는 가격을 50%로 낮췄어요. 고이가 싸게 파는 게 아니에요. 상조회사는 구조적인 이유로 비쌀 수밖에 없지만, 저희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비용을 줄였다는 점이 포인트죠. 가격은 따라 할 수 있어도 구조는 따라 하기 어렵다고 봐요.
서비스의 품질을 증명할 방법은 후기라고 할 수 있어요. 후기 등록률은 저희가 내세우는 지표 중 하나에요. 타 상조 회사의 고객 수 대비 후기 통계가 0.05%인 데에 반해, 고이는 30~50%를 기록하고 있어요. 후기를 요구하거나 이벤트를 진행하는 액션은 따로 없었음에도 말이죠. 고이를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장례식을 마칠 때까지, 마음이 전달되는 후기를 써주시는 거죠.
🖼️ 존재를 입체적으로 기억하려면
| 시장의 투명성 문제를 해결한 이후,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궁극적으로는 색다른 장례 문화를 제안하고 싶어요. 작년에 한 고객님께서 언니의 장례식을 특별하게 준비하고 싶다며 고이를 찾으셨어요. 한 달 동안 핀터레스트로 사진을 주고받으며 언니분이 좋아했던 꽃과 장식에 관해 이야기 나눴죠. “국화꽃은 싫다”, “언니는 이런 제단 꽃을 좋아하지 않았다”라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썼어요. 교수이셨던 고인의 제자들은 고인을 기리기 위해 영상을 직접 제작했는데요. 그 영상을 커다란 TV로 재생하면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삶을 기억할 수 있게 했어요. 그분을 향한 추모의 마음을 갖고 빈소로 들어가고, 상주님과 마음을 다해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말이죠. 이야기가 깊은 장례였어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해왔던 특별한 장례식의 모습이 바로 이거구나 싶었어요. 고인의 이야기가 식장에 흘러넘치는 것, 가족분들이 이분을 잘 추모할 수 있는 것. 웃긴 얘기일 수 있지만, 그 장례식은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시장은 잘못된 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이라면, 문화는 개선보다 제안의 측면인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보편적으로 누렸으면 좋겠다 싶죠. 장례에 대한 개인의 니즈는 고인을 좀 더 입체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고이가 정의하는 진정한 추모란 무엇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웃음). 다만 제가 하고자 하는 건 고인이 잘 기억되게 하는 것, 남은 가족들이 잘 회복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것만 생각합니다.
| 슬옹님 본인 장례식은 어떤 모습이길 꿈꾸세요?
저는 제가 주인공인 장례를 생각하고 있어요. 집들이 형식이었으면 좋겠고요. 결혼 후 2개월 동안, 저와 아내가 친했던 친구들을 3~4명씩 주말마다 초대했어요. 동반자로서의 모습, 친구나 동료로서의 모습이 모두 다르잖아요. 그래서 우리 남편, 우리 아내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면서 더 풍성한 행사가 되더라고요. 각자에게 소중했던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정말 의미 있었어요. 연작처럼 이어갔던 집들이는 주인공이 우리였고, 초대받은 사람들도 모두 축하하러 발걸음 해줬어요. 얼마나 고맙고 행복해요. 장례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죠.
저는 노쇠하기 전,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요. 이번 주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놀러 가고, 다음 주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는 등 떠날 준비를 하는 거죠. 형식은 중요하지 않아요.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팀 고이의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고이는 장례의 품질 개선에 집중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활동들을 기획 중이에요. 당장은 매일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고요. 오늘 실패하면 내일 다르게 해보고, 또다른 도전을 하며 고이답게 나아가려 합니다.
글 | 문지원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코멘트
3@오동운 : 의례 문화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저도 다시 생각한 계기가 되었어요.
@오늘은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라는 제목의 책도 생각나네요~
장례 과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막막함을, 겪어본 사람들에겐 '나의 장례는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고민을 던져주는데요. 그런 고민을 시민들이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네요.
장례라는 낯선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풀어내는 고이를 응원합니다! 장례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 적은 없지만, 글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장례를 하게 될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