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너머] 민경욱의 부정선거 변호사, 윤석열을 대변하다
시민팩트체커 커뮤니티 K.F.C.는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에 대한 중앙선관위의 주장을 검증해 ‘[팩트체크] 사법기관의 판결로 부정선거 의혹의 근거 없음이 밝혀졌다?’를 발행했습니다. 이번 콘텐츠에선 사실 여부 판단 과정에서 확인한 몇 가지 사실을 ‘팩트체크 너머’로 정리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엔 ‘근거’가 없다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를 넘긴 시각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담화를 진행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군이 곳곳에 투입됐고, 특히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장면을 전국민이 생중계로 목격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선포 2시간여 만에 190명의 국회의원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에 찬성해 해제되었습니다. 이후 계엄군이 국회를 비롯해 헌법기관 중 하나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도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계엄군은 왜 선관위에 갔을까?’를 두고 연일 추측이 이어졌고, ‘부정선거’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2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담화를 발표하며 직접 ‘부정선거’ 의혹을 꺼내들었습니다. 관건은 윤 대통령이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느냐’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제시한 근거들은 사실이 아님이 곳곳에서 지적되었습니다. K.F.C.는 ‘[팩트체크] 국정원의 해킹으로 선관위 데이터 조작 가능성이 입증됐다?’를 통해 그 중 하나인 국정원의 점검이 근거가 되지 않음을 검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JTBC, 머니투데이 등 여러 언론사에 의해 윤 대통령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엔 근거가 없었습니다. 명확하게 ‘의혹’이 아니라 ‘음모론’이 된 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측’ 변호사 석동현도 ‘부정선거 음모론자’ 그럼에도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한 윤석열 대통령의 주장은 시시각각 확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 등으로 언론에 소개됐고, 윤석열 정부에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임명되었던 석동현 변호사가 ‘윤석열 대통령 측’ 입장을 밝혔는데요. 외신, 특파원, 국내 기자들과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석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은 ‘체포’의 ‘체’자도 꺼낸 적이 없다”, “내란죄 아니다” 등 윤 대통령의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언론을 통해서 곧바로 확산됐죠. 윤석열 대통령과 중앙선관위의 입장 중 어느 쪽이 사실인지를 확인한 ‘[팩트체크] 사법기관의 판결로 부정선거 의혹의 근거 없음이 밝혀졌다?’에선 민경욱 미래통합당 후보가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의 대법원 판결문을 확인했습니다. 판결문에선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동진 담당변호사 석동현’ 석동현 변호사에 대한 설명을 조금 바꿔보면 ‘민경욱의 부정선거 음모론 변호사’가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석 변호사는 4년 전 토론회에서 직접 부정선거 소송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부정선거 변호사’를 넘어 ‘부정선거 음모론자’로도 활동한 셈입니다. 2022년 대법원의 교훈이 ‘부정선거 음모론자’에게 닿을 수 있을까 물론 메신저의 이력만으로 메시지를 곧바로 부정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메시지가 전달되는 과정에선 메신저가 어떤 인물인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동일한 메신저가 허위정보를 확산해 문제가 반복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2월 19일 국회에선 부정선거 음모론을 지속해서 주장해온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부정선거는 팩트”를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한겨레의 취재에 따르면 이 기자회견은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기자회견장을 대여해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법원을 통해 2차례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지만 왜 2024년에도 부정선거 음모론이 반복되는지 따져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민경욱의 부정선거 음모론 변호사 석동현’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란 이유로 다양한 언론에서 석 변호사의 발언이 보도되고 있지만 그가 ‘음모론의 변호사’, ‘음모론자’라는 사실을 다룬 매체는 MBC, 경향신문, 한겨레 등 소수에 그쳤습니다. ‘민경욱의 부정선거 음모론 변호사 석동현’의 재판은 2022년 대법원에 의해서 근거가 없다는 게 밝혀지며 실패로 끝났습니다. ‘내란죄, 부정선거 음모론 대통령 윤석열 측 석동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과거의 재판에서 대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에 명확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이 교훈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에게도 닿기를 바랍니다. 선거 관련 규정에 위반되었다는 사실과 구체적, 직접적으로 어떠한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단편적, 개별적인 사정과 이에 근거한 의혹만을 들어 선거소송을 제기하여 그 효력을 다투는 것으로 선거무효사유의 증명책임을 다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검증이 필요한 이미지, 정치인의 발언, 정보를 발견하신 경우 시민활동플랫폼 빠띠의 디스코드 채널(클릭)로 제보해 주세요. 제보된 정보는 검토를 거쳐 시민팩트체커 커뮤니티 K.F.C.가 검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평화 알못’이 팔레스타인 평화 집회에 가봤습니다
이 글은 시티즌패스의 '팔레스타인 평화를 바라는 집회, 같이 가요!'의 후기이지만 사실 저는 평화를 그렇게 깊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태어났을 때도 전쟁의 위협은 없었고, 살아오는 내내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전쟁과 내 삶은 큰 연관이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벽에 능률이 가장 높은 새벽형 인간입니다.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주중엔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지만 주말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른(?)으로 살고 있는데요. 그래서 시티즌패스의 ‘팔레스타인 평화를 바라는 집회, 같이 가요!’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도 고민했습니다. 이제 막 일어나서 비몽사몽 할 시간인 토요일 낮 1시에 진행되는 집회는 큰 마음을 먹어야 참석이 가능했습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잔뜩 들어찬 토요일 아침 힘겹게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청계천 광장이 집에서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꽤 쌀쌀한 날씨에 차가운 바람이 잠에서 깨라고 독촉했고, 긴 시간 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카페인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평소엔 잘 마시지 않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10분 정도 일찍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전쟁을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고 싶지 않다" 찬 바람에도 멸종반란의 집회엔 7명의 이야기와 하나의 시, 하나의 연주로 진행된 오픈 마이크에서 전쟁의 종식을 바라고,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나왔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각자의 삶에서 평화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전쟁의 종식을 바라며 팔레스타인 아동의 입장에서 편지를 쓰고, 누군가는 시를 쓰면서, 또다른 누군가는 이스라엘산 자몽과 복숭아의 소비를 보이콧하면서 평화를 꿈꿨습니다.  특히 인상깊었던 몇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려 하는데요. 이날 오픈 마이크에서는 전쟁없는 세상 쭈야, 펭귄 활동가가 발언뿐만 아니라 연주를 통해 전쟁의 종식을 바라는 마음을 나누어주셨는데요. 두 활동가는 지난해 6월 대한민국 방위사업전 행사에서 전쟁을 위한 무기 수출을 반대하며 장갑차 위에서 연주를 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장갑차 위에서 연주했던 곡을 오픈 마이크에서 연주하며 쭈야 활동가는 “우리가 낸 세금이 국제 전쟁에 쓰이고 있음을 목격"했다며 “전쟁 만드는 나라의 시민으로 살고 싶지 않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단체의 활동 사례를 공유한 경우도 있었는데요. 피스모모는 올해 1월 해외 미군 반환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를 연구로 환경재단의 연구지원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정 이후 환경재단이 자체 ESG 플랫폼에서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등 무기 제조 기업을 높게 평가한 점을 확인했고, 그린워싱 문제 제기와 함께 지원사업 참여를 취소했습니다. 피스모모 뭉치 활동가는 “무기 기업들이 장난치듯이 쓰는 돈에도 시민사회가 영향을 받는다”라며 “우리의, 삶과 전쟁 무기 산업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뭉치 활동가는 침기자들에게 “지치지 말고 무력하지 말고 행동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습니다. 찬바람 속에 진행된 멸종반란의 집회는 각자가 생각하는 전쟁의 종식 방법을 적어 붙이고, 크게 외치며 종료됐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다면 이날의 집회는 가까운 장소에서 이어서 진행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의 10차 집회로 이어졌습니다. 아쉽게도 긴급행동의 집회는 끝까지 함께 하진 못했습니다. 찬 바람을 함께 맞으며 집회에 참여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토요일 오후 지하철에서 다양한 생각을 했습니다. 평화 ‘알못’인 저는 집회에 참여하며 ‘저 사람들은 왜 자기 일이 아님에도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참여하면서 생각해 보니 질문이 틀렸더라고요. ‘자기 일이 아님에도 열정적인’ 게 아니라 ‘우리 일이기 때문에 열정적인’ 게 맞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집회에 참여해서 앉아있는 시간은 각자의 이야기, 음악, 시를 들으면서 평화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저 멀리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함께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시티즌패스를 통해서 집회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아마도 부족한 잠을 채우며 보냈겠죠? 그래서 다음에도 집회에 갈 거냐고요? 어… 솔직히 토요일 낮 1시는 저에겐 너무 힘든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시티즌패스의 다른 집회 참여 모임을 보면서 고민은 조금 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집회에 가서 앉아있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산 복숭아, 자몽의 소비를 멈추는 일부터 당장의 이익보다 소신을 지키는 연구를 응원하는 일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더라고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들로 연대하며 세상을 바꾸는 동료 시민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자동화 시대의 미디어와 공론 형성"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저녁, 참여연대에서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자동화 시대의 미디어와 공론 형성”이라는 주제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논의했습니다. 이번 논의는 ‘대담한 대화’ 주최로 참여연대,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진보네트워크센터 구성원들이 함께 했습니다. 활동가와 변호사, 연구자 등이 모여 알고리즘을 통한 자동화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더 많은 시민과 나누기 위해 논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알고리즘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유튜브, 넷플릭스의 콘텐츠 추천부터 티맵, 카카오맵 등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까지 많은 분들이 사용하고 계실 텐데요.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이 일들에는 알고리즘이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자동화된 의사결정’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알고리즘들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인식하고 있지 못한 ‘자동화 된 의사결정'들이 민주주의를 점차적으로 좀먹어 가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논의에서는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화된 의사결정 사례들을 공유하고, 어떻게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자동화된 의사결정의 사례들이 언급됐는데요. 대표적으로 소셜커머스 기업 쿠팡의 가격정책이 있습니다. 쿠팡은 자사의 멤버십 서비스 쿠팡와우를 구독하고 있는 이용자와 그렇지 않은 이용자에게 같은 물건을 두고 다른 가격으로 판매해 논란이 되었는데요. 멤버십 서비스를 구독하지 않은 이용자에게는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이미 멤버십 서비스를 구독한 이용자에겐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례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자동화된 의사결정이 알고리즘, 인공지능의 등장 이전에도 존재했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보험의 경우 연령이 낮은 남성에게 더 비싸게 적용되는 사례가 있습니다. 논의를 통해 자동화된 의사결정은 우리 삶의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생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실제 사례를 정리해 알고리즘 팁스와 같이 ‘시민들이 자동화된 의사결정 목록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알고리즘은 영업 비밀일까? 반면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 주제도 있었는데요. 바로 기업의 알고리즘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입니다. 알고리즘이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의견과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으로 나뉘었습니다.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의견은 기업의 알고리즘은 영업 비밀일 수 있지만 언제나 무조건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알고리즘이 시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적절한 범위 내에서 공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독점 플랫폼 규제법 등 세계적인 알고리즘 규제가 투명성과 공정성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영업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알고리즘 자체만으로는 영업 비밀로 볼 수 없고, 알고리즘을 기업의 영업 비밀로 규정할 경우 문제점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현재도 개인정보, 영업비밀 등의 이유로 정보공개청구, 소송 등에서 공개하지 않는 정보들이 있는데 알고리즘을 영업 비밀로 규정할 경우, 알고리즘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핵심이라는 시각이었습니다. 알고리즘을 기업의 영업 비밀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두 의견 모두 기업의 알고리즘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사회적 논의가 시급합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챗 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우리 삶에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요. 동시에 인공지능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규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전사회적으로 시급하게 논의해 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대두했습니다. 이번 논의에서도 디지털 기술의 규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규제에 대한 논의는 현상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요. 이번 논의에서는 규제의 도입 이전에,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발전 속도를 고려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현재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심지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조차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임을 고려해야 한다는 건데요. 이를테면 검색 알고리즘을 개발해 도입한 기업에서도 특정 키워드의 검색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기업의 알고리즘 공개와 관련해서도 비슷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는 기업에서도, 알고리즘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알고리즘들이 얽히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알고리즘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하더라도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우려였습니다.이와 같은 고민들을 바탕으로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 방향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이는 앞서 이야기 된 논의와도 관련지어 고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 발전 속도는 빠르지만 제도의 규제는 느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고려 했을 때, 시민들이 자동화된 의사결정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번 논의를 진행하며 여러 관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보다 많은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변화를 함께 톺아보며 연결과 협력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알고리즘 등은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는 시민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고 정치, 사회, 문화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기업은 기술적 측면만을 고려하는 경향이 확연히 강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시민사회에서는 기술적 이해 없이 디지털 변화에 따른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따라잡기 어려워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합니다. 학계와 언론 및 미디어뿐만 아니라 시민사회가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에 대해 이해하고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리는 시민사회의 역할에 있어 다방면의 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한 번의 논의로 바로 정답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등장과 발전에 학계와 언론계, 시민사회가 함께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 글은 대담한 대화 홈페이지에도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함께 안전] 수많은 ‘이름에게’
#1 그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이었기에 고등학교 방학 기간에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 노동을 했고, 취업을 위해 진로도 변경했습니다. 이 청년은 언제나 성실했지만 여느 20대가 겪는 것처럼 취업의 문턱은 높았습니다. 원했던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2018년 9월 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경험을 쌓아 더 안정적인 일자리로 옮기길 꿈꿨습니다. 첫 월급으로 엄마가 평소에 즐겨 먹고, 쓰던 비타민, 보습크림, 홍삼을 사오는 살가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2 그는 엄마가 해준 시금치 나물을 좋아했습니다. 누나들과 가족을 참 아꼈습니다. 노래도 좋아하고, 기타 연주도 잘 했습니다. 수학을 특히 잘했던 그는 수학과로 진학해 성적 장학금을 받기도 했지만 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지 고민했습니다. 군대를 졸업한 후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시간이 남을 때마다 아버지가 일하던 평택항에서 일과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일해서 번 돈으로 누나, 조카들에게 간식을 베풀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아빠는 핸드폰에 그의 번호를 ‘삶의 희망’으로 저장했습니다. #3 그는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배구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배구를 했지만 꿈을 향한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배구부 내 학교폭력 피해를 겪었고, 배구선수의 꿈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돈을 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직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고, 엄마는 그에게 전망이 있다고 생각한 애완동물과를 추천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그는 한 대기업 통신사의 콜센터에 ‘실습생’으로 취직하게 됐습니다. 앞서 설명한 세 사람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때로는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했고, 가족을 아끼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내 주변 어딘가, 혹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느껴지시나요?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던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는 2018년 12월 10일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습니다.  엄마가 해준 시금치 나물을 좋아했던 물류기업 동방의 일용직 아르바이트 노동자 이선호 씨는 2021년 4월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했던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엘비휴넷 노동자 홍수연 씨는 업무 중 지속적인 폭언을 듣고, 실적압박을 받은 뒤 2017년 1월 23일 섬진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고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앞의 이야기를 듣고 보시니 조금 다르게 느껴지시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산업재해 사고를 마주할 때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곤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다 보면 너무나 평범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걸 자주 느낍니다. 이 습관은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이후 생겼는데요. 동갑내기였던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여러모로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일하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 사실 산업재해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 건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이후부터였습니다. 김용균 노동자와 저는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득권은 언제나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를 마주하며 한편으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운이 좋게도 키보드와 모니터 앞에서 노동을 하고 있던 저는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에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노동을 하는 김용균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해 고민할 일이 없었으니까요. ‘나는 상대적 기득권이어서 너무 쉽게 산업재해 문제를 외면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어떤 일터가 안전한 일터인지 묻는다면 정확한 답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적어도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문장은 너무 당연하지만 한국에선 당연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너무 많은 노동자가 일하러 출근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멀쩡히 살아서 일하고 있는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상대적 기득권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산업재해를 돈의 문제로 보는 접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산업재해로 기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내 주변, 혹은 또 다른 내가 일하다 죽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돈을 이유로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외면한다면 김용균, 이선호, 홍수연과 같은 또 다른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어쩌면 나 혹은 당신의 이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수많은 이름이 헛되지 않도록 저는 잊고 싶지 않은 일이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음악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특정한 가사를 들으면 장면이나 얼굴이 떠올라서 시계를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인데요.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 이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가수 아이유의 ‘이름에게’였습니다. TMI를 조금 풀자면 곡을 부른 아이유 씨는 2017년 콘서트에서 이 노래가 “어디에 살고, 무슨 직업을 가졌고 이런 조건 없이 어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하는 위로 같은 곡”,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잘 골라서 사람으로서 쓰고 사람으로서 부른 곡”이라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 곡은 아이유 씨가 조금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창에 집중하기 위해 가사를 작사가 김이나 씨에게 부탁한 노래이기도 한데요. 저는 12월 언저리가 되거나 산업재해 사고 소식을 볼 때마다 이 곡을 항상 떠올립니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위로의 가사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다짐의 가사로 느껴지기도 해서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마음을 되새길 때도 찾아 듣곤 합니다. ‘김용균’, ‘이선호’, ‘홍수연’을 비롯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수많은 이름들이 헛되지 않도록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노래와 함께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가져 기억해야 할 이름이 이제는 더 생기지 않길 바라며 곡의 마지막 가사를 공유합니다. 수 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참고자료 내 아들, 내 친구, 우리 모두의 김용균(한겨레21.2018.12.28) 정규직 전환 희망하던 평범한 청년의 죽음(발전산업신문.2018.12.12)  “일터엔 주인잃은 전공노트…꿈도 희망도 안전부재에 스러져”(한겨레.2021.05.09)  “우리 딸 수연이 죽음 때도 반짝 관심…‘다음 소희’ 더는 없어야”(한겨레.2023.02.20)
2021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급증했다는 기사, 사실일까요?
아동 학대에 대한 관심은 주요 사건이 벌어질 때 커집니다. 주로 사건 가해자의 잔혹성과 가해 행위, 피해자의 연령 등이 언론을 통해 부각되는데요. 보다 중요한 건 꾸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잘 살펴봐야 하는 게 통계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관련 통계를 찾아보던 중 아동학대 사건이 2020년에 비해 2021년에 21%나 증가했다는 기사를 찾았습니다. 내용이 사실인지 궁금해서 관련 통계를 찾아보고,  2022년 자료와도 비교해봤습니다.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찾아봅시다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기사에서 언급한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2021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발간했다는 정보를 전달한 정책브리핑에 관련 내용이 있었는데요. 기사에서 전달한 것처럼 보도자료에는 2020년에 비해 2021년 아동학대 사건이 21% 증가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수는 없겠죠. 통계를 조금 더 면밀하게 확인해보면 좋겠죠. 2022년 통계도 확인하고요. 그래서 보건복지부의 연구자료 게시판에서 아동학대 관련 통계를 찾아봤습니다. 검색 결과 연도별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22년 주요통계도 보이네요. 자신있게 2021년 주요통계를 확인하기 위해 게시글을 클릭했는데요. 당황스러웠습니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파일 첨부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보건복지부 관계자님 보고 계시면 파일 첨부해서 수정해주세요) 당황하지 않고 데이터 활동의 동반자 구글 검색을 활용했습니다. 정확한 자료를 찾기 위해 “2021년 아동학대 주요통계”를 쌍따옴표로 검색해 찾아보니 어렵지 않게 관련 자료가 발견됐는데요. 아동권리보장원의 아동주요통계 자료실에 같은 자료가 업로드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확인한 자료를 열어보고 비교할 시간입니다. 공개된 통계를 비교해봅시다 애석하게도 공개된 자료는 모두 PDF 파일이었는데요. PDF 파일에 담긴 데이터는 활용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엑셀 데이터 형식으로의 변환이 필요한데요. 이번에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 중 PDF 파일을 엑셀 형식으로 변환해주는 알PDF를 활용해봤습니다. 다운로드 받은 2021년, 2022년 아동학대 주요통계 모두 큰 문제 없이 엑셀 파일로 변환됐네요. 이제 두 파일에서 전체 신고건수와 학대판단건수를 비교해보죠. 2021년과 2022년 아동학대의심사례와 아동학대 사례 통계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년도 아동학대의심사례 아동학대사례 2021년 52,083건 37,605건(+21.7%) 2022년 44,531건 27,971건(-25.6%) 출처: 2021~2022년 시도별 아동학대의심사례, 아동학대사례 건수 비교해보니 2021년에 비해 2022년엔 큰 숫자로 통계가 줄어들었음이 확인됩니다. 기사에 언급됐던 증감률을 계산해보면 2020년 대비 2021년엔 21.7%가 증가했고, 2021년 대비 2022년엔 25.6%가 감소했습니다. 투명하고, 접근성이 높은 데이터 공개가 필요합니다 사실 앞선 통계 비교만 보면 2021년까지의 통계로 아동학대 사례가 급증한 것을 우려한 기사가 호들갑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요. 아직 속단하긴 이릅니다. 통계 변화의 배경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저는 변화의 원인 등을 구체적으로 찾진 못했는데요. 오늘은 원인보단 통계의 비교와 연도별 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려 합니다. 앞서 확인한 것처럼 하나의 통계를 장기간 살펴보면 데이터를 통해 추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해 발표되는 통계가 하나의 데이터로 존재하는 것에서 그치면 가치가 떨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통계를 장기간 비교하고 경향성을 살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단편적 통계로는 무리가 있겠지만 여러 데이터가 쌓인다면 아동학대 예방 정책의 정비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사람이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데이터와 현실의 문제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당연히 투명하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형식의 데이터 제공도 필요하고요. 투명하고, 접근성이 높은 방식으로 공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동학대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시빅해커, 시민데이터저널리스트, 시민팩트체커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협업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라봅니다.
[함께 평화]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애석하게도 오늘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군대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최대한 적게 쓰려고 했으니까 조금만 참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올해 8월 말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TMI이지만 예비군 훈련은 금요일이었고, 나는 월요일에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 코로나19 확진 후 훈련에 참여하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내가 받아야 하는 훈련 이름이 더 당황스러웠다. 살아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저격수 훈련’이라니. 도대체 저격수 훈련은 어떤 사람들이 끌려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현역 시절에 ‘특급사수’ 이력이 있으면 차출당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커뮤니티 글이 검색됐다. 불현듯 8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논산훈련소 사격장은 너무 더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여름에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외부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힘들다. 그때의 나도 그랬고, 빨리 쉬고 싶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단 한 번에(!) 20발 중 18발을 맞췄다. 사격 훈련이 끝날 때까지의 휴식은 물론이고, 어쩌다 보니 중대 1등을 기록해서 특급사수 표창까지 받았다. 그게 내 인생 마지막 특급사수였다. 물론 2년 가까운 군 생활에서 사격 훈련은 한참 더 있었다. 하지만 멋모르던 훈련병 시절 이후 나는 사격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 나름의 계기가 있었다. 내가 생활했던 부대 안에는 동원훈련을 위한 사격장이 있었다. 사격장 뒤로는 순찰로가 있었고, 사격이 진행되는 동안엔 안전을 위해서 순찰을 하지 않았다. 군 생활 절반이 채 안 되었던 시기로 기억하는데, 영점 사격을 한창 하던 중 순찰로에서 병사 두 명이 내려오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총기의 조준선 너머로 보이는 표적이 단순한 종이, 플라스틱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총 쏘시는 거 좋아들하시니까 마지막 훈련 열심히 받고 가세요” 마지막 예비군 훈련은 운이 좋게도 3시간이나 일찍 끝났다. 어떻게든 집에 일찍 가고야 말겠다는 예비군들의 집념이 만들어 낸 사격 우수 성과 덕분이었다. 그런데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마냥 유쾌하진 않았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들었던 교관의 말이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뭘 위해서 오늘 총을 40발이나 쏜 걸까? 사격을 즐거워해도 되는 걸까?’ 전투복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내 손에 있던 총기가 향했던 곳엔 종이 표적지가 있었지만 세계 곳곳에 있는 누군가의 손에 있는 총기는 살아있는 사람을 향하고 있다. 분쟁, 갈등, 투쟁의 역사에 적혀있는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2023년의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과거의 한반도를 비롯해 수많은 곳에서 사람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벌어졌다. 누군가에겐 투쟁이었고, 누군가는 분쟁 혹은 전쟁이라 표현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분쟁과 전쟁은 비단 사람의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한국 전쟁이 시작된 지 70년이 넘은 지금도 한반도에선 ‘빨갱이’, ‘종북좌파’ 같은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념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시계가 느린 분들이 참 많다.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철 지난 이념을 악용하는 사람도 참 많다. 없는 간첩도 만들어 내던 시대보다야 덜 하겠지만 여전히 북한에 대한 적개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분쟁과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도 만들어 냈다.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명제다. 평화가 필요하고,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답은 사실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을 보며 한 가지 확실한 건 ‘힘에 의한 평화’와 같은 거짓말은 하지도, 믿지도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내 무장조직 하마스의 군사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였다. 그 큰 차이가 평화를 만들어줬을까? 오히려 평화를 위한 노력 대신 큰 힘의 차이를 만들어 상대를 억압한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 아닐까? 너무 뻔한 말 같지만 그래서 진짜 평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배경엔 분쟁과 전쟁 속에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지속적인 관심이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총구를 들이밀면 총구가 돌아올 것이다. 반대로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