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주도하는 이상한 나라의 대입개편
교육부는 2023년 상반기까지 대입제도 개편안 시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부터 올해 2월까지 네 차례에 걸친 <2028 대입개편 전문가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앞의 세 차례의 토론회 뿐만 아니라 ‘미래형 대입전형과 수능의 개편 방향’이라는 주제로 논의한 제4차 토론회의 5명의 발표자 중 단 1명만이 현직 고교교사였고, 나머지는 대학교수 및 대학 입학 관계자들이었습니다.
제4차 2028 대입개편 전문가 토론회 포스터, 교육부
우리나라 교육계의 가장 큰 화두이며 우리 아이들을 입시 지옥으로 몰아 가고 있는 대입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그 제도로 인해 가장 많은 고통을 받고 있고, 그 변화를 가장 크게 실감하는 고교 교사와 학생들과 학부모의 의견보다는 대학 입학 처장의 목소리가 더 많은 대입개편 토론회의 모습이 과연 정상적인 걸까요? 대학의 신입생 선발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중등교육을 받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고등교육으로 잘 진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대입제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입제도로 인해 파행이 자행되는 고교과정
대입제도 개편을 대학의 입장이 아닌 중등교육 현장의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하여 2014년 9월 12일부터 ‘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약칭 ‘공교육정상화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법은 학교교육의 파행을 막고 공교육을 정상화 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법제화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법이 가장 지켜지지 않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고3 교실입니다.
고3 2학기에 수시와 수능을 준비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모든 교육과정은 고3 1학기나 그보다 더해 고2까지 끝내고 시험일이 임박해서는 주로 실전 문제 풀이 수업에 집중 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파행적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밖에 없습니다. 3년을 배워야 하는 교육과정을 2년 반으로, 짧으면 2년 안에 다 끝내야 하기에 제대로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고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교육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철저하게 대학입시에 맞춰져서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급기야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수업을 진행하기는커녕 등교를 하지 않아 교실에는 10명 남짓 아이들만 앉아 있기도 하고, 다들 엎드려 자거나 유튜브만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학생들은 이미 수능을 본 뒤라 수업 자체를 들을 마음이 없기에 수능 이후의 학사운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0대의 우리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낭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이러한 심각한 대입제도 문제의 대안 하나를 영국의 대입 제도로부터 가져와 보고자 합니다.
대학입시교육이 완전히 분리된 영국의 교육과정
영국의 학제는 1~11학년까지 초·중등 교육과정이 있고, 그 이후에 대학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한 12~13학년의 대학준비학교인 Sixth Form College 과정이 있습니다. 11학년까지는 대학입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교육과정이 진행됩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다양한 과목들을 배우면서 경쟁없이 즐겁게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11학년에 올라오면 GCSE(General Certification of Secondary Education: 중등교육자격시험)을 보는데 이 시험은 학문의 기초이론보다는 ICT나 사회교육 등 실제 사회적응에 필요한 실용적인 측면을 보다 강조하고 있으며 여러번의 시험 기회를 주고, 졸업 이후에도 다시 시험을 칠 수도 있습니다. 성적은 등급으로 발표되며, 등급은 A+부터 G등급까지 나누어지는데 여기서 국어와 수학이 C등급 이상만 받으면 취직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고, 국어와 수학만 C이상이면 대학 입시를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GCSE의 등급이 우리나라의 내신처럼 대학입시에 반영되지도 않습니다.
중등학교 수료를 한 후에 16세 이상의 학생이 대학 입학을 위한 A-level 시험에 필요한 소수 과목을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코스가 바로 Sixth Form College인 대학준비학교입니다. A-level은 일반적으로는 3~4개의 희망 대학 전공과 관련한 과목을 고르는데 어떤 대학은 1과목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선택한 과목을 2년동안 여러 번의 시험을 쳐서 합산을 하는데 각 시험은 반복 응시가 가능합니다. 최대 4과목을을 선택할 수 있는데 그 중 1과목이 너무 어려우면 나중에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국어, 수학, 생물 외에 경제학, 사진학, 법학, 심리학, 사회학, 의상디자인, 요리, 컴퓨터, 비즈니스, 음악, 제2외국어, 디자인 테크놀로지, 연극/드라마, 체육 등 다양한 선택 과목이 있습니다.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의 학과에서 요구하는 과목 1~2개를, 그리고 나머지 과목은 자신이 원하는 과목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치대학을 가려는 학생들이 생물학, 화학 등의 관련 과목을 공부하고 나머지 과목은 심리학과 같은 과목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경제학과에 지원자는 학생들은 경제학이나 수학을 공부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법대나 인문학과는 필수로 요구하는 과목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수험생이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으로 모두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능 시험에 나오는 국·영·수, 사탐/과탐, 한국사, 제2외국어/한문을 어쩔 수 없이 모두 공부해야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 비해 영국 학생들은 3~4개의 소수 과목만 집중적으로 2년동안 여러번의 시험을 치며 공부하기에 학생들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고, 또한 대학의 학과 공부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목을 필수적으로 배워와서 고등교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공교육 정상화가 실현되길..
이렇게 중등교육과정에서 대학준비학교를 분리하게 되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단지 대학 진학만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해서 파행적으로 이루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공교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여 고등학교 과정에서 진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대학 전공 공부를 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소수의 과목만 공부하여 학생들의 시험 부담을 덜어 줄 뿐 아니라 대학 전공과목의 전문성도 향상 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
코멘트
16대학의 서열화와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된 교육현장이 과연 조금씩 바꾼다고 그 뿌리가 바뀔 수 있는것인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미안합니다.
영국 사례를 보니,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폭이 넓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보여요. 우리나라의 입시를 목표로 한 교육의 경우 문제풀이를 위한 공부이거나, 스펙 만들기를 위한 활동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깊이있는 성찰 자체를 할 여유와 시각이 길러지기 힘든데, 비교해보니 더욱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안타깝네요. 긴장과 경쟁 속에서 자신을 갈고 닦아야만 하는, 내몰려있는 아이들.. 성인이 된 후에도 그 흐름은 변치 않죠. ㅜㅜ 제발 말뿐이 교육 개혁이 아니라, 입시 자체를 뒤흔들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과정 따위를 고쳐 다시 엮는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 개편이라고 네이버가 알려주더군요. 정시 100%, 정시 50% 수시 50%, 입학사정관제, 논술 등 평가 방식이 달라져 왔지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는 큰 틀이 개편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변하기만 했습니다. 전문가 포럼 대입 개편은 글쎄요.. 그냥 대학 입학을 위한 어떠한 개편일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많이 참여했어야 할 텐데 말이죠.
중고등학교 시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지한 고민이나 체험을 할 기회가 없이 무조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먼저라고 몰아가던 교육체제가 생각납니다. 정책을 결정할때는 정책에 영향을 받는 당사자 모두가 참여해야합니다. 전문가중심의 토론은 문제가 있어보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입니다
입시로 인해 파행 될수밖에 없는
우리의 교육제도를
돌아보고 대안까지 제시하였는데~
입시에 대한 내용없이 필요한 공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많은 청소년문제도 해결되리라
여겨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학부모들의 사고가 바뀌는 시점이 올때 이러한 정책이 가능해질것 같습니다. 여전히 대학에 안들어가면 큰일이나는줄 아는 세대가 아직 건재해요.
이러한 교육제도의 필요성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아직 현실화 되기가 쉽지 않네요. 영국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사례도 알려지면 더 좋을거 같네요.
진정한 공교육이 이뤄지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입시를 위한 공교육으로 자리잡힌 현실은 어쩔수없지만, 정부까지도 그 흐름대로 교육정책을 펼친다면 똑같은 학생을 찍어내는 공장식 교육이 계속 되리라 여겨집니다. 좋은 관점과 제안 감사드립니다.
대학준비학교라.. 또 새로운 관점(제도)이네요. 인상적입니다..!
정말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대학에 진행해서 전문 교육을 받는 방식이 될 수 있겠다 싶네요?
한국에서 분리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는데... 입시준비만 성행하고.. 공교육은 무너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드는 건 제가 너무 비관적이어서이려나요? ㅠㅠ
하지만 문제의식에는 공감합니다. 실제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 함께 이야기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사례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사례에서 입시와 교육을 분리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나라에 적용한다면 그 기간을 조금 더 길게 해야하나 싶기도 하구요. 실험적으로 시도해볼만한 것 같습니다.
흥미롭네요. 영국에 대학 입시를 희망하는 인원을 위한 별도 교육과정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진학을 희망하는 학과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를 학습하고, 자신이 관심있는 다른 학문을 남는 시간에 배울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이상적인 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교육이 한국에 도입되려면 대학 진학이 필수에 가까운 교육 문화부터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이 대안이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키는 모든 방법 찾아야 합니다. 영국이 잘하고 있군요...
학생들을 위한 올바른 정책들이 나라의 다음 세대를 살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 고민과 대안을 찾아가는 길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