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2억원 웃돈 기대, 탁 트인 한강 조망” 기사… 사기 아파트 광고였다

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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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광고는 말 그대로 광고로 보지만, 기사는 언론인의 취재와 검증을 거친 콘텐츠로 보고 대체로 믿습니다. 그래서 ‘기사처럼 생긴 광고’가 등장했어요. 기사의 ‘신뢰’를 광고에 끼워파는 것이죠. ‘기사형 광고’는 언론사의 주요 변종 돈벌이 수단이 됐습니다. ‘광고’지만 ‘기사’로 위장해 허위 정보가 들어있어도 믿는 사람이 많고, 이것이 큰 피해로 이어지기도 해요.

<뉴스어디>가 만난 시민들은, 언론사가 심의규정에 따라 해야 하는 '광고' 표기를 숨겨놔 광고 표기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한때 기사와 광고를 헷갈리게 편집할 경우 2천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법이 있었지만, 2009년 이 조항을 삭제한 신문법 개정안이 통과됐어요. 이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 12명 중 8명이 언론인 출신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뉴스어디의 기사형 광고 추적 보도 1편을 읽어보시고, 함께 고민해봐요! 뉴스어디는 기사형 광고 심의규정을 위반한 문제 기사를 전수조사해 특별페이지 ‘내가 본 기사, 사실은 광고라고?’에서 공개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오늘 본 기사가 광고같다면, 이 페이지에서 확인하고, 기사형 광고를 찾는 법도 알아가세요! 



252명이 아파트 분양 사기를 당했다. 피해액은 약 260억 원. 2017년부터 추진한 서울 옥수동 지역주택조합 ‘한강 옥수 우림필유’ 이야기다. 조합장 한모 씨, 감사 박모 씨 등 8명이 34층짜리 4개 동, 593가구 규모 아파트 사업을 추진한다며 2017년 4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조합원을 모집했다. “강남보다 저렴하지만 강남과 비슷한 생활권이라는 의미의 ‘뒷구정동’”, ‘2억원 웃돈 기대’ 등의 기사가 나오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강남 생활권 돋보인다더니 이제와 ‘원수에게 권하는 아파트’?

지난해 10월 16일 한모 씨 일당이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되자 몇몇 언론은 이 사건이 ‘지역주택조합(지주택) 아파트’라는 점에 주목했다. “원수에게 권하는 지주택”이라거나 주택법이 허술해 사기가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디지털타임스’는 <“원수에게 권하라” 지주택 피해 막으려 구청까지 나섰지만…>(10월 18일 이미연 기자)이라는 기사에서 “매입 비용이 산꼭대기에서 굴러떨어지는 눈덩이처럼 무럭무럭 자라 조합원들에게는 추가분담금 폭탄”이 될 거라 경고한다.

‘땅집고’(조선일보 자회사)는 <“옥수동 34층 아파트?” ‘400억’ 지주택 ‘분양사기’에 국토부 늑장대응 비판>(10월 25일 배민주 기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허술한 법으로 인해 수백억 원대 분양 사기가 발생하자 국토교통부가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대로 지주택의 사업 성공률은 10~20%에 불과하다. 일반인이 조합을 이뤄 시작하다 보니 전문성도 떨어지고 사업 속도도 느리다. 재개발, 재건축과 달리 땅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하는데, 토지 확보율이 95%를 넘지 않으면 사업 승인이 나오지 않는다. 옥수동 지주택 사기 일당은 조합원들에게 토지를 80% 확보했다고 했지만 실제 확보율은 8%에 불과했다. 이런 지주택 특성 때문에 사기가 자주 발생한다. 옥수동 지주택이 사업을 시작한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주택 사기 피해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기사처럼 보이게 기자 이름도…  지주택 조합원 “기사형 광고 판단 어렵다”

지주택 사업의 문제를 몰랐을 리 없는 언론사들이 2017년에는 과연 옥수동 사업을 어떻게 다뤘을까. 

조선일보는 <탁 트인 한강 조망, 일반 분양보다 10~20% 저렴하게 누릴 수 있다>(2017년 4월 27일 고석태 객원기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조합원 모집을 통해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이기 때문에 일반 분양 아파트에 비해 훨씬 낮은 공급가” 등을 강조했다. 


옥수동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의 강점을 부각한 2017년 4월 27일 자 조선일보 기사형 광고. 지주택 관련 부정적 측면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주택은 원수에게 권하라’고 한 디지털타임스는 5년 전에는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이기 때문에 일반 분양 아파트 대비 훨씬 저렴한 공급가로 한강 조망”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자치구에 토지소유권율 등을 문의해볼 수도 있었지만, 이를 확인한 보도는 한 건도 없다. 


디지털타임스는 2017년 지주택 아파트를 두고 “일반 분양 아파트 대비 훨씬 저렴한 공급가”를 강조했지만, 2023년에는 ‘지주택은 원수에게 권할 아파트’라고 적었다.


매일경제와 동아일보는 당시 부동산 정책을 언급하며 분석하듯 ‘기사처럼’ 기사형 광고를 썼다. 매일경제 <한강조망·초역세권·강남생활권⋯3박자 다 갖췄다>(2017년 4월 12일 배윤경 디지털뉴스국 기자), 동아일보 <“한강조망권, 초역세권에 강남생활권까지 다 갖췄네”>(2017년 4월 20일 김민식 기자) 등은 “11·3 부동산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 체감 경기가 얼어붙었지만, 웃돈까지 붙은” 지역으로 옥수동을 지목하며, 이 아파트 사업을 언급했다. 옥수 우림필유의 한 조합원은 “저희가 본 광고가 기업형 광고(기사형 광고를 말함)인지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했다. 사실상 광고인지 몰랐다는 말이다.


동아일보, 기사형 광고는 싣고 지주택 사업 문제점은 보도하지 않아

10여 개 매체가 게재한 옥수동 지주택 아파트 기사형 광고 전체 60건 중 14건을 동아일보가 실었다. 사기 아파트 홍보성 기사가 두 번째로 많다. 하지만 지주택에서 발생한 사기 사건은 보도하지 않았다. 옥수동 아파트 건뿐 아니라 서울 구로, 전남 순천, 강원 고성 등에서 올해 발생한 지주택 사기 사건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주요 일간지 중 유일하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옥수 우림필유’를 언급한 지면, 인터넷 기사 보도 건수. 총 18개 언론사가 60개 기사를 작성했다.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 2017년 4월부터 마지막 보도가 실린 2018년 9월까지 약 1년 5개월간 보도 건수다. 이 중 지면 기사 6건이 심의규정 위반으로 적발됐다.



조선일보 기사에는 지주택 사업의 위험성을 다루지 않다가 뒤늦게 우려점을 추가한 흔적이 있다. <“합리적 가격에 한강조망권⋯서울의 모든 프리미엄 누려”>(2017년 11월 8일 고석태 객원기자), <한강 조망이 한눈에⋯‘더블 역세권’ 품은 중소형 아파트>(2017년 11월 16일 고석태 객원기자)는 지주택 개념을 적은 박스 형태의 설명 글을 붙였다. 내용은 동일하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강남권 아우르는 생활인프라⋅한강조망권을 합리적 가격으로>(2017년 12월 21일 고석태 객원기자)는 ‘조합의 운영 비리나 토지 매입 지연 등으로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조합원 신청에 신중해야 한다’는 부작용을 추가했다. 조선일보는 옥수동 지주택 사업 관련 기사형 광고가 19건으로 언론사 중 가장 많다.

조선일보는 옥수동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기사형 광고에서 지역주택사업 개념을 설명하는 칸을 3개 기사에 똑같은 형식으로 삽입했는데, 2개 삽입문에는 지주택의 단점이 없다. (출처: 조선일보 2017년 12월 21일, 11월 8일, 11월 16일 자. 시계방향 순)

광고보다 못한 기사형 광고 

기사 형식의 광고가 아니라 일반 광고라면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더 제공했을 수 있다. 광고는 중요한 표시·광고사항 고시에 따라 유전자변형물질 분야, 건강기능식품 업종 등 분야별로 ‘표시대상 중요 정보 항목’이 정해져 있다. 부동산업 및 임대업 광고는 ‘건축허가 취득 여부’, ‘대지소유권 확보 여부’ 등이 ‘중요 정보 항목’이다. 이를 표기하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공정위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사형 광고는 일반 광고와 달리 중요한 표시·광고사항 고시처럼 지켜야 할 구체적이고 강제성 있는 규정이 없다. 자율심의기구가 정해놓은 ‘독자가 광고를 기사로 혼동하지 않도록 준수’ 혹은 ‘기사로 오인하게 유도하는 표현을 해서는 아니 된다’ 정도가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력은 없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운영규정에 ‘1년 동안 3회 이상 경고를 받고도 시정하지 않는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징금’을 명시하고 있지만, 한국신문윤리위는 11월 3일 기준 “해당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관계자는 ‘언론사들이 제재를 받아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 처벌 조항 삭제

기사형 광고가 광고보다 못 믿을 대상이 된 건 2009년 신문법 개정 탓이 크다. 2005년 신문법 전부개정으로 “정기간행물의 편집인은 독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 편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2천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2009년 기사형 광고에 과태료를 처분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신문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개정안을 발의한 12명 중 8명이 언론인 출신이다. 뉴스타파가 <MB 정권의 처벌조항 폐지 후 독자기만 ‘기사형 광고’ 급증>(2019년 10월 28일 김강민 기자)기사에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 중 5명은 신문기자 출신으로 강승규(한국일보, 경향신문), 이경재(동아일보), 진성호(조선일보), 최구식(조선일보), 홍사덕(중앙일보)이고, 3명은 한선교(MBC), 안형환(KBS), 허원제(SBS)로 방송사 출신이다. 



취재 박채린(rin@newswhere.org)

* 이 기사는 뉴스어디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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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고보다는 소식을 원합니다.

1편 기사 어떠셨나요? 캠페이너 분들이 달아주신 댓글을 보면서 취재 당시 했던 생각이 한 번 더 떠올랐어요. 이미 많은 캠페이너 분들이 '언론 보도=허위 과장 광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 (사실 저도 취재하기 전까진 그랬어요. 이런 기사형 광고에 속는 사람이 있다고?) 그런데 취재하면서 알았어요. 누군가는 기사형 광고를 믿고 전재산을 투자하기도 한다는 걸요. 기사형 광고인 줄 알면서도 너무 많은 언론사에서 같은 기사형 광고를 내니까 그래도 믿을 만하지 않을까 생각하셨다는 분들도 계셨고요. '오늘은' 캠페이너님이 같이 보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해주신 셜록 기사에 나오는 피해자들도 그런 분들이겠죠. 기본적인 해결책은 언론사가 광고에는 광고 표기를 하는, 너무나 상식적인 일을 하는 것일테고, 그나마 근본적인 해결책은 처벌 규정을 되살리는 게 아닐까요. 좋은 기사를 쓴 언론사가 좋은 평가를 받고, 그만큼의 경제적 이득도 얻는 언론 생태계는 너무나 이상적인 것일까요. 2편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기사형 광고’, 사기성 사업에 악용도 많이 읽어주세요.

사실을 전달하는 신문이라는 매체에, 기사의 형식으로 '광고'를 내보낸다는 자체가 '읽는 사람들을 속이려는 의도'가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광고임을 밝히는 문구까지 최대한 보이지 않도록 구석에 작게 배치해두었다면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을 듯합니다.

지주택은 쳐다보지도 말아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습니다. 기사인 척 하는 광고도 정말 최악인데,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광고라면.. 정말 끔찍하네요.

기사형광고를 포착할 때마다 눈살 찌푸리고 넘어갔었는데, 이번 기회에 더 상세히 알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종이 신문을 읽을 때 기사처럼 ‘위장한’ 광고가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더라고요. 신문이 어떻게 수익을 거두는지 구조를 알 수 있었습니다. 기업이 돈을 주고 단점은 가리고 장점만 부각하도록 실은 기사에 공정보도는 보이지 않네요.

앞서 올라온 상가 사기 사건을 다룬 셜록의 기사가 떠오르네요. 두 시리즈를 같이 읽어봐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한 부동산 사기에 언론도 책임이 있다는 걸 짚어주는 기사로 보여서요. 기사형 광고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지적되어 왔지만 솔직히 언론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어려운 언어로만 설명하고 있어서 문제의식이 좋아도 공감되지 않거나 문제의식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이런 케이스처럼 현실의 사례가 덧붙여진 기사는 훨씬 전달력도 뛰어나고, 쉽게 이해되죠. 특히 기사에 언급된 것처럼 광고를 기사로 위장해 장사를 해왔던 언론사가 사기 사건으로 문제가 되니 비판하는 요상한 모양새는 특정 언론사들의 위선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언론사가 플레이어가 되는 상황이 독자에게 문제의식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가장 잘 먹힌다고 볼 수 있겠죠. 기사형 광고 문제의 사례 중 하나가 부동산일 뿐 의료기기, 의약품 등 더 많은 사례가 실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의 보도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