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저명한 젠더학자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1948~)가 2017년 2월 11일, 「평등하게 가난해지자(平等に貧しくなろう)」라는 글을 발표했다.
인구를 유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 증가이고, 또 하나는 사회 증가. 자연 증가는 더 이상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되지 않습니다. 울고 불고 해봐야 애들은 늘 수 없습니다. 인구를 유지하려면 사회 증가 밖에 없다, 즉 이민의 수용입니다.
일본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이민을 받아 활력 있는 사회를 만드는 대신 사회적 불공정과 억압과 치안악화로 괴로워하는 나라를 만들 것인가, 난민을 포함한 외국인에 대해 문호를 닫고 이대로 천천히 쇠퇴해 갈 것인가. 어느 쪽인가를 고를 분기점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민정책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객관적으로는 무리, 주관적으로는 관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러면 일본은 인구감소와 쇠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평화롭게 쇠퇴해가는 사회의 모델이 되면 됩니다. 1억 명 유지라던가, GDP 600조 엔 같은 망상은 버리고 현실을 마주봅니다. 다만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은 어렵습니다. 어떻게 희생자를 내지 않고 연착륙할까? 일본의 경우, 모두 평등하게, 천천히 가난해지면 됩니다.
(도쿄대 명예교수 우에노 치즈코. 사진출처: 도쿄신문)
글의 내용은 이렇다. 일본은 다문화 사회 같은 것을 쉽게 받아들일 사회도 아니거니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의 활력을 불러오는 대신 부작용이 많으므로, 사회를 사민주의적으로 바꾸고 천천히 쇠퇴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시민단체, 사회단체들은 이걸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꼭 노동자가 아니어도 외국인이 늘어나면 일자리를 빼앗기는 사람이 생기고 치안이 악화된다는 주장은 전세계 어디에나 있다. 우에노의 말은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가난해지더라도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지 말자는 말로 이해될 여지가 너무 크다. 특히 평생을 차별받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온 그 이기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우에노의 이 주장을 비난했다.
부유한 국가를 향한 노동자들의 움직임 문제는 사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그런 복잡함을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것은 ‘국가중심주의’적인 시선들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일을 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는 ‘선택’을 오롯이 ‘선택’의 문제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 중에는 반짝 열심히 벌어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자식, 그리고 그 자식들에게까지 내가 겪은 괴로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 자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어떤 기술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 기술이나 자본 없이 몸만 가지고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도 있다. 이주 노동에는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두고, “넌 차별과 불이익이 있다는 걸 알고, 각오하고 더 잘 사는 나라에 온 것 아니니?”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런 각오를 하고 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부유한 국가의 개개인이 차별과 불이익을 줄 권리는 없다. 세계적인 부의 불평등, 분배의 불평등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밀려왔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차별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사회적인 책임감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타인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정치가 어쩌구 사회가 어쩌구 설명을 하는 것은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다. 나라 안에서의 부의 재분배를 말하기에 앞서, 국적에 따른 부의 재분배가 이렇다 저렇다 할 방법도 없이 자의적으로 결정되어 버리는 세계화시대. ‘K-POP’과 ‘한드’에 열광하는 지금이 어쩌면 한국인이 가장 세계적인 시야를 가진 시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국경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의 재분배와 윤리적인 책임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지역이 중심이냐 민족이 중심이냐 같은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다. 우리는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출생의 특권을 직시해야 한다. 땅콩회항 같은 재벌들의 갑질에는 분노하면서 왜 이런 문제는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국민국가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로 인해 인권을 보장하는 유효한 범위도 국가가 중심이다. 내 국민이 아니면 인권도 없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세계적인 부의 재분배 같은 문제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꽤 많이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리고 세계가 그렇게 발전하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하고, 그리 될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의 차원에서, 많은 이들이 먼저 인간이 되길 바란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 할 예의라는 게 있다는 것을 제발 좀 깨닫기 바란다.
코멘트
7글을 읽고 나니 인구 정책을 다루기 이전에 우리의 인간성에 대해 먼저 생각해봐야 할 듯하네요. 좋은 문제 제기 감사합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나라는 개인의 위치를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은 그 안에서도 두가지로 나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의 영어권 외국인에게는 관대하고 영어권이 아닌 제3국이라 불리는 나라 이민자에 대해서는 혹독하리만큼 편견과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는 외국인의 유입을 막아야 하거나 배제해야 하는 그런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1.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을 앞두고 해당 지역 주민들과 사원측과 입장이 달라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공사는 재개가 되었다고 하네요. 반대 하는 쪽에서 그 부지 근처에 냉장고를 두고 돼지 머리를 넣어 전시한다던지 일종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각각의 입장이 있겠지만, 사원 건축을 반대한다고 해도 인류애가 깨지는 행위를 하는 건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보니 대구 사례가 떠오르네요.
2. 한국인과 한국사회가 한국인들에게 다정하고 다양함을 품어줬었다면 이런 문제는 덜 생겼을 거라고 봅니다. 안에서부터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밖으로는 더 안되겠죠.
'성장주의'가 기후위기의 원인이기 때문에, 경제 성장을 상수로 놓지 않으면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태사회 이론을 떠올리게 됩니다. 성장을 전제로 하면서 시민들의 평등을 이야기 하는 것조차도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관점을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신선하면서도 우리나라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할까 고민하게 되네요.
지난 트럼프 정부가 보여준 태도가 딱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한국은 트럼프 정부 당시의 미국과 같이 노골적이지만 않을 뿐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중국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태도를 보면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식을 '자국민우선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세력도 있던데요. 저는 '이주민차별주의'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이런 인식을 부끄러워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 향상과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