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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4일 프랑스의 헌법위원회는 마크롱 대통령과 여당을 중심으로 내놓은 연금개혁법에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연금개혁법을 두고 프랑스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는데요. 시위는 전국적 규모로 일어났고 추산 100만 명을 훨씬 웃도는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극좌/극우 야당은 모두 연금개혁법에 회의적이고, 특히 노동조합을 비롯한 노동계에서는 이에 전면 반대하면서 총파업을 하기도 했죠.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프랑스 시민들은 연금개혁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총파업과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부터 연금개혁을 주장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이후로 개혁안이 보류 상태에 있다가(당시에는 연금수령 연령이 65세였다), 64세로 수정하여 새로운 개혁안을 내놓았고 이것이 올해에 들어서야 합헌이 된 것이죠. 말씀드렸듯 개혁안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정년을 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것입니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노동을 시작하는 저숙련 노동자와 저소득층에게 연금 개혁안이 차별적”이라고 비판하고 있고(한겨레 2023.1.12), 외려 “연금체계는 위험한 상황에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연금개혁법을 강행하려고 한다며 마크롱을 로랑 베르제 노동민주동맹(CFDT) 사무총장 역시도 반발했습니다(한겨레 2023.1.12).
프랑스 연금개혁안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1) 9월부터 프랑스 시민들은 2030년 64살이 되는 해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고, 2) 연금을 모두 받기 위해 (노동시간을 통해) 기여해야 하는 기간이 1년 연장되며(기존 42년에서 43년으로), 이 시점은 기존 2035년에서 2027년으로 앞당겨집니다(연합뉴스 2023.1.11) 3) 최소 연금수급액은 월 최저임금의 85% 수준까지 인상됩니다(한겨레 2023.1.12). 이 개혁안의 목적은 저출생 고령화사회에서 연금적자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는 “연금제도를 바꾸는 것이 국민을 두렵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연금] 적자가 늘어나도록 놔두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강조하면서 “지금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대규모 증세, 연금 수령액의 감소로 이어져 우리의 연금제도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연합뉴스 2023.1.11).
기사의 날짜를 확인하시면 아실 수 있듯이, 시위는 지난 3개월 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12차의 전국 시위, 교통/에너지산업/학교 등은 노조의 파업으로 마비되기도 했죠(한국경제TV 2023.4.15). 프랑스의 노동총동맹(CGT)이 5월 1일 노동절에도 시위를 벌이겠다고 경고하면서, 이번 프랑스의 연금개혁법은 오랫동안 국제적인 이슈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대선,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사퇴하기 전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내놓았던 것이 바로 연금개혁이었죠. 당선 이후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로 연금개혁의 시급함에 대해 역설한 바가 있는데요. “대한민국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한국경제TV 2023.4.15), 연금개혁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더퍼블릭 2023.1.15).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연금 고갈에 대한 위기의식은 만연해 있습니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2039년 국민연금은 적자 전환, 2055년엔 고갈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아주경제 2022.1.25). 하지만 국회 연금특위 소속 민간자문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출범했음에도 위원 간 합의를 보지 못하면서 연금개혁안의 초안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한국경제TV 2023.4.15). 연금특위의 임기는 4월 말까지라 더욱 더 우려가 커지고 있어요(KBS NEWS 2023. 4. 15).
2018년에는 문재인 정부가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동시 인상을 추진했지만 경영계의 반대와 의지 결여로 실패한 바가 있다고 해요(오마이뉴스 2023.4.12). (*소득대체율이란? 연금가입기간의 평균 소득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금액 대비 연금지급액이자, 연금액이 개인의 생애평균소득의 몇 퍼센트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비율. [월연금 수령액/연금 가입 기간의 월평균 소득]의 공식이 적용되며, 소득대체율이 50%이면 연금액이 연금 가입기간 평균 소득의 절반 정도가 된다는 의미. 일반적으로 안락한 노후보장을 위한 소득대체율은 60~75%로 알려져 있고, 2018년 10월 기준 국민연금은 현재 소득의 9%를 납부하고 2028년 이후부터 소득대체율 40%를 보장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혹시 지금까지 한국의 연금제도를 간략하게 살펴보시면서 현재 당면한 문제를 찾아내셨나요? 2007년 이루어진 2차 연금개혁은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췄습니다(2008년에 시작하여 2009년부터 매년 0.5%p씩 낮아지고 있고, 2028년에 40%가 됩니다(오마이뉴스 2023.4.12)). 게다가 한국에서 노동자로서의 정년은 60세, 연금 수급 연령은 65세로 5년의 공백이 존재하기 때문에 연금수급연령을 높이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고, 이 상황에서 정부로서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안은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지만 정부에 대한 지지율, 여당의 총선 결과 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것이겠죠. 결국 해결책 중 일부는 2차 연금’개악’으로 인해 40%까지 추락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데 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매달 최대 32만원의 기초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KBS NEWS 2023.4.15). 이를 40만원까지 인상하자는 것을 윤석열 정부가 공약으로 내놓기도 했는데요. 이것도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기초연금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한국의 정년이 60세인데 65세의 소득 수준을 기준으로 기초연금을 준다는 사실은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년 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65세는 노동을 할 수 없는 연령대라고 간주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시기의 소득 수준이 기준이 된다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이는 한국의 연금체계의 약한 고리를 제대로 드러내 주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합니다.
4월 12일 연금특위 공청회에서는 “기초연금이 하위계층에 더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김수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 김 교수는 “기초연금 급여 인상은 연금개혁과 패키지로 이뤄질 필요가 있으며, 기초연금의 다른 개선사항들과 함께 검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해 노후 소득 보장을 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KBS NEWS 2023.4.15). 언뜻 보면 틀린 말도 아니거니와 나름 좋은 제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일괄적인 인상보다는 상대적 빈곤 차이를 줄이기 위해” 라는 애매한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상대적’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쓸 수 있지만 어디에도 쓸 수 없는 말이기도 하죠. 게다가 연금특위 내부에서는 이미 40만원까지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 ‘포퓰리즘’까지 언급하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연금특위의 임기는 이번달 말까지입니다. “연금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금특위 민간자문위가 지난달 말 구체적인 숫자가 빠진 연금 개혁안을 내놓으면서 맹탕 보고서란 비판”(KBS NEWS 2023.4.15)까지 받은 것, 공청회에서 관련 논의들이 공회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 연금개혁안이 나올 수 있을까요? 연금특위와 정부가 서로 연금개혁이라는 중요한 사안을 서로 떠넘기고 있는 동안 연금 고갈의 위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적 연금에의 의존 등의 문제는 계속해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2023년 10월까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KBS NEWS 2023.4.15). 연금특위의 별다른 성과 없이 10월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우리는 이번 정부가 내놓을 연금 운영계획에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부당하다고 여겨진다면 프랑스처럼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하게 될까요? 이번 프랑스의 연금개혁안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이 충격적인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코멘트
7연금이야기는 과연 그 답이 있을 수 있을까요..그것과 함께 맞물려있는 인구절벽, 경제불황...어떤것부터 손을대야 해결책이 보일까요
뜨거웠던(여름이 되고 최저임금 결정 시기가 가까워지면 다시 뜨거워질?) 최저임금 논쟁만큼 공적연금도 그렇게 전국민적으로 회자되고 논의되면 어떨까요. 참조된 기사처럼, 그리고 지인들과 현실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내봤자 연금 별로 받지도 못하는데 왜 지금 돈을 내야 돼?' 에서 끝나는 것보다는 여기저기서 여러 정보를 보았고 할말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최저임금 논의가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심한 갈등으로 어려워지긴 했지만,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고 아무런 논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공론장이 시끌시끌 해본 것과 그냥 아는 사람들만 알면서 소리소문 없이 망해가는 논의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읽고 한국에서 시위의 방법은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고민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또 재밌게 봤던, 프랑스 영화 '폴레트의 수상한 베이커리'가 떠올랐어요. 애국보수(?) 츤데레 할머니의 마약판매상 데뷔 일대기(?)가 주제입니다. 연금과 기타 프랑스의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보여주고 있어서 '인간적인 삶이 가능하지 않은, 육체에 숨만 붙이게 도와주는 연금'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연금 이야기를 볼 때 마다 머리가 굉장히 아픕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너무 감이 안 오더라구요. 전문가들의 말을 찾아보면 더 머리가 아프구요... 그래서 논의가 진행되지 않은 것인가 싶기도 하네요... 저도 논의를 진행하기 어려워해서요?
프랑스의 뉴스를 보면서 (물론 시민들의 입장에 더 공감이 가긴 하지만) 양측의 주장이 나름대로 명확한 근거가 있달까요,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연금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방만하게 운용을 한 결과도 꽤 크고, 정부는 정권에 상관 없이 아무 책임을 안 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정답은 더 많이 내야하는 것 뿐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이 문제가 진행될지, 또 '너희들이 늙으면 못받아요' 같은 수준에서만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인구위기' 문제와 결부되어 더 어려운 것 같네요. 어떤 방안이 옳은가?도 중요하지만 프랑스처럼 변화의 시도와 시민적 참여의 교차 속에서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갈 수 있는 일들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급한데.. 진척은 없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함께 논의하고 더 나은 방안을 위한 실천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연금개혁과 관련된 논의들을 들여다보면 결국 더 많이 내는 것 외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이 내야하는 이유를 탄탄하게 정리하고,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들을 설득하는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데요. '더 많이 내야한다고 하면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을까?'와 같은 정치적 유불리 문제로 접근하다보니 글에서 표현한 것처럼 '연금개악'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폭탄 돌리기 하면서 '내가 집권하는 5년만 터지지 말아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프랑스의 사례를 '극단적이다', '폭력적이다'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요즘 한국을 보면 프랑스만큼 시끄러워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꼭 프랑스와 같은 방식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연금개혁 등 다양한 의제를 두고 시끌벅적한 민주주의 활동이 자주 나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