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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특별법’에 마저 거부권 행사할 것인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국회 문턱 넘은 특별법 지난 1월 9일, 국회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국민의 힘 의원들은 퇴장한 채 야당 의원들만 남아 표결한 결과로 말이죠. 국민의 힘 의원들은 밖에서 규탄대회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여야 합의 없이 야당만 참여한 국회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냈고요.  🗣 임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특별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한 말씀을 드린다.” 🗣 국민의힘은 윤재옥 원내대표 “대한민국의 안전이 아니라 정쟁과 갈등을 선택한 것” 참사 1년 3개월 만에…쪼그라든 ‘이태원 특별법’ 통과 거부권, 특별법 앞길 막을 것인가 수정된 특별법은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 대통령이 공포하면 오는 4월 10일부터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기 하루 전인 1월 18일, 국민의 힘은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국민의힘,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건의‥야당엔 '재협상' 요구 여당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는 소식은 1년 넘게 마음 졸이던 유가족들에게 절대 위로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유가족들은 머리칼을 내려놓으며 온몸으로 규탄했습니다. 600여 곳의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 특별법 공포를 촉구했습니다. 야당은 여당의 거부권 건의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의견을 내며 소란스럽습니다. 과연 유가족의 숙원이자, 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까요?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국정을 책임져야 할 정부, 여당이 오히려 거부에 힘을 쏟고 있다. 대체 거부 말고 정부가 한 게 뭔가" 🗣 박정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이태원 참사 진상 밝히고 책임 묻는 게 왜 총선용 정쟁인가", "국민의힘은 더는 국민 눈물이, 분노가 되지 말고 특별법의 즉시 공포를 건의해야 한다." 野 `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행사 건의 결정한 與, 비정한 정당` 재난의 정쟁화? 재난은 재난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다녀올게”라고 말하고 나간 가족의 시신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는 동안 마음은 이미 여러 번 부서졌을지 모릅니다. 여러 번 압사 사고가 우려된다는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력은 동원되지 않았고, 하룻밤 사이 159명의 사람이 서울 한복판 길 위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누군가는 “놀러 가서 죽은 것이니 국가 책임이 아니”라고 하지만, 놀러 가서 죽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놀러 갔다가 죽을 수도 있는 나라가 안전한 나라일까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안전한 나라’입니다.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배가 가라앉는 참사를 목격하면서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항상 안전에 대비하지 않으면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진상규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디에서 물이 새는지 알아야 누수를 고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윤재옥 국민의 힘 원내대표는 이태원참사특별법이 재난을 정쟁화한다고 했지만, 재난은 재난입니다. 뭐든 정쟁의 구실로 삼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 만큼은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랍니다. 이번 특별법 시행이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를 끊어낼 기회가 될 수 있을 겁니다.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10문 10답 기자간담회>  ❓여러분은 이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댓글로 의견을 적어주세요!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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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
2024년 4월 10일,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길을 걷다보면 벌써 현수막을 걸고, 국회의원 후보 혹은 예비 후보라며 자신을 어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지역구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내 지역구의 한 후보자는 현수막에 윤석열 정권 심판을 써놨다. 맞은편 다른 후보자는 자신을 마음껏 부려먹어 달라고 써놨다. 그 옆 또다른 후보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성과와 지역구에 만들 인프라를 써놨다. 후보자 현수막에서는 그들의 관점과 어필 대상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권 심판을 내건 후보자는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며, 본인과 동일한 생각을 갖는 유권자에게 어필함을 알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유권자는 포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마음껏 부려먹어 달라는 후보자는 구민을 위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걸 손에 쥘 수는 없다. 너무 삐뚤게 보는 걸수도 있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걸로도 보였다. 마지막 다른 후보자는 구 전체에 돌아갈 이득을 말한 것으로 보였다. 인프라 구축되면 구민이 이용할 시설이 늘어나는 것이니 혜택이 돌아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얼핏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지금 인프라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새로운 인프라가 늘어난다고 해서 좋아지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았고, 유세 운동도 펼치지 않은 상태라 정확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수막을 내 건 세 후보 모두 실망스러웠다. 자신과 다른 유권자는 포기하는 태도, 단순히 열심히 하겠다는 구호, 구의 성장을 이끌겠다는 어필 모두에서 ‘구민'을 위한 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4년을 이끌어 갈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 이번에도 뽑을 후보가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 이 정치이고, 정치인은 이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펼쳐야 한다. 나는 여기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 후보자라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고,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냐의 판단 기준과 관점은 다양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불평등과 혐오, 차별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열심히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환한 낮과 화려한 밤에 버려진 쓰레기가 아침만 되면 사라져 있는 이유는 새벽 어스름에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 미화원이 있기 때문이다. 바닥에 버려진 수많은 폐지가 아침이 되어서 사라져 있는 이유는 새벽에 일어나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말없이 참고 견디고 있기 때문이며, 말없이 참고 견디는 이유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고통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조롱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조롱으로 인해 받을 더 큰 상처가 두렵고, 아무른 흉터마저 다시 벌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좋은 정치란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려서, 그들까지도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좋은 정치인이란 그들의 고통을 보는 눈과 보이지 않는 그들을 찾아가는 노력과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쓴 신형철 교수는 인간이 배울만한 것중 가장 가치있고, 어려운 것은 타인의 슬픔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자질로) 혹자는 성품이 아니라 능력을 봐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성품이냐 능력이냐'라는 물음은 잘못된 양자택일이다. (중략) 성품이 곧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고통받아 본 사람이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 그들은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능력과 그것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중략) 귀 기울일 것이다. 반값 임금에 혹사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을, 차별당하는 소수자들의 말을, 그 고통을 알겠어서, 차마 도망칠 수 없어서,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고통받지 않았다고 해서, 고통받은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고통받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람을 보는 눈을 갖고, 그런 사람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가진다면 수많은 동일한 고통을 받은 적 없는 사람들을 향해 저들을 고통과 슬픔을 헤아려야 한다며 설득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관점이다. 약자의 고통을 알고, 그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지 아는 사람이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한다는 정치의 의의와 맞닿는다고 생각한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 출판/ 2021) p.27, 203, 204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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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글쓰기는 봉사가 아니라 어문 노동입니다​
[6411의 목소리] 글쓰기는 봉사가 아니라 어문 노동입니다 (2024-01-22)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차 한잔과 만화책, 그리고 군데군데 이 나간 지 오래인 13년 지기 노트북. 일면 평온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사실은 시간 내에 화면에 문장을 밀어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환경을 맞춘 결과물이다. 필자 제공 나는 1998년부터 만화를 중심으로 글을 써온 칼럼니스트다. 한겨레 ‘서찬휘의 만화 숲 산책’, 일요신문 ‘서찬휘의 만화 살롱’, 인천일보 ‘덕질인생’, 국방일보 ‘만화로 문화 읽기’, 여행스케치 ‘만화 속 배경 여행’…. 그간 매체에 연재해온 코너명들이다. 물론 단발성 청탁은 셀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만화를 칼럼이라는 틀로 다루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나를 비롯해 글 쓰는 직업을 둘러싼 환경은 참으로 열악하다. 매체 입장에서 외부 필자는 소모품이다. 지면 구색을 갖추기 위해 기용했다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쳐내는 대상이다. 그래서 나 같은 외부 필자들은 언제고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다는 체념을 안고 산다. 내가 겪은 사례를 소개하자면, 한 언론에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사정이 어려워 상부에서 외부 오피니언 지면 자체를 줄이라 했다”고 들은 게 대표적이다. 코로나19 당시 중소규모 매체들은 외고 분량을 반토막 내거나, 고료를 몇달씩 주지 않기도 했다. 근래에도 한 전문지 담당자에게 밀린 고료를 요구했다가 “아무래도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전문분야 매체 칼럼니스트 모집에 응했다가, 차를 대접받으며 “우린 작고 사정도 안 좋아 이 정도 경력자분의 고료를 감당할 순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받기도 했다. 광고 이런 상황은 갈수록 외부 필진을 기용하지 않거나, 무임금을 감내할 이들만 쓰는 쪽으로 몰고 가고 있다. 출판사와 연계를 빌미로 글을 모으는 ‘브런치’나 작가 멘토링을 붙여준다는 ‘창작의날씨’도 결국 그런 발상의 연장선에 있는 오픈마켓이다.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부류의 표어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갈수록 그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읽을거리들을 고료 한 푼 안 받고 제공하게끔 독려한다. 게다가 누구는 개인출판을 하라고, 누구는 글을 써서 목소리로 읊으라고, 누구는 하드 속에 쟁여둔 글을 전자책으로 내서 투잡하라고 한다. 실제 원고를 검토해 함께해보자던 한 오디오북 업체가 있었는데, 녹음에 후가공까지 다 해주는 만큼 초기 비용인 원고료는 줄 수 없다고 했다. 아예 못 준다는 곳은 그렇다 치고, 주는 곳은 어떨까. 원고료는 내가 활동을 시작했던 26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원고지 장당 1만원 안팎을 벗어나지 못한다. 연감이나 사보 등 극히 일부의 경우가 아니곤, 언론사도 웹진도 모두 외부 원고료는 1만원 안팎이었다. “죄송하지만…”이라며 장당 5천원, 8천원에 원고를 청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앞서 언급한 “이 정도 경력자분의 고료”란 게 이렇게나 알량하다. 광고 광고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글이 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 작성된다는 점이다. 무계약 용역이다 보니 표준계약서 체결이 조건인 예술인복지재단 산재보험 지원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주 52시간 노동제나 최저시급 대상에서도 비켜나 있다. 매체 대부분이 칼럼이든 평론이든, 연재든 단발이든, 글쓴이의 위치를 법률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직업인으로서 나의 경력을 확인시킬 방법은 매체들에 별도로 경력증명서를 떼 달라 ‘부탁’하는 것뿐이다. 결국 나 같은 사람들은 글을 쓰는 행위만으로는 법의 보호를 받을 길이 없다는 얘기다. 계약서 없이 글을 의뢰하는 건 관례다. 원고지 장당 1만원 또한 관례다. 관례가 가리키는 건 명확하다. “네가 하는 건 ‘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니다”라는 것. 나는 글쓰기에 얽힌 관례가 암묵적인 법칙으로 작동하지 않길 바란다. 얼마 전 나의 일을 어문 노동, 집필 노동으로 인지하고 작가노조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광고 물론 당장은 이런 사례를 언급하는 것이 내게 역효과가 될 공산이 크다. 매체들로서는 귀찮은 이야기이고, 지면이 궁한 건 언제나 나니까. 그럼에도 말한다. 단 한 편의 글을 청탁하는 데에도 계약서가 제시될 수 있기를, 그리고 최소한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적정 수준의 글값이 책정되기를. 이건 매체들이 필자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전문성을 바란다면 보장돼야 하는 사항들이다. 성장은 이를 감당한 상태에서 꾀해야 한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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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의 독서 카드: 『AI 윤리에 대한 모든 것』
이 주의 독서 카드: <AI 윤리에 대한 모든 것> by. 🤔어쪈 다들 새해 계획 세우셨나요?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꼭…’ 목록에 넣는 책 읽기, AI 윤리 레터와 함께 시작해보아요. 신년 첫 독서에 찰떡인 제목입니다. <AI 윤리에 대한 모든 것 (원제: AI Ethics)>. 작년에 나온 신간이에요. 그런데 책을 펼쳐보면… 앗, 첫 문장에 등장하는 AI가 챗GPT가 아닌 알파고군요. 그렇습니다. GPT-3가 나오기도 전 2020년 초 출간되어 3년이 지난 후에야 한글로 번역된 책이에요.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일이 있었죠. 하지만 몇 주만 지나도 읽을 필요가 없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쏟아지는 흔한 AI 책과는 다릅니다. AI 윤리를 다룬 책이라서가 아닙니다.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해볼게요. 1. AI 윤리는 이슈가 아니다 ❌ 제목과 목차만 훑으면 책이 다루는 주제와 서술 방식이 뻔해보이기도 합니다. 프라이버시, 투명성과 설명가능성, 편향 등과 같은 개념과 함께 각종 사건, 사고를 예시로 들지 않겠어요? … 아닙니다. 대신 저자는 최근 오픈AI와 같은 기업이 부르짖기 시작한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라는 발상부터 검토하죠. 지금의 AI 발전 방향이 가리키는 초지능은 트랜스휴머니즘*의 초월이라는 열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같은 AI를 개발하도록 만들어 인간과 AI 간 경쟁 서사를 실현한다고 지적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데이터를 학습시켜 같은 데이터를 내뱉도록 함으로서 너무도 인간-같은 AI를 만들고 있는 지금의 우리가 귀기울일만한 이야기죠. 하지만 미래가 꼭 이런 서사로만 펼쳐질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비인간 경계를 넘나드는 포스트휴머니즘**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같지 않은 AI를 개발하고, “AI와 경쟁하는 대신에 공동의 목표를 설정할 수” 도 있죠. (p.58) 저자는 AI 윤리를 이슈가 아닌 서사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2. AI는 기술이 아니다 ⁉️ 책은 중반부에서야 AI 기술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름에서부터 인간의 특성임과 동시에 우리조차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지능’을 포함하는 한, AI를 단순히 기술로만 바라보거나 정의하긴 어렵죠. 실제로 현재 AI와 사실상 동일시되는 개념인 기계학습은 데이터과학과 통계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둘 모두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탐구하고자 만든 학문, 즉 과학입니다. 이제 AI가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AI 에이전트(agent)라는 표현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죠. 인간이 AI에게 행위주체성을 위임하는 게 만연해질 때, 과학으로서의 AI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AI 윤리라는 범주의 모든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3. AI 윤리 레터가 필요하다😉 저자는 AI 윤리 논의가 결국 정책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책이 쓰여진 4년 전 진행중이던 논의를 소개합니다. 이제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어디서든 보일만큼 흔한 ‘AI 윤리 원칙’을 세우기 위한 토론이 한창이던 때죠. 저자가 예상한대로 원칙에 대한 합의는 어렵지 않게 이뤄졌지만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즉 방법과 운영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책은 불확실성 속에서 AI 윤리가 책임 있는 혁신을 이끌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자의 다양한 서사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윤리는 결코 기계처럼 작동하지 않는데 전문가들끼리만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원칙을 적용해선 안된다는 겁니다. 기업이 설파하는 지배적인 AI 서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AI 윤리 레터를 읽으며 여러분만의 해석과 상상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  굉장히 오랜만에 쓰는 ‘이 주의 독서 카드’가 AI 윤리 레터 구독자 여러분의 책 읽고픈 마음을 자극했길 바랍니다. 같은 저자가 쓴 <인공지능은 왜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가 (원제: The Political Philosophy of AI)>도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AI 윤리 북클럽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답니다. 함께 읽어요! 💬 용어 설명 (참고) * 트랜스휴머니즘 (trans-humanism): 인간이 가진 지적·신체적 능력의 한계를 (주로) 과학과 기술을 통해 뛰어넘고자 하는, 더 나아가 그래야 한다고 강조하는 담론 ** 포스트휴머니즘 (posthumanism): 인간-비인간의 경계 대신 관계와 상호작용에 주목함으로서 세상에 대한 인간중심적 이해를 넘어서고자 하는 담론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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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저니가 훔친 작품의 작가 명단
빠띠를 통해 🦜AI 윤리 레터를 만나고 계시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기쁜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202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에도 AI 윤리를 고민하는 뉴스레터는 계속됩니다.늘 그랬듯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으로 함께해주세요. 올해부터 🦜AI 윤리 레터가 빠띠 캠페인즈에도 연제됩니다. (이번주에는 어른의 사정으로 금요일에 두 건을 몰아쳐서 게시하지만) 뉴스레터가 발송된 다음날인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캠페인즈에 멋진 글들이 올라올 계획이니, 캠페인즈도 뉴스레터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화요일에는 한 주의 AI 윤리 뉴스를 모아 브리핑합니다. 목요일에는 하나의 질문을 깊게 살펴봅니다.  그럼, 이제 올해의 첫 캠페인즈를 시작합니다. 2024년 1월 셋째 주 AI 윤리 뉴스 브리프 by. 🎶소소 1. 안중근이 ‘테러리스트’라는 AI (링크) 워싱턴대 최예진 교수가 AI의 도덕관 편향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현재의 AI는 서구의 가치관이 과도하게 반영되어 있어, 세계의 다양한 문화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쌈을 싸 먹는 한국 문화에 대해 ‘손으로 밥을 먹는 미개한 문화’라거나,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라고 답한다면 어떨까요?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AI는 문화·인종 차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AI도 윤리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육을 위해서는 여러 문화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가치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겠죠. 🦜덧붙이는 글 🤖아침: 최예진 교수는 본인과 네이버 ‘하이퍼클로바’ 팀의 협업을 좋은 AI 윤리 학습의 사례로 제시했는데요. 한편 네이버 검색의 클로바 AI 답변이 특정 시민단체에 관한 오정보 및 혐오표현을 노출한다는 편향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AI 윤리는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과업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개선하려 노력해야 하는 지향점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함께 읽어도 좋을 지난 소식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하는 힘 (2023. 9. 27.) ‘윤리 데이터셋’ 들여다보기 (2023. 8. 28.) 2. 미드저니가 훔친 작품의 작가 명단(링크) 생성 AI 이미지 서비스 미드저니, 스태빌리티AI 등과 예술가 집단의 저작권 소송에 4,700여 명의 예술가 명단이 제출되었습니다. 이 명단은 미드저니가 동의 없이 데이터로 사용한 작품의 작가 명단입니다. 작가의 작품들은 동의 없이 데이터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로 취급되었습니다. 미드저니로 생성한 이미지가 저작권이 있는 원본과 거의 유사하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번 입증되었는데요.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미드저니는 소송도 감수할 생각으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드저니로 생성한 The Simpsons과 유사한 이미지. 출처: IEEE Spectrum 🦜함께 읽어도 좋을 지난 소식 생성 AI와 저작권, 정산은 본질이 아니다 (2023.07.10.) 이미지 생성기 산업이 예술가를 괴롭히는 법 (2023.10.11.) 창작자 생태계 상상하기: 스태빌리티 AI 집단소송 기각에 부치는 글 (2023.11.15.) 3. 뉴욕타임스 소송에 대한 오픈AI 입장문(링크) 오픈AI가 뉴욕타임스가 제기한 소송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소송은 수백만 개의 뉴욕타임스 기사를 무단으로 AI 훈련에 사용했다는 내용인데요. 이에 대해 오픈AI는 인터넷상 자료를 AI 학습에 사용하는 것은 공정이용이며, 뉴욕타임스가 발견한 오류는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비정상적 오류라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지와 반대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AI가 학습 데이터를 기억하여 재생산하는 표절물이 얼마나 자주 나타나는지,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오픈AI만 알 수 있겠죠. 저는 오픈AI가 이용자의 문제 제기를 ‘오용(misuse)’이라는 용어로 제한한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문제 제기도 오용이라는 틀로 대응할 테니까요. 4. 콜센터 AI 도입과 상담 인력 감축(링크) KB국민은행이 콜센터에 AI를 도입하면서 상담 직원의 인력감축을 시작했습니다. 콜센터 문의가 줄었다는 이유입니다. 콜센터 문의는 왜 줄었을까요? 고객들은 콜센터에 도입된 AI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르신들은 여러 번 시도 끝에 포기하거나, 어쩌다 상담원이 연결되면 ‘사람 맞냐’며 화를 내기 일쑤라고 합니다. 상담원을 돕기 위해 AI를 도입했는데, 그 때문에 상담원이 줄어 오히려 업무 난이도는 높아졌다고 하네요. AI로 인한 고용 시장의 변동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5.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 EU 반독점법 조사 물망에(링크) 유럽위원회가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의 투자 관계가 사실상 합병 관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조사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영국도 지난달 두 기업의 파트너십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번 조사는 작년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의 해임과 복귀 소동 여파로 추정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 경영에 개입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합병 관계는 아닌지, 이것이 시장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반독점법 위반 소지는 없는지 보겠다는 것입니다. 소수의 AI 기업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시장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수의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선거운동에 AI 콘텐츠 사용 전면 금지(링크)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일 90일 전부터는 선거운동에 ‘실제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 가상의 AI 딥페이크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이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올해 4월 총선에서는 지난 대선에 등장했던 'AI 윤석열', 'AI 이재명'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선거 기간 딥페이크를 악용한 허위 정보가 확산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입니다. 전문가들과 이해당사자인 AI 업계도 규제 필요성에는 적극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개정된 선거법에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미지를 보정하는 포토샵에도 AI 기능이 활용되는데, 어디까지 위법인지에 대한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실정입니다.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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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그들
[6411의 목소리]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그들 (2022-05-25) 유미(필명) | 금속노조 주얼리분회 주얼리회사 노조원 2018년 9월28일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귀금속 세공수리업소 책상 위에 각종 작업 도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현아! 잘 지냈어? 내 걱정 많이 했지? 처음부터 노조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어. 현장 점거해서 밤새 회사를 지킨다고 하니 많이 놀랐지? 정말 이런 방법밖에 없냐고? 뉴스에나 나올 법한 집회에, 이제는 현장 점거까지…. 사실 나도 실감이 안 나. 광고 코로나19로 회사가 힘들다며 지난해(2021년) 3월 갑자기 무급휴직 하라고 할 땐 한달만 쉬는 줄 알았지. 그래서 무급휴직동의서에 사인한 건데, 회사에선 4월부터 고용유지보조금 신청을 위해서라며 몇몇에게 4~5월 월급의 70%를 받는 유급휴직을 하게 했고, 내 의사와 무관하게 나도 그 대상이 됐어. 6월에야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다시 출근했지만, 일이 없어서 휴직한 게 아니니 유급휴직 기간에도 회사는 수시로 부르더라. 대신 고용유지보조금 신청 요건에 맞게 출퇴근 기록을 남기지 말라더라고. 줄어든 수입을 메꾸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싶어도 대기 상태에 있어야 했으니 구할 수가 없었지. 고용유지보조금 지원기간 연장으로 회사는 거짓 휴직을 강요하고, 갑자기 줄어든 수입으로 힘들었던 난 너도 알다시피 사직서를 들고 출근했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로 정부는 회사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줬는데, 그 지원금이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휴직과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 거지. 광고 광고 이런 상태로 일할 수 없어서 그만두려는데 회사는 조금만 참아달라고, 실업급여도 받게 해주겠다고, 나라에서 주는 급여를 자기들이 주는 것처럼 말하더라. 베트남에서 엄청난 피해를 보고 돌아온 사장은 그동안 부서별로 몇몇에게만 폭탄 돌리기 식으로 건넸던 동의서를 모든 직원에게 건네고 유급휴직동의서와 단축근무동의서를 쓰도록 했어. 휴직과 임금 삭감이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 거지. 노조를 만들기 전 직원들과 한 면담에서 사장은 그동안 베트남에 머무느라 부사장이 무·유급 휴직으로 임금을 삭감한 것을 몰랐다며 ‘회사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이해를 바란다’고, 제발 노조는 만들지 말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직원 과반수가 가입한 노조가 생기니, 유급휴직 임금삭감률이 30%에서 10%로 쉽게 바뀌더라고. 광고 노조가 만들어지고 단체협약을 맺는 과정은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려웠어. 점심시간을 40분에서 60분으로 바꾸는 데만 5개월이나 걸렸단다. 처음 노동조합에 관해 들었을 땐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을 것으로 생각지 못했어. 같은 일을 하는 지인이 코로나19로 피해를 많이 본 종로 주얼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어. 혼자서 회사와 싸우는 것보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하는 건 어떠냐며 종로 귀금속 거리에서 받은 노조가입안내서를 내게 줬지. 거기에 빼곡하게 적힌 종로 주얼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하더라. 환기구도 없는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청산가리, 질산, 황산 등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화공약품을 사용해 귀금속을 세공하는 수작업은 힘들었어. 하지만 기계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관련해 그 어떤 보호장비 지급도 없었고, 사전 안전교육도 없이 위험하고 미숙하게 현장에 적응해나가야 했지. 위험한 환경에서 매일 작업하는데 건강검진조차 받은 적 없을뿐더러, 독한 화공약품들로 인해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했어. 또 수작업과 기계작업을 하다 자칫 손가락이라도 잃게 돼도 산재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거야. 회사 사정이 안 좋아 감원이라도 하면 누구든 속수무책으로 회사를 나가야 해.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오직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던 1970~80년대 노동 현장 모습 같지 않아? 종로 주얼리 사용주는 근로기준법 적용에 예외가 많은 작은 사업장을 운영해. 그래야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거든. 처음에는 수습사원이라며 4대 보험 가입을 미루고, 차감될 보험료를 현금으로 주겠다며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게 이득인 것처럼 말하지.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금융거래 때 편의 제공이나 건강검진, 연차, 실업급여 등 혜택이 없어진다는 건 경험하기 전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더라고. 입사할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잘못된 관행이 계속 유지되는 곳이 이 주얼리 업계란다. 누구는 “청년통장, 청년우대형 주택청약통장에 가입하고 싶었는데 4대 보험이 없어서 불가능”했다고 한숨을 쉬더라고. 광고 누구는 유급휴직 하며 쉬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겠지. 그런데 원래 적은 월급으로 한달 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월급 30%가 삭감됐는데,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대기 상태가 되니 정말 힘들더라. 아직 할 말이 많은데 일단 이만 줄일게. 네게 다음 안부를 전할 땐 모든 일이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며, 너의 친구가.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등에서 일하는 세공노동자들이 2018년 9월4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제공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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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의 Love Wins: 사소한 배려가 필요한 거죠
1 “Love Wins(사랑이 이긴다)”라는 구호는 2015년 미국에서 시작된 구호다. 2015년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후 각종 SNS에서 해시태그 형태로 사용된 말이다. 이 후 각종 성소수자 관련 행사나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이 말이 널리 사용되었다. 특히 유명한 것은 2016년 올랜도 게이클럽 총격 사건.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역사적인 순간에도, 혐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비극적인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 퀴어 퍼레이드, 퀴어 운동에서도 이 구호는 힘있게 외쳐지고 있다. 2 최근 가수 아이유가 이 구호를 노래 제목으로 삼아 화제가 되고 있다. 아이유는 자신의 팬들에게 이 노래를 바치며 지금까지 보내준 사랑에 대한 감사 표시라고 설명하고 있다(전문).  그런데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이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진솔하게 털어놓고 싶다면서 노래 제목을 <본인은>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우리 모두는 다 같은 시민이라는 뜻에서 <보통사람입니다>라고 한다면 어떨까? 이념과 자본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사람이 먼저다>라고 한다면? 남자 가수가 자신의 팬들을 위해 나도 당신들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미투>라는 제목의 노래를 짓는다면? 운동의 구호란 이런 것이다. 언젠가는 원래의 의미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먼 시간이 오기 전까진 상처 받는 사람이, 말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3 나는 아이유가 이 말을 정말 몰랐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알면서도 이러는 거라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만약 몰랐다면, 혹은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줄 몰랐다면, 그냥 취소하고 “쏘리”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아이유의 팬들 덕분에 몇 시간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사람들 입에 회자 되고 있다. 아이유의 팬들은 그 구호가 니들 거냐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아이유는 지금 한국이 대혐오의 시대이며 분명 사랑이 만연한 때가 아님을 자신과 자신의 팬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현대미술인 걸까? 어떤 이는 언어의 전유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저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말이니 가져다 쓰겠다는 태도도 분명한 잘못이지만 나는 이 일에서 한국 사회의 다수자들이 소수자들에게 보이는 배려 없음을 느낀다. 나는 이 일에서, 오랜 세월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장애인들이 배제되고, 장애인이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것을 막는 경찰들의 모습, 장애인이 엘리베이터에 타려고 하면 눈을 흘기며 먼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버리는 노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들을 가장 악질적으로 괴롭히는 개신교인들이 성소수자들의 용어인 ‘커밍아웃’을 가져다가 크밍아웃 운운해가며 낄낄거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구조도 좋고 언어의 전유도 좋고 제도도 좋고 다 좋은데, 당장 내 언행을 누군가가 민감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정도의 생각도 못하는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를 함께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대혐오의 시대를 운운하기 전에 이런 사소한 배려를 한 번쯤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성소수자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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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이목이 쏠린 2024 대만 선거
2024년 첫 선거이자 대만을 너머 중미전으로도 다뤄지던, 대만 제16대 총통 선거가 1월 13일 치뤄졌다. 중앙선거위원회에 따르면 각 후보 득표수(득표율)는 다음과 같다. 라이칭더(頼清徳): 558만 6019표(40.05%), 허요우이(侯友宜) : 467만 1021표(33.49%), 커원저(柯文哲)  : 367만 466표(26.46%).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 라이칭더(頼清徳, 64)가 총통으로 당선되면서 중국, 미국, 한국 등 주변 나라가 오히려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한국 역시 대만 선거결과가  한국에 끼칠 경제적 정치적 영향 등을 분석하는 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대만에게 이번 선거는 어떤 의미였을까  대만에서 직접선거가 치뤄진 역사는 30년 정도밖에 안 된 최근의 일이다.  4년 중임제에 8년 주기로, 민진당의 차이잉원이 8년간 대만 첫 여성 총통으로 활동한 뒤, 또 다시 민진당의 라이칭더가 16대 총통으로 당선되면서 8년 주기로 번갈아 집권하던 당교체는 희석되었다.  1. '친중이냐 친미냐’,라기 보다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가 잃을 것인가’의 문제  대부분 친중의 국민당, 친미의 민진당의 대결 구도에, 새로 등장한 중도 성향의 대만민중당, 세 당의 승부로 보았다.  국민당은 중국과 협력하여 평화를 지킬 것을 표방했고, 민진당은 독립국가로서의 중국과의 분리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또 대만민중당은 현재 체제(양안)를 유지하는 것을 주장했다. 핵심이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모아져 있었다. 그러나 좀더 주의깊게 살펴보면 대만인들에게 더 중요한 사안은 ‘민주주의를 지켜갈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대만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이 거세진 것은, 중국 정부의 경제적 정치적 압박 탓이 크다. 우선 홍콩 사태와 관련해서 중국 정부의 폭력적 대응을 본 대만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났다. 중국 정부의 한층 강화된 통제 검열과 시진핑 주석의 일당 독재체제는 과거 역사로 회기하는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곧 대만 민중들이 힘들게 얻어낸 자유민주주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을 낳았다.    2. 민중당 커원저 후보로 간 제 3의 표심, 선거를 판가름하다  대만인들은 왜 민진당의 라이칭더 총통 당선을 선택했을까. 앞선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이 타이완 정체성을 주장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이루었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한 점, 또 코로나19에 대한 적절한 대응 등도 대만인들이 언급하는 주요한 요인들이다.  더 흥미로운 건 이번 선거의 결과를 좌우한 것으로 꼽히는 부분이, 대만민중당(이하 민중당)으로 분산된 표심이란 사실이다. 국민당과 민중당의 야권 단일화가 실패하면서 국민당을 지지하거나 민진당을 지지하던 표심 중 적잖은 수가 민중당으로 향했다. 이들은 대부분 젊은 층으로, TV나 현수막, 집회연설 등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국민당과 민진당보다, 인터넷 SNS 등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내세운 커원저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또한 크게 변화하지 않는 현상 유지에 좀더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젊은층은 커원저 후보가 총통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민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데에 의의를 뒀다고 말한다.  특히 선거 막판에 중국 정부의 전쟁 도발 위협과 국민당 총통이었던 마잉지오우(馬英九)의 “나는 시진핑 주석을 믿는다.”는 발언은 민중의 표심이 민진당으로 향하게 역효과를 냈다.  3. 입법의원 의석수로 드러난 표심 - 여러 당이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원하다    대만 선거는 총통 부총통 선거 뿐 아니라 입법의원 선거도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민진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수를 점하지 못했다는 것, 근소한 차이로 국민당이 앞서고 소수 정당들이 늘어나, 여소야대의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결과에 민진당 지지자들로서는 아쉬움을 표하긴 하지만, 국민당이나 민중당 지지자들은 국가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데에 안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입법의원 선거 결과 역시 대만 민중들이 바란 것은, 급진적인 독립이나 중국으로의 치우침이 아닌 현상 유지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민주주의 자체였다.  한국에게 대만 선거는 왜 중요했나 경제적인 부분에서 대만 선거가 중요했던 것은.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과 경쟁하고 있는 TSMC가 대만 주력 반도체 사업이기 때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시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반도체 경쟁은, 4차 산업의 주요 격전지다. 한국에서는 삼성의 반사이익을 계산하기도 했지만,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의 당선과 여소야대 국면은 대만을 둘러싼 반도체 경쟁에 큰 변화를 끌어당길지는 의문이다. 다만 대만의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은 확실히 더 부각되었고, TSMC 등 대만 경제와 AI시장과의 관계가 전 세계 AI 시장과 연관되어 주목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특이점이 있다.  정치적 부분에서는 역시나 중국과 미국간의 갈등이 대만 선거에, 또한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염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라이칭더의 당선으로 한국, 미국, 대만, 일본이 협력구도를 유지하는 현재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으로 중국정부가 대만을 상대로 어떤 정치적 경제적 제재나 압박을 가할지가 주목된다. 이미 중국정부는 이번 선거로 대만 민심이 중국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으로 파악하고 내부 진단에 나섰다.  그럼에도 대만인들은 의연하다. 대만이 민주주의를 잘 구현하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이번 선거를 통해 더 확고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폭력을 내세운 방식으로는 대만 민심을 되돌리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대만이 급진적으로 중국과 척을 지고 독립국가로 가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두 나라 사이의 경제적 정치적 긴장과 묘한 협력관계와 더불어, 국제 사회 역시 대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 정부에 대한 눈치 보기로 적당한 거리두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한국의 총선이다. 한국 총선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지가 2024년 새로운 국제적 이슈로 부상할 것이고,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또 다른 시험대가 될 것이다.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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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을지로 ‘분업의 골목’에서 따로 또 같이
[6411의 목소리] 을지로 ‘분업의 골목’에서 따로 또 같이 (2024-01-01) 이진훈 |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회 인쇄업종분과 준비위원장 2023년 11월23일 서울 을지로 인쇄인 호프데이 행사장에서 필자가 행사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필자 제공 2023년 11월23일 서울 을지로에서 인쇄인 호프데이를 열기로 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한해 조직농사 결산이다. 당일 몇시간 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몇시부터 하느냐? 참가비는 없느냐?’ 포스터를 보고 전화했단다. 광고 행사장은 명보극장 사거리 치킨집이었다. 을지로 인쇄인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였고, 금속노조 사업비로 치르는 행사라 따로 참가비는 받지 않았다. 모자라는 금액은 행사장에 후원함을 두어 충당할 거였다. “오늘 몇명이나 올까?” 인쇄밥 먹는 친구에게 물었다. “한 100명? 자리가 모자라면 어쩌냐?” 친구의 넉살에 웃음이 나왔다. 편집디자인 일을 했다. 20여년 전 스물여덟에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작은 인쇄기획사였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무척이나 놀라웠다. 서울특별시 한복판에 삼발이(세바퀴 오토바이)가 돌아다니는 골목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인쇄소 옆 재단집, 그 옆 제본집, 그 반대편 톰슨(특정한 모양으로 종이를 따내는 작업)집, 또, 또…. 인쇄골목이 놀라움에서 친숙함으로 변할 즈음, 나는 몇군데 회사를 거쳐 2003년 가을 소위 ‘합판집’이라는 인쇄업체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평생 단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투쟁이란 것을 시작했다. 광고 광고 그 합판집은 직원 수가 60~70명 되는 꽤 큰 규모의 인쇄업체였다. 방문이나 인터넷으로 인쇄물을 주문받고 제작해 출고하는 회사였다. 합판집에서는 주문받은 여러 인쇄물을 하나의 인쇄판에 모아 찍는다. 주로 명함이나 전단을 인쇄한다. 전국에서 일감이 넘쳤고, 합판집들끼리 가격 경쟁이 점점 심해지는 시기였다. 합판집은 주문이 밀리면 작은 인쇄소에 맡겼다. 합판집이 을지로의 ‘갑’이었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사장 아들의 윽박이 두려웠고 “노예근성에 빠진 놈들”이란 모욕을 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는 간단했다. 사장 아들 김 과장의 퇴진이었다. 광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야 알았다. 직원 60명이 넘는 인쇄업체가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연장수당, 노동시간, 유급휴일…. 뭐 하나 법대로 하는 게 없던 사장은 당연히 노동조합을 인정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다. 2년에 걸친 ‘투쟁’ 끝에 우리는 단체협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사이에 조합원은 7명으로 줄었다. 사장은 전문경영인을 고용한 뒤 차근차근 구조조정을 준비했다. 우리에게는 더는 싸울 힘이 없었다. 이제 그 합판집에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육신은 피곤하고 정신은 허탈했다. 다시는 인쇄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인쇄와 동떨어진 일을 했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을지로 인쇄바닥에도 뿌리내리고,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도 당연한 권리를 누리는 것, 그 다짐을 부여잡고 나는 돌아왔다. 대형 인쇄업체와 달리 작은 인쇄업체는 사장이나 노동자나 처지가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돈벌이나 노동시간에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을지로 인쇄골목은 분업의 골목이다. 다양한 공정을 소규모 인쇄업체들이 하나씩 맡아 처리한다. 서로 다른 공정들을 이어주는 끈은 예의 삼발이다. 따로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 인쇄골목의 영세업체들이다. 골목 전체가 하나의 큰 공동체라는 점에서, 어쩌면 협업의 골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돕고 사는 공동체라 해도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돈 앞에서는 이웃사촌 간에도 인정사정없는 게 우리 사회다. 재개발 이슈로 일터를 잃지 않을 권리, 일하면서 생활이 가능한 임금을 받을 권리, 노동법을 제대로 적용받을 권리를 중구와 서울시와 대한민국이 함께 돌봐야 하는데, 과연 자동으로 될까. 자고로 권리는 누릴 사람이 지켜내야 한다. 노동자가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이를 대표해 누군가 전달하고 교섭해야 한다. 노동조합이 필요한 이유다. 광고 “이야, 너 어떻게 한 거야?” 친구에게 감탄사를 날렸다. 그의 말대로 “한 100명”이 오지는 않았지만,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50명 넘는 인쇄인이 모였다. 가게에 앉을 자리가 모자랄 만큼 꽉 찼다. 이 친구는 20년 전 그날 힘을 합쳤던 동지다. 함께 하고 힘이 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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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건설 워크아웃: 레고랜드의 날갯짓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워크아웃은 구조조정을 말한다. 구조조정은 기업을 축소시키는 작업을 말하는데, 기업과 금융기관이 함께 협의해서 하는 구조조정은 워크아웃, 법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조조정은 법정관리라고 보통 부른다. 보통 회사가 어려워져서 부도 일보 직전이 되면 우선 금융기관들과 협의해서 금융기관의 말을 다 들어줄테니 부채나 이자를 좀 줄여달라고 하는 게 워크아웃이고, 워크아웃이 결렬되어서 송사로 서로 한번 얼룩져보자고 하면 법정관리가 된다. 어디까지나 부도는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특히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더더욱. 태영건설은 국내 30위 안에 드는 건설사로 SBS의 관계사로도 유명한데 태영건설의 위기설은 이미 2022년 말부터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2022년 레고랜드 사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레고랜드 레고랜드가 지어질 때 선사시대 유적을 밀어내고 짓는 게 맞냐는 논란이 상당히 컸지만 그 이외에도 강원도와 레고랜드의 운영사인 멀린과의 계약이 지나치게 불공정하다는 논란도 나왔다. 강원도가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공사비도 부담하는데 운영 이익은 멀린과 분배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처음에는 운영이익의 30%만 강원도가 가진다고 하다가 3%로 줄어들기까지했다. 반대의 목소리가 강했지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치적을 위해 강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사를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는 STX 건설을 시공사로 정하고 1년 가까이 공사를 진행했는데 멀린에서 갑자기 시공사를 현대건설로 교체해 버렸다. STX가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자(한겨레.2019.06.17.) 강원도는 STX에 다른 공사를 몰아주겠다는 식으로 일을 무마했다. 이것은 이것 대로 특혜 논란이 일었다. 레고랜드와 관련된 문제는 이것 말고도 엄청 많은데 일단 생략하기로 하고, 2020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강원중도개발공사는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2050억 원 가량의 어음을 발행한 후 강원도가 지급 보증을 서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대출 만기일이 거의 다 되어갈 시점인 2022년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도의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강원중도개발공사의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다. 즉, 강원도는 빚 갚을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결국 관련 회사들은 부도처리되었고 사태는 계속 커져서 사람들이 공기업 채권을 신뢰하지 않아 채권을 가지지 않으려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차피 저런 식으로 안 갚아버릴 거면 채권을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전이나 한국도로공사 같이 잘 운영되고 있던 회사들까지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같은 경우에는 자금 조달에 실패해 시공사들이 빚을 떠앉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해외로도 소식이 퍼져서 한국의 정부와 지방정부를 믿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이미지를 남기고 말았다. 10월 27일, 김진태 지사는 채무 전액을 갚겠다고 선언했지만 건설사들의 줄도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공기업은 물론 일반 회사채에 대한 신용도가 다 하락을 했기 때문에 회사들, 특히 건설회사들의 자금 운용이 심각한 수준으로 어려워진 것이었다. 전국 200위권인 우석건설의 부도를 시작으로 동원건설, 대우산업개발(이안 아파트), 대우조선해양건설, 삼호건설, 굿모닝토건 등 수십개의 대형 건설사들이 줄줄이 무너져내렸고, 이는 건설사 아래의 시공사, 자제납품업체, 인력업체 등의 도산으로도 이어졌다. 태영건설의 위기는 레고랜드의 날갯짓이 불러온 것이었다. 애초에 레고랜드를 무리해서 짓지 않았다면, 끝까지 성실하게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졌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무책임함 때문에 기업과 국민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PF 피에프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이라는 뜻이다. 기존의 대출이 기업의 신용도, 재정건정성 등으로 이루어진다면, 피에프는 특정 사업의 예상 수익을 보고 이루어지는 대출을 말한다. 피에프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수익에 대한 대출이므로 상당히 어렵고 까다로운 대출이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사실상 이름만 피에프일 뿐, 프로젝트의 사업성이나 이 사업에 현금이 얼마나 오고 갈 수 있는 지 등을 보기 보다 기업의 신용도를 보고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기존의 기업금융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존 기업이 안 망하고 운영되고 있으니 이 사업에 대출을 해준다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므로, 사업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 사업에 현금이 유동적으로 오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지나치게 부실하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태영건설은 건설사들 중에서도 피에프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소문이 있었다. 태영건설은 자기 회사는 건강하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2023년 12월, 태영건설이 하청업체에 현찰 대신 어음을 주면서 태영건설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2023년 3분기 기준으로 현금이 돌지 않아 대출금 이자도 못 갚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태영건설의 주가가 하락하였고, 결국 12월 28일에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되었다. 워크아웃이니까 부도는 아니지만 회사가 상당히 부실한 상태라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워크아웃으로 가게 된 것은 태영건설 측이 SBS 지분 매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그 여파는 태영건설이 얼마나 성실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태영건설이 이 문제를 열심히 노력해서 해결한다고 해도, 건설사들과의 금융거래에 대해 더더욱 신용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갈 것임은 자명하다. 결국 또다른 건설사의 위기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건설사들의 금융 위기는 건설분야 뿐 아니라 금융 분야로도 이어질 것이며 자칫 잘못하면 한국 경제 전체의 위기로 퍼질 수도 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은 옛날 한보그룹 사태와 마친가지로 이후의 경제난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태가 될 것이다.  (참고로 워크아웃은 몇달 안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짧아도 3, 4년, 길면 8년 이상 워크아웃 과정이 진행될 것이며, 그 와중에 금융기관에서 도저히 그냥 넘기기 힘든 문제나 부실이 발견된다면 금융기관에서 워크아웃을 취소할 수도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최종 부도처리 될 수도 있고, 태영건설이 버티며 구조조정을 하는 도중에 다른 건설사와 하청업체, 금융분야에서 입을 피해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또 세금을 투입해 사태를 막는다면 기업의 잘못을 세금을 통해 국민 전체가 책임지는 그림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이 사태는 강원도 정치인들의 대책없는 레고랜드 유치와 김진태 지사의 대책없는 회생신청에 의해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태영건설 경영진의 대책없는 경영에 의해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건설사와 연관이 있는 노동자와 하청업체를 생각하면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문제지만, 언제까지 경영에 의한 피해를 우리 사회가 다 함께 책임져야 하는 것인지 이제는 좀 다같이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국의 정치인과 기업인들, 자칭 소위 한국의 사회적 리더라고 하는 사람들의 의사 결정 방식이 지나치게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었나라는 반성도 이제는 좀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홍콩 ELS 문제도 마찬가지다. ELS는 일종의 선물투자다. 만기와 기대수익률, 하한선을 정해놓은 다음, 주가지수나 주가가 하한선을 내려가지 않으면 수익을 내는 구조다. 선물투자는 사실상 도박이다. 홍콩ELS는 홍콩 H지수의 등락에 따라 돈을 걸고 돈을 먹는 구조인데 이 상품의 만기(3년)가 서서히 다가오고 손해가 확실시 되자 총 천 억이 넘는 손해가 예상되고 있다. 은행 직원들이 이 상품을 포함한 선물 투자에 대해 잘 모르면서 막연하게 손해볼 일이 없다는 식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몇년 전부터 나왔는데 홍콩 ELS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이익만 보면 된다는 한국 사회 전반, 특히 의사결정권자들의 도덕적 해이에서 시작되고 있다. 선물이란? 특정 시점(주로 현재)의 가격으로 합의하여 미래 시점에 상품을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A는 배추 농사를 짓고 있고 B는 김치 공장 사장이다. 배추를 수확하는 가을에 배추가격이 얼마가 될지는 모른다. 그래서 A와 B는 농사를 시작하는 시점에 계약을 한다. 배추를 수확하는 시기에 배추 가격이 얼마가 되건 지금 가격으로 거래를 하자고. 이게 선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체로 A가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농사에 들어갈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거래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이걸 주식 시장에 도입하면 된다. 미래 시점에 특정 주식을 사거나 팔기로 하고, 특정시점(주로 현재)의 가격으로 거래를 한다. 지금 천 원 하는 주식을 반 년 뒤에 사기로 결정하고 선물 거래를 하면, 반 년 뒤에 주식값의 등락에 따라 내 득실이 정해진다. 어떤 이들은 주식이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국가가 인정한 유일한 도박이다. 선물거래는 주의하도록 하자.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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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 인공지능시대와 시민사회의 과제
생성 인공지능은 무엇이 새롭고 놀라운가    2023년은 ‘인공지능의 해’였다. 2022년 11월30일 공개된 오픈에이아이(OpenAI)의 대화형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는 2023년 벽두부터 ‘역사상 가장 빨리 확산된 기술’이라는 표현 속에 경탄과 화제를 키워갔다. 구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도 경쟁적으로 생성 인공지능 서비스를 공개하며 불길을 지폈다. 지난해 3월 오픈에이아이가 공개한 지피티4 이후엔 요수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스튜어트 러셀 UC버클리 교수,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등이 나서서 ‘사람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의 위협’을 경고하며 ‘개발 일시중단’ 촉구에 나섰다. 5월엔 ‘딥러닝’ 대부이자 인공지능 최고권위자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10년간 몸담은 구글을 사직했다. 오픈에이아이의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은 미국 의회를 비롯해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정상들을 만나는 ‘그랜드투어’를 하며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급기야 11월 초엔 오픈에이아이 이사회가 샘 올트먼을 영상회의로 불러 전격 해임하는 ‘경영쿠데타’가 벌어졌다. 당혹과 충격, 거센 반발여론 속에서 샘 올트먼은 닷새 만에 개편된 이사회와 함께 오픈에이아이에 복귀하는 것으로 드라마가 일단 정리됐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강한 인공지능’에 대한 견해 차이가 배경이다. 구체적으로는 2023년 3월 오픈AI가 공개한 GPT4에서 ‘멀티 모달(MultiModal, 다양한 모드)’ 기능과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에 대한 우려다. 마이크로소프트리서치 연구진은 2023년 4월 발표한 논문(‘범용 인공지능의 불꽃:GPT4의 초기실험’)에서 “GPT4가 언어 숙달을 넘어 수학·코딩·시각·의학·법률·심리학 등을 아우르는 새롭고 어려운 과제를 특별한 지시 없이도 해결할 수 있으며 인간 수준에 놀라울 정도로 근접해, 범용 인공지능의 초기 버전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픈AI가 설립 목적으로 내세운 ‘범용 인공지능 개발’은 찬반이 크게 엇갈리는 문제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인공지능(narrow AI)과 범용 인공지능(AGI)은 차이가 크다. 범용 인공지능은 기존 기계지능과 차원이 다른, 사람과 유사한 지능이다. 사람 지능은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인지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사람의 인지는 시각·청각·촉각·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동원해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추론하는 ‘멀티모드’이고 ‘범용 지능’이다. 반면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은 알파고처럼 대부분 단일한 형태(mode)의 정보를 인식하고 처리했는데, 멀티모달 기능의 생성 인공지능은 머지않아 사람처럼 통합적 인지·추론 능력을 지닌 ‘범용 지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 기계학습은 사람의 학습능력과 달리 물리적 제약이나 한계없이 기하급수적으로 무한상승하는 지능폭발로 이어지고, 그 결과 사람을 뛰어넘는 ‘슈퍼 인공지능’의 탄생으로 귀결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보다 훨씬 강한데다 작동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을 안전하게 통제할 수 없다. 2014년 닉 보스트롬 옥스퍼드대 교수가 <슈퍼인텔리전스>를 펴내 인간을 위협하는 초지능의 도래를 경고할 때만 해도 ‘비전문가의 극단적 상상’으로 여겨지던 주장이 10년 만에 인공지능계의 주류 견해가 된 셈이다.     인공지능 규제를 위한 국제적 움직임    위험기술로서의 인공지능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기술적 시도도 활발하다. 각국 정부와 기업은 블랙박스적 기술에 대해 추론과 판단의 근거를 요구하는 ‘설명가능한 인공지능(Explainable AI, XAI)’ 개발에 나서고 있다. 오픈AI의 경쟁사 앤트로픽은 헌법 아래 하위법률이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챗봇들이 헌법처럼 따라야 하는 ‘헌법적 체계의 인공지능(Constitutional AI)’ 개발을 진행중이다. 오픈AI는 강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목표를 인간의 가치와 일치하도록 정렬시킨다는 의미의 ‘슈퍼얼라인먼트(초정렬)’ 연구에 회사 자원의 20%를 쓰겠다고 밝힌 상태다. 샘 올트먼은 2023년 5월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갈수록 강력해지는 인공지능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 개입과 국제 사회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외부의 감독을 요청하기도 했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각각 인공지능 규제 입법에 나선 상태다. 유럽연합은 2023년 12월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기술을 규제하기 위한 포괄적 법안(EU AI법) 도입에 합의했다. 법안은 인공지능 기술을 위험성에 따라 4등급(허용불가, 고위험, 투명성 필요, 최소위험)으로 분류하고 규제를 차등적용한다. 미국도 인공지능 규제에 착수했다. 2023년 10월 조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발표해, 포괄적인 인공지능 규칙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콘텐츠 라벨링, 워터마킹, 투명성 강조가 핵심이다. 행정명령에 따라 인공지능 기업은 모델 작동 방식에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며,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에 표지를 붙이는 등의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 안보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으면 안전성 테스트 결과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 국내의 경우 2024년 현재 입법 절차가 진행중인데, ‘우선허용・사후규제 원칙’을 방향으로 산업부처의 주도아래 산업진흥 수단 위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험기술로 인한 이용자 보호를 위해 포괄적 규제를 강화해가고 있는 세계적 입법 흐름과는 거리가 상당한 셈이다.    강력한 AI를 통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사람 지능과 유사한 범용 인공지능(AGI)이나 ‘특이점’으로 불리는 슈퍼 인공지능(초지능)이 과연 등장할지, 등장한다면 언제일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미 광범한 동의가 형성돼 있고, 규제의 주체와 수준·범위 등 구체적 방법을 놓고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향후 진행될 논의와 규제 마련에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인공지능은 이제껏 인류가 다뤄온 기술들과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기술은 핵폭탄 개발, 배아 복제, 우주탐사선 발사이건 전문가들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기술을 개발해 활용했다. 전문가 커뮤니티가 해당 기술에 대해서 작동 구조와 결과적 영향력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회가 해당 기술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핵폭탄·화학무기·인간복제 등 국가나 집단간 이해가 달라 국제 합의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해당 기술의 위험성 인지와 통제는 사람의 손 안에 있었다. 언급한 것처럼 인공지능의 블랙박스적 속성으로 인해 설명가능한 인공지능(XAI) 개발이 시도되고 있지만, 성공한다 해도 매우 좁은 영역에서 제한적 효용이 가능한 수준이다. 미국의 컨설팅기업 가트너는 생성 인공지능 플랫폼에 대해 규제 당국이 유념해야 할 문제로 여섯가지를 지목했다. △GPT 모델의 설명 불가능성 △부정확한 허구 답변(환각 현상) △기밀데이터 침해 △편향성 △지적재산권·저작권 위험 △사이버·사기 위험이다. 모두 믿을만한 해결책 마련이 어려운 문제다. 이는 생성 인공지능으로 인해 ‘탈진실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진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조작이미지, 딥페이크, 소셜미디어 확산은 이미 일상에서 사실과 가짜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콘텐츠를 사람이 만든 것인지, 인공지능이 만든 것인지 자체를 식별하기 또한 고난도 과제다. 워터마크를 의무화해도 부분 수정과 우회 기술을 원천봉쇄할 수 없다. 탈진실 현상을 꾀하는 세력에게 생성형 인공지능은 저렴하면서도 인화성 높은 도구다. 각국 유력 정치인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정보나 뉴스에 대해 공공연히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며 탈진실 현상을 이용하고 있다. 가트너는 2017년 10월 ‘미래 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2년이 되면 선진국 대부분의 시민들은 진짜 정보보다 거짓 정보를 더 많이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생성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현실이 된 셈이다. 나쁜 의도를 품은 사람만이 아니라 그의 도구인 인공지능도 허위 정보를 무한생성할 수 있는 기술 환경이다. 오늘날은 어느 시기보다 시민들이 많이 교육받았고 손쉬운 사실 확인 도구를 휴대하는 인공지능 정보화시대이지만, 오히려 허위정보의 피해와 영향력은 커진 상황이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편리하지만 위험한 기술을 통제하는 방법 위험한 기술을 사회가 통제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 경로다. 첫째는 기술이다. 질병을 다스릴 치료제를 개발하듯,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개발하는 방법이다. 오픈AI의 슈퍼얼라인먼트 연구나 앤트로픽의 헌법적 인공지능 개발 시도가 사례다. 메타의 인공지능 담당 부사장을 맡고 있는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이 논리의 옹호자다. 그는 더나은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공지능이 위험하기 때문에 이를 통제할 법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맞서, 인공지능이 위험해지지 않도록 안전한 기술을 개발하는 게 최선이라는 논리다. 백신처럼 좋은 기술이 나오면 자동으로 해결될 터인데 현재의 기술 개발이 미진해 생기는 과도기적 현상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술적 해결은 창과 방패의 경쟁처럼, 공격과 방어 어느 쪽도 안정적 우위를 갖기 어려운 구조다. 아무리 좋은 의도의 기술이 개발돼도 이를 악용하는 새로운 시도가 생겨나는 게 기술의 역사다. 두 번째는 법과 제도다. 법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위반시 처벌하는 방법이다. 유럽연합이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디지털 시장법(DMA), 디지털 서비스법(DSA)에 이어 인공지능 법(AI법)을 제정했듯, 가이드라인과 처벌 규정을 통해 안전대책과 거버넌스 구조를 만드는 방법이다. 사후적 대책이라는 한계도 있지만 법과 제도로 기술의 부작용과 피해를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 법규가 촘촘하고 강한 처벌규정이 존재할 때 범죄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욱 교묘해지거나 음성화하는 게 현실이다. 세 번째 경로는 이용자 주권 강화다. 인공지능에 대한 시민과 사회의 주권을 강화하고 감시·활용능력을 강화하는 방법이다. 구체적으로는 인공지능 기술의 투명성과 이용자 접근성을 키워 기술이 가져온 거대한 변화와 영향력을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필수적인 시민 역량으로 교육하는 일이다. ‘인공지능 리터러시 교육’이다. 근대 시민국가가 공교육을 도입해 읽고 쓸 줄 아는 능력(리터러시)을 갖춘 시민들을 길러낸 것처럼, 인공지능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시민성(디지털 시티즌십)을 시민적 권리와 의무로 도입해야 한다. 더욱이 인공지능 기술을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글로벌 서비스를 통해 수많은 이용자들에게 직접 다가가고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법률과 같은 국가 권력도 한계가 있다. 권력과 주권이 국가로부터 기술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 ‘기술극화 세계(technopolar world)’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설립과 존재 목적은 이윤 추가다. 소셜미디어에서 허위정보가 넘쳐나고 청소년들의 자살을 부추기는 콘텐츠가 방치되는 배경에는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삼는 기술 기업들의 무책임한 돈벌이 알고리즘이 있다. 인공지능 환경에서 기술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음에도 블랙박스적 속성으로 인해 기술은 과거에 비해 더욱 기업 내부 논리에 의해 움직이게 됐다. 위임받지 않는 거대 권력을 행사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시민적 통제를 도입야 한다.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기술권력을 공동체 모두를 위한 도구로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각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기술적 해결과 법적 시도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이 위임하지 않은 기술권력에 과다하게 의존하고 통제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각성과 토론에서 출발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를 인공지능시대에 새로운 시민적 과제로 요구되는 ‘디지털 시민성’이라고 부르고, 이를 도입하고 논의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고민할 때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안전판을 만들기 위해서는 법적, 기술적, 이용자 차원에서 각각 시도되어야 하지만, 어느 것 하나에 의존하거나 위임해서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가장 거대한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소수가 통제해서는 안된다. 민주주의처럼 시민 모두가 그 권력의 창출과 통제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인공지능시대에 만난, 새로운 시민성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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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택배 노동시간 단축은 헛된 꿈일까?
[6411의 목소리] 택배 노동시간 단축은 헛된 꿈일까? (2024-01-15) 서정수(가명)|택배노동자 설 연휴를 1주일가량 앞둔 지난해 1월13일 밤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기사가 물품을 배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월4일 서울 강남구에서 30대 용차 기사가 미끄러지던 택배차를 멈추려다 택배차와 승용차 사이에 끼여 숨졌다. 아내와 뱃속 아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그를 기억한다. 2021년 가을 일하던 터미널에서 택배를 분류하고 차에 싣는 일을 하며 한달 동안 봤었기 때문이다. 곧 결혼할 예정이라는 말을 남기고 다른 지역으로 갔는데, 옮겨간 곳에서 화를 당했다. 차 사고가 잦은 겨울철이면 나도 이런 일을 당하는 건 아닌지 두렵다. 용차는 택배기사가 다치거나 아플 때 빈자리를 긴급하게 메우는 택배차와 택배기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기사들이 용차를 구하는 일은 드물고, 주로 원청이나 영업소에서 용차를 구하곤 한다. 택배기사들은 아프거나 다쳐서 일을 못 하면 배송하지 못한 만큼 수수료(임금)를 못 받고, 용차 비용도 물어야 한다. 그러니 아주 큰 병 아니면 쉴 수가 없다. 한 동료는 지난해 11월 말 절임배추를 배송하다 넘어져 아킬레스건 손상 진단을 받았는데 깁스한 채 나와 일했다. 척추분리증이 악화돼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구부정한 자세로 계속 일하는 동료도 둘이나 있다. 광고 분류인력 투입으로 노동강도가 낮아지긴 했다. 앞서 2021년 1월과 6월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1·2차 합의 때 중요한 내용은 “택배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작업 범위가 아니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0시간 이내로 한다”였다. 내가 일하는 터미널에는 조합원이 없어서 그런지 2022년 5월께부터서야 분류인력이 본격적으로 투입됐는데 어쨌든 이를 계기로 ‘까대기’라 부르는 분류작업이 덜 힘들어졌다. 일부 기사들은 분류인력 투입으로 이직 빈도도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인 노동시간 단축은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물량이 많은 화요일, 수요일 단체카톡방에서는 심야배송 제한시간을 해제해 달라는 기사들의 글이 빗발친다. 2020년 택배기사 22명이 과로사로 숨지자 택배사들은 심야배송 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제한했다. 오후 9시 이후에는 배송완료 문자를 보낼 수 없게 되자, 8시55분쯤 미리 배송 문자를 보내놓고 마저 배송을 마무리한다. 물건이 오지 않았는데 배송완료 문자를 받은 고객은 기사에게 항의 전화를 한다. 원청은 명절 연휴 같은 때엔 심야배송 제한시간을 1시간 늦춰주는데, 평상시에도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1시간이라도 배송시간을 더 확보해야 항의 전화를 덜 받기 때문이다. 원청은 “우린 오후 9시까지로 배송시간을 제한했는데 기사들이 스스로 더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억울할 뿐이다. 수수료 인상, 인력 충원, 노동조건 개선 같은 근본적인 대책은 세우지 않으면서 우리보고 어떻게 하란 말인지. 광고 광고 택배사와 구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택배 건당 수수료는 대부분 700~850원 사이다. 서울지역에서 건당 900원 이상 받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1~2년 사이 모든 택배사가 택배비를 올렸지만 기사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다. 24년 동안 택배기사로 일해온 한 동료는 “처음 4년 동안 월급제로 일했고 그 뒤로 건당 1300원을 받았다. 계속 깎여 지금은 1천원도 안 되는데 물가 오른 거 생각해 봐라. 아무리 물량이 많이 늘었다 해도 이건 아니다. 거기다 보험료, 대리점 소장에게 줘야 하는 수수료, 세금까지 생각하면 무조건 많이 싣고 오래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일배송 압박도 장시간 노동 이유 중 하나다. 원청은 매일 전략 고객사 물품 당일배송 지표나 미배송 과다 보유 집배점 현황을 공개하면서 기사들을 압박한다. 심지어 전략 고객사 물품을 당일배송 하지 않으면 건당 천원의 벌금을 물리겠다고 하거나, 기사들이 물건을 수거해 올 수 있는 거래처를 회수하겠다고 한다. 광고 2020년 정부 조사 결과, 택배기사들의 1일 평균 노동시간은 12.1시간이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주 52시간에 맞추는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얘기했다. 이미 주 70시간 이상 일하는 택배기사가 많은데 노동시간 단축도 아니고 유연화라니.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2차 합의 때 주요 의제 중 하나는 ‘택배기사의 주5일제 실시’였지만, 시범실시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 사회 주5일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흘렀는데 택배기사들은 언제까지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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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시민 참여 - 민주공화국 실현을 위한 초석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민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을 통한 민주적 평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3편에서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적극적인 시민 참여’에 대해 탐구해본다. ‘시민참여’라는 말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시민참여는 주로 공공 영역에서 수행하는 사업, 정책, 행정 등에 시민이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는데, 논의의 간결함을 위해 정치 영역에 맞춰 시민참여를 이야기해보자. 시민참여로 더 나은 공화주의 만들기  시민참여를 말할 때 항상 강조되는 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현대적 맥락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잘 표현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며 시민의 힘을 강조했다.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의 이익을 함께 추구하는 능동적인 시민이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꿋꿋이 서 있을 수 있게 만드는 뿌리라는 뜻이다. 성찰과성장은 일상 속 실천에 방점을 찍어 ‘시민의 덕성’을 ‘정치적,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그 관심을 자신의 일상으로 연결해 적극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정리해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시민적 덕성’을 촉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공동체의 공화적 역량을 향상할 수 있을까? 예상하듯 이 과정은 녹록지 않다.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 문제와 같이, 일상에서 공동체와 사회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 꾸준한 성찰의 과정이 있어야 더 나은 민주공화제를 실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적이고 다양한 층위에서 시민의 사회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금의 시대상을 떠올리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정치 참여’라는 말을 듣게 되면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대부분 '선거 투표'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선거는 중요한 정치 참여 수단이지만 이것만으로 정치에 충분히 적극 참여했다고 할 수 있을까? 다수결에 의한 결정 과정은 다수 의견만 반영하는 한계가 있고, 투표는 승패를 가를 뿐 근본적으로 양측(혹은 그 이상)의 진정한 화합을 이루어 낼 수 없다. 또한 정치권력에 대한 심판은 몇 년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시로 정치권력을 견제하기 어렵고, 유권자의 무관심은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을 예방하려면, 민주공화제 내에서 권력이 분산되어야만 한다. 대통령이나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을 차단하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집단과 권력 구조 안에서의 상호 견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의 원동력이 바로 '시민의 덕성'이다. 시민적 덕성으로 무장한 정치 공동체는 단일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의 부패를 방지한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 속 실천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다. 아래에서 시민적 덕성이 실제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대표적인 시민참여 제도, 주민참여예산제  우리나라는 주민자치회, 청년네트워크 등 시민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있으며 대표적인 제도로는 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이하 참여예산)가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과정에 주민을 참여시키는 제도로, 시민이라면 누구나 참여예산제를 통해 거주 지역에 필요한 정책과 예산을 제안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22년 서울시민이 제안한 사업을 심의하여 총 22.5억 원을 23년 예산에 편성했다. 참여예산은 재정 운영 측면에서 행정 시스템을 견제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참여예산 도입 전에는 의회 · 행정 등 공공 권력이 예산 편성권을 독점하고 있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된 2011년부터는 예산 과정이 점차 주민에게 개방되었다. 참여예산이 효과적으로 실행된다면, 내가 어디에 살든 지역 예산 과정(편성·집행·평가)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이러한 참여는 예산 사용의 효율·효과에 대한 주민의 관심을 증가시키고, 재정에 대한 책임이 궁극적으로 주민에게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며 시민적 덕성을 함양한다. 주민참여예산제의 현황과 한계: 13년의 여정과 지속적인 개선 필요성  주민참여예산제도는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운영하게끔 변화되었다. 시행 13년이 넘은 제도의 현황을 간략히 살펴보자. 지난 2018년 3월, 「지방재정법」이 다시 한번 개정되면서 주민참여예산의 범위는 ‘예산 편성 과정에의 참여’에서 ‘지방 예산 편성을 포함한 전반적인 예산 과정에의 참여’로 확장되었다. 개정 전에는 주민이 예산 ‘편성’ 과정에만 참여할 수 있었다면, 최근 개정은 주민이 예산의 시작 단계인 편성을 넘어 ‘집행’과 ‘결산’ 등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 5년이나 지났음에도, 지방재정법 개정 취지에 맞추어 조례를 개정한 지방자치단체는 전체의 43.2%에 불과해, 아직도 많은 지자체에서 이 제도의 완전한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참여예산제는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한 중요 수단이지만 여전히 많은 개선과 발전이 필요하다. *최승우, 전국 지방자치단체 주민참여예산 조례 정비 현황 분석, 나라살림연구소 브리핑 350호, 2023.11 아일랜드의 헌법회의: 시민 주도 참여의 모범 사례  아일랜드의 ‘헌법회의’는 행정과 의회가 시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정책 반영의 기회와 충분한 숙의 과정을 보장해준 모범 사례로 꼽힌다.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약 15개월간 아일랜드에서는 시민이 참여한 헌법회의(The Convention on the Constitution)를 운영했다. 아일랜드는 먼저 100명의 시민을 모집하고 1박 2일 간 전문가 발표와 토론을 거쳐 의제에 대한 시민의 이해를 높였다. 그 후 의원 33명,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 55명, 의장 1명 등 100명으로 구성된 헌법회의를 출범시켰다. 이 헌법회의는 ‘동성결혼 합법화’와 ‘대통령직 출마 나이를 21세로 하향조정’ 등의 권고안을 제출하였고, 마침내 2015년 ‘동성결혼 허용’이 국민투표로 최종 승인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아일랜드 시민은 시범기구 ‘위드 더 시티즌(With The Citizen)’를 시작으로 헌법회의를 거쳐 ‘시민의회’를 정착시켰다. 시민의회는 ‘17년 낙태 논의를 거쳐 ‘23년에는 마약 대책에 대해 활발히 논의하는 등 시민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참여: 민주적 공화주의를 위한 시작  아일랜드의 헌법회의·시민의회 사례에서 정치권력이 시민을 진정한 논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토론과 숙의를 통해 대안을 모색한 과정을 확인했다. 아일랜드 정치권력은 시민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헌법회의(시민의회)에 더 큰 권한을 이양하고 시민에게 더 넓은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시민을 관망자가 아닌 정책 과정의 핵심으로 인식한다는 긍정적 신호다. 또한 시민의 일상적 정치 참여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시민참여는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때론 힘들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2024년에는 더 많은 시민의 참여로 문제가 해소되길 바란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이선균의 죽음,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건 무엇인가
지난 12월 27일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씨는 자신의 차 안에서 숨진채 발견되었습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되는 여러가지 사항들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할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과도한 정보 유출의 출처, 경찰청?  고 이선균 씨는 지난 10월부터 세 번의 경찰조사를 받았으나 증거는 실장의 증언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두차례나 정밀조사를 했지만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물증도 없는 상태에서 이씨를 공갈·협박한 유흥업소 실장의 진술에만 의존해 수사하면서 세 차례 소환 조사를 모두 공개한 것은 이례적인데요.  인천경찰청은 이 씨의 내사 사실을 언론에 먼저 알리면서 수사공보 규칙 제 3장 13조 ‘소환, 조사, 압수수색, 구속 등의 수사 과정을 언론 등이 촬영, 녹화, 중계방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습니다. (한겨레, 231231) 비슷한 시기에 같은 혐의로 조사받은 가수 권지용(지드래곤)의 모발 정밀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자 불송치로 결정된 전례와는 달리 이씨는 3차 소환되어 19시간에 걸쳐 심야조사를 받았는데요.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 협력과 일반적 수사 준칙’ 제21조 에 따르면 오후 9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심야 조사도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이씨는 3차 소환시 비공개 소환 요청을 했었는데, 경찰청은 기자들이 이미 출석일을 알고 있어 비공개 출석시 안전사고 발생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요청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스카이데일리, 240110) KBS ‘뉴스9’은 지난 11월24일 이선균씨와 유흥업소 실장 간의 통화 내용을 단독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혐의와 무관한 사적 대화까지 포함하여 보도됐고 이후 여러 언론이 이 사적 대화를 제목에 부각해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미디어오늘, 231231) 1995년부터 피의사실공표죄 기소 한 건도 없어, 법 제정과 처벌강화 필요  피의사실공표죄는 형법 제126조에 규정된 것으로, ‘검찰·경찰·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수사과정에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기소 전에 공표한 경우 성립하는 죄‘를 말합니다. 경찰청은 고인의 범죄 의혹과 무관한 사생활까지 유출함으로써 피의사실 공표죄를 자행했다고 보이는데요. 이씨를 소환할 때 마다 포토라인에 세우고 검증되지 않은 조사 내용을 흘렸고, 언론들은 앞다투어 이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심지어 장례식장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한 촬영진과 유튜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씨는 마약 혐의에 대해 부인하며 협박받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청과 언론은 마약 투약 단정성 보도를 쏟아냈고, 그 사이 혐의와 무관한 사생활까지 폭로되며 인권을 침해 뿐만아니라 죽음 이후에는 잊혀질 권리마저 침해당했습니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진상규명 촉구 성명을 내기로 하면서 ‘수사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 보도 윤리에 어긋난 기사의 삭제, 문화예술인 인권 보호를 위한 현행 법령 개정 등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겨레, 240109)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14년 7월까지 모두 83명의 고귀한 생명이 수사중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오지만 그 이후로는 통계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민주당 주철현 의원은 “제2의 이선균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피의사실 공표는 물론이고, 피의자의 사생활 등 인권침해 정보를 유출할 경우에도 형사처벌해야 한다”면서 대책 마련의 시급성을 밝혔습니다.(미디어오늘, 240104)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분으로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보도가 당연시 되버린 것 같은데요. 조회수를 높이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 되버린 건 아닌가요? 고 이선균씨를 벼랑 끝으로 몰고간 건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주세요.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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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첫 실형 확정, 어떻게 보시나요?🤔
이제 원청 대표가 처벌 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 범위와 처벌 수준 등에 이견이 많았죠. 결국 이 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치며 준비 단계를 밟아 작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4월에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업체 대표에게 징역이 선고되면서 중대재해법 첫 실형 선고 케이스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성 대표는 앞서 모두 네 차례 벌금형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재판부는 “적발내역 및 처벌전력을 종합하면 한국제강 사업장에는 근로자 등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종전에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던 중인 2022년 3월16일 재차 이 사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실과 “2022년 6월9일 경 이 사건 중대산업재해를 계기로 실시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감독에서 또다시 안전조치의무위반 사실이 적발”된 점도 짚었다. 한국제강에선 지난해 3월 공장 내 설비보수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던 60대 노동자가 1.2톤 무게의 방열판에 깔려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검찰은 지난달 결심 공판에서 성 대표이사에게 징역 2년, 법인에는 벌금 1억5000만원을 구형했다. [23.04.26] ‘중대재해’ 첫 법정구속…한국제강 대표 징역 1년 실형 - 한겨레 판결_최종_진짜 최종.hwp 그리고 지난 12월 28일, 재판부는 위의 사건에 대해 징역 1년의 원심 내용을 확정하였습니다. 한국제강 법인에도 벌금 1억원이 선고되었고요. 검찰은 상고장을 내며 중대재해법과 나머지 죄를 ‘실체적 경합’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내용을 ‘상상적 경합’으로 판단한 것인데요. 낯선 개념이 등장했네요. *실체적 경합: 여러 행위가 여러 범죄에 해당한다고 사법적 판단하는 것. 가장 무거운 법정형을 기준으로 50%까지 가중 처벌이 가능함. *상상적 경합: 1개의 행위가 여러 범죄에 해당한다고 사법적 판단하는 것. 여러 범죄의 내용 중 가장 무거운 법정형을 적용함. 🗯검찰: 가중처벌이 가능한 실체적경합 판단 검찰은 안전보건총괄책임자인 A씨가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로 재판에 넘겼다. 또 경영책임자인 A씨의 회사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안전보건관리 책임자 등이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평가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혐의(중대재해처벌법상 산업재해치사)가 인정된다고 봤다. [23.12.28] 한국제강 대표, 중대재해처벌법 첫 실형 확정 - 조선비즈 🗯법원: 가장 무거운 법정형만 적용하는 상상적경합 판단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판단을 확정했다. 상고심 재판부는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신체의 보전을 그 보호법익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업무상과실치사죄도 마찬가지"라며 "중대재해법위반죄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는 사회 관념상 1개의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23.12.28] 중대재해법 위반 한국제강 대표, 대법서 첫 실형 확정 - 한국경제 재판부는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것’을 하나의 행위로 보고 ‘상상적 경합’을 적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산재가 여러 번 발생한 것, 안전관리 기준이 미비한 것 등 여러 행위가 위법하다고 주장했고요. 사법분야에서는 선례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다보니, 이번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후 첫 실형 확정을 받은 사례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노동계에서는 죄질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중대재해처벌, 아직 갈 길이 멀다💨💨 노동건강연대 유성규 노무사는 "실형 자체는 의미가 있지만 죄질에 비하면 결코 높은 형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벌 이력이 있고 그중에는 사망사고도 있었는데도 (원청업체 대표가) 제대로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아서 또 노동자가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와 관련해 (중략) "50인 미만 사업장에 '면죄부'가 부여되고 위험의 외주화는 계속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기업 입장에서 그 입법 공백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23.12.29] '중대법 위반' 첫 실형 확정…"죄질에 비해 '코끼리 비스킷'"[노동:판] - 노컷뉴스 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한겨레에 “한국제강의 실형 선고는 당연하다”며 “오히려 다른 사건에서 줄줄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대재해법이 법 취지와 달리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기소율도 낮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올해 9월 기준 중대재해로 노동자 423명이 숨졌으나, 검찰 기소는 32건에 불과하다. [23.12.28] 중대재해법 첫 대법 유죄 판결에도…선고된 12건 중 실형은 ‘1건’ 뿐 - 한겨레 소규모 사업장에는 🤜이르다 VS 늦출 수 없다🤛 현재 시행중인 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 등을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는데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똑같이 적용될 예정이었지만, 정부는 유예기간을 2년 더 두는 방향으로 개정할 것으로 국회에 요구했습니다. 경제계에서도 사업장의 부담이 우려된다며 소규모 사업장 적용을 유예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고용노동부는 9일 보도참고자료를 내고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상정 불발과 관련해 "83만7천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노동부 "경제단체도 정부 대책에 적극 협력하고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50인 미만 기업 대다수는 중대재해로 대표 처벌 시 폐업과 일자리 축소로 인한 근로자 피해 등을 우려하며 적용유예를 호소하고 있다." 🧑‍💼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 "그간 정부와 경제단체 등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유예를 주장했지만, 이는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죽음의 위험에 방치한 채 사업을 이어 나가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한번 죽은 사람의 생명은 유예되지 않는다."  [24.01.09] 정부, 국회에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법 2년 유예' 촉구 - 연합뉴스 고용노동부의 보도자료 내용은 경제단체들의 공동성명 내용과 비슷했습니다.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중대재해법 안전 기준에 부합하는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기 더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괄적인 법안 적용보다 사업체의 규모와 업종에 따라 기준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반면 이런 논쟁들이 법안을 무력화시킬 수 있고, 입법 취지인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 보장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9일 공동성명에서 "중대재해법 유예 법안이 끝내 처리되지 못한 데 안타까운 심정을 표한다"며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조차 안 된 것은 83만개사가 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호소, 폐업, 그에 따른 근로자 실직 등 민생을 외면한 처사"라고 밝혔다. [24.01.09] 국회 못 넘은 중대재해법 유예...경제6단체 "참담하고 답답해" - 머니투데이 전문가들은 대기업, 중소기업, 영세기업에 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또 기업 규모별, 산업별, 업종별로 명확한 안전의무 이행 기준을 주고, 미충족 시에만 처벌하는 등 법을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예기간을 2년 연장해 중소기업에 준비할 시간을 더 주고 정부가 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국회·노동계·경영계는 강력한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왜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고민부터 머리를 맞대야 한다. [24.01.07] 영세中企에 중대법 강행만이 능사인가 - 매일경제 이는 과거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과 닮아 있다. 지금까지 경총 등 경제단체들이 스스로 대기업의 불공정거래나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에 대해서 중소영세 기업들의 고충이나 이해를 대변하고 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노동자들의 권익과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나 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 내미는 카드가 중소기업의 취약성과 경제활동 위축이다. [24.01.07] 누가 중대재해법 무력화하나 - 경향신문 법 시행은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적용 범위와 시기, 법의 실효성 등의 부분에서 여러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안전을 보장하려는 입법이 기업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논쟁이 의아하게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미 주어졌던 유예기간 동안 준비하기엔 요구되는 안전 조건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일까요? 재해예방과 안전은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만큼 더 나은 논의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덧글로 의견을 적어주세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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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신당창당, 제3지대는 총선에서 새로운 돌풍이 될까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창당한 개혁신당이 첫 정책으로 공영방송 사장 선임구조 개혁안을 내놨습니다.  개혁안에는 공영방송 사장에 10년 이상 방송 경력을 강제하도록 하고 임명동의제를 받아 낙하산 사장을 막겠다는 취지를 담았습니다. 이는 현 박민 KBS 사장이 방송 경험이 없어 낙하산 논란을 받고 있는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됩니다(출처 매일신문). 적극적인 ‘견제’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행보입니다. 한편 개혁신당은 온라인을 통해 이례적으로 4만명의 당원을 금세 모으면서 초기 돌풍을 일으키며 세불리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어 12일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민주당 탈당 및 창당선언을 하였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는 탈당 및 신당 창당 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통해 “무능하고 부패한 거대 양당이 진영의 사활을 걸고, 극한투쟁을 계속하는 현재의 양당 독점 정치구조를 깨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지속될 수 없다”며 “혐오와 증오의 양당제를 끝내고, 타협과 조정의 다당제를 시작해야 한다. 4월 총선이 그 출발이 되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출처 쿠키뉴스). 거대 양당제는 계속 지적되었던 정치 문제였습니다. 양당제의 폐해로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것은 가치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아니라 ‘심판론’이 득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제3지대 빅텐트론’도 따라 부상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새로운선택의 금태섭, 류호정 의원을 시작으로 여야의 대표였던 이준석과 이낙연의 탈당 및 신당창당 소식 등 다당제의 신호탄이 울려퍼진 셈입니다. 양당제의 한계와 폐해를 극복해보자는 제3지대의 움직임을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양당에 대한 혐오를 이용하여 의석수를 차지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으로도 보이지만 기득권 카르텔을 무너뜨릴 묘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3지대 빅텐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전 성공사례로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38석을 확보한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 당 정도가 대표적인데요. 제3지대의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서로의 가치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어렵다는 의견도 많습니다(출처 서울신문). 그러나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던 이준석과 이낙연 전 대표의 파격 행보가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 하나의 관전포인트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준석 신당창당, 제3지대는 총선에서 새로운 돌풍이 될까요? 아니면 우리 사회에 또 다른 혼란으로 찾아올까요? 귀추가 주목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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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궁금해?_모두의숲 편
‘모두의숲’은 23년 4월 강릉 산불 재난이 일어난 이후 재난대피소에서 겪은 사람들의 경험을 성평등 관점에서 기록하고, 더 나은 재난 대피소를 상상하고자 <그럼에도 우리는> 2기에 참여했다. <모두를 위한 재난 대피소> 제안서를 통해 단순히 생존에 대한 구호가 아닌, 서로의 돌봄을 위해 관계를 지키고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꿈꾸고 있다. ‘모두의숲’ 활동가 ‘솜씨’, ‘열매’, ‘짜이’를 만나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재난 대피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럼에도 우리는>은 성평등을 주제로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활동으로 2022년 1기 13팀에 이어 2023년에는 9팀이 참여하고 있다. 빠띠는 협력을 통해 참여 팀들의 새로운 시도를 돕고 연대를 통해 성평등 문화 시민 네트워크를 확장하고자 한다.   모두가 찾아오고, 모두가 되고싶은 ‘모두의숲'   ‘모두의숲'은 지친 여성 활동가들의 소진을 방지하는 모임에서 시작했다. 구성원들이 활동했던 영역은 환경, 여성, 교육 등 모두 달랐지만, 숲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쌓여있는 감정을 얘기하고, 강릉에서 활동하는 여성 활동가로서 힘들고 어려웠던 점을 나누며 서로를 돌봤다. 사업 외에는 마주하기 힘들었던 여성 활동가들이 서로를 통해 몸과 마음의 회복은 물론, 느슨하지만 끈끈한 연대를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이 경험이 좋아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면 짧게 협업하는 방식으로 ‘모두의숲’을 이어가게 되었다. 환경과 생태 교육을 공부한 ‘솜씨’를 중심으로 ‘모두의숲’은 산림복지서비스를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변의 여성활동가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2021년에는 버터나이프크루* 3기에도 참여하며 <성평등한 숲 학교 활동을> 진행했다. 성평등한 관점에서 숲을 바라보는 안내서를 만들고 숲이 가진 건강성과 회복성을 통해 성평등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다. 올해 초까지 ‘모두의숲’은 숲을 기반으로 한 활동가의 회복에 초점을 맞췄었다. 하지만 2023년 4월, 강릉 산불 재난이 발생하고 숲과 집이 불길에 휩싸이며 재로 사라졌다. 숲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가 파괴되고 강릉 시민의 터전이 무너진 가운데 ‘모두의숲’은 재난대피소에 머무는 이재민 회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버터나이프크루 : 여성가족부가 2019년부터 시작한, 일상에서 성평등 의제를 찾아내는 청년 프로젝트 지원 사업   다양한 시민들이 달려가는 대피소   2023년 4월, 강원도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산불이 대형 화재 참사로 이어졌다. 많은 주민이 터전을 잃었고 긴급대피소와 임시주거시설에 머물렀다. 구호단체나, 군인, 시청 직원을 비롯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일상을 잃어버린 이재민을 찾아왔다. 예술, 생태, 환경, 미디어,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저마다 캐리어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담아 이재민을 도왔다. ‘마술캐리어'로 불리는 캐리어에는 재난 현장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마법 같은 물건들이 가득했다. 강릉에서 독립출판을 하는 사장님은 아이들을 위해 그림 도구와 종이를 지원했다. 봉사하러 왔던 숲 해설가와 씨앗 연구자는 그 자리에서 팀을 꾸려 아이들 놀이 활동에 보조 교사로 활약해주었다. 세월호 가족의 현장지원도 있었다. 배식봉사, 식기류 설거지, 심리지원 봉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힘써주셨다. 이재민들이 재난현장에서 벗어나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갔다.      ‘모두의숲’은 몇몇 구호단체와 함께 아이들의 심리지원부스를 운영했다. 높은 난간이나 계단이 아닌 <어린이 쉼터>를 만들어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는 활동을 했다. 대피소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머무는 아이들의 심리 표현을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진 작업에 익숙한 팀원은 <추억의 사진관>을 운영했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 혹은 화재로 전소된 집에서 훼손된 사진을 인화하거나 복원하는 활동을 했다. 서로의 얼굴을 그리며 아이들이 웃고 떠든다. 인화된 사진을 손에 쥔 이재민은 사진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화재로 생긴 상처를 되돌릴 수 없지만 잔상이 옅어지기를 희망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대피소 내에서 아이들이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생일을 앞두고 아이들이 기대가 많았지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방문하여 깜짝 생일 파티도 해주시고, 선물도 주셔서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 했어요. “엄마 나 행복해" 이러면서 좋아했습니다.” 출처 : 「재난현장에도 00이 필요해!」 45p   이재민들의 마음을 돌보기 위해 여러 단체와 개인이 노력을 기울였다. 다만, 관 중심의 일방 소통과 매뉴얼은 여러 주체가 섞인 재난현장에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다양한 모양으로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거칠 때 기후재난 이후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세대로 이루어진 재난 대피소에는 어린이 쉼터가 필요하다. 그림으로 아이들의 심리적 지원 활동을 진행하며 나온 결과물 ⓒ모두의숲   이재민의 다양한 목소리   ‘모두의숲’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재난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그럼에도 우리는’ 2기에 참여했다. 대피소 내 성중립 화장실이 왜 필요한지, 물품이나 자원을 분배할 때 사회적 정체성에 따른 선택권 부여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피소 내 소통방법이 ‘이재민'이라는 큰 이름으로 묶여 내・외부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지 등 매뉴얼에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했다. 그러나 매뉴얼이 제시하는 정형화된 안내보다 이재민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담아내는 게 선행되어야 했다. 내부적으로 열띤 논의를 거쳤다.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이며, 이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논의 끝에 프로젝트의 방향을 매뉴얼이 아닌 재난 대피소 제안서를 만드는 것으로 선회했다.  ‘모두의숲' 참가자 ‘열매'는 인터뷰를 통해 제안서를 만들기 위해 산불 피해자 인터뷰를 진행하며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음을 고백한다. 하나의 예로 집을 잃은 건 똑같은데 주거 형태가 세입자인지 자가인지에 따라 보상금액이 달라졌다. 세입자는 기존에 사는 집의 계약이 해소되어 또 다른 집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보상받은 금액으로 새로운 집을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재민이자 세입자인 시민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여유도 없이 임시로 머무는 대피소에서 경제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다. 이재민의 실생활권 문제도 있었다.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고령의 이재민은 임시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거주 시설에 머물게 되었다. 자식의 거동이 불편하므로 이곳에 왔지만 밭을 일구며 생활했던 기존의 일상은 잃어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이 점점 악화되었다. 주거 지원은 있지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깊어져 갔다. ‘이재민'이란 뭉뚱그려진 이름에는 제 각각 살아온 일상의 모습이 지워져버리고 있었다.      ‘솜씨’도 공간에 대한 문제를 언급한다. 이동식 주택에 거주하는 이재민은 가족 단위로 생활하게 되는데, 주거 공간이 원룸처럼 되어 있어 성별・연령 차이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대피소는 설치된 화장실이 성별로 구분되어 있어 아들이 장애가 있거나 부모가 치매가 있는 경우 보호자가 보조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임시 주거시설은 말 그대로 ‘임시'이기 때문에 집처럼 편안함을 기대하는 건 어렵다. 다만, 다양한 맥락이 고려되지 않는 시설에 오래 머물수록 이재민들의 일상 회복도 더디게 진행되지 않을까.  그럼, 같은 강릉이지만 재난피해에 비교적 피해를 받지 않는 시민은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짜이’는 피해 주변 지역을 인터뷰하며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인터뷰에 응한 할머니는 겨울을 대비한 땔감을 많이 갖추고 계셨는데,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집에는 장애가 있는 아들이 누워있어 화재가 발생했을 때 대피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화재 경보는 알림 등을 이용해 소리로 전파되는 경우가 많은데, 듣기 어려운 노년층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화재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컸다. 기후위기로 산불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서둘러 이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였다.   모두의숲 솜씨가 재난 현장에서 자료 수집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의숲   모두의 회복을 위한 모두의 제안서   ‘모두의숲’이 만들어낸 제안서는 성평등한 관점을 바탕으로 대피소 생활을 말하고자 한다. 여성청소년이 월경대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표시를 하거나 배부처를 만든다. 반려견과 임산부가 편히 쉴 수 있는 쉼터를 조성한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는 성별에 따른 구분이 아닌,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의 편의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적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한다. 모두가 안전하고 회복할 수 있는 대피소가 되도록 공간을 이끌고 싶다. 그리고 이 제안서가 2023년 강릉 산불의 재난 현장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재난 현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꼭 재난 당사자가 아니어도 좋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면 재난 대피소가 몸만 피신하는 공간을 넘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의 공간으로 바뀌지 않을까.     “짝꿍도 제가 피해자 인터뷰를 가면 “너는 왜 그걸 하니” 라고 할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에 있는 피해자를 보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이재민들을 보기 시작한 거죠. 이렇게 주변이 바뀌는 모습들. 대학원 동기들이 기사가 한 번 나고 이후 산불에 대한 소식이 없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되고 있느냐” 이런 것들을 물어봐 주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는 게 제가 기대하는 변화 같아요.”(열매)   “보통 강릉 산불 재난처럼 사건이 일어나면 재난, 사회적 이슈 이런 큰 이름으로 덮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금방 사라지죠. 근데 피해 당사자들은 계속 남아있어요.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개인의 개별성이나 관점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불이 나고 망했어.”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생태적으로 지낼 수 없나?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거지? 대피소도 조금만 공적으로 접근하면 좋아질 것 같은데? 이런 고민하고 있어야 해요. 저는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잊지 않고 다시 해내는 힘 그걸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뭔가 다시 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거 같아요.”(솜씨)   “주변 친구들이 “왜 자꾸 거기 가서 그렇게 열심히 해?”라고 할 때 화도 내고 부딪히기도 많이 부딪혔는데 친구들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데 한 번은 다시 물어보더라고요. 저도 그런 관심이 결국에는 변화된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 이런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이재민 중에서도 몇몇 분들은 산불로 힘들긴 하지만 내가 상황이 좋아진다면 이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을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따뜻함을 많이 느꼈어요.”(짜이)             👉모두의숲이 제안하는 <모두를 위한 재난 대피소> 제안서가 궁금하다면?  https://bit.ly/guide4_00   📝 글ㅣ우디 (데모스X5팀 크루) 소소한 주변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활동가 📷 사진 | 데모스X5팀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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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홈쇼핑 콜센터가 믹서기라면 플렛폼업체는 초고속 블렌더였다
[6411의 목소리] 홈쇼핑 콜센터가 믹서기라면 플렛폼업체는 초고속 블렌더였다 (2022-05-18) 데비(필명) | 고객센터 상담노동자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고객센터에서 상담노동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글은 이상적인 노동 환경에서 상담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는 상상 속 인물 ‘리나’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독일에 사는 행복한 상담사 리나는 고양이도 키우는데, 고양이의 이름은 무려 세계 최대 규모의 서비스 노조 이름과 같아요. 잘 있었나요? 당신의 고양이 베르디에게 제 안부를 전해 주세요. 한국은 베를린보다 봄이 먼저 왔다가 벌써 가버린 것 같아요. 이제 낮에는 좀 더워요. 저는 아직 배달의민족 콜센터에 다니고 있어요. 여전히 노조도 없고, 고양이도 없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없어요. 광고 리나,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 플랫폼 콜센터에 취업했을 때 하도 유니콘기업 어쩌고, 혁신 어쩌고 하길래 ‘설마 악명 높은 홈쇼핑 콜센터처럼 하청에 하청을 두고 화장실도 못 가게 상담사 갈아 넣어서 운영하지는 않겠지?’ ‘시대가 달라졌고 콜센터도 많이 바뀌었을 거야’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하필이면 처음 들어간 회사가 야놀자랑 쿠팡이츠였어요 그동안 다녔던 홈쇼핑 콜센터가 일반 믹서기라면, 이들 플랫폼업체 콜센터는 초고속 블렌더였어요. 진짜 형태도 없이 갈려서 3개월도 못 다니고 도망 나왔어요. 홈쇼핑 콜센터가 일반 믹서기라면, 플랫폼업체 콜센터는 초고속 블렌더였어요. 형태도 없이 갈려 3개월 못 다니고 도망 나왔어요. 야놀자 콜센터는 충격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에,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사장님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쿠팡이츠의 횡포에 화내고, 애원하고, 이러다 자기 죽는다며 울부짖으셨죠. 꿈에서도 민원인이 나와서 그만둔 첫 회사였어요. 야놀자 콜센터는 충격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에,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밀려 있는 대기 고객이 너무 많아서 전화 연결되자마자 고객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냐’고 소리를 질러대고, 관리자들은 2분 간격으로 ‘계속 콜 받아라’라고 소리 질러요. 팀장 자리에는 퇴사 서류가 쌓여 있고, 한쪽에서는 그럴싸한 구인광고에 낚인 신입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죠. 모든 사람이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서 그런지 어느 날부터 이명이 들려서 그만뒀어요. 퇴사하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야놀자 본사는 정말 근사하던데, 자기들 대신 욕먹는 콜센터 화장실이나 한칸 더 지어 주지, 싶더라고요. 광고 광고 쿠팡이츠에서는 가게 사장님들 전화를 받는 재택근무를 했어요. 통화가 6분이 넘어가면 여기저기서 사유서를 보내라고 미친 듯이 메시지가 와요. 왜 6분인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일하는 내내 감시와 통제를 받지만, 정작 화가 난 식당 사장님이 전화로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상황에서는 ‘그냥 잘 들어주라’며 미뤄요. 그때 이 회사는 상담사를 욕받이로만 생각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식당 사장님들 당장 생계가 걸린 문제라 하나하나 너무 절실하고 처절한데, 회사는 민원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이유 설명 없이 그저 콜 수만 늘리라는 식이라 점점 강성 민원인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사장님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쿠팡이츠의 횡포에 화내고, 애원하고, 이러다 자기 죽는다며 울부짖으셨죠. 꿈에서도 민원인이 나와서 그만둔 첫 회사였어요. 근데 리나, 더 무서운 걸 말해 줄까요? 퇴사하고 얼마 뒤에, 쿠팡이츠 상담사와 통화하던 사장님이 숨졌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어요. 사람 쓰러졌다는데도 세상 메마른 목소리로 “그래도 고객이 요청하시니까 사과 부탁드립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아! 저게 나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소름 끼쳤어요. 그 상담사는 회사에서 치료 지원이라도 받았을까요? 이제 쿠팡 로고만 봐도 소름이 끼쳐서 로켓배송은 꿈도 못 꿔요. 광고 리나, 어제 콜 평가 점수 85점 받았다고 피드백 왔어요. 무슨 평가냐고요? 매달 서너번씩 랜덤으로 상담 내용을 듣고 점수를 주는 거죠. 점수를 잘 받으려면 어떤 콜이든 “아, 그러세요?”가 두번 들어가야 해요. “아~네. 그러세요?”라고 하면 빵점이에요. 또 고객이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면 빵점이에요. 고객이 감사하다면, 상담사는 그보다 더 감사함을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고객이 불만을 말하는데 그냥 “죄송합니다”라고 답해도 빵점이에요. 이게 뭔 소리냐고요? 배달의민족에서 하청 준 콜센터 업체들끼리 경쟁하다 상담사 말려 죽이는 소리예요. 2018년도에 배달의민족 본사 근처에 대규모 콜센터를 오픈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그 기사 말미에 배민 최고운영담당자라는 분이 “상담사의 행복과 만족도가 자연스럽게 고객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배달의민족 고객센터가 이번 통합 확장 오픈을 계기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모범 사례이자 기준점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럴듯하죠?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실제로는 부산과 광주에서 지자체 보조 받아서 간접고용만 대규모로 늘리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배민이 아직 ‘세계적으로 우수한 모범 사례’가 되려고 노~오~력 중이라고 굳게 믿고 있답니다. 배달의민족은 계속 노력할 거고, 저도 최저시급 받으며 버티다 보면 언젠가 리나처럼 안정적인 직장에서 장기근무도 해보고, 내가 하는 일에 애정과 자부심도 느껴보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귀여운 고양이랑 깨 볶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닌가요? 그냥 노조나 만들까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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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장애인 인권 이슈 톺아보기
2023년 한 해에도 장애계에는 많은 이슈가 있었다.  1월에 유엔에 장애인거주시설의 수용행태를 고발하는 첫 직권조사가 신청된 것을 시작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이동권 투쟁은 연초부터 1년 내내 사회적인 주목을 이끌었으며, 장애인부모단체의 전국 순회 오체투지 투쟁,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의 장애인복지시설화를 둘러싼 장애계 내부의 논란과 대립, 그리고 서현역 사건으로 다시 촉발되었던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논란 등 다양한 층위에서 장애와 관련된 사회적 의제들이 제기되었다. 그 많은 이슈들 가운데 사회적으로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6개 분야의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1. 모두가 안전히 이동할 권리를 얻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 학교에 가기 위해, 직장에 가기 위해,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 이동한다. 장애인에게 이동권의 확보란 신체적 불편을 일부 해소하기 위한 편의지원뿐 아니라 타인 및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삶을 영위하는 사회적 일부로서의 기능적인 요소이다. 나아가 이동권은 접근권에 포함된 개념으로 그 자체로 장애인의 일상생활은 물론 자립과 생존에 직결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통약자법에서 장애인 이동권은 모든 교통수단·모든 여객시설 등에 대한 이용을 보장해야 하고,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적절한 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하며, 이동 수단에 관한 선택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럼에도 지난 한 해, 연구소에 당신의 이동권을 침해당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사례는 끊이지 않고 접수되었다. 불편을 끼칠거라는 짐작만으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식당 출입을 거부했던 사례, 위험할거라는 편견만으로 시청각장애인의 헬스장 등록을 거절했던 사례, 장애인편의시설이 전무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선박 승선이 불가했던 사례, 휴대용 산소호흡기(POC)의 기내 소지를 임의로 금지하여 호흡기장애인의 비행기 탑승이 제한되었던 사례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여전히 만연한 장애인 이동권의 걸림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와 장애당사자들이 온갖 비난과 혐오의 말들 속에서도 꾸준히 '지금 이곳에 장애인도 함께 있다'는 외침과 투쟁을 이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동의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정부는 대부분의 현행 교통체계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축되어 왔다는 사실과 지속적인 체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하고, 법과 제도의 정비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며, 인프라의 구축과 더불어 인식 개선 등이 함께 추진되어야만 비로소 완전한 이동권 보장을 실현할 수 있다는 본질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3년 1월 3일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등 확보를 위한 '지하철행동'에 참여한 전장연 활동가가 행동을 마친 이후 다음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을 탑승하려고 하자 이를 온몸으로 막아 제지하는 서울기동대 및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모습 ⓒ함께걸음 2. 정신장애인=강력범죄자, 정신질환자=강제입원. 이 도식은 언제 사라질 수 있는가  💊 지난해 여름, 우리는 흉기소지자의 묻지마범죄의 두려움에 휩싸였었다. 특히 8월 대낮, 서현역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한편, 서현역 사건의 범죄자가 정신질환 병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대중에 알려지며 정신질환자들은 가중된 불안을 경험해야 했다. 걱정했던 것처럼, 작년 8월 4일 법무부는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협의하여,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하게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행 제도가 가족이나 의사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면이 있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 등을 감안하여,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예를 참고하여 추가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라 덧붙였다. 사법입원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흉악범죄의 가해자가 정신질환 이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던 과거에도 이들의 ‘치료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된 바 있다. 이로 인해 ‘중증정신질환자들을 격리, 감금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자연스레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정신질환자들에게 유독 엄격하게 씌워지는 ‘격리 프레임’의 역사는 중세시대 ‘마녀사냥’부터 1980년대의 ‘형제복지원 사건’까지 상당히 긴 기간 지속되어오고 있다. 보건복지부 2021년 자료에 따르면 비자의입원(강제입원) 비율이 34.8%에 달한다. 치료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분별한 강압과 비인권적인 치료 환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프레임으로 사회적인 여론을 몰고 간다면 정신질환자의 감금의 역사는 종결되지 않을 것이며 작년 2월 경기도 용인시에서 정신병원으로 가는 사설 구급단의 이송차량 안에서 강압이 자행돼 정신질환 당사자가 사망했던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2023년 12월 8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개정안에는 일시적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지역사회에 거주하며 동료지원인 상담 등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동료지원쉼터와 입·퇴원 과정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절차조력인제도 등이 담겼다. 이는 정신장애 영역에서 오랜 기간 투쟁을 이어온 결과이다. 다만, 여러 발의안들에서 중요한 의제였던 보호의무자 입원(강제입원)제도와 동의입원제도 폐지, 가족돌봄 지원, 공공이송체계 확립안 등은 폐기된 아쉬움이 남아있고 22대 국회에서 또다시 싸워야 할 과제들이다. ▲2023년 6월 21일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정신장애인탈원화추진연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이 모여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방기 국회 규탄 및 연내 개정 촉구를 위한 집중 결의대회'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국회 앞 거리를 가득 메운 정신장애인 당사자 및 활동가들이 병원복을 입고 '국회는 '강제입원제도 폐지와 탈원화에 앞장서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며 행진하고 있다. ⓒ함께걸음 3. 줬다 뺏는 장애인 동료지원 사업,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장애인 노동권 👨‍🚒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만 15세 이상 등록장애인 중 경제활동참가율은 37.3%이고 고용률은 34.6%에 그친다. 전체 인구의 고용률은 61.2%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고용률 격차는 26.6%인 것이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1991년부터 국기 및 지자체, 상시 근로자 50명 이상을 고용한 사업주는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고용의무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로 고용 기회를 보장받는 건 대부분 경증장애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장애인 고용률은 경증장애인의 절반 수준으로 고용의무제도 안에서도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 이에 따라 장애계에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장애인 권익옹호활동,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인식개선 강사활동 등),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일명 동료지원가 사업) 등을 제도화하여 중증장애인의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여왔다. 특히 동료지원가사업은 2018년 겨울, 장애인들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에서 87일간의 농성을 통해 힘들게 만들어낸 일자리 사업으로 중증장애인이 다른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자조모임, 상담 등 동료지원 활동을 통해 취업의욕을 고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187명의 동료지원가가 일하고 있다. 동료지원가 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은 월 89만 원(4대 보험 포함)을 받으며 60시간 일한다. 만약 자신이 상담하는 장애인이 실제 취업지원프로그램에 연계되면 연계수당으로 2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러나 2023년 9월 1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였던 예산안에는 동료지원가사업 예산 23억 원이 전액 삭감되었었다. 사업비 대부분 노동자 인건비로 소모되므로 이 사업 예산이 삭감되면 187명의 노동자들을 모두 실직자가 된다. 예산이 전액 삭감된 배경에는 ‘실적 저조’로 불용 처리되는 예산이 지속해서 발생한 것과 보건복지부에 비슷한 목적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 등이 있었다. 이와 유사한 일이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정신장애인 자립지원사업’에도 발생했다. 서울의 3개 자립지원센터 사업 예산을 기존 5억 2,000만 원에서 2억 7,000만 원으로 약 50% 삭감하겠다고 서울시에서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본 사업 역시 2019년에 정신장애인의 온전한 사회참여를 위해 도입된 사업으로 많은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동료지원가, 활동가로 근무할 수 있도록 취업의 장을 열었던 사업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두 사업 모두 예산 삭감 계획은 철회되고 현행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수많은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절규의 외침이 반영된 결과이다. 그럼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것은 장애인의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조차 매우 힘든 현실의 벽과 매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2023년 9월 18일 오전 7시경, 한국피플퍼스트 소속 활동가들이 '동료지원가 사업(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 전액 삭감 소식을 듣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기습점검하였다. 활동가들이 경찰의 제압에 저항하며 서로 팔짱을 낀 채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 ⓒ피플퍼스트서울센터 4. 부실한 통합교육 운영에 희생되는 장애아동과 부모 그리고 특수교사 🏫 2023년 하반기, 유명 웹툰 작가의 자폐성장애 아들이 용인 모 초등학교에서 교사로부터 정서적 학대를 의심(아직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 장애아동 학대 의심 사건으로 명명) 받은 사건이 세간에 알려져 큰 주목을 받았다. 부모가 교사를 신고한 배경이 교사 동의 없이 자녀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수업내용을 녹음했다는 것이 큰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서이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모 교사의 비극적인 일과 함께 이 사안이 다루어지면서 대중들의 분노가 장애아동의 부모에게로 향해졌지만 장애계에서는 그간 통합교육 현장에서 발생해왔던 수많은 문제를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특수교사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면, 우리나라 특수교육법은 장애아동과 교사 비율을 4:1로 규정하고 있으나 2023년 9월 기준 사립학교 4.5명, 공립학교 4,2명으로 법정 기준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해당 사건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특수학급 내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특수교사뿐 아니라 일반교사, 학교장 등 학교 전체의 협력과 지원이 요구됨에도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 차원의 중재 등 거시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부재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용인 초 사건의 중심이 된 특수교사가 장애아동에게 건넨 말과 ‘도전행동’에 대한 교사의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낮은 인권감수성과 부족한 전문성이라는 지적과 의심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장애아동은 물론 장애아동에게 학교는 학습 목적 외에도 공동생활을 통해 사회에서 필요한 규칙과 질서를 배우는 중요한 곳이다. 특수교사와 장애아동 부모가 서로 신뢰를 기반으로 장애아동의 온전한 사회통합을 위하여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교육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유사한 사안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통합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담당 주무부처와 관계자들은 장기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2023년 8월 7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18개의 학부모, 교사,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교사와 학부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교육부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김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발언하는 모습. ⓒ전국장애인부모연대 5. 발달장애인 등 문해약자를 고려한 ‘읽기 쉬운(easy-read)’방식이 가져올 변화 🧩 시각장애인은 점자나 음성자료를 통해, 청각장애인은 수어나 문자통역 등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그렇다면 인지적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의사소통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  발달장애인법 제10조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2022년 9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최종견해에 포함된 내용이기도 하다. 2022년 12월 2일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최초로 ‘읽기 쉬운(Easy-Read)’방식을 적용한 판결문이 나왔다. 본 판결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에서 선고한 사건으로 원고는 수어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원고는 탄원서를 통해 ‘읽기 쉬운 용어로 판결문을 써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였다. 이에 재판부는 이는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라는 입장을 밝히고 ‘사법지원가이드라인’과 ‘장애인권리협약’ 제13조 및 UN의 권고의견에 근거해 판결문의 엄밀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읽기 쉬운’ 방식으로 최대한 쉽게 판결 이유를 작성하였다. ‘읽기 쉬운(Easy-Read)’방식은 단문과 동사 위주의 쉬운 문장과 구어체 문장 등을 사용하여 문장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편의를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방식이다. 해당 재판부에서 작성한 ‘읽기 쉬운(Easy-Read)’판결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라는 문구와 함께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를 병행함으로써 법률적 용어를 쉽게 풀어 기재하고자 하였다. 해외사례의 쉬운 판결문, 쉬운 정보와 비교했을 때 여러 아쉬운 점과 한계가 존재하지만 기존의 관행을 깨고 사법부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우리 사회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칠만한 의미있는 작업이라 평가된다. 지난해 6월, 법원행정처는 이지리드 판결서를 늘리겠다며 쉬운 판결서 작성을 위한 시각자료 개발연구 용역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오는 4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유권자들이 보게 될 후보자 공약집, 투표용지, 투표결과 등에 대한 정보 역시 발달장애인 등이 이해하기 쉽도록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이미 홍콩과 대만 등 해외 국가에서는 투표용지에 후보자 사진과 정당로고를 넣고 있으며 영국의 주요 정당은 학습·발달장애를 지닌 유권자를 위한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약집’을 발간하고 있다. 또 스웨덴은 정부 기관인 ‘접근 가능한 매체기관(MTM)’을 통해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사진과 그림 등이 포함된 선거관련 자료를 배포한다. 이처럼 우리 정부도 발달장애인법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권고사항을 충분히 숙지하고 고려하여 누구도 정보에서 소외받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2022년 12월 2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읽기 쉬운 방식'을 적용하여 내린 판결문 ⓒ함께걸음 6.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위해 도입된 후견제도, 결국 장애인의 발목잡는 족쇄되다 🔗 2013년 민법 개정을 통해 금치산과 한정치산을 폐지하고 장애인이나 노인 등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법정 후견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시행 10년이 지난 지금, 입법 취지와 달리 후견제도를 이용하는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사회복지사의 꿈을 안고 사회복지 전문학사를 취득, 사회복지사 2급 자격취득 조건을 갖춘 지적장애인 K씨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발급 신청과정에서 사회복지사의 꿈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놓였었다.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제11조 2항)은 피성년후견 또는 피한정후견인은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과정에서 사기 피해 등 금전적인 피해를 수차례 입었던 K씨는 모친의 제안으로 한정후견을 개시하였지만 각종 자격증을 취득할 때의‘결격조항’으로 인해 직업 선택 앞에서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 후견을 취소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민법 11조와 14조에 후견종료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후견을 종료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번 개시된 후견은 사실상 종료가 매우 어렵다. 후견 개시 원인은 법률 9조와 12조에서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장애가 소멸되지 않으면 후견은 종료되지 않는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 침해의 소지가 많이 보이는 후견제도에 대해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는 우려를 표하고 성년후견과 같은 대체의사결정시스템을 개별화된 지원을 확보해 장애인의 자주성, 의사, 선호도 등을 존중하는 지원의사결정제도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선진국에서는 지원의사결정제도를 후견제도의 일부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는데 여전히 국내에서는 이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제도화를 위한 서비스 모형이 발굴되지 않은 현황이므로 깊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2021년 10월 18일, 후견이 개시된 발달장애인이 결격조항으로 인해 사회복지사 자격증 발급을 거부 당하여 '사회복지사업법 제11조의2'에 대해 헌법소원 제기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함께걸음 [총평] 2023년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눈앞의 이익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것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간에 나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자본주의적’사회 풍조에 길들여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풍조에서 장애인은 쉽게 타자화와 주변화가 된다. 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동등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동료시민’인 장애인이 어떻게 누릴 지를 함께 고민하기 보다는 우선 내가 누려야 할 권리에 울타리를 치고나서 울타리 밖으로 장애인을 몰아낸 후 때론 측은하게 때론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 이슈는 여전히 사회 주류에서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2024년에도 여전히 ‘동료시민’으로 지역사회에 함께 살아가고자 싸우고 절규하는 장애인들의 몸부림을 일 년 내내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손상된’신체와 ‘손상된’정신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날 때마다 올해는 부디 울타리 밖으로 덜 내몰리고 더 강한 연대의 손길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2024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의망리(見義忘利)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기대하며.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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