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홈쇼핑 콜센터가 믹서기라면 플렛폼업체는 초고속 블렌더였다

202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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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6411의 목소리] 홈쇼핑 콜센터가 믹서기라면 플렛폼업체는 초고속 블렌더였다 (2022-05-18)

데비(필명) | 고객센터 상담노동자

지난해 4월 서울의 한 고객센터에서 상담노동자들이 업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글은 이상적인 노동 환경에서 상담노동자로 근무하고 있는 상상 속 인물 ‘리나’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독일에 사는 행복한 상담사 리나는 고양이도 키우는데, 고양이의 이름은 무려 세계 최대 규모의 서비스 노조 이름과 같아요.

잘 있었나요? 당신의 고양이 베르디에게 제 안부를 전해 주세요. 한국은 베를린보다 봄이 먼저 왔다가 벌써 가버린 것 같아요. 이제 낮에는 좀 더워요. 저는 아직 배달의민족 콜센터에 다니고 있어요. 여전히 노조도 없고, 고양이도 없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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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 플랫폼 콜센터에 취업했을 때 하도 유니콘기업 어쩌고, 혁신 어쩌고 하길래 ‘설마 악명 높은 홈쇼핑 콜센터처럼 하청에 하청을 두고 화장실도 못 가게 상담사 갈아 넣어서 운영하지는 않겠지?’ ‘시대가 달라졌고 콜센터도 많이 바뀌었을 거야’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하필이면 처음 들어간 회사가 야놀자랑 쿠팡이츠였어요 그동안 다녔던 홈쇼핑 콜센터가 일반 믹서기라면, 이들 플랫폼업체 콜센터는 초고속 블렌더였어요. 진짜 형태도 없이 갈려서 3개월도 못 다니고 도망 나왔어요.

홈쇼핑 콜센터가 일반 믹서기라면, 플랫폼업체 콜센터는 초고속 블렌더였어요. 형태도 없이 갈려 3개월 못 다니고 도망 나왔어요. 야놀자 콜센터는 충격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에,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사장님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쿠팡이츠의 횡포에 화내고, 애원하고, 이러다 자기 죽는다며 울부짖으셨죠. 꿈에서도 민원인이 나와서 그만둔 첫 회사였어요.

야놀자 콜센터는 충격적으로 더럽고 냄새나는 환경에, 에어컨도 잘 안 돌아가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하는 사람이 드물었어요. 밀려 있는 대기 고객이 너무 많아서 전화 연결되자마자 고객은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냐’고 소리를 질러대고, 관리자들은 2분 간격으로 ‘계속 콜 받아라’라고 소리 질러요. 팀장 자리에는 퇴사 서류가 쌓여 있고, 한쪽에서는 그럴싸한 구인광고에 낚인 신입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죠. 모든 사람이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서 그런지 어느 날부터 이명이 들려서 그만뒀어요. 퇴사하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야놀자 본사는 정말 근사하던데, 자기들 대신 욕먹는 콜센터 화장실이나 한칸 더 지어 주지,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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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츠에서는 가게 사장님들 전화를 받는 재택근무를 했어요. 통화가 6분이 넘어가면 여기저기서 사유서를 보내라고 미친 듯이 메시지가 와요. 왜 6분인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일하는 내내 감시와 통제를 받지만, 정작 화가 난 식당 사장님이 전화로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상황에서는 ‘그냥 잘 들어주라’며 미뤄요. 그때 이 회사는 상담사를 욕받이로만 생각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식당 사장님들 당장 생계가 걸린 문제라 하나하나 너무 절실하고 처절한데, 회사는 민원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이유 설명 없이 그저 콜 수만 늘리라는 식이라 점점 강성 민원인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어요. 사장님들은 갈수록 심해지는 쿠팡이츠의 횡포에 화내고, 애원하고, 이러다 자기 죽는다며 울부짖으셨죠. 꿈에서도 민원인이 나와서 그만둔 첫 회사였어요.

근데 리나, 더 무서운 걸 말해 줄까요? 퇴사하고 얼마 뒤에, 쿠팡이츠 상담사와 통화하던 사장님이 숨졌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어요. 사람 쓰러졌다는데도 세상 메마른 목소리로 “그래도 고객이 요청하시니까 사과 부탁드립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아! 저게 나일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서 소름 끼쳤어요. 그 상담사는 회사에서 치료 지원이라도 받았을까요? 이제 쿠팡 로고만 봐도 소름이 끼쳐서 로켓배송은 꿈도 못 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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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어제 콜 평가 점수 85점 받았다고 피드백 왔어요. 무슨 평가냐고요? 매달 서너번씩 랜덤으로 상담 내용을 듣고 점수를 주는 거죠. 점수를 잘 받으려면 어떤 콜이든 “아, 그러세요?”가 두번 들어가야 해요. “아~네. 그러세요?”라고 하면 빵점이에요. 또 고객이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감사합니다”라고 답하면 빵점이에요. 고객이 감사하다면, 상담사는 그보다 더 감사함을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고객이 불만을 말하는데 그냥 “죄송합니다”라고 답해도 빵점이에요. 이게 뭔 소리냐고요? 배달의민족에서 하청 준 콜센터 업체들끼리 경쟁하다 상담사 말려 죽이는 소리예요.

2018년도에 배달의민족 본사 근처에 대규모 콜센터를 오픈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그 기사 말미에 배민 최고운영담당자라는 분이 “상담사의 행복과 만족도가 자연스럽게 고객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배달의민족 고객센터가 이번 통합 확장 오픈을 계기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모범 사례이자 기준점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가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럴듯하죠?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실제로는 부산과 광주에서 지자체 보조 받아서 간접고용만 대규모로 늘리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배민이 아직 ‘세계적으로 우수한 모범 사례’가 되려고 노~오~력 중이라고 굳게 믿고 있답니다.

배달의민족은 계속 노력할 거고, 저도 최저시급 받으며 버티다 보면 언젠가 리나처럼 안정적인 직장에서 장기근무도 해보고, 내가 하는 일에 애정과 자부심도 느껴보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며 귀여운 고양이랑 깨 볶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닌가요? 그냥 노조나 만들까요?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인스타툰] 콜센터 상담 노동자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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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센터 상담만큼 힘든 일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 노동의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지만, 그 단어가 그 일을 할만한 일로 여기게끔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노동이라기에는 모멸감과 우울감과 분노와 좌절감과 절망감이 구조적으로 견딜 수 없도록 강제되는 틀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음 소희' 영화가 떠오르네요.
<홈쇼핑 콜센터가 일반 믹서기라면, 플랫폼업체 콜센터는 초고속 블렌더였어요. 형태도 없이 갈려 3개월 못 다니고 도망 나왔어요>라는 말에서 글을 읽다가 멈췄네요. 누군가의 편리함은 분명 누군가의 시간을 담보로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 '혼자 사는 사람들' 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이 콜센터 노동자예요. 영화를 보면서도 아득했는데, 글을 읽으니 더욱 참담해집니다. 플랫폼 기업의 구조로인해 외주/하청 콜 업체들 간의 경쟁이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과열되게 되는군요. 안그래도 고객대응이 쉽지 않은 일일텐데,, 마음이 쓰입니다. 생생하고 전달력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믹서기와 초고속 블렌더는 모두 음식을 섞거나 분쇄하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이를 비유적으로 살펴보면, 홈쇼핑 콜센터와 플랫폼 업체는 소비자와 상품 또는 서비스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믹서기와 초고속 블렌더가 음식 재료를 섞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듯이, 홈쇼핑 콜센터와 플랫폼 업체는 소비자의 니즈와 상품을 조화롭게 결합시켜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