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입장 모두 이런 저런 부작용 사례부터 떠오르는 걸 보니 아직 완벽한 보호제도 및 대안이 없는 것이 분명하네요... 저는 그럼에도 환자의 입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의견인데요, 그들이 직접 의사표현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 어떤 병을 가진 환자와 다름 없이요. 다만 이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의 첨언(결정에 영향력도 조금 있어야 하겠어요.) 필요할 것 같긴 합니다... 현 보호입원제도와 비슷하니만 다른 점은 환자의 결정이 기본이라는 점이겠네요.
참 어려운 문제예요. 사실 저 스스로도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진 않아요. 정신질환의 경우 과도하게 범죄 영역으로 연결되어 생각되어지니 사회적 논의가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빠띠에서 발행한 <있지만 없는 학교 내 인권 이야기>
가 떠오르네요. 지역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여전히 구시대적인 차별 규정이 남아있어 놀랍니다. 앞에 '학생' 하나 붙었다고 인권의 기준이 달라지는 나라는 하나뿐일 것 같습니다. 교사의 노동권과 학생의 인권이 마치 반비례한다고 믿는 사회가 참 이상합니다...
2018년 인천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사실 퍼레이드도 아니었지요, 광장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했으니까요. 우리를 둘러싼 기독교 단체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피켓을 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생전 듣지 못한 욕과 기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저 이 순간을 공포로만 기억했는데요. 이 글을 읽고 나니 해당 신앙인들이 꿈꾸는 '천국'은 왜 편협해졌고 그들이 언급하는 '죄'는 왜 모순적이게 된 것인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같은 직군으로 정말 공감하며 읽었어요. 다양한 활동가들끼리 모여 노동과 활동에 대해, 특히 당연한 마음으로 쌓은 조직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서로의 노력을 존경하다가 놓친 날카로운 질문도 많고, 가치에 대한 고집으로 놓친 변화의 기회도 아주 많을 것 같네요.
구조가 드러나자 곧 책임이 떠올랐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네요. 산업재해를 대하는 언론에 대해 떠올립니다. 산업재해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의 불안전한 행동으로 돌리는 기업의 발표를 그대로 옮기던 보도가 스쳐 지나가요. 누군가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안타까운 소식을 전달하는 내용을 넘어, 원인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언론이 너무나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죽은 이의 서사에 집중하고 함께 하게 될 수 있게 될 수 있게요.
써주신 마지막 문장에 덧붙이고 싶네요. 다른 나라가 아닌 본인들의 고향에서도 충분히 한계 없는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뭐랄까요, 글로 보기에는 참 간단한 행적인데 너무 많은 차별과 혐오가 교차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법안 발의 이유는 육아와 가사 부담으로 인해서 여성들이 출산을 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데려와서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출산율을 높이자는 취지다' 부분이요...
"조정훈 의원 스스로도 세계은행에서 근무를 하면서, 다양한 개발도상국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말했다."
세계은행에 '근무'하면서 개발도상국을 '경험'했다니... 발의하신 법안을 보아하니 경험이 아니라 '구경'하신 것 같습니다. 국제개발 활동을 하면서도 함부로 그 나라를 '경험'했다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들과 같은 물, 같은 집에 살았어도 분명 의원님과 저는 그 순간 그 곳에서는 누구보다 구조적인 권력자의 위치였을 겁니다.
매번 선진국 따라하기 바쁜 우리나라가 꼭 노동에서는 개발도상국의 규칙을 따르려고 하는 모습이 우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