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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노동의 미래: 돌봄 노동과 외국인 노동
돌봄 노동이란 아동, 노인, 장애인, 환자 등 혼자 외부활동이나 일상을 영위하기 힘든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노동을 말한다. 이들을 돌보는 것은 어느 사회든 대체로 가족(그 중에서도 거의 대부분은 여성)이 책임지는 것이 전통이자 관습이었고, 돌봄에 있어서 국가 혹은 사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겨난 것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속담이 있고, 치매 같은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가족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하는 뉴스를 보면 사람들은 모두 딱한 마음을 표현한다.  돌봄, 혹은 돌봄 노동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노동이라고만 하기엔 다른 노동과 질적으로 느낌이 다르다. 도덕성이나 사랑 같은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또 돌봄 노동을 돈으로 계산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름대로 노동의 강도와 시간, 돌보는 사람의 숙련도 등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적인 기준을 세우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과정 자체가 너무 길고 힘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당장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돌봄에 대해 도덕성은 필요할 지 모르겠지만, 핵가족화를 넘어 탈가족화 이야기가 나오는 시대에 꼭 감정(사랑, 친근함 등)이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도 돌봄의 당사자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면 말하기 힘든 이야기다.  우리는 돌봄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이 말을 잘 해석해보면 두 가지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첫째는 돌봄을 책임지는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돌봄 노동의 시간과 강도를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둘째는 돌봄에 있어서 사회적/경제적인 차별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돌봄이 공적인 영역이 된다면 일단 이를 민간에 모두 맡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하도 자본주의가 중요하다고 노래를 부르는 사회이니까 자기가 돈을 많이 써서 더 좋은 돌봄을 받겠다고 한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도시(특히 서울-수도권)에 살고 있지 않다고 해서 돌봄 차별을 받는 일은 없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는 한국과 비슷한 문화를 지닌 동북아시아의 두 나라, 일본과 대만이 돌봄 노동에 대처하는 자세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두 나라 모두 한국보다 먼저 돌봄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 곳들이다. 고령화 문제와 더불어 사회가 늙고 있다는 이야기라던가 돌봄에 들어가는 비용 문제, 돌봄의 공공화 이야기가 한국보다 먼저 나온 곳이기도 한데, 또 하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돌봄 노동에 있어서 이주 노동자 유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곳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주 노동자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가족의 수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자식을 적게 낳거나 안 낳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돌봄을 담당할 가족의 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첫째와 연관이 되어 있는 저출산 문제다. 저출산 문제로 인해 노인을 돌볼 가족(자식도 형제도)이 줄어들거나 없어질 것이 예상되었고, 이와 더불어 돈을 주겠다고 해도 일을 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 생겨난 것이다. 셋째는 여성의 임금이 올라갔다는 점이다. 여성 인권이 신장되고 여성 임금이 올라가면서, 전통적으로 여성이 거의 대부분을 담당해 왔던 돌봄 노동이 이전처럼 유지되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대만과 일본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을 돌봄 노동의 책임자로 대거 유입하였다. 일본의 경우는 노인 요양 관련 제도를 만들어 놓고 시설을 중심으로 하여 숙련된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거나, 노동자들을 시설에 배치하고 숙련도를 높이는 식으로 진행을 한다.  오키나와 국제대학의 카게 리에(鹿毛理恵)와 사가여자단기대학의 마에야마 유카리(前山由香里)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외국인 재류자격에 요양(일본어로는 카이고介護)이 추가된 것은 2016년이고 실행된 것은 2017년이라고 한다. 일본이 돌봄과 요양 부분에서 외국인을 늘리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돌봄노동, 요양 관련 노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성명한다. 2006년 무렵, 언론을 통해 돌봄노동은 저임금 중노동 현상이 강하고 3K(한국의 3D 같은 것으로 더럽다-키타나이-, 빡세다-키쯔이-, 위험하다-키켄다-의 줄임말)노동이며, 돌봄/요양 노동자들이 치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며 시설 입소자에 대한 학대, 폭언, 폭력을 자행하는 일들이 자극적으로 보도되었던 것이 그 계기라고 한다.  안 그래도 부족했던 돌봄 노동 인력은 더 줄게 되었고, 돌봄 노동이나 복지 관련 교육 시설이 정원을 반도 못 채우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그래도 수가 부족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을 통해 채우려 하는 것이다. (「日本における外国人ケア労働者の受け入れと育成をめぐる 現状と課題:ジェンダーの視点からの分析」) 시설을 중심으로 하여 숙련된 외국인 돌봄 노동자를 수용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일본의 돌봄 환경에 맞게 육성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질적인 문제가 발생할 일은 없겠지만 노동자의 수를 충원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사다마츠 아야定松文「介護準市場の労働問題と移住労働者」). 일본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늘지 않는 돌봄 노동 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꽤 오래 전부터 돌봄 노동을 자동화, 기계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자력으로 운신할 수 없는 사람들을 들어올리는 로봇부터, 이동이나 운전을 돕는 로봇, 치매나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의 행동을 감시하는 로봇, 식사, 목욕, 배설을 돕는 로봇부터 고령자나 환자와 사회적이고 감정적인 교류를 유지시켜주는 로봇도 있다. 일본이야 워낙 옛날부터 로봇으로 유명했으니, 이런 문제도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노인이나 환자들을 위한 로봇을 만들겠다는 시도는 1990년대부터 있었지만 아직도 실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로봇은 없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어떤 종류든 돌봄과 관련된 로봇을 하나라도 도입한 노인 시설은 전체의 10% 정도였다고 한다. (MIT Tech Reciew.2023.01.13.)  앞으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일본의 이런 시도가 그리 유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을 한다. 돌봄 노동은 단순히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목욕을 시켜주거나 배설물을 치워주는 일 정도가 아니다. 돌봄 노동은 돌봄을 받는 사람이 정서적으로 외로움이나 부끄러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돌봄은 ‘인간관계’와 밀접한 관련이있다. 돌봄 노동을 금액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세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온전하지 않은 정신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정서적, 사회적 돌봄은 엄청난 강도를 요구하는 일이다. 돌봄 로봇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 해야하는 일인 것이다. 이에 비해 대만은 돌봄 노동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다. 돌봄, 특히 노동의 기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장기요양 환자를 중심으로 개인이 원하면 그 집에 살면서 노인이나 환자를 돌보는 돌봄 노동자의 고용을 허가하는 식으로 돌봄 이주 노동자를 수용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대만에서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외국인은 225,880명이다. 이 중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은 16,878명이고, 가정에서 일하는 사람은 207,399명이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여성이 종사하고 있는데, 대만의 복지/돌봄 관련 외국인 노동자 중 이 네 개 국적 중 하나를 가진 사람은 97%다. (대만 노동부 통계) 그리고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수적인 수요는 대체로 충족이 되지만 숙련도와 전문성이 낮거나 언어가 잘 안 통하기도 하는 인력들이 가정에서 일을 한다. 이런 현상은 돌봄 노동이라는 것 자체에 전문성이나 교육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또, 가정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가사 노동에도 종사하는 경우가 많을 가능성이 높고, 노동 시간의 제한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임금에 있어서도 불리한 측면이 많을 것이다. 또 돌봄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성폭력의 위험성도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저출산 고령화가 전세계 여러 국가의 문제가 되면서 돌봄 노동의 국제화도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유휘, 이정은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1월 말 기준으로 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서 근무하는 외국인은 총 463명으로 노동자 전체와 비교했을 때 0.6% 수준이라고 한다. 광역시, 도 등에서 관내 요양보호사 교육기관을 통해 관리하는 요양보호사 자격취득 현황 정보를 통해 추산했을 때엔 전체 요양보호사 중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라고 한다.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의 경우에는 외국인 노동자의 수가 많았는데 2020년 3월 18일 기준으로 전체 간병인 수 34,951명 중 외국인 등록번호 여부로 확인된 외국인 간병인 수는 16,080명(46%)이었다고 한다. 임금 수준은 요양병원 간병인이 더 높지만, 근로 조건은 요양시설의 요양보호사가 더 좋다고 한다. (김유휘,이정은「한국 돌봄서비스의 이주노동자 실태 분석」) 요양보호사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83만 7천여 명이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인원은 단 16,500여 명이라고 한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요양보호사의 94.7%가 여성이고, 평균 연령은 58.7세인데, 60대가 40.4%, 50가 39.4%라고 한다. 소수의 고령 여성이 다른 고령인을 돌보고 있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특별한 요인이 없다면 고령자의 수와 비율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고, 돌봄 노동자의 수요도 더 늘어날 것이 뻔하다. 돌봄 노동에 있어서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앞으로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 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돌봄 로봇이 상용화되기도 힘들 것 같다.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차별과 산업재해로 인한 부상, 사망에 관해서는 내가 기억하는 한, 20년 동안 딱히 변한 게 없다. 인권과 윤리성의 차원에서도, 현실적인 차원에서도,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은 너무 느리다. 돌봄 노동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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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90.6%가 이야기한 등록금 인상 반대
내년에 등록금 인상된다고요? 지금도 너무 비쌉니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교육부 “대학 등록금 인상, 2024년부터 사실상 허용” 비싸도 너무 비싼 대학 등록금, 이제는 15년째 동결 기조 폐지하고 인상했습니다. 가뜩이나 물가도 올랐는데 대학 등록금까지 오르니, 미래가 기다려져야할 대학 생활이 시작부터 버겁기만 합니다. 최근 대학가에서 사립대 총장 대부분이 15년동안 동결이었던 등록금을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대학 학부 등록금이 인상된 대학만 국립대학 8곳, 사립대학 9곳 총 17개입니다. 학생들에게 맡겨진 부담의 무게는 등록금뿐만이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치솟고있는 물가로 인해 생활고 또한 체감하는 학생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국가장학금 지원 포기하고 등록금 인상하는 대학들 대학 본부에서 등록금 인상을 결정할 경우, 교육부의 국가장학금 2 유형을 지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2022년 물가가 대폭 상승하면서 등록금 인상 법정 상한(3개년 물가상승률의 평균X1.5배)이 1.5%에서 4%까지 인상되었습니다. 대학들이 등록금 동결 시 지원받는 금액보다 등록금 인상으로 인한 수입이 더 커지게 된 것이죠. 대학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어떤 선택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지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이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대학 총장 중 40%가 내년도 등록금을 인상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현재까지 등록금 동결을 유인할 추가적인 정책과 등록금 인상 시 제재를 할 정책을 발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말로는 “등록금 동결”을 하겠다고 하지만, 추가적인 정책이 없는 상황에서는 사실상 대학 등록금 인상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등록금을 인상하려는 결심을 한 순간부터 등록금을 인상한 순간까지 그 속에 학생들의 의견은 부재했던 셈입니다.  <대학교육연구소 ‘2023학년도 등록금 인상 현황’> 대학생 말고 대학원생, 유학생에게 책임 떠넘기기  대학 학부 등록금을 올리려다 학생들과 학부모의 반발이 일자, 대학 본부는 대학 재정을  대학원생과 유학생의 등록금 인상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책임이 쉽게 전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학원생과 유학생 등록금 인상에 대한 교육부 규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서울시립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균관대학교를 포함한 69개 대학이 인상을 결정하였고 물가인상률 상승으로 인상폭도 대폭 늘어났습니다.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을 두고 ‘눈치게임’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대학원과 외국인 유학생 등록금 인상을 자구책으로 삼고있는 것입니다. 현재 등록금 논의가 진행되는 등록금심의위원회(이하 등심위) 기구에서 대학원, 유학생 등록금 인상이 상정되더라도 회의 구조상 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대학원생, 유학생 대표는 등심위 성원으로도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 의견은 배제된 채 등록금 인상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지서를 받고 있습니다.  대학 등록금, 누가 책임져야할까? 그렇다면 비싸도 너무 비싼 대학 등록금 인상 문제, 누가 책임져야할까요? 이에 대해서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학생과 학부모가 내야한다는 논리는 바로 이 ‘수익자 부담 원칙’에 의거해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수익자 부담원칙이란 교육 서비스의 효용을 얻는 학생이 그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논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급격하게 학령인구가 줄고, 대학 재정난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더이상 기존 학생과 학부모가 등록금을 부담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등록금에 의존해온 고등교육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자료를 보면, 2020학년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8582달러입니다. 미국(3만 1875달러), 스페인(1만 342달러), 호주(9226달러), 일본(8,879달러)에 이어 일곱번째로 높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대학 재정 투자는 OECD 36개 국 중 30위이며, 대학에 투자하는 정부 재정은 학생 1인당 4318달러로, 다른 나라의 재정 규모의 30%에 미치는 수준입니다. 독일(1만5918달러), 프랑스(1만3650달러), 미국(1만2612달러), 캐나다(1만990달러)에 비해 대학에 투자하는 비용이 현저히 적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대학 교육의 질은 학생과 학부모의 등록금으로 결정되는 수준으로 대학 교육의 위상이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 등록금은 우리나라 사립대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등록금 수입 다음으로 비중이 큰 것은 국가장학금을 포함한 국고보조금과 대학 설립 주체인 학교 법인이 대학에 지원하는 돈인 법인전입금이 있는데, 그러나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재정수입총액의 39.9%, 3.7%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사립대학에 비해 등록금 의존 편중이 낮은 국립대학 또한 최근 들어 정부 지원인 국고보조금이 낮아지며 등록금 의존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현황입니다. 올해 교육대학 8곳이 등록금 인상을 결정한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죠.  많은 사립대학들이 비싼 수준의 등록금과 많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도, 법인 전입금 비율이 가장 낮고, 학생들이 낸 등록금에 비해 비해 터무니 없이 낮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며 수업과 학생복지를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학생들은 수강신청 기간만 되면, 학생들 사이에서 “망한 수강신청 대회”가 진행될 정도로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도 원하는 수업조차 들을 수 없는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사립대학 재정 비리 및 적립금 문제 등 투명하게 대학 재정이 운용되고 있지 않은 현황이 발견되는 가운데, 수익자에게 오롯이 재정 문제의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사학비리를 근절할 대책을 정부에서 내지 않아 재단과 본부의 잘못된 판단과 비리로 인한 모든 피해는 학생들이 겪고 있습니다. 학교 본부가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제대로 책임지려는 자정작용이 필요합니다.  등록금 걱정 없는 대학 생활, 꿈꾸기 어려울까요? 결국 대학 등록금 인상을 비롯한 재정 문제의 책임은 대학 본부, 궁극적으로는 이를 관리 및 감독할 정부에게 있습니다.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대학생들의 요구는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일반 대학 등록금 인상률이 평균 6.7%에 이르자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과도하게 아르바이트 일정을 소화하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반값등록금’에 대한 대학생을 포함한 시민들의 요구안이 담긴 목소리와 행동은 불어나며 촛불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는 ‘국가장학금 정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국가장학금 지원 제도 도입과 대학 입학금 폐지를 만들어낸 것은 결국 대학생들의 움직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상 학자금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독일에서도 시민과 학생들이 끊임없이 투쟁하며 싸워온 역사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1971년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평등권을 대학 교육에 대한 평등한 접근 권리로 해석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등록금이 폐지됐습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대학 공공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투쟁한 결과이자 대학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는 시대의 성과이기도 합니다.  결국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인 우리가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고 막아야하는 이유는 등록금이 교육 불평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모두를 위한 대학 고등 교육이 실현되려면 결국 정부의 책임이 지금보다 더 커져야합니다. 더 이상 등록금 고지서에 눈물짓지 않고, 일상과 학업이 포기해야하는 선택지로 자리잡지 않도록 대학 본부와 교육부, 정부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할 때입니다. 대학생들의 힘으로 등록금 인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는 계속해서 행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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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강산은 변했는데, 학교는 어떤가요?
* 이번 들썩들썩떠들썩에 참여하신 분께서 소중한 소감을 보내주셨습니다. 강산은 변했는데, 학교는 어떤가요? 중고등학생 때입니다. 정문에 어떤 선생님이 있는지부터 확인했습니다. 선생님이 누군지에 따라 귀 덮은 머리를 넘기느냐 덮느냐를 정했습니다. 잘못 걸리면 이름이 적혔고, 그 이름은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에게 불렸습니다. “잘라라”. 선생님은 다음날 검사를 했고 저는 몇 번 걸렸고, 몇 번 잘랐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는 남학생들에게 옆머리가 귀를 덮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1mm도 덮은 거고, 1cm도 덮은 건데, 선생님마다 잡는 기준이 다른지 어떤 선생님은 봐줬고, 어떤 선생님은 봐주지 않았습니다. 정문에서 선생님을 확인한 이유입니다. 전날 걸렸음에도 자르지 않은 학생은 운동장을 토끼걸음으로 걸었습니다. 쪼그려 앉아, 귀를 잡고 운동장을 돌았습니다. 저는 멋 부리고 싶었고, 1mm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이 그랬습니다. 교실 창문에서 보면 남녀 할 거 없이 운동장을 돌고 있었고, 친구가 돌면 웃으며 놀렸습니다. 학교에 다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경험입니다. 누군가는 추억이라 말합니다. 저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추억적인' 이야기도 강산이 변할 만큼 오래됐습니다. 강산이 변할 동안, 학교는 어떤가요? 변했나요? 지금 학생들에게 저 모습은 추억이 될까요? 학교는 여전할까요? 4월 22일(토) 학교 내 인권 현황을 들으러 삼각지에 갔습니다. 보고, 들은 걸 나눠봅니다. 발제1 : 학교에서 인권 찾기 - 학교에서 인권을 지키기는 왜 어려울까? 첫 발제자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백호영 채움 활동가였습니다. 현재 경남의 모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인권 침해 사례, 학생인권조례가 있음에도 권리를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학교 내, 인권 침해는 여전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어도 말이죠.”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6개 지역에 제정됐습니다. 경기,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가 그 지역입니다. 조례는 학생들에게 ‘휴식권, 개성권, 참여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 의사 표현의 자유, 권리를 지킬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을 말합니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말해주는 근거입니다.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비판받고 있습니다. 조례로 인한 교권의 하락, 조례의 동성애 조장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이런 비판들로 조례는 폐지의 벼랑에 있습니다. 한편, 폐지 찬성과 반대 의견이 상반됩니다. 어느 투표에서는 찬성률이 높고, 어느 투표에서는 반대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 결과에 대해 백호영 활동가는 말합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다고 해서 학생 인권 침해가 안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 인권이 높아져서 교권이 낮아진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교권을 떨어트리는 학생이 있다면, 그건 그 학생 잘못이지 학생인권조례 잘못이 아닙니다.” 백호영 활동가가 말하는 학생 인권 침해는 이랬습니다. 화장하고 온 여학생을 복도에 세워 강제로 화장을 지우게 하고, 마스크 색을 규제하고, 장신구 착용을 금했습니다. 화장, 마스크 색, 장신구 모두 학생인권조례의 개성권에 해당합니다.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 조례의 현실을 담담히 말하며, 비판을 의식한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례를 보고) 예전보다 나아진 거 아니냐고 말한다면, 그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변했고, 처벌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침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제가 한 말을 생활기록부에 어떻게 기재하실지” 조례가 효력이 없는 이유는 강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권고 사항을 강제할 순 없습니다. 권고의 효력 없음을 학생들도 알고 있고, 그 때문에 공감대 형성이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학생이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두려움’입니다. “학교 안에서 이야기 안 하고 왜 밖에서 이야기하냐?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두렵습니다. 내가 말했을 때 생활기록부에 선생님이 어떻게 적을지 두렵고, 교장실에 불려 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안에서 못 하는 걸, 밖에서라도 이야기하는 이유는 활동가 자신이 하는 말이 작은 촛불을 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있다면, 학생들이 교육감이라도 직접 뽑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되면 조금이라도 학생 권 침해가 줄어들 것 같다는 바람을 힘을 줘 말했습니다. 백호영 활동가의 마무리 발언입니다. “모두의 인권이 존중되려면 학생도 선생님을 존중하고, 선생님도 학생을 존중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서로 존중하면 학생 인권 침해도 교권 침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발제2 : 학생 인권 vs 교권이라는 담론을 넘어 두 번째 발제자는 ‘학생인권법과 청소년 인권을 위한 청소년 전국 시민행동'의 조영선 활동가였습니다. 현재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 중이고, 학생 인권과 교권 대립 프레임의 문제점, 본질적 문제, 학생 인권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를 발표했습니다. “권력의 총량이 있고, 그걸 학생과 교사가 나눠 먹는 걸까요?” 그는 질문과 함께 학생과 교사의 역할이 다르며, 애초 인권이란 양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별개인 학생 인권과 교권을 마치 둘이 나눠 갖는 것처럼 말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교권이란 교사로서 지는 권위와 권력입니다. 권위는 강제할 수 없고, 스스로 말하는 순간 떨어집니다. 사실상 교권은 교사의 권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문제는 권력으로서의 교권이 선생님의 자의적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학칙에 따라 교사가 체벌하면 된다는 말에, 그는 학칙을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학칙의) 현재 기준을 보면 ‘예의가 바르지 못한 학생’, ‘용의가 바르지 못한 학생'처럼 기준이 모호합니다. 이 모호함을 선생님 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체벌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학생마다 피부톤이 다릅니다. 같은 화장이라도 다르게 보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처벌해야 할까요? 분명 똑같은 화장이고, 다르게 보일 뿐인데? 이 모든 게 선생님의 자의적 판단에 맡깁니다.” 일관된 기준 없는 선생님의 자의적 판단은 학생들에게 혼란만 일으키고, 교권과 학생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규제받는데, 학생들이 내 말을 듣는 상대방이 어떨지 생각할 수 있을까요? 조영선 활동가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학생들의 혐오 발언이 늘었다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문에 들어서부터 규제받는데, 학생들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들을지 생각하는 건 어불성설 아니냐고. 그는 선생님들의 자의적 판단으로는 교권도, 학생들의 인권도 지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을 그대로 두고, 다른 방식으로 학교 내 인권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대안은 뭘까요? 그는 학생 인권 보장이라고 말합니다. 학생인권법이 법으로 제정되고, 법안에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요. 그럴 때야 성평등 교육, 차별금지 수업을 해도 선생님들이 외부로부터 비판받지 않을 수 있고, 현재 이 부분에 대해 비판하는 외부로부터 학생과 교사 모두 보호할 수 있다고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전제의 강화를 강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지 말하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가장 큰 변화는, 학교에서 맞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생겨서 누군가를 때릴 때 ‘이게 맞나?’라는 관념이 생긴 겁니다. 폭력을 경험하지 않는 게, 인권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그룹 토론 : 학생 인권을 너머 어떤 어른이 될 지 논의합니다. 발제가 끝나고 세 질문으로 토론했습니다.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 하거나, 존중받았던 긍정적 경험이 있는지?, 학교 내 인권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학교 내 인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였습니다. 세 질문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나누며 토론했고, 인상 깊은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질문1 : 학교에서 존중받지 못하거나, 존중받았던 긍정적 경험(혹은 목격한 사례)이 있는지?  선생님이 항의에 대한 의견을 수용한 적이 있어서 앞으로 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긍정적인 경험도 있었다. 질문2 : 학교 내 인권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과거보다 정도는 나아졌으나 여전히 보장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처벌방식이) 과거에는 체벌을 가했다면, 현재는 상벌제도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질문3 : 학교 내 인권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라는 공간에서만큼은 아무리 비판해도 동등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학교를 만들기 위해 여러 주체가 각자 자리에서 대화나 협의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의 개인적 판단/역량으로 이뤄지는 게 아닌, 보편적인 학생 인권 관점이 필요합니다. 후기 : 오늘 촛불 하나를 켰습니다. 몇 년 전 한 동영상을 봤습니다. 6분으로 짧지만 강렬한 동영상입니다. 한 남자가 재판장에 물고기가 든 어항을 들고 판사에게 말합니다. “저는 오늘 현대 교육을 고소합니다.” 영상 속 남자는 지난 150년간 세상은 변했으나, 교육은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합니다. 다양한 가능성과 개성 있는 학생들을, 하나의 기준으로만 재단하고, 학교에 학생을 맞추고, 과거를 교육한다고 말이죠. 학생의 개성과 꿈을 꺾고, 자신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는 현대교육을 고소한다는 내용입니다. 비판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발제와 토론을 통해, 강산이 변한 제 중고등학생 때와 지금의 학교 모습이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바뀐 게 있겠죠. 하지만 본질도 바뀌었을까요? 여전히 개성과 학생 대신 규제와 학교, 입시가 있었습니다. 변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 그 변화의 시작을 오늘의 발제자들과 공론장에 모인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영선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가장 큰 변화는, 학교에서 맞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생겨서 누군가를 때릴 때 ‘이게 맞나?’라는 관념이 생긴 겁니다.” 아이들이 미래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아이들, 학생들이 미래입니다. 그들이 커서 사회의 팔과 다리, 허리, 머리가 됩니다. 현재는 그 수가 20%일지 모르나, 미래엔 100%입니다. 그런데 학생들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지금의 ‘어른' 아닐까요? 그 어른들은 학생들의 미래와 그들이 만들 사회를 얼마나 생각하고 듣고 있을까요? 어른들의 기준이 아니라, 학생 개별의 개성과 이야기하고 가꾸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생활기록부에 기재될지 모르는 두려움을 들으며 사회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와 상사를 비판했을 때 인사고과에 어떻게 반영될지 모르는 사회인의 두려움과 닮았으니까요. 사회의 미래인 학생들에게는, 과거의 교육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말해야 한다고, 말해도 된다고, 개성을 말해도 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선생님들이 더욱 학생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는 체벌받았던 게 추억거리가 아니라, 내 권리와 개성을 뽐내고, 선생님이 그걸 알아봐 준 걸 추억이라 말하는 학교 현장이 되길 바라봅니다. 백호영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촛불 하나를 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촛불이 커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작은 불씨가 산을 태웁니다. 공론장에 모인 사람들만큼 불씨가 번지길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들썩들썩 공론장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들리길 바라봅니다. ✏️ 글 : 윤성민 / 들썩들썩떠들썩 참여자
독일의 '노동 4.0'을 알고 계신가요?
알고 보면 서로 다른, 4차 산업혁명 - 산업 4.0 - 노동 4.0 독일은 “하이테크 전략 2020”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기술, 사회 변화에 대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5가지 (기후/에너지, 건강/식량, 정보통신, 교통, 안전)주요 부분을 대비할 미래산업계획 11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11개의 미래산업계획에 디지털화에 따른 지식산업화 준비와 미래의 노동환경과 노동생활에 관한 2개의 프로젝트를 추가하여 하이테크 전략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산업4.0(Industrie 4.0)’이라는 전략을 수립하였습니다. 또한, 2016년 말 ‘노동4.0(Arbeit 4.0)’ 백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Klaus Schwab 회장은 ‘현재는 지금까지 일해 온 삶의 방식을 근본부터 바꿀 기술혁명의 직전에 와있다’라고 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였고 국제적으로 4차산업 혁명에 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빅데이터(Big data), 인공지능(AI), 로봇(Robot), 센서(Sensor) 사물인터넷(IoT), 현실과 가상세계의 연결(O2O) 등의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삶에 융합되어 새로운 차원의 변화를 가져오는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보스 포럼 이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산업 4.0(Industry 4.0)’과 혼용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기술이 산업계에 일으킬 혁명적 변화’를 의미하고, 산업 4.0은 지능정보기술 발달에 대응하여 독일 제조업의 활로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정립된 개념이어서 4차 산업혁명과, 산업 4.0은 내포하는 의미와 차원이 다릅니다. 독일에서 산업(인더스트리) 4.0이 노동(아르바이텐) 4.0으로 이어지기까지  독일은 2016년 다보스 포럼 이전에 가장 먼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를 예측하고 국가 차원에서 이에 대처할 정책 마련에 나선 나라입니다.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은 가상물리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과 사물인터넷을 연결함으로써 가상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연결하고 통합하는 것입니다. 기계설비나 작업공구와 같은 실제 물리적 세계는 각각에 붙여진 센서를 통해 주변 상황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터넷으로 교환합니다. 가상물리시스템의 핵심은 생산과정의 자동화와 지능화입니다. 각 생산 공정의 설비들이 서로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그에 맞추어 생산과정을 조절하기 때문에 인간이 일일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경영자, 관리인, 고객, 협력업체, 유통업체, 기계 설비가 인터넷으로 소통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의사결정이 최적화합니다. 인더스트리 4.0에서 실행한 제조업의 디지털화를 통한 혁신이 노동과 삶의 양식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독일의 고민이 노동정책인 ‘아르바이텐(Arbeiten 4.0)’으로 이어졌습니다. 인더스트리 4.0에 대응하는 아르바이텐 4.0은 “독일 경쟁력의 원천이자 문제의 해법이 공장무인화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고를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노동조직 창출”을 고민합니다. ‘아르바이텐 4.0’은 ‘인더스트리 4.0’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2015년 독일 연방노동사회부가 「녹서」를 발간하면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논의는 인더스트리 4.0의 새로운 생산 체제에서 이루어지는 노동만을 살피는 데 그치지 않고, ‘양질의 노동’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미래 노동사회의 사회적 조건과 규칙들을 형성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이러한 형성과 정에 기여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2015년 봄부터 2016년 말까지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논의들을 정리하여 독일 연방노동사회부는 2017년 3월 「백서」를 발간하였습니다. 이 백서는 디지털 전환과 사회적 변화 와중에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노동 4.0의 다섯 가지 목표와 여덟 가지 정책 방향 백서는 제3장에서 ‘양질의 노동’을 달성하기 위한 다섯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① ‘양질의 노동’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과에 부합하는 소득과 사회안전망의 확보가 필요하다. ② 안정적이고 직업적 상승이 가능한 ‘양질의 노동’에 대한 기회가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③ 경직된 노동모델이 아니라, 생애단계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성을 새로운 표준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④ 노동의 질을 유지하여야 한다. ⑤ 공동결정, 참여, 기업문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원칙에 기초하면서, 복지국가 및 사회보장체계의 미래에 대하여 여덟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합니다. ①취업 가능성의 향상- 실업보험에서 고용보험으로: 실업보험을 단계적으로 고용보험으로 확대함으로써 근로자를 위한 예방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평생직업능력개발을 위한 독립적인 직업지도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②유연하지만 자기주도적 근로시간: 디지털화가 근로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시간주권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③서비스 부분에서 양질의 근로조건 확보: 디지털화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플랫폼을 통한 일자리 중개를 촉진하게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이에 서비스 부분에서의 양질의 근로조건 확보가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④산업보건- 산업안전보건 4.0을 위한 접근법: 노동으로 인한 신체적 부담과 함께 정신적 스트레스에도 더욱 비중을 두어야 하며, 산업안전보건 관련 기제들을 발전시켜 ‘산업안전보건 4.0’을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⑤근로자 정보보호기준의 강화: 직업세계에서 디지털 응용의 확대로 인해 근로자 정보보호를 위한 실천이 요구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연방노동사회부가 근로자 정보보호에 중요한 법조항인 독일 「정보보호법」 제32조(고용 관련 목적을 위한 개인정보 수집, 처리, 사용) 규정이 유지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⑥공동결정과 참여의 지속과 사회적 파트너십에 기반한 전환: 디지털 구조적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파트너 및 사업장 차원의 협상과정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⑦자영업자를 위한 사회적 보호의 증진: 종속고용과 자영업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직업세계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보고, 원칙적으로 자영업자를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법정 연금보험제도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고 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⑧미래지향적 복지국가의 구축: 개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안정적인 취업가능성을 유지 시키고 전환기를 지원하는 것을 복지국가 제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젊은 근로자에게 ‘사회적 유산’의 형태로 초기자본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 자본은 직업능력 개발을 목적으로, 또는 창업 단계나 개인적 사유에 의한 경력 중단기간(휴직, 휴가, 실업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근로자계좌’의 도입을 제안하였습니다. *위의 내용은 <노동 4.0에서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전략 연구> (2019) 를 발췌,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변화하는 사회와 노동에 관하여 독일은 “독일 경쟁력의 원천이자 문제의 해법이 공장무인화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고를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노동조직 창출”을 고민하며 노동 4.0을 통해 정책 목표와 방향성을 형성했습니다. ?여기서 독일을 한국으로 바꾼다면 우리사회는 디지털화를 통한 노동과 삶의 양식의 변화 앞에 무엇을 해법으로 삼아, 무엇을 고민하며 정책 목표와 방향성을 잡을 수 있을까요? 혹은 무엇을 해법으로 여기며 다음으로 향하고 있을까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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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반대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반대한다 -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와 학생인권운동이 성취해야 할 과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 2010년대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자치를 주도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전국 6개 광역지자체, 즉 경기도,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전라북도, 충청남도, 제주특별자치도(추가로 인천광역시는 2021년 9월 1일 학교구성원 인권증진 조례를 시행했다)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었었다. 현재 그 중 4군데에서 축소ㆍ폐지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역시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문제라는 게 학생인권조례 반대자들이 꼽는 주된 폐지 이유다(참고: https://www.hani.co.kr/arti/so...).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숱한 운동이 내거는 사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반대한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장자들의 선동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의 의의와 한계를 함께 짚으며 그를 통해 폐지 운동이 일어나는 까닭도 살펴보고자 한다. 청소년 인권 운동 단체인 아수나로가 학생인권조례의 의의를 주장하는 것은 쉽게 예상이 갈 일이다. 하지만 한계라니? 의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학생인권조례가 해주지 못하는 것도 함께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인권조례가 참정권을 보장하는가? 학생인권조례는 집회의 자유는 주장하지만 투표권 연령은 인하하지 못한다. 이것은 애초에 ‘학교 내’에서의 자유권을 신장하는 데에 국한된 학생인권조례의 한계다.   학생인권조례의 한계   집회의 자유조차 “다만, 학교 내의 집회에 대해서는 학습권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학교규정으로 시간, 장소, 방법을 제한할 수 있다.”(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17조 제3항),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 이를 지도·감독할 수 있다. 다만, 부당하고 자의적인 간섭이나 제한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앞의 조례, 제17조 제4항)라고 하면서 애매한 제한들을 두고 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는 사회권도 보장해주지 못한다. 교육비, 생활비 등과 학생인권조례는 무관하다. 독일의 초ㆍ중등학생은 무상교육과 별도로 한 달에 약 59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다(참고: https://edpolicy.kedi.re.kr/fr...). 이렇게 보면 학생인권조례의 의의와 한계는, 조례의 내용에 대한 규명을 통해 명확해진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학교 내 자유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학생에 해당하는 아동ㆍ청소년(물론 아동ㆍ청소년 중에는 학생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인권을 비청소년(소위 ‘성인’)만큼 보장받지 못하는데 학교 내에서만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학교 내에서만이라도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학교에 따라 두발 규제는 조금 완화되었다지만 여전히 교복 착용이 교칙으로 정해져 있는 학교들이 많다. 왜 그럴까? 다음은 서울학생인권조례의 한 대목이다.   제12조(개성을 실현할 권리) ①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는다. ②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하여서는 아니 된다.   여기서 2항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라 할 수 있다. 조례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자고자 박주민 의원이 2021년 11월 3일 대표 발의한 초ㆍ중등교육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도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학교의 장은 학칙을 제정 또는 개정하려고 하는 때에는 사전에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야 하며, 학칙이 제정 또는 개정된 때에는 이를 지도·감독기관에게 신고하도록 함(안 제8조).   그런데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교장ㆍ교사들이 교칙을 제정하려고 하는데 반대할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다. 휴대폰을 수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수업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소지도 있지만, 예를 들어 영화관에서 휴대폰이 방해가 될 수 있다 하여 수거하지는 않는다. 영화관에서 혹시 휴대폰을 수거해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상식을 벗어난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비상식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적용된다. 여전히. 애초에 사회의 모든 곳에서 학생들 및 아동ㆍ청소년을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데, 학교 내에서 자유권을 보장하는 조례를 제정한다고 하여 그대로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물론, 학생인권조례를 통과해서 명확히 좋아진 게 딱 하나 있다. 체벌이다. 아이들을 때리지는 말아라. 신체적 자유, 그 중에서도 극히 제한적이고 소극적인 부분에 국한된 소극적 자유권이다. 누가 봐도 당연한 이 명제만큼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통해서 개선된 부분이다. 물론 이것조차도 지금 흔들리고 있지만 말이다.   ‘왜’ 통제가 필요한가?   혹자는 체벌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통제되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회 곳곳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억압받는 학생들이 불만에 쌓이고 통제받기 싫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왜 ‘체벌이 필요한 상황’으로 학생들이 몰아넣어졌는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학교는 우리 사회의 재생산과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 이외에도 주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장시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노느라 한 눈 팔면 안 된다. 좋은 대학 들어가야 한다. 노는 건 대학가서 해라. 이런 말들을 반대로 하면, 그러지 못한 학생들은 천대받아도 된다는 뜻이다. 대학을 못 들어갔으면 놀지 못해도 당연하다. 고졸이면 임금이 낮아도 된다. 등등. 결국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유지하고 재생산한다. 미리부터 장시간 학습시간을 통해 장시간 노동시간에 익숙해지도록 단련된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고 순응하는 직장인으로 기른다. 학생 때는 술, 담배, 연애, 도박, PC방ㆍ찜질방, 노동 등도 금지하며 인내시킨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는 사람들로 만든다. 물론 참지 못하고 ‘일탈’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겐 부당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합리화시킨다. 일부 학생들은 갑갑해하며 ‘일탈’을 하고 노동을 하면서 돈벌이도 한다. 그러면서 우월감을 맛볼 수 있다. 다 그렇진 않겠지만 이런 일탈들 중에는 ‘금지된 것이기 때문에’ 한다는 이유도 있다. 그리고 이후 삶이 더 나아지지 않아도 자신의 선택이라며 체념하게 된다. 물론 금지된 것들 중에는 비청소년이 해도 좋지 않은 것들도 있다. 하지만 부당한 것들도 적잖다. 예를 들어 노동이 그렇다. 학습과 병행하는 노동이 전인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게 산업연수생이며 그 제도의 표면적 취지기도 하다. 하지만 산업연수생은 또한 싼 값에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동을 멀리하는 게 학생들에게 좋은 걸까? 그렇지 않다. 아동ㆍ청소년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거나 값싼 임금으로 고강도의 착취를 당하는 게 문제인 거지 학생과 노동을 분리하는 게 대안이 아니다. 애초에 산업연수생들을 싼 값에 부려먹을 수 있는 게 바로 그런 분리 때문이다. 학생들을 노동과 분리하는 것은 경제력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지 않다. 돈을 못 버는 학생들은 비청소년들에게 의존하게 되거나, 의사결정권을 갖기 더 어렵다. 다른 예를 들어 이 상황을 설명해보자. 여성들이 임금 차별을 받는다고 해서 여성을 노동으로부터 분리시키면, 여성의 권리가 신장될까? 임금 차별이라는 상황이 나아질까?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학생을 ‘보호’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학생인권은 전면적인 해방을 통해서 가능하다. 학생인권조례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통로로, 우리 사회가 당장 가능했던 수준에서 수행된 것이다. 이를 통해 학생인권조례는 우리 사회의 담론에서 전면적인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었다. 폐지 운동이 활발하지만, 제정하고자 하는 지역들도 만만치 않게 있다. 충청북도·경상남도·세종특별자치시·울산광역시·부산광역시·전라남도·강원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주민발의된 바 있다.   따라서 4개 지역에서 폐지안 발의 및 폐지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부정적인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크게 후퇴한 것이라고 비관할 것만은 아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던 일이기도 하며, 역사를 살펴보면 인권이 신장되는 가운데서 진통이 없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학생인권을 선전하고 토론하는 담론의 장을 넓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인권조례 옹호라는 소극적인 대응을 통한 성취뿐만 아니라, 더 큰 성취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 또한 필요하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학생인권을 학생인권조례가 보장하는 것보다 더 넓히는 일 말이다.
적(敵)을 만드는 대통령의 말
한미 동맹 70주년이며,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둔 상황에서,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국제사회가 용납하기 어려운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나 전쟁법 위반 상황이 있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재정적 지원만 고집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보고 멍~해졌다. 우크라이나 파병이 논의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155mm 33만 발왜냐하면 얼마 전 대통령실 도청과 관련해 유출된 문서 내용이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문서는 3월 1일 작성되었다고 알려진다. 김성한 전 대통령 안보실장이 155mm 포탄 33만 발을 우크라이나가 아닌 폴란드로 수출하자며 이문휘 전 외교비서관에게 제안하는 내용이 문건에 나와있다. 파병과 관련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인도적, 재정적 지원을 뛰어넘는 군사적 지원 내용이라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20일 kbs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나토와 우크라이나 국방 연락그룹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환영한 입장을 밝히며 백오십만 발이 넘는 155mm 포탄 등을 포함해 한화 4300억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미 육군 탄약 공장 대표 리차드 핸슨은 포탄 주문량 증가 질문에 주문 수량이 증가했다고 답변했다. 아직 100% 사실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의 로이터 통신 인터뷰 발언은 걱정을 넘어 두렵다.두 마리 호랑이를 건드리다 을 언급했다. 경제안보 협력을 제외하면 주요 내용 모두 미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고 한국은 하부 역할을 하게 되는 내용들이다. 반도체 등 기술 파트너십을 확대한다고 했지만, 미국 정부는 현대, 기아차를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이 얻게 될 부분이 있을까? 의의가 어디 있고 성과가 어디 있나. 암담하다.ABM(Anything but Moon)얻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왜 저런 발언을 했을까? 지난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인 대승적, 담대한 결단을 내렸다며 자화자찬했다. 미국과 담대한 결단을 했다면서 자유진영에 끼어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위해 러시아를 저지하는 일원이 되고 싶은 게 아닐까. 그 자체를 자신의 업적이라고 내세우고 싶은 게 아닐까. 아니면,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anything but 문재인>이라서 전쟁 중인 지역에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전 정부와 다른 노선을 타려고 하는 걸까. 도대체 모르겠다. 정말이지, 이런 대통령은 처음이다.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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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되어야 할까요?
캠페인즈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 저는 교육정책 분석가로 활동하고 있는 에디입니다.  오늘은 '교육과 민주주의'의 차원에서 다룰 토론 주제로 "과연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되어야 하는가?"를 들고 왔습니다. 2010년대의 교육계에서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가를 꼽는다면 그중 하나로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뽑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의 교육 방식의 패러다임이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전후로 나뉜다고 할 만큼 그 파장은 매우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냐, 보완이냐는 교육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토론 주제인데요. 오늘은 이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배경 등과 관련 정책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1. 학생인권조례는 왜 제정된 것일까?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이전, 교사의 체벌 권한은 교사의 권위와 함께 당연히 부여되는 것이었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훈육하는 과정에서 벌의 일종으로 체벌을 활용했는데, 강력한 체벌에 대한 두려움은 학생의 일탈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무제한적인’ 체벌권한은 그 본질을 잊고 점점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체벌은 그 강도가 점차 강해지면서 학생들을 교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보다는 교사 자신의 권위를 뽐내고 공고히 하기 위해 사용되었고, 그 결과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되는 흉기들로 학생들을 과도하게 때리는 사례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이 사망이나 중태에 빠지는 사고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이 때문에 항상 제기되던 논쟁 중 하나가 ‘과연 체벌은 교화에 효과적인가’였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여론은 대체로 효과성에 부정적인 반응이었죠. 많은 교육이론 또한 체벌의 교화 효과성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일시적인 변화만을 유도할 뿐이라고 말하고, 다른 학자는 체벌은 결국 특정 행위를 못하게 하는 것뿐이지, 바람직한 행위를 유도하는 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느끼는 체벌은 학생들의 교화에 최소한 일정부분은 기여하는 바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교화 및 훈육 효과에 비해 발생하는 논란이 너무나도 심각했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이 지속적으로 시도되어왔고, 결과적으로는 2011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이 됐습니다. 2. 학생인권조례, 그 이후 그렇게 경기도에서 최초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 어언 12년, 교육현장에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먼저 제정됐던 당시의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내용의 핵심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① 제6조 제2항 “학교에서 체벌은 금지된다.” ② 제9조 제1항 및 제2항 “학생은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정규교과 이외의 교육활동과 관련하여 자유롭게 선택하여 학습할 권리를 가지며, 학교는 학생에게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을 강요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제11조 제1항 및 제2항 “학생은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지며 두발의 길이를 규제해서는 안된다.” ...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타 지역에서도 이 내용을 바탕으로 검토하고 지역 실정에 맞게 개정했습니다. 여기 적힌 조항들 외에도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다른 내용들이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아무래도 ‘체벌 금지’, ‘야간자율학습 사실상 폐지’, 그리고 ‘두발 및 복장 자유화’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으로 학생에게는 많은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를 누리기 위한 책임은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에게 부여된 이런 형태의 자유는 즉각적이고도 부정적인 결과를 내지는 않았지만, 점차 학생인권조례가 하나의 문화가 되던 시기(2018년 이후)부터는 부정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플러스의 한 기사에 따르면, 2022년, 강득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교권보호위원회 접수 및 조치결과 현황’에서 2020년 1,089건이었던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건수는 2021년 2,109건으로 1.94배 증가했다고 보고했으며, 이마저도 2022년에는 더욱 증가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교육활동 침해 예방 및 대응 강화 방안 시안 (링크를 클릭하면 자료를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교육부 교원정책과에서 작성한 ‘교육활동 침해 예방 및 대응 강화 방안 시안’(2022.09)이라는 자료를 보면 2022년 1학기에만 교육활동 침해 심의 건수가 무려 1,596건에 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코로나 시대였기 때문에 비대면 수업이 주로 이루어졌던 2020년, 2021년에도 매해 1,000건 이상 교권 침해 행위가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동일한 자료의 최하단을 보면 학생들이 교사를 상대로 일으키는 강력한 수준의 교권 침해 행위가 점점 늘어나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고 그것이 학생들에게 널리 퍼진 후, 그 내용이 하나의 문화로 잡은 현재, 교권침해 행위는 매우 빈번하고 강도 높게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교사들은 어떻게 자신을 지켜야 했을까? 그럼 이에 대해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거의’ 없었습니다. 교사가 체벌이 없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가할 수 있는 통제수단은 학생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의 기재뿐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수시의 강화와 학생인권조례의 정착이 거의 비슷한 순간에 이루어지게 되면서 이런 생기부 작성권한이 일종의 권력처럼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성권한이 모든 교사들에게 있어서 방패처럼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었습니다. 생기부를 작성하는 교사는 크게 학급담임교사, 동아리활동 지도교사, 그리고 교과담당교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가지 중 하나에 속하지 못하는 교사는 생기부 작성권한이 없으므로 학생들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없는 것입니다. 또한, 교과담당교사라고 하여도 학생의 진학 사항과 관련이 없는 과목을 맡고 있는 교사라면 학생이 그 기재사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기재사항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과목에 비해 학습 태도의 개선도 잘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생기부의 중요성이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생기부를 통한 입시를 진행하지 않는 전형을 준비하는 학생이거나, 아니면 초등, 중학생처럼 생기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시기의 학생들이라면 생기부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벌어지게 된 사건, 사고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만, 대표적인 예시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기간제 교사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제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일어났던 사건이 2015년의 ‘이천제일고등학교 교사 폭행사건’이었고, 최근의 사례로 본다면 2022년 6월에 수원시 초등학교 학생이 학교 복도에서 동급생과 몸싸움을 벌였고, 이를 발견한 교사가 학생 지도를 위해 학년연구실에 데려가자 교사 3명에게 욕설을 하고 실습용 톱을 던지면서 위협한 사례가 있습니다.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충남 중학교 학생이 교사의 지도를 무시하고 교단 위에서 수업 중인 선생님 옆에 누운 채 휴대전화를 충전하면서 조작하는 영상이 촬영되었고, 해당 영상이 무단으로 온라인에 유포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4.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사람들은 이를 예상했을까요? 안타깝게도 초기의 정책입안자들은 이러한 현장 상황에는 무지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위에 올려드린 교육부 자료를 보면 2012년에 교권보호를 위한 수단으로써 ‘교권 침해 활동을 한 학생에 대한 선도 및 교육’을 교권침해 예방수단으로 적어놓았거든요. 2013년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마련했고, 2016년에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보고를 의무화했으며, 2019년에야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심의를 거쳐 침해학생 조치, 특별교육 미참여 보호자 과태료 부과, 피해교원 특별휴가, 연1회 예방교육, 교육청이 수사기관에 고발조치 근거 마련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교권침해 상황은 더욱 더 활발히 일어나고 있죠. 물론 교육부가 교권의 강화를 위해서 일련의 조치를 시행한다고 하지만, 시행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의문입니다. 교사의 생활지도 권한이 강화되고,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불응하여 교육활동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행위 또한 교육활동 침해 유형 중 하나로 간주하여 교권을 강화하고, 가해 학생에게는 특별교육 이수 의무화 등의 수단으로 엄격한 제재를 가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핵심 내용인 ‘교권 침해 활동 사실 생기부 기재’의 경우에는 도입을 보류하고 검토한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지요. 5. 당시와 상황이 많이 바뀐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과연 유지되어야 하는가? 여기까지가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이후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이에 관련된 정책이 어떻게 제정되고 유지되어 오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야기가 길지만, 교원지위법과 같은 지루하고 긴 여러 가지 말 못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토론을 하는 여러분들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놓도록 하겠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분명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제도고 실제로 그 제도의 시행으로 학교의 악습 중 하나인 과도한 학생 폭행 및 체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만큼의 반대 급부도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와 공존할 수 있는 여러 제도의 도입을 시도해봤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죠. 그러면 앞으로 우리나라 교육 정책 입안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다른 방안을 마련해봐야 할까요? 아니면 학생인권조례를 유지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아보는 게 좋을까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편하게 들려주세요 :)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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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녀들은 '우울증 갤러리'에 모였을까 - 인터넷을 통한 인간관계 형성의 욕구
글의 가독성을 위해 높임말을 쓰지 않고 작성합니다. 2023년 4월 16일 오후 2시경 고등학생 A양이 강남 한복판서 SNS라이브를 틀어둔 채 투신자살을 감행했다. 고인은 사망했다. 사건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질타와 함께 그 배경에 주목했다. 고인의 자살 배경에 어느 특정 단체, 이른바 '신대방팸'이라는 그룹이 있다- 이들 사이에서 마약과 술, 담배, 그리고 성착취가 만연하고 있었다는 전황이 의심된다- 등. 각종의 제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그들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미성년자들을 '유인'해 성착취, 이른바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지적이 여러 SNS 유저들로부터 제기된다. 이들 신대방팸은 '또 다른 n번방'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이 사건을 아는 자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거기에 그치는 지적이 아쉽다. 필자가 보기에 이 사건의 핵심은 신대방팸의 그루밍 성폭력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경찰의 수사를 받아야 하며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면 체포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첫째로, 설령 저들이 '또 다른 n번방'이라 불릴 정도로 극악무도한 자들이라 한들 그들의 악마성에 대한 고발만이 향후 있을 또 다른 유사 범죄에 대한 예방책으로 작동하기는 힘들다는 점, 둘째로, 신대방팸의 피해 여성과 n번방의 피해 여성은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 셋째로, 이 사건의 본질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과제를 앞으로도 우리가 무시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으로 비웃는다면 그 문제는 더할나위 없이 커져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길이 작동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 오늘의 토론글을 준비했다.  -목차 1. 우울증 갤러리와 신대방팸 피해자들에 대해  2. 형성한(된) 현실의 인간관계의 실패(실망, 배신, 봉변, 폭행) 3. 삶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의 발버둥 4. 맺으며 1. 우울증 갤러리와 신대방팸 피해자들에 대해 우선 가장 먼저 얘기할 점은, 이들은 n번방 피해자들처럼 어떤 속임수에 의해 범죄자와 연결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n번방 범죄자들의 경우 피해자를 협박관계에 놓기 까지의 수단은 크게 세 가지로 1) 경찰 사칭 수법, 2) 해킹 수법, 3) 알바 모집 사기 수법이다(https://femiwiki.com/w/N%EB%B2...). 각 수법의 상세한 방법은 출처를 따라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세 수법의 공통점은 피해자와 범죄자 사이에 '친밀성'이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의 '약점'을 잡아 '협박' 관계를 만드려는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협박을 당하기 전까지 범죄자를 알지도 못했고,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으면 싶었지 범죄자와의 관계를 결코 우호적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신대방팸을 비롯한 이른바 '디시인사이드 : 우울증 갤러리'(이하 울갤)의 여성들은 다르다. 그들 한 명 한 명의 사정은 자세히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은 상당 수가 '자발적으로' 그 커뮤니티에 들어갔고, 그들 중 일부에게(특히 미성년자에게) 신대방팸을 비롯한 여러 남성들이 접근한 결과, 범죄가 발생했다. 이곳 '울갤'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중 하나다. (가린 건 유저의 닉네임) 울갤에서 활동하는 모든 유저를 '울갤러'러 라고 부르며, 이들 울갤러들은 보통 특별한 방향성이 없는 글을 비주기적으로 올린다. 남자 울갤러는 '남갤러', 여자 울갤러는 '여갤러'라고 불린다. 간혹 '게이들아'라는 호칭도 있으나 이건 실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건 아니다.   글의 내용은 실제로 자신의 우울을 호소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남자/여자 섹스파트너를 찾는 글이나 아무런 내용도 없는 글(이른바 '뻘글')을 쓰기도 하는 둥 그 글의 내용은 저마다 다르다. 글보다는 제목과는 상관 없는 '짤(이미지)'을 올리는 게시글도 있다. 특히 이 짤 형태의 게시글과 관련해 박가분은 "이러한 '증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과 집단적 정체성을 재확인하기도 한다"라고 했다(2013, p62; 강조는 필자). 앞에서 더 전개하겠지만 이 '존재감과 집단적 정체성의 재확인'은 오늘 토론글에서의 중요한 코드다. 울갤러들 중 고정된 닉네임을 가진 이들을 '고닉'이라 부르며 그렇지 않은 이들은 'ㅇㅇ'라는 통일된 닉네임으로 글을 쓰게 된다.  '고닉'들의 반복적인 활동은 익명성이 전제되었던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 완전한 익명성을 가지지 않는 '특정인'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고닉'과 '고닉' 간의 활동, 예컨대 단순한 대화부터 오프라인 만남 약속(번개)까지의 활동은 곧 '특정인'과 '특정인'간의 행동이 되며, 이는 그 장소만 인터넷으로 할 뿐 실제 현실사회에서의 인간상호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실제로 울갤에서는 특정 고닉을 지목하거나 호명하는 내용의 글들을 심심치 않게, 아니 사실 굉장히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위 이미지 '5937413'번 글이 그 예시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익명 울갤러들 사이에서 '고닉'으로 포착되고 호명되기 위해서는 그 고닉 당사자가 오랜 기간 또는 자주 울갤에서 활동해야만 한다. 다른 이로부터 00대학교 00학과 김철수로 호명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김철수라는 인물이 00대학교 00학과에 자주 등장 및 교류 또는 최소한 여러 번의 노출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울갤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주 고닉을 단 채 긴 기간에 걸쳐 다른 고닉들과 교류하며 활동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엔 이번 신대방팸 피해자들도 포함된다.  윗 글이 전부 사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형태를 봐야 한다. "데폭(데이트 폭력)", "강제촬영", "사귀다가", "임신'시켜놓고'", "동거", "바람피고" 등이 필자가 지목하는 키워드다.  즉, 울갤에서 고닉들은 단지 짤방이나 뻘글을 쓰는 활동을 넘어 다른 고닉들과 실제 현실사회에서의 관계로 연장해 진입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신대방팸 피해자들과 n번방 피해자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인데, 전자의 피해자들은 범죄자에게 '약점' 또는 '덜미'를 잡혀 '협박'을 당해 성착취를 당한 게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에서 '실패', '봉변', '폭행'을 당했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울갤의 여성 피해자들은 다른 고닉과의 관계를 현실관계로까지 끌어들이고자 하였으며, 그 시도로 형성된 현실관계에서 폭행이나 착취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울갤 여성 피해자들의 피해 형태나 다른 일반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데이트 폭력과 같은 피해 형태나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전자는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라는 게 사실상 유일한 차이다. 이름부터가 '우울증 갤러리' 아닌가. 바로 이 점에 주목해 몇몇 이들은 이번 범죄를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들 견해에 대해 상당 부분 참고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전체에 대해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그루밍 성폭력의 개념을 먼저 빠르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2. 형성한(된) 현실의 인간관계의 실패(실망, 배신, 봉변, 폭행)  "'그루밍'에는 의사소통과 사회화 과정이 포함된다. 이것은 범죄자가 성학대를 목적으로 피해자를 준비시키기 위해 신뢰를 얻으려는 의도로, 아동 또는 청소년과 상호작용하고 관심사와 취미를 공유하고 이들에게 정신적 지지와 공감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Davidson and Martellozzo, 2008 ; 출처:엘레나 마르텔로조, 2019, p146)  "양형자문단(2007)에 따르면, 성적 그루밍은 범죄자가 성학대를 목적으로 피해 아동을 준비시키기 위해 상호작용하는 동안의 사회화 과정으로 정의할 수 있는 심각한 약탈적 범죄이다."(2003년 <성범죄법> ; 출처:엘레나 마르텔로조, 2019, p147) - 그러니까, 그루밍 성폭력이란 범죄자가 피해자를 향해 성학대 또는 성착취를 위해 피해자를 "준비시키고" "신뢰를 얻고자" 노력하는 일련의 노력을 통한 성폭력이다.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특히 아동)들이 범죄자의 범죄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인정함에도 떨어지지 않고 그를 보호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건 그의 기획으로 형성된 신뢰관계를 쉽게 떨쳐내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루밍 성폭력은 비단 온라인에서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웬디 C. 오티즈(2019)의 [기억의 발굴 (Excavation)]은 실제 오프라인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기억을 회고해 출판한 책이다.  그루밍 성폭력의 개념은 상당 부분 울갤에서 일어나는 전반의 성폭력에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신뢰를 얻으려는 의도'와 '상호작용' 과정은 일단 여성으로 '인증'된 여갤러와 댓글을 통해 끊임없이 교류하는 과정이 그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여갤러들과 교류하는 모든 남갤러들이 그루밍의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면 그건 아닐 수 있겠지만 이 사건에서 그들의 '의도성'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엔 그렇다.  여갤러로부터 성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이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심지어 (문제가 되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여갤러 본인도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일종의 교환가치로 활용했다손치더라도, 그 본질은 인간관계의 실패(실망, 배신, 봉변, 폭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의도성의 여부는 형벌의 영역에서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 현상 자체에서는 크게 중요하다고 보지 않는 게 필자의 입장이다).  그러니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1. 울갤의 여(남)갤러들은 울갤에서의 관계를 통해 현실의 인간관계의 충족을 원했고, 2. 활동 끝에 현실의 인간관계를 형성했으나, 3. 형성한/된 현실의 인간관계가 부정적 결말로 귀결되어 각종의 폭행이나 범죄의 피해자(가해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위 의견은 절대로 피해의 책임성 일부를 여갤러들에게 넘기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아니다. 단지 울갤러들에게는(또한 모든 우울한 sns이용자들, ex) 우울러, 자해러) 울갤을 비롯한 sns를 통한 현실의 인간관계 형성 욕구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싶을 뿐이다.  3. 삶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의 발버둥 그렇다면 왜 이들은 현실이 아닌 sns를 통해 현실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어할까? 뒤집어 말하면, 왜 이들은 현실을 통해 현실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싶지 않아 할까?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삶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개념을 주장해보고 싶다.  이때 '삶에 대한 기대'란 가난이나 폭행과 같은 사회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기대 내지 억만장자가 되는 미래의 어떤 상태나 목표를 뜻하는 게 아니다. 내가 가난하더라도, 내가 다른 이로부터 폭행을 당하더라도 상관 없으니 '굳이' 살아내고 싶은 힘을 제공하는 어떤 동력(動力)에 가까운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삶에 대한 의지' 또는 '삶의 의지력' 정도로 표현해도 좋겠으나 그러자면 자칫 '버텨내는 힘' 만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 하지만 필자는 그 힘에 '삶에 대한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섞어서 '삶에 대한 기대'라는 개념을 주장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왜 그들이 현실의 인간관계로까지 연장하고 싶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필자가 볼 때 울갤러를 포함한 많은 우울한 sns이용자들(이하 우울러들)은, 마치 정치적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른 두 사람은 서로가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할 수 있듯이, 현실에서 삶에 대한 기대(동력의 의미로써, 또는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내는 데 힘듦을 경험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관계를 끊자니 사람은 누구나 관계의 욕구를 가지지 않는가? 그래서 울갤과 같이 '삶에 대한 세계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리라 기대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발적으로' 진입해 어떻게든 그 안으로부터 현실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자 노력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앞서 말한 '존재와 집단적 정체성의 재확인'의 필요도 여기에 적용하면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가 경험한 바, 트위터와 같은 SNS에 자신의 자해 사진을 전시하는 많은 '자해러'들은 자신의 자해 사진을 비주기적으로나마 전시한다. 필자는 그 전시의 이유가 자신이 여전히 자해를 한다는 그 사실을 증명하려는 어떤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증명의 필요는 자신과 비슷한 '삶에 대한 세계관'을 가진 자들과의 소속감을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 아닐까. "나는 아직 우울하다"- "나는 아직 당신들과 같은 세상에 있다."- "그러니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 그런 게 아닐까. - 다시 돌아와 범위를 더 크게 확대해보자면, 사실 모든 사람들의 sns 등 인터넷을 통한 인간관계 형성의 욕구는 과거와는 달리 자신의 선호에 딱 들어맞는 이를 인터넷에서는 정보를 탐색 및 검토하고 사전에 확인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닐까 한다. 무릇 여기 <캠페인즈>도 상호 채팅의 기능이 없을 뿐이지 '토론'을 통한 인간관계의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단지 울갤은 '삶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일 뿐.  4. 맺으며 이제 본 토론글이 나름의 의미를 지닐 수 있도록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필자는 이 글의 처음에 "이 사건의 본질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과제를 앞으로도 우리가 무시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으로 비웃는다면 그 문제는 더할나위 없이 커져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길이 작동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본 글의 내용과 함께 해당 우려를 목차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A)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욕구는 역으로 현실로부터의 인간관계 형성에 문제를 줄 수 있다. B)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만의 추구는 현실에 대한 왜곡된, 또는 극단적 세계관을 고정시킬 수 있다.  C)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 추구'조차의' 실패는 개인의 인간관계 형성의 완전실패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이는 자살위험을 극대화할 수 있다.  D)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수행에서 특히 여성은 범죄에 보다 더 취약하다.  E)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 시도의 결과로 발생한 피해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기 쉽다.  이상으로 목차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시도를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천정환(2014)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는 비교적 흔한 '실연자살'은 조선시대에는 실연자살이라는 언어로 표상된 흔적을 찾기 힘들며 '연애의 시대'로 일컬어지는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실연자살자'들이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지금 책이 없어서 page까지는 기억이...) 이처럼 4월 16일의 A양이나 다른 인터넷 우울러들의 자살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즉,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시도를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탄생한 자연스런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토론글의 카테고리를 '새로운 이슈 제안'이 아닌 '돌봄, 복지 사각지대 해소'로 붙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다. 즉, 인간관계 형성의 시도와 '돌봄'을 같은 맥락의 문제로 보는 것이다. 왜냐면 인터넷을 통한 '알맞춤' 인간관계 형성의 욕구는 일단 현실로부터의 인간관계 형성의 실패를 전제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곳에 돌봄 제도의 역할이 있는 건 아닐까? - 필자의 능력이 부족해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  이 글은 다음에 있을 현대사회와 인간관계 형성의 문제, 또는 소속감의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발판 작업이다. 다음 글에서는 실제 우리 사회에 어떤 인간관계 형성의 수단들이 제도적, 비제도적으로 존재하는지를 찾아보고 만약 그곳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해결을 지향하는 실천적 태도로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토론해보고 싶다. - 부족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의견 주시면 더더욱 감사드립니다.  -출처 1. 박가분(2013), [일간베스트의 사상] 2. 엘레나 마르텔로조(2019),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 3. 천전환(2014), [자살론]
독약은 먹였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 - 범죄의 인과관계
  X(원인) 때문에 Y(결과)가 일어났을 때, X와 Y의 관계를 인과관계라고 합니다. 만약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했다면, 늦잠과 지각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과관계는 특히 법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누구의 잘못으로 피해가 발생했는지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처벌을 내리는 것이 법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과관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닙니다. 아래의 네 가지 상황을 볼까요? A가 B에게 치사량의 독약이 든 음료를 먹게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C가 나타나 B를 칼로 찔렀고, 곧이어 B가 사망했습니다.  C가 D를 강간했습니다. 강간으로 인해 극심한 수치심과 절망감에 고통받던 D는 결국 자살했습니다. 교사 E가 학생 F의 뺨을 때렸습니다. 뇌수종을 앓고 있던 F는 뺨을 맞아 넘어졌고, 그대로 사망했습니다. G의 공장에서 오랜 기간 일한 H는 퇴사 후 희귀질환에 걸렸고, 결국 사망했습니다. 입사 전 H는 건강했으며,  G의 공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법적 기준치 이하의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습니다.   각 상황에서의 인과관계를 한번 고민해 봅시다. (1)의 경우는 A가 치사량의 독약을 먹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B를 죽인 것은 C입니다. 그러므로 A의 행위와 B의 죽음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살짝 찜찜하지만 그래도 인과관계가 명확합니다. 그러나 (2), (3), (4)의 경우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C의 강간이 D의 자살에 상당한 영향을 주긴 했지만, C가 D를 직접적으로 죽인 것은 아닙니다. E의 폭행으로 인해 F가 죽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뺨을 맞고 넘어진다 해도 죽지는 않습니다. G의 공장에서 일한 후 H가 희귀질환에 걸린 것은 사실이나, 희귀질환의 발병 원인이 공장에서의 유해물질 노출 때문이라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상적 정의 이상으로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인과관계에 관한 학설들을 소개하여 법이 인과관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합니다. 시민이 법에서의 인과관계를 논의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곧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잘못으로 피해가 발생했냐는 질문은 곧 피해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노동자, 소비자, 국민의 죽음 앞에서 기업과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날,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책임 있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민 차원에서 인과관계론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건설   조건설은 ‘그것이 없었더라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관계’에 있는 모든 행위를 원인으로 인정하는 견해입니다. 결과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결과 발생에 한 조건으로서 작용하기만 했다면 모두 동등한 원인으로 봅니다. 조건설에 따른다면, 위에 소개한 (1)의 경우에서 A가 독약을 먹이지 않았다면 B는 죽지 않았을 것이므로 A의 행위는 B의 죽음의 원인이 됩니다. 같은 원리로 (2), (3), (4)의 경우에도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봅니다. 가장 직관적인 학설로,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첫 번째로 소개되는 학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건설은 치명적인 비판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가장 큰 결함은 인과관계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된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했듯 조건설은 결과 발생에 작용한 모든 조건을 동등하게 파악합니다. 이를 적용할 경우 (1)의 상황에서 A에게 독약을 팔거나 제조법을 알려주는 행위, 독약을 통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점을 교육하는 행위, 심지어는 A를 출산하는 행위까지 모두 살인의 원인이 됩니다.    조건설을 적용하면 특정 상황에서 매우 불합리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갑과 을이 병에게 동시에 독약을 먹여 병이 죽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조건설에 따르면 갑과 을은 둘 다 무죄입니다. 갑(을)이 독약을 먹이지 않았더라도, 을(갑)이 독약을 먹여 병이 죽었을 것이므로 갑과 을의 행위 자체는 병의 죽음과 ‘그것이 없었더라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순들로 인해 실제 판결에 조건설을 적용하는 경우는 없지만, 조건설의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과관계론이 발전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분명 존재합니다. 합법칙적 조건설   합법칙적 조건설은 조건설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합법칙성’이라는 요소를 도입한 학설입니다. 합법칙성을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법칙에 맞는 성질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때 법칙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바로 자연과학 법칙을 말합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에서는 가장 발전된 과학 지식을 활용하여 인과관계의 존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앞서 조건설을 설명하면서 든 사례를 다시 보겠습니다. 갑과 을이 병에게 동시에 독약을 먹였을 때, 조건설의 관점에서는 둘 중 한 명이 독약을 먹이지 않았더라도 병은 죽었을 것이므로 둘 다 무죄로 보았습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의 경우에는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독약을 먹으면 사람이 죽는 것이 확실하고, 해당 사례에서 갑과 을 모두 병에게 독약을 먹여 병이 죽었으므로 둘의 행위 모두 병의 죽음의 원인이 된다고 봅니다.   이처럼 합법칙성을 적용하면 조건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신의 자연과학적 연구 성과를 반영하는 만큼 ‘과학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장점들이 있어 합법칙적 조건설은 현재 학계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의 경우에도 몇 가지 결점이 존재합니다. 우선 최신의 자연과학 내용을 활용해도 연구 부족, 과학지식의 한계 등으로 인해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사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4) 사례의 경우, 정황상 공장 내 유해물질과 희귀질환 간의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관련 연구가 부족하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가 곤란할 수 있습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의 경우 그 활용에 있어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합법칙적 조건설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데에는 분명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조건설과 마찬가지로 인과관계의 범위를 너무 넓게 보기에 행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따라서 ‘객관적 귀속이론’을 추가로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객관적 귀속이론은 쉽게 말해 사건의 결과가 바로 그 행위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를 판단하는 이론으로, 오늘날 법학계에서 매우 논쟁적인 분야입니다. 이처럼 합법칙적 조건설을 실제로 판결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이론이, 그것도 논쟁이 매우 활발한 이론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상당인과관계설  상당인과관계설은 ‘상당성’을 원인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상당성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준 조건만을 원인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상당성의 판단은 사회생활을 통해 자연스레 얻을 수 있는 경험법칙에 근거합니다. 일반적으로 세 가지의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제시됩니다. 첫 번째는 주관적 상당인과관계설로, 이는 행위자가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던 사정을 근거로 상당성을 판단합니다. 이 경우 위의 (3) 사례는 E가 F의 질병을 정확히 알지 못했으므로 E의 폭행은 F의 죽음에 대해 상당한 조건이라 볼 수 없고, 따라서 인과관계가 부정됩니다.  두 번째는 객관적 상당인과관계설로, 이미 존재했거나 일반인이 알 수 있는 사정을 근거로 상당성을 판단합니다. (3)의 사례에 적용해 보면, E가 몰랐다 하더라도 뇌수종이 존재했으므로 E의 폭행은 F의 죽음에 대해 상당한 조건이 되어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긍정됩니다.  세 번째는 절충적 상당인과관계설로, 이는 행위자뿐만 아니라 통찰력 있는 사람이라면 알거나 예측할 수 있었던 사정까지 고려하여 상당성을 판단합니다. 절충적 입장은 전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닙니다. 이 중 절충적 상당인과관계설의 경우 합법칙적 조건설 이전에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견해로, 현재도 판례의 기본입장에 해당합니다.   상당인과관계설 역시 비판점이 존재합니다. 가장 핵심적인 비판은 상당성의 판단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행위자나 일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사정이 어디까지인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판단에 있어 주관이 강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판결의 일관성 결여로 이어져 법의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위의 (3) 사례에 대해서는 E의 폭행과 F의 죽음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하였으나, 뇌수종이 아닌 고혈압, 심장질환 등이 문제가 된 경우에는 인과관계를 인정하였습니다. 또 피해자가 강간을 피하는 과정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려 사망 또는 부상을 입은 두 개의 사례에 대해 인과관계를 각각 인정 또는 부정하여 서로 반대되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렇듯 상당인과관계설의 판단이 다소 비일관적이다보니 학계에서의 지지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법에서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주요한 학설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의견이 필요한 차례입니다. 법의 관점에서 인과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는 것이 옳을까요? 저희가 소개한 견해들 중 선택하셔도 좋고, 새로운 주장을 해주셔도 좋습니다. 댓글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을 나눠 주세요!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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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참여와 투표의 중요성
민주주의는 소수의 몇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통치가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여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민주주의는 다양한 참여 방식을 제공하며,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럼 학교에서는 어떨까요?   학교에서 민주주의 중심 조직은 학생회입니다. 학생회란 학생이 주체가 되어 어떤 일을 의논하여 결정하고 실행하는 조직이나 모임을 이야기합니다. 학생들과 학교가 소통하고 협의할 수 있도록 이어주고 학교생활을 위한 결정을 더 민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직인 셈이지요.학생회는 학생들을 대표하는 조직으로써,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반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학생회는 학생들과 소통하며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이를 기반으로 학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학교를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학생회가 학교 내에서 학생들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하며,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여 학교생활의 질을 높여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생회 투표 사례와 투표의 중요성 학생회에서 대표적으로 실시하는 투표 사례 중 하나인 학생회 임원 선거, 학생회가 예산을 분배할 때 어떻게 예산을 사용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예산 배정 투표, 학교 내부 시설의 개선을 위해 예산을 사용할 때 어떤 시설부터 개선하면 좋을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우선순위 투표 등 학생회 투표 사례는 매우 다양합니다. 이러한 투표가 진행되면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학생회를 선출하는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투표를 통해 학생회를 선출함으로써 학생들이 원하는 대표를 선출할 수 있게 되며, 투표를 통해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대한 의견을 직접 제시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대처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학교생활의 질을 높이고 학생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할 수도 있습니다.학생회가 계획한 투표와 투표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도록 학교 측에서도 학생회와 투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학교는 학생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생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학교 내 정책 수립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소통을 위한 도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많은 참여와 소통을 위해서는 방식의 전환도 있어야 하는데요. 오프라인으로는 활동의 지식이나 논의 결과가 축적되지 않고, 공유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에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할 수 있으며, 결과도 쉽게 정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 회의 시 온라인 툴을 사용해 본 학생회 담당자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는 진정한 의미의 '참여자'가 되었으며, 딱딱했던 총학생회 회의가 생동감있는 회의로 변했다’고 하며, ‘온라인을 통해 손쉽게 휴대폰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점, 이후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양한 학내/외 학생 투표 사례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진행되는 투표는 학생회 안에서 진행되는 자치활동에 대한 선거 및 투표에서 그치지 않고, 학교의 의사결정은 물론, 나아가 국가와 사회의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투표로 의견을 모아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주도하여 의견을 나누고 의사결정을 하면서 많은 활동들이 이어나가고 있어요.  1.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후보 선거 한국외대는 2021년부터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학생과 직원도 투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투표 반영비율을 보면, 교수가 90%를 차지하고 학생과 직원은 각각 5%에 불과하기 때문에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지만, 교수만의 밀실 선거로 진행되었던 과거에 비하면 진일보한 성과라고 합니다.학생 교수 직원 3주체가 함께 총장 선거를 치르게 되면서 학생과 직원을 위한 공약이 훨씬 더 많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학교 정책에 대한 토론도 훨씬 공개적이고 다양한 내용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3번의 투표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온/오프라인 투표를 진행해 매번 50%가 넘는 투표율을 보이며 총장 선거에 대한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을 결과로 보여주었습니다.이러한 변화는 한국외대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각 대학 학생들이 지난 수십 년간 민주적인 총장 선거제도에 대한 목소리를 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국정 농단에 대한 학생들의 움직임 or 학교에서 벌어진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4.19혁명, 5.18운동, 6월 민주 항쟁 등 국가에 큰 문제가 생길 때마다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의 움직임은 언제나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권의 민간인 국정 농단에 대한 보도가 연일 이어지며 문제의 심각성이 높아지자, 각 대학 학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권 퇴진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서울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를 비롯한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서명운동 및 투표를 통해 동맹휴업을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캠퍼스 안팎의 광장에 모여 정권 퇴진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행동을 총투표로 결의하고 실행에 옮기며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학생총회, 촛불집회, 거리행진 등을 통해 꺼지지 않고 더욱 퍼져나간 촛불은 결국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결과를 이루었습니다. 3. 환경 보호 운동 세계적으로도 학생들은 환경 보호에 대한 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전 세계에서 '지구촌 기후 총파업'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환경 보호 운동이 진행되었으며, 세계 각지에서 학생들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정부와 기업들에게 환경 보호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내었지요. 한국에서도 기후 위기의 당사자인 청소년, 청년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유의미한 변화를 만드는 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은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면서 실질적인 정책과 정치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4. 미국 학생들의 총기 규제를 위한 투표 2018년 2월, 미국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에서 총기 규제를 위한 시위가 일어난 후, 많은 학생들이 투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18년 미국 중, 고등학생들의 투표 참여율이 23%에서 42%까지 상승하였으며, 이들의 투표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는 총기 규제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학생들의 노력과 참여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어 자신들의 학교생활과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참여하면, 그들의 의견이 정책과 정치적 결정에 반영되는 기회가 생기며, 이는 민주주의의 원칙과도 일치하지 않을까요?더 나은 학교생활을 위해, 문제 해결과 소통을 위해, 더 민주적인 생활을 위해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투표에 참여해야하며, 사회와 학교는 학생들의 활동에 대한 지원과 의견을 수렴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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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와 내셔널리즘
일본의 저명한 젠더학자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1948~)가 2017년 2월 11일, 「평등하게 가난해지자(平等に貧しくなろう)」라는 글을 발표했다. 인구를 유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 증가이고, 또 하나는 사회 증가. 자연 증가는 더 이상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되지 않습니다. 울고 불고 해봐야 애들은 늘 수 없습니다. 인구를 유지하려면 사회 증가 밖에 없다, 즉 이민의 수용입니다. 일본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이민을 받아 활력 있는 사회를 만드는 대신 사회적 불공정과 억압과 치안악화로 괴로워하는 나라를 만들 것인가, 난민을 포함한 외국인에 대해 문호를 닫고 이대로 천천히 쇠퇴해 갈 것인가. 어느 쪽인가를 고를 분기점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민정책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객관적으로는 무리, 주관적으로는 관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러면 일본은 인구감소와 쇠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평화롭게 쇠퇴해가는 사회의 모델이 되면 됩니다. 1억 명 유지라던가, GDP 600조 엔 같은 망상은 버리고 현실을 마주봅니다. 다만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은 어렵습니다. 어떻게 희생자를 내지 않고 연착륙할까? 일본의 경우, 모두 평등하게, 천천히 가난해지면 됩니다. 글의 내용은 이렇다. 일본은 다문화 사회 같은 것을 쉽게 받아들일 사회도 아니거니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의 활력을 불러오는 대신 부작용이 많으므로, 사회를 사민주의적으로 바꾸고 천천히 쇠퇴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시민단체, 사회단체들은 이걸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꼭 노동자가 아니어도 외국인이 늘어나면 일자리를 빼앗기는 사람이 생기고 치안이 악화된다는 주장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다. 우에노의 말은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가난해지더라도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지 말자는 말로 이해될 여지가 너무 크다. 특히 평생을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온 그 이기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에노의 이 주장을 비난했다.  부유한 국가를 향한 노동자들의 움직임 문제는 사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그런 복잡함을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것은 ‘국가중심주의’적인 시선들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일을 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선택’을 오롯이 ‘선택’의 문제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 중에는 반짝 열심히 벌어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자식, 그리고 그 자식들에게까지 내가 겪은 괴로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자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어떤 기술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 기술이나 자본 없이 몸만 가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도 있다. 이주 노동에는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두고, “넌 차별과 불이익이 있다는 걸 알고, 각오하고 더 잘 사는 나라에 온 것 아니니?”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런 각오를 하고 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부유한 국가의 개개인이 차별과 불이익을 줄 권리는 없다. 세계적인 부의 불평등, 분배의 불평등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밀려왔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차별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사회적인 책임감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타인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치가 어쩌구 사회가 어쩌구 설명을 하는 것은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다. 나라 안에서의 부의 재분배를 말하기에 앞서, 국적에 따른 부의 재분배가 이렇다 저렇다 할 방법도 없이 자의적으로 결정되어 버리는 세계화시대. ‘K-POP’과 ‘한드’에 열광하는 지금이 어쩌면 한국인이 가장 세계적인 시야를 가진 시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국경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의 재분배와 윤리적인 책임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지역이 중심이냐 민족이 중심이냐 같은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는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의 특권을 직시해야 한다. 땅콩회항 같은 재벌들의 갑질에는 분노하면서 왜 이런 문제는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국민국가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인권을 보장하는 유효한 범위도 국가가 중심이다. 내 국민이 아니면 인권도 없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세계적인 부의 재분배 같은 문제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꽤 많이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리고 세계가 그렇게 발전하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하고, 그리 될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의 차원에서, 많은 이들이 먼저 인간이 되길 바란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 할 예의라는 게 있다는 것을 제발 좀 깨닫기 바란다.
4.19 유족이 본 대통령 기념사
  저는 4.19 혁명 유가족입니다. 할아버지께서 4.19 혁명에 참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사망 후 수유리에 있는 국립 4.19 민주묘지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2~3년 전부터 유가족 신분으로 기념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념식에 참여했는데요. 수유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보는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작년엔 당선인 신분으로 기념식에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념식에 참여하다보니 드는 의문이 많아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낭독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의회신문 2023.04.19.) 정부는 처음으로 4·19혁명이 전개된 지역 학생들의 학교 기록을 포함하여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강원, 전북, 마산 지역에서 주도적 활동을 하신 서른한 분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하게 됐습니다. 특히, 부산 지역 4·19혁명을 주도했던 부산고등학교의 열한 분의 공적을 확인하고 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부에서 4.19 혁명을 기억하고 국가차원으로 예우해준 덕분에 살아계신 혁명 참여자와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불굴의 용기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던 4·19혁명이 6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국격을 바로 세운 4·19혁명 유공자들을 한 분, 한 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후세에 전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입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혁명 열사의 뒤를 따라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함께 모인 것입니다. 이 짧은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4번이나 반복하시다니. 헌법 전문에서는 4.19혁명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또한 4.19혁명 정신이 자유, 민주, 정의이기는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주장해온 ‘자유시장경제를 위시한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표현입니다.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도 이것은 가짜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는 늘 위기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독재와 폭력과 돈에 의한 매수로 도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독재와 돈에 의한 매수를 언급하셨습니다. 가짜, 돈에 의한 매수처럼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들을 지칭하셨는데요. ‘세계’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때부터 누군가를 지칭하고 싶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최근 모 정당에서 터진 돈봉투 의혹과 관련된걸까요? 이 기념식의 취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위의 문장들과 함께 꼭 지칭하고 싶은 대상이 있는 것 같은 문장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념식에 활용할만한 적절한 단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는 A4용지 두어페이지 분량으로, 이런식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최근 박민식 보훈처장이 “이승만 기념관 건립, 국가의 정체성 확립하는 일”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월간조선. 2023.04.19.) 자유당 독재정권을 몰아낸 혁명을 기념하는 기념일에 독재자의 기념관을 만들겠다는 기관장과, 이를 옹호하는듯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 대통령.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반면 같은 날 4.19 혁명 관련한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겠습니다. 정중섭 4.19 혁명희생자유족회장은 기념식 경과보고와 별도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독립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처럼 4·19 혁명도 국경일로 지정해 국민적 동의와 공감을 현실화해야 합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디지털타임스 2023.04.18) 또한 김진표 국회의장은 19일 “4·19혁명 63주년을 맞아 4·19 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권고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동아일보 2023.04.19.) 윤석열 대통령도 이렇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제안, 혁명으로 인한 국민의 자긍심을 고양할 수는 없었을까요?  정리해보면,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사를 이 역사 자체를 기리는 것보다는, 본인과 주변의 정치적 행보에 도움이 되는 연습장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4.19 혁명은 끌어내려야 할 명확한 대상이 있었던 시민혁명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재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은 보통 4.19 당일 기념식에 참석하지는 않고, 오전에 참배만 하고 돌아갑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부터 대통령 신분까지 기념식에 참여해주신 것에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위 글은 4.19민주혁명회ㆍ4.19혁명희생자유족회ㆍ4.19혁명공로자회와는 별개의 개인 입장임을 밝힙니다.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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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민 광장에서 교육을 외치다
수능시험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나라 한국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나라입니다. 수능시험 당일 영어듣기 시간대에는 국토교통부에서 비상·긴급 항공기 등을 제외한 국내 모든 공항에서의 항공기 이착륙을 전면 통제합니다. 비행 중인 항공기는 관제기관의 통제를 받으며 지상으로부터 3km 이상의 상공에서 대기해야 하는데요. 이처럼 교육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양해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2022년 기준 초등학교 진학률은 98.5%, 중학교는 98.2%, 고등학교는 94.5% 그리고 대학 같은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1.9%에 이릅니다. (교육누리. 취학률 통계) 학생 사교육 참여율은 78.3%에 달하고, 사교육비 지출은 올해 26조 원에 이르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2023.03.07 정책브리핑)  즉, 웬만하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고등교육까지는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 국민이 같은 경험을 하는 교육이라는 이슈에 목소리를 내본 사람은 몇 명이나 있을까요?   교육 거버넌스의 부재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는 사회가 민주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황 때문이다. 과연 다수가 그들의 의사 결정에 의해서 지배하는 거버넌스를 갖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경제민주화, 정치민주화, 문화민주화의 기형적인 구조를 언급하며, 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김누리. 민주주의와 시민의 힘, 민주주의자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또한 한국은 흔히 말하는 대통령 중심제 국가입니다.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국가의 중요한 정책 방향도 따라가는데요. 대통령 선거 시기가 되면 교육개혁이라는 골자로 다양한 정책, 공약이 나오고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이에 따른 국정과제가 발표됩니다. 하지만 이런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마냥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연세대 김혜숙 명예특임교수는 “보수/진보 대통령의 정치 성향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바뀌게 되니 안정성은 떨어지고, 선거와 인수위원회 시기를 다 합친다고 하더라도 교육 공약이나 국정과제를 마련하는 시간은 실질적으로 짧다”는 문제를 제기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효과가 수십 년에 걸쳐서 나타나는 교육의 속성을 대통령은 물론 교육감, 정당의 지도자와 정치가, 교육전문가, 언론, 교원단체, 학부모단체, 다양한 이익집단과 시민사회, 그리고 모든 국민 사이에 자리를 잡는 일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합니다. (2022.04.07 한국교육신문) 그렇다면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성숙하게 교육 이슈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구성원들의 대화와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이 보장된다면 그것은 민주적인 사회이자 민주적인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터 레빈, 알천 청, 존 개스틸은 ‘시민의 이야기에 답이 있다’를 통해 우리 사회의 숙의와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합니다. “숙의 민주주의의 미래를 전망하며 숙의는 정책 선택에 중점을 두는 반면 대화는 수용, 화해, 상호 이해 또는 적어도 관용을 추구한다.”, “대화 단계는 도덕적 논쟁을 해결하거나 정책 목표를 진보시키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그룹 구성원들 간에 깊이의 차이가 존재하는데도 공동 결정에 도전하는 힘든 과정을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대다수의 국민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이슈이기에 모두 목소리를 내면 좋겠지만, 교육이라는 거대한 이슈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 있을까요? 실질적으로 어렵다면, 결정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그 이슈에 대해 대화와 토론을 활발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공론장에서 교육 이슈를 논의하는 방법 매년 교육에 대한 비판과 논란이 일지만 누구 하나 만족스럽다는 말은 없는 한국의 교육입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토론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교육부, 국회를 가리지 않고 교육 이슈에 대한 토론회가 수시로 열리고 있는데요. 이런 토론회는 제도 구성과 개편에 대해 전문가의 발언과 연구 위주로 구성됩니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요?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슈와 관련된 토론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이 공간에서 이뤄진 토론도 소개합니다. 먼저, 캠페인즈에서는  ‘대학 입시’와 ‘교육부의 교육개혁안’에 대한 투표와 토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육 속 대학 입시 문제’, 어떤 것부터 논의해야 할까요? 에서는 한국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입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학서열화, 사교육비, 수능의 적합성, 입시 방법의 다양화, 입시의 신뢰성/공정성, 입시의 상업화, 학교폭력과 입시라는 선택지 중 대학 서열화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문제의 시작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후 진행된 대학 서열화, 어떤 악순환부터 끊어야 할까요? 에서는 앞서 언급된 대학서열화를 지속시키는 악순환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학벌주의, 수도권 과밀화, 장기간 학습과 입시경쟁, 사교육 의존과 교육 격차,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와 성적 비관 자살이 선택지로 제시되었고, 전체 200여 표 가운데 100여 표를 학벌주의가 차지했습니다. 이어서 진행된 대학 서열화, 어떤 해결방안이 있을까요? 에서는 대학 서열화에 대한 해결 방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축, 거점국립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 국공립대/사립대 공동 입학제 실시, 대학 간 학술교류/자원공유 협약 체결이 선택지로 제시되었습니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축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안, 어떤게 가장 중요한가요? 는 교육부에서 제시한 교육개혁안에 대한 투표입니다. 학생맞춤 교육개혁, 가정맞춤 교육개혁, 지역맞춤 교육개혁, 산업/사회맞춤 교육개혁, 교육개혁 입법 추진이 선택지로 제시되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토픽에서는 ‘미국식 교육 모델 도입? 혁신 혹은 되풀이’라는 제목으로 토론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미국의 ‘차터스쿨’을 본딴 한국판 ‘차터스쿨’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새로운 교육 모델’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제2의 자사고’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다는 여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에 좋은 제도이지만, 입시와 교육 문제의 본질은 이걸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의견 등이 제시되었습니다. 외국어고 폐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라는 토론에는 거시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의견과 폐지와 전환 보다는 고등학생들이 교육 불평과 고교 서열화가 생기지 않도록 개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뉴닉에서는 피자스테이션을 통해 학폭 생기부 기재 강화, 어떻게 생각해?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93.4%에 달하는 참여자들이 강화해야한다는 의견을 냈는데요. “피해자에게 평생 상처가 남는 만큼, 마땅하고도 남는 조치”라는 의견과 “학교는 남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반면, “가해자에게도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과 “어떻게 벌줄까를 먼저 고민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한 교권 강화, 어떻게 생각해? 라는 질문에는 제도로 강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77.8%에 달했습니다. “학생을 바른 길로 이끄려면 교사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과 “학생들의 인권이 소중한 만큼 교사의 인권도 소중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더 많은 시민주도 공론장을 위하여! 이처럼 특정 직업과 전문성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시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공론장에서 어떤 것을 기대 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시민들이 모이는 공론장에서 다양한 주제 제시와 관점의 공유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토론이 항상 완벽한 답이나 해결책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뉴스를 보며 화만 내어 휘발되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에너지를 유의미한 토론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산발되어 흩어지던 아이디어는 더 나은 논의를 위한 공간에 모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공간을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또 내가 설득되는 설득의 공론장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득이 성사되지 않거나 답이 나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의 대화와 토론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경험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특정인들이 논의를 주도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의제를 던지고 주도적으로 논의에 참여하는 시민주도 공론장이 더 많아지고 활성화 되어야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고 나아가서는 제도화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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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제도권 공간을 넘어
학교라는  제도권 공간을 넘어 ‘배운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는만큼 다양한 배움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보여주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좋은 삶으로 일구어 나갈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무교육이라는 제도 하에 학교를 다니게 되지만, 지금의 학교가 수능과 성공이라는 획일화된 목표를 갖는다면,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권 밖의 교육도 선택지에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빠띠의 워킹그룹팀 활동가들에게 과거로 돌아가 다양한 교육의 선택지가 다시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묻고, 사례에 비추어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보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 다가치학교를 선택하겠다는 리디아 ❝교육의 주체이자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학생들이 자치를 실제로 경험하는 다가치학교에서 활동해보고 싶어요. 다가치학교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학생이 직접 자유롭게 도전해볼 수 있는 마을결합형 청소년자치배움터예요. 이전에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늘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공부와 성과에 부담과 압박을 가졌는데, 이곳에서는 해방된 공간에서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꾸로캠퍼스가 궁금한 나기 ❝배움의 모양은 가지각색이라는 것, 그리고 그만큼의 선택지가 있다는 걸 누구나 알 권리가 있잖아요. 틀을 깨는 실험을 실천하는 모든 방식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거꾸로캠퍼스 사례도 그중 하나로 가치지향적 차원의 대안교육을 넘어서, '하고 싶은 걸 선택한 게 실제로 내게 도움도 돼야지!'라는 실험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요. 실제 다녔던 분들의 마음은 또 다를 수 있겠지만..!❞ ?대안교육기관 창창한에 가보겠다는 포터 ❝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지식은 배웠지만, 정작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많이 기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며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강점 찾기)을 받고, 강점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개인 맞춤형 교육까지 받을 수 있는 창창한에 가보고 싶어요.❞ ?️교육공동체 벗을 탐구하고 싶은 우디 ❝영어 학원, 대학수능, 토익시험, 취업준비 등 살아오면서 많은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교육들 중 대부분이 어떤 직업이나 자격을 얻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어요. 그리고 자격을 얻지 못하면 그동안 노력했던 시간이 사라졌는데 남는 건 실패라는 단어였죠.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나’ 자체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의 메시지를 탐구하고 싶었어요. ‘교육공동체 벗’은 <오늘의 교육>이란 단행본에서 교육농, 읽기 모임, 공방 등의 프로젝트 내용을 담고 있어요. 이를 통해 한 사람의 조화로운 성장을 위한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지 되묻고 교육을 통해 실천하는 삶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기, 학교와 공동체의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는 학교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대안대학 지순협(지식순환 사회적협동조합)인데요. 기존 제도권 대학에서 운영되는 지식과 분야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연결하며, 모두가 동료로서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빠띠는 지순협의 사무국장 두두님과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빠띠 : 두두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새로운 교육을 실험하고 시도하는 지순협이 인상깊어 인터뷰를 요청드렸습니다. 지순협이 기존 대학과 가장 크게 다른 점 하나를 꼽자면 어떤 것일까요? ?두두 : 대안대학의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엘리트주의에 반대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제도권 대학이 엘리트를 양성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70%가 넘는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에 간다고 모두가 엘리트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교과과정의 측면에서  제도권 대학은 4년 간의 과정으로 전공자를 배출해내는 목표를 갖고 있다면, 지순협은 학생들이 전공을 정하지 않고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삶이나 활동의 방향성과 맞춰보는 데에 중점이 있습니다. 지순협을 대안학교가 아닌 대안대학이라고 부르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대학 자체가 전공 과정을 통해 전문가를 기르는 과정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대안대학이라는 말이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에 대안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모순적 지점 자체에 지순협의 존재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빠띠 : 말씀해주신 내용 들으면서 조금 더 깊이 지순협의 교육 방향을 이해하게 되었네요! 그렇다면 두두님은 어떻게 지순협에서 활동하시게 되었나요?  ?두두 : 저는 지순협 1기로 입학해서 공부했던 학생이었어요. 고등학교도 대안학교를 나왔고 수능을 칠 즈음 수능 거부 시위에 동참하기도 하면서 제도권 대학에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계속 하고 싶었어요. 대안적 가치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2015년에 지순협 1기로 입학하게 되었고, 2년 간 열심히 공부해 졸업했습니다. 다양한 연령과 학업수준을 가진 사람이 모인 지순협에서는 학점이라는 개념이 없고, 성실도에 따른 절대평가(pass/fail)로 교육이 진행되는데요. 그래서 학생들은 pass하기 위해서 시험이 아닌 기말포럼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 포럼을 준비하며 그동안 들었던 수업의 내용과 자신의 삶의 맥락과 질문을 끌어와 연결하는 연습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제게 중요한 자원이 되었어요. 공부한 것을 요약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질문들을 발전시키며 그 고민의 궤적을 볼 수도 있었고, ‘내가 가진 화두는 이것이구나’라는 것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학생이 각자가 가진 삶의 고민과 성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 좋았고, 이런 지순협의 추구하는 방향과 미션이 제게도 중요하다고 다가왔기 때문에 졸업한 이후에도 지순협에서 계속 활동하게 되었어요. 저와 같이 기존의 대학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선택지를 만드는 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빠띠 : 지순협의 교육과정이 참 흥미롭고, 두두님의 활동이 더욱 기대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지순협에서 활동하시면서 어렵거나 고민이 되는 점도 있으셨나요? 그리고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또 무엇이 있을까요? ?두두 : 사회 자체가 어려운 것이 저에게도 제일 어렵습니다. 다들 먹고 살기가 어렵고 바쁜 상황이 교육 사업을 운영하는 저희에게는 구조적 한계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세상이 너무 빠르고 조급하지 않다면,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삶의 여유를 갖고 조금 더 적은 고민으로 기꺼이 배울 시간을 내지 않을까 싶어요.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의 돈과 시간을 적지 않게 들여야 하니까요. 이런 환경 속에서 지순협도 새로운 교육 사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활동(Action)과 연구(Research)의 화학반응 (CHEmistry)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르케(ARCHE)’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브랜딩을 하고, 더 젊은 기획자와 활동가들이 ‘아젠다 워커(agenda worker)’라는 명칭으로 참여하실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기존에는 2년 과정이었는데, 비교적 짧은 시간으로도 함께 교류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시도해보자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5월부터 시즌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순협 뿐만 아니라 여러 대안학교들이 가치를 잘 지키고 교육의 질을 높여가며 운영되려면, 공공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원에 대한 지원 뿐만 아니라, 대안학교 및 대안대학을 졸업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정 시스템도 작동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고요.  ?빠띠 : 와! 아르케(ARCHE), 정말 기대되네요. 그리고 두두님께서 말씀해주신 여러 어려움, 그리고 필요한 것들에 대해 깊이 공감이 됩니다. 이런 어려운 사회이지만, 그럼에도 지순협을 비롯한 여러 교육 실험에 함께해볼까 하고 고민하는 분들께 혹시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나요? ?두두 : 좀 더 가볍게 선택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생각보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 교육을 받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잖아요. 대안학교나 대안대학을 선택해도, 그 이후에 누군가는 각자의 필요에 의해 제도권 학교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삶이 있는만큼 사람들이 배움에 있어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그런 넘나듦이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선택이 가벼워지면 좋겠어요. 그래서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빠띠 :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두두님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면, 배움(교육)에 관해 어떤 선택을 하실 것 같은지 여쭤보고 싶어요. ?두두 : 제 모든 기억을 보존하고 돌아간다면,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제도권 교육을 선택해서 두 가지 경험을 모두 해보고 싶어요. 제도권 교육과 대안교육에서 각각 어떤 부분이 바뀌어야 하는지 경험 하에 고민해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기억을 잃은 상태로 돌아간다면, 대안학교에서의 시간이 지금 제게 중요한 자원이 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선택할 거예요. 덧붙여, 두두님은 지순협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실천에 대해 자기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전문가나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지 않고 스스로 관심을 가지며, 그런 주체들이 모여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이 민주적인 삶이라고요.  빠띠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삶의 방향과 가치를 정할 권리가 있고, 교육은 이러한 다양한 개인의 삶을 존중하며 뒷받침해줄 수 있는 든든한 터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지순협을 포함해 살펴본 여러 사례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는 이런 다양한 가치를 지키려는 배움터들이 계속 움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져서, 우리 모두에게 교육이 정해진 길이나 정답이 없는 열린 결말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다양한 교육을 위한 선택지에 대해 어떤 생각, 의견을 갖고 계신가요? ✏️글 : 리디아 /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워킹그룹팀 활동가 / lydia@parti.coop 이 글은 빠띠 홈페이지, 빠띠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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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패션
최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환경 오염 관련 이슈가 논의되고 있는데요, 여러분은 그중에서도 의류 쓰레기가 일으키는 환경 문제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2022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수상작 :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2021년 KBS에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의류가 일으키는 환경 문제에 관한 내용으로 2022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2022 방통위 방송대상 수상작] 오늘 당신이 버린 옷, 어디로 갔을까? (KBS 20210701 방송)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내용을 하나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지금 지구에서 1년 동안 생산되는 옷의 양은 무려 ‘천억 벌’이라고 해요.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수치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산되는 옷이 몇 벌인지가 아닌 옷을 생산할 때 드는 자원의 양입니다. 흰색 면 티셔츠 1장을 만드는데 드는 물의 양은 무려 2,700L로 사람이 3년간 먹는 물의 양과 같다고 해요. 심지어 이렇게 생산되는 천억 벌의 옷 중 버려지는 옷은 330억벌이라고 합니다. 이 수치를 비율로 환산하면 33%니 정말 어마어마하죠? 이렇게 입지도 않은 새 옷들이 버려지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먼저 패스트패션이라는 현대 사회의 트렌드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패스트패션이란?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란 간편하고, 싸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뜻의 패스트푸드에서 파생된 단어로 최신유행에 맞는 옷이 빠르고 싸게 대량 생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패스트패션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최신유행에 맞춘 옷들이 유행을 지나면 팔리지 않아 고스란히 버려지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의류 마케팅  패스트패션과 더불어 옷이 과도하게 생겨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의류 마케팅 때문인데요, 유튜브를 보거나 웹서핑을 할 때 의류 광고가 뜬 경험 다들 있으시죠? 이런 식으로 의류업체들은 알고리즘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많은 양의 광고를 내보냅니다. 또 일부 의류 어플은 정교한 데이터 기반으로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해 인공지능이 추천한 옷을 구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옷으로 인한 환경 오염  아까 옷이 버려지는 비율이 33%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이번에는 이렇게 대량으로 버려진 옷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알아볼 환경 문제는 공기 오염입니다. 우리는 보통 항공기나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공기를 오염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 세계 항공기나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패션 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더 많다고 해요. 그 예시 중 하나로 청바지 한 벌을 제작할 때 배출되는 탄소의 양이 자동차가 111km를 이동했을 때 배출되는 탄소의 양과 비슷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또 옷을 만들거나 폐기하는데 드는 탄소 배출량이 세계 전체 탄소 배출량의 10%라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지 감이 오시나요? 22.11.17, 한철 입고 버린 옷, 썩지 않는 쓰레기산 된다, 출처 한국경제 ▲ 산처럼 쌓인 의류쓰레기  두 번째로 알아볼 문제는 개발도상국의 의류 쓰레기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옷 중 5%는 국내 빈티지샵 등으로 유통되고, 나머지 95%는 개발도상국 등으로 수출된다고 해요.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가난하니까 옷이 생기면 좋은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서아프리카의 칸타만토 시장에는 매주 헌 옷 1500만개가 도착한다고 해요. 하지만 많은 양의 옷이 도착해도 그중에서 쓸 만한 옷은 별로 없기에 도착한 옷 중 판매할 옷을 뺀 나머지 옷들은 그대로 버려져 시장 근처 강에 떠다니거나 근처 평지에 그대로 쌓여 마치 산과 같은 모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상술한 문제 외에도 옷을 제작할 때 사용되는 염료나 표백제는 바다를 매우 오염시키고, 버려진 옷을 먹은 해양 생물들이 아파하는 등 지금도 의류 쓰레기로 인해 수없이 많은 환경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안 사례 소개  그렇다면 이런 의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쓰레기도 아름답게 변하는, 트래션쇼 ▲ 트래션쇼의 예시  먼저 외국의 사례를 소개해드리려고 하는데요, 최근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거주하는 10대 환경운동가들은 버려진 폐기물을 활용해 만든 옷으로 ‘트래션쇼’를 개최했다고 해요. 2022.12.04 '쓰레기를 작품으로'…나이지리아 10대들 패션쇼 눈길, 출처 뉴스펭귄  여기서 트래션쇼란 쓰레기와 패션쇼의 합성어를 의미합니다. 해당 트래션쇼는 환경 오염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재활용을 장려하며 지속가능한 패션을 홍보하는 것을 목표로 마련됐다고 해요.  이 쇼의 개최자들은 지역사회, 해변, 배수로 등을 청소하면서 나온 폐기물을 모아 패션쇼에 사용할 의류를 제작했습니다. 플라스틱 가방을 넓게 펼쳐 만든 원피스, 카프리썬 주스 봉지로 만든 귀걸이, 플라스틱 병뚜껑으로 제작한 목걸이 등을 착용한 채 런웨이를 걸었습니다. 또 행사를 주최한 나이지리아 비영리단체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서는 환경 오염과 기후 문제에 대한 교육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쓰레기 패션쇼와 같은 오락 행사가 교육을 위한 완벽한 수단’이라 덧붙였다고 해요.  2) 옷 없이 옷을 파는, 레지넌스  다음으로 미국의 주문형 의류회사 ‘레지넌스’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주문형 의류회사라는 것이 많이 생소하실 것 같은데요, 이 회사는 주문형이라는 말 그대로 주문이 들어오면 옷을 제작하는 회사입니다. 그렇기에 이 회사의 좌우명도 ‘재고 없음’이라고 합니다.  또 레지넌스에서 옷을 판매하는 방식뿐만 아니라 만드는 방식 또한 친환경적입니다. 옷을 제작할 때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디지털 인쇄를 사용하기 때문에 물과 잉크가 30% 절감되며, 모든 옷에는 QR코드를 넣어 사용된 직물과 염료가 무엇인지, 물과 소비전력은 얼마나 들었는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을 소비자가 알 수 있다고 해요.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낭비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입니다.   3) 안 입는 옷들로 여는 파티, 21% 파티  지금까지 외국의 사례를 알아봤으니 이번에는 한국의 사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파티를 좋아하시나요? 여기 의류 낭비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파티가 있습니다.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에서 개최하는 ‘21% 파티’인데요, 이 파티의 참석자들은 예전에 구매했지만 다양한 이유로 인해 입지 않는 깨끗한 옷을 가져와 서로 바꿔 입는다고 해요. 재미있는 점은 가격표 부분에 가격 대신 옷에 대한 소개를 적어 붙인다는 것입니다. 옷의 종류는 무엇인지, 언제 샀는지, 몇 회 입었는지, 왜 내놓는지에 대한 이유를 짧게 작성합니다. 그래서 이 옷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고, 옷에 대한 애정도 생기며 환경도 챙길 수 있는 재미있는 파티입니다.  그리고 다시입다 연구소는 작년 4월 캠페인즈에서 ‘패션기업들의 재고 폐기에 대한 법안을 만들어달라’는 서명도 진행했어요. 해당 서명은 아직도 진행중이니 여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 들어가 서명에 참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패션기업이 ‘재고와 반품을 폐기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어주세요!   4) 상품가치 없는 옷들도 팔리는, 애프터어스  다음으로 소개할 사례는 한국의 의류 브랜드 애프터어스입니다. 애프터어스는 ‘만들어진 옷들이 모든 의미를 다 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패션 문화를 지향’한다는 좌우명으로 만든 브랜드입니다. 애프터어스는 재고 제품, 미세 스크래치가 있는 리퍼브 제품과 같이 의류 자체에 문제가 없어도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옷들을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선보입니다. 소비자는 옷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 좋고, 옷들도 이유 없이 버려지지 않아 환경에 도움이 되는 점이 의미 있습니다.   5) 재활용을 한곳에 모은, 서울새활용플라자 ▲ 새활용플라자에 전시된 재활용품들  다음은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새활용플라자를 소개하려 합니다. 해당 플라자는 서울시에서 버려지는 자원들을 더 새롭게 활용하는 소재와 디자인, 제조, 유통을 한곳에 모은 곳으로 전시/팝업 행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개방한 장소입니다. 이곳에 방문하면 위에서 소개한 애프터어스와 같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다양한 기업들의 제품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이곳에서 열리는 다양한 활동인데요, 쓰레기로 의자 만들기, 장난감을 분해해 새로운 장난감 작품 만들기, 고장난 시계나 자전거, 청소기를 고쳐주는 등의 다양한 행사도 열립니다.     그렇다면 의류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은?  이렇게 지금까지 패스트 패션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다양한 대안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최근에는 유명한 패션 기업들도 의류로 인한 환경 문제를 인지하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아까 옷이 과생산되는 이유는 바로 의류회사들의 과도한 마케팅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에 몇몇 기업들은 의류 광고 패턴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고 해요. 그 중 자라는 “우리는 수요를 촉진하거나 과소비 촉진을 위해 광고를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고, 아디다스도 “오는 2025년까지 아디다스 광고 10건 중 9건은 지속가능한 것이 될 것”이라 밝혔다고 합니다. 22.06.26, 환경 우려 부르는 패스트 패션... 해결책은?, 출처 BBC NEWS 코리아  또 얼마 전에는 H&M과 아디다스, 자라가 유기농 원료와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는 친환경 컬렉션을 출시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기업이 환경을 살리기 위해 폐페트병으로 만든 의류를 생산 중이고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친환경적인 재료로 만든 옷을 입는 것이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요. 아무리 친환경적 원료를 사용해 옷을 제작해도 결국 전체 옷의 개수는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환경적 소재로 옷을 제작하는 것도 좋지만 초점을 전체 옷의 수요를 줄이는 것으로 맞춰야 의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기업이 생산량을 감소하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 소비자들의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요, 우선 의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패딩을 사고 싶다면 아까 언급한 빈티지샵에 가본다거나, 친환경적인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일상 속에서 조그만 실천을 하나씩 해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미 패딩이 많은데 환경 보호에 동참한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것을 구매하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패션 산업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의 핵심은 그것이 아무리 친환경적이더라도 무작정 새로운 것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필요한 것만 딱 사용하고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이니까요. 실천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의식적으로 한 번씩 더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의류로 인한 환경 오염이 점차 줄어들 것입니다.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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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연금개혁법 합헌을 보고 생각하게 되는 것
  2023년 4월 14일 프랑스의 헌법위원회는 마크롱 대통령과 여당을 중심으로 내놓은 연금개혁법에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연금개혁법을 두고 프랑스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는데요. 시위는 전국적 규모로 일어났고 추산 100만 명을 훨씬 웃도는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극좌/극우 야당은 모두 연금개혁법에 회의적이고, 특히 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계에서는 이에 전면 반대하면서 총파업을 하기도 했죠.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프랑스 시민들은 연금개혁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총파업과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부터 연금개혁을 주장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이후로 개혁안이 보류 상태에 있다가(당시에는 연금수령 연령이 65세였다), 64세로 수정하여 새로운 개혁안을 내놓았고 이것이 올해에 들어서야 합헌이 된 것이죠. 말씀드렸듯 개혁안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정년을 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것입니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노동을 시작하는 저숙련 노동자와 저소득층에게 연금 개혁안이 차별적”이라고 비판하고 있고(한겨레 2023.1.12), 외려 “연금체계는 위험한 상황에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연금개혁법을 강행하려고 한다며 마크롱을 로랑 베르제 노동민주동맹(CFDT) 사무총장 역시도 반발했습니다(한겨레 2023.1.12).   프랑스 연금개혁안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1) 9월부터 프랑스 시민들은 2030년 64살이 되는 해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고, 2) 연금을 모두 받기 위해 (노동시간을 통해) 기여해야 하는 기간이 1년 연장되며(기존 42년에서 43년으로), 이 시점은 기존 2035년에서 2027년으로 앞당겨집니다(연합뉴스 2023.1.11) 3) 최소 연금수급액은 월 최저임금의 85% 수준까지 인상됩니다(한겨레 2023.1.12). 이 개혁안의 목적은 저출생 고령화사회에서 연금적자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는 “연금제도를 바꾸는 것이 국민을 두렵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연금] 적자가 늘어나도록 놔두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강조하면서 “지금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대규모 증세, 연금 수령액의 감소로 이어져 우리의 연금제도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연합뉴스 2023.1.11).   기사의 날짜를 확인하시면 아실 수 있듯이, 시위는 지난 3개월 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12차의 전국 시위, 교통/에너지산업/학교 등은 노조의 파업으로 마비되기도 했죠(한국경제TV 2023.4.15). 프랑스의 노동총동맹(CGT)이 5월 1일 노동절에도 시위를 벌이겠다고 경고하면서, 이번 프랑스의 연금개혁법은 오랫동안 국제적인 이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대선,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사퇴하기 전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내놓았던 것이 바로 연금개혁이었죠. 당선 이후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로 연금개혁의 시급함에 대해 역설한 바가 있는데요. “대한민국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한국경제TV 2023.4.15), 연금개혁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더퍼블릭 2023.1.15).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연금 고갈에 대한 위기의식은 만연해 있습니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2039년 국민연금은 적자 전환, 2055년엔 고갈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아주경제 2022.1.25). 하지만 국회 연금특위 소속 민간자문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출범했음에도 위원 간 합의를 보지 못하면서 연금개혁안의 초안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한국경제TV 2023.4.15). 연금특위의 임기는 4월 말까지라 더욱 더 우려가 커지고 있어요(KBS NEWS 2023. 4. 15).    2018년에는 문재인 정부가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동시 인상을 추진했지만 경영계의 반대와 의지 결여로 실패한 바가 있다고 해요(오마이뉴스 2023.4.12). (*소득대체율이란? 연금가입기간의 평균 소득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금액 대비 연금지급액이자, 연금액이 개인의 생애평균소득의 몇 퍼센트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비율. [월연금 수령액/연금 가입 기간의 월평균 소득]의 공식이 적용되며, 소득대체율이 50%이면 연금액이 연금 가입기간 평균 소득의 절반 정도가 된다는 의미. 일반적으로 안락한 노후보장을 위한 소득대체율은 60~75%로 알려져 있고, 2018년 10월 기준 국민연금은 현재 소득의 9%를 납부하고 2028년 이후부터 소득대체율 40%를 보장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혹시 지금까지 한국의 연금제도를 간략하게 살펴보시면서 현재 당면한 문제를 찾아내셨나요? 2007년 이루어진 2차 연금개혁은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췄습니다(2008년에 시작하여 2009년부터 매년 0.5%p씩 낮아지고 있고, 2028년에 40%가 됩니다(오마이뉴스 2023.4.12)). 게다가 한국에서 노동자로서의 정년은 60세, 연금 수급 연령은 65세로 5년의 공백이 존재하기 때문에 연금수급연령을 높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이 상황에서 정부로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안은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지만 정부에 대한 지지율, 여당의 총선 결과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것이겠죠. 결국 해결책 중 일부는 2차 연금’개악’으로 인해 40%까지 추락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데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매달 최대 32만원의 기초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KBS NEWS 2023.4.15). 이를 40만원까지 인상하자는 것을 윤석열 정부가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는데요. 이것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기초연금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한국의 정년이 60세인데 65세의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기초연금을 준다는 사실은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년 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65세는 노동을 할 수 없는 연령대라고 간주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시기의 소득 수준이 기준이 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이는 한국의 연금체계의 약한 고리를 제대로 드러내 주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합니다.    4월 12일 연금특위 공청회에서는 “기초연금이 하위계층에 더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김수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 김 교수는 “기초연금 급여 인상은 연금개혁과 패키지로 이뤄질 필요가 있으며, 기초연금의 다른 개선사항들과 함께 검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해 노후 소득 보장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KBS NEWS 2023.4.15). 언뜻 보면 틀린 말도 아니거니와 나름 좋은 제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일괄적인 인상보다는 상대적 빈곤 차이를 줄이기 위해” 라는 애매한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상대적’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쓸 수 있지만 어디에도 쓸 수 없는 말이기도 하죠. 게다가 연금특위 내부에서는 이미 40만원까지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포퓰리즘’까지 언급하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연금특위의 임기는 이번달 말까지입니다. “연금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금특위 민간자문위가 지난달 말 구체적인 숫자가 빠진 연금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맹탕 보고서란 비판”(KBS NEWS 2023.4.15)까지 받은 것, 공청회에서 관련 논의들이 공회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 연금개혁안이 나올 수 있을까요? 연금특위와 정부가 서로 연금개혁이라는 중요한 사안을 서로 떠넘기고 있는 동안 연금 고갈의 위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적 연금에의 의존 등의 문제는 계속해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3년 10월까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KBS NEWS 2023.4.15). 연금특위의 별다른 성과 없이 10월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우리는 이번 정부가 내놓을 연금 운영계획에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부당하다고 여겨진다면 프랑스처럼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하게 될까요? 이번 프랑스의 연금개혁안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이 충격적인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조세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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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토론] '있지만 없는, 학교 내 인권 이야기'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조례가 있다는 것 아시나요? 바로 ‘학생인권 조례’인데요. 2010년 10월 5일, 경기도에서 지역 최초로 학생인권 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서울, 광주, 전북, 충남, 제주까지 총 6개 지역에서 조례가 제정되었는데요. 최근 이 조례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학생인권 조례가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에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일까요? 학생인권 조례가 제정된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학교 내 구성원들의 인권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현장에서는 "조례는 학생들의 인권을 무조건적으로 강조하고 있어 문제 발생 시 교사들이 아무런 제지나 훈육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권 침해, 다른 학생의 학습권 침해, 학생의 조례 악용 등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며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이 있습니다(충청신문). 또 정서적 아동학대의 기준이 모호하여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생활 지도를 할 수가 없다는 시선도 있습니다(MBC뉴스). 한 편,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인 학생의 인권 보장을 목적으로 제정된 학생인권 조례가 위기에 처했다며, 조례를 폐지하자는 움직임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는 입장도 있는데요(연합뉴스TV). '학교 내 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교육'에 대해 각기 다른 관점으로 첨예한 대립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캠페인즈). ? 학생인권 조례 13년차, 학생 인권의 현 주소 현재 한국의 특광역시도 17곳 중 학생인권 조례가 제정된 지역은 6곳입니다. 일각에서는 매우 적은 숫자라는 목소리가 있기도 합니다. 이에 학생인권 조례는 폐지가 아니라, 학생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학생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채움활동가이자 고등학생인 백호영님은 “조례가 제정된 지역에서도 학생인권 침해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고,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충청남도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학생인권 조례 폐지를 진행하려고 하는 상황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 ? 학생인권 VS 교권?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교사인권과 상충하는 것일까요?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전국시민행동 활동가이자 서울지역 고교 교사인 우돌님은 “학생인권과 교권이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교권’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이다. ‘권한’은 개인에게 부여된 것이라기 보다는 ‘공적인 기관’에 위임된 것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따라서, 교사 개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이라기 보다는 교육 공간에서 ‘공공적으로 주어지는 영역’이 교사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학교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그것이 교사에 의해 표현될 때 학생들은 자신의 인권을 존중하는 교사에게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교사의 교육활동이 권위를 갖기 위해서라도 학생인권이 존중받는 학교 문화 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교내 인권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교내의 다양한 인권 보장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이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요? ? 있지만 없는, 학교 내 인권 이야기에 대해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 공론장에서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로 신청해주세요! ✅ 신청 : bit.ly/parti_sc✅ 일시 : 2023년 04월 22일(토요일) 14:30~16:30✅ 장소 :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 지하1층 모이다, 다목적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1가 백범로99길 40)✅ 대상 :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더 알고 싶은 시민 누구나(선착순 30명)
자살위기 청(소)년들-'굳이' 살아야 할 이유의 습득 및 제공은 가능할까요?
-실제 자살 사망자가 사망 직전 인스타 라이브를 통해 시청자들과 나눈 대화 일부가 있습니다. 해당 내용에 트라우마가 있거나 내성이 약한 분은 주의해주세요.  원래는 다른 주제로 토론글을 쓰려다, 오늘 아침 지인을 통해 비참한 뉴스를 접한 뒤 착잡한 마음으로 급하게 글을 씁니다. 변명의 목적이 가미됐지만 급하게 쓰다보니 내용의 전문성은 좀 떨어질 겁니다. 미리 사과드립니다. -목차 1. 들어가는 글 2. 죽지'말아야 할' 이유와 '굳이' 살아야 할 이유 3. '삶에 대한 기대의 제공'의 가능성 4. 맺으며 1. 들어가는 글 "여러분 2시에 뛸게요. 2분 남았어요. (웃음). ... (중략) ... 여러분, 여러분은 꼭 꿈을 찾으시고, 꿈을 찾으세요. 그리고 꼭 꿈을 이루세요. 저처럼 병신처럼 살지 마시고, 인생 허비하지 마시고, 울갤(우울증갤러리) 접으시고, 어 잘 사셔야 해요.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카메라를 어따 설치하면 좋을까요. 어... 참 무섭네요.(웃음). 무서워요 솔직히. 여러분 그럼 가보겠습니다. 이따가 투신할 때 라방(라이브방송) 킬게요. 애들이랑 전화 좀 하다가. ...(중략)..."  이후 조금 더 담소를 나누다가 휴대폰을 고정하고 "간다?"라 말하고는 실제로 투신했다.  - 2023년 4월 16일 오후 2시 30분쯤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고층 건물 옥상에서 10대 여학생 A씨가 떨어져 숨졌습니다.  사망한 학생은 직접 인스타 라이브로 자살 시도 전 자신의 '인터넷 친구들'과 담소를 나눴고(이미 자살을 예고했습니다), 자신의 투신 영상을 인스타 라이브로 찍었습니다. 관련 영상은 빠르게 삭제되고 있는듯 보이지만 지금도 검색하면 충분히 시청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사망한 학생이 왜 자살을 단행했는지 그 사정을 추적, 고발하는 글 역시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그 사정과 관련해서도 물론 토론의 주제를 잡을 필요가 있지만, 오늘은 다른 주제로 토론글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2. 죽지'말아야 할' 이유와 '굳이' 살아야 할 이유  "아니 얘들아 솔직히, 이성적으로, 존나, 존나 감정 잡지 말고...나 죽어도 니네한테 피해 좆도 없잖아?" 여러분은 만약 힘들어 하고 있는 주변인이 저렇게 주장한다면 뭐라고 반박하실 건가요? A)종교가 있으신 분은 신을 얘기할 것이고, B)가족 또는 친구를 생각하라고 얘기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권고되지 않지만 C)"나도 힘들다-"거나, D)"죽을 용기로 아득바득 살아라-"라고 얘기하실 수도 있고요. 또는 E)죽음을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위로, 해소해주고자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F)그분의 손을 잡고 병원이나 상담소로 뛰어가 우울증의 치료를 도울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위 모든 시도는 그 사람에게 있어 결국 '나를 죽지 못하게 하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만약 A~F 중 어떤 과정을 통해 당장 그분이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더라도, 그분에게 있어서 여러분 '덕분에 안' 죽었다-가 될 수도 있지만, 여러분 '때문에 못' 죽었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살위기 청(소)년의 입장에서는 자살로 증명(또는 목격)되는 '우리 사회의 실패'를 예방하고자, 또는 그런 '불완전'을 목격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들'의 이기심의 시도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내가 살든 죽었든 아무 상관도 없으면서 그저 가식적인 말들을 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구하지 말라-를 얘기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당연히 아닙니다.  하지만 주변인이 저렇게 주장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죽지말아야 할 이유(don't)는 얘기할 수 있어도, '죽고싶은 그가 그럼에도 굳이 살아야 할 이유(won't)'는 얘기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설령 얘기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것을 그 사람이 채택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1) 외부로부터의 위험, 예컨대 폭행이나 성폭행, 학교폭력, 경제적 좌절 등에 의해 자살을 감행하는 사람과, 2) 더 이상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유인을 느끼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은 조금 다릅니다. 1)은 외부로부터의 위험에 의해 벼랑끝까지 내몰리고 내몰리다가 끝끝내, 또는 도피하듯 죽음을 저지릅니다. 이들은 현재의 상태가, 또는 그가 바라보는 미래가 괴롭고 힘들고 수치스러워서 차라리 죽음을 저지릅니다. 이 사람들은 사회가(우리가) 도울 수 있었는데도 도와주지 못해 '놓친'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살의 예방법으로는 사회안전망 따위의 제도를 발전시키고,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것과 가해자를 처벌하는 정도와 밀도를 강화하고,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는 태도를 체화하는 노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는 다릅니다. 이들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살 '수 없는' 이유가 아닙니다. "가뜩이나 살기 힘든 세상,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득바득 일해서 살아내고자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몸이고 내 권리, 나는 그냥 죽으련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입니다. 우울증 치료를 권하는 걸 '나를 기어코 못 죽게 하려는 시도'로 읽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2)의 사람들도 처음부터 죽고 싶어하는 유전자를 강하게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테고, 그러므로 2)의 상태에 놓이는 걸 막는 방법들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들은 이미 시도 또는 노력되고 있고, 대개 사후적인 조치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2)의 상태에 놓이는 사람들은 분명히 앞으로도 발생하고, 그때에 그들에겐 사후적인 조치는 대부분 '헛소리' 내지 '간섭'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나를 삶에 묶어두려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사람들, 삶에 질린 사람들, 주변의 "삶에 남으라-"는 호소를 '팩트'로 비웃는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기대를 제공하는 방법이란 게 과연 가능할까요? 이 질문이 이번 토론글의 핵심입니다.  3. '삶에 대한 기대의 제공'의 가능성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ㄱ) 교육입니다. 우리나라는 의무교육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사람의 목숨이 가지는 숭고함'이라던가, '나의 죽음이 타인에게 끼치는 악영향'  또는 '삶의 철학'따위를 교육하는 겁니다. 이른바 가치관의 확립을 도모하자는 건데, 저는 이 방법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우선 '삶에 대한 기대'라는 가치를 국가가 교육이라는 제도로 획일적으로 주입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삶에 대한 가치'라는 건 개인이 생애를 살아가면서 스스로 주조해내거나 다른 곳으로부터 채택하는 거지 교육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종교를 가짐으로써 삶에 대한 어떤 사명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ㄴ) 주변인들과 또는 혼자서 사회에 놓여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향유하며 '재미'를 느끼기 위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ㄴ)의 콘텐츠들은 화폐 등을 교환해 소비할 수 있고, 화폐 등을 얻기 위해 탄생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그런 콘텐츠 개발을 나라나 지방정부가 지원하고, 그런 콘텐츠로의 접근과 소비를 진작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 탈상품화 정도를 높이고 가처분소득을 늘리거나 바우처의 형태로 소비를 지원해야겠죠. 기본소득이나 참여소득을 지지하는 몇몇 주장이 이런 내용을 담고있죠.  ㄷ) 보다 끈끈하고 정다운 공동체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소외나 고립 따위의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개인들을 더 자주 사회에 노출되거나 나오도록 기획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로 몇몇 조례들이 제정되고 있죠. 광주를 선두로 다양한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가 설립되는 건 이런 시도의 한 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https://gjtory.kr/).  ㄹ) 자기 삶에서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않아 '무료한' 또는 '부끄러운' 사람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무런 직업도 없는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에게 주민자치경비의 형태로 역할을 수행시킨 결과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소논문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논문 제목이 기억나지 않네요...). 어떻게보면 ㄴ)과 ㄹ)은 같은 갈래로 묶일 수도 있겠네요. 애초 ㄴ)의 콘텐츠에는 시장이나 공공에서 공급되는 '물건'이나 '서비스'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과 창출해내는 '경험'일 수도 있으니까요. 여기서 자신이 아무런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 게 '부끄러운' 이유는 사회가 '생산적 인간'을 강조하고 '잉여인간'은 멸시하는 구조가 작용하는 것이니 ㅁ) '생산적 인간'을 강조하는 흐름에 대한 비판 및 개혁도 간접적이나마 삶에 대한 기대의 제공을 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더 떠오르는 방법이 없습니다.  위 방법들 중 ㄷ)ㄹ)은 '인터넷'의 존재가 있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개인은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자기 방 안에서 인터넷을 통해 다른 이들과 교류할 수 있습니다. 교류를 발전시켜 실제 친구들을 만들 수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터넷을 통한 친구관계는 A) 범죄 따위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고, B) '많지만 느슨한' 관계에 머물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많지만 느슨한 관계의 인간관계는 인간관계의 허무함을 부를 수 있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4. 맺으며 사실 '삶에 대한 기대의 제공'을 얘기했지만 그 기대는 개인이 스스로 살아가면서 주조하거나 채택하는 꿈입니다. 이 '꿈'은 개인이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의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꿈의 기획에 제약이 걸릴 겁니다. 가) 자본주의 사회냐 공산주의 사회냐 사회주의 사회냐, 나) 남자냐 여자냐 성소수자냐, 다)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 라) 부자냐 빈곤층이냐, 마) 가족이나 주변 지역사회의 구성과 성질은 어떠하냐 등등. 저는 여기서 가)와 라)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각자의 꿈을 기획하며 살아가고 있을텐데,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획할 수 있는 꿈의 성취는 '자본' 또는 '노동'이라는 틀, 도구, 경로를 반드시 필요로 할 겁니다. 비유하자면 그 어떤 요리사라도 식재료 없이 자신만의 요리를 기획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옹호하면 옹호했지, 그 스스로의 붕괴를 초래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평등을 옹호하는 체제는 아니죠(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불평등을 옹호하는 체제 속에서 개인들이 그 체제의 제약을 뛰어넘는 꿈을 기획하는 게 가능할까요? (가능해야 할까요?). 이 문제도 더 고민해 보고 싶지만, 저는 아는 게 거의 없어 이만 여기서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의견 주시면 더더욱 감사드립니다.  (일부 내용이 누락되어 2023.04.24.월요일에 추가했습니다. 2번 목차에 원래는 사망한 학생의 말이 있었으나, 현재 영상을 찾을 수도 없고 내용도 기억나지 않아 유사한 문장을 따로 썼습니다).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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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교육과정에서 대학준비학교의 분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학이 주도하는 이상한 나라의 대입개편  교육부는 2023년 상반기까지 대입제도 개편안 시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부터 올해 2월까지 네 차례에 걸친 <2028 대입개편 전문가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앞의 세 차례의 토론회 뿐만 아니라 ‘미래형 대입전형과 수능의 개편 방향’이라는 주제로 논의한  제4차 토론회의 5명의 발표자 중 단 1명만이 현직 고교교사였고, 나머지는 대학교수 및 대학 입학 관계자들이었습니다.  제4차 2028 대입개편 전문가 토론회 포스터, 교육부 우리나라 교육계의 가장 큰 화두이며 우리 아이들을 입시 지옥으로 몰아 가고 있는 대입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그 제도로 인해 가장 많은 고통을 받고 있고, 그 변화를 가장 크게 실감하는 고교 교사와 학생들과 학부모의 의견보다는 대학 입학 처장의 목소리가 더 많은 대입개편 토론회의 모습이 과연 정상적인 걸까요? 대학의 신입생 선발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중등교육을 받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고등교육으로 잘 진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대입제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입제도로 인해 파행이 자행되는 고교과정  대입제도 개편을 대학의 입장이 아닌 중등교육 현장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하여 2014년 9월 12일부터 ‘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약칭 ‘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법은 학교교육의 파행을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 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법제화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법이 가장 지켜지지 않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고3 교실입니다.  사진: Unsplash의 Alex Simpson 고3 2학기에 수시와 수능을 준비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모든 교육과정은 고3 1학기나 그보다 더해 고2까지 끝내고 시험일이 임박해서는 주로 실전 문제 풀이 수업에 집중 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파행적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밖에 없습니다. 3년을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을 2년 반으로, 짧으면 2년 안에 다 끝내야 하기에 제대로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고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교육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철저하게 대학입시에 맞춰져서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급기야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수업을 진행하기는커녕 등교를 하지 않아 교실에는 10명 남짓 아이들만 앉아 있기도 하고, 다들 엎드려 자거나 유튜브만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학생들은 이미 수능을 본 뒤라 수업 자체를 들을 마음이 없기에 수능 이후의 학사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0대의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낭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이러한 심각한 대입제도 문제의 대안 하나를 영국의 대입 제도로부터 가져와 보고자 합니다.  대학입시교육이 완전히 분리된 영국의 교육과정 영국의 학제는 1~11학년까지 초·중등 교육과정이 있고, 그 이후에 대학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12~13학년의 대학준비학교인 Sixth Form College 과정이 있습니다. 11학년까지는 대학입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교육과정이 진행됩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다양한 과목들을 배우면서 경쟁없이 즐겁게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11학년에 올라오면 GCSE(General Certification of Secondary Education: 중등교육자격시험)을 보는데 이 시험은 학문의 기초이론보다는 ICT나 사회교육 등 실제 사회적응에 필요한 실용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하고 있으며 여러번의 시험 기회를 주고, 졸업 이후에도 다시 시험을 칠 수도 있습니다.  성적은 등급으로 발표되며, 등급은 A+부터 G등급까지 나누어지는데 여기서 국어와 수학이 C등급 이상만 받으면 취직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국어와 수학만 C이상이면 대학 입시를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GCSE의 등급이 우리나라의 내신처럼 대학입시에 반영되지도 않습니다.  사진: Unsplash의 Marcin Nowak 중등학교 수료를 한 후에 16세 이상의 학생이 대학 입학을 위한  A-level 시험에 필요한 소수 과목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코스가 바로 Sixth Form College인 대학준비학교입니다.  A-level은 일반적으로는 3~4개의 희망 대학 전공과 관련한 과목을 고르는데 어떤 대학은 1과목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선택한 과목을 2년동안 여러 번의 시험을 쳐서 합산을 하는데 각 시험은 반복 응시가 가능합니다. 최대 4과목을을 선택할 수 있는데 그 중 1과목이 너무 어려우면 나중에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국어, 수학, 생물 외에 경제학, 사진학, 법학, 심리학, 사회학, 의상디자인, 요리, 컴퓨터, 비즈니스, 음악, 제2외국어, 디자인 테크놀로지, 연극/드라마, 체육 등 다양한 선택 과목이 있습니다.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의 학과에서 요구하는 과목 1~2개를, 그리고 나머지 과목은 자신이 원하는 과목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치대학을 가려는 학생들이 생물학, 화학 등의 관련 과목을 공부하고 나머지 과목은 심리학과 같은 과목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경제학과에 지원자는 학생들은 경제학이나 수학을 공부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법대나 인문학과는 필수로 요구하는 과목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수험생이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으로 모두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능 시험에 나오는 국·영·수, 사탐/과탐, 한국사, 제2외국어/한문을 어쩔 수 없이 모두 공부해야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 비해 영국 학생들은 3~4개의 소수 과목만 집중적으로 2년동안 여러번의 시험을 치며 공부하기에 학생들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고, 또한 대학의 학과 공부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목을 필수적으로 배워와서 고등교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공교육 정상화가 실현되길.. 이렇게 중등교육과정에서 대학준비학교를 분리하게 되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단지 대학 진학만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해서 파행적으로 이루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공교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여 고등학교 과정에서 진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대학 전공 공부를 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소수의 과목만 공부하여 학생들의 시험 부담을 덜어 줄 뿐 아니라 대학 전공과목의 전문성도 향상 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  - 영국 교육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은영저  - 한국인 영국교사가 말하는 진짜 영국 교육 이야기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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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담론 세미나(1) - 정책설계 관점으로 정의하는 청년
안녕하세요? 시민36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청년’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청년도 있고 아닌 분도 있을 텐데요. 저는 많은 청년들과 함께 활동하는 현장에 있다 보니 청년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가끔 저에게 ‘요즘 청년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저도 궁금 하더라구요. 먹고사는 게 분명 어렵긴 한데,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들여다볼 엄두가 안 났습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 혼란을 헤쳐보자는 의지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청년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함께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청년을 찾았나 지난 2022년 대선 즈음부터인가요. 어느 순간부터 청년 정치, 청년 정책, 청년 고용, 청년 불안 등 대부분의 사회문제 앞에 ‘청년’이 붙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청년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공정’ 이었는데요 (요즈음의 청년 키워드는 ‘불안과 고립’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 사회가 드디어  이런 문제가 더 이상 청년 개인의 것이 아님을 깨달은 거 같습니다. ‘노력을 더 많이 하라’는 낡은 언어로는 청년세대를 어르고 달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걸까요. 청년세대의 불안과 불평등이 점점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청년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과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2022년 대선 선거 시기에 맞춰 본격적으로 청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본격적으로 2022년 대선 공방에서 거대 정당들은 각자 청년정치인들을 영입하고, 정확히 정 반대의 전략으로 전쟁을 치뤘지요. 이 대결 구도에 많은 담론과 가치가 희생됐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희생은 ‘젠더와 불평등문제의 본질’ 입니다. 이대남, 이대녀 프레임으로 ‘젠더 폭력’은 ‘젠더 갈등’이 되었고, 인권을 바라보는 관점과 불평등 문제는 ‘공정과 상식’이라는 거대하고도 공허한 외침에 휩쓸렸습니다. 대선시기에  기성 정치인들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활약했던 청년 정치인들이 대선이후 정치권에서 배제되고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이자리에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청년’ 정의하기 서두가 길었지만 요지는, 청년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만큼 정치권에서 청년문제 해결을 위해 이런저런 전략 보고서들을 발표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22년 경제인문사회연구소에서 청년정책의새로운 패러다임과 전략과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관 ‘청년정책의 패러다임과 전략과제 연구. 2022) 청년의 정의, 청년정책 평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 등을 제안하는 보고서인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나누고 싶어서 이번 글을 준비해 봤습니다. 우선 청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청년을 네 가지 유형으로 정의합니다. 사전적 정의, 사회과학적 정의, 법적 정의, 그리고 청년의 사회경제적 의미입니다.  사전적 정의는 말 그대로 청년의 국어사전 풀이입니다. 한자 그대로 ‘젊은 나이’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청년이라는 용어가 쓰인 것은 1898년 도쿄 유학생 잡지입니다. 1989년 ‘청년애국회’ 사건 이후에 청년 용어가 회자되기 시작했고 1903년 YMCA(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강준만, 2008년) 1920년부터 문화운동의 주역으로 청년을 부각시키는 언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청년은 ‘새로움’, ‘신문명 건설’의 이미지로 유통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기성세대와 그들의 가치관과의 단절이 청년 정의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는 점에서 청년은 연령적 정의가 아닌 사회적 맥락에서 정의해야 한다는 함의를 갖습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시작된 문화적, 역사적 차원이 아닌 사회과학적 차원으로 청년을 정의하는 흐름은 서구에서 시작됩니다. 이는 청년을 성인으로의 이행(transition to adulthood) 과정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즉 청년은 ‘이행의 과정 속에서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닭으로 비유하자면 병아리와 닭 그 사이. 푸르스름한 털갈이하는 어중간한 닭으로 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어떤 지점에서 어딘가로 ‘이행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독립’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로부터 경제적, 물리적 자립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 관점으로 청년을 생각한다면 청년의 연령이 유동적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청년의 독립/자립이 늦어지고 있는 시기니까요. 법적 정의로서의 청년은 심플합니다. 2020년에 시행된 청년기본법에 따르면, 청년은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입니다. 정책을 적용할 때 연령에 따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등 분명한 기준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가장 간편한 연령에 따른 법적 정의를 채택하지요. (국가법령정보센터 청년기본법) 그러나 이렇게 연령에 따른 일괄적인 청년 정의는 다양한 청년의 삶과 모습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했듯, 청년 이행과정이 늘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독립 준비가 안됐는데 35세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청년정책을 적용받지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지요.  청년의 사회경제적 의미로서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 결이 있습니다. 생산과 소비 주체, 혁신의 주체, 부양의 주체, 정치적 효용의 주체, 인구학적 효용의 주체입니다. 사회·경제·정치 측면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서 소비·생산, 인구부양, 정치혁신 등 다양한 역할의  주체로서 청년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니 어쩐지 어깨가 무겁네요.)  보고서에서 정의하는 청년 외에도 마케팅적 관점으로의 청년이 있습니다. 바로 ‘MZ’인데요. 어쩌면 ‘청년’보다 더 익숙한 ‘MZ’라는 호칭은 청년층을 타게팅한, 콘텐츠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마케팅 전략입니다. 이 호칭이 청년을 호명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부정적이고 우스꽝스러운 면을 극대화하여 청년 전체에게 덧씌우는 방법으로 결국 ‘자기주장이 (말도 안되게) 강하고, 힘든 일은 맡지 않으려는’ 이미지로 굳힌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행하는 청년, 표류하는 청년정책 다양한 청년의 정의를 이해하고 나니 저 스스로를 다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청년입니다.) ‘나는 이행기를 거치고 있는 병아리와 닭 사이의 존재구나.’ 이러한 자기 정의로 스스로의 위치와 배경을 이해하고 나니 새로운 의문이 들었습니다. 생애 주기의 궤적 속, 어딘가로 이행하고 있는 청년이여. 우리는 ‘어디로’ 이행하는 중인가요? 청년의 이행은 주로 부모로부터의 물리적,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노동하는 삶으로의 입문이 됩니다.  또 사회에서 중요하게 부여하는 가치 중 하나는 ‘결혼과 출산’이지요. 그렇기에 청년 정책에는 주거, 일자리, 그 다음으로 결혼장려 정책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청년정책중 ‘출산장려정책’ 만큼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이 자리에서 다 이야기할 순 없으니 앞으로 차근차근 풀어보겠습니다.  이미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 시피, 청년 이후의 삶의 모습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청년정책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입니다. 보고서에서는 전반적으로 청년의 이행기에 필요한 물적, 경제적 지원 정책을 강조합니다. 실효성있는 지원을 위해 이행기에 나타나는 청년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파악하고 그변화하는 모습에 빠르게 정책 지원을 맞추는 것이 핵심임을 역설합니다.  이 외에도 청년의 다양한 삶의 반영하기 위해 각종 간담회, 연구, 토론회 등의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저는 해당 연구 보고서들을 부지런히 팔로우 할 예정이랍니다. 이놈의 청년 정책 담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같이 지켜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다음 글을 준비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글의 주제는 ‘갓생이란 무엇인가’ 입니다.  *이 글은 청년활동가들과 진행하는 세미나에 활용하는 ‘발제문’에 내용을 추가한 글입니다.  *청년 담론 세미나를 진행하는 시기동안 릴레이 형식으로 원고를 개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