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19 혁명 유가족입니다. 할아버지께서 4.19 혁명에 참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사망 후 수유리에 있는 국립 4.19 민주묘지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2~3년 전부터 유가족 신분으로 기념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념식에 참여했는데요. 수유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보는건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작년엔 당선인 신분으로 기념식에 참여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기념식에 참여하다보니 드는 의문이 많아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낭독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의회신문 2023.04.19.)
정부는 처음으로 4·19혁명이 전개된 지역 학생들의 학교 기록을 포함하여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강원, 전북, 마산 지역에서 주도적 활동을 하신 서른한 분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하게 됐습니다.
특히, 부산 지역 4·19혁명을 주도했던 부산고등학교의 열한 분의 공적을 확인하고 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부에서 4.19 혁명을 기억하고 국가차원으로 예우해준 덕분에 살아계신 혁명 참여자와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불굴의 용기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분연히 일어섰던 4·19혁명이 6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와 국격을 바로 세운 4·19혁명 유공자들을 한 분, 한 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후세에 전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 의사결정 시스템입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혁명 열사의 뒤를 따라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히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함께 모인 것입니다.
이 짧은 기념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4번이나 반복하시다니. 헌법 전문에서는 4.19혁명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또한 4.19혁명 정신이 자유, 민주, 정의이기는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만,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주장해온 ‘자유시장경제를 위시한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표현입니다.
독재와 전체주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쓴다고 해도 이것은 가짜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는 늘 위기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독재와 폭력과 돈에 의한 매수로 도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독재와 돈에 의한 매수를 언급하셨습니다. 가짜, 돈에 의한 매수처럼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들을 지칭하셨는데요. ‘세계’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때부터 누군가를 지칭하고 싶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최근 모 정당에서 터진 돈봉투 의혹과 관련된걸까요? 이 기념식의 취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위의 문장들과 함께 꼭 지칭하고 싶은 대상이 있는 것 같은 문장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념식에 활용할만한 적절한 단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는 A4용지 두어페이지 분량으로, 이런식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야한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최근 박민식 보훈처장이 “이승만 기념관 건립, 국가의 정체성 확립하는 일”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월간조선. 2023.04.19.) 자유당 독재정권을 몰아낸 혁명을 기념하는 기념일에 독재자의 기념관을 만들겠다는 기관장과, 이를 옹호하는듯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 대통령.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반면 같은 날 4.19 혁명 관련한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겠습니다. 정중섭 4.19 혁명희생자유족회장은 기념식 경과보고와 별도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독립혁명이나 프랑스 대혁명처럼 4·19 혁명도 국경일로 지정해 국민적 동의와 공감을 현실화해야 합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디지털타임스 2023.04.18) 또한 김진표 국회의장은 19일 “4·19혁명 63주년을 맞아 4·19 혁명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권고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동아일보 2023.04.19.) 윤석열 대통령도 이렇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제안, 혁명으로 인한 국민의 자긍심을 고양할 수는 없었을까요?
정리해보면, 제63주년 4.19혁명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념사를 이 역사 자체를 기리는 것보다는, 본인과 주변의 정치적 행보에 도움이 되는 연습장으로 사용했다는 것에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4.19 혁명은 끌어내려야 할 명확한 대상이 있었던 시민혁명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재평가해서는 안됩니다.
*대통령은 보통 4.19 당일 기념식에 참석하지는 않고, 오전에 참배만 하고 돌아갑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부터 대통령 신분까지 기념식에 참여해주신 것에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위 글은 4.19민주혁명회ㆍ4.19혁명희생자유족회ㆍ4.19혁명공로자회와는 별개의 개인 입장임을 밝힙니다.
코멘트
8미 국빈방문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와 대통령이 인터뷰를 했습니다. 다음은 워싱턴 포스트지 기자가 밝힌 한국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정말 100년 전의 일들을 가지고 지금 유럽에서는 전쟁을 몇 번씩 겪고 그 참혹한 전쟁을 겪어도 미래를 위해서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하는데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대통령이라서, 기념사에서도 성의가 보이지 않네요.
다른 이야기지만 잘먹고 잘사는 친일파 후손과 가난하게 살며 지원 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 자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우리 사회는 왜 이런 걸까요? 비관주의에 빠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와 사회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길인 것 같습니다.
제주 4.3, 세월호 참사 추모식에 불참하고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해서 한 발언이 겨우 이런 내용이라니 참 답답합니다. 대통령은 정치인 1명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발언 하나가 정부를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식의 행보가 계속된다면 '자기 정치에 유리한 곳에 가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는 발언만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앞으로는 유족분들과 함께 4.19 혁명의 의미를 현재와 미래세대에게 공유할 수 있는 기념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 작성해주신 덕분에 대통령이 기념식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모욕감'이라고 표현하셨죠..자리에서 듣고 계시는 마음이..참 마음이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이렇게 역사적인 인식의 부재와 이에 따르는 부당한 언행들이 정말 문제적이라고 생각이 들어요...기대하는 바도 없고...차라리 가만히나 있었으면 하게 되는 대통령은 정말 처음이에요...
유족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생각에 빠지게 되네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본인의 행보에 집중하기보다는 역사 자체에 집중하고, 역사 자체를 이야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대통령이지만, 저런 공식석상에서 입을 열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하는건지 싶다가도, 아 생각이 없어서 저렇게 이야기를 할수도 있겠구나 합니다. 4.19 민주혁명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선 시민들을 기념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희생된 피와 시간들을 추모하는 자리인데, 역사적 배경지식 없이 정치권다툼으로 끌어들여온 것이 매우 유감입니다...
돈에 대한 매수, 사기꾼, 거짓선동, 날조.... 이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인지.... 이 소식을 듣고 뒷목이 뻐근해지는 분노를 느꼈는데, 지금 써주신 글 보면서는 슬픔마저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