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마케터의 도파민 터지는 사회변화 캠페인 기획법
📣 모두가 '캠페인' 하는 시대
캠페인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기업에서 하는 광고 캠페인이나 브랜딩 캠페인도 있고, 비영리 조직이나 공공기관에서 하는 공익 캠페인도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정당에서 하는 정치 캠페인도 있어요.
보통 영리 목적의 ‘마케팅 캠페인’과 공익을 위한 ‘사회변화 캠페인’이 많이 다르다고들 생각합니다. 주체나 메시지의 목적만 봐도 다른 점이 정말 많죠. 그런데 이 둘을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자동차 브랜드의 마케팅 캠페인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 캠페인은 시승 신청을 위한 개인정보 수집이 목적일 때가 많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자동차 구매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쉽고 간단하게 개인정보를 입력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시승 신청 사이트와 홍보 콘텐츠를 기획했습니다.
몇년 뒤 대선을 앞두고 기후, 청년, 소수자 인권 등에 대한 대선 후보의 공약과 입장을 요약한 ‘대선 캐비닛’ 콘텐츠를 알리는 캠페인을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대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쉽고 간단하게 이메일 주소를 입력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구독 페이지와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두 가지 캠페인은 운영 주체와 궁극적인 목적, 대상과 규모까지 모두 달랐지만, 소식을 받아볼 개인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는 점에서는 아주 유사하죠.
✅ 마케팅 캠페인과 사회변화 캠페인의 공통점
1) 먼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진행한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알릴지, 사회문제와 활동을 알릴지 차이일 뿐이죠.
2) 알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도 비슷해요.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캠페인이 많습니다. 마케팅 캠페인은 주로 ‘구매' 행동을, 사회변화 캠페인은 ‘참여’ 행동을 유도하죠.
3) 행동 변화를 넘어서 ‘팬’을 만들기도 합니다.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충성 고객이 필요하고, 비영리 조직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지하는 회원들이 필요하니까요.
이 공통점들은 바로 캠페인을 하는 목적이자 본질이기도 한데요. ‘캠페인’의 어원은 전쟁 용어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아도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사회 이슈와 운동, 그리고 이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과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 이 경쟁 상황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알리고, 변화시키고, 연결되는 것이 바로 ‘캠페인’인 거죠.
🌊 ‘사회변화’ 캠페인 물결 속에서
검색창에 ‘캠페인’을 입력하면, 초록색 이미지가 가득합니다. 연관검색어로 ‘환경’과 ‘공익’ 등이 보여요. 이제는 기업들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익 캠페인을 하고, 반대로 비영리 단체들도 브랜딩과 마케팅 전략을 시도합니다. 아예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전면에 내세우는 소셜 섹터의 비중과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어요.
ESG 경영과 가치소비, ‘브랜드 액티비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트렌드 속에서 기업과 단체는 모두 사회변화 캠페인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는 아직도 남아있고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캠페인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기획하는 사회변화 캠페인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고, 그들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만들고,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 ‘뼈케터’의 캠페인 기획 노하우
저는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에 매료되었어요. 그래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하고, 광고연합동아리에서 활동하고, 광고회사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디어를 만들고 파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리는 기획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 왔어요.
어느새 ‘뼈케터’(뼛속까지 마케터)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사회변화 캠페인을 할 때도 마케터의 시선과 태도를 적극적으로 적용했던 거죠. 마케팅의 기본 개념인 STP 전략, SWOT 분석, 4P 기획부터 AIDMA, AISAS 등 소비자 행동 모델과 퍼널 전략까지 활용해 왔습니다. (이중 모르는 개념이 있다면, 검색해 보고 공부하며 적용해 보길 추천 드립니다.)
특히 캠페인의 메인 컨셉을 도출하기 위해 아이디어 발상법을 꼭 적용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크리에이티브 개발법이 있는데요. 당연히 정답은 없지만, 여러 이론을 살펴보고 실제로 시도한 결과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했어요. 정보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숙성의 시간을 거쳐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다음 구체화를 하면서 실행하는 과정이죠.
기획 과정의 예시로 실제 진행했던 캠페인을 소개하려 합니다. 가장 최근에 청소년기후행동과 함께 기후 헌법소원을 위한 국민참여의견서를 모으는 캠페인을 기획했어요. ‘말풍선 보내기’라는 컨셉을 중심으로 ‘기후대응 이의있음! 우리의 말은 헌법재판소로 간다'는 슬로건을 뽑았습니다. 이 메시지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1) 수집과 분석
기획에 앞서 다음 세 가지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 캠페인 내용과 관련된 정보
저는 기후단체에서 활동했던 경험도 있고 비건 유튜브를 운영하며 IPCC 기후보고서를 다뤄왔기 때문에, 기후 이슈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었어요. 최근 기후 이슈들을 다시 살펴보며 이해도를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기후 헌법소원 소송에 대한 자료를 공부했죠. 국민참여의견서 캠페인을 시작한 배경과 목적부터 보도자료, 변론요지서 등을 꼼꼼하게 파악했어요. 기후 이슈를 다루는 소셜 계정을 탐색하며 콘텐츠 내용과 구성을 수집했습니다.
📌 캠페인 형식과 관련된 참고 자료
캠페인 기획에 참고할 만한 국내외 캠페인 케이스와 웹사이트를 모아 서로 공유했어요. 주제와 무관하게 다양한 형식의 캠페인을 함께 살펴보며, 우리 상황에 맞게 어떤 부분을 참고하고 어떤 부분을 다르게 해야 할지 이야기했죠.
📌 관련 없어 보이지만 연결할 수 있는 것들
함께한 팀원들과 소통하는 슬랙방 중에 ‘짤방 공유방’이 있었어요. ‘짤방 공유방’에서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을 틈틈이 공유했죠. 이후 구체화 및 실행 단계에서 콘텐츠에 활용되었습니다.
광고회사에서는 마케팅 전략을 짜기 위해 자사, 타사(경쟁사), 시장 상황, 잠재 소비자 등을 분석한 팩트북을 만들곤 합니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생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조합만 있을 뿐이죠. 자료를 분석하며 어떤 전략이 필요할지 방향을 잡습니다.
2) 발산과 수렴
먼저 어떤 톤앤매너와 컨셉을 가진 캠페인이 필요한지 고민했습니다. 국민참여의견서를 모으는 이유는 단순히 권위 있는 전문가의 의견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함께 듣기 위한 거였어요.
구체적으로는 청년과 더불어 어린이, 청소년, 중년, 노년 모두 자신만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거주지나 직업, 정체성의 제한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했어요. 그러려면 이 소송의 맥락을 쉽게 전달하고, 간단하지만 솔직하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분위기가 아니라, 편안하고 재미있는 톤앤매너가 필요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착하기만 한 이미지나 투쟁적인 이미지도 지양했습니다. 대신 헌법소원까지 했고, 단순히 좋아요나 후원이 아닌 ‘의견서’까지 받기로 한 결정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광기와 진심을 담았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도 ‘와 이건 함께 해야 해!’라고 느끼길 바랐습니다. 이런 점들을 생각하며 아이디어를 나누었어요.
“국민참여의견서를 작성해서 제출해 주세요, 하면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지잖아요. 단어도 익숙하지 않고, 나 말고 더 똑똑한 사람이 써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좀 있거든요. 근데 이 의견서를 글로 쓰는 게 아니라, 말로 하게 하면 어떨까요? 모든 글은 ‘말’에서 시작하니까요.”
“글 대신 말이 좋겠어요. 직접 말하는 것보다 더 편한 건 ‘채팅’인 것 같아요. 이 의견서를 재판장님에게 보내는 ‘말풍선’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때요? ‘아니 근데 재판장님, ~ 한데요. ~한 판결을 내려주세요’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는 거죠.”
“사람들이 만든 말풍선들이 헌법재판소로 슝 보내지거나, 그 주위를 둘러싸는 이미지가 생각나요. 지도에서 헌법재판소 위로 메시지 알람이 마구 쌓이고, 의견서를 전달한 후에는 읽음 처리가 되는 거죠!”
회의 때 나누었던 이야기를 재구성했어요. 머릿속에 그림이 딱 그려지지 않나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이 컨셉이 뚝딱 나오지는 않았어요. 여러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발산하는 회의를 했죠. 이때 처음부터 완벽한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거나, 현실적인 조건을 생각하면서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 안에서만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가감 없이 다 던질 수 있어야 새로운 생각을 연결할 수 있어요.
3) 구체화
그렇게 발산, 수렴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후대응 이의있음! 우리의 말은 헌법재판소로 간다”라는 메인 슬로건을 정했습니다. 캠페인 사이트는 메신저로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나누면 자연스럽게 헌법재판소에 보내는 말풍선 형식의 의견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덕분에 어린이부터 중년과 노년,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분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었어요.
채팅과 말풍선이라는 컨셉을 살려 홍보 콘텐츠를 만들었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참여를 독려하기도 하고, 공개변론일에 정부와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나눈 대화를 채팅으로 재구성해서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참여 유도 메시지에서 기존에 공유했던 밈과 짤들을 적절히 활용했어요.
온라인 캠페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캠페인도 함께 진행했습니다. 더 긴 글을 쓰고 싶은 분들을 위해 글쓰기 키트를 기획하고 함께 글을 쓰는 자리도 마련했어요. 동시에 이 글쓰기 키트를 온라인에 게시해서, 어디서든 글쓰기 모임을 열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울부터 제주까지 그야말로 전국구에 있는 많은 다양한 분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었어요.
🌝 ‘즐겁게’ 일해야 하는 이유
마케팅 캠페인과 사회변화 캠페인이 비슷하다고 했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영리 기업의 마케팅을 주로 하다가 사회변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겪은 실무적 어려움과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나눠볼게요.
우선, 예산의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에는 기업도 ROI(광고 지출 대비 수익률)를 계산하면서 돈이 되는 마케팅만 하려고 하는데, 사회변화 캠페인의 성과는 금전적인 수익이 아니잖아요. 경제적인 부분과 더불어 인력이나 시간 등 여러 리소스가 부족한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뭔가를 만들거나 행사를 열면 필연적으로 쓰레기가 생기게 되는데, 이게 정말 큰 딜레마입니다. 많은 캠페이너가 캠페인을 물리적으로 경험하게 할 수단을 고민할 때마다 어려움을 마주합니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가 되지 않을 유의미한 굿즈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떤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행사를 기획해야 폐기물이 덜 나올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게 되죠.
게다가 공익을 위한 캠페인임에도 보수적인 조직이 주체가 되거나 협업의 대상이 되면 처음 목표와 달리 타협을 하거나, 메시지를 둥글게 깎아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후대응 이의있음’ 지하철 광고를 할 때도, 캠페인 슬로건을 그대로 쓰지 못했어요. 논쟁적인 의견광고라는 이유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죠.
이런 어려움 속에서 실무자들이 지친다는 문제도 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번아웃을 겪는 활동가와 기획자, 창작자들을 봐왔습니다. 한국의 많은 사회문제는 죽음, 폭력, 차별 등의 문제를 갖고 있는 데다가, 혐오세력의 악플이나 공격에 대응해야 하는 때도 있으니까요.
그럴수록 함께하는 동료와 많이 이야기하면서 지치지 않게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돌봄과 나눔이 가능한 관계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와 가능성이 열립니다. 회의 시작 전후로 일상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서로 무엇을 바라는지 욕망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고민을 나눌 때 많은 문제가 해결되니까요.
즐겁게 해야 한다고 해서, 모두의 감정이 꼭 밝고 행복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분노로 흥분하거나, 슬픔을 나누며 기획할 때도 있고, 답답한 마음이나 불안한 마음으로 몰입할 때도 있죠. 중요한 건 그 감정을 없는 것 취급하거나 무시하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동료와 마음을 나누고 솔직한 연대를 쌓으며 일하는 거죠. 재밌다고 평가받는 캠페인과 콘텐츠 뒤에는 늘 동료와의 공명이 있었습니다.
제 2회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PM을 맡았을 때, “퀴어 퍼레이드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하라”는 정치인의 발언이 있었어요. 동료와 함께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발언을 향한 반발심으로 공명하며, 어떻게 하면 퀴퍼를 더 잘 보이게 할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에서만 하던 온라인 퀴퍼를 바깥으로 꺼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퍼레이드를 여는 공간 말고도 여기저기 마구 보이게 하고 싶은데… 하며 아이디어를 모았어요.
‘우리의 퍼레이드는 막을 수 없고, 어디서든 열릴 수 있다’는 뜻을 담아 “우리는 어디서든 길을 열지”라는 슬로건을 뽑았습니다. 지하철 광고로 마음을 표현하는 팬덤 문화와 영리기업의 온오프라인 통합 캠페인들을 떠올리며, 오프라인 연계 광고 캠페인을 제안했죠.
그렇게 옥외 광고를 위한 펀딩 사이트를 열었고, 며칠 만에 1차 목표액인 천만 원을 달성했어요. 빠르게 늘어가는 펀딩금액을 보면서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총 2천 만 원의 광고 예산으로 서울과 부산, 대구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 우리의 존재를 드러냈어요.
광고회사 업무 경험을 활용해서, 제한된 예산 내에 최대한 많은 공간에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미디어믹스를 구성하고 집행했는데요. 인스타그램에서 진행하는 퍼레이드 장면을 여러 공공장소에 내보냈을 때의 그 짜릿함은 잊을 수 없습니다. 이후 이 광고는 아르코미술관 기획전에 전시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었어요.
광고 매체뿐 아니라, 퀴어 퍼레이드를 지지하는 커뮤니티의 힘도 적극 활용했습니다. 포스터를 신청한 분 모두에게 포스터를 보냈습니다. 학교 게시판부터 동아리방, 음식점과 카페, 미용실, 친구 집 대문, 국회의원실까지. 퀴어프렌들리한 공간마다 포스터가 붙었어요. 기획자로서 메시지와 매체가 일치할 때 큰 쾌감을 느끼는데요. 어디서든 길을 열겠다는 슬로건과 실제로 다양한 공간에 우리의 존재를 드러냈던 캠페인 방법이 일치해서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 캠페인 ‘성공의 기준’을 고민해야 할 때
그렇다면 제가 했던 캠페인은 과연 ‘성공적인 캠페인’일까요?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성공일까요? 후원금을 많이 모으면 성공일까요? 재미있다고 평가받거나, 소셜 섹터에서 이야기되면 성공인 걸까요? 아니면, 법과 제도를 변화시켜야만 성공일까요?
물론 캠페인 성공의 기준은 캠페인의 목적과 규모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량적으로는 콘텐츠 도달, 캠페인 참여, 웹사이트 방문이나 팔로워 수, 관련 키워드 검색량 등을 측정할 수 있고요. 참여자들의 피드백이나 후기, 이슈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터뷰나 자체적인 회고를 통해 정성적인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회변화 캠페인이 성과 측정에 어려움을 겪어요. ‘사회변화’ 캠페인인 만큼 결국 ‘변화’를 이끌었느냐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인데요. 이를 측정하기 위한 수단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보통 캠페인은 짧은 기간 진행하는 데 반해, 사회는 천천히 변화합니다. 그렇다고 기업에서 하듯이 장기간 조사를 염두에 두면서 리서치 회사에 큰 비용을 주고, 대중의 인식과 행동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경우는 드물죠. 게다가 실제로 유의미한 사회변화가 있더라도, 마케팅 캠페인과 달리 하나의 이슈에 하나의 캠페인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중 어떤 캠페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차지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런 성과 측정의 어려움은 꽤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과를 알기 어려운 캠페인은 계속해서 필요한 리소스를 획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요. 사회변화 캠페인의 숫자는 늘고 있지만, 진짜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진 캠페인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동시에 그린워싱과 같은 ‘허울’ 뿐인 캠페인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했다’는 데에만 의의를 두는 캠페인을 기획하느라, 진정한 변화를 만들 기회와 가능성은 고려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실무자로서 ‘단 한 명이라도 이 캠페인(콘텐츠)으로 삶이 바뀌었다면, 성공한 거지!’하고 생각하는 순간도 있지만, 캠페인을 하기 전과 후의 세상이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아요. 이렇게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면 당연히 지치게 됩니다.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경우도 생겨요. 그렇게 사회변화 캠페인 실무자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는 것은 점차 어려워지죠.
사회변화 캠페인이 지속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캠페인들의 성과 측정 방법을 더 고민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조사와 분석에 필요한 자원을 지원할 수도 있고, 시상을 하거나 성공 사례를 나누는 자리와 지면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더 많은 사회변화 캠페인이 가시적인 성과를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 경계를 넘나드는 ‘연결’을 꿈꾸며
마치 사회변화 캠페인의 전문가인 것처럼 글을 썼지만요. 제목에서 밝혔듯 저는 사회변화 캠페이너로 쭉 커리어를 쌓아온 게 아니었습니다. 광고AE, 마케터, 프로젝트 매니저, 제작자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여러 일을 해왔습니다. 동시에 비건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영화도 만들고, 글방에 다니면서 소설과 에세이도 썼고요. 독서모임과 회고모임도 하고, 전시와 영화제도 다니고, 그림과 타투와 타로도 배우고, 요즘엔 윤리학과 법 공부도 하고 있어요.
직장인과 활동가 사이, 기획자와 제작자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정체성의 경계에 서 있다는 감각으로 일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복합적인 정체성 덕분에, 저만의 시선을 가지고 사회변화 캠페인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었어요.
솔직히 저보다 기획 잘하는 사람, 콘텐츠 잘 만드는 사람, 사회변화 캠페인에 대한 전문 지식이 많은 사람은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광고홍보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서 여러 브랜드 마케팅을 하다가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캠페인과 콘텐츠를 만들고, 비건 지향을 하면서 오픈 퀴어로 살아가는 여성 청년 캠페이너는 많지 않죠.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과 취미, 관심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직업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변화 캠페인 기획에 더 많이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 사회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고, 사회운동은 활동가들만 하는 거라는 구분 짓기를 그만두고,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을 넘어서길 바랍니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 사회변화 캠페인을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더 많은 경계에서 협업이 필요합니다. 여러 조직과 개인이 만나고 섞이기를 바랍니다. 시인이자 카피라이터인 함민복 시인은 <모든 경계에서 꽃이 핀다>고 했는데요. 우리 더 기웃거리고 딴짓하면서, 이곳저곳의 경계에서 만나요!
글 | 장은나
‘비건먼지’ 유튜브와 팟캐스트 운영자이자, 프리랜서 캠페인 기획자.
비건 퀴어 페미니스트 정체성으로 글을 쓰고 영화를 제작한다.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코멘트
3캠페이너로서의 흥미로운 경험을 캠페인즈에서 읽을 수 있어 더욱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직장인과 활동가 사이, 기획자와 제작자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정체성의 경계에 서 있다는 감각으로 일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복합적인 정체성 덕분에, 저만의 시선을 가지고 사회변화 캠페인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었어요."
이 부분!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해야 할 지, 제너럴리스트라고 해야 할 지.. 이런 관점과 경험에 대해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캠페인이라는 일을 하려면 이런 모든 관련 역량을 총 동원해야 해서 더욱 잘하고 계시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장은나님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캠페인즈에서도 디지털 캠페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할 수 있다는 강점이 참여를 확산시키는 강점이 되는 것 같네요.
오, 내용 중에서 직접 참여했던 캠페인이 있어서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캠페인 비하인드 이야기 듣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