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달이 잘못되었으면 정정보도가 필요한데 잘못된 정보가 생존법으로 확산되면 더욱 난감한 사안들이 생겨나겠어요.
다만 화재 시 스프링클러가 작동되어야 할 이유라든지 어떻게 생존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후속 보도나 실험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한 X(전 트위터) 이용자는 “전국 택시가 26만 대니 길에서 택시 지나가는 정도로 성범죄자를 마주친다는 뜻”이라고 개탄했다.
대부분 가해자의 연령은 남성+10대 중심으로 가해가 이뤄지고 있네요.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라고 취임식 때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역설적으로 그는 반지성주의로 위기로 몰아넣고 있네요. 상식보다 불통이, 헌법보다 천공의 말에 신뢰를 갖는 게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인 판단일지.. 그런 문제가 각 부처 후보자를 고를 때나 공약 행사할 때 드러나는 것 같구요.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니 인재가 떠나는 것이겠죠.. 기초과학은 돈이 되지 않고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해버리는 태도도 문제라고 보는데, 이런 문제가 발생할수록 기술 개발이나 학문의 질적 수준도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수익구조화돼 있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의미”라며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이 온라인상에서 하나의 ‘콘텐츠’가 돼버렸는데도, 이를 경미한 사안이라고 보는 사회 인식이 성범죄를 키우는 주요 원인”이라고 짚었다.
22만 명이 돌려서 성적대상화를 하는데 성범죄도 필연 잇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 역시 생겨날 것으로 보이구요.
악의가 다분하네요. 이주민을 향한 차별을 국가가 나서서 보여준다는 것이 사회가 개방적인 면보다 폐쇄성이 짙은 것 같다는 인식이 듭니다.
서울은 지하철,버스만 타도 어디든 이동과 접근성이 편리하죠. 그런데 서울만 벗어나도 자동차 없인 이동이 불편해서 이동권 보장이 어려운 경우가 많더군요.. 시스템의 문제를 방치한 채 혼자의 노력으로 돌리게 할 때 사고가 발생한다는 지점을 지적한 기사로 읽었습니다.
아이폰 16이 다음 달 9월에 정식 출시가 된다고 하죠. 해마다 아이폰은 시리즈가 계속 거듭해서 나오는데 가격은 비싸고 사고 버려지는 물건들은 자연스레 늘어나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폰 수명 역시 짧아지도록 설계했다는 것과 물건이 조금이라도 고장나면 새로 사야한다는 인식이 스며 소비를 부추긴다는 생각이 불편하더군요.
새로운 물건들을 사기보다 잘 수리할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어떨까 싶어요.
22대 국회에도 기후위기특별위원회가 필요합니다.
21대 국회 기후특위의 한계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권한을 가진 특별위원회의 설치가 필요합니다. 국회 기후특위설치의 현실적한계는 10개 이상의 관계부처, 상임위 중복의 문제, 명확한 소관예산과 부처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단계적으로 접근하여 실효적으로 운영가능한 기후특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 22대국회에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①기획재정위원회의 탄소중립기본법24조에 의거한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의 심의 의결권한 이양,인지예산제도의 개선방향 수립 및 제시, 기후대응기금 ②탄소중립기본법에의한 법률안 개정안마련과 소관상임위원회를 기후특위로 이관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그 외 대통령 소속 2050탄소중립위원회를 소관 조직으로 하고, 탄소중립 국가기본계획, 기후영향평가를 소관업무로 이관하여 업무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기후위기 시대에 걸맞는 정부조직개편안을 논의해야 합니다. 기후위기 대응,기후적응과 기후정의, 에너지전환, 정의로운전환 등을위해서는 정부조직개편이 필요합니다. 기후에너지부 등과 같은 부서를 신설하고 특별위원회의 소관부처로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특별위원회가 주도해야 합니다. 이 토론의 과정에는 여야를 막론한 국회는 물론 전문가, 시민사회가 함께해야 합니다.
위기의 시대, 기후정치가 어느때보다 중요한 22대 국회.
말뿐이 아니라 우리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응할 수 있는, 활동력 있는 기후특위를 구성하고 함께 논의합시다.
전기에 의해 화재가 시작되었고 에어매트를 깔았는데 뛰어내린 투숙객이 숨졌고 에어매트가 뒤집힌 문제가 컸던 것 같구요. 건물은 20여 년 전에 지었는데 스프링클러가 없었구요.. 더 큰 참사로 이어질 도화선들이 가득했습니다.
자극적인 정보가 높아지니 피로도에 지치는 건 아닐까 싶어요.. 양질의 기사보단 조회수 경쟁으로 만든
자극적인 기사가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는 문제도 크고요.
한 때는 31-0 으로 패배에 익숙하던 교토국제고 야구팀이었지만 이젠 어엿한 정상에 올랐네요. 고시엔 구장에서 울려퍼진 한국어 교가에 애환의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출근길에 요즘 최성환 작가의 <익명과 상식에 관하여> 책을 읽고 있는데요. 우리가 외면해오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은 대상들을 익명이라 칭하며 이들의 특징을 다루는 책입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 스피커로 ‘4호선에서 특정 장애인 집단의 시위가 있어서 해당 운행 구간을 무정차 통과한다’ 는 안내방송이 들리는데요, 여기서 특정 장애인 집단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입니다.
이들의 시위는 무정차 통과해버리는 서울교통공사와 이동권 시위를 무력으로 저지하는 경찰에 의해 무력화 됩니다. 장애인은 이 책에 나온 익명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알기 거부합니다. 나의 출근길 지연으로부터 생겨나는 불만과 불편에 기대느라 이들을 알 여력이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그 사이 장애인은 공공기관, 경찰 심지어 시민에게 모두 따가운 눈총을 맞습니다. 환대받지 못하고 정상성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벼랑 끝에 메달립니다. 과연 그들은 누구에게 기대야 할까요? 정상성에 부합한 자들로 꾸린 세상에서 우린 장애인을 비정상이라 부르고 계급을 나누느라 이들의 권리를 쉽게 알지도, 알 방법조차 알 도리 없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을 오르는 사람들 다수는 정상성에 속한 이들이겠지요. 저들이 진정으로 불편해하는 것은 출근 시간이 늦어져서 오는 불편과 답답함이 가장 클 것입니다. 매끄럽게 잘만 가고 있는 출근길에 전장연 시위가 제동을 건 셈이니까요. 하지만 평생을 투쟁하고 투지한 이들의 절실함은 마치 저들을 통제하는 것에 가담하는 건 아닐까 칼럼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책에 읽은 대로 우리를 결속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떠올려보았습니다. ‘익명이 암시를 통해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구성원을 통제한다면, 우리는 필시 익명의 노예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위 책 79쪽) 라는 문장처럼 우린 자본주의라는 익명 속에서 사로잡힌 채 지내는 건 아닐까란 근본적인 생각과 소외된 익명들을 못 본체 하는 행위가 집단적으로 이뤄진다면 해결할 문제를 방치하는 (78쪽) 결과를 낳지 않은가 돌아보게 합니다.
언제부턴가 종이 신문을 읽을 때 기사처럼 ‘위장한’ 광고가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더라고요. 신문이 어떻게 수익을 거두는지 구조를 알 수 있었습니다. 기업이 돈을 주고 단점은 가리고 장점만 부각하도록 실은 기사에 공정보도는 보이지 않네요.
“한 사람의 정체성은 출신국에도 남아 있고 도착국에도 남아 있어요. 한국에선 국적이 곧 민족이잖아요. 그 두 개가 불일치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낯설어하는 것 같아요.”
이주민의 문턱을 낮추고 환대로 나아가기엔 아직도 장벽(문화,언어,혐오,편견 등)이 높지만 누구나 경계인이 될 수 있는 시대에서 살고 있고 그들의 잠재력 가능성을 편견으로 가릴 수 없고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이 제정이 되었어도 혹은 개정이 되었어도 일상에 스미기까지 오랜 시간이 또 걸린다면, 유야무야될 것 같아요..
학창시절 사교육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공교육의 붕괴를 나란히 목격했는데, 사교육은 말 그대로 자본논리가 명확한 것 같습니다. ‘나에게 돈을 달라. 너희들에게 양질의 솔루션을 전해주겠다. ’ 는 공고한 논리가 입시에서 결과를 증명해냈죠. 효과가 증명된 강사는 입소문까지 타니 학생 수요가 늘고 팬덤까지 생겨나는 등 결국 강사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부는 고스란히 돌아가는 구조지요. 시장입장에선 너무 매력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지만 이 신호가 마냥 좋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공교육은 갈수록 신뢰를 잃고, 사교육은 거대기업처럼 자본을 불리는 중이고 학생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고요. 학습 격차와 능력주의가 더욱 심화된다는 측면에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 같아요.
해양쓰레기를 무심코 버리면 결국 피해는 어민, 비인간 생물 나아가 먼 타국으로도 이어지네요. 기후위기하면 대기오염이나 날씨에만 초점을 맞추게되는데, 이런 쓰레기도 기후위기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무척 아찔해집니다.
기후위기가 아니라 기후 심각이라고 불러야할 거 같아요. 폭염과 열대야가 최장기간 이어지고 있는데, 쪽방촌에 사는 분들의 건강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폭염이 지속되면서 올림픽을 포함한 메카 같은 행사에도 변화가 따를 것 같고, 그 사이 갈등은 깊어질 것 같고... 다 이어져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