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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독성” 인정됐지만… “인체 무해” 언론 보도 여전히 방치
2024년 9월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13년째 되는 달입니다. 2011년 9월, 보건당국은 원인 불명의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13년이 흘렀지만 참사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지난 9월 20일, 피해자 41명이 13년만에 구제 급여 대상자로 선정되었고, 관련 재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디어 감시 매체 뉴스어디는 '가습기 살균제' 관련 보도를 살펴보다 놀라운 기사를 찾았습니다. "인체에 무해", "저독성 인정" 등의 문구가 담긴 가습기 살균제 홍보성 기사(기사형 광고)가 정정 없이 남아 있었습니다. 피해자에게 당시에 이 기사를 본 적 있는지, 지금 이 기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습니다. 뉴스어디는 피해자와 함께 기사의 책임을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책임을 물었을까요? 언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총 2편으로 된 기사의 1편을 먼저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눠보아요. *여러분의 후원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어디를 지속하게 하는 힘입니다.   뉴스어디를 후원해 주세요. (뉴스어디를 클릭 후, 응원 페이지에서 후원이 가능합니다) “전 국민 상대 흡입독성 실험한 것”…서울고법,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성분 유해성 첫 인정 “영국 저독성 인증받은 항균제”, “인체 무해”⋯ 6개 매체 최소 10년간 홍보 기사 쏟아내  살균제 피해자가 수집한 기사 단서로 10여개 “가습기 인체 무해” 홍보 기사 방치 사실 확인 “가습기 살균제 안전하다” 홍보 기사  써 온 언론들, 법원 판결 뒤엔 정부∙가해 기업만 비판 지난 1월 11일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메이트’ 제조사 SK케미칼, 유통사 애경산업 전직 대표가 항소심에서 금고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다. 재판부는 “어떠한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상품화 결정을 해 전 국민을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의 만성 흡입독성 실험이 행해진 사건”이라고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규정했다.  이로써 2018년 관계자들이 유죄를 선고받은 ‘옥시싹싹’을 포함해 피해를 야기한 모든 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이 법정에서 인정됐다. 참사가 알려진 지 13년 만이다. 지금도 검색되는 “살균제 인체 무해” 기사⋯94년부터 10년간 보도돼 가해 기업에 유죄를 선고한 판결 내용은 크게 보도됐지만, 최소 10년 동안 이 가습기 살균제를 홍보하는 기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언론은 없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부모이자 피해 당사자인 이은영 씨는 2015년부터 모아온 ‘살균제 홍보’ 기사를 <뉴스어디>에 제공했다. 1994년, 2002년, 2004년, 2005년에 실린 기사 10여 개다. <뉴스어디>는 이를 단서로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더 찾았다. <뉴스어디>가 취재를 진행한 1월 말까지는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했던 것들이다. 아래는 해당 기사 목록. <가습기용 살균제 선봬>(매일경제, 1994년 11월 15일, 이채열 기자)<가습기 살균제 첫 개발>(한겨레, 1994년 11월 28일)<신상품/ 가습기 세균⋅곰팡이⋅물때 제거>(서울신문, 2002년 10월 15일)<가습기 사흘에 한번 꼭 청소>(경향신문, 2004년 12월 1일, 문주영 기자)<가습기 사흘에 한번 꼭 청소>(교차로신문, 2004년 12월 7일)<애경, 가습기용 방향제 출시>(머니투데이, 2005년 10월 25일, 최정호 기자)<[새상품] 심리적 안정⋅피로 회복 효과도>(일간스포츠, 2005년 10월 26일)<애경 ‘라벤더 가습기메이트’>(파이낸셜뉴스, 2005년 10월 28일)<아이방 가습기 준비하셨나요>(중앙일보, 2005년 10월 28일, 염태정 기자)<애경 ‘가습기메이트 라벤더향’>(문화일보, 2005년 11월 5일) 살균제 개발 첫해인 1994년 매일경제는 “독성실험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했다. 이후 “영국에서 저독성을 인정받은 항균제를 사용, 인체에 무해하다”(문화일보), “무해한 항균제를 사용한 것이 특징”(서울신문), “인체에 무해한 제품”(동아일보), “아로마테라피 효과와 비슷한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파이낸셜뉴스), “이 제품은 아로마테라피 효과에 의한 심리적인 안정감과 정신적인 피로 회복 효과까지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머니투데이), “가습기 전용 살균제를 사용하는 것도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것으로는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이 있다”(경향신문)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한겨레와 중앙일보는 가습기 메이트를 언급한 기사는 있지만 인체에 무해하다는 내용은 없었다. “인체에 무해하다”는 기사 내용과 달리  ‘가습기메이트’ 제조사 SK케미칼, 유통사 애경산업은 제품 출시 전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았다. 제품 출시 후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서울대 수의대 보고서도 외면한 것으로 지난 1월 11일 재판에서 확인됐다. “안전하다” 홍보 기사  써 온 과거엔 눈감나?⋯법원 판결 뒤엔 정부∙가해 기업만 비판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쓴 기사를 방치하던 언론들이 2024년 1월 11일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전 국민에 독성실험”을 한 것이라는 항소심 판결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10년 이상 가습기 살균제를 홍보하는 기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짚은 기사는 하나도 없었다. 가습기 살균제가 “영국에서 저독성 인정받은 항균제를 사용, 인체에 무해하다”고 했던 문화일보는 <12년 지나서야…가습기 살균제 등 ‘비감염질환 대비 체계’ 준비>(2023년 9월 15일)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막을 체계 준비가 늦었다며 보건당국을 비판했다. 살균제를 “인체에 무해한 제품”이라고 소개하던 동아일보도 “기업들이 하루라도 빨리 배상·보상 방안에 합의해 피해자의 어려움을 덜어줘야 한다”고 했다.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를 추천하는 기사를 쓴 경향신문은 “돈벌이에 눈이 멀어 소비자 안전은 뒷전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라며 가해 기업을 질타하는 사설을 썼다. “무해한 항균제를 사용한 게 가습기메이트 특징”이라던 서울신문은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막을 기관은 설립조차 되지 않고 있다”며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국회를 비판했다. 살균제 피해자 “광고로 돈 벌더라도 위법 대리는 언론의 선택지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인체에 무해하다”는 기사가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살균제 피해자 이은영 씨는 “이런 것들(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이 계속 남아 피해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위법을 대리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 언론의 선택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 20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살균제 홍보’ 기사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언론사를 대상으로 문제를 제기해 볼 생각은 없냐”고 묻자 이은영 씨는 “언론사가 그 기사가 남아있다는 걸 아직 모를까요?”라고 되물었다. 이 씨는 과거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기사 수정을 요청한 적 있었는데 “언론사가 ‘언론중재위에 신고하라’고 되레 큰소리를 친” 경험을 얘기했다. “기력이 없어 전화도 몇 분 못 하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이은영 씨가 정정보도를 신청하려 해도 쉽지는 않다. 언론중재위원회는 보도일로부터 6개월 이내 기사만 피해 구제 신청을 받는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자율 기구는 최대 90일 이내 보도만 심의하고, 대부분 경고에 그치고 언론에 주는 불이익도 없어 피해 회복 효과가 없다. 이 씨는 “(언론사가) 스스로 문제라고 인식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 이런 입장을 내면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이 씨 같은 피해자가 청구 가능 시일이 지난 보도에 대해 항의해 볼 방법은 없을까. <뉴스어디>는 피해자를 대신해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에 정정보도 등을 요청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마지막 홍보 기사가 나온 때는 2005년, 살균제 피해가 수면 위로 처음 드러난 때는 2011년이다. 보도 시점 등의 제한으로 언론중재위와 자율심의기구에 피해 구제 요청은 불가능했다. <뉴스어디>는 다른 방법을 활용했다. <경향, 20년 만에 ‘가습기 살균제’ 홍보 기사 정정⋯ ‘나 몰라라’ 언론도>에서 공개한다. 취재 박채린(rin@newswhe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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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차 늘리면 된다? 오답이다
국토교통부 “친환경 차량 증가세 뚜렷하다" 국토교통부가 2024년 7월 21일에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국내 신규 등록 차량은 823,000대다. 이중 휘발류차는 358,000대, 경유차는 70,000대, LPG차는 84,000대가 등록됐고, 하이브리드차는 240,000대, 전기차는 66,000대, 수소차는 2,000대가 등록됐다. 전체 등록 차량 비중에도 변화가 있었다. 친환경 자동차(전기차, 수소, 하이브리드)는 293,000대가 증가해 누적 2,413,000대가 등록됐다. 반면, 내연기관 자동차(휘발유, 경유, LPG)는 107,000대가 감소해 23,539,000대가 누적 등록됐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변화를 두고 “내연기관차(경유차)의 감소세와 친환경차의 성장세는 뚜렷하다.”라며 국민들이 자동차 시장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도록 “자동차 산업에 관심이 많은 국민에게 유용할 수 있는 맞춤형 통계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누적 차량 대수도 증가한다는 것 친환경차의 증가세가 뚜렷하고, 내연기관차의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만 보면 시장과 사회가 친환경으로 돌아선 듯 보인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친환경차가 늘어나도, 누적 차량 대수가 증가한다면 환경에 전혀 이롭지 않다. 2024년 상반기 기준, 국내 누적 차량 등록 대수는 26,134,000대, 전체 인구 51,271,480명이다. 즉, 국민 1.96명 당 1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수치도 더 적은 인구가 더 많은 차량을 소유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인구감소가 대두되고 있지만, 2023년에는 오히려 인구가 증가했다. 인구 증가에도 인구 대비 차량 소유 비율이 감소했다는 건, 인구 증감 속도보다 더 많은 차량이 등록됐다는 의미다. 즉, 인구보다 더 빠르게 차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친환경차 증가 ‘강조’가 아닌, 누적 차량 증가를 ‘우려' 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보도자료에 ‘친환경 차량 증가'를 강조한다. 마치 친환경이니 괜찮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지 않다. 국토교통부가 기후 위기를 걱정했다면, 친환경차 증가 강조가 아니라, 누적 차량 증가를 우려 했어야 한다. 현재 기후 위기는 부족이 아니라, 과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물질 소비, 낭비와 폐기물이 감당안 될 만큼 많아서 발생한 것이다. 너무 많다의 해법은 감소가 되어야 한다. 누적 차량 증가를 우려해야 한다고 한 이유다. 이 차원에서 보면 도로교통부의 보도자료는 “도로교통부는 기후위기에 더 빨리 다가가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이다. 심지어 도로교통부가 말하는 하이브리드 차는 친환경도 아닐뿐더러, 에너지 발전 비중을 살펴보면 국내에 진정한 친환경 차량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국내엔 사실상 친환경 차가 없다 하이브리드차란, 전기와 내연기관 엔진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전기와 석유를 같이 쓴다는 말이다. 실제 증가량도 하이브리드차가 전기차보다 2배 가량 높다. 하이브리드차는 전기차로 가는 여정의 징검다리로 여겨진다. 전기차 충전 설비 확충에 시간이 걸리니, 하이브리드차를 먼저 지원해 설비 확충까지 시간을 벌자는 전략이었다. 이런 이유로 하이브리드차를 친환경으로 홍보하고 정부 보조금을 지원했었다. 당연한지만 석탄과 석유를 동력으로 하고, 석탄과 석유로 만든 전기가 동력인 자동차는 친환경이 아니다. 친환경 석유차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전기 생산 동력이 화석 연료라면 친환경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석탄으로 전기를 만들어 전기차를 운전한다면, 이는 단순히 화석연료를 다른 화석연료로 대체하는 것밖에 안 된다."1) 생산 단계가 아닌 최소 운행 단계에서라도 친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재생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쓰는 전기차가 운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보면 이 또한 한참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4년 5월 기준 국내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발전 비중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 발전 에너지 중 재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14.4%에 불과하다. 나머지 85.6%는 비재생에너지(석탄, 원자력, 천연가스)로 생산 중이다. 전기차의 전체 비중이 적고, 석유와 함께 운행되는 하이브리드차의 수치가 올라가는 상황, 이에 더해 재생 에너지 발전 마저 적은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국내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차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탄소 배출 세 번째로 높은 ‘수송' 분야, 전환 반드시 필요 수송 분야는 국내에서 반드시 탈탄소화 시켜야 할 분야다. 2023년 우리나라 수송 부문 잠정 탄소 배출량은 약 9,500만 톤이다.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한다. 산업과 에너지 전환 부문 다음으로 높다. 우리나라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2030년까지 수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6,100만 톤까지 줄이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무공해차(전기・수소차)를 450만 대까지 보급할 계획이다. 달성 여부는 요원하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이후 전기차 구매 심리가 위축됐고,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를 사겠다는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현대차도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을 2028년까지 40% 늘려 133만 대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목표이긴 하나, 현대・기아차 국내 점유율이 73%인 것과 소비자 반응을 보면 하이브리드차의 증가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승용차, 승합차, 버스의 평균 사용 연한은 15~20년이다. 즉, 새로 생산되는 모든 차량이 재생 에너지를 연료로 쓴다고 해도, 모든 차량이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는 의미다.2) 이런 상황에서 하이브리드 차의 판매 증가는 갈길 바쁜 탄소 감축과 전환을 더욱 멀어지게 한다. NDC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선, 수송 분야 탄소 배출량을 현재보다 30%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매년 10%씩 감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기차를 늘리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전기차는 징검다리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전기차는 목적지가 아니다. 최종 목적지로 가는 징검다리일 뿐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대중 교통 체계 구축을 위한 징검다리 말이다.2) 도로교통과 수송 분야 탈탄소의 목적지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전기차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개인 이동 수단 없이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자동차의 수명 주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누적 차량이 줄어들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적절한 정책과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이렇다. 도로 폭을 좁히고 인도를 확장  (재생 에너지 만을 연료로 하는) 친환경 대중교통 확충 고속도로의 주행 허용 속도 낮추기독일의 경우 130km로 제한시 190만 톤, 100km 제한시 540만 톤 감축 효과2) 자동차 제품 설계시 최고속도 제한예) 현재 200km를 100km로 제한 특정 거리 이동에는 탄소 배출이 많은 이동수단(항공 등)을 이용 금지 정책화예) 100km 이내에는 항공 이용 불가 집과 직장, 의료시설, 편의시설 접근성 개선15분 혹은 20분 내 도보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역 계획 정책 수립 정부는 이처럼 가능한 대안을 최대한 마련하고, 토론하고, 조율하고, 반영해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책에는 자동차의 절대량을 낮추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대안이 나와도 탄소 중립을 이룰 수 없고, 기후 위기를 피할 수 없다. 승소한 기후소송, 패러다임 전환으로 대응하는 목표와 방안이 나오길 현대차 창업주 정주영은 “인체에 비유하면 고속도로는 혈관과 같고, 자동차는 혈관을 흐르는 피와 같다. 이 때문에 좋은 자동차를 싸게 공급하는 것은 인체 내에 좋은 피를 공급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3) 라고 말했다.  좋은 차를 싸게 공급한다, 이것이 그간의 패러다임이었다. 이 패러다임 때문에 우리 일상의 자가용은 삶의 부품이 아닌 핵심이 됐다. 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친환경 차량 늘리기가 아니라, 차량 줄이기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 이동수단 없이도 불편함이 없는 삶의 전환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이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개입해야 할 가장 최우선 지렛대다.4) 기후소송 승소로 탄소중립법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났다. 정부는 2030년 이후의 탄소 중립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새로운 방안에는 늘리는 방식이 아닌, 줄이는 방식이 채택되고, 줄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나 같은 뚜벅이와 따릉이 시민을 위해선 더더욱 그런 방안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론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것도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자가용의 대안이 훌륭한 대중 교통이라고 믿지만, 사실 진짜 대안은 훌륭한 동네다. 그것이 자동차를 사회 조직의 중심 원칙이 아니라 삶의 한 부품으로 되돌리는 작업의 핵심 원칙이다.5) 최근 읽은 책에서 발견한 부분이다. 공감이 되어 밑줄을 그었다. 그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말 그대로 자동차 운전은 아무도 좋게 평가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나쁜 냄새로 공기를 오염시키는 까닭에 중단해야만 한다. 산책이나 계속하자. 발로 걸어다니는 것이 최고로 아름답고 좋고 간단하다. 신발만 제대로 갖춰 신은 상황이라면 말이다.”6) ※ 참고 자료 ※ 1)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빌 게이츠/ 김영사/ 2021) p.198 2) <기후책> (그레타 툰베리 외/ 김영사/ 2023) p.284, 348, 350 3)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정주영/ 제삼기획/ 2001) 4) <ESG와 세상을 읽는 시스템 법칙> (도넬라 H. 메도즈/ 세종/ 2022) p.316 5) <자연 자본주의> (폴 호컨 등/ 공존/ 2011) p.125 6) <산책> (로베르트 발자/ 민음사/ 2016) p.19 * 친환경차의 신규 등록 대수와 누적 등록 대수의 변화가 일치하지 않는 건, 폐차가 등록 말소가 포함됐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보도자료에는 폐차나 등록 말소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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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도 미련도 없이… “제가 아버지를 죽였습니다”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 20화]
붉은색으로 염색한 풍성한 머리로 이마와 뒷목을 덮은 청년이 스타벅스에 나타난 건 늦은 오후였다. 검은색 뿔테 안경과 오른 손목의 은색 팔찌는 조명으로 더 반짝거렸다. “접니다, 기자님….” 키 180cm쯤 되는 호리호리한 청년은 내가 앉은 자리로 걸어와 고개를 숙였다. 검은색 셔츠 탓에 붉은색 머리카락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저 도영입니다. 강도영.” 그럴 리가.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가 씩 웃었다. 하얀 이가 도드라졌다. 3주 전에 가석방으로 출소한 사람 치고 너무 알록달록한 거 아닌가 싶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강도영(가명)과 체격이 너무 달랐다. “저 강도영 맞습니다. 편지로 살 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교도소에서 60kg 정도 뺐습니다.” 강 씨는 뇌출혈로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간병하다 사망에 이르게 한 존속살해 혐의로 2021년 8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그해 11월 프로젝트 ‘누가 아버지를 죽였나’를 통해 그의 사연을 자세히 보도했다.  간병노동과 영케어러(young carer)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떠올랐다.(관련기사 : <“쌀 사먹게 2만원만..” 22살 청년 간병인의 비극적 살인>) 그때 법정에서 본 강 씨는 130kg의 거구였다. 대구교도소에서 면회했을 때도 인상은 비슷했다. 면회실 투명창 너머의 강 씨는 몸집이 크고, 얼굴은 둥글고, 표정은 어두웠다. 그를 직접 본 건 그 두 번이 전부였다. 지난 7월 30일 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셜록은 그와 편지로만 소통했다. 지난 8월 20일, 대구 그랜드호텔 1층 스타벅스에 반쪽이 된 얼굴로 나타난 그를 알아보지 못한 건 당연했다. 무엇보다 ‘강도영 알아보기’를 방해한 건 내 가슴속 편견이었다. 존속살해 혐의로 복역 후 갓 출소한 가난한 청년은 머리 염색이나 액세서리를 하지 않을 테고, 웃음기 없는 위축된 얼굴이나 울분 가득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란 고정관념 말이다. 편견을 버린 뒤에야 ‘병든 아버지를 굶겨죽인 패륜아 사건’의 숨겨진 진실이 보였던 2021년 11월 그때처럼, 나는 내면의 생각부터 정리해야 했다. 살인범이란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야 하는 스물다섯 살 강도영과의 대화는 그 후에야 가능할 듯했다. 이렇게 다짐을 해도 입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저기… 편지로 이야기한 대로, 많은 사람이 도영 씨 근황을 궁금해 해요.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구요.” 강 씨는 ‘패륜살인 가해자’로 언론에 처음 등장했다. 셜록의 보도로 그를 향한 여론은 동정과 연민으로 바뀌었다. 밥을 사고 싶다는 사람부터 복지 혜택을 알려주겠다는 사회복지 공무원까지, 강 씨의 안부를 묻는 독자의 문의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관심은 고맙지만, 기자님과 인터뷰를 끝으로 저는 세상에서 조용히 잊히고 싶습니다. 제가 잘난 일을 해서 관심 받은 것도 아니고….” 오래 생각한 일인 듯 강 씨의 낮은 목소리는 단호했다. 가석방으로 출소한 지 약 3주가 된 때, 강 씨는 친구 집에 머물고 있었다. 출소 후 주민등록을 마치자마자 그에게 날아온 건 돈을 갚으라는 독촉장이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채무였다. 강 씨는 상속 포기 등 생소한 일을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다. “예전에 아버지랑 살던 집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거기서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사망하고 자신이 용의자로 체포된 현장, 그의 옛집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의 근황만이 아니라 정말로 누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지, 그때의 이야기를 강 씨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터뷰 장소와 날짜가 잡혔다. 9월 6일,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이 대구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다세대 주택이 빽빽한 골목 사이로 덥고 습한 바람이 불었다. 강 씨는 역시 ‘컬러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가 아버지와 함께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을 내고 살던 다세대 주택의 2층은 비어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부터 쭉 그랬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마당 한쪽 구석에서 저 혼자 높이 자란 엄나무의 이파리만 무성했다. “저 때문에 세입자가 안 들어오는 건가 싶어, 1층에 살던 주인집 할머니에게 죄송하네요. 아버지 쓰러지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그 할머니가 10만 원도 빌려주셨는데….” 강 씨의 아버지는 2020년 9월 13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강 씨는 군 입대를 앞둔 21세 휴학생이었다. 갑자기 간병청년이 된 그에겐 돈이 없었다. 약 2000만 원에 이르는 아버지 치료비를 삼촌이 댔다. 아버지가 사망한 이듬해 5월까지, 월세·도시가스·전기요금·통신료 등 모든 게 밀렸다. 당시 강 씨는 집주인 할머니에게 10만 원을 빌렸다. 강 씨가 외부인에게 빌린 유일한 돈이다. 그의 삼촌도 더는 병원비를 댈 수 없게 된 2021년 4월 23일, 강 씨는 사지가 마비된 아버지를 퇴원시켜 집에서 간병했다. 약 보름 뒤인 5월 8일, 아버지는 안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그는 왜 공공기관에 도움 요청을 하지 않았을까. “공적 도움을 아예 안 알아본 건 아니에요. 주민센터에 전화로 물었는데 ‘아버지 장해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 진단서를 받으려면 사설 앰뷸런스 이용 등 최소한 10만 원 이상이 들더라구요. 그때 저는 쌀값 2만 원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 돈을….” 강 씨는 당시 친구들에게도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에요. 친구들이 ‘왜 우리에게 말을 안 했느냐’고 저를 질책하더라구요. 제 성격 탓이에요. 저는 친구들에게 신세 지기 싫었고, 그게 타인에게 부담 주지 않는 배려라 여겼어요. 근데 친구들은 반대로 제 태도에 실망을 했더라구요.” 후회하는 만큼 강 씨는 출소 후 조금 달라졌다. 이제 그는 타인에게 어려움을 말하고, 필요할 땐 도움도 요청하곤 한다. 그의 친구는 출소 후 지낼 거처를 제공했고, 친구 부모님은 강 씨가 주민등록을 할 수 있도록 주소지를 제공했다. 강 씨는 ‘전태일과친구들’ 관계자와 함께 공공기관을 찾아 긴급생활지원금도 신청했다. 대구 수성구청은 강 씨에게 임시 거주지를 제공했고, 9월 현재 그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 곧 청년임대주택에 입주할 예정이다. 강 씨는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건 이기적이고 나약한 태도가 아닌 시민의 권리라는 걸 배우고 있다. 교도소에서 편지로 소통할 때, 강 씨가 가장 자주 언급한 건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집”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즈음에 엄마와 헤어졌다. 일터에 나간 아버지는 늘 밤늦게 귀가했다. 캄캄한 유년의 빈집은 그의 내면에 트라우마로 남은 듯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에도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준 것 역시 빈집이었다. “사람들은 아버지 대소변 치우는 게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그건 별 고통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아버지가 병원에 있던 4개월간 혼자 집에서 지낼 때 정말 막막하고 힘들었거든요. 아버지가 퇴원해 집에 돌아온 4월 23일, 저는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어요. 아,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아버지가 옆에 있구나….” 그 안도감은 또 다른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사실 강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도시가스가 끊긴 집에선 끼니 해결도 어려웠다. 돈을 벌어야 했다. 당혹스런 일은 아버지 퇴원 바로 다음 날인 4월 24일 밤부터 벌어졌다. “편의점에서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어두운 집에 홀로 두고 일하러 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혼자 있으면 아버지도 나처럼 막막할 텐데, 혼자 있다가 돌아가시면 어쩌나… 별 걱정이 다 들고 너무 불안했죠.” 이미 깊은 우울증을 앓던 그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일주일 뒤인 5월 1일 강 씨는 편의점 사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았다. 강 씨는 “그날의 해고가 결정타였다”고 회고했다. “굉장히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였거든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알바를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일을 제대로 못하고, 그러다 해고당하고…. 제대로 되는 일도 없고, 나아질 희망도 없고, 노력을 한다고 내일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다 엉망이었죠. 편의점에서 해고당한 날 모든 게 끝장났구나 싶었어요. 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도 컸구요.” 바로 그날부터 강 씨는 아버지가 누워 있는 안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일주일 뒤 아버지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재판부는 강 씨의 방치를 고의에 의한 존속살인으로 판단했다. 약 3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에둘러 가지 않고 강 씨에게 물었다. “재판부 판결대로, 아버지를 본인이 죽였다고 생각합니까?” 강 씨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하늘을 한 번 보고, 땅도 잠시 바라봤다. 작은 한숨도 뱉었다. “그게… (잠시 침묵) 제가 그런 거죠. 제가 아버지를 죽인 거죠.” 뜻밖이었다. 강 씨는 재판 과정에서 유기치사를 주장했었다. 근데 이제 와서 왜? “제가 아버지 누워 있는 방에 안 들어갔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고…. 아버지를 죽일 목적으로 안 들어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안 들어가서 돌아가신 건 맞으니까….” 뭔가 애매한 말이었다. 강 씨의 이런 태도는 처음이 아니다. 사건이 벌어진 그때부터 모든 게 그랬다. 판결문에도 당시 상황이 담겼다. “피고인(강도영)이 피해자(아버지)의 사망을 의욕하고 적극적인 행위로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켰다고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은 피해자를 사망하도록 놔두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도 피해자가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호소하면 물과 영양식을 호스에 주입하는 등 포기와 연민의 심정이 공존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대구지법 제11형사부 판결, 2021고합248) 여전히 그때의 심정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듯했다. 내가 따지듯 물었다. “그때 도영 씨가 안방에 들어갔으면 아버지가 생존했을 거 같아요?” “(한참 동안 침묵) 확답하긴 어렵네요. 아버지는 제 방치가 아니라 뇌출혈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긴 하죠. 퇴원할 때 의사도 ‘언제든 사망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요. 사망 원인은 누구도 알 수 없죠.” 부검 결과 아버지의 사인은 ‘영양실조에 따른 폐렴’이었다. 언뜻 강 씨의 방치에 따른 결과로 보이지만, 아버지는 병원에 있을 때부터 영양실조였다. 입원 당시에도 생명이 위중한 응급상황이 벌어졌다. 아버지의 사인과 사망 시점을 엄밀히 따져야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판정하기 어려운 내면의 풍경, 즉 ‘강 씨가 아버지의 죽음을 의도했는지’ 여부만 쟁점이었다. 그에게 다시 물었다. “누구도 사인을 정확히 모르는데, 강도영 씨만 처벌받았잖아요! 그게 억울할 수도….” 강 씨가 내 말을 끊었다. “억울하지 않아요. 정말로 합병증으로 사망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확실한 건 아니잖아요. 결국 확실한 사실로 남은 건, 제가 책임을 안 졌다는 거잖아요.”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고 말하던 때처럼 강 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도의적인 책임에서 비롯된 감정일까? “누구를 탓하고 원망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결과가 달라질 일도 없잖아요. 그냥 제가 책임을 못 졌으니까… 아픈 아버지는 제 책임이었으니까요. 제가 방에 들어가지 않은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강 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에게 벌어진 일을 “무슨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어떤 말을 해도 세상 사람들은 믿지 못할 것”이란 아쉬움도 밝혔다. 교도소에서 그때의 사건을 수없이 곱씹어 봐도 답을 딱히 내릴 수도 없었다. 생각할수록 마음만 괴로웠다. 결국 그는 “모든 건 내 책임”이라고 스스로 정리했다. 스물한 살 때 겪은 그 엄청난 일을 자기의 언어로 정리해서 설명하려면 아직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한 듯했다. “구치소, 교도소 감방 동료들에게 왜 구속됐는지 설명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거든요. 있는 그대로 다 이야길 했는데, 다들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더라구요. 감방에 와서야 위로의 말을 처음 들어봤는데, 기분이 디게 묘하더라구요.” 셜록 보도 직후, 강 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에 시민 약 6000명이 서명했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강 씨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고, 김부겸 당시 국무총리가 복지 사각지대에 대해 사과했다. 강 씨는 역시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감방에서 TV 뉴스를 보는데, 제 이야기가 나오니까 얼떨떨 하면서도 힘을 얻는 계기가 됐죠. 모두가 나를 비난하고 나쁘게 볼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했구요.” 강 씨에게 “다시 아버지가 쓰러진 스물한 살 그때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것 같느냐”는 다소 잔인한 질문을 던졌다. 수없이 생각했는지 막힘 없이 답이 나왔다. “아버지와 제가 같은 처지로 돌아간다면, 아버지를 퇴원시키지 않고 제가 멀리 도망갈 거 같아요. 그러면 아버지는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잖아요. 최소한 아버지는 살해 피해자, 저는 살인자는 되지는 않겠죠.” 아픈 부모를 병원에 두고 연락 끊어버리기. 벼랑 끝으로 몰린 가난한 누군가에겐 최악의 수가 곧 최선의 선택이란 걸, 강 씨는 교도소에서 배웠다. 그가 홀로 아버지를 돌볼 때 도움의 손을 내밀거나, 연락을 끊어버리라는, 최악이면서 최선인 길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강 씨는 학업을 이어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강 씨의 꿈은 힙합 뮤지션이다. 그는 구속 전부터 작사·작곡을 했다. 기존에 다니던 대학의 전공은 음악과 거리가 멀었다. 다시 수능을 보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알바 등 일자리도 알아보는 중이다. 그는 자립의 중요성을 구속 기간 내내 생각했다. 가족이 없는 그는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공부도 해야 한다. 버거운 길을 앞둔 그에게 다시 물었다. “돕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왜 다 거부하고 세상에서 잊히고 싶다는 겁니까?” 그가 말했다. “계속 간병살인 청년으로 불리면서 과거에 묶이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잖아요. 좋은 일도 아니고, 제가 잘한 것도 없잖아요. 좋은 음악인으로 성공해서 유명해지고 싶어요.” 인터뷰는 그가 살던 집 근처에서 끝났다. 우리는 어느 허름한 치킨집 앞에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큰길 쪽으로, 강 씨는 그의 옛집 골목 쪽으로 향했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비는 내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봤다. 당장 재개발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누추한 동네의 골목길에서 강 씨 뒷모습만 유난히 알록달록하게 보였다. 카카오택시는 금방 도착했다. 서울행 KTX를 타러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 더는 강 씨를 간병살인 청년이라 부르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나에게 한 당부이기도 했다. 래퍼 강도영이 어떤 곡을 들고 세상으로 나올지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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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울 원전 3・4호기 짓고, 재생에너지 발전 막는 정부. 뭔 짓거린가
2년 전 예정된 신한울 원전 3・4호기 원전 건설 허가 “고사 직전인 원전 살리겠다" 정부가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을 허가했다. 준공 예정 시기는 약 8년 뒤다. 3호기는 2032년 10월에, 4호기는 2033년 10월에 완료될 예정이다. 2년 전에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난 2022년 6월 16일, 정부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를 발표하며 “탄소중립・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신한울 원전 3・4호기 건설 조속 재개, 운영 허가 만료 원전 계속 운전 등으로 원전 비중을 제고"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10일에는 한발 더 나아가, “원전 중소・중견 기업 ‘돈’ 걱정 사라진다"라며 신한울 원전 3・4호기 보조기기 계약 체결 시 선금 30%를 선지급 하는 ‘선금 특례 제도'까지 마련했다. 계약을 체결해도 실제 납품할 때까지는 대금을 받기 어려웠던 것을 해결해주겠다는 취지였다. 해외 판로 개척도 열심히 했다. 지난해 5월에는 국내 원전 수출 경쟁력 향상을 위해 48억의 신규 수주 지원을 했고, 그 결과 지난 7월 17일에 체코 원전 30조 원 수주에 성공했다. “고사 직전의 원전 생태계를 복원"해서 “탄소중립이자 국부 창출의 주역”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 참여까지 독려하고 있다. 지난 5월 CF100 인증제(Carbon Free 100, 원전・수소 등이 포함된 무탄소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100% 사용) 창설을 발표했다. 기업의 원전 에너지 사용량을 늘려, 탄소중립을 돕겠다는 취지다. 원전으로 기후위기를 잡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국내 기업 82%는 “CF100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수출로 먹고 사는 국내 기업에게 국제 사회 요구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국내 기업에게 요구하는 건 RE100(재생에너지 100%로 전력 생산)이다.  만약, 정부가 정말 기업을 생각했다면 원전을 말할 것이 아니라,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높이고, 전력 망을 확충하도록 지원했어야 한다. 비단 기업만이 아니라, 탄소중립과 기후위기를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어야 한다. 정부는 그렇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재생 에너지는 고사 중이다. 진짜 고사 중인 재생 에너지, 아프리카보다 뒤처지고 OECD 꼴찌 수준 정부가 원전을 살리는 사이, 재생 에너지는 고사 중이다. 국내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은 아프리카 평균보다 낮아졌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OECD 가입 국 중 꼴찌 수준이다. 영국의 글로벌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발전량 중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중은 5.4%였고, 아프리카는 4.6%였다. 하지만, 2023년에는 아프리카는 6%가 된 반면, 우리나라는 5%로 하락했다. 지지부진한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비중을 늘리는 게 현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태양광과 풍력 등은 탄소중립 달성에 가장 유용한 에너지로 인정받는 에너지다. 정부의 역할은 이 에너지를 확충할 제도와 방안을 마련하고, 지원해야 한다. 또한, 관련해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지역민(예를 들어 송전탑 건설 등)과 토의하고 토론하며 의견을 수용하고 반영해야 한다. 실제 정부는 주민과 대화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정부는 원전 강화를 말한 새정부경제정책방향 발표 당시 “재생에너지는 주민수용성에 기반하여 보급을 지속하되, 비중을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주민수용성에 대비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한다고 말한 것에 빗대어 보면, 정부 방향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부, 재생에너지 발전 규제 “사업 허가 안 준다” 주민 수용성 기반한다던 약속은 어디로? 주민수용성이란, 발전사업 개발사가 주민에게 일시적・영구적 피해를 보상하고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을 말한다. 정부가 말한 주민수용성이 진짜였다면, 재생에너지 보급에도 지역민의 의견을 구하고, 보급 중단에도 지역민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정부는 그러지 않고 있다. 산업통산자원부는 지난 9월 1일부터 재생에너지 신규 허가 규제를 시작했다. 이로 인해 태양광 발전이 가장 활발한 지역과 해상 풍력 발전량이 많은 제주도의 재생 에너지 신규 허가가 중단됐다. 허가 중단 이유는 “전력을 생산해도 송전 시설이 부족해서 전달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즉, 지역에서 생산해도 다른 지역으로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재생에너지 발전 단체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오히려 현재 이격거리 규제를 풀어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규제를 풀어서 재생에너지 발전을 독려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규제를 걸어 발전을 저해하는 모양새다. 송전시설이 문제라는 건, 정부 스스로 재생 에너지 생산 문제가 아니라, 송전 시설 확충이 문제라는 고백이다. 재생에너지 사업 허가 규제는 전기 전달의 문제를 전기 생산 차단으로 대처한 것이다. 만약 송전 시설이 문제라면, 정부가 나서서 더욱 주민과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게 마땅하다. 주민 수용성을 기반으로 조절하겠다고 한 말이 진심이라면 말이다. IEA “태양광 에너지 투자금이 다른 모든 에너지 투자금보다 많다" 국토 0.7%만 쓰면 2030년 탄소중립 경로 맞출 수 있어 과거에는 태양광의 투자 비용이 많다는 인식이 있었고, 실제로도 석탄과 석유 등 다른 화석 에너지에 비해 단가가 높았다. 하지만,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투자량이 많아져 가격은 싸졌고, 효율성도 높아져 면적 단위당 전력 생산량도 높아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태양광 에너지 투자금이 다른 모든 에너지 투자금보다 많다"고 말한다. IE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태양광 발전 투자량은 5,030억 달러이며, 그 외 에너지 투자량은 4,260억 달러다. 이러한 투자량에 힘입어 태양광 발전의 발전 단가는 싸지고 있고, 에너지 효율도 좋아져 더 작은 패널로 더 많은 발전도 이룰 수 있는 실정이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산지가 70%라 많아 태양광 발전이 용이하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이 높아져 현재 국토의 우리나라 국토의 0.7%만 사용해도 2030년 탄소중립 경로를 맞출 수 있다. 지역에서도 에너지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태양광 발전 움직임과 에너지 지역 자립 움직임이 강하다. 정부의 확장 의지만 있으면 재생 에너지 확장은 분명 가능한 일인데, 느닷없는 원전의 확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10년 뒤에나 완공되는 원전으로 어떻게 탄소중립을? 그와중에 암모니아 혼소 석탄 발전에 3조 투자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원전 완공까지 걸리는 10년의 기간 동안 에너지 부분 탄소중립을 어떻게 이루겠다는 부분이다. 신한울 원전은 약 10년 뒤에나 완공된다. 그 말인즉슨, 10년 내 신규 원전에 의한 전력 생산이 없다는 말이다. 당장 내년에 원전 완공이 가능하고, 바로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다면 정부의 원전 정책을 아주 미세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에 도대체 무슨 생각이 있는 건지 의문이다.  만약, 원전과 함께 재생 에너지 발전을 함께 늘리는 방향으로 설정했다면 어느정도 이해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줄이는 정책과 제도를 피고 있는 현 정부의 모습을 보면 과연 탄소중립 의지가 있는건지 의심스럽다. 당장 2030년의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지 않겠다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그 와중에 2030년부터 적용되는 ‘암모니아 혼소 석탄 발전’에 3조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퇴출 시켜도 모자랄 판에,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화석연료 기득권도 없는데 도대체 왜 화석연료 자원이 있는 국가의 경우 화석연료 추출 기업이나 지지자들의 기득권이 견고하다. 때문에 그들의 로비와 반대로 재생 에너지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해당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다르다. 화석연료 기득권이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오히려 빨라야 한다. OECD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꼴찌인 수준은 정부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 화석연료 자원이 없는 게 오히려 장점인 상황인데, 그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부족이 아니라 무능이다. 기업들이 반기지도 않는 CF100 인증제를 만들고, 당장 에너지 증가도 없고 2030년의 목표 달성도 어려운 원전을 전면에 내세우며 재생 에너지 발전은 줄이는 게 도대체 뭔 짓거린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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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연금개혁 똑바로 했잖아? 이런 얘기 안 했어💰
폴라리스 항해도 vol. 119 폴라리스 독자님들은 황금연휴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구직자(백수)라, 연휴의 영향을 받지 않고 평소와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요. 구직 활동을 하다 보면 마주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자기소개서의 나는 ‘일하고 싶어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라고 외치지만 막상 일하게 되면 퇴사를 꿈꿀 것 같다는 거예요. 예전엔 일자리에서 물러나 연금을 받으며 살 때가 되면 이런 딜레마도 끝나리라 생각했지만, 이젠 미래를 생각하면 공포심이 앞섭니다. ‘국민연금 고갈’은 공포를 키우는 데 일조했고요. 지난 국회에서 연금 개혁이 무산된 이후 국민들의 신뢰는 더욱 떨어졌는데요. 다행히도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다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연금 개혁을 ‘숫자’의 문제로 간주합니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몇 퍼센트로 할 것인가, 몇 살부터 보험료의 차등을 둘 것인가…. 하지만 숫자에 가려진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본 목적을 떠올리면 더욱 중요한 문제들이기도 합니다. 폴라리스는 이번 연금 개혁에서 절대 지워져서는 안 될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처서 매직’도 비껴간 무더운 추석 연휴, 폴라리스와 함께 보내주세요. "사회보장은 모든 국민이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자립을 지원하며, 사회참여ㆍ자아실현에 필요한 제도와 여건을 조성하여 사회통합과 행복한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것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 사회보장기본법 제2조   #1 17년 만의 연금개혁, 뭐가 달라지냐면 90년생은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을 거라는 말, 자주 들어보셨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4대 개혁’ 중 하나인 연금개혁안을 지난 4일 발표했습니다. 여야 또한 절충안을 찾아 내년 정기 국회에서는 관련 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죠. 폴라리스가 소개할 조선일보 기사는 독자가 제일 궁금해할 만한 Q&A 4개로 연금개혁안을 정리했습니다. 삽입된 그래픽을 보시면 이해가 배로 쉬우니, 일독을 권합니다. 전문가 의견은 다양합니다. 나이가 아닌 ‘지불 능력’이 보험료율을 결정해야 하는데, 20대 이하부터 50대까지 보험료율 인상 폭을 달리하는 게 위험하다는 우려도 나오고요. 이와 달리 세대 간 공정성 확보를 위한 해법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번 개혁안에서 제일 복잡한 이슈는 ‘자동 조정 장치’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신규 수급자 기준으로 연금 수급 총액의 17% 가까이 깎인다”고 장치 도입에 반대 의사를 보였습니다. 반면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자동조정장치는 한마디로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향후 연금수급액이 줄어들도록 설계됐는데요. 정부가 제시한 자동조정장치는 ‘최근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과 ‘기대 여명 증감률’을 반영해 연금액을 조정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현 제도대로면, 내년 물가상승률이 5%일 때, 올해 100만 원이던 연금액이 이듬해에는 105만 원이 되겠죠. 그런데 자동조정장치가 작동하면 가입자 수 증감률(Ex. 1.0%)과 기대여명 증감률(Ex. 0.5%)의 합을 물가상승률에서 제하고 인상하는 겁니다. 현 제도라면 105만 원을 받았겠지만, 자동 조정 장치가 작동하면 103만 5천 원을 받는다는 게 위 기사의 설명입니다. 이번 연금개혁안은 노후 소득 보장과 기금 고갈 등의 문제를 최대한 보완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가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이번에도 놓쳤다는 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글 보러가기 ⓒ연합뉴스 #2 숫자에 가려진 사각지대 ‘더 내고 더 받기,’ ‘덜 내고 덜 받기’ 등 지금까지 주로 논의됐던 국민연금 개혁안은 근로 소득 징수를 전제로 합니다. 이는 국민연금이라는 제도가 낳는 격차와 불평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1) 근로 소득이 낮은 경우 2) 회사 부담이 아닌 아닌 개인이 보험료를 100% 부담하는 경우 (지역가입자) 3) 연금 가입 기간이 짧은 사람들 등은 사각지대에 놓이기 마련입니다.  먼저,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의 보험료로 운영되는 ‘사회보험’ 이라는 것을 염두해야 합니다. 이 제도는 필연적으로 소득이 높고 가입 기간이 긴 사람, 즉 노동시장에서 고용이 안정된 사람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보험료를 일정 기간, 정기적으로 납부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노후 보장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여기에서 사각지대 및 가입자 간 격차 문제가 등장합니다. 사각지대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했거나(적용제외자), 가입했더라도 실업 등 소득상실로 가입이력을 쌓지 못하는(납부예외 및 장기체납) 가입자들을 의미합니다. 숫자로 보면 격차가 더욱 와닿습니다. 국민연금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2020년 말 기준 약 1263만명이라고 추정합니다. 가입자 연령군 10명 중 4명이 사각지대인 셈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격차 문제는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상용직 임금노동자는 연금가입율이 90% 후반대인데 ‘임시일용직’ 정규직 노동자는 53.8%, 비정규직 노동자는 42.8% 불과합니다. 2021년 기준, 비임금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나 프리랜서) 수는 788만명 가량에 달하는데, 이들의 가입률도 낮은 편입니다. 플랫폼 노동자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51.7%에 그쳤습니다. 요약하자면, 노동시장 중심부와 주변부의 격차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별 노후 소득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소득 격차는 노동 시장의 양극화에서 비롯되고요.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문제는 복잡합니다. 고용 형태 뿐만 아니라 성별, 나이에 따라서도 국민연금 수혜자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음 파트에서 함께 살펴보시죠. 🧭글 보러가기 #3 국민연금은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연금에도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성별 연금격차는 성차별적인 노동·복지 구조로 인해 발생합니다. 성별 연금격차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로 수령 인구 격차입니다. 남성에 비해 연금 수급 자격을 얻는 여성의 수가 적은 거예요. 두 번째로 수급 금액 격차입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수령액이 낮은 거예요. 국민연금에서도 성별 연금격차가 나타납니다.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남성이 여성보다 1.3배 많고, 수령자와 수령액도 두 배 가량 많습니다. 성별 연금 격차가 분명히 나타나지만, 아직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지표는 없습니다. 국민연금의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① 10년 이상 보험료를 납부한 이에게 준다. ② 소득에 비례해서 준다. ③ 오래 납부한 만큼 더 준다(10년 단위). 간단한 성별 연금격차를 유발하는 공식입니다. 한국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기간 동안 일하지 못하고, 동등한 소득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복지 제도에서도 불리합니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남성보다 취약한 존재입니다. 여성은 고용과정에서의 차별은 물론 경력단절, 임금차별, 불안정고용에 노출되곤 합니다. 성차별적 노동구조는 여성의 지속적이고 평등한 소득 획득에 장애물이 됩니다. 따라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복지 서비스 수급 요건을 획득하고, 수령 금액 증식하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경향신문에서 자세한 사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출산크레딧 부여 자격을 첫째 아이 출산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성별 연금격차 해소를 위한 일보 진전이긴 하나 한계가 지적되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첫 아이에게 크레딧을 부여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납부 인정 기간도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남녀 모두에게 지급되는 혜택이라 여성에게 불리한 연금구조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실제로 출산·양육 크레딧 수혜자 98%가 남성이란 통계도 있고요. 여성을 고려하지 않는 복지 제도는 여성의 생계를 보장하지 않고, 여성이 남성부양자에게 의존하게 만듭니다. 국민연금 개혁에는 섬세한 젠더 관점을 바탕으로 한 성평등한 변화가 꼭 필요합니다. 🧭글 보러가기 ⓒ연합뉴스 #4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요? 국민연금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으려면 정년 연장 논의도 필요합니다. 정년은 국민연금 개혁에서 아주 중요한 변수입니다. 국민연금 의무가입 기간은 59세, 법정 정년은 60세인 현 구조에서는 59세까지 보험료를 내고 63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60세에 퇴직하고 63세부터 연금을 받는다면 3년의 소득 공백이 생기겠죠. 그런데 최근 정부는 의무가입 기간을 64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가입자가 돈을 내는 기간을 늘려 재정을 안정시킨다는 취지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정년 연장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거예요. 의무가입 기간은 늘어났는데 정년은 그대로라면, 퇴직 후 소득이 없어도 연금 보험료는 계속 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의 취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죠. 납부 기간을 늘리려면 일할 수 있는 기간도 늘려야 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생각하면 더 중요한 문제인데요.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방법’에서 노동계와 정부•경영계의 의견이 갈리고 있어요. 노동계는 법적 정년 연장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부터 정년 연장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보다 청년 고용이 쉽지 않아 기존 고령 노동자의 계속 고용이 절실하기 때문이에요. 정부와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취업의 경우 퇴직 전과 동일한 직무를 수행함에도 임금이 과하게 삭감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한 일자리로 내몰리게 되는 겁니다. 이는 한국의 노인이 빈곤한 이유이기도 하죠. 정년을 바꾸는 건 단순히 퇴직 시점을 정하는 것이 아닌 고령 노동자의 노동 가치와 존엄성을 재고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때입니다. 🧭글 보러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둘 다 덩치가 크고, 회색이며, 사람들한테 아주 인기가 있고, 비둔해 움직이기 힘들다.” 독일의 연금 전문가인 힌리히스 브레멘대 교수는 연금 개혁의 어려움을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했습니다. 연금기금의 규모 자체가 워낙 큰 데다가, 인구구조 및 산업 변화와 같은 사회경제적인 변수에 유동적으로 대처하기가 매우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이죠. 개혁을 잘못했다간 표심을 잃을 수도 있고요.   한국에서 국민연금은 공적 연금 제도로서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가지지만, 몇 년 사이 낮아진 소득대체율 때문에 일각에선 ‘용돈’ 연금이라는 비판도 합니다. 몇십 년째 개혁에 관한 논의는 이뤄졌지만 이렇다 할 해법은 없어 보이는 국민연금, 우리는 이 제도에 굳이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까요? 개혁이 필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해야 할까요? 제가 이번 레터를 준비하며 문뜩 든 의문들인데요. 에디터 레터 지면을 활용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차근차근 찾고자 합니다. (주의: 못 찾을 수도 있습니다) 다소 장황하지만, 제 고민의 흔적을 함께 따라가 주시겠어요? 1. 기금 수익률, 기금 안정이 제일 중요해? 자, 우리는 여태까지 재정 안정이냐 노후 소득 보장이냐 식의 이분법 담론을 접해왔습니다. 그리고 이 논의에 꼭 언급되는 단어들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었죠.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을 것인지 수치 얘기가 계속된 이유는 국민연금이 근로 세대가 퇴직 세대를 부양하는 부분적립방식으로 운용되기 때문입니다. 부분적립방식은 보험료 수입을 바로 급여로 지급하지 않고, 남은 자금을 기금으로 적립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만, 다들 아시다시피 현재 상황으로서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보험료 수급은 줄고 연금 지출은 늘 수 밖에 없죠. 언론, 정치권이 기금 고갈 '공포'를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정권들은 '재정 안정, 노후 소득 보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조율하기도 했고요. 최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개혁안도 이와 크게 빗나가진 않았습니다.  2. 세대 간 개인들의 연대가 정말 답일까?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개혁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당장 내야 하는 보험료나 수급액을 조정할 수는 있어도, 인구 구조가 계속 악화한다면 국민연금의 불안정성과 기금 소진은 막을 수 없기 때문이죠.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교수는 재정 안정이 지출 시점 노동 세대의 생산성에 달려있기 때문에 현재 논의되는 저축식 해법은 효용성이 크게 없다고 말합니다. 특히 노동 세대의 생산성은 인구, 사회경제적인 변수 및 불확실한 상황에 좌지우지 될 수 밖에 없고요. 혹시나 지금보다 인구구조 상황이 더 안 좋아져 연금 수입액을 초과하는 수준까지 보험료를 올린다면, 가입자들 사이에 오히려 제도 불신이 커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점점 공적 연금의 효용성을 느끼지 못하겠죠. 민간 연금과의 경쟁에서 국민연금은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을거고요. 중요한 것은, 고소득자 가입자들은 알아서 민간 연금과 같은 플랜 비를 찾을 테지만,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은 노후 소득 보장에서 점점 더 밀려날 것입니다. 현재 정부가 제시한 개혁안대로 보험료와 세대별 차등 적용을 한들, 노동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닥칠 수 있는 사회 위기에 사각지대 인구는 연금의 수혜자가 되기 더 어려울 것입니다. 어찌됐던, 국민연금이 안정적으로 운용된다면, 사각지대의 사람들에게 공적연금은 여전히 노후 소득의 큰 기둥입니다. 금융시장 상황에 좌지우지되는 사적연금이나 금융상품에 비해 안전성도 비교적 높고, 애당초 사적연금과 목표부터 다르고요. 3. 든든한 사회라는 뒷배가 필요해 현재 제안된 개혁안을 비롯한 다른 모수 개혁안들은 살펴보면, ‘국민연금기금을 소진하면 절대 안 된다’는 신념이 작용했다고 원종현 국민연금기금 상근전문위원은 말합니다. 아니, 기금 소진을 막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지만, 원종현 위원은 연금 개혁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기금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노후 보장, 즉 공적연금제도 자체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구조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논리를 따라가보면, 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곧 노후 보장 강화로 이어집니다. 예컨대, 소득대체율을 인상해 노후 소득이 기초생활을 보장하게 하고, 근로기간에 납부하는 보험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죠. 이는 공적연금제도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미 4월, 500명의 연금개혁 시민대표단 중 다수는 숙의 토론을 통해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한 적정 연금 보장’을 선택했습니다. '더 내고 더 받기'를 통한 노후 보장을 선택한 셈이죠.  다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근로소득 뿐만 아니라 국가도 국민연금의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지 고민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즉, 보험료를 개인 가입자들이 더 내는 방안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현행 보험료율 9%는 각 근로자의 소득에서만 징수합니다. 하지만 근로소득만으로 노후 사회보장제도 전체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노동 능력 여부, 고용 형태, 성별, 나이 등에 따라 격차도 벌어질 수밖에 없죠. 한 세대는 단일한 계층으로 구성되지도 않고요. 일각에서는 보험료가 부과되는 소득 기반을 넓힌다면 보험료율은 낮아질 수 있고, 일부 국가가 시행하는 자산소득 등 다양한 소득원에 대한 보험료 부과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험료의 양보다, 분배의 질서가 중요하다는 것이죠. 자,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습니다. 앞으로 국회는 어떤 안을 내놓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구독자님은 이번 개혁안, 어떻게 보셨나요? 댓글로 의견 알려주세요!  2024. 09. 16.   에디터 산호🐠 드림 만든 사람들: 반달🌙, 모래🏖️, 푸릇🌿, 산호🐠 🧳폴라리스 방학 공지🌕 폴라리스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레터를 열어보셨을 쯤이면 막 시작된 추석 연휴를 즐기고 계시겠네요. 폴라리스 에디터들도 한 주 동안 재정비와 휴식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폴라리스 레터는 9월 30일 꺼뉴다보 13호로 돌아옵니다. 모두 몸 조심하시고, 건강하고 아프지 않은 한가위 되시길 빕니다. 다음 레터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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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맨과 나스닥 Ep.3] 이러다 곧 부자될 것 같아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영웅이 난무하는 마블 유니버스에서 앤트맨은 좀도둑이 평범한 삶을 살고자 금고를 털다 슈트를 훔쳐 영웅이 되는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힘이 미약한 개인 주식 투자자를 ‘개미’라고 부르죠. ‘앤트맨과 나스닥’은 주식을 하나도 모르는 평범한 직장인이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앤트맨‘이 되어 투자를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앤트맨과 나스닥 지난 화에서는… 엔비디아의 주주가 된 앤트맨은 투자 대상 엔비디아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엔비디아가 과거 알고 있던 고성능 게임을 위한 그래픽 카드 만들던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란 앤트맨! 그렇게 엔비디아를 새롭게 알아가던 중 주가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데… #10. 하루만에 5%가 올랐다 엔비디아가 요즘 뭐 하는지 찾아보는 사이 하루가 훌쩍 지났다. 엔비디아 주식 구매를 예약하고 잠들면서 ‘얼마나 오를까?’ 생각했다. 여느 직장인의 아침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씻고 출근을 준비하면서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솔직히 숫자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어제 산 주식이 몇 시간만에 5.6%가 오른다고?’ 주식이 오른 건 좋은 일이지만 약간 무섭기도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하룻밤에 2,800원을 벌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왜 이 주식이 오른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거다. #11.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렇게 주식 투자 첫 날 아침을 맞이한 뒤로 틈이 날 때마다 어플리케이션을 켜서 주식 가격을 확인했다. 그리고 첫 날을 뛰어넘는 충격의 연속. 오르락 내리락 하는 날들이 반복되긴 했지만 단 일주일 만에 8.3%가 올랐다. 엔비디아 주식을 산 지 3주가 안 됐을 때 (캡쳐는 못했지만) 10%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즈음 ‘어쩌면 나 워렌 버핏급 투자 재능일지도?’ 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주가를 볼 때마다 했다. 주가가 오르면서 주식 투자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사라졌다. 물론 돈 버는 일이 이렇게 쉽다는 게 여전히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다. 동시에 ‘사람들이 주식 투자에서 느끼는 희열(?)이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엔비디아는 신이야!’라고 말하던 친구의 얼굴도 떠올랐고. #12. 이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수익률이 10%가 됐을 때 금액을 보니 대략 5천 원 정도였다. 단순하게 계산을 해보자. 나는 5만 원을 투자해서 5천 원을 벌었다. 그럼 500만 원을 투자해야 50만 원을 버는 거고, 5,000만 원을 투자해야 500만 원을 버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직장 동료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근데 앤트맨은 5,000만 원 있으면 주식에 투자 안 할 거잖아요?” 생각해보니 그렇게 큰 돈이 생기면 주식 투자를 할 것 같진 않았다. 전세 대출 갚고, 곧 계약이 끝나면 옮겨야할 집도 알아봐야 하고… 돈 써야 할 곳이 정말 많은데 그렇게 큰 돈을 선뜻 주식에 넣을 용기가 안 난다. 한참 얘기하다보니 결국 ‘여윳돈이 많은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가는 것’이 주식의 본질인가 싶었다. 투자 하루 만에 5%가 올랐을 땐 곧 부자가 될 것 같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0%가 오르고 나니 그럴 일은 없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주식 투자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던 앤트맨에게 엔비디아 주식 롤러코스터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To be continued… 앤트맨과 나스닥 몰아보기 Ep.0 주식 1도 모르는 사람이 엔비디아를 사봤습니다 Ep.1 안녕하세요. 엔비디아 주주 앤트맨입니다 Ep.2 우리 엔비디아가 이런 회사에요 Ep.3 이러다 곧 부자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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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근로장려세제(EITC)가 복지태도와 증세태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계획
본 게시물은 <연구원정 원데이클래스>를 통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 2024.9.13. KIM DAHYEON, All rights reserved.이 글은 향후 작성자의 학술적 연구를 위한 초안으로, 작성자의 허락없이 복사, 인용, 배포,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연구 계획서] 근로장려세제(EITC)가 복지태도와 증세태도에 미치는 영향- 기초생활보장제도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 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근로장려세제(EITC)’가 저소득 근로자의 복지태도와 증세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기초생활제도보장제도의 영향과 비교함으로써, 친복지-친증세 태도 함양을 위한 제도적 함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복지패널(KOWEPS) 데이터를 활용하여 저소득 근로자를 근로장려금 수급 집단, 기초생보 수급 집단, 중복 수급 집단, 미 수급 집단으로 구분한 뒤, 다중회귀분석을 통해 집단 별 복지 태도와 증세 태도의 특징 및 차이를 분석할 것입니다. 본 연구를 통해, 저소득 근로자에게 있어 복지 태도와 증세 태도의 불일치, 즉 태도 이중성은 일정 정도 나타나는 일반적 특성임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근로장려금 수급집단과 중복 수급 집단은 타 집단 보다 복지확대와 증세 모두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기초생보 수급집단과 미수급집단은 복지 확대에 찬성하지만 증세에는 반대하는 태도 이중성이 높은 비율로 확인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근로장려금과 기초생보 액수가 높을수록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기초생활보장제 보다 근로장려세제가 복지와 증세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확대시키고 있음을 시사할 것이며, 복지태도와 증세태도를 함양하기 위한 제도적 방향성을 논의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1. 서론 ☄️ 문제제기 한국 사회에서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빈곤에 대한 지형을 뒤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규모의 구조조정과 해고는 개인이 열심히 일하면 가난을 면할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깼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열심히 일하지만 삶의 불안정성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려운 국민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복지제도 중 하나가, 근로장려세제입니다. 근로장려세제(EITC, Earned Income Tax Credit)는 저소득 근로자들을 위한 근로장려금(현금 급여)로서, 소득세 공제 및 반환을 제공하는 복지제도입니다. 2008년 한국에서 도입된 근로장려세제의 목적은 노동하는 저소득층의 실질 소득을 향상시키고, 노동에 대한 유인을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차례에 세법개정을 통해 수급 기준이 완화대고 대상이 확대되어 왓습니다. 도입 시기의 목적이었던 재분배 효과와 노동공급 효과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들에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있고 정착되어있는 제도로, 도입시 목적이 유의미하게 충족되지 않았다고 해도, 제도라는 것은 완전히 폐기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제도를 폐기할 수 없다면, 도입 목적을 보다 잘 달성하기 위한 방안과, 도입 목적 이외의 효과들을 탐구하고 보완하기 위한 방안들이 요구됩니다. 근로장려세제의 초기 목적 이외의 다차원적인 파급 효과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근로장려세제가 도입목적 외에도 시민들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복지태도”와 “증세태도”에 집중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근로장려세제는, 공공부조(mean tested)에 속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보다 대상층을 폭넓게 두고 있다는 점, 성실한 세금신고를 통해 수급받을 수 있다는 점, 절차 상 공무원의 지위가 가려진다는 점 때문에 낙인감이 적습니다. 이는, 선별적 복지의 한계인 낙인감을 줄이면서도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저출산 고령화, 불평등과 삶의 불안정성 등으로 점점 고부담 고복지 사회로 가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고부담 고복지로 가기 위한 조언 들 중 하나는 '일단 맛보게 하라'라는 것입니다. 맛을 본다는 것은, 사회적 위험을 공동으로 대비하고, 내가 낸 세금이 나의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위험을 개인과 가정에서 부담하는 데 익숙해진 한국 사람들이 그러한 체감을 할 수 있다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확대되고 있는 근로장려세제가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2. 이론적 논의 1️⃣ 개념 및 이론 💸 근로장려세제(EITC)란? 근로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는 열심히 일하지만 소득이 적은 근로자, 즉 근로소득이 있는 가구 중 부부합산 총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가구에게 근로장려금이라는 형태로 현금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본 제도의 목적은, 근로빈곤층에게 세금부담을 경감시키고 실질소득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근로 활동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근로장려세제는 2005년 참여정부의 국정과제회의를 통해 결정되었습니다. 소득 파악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세법 개정을 하는 등 근로장려세제 시행을 위한 준비를 거친 후, 2008년부터 시행되며 경제위기 상황에서 근로빈곤층에 대한 소득지원으로 주목받았습니다(국가법령센터 재인용). 여러 차례의 세법 개정을 통해, 수급 기준은 완화되고 대상은 넓어졌습니다. 💡 복지태도(Welfare Attitudes)란? 복지태도는 주로 20세기 중반 서구 복지국가의 발전과 함께 자연스레 연구되어 온 주제로, 복지태도에 대한 구체적 정의와 개념화는 학자들마다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복지태도는 주로, 개인이 복지제도 전반에 가지는 생각, 의견 및 태도(이홍기·박영준, 2015)를 말합니다. 복지 제도 및 비용의 문제, 소득재분배나 복지국가의 정당성 등에 대한 태도를 포함합니다.(Taylor-Gooby, 1985; Miller, 1999) 또한, Ko- ster(2013)에 의하면, 복지태도는 집단과 기준에 따라 다양한 분절양상(polarizations of welfare attitudes)을 띱니다. 복지태도를 결정하는 영향요인은 개인적 수준(Individual Level)과 국가적 수준(National Level)으로 나뉩니다, 개인적 수준의 대표적 하위요인은 개인의 이익, 이념적 선호, 계급 및 지위 등이 있으며, 국가적 수준의 대표적 하위요인은 복지국가의 제도적 구조, 제도적 유형, 복지국가에 대한 태도 등이 있습니다 국내 복지태도의 체계적 문헌고찰(SLR)에 의하면, 국내에서 복지태도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기점으로 복지확대와 복지정치가 본격적으로 확대된 시점과 일치합니다. 이후 사회복지학을 중심으로 사회학, 정치학,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 전반에서 꾸준히 연구되어 왔습니다. 복지태도에 대한 개념화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복지정책 확충 태도’ 와 ‘복지재정 태도’가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복지태도(복지정책 확충 태도)와 증세 태도(복지재정 태도)를 함께 살펴보는 것으로 복지태도를 개념화하였습니다. 국내에서 유의미한 복지태도 영향요인은 일관되어 있지 않지만, 복지제도 수급 여부 및 가능성 등의 ‘물질적 이해관계(self-interest)’와 이데올로기로 밝혀지는 경향성을 띱니다(한상윤, 남석인2023).  본 연구에서는 ‘자기이해적 요인’으로서 근로장려세제 등의 제도의 수급을 다룹니다. 2️⃣ 선행연구 💰복지태도의 ‘자기이해(Self-interest)’적 결정요인 EITC의 수급은 ‘자기 이해(self-interest)’적 관점에서 물질적 이해관계 요인으로서, 복지태도의 영향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한상윤ᆞ남석인(2023)*은  물질적 이해관계 요인으로 복지급여 수혜 여부, 복지 서비스 이용빈도 등 공공복지를 받고 있거나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포함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국외에서는 Hasenfeld와 Rafferty(1989)의 연구는 개인의 이익(Self-interest)이 복지정책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이 유의미하다는 초기의 논의를 이끌었습니다. 저명한 복지학자 Pierson (2001)*** 또한 신복지정치 이론에 기반하여, 자기이해적 관점에서 물질적 이해관계 요인이 복지태도 결정에 주요한 동기로 작용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안상훈 외(2021)****의 연구에서 복지 지위, 즉 수급자, 납세자, 복지제공자에 따라 복지태도가 주요하게 변화한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한상윤ᆞ남석인(2023)*****의 체계적 문헌고찰에 따르면, 국내의 복지태도 영향요인 연구들은 다소 비일관적이고 합의가 부족하지만, ‘물질적 이해관계(self-interest)’요인은 유의하게 검증되는 추세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 근로장려세제 (EITC, Earned Income Tax Credits)의 효과성 연구 근로장려세제(EITC)의 수급과 시행은 많은 연구에서 독립변수로 빈번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근로장려세제의 정책목표인 ‘노동공급’과 ‘재분배효과’의 효과성을 검증하는 연구들이 기본적이며, 대체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들이 많습니다. 도입배경 이외의 근로장려세제의 영향에 대한 연구들 또한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정책피드백 이론을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한 Rendleman과 Yoder(2020)*에 따르면, 근로세액공제 수급이 선거 투표, 해당 주지사의 승인 등 유권자의 정치참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검증되었습니다. 필자의 연구에서도 채택하고자 하는 독립변수는 ‘복지태도 및 증세태도’로, 이 또한 근로장려세제의 기본적인 정책목표 이외의 효과에 해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김용수ᆞ노희천(2020)**은 재정패널 자료를 활용하여, 근로장려세제가 납세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였습니다. 연구결과를 통해 근로장려금 수급 가구원은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추가 부담할 의향 있다는 함의를 이끌어내며, ‘증세태도’와 관련된 유의미한 기여를 이루었습니다. 다만, 해당 문헌의 한계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여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근로장려세제 수급여부에 따라서만 집단을 구분하였다는 점입니다. 기초생활보장제와 근로장려세제를 공통적으로 수급받는 가구와 그렇지 않은 가구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데, 이러한 구분이 불가능해 혼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3️⃣ 본 연구의 차별성 본 연구는, 자기이해적 관점에서 ‘근로장려세제’의 수급여부에 따라 복지태도를 살펴봄으로써, 국내에서 요청되는 복지태도 영향요인의 다각화에 기여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도 개인의 이익 및 자기이해적 관점의 논의를 넓힐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존 근로장려세제 연구가 도입 초기의 목적인 재분배와 노동공급에 대한 파급효과에 집중한 반면, 본 연구에서는 그 이외의 파급효과로서 ‘복지 및 증세태도’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근로장려세제 효과성 논의를 넓힐 수 있습니다. 또, 저소득자가 받을 수 있는 제도로근로장려세제 또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단일의 제도만을 연구주제로 삼지 않고, 통합적으로 수급, 또는 중첩 및 배제 될 수 있음을 고려하여 연구대상을 구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각각의 제도가 복지태도에 미치는 경향성을 정책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 연구와 구분됩니다. 3. 연구설계 🧪 연구변수 및 연구질문 본 연구에서는 근로장려금 수급과 기초생보 수급을 독립변수로, 복지태도와 증세태도를 종속변수로 두고 아래와 같은 연구질문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H1. 근로장려금 수급 가구원은 다른 집단에 비해 복지태도와 증세태도에 있어 긍정적인가? H2. 기초생보 수급 가구원은 다른 집단에 비해 복지태도는 긍정적이고, 증세태도는 부정적인가? H3. 두 제도의 미수급 가구원과 중복 수혜 가구원은 복지태도와 증세태도에 어떠한 경향성이 두드러지는가? H4. 근로장려금과 기초생보 금액이 높을 수록, 집단 별 복지태도와 증세태도의 경향성은 두드러지는가? 🧫 연구방법 한국복지패널(Korea Welfare Panel Study, KWPS) 데이터를 활용하여 횡단연구를 진행할 것입니다. 연구대상인 저소득 근로자를 제도 수급여부에 따라, 근로장려금 수급 집단, 기초생보 수급 집단, 중복 수급 집단, 미 수급 집단으로 구분할 것입니다. 위 자료를 통해, 다중회귀분석을 통해 집단 별 복지태도와 증세태도의 특징과 차이를 분석할 것입니다. 4. 결론 🗂️ 예상 연구결과 본 연구를 통해, 근로자 집단에게 복지와 증세 태도의 불일치, 태도이중성은 일정정도 나타나는 일반적 특성임이 드러날 것이며, 근로장려금 수급집단과 중복 수급집단은 다른 집단 보다 복지확대와 증세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고, 기초생보 수급집단과 미수급집단은 복지확대에 찬성하지만 증세에는 반대하는 태도 이중성이 높은 비율로 확인될 것입니다. 또, 근로장려금과 기초생보 액수가 높을수록 위와 같은 경향성은 유의미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연구 의의 본 연구는 기존 국내의 복지태도 영향요인 연구와, 근로장려세제 연구에 있어 이하와 같은 의의를 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첫째, 국내 복지태도 영향요인 연구에 있어, 본 연구는 유의미한 요인으로 밝혀지고 있는 자기이해 요인의 하위범주로서 ‘근로장려세제 수급 경험’을 추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정치권에서는 많은 경우, 복지태도를 포함한 정치적 태도에 대해 소득이 낮은 개인과 가구의 입장은 중요하게 대변되고 반영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 연구는, 간과될 수 있는 저소득 근로자의 복지태도를 조명하고 있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셋째, 앞으로 당면한 복지확대 및 증세에 대한 현황 인식을 조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저소득층의 친복지적 태도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때 기초 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연구는 기존 국내의 복지태도 영향요인 연구와, 근로장려세제 연구에 있어 이하와 같은 의의를 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첫째, 국내 복지태도 영향요인 연구에 있어, 본 연구는 유의미한 요인으로 밝혀지고 있는 자기이해 요인의 하위범주로서 ‘근로장려세제 수급 경험’을 추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정치권에서는 많은 경우, 복지태도를 포함한 정치적 태도에 대해 소득이 낮은 개인과 가구의 입장은 중요하게 대변되고 반영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 연구는, 간과될 수 있는 저소득 근로자의 복지태도를 조명하고 있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셋째, 앞으로 당면한 복지확대 및 증세에 대한 현황 인식을 조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저소득층의 친복지적 태도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때 기초 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 2024.9.13. KIM DAHYEON,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향후 작성자의 학술적 연구를 위한 초안으로, 작성자의 허락없이 복사, 인용, 배포,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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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 책임? 아니요, 다정한 라이프스타일입니다.
‍ 때로는 비영리 생태계에서(누구는 소셜 섹터라고도, 임팩트 생태계라고도, 사회적 경제라고도 부르는) 일하는 것이 답답할 때가 있어요. 예상보다 더디게 변화하는 속도에 가끔 회의도 들고요. 비슷한 배경의 사람, 관점, 기술, 솔루션을 접할 때면 생태계가 좁게만 느껴져요. 그래서 생태계 바깥에서 움트는, 업계와 무관한 누군가가 만드는, 조금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사례를 발견할 때면 반갑고, 궁금합니다. 기대도 하고요. 사회변화를 얘기하는 콘텐츠, 서비스, 제품이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 <카인들리(kindlyy)>라는 봉사 큐레이션 서비스는 주말 여행 정보를 담은 뉴스레터 <주말랭이>에서 발견했어요. 비영리의 매체·커뮤니티·네트워크가 아닌, MZ세대가 즐겨 찾는 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을 타고 있죠. 봉사라는 납작한 언어를 “Good things. You Can”, “It’s okay even once” 등으로 발랄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평범한 직장인의 1인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시작한 이 서비스가 어떻게 비영리 문법과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 <카인들리>를 소개해 주세요. 카인들리는 봉사 활동을 6가지 취향으로 나누어 선별하고 소개하는 봉사 큐레이션 플랫폼입니다.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봉사라는 관심사로 교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지향해요. 특히 봉사를 시작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초심자를 위해 친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활동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춰요. 6가지 취향 카테고리는 사회복지, 동물, 자연환경, 우리동네, 재능기부, 해외 봉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사용자가 자신의 관심사나 능력에 맞는 봉사 활동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요. ‍ | 기존의 봉사 포털 서비스와는 다른 <카인들리>만의 특징은? 많은 사람이 봉사 정보를 찾다가 포기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정보가 없거나 흩어져 있고, 때로는 폐쇄적이고 불친절하기 때문이죠. 자신의 취향을 기반으로 적합한 봉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만들려고 했어요. <카인들리>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과 같은 감각적인 큐레이션을 지향합니다. 봉사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알기 쉽게 제안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직관적이면서도 인상적인 이미지와 상황을 연상할 수 있는 카피라이팅을 조합해 콘텐츠를 만듭니다. ‍봉사 활동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 왜 이 봉사가 필요하고, 어떤 사람들이 도움을 받는지, 돕는 사람(참여자)에게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등의 메시지를 스토리로 담아내요. 기존의 봉사 정보가 날짜, 장소, 주의사항 정도만 제공한다면, <카인들리>는 봉사의 의미와 가치를 이야기 형식으로 감각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래야 봉사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줄이고, 더 쉽게 봉사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 | 서비스의 주 사용자, 선호 활동이 궁금해요. 20대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사용자가 다수입니다. 이 세대는 체험과 경험에 대한 니즈가 커요. 또한 뻔하지 않고, 귀엽고, 즐거운 봉사를 선호하죠. 예컨대 유기견 봉사, 플로깅, 생태공원 가꾸기 같은 활동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교육 분야의 봉사가 더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 | 봉사 활동 참여자의 선호와 실제 봉사 수요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다소 힘든 봉사 활동은 참여가 낮아요. 봉사가 일상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는다면 봉사자 공급이 더 많아질 것이고, 봉사자의 공급이 많아지면 어느 정도 분산되리라 생각해요. ‍ | 카인들리만의 운영 방침이 있나요?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금전 거래가 포함된 기부·봉사는 소개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돈에 대해 민감할 수 있고, 자칫 봉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그 시작을 방해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에요. 둘째, 기존의 봉사단체들이 사용하는 어법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따르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꾸준히 해야 한다'와 같은 부담스러운 표현 대신 '한 번만 해봐'라는 식의 가벼운 접근을 선호해요. 셋째, 봉사라는 단어 대신 '좋은 일'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봉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더 친근하게 다가가려면 기존의 이미지/ 어법과는 다른 표현과 언어가 필요하죠. 넷째, 카인들리의 브랜드 정체성과 저의 정체성을 분리하려고 노력합니다. 카인들리가 저라는 개인이 아닌, 독립적인 브랜드로 인식되길 바랍니다. ‍ | '봉사도 취향이 있다'는 카피가 인상적이었어요. "유기견 봉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거야?", "자연·환경 관련 활동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봉사에도 취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취향이란 물건의 소비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마음이 이끌리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봉사도 각자가 이끌리는 선한 마음의 방향이 있다고 보고, 이를 6가지 종류로 나누어 소개했습니다. 봉사를 어렵게 생각했던 사람도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고려했어요. ‍ | ‘진지함을 우회한다’는 소개글도 봤습니다. 어떻게 덜 진지하고 더 일상적인 행위로 만들 수 있을까요? 봉사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해요. 예를 들어 ‘워컵픽업(WalK Up Pick Up)’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동네 산책 미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각자 동네에서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고, 카카오 단체방에서 랜선으로 인증하는 방식이죠. 또한 '원 스몰 굿 액션(One Small Good Action)'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선행들을 제안했어요. 예를 들어 휠체어 사용자, 통행자를 위해서 쓰러진 공유 킥보드를 세워두는 행동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봉사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참여자가 좀 더 재밌게 활동하도록 돕는 요소도 배치했어요. ‘워컵픽업’의 경우 참여자가 도장 깨기를 하는 것처럼, 수행 판에 미션 완료 스티커를 부착할 수 있도록 굿즈를 제공했습니다. 랜선 참여자가 하루동안 함께 모여 재활용 시설을 방문하고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프로그램도 구성했습니다. | 봉사 콘텐츠 제작과 큐레이션은 어떻게 하나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해요. 첫 번째는 체험형으로, 제가 직접 봉사활동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소개합니다. 두 번째는 자료 수집을 통한 방식이에요. 온라인에서 봉사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구성합니다. 마지막은 제보 형태입니다. 실제 봉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객원 에디터가 되어 내용을 제공합니다. 현재는 두 번째 방식인 자료 수집을 통한 콘텐츠 제작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요. 아무래도 혼자 서비스를 운영하니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여 선별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콘텐츠 생산 속도를 높여서 좀 더 많은 활동을 소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 | 혼자서 운영하는지 몰랐어요. 별도의 조직 혹은 프로젝트 팀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마케팅 경력이 있어 웹사이트 구축부터 브랜딩, 콘텐츠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비용이 들어가지 않았어요. 대신 시간이 많이 걸렸죠. 회사 업무가 아닌 1인 사이드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하니 더 오래 걸렸어요. 장단점이 모두 있어요. 장점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초기 비용도 최소화할 수 있어요. 단점은 역시 외로움과 고립감입니다. 아이디어를 나눌 동료가 없고,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요. 또한 업무량이 많아 지치기 쉽고, 객관적인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는 점도 있고요. 앞으로는 좋은 동료를 모아 함께 서비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 | 카인들리의 수익 모델은 어떻게 되나요? 아직까지는 마케팅, 브랜딩 컨설팅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카인들리> 서비스를 병행하고 있어요. 가설로 잡은 수익 모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멤버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죠. 봉사라는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이, 봉사 뿐만이 아닌 재밌고 유익한 활동을 함께하며 웰빙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할 수 있는 유료 멤버십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둘째, 굿즈 판매에요. 봉사활동에 필요한 위생 키트 같은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할 계획이에요. 마지막으로 기업과의 제휴 이벤트입니다. 기업의 CSR 활동이나 임직원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요. 기부·후원을 통해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고 합니다. ‍ | 비용을 지불하고서까지 봉사 활동에 참여할 사람이 있을까요? 일단 베타테스트를 해보려고요. 현재 활성화된 소모임, 커뮤니티 서비스가 몇 곳 있어요. 이런 곳에 봉사 활동을 같이 할 사람을 찾는 게시물이 자주 올라오고, 인기 있는 봉사의 경우 금방 마감됩니다. 단순하게 한 번의 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봉사를 중심으로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취미 생활을 나누는 모임과 커뮤니티라면 수익화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 | <카인들리>를 통해 구성된 커뮤니티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좋은 경험을 공유하고 성장하는 커뮤니티가 되면 좋겠어요. 봉사는 돈을 통해 얻는 효용과는 다릅니다.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어요. 경쟁이 아닌 협력의 과정과 성취를 경험할 수 있고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무한 경쟁 시대에, 봉사는 다른 관점과 삶의 의미를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단기적으로는 콘텐츠의 양을 늘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더 많은 봉사 활동을 소개하고 싶어요. 특히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을 많이 발굴하려고 합니다. 또한 앱 서비스 출시도 준비 중이고요. ‍ 장기적으로는 <카인들리>를 5년 이상 지속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봉사가 헌신, 책임, 나눔의 표상보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일상,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으면 좋겠어요. 봉사는 올드하거나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활력 있고 재밌는 일로 인식되고, 봉사를 매개로 여럿이 함께 모여서 만들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어요. ‍ 글 | 최성욱 ‍ ‍ 인터뷰이가 추천하는 ‘1인 작업자를 돕는 도구’를 소개합니다. ‍ AI 챗GPT : 언어모델 생성형 AI / 인간스러운 어휘와 스토리텔링에 강점 구글 제미나이 : 언어모델 생성형 AI / 논리적&체계적 정보 구조화에 강점 MS 코파일럿 : 언어모델 생성형 AI / 아직 학습이 더 필요함 ‍ Image Unsplash : 무료 사진 소스 / 감각적인 무료 사진이 강점 Link Lummi : 무료 사진 소스 / AI가 제작한 무료 이미지, 생각보다 리얼함 Link ‍ Illustration Drawkit : 무료 일러스트 소스 / 세련된 스타일의 일러스트, 무료 소스가 적은 것이 단점 Link unDraw : 무료 일러스트 소스 / 일관된 스타일의 일러스트. 벡터로 지원하여 일러스트 색상 자유롭게 설정 가능 Link Blush : 무료 일러스트 소스 / 컬러풀한 다양한 일러스트가 많음, 라인 타입의 일러스트 종류가 많아 좋음 Link ‍ Editing Tools remove.bg : 배경 제거 툴 / 누끼 이미지 만들때 빠르고 편리함 Link Capcut : 무료 영상&사진 편집 툴 / 영상과 사진의 레이아웃, 그래픽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함 Link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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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촌초 제보자 복직 꿈 커진다… 재단 ‘최종 패소’[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1화]
“내가 교육청에 가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선생님들 복직시킬 겁니다.” 이양기 전 우촌초(서울 성북구 돈암동 소재) 교감의 목소리에 여러 감정이 섞여 있었다. 기대와 의지, 그리고 여전한 경계심과 신중함. 해고된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학교로 돌아갈 가능성이 열렸다. 지난달 28일 학교법인 일광학원 이사회 ‘임원취임승인취소’ 행정소송 2심이 선고됐다. 일광학원의 패소였다. 서울시교육청은 2020년 8월,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 임원 모두의 취임 승인을 취소했다. 2006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무려 13년 이상 이사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광학원 이사회는 회의가 실제로 열리지 않았음에도 회의록을 허위 작성했고, 이사가 아닌 사람이 회의록에 대리 서명하는 방식으로 방만하게 운영돼왔다. 서울시교육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이사회 임원의 선임도, 그들이 내린 결정도 전부 무효라고 봤다. 일광학원은 서울시교육청의 임원 취임승인 취소 결정에 불복해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이 싸움은 4년 넘게 이어졌다. 일광학원은 지난 10일 ‘상고 포기서’를 제출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2019년 우촌초 최은석 교장, 이양기 교감, 유현주, 박선유 등 6명의 교직원은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이 스마트스쿨 사업의 예산을 약 24억 원으로 부풀리고, 미리 섭외한 업체가 입찰에서 선정되도록 사업에 부당 개입한 정황을 적발했다. 이 외에도 학교장 업무방해, 학교 예산 횡령 등 각종 비리가 밝혀졌다. 이규태 회장은 일광공영(현 아이지지와이코퍼레이션)을 설립한 ‘1세대’ 무기중개상이다. 그는 2015년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이 회장은 우촌초 교직원에게 스마트스쿨 비리를 ‘옥중 지시’한 의혹을 받는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 이 회장은 학교에 어떤 일이든 지시할 권한이 없다. 이 회장은 우촌초 인수자이자,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 이사장. 2015년 회계 부정으로 이미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된 상태였다. 이후 일광학원 이사회는 이 회장의 지인으로 채워졌다. 스마트스쿨 비리 폭로 이후, 일광학원 이사회는 공익제보자들에게 ‘보복성 징계’를 내려 전원 해고했다. 학교에 돌아간 제보자는 이양기 전 교감이 유일하다. 나머지 공익제보자들은 5년째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유일하게 복직한 이양기(58) 전 교감의 복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일광학원에서 해임된 후, 국민권익위원회는 신분보장조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일광학원은 ‘면직’ 카드를 꺼냈다. 다시 교원소청위원회에서 면직 취소 결정을 내렸으나, 일광학원은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2022년 6월 이양기 전 교감이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기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다. 복직한 뒤에도 괴롭힘은 계속됐다. 학교 측은 과학전담교사를 맡은 이 전 교감에게 교무실 책상을 주지 않았다. 과학실에서 다른 교사가 수업을 하거나 방과후교실로 쓰이는 시간이 되면, 그는 늘 혼자 운동장을 돌았다. 누군가 그를 감시하고, “이양기 과학교사의 동향 추가 보고”라는 제목의 문서를 만들기도 했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교무실에 책상을 마련해달라고 했더니, 자리가 없어서 안 된다는 거죠. 학교 입장에서는 최대한 다른 선생님들하고 접촉을 줄여야 하고, 제가 오가는 게 보이면 불편하기도 하니까, 그냥 (과학실이 있는) 별관에만 머물도록 근무 공간도 정해준 거죠.” 이 전 교감은 복직 이후 겪은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장애가 생겼다. 설상가상 대상포진까지 발병했다. 결국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병가를 냈다. 지난 1월 병가를 마치고 복귀한 이 전 교감에게 학교 측은 징계 통지서를 내밀었다. 2023년 7월 작성된 ‘경고장’을 6개월이나 지나 통지한 것. 그는 ‘뒤늦은’ 징계 통지서를 근거로 사학수당 지급에서 제외됐다. 최은석 전 우촌초 교장(55)은 지난해부터 기간제 교사 일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서울에 남겨두고 일자리를 찾아 광주로 떠났다. 최근 경기 부천시로 학교를 다시 옮겼다. 최 전 교장은 교장직을 맡을 때부터 언젠가 평교사로 돌아갈 생각을 했지만 ‘이런 방식’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행정실장 직무대리였던 유현주 씨(46)의 상황도 녹록지 않았다. 징계를 받아 ‘해임’된 유 씨는 다른 학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이) 학교에 찾아와서, (공익제보는) 없었던 걸로 넘어가 줄 테니까 (스마트스쿨 사업) 하라고 해서, 제가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저를 해고하고 학교 못 나오게 하고, 그다음부터 고소・고발을 하고….” 공익제보 이후, 이 회장과 일광학원은 유 씨에게 10건 이상의 보복성 고소・고발과 소송을 퍼부었다. 유 씨는 경찰서로, 검찰청으로, 법원으로 정신없이 불려다녀야 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 유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5년째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다. “제 40대 인생은 이 회장과 싸우면서 의미 없이 없어져버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와서 포기할 수도 없고. 무조건 싸워야 하고, 무조건 직진인데, 정말 살 수 있게, 이기고 싶어요.” 심지어 유 씨는 집을 빼앗길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2021년 일광학원은 유 씨가 허위 공익신고를 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유 씨의 집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소송은 약 3년 만에 유 씨의 승소로 끝났다. 조만간 가압류 취소 신청서를 접수해 집 소유권을 되찾을 예정이다. 유 씨는 얼마 전 식당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소・고발 사건이 대부분 혐의 없음 또는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2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행정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박선유 씨(46)도 보복성 징계 탓에 다른 학교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처지다.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일이 많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박 씨는 지난해 8월부터 택배 물류센터와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박 씨는 올해 초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일광학원에 고소당했다. 학교에 7200만 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지난 6월 불송치 결정했으나, 일광학원은 다시 이의신청을 했다. 결국 지난달 검찰의 불기소처분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4년 만에 일광학원 측의 패소로 끝난 임원취임승인취소 행정소송.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 이사회 전체에 대한 임시이사 파견을 검토 중이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임시이사 선임을 결정하기까지 한두 달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임시이사들은 2~4년간 학교법인 이사회를 운영하며 학교 정상화를 추진하게 된다. 임시이사가 파견되면 공익제보자들이 복직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기존 이사회 임원 전원의 승인이 취소되면서 그들이 내린 결정도 없던 일이 됐다. 공익제보자들이 받은 보복성 징계 역시 무효화될 가능성이 크다. 공익제보자들은 행정소송 판결 소식에 ‘축배’를 들었다. 지난 4일 최은석, 이양기, 박선유 제보자를 만났다. 한층 밝아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복직에 대한 기대를 애써 감추려는 것처럼,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신랑이 언제 복직하냐고 묻는 거예요. 내년 3월 신학기까지 복직 못하면 저도 학교로 돌아갈 마음은 접으려고요.”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기 때문일까. 박선유 씨는 언제 복직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지쳐 있었다. “앞으로 임시이사 선임이 정말 중요합니다. 복직 절차도 계속 알아보고 있어요. 하루빨리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이양기 전 교감은 공익제보자들 복직에 마지막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복직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법인 정상화 절차를 잘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두 가지. 이규태 회장을 포함한 12명은 스마트스쿨 비리 혐의로 2021년 12월 기소됐다. 1심 재판만 약 2년 9개월째 진행 중이다. 누구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지 낱낱이 밝혀지고, 그에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남은 하나는 공익제보자들이 학교로 돌아가는 일. 5년 동안 공익제보자들은 그날만을 기다렸다. 이양기 전 교감은 동료들의 복직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언젠가 좋은 시절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셜록은 지난 1월 이 회장과 일광학원 측 반론을 듣기 위해 우편∙전화∙문자 메시지∙방문 등 23차례나 접촉했지만 아무 답변도 받지 못했다. 이 회장은 내내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보도가 시작되니 지난 4월 기자를 고소했다. 사유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이다. 고소 사건은 지난달 ‘불송치(혐의없음)’결정으로 마무리됐다.(관련기사 : <이규태 회장은 셜록의 입을 막지 못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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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에 죽은 것 : 대전시의회, 대덕구의회, 여성인권
9월 4일에 죽은 것 : 대전시의회, 대덕구의회, 여성인권 - 대전 지방자치와 여성인권, 모두 죽었다 2024.09.11. 1. 대전시의회 성인지 감수성, 죽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지난 뉴스레터에서 대전시의회 송활섭 의원 성비위 사건을 전달했는데요. 오늘은 그 징계의 결과를 공유합니다. 송활섭 의원의 성추행을 두고 대전시의회는 후반기 윤리특별위원회를 다시 구성했어요.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 윤리특별위원장은 이중호 의원이 맡았고요. 윤리특별위원회를 열기 전 윤리자문위원회를 열어야 하는데요. 윤리자문위원회에서는 송활섭 의원 징계에 대해 출석정지 15일이 적당하다는 의견을 냈어요. 성추행을 한 정황도 있고, 경찰 조사도 받고 있는데 출석정지 15일이 적당할까요? 이 의견 이후 윤리자문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어요. 하지만 윤리자문위원회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윤리특별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어요. 8월 16일 윤리특별위원회는 징계안 의결을 위해 회의를 진행했어요. 윤리특별위원회에서는 제명을 하기로 결정했고요. 윤리특별위원회는 해당 제명안을 본회의에 회부시키고, 이제 본회의 투표를 통해 최종 징계를 결정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2024년 9월 4일, 대전시의회는 제281회 본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송활섭 의원의 징계가 결정되는 거였는데요. 앞서 언급했듯, 송활섭 의원이 제명되기 위해서는 22명의 의원 중 15표 이상(재적의원의 3분의 2)의 찬성 표가 나와야 했는데요.  그런데 투표 결과, 송활섭 의원의 징계안은 부결되었어요. 찬성 7표, 반대 13표, 기권 1표였는데요. 당일 회의 직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본회의 방청을 하고 있던 여성・시민단체는 분노를 금치 못했습니다.  투표 이후 조원휘 의장은 겨우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의원들의 뜻을 받아 회의를 진행 한 것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피해자를 향한 그 어떤 사과도 없었어요. 이중호 윤리특별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취지를 설명할 때 선출직 공직자로서 더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 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부끄럽다"고 말했어요.  대전시의회는 성추행 가해자에 대해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고 넘어간 결과를 보여줬어요. 징계로 제명은 물론, 출석정지조차 내리지 못했어요. 대전시의회는 의원이 잘못을 해도 오히려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요. 시민의 투표로 당선된 선출직 공직자의 매우 낮은 성인지감수성을 포함해, 낮은 도덕성과 윤리의식만을 확인했습니다.  대전시의회 및 송활섭 의원 규탄 장례식 집회 대전의 시민사회와 시민들은 송활섭 의원 제명 부결 이후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어요. 9월 9일에는 "시민을 위한 대전시의회는 죽었다"는 내용으로 장례식 집회를 진행했고요. 송활섭 의원의 주민소환 청구를 통해 직접 제명을 하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성추행 가해자를 옹호하는 지방의회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띠모는 징계안 부결의 여파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전시의회는 시의원의 성범죄 등의 범죄 또는 윤리의식 부재에서 비롯된 일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에요. 이후 대전시의회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을 때, 제대로 된 징계가 가능할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9대 대전시의회의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성범죄에 대해 아무런 감각이 없는 대전시의회가 앞으로 성평등 정책을 이야기하고, 여성 정책을 이야기하면 진정성이 느껴질까요? 예를 들어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전시의회의 역할도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대전시의회가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낸다면, 이는 띠모와 시민에게 위선적인 대안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매우 높죠.  이것이 대전시의회가 역대 최악의 결정을 통해 시민의 신뢰를 저버린 결과입니다. 2. 대덕구의회는 그냥 죽었습니다 대덕구의회는 원구성을 아직도 못했습니다. 9월 4일은 대덕구의회 의장단 구성 세 번째 투표였는데, 이마저 부결로 무산되었습니다. 송활섭 의원 제명안 부결과 같은 날에 벌어진 일이니, 띠모는 9월 4일을 지방자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날이라고 명명하기로 했어요. 지난 뉴스레터에서 대덕구의회 원구성을 다뤘죠. 당시에는 김홍태 의원이 계속해서 의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소식을 가져왔는데요. 이번 의장단 선거에는 김홍태 의원이 등록하지 않고, 국민의힘 양영자 의원만 의장 후보에 등록했어요. 이렇게 김홍태 의원이 의장 연임을 포기하면서, 의원 간의 합의가 이뤄진 줄로만 알았죠.  하지만 9월 4일 선거 당일, 1・2차 투표 모두 4:4 동률이 나오며 과반을 얻지 못해 또 다시 의장 선출에 실패했어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대덕구의회 원구성 실패 44일 규탄 기자회견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진보당 대전시장, 정의당 대전시당은 세 번째 원구성 실패 뒤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의정활동비 반납, 의장선출 규정 개선 등을 요구했어요. 이마저도 하지 못한다면 사실 사퇴하는 게 맞다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사실 의장단을 새로 선출하는 이 시기에 지방의회는 할 일이 정말 많아요. 후반기 의장단을 꾸리면, 상임위원회도 새롭게 구성해야 해요. 각 의원은 상임위원회가 바뀌면, 소관 부서의 업무도 다시 파악해야 하고요. 그러다 11월이 되면 행정사무감사를 하고, 곧바로 2025년도 예산안 심의를 해야 하죠. 그런데 지금까지 의장단 구성도 하지 못해 이 모든 일이 밀려있어요. 다음 본회의는 다시 열리더라도 추석 명절 이후 열리게 될 거 같은데요. 다음 본회의에서 의장단을 새로 구성한다고 해도, 남은 짧은 기간 안에 이 모든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요? 띠모는 잘 모르겠어요. 더군다나 대덕구의회는 질의 수준을 평가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의가 많이 없는 의회였어요. 실제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기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대덕구의원들은 의정활동비 반납 등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하지 않을까요? 의정활동비는 의정활동을 위한 자료수집, 주민들 만남에 쓰는 비용이죠. 자료 수집과 주민의견 수렴은 공식적인 회의장소에서 질의, 조례 발의 등으로 표현될 텐데요. 그런데 지금 질의를 할 수 있는 회의도 열리지 않고, 조례안도 심의하지 못하니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해요. 이마저도 못하겠다면 사퇴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대덕구의원들은 앞으로 어떻게 의정활동을 할 건지 보여주길 바라요. 더 이상 지방자치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지방의원을 뽑는 것은 집행부에 대한 견제, 감시를 위함인데요. 하지만 선출직 공직자가 지녀야 할 태도 또한 무시할 수 없어요. 의정활동의 정당성은 지방의원의 윤리와 도덕성에서 기반되는 거죠. 그리고 그것들이 지켜질 때 지방의회 무용론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 대전 지방의회의 성인지감수성과 지방자치가 모두 죽었다는 의미로 띠모크라시를 보냈습니다. 띠모는 보내면서도 꽤나 착잡했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이 글은 뉴스레터로 발행된 지난 띠모크라시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띠모크라시 모아보기🧡 띠모크라시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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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25년 경력단절을 넘어서
25년 경력단절을 넘어서 (2024-09-09) 서윤경 | 약국 파트타임 직원 약장에는 일반 약들이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는데, 빠진 약들을 파트타임 직원이 중간중간 채워두어 판매를 원활하게 돕는다. 필자 제공 결혼하고 2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았던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며 호시탐탐 사회로 나갈 궁리를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일로 사회에 나갈 방도는 생기지 않았고 어느덧 쉰을 넘긴 나이가 됐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군가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온 25년이었다. 이제부터는 내 이름으로 활동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20대 때의 회사 경력이 단절된 나는 사회에 다시 나가는 게 무척이나 어렵게 느껴졌다. 내 성격과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싶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일하고 싶었던 약국에 아르바이트 지원을 했다. 감사하게도 면접의 기회가 주어졌고 면접이 끝나갈 무렵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말을 듣고 가슴이 뛰었다. 일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과 달리 약국에서의 일은 또 다른 즐거움과 보람이 있었다. 집안일을 어느 정도 해놓고 오후에 파트타임으로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좋았다. 나는 주 5회 하루 네시간 정도 약국에서 일한다. 약국에는 약을 짓고 복약 지도하는 약사님들, 약이 떨어지지 않게 물량을 주문하고 재고를 관리하며 약국 살림을 담당하는 풀타임 직원분들, 그리고 약사님들의 일을 보조하는 파트타임 직원분들이 있다. 파트타임 일을 흔히 약국 알바라고 말한다. 광고 내게 처음 맡겨진 일은 시럽이었다. 처방 스티커가 나오면 투약 병에 스티커를 붙이고 해당 시럽을 용량에 맞게 따르는 일이었다. 이제는 시럽뿐만 아니라 처방전 입력, 일반 약 판매와 결제, 약장 채우기, 약 포장지 준비 등 내가 하는 일이 늘었다. 일이 익숙해진 덕분인지 눈앞에 일이 보이면 바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잘 몰랐던 많은 약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약이 들어오면 약 이름과 기본 효능 정도는 알아두려고 한다. 약은 처방전에 나온 대로 정확하게 나가는 게 중요하다. 다양한 약들을 챙겨야 하므로 꼼꼼하게 약의 위치나 이름 등을 미리미리 암기해놓으면 좋다. 재밌는 점은 약의 이름이 지어지는 방식이었다. 쓰임에 맞춰, 기억하게 좋게 약의 이름이 지어졌다. 약 이름을 잘 모를 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손님이 ‘작감정’을 달라고 하셨는데, “네? 닭강정이요?”라고 되물어서 약국이 웃음바다가 됐다. 50여년 동안 소비자로서 약국을 드나들며 느꼈던 약국의 느낌은 평온하고 친절하며 물 흐르듯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약국 보조로 일하며 조제실 안이 이렇게 바쁘고 할 일이 많은 곳이었는지 처음 알게 됐다. 힘든 점이라고 하면 역시나 쉴 틈 없이 밀려드는 처방전들이다. 바쁠 때는 화장실 가는 것도 잊고 물 마실 시간도 없이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한건 한건 처리해 나간다. 약국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손님들이 모두 약을 처방받아 가고 한두분 남았을 때가 돼야 겨우 숨을 돌린다. 우리 약국에는 총 아홉명이 일한다. 서로 돌아가며 출근 시간을 달리해 일하는데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일하고 있다. 50대인 나는 젊은 분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 크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아기 손님들이다. 요새는 길을 가다가 유아차에 탄 아기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같은 건물에 소아과 병원이 있는 약국이다 보니 아기 손님들이 많이 온다. 손을 흔들며 약국 안으로 들어오는 아기들을 보면 천연 비타민이 따로 없다. 약국에 있으면서 약국이란 곳이 생로병사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곳이라는 걸 느꼈다. 오랫동안 근무한 약사님들은 오랜 단골손님 중에 어릴 적부터 다니던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거나 군대에 가고, 어르신들은 하루가 다르게 나이 드심이 보이고 가끔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손님 가족들에게서 듣게 된다고 했다. 우리 약국은 참 바쁘지만, 친절하다. 약도 정말 빠르게 나온다. 근무자가 여유 있게 배치돼서이기도 하겠지만, 약국 분위기가 쾌활하고 태도는 친절하며 응대 또한 빠르다. 약국도 하나의 작은 사회다. 약을 준비하는 손이 정신없이 바쁜 날도 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존중과 배려, 협동이 있어 바쁜 날도 웃으며 일할 수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되 자기 일이 아니어도 서로 도와가며 정확하고 신속하게 약이 나갈 수 있게 하는 흐름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손발이 맞으면 바쁜 날도 순조롭게 일이 진행된다. 이처럼 작은 이해가 큰 차이를 만든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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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을 부정하는(과학 지식을 부정하는) 고위공직자 임명의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진화론은 거짓이며,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차별금지법은 질병을 증가시킨다!이런 신념을 가진 고위공직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의견이 있는지 궁금해서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숲사이에서 설문조사로 진행해 보았습니다.  ------------------------------------------------------------고위공직자의 과학 지식 수용 태도가 직무 수행에 미치는 영향 인식조사    고위공직자(국무위원)의 과학 지식을 수용하는 태도가 직무 수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조사입니다. 최근 고위공직후보자의 발언에서 나타난 과학 지식을 부정하는 태도가 논란이 된 가운데, 공적 업무에 있어서 과학 소양이 필수 요소인지, 나아가 이러한 과학 지식을 수용하는 태도가 공직자로서 적합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고자 합니다. 과학 지식의 수용 태도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과 직무 수행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고민해보는 자료로 활용 될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의 과학 지식과 관련하여 논란이 된 발언 요지>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며, 진화론은 과학적 근거 없다.’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항문암·A형간염’ 질병이 확산된다.‘ ■ 설문기간: 2024.09.10. ~ 09.15. (6일간) ■ 설문진행: 숲사이(soopsci.com) ■ 질문수: 6문항 (예상 소요시간 1분 내외) 설문 참여하기: https://forms.gle/7MYSpzEEJQ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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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사회 한국, 떠나는 한국인
“한국이 싫어서, 그래서 떠났어” 최근 개봉한 영화 <한국이 싫어서>에 나오는 대사다. 영화는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계나는 편도 2시간이 넘는 통근 시간을 견디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다. 계나는 해 뜨기 전 출발하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매일매일 열심히 뛰어서 버스에 탄다.  버스가 회사까지 가면 좋으련만, 그녀는 몇 번의 환승을 거쳐야만 회사에 갈 수 있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또 다른 노선으로 환승해서 온 회사지만, 출근하자마자 드는 생각은 “집에 가고 싶다.”이다. 직장 생활도 맞지 않는다. 일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라며 자격 미달의 업체를 선정하라는 상사에게, “자격 미달의 업체를 걸러내기 위해 공개 입찰을 하는 거예요.”라며 맞선다.  부당한 상사의 지시에 계나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자 말은 “퇴사하겠습니다.” 물론 진짜 퇴사는 아니다. 상사의 기를 꺾으려는 것. 팀장 역시 갑작스럽게 팀원이 퇴사하면 인사고과에 좋게 반영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할 수 있던 말이다. 결국 계나는 팀을 옮기는 것으로 합의를 본다. 하지만 계나의 고민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 집은 이사가는 데 적금 깨서 돈 좀 보태달라고 한다. 남자친구와 그의 부모님들은 계나의 사정을 아는지 자꾸 동정한다. 더구나 한국의 겨울은 너무도 춥다. 보일러 안 되는 집에 이불을 아무리 감싸도 추위는 봄이 와야지만 누구러진다. 하지만 이는 계절의 변화일 뿐. 다른 의미에서 계나에게 봄날은 올 기미가 없다.  결국, 계나는 선택한다. 한국을 떠나기로. 저 멀리 남쪽의 따뜻한 나라로 가기로. 시급 높고, 날씨 좋고, 직업과 가진 것으로 판단 안 하는 나라로 가기로. 새로 시작하기로. 그녀의 독백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내가 왜 한국을 떠나느냐고?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 못 살겠어서.’” 서울에 사는 것도 스펙이야 6년 전이다. 대학내일에서 유튜브에 한 영상을 올렸다. 제목은 <서울로 취직한 지방러의 속마음>. 2분 30초 남짓의 영상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두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민영아, 서울에서는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월급이 반토막 난다? 그러니까 나는 서울 사는 동기보다, 반밖에 못쓰고 못 모은다는 거지. 서울에서 태어나는 거 그거 진짜 좋은 스펙이더라.” “우물 안 개구리 되는 게 죽기보다 싫었거든? 근데 그 우물이 생각보다 안전하고 따뜻했구나 싶은거지. 여기서 안 내려가고 버티면, 나도 서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6년 전, 처음 저 영상을 보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과 한창 대화를 나눴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각기 다른 지방에서 올라온 내 친구들은 자신들이 내는 월세가 얼마인지, 공과금이 얼마인지, 생활비가 얼마인지 등 숨만 쉬어서 나가는 돈을 소리 높여 말했다. 가볍게 세 자리가 넘어갔다. 갓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초년생들이 내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 금액을 내 친구들은 대학생 때부터 꼬박꼬박 미루지 않고 냈다. 물론 그 돈을 꼬박꼬박 내기 위해 대학 생활 내내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쉬지 않았다. 부모님이 지원해주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내 친구들의 경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자립심 강했던 친구들은, 부모에게 힘든 소리하는 걸 수치로 여겼다. 억센 사투리는 그런 말을 할 때면 화가난 듯 들리다가도, 서글프게 들리곤 했다.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친구들은 개천에서 용난다 정도의 업적은 아닐지라도, 집안에서는 다시 없을 경사였다고 말했다. "내 새끼 서울가는구나"라며 꼭 안아줬다고. 그런 축하를 받았는데, 어떻게 집에 힘든 소리를 하겠냐고 말하곤 했다. 내 친구들에게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서울이라는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고 떨어진 낙오자를 의미했다. 친구들을 보며, 지방 사람들에게 서울 생활이란 ‘부모에게 조차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삭히며 웃어야 하는 생활' 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친구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서울 토박이가 뭘 아나, 뭘 누리고 있는지" 물론 서울도 서울나름일 것 “서울 토박이가 뭘 아나" 라는 친구의 말이 모든 서울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서울 사람이라도 거주지와 거주 형태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자가, 전세, 월세의 삶이 다르고, 아파트와 빌라의 삶이 다르고, 강남과 강북의 삶이 다를 것이다. 서울에 살아도 안락함과 안정감은 제각각이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자가 보유율은 55.8%, 자가 점유율은 51.9%였다. 수도권은 서울, 인천, 경기권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서울 거주자의 자가 보유율과 점유율은 모두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자가가 아닌, 전세와 월세는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내 친구들과 영화 속 계나, 영상 속 지방러의 말에 담긴 ‘서울에 사는 것도 스펙' 이라는 말은 서울에 자가를 보유한 집의 자녀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국토부의 통계는 서울 사람 대부분이 이 ‘서울' 스펙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울로 모인다. 최근 한국은행은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 대응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서울 집중과 그에 따른 문제 원인을 ‘입시' 경쟁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그 수혜를 일부 지역만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은행, “소득 높으니 대학도 잘가더라" 한국은행 보고서를 요약하면, “서울이건, 지방이건 학생들의 능력 차이는 없다. 다만, 거주 환경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인재는 어디에나 있다. 지방 학생 수에 비례해서 학생을 뽑자. 이것이 그 어떤 경제 정책보다 효과적인 수도권 집중 현상과 서울 집 값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대학교 총장이 결단하면 된다.”이다. 사진의 모습처럼 우리나라는 수도권 특히 서울 집중 현상이 크다. 한국은행은 그 이유를 입시 경쟁으로 지목한다. 내 자녀가 나보다 더 나은 삷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교육에 투자하게 하고, 그 교육열이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이어져 집 값 상승과 사교육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사교육비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런 경쟁은 부모들이 직접 수능까지 접수하게 한다. 자녀가 밟고 설 밑바닥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보낸 서울대인데, 부모 입장에서는 충분히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나, 서울대생 부모야.”라는 스티커를 붙이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한편, 이러한 사교육 지출에도 상위권 대학에 가는 건 소득 분위가 높은 가정의 학생들이었다. 그 중 서울대의 경우 강남3구 거주 학생들의 진학률이 가장 높았다. 물론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 진학이 결코 사교육에만 의존해서 되는 건 아니다. 학생들 개개인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있을 수 있는 결과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부인하고, 학생들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저소득층이나 고소득층이나 사교육비 지출이 높은 가운데, 고소득층의 학생들이 서울대 등 상위권 대학 진학률이 높다는 건 안타깝다. 대학이 계급인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던 분노가 8년 전인데, 아직도 진행 중이다. 대학교 간판은 영원한 계급 보고서는 입시 경쟁만이 아니라, 학교 내에서의 계급화도 다룬다. 보고서는 서울대 학교 재학생들이 “지균충 기균충(지역균형전형 기회균형전형 입학생 비하)”라며 서울 외 지역에서 입학한 학생들을 비하하는 걸 직접 다뤘다.  놀랍지는 않다. 과거에도 명문 대학교 내에서 성골, 진골, 6두품 등으로 급을 나눴었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대학교 간판이 계급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너랑 나는 급이 달라.” 말로 애써 내뱉지 않는 저 말을, 마음속에는 은근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한국은 이상하게 대학교에 집착한다. 대학원도 아니다. 학부를 어디서 나왔느냐가 중요하다. 서울대 대학원을 나와도, 학부가 서울대가 아니면 소위 쳐주지 읺는다. 유튜브에서 학부의 중요성을 개그 소재로 사용된다. 수능 커뮤니티에도 대학교 서열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입학하고 졸업한 대학교가 내 위치를 말해준다고, 저기에 가야 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런 걸 학생들 잘못이라 말할 수도 없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인데, 모두 어른들의 잘못이다. 기업 평가 최하위, 한국 대학생 한국은행의 보고서는 이런 계급을 올리기가 학생들의 창의성과 협동심을 줄이고, 기업의 대졸자 평가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하게 만듦을 보여준다. 상위권 사람의 능력이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능력은 처참하다. 창의성과 협동심이 하락한 채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을 기업에서 낮게 평가하는 건 당연하다. 어느 조직에서, 어느 프로젝트를 하던지 상관없이 중요한 건, 개인 능력보다 팀의 능력이다. 팀 능력이 좋으려면, 팀 원 간 협업이 잘되어야 하고, 타 부서와도 협업을 잘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소통과 협동이 필수다. 이는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얼마나 교류했는지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이다. 어렸을 때부터 창의와 협동보다, 경쟁과 계급을 배우는 지금의 구조에서 그런 능력이 키워질리 없다. 한국은행, “지역 비례 선발제로 학생들 뽑자" 한국은행은 이 문제의 대안으로 ‘지역 비례선발제'를 제시했다. 이유는 “다양성 확대"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존중하고, 협업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과도한 입시 경쟁과 서울 집중 현상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방안이 허무맹랑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만큼, 지금의 현실도 허무맹랑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이없는 세상을 바꾸려면, 어이없는 대안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대안은 개인적으로 과도한 입시경쟁과 서울 집중 완화, 다양성 확대면에서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꼭 한국은행의 대안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계급을 타파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고향이든, 타향이든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의지해야 할 처지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계나는 뉴질랜드에 처음 발을 디딛고 만난 한국 남자 ‘재인'이 “나는 지잡대 나왔어.”라고 주먹을 내밀자, “나는 홍대 나왔어.”라며 ‘나는 너랑 달라.’라는 티를 낸다. 둘 다 영어 못 한다고 현지인에게 핀잔 듣고, 같은 어학원을 다니는 처지임에도 말이다. 계나의 그런 모습은 남자친구와 그의 가족이 자신을 동정하자 남자친구에게, “너 나랑 같은 대학교 나왔어. 나도 너처럼 서울에서 좋은 학원 다녔으면 더 좋은 대학교 갈 수 있었다고.”라고 화내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동급의 동정을 못 참는 것처럼, 하급의 동급 취급도 못 참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같은 학교에서도 계급을 나누고, 다른 학교와도 계급을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그 뒤 계나는 재인을 지잡대 나온 양아치로 인식한다. 몇 년이 지나 재인과 통화하던 계나는 어학원 다닐 때의 첫인상에 대해 재인에게 말한다. 양아치인 줄 알았다고. 하지만 지잡대 나온 양아치여서 아침까지 술 마시다가 어학원에 빠지는 줄 알았던 재인은, 남들이 잘 때 일어나 아침부터 일을 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실을 뒤늦게 안 계나는 그제서야 진실을 알고 깨달고 멍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함께 살아가는 종족이다. 서로가 부족한 걸 채워나가며 살아왔고, 살아가야 하는 종족이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등을 맞대야 할 같은 처지다. 그런 종족에게 대학이라는 간판으로 만든 계급과 서열은 서로를 양분하여 협업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위계만 만드는 초석이다. 그리고 그 문제의 현상으로 저출산과 서울 집중, 집 값 상승 등이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서 서울이 스펙이 되지 않고, 대학이 계급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지방러 고충 영상처럼 “서울 사람 될 수 있을까.” 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이 계급이 되는 순간, 어떻게든 올라가려 서울로 올라오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서울 외 모든 것이 오답이 되어 버린다. 서울이 정답이 될 수 없다. 서울만이 줄 수 있는 계급이란 것도 없다. 과거의 풀이법으로 현재의 문제를 풀려고 하면 남아 있는 사람들만 떠날 뿐이다.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처럼 말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을 한 친구에게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친구와 짧은 대화다. “나 퇴사 했어.” (친구) “오, 이직하게?.” (나) “아니. 이민 준비한다. 더는 안 되겠다.” (친구) “왜?”(나) . . . “한국이 질렸어. 이제 싫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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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찾았다’ 혈세 5천만원 받고 선배 논문 표절한 검사[표절 검사의 공짜 유학 20화]
또 찾았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세금으로 ‘공짜 유학’을 다녀와, 연구논문을 표절한 걸로 의심되는 검사를 또 발견했다. 인천지방검찰청 소속 최우혁 검사(사법연수원 40기)다. 최 검사가 네덜란드로 국외훈련을 다녀와 작성한 연구논문 총 56쪽 중 33쪽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표절률은 51%. 표절 대상이 된 저작물은 2013년 네덜란드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다녀온 선배 검사의 논문이다. 최 검사가 1년간 네덜란드에 머무는 데 지원된 국외훈련비는 약 5243만 원이다. 지난 2022년 셜록은, 2019~2021년 발행된 검사 연구논문 84건의 표절 여부를 이미 한 차례 검증한 바 있다. 그중 표절 논문 5건을 발견해, 5명의 전·현직 검사 전원을 대상으로 국외훈련비 일부 환수까지 이끌어냈다. 논문 표절을 이유로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최초의 사례였다.(관련기사 : <[해결] 표절 검사 5명 훈련비 환수… 셜록이 만든 ‘최초’>) 지난달 셜록은 법무연수원 홈페이지(www.ioj.go.kr)에 공개된 2022~2023년 발행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47건을 추가로 살펴봤다. 우선 표절 심의 사이트 ‘카피킬러’를 통해 표절률을 조사하고, 이 중 표절 의심 논문 1건을 발견해 논문 내용을 한 문장 한 문장 직접 검증했다. 최우혁 검사는 2020년 12월 11일부터 다음 해 12월 10일까지 1년 동안 네덜란드 흐로닝언(Groningen)대학교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당시 최 검사는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 소속이었다. 최 검사는 국외훈련 이후 <네덜란드 검찰 조직과 기능에 대한 연구>라는 연구논문을 작성했다. 해당 논문은 2022년 법무연수원이 발간한 <국외훈련검사 연구논문집(제37집)>에 실렸다. 최 검사가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저작물은 선배 검사가 작성한 국외훈련 연구논문이다. 이○○ 검사(사법연수원 36기)는 2012년 12월 30일부터 약 1년 동안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교로 국외훈련을 다녀왔다. 이 검사는 <네덜란드의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관계>라는 제목의 국외훈련 연구논문을 작성했다. 셜록이 두 논문을 비교한 결과, 최 검사의 논문 총 56쪽(목차, 참고문헌 제외) 중 33쪽에서 표절 정황이 발견됐다. 전체 문장 421개(논문 요약 포함, 주석 제외) 중 표절로 의심되는 문장이 216개. 표절률은 약 51%다. 문장 두 개 중 하나는 베낀 꼴이다. 최 검사는 논문의 첫 장에 등장하는 ‘논문 요약’부터 베낀 걸로 보인다. 논문 요약에서 최 검사가 새로 쓴 문단은 단 한 문장밖에 없다. 나머지 문단은 아예 이 검사 논문과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검사가 ‘협상처벌(trasactie)’, ‘제재명령(strafebeschikking)’으로 번역한 단어를, 최 검사는 각각 ‘형사협상’과 ‘과형명령’으로 바꾼 정도였다. 본문은 거의 ‘복사-붙여넣기’ 수준이다. 최 검사는 ‘Ⅱ.네덜란드 수사절차 개요’에선 1.범죄의 구분과 2.수사절차 부분을, ‘Ⅲ. 네덜란드 검찰의 조직과 구성’에선 1.검찰제도의 연혁 및 개관과 2.검찰의 조직을, ‘Ⅳ.네덜란드 검찰의 권한과 기능’에선 1. 검찰의권한과 의무와 2. 사법경찰관에 대한 지휘·감독을, 선배 검사 논문에서 거의 ‘통째로’ 가져다 썼다. 문장 순서와 내용 구성 등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다. 최 검사가 한 일은, 선배 검사가 쓴 논문에 새로운 내용 일부를 덧붙이는 정도다. ‘맺음말’까지 절반 이상을 이 검사의 논문에서 가져다 썼다. 참고문헌과, 각주도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동일했다. 최 검사는 참고문헌 목록에 이 검사의 연구논문 제목을 밝혔지만, 문장과 구성의 유사도를 살펴볼 때 단순 참고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 검사가 해당 논문을 쓰기 위해 네덜란드에 1년 동안 체류하면서 쓴 국외훈련비(체재비+학자금)는 약 5243만 원(21대 국회 기동민 의원실 제공 자료). 국외훈련 기간 동안 급여도 지급받았다. 최 검사는 왕복항공료로만 약 689만 원을 썼다. 2018년부터 2021년 사이 같은 대학으로 국외훈련을 떠난 검사 5명 중 가장 큰 금액이다. 평균(약 297만 원)의 두 배가 넘는다. 최 검사가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떠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 국외훈련 공무원은 배우자와 자녀 몫을 포함한 왕복항공료를 지원받는다. 지난해 6월 개정된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 제18조(비용의 지급 등)에 따르면, “연구보고서의 내용이 부여된 훈련과제와 관련이 없거나 다른 연구보고서·논문 등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진 경우”에 해당하면 법무부 장관은 국외훈련비 일부를 환수할 수 있다. 환수 범위는 최대 20%. 셜록 보도 이후 일어난 변화다. 셜록은 지난 2022년부터 19편의 기사를 통해 ‘표절 검사’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셜록은 검사 5명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직접 신고했고, 이들 전원은 지난 6월 국외훈련비 일부를 환수당했다. 법무부는 상세내역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환수 비용은 최대 3800만 원으로 예상된다. 법무부 장관도 ‘표절 검사’ 국외훈련비 환수 이행을 약속한 바 있다. 이탄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2월 인사청문회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향해 ‘표절 검사’들에 대한 국외훈련비 환수 조치 계획에 대해 질의했다. 당시 박 장관은 “(국외훈련비) 일부를 회수하고 있다”면서, 아직 국외훈련비를 회수하지 않은 사례에 대해서도 환수 이행을 약속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최우혁 검사를 대상으로 한 국외훈련비 환수 여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관련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대상자의 사생활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지난달 26일 셜록의 질의에 답변한 내용이다. 당사자인 최우혁 검사의 입장은 어떨까. 지난 26일 최 검사와 연락이 닿았다. 최 검사는 “표절 논문을 쓴 걸 인정하냐” 묻는 기자의 질의에, “언론사를 직접 대응하지 못하는 (검찰) 내부 방침이 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셜록은 최 검사 역시 권익위에 부패행위로 신고할 계획이다. 한편, 셜록은 또 다른 ‘표절 검사’들을 찾기 위한 정보공개 소송도 이어가고 있다. 1심 법원은 지난 3월, 국외훈련 검사들의 학위 취득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 전체와 연구결과 심사위원회 정보에 대한 공개 청구는 기각했다.(관련기사 : <법원 “혈세로 유학가서 학위 딴 검사들 모두 공개하라”>) 셜록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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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분야에 영향력을 높여가는 이들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9월 둘째 주by 🎶소소 1. 2024년 AI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타임지가 AI 분야의 영향력 있는 100인을 발표했습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허깅페이스, 오픈AI 등 다양한 AI 관련 기업의 경영진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올해 선정된 100인 중 91명은 작년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던 인물이라고 하는데요. 정말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라는 것이 실감 납니다. AI 위험을 경고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나 기관의 인물들이 눈에 띕니다. 영국, 미국에 신설된 AI 안전 연구소를 이끄는 인물들도 등재되었습니다. 영국 공정거래위원회, 미국 상무부 장관과 과학기술부처의 정부 관료들도 이름을 올렸는데요. 작년부터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AI 규제를 만들고 실행하는 이들이 AI 기술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100인의 인물을 살펴보며 알게 된 새로운 인물도 소개합니다. 미국 전역에서 딥페이크 피해자 보호 캠페인을 하는 열 다섯살의 프란체스카 마니(Francesca Mani)입니다. 마니는 반 친구들이 딥페이크를 사용해 자신을 포함한 여학생 친구들의 사진으로 성 착취적인 불법 합성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국의 정책 입안자, 학교 위원회, 기술 회사 앞에서 시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이 있으니 한 번 살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 댓글- (🤖아침) 이런 종류의 목록이 발표되면 으레 갑론을박이 뒤따릅니다. 그중 기술 전문 저널리스트 브라이언 머천트의 의견이 눈에 띄었는데요. 머천트는 목록에 기업 CEO를 위시한 업계 거물이 대거 포진한 반면 팀닛 게브루, 에밀리 벤더, 조이 부올람위니, 테드 창, 메러디스 휘태커 등 비판적 목소리를 높여온 인물들이 작년과 달리 올해는 빠진 점에 주목합니다(리나 칸, 사샤 루치오니, 벤 자오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긴 하지만요). 그리고 이 목록이 잘못되었다기보다, 오히려 너무나도 현실을 정확하게 드러낸다고 꼬집습니다. AI는 부자들이, 부자들을 위해, 노동을 자동화하여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만드는 기술이라는 것이죠. 2. AI 기업이 쓸어 담는 수조 원의 투자금 오픈AI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투자 유치 중이라고합니다. 현재 기업가치를 1000억달러(약 134조원) 규모로 추정하는데요. 엔비디아가 투자자로 참여한다거나, 비영리를 표방한 투자금의 100배 수익 제한 기업(capped for profit) 구조마저도 포기한다는 여러 소문이 무성합니다. 오픈AI의 주간사용자가 2억명을 돌파했다는데, 여전히 막대한 투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델 개발에 끊임없이 돈이 들어간다는 뜻이겠죠. 오픈AI의 방향성에 반대하며 사임한 일리야 수츠케버(Ilya Sutskever) 또한 최근 막대한 투자금을 조달했습니다. 그가 창업한 Safe Superintelligence(SSI)가 설립 3개월 만에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는 소식입니다. 어떤 기술을 개발하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리야 수츠케버를 믿고 대규모의 투자가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SSI 측은 안전한 초지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기 전에 몇 년 동안은 연구 개발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도대체 이 AI 기업들은 이 돈을 다 어디에 쓸까요? 아마 많은 돈이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는 데 쓰일 것으로 보이는데요. 불확실한 AI의 미래에 너무 많은 인간의 자원이 투입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됩니다. 더 좋은 AI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컴퓨팅 연산이 우리의 미래에도 의미 있는 연산이기를 바랍니다. 3. 대한민국 AI 기본법 불발, 국경을 넘는 AI 국제 조약 각 국에서 AI 규제를 위한 여러 법안이 제출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합의되는 법안도 있지만 불발되는 법안도 다수입니다. 우리나라 22대 국회에 재제출된 AI 기본법은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착취물 실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AI가 악용되는 경우를 규제할만한 방안이 부족하다는 평가인데요. AI 부작용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으로서의 법안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한편 국경을 넘어 AI 기술의 위험 통제와 책임을 요구하는 AI 국제 조약에 미국, 영국, 유럽연합을 포함한 10개국이 서명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AI와 인권, 민주주의 및 법치에 관한 기본 협약” 입니다. 5개 서명국이 본 조약을 자국 법률에 따라 비준하면, 3개월 후 발효됩니다. 이 조약은 유럽 AI 법이 유럽 지역에만 적용되는 한계를 보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벌금 등 제약사항이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도 연방정부 차원의 AI 법은 없으나, 미국 AI 안전 연구소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의 AI 모델 사전 테스트 권한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AI 모델 출시 전 모델의 성능과 위험을 평가한다는 취지입니다. 앞으로 정부가 직접 AI 모델을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규제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4. 딥페이크 성착취물 반대 행진 전국 144개 시민사회 단체가 주최한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 대응 긴급 집회에 시민 50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보신각 앞에 모인 참석자들은 “불안과 두려움 아닌 일상을 쟁취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습니다. 정부가 범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플랫폼이 적극 대응하기를 촉구하는 마음이 전해졌길 바랍니다. 한국의 딥페이크 성착취물 실태가 전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의 많은 여성들도 함께 분노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국대사관 앞에서는 한·중·일 동아시아 여성을 비롯해 세계 각국 출신의 100여명이 불법촬영물, 여성혐오문화 반대를 외치고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행진했습니다. 이번주 수요일(2024년 9월 11일)🦜AI 윤리 레터도 딥페이크 성범죄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와 함께 마련했습니다. 매일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를 보며 쌓이는 분노의 에너지를 문제 해결의 에너지로 바꿔내고 싶은 분들을 초대합니다. 직접 문제해결을 위한 캠페인을 만들고 실행해보는 워크숍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다양한 분을 만나뵙고 말씀 나누길 기대합니다. 📆 소식- 딥페이크 성범죄,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feat.캠페이너 인생게임)주최: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 AI 윤리 레터(행사일: 2024-09-11)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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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왕 일당 ‘110억 원대’ 범죄수익금 환수[사채왕과 새마을금고 20화]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범죄수익금 중 113억 원가량이 환수됐다. 김상욱과 전종남 전 청구동새마을금고 상무가 검찰에 기소된 직후인 지난 5월, 범죄수익금 약 228억 원 중 113억 원이 환수된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5일 경기북부경찰청 담당 수사관은 “김상욱과 전종남의 계좌, 현금, 부동산, 차량 등을 몰수했다”며 “김상욱과 전종남이 이미 사용한 범죄수익은 그들의 재산을 추징하는 방식으로 조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범죄수익 환수 방식은 두 가지다. 몰수보전은 범행으로 취득한 재산을 처분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방법이다. 만약 범죄수익을 써버린 경우, 그만큼 범죄자의 재산을 동결해 추징보전 할 수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 간 통화 녹음파일 약 900개 등을 입수해, 2023년 청구동새마을금고 뱅크런 사태의 뿌리에 김상욱 일당의 전국적인 사기 범죄가 있음을 보도한 바 있다. 김상욱은 전종남 등 공범들과 함께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1500억 원대 불법대출을 일으켰다. 그 여파로 대규모 ‘뱅크런’ 사태가 일어났고, 청구동새마을금고는 문을 닫고 이웃 금고로 통합됐다. 김상욱 일당의 대표적인 ‘작업’ 현장은 경남 창원시 중고차매매단지 KC월드카프라자. 검찰은 이들이 KC월드카프라자 한 곳에서만 총 75회에 걸쳐 약 718억 5600만 원대 불법대출을 실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욱과 전종남이 KC월드카프라자 불법대출을 통해 취득한 범죄수익은 무려 228억 원 상당이다.(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수법은 이렇다. 김상욱 일당은 우선 모집책을 통해 명의대여자를 구했다. 모집책은 명의대여자에게 “1년간 명의를 빌려주는 조건으로 매달 대출이자와 200만 원의 임대수익을 보장하겠다”며, 1년 뒤에는 부채도 말끔히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에게 속아 명의를 빌려준 피해자는 75명. 김상욱은 모집책을 통해 수집한 명의대여자들의 대출 관련 서류를 전종남에게 넘겼다. 전종남은 그 서류를 기반으로 미리 섭외한 감정평가사를 이용해 부동산 담보 감정평가액을 부풀려 대출을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피해자들은 서울 신설동에 있는 카페 하타○○까지 와서 대출 서류를 작성했다. 김상욱의 아들이 운영하는 카페다. 그곳에 전종남 등 당시 청구동새마을금고 직원들이 출장을 나와 ‘자필 서명’을 받았다. 약 10억 원의 대출을 받겠다는 서류였다. 김상욱 일당은 피해자의 통장에서 대출금 일부를 계좌 또는 현금으로 빼갔다. 피해자들은 하루아침에 대출 원금 약 10억 원에 연 11%가 넘는 이자까지 떠안게 됐다. 김상욱은 전종남과 대출 사기를 공모하는 과정에서 ‘금품’을 건넸다. 검찰에 따르면, 2022년 김상욱은 전종남에게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권리금 1300만 원을 대신 내줬다. 커피전문점은 전종남 아내 이름으로 운영됐다. 벤츠 차량도 사줬다. 경찰은 김상욱이 전종남에게 7회에 걸쳐 3억 400만 원가량의 뇌물을 제공한 사실을 파악했다. 피해자들은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아니면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개인회생을 신청한 피해자도 있다. 김상욱 일당이 구속된 이후에도 새마을금고중앙회의 독촉장을 받고 있다.(관련기사 : <“저 혼자 죽으란 말입니까”… ‘공범’이 된 사기피해자>) 피해자들이 생의 낭떠러지에서 발버둥칠 때, 김상욱 일당은 시그니엘서울 레스토랑에서 비싼 밥을 사 먹고, 명품 옷을 사 입었다. 지난해 7월, 김상욱이 자신의 공범에게 전화로 한 얘기다. “회장님(김상욱 본인) 지금 신발하고 옷 다 에르메스거든. (…) 에르메스 가방 3억 원짜리 있는 거 아냐? 우리 와이프가 3억짜리 들고 있는 거야. 회장님(본인) 티셔츠도 에르메스야. 280만 원짜리.” 사채왕 일당은 대출금의 일부를 김상욱 본인, 아내, 모집책 등의 계좌로 송금하거나 현금으로 인출해 빼돌렸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상욱은 불법 대출금 중 약 220억 원을 중개수수료를 명목으로 가져갔다. 전종남은 14회에 걸쳐 대출금 일부를 현금으로 인출해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 금액은 8억 8000만 원가량이다. 전종남 상무가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현금을 쇼핑백에 담아 직접 들고 나가는 장면이 포착된 바 있다. 김상욱과 전종남은 지난 4월 23일 구속됐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업무상 배임) 등 혐의를 받는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김상욱은 무죄를 주장하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전종남 역시 청구동새마을금고에서 나간 대출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대출이라고 항변했다. 경기북부경찰청은 KC월드카프라자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부동산 담보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 여죄를 수사 중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추가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김상욱과 전종남은 법원에 보석을 신청했다. 첫 공판이 열린 지난 7월 5일 김상욱의 변호인은 “건강상의 이유로 보석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보석 신청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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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은 어떻게 운동이 되는가
‍ “그래픽은 어떻게 운동이 되는가” 일상의실천 권준호 대표 저는 냉소에 그치지 않는 시도들이 변화를 이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는 더디다고 느끼는 사회변화일지라도요.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오늘은 일상의실천을 이끄는 권준호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그는 도서 <디자이너의 일상과 실천>을 집필했는데요. 글을 쓰는 에디터이자 사회변화를 꿈꾸는 구성원인 저에게 커다란 영감을 안겨준 책입니다. 사심을 가득 담아 진행한 그와의 인터뷰, 함께 살펴보시죠! 1.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인 ‍‍2.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를 디자인하기 ‍3. 건강한 디자인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 🌿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인 ‍ | 준호 님의 '일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고정된 루틴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가능하면 가장 먼저 출근하려 해요. 보통 10시부터 출근인데, 저는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 작업실에 가요.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서 메일도 정리하고, 할 일 정리하는 시간이 되게 소중하더라고요. 작업하고 7시 즈음 퇴근한 뒤에는 테니스나 배드민턴 등의 운동을 하고 있어요. ‍ | '실천'은 꾸준함을 필요로 하는 일일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디자인을 해온 건데, 싫증이 나거나 지루하지는 않으세요? 올해로 11년 차네요. 길다면 길지만 한 분야를 파고드는 데 있어서 아주 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30년, 40년 동안 하시는 장인분들도 계시니까요. 제게 작업하다 지루함을 느끼거나 번아웃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주시는데, 저는 다른 작업을 한다고 답변해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그래픽 디자인은 범위가 굉장히 넓어요. 책, 포스터, 웹 디자인 모두 각기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죠. 저는 그때마다 스위치나 기어를 바꾼다고 표현해요. 운동으로 치면 수영하다 등산하는 느낌이라, 지루하지는 않아요. ‍ | 경력이 쌓인 만큼 일을 안배하거나, 하고 싶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서 그런 부분도 있을까요?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아드리아 쇼넷이라는 분이 지도 교수이셨는데요. 유학을 떠나기 전 이분께서 집필한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라는 책을 읽었어요. 핵심은 작업이 재미없다고 느끼면 그 작업은 결국 자기를 갉아 먹고, 그걸 오래 하다 보면 결국 영혼이 망가진다는 거였죠.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주변 사람들은 '일상의실천'이 이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오히려 반대였던 것 같아요. 일상의실천을 시작할 때부터 세 명이 모두 같은 생각이었어요. 월급을 안 가져가면 안 가져갔지,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은 하지 말자, 포트폴리오에 올릴 수 있는 작업만 하자고 결심했어요. ‍ 존경하던 디자이너 한 분도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수치심의 서랍’이라는 게 있대요. 돈 때문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했지만, 차마 공개하지 못한 작업물을 넣어둔 공간이 있다고요. 그 서랍을 만들지 않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부터 지금까지, 공개할 수 있는 작업만 해왔던 것 같습니다. ‍ | 협업을 진행하는 기준에도 비슷한 맥락이 있을 것 같은데요. 굉장히 맞닿아 있죠. 일상의실천을 시작할 때부터 적용한 세 가지 기준이 있어요. 첫 번째는 재미예요. 저는 디자이너이자 작업자이고, 무언가를 이미지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잖아요. 표현적인 측면에서 즐겁게, 재밌게 할 수 있는 작업인지가 중요해요. 두 번째는 의미예요. 저희는 초창기부터 의뢰를 기다리지 않고 시위 현장에 나갔어요. 1인 시위를 하고 계신 분, 광화문 광장에 계시던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찾아뵙고 디자인을 해드리겠다 했죠. 제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제가 만들어내는 작업이 어떤 식으로 의미를 갖고 통용될 것인지 고민해요. ‍ 세 번째는 예산인데요. 초기에 주로 함께 작업했던 비영리나 시민단체는 대체로 예산이 부족했어요. 이런단체의 작업만 계속하면 디자인 업무를 지속하기 힘들죠. 아무튼 아주 작은 금액이라도 무조건 받으려고 했어요. 재능 기부 형식으로 진행하면, 클라이언트는 무료로 받는 작업이니 디자인의 가치나 소중함을 고려하지 못하고, 디자이너도 높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기 어려우니까요. 세 가지의 기준 중 두 개가 충족되면 할만한 일이라 판단해요. 세 개가 모두 충족되면 좋겠지만 그런 작업은 존재하지 않더라고요. (웃음) ‍ 💨 시대에 필요한 목소리를 디자인하기 ‍ | “진보”라는 단어를 ‘고여있음을 거부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표현하셨더라고요. 준호 님이 삶과 업을 대하는 태도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한데요. 이와 같은 가치관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와이낫어소시에이츠라는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어요. 저는 스튜디오 창업자들을 학생 때부터 존경했어요. 그들은 영국이 경제 위기를 겪던 1970~80년대 대학을 나왔죠. 마가렛 대처가 수상이던 시절이었고요. 대처가 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해 경제 위기를 벗어났다고도 평가하지만,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사회적 불평등도 심화됐어요. 당시 대학생이던 이들은 정부 정책과 마가렛 대처가 불러온 변화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그래픽 작업을 했죠. 당시의 펑크 문화와 섞여서 하나의 사회적 이미지가 만들어졌어요. 제가 스튜디오에서 인턴을 할 때 그분들은 50대셨어요. 한국에서 50대 디자이너는 회사의 대표나 교수로 재직하는 등 현장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분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이디어 회의를 이어가는데 그 과정이 너무 즐거워 보이더라고요. 20대 때처럼 공격적이지는 않더라도, 본인이 가진 기득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으로 녹여서 풀어내고 계셨어요. 그들은 사회적 약자, 커뮤니티 등을 위한 작업 등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가치관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며 작업해왔죠. 글과 인터뷰를 통해 상상만 했던 그들의 모습이, 30년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게 감동이었어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다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겠네요. 요즘 시선이 닿는 사회 문제가 있으세요? 특정 사회 이슈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시선이 여러 방면으로 옮겨다니는 편이죠. 최근에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분과 작업을 했어요. 본인의 경험을 담아 도서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를 집필하셨고, 저희는 책 표지를 디자인했죠. ‍ 작업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건 이분의 태도였어요. 피해자는 본인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이분은 달랐죠. 직접 사건을 공론화하고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언하면서 자신의 사건을 변호했어요. 피해자가 적극 나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죠.‍ 이분은 자신의 책이 마냥 우울하거나 피해자 보고서처럼 느껴지지 않기를 바라셨어요. 법원에 출석할 때도 검고 칙칙한 옷이 아닌 밝고 화려한 옷을 입고 가셨는데, 책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셨대요. 그래서 다채로운 색을 사용해 화려하게 디자인했어요. 그분도 굉장히 좋아하셨고, 최근에는 책이 증쇄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어요. 이런 점들이 저에게 뿌듯함으로 다가오면서 작업의 의미를 깊게 만들어줘요. ‍ | 사회 문제와 맞닿아 있거나 비영리 단체에서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 작업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시나요? 사회에 의미 있고 필요한 목소리라고 판단할 때 그 작업을 맡아요. 하지만 동정이나 연민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클라이언트가 어려운 일을 당하셨다거나, 그 일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이유로 모든 요구사항을 무조건 수용한다면, 그건 디자인 자체의 가치나 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 | 어떻게 조율하시는지 궁금해요. 디자인적인 완성도보다 메시지를 드러내달라는 작업이 있다면, 디자이너 입장에선 다른 방식으로 풀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죠. 특히 노조나 노동계 분들과 작업하면 해당 분야에서 통용되는 시각 언어가 있어요. 머리띠나 조끼를 착용하거나 강렬한 색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 등이죠.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땐 이분들이 지향하는 방향이나 가치관이 의미 있다 판단하고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갈등이 생겼어요. 반드시 천지개벽체라는 서체를 사용해야 하고, 인물은 ‘투쟁’이라는 머리띠를 쓰고 있어야 한다 등 여러 제약 사항이 많았어요. 어디까지 수용하고 어떤 지점을 설득할지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했죠. 결국 머리띠를 빼고, 조끼와 평상복 사이의 절충안을 찾는 데까지 성공했어요. 그분들의 방식을 모조리 부정한 채 ‘문화예술계에서 사용하는 시각 언어가 세련됐으니 이렇게 합시다’ 강요할 수는 없어요. 이런 변화는 점진적으로 필요하다고 봐요. 클라이언트 분들은 시각적으로 너무 약해 보이지 않냐면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하셨는데요. 결과적으로 아주 잘 됐습니다. 노조 위원장 선출 포스터였는데, 그분이 위원장이 되셨거든요. (웃음) ‍‍ | ‘소통’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대라고 느낍니다. 소통의 측면에서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디자이너다 보니 세상을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보는데요. 동물보호 단체는 동물 권리의 시각에서, 환경단체는 환경 보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죠. 그런데 자칫 어느 한 쪽의 시각에만 치우치면 소통이 단절되더라고요. 얼마 전 비영리 단체와 작업을 했어요. 1년 반가량의 기간이었죠. 그렇게 오래 걸릴 작업은 아니었는데 연락이 끊기거나 논쟁이 이뤄지면서 과정이 길어졌어요. 그분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이렇게 보일 수 있다'는 식의 피드백을 계속 주셨어요. 저는 좀 더 일반적인 기준을 갖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고요. 특정 시야를 살짝만 벗어나면 다른 면이 있음을 알리는 게 디자이너의 일인 것 같아요. 같은 작업이어도 설득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에요. 이 분야를 그래픽 디자인이라고도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고도 표현하는 이유죠. 단순 미사여구가 아니라 ‘소통’이 정말 중요한 키워드여서 그런 것 같아요.‍ ‍ 하나의 작업을 두고 단순히 외주를 맡겨 진행하는 작업이 아니라, 작업을 사이에 두고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가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느껴요. 저는 작업이라면 자연스레 참여자의 의견을 들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탄생한 작업이 좋은 작업이자 건강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 반대로 건강하지 않은 작업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디자이너를 ‘을’로 여기는 경향은 여전히 강한 것 같아요. 왜 이런 관행이 굳어졌을까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저희는 비딩*(회사가 프로젝트를 맡기 위해서 경쟁을 펼치는 일종의 공모전)은 참여하지 않고 있어요. 처음 스튜디오를 연 뒤 멋모르고 참여했다가 심사위원분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길래 반박했더니 떨어졌거든요.‍ 비딩의 초점은 말 잘 들을 것 같은 디자이너, 그중에서도 비용이 가장 낮은 디자이너를 뽑는 것에 맞춰져 있어요. 제가 얼마 전에 세탁기를 바꿨는데, 세탁기는 모델마다 품번이 있고 어떤 플랫폼에서 사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잖아요. 같은 제품을 싼 가격에 사려 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해요. 그런데 디자이너의 작업은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어떤 화학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이거든요. 이걸 최저가의 가격으로 선정한다는 것에서부터 잘못됐다고 봐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거죠. 비딩에 선정돼도 함께 일할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는 것 또한 큰 문제 중 하나예요. 기획에 애정이 있는 기획자라면 이 디자이너가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나와 어떤 시너지가 날 것인지 여러 차례 리서치를 한 상태에서 디자이너를 선정하겠죠. 이렇듯 선정 과정에서부터 절차적인 문제들이 전반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 |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변화가 시작되어야 할까요? 와이낫어소시에이츠에서 일할 때, 연세 지긋한 신사분이 오셔서 디자이너와 담소를 나누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의 관장님이셨어요. 박물관 시즌 디자인을 의뢰하셨고 직접 디자이너의 사무실로 찾아오셔서 의견을 나눈 거죠. 어떤 기관이든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작업의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디자이너와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술관을 예로 들면 전시부장이나 관장 등이 결정권을 갖고 있을 텐데, 보통 주니어 큐레이터분이 연락을 주시죠. 큐레이터의 마음에 들었음에도 올라가서 까이고, 수정하고, 까이고 하는 일이 정말 비일비재해요. 회사도 마찬가지고요. 따라서 미팅하거나 협업을 진행할 때는 결정권자, 혹은 결정권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직책의 소유자가 자리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미팅이 전혀 의미가 없으니까요. 🤝 건강한 디자인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 ‍ | 일상의실천을 막 시작했던 때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과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전히 같은 점은 친구로 시작한 저희가 지금도 여전히 친구라는 점이죠. ‍큰 변화를 꼽자면, 제가 개인 작업자에서 디렉터로 역할이 확장된 거예요. 처음 시작한 세 명의 멤버 이외에 함께하는 동료들이 생겼어요. 저는 팀원들에게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이들이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고민하고 있어요. 방향성과 완성도 측면에서는 강한 기준을 갖되 표현 방식, 스타일 등은 작업자의 특색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 | ‘제안하되 강요하지 않는다’는 그라운드 룰이 인상적이었어요.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저희 나름대로 중요한 룰로 굳어졌어요. 팀원 중에는 제가 전혀 할 수 없는, 혹은 관심 없는 표현 방식으로 작업을 만들어가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낯설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으려면 제가 시각적으로 더 열려 있어야겠더라고요.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 “내가 꾸는 꿈의 형태를 조금이라도 가늠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흐릿한 이상은 선명한 목표로 거듭날 수 있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닿았어요. 준호 님은 이루고 싶은 꿈,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세요?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 품었던 단기적인 목표나 꿈은 많이 이뤘다고 생각해요. ‘강남에 있는 40평짜리 아파트를 사고 싶다’와 같은 꿈을 꿨던 게 아니니까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작업하고 싶었어요. 꿈을 이뤘다는 표현은 너무 교만한 것 같은데, 제가 당시 생각했던 모습은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네요. (웃음)‍ 저희는 디자이너가 단순히 을이나 용역업체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온 파트너로서 인정받았으면 했어요. 그러나 클라이언트 분들은 해당 작업을 누가 디자인했는지 드러내지 않으시더라고요. 이런 부분을 바꾸고 싶어서 많은 요청을 했고, 이제는 역으로 클라이언트들로부터 요청을 받고 있기도 해요. 저희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워가 7만 명이 넘다 보니 했던 작업을 태그해서 올려달라는, 재밌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저는 오래 작업하고 싶어요. 나이와 세대를 떠나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동시대에 작업하는 작업자로서 꾸준히 작업을 해나갈 수 있었으면 해요. ‍‍ 글 | 문지원 ‍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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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인간에 대한 예의를 내던진 아리셀의 자본가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내던진 아리셀의 자본가들 (2024-09-02) 최현주 | 고 김병철씨 아내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7월27일 오후 희생자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폭우를 맞으며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중구 서울역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6월24일 오전 10시31분,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스물세사람의 생명이 하늘로 떠났다. 이주민이 열여덟명이었고, 한국인이 다섯명이었다. 그 다섯명 중에 나의 남편이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남편, 아리셀 연구소장 김병철(얼굴사진 오른쪽)씨가 세상을 떠났다. 참사가 일어난 날부터 나에게 지난 두달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남편의 죽음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고, 나에게 닥친 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목숨보다 더 소중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성을 헌신짝처럼 내던져버린 자본가의 잔인함을 나는 두 눈으로 봐야만 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할 것 같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남편이 눈을 감고 나서 참사의 책임자인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그 아들 박중언 본부장이 이렇게 달라질 줄 몰랐다. 회사는 남편에게 연구개발 담당자로 스카우트 제의를 했고, 남편은 1년 반을 고사한 끝에 입사를 결정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나는 남편과 아리셀 회사의 관계가 단순히 경영자와 노동자 관계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생전의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불이 나자 어떤 관리자보다 먼저 남편이 공장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누구도 들어가지 않은 처참한 현장에 뛰어들어간 남편은 나오지 못했다. 작별 인사도 남기지 못했다. 남편의 사망 이후 회사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기 전에 우리나라 최고의 로펌을 선임해 자신의 살 궁리를 먼저 마련했다. 나에게는 변호사를 선임한 이후 연구소 부하 직원을 시켜 전화를 걸어왔다. 물론 함께 사망한 이주민 노동자들에게는 이마저도 없었으니 그나마 고맙다고 해야 하나. 광고 참사의 책임자들은 일주일 동안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고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사고 직후 내가 아닌 기자들에게 사과했다. 사람이라면 기자가 아닌 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자기 잇속 계산하기 전에 함께 울었어야 했다. 남편과 함께 생을 달리한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이고 여성들이다. 아리셀 회사는 재빠르게 이주노동자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돌려 합의하라고, 빨리 합의하면 조금이라도 웃돈을 얹어 주겠다고 회유했다. 아리셀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불법파견을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는데도 가족들에게 어떠한 미안함도 책임감도 없었다. 아리셀 회사 쪽은 ‘도급계약서’라고 쓰인 종이 한장을 들고 ‘도급’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셀 경영자들이 구속되기까지 꼬박 두달이 걸렸는데, 고용노동부는 사고 조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유가족들에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왜 내 가족이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다고, 수사를 똑바로 하라고, 수사 과정을 알려달라고, 회사 대표를 구속하라고, 유가족들은 거리를 돌고 기자회견을 하고 행진을 했다. 지금 나는 아리셀 회사가 생각하는 남편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한다. 퇴근 뒤에도, 주말에도 회사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후배들을 다독였던 남편을 회사는 ‘부품’쯤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내가 아리셀 유가족들과 함께 대책위원회에 참여하는 이유는 사람의 진심을 짓밟은 그들의 죗값을 묻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회사의 경영이 사람의 목숨보다, 인간이라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보다 우선이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나이 오십이 넘었지만 이 사회에 영원히 적응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줄 말이 없다. 아리셀 참사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나와 같이하는 아리셀 유가족들, 중국동포들을 대신해 이렇게 말한다. 그 누구라도 참사의 책임자 중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더라면, 같이 살아남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광고 광고 (8월23일에야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와 다른 3명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파견법 위반 등 저마다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28일 박 대표 등 2명의 영장을 발부했다. 지난 두달 동안 얼마나 증거를 없앴는지, 조작했는지 알 수 없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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