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사건을 보며: 우리 사회 전체의 반성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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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 연구자. 일어/중국어 교육 및 번역. => 돈 되는 일은 다 함

(사진출처: 경향신문)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모론 중에 “렙틸리언(Reptilian, 도마뱀 인간)”이라는 게 있다. 도마뱀 인간들이 정재계를 장악하려고 남몰래 활약 중이라는 이야기인데, 이것을 꽤 진지하게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파충류 같이 생긴 마크 저커버그가 그 대표자이고 그 외에도 여러 기업인과 정치인(특히 민주당 인사)들이 파충류 인간이라고 한다. 게중에는 도마뱀 인간의 낌새가 난다는 이유로 자기 자식을 죽인 남성도 있다고 하는데, 특별히 정신이상이나 질환의 징후는 없고, 진짜로 지구를 위해 자식을 죽인 일종의 사상범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Peolple.2023.10.13.)

이런 음모론을 한데 모은 거대 각성 지도(Great-Awakening-map)라는 것도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자 거대한 음모론 단체인 큐아넌(QAnon)이 만든 음모론 지도인데, 이들은 이를 음모론 모음이 아니라 진정한 “세계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거대한 음모들 뒤에는 그림자 정부가 도사리고 있으며, 이들은 어린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려 한다. 개신교적인 하나님을 믿으며 티벳불교적 명상으로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서 진실을 보고 세상을 구원할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탓에 이들은 다문화주의나 세계주의, 평등주의를 음모라고 생각하고 백인우월적인 생각을 한다.


(큐아넌의 거대각성지도. 지금 여러 방송, 유튜브 등에서 거론되는 거의 모든 음모론이 집대성되어 있다. 이 지도의 한글 버전은 여기에서.)


이런 걸 대체 왜 믿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정신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경우도 있고,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개인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양은 점점 증가하는데 그 확실성이나 명확성, 규칙성 같은 것을 찾는 게 점점 힘들어져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통제하기 힘든 상황에 처하면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이 통제할 것을 자꾸 찾아 안정감을 얻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운동선수들의 징크스가 대표적인데, 어떤 이들에게는 음모론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음모론이 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음진실됨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게 되면 큐아넌 같은 단체로 발전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음모론 신봉자들이 꽤 있는데 최근에 자주 나오는 단체 중에서는 뉴라이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라는 것도 일종의 음모론 신봉이요 확증 편향 같은 것인데, 거기에 더하여 기득권에 대한 옹호와 아부, 역사적 정당성과 인류 도덕성에 대한 훼손, 역사적 피해자에 대한 가해적 행위라는 점에서 큐아넌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역겨운 단체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뉴라이트를 그냥 비난하면 되는 것일까? 해방된지 어언 80년인데 친일이냐 반일이냐를 가지고 싸우게 만드는 정부를 욕하면 끝일까? 아니다. 저런 자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세상, 공론장에서 위안부와 징용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자들이 활개치도록 열어준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 먼저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고 촛불‘혁명’을 하고 케이 컬처를 세상에 퍼트리고 있다고 자랑을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1945년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윤 모 씨와 그 일당만의 잘못이 아니다. 김형석이라는 자는 물론이고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든 정당과 윤 아무개 일당은, 우리 모두가 불확실성과 예외성 때문에 세상에 대한 관찰과 의심, 사색을 포기한 댓가다. 속된 말로 설명하면 세상일을 알아보고 생각하기 귀찮아서 두뇌를 외주 준 댓가다. 이런 걸 한자어로 반지성주의라 한다. 관찰과 의심, 사색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일이 시급한 사람들이 이것까지 하면서 살기는 너무 힘들다. 하지만 반지성주의는 파시즘의 시작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 문제를 지적하며 진실되지 않은 것을 가치 있는 것이라 우기는 사람들과 싸우고 있다. 내가 직접 나설 수 없다면 이들을 돕자. 우리가 반지성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제2의 김형석, 제3의 김형석은 계속 출몰할 것이다. 렙틸리언 믿는다고 비웃을 때가 아니다. 그들을 비판하는 우리는 괜찮은지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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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자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세상, 공론장에서 위안부와 징용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자들이 활개치도록 열어준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 먼저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고 촛불‘혁명’을 하고 케이 컬처를 세상에 퍼트리고 있다고 자랑을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1945년을 못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명문이네요 밑줄 긋고 갑니다...

윤 대통령은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의 최대 위기라고 취임식 때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역설적으로 그는 반지성주의로 위기로 몰아넣고 있네요. 상식보다 불통이, 헌법보다 천공의 말에 신뢰를 갖는 게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인 판단일지.. 그런 문제가 각 부처 후보자를 고를 때나 공약 행사할 때 드러나는 것 같구요.

반지성주의를 경계하고,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며, 비판적 사고를 키워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