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적(敵)을 만드는 대통령의 말

20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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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정치, 시사,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미 동맹 70주년이며,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둔 상황에서,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국제사회가 용납하기 어려운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나 전쟁법 위반 상황이 있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재정적 지원만 고집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보고 멍~해졌다. 우크라이나 파병이 논의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155mm 33만 발
왜냐하면 얼마 전 대통령실 도청과 관련해 유출된 문서 내용이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문서는 3월 1일 작성되었다고 알려진다. 김성한 전 대통령 안보실장이 155mm 포탄 33만 발을 우크라이나가 아닌 폴란드로 수출하자며 이문휘 전 외교비서관에게 제안하는 내용이 문건에 나와있다. 파병과 관련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인도적, 재정적 지원을 뛰어넘는 군사적 지원 내용이라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출처 :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

11일 MBC는 9일 공개된 미국 국방부 기밀 보고서로 추정되는 유출 문건 중 한국 대통령실을 도청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보도했다. 제목은 ROK 155 Delivery Timeline(330K). 대한민국 155mm 포탄 33만 발 운송 일정을 의미한다. 진해에서 155mm 포탄 33만 발을 독일 노르덴함으로 이송시키는 내용이 있다. 위 문건에 나오는 김성한 전 안보실장이 이문휘 전 외교비서관에게 제안한 33만 발 내용과 겹친다.

18일 MBC는 충청도의 군 탄약창 안으로 들어간 트레일러 추적을 보도했다. 화물차는 3시간 만에 경남 진해 항구 탄약창 기지에 도착했다고 전한다. 익명의 화물차 운전기사가 군부대에서 155mm 포탄을 싣는 일을 했다는 인터뷰도 나온다. 이 내용에 대해 국방부 전하규 대변인은 확인해 줄 수 없고, 확인해 드릴 사안이 없다고 정례 브리핑에서 답변했다. 하지만 지난 2월 28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는 이와 다른 입장을 밝혔었다. 브리핑 당시, 우크라이나 대사가 한국산 무기 공급을 위해 한국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에 협의를 요청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한국 업체와 미 국방부 사이 탄약 수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답변했었다.

20일 kbs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나토와 우크라이나 국방 연락그룹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환영한 입장을 밝히며 백오십만 발이 넘는 155mm 포탄 등을 포함해 한화 4300억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미 육군 탄약 공장 대표 리차드 핸슨은 포탄 주문량 증가 질문에 주문 수량이 증가했다고 답변했다. 아직 100% 사실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의 로이터 통신 인터뷰 발언은 걱정을 넘어 두렵다.


두 마리 호랑이를 건드리다

출처 : president of russia

러시아 크렘린궁은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대한 입장을 빠르게 내놓았다. 한국이 러시아에 비우호적 입장을 취했다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분쟁 개입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포가 같잖을 거 같다. 한국의 러시아 수출이 급감한 상황이다. 아쉬운 입장은 한국이다. 그러니까, 무슨 생각으로 자신들(러시아)를 두고 이런 발언을 하는지 속으로는 엄청 무시하고 있을 것 같다. 가만히 있던 중국에 대해 탈중국을 선언하며 대중국 수출이 급감한 상황과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은 러시아 반응에 대해 가정적 상황에 대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며 노코멘트했다. 이미 로이터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구체적 조건을 언급했는데 노코멘트라는 답변은 말이 안 된다. 가정적 상황이라는 것도 실제 벌어진 일들이기 때문에 성립할 수 없다. 대통령실은 러시아 반응에 달렸다는 입장도 밝혔다.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렸는데, 호랑이의 반응에 달렸다니. 늘 그렇지만, 대통령실의 코멘트는 말인지 방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관련된 언급만 한 게 아니다. 중국과 대만 문제도 언급했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긴장 상태는 무력으로 현재 상태를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발생했다고 언급하며, 무력에 의한 변화는 반대한다고 발언했다. 탈중국 발언에 이어 중국의 역린을 또 건드렸다. 한국에 어떠한 재제나 조치를 취한 상태도 아니고,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인 자신들을 대상으로 선 넘는 발언을 하니까 중국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 외교부는 무력에 의한 현재 상태를 바꾸려는 시도에 반대한다는 윤석열 대통령 발언에 대해 말참견하지 마라며 반발했다. 한반도와 대만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고 신중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럴만한 중국의 반응이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 입장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했다. 중국 외교부가 주중 한국대사를 초치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오히려, 중국 외교부가 주중 한국대사를 초치할 명분을 주게 된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20일 주중 정재호 한국대사를 초치했다고 뒤늦게 발표했다.)


한국이 얻게 될 유일한 것, 국빈방문
중국을 옹호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미국도 중국과 대만 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룬다.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국제 외교는 다른 국가의 역린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며 자국 이익을 최우선적 목표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행위다. 갑자기,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와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는 발언을 한 이유는 뭘까? 한미 동맹 70주년이고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이 있는 상태다. 반중반러 입장을 표명해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김태효 국가 안보실 차장은 20일 용산 청사 브리핑에서 방미 일정을 발표하며 의의와 기대 성과를 밝혔다.

* 한미 연합 방위태세 공고화 및 확장억제 강화
* 경제안보 협력 구체화(반도체, 배터리, 퀀텀 기술 파트너십 확대)
*  양국 미래세대 교류 지원
*  인태 지역을 포함한 글로벌 사회 당면 과제 공조 방안 모색

을 언급했다. 경제안보 협력을 제외하면 주요 내용 모두 미국 주도로 이뤄지고 있고 한국은 하부 역할을 하게 되는 내용들이다. 반도체 등 기술 파트너십을 확대한다고 했지만, 미국 정부는 현대, 기아차를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다. 한국이 얻게 될 부분이 있을까? 의의가 어디 있고 성과가 어디 있나. 암담하다.


ABM(Anything but Moon)
얻는 것도 없어 보이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왜 저런 발언을 했을까? 지난 한일 정상회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인 대승적, 담대한 결단을 내렸다며 자화자찬했다. 미국과 담대한 결단을 했다면서 자유진영에 끼어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위해 러시아를 저지하는 일원이 되고 싶은 게 아닐까. 그 자체를 자신의 업적이라고 내세우고 싶은 게 아닐까. 아니면, 미국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anything but 문재인>이라서 전쟁 중인 지역에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전 정부와 다른 노선을 타려고 하는 걸까. 도대체 모르겠다. 정말이지, 이런 대통령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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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도, 지지도, 정치공학도 없는 외교를 보면서 정말 참담한 기분만 듭니다.... 

국제적으로 신냉전이라고 불릴만한 정치적 위기와 경제적 위기가 교차하고 있는터라, 면밀하게 접근하여 외교의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일텐데.. 신뢰가 안가네요. 걱정입니다. 

대통령이라함은 본인의 의견보다는 나라를 대표하는 의견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것인데...중립의 입장으로 보려고 노력해도 마음이 불편한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대통령의 말이 국제외교적으로는 적을 만들지만, 다른 한편 국내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생활세계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논의를 방해하는 결과도 만들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지적을 더불어민주당의 이탄희 의원이 100분토론에서 지적했던 게 기억나네요.

윤석열 정부의 외교를 보면 '모든 시선이 미국을 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는 측면에서 일본에 대한 태도 역시 결국은 미국과의 관계와 연결점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고요.
그래서 살상무기 지원 결정이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미국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한다'는 시각으로 바라볼 경우 매우 쉬운 결정이었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이게 좋은 외교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미국의 이익이 한국의 이익과 맞닿는 일도 있겠지만 교집합이 적거나 없는 경우도 꽤나 자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의 제목처럼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이 한국에도 적대적으로 대하는 결과를 만들 우려도 있고요.(사실상 러시아가 '살상무기 지원시 한국에 적대관계를 선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미 반쯤(?) 적을 만든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결국 외교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도록 설정될 수밖에 없는데 '오로지 미국'의 스탠스라면 미국이 한국에 크나큰 손해가 가는 것과 상관없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겠죠.(반도체 제조 설비 확장, 자동차 수출 등에서는 이미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냉전시대의 대립구도,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수입, 수출을 비롯해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국의 존재 등 한국의 외교는 까다로운 조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런 조건들을 모두 감안하는 외교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