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약자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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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입니다

출처 : 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화면 캡쳐

2024년 4월 10일,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길을 걷다보면 벌써 현수막을 걸고, 국회의원 후보 혹은 예비 후보라며 자신을 어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지역구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내 지역구의 한 후보자는 현수막에 윤석열 정권 심판을 써놨다. 맞은편 다른 후보자는 자신을 마음껏 부려먹어 달라고 써놨다. 그 옆 또다른 후보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성과와 지역구에 만들 인프라를 써놨다.

후보자 현수막에서는 그들의 관점과 어필 대상을 알 수 있다. 윤석열 정권 심판을 내건 후보자는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며, 본인과 동일한 생각을 갖는 유권자에게 어필함을 알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유권자는 포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마음껏 부려먹어 달라는 후보자는 구민을 위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을 하겠다는 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걸 손에 쥘 수는 없다. 너무 삐뚤게 보는 걸수도 있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걸로도 보였다.

마지막 다른 후보자는 구 전체에 돌아갈 이득을 말한 것으로 보였다. 인프라 구축되면 구민이 이용할 시설이 늘어나는 것이니 혜택이 돌아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얼핏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지금 인프라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새로운 인프라가 늘어난다고 해서 좋아지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았고, 유세 운동도 펼치지 않은 상태라 정확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수막을 내 건 세 후보 모두 실망스러웠다.

자신과 다른 유권자는 포기하는 태도, 단순히 열심히 하겠다는 구호, 구의 성장을 이끌겠다는 어필 모두에서 ‘구민'을 위한 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4년을 이끌어 갈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 이번에도 뽑을 후보가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 이 정치이고, 정치인은 이를 위해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펼쳐야 한다.

나는 여기서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 후보자라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고,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냐의 판단 기준과 관점은 다양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불평등과 혐오, 차별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열심히 하루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환한 낮과 화려한 밤에 버려진 쓰레기가 아침만 되면 사라져 있는 이유는 새벽 어스름에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 미화원이 있기 때문이다. 바닥에 버려진 수많은 폐지가 아침이 되어서 사라져 있는 이유는 새벽에 일어나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말없이 참고 견디고 있기 때문이며, 말없이 참고 견디는 이유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고통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의 조롱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 조롱으로 인해 받을 더 큰 상처가 두렵고, 아무른 흉터마저 다시 벌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좋은 정치란 이러한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려서, 그들까지도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좋은 정치인이란 그들의 고통을 보는 눈과 보이지 않는 그들을 찾아가는 노력과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쓴 신형철 교수는 인간이 배울만한 것중 가장 가치있고, 어려운 것은 타인의 슬픔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자질로) 혹자는 성품이 아니라 능력을 봐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성품이냐 능력이냐'라는 물음은 잘못된 양자택일이다. (중략) 성품이 곧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고통받아 본 사람이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 그들은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능력과 그것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중략) 귀 기울일 것이다. 반값 임금에 혹사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을, 차별당하는 소수자들의 말을, 그 고통을 알겠어서, 차마 도망칠 수 없어서,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고통받지 않았다고 해서, 고통받은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고통받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람을 보는 눈을 갖고, 그런 사람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관점을 가진다면 수많은 동일한 고통을 받은 적 없는 사람들을 향해 저들을 고통과 슬픔을 헤아려야 한다며 설득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관점이다. 약자의 고통을 알고, 그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잔혹한지 아는 사람이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한다는 정치의 의의와 맞닿는다고 생각한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 출판/ 2021) p.27, 203,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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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참 좋아서 여러번 읽었습니다. 선거가 다가오니 자극적인 정치뉴스들만 난무하는 가운데 정치의 참뜻을 생각해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혐오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말없이 참고 견디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을 여전히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있습니다.. 또 지금의 정치인들 가운데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을.. 찾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말 정치인들 말로만 서민, 약자를 위한 정치하겠다고 하면서 인권감수성은 전혀 없고 행보도 말이랑 완전 모순되는 사람이 많더군요. 현 정권 심판한다고 하면서 칼자루 달라고 선거 때만 머리 숙이는 거죠..
약자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사회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사회적인 불평등과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알아차리는 경험과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수행하면,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존중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약자의 관점을 가진 사람은 사회적인 공정성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정책 결정에 있어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원칙을 고려하며, 사회적 가치와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