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 등 파견이 금지된 업종이어도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발생한 경우'나 '일시적 또는 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자를 파견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아리셀은 노동자 103명 가운데 정직원이 50명, 나머지 53명이 외국인 노동자였다고 밝혔다. 파견을 통해 임시로 인력을 보충한 구조가 아닌 셈이다.

불법파견 정황이 드러났는데 책임회피 움직임이 여전하군요.

삼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주노동자의 인건비가 싸니까, 안전 교육도 돈이니까..
반면 현장 노동자들의 입장에선 '젊은 사람들이 아무도 힘든 일 안하려고 하니까' 라는 푸념도 더해지죠. 열악한 환경이 놓이도록 방치해두고 아니 시간에 쫓기듯 할당량을 뽑아내야만 한다는 실적 경쟁 분위기를 방조해둔 우리나라 노동계의 현실도 이번 참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이번 참사를 두고 이태원 참사가 생각난다고 말씀하셨던 기사가 생각나네요. 참사는 연기처럼 형태를 바꿔가며 스미듯 지나갑니다. 교차성도 생기구요. 그런데 이 접점이 자꾸 겹치는 게 문제입니다. 드러내어 반창고를 붙여야하는데 곪아서 염증으로 치닫는 중입니다. 안전 교육을 충분히 했다고 말하던 대표의 말에서 책임 회피하려는 태도가 보이는 것 같은데.. 왜 그런걸까요.

이주 노동자, 희생자 다수 여성,인건비 절약, 허례허식하는 안전교육... 너무 고질적인 한국 사회를 보여주고 있어 너무 답답합니다.

이런 뉴스 볼 때마다 답답하지만 늘 머릿 속으로 되네어보곤 합니다. ‘네가 듣기 싫고 받기 원치 않은 걸 타인에게 하지 마라’ 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들에게 전부 전가하지요.

주말에도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밀양 사건 재점화 과정이 피해자가 답답하고 무력감을 느끼는 시간이 되면 안 된다. 그렇기에 피해자가 ‘내 뜻이 아니다’라고 하면 존중하고 반영했으면 좋겠다.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정의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삶의 여정을 이해하고 깊이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사이다 서사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피해자의 입장은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을 잘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남는 시간을 무엇으로 더 채워야 의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저장강박처럼 찾아오더라고요. 뭐라도 해야 더 많은 기회가 오는 건 있지만, 그 기저에 무엇이 깔려있나보니 불안이더군요.

사실 저는 불안이 많고, 불안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기도 하지만 저를 잠식하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불안에 이미 잠식당한 채 지낸 것 같지만.. 사실 타인의 욕구(더 많은 수익, 무엇이라도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드는 지적욕구 등)에 동기부여받고 하는 건 아닌가 그러나 그것조차도 내가 받아들인 것이니 나의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대사회 자기계발의 암면도 돌아보게 하네요. 완벽한 자아와 기준에 부합할 수 없는 허상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도 따라 드는 것 같구요.

노인 빈곤과 부실한 인프라가 맞물려있는 현실에
개혁이 절실히 필요해 보입니다. 23년도 노인 빈곤율이 60%를 차지한 우리나라는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있죠. 독거 노인 비중이 증가하고 퇴직 후의 노동 연계나 건강 보험 등 책임지는 곳이 국가가 아니라 사기업이 대신하고 있어서 빈부에 따른 계층갈등도 연쇄적으로 벌어질 것 같구요.

어제 이 기사를 읽으며 마음이 몹시 심란했는데요, 5년 전 김봉곤씨 김세희씨 사건과 비슷한 일이 벌어져서 실망이 컸습니다. 피해자의 입장문을 읽고 가해자(정지돈 씨)의 태도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네요. 출판사 측에서는 책 절판 및 회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창작이란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그대로 베껴가면 당사자의 고통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요.

돌봄 사각지대에 놓일 수 밖에 없어 고립된 이들은 이런 복지 서비스조차 가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Climateflation can disrupt global supply chains and intensify the effect of inflation. If the productivity of such climate-sensitive categories falls and supply decreases, it fuels inflationary pressure.

기후위기가 가져다 준 나비효과는 무시할 수 없네요. 전 세계의 공급망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고 급격한 해수면, 평균기온 상승보다 물가 상승으로 체감하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자주 메시지가 떠서 짜증나고 불편했는데, 법의 틈새를 노려 사기가 극심한건가 생각이 드네요.

AI가 자체적으로 필터링을 거칠 수 있군요..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콜 수(실적) 압박과 장시간 청력 피로감 그리고 메시지성 폭언/욕설 등의 문제도 고려해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점이 지속가능한 운영을 하기 위해선 모두를 위한 곳이 아니라 이 곳에 딱 맞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어야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온라인으로 사면 10% 할인 받고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꼭 여기여야만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때가 있더라고요. 이 서점에서만 전할 수 있는 분명한 메시지를 가진 곳이라면 저는 자주 가게 되지만(큐레이션, 컨셉, 서비스 등의 요소를 종합 고려합니다) 그러지 못한 곳들은 선뜻 방문하기 어렵더라고요..

대통령이 사건에 관여했는지 의문이었다가 외압이 개입된 의혹이 더욱 증폭될 거 같네요.

월요일 처음으로 챗GPT를 써봤는데요, 제가 하지 못하는 코딩을 채팅 몇 자만으로 뚝딱 만들어내고, 원하는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점에서 챗GPT의 학습력은 신속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챗 GPT가 인간의 데이터를 모아서 학습한 다음 아웃풋을 내는 것 같지만, 의외로 오류도 많더라고요. 정보의 오류를 캐치하고 바로잡는 건 결국 인간의 손을 최종적으로 거쳐야하는 것 같습니다.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이 ‘오류다, 아니다’ 판단하고 읽고나서 받아들이는 정보가 사실인지 혹은 감정선이 어떠한 지 맥락은 챗GPT가 어떻게 학습하여 결론을 내어놓을 지 궁금하네요.

인원을 늘려라-> 늘렸다해도 그들에게 제공할 양질의 교육과 실습에 제한과 지역마다 격차가 크다는 걸 보여주고 있네요.

요즘 러닝에 관심이 생겨 가끔 정보들을 찾다보니 인스타그램이나 릴스에서 알고리즘으로 러닝-운동-웨이트트레이닝/크로스핏/바디프로필/ 외모가꾸기 같은 정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더라고요. 신체를 단련하는 것이 SNS와 만났을 때 전시되는 신체가 되어 관리의 영역으로 접어드는 것 같아요. 관리하는 몸 외모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 그렇지 못하면 도태된 사람으로 극명하게 나누는 거 같구요.

하지만 남성들은 외모의 문제라기보다 저출생•비혼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할텐데 여전히 외모에만 문제를 맞추고 여성을 보상 차원으로 여기는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윤대통령의 수사단에게 야단친 것이 사실상 관여 인정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던 기사가 생각납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43103.html

유산이 도난당한건지 유실된 건지 정확한 규명이 필요해보이네요…

국가가 이행 계획을 세우고 관련 법을 세우면서야 기후대응이 본격화할 수 있었고, 이견을 가진 이들 역시 그때서야 법에 호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국가별 자율이행이 원칙일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그 속도가 다름이 문제였다.

개인이 쓰레기를 분리수거한다고 한들 미국과 중국에선 분리수거라는 개념이 없고 인구대비 쓰레기 버리는 양은 해마다 늘어만 가지요. 국가마다 표준도, 이행의 속도도 너무 달라서 기후위기는 가속화되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목소리를 내기까지 먼 길을 오셨을 이들이 보입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요. 가을 판결에 주목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