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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 이제 바꿀 수 없을까요? ...
2024년 4월 10일, 제 22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도 여전합니다.
☝🏻화창한 봄 하늘을 가리는 현수막✌🏻선거유세 차량의 소음에 잠을 깨는 아침🤟🏻우리의 집중력을 빼앗는 선거운동 전화👌🏻길거리에 나뒹구는 명함과 선거공보물
이 낡은 선거운동 방법을 바꿔보면 어떨까요?현수막과 명함 대신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면 어떨까요?선거유세 차량 대신 더 많은 후보자 토론회를 여는 방법은 어떨까요?
👉🏻이제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다양한 의견들이 나올수록 새로운 선거운동의 변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아래에 작성부탁드릴게요~!
의견 남겨주시면서, 설문지까지도 함께 해주시면 도움이 됩니다!
👊🏻지구를 지키는 배움터가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정당에 전달하겠습니다.설문조사는 약 3분 정도 소요되며, 모두 객관식 설문입니다.
✅ 링크 : https://forms.gle/zSTU4r8Nk2LR...
선거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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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동분배 방식 상상하기 [처음 읽는 공동자원체제]
"임금 노동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성찰과성장은 '노동시장 너머 새로운 대안 제시하기'라는 주제 아래 3편 연재를 통해, 기존 노동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와 내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의 형태를 모색한다.
들어가며
필자는 1편(당신은 왜 일 하나요)에서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소외를 겪는다고 말했다.
노동소외는 '일'을 임금 획득을 위한 도구로만 취급하게 만든다.
이번 2편에서는 '일'을 임금 획득 수단이 아닌, 우리의 창의성을 발현하고 자아실현을 하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노동 분배 방식' 차원에서 말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노동 분배 방식이란 모든 인간이 노동을 한다고 전제하고 분야별로 얼마나 많은 인원이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일단 천천히 글을 읽어보자.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일을 선택하게 되는지 생각해보자. 고등학생 시기 우리는 (부모님이 원하는)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하려고 한다. 시기마다 인기 있는 직업이 다른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의사다. 공부 꽤나 하는 친구들은 최상위권 대학 합격을 포기하고 의대에 들어간다고 한다.
▲ 대한민국 최근 10년간 대학 진학률 ⓒ 성찰과성장
올해 초 1,343명이 의대를 가기 위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합격을 포기했다(김승직, 2024). 의대 외에도 교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컴퓨터 공학자 등 수입이 안정적이거나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기 있는 업종들도 학생들 사이에서 뜨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본인의 재능, 흥미가 직업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느냐'가 기준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대학을 입학한 뒤 우리는 대학생활 2년~4년동안 취업준비를 한다. 높은 학점을 유지하고 수많은 스펙을 쌓는 그 모든 고생은 오로지 임금이 높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 오로지 ‘임금’ 만을 위해 운영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교육 ⓒ성찰과성장
왜 임금을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는가? 당연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다. 반복적으로 말해왔듯 생산수단이 없는 우리는 임금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다. 그리고 임금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일'은 임금 획득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일의 내용, 일의 질이 아니라 '임금'이라는 노동 가격에 맞춰 일자리를 선택하고 기업에 선택되는 것.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노동 분배 방식이다.
자본주의의 노동 분배 방식
자본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온라인 백과사전의 내용을 인용하여 간단히 말해보자. 다음 백과사전에서는 자본주의를 "이윤의 획득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으로 정의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자본이 상품유통 과정이나 고리대금업의 과정에서 이윤을 창출해 내는 기업조직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부가가치의 형태로 이윤을 창출해 내는 기업이 사회적 생산의 주류를 이루는 기업사회"라고 정의한다.
전자의 해석에 따르면 15~16세기 중상주의가 나타날 때부터 자본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고, 후자의 해석에 따르면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부터 자본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후자의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말할 것이다. 직장인에게 '노동소외'를 느끼게 하는 이 구조, 사장 밑에서 일해야만 하는 구조가 산업혁명 이후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거대한 기계가 만들어지자 그것을 소유한 사장(자본가)들은 단순 노동을 할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했다. 고용된 사람들은 국가나 지주에게 토지(공용지)를 빼앗겨 생산수단을 잃거나, 대규모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과의 경쟁에서 진 수공업 장인들이었다. 그렇게 형성된 자본가-임금노동자의 고용관계는 일의 내용이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주류)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자본가-임금노동자의 관계는 노동시장에서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수요자는 자본가이며, 공급자는 임금노동자이다. 그리고 노동의 가격은 임금으로 표현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노동시장에서 노동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분배된다.
▲ 산업별 노동시장에서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어떤 산업에서 일 할지 결정하고 기업들은 결정된 임금에 맞춰 얼마나 고용할지 결정한다. ⓒ 성찰과성장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산업이 농업, 자동차산업, IT 3가지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하자. 각 산업은 노동시장을 따로 갖고 있다. 노동시장은 노동공급자, 노동수요자, 임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주류)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그래프로 표현하면 위와 같다.왜 그래프가 저렇게 그려지는지 설명해 보자면, 우선 공급자 입장에서 노동 공급자는 산업의 임금이 올라가면 그 산업에 고용되려고 노력하고, 반대로 임금이 떨어지면 임금이 더 높은 다른 산업을 찾으려고 한다.즉 임금이 높아질수록 노동공급자는 증가한다. 노동수요자인 기업은 아무도 일하려하지 않을 때 임금을 높게 제시하고, 누구나 일하려고 할 때는 임금을 낮게 제시한다(사실 경제학 이론상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수요는 좀 더 복잡하게 결정되지만, 여기서는 간편하게 가정하겠다). 즉 노동자의 공급이 적어질수록 기업들이 제시하는 임금은 높아진다. 기업들의 수요와 노동자들의 공급을 합하여 표현한 것이 위의 그래프이다. 두 그래프가 만나는 지점, 즉 서로 원하는 임금이 동일해질 때 고용관계가 발생한다.이렇게 각 산업의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어떤 산업에서 일할지 결정한다. 과거 자동차 산업이 잘 나갔을 때 농업보다 자동차 산업의 임금이 높았고, 그 결과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농업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많아졌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IT 산업의 임금이 높아지자 이제 사람들은 IT 업계에서 일하려고 한다. 물론 이들이 모두 고용되느냐는 별개이다. 기업은 자신이 지불하려는 비용에 맞추어 고용 인원을 결정한다. 그렇게 시장에서 정해진 임금에 따라 노동이 분배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노동분배 방식이다.노동시장에서 임금으로 일을 분배한다는 것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의 노동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일하다는 것은 어떤 '신분'인지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평등한' 방식으로 노동시장에서 노동을 분배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노동 분배 방법
그렇다면 자본주의 이전에는 노동이 어떻게 분배되었을까? 기본적으로는 '신분'에 따라 노동을 분배하였다. 조선시대로 돌아가보자. 조선시대에는 양인과 천민이라는 신분이 있었다. 시기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천민은 육체노동을 해야만 하는 존재였고, 양인도 양반이 아닌 이상 농사를 짓고 세를 바쳐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료가 된 사람과 왕은 육체노동보다는 나라를 다스리고 정책을 만드는 정신노동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을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양반도 생겨났다. 양반은 (넓은 의미에서) 양인 중 하나지만, 재력과 정치력을 보았을 때 당시 하나의 계급이었다고 볼 수 있다(유승원, 2007). 이러한 신분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노동이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천민은 양인이 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양인은 천민이 하는 일을 할 수 없다(하지 않는다). 사람의 신분에 따라 할 수 있는 노동이 다르므로 '모든 사람의 노동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노동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한편, 조선시대 농민 사이에는 마을을 중심으로 협동과 협력의 문화가 있었다. 조선 후기 이앙법(모내기)이 보급된 이후로 보편적 마을 문화로 정착된 두레는 협동과 협력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동 노동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최순규, 2021). 이앙법은 모판에서 모를 따로 싹을 틔운 뒤 논에 옮겨 심는 방식인데, 한 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농민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마을 공동노동 조직인 두레를 만들었다.
또 조선 후기 마을 단위의 공동납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세금 납부를 위한 마을 단위 공동 경작지가 탄생하였는데, 공동 경작지를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공동 노동 조직이 필요했다(최순규, 2021).
당시에는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하여, 외부의 자원과 노동력을 끌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노동을 나누고 함께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레는 구성원 간의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였고, 구성원의 노동을 분배할 뿐만 아니라 마을 단위의 자치기구 역할도 하였다.
▲ 과거에는 신분과 공동체가 노동을 분배하였다면 지금은 노동시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성찰과성장
정리하면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신분과 공동체가 구성원의 노동을 분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동 분배의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되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임진왜란 당시 노비들이 의병 활동으로 공을 세워 면천의 특권을 누리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후 재정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양곡을 바치는 대가로 신분을 상승해 주는 납속책을 강화하면서 면책 받은 노비의 숫자가 늘어났다.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신분을 사고 파는 지경에 이르고, 노비의 봉기가 자주 발생하면서 신분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졌다. 1886년 고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비세습제를 폐지하였고, 동학농민운동 이후 1984년 갑오개혁에서는 신분제 자체가 폐지되었다(필진네트워크, 2006).한편 새로운 문물, 특히 철도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했다.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설치한 철도는 조선사람의 노동을 착취하고 자원을 수탈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주는 교통수단이 되기도 했다.또한 1910년대 일제가 진행한 토지조사사업은 지주에게 '배타적 소유권'을 승인함으로써 지주가 농민들의 경작권(본래 땅을 경작할 수 있는 권리는 토지를 소유하는 권리와 별개로 존재하였다. 땅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거기서 경작하고 있는 농민들을 토지 소유자가 마음대로 내쫒을 수 없었다)을 무시할 수 있도록 했으며 마을 공동 토지도 개인이 소유하도록 하여 마을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조수진, 2022). 토지라는 주된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이동했다. 마을 공동체는 사라져버렸다.
▲ 토지의 소유권과 경작권을 구별해 생각해보자. ⓒ성찰과성장
조선시대 신분제 폐지와 마을공동체의 축소는 새로운 노동 분배 방식을 요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폭력과 수탈, 과도한 노동 착취 방식으로 노동이 분배되었으나 해방된 후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를 선택하면서 (비록 국가가 노동을 강제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노동시장이 대부분의 노동을 분배하게 되었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상상
신분제 그리고 다소 폐쇄적인 마을 공동체에 의한 노동 분배 방식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세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방식에서 한 가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함께 마음과 힘을 합하는 것, 바로 협동이다. 협동을 통해 일을 분배한다는 것은 동등한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할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임금이 아닌 민주적인 논의 과정을 통해 각 구성원의 일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협동'이라는 단어가 너무 구시대적이고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협동은 과거보다 더 필요한 가치가 된다. 부유한 이들은 금융과 부동산으로 더 많은 돈을 끌어모으지만, 애초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난해진다. 국가가 가난한 이들을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서로의 얼마 없는 자원과 능력을 모아 함께 살아가는 방법뿐이다.
▲ 노동시장이 없어진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 성찰과성장
물론 우리는 협동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한다. 또한 능력주의는 가난한 자를 '실패한 자'로 낙인찍는다.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 실패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만 매몰되어 있다.하지만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위 1%가 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SKY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고소득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제 너무 유명해서 사례로 넣을 필요도 없다(박지원, 이정한, 2021).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주변 도움없이 홀로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면 홀로 남아도 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필자는 협동의 가치를 한번 고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한편 '협동'과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는 '자율성'이다. 자율성이란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개인의 감각. 즉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 또는 다른 사람의 통제로부터의 독립"(다음 백과사전)을 말한다. 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직장인은 '일'에 대한 자율성을 회사에 빼앗겼다고 볼 수 있다.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싶다면 우리는 일에 대한 자율성을 되찾아와야 한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 당신의 일은 자율적인가? ⓒ 성찰과성장
'협동'과 '자율성'의 가치를 모두 추구하면서 일할 수 있다면 노동하는 시간이 더이상 지금처럼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협동을 통해 혼자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고, 상사의 명령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를 통해 일을 나누며, 자율성을 가지고 하고 싶은 노동을 한다면 일하는 시간이 오히려 보람차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정말 그것이 가능할까?
▲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설지만, 협동조합은 국제연맹(ICA)도 존재한다. ⓒ성찰과성장
우리는 '법적으로' 그러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의 모든 조합원은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와 협력을 통해 자신의 일을 결정할 수 있다. 아쉬운 부분은 협동조합은 아직 비주류이며, 일반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조합원의 협력과 협동을 통해 운영하는 방식'이 오·남용되기도 한다. 또한 협동조합은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을 달래주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그래도 희망은 있다. 임금노동자를 고용해서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방식도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서서히 만들어졌다. 협동조합 방식이 일방적 기업 방식보다 인간의 삶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해낼 때, 협동조합이 주류가 될 수 있다.
나오며
임금을 기준으로 일을 결정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임금 중심 노동 분배' 방식에서 빠져나오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간 청년이 1~2년 만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어렵사리 입사했다가 퇴사하고 구직 포기자가 된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
▲ 니트청년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성찰과성장
필자는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노동 분배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저항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이상 임금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는 저항. 하지만 저항만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다. 저항을 넘어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앞서 '협동조합'을 제시했지만 이것은 대안의 일부일 뿐이다.다음 편에서는 협동조합을 포함해, 더 큰 대안에 대해 얘기해본다.
참고문헌
필진네트워크, "[필진] 120년 전 오늘, 노비세습제 폐지되다", 한겨레, 2006.02.06.
김창수, "[라이프&경제] 아는 만큼 달라지는 학자금 준비", 한국교육신문, 2023.05.15.
김승직, "1343명 의대 가려고 SKY 합격도 포기…최근 5년 내 최고", 2024.01.22.
유승원, "조선시대 '양반' 계급의 탄생에 대한 시론", 역사비평, 2007
최순규, "조선 후기 두레 공동체에 나타난 평화적 성격에 대한 재조명", 신학과 학문, 2(2012), 2021
조수진, "빼앗긴 커먼즈, 되찾는다면'… 마을목장으로 상상하는 미래", 제주투데이, 2022.08.02.
박지원·이정한, "강남구 '107' vs 도봉구 '2'… 부자동네 서울대 싹쓸이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세계일보, 2021.05.19.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및 편집 : 신동주, 박배민성찰과성장.com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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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를 넘어서는 힘> 공대생의 완강 후기
“지금부터 토의를 시작해주세요.”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기후 관련 강연들을 많이 다녀봤지만 내 의견을 궁금해하는 곳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정책을 만들기 위한 토의라니 이런 건 중학교 사회 수업시간 이후로 처음이었다. 전문가 강연이 진행된 후였고, 추가 자료도 제공되었지만, 정책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첫 주 토의시간에 나는 입을 떼지 못했다.
공과대학에 재학중인 저에게 이번 강좌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연령층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정말 많았고, 학습의 방향성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경험한 학습과정이 저에게 정말 뜻깊었기에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1강이 마무리되고 일주일 뒤, 두 번째 시간의 주제는 재생에너지였습니다. 1강보다는 친숙한 주제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토의 주제가 전기세 인상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전기세 인상에 대한 정책 초안을 적어서 내야 했는데 결국 제한 시간을 몇 초 남기고 헛소리를 적어서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토의 진행자님께서 제가 작성한 초안을 보시고 이해가 잘 안 된다며 누가 작성한 것인지 애타게 찾으셨지만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 너무 부끄러웠고, 대답한다고 한들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사람이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시간부터 저는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모르면서도 배우려 하지 않았던 태도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조원분들에게 궁금했던 내용을 질문하고, 함께 얘기를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을 때는 강연자님께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제에 대한 저의 견해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타인의 의견을 들을 때에도 제 의견과 비교하며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수정한 제 의견을 공유하고 발표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는 것이 없어 입도 떼지 못하고, 직접 쓴 글을 자기가 썼다고 말도 못하던 저에게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토의를 더 잘 하기 위해 주제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하기도 했고,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정책을 고안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번 강좌를 신청하기 전까지는 사회나 정책 분야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강좌를 수강하면서 알게 된 것은, 연구 성과를 내고 세상을 구할 기술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사용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제가 갖춰야 할 역량입니다. 이번 강좌를 통해 더 넓은 시야를 얻게 되었고, 제 진로에도 큰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지구 공동체가 공동으로 처한 위기 앞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들은 너무 작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후 우울을 겪고 있고, 기후 문제를 외면하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곳에 도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기후 위기 극복에 대한 희망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 강좌에서 저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료들을 만났고, 그 자체만으로도 저에겐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10년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데, 이제 겨우 대학교 2학년인 제가 그 10년 안에 무언가 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정책, 기술, 언론, 교육, 패션 등 각자의 분야에서 환경을 위해 힘쓰는 모든 동료들을 응원합니다.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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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세월호 참사를 적극적으로 기억하는 방법 - 함께, 기억 OT 후기
0. 세월호 참사가 언제였더라..?
우리가 평소에 기억하고 다니는 날은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공휴일이나 기념일, 그리고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날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나 삼일절, 빼빼로데이 같은 날이나 부모님의 생신, 내 생일, 애인 혹은 배우자와의 중요한 기념일들은 때론 일부러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각자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기억에 잘 남는다.
사실 나에게 ‘세월호 참사’는 충격이 컸던 사건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크게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참사가 발생한 2014년에는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이 된 상태였고, 단원고와 연결점이 없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부모인 상태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캠페인즈의 [함께, 기억]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는 세월호 참사가 4월에 발생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무슨 달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도 모르는 사람이 왜 [함께, 기억]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됐는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서 국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때는 ‘가만히 있으라’더니, 가만히 있어도 될 때는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를 보내는 ‘문자 사고’와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백명이 넘게 길거리에서 죽음을 당하는 ‘이태원 참사’는 모두 2023년인 작년에 발생했다. 10년 전과 1년 전이 나아진게 크게 없다는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그리고 무엇을 해야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기억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함께, 기억]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게 됐다.
1. 세월호 참사를 함께 잘 기억하려면
3월 14일 목요일 저녁 7시30분, 노무현시민센터 1층에서 진행된 [함께, 기억]오리엔테이션은 우선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됐다. 빠띠는 ‘열린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이라고 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왜 빠띠는 (열린)기술이 필요하다고 하고, 플랫폼 형태를 띄고 있는가?
과학(디지털) 기술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긍정적 도움을 많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 기술은 언제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존재한다. 인터넷의 특성상 정보가 쉽고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가짜 뉴스가 판치고, 때로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보의 홍수에 파묻힌다. 또한 사람들은 디지털 공간에서 익명성의 방패 뒤에 숨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바쁘다. 하지만 가짜뉴스만큼 좋은 글 역시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으며, 오프라인 공간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의견을 주고받고, 서명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뜻을 모을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년 역시 디지털 공간이기에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기억할 수 있다. 빠띠에서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함께OO’시리즈를 통해 주제별로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함께’해나갈 수 있다. 참사와 관련해서는 각자 왜, 어떻게 참사를 기억하는지부터, 참사와 관련된 유가족들의 깊은 이야기도 공유할 수 있고,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글들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이나 ‘세월호참사 10주기 영화’등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받을 수 있다. 이런 컨텐츠들은 또 다른 디지털 공간인 SNS, 메신저, 언론 등을 타고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함께 잘 기억하기에 빠띠, 캠페인즈라는 디지털 공간이 적합한 이유들이다.
2. 세월호 참사 피해자는 내 친구, 내 자녀, 내가 가르치는 학생.
빠띠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 후, 본격적으로 [함께, 기억] 프로젝트의 구체적 참여 방법 안내와 참여자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선, 세월호 참사 10주기와 관련한 글이라면, 정해진 양식에 따라 어떤 글이든 써도 상관이 없다. 소소하지만 원고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참여자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인상깊었는데, 우선 참여자들의 연령대가 상당히 다양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학생부터 세월호 때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던 사람, 나이가 더 많은 노인 분까지 넓은 연령대의 참가자분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오셨다. 이보다 더 인상깊었던 건 어떻게든 참가자분들이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비슷한 나이대였던 참가자, 자녀가 있어 당시 피해자와 유가족에 이입이 더 잘 된다는 참가자, 주기적으로 안산에 가서 추모하고 오려고 하는 참가자, 현직 교사라서 학생들과 함께 참사를 기억한다는 참가자까지. 나이와 배경이 모두 다른 참가자들이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연결되어 있다. 유가족, 안산 사람, 고등학생이었던 사람, 고등학생이 될 사람 등.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참사의 정의를 찾아보면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한다. 사회적 참사는 사회적으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는 뜻인데, 세월호 사건이 사회적 참사가 된 이유는 사회에 있는 모두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자기소개 시간에 느꼈다. 우리 혹은 우리 주변에 누군가가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었음을 알기에, 유가족과 피해 학생들의 슬픔과 한을 공감할 수 있기에, 세월호 참사가 비참하고 끔찍한 일임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다.
3. 10년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하기 – 최성용 청년연구자 강의
참가자들의 자기소개에 이어서, 최성용 청년연구자님의 ‘10년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하기’라는 제목의 강의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고 하는 걸 넘어,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강의 내용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간단히 옮겨오면 다음과 같다.
- 세월호 참사를 소극적으로 단순히 기억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어떻게 기억할지 고민해야
연구자님의 강의의 핵심 주장을 한 줄로 압축하면 ‘세월호 참사를 적극적으로 기억하자’이다. 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적극적으로 기억하자’는 말이 쉽게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기억하기’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극적으로 기억하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소극적으로 기억하기’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면서 가장 많이 쓰인 문구 중 하나인 ‘기억하겠습니다’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겠지만, ‘소극적으로 기억하기’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소극적으로 기억하기는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참사를 망각시키는 정부 등의 압력에 저항하여 참사를 제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군사 정권 시절부터, 대구 참사,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강도는 시대나 참사마다 다르지만 국가가 참사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는 지속되어왔다. 세월호 참사에 집중해보면, 세월호 추모 공원이 제대로 지어지지 못하게 하거나, 최근들어선 총선 이후에 방영되는 세월호 10주기 다큐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4월 방영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제작까지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런 압력에 대항해 참사를 잊지 않고, 참사를 제도화하겠다는 소극적 기억 역시 참사를 기억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기억하기’는 ‘소극적으로 기억하기’의 단순히 잊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무엇을, 어떻게’기억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성용 청년연구자는 참사를 소극적으로만 기억할 경우, 기억이 제도화되게 되면서 경직되고 의미가 줄어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기억하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억의 제도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박물관을 이야기해주셔서 더 와닿았는데, 중요한 역사를 박물관에 기념하고 전시하여 제도화하는 순간, 잊혀지지는 않더라도 뭔가 더 딱딱한 느낌이 들고 재미가 없다. 우리가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참사로부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억의 제도화가 아니라 기억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기억의 사회화를 위해 대표적으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안전’과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다.
- 함께 만들어 가는 ‘안전’과 ‘세월호’의 의미.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사람들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의견에 대부분 공감하였다. 하지만 그 ‘안전’의 범위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당시에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어른들은 결과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해 대구 지하철 참사,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들을 만들어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께서 ‘안전’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게 쉽지 않은 작업임을 이태원 참사의 예시를 통해 설명해주었다. 당시 경찰 인력을 마약수사에 많이 배치한 것도 일종의 ‘안전’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폴리스라인 등 거리 안전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 참사가 발생하였다. 이처럼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또한, 최성용 청년연구자님은 ‘세월호’의 의미는 포괄적이고 유동적임을 설명해주셨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단순히 세월호 참사 순간, 피해 학생들에게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해 열리는 세월호 집회, 유가족들의 운동, 4월 16일에 맞춰 노란리본을 달고 기억하는 시민들까지 포함한다. 즉, 사회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더 넓고, 지속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세월호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기억해 나가고, 그 기억을 토대로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느냐에 따라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바뀔 수 있다. 이번 ‘함께, 기억’을 포함한 시민들의 노력이 세월호를 단순히 아팠던 참사를 넘어, 반성하고 성장하는 토대로 바꿀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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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록을 기록하다, 다큐 <그레이존>
2024년 3월 22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다큐 <그레이존>(주현숙 감독) 상영회가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10층에서 열렸다. ‘4.16재단’과 ‘사랑의 열매’의 지원을 받아 캠페인즈가 주관한 이 상영회에서는 "함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모인 캠페이너들 및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모여 영화를 감상하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기자란 무엇인가
세월호 다큐 <그레이존>은 흑백 사이 모호하게 연결된 기자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는 언론에게 화살이 몰렸던 사건이다. 상황이 어떠한지 언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현장의 팩트를 명확히 전달했어야 했던 언론이 우왕좌왕했던 것을 우린 기억한다. 세월호 침몰이란 속보로 심장을 철렁이게 했다가, 모두 구조되었다는 엉성한 안심을 주다가, 다시 침몰이라는 절망을 던졌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피해자 마음보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위해 몰래 혹은 억지로라도 카메라를 무기처럼 들이밀었다. 결국 2차 가해자가 되어 버린 뒤, 그들이 만난 것은 유가족들로부터 오는 강력한 불신의 벽, 그리고 섣불리 정부 눈치를 봐 버린 자신의 무능, 이도 저도 할 수 없던 무기력이었다.
그들은 취재의 사명이 있었으나, 바다 너머를 볼 수 없었고, 해경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유가족 제보보다 정부의 ‘구조하고 있다’는 말을 믿었다. 의심할 수 없었던 자신에 실망하고, 아비규환의 현장에 절망했던 기자들. 자신을 기자라 말하기조차 어려웠던 순간.
메타적으로 보기
영화는 기자들의 참회록으로 보인다. 기자들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돌려, 자신을 카메라 앞에 두고 그날을 고통스럽게 떠올려 본다. 그들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동시에 관객은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고민하게 된다.
기자들은 10년이 지난 이제야 당시 상황을 떨어져서 가늠해보고, 어디서 단추를 잘못 끼웠는지 반추한다. 유가족들이 보고 온 현장(“구조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요!”)을 기자들이 서울 보도국에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면서, 그리고 정부가 말한 ‘세월호 승객들을 구하는 중’이란 빈말을 전하면서, 진실과는 한참 어긋나 버렸다. 배 안에서 ‘당신들을 구하고 있으니 가만히 기다리라’는 방송과 ‘정부가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으니, 가만히 기다리라’는 언론은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
그럼에도 기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제 3자의 눈으로 직접 본 유일한 목격자이다. 2차 가해자이자 2차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던 현장을, 자신들의 고백을 통해 가까스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세월호의 진실을 기자들의 입장에서 되묻는다. ‘참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2024년의 우리는 10년 전 참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려 한다. 그런 가운데,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나 자신은 유족도, 현장 기자도 아닌, 같은 나라의 국민이지만 달리 보면 행성처럼 동떨어진 일반 시민에 불과한데, 이 기억과 기록을 어떻게 끄집어내고 드러내야 하는가, 고. 감히 나의 펜 끝을 세월호 참사에 댈 수 있는가, 고. 하지만 그래야만 한다. 회색지대에 선 자들은 어쩌면 당시의 기자들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정 팩트인가, 우리가 보는 세계는 진도 팽목항의 어디쯤인가, 우리 역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보다 ‘왜’를 물어야 한다. 왜 비슷한 참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가. 왜 진실은 아직도 정치적인 이유로 가려지거나 전달되지 못하는가. 나는 왜 기록하는가. 그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누구나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도, 유가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재(人災)로 인한 참사의 희생자는, 구해질 수도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담으려는 노력이다. 기억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는 일이다. 우리가 보려는 것은 단지 10년 전이 아니라 지금이고 10년 후이고, 30년 후이다. <그레이존> 안에서 자주 악몽에 시달린다는 한 기자의 말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수십 번이고 같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세월호 선실에 앉아 있다. 죽은 이들 사이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과연 지금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