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글쓰기는 봉사가 아니라 어문 노동입니다​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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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6411의 목소리] 글쓰기는 봉사가 아니라 어문 노동입니다 (2024-01-22)

서찬휘 | 만화 칼럼니스트

차 한잔과 만화책, 그리고 군데군데 이 나간 지 오래인 13년 지기 노트북. 일면 평온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사실은 시간 내에 화면에 문장을 밀어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환경을 맞춘 결과물이다. 필자 제공

나는 1998년부터 만화를 중심으로 글을 써온 칼럼니스트다. 한겨레 ‘서찬휘의 만화 숲 산책’, 일요신문 ‘서찬휘의 만화 살롱’, 인천일보 ‘덕질인생’, 국방일보 ‘만화로 문화 읽기’, 여행스케치 ‘만화 속 배경 여행’…. 그간 매체에 연재해온 코너명들이다. 물론 단발성 청탁은 셀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만화를 칼럼이라는 틀로 다루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나를 비롯해 글 쓰는 직업을 둘러싼 환경은 참으로 열악하다.

매체 입장에서 외부 필자는 소모품이다. 지면 구색을 갖추기 위해 기용했다가,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쳐내는 대상이다. 그래서 나 같은 외부 필자들은 언제고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연락을 받을 수 있다는 체념을 안고 산다. 내가 겪은 사례를 소개하자면, 한 언론에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 “사정이 어려워 상부에서 외부 오피니언 지면 자체를 줄이라 했다”고 들은 게 대표적이다. 코로나19 당시 중소규모 매체들은 외고 분량을 반토막 내거나, 고료를 몇달씩 주지 않기도 했다. 근래에도 한 전문지 담당자에게 밀린 고료를 요구했다가 “아무래도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전문분야 매체 칼럼니스트 모집에 응했다가, 차를 대접받으며 “우린 작고 사정도 안 좋아 이 정도 경력자분의 고료를 감당할 순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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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갈수록 외부 필진을 기용하지 않거나, 무임금을 감내할 이들만 쓰는 쪽으로 몰고 가고 있다. 출판사와 연계를 빌미로 글을 모으는 ‘브런치’나 작가 멘토링을 붙여준다는 ‘창작의날씨’도 결국 그런 발상의 연장선에 있는 오픈마켓이다.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부류의 표어는 시간을 소비하기 위한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갈수록 그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읽을거리들을 고료 한 푼 안 받고 제공하게끔 독려한다. 게다가 누구는 개인출판을 하라고, 누구는 글을 써서 목소리로 읊으라고, 누구는 하드 속에 쟁여둔 글을 전자책으로 내서 투잡하라고 한다. 실제 원고를 검토해 함께해보자던 한 오디오북 업체가 있었는데, 녹음에 후가공까지 다 해주는 만큼 초기 비용인 원고료는 줄 수 없다고 했다.

아예 못 준다는 곳은 그렇다 치고, 주는 곳은 어떨까. 원고료는 내가 활동을 시작했던 26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원고지 장당 1만원 안팎을 벗어나지 못한다. 연감이나 사보 등 극히 일부의 경우가 아니곤, 언론사도 웹진도 모두 외부 원고료는 1만원 안팎이었다. “죄송하지만…”이라며 장당 5천원, 8천원에 원고를 청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앞서 언급한 “이 정도 경력자분의 고료”란 게 이렇게나 알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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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글이 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 작성된다는 점이다. 무계약 용역이다 보니 표준계약서 체결이 조건인 예술인복지재단 산재보험 지원 대상이 될 수도 없고, 주 52시간 노동제나 최저시급 대상에서도 비켜나 있다. 매체 대부분이 칼럼이든 평론이든, 연재든 단발이든, 글쓴이의 위치를 법률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직업인으로서 나의 경력을 확인시킬 방법은 매체들에 별도로 경력증명서를 떼 달라 ‘부탁’하는 것뿐이다. 결국 나 같은 사람들은 글을 쓰는 행위만으로는 법의 보호를 받을 길이 없다는 얘기다.

계약서 없이 글을 의뢰하는 건 관례다. 원고지 장당 1만원 또한 관례다. 관례가 가리키는 건 명확하다. “네가 하는 건 ‘직업으로서의 일’이 아니다”라는 것. 나는 글쓰기에 얽힌 관례가 암묵적인 법칙으로 작동하지 않길 바란다. 얼마 전 나의 일을 어문 노동, 집필 노동으로 인지하고 작가노조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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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장은 이런 사례를 언급하는 것이 내게 역효과가 될 공산이 크다. 매체들로서는 귀찮은 이야기이고, 지면이 궁한 건 언제나 나니까. 그럼에도 말한다. 단 한 편의 글을 청탁하는 데에도 계약서가 제시될 수 있기를, 그리고 최소한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적정 수준의 글값이 책정되기를. 이건 매체들이 필자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전문성을 바란다면 보장돼야 하는 사항들이다. 성장은 이를 감당한 상태에서 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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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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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을 전공한 터라 종종 통번역 일이 제 앞에 툭 떨어지곤 하는데요 ㅎㅎ. 늘 이걸 '노동'으로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왔어요. 깊게 오래 경험하신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보고서야 깨달았어요. 단 한번도 계약서 없이 글을 써왔다는 것을요! 한참 전이긴 하지만 꾸준하게 한 매체에 글을 썼을 때에도 내 글로 작은 상업공연이 올라갔을 때에도, 의뢰하는 쪽에서 원고료를 먼저 말해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도 '그만큼 못 해내면 어쩌지'란 생각으로 정당한 원고료(시간 등을 계산하여)를 부르지 못했고요. 어문'노동', 집필'노동'이란 당연한 단어에 무언가 속이 시원한 기분이 듭니다.

'어문 노동'이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였으면 좋겠네요. 생각보다 어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은데 모두가 노동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면을 채우기 위해서 건 플랫폼을 더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 건 글을 쓰는 것도 '일'인데 말이죠. 동시에 기여의 측면에서도 어문 노동자들의 노동을 돌아보게 되네요. 어문 노동자들의 노동이 아니었다면 완성될 수 없었던 결과들이 있을텐데 그만큼의 기여를 인정받고 있는지 의문이 드네요. 한켠으론 지금처럼 수직적인 구조에서는 변화를 바랄 수 없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어문 노동자의 기여와 결과물을 소비하는 독자의 참여가 만나서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이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쓰기는 어문 노동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주제에 대한 연구와 정보 수집, 구조화, 문체 선택, 문장 구성 등 다양한 작업들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글쓰기가 봉사가 아니라 노동임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