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함께 안전] 수많은 ‘이름에게’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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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더 안전한 노동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1

그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습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이었기에 고등학교 방학 기간에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 노동을 했고, 취업을 위해 진로도 변경했습니다. 이 청년은 언제나 성실했지만 여느 20대가 겪는 것처럼 취업의 문턱은 높았습니다. 원했던 일자리는 아니었지만 2018년 9월 화력발전소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경험을 쌓아 더 안정적인 일자리로 옮기길 꿈꿨습니다. 첫 월급으로 엄마가 평소에 즐겨 먹고, 쓰던 비타민, 보습크림, 홍삼을 사오는 살가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2

그는 엄마가 해준 시금치 나물을 좋아했습니다. 누나들과 가족을 참 아꼈습니다. 노래도 좋아하고, 기타 연주도 잘 했습니다. 수학을 특히 잘했던 그는 수학과로 진학해 성적 장학금을 받기도 했지만 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지 고민했습니다. 군대를 졸업한 후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시간이 남을 때마다 아버지가 일하던 평택항에서 일과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일해서 번 돈으로 누나, 조카들에게 간식을 베풀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아빠는 핸드폰에 그의 번호를 ‘삶의 희망’으로 저장했습니다.

#3

그는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했습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배구선수였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배구를 했지만 꿈을 향한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배구부 내 학교폭력 피해를 겪었고, 배구선수의 꿈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돈을 벌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직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결심했고, 엄마는 그에게 전망이 있다고 생각한 애완동물과를 추천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그는 한 대기업 통신사의 콜센터에 ‘실습생’으로 취직하게 됐습니다.


앞서 설명한 세 사람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때로는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했고, 가족을 아끼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는, 내 주변 어딘가, 혹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느껴지시나요?

출처: Unsplash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던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는 2018년 12월 10일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사망했습니다. 

엄마가 해준 시금치 나물을 좋아했던 물류기업 동방의 일용직 아르바이트 노동자 이선호 씨는 2021년 4월 22일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했습니다.

친구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했던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엘비휴넷 노동자 홍수연 씨는 업무 중 지속적인 폭언을 듣고, 실적압박을 받은 뒤 2017년 1월 23일 섬진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고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앞의 이야기를 듣고 보시니 조금 다르게 느껴지시나요? 개인적으로 저는 산업재해 사고를 마주할 때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보곤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다 보면 너무나 평범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걸 자주 느낍니다. 이 습관은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이후 생겼는데요. 동갑내기였던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여러모로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일하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

사실 산업재해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 건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이후부터였습니다. 김용균 노동자와 저는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득권은 언제나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를 마주하며 한편으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운이 좋게도 키보드와 모니터 앞에서 노동을 하고 있던 저는 상대적으로 안전했기 때문에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노동을 하는 김용균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해 고민할 일이 없었으니까요. ‘나는 상대적 기득권이어서 너무 쉽게 산업재해 문제를 외면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어떤 일터가 안전한 일터인지 묻는다면 정확한 답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적어도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문장은 너무 당연하지만 한국에선 당연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너무 많은 노동자가 일하러 출근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멀쩡히 살아서 일하고 있는 우리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상대적 기득권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산업재해를 돈의 문제로 보는 접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산업재해로 기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내 주변, 혹은 또 다른 내가 일하다 죽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돈을 이유로 일하다 죽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외면한다면 김용균, 이선호, 홍수연과 같은 또 다른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어쩌면 나 혹은 당신의 이름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수많은 이름이 헛되지 않도록

저는 잊고 싶지 않은 일이나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음악을 이용하는 편입니다. 특정한 가사를 들으면 장면이나 얼굴이 떠올라서 시계를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인데요.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 이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가수 아이유의 ‘이름에게’였습니다. TMI를 조금 풀자면 곡을 부른 아이유 씨는 2017년 콘서트에서 이 노래가 “어디에 살고, 무슨 직업을 가졌고 이런 조건 없이 어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하는 위로 같은 곡”,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잘 골라서 사람으로서 쓰고 사람으로서 부른 곡”이라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 곡은 아이유 씨가 조금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창에 집중하기 위해 가사를 작사가 김이나 씨에게 부탁한 노래이기도 한데요.

저는 12월 언저리가 되거나 산업재해 사고 소식을 볼 때마다 이 곡을 항상 떠올립니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위로의 가사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다짐의 가사로 느껴지기도 해서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마음을 되새길 때도 찾아 듣곤 합니다. ‘김용균’, ‘이선호’, ‘홍수연’을 비롯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수많은 이름들이 헛되지 않도록 일하다 죽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노래와 함께 산업재해 문제에 관심을 가져 기억해야 할 이름이 이제는 더 생기지 않길 바라며 곡의 마지막 가사를 공유합니다.

수 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참고자료

내 아들, 내 친구, 우리 모두의 김용균(한겨레21.2018.12.28)

정규직 전환 희망하던 평범한 청년의 죽음(발전산업신문.2018.12.12) 

“일터엔 주인잃은 전공노트…꿈도 희망도 안전부재에 스러져”(한겨레.2021.05.09) 

“우리 딸 수연이 죽음 때도 반짝 관심…‘다음 소희’ 더는 없어야”(한겨레.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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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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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위해 하는게 일인데 일로인해 죽는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쓰립니다. 노동이 존중받을 수 있길 바라요.

이웃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청년이었다는 것. 영화 '반지의 제왕'을 좋아했던 청년이었다는 사실...그런 평범한 사실이 주는 울림이 있네요.
저도 같은 생각을 자주해서 더 공감하면서 읽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저희 아빠도 공장에서 일하는데 기계 때문에 옷에 구멍이 나거나 손에 화상을 입는 일이 빈번하게 있어요. 나나 내 가족의 일이 될 수 있는 산업재해가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잘 예방되면 좋겠습니다.

'노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느낌입니다.

열심히 노동을 하는 사람을 뒤쳐진 사람,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으로 여기며, 투자 공부를 해서 경제적 자유를 실현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사람, 사업을 벌여야만 한다고 설파하는 사람들을 보니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자본과 투자 없이 사회는 가능할 수 있지만 노동 없이 사회는 불가능한데 말이지요.

특정 노동은 더욱 그렇게 여겨지고 기피하게 됩니다. 그 노동이 필수적인데도 말이지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이윤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일하는 현장에서의 기본적인 안전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겠지요.

노동이 존중 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주변에나 있을법한 사람들이라서 더 일상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금은 누구라도 일하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라는 말에 더 공감되는데요. 왜 일을 해야하는지를 돌아보게 되네요.
글에서 언급하신 분들의 사망 사고와 기사를 읽으면서도 멀지않은 사람들이라고 느끼긴 했습니다만 이 글을 읽으니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사회가 되길...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산업재해로 기업이 위축될 것을 우려할 것이 아니라 내 주변, 혹은 또 다른 내가 일하다 죽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 중대재해처벌법 등 산업재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민을 하게 되는 지점이었는데요, 또 다른 나를 관점으로 두고 나니 스스로를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네요.
효과적이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름에게 토론을 진행하는 것은 함께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