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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디지털의 환경 비용, 그 뒤에 숨은 논리
빨리 가기에 대한 분노 지난 2018년 제주도 비자림로 확장 공사가 시작됐다. 2차선의 4차선 확장 공사였다. 제주도 관계자는 “하루 1만 4천 대 통행량으로 주민의 불편이 크다”며 공사 이유를 밝혔다. 책정 예산은 240억 원이었다. 시민단체는 반발하며 비자림 지키기 활동을 벌였다.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는 시민들 모임'은 “4차선 도로 확장을 해도 전체 구간이 3km밖에 되지 않고, 시간 단축 또한 27초밖에 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비자림로는 차로 5분이 걸렸다. 확장 공사로 벌목 된 나무는 900여 그루다. 비자림로 확장 공사가 알려진 2018년 8월 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제주도의 아름다운 비자림이 파괴되지 않게 막아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몇 시간 만에 1만 9,000명이 청원에 참여했다. 현재도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고 하려는 시민모임’ 인스타그램에는 비자림로 공사 게시물이 올라오며, 수십 개의 좋아요가 눌려 있다. 또한, 비자림로 도로 확장 공사를 비판하는 #비자림로를지켜주세요, #비자림로확장공사반대  게시물 모두 1,000개 이상 업로드 됐다. 빨리 가지 못 한다는 분노 코로나19 팬데믹은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전환시켰다. 인터넷 수요가 증가했고, 속도가 중요해졌다. 넷플릭스, 유튜브 동영상은 1,080p에 로딩이 없어야 했다. 도로든 인터넷이든 트래픽이 많으면 느려진다. 기업들이 초고속 인터넷, 더 빠른 Wi-Fi 서비스를 내놓은 이유다. 문제는 초고속이 초고속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1기가 바이트 속도의 인터넷이 실제로는 절반밖에 되지 않았고, “넷플릭스 속도 왜 이래" 혹은 “사진도 전송이 안 된다.” “굼벵이 인터넷 속 터져"라는 말이 나왔다. 비판이 코로나 팬데믹 특수라고 보긴 어렵다. 2017년 구글 리서치에 따르면, 모바일 기준 홈페이지 로딩 시간이 3초 이상일 경우 32%가 이탈하고, 5초 이상은 90%, 6초 이상은 106%, 10초 이상은 123%가 이탈한다. 2014년 우리나라 사람들은 홈페이지 로딩 6초가 길다고 느꼈다. 기대 시간은 3초였다. 현실이 이러니 기업들은 더 빠르고,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는 홈페이지와 기술을 개발했다. 그에 따라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웹사이트 한 페이지의 무게가 115배 증가했다"1) 프랑스 데이터센터 대표이자, 민간싱크탱크 ‘전환기의 데이터 센터(Datacenter en transition)’’의 공동 설립자 ‘필리프 뤼스(Philippe Luce)’는 “1990년대 말엔 웹사이트의 초기화면이 8초 안에 떠야 했다. 오늘날엔 0.8초 안에 초기화면이 완전히 뜨지 않으면 다른 플랫폼으로 가버린다.”1) 고 말한다. 같은 속도, 다른 비판, 다른 태도 온라인에서는 3초도 못 기다리는데, 오프라인에서는 5분이 느려도 괜찮다는 차이점이 왜 발생하는 걸까. 오프라인의 비판이 왜 온라인에는 적용되지 않을까. 오프라인에서의 악이 왜 온라인에서는 선일까. 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비판이 다를까. 그 이유는 아마도 온라인이 발전하면서 누리는 편리함과 효율성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은 효율성을 추구한다. 더 빠르게, 더 많은 일을 처리하게 한다. AI, 사물 인터넷, OTT 등 디지털이 발전할수록, 과거보다 더 편하고, 많은 일을, 더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다. 명령어 몇 개만 입력하면 내가 원하는 글과 동영상을 만들 수 있고, 자동화로 업무 효율성이 증가한다. 발전 속도를 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빠르고, 편리한 유토피아가 펼쳐질지 상상이 안 된다. 유토피아도 멀지 않아 보인다. AI와 디지털이 유토피아를 보여줄 때, 우리는 감춰진 디스토피아도 함께 봐야 한다. 동전은 양면을 갖고, 햇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디스토피아를 보면 AI와 디지털 발전이 다르게 보인다. 디스토피아를 보면서 오프라인에서 한 비판을 온라인에도 똑같이 해야 한다. NVIDIA는 왜 전 세계 시가총액 3위 기업이 됐나 NVIDIA는 콘솔 게임기와 PC, 노트북의 그래픽 처리 장치를 디자인 하는 미국의 반도체 회사다. 시가총액은 2조 3,751억 달러로 전 세계 3위다. 10년 전보다 10배 이상 성장했다. NVIDIA의 주력 제품은 GPU(Graphics Processing Unit)다. 컴퓨터 그래픽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고, 결과 값을 출력하는 장치다. 고해상도 디자인과 게임 그래픽 구현에 쓰였다. CPU(Central Processing Unit)와 비교하면 속도 차이가 극명하다. NVIDIA는 그 차이를 영상으로 공개했다. NVIDIA가 단순 GPU 때문에 성장한 것은 아니다. GPU에 CUDA(Compute Unified Device Architecture) 기술이 결합된 결과다. 그 결과 GPU에서 수행하는 알고리즘을 C 프로그래밍 언어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CUDA 도입으로 NVIDIA는 AI가 원하는 대량 연산 처리를 할 수 있게 됐다. AI 소프트웨어에 딱 맞는 하드웨어가 된 것이다. AI 핵심이 딥러닝이 되면서 GPU는 필수가 됐다. 현재 NVIDIA의 전 세계 GPU 점유율은 98%다. AI 산업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다. NVIDIA가 급성장한 이유다. ChatGPT 개발사 오픈 AI의 SORA 서비스로 누구나 명령어 몇 개로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 기업들도 AI로 만든 영상을 제품 바이럴에 사용하고 있다. 한 기업은 자사 바디워시 제품 바이럴 영상을 AI로 만들어 공개했다. 이제는 불편한 골짜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NVIDIA 창업자 젠슨황  “전 세계 1천 조 규모의 데이터 센터가 있다. 현재 생성형 AI로 전환하는 과정” NVIDIA가 급성장하자, 창업자 젠슨황의 발언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전 세계 1천조 규모의 데이터 센터가 있으며 생성형 AI로 전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9월에 “몇 년 안에 수조 대의 컴퓨터가 AI를 실행 하면서 새로운 사물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AI든 사물 인터넷이든 핵심은 데이터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처리한다. 사물인터넷은 인터넷을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움직인다. 데이터는 SNS, OTT, 유튜브, 블로그, 각종 앱을 사용할 때마다 생성되고 쌓인다. “하루에 5엑사바이트”가 생성된다. 엑사바이트는 10¹⁸에 해당한다. 이는 “정보화 산업이 시작된 시기부터 2003년까지 생산된 모든 정보의 양”이다.1) 1분 동안 벌어지는 디지털 활동을 보면 이 말이 이해가 간다. 2023년에 1분 동안 3억 4,700만 회의 유튜브 영상 조회, 45만 2천 시간의 넷플릭스 영상 스트림, 6억 2,500만 개의 틱톡 동영상 조회, 2,100만 명의 페이스북 유저 활성화, 65,972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공유됐다. 하루가 아니라 1분이다. 단순 계산으로 유튜브 동영상은 하루에 약 5천억 회 조회된다. 전 세계 스마트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한 사람이 초당 만들어 내는 데이터는 1.7mb다. “전화기며 태블릿 PC, 컴퓨터 등에는 분명 감춰진 비용이 존재한다. 이는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거나 우리의 감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이유로 무시되어 온 빙산의 아랫부분이다. (중략) 디지털 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데이터들끼리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놀랄만한 인프라를 구축했으니, 그것은 바로 데이터 센터다.”1) “우리가 어떻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든, 스마트폰은 데이터센터와 연결되어 있다.”1) 또한, “오늘날 전 세계의 데이터센터는 면적이 500제곱미터에 미치지 못하는 규모가 거의 300만 개가량, 그보다는 큰 중간 규모가 8만 5,000개, 그리고 에퀴닉스 AM4에 버금가는 규모가 수만 개 정도 분포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1) 바로 앞 친구 SNS 게시물에 누른 좋아요는 총 7번의 과정을 거쳐 전달된다. 데이터센터를 반드시 거치며, 데이터는 해저 케이블로 전달된다. SNS뿐만 아니라 앞서 1분 동안 이루어진 활동 모두 마찬가지다. 방해금지 모드가 없는 데이터센터 데이터센터의 미덕은 꺼지지 않는 것이다. 데이터센터가 꺼지면 연관 산업은 셧다운 된다. 지난 2022년 10월 SK C&C의 데이터센터 화재가 발생하면서 데이터 처리가 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카카오톡, 카카오 택시, 카카오 페이 등 카카오 관련 서비스가 모두 먹통이 됐고, 신한카드도 결제되지 않았다. 데이터센터 화재로 데이터 처리가 되지 않으니, 해당 데이터센터를 이용하던 모든 서비스가 중단 된 것이다. SNS, OTT 시청, 온라인 결제, 이메일 전송, 무선 인터넷 등은 24시간 내내 작동해야 한다. 때문에 데이터센터는 멈추면 안 된다. ‘단 1초도 멈추지 않는' 게 데이터센터의 안정성이다. 데이터센터에게 방해금지 모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24시간 켜져있는 디지털은 24시간 내내 기후변화를 가속화 한다 꺼지지 않는 데이터센터와 24시간 접속 가능한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전기가 소모된다. “디지털 산업계가 하나의 나라라면, 이 나라는 전기 소비 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뒤를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전기의 35퍼센트가량은 여전히 석탄을 통해서 생산된다. 사정이 이러니, 지구의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 약 4퍼센트는 디지털 산업에서 발생하는 형편이다.”1) 자동차가 차고에 있을 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반면, 디지털은 24시간 켜진 상태로 24시간 내내 열을 방출한다. 이 열을 24시간 내내 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SK C&C 사태가 재발한다. 열기를 식히는 데는 HFCs 등 불소화가스가 사용된다. 이는 온난화 가스들이다. 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배가 된다.  현재 해당 가스 배출량 계산 지침도 없는 상태이며, 기업의 배출량 파악도 명확치 않다. 아마존, 메타, 넷플릭스, 유튜브 등 주요 디지털 기업은 자사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혹은 ESG 보고서에 HFCs 가스 배출량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편리함과 효율성, 속도에 감춰진 환경 비용 계산을 못 하는 것이다. 디지털 산업은 제품 “가격 책정 기능은 뛰어난지 몰라도 비용을 파악하는 능력은 없다"2)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은 24시간 내내 전기를 사용하고, 24시간 내내 열을 내뿜으며, 그 열을 식히는 HFCs 등 불소화가스를 24시간 내내 사용해야 한다. 이 모든 건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24시간 내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달리는 자동차인 셈이다. 기업의 잘못만도 아니다. 인터넷 사용자  모두에게도 인터넷을 끊임없이 긴장 상태로 몰아간 책임이 있다. 한 엔지니어가 말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웹이 기능하는 방식을 우습게 알죠. 이들은 인터넷이 늘 빨리, 더 빨리 일하기를 기대하는 버릇없는 아이들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모두가 이러한 빨리빨리 논리의 지옥에 떨어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1) 디지털 산업 뒤에 감춰진 논리를 봐야 한다 생성형 AI가 산업에 더욱 쓰이고, 편리함과 효율성, 속도에 취해 더 빨리, 더 많이 논리를 살찌우면 데이터는 점점 더 커진다. 이미 “텍스트 하나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출력은 2~3년마다 두 배로 늘어났”으며 “점점 더 복잡해지는 명령행을 점점 더 많이 소화하느라 컴퓨터들은 쉼 없이 고군분투”1) 하고 있다. 2035년까지 생성될 데이터의 기울기는 매해 가파르게 올라간다. 2035년이 되면, 2,142 제타 바이트의 데이터가 만들어 질 전망이다. 1제타 바이트는 10²¹이다. 젠슨황의 말처럼 모든 데이터센터가 생성형 AI로 전환되면, 더 많은 데이터가 처리되고, 처리된 양만큼 더 많은 데이터가 생성될 것이다. 이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과 더 많은 데이터처리로 이어질 것이다. 더 빠르고, 더 많다는 기준은 항상 이전의 속도와 양이다. 1990년대 말 8초를 견딘 사람들은, 이제 3초도 못 견딘다. 더 빨리, 더 많이를 추구하는 우리는 이미 “빨리빨리 논리의 지옥"에 떨어져 있으며, 이 논리에는 성장 논리가 숨어있다. ‘더 빨리, 더 많이’ 뒤에 ‘생산과 소비’를 넣어도 이상하지 않다. ‘더 빨리 생산, 더 많이 생산' 과 ‘더 빨리 소비, 더 많이 소비'는 성장의 논리다. 작년보다 더 많이 생산되고 소비될 때 성장했다고 말한다. 또한 그 성장을 신화처럼 여기고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설령 성장하지 못해도 ‘성장' 단어를 절대 놓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경제가 후퇴했을 때, 언론과 정부는 후퇴를 ‘마이너스 성장' 혹은 ‘제로 성장' 이라고 불렀다. 성장을 얼마나 추구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프란츠 알트는 ‘마이너스 성장과 제로 성장'이라는 단어가 의아하다며 “성장 없이는 아무 일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3)고 비판한 바 있다. AI 등 디지털의 발전은 우리 사회를 전에 없던 성장의 길로 이끌 것처럼 보인다. 몇 시간이 걸러셔 하던 영상 편집을 명령어 몇 개로 단숨에 끝내버리니, 당연하다. 구글에서 긁고 긁어서 찾은 자료를 ChatGPT가 단숨에 찾아주니, 당연하다. 비단 영상과 자료 리서치만이 아니라, AI가 펀드도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우리를 달콤한 편리함과 효율성에 취하게해, AI와 디지털을 더욱 쓰게끔 만든다. 그리고 디지털이 더욱 확대되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장하면 더 좋은 걸 쓸 수 있어"라고 말한다. 달콤한 속삭임이다. 달콤한 건 언제나 독이다. 그 속삭임 뒤에 있는 환경 비용을 보고,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 자식들과 손자들은 우리가 연금을 80마르크나 100마르크 더 받거나 덜 받는 것을 가지고 우리를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맑은 물, 건강한 땅, 그리고 깨끗한 공기를 물려주는 것을 가지고 우리를 평가할 것이다.”3) 독일 화폐 마르크는 2002년에 폐지됐다. 프란츠 알트가 말한 자식과 손자는 지금 세대다.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지금 세대는 신규 아이폰, 새로운 넷플릭스와 유튜브 콘텐츠, 릴스, ChatGPT가 만든 효율성에 열광한다.  그레타 툰베리 등 기후세대가 등장했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인 “'기후세대'는 2025년에 이르러 디지털 업계의 전력 소비량 (전 세계 전기 생산량의 20퍼센트)과 온실가스 배출량 (전 세계 배출량의 7.5퍼센트)을 두 배 증가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될 것이다.”1) 성장만의 추구가 멈추지 않는 이상, 모든 환경 캠페인은 현상만 제거할 뿐 원인 제거를 하지 못한다. 디지털 클린 업 데이에 참여해 메일함 비우기에 만족하는 건, “타이타닉호에 고인 물을 티스푼으로 떠내는 것만큼 소용없는 일이다.”2) 물론 필요하다. 무의미하고 의무적인 댓글과 좋아요를 남기는 것 보단, 지우는 편이 더 낫고, 의무적인 댓글과 좋아요는 없는 게 낫다. “제일 중요한 건 얼마만큼의 기가바이트를 절약했느냐가 아니라 행사를 통해서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1)이다. 메일함을 비운 뒤, 신규 콘텐츠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공유하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이는 실상 아무 변화도 없는 것이다. 사고가 바뀌고, 성장만을 추구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곧 우리를 지배하는 규칙이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를 바꾼다는 것이다.”4) 이를 위해선 “사실이 신념에 영향을 주게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곤란한 질문을 많이 던져야 한다. 한두 개의 질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질문이 충분치 않으면 오히려 거짓된 안도감에 빠질 수 있다.”5)  몇 가지 질문으로 도달한 친환경 소비, 친환경 생산, 녹색 성장은 오히려 거짓된 안도감일 뿐이다. 이는 친환경과 녹색이라는 이름 하에 더 많은 소비와 생산을 만들 뿐이다. 그로인해 환경 비용이 더 커진다는 게 사실이다. 오프라인과 동일한 비판, 온라인에 해야 할 '곤란한 질문' AI로 더욱 주목받기 시작한 디지털 산업이 커질수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던 비용도 점차 커질 것이다. 그 규모는 비자림로 도로 확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다. 그린피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십중팔구 인간이라는 종에 의해 건설 된 가장 광대한 것"이다.1)  인류의 진화를 말한 유발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 인류를 호모 데우스라고 말하면서, 현대 세계가 성장을 절대선이자 절대가치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성장에 반하는 걸 이단적인 생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6) 그는 이 성장 신화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 신화가 환경 문제를 볼러오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살기 위해서는 성장이 가져올 유토피아만 바라봐선 안 된다. 함께 따라오는 어쩌면 그 보다 더 거대한 디스토피아를 함께 봐야 한다. 그 시작은 감춰진 비용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곤란한 질문이다. 유튜브 영상 조회와 넷플릭스 스트리밍 시간, SNS에 누른 좋아요에는 감춰진 비용이 존재한다. 전 세계의 비트코인 채굴 전기 소비량은 호주 전체와 맞먹는다. 또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유튜브 조회수 17억 회 당시, 전기 소비량이 297기가와트시"1)였다고 추정된다. 이는 프랑스 도시인 "트루아의 연간 전기 소비량과 같은 양"1)이다. 현재 강남스타일의 유튜브 조회수는 50억 회가 넘었다. 이 보다 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은 2021년 기준으로도 5개가 존재한다.  여기에 곤란한 질문을 해야한다. 유튜브 영상 조회수를 보고, "이 영상으로 얼마를 벌었냐"가 아니라, "이 영상의 조회수로 만들어진 환경 비용은 얼마인지", "이 영상을 계속 보여주기 위해 쓰인 전기는 얼마인지" 등 상대방이 곤란해 할 질문을 해야한다. 곤란한 질문을 할 때 디지털 산업과 성장 논리가 감춰 놓은 비용이 드러나고,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질문 할 수 없다면, 최소 높은 조회수에는 높은 환경 비용이 감춰져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디지털에 남기는 모든 흔적은 환경 비용을 가지고 있다. 이 글도, 이 글에 눌린 좋아요도, 공유도, 이 글이 올라가는 플랫폼 자체도 환경 비용을 만들고 있는 건 틀림 없는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비판해야 한다. AI가 더 빠른 속도와 편리함과 효율성을 기반으로 확산될 수록, 환경 비용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부디 내가 사용하는 디지털 산업이 어느 정도의 환경 비용을 유발하는지 생각하고, 산업과 그 기업에 환경 비용이 얼마인지 물었으면 좋겠다. 또한, 현재 산업을 이끄는 지배적 논리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에 대한 비판을 가했으면 좋겠다.  은유 작가는 “우리가 의심없이 행했던 일을 의심하는 순간 해방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을 것입니다.”7)라고 말했다. 우리가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성장과 시스템을 의심하는 순간, 변화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을 지도 모른다. *참고서적* 1)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기욤 피트롱/ 갈라파고스/ 2023) p.23, 43, 75, 105, 109, 112, 113, 139, 142, 161, 188 2) ⟪비즈니스 생태학⟫ (폴 호켄/ 에코리브르/ 2004) p.23, 122 3) ⟪생태적 경제기적⟫ (프란츠 알트/ 양문/ 2005) p.32, 33 4) ⟪업스트림⟫ (댄히스/ 웅진지식하우스/ 2021) p.140 5)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이본 쉬나드/ 라이팅하우스/ 2020) p.320 6) ⟪호모데우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21)  p.285~304 7) ⟪해방의 밤⟫ (은유/ 창비/ 2024) p.250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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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동분배 방식 상상하기 [처음 읽는 공동자원체제]
"임금 노동 외에 돈을 버는 방법이 없을까?" 성찰과성장은 '노동시장 너머 새로운 대안 제시하기'라는 주제 아래 3편 연재를 통해, 기존 노동시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노동 구조를 상상해 보고자 한다. 이 연재는 전통적인 노동시장의 구조와 내재된 문제점을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의 형태를 모색한다. 들어가며 필자는 1편(당신은 왜 일 하나요)에서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소외를 겪는다고 말했다. 노동소외는 '일'을 임금 획득을 위한 도구로만 취급하게 만든다. 이번 2편에서는 '일'을 임금 획득 수단이 아닌, 우리의 창의성을 발현하고 자아실현을 하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노동 분배 방식' 차원에서 말해보려고 한다. 여기서 노동 분배 방식이란 모든 인간이 노동을 한다고 전제하고 분야별로 얼마나 많은 인원이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는 방식을 말한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만 일단 천천히 글을 읽어보자.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일을 선택하게 되는지 생각해보자. 고등학생 시기 우리는 (부모님이 원하는)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위해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하려고 한다. 시기마다 인기 있는 직업이 다른데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의사다. 공부 꽤나 하는 친구들은 최상위권 대학 합격을 포기하고 의대에 들어간다고 한다.  ▲  대한민국 최근 10년간 대학 진학률 ⓒ 성찰과성장 올해 초 1,343명이 의대를 가기 위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합격을 포기했다(김승직, 2024). 의대 외에도 교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컴퓨터 공학자 등 수입이 안정적이거나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기 있는 업종들도 학생들 사이에서 뜨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본인의 재능, 흥미가 직업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느냐'가 기준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대학을 입학한 뒤 우리는 대학생활 2년~4년동안 취업준비를 한다. 높은 학점을 유지하고 수많은 스펙을 쌓는 그 모든 고생은 오로지 임금이 높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  오로지 ‘임금’ 만을 위해 운영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교육 ⓒ성찰과성장 왜 임금을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는가? 당연히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다. 반복적으로 말해왔듯 생산수단이 없는 우리는 임금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다. 그리고 임금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일'은 임금 획득을 위한 도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일의 내용, 일의 질이 아니라 '임금'이라는 노동 가격에 맞춰 일자리를 선택하고 기업에 선택되는 것.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노동 분배 방식이다. 자본주의의 노동 분배 방식 자본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온라인 백과사전의 내용을 인용하여 간단히 말해보자. 다음 백과사전에서는 자본주의를 "이윤의 획득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으로 정의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자본이 상품유통 과정이나 고리대금업의 과정에서 이윤을 창출해 내는 기업조직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 부가가치의 형태로 이윤을 창출해 내는 기업이 사회적 생산의 주류를 이루는 기업사회"라고 정의한다. 전자의 해석에 따르면 15~16세기 중상주의가 나타날 때부터 자본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고, 후자의 해석에 따르면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부터 자본주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후자의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말할 것이다. 직장인에게 '노동소외'를 느끼게 하는 이 구조, 사장 밑에서 일해야만 하는 구조가 산업혁명 이후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거대한 기계가 만들어지자 그것을 소유한 사장(자본가)들은 단순 노동을 할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했다. 고용된 사람들은 국가나 지주에게 토지(공용지)를 빼앗겨 생산수단을 잃거나, 대규모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과의 경쟁에서 진 수공업 장인들이었다. 그렇게 형성된 자본가-임금노동자의 고용관계는 일의 내용이 바뀌었을 뿐, 지금까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주류)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자본가-임금노동자의 관계는 노동시장에서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노동시장에서 수요자는 자본가이며, 공급자는 임금노동자이다. 그리고 노동의 가격은 임금으로 표현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노동시장에서 노동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분배된다. ▲  산업별 노동시장에서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에 의해 임금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어떤 산업에서 일 할지 결정하고 기업들은 결정된 임금에 맞춰 얼마나 고용할지 결정한다. ⓒ 성찰과성장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산업이 농업, 자동차산업, IT 3가지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하자. 각 산업은 노동시장을 따로 갖고 있다. 노동시장은 노동공급자, 노동수요자, 임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주류)경제학에서 사용하는 그래프로 표현하면 위와 같다.왜 그래프가 저렇게 그려지는지 설명해 보자면, 우선 공급자 입장에서 노동 공급자는 산업의 임금이 올라가면 그 산업에 고용되려고 노력하고, 반대로 임금이 떨어지면 임금이 더 높은 다른 산업을 찾으려고 한다.즉 임금이 높아질수록 노동공급자는 증가한다. 노동수요자인 기업은 아무도 일하려하지 않을 때 임금을 높게 제시하고, 누구나 일하려고 할 때는 임금을 낮게 제시한다(사실 경제학 이론상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수요는 좀 더 복잡하게 결정되지만, 여기서는 간편하게 가정하겠다). 즉 노동자의 공급이 적어질수록 기업들이 제시하는 임금은 높아진다. 기업들의 수요와 노동자들의 공급을 합하여 표현한 것이 위의 그래프이다. 두 그래프가 만나는 지점, 즉 서로 원하는 임금이 동일해질 때 고용관계가 발생한다.이렇게 각 산업의 노동시장에서 임금이 결정되면 사람들은 임금을 보고 어떤 산업에서 일할지 결정한다. 과거 자동차 산업이 잘 나갔을 때 농업보다 자동차 산업의 임금이 높았고, 그 결과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농업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많아졌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IT 산업의 임금이 높아지자 이제 사람들은 IT 업계에서 일하려고 한다. 물론 이들이 모두 고용되느냐는 별개이다. 기업은 자신이 지불하려는 비용에 맞추어 고용 인원을 결정한다. 그렇게 시장에서 정해진 임금에 따라 노동이 분배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노동분배 방식이다.노동시장에서 임금으로 일을 분배한다는 것에는 중요한 전제가 숨어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한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모든 사람의 노동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동일하다는 것은 어떤 '신분'인지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을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평등한' 방식으로 노동시장에서 노동을 분배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노동 분배 방법 그렇다면 자본주의 이전에는 노동이 어떻게 분배되었을까? 기본적으로는 '신분'에 따라 노동을 분배하였다. 조선시대로 돌아가보자. 조선시대에는 양인과 천민이라는 신분이 있었다. 시기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천민은 육체노동을 해야만 하는 존재였고, 양인도 양반이 아닌 이상 농사를 짓고 세를 바쳐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과거시험을 통해 관료가 된 사람과 왕은 육체노동보다는 나라를 다스리고 정책을 만드는 정신노동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권력을 가지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양반도 생겨났다. 양반은 (넓은 의미에서) 양인 중 하나지만, 재력과 정치력을 보았을 때 당시 하나의 계급이었다고 볼 수 있다(유승원, 2007). 이러한 신분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노동이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천민은 양인이 하는 일을 할 수 없고 양인은 천민이 하는 일을 할 수 없다(하지 않는다). 사람의 신분에 따라 할 수 있는 노동이 다르므로 '모든 사람의 노동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는 노동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한편, 조선시대 농민 사이에는 마을을 중심으로 협동과 협력의 문화가 있었다. 조선 후기 이앙법(모내기)이 보급된 이후로 보편적 마을 문화로 정착된 두레는 협동과 협력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동 노동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최순규, 2021). 이앙법은 모판에서 모를 따로 싹을 틔운 뒤 논에 옮겨 심는 방식인데, 한 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농민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마을 공동노동 조직인 두레를 만들었다. 또 조선 후기 마을 단위의 공동납체제가 만들어지면서 세금 납부를 위한 마을 단위 공동 경작지가 탄생하였는데, 공동 경작지를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공동 노동 조직이 필요했다(최순규, 2021). 당시에는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하여, 외부의 자원과 노동력을 끌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노동을 나누고 함께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레는 구성원 간의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였고, 구성원의 노동을 분배할 뿐만 아니라 마을 단위의 자치기구 역할도 하였다.  ▲  과거에는 신분과 공동체가 노동을 분배하였다면 지금은 노동시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성찰과성장  정리하면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는 신분과 공동체가 구성원의 노동을 분배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동 분배의 방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되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임진왜란 당시 노비들이 의병 활동으로 공을 세워 면천의 특권을 누리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후 재정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양곡을 바치는 대가로 신분을 상승해 주는 납속책을 강화하면서 면책 받은 노비의 숫자가 늘어났다.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신분을 사고 파는 지경에 이르고, 노비의 봉기가 자주 발생하면서 신분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졌다. 1886년 고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비세습제를 폐지하였고, 동학농민운동 이후 1984년 갑오개혁에서는 신분제 자체가 폐지되었다(필진네트워크, 2006).한편 새로운 문물, 특히 철도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했다.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설치한 철도는 조선사람의 노동을 착취하고 자원을 수탈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주는 교통수단이 되기도 했다.또한 1910년대 일제가 진행한 토지조사사업은 지주에게 '배타적 소유권'을 승인함으로써 지주가 농민들의 경작권(본래 땅을 경작할 수 있는 권리는 토지를 소유하는 권리와 별개로 존재하였다. 땅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거기서 경작하고 있는 농민들을 토지 소유자가 마음대로 내쫒을 수 없었다)을 무시할 수 있도록 했으며 마을 공동 토지도 개인이 소유하도록 하여 마을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조수진, 2022). 토지라는 주된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이동했다. 마을 공동체는 사라져버렸다. ▲  토지의 소유권과 경작권을 구별해 생각해보자. ⓒ성찰과성장    조선시대 신분제 폐지와 마을공동체의 축소는 새로운 노동 분배 방식을 요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폭력과 수탈, 과도한 노동 착취 방식으로 노동이 분배되었으나 해방된 후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자본주의를 선택하면서 (비록 국가가 노동을 강제 동원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노동시장이 대부분의 노동을 분배하게 되었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상상 신분제 그리고 다소 폐쇄적인 마을 공동체에 의한 노동 분배 방식은 자유롭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세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방식에서 한 가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함께 마음과 힘을 합하는 것, 바로 협동이다. 협동을 통해 일을 분배한다는 것은 동등한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할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임금이 아닌 민주적인 논의 과정을 통해 각 구성원의 일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협동'이라는 단어가 너무 구시대적이고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협동은 과거보다 더 필요한 가치가 된다. 부유한 이들은 금융과 부동산으로 더 많은 돈을 끌어모으지만, 애초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난해진다. 국가가 가난한 이들을 충분히 지원해주지 못한다면, 남은 것은 서로의 얼마 없는 자원과 능력을 모아 함께 살아가는 방법뿐이다. ▲  노동시장이 없어진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 성찰과성장  물론 우리는 협동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한다. 또한 능력주의는 가난한 자를 '실패한 자'로 낙인찍는다.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 실패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만 매몰되어 있다.하지만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위 1%가 되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SKY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고소득 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제 너무 유명해서 사례로 넣을 필요도 없다(박지원, 이정한, 2021).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주변 도움없이 홀로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면 홀로 남아도 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필자는 협동의 가치를 한번 고민해보는 것을 추천한다.한편 '협동'과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는 '자율성'이다. 자율성이란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개인의 감각. 즉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 또는 다른 사람의 통제로부터의 독립"(다음 백과사전)을 말한다. 이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직장인은 '일'에 대한 자율성을 회사에 빼앗겼다고 볼 수 있다.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싶다면 우리는 일에 대한 자율성을 되찾아와야 한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  당신의 일은 자율적인가? ⓒ 성찰과성장  '협동'과 '자율성'의 가치를 모두 추구하면서 일할 수 있다면 노동하는 시간이 더이상 지금처럼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협동을 통해 혼자 하지 못했던 일을 해내고, 상사의 명령이 아닌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를 통해 일을 나누며, 자율성을 가지고 하고 싶은 노동을 한다면 일하는 시간이 오히려 보람차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정말 그것이 가능할까? ▲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설지만, 협동조합은 국제연맹(ICA)도 존재한다. ⓒ성찰과성장  우리는 '법적으로' 그러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바로 협동조합이다. 협동조합의 모든 조합원은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와 협력을 통해 자신의 일을 결정할 수 있다. 아쉬운 부분은 협동조합은 아직 비주류이며, 일반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조합원의 협력과 협동을 통해 운영하는 방식'이 오·남용되기도 한다. 또한 협동조합은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충분히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을 달래주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그래도 희망은 있다. 임금노동자를 고용해서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주의적 방식도 처음 등장할 때부터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은 아니었다. 조금씩, 서서히 만들어졌다. 협동조합 방식이 일방적 기업 방식보다 인간의 삶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해낼 때, 협동조합이 주류가 될 수 있다. 나오며 임금을 기준으로 일을 결정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임금 중심 노동 분배' 방식에서 빠져나오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간 청년이 1~2년 만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어렵사리 입사했다가 퇴사하고 구직 포기자가 된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 ▲  니트청년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성찰과성장  필자는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노동 분배 방식에 대한 새로운 저항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 이상 임금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는 저항. 하지만 저항만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다. 저항을 넘어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앞서 '협동조합'을 제시했지만 이것은 대안의 일부일 뿐이다.다음 편에서는 협동조합을 포함해, 더 큰 대안에 대해 얘기해본다. 참고문헌 필진네트워크, "[필진] 120년 전 오늘, 노비세습제 폐지되다", 한겨레, 2006.02.06. 김창수, "[라이프&경제] 아는 만큼 달라지는 학자금 준비", 한국교육신문, 2023.05.15. 김승직, "1343명 의대 가려고 SKY 합격도 포기…최근 5년 내 최고", 2024.01.22. 유승원, "조선시대 '양반' 계급의 탄생에 대한 시론", 역사비평, 2007 최순규, "조선 후기 두레 공동체에 나타난 평화적 성격에 대한 재조명", 신학과 학문, 2(2012), 2021 조수진, "빼앗긴 커먼즈, 되찾는다면'… 마을목장으로 상상하는 미래", 제주투데이, 2022.08.02. 박지원·이정한, "강남구 '107' vs 도봉구 '2'… 부자동네 서울대 싹쓸이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세계일보, 2021.05.19.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및 편집 : 신동주, 박배민성찰과성장.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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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나는 네번의 전쟁을 겪은 27살 팔레스타인 난민입니다
나는 네번의 전쟁을 겪은 27살 팔레스타인 난민입니다 (2024-04-01) 살레 알란티시 | 팔레스타인 난민 지난 3월2일 협동조합 쩜오책방에서 열린 ‘파주 팔레스타인 평화’ 행사에 필자가 발표자로 참여해 가자지구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H6s김지하 제공 폭발의 굉음이 시작된 2008년 여름, 나는 영어시험을 치르려고 교실에 앉아 있었다. 학교의 온 사방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제야 이스라엘 점령군이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급히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틀었다. 사람이 죽어가고 건물이 파괴되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가자에서 내가 목격한 첫번째 전쟁이 시작됐다. 내 이름은 살레 알란티시, 1997년 가자시티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나온 첫날 이래 지금까지 난민으로 살고 있다. 1948년 야브나로부터 강제 이주한 내 부모님과 가족은 칸유니스, 마가지, 마지막으로 샤티까지 여러 난민 캠프를 전전해야 했다. 2022년 12월, 한국에 유학생으로 입국한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상태다. 생계를 위해 중고차 매매업에 종사하며 팔레스타인의 인권 상황을 알리는 활동가로 살아간다. 광고 광고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살아가는 가혹한 현실을 깨닫게 한 그날 이후, 가자에서 나고 자란 팔레스타인인으로 고통은 점점 커졌다. 지구의 어떤 곳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지옥과 같은 상황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75년이 넘도록 초법적인 살인과 자의적 체포와 구금에 시달려왔다. 내가 처음으로 폭격에 노출된 건 2001년, 네살 때였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나는 시장에서 산 조그만 병아리의 집을 짓고 음식과 물을 주면서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즐거움에 들떠 있었다. 해 질 무렵, 폭격이 시작되고 집이 마구 흔들렸다. 어머니가 달려와 덜 위험한 아래층 할아버지 집으로 피하라고 했다.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고, 미처 데려오지 못한 병아리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첫번째 폭격의 기억은 불행히도 마지막이 아니었다. 광고 살아오며 네번의 전쟁(2008, 2012, 2014, 2021년)을 겪은 나는 현재 스물일곱살의 난민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지붕 없는 감옥’으로 불리는 가자에서 19년 동안 가혹한 봉쇄 속에서 살아왔다. 사람이 아니고 새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는가? 한국에 오기 전에 내가 그랬다. 벽을 넘어, 어떤 곳이든 여행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새와 달리, 나는 장벽과 가시철조망에 둘러싸인 새장에 갇혀 있었다. 가자를 벗어날 수 없는 나와 200만 주민들의 고통은 이스라엘 점령군이 이집트로 통하는 육로를 차단하고, 물건의 이동을 가로막으며, 유일한 공항을 파괴하고, 지상과 해상 봉쇄를 시작한 2006년 시작됐다. 가자지구는 기본적인 생필품마저 바닥난 거대한 감옥이 되었다. 16시간이 넘게 전기가 차단되어 봉쇄가 시작된 직후엔 완전한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작은 손전등에 의지하다 배터리가 다 되면 촛불을 켜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가자의 다른 지역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동차 배터리로 등을 밝히는 것을 생각해냈다. 부엌 가스가 바닥나 나무나 종이로 불을 지펴 요리했고, 유일한 이동 수단인 자동차의 연료가 없어 주민들은 요리용 오일을 이용했다. 담수화를 위한 연료 부족으로 물을 얻기도 쉽지 않았다. 이것이 가자에서 매일 겪어야 했던 일이고, 나는 그 세세한 장면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나는 심각한 파괴와 참혹한 전쟁을 피해 안전하고 더 나은 삶을 찾으려 한국으로 왔다. 2022년 12월에 새로운 삶이 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한국에 온 지 1년이 채 안 돼, 잔혹한 전쟁이 다시 가자에서 벌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전쟁은 120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인 3만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으며, 70%가 넘는 주택과 시설이 파괴되었다. 할아버지, 삼촌, 외숙모, 사촌 그리고 많은 내 친구들이 죽임을 당한 이후,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버지 차에 떨어진 폭탄, 여동생 집을 파괴한 포탄에도 불구하고, 기적처럼 내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은 살아남았다. 전쟁은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수천명이 고향을 잃고 난민이 되어 극한의 추위에도 텐트에서 살고 있고, 먹을 것이 없어 나뭇잎과 동물 사료를 먹으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나의 민족이 겪는 고통이 끝나기를, 전쟁이 종식되기를, 내 나라가 해방되어 모두가 평화와 안전 속에 살아가길 간절히 바란다. 광고 번역 유유리 ‘한옥커즈’ 공동대표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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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를 넘어서는 힘> 공대생의 완강 후기
“지금부터 토의를 시작해주세요.”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기후 관련 강연들을 많이 다녀봤지만 내 의견을 궁금해하는 곳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정책을 만들기 위한 토의라니 이런 건 중학교 사회 수업시간 이후로 처음이었다. 전문가 강연이 진행된 후였고, 추가 자료도 제공되었지만, 정책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첫 주 토의시간에 나는 입을 떼지 못했다. 공과대학에 재학중인 저에게 이번 강좌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연령층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이 정말 많았고, 학습의 방향성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경험한 학습과정이 저에게 정말 뜻깊었기에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1강이 마무리되고 일주일 뒤, 두 번째 시간의 주제는 재생에너지였습니다. 1강보다는 친숙한 주제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습니다. 토의 주제가 전기세 인상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전기세 인상에 대한 정책 초안을 적어서 내야 했는데 결국 제한 시간을 몇 초 남기고 헛소리를 적어서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토의 진행자님께서 제가 작성한 초안을 보시고 이해가 잘 안 된다며 누가 작성한 것인지 애타게 찾으셨지만 저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우선 너무 부끄러웠고, 대답한다고 한들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움을 견디고 이겨내는 사람이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시간부터 저는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모르면서도 배우려 하지 않았던 태도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조원분들에게 궁금했던 내용을 질문하고, 함께 얘기를 하다가 결론이 나지 않을 때는 강연자님께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제에 대한 저의 견해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타인의 의견을 들을 때에도 제 의견과 비교하며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수정한 제 의견을 공유하고 발표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는 것이 없어 입도 떼지 못하고, 직접 쓴 글을 자기가 썼다고 말도 못하던 저에게 큰 발전이 있었습니다. 토의를 더 잘 하기 위해 주제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하기도 했고,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정책을 고안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번 강좌를 신청하기 전까지는 사회나 정책 분야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강좌를 수강하면서 알게 된 것은, 연구 성과를 내고 세상을 구할 기술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사용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제가 갖춰야 할 역량입니다. 이번 강좌를 통해 더 넓은 시야를 얻게 되었고, 제 진로에도 큰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지구 공동체가 공동으로 처한 위기 앞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들은 너무 작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후 우울을 겪고 있고, 기후 문제를 외면하기도 합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곳에 도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기후 위기 극복에 대한 희망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 강좌에서 저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료들을 만났고, 그 자체만으로도 저에겐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10년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데, 이제 겨우 대학교 2학년인 제가 그 10년 안에 무언가 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정책, 기술, 언론, 교육, 패션 등 각자의 분야에서 환경을 위해 힘쓰는 모든 동료들을 응원합니다.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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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연속기고] 5. 아파트 보증금 못 받는다니... 날벼락 같은 전세 사기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2023년 2월 28일,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남긴 말입니다. 그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습니다. 피해자들의 죽음, 절규, 투쟁으로 2023년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제대로 된 피해 구제와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피해 소식이 터져나오고, 기존 피해자들은 빚으로 빚을 돌려막거나 빚을 더 내서 피해주택을 떠안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4·10 총선을 앞둔 지금도 제대로 된 피해 구제 공약과 대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이에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직접 호소하고자 합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공약과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관련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답해주세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나무를 만지고 디자인하는 인테리어 목수 김섭입니다. 전라북도 군산시 소재의 산북 하나리움 시티 전세사기(공공임대아파트 신탁사기)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어떤 정치인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 아니다", "개인 간에 발생한 문제이니까 국가가 책임질 수 없다"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며 대한민국이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세사기, 정말 개인 간의 분쟁이고 "나만 아니면 되는" 문제일까요? 물론 저 역시 30대, 40대로 들어서면서 세상과 적절히 타협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어느샌가 타인의 고통을 가깝게 생각하지 못했고 애써 무시한 적도 많습니다. 이런 저를 돌이켜보면 누군가에게는 전세사기 문제도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이는 결코 아니라는 점을 절실히 호소하고 싶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우리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고, 어떤 특정 사람만의 피해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조금이나마 공감하실 수 있도록 제가 겪었던 피해일지를 낱낱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결혼 후 생애 첫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전 돈을 좀 더 모으자는 생각에 임대아파트를 알아보았습니다. 월세 보증금 2000만 원에 월 임대료 30만 원짜리 임대아파트(민간분양 공공임대)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한 1년 정도는 아무런 문제 없이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꿈을 꾸며 성실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파트 공고문이 붙었습니다. 월세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없어 주민들끼리 대책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날벼락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회의에 참석해보니 제가 한 순간에 "대항력이 없는 불법거주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꾸린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법률적인 지식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습니다.알고보니 최초 임대사업자(공공지원 민간임대아파트(구, 뉴스테이))는 임대 의무기간 5년 중 4년을 이행하다가, 임대 의무기간 1년을 남겨두고긴 자본금 없는 다수의 민간건설사가 군산 하나리움 시티 2차아파트를 승계했습니다. 이후 이들 건설사들은 신탁사에 해당 주택을 수탁했습니다.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임대인과 신탁사 간의 신탁조항을 맺은 부동산 담보신탁 계약서라는 게 있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심지어 분양사무실에서 중개인 역할을 하는 컨설팅 업체는 자세한 정보를 고지해주지 않았습니다. 업체가 설명한 내용은 임대인이 공실을 담보로 신탁사에 잠시 소유권을 넘겼고, 공실이 다 채워지고 임대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확보되면 곧 소유권을 원상회복시킬 것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는 수탁자인 신탁사의 동의가 있어야만 정상적인 임대차 계약이 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임대인이 신탁을 등기할 때 제출하는 서류인 신탁원부에 명시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즉, 저는 신탁사의 동의 없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그 계약은 무효이고 불법 거주자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서, 지식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군산시 법률공단에 자문을 구해봐도 모른다고 합니다. 신탁원부도 처음 들어봤다고 합니다. 법무사,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도 생소하다고 합니다. 법조인들도 모르는 것들을 일반 서민이 어떻게 미리 알고 피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의 임대아파트에 다섯 곳의 건설사가 있는데, 피해자들이 건설사와 소송을 벌이고, 채권기관, 주택도시보증공사, K신탁사와 M신탁사, 국토교통부와의 지리멸렬한 투쟁까지... 이제는 너무 지치고 힘이 듭니다. 그만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제 삶이 너무 피폐해졌고 생업, 가정생활, 대인관계까지 지장이 생겼습니다.그나마 저는 월세 세입자입니다. 정말 다 내려놓고 월세 보증금이 차감될 때까지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고 버티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그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아파트에는 전세 세입자도 있습니다. 고금리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생활이 빠듯하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함께 피해를 입은 주민 분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신탁사기 때문에 기초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되어 지원을 못 받으시게 된 분,홀어머니를 모시고 야간에도 일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분,다친 다리를 이끌고 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60대 어머니,최근에 출산을 한 신혼부부까지 모든 사연이 지금도 생생합니다.그 중 한 분의 눈물 어린 사연을 대신 전합니다."현재 모아놓은 돈, 전 재산이 보증금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사도 가지 못하고, 하자 투성이 아파트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습니다. 제 명의로 계약했는데, 제가 결혼하면서 타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남은 가족들은 아직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소지를 이전했다가 어떤 문제가 또 생길지 몰라서 세대주로 남아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엄마는 다른 주소지에 등록이 되어 있어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또, 집이 언제 공매로 넘어갈지 몰라 매일이 힘듭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 군산 하나리움 시티 피해자 전보경씨저희는 3년을 싸운 끝에 겨우 국토교통부로부터 공매중지 유권해석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동아줄입니다. 그러나 유권해석은 말 그대로 해석이고 법률에 명시된 사항은 아니기에 대항력 없는 피해자들은 소송에서 여전히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부디 이 문제에 정부와 국회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주시길 바랍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 문제를 "남일"이 아니라고 여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무너지고 병든 우리나라도 조금은 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마지막 한 명의 피해자라도 원상회복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고자 합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북대책위 김섭, 전보경 님 -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으며, 캠페인즈에도 중복게재하고 있습니다.
주거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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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나는 배달라이더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
나는 배달라이더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 (2022-07-06) 위대한 |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배달의민족(배민)의 실거리요금제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배민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에 대한 검증과 안전배달료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달을 시작하고 벌써 3년이 흘렀다. 27살에 시작해 지금은 계란 한판 나이다. 시작은 너무나 쉬웠다. 동네배달대행사에서 면허증 확인하고 보증금 10만원을 내고 리스 오토바이를 받아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할 때 보통 오토바이는 렌트와 리스 가운데 선택하는데, 하루 사용료가 더 저렴한데다 1년 계약기간을 채우면 내 오토바이로 가져올 수 있는 리스를 선택했다. 광고 그렇게 1년2개월을 배달대행사에서 일하다 팬데믹이 오면서, 배달의민족(배민)이나 쿠팡이츠 등에서 배달하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가 되었다. 당시는 너도나도 일반배달대행에서 더 높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던 배민, 쿠팡으로 갈아타던 때였다. 배민과 쿠팡은 기사 모집을 위해 돈을 엄청나게 쏟아붓고 있었다. 여러곳이 아닌 한곳만 배송하는 단건배달이라는 것도 장점이었다. ‘생각대로’라는 일반배달대행업체에선 평균 3~6개를 모아 배달을 했는데 쿠팡이츠와 배민은 한번에 한건 배달이니 여유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착오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실시간 배달수수료와 피크시간의 높은 수수료를 받기 위해선 정말 위험을 감수하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납득이 안 되는 상황도 여럿 있었다. 라이더들은 최초 배달수수료 단가를 보고 콜을 수락하는데, 안내받은 수수료와 배달 완료 뒤 수수료가 달랐다. 고객센터에 항의하니 (서로 다른 액수가 나온) 스크린샷을 찍어 보여달라는데, 구글 정책상 앱 내 캡처가 안 돼 입증할 수가 없었다. 고객센터 상담사는 정해진 가이드로만 안내할 뿐, 결국 손해를 보고 말아야 했다. 광고 광고 개인이 아무리 불합리하다고 외치고 싸워봤자 씨알도 안 먹힐 거라는 생각에 2020년 12월께 라이더유니온이라는 배달노조를 찾아갔다. 이때부터 플랫폼 회사들이 혁신적이라고 말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에 대항하면서 내 인생 첫 노조활동이 시작됐다. 사실 말이 좋아 인공지능이고 알고리즘이지, 어차피 사람이 하던 일을 사람이 프로그래밍해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다. 일하다 보면 ‘이게 과연 인공지능이 계산해낸 최적의 일감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상황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치동에 있는데 잠실 롯데타워 또는 잠실새내까지 가서 픽업해서 다시 대치동 아파트로 배달하라는 콜을 받은 적이 있다. 4㎞ 이상 이동해 음식물을 픽업한 뒤 다시 4㎞ 이상 되돌아와 배달하란 것인데, 저녁시간에 편도 15~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왕복 운행하라니 이게 말이 되나? 보통 콜은 내가 있는 지역 근방에서 픽업해 근방으로 배달하는 것들인데, 인공지능은 되레 이렇게 꽤 먼 거리를 오가도록 지시를 내린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인공지능 배차 방식을 지금도 하루에 몇번씩 받곤 한다. 광고 인공지능은 그냥 플랫폼 회사의 좋은 방패막이이자 우산 아닐까? 우리가 이런 문제를 제기해도 플랫폼 회사는 인공지능 뒤에 숨기 바쁘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점을 개선해야 하는데 오히려 인공지능을 내세우며 더 갑질을 한다. 영화에서나 그려지는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되는 시대를 사는 것 아닌가 느낄 때도 잦다. ‘생각대로’나 ‘바로고’ ‘부릉’ 같은 일반배달대행업체 라이더들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반 직장인처럼 출퇴근 시간을 정해 놓고 일한다. 근로기준법상 이렇게 일하면 근로자로 봐야지만, 라이더들은 아직도 프리랜서, 개인사업자일 뿐이다. 이런 문제들이 산적한데 관계 부처와 정치권 움직임은 거북이보다 느리다. 두곳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라이더의 경우 한 사업장에서 월 소득 115만원 이상을 벌거나 93시간 이상을 일해야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전속성 기준 폐지에도 2년이 걸렸고,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투쟁을 해야 했다. 선진국들은 다르다고 한다. 스페인만 보더라도 배달라이더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알고리즘을 공개하도록 한 ‘라이더법’이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배달라이더는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점을 몸으로 받아내는 직업군이다.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되면서 많은 점이 개선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자기가 일을 하는 수수료 결정권도 없을뿐더러 평점제도에 묶여 결국엔 회사가 원하는 대로 일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지만, 우리는 플랫폼 노동자이자 개인사업자고 프리랜서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도로 위에 있을 것이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며, 여러분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한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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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 3가지
안녕하세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공동위원장 이철빈입니다.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를 앞둔 시기에 대표적인 민생 문제인 ‘전세사기’, ‘주거불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논의가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입니다.  전세사기를 인지한지 2년이 지났고, 전세사기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한지 1년이 넘어가는데, 그 와중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고 오해하시는 내용 3가지에 대해 짚어보려고 합니다. 1. 전세사기는 임차인이 조금 더 꼼꼼히 살펴봤으면 피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임차인이 부주의해서, 뭘 잘 몰라서, 조금만 알아봐도 알 수 있는걸 안 알아봐서’ 사기당한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임대인-임차인 간 정보 비대칭이 심각한 상황에서 임차인이 할 수 있는건 등기부등본과 건축물대장을 보는 것 정도지만, 전세사기는 그런 서류쯤은 간단히 무시해버립니다.  제 사례가 이 오해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반례입니다. 저는 등기부등본을 여러 번 떼어보며 어떠한 압류와 근저당도 없는 보기 드문 집을 발견했어요. 심지어, 국가에서 공인한 민간임대주택으로 등록되어있어 정말 '깨끗함 그 자체인 집'이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등기부등본에 나타나지 않는 체납세액이 무려 63억원이 넘었고, 존재하는지도 알지 못했던 세금은 제 보증금보다 우선순위로 변제된다고 합니다. (이건 심지어 공인중개사도 알 수 없는 정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의 지식 수준을 가지고 계약 당시로 돌아간다면 전세사기를 피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전세사기가 화제가 된 이후에도 계약 이전 임대인의 세금 체납이나 신용도, 자기자본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임대인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계약체결 후~전입일까지 계약서를 지참하고 세무서를 가면 임대인의 체납세액을 열람할 수 있지만, 수억원대의 전세계약 중 10%인 수천만원의 계약금을 납부하며 계약서를 쓰고 난 뒤에야 체납세액을 확인할 수 있다면, 임차인은 수천만원의 계약금을 날릴 각오를 하거나 계약금을 돌려받기 위해 임대인과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여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임대인이나 공인중개사는 임차인들이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이유로 계약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을 정도로 임대인-임차인 간 정보/권한 비대칭은 여전히 심각한 편입니다.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사기 사례는 더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과연 ‘집값’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집값 대비 전세가’를 따지면 위험한 계약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집값 자체가 불확실하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공시지가, 감정가, 시세 등 여러 부동산 용어들이 있지만, 인천 미추홀구에서는 소위 ‘건축왕’이라 불리는 남 모씨 일당이 감정평가사를 고용해 신축 건물의 집값을 높게 책정한 감정평가 자료를 근거로 은행에서 최대치의 대출을 받아버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감정평가를 받아서 미추홀구 일대의 주택 시세를 조작하면, 국가나 금융권에서는 그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여 집값을 산정합니다. 미추홀구 일대에서는 감정평가사, 공인중개사, 관리업체 모두가 같은 일당이었기 때문에 한 지역 전체의 시세를 조작하고, 수천명의 피해자를 속이는 것도 가능했어요. 그럼 등기부등본을 아무리 확인해도 소용없습니다. ‘집값이 3억원, 선순위 근저당 1억 2천, 전세보증금 8천만원이라 집값 대비 근저당+전세보증금이 70% 이하니까 안전하다. 여기 동네 시세가 모두 그렇다. 못 믿겠으면, 내가 이행각서를 써주겠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듣고 나면 누구라도 혹할 겁니다. 그런데, 실제 경매가 시작되면 집값이라고 믿었던 가격의 절반인 1억 5천만원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보증금의 대부분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세계약을 했는데 이런 일이 없다면 그건 운이 정말 좋은 경우입니다. 이런 질문 이전에 피해자를 손가락질하는 우리 사회와 정부에 되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 제대로 가르쳐주기나 했는지’ 말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수업 열심히 듣는 ‘모범생’이었고, 대학교육까지 잘 마쳤지만, 단 한번도 부동산 계약하는 방법이나 등기부등본/건축물대장을 읽는 방법을 교육받은 적이 없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정규 교육과정에서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캠페이너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나요?) 우리 사회는 입시 과정에서 어떻게 국영수 성적을 올릴지, 대학을 잘 갈지 쥐어짜듯 교육하지만, 정작 살아갈 때 정말 필요한 부동산·금융 등의 교육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해도 주변에 부동산 계약을 도와줄 가족이나 어른, 친구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사적인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은 여전히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피해자들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정규 교과에 편성해서 의무교육을 합시다! 2. 작년에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다 해결된 거 아닌가? 단언컨대, 하나도 해결된게 없습니다. 피해자 인정, 피해자 지원, 보증금 회수, 가해자 처벌, 예방 및 관리감독 대책 어느 것 하나 좋은 점수를 줄 부분이 없어요. 오죽 답답하면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무급으로 봉사할 테니 법이나 정책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은 피해자 인정요건을 규정하고, 피해자로 인정되는 경우 경공매 지원, 금융지원, 세제 지원, 주거안정 등의 대책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작년 4월에 전세사기 때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피해자들이 연이어 나오자, 정부·여당이 부랴부랴 특별법안을 발의했고, 야당과 피해자들의 요구안을 일부 수용한 형태로 정리되어 6월 1일부터 시행되었는데요. 특별법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임대인의 사기 의도를 임차인이 직접 입증해야하는 등 엄격한 피해자 요건을 규정하고, 보증금을 돌려주는 대책이 아니라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전세대출을 다른 대출로 막거나, 경매를 통해 피해주택을 직접 낙찰받도록 유도하는 등의 지원대책이 대다수여서 많은 피해자들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인지한 다음부터 그 주택에 거주하는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그리고 학업·직장·신혼생활 등 잠깐 머무르려고 들어온 전셋집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주택을 직접 매입한다는건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게다가, 상당수 피해주택은 임대인이 공용관리비를 미납해서 단전·단수 위험에 처하거나, 승강기·소방시설 관리 미흡, 건물 내 누수·균열 등의 시설 상태가 불량해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뜩이나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힘든 피해자에게 이런 주택을 떠안으라고 떠미는건 너무 가혹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나마 집을 떠안는 것도 공짜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과도한 대출을 끌어와야하고, 그 채무는 수십년간 상환하거나 개인회생 등의 채무조정을 고민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여기 피해자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특별법에 문제가 많다고 아무리 외쳐봐도 듣지도,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공허하고, 문제가 많은 보여주기식 대책만을 남발하는데도 피해자 의견을 수렴하거나, 협력하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네요. 그 결과가 2024년 3월 21일 기준 1만 4천명의 피해자 숫자, LH의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1건, 정부·여당의 전세사기 피해자대책위 공식면담 0건, 최근 전세사기 대책 공개질의 답변촉구 캠페인 무응답입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있으니까 전세사기 가해자 일당을 엄중하게 처벌하고, 전세사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관리감독 대책을 제대로 만들고 있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2천세대 이상의 피해가구, 약 3천억원에 육박하는 전세사기를 저지른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씨는 1심에서 고작 15년형(이게 법정최고형입니다.)을 선고받고, 공범들은 10년 이하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나마 전국적으로 매우 유명한 사건이고, 정황이 너무 뚜렷해서 기존보다 중형을 선고받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KBS 보도에 따르면 전세사기 가해자의 절반 가량은 실형을 면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전세사기에 대한 엄벌과 예방은 아직까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언론보도)  지금도 전세사기의 대표적인 매커니즘인 소유권 이전(동시진행) 방법은 원천 차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전입신고의 효력은 다음날 0시에 발생하고, 매매계약의 효력은 등기 즉시 발생하는 점을 악용해서 전세보증금 잔금을 받은 뒤, 같은 날에 기존 임대인이 명의만 빌려준 바지사장에게 집을 팔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보증금 반환의무는 합법적으로 신규 임대인(바지사장)에게 넘어가죠. 아직도 이 허점을 차단하지 않고 있어서 여전히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고, 이외에도 신탁사기 같은 위험한 수법도 여전히 개선된게 없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하는데, 소 잃고 외양간도 불타길 바라는 것 같아서 너무 걱정이 됩니다. 3.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딱한 건 알겠는데, 세금까지 써야하는 일인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국가에서 보증금을 일부라도 돌려주고, 시간을 두고 비용을 회수해주는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소송, 경매 등의 법적 절차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개별적으로 감당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너무 가혹합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주의 권리를 박탈당해 고통받는 피해자가 전국에 수만명입니다.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필요한 돈은 먼저 국가에서 쓰고, 그 비용은 천천히 회수하는 것은 국가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2023년 대한민국의 실질 GDP는 2천조원에 달하며, 2024년 정부예산은 650조원이 넘습니다. GDP의 0.1% 수준, 정부예산의 0.3% 수준이라도 쓰면 전세사기 문제는 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심상정 의원실은 피해자 3만명, 보증금 절반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계산하면 약 2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며, 그 재원은 은행의 기여금으로 마련하자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언론보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70% 가량은 2030 청년들입니다. 앞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갈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결혼도, 출산도, 어쩌면 삶의 희망도 내버릴지 모릅니다. 저출생 인구감소의 시대, 한 명 한 명이 귀한 시대인데 수만명의 피해자들을 살리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장기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입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국가가 지난 15년간 전세사기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조장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가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세금을 투입해야하는 당위성이 있습니다. 진보-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세입자를 위한 장기적이고 일관적인 주거 정책을 펼치는 대신 전세대출을 확대(2008)하고, 보증보험을 도입(2013)하고, 민간임대사업자 제도를 활성화(2017)하여 전세사기의 토양을 제공한 것은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정부에서 제공한 전세 관련 제도는 전세사기 일당이 전세사기 판을 설계할 때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정부나 지자체, 금융권, 공인중개사, 경찰 그 어디서도 이걸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전세사기 일당은 악의성을 가졌음에도 건실한 임대사업자로 등록하고 적절한 관리감독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느슨한 보증보험 가입기준에 맞춰 UP감정을 받아 시세를 조작합니다. 그리고, 임차인이 전세가의 80%까지 전세대출을 받아 전세계약을 성사시키는 방식으로 임차인을 유인합니다. 이 거래는 태생적으로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은 깡통전세이며, 전세보증금으로만 집을 수백채, 수천채씩 대량매집하는 무자본 갭투기로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유권 이전(동시진행) 수법을 통해 명의를 대여해준 바지사장에게 합법적으로 임대인 지위를 이전해버리면, 최초에 보증금을 받은 임대인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과정에서 임차인에게만 모든 책임이 전가되었고, 임차인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알아보면 모두가 민사 사건으로만 다뤘지, 형사 사건으로 취급되지도 않은게 불과 1,2년 전 우리 사회였습니다. 2020년 전후로 강서구 빌라왕, 세모녀 전세사기 등이 불거졌음에도 더딘 수사와 미흡한 제도개선으로 추가적인 전세사기를 막지 않았던 것은 과연 국가의 책임이 아닐까요? 국가가 그렇게 방치한 결과, 현재의 전세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서 국민의 세금이 조 단위로 지출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을 취급하는 HUG(주택도시보증공사)는 작년에 전세사기로 인한 대위변제가 급증하며 5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정부의 출자를 받는 방식으로 손실을 메우고 있어요. (언론보도) HUG에는 세금 지원해도 되고, 피해자에게 세금 지원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외침에는 무심한 정부는 작년 말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으로 심화된 부동산 PF 부실에는 85조원에 달하는 정책자금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언론보도) 부동산 호황기에는 사회환원을 일절 하지 않은 건설사 및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와 투자실패에는 수십조원의 지원을 하면서 피해자들에게는 결단코 지원하지 않겠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들어가는 세금이 혈세낭비라면, HUG나 부동산 PF 부실에 들어가는 세금은 얼마나 큰 혈세낭비인가요? 형평성의 문제, 가장 기본적인 사람을 살리는 문제에서 우선순위여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지원하는 세금은 정말로 한 푼도 회수하지 못하는 수조원의 혈세 낭비일까요?  우리 곁의 가족, 이웃, 친구 등 평범한 시민들의 주거와 일상을 지키는데 우리의 세금을 최우선적으로 쓰는 결단이 필요하고, 우리는 그걸 국가에 계속 요구해야 합니다.
주거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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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보는 AI
목소리를 보는 AI by. 💂죠셉 농인들의 언어인 ‘수어(sign language)’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저는 2년 전쯤 우연히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를 보았네>라는 책을 만나 수어의 세계에 매료되었고, 한국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어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가 몇 가지 있단 걸 알게 됐는데요. 예를 들어: 가령 한국 수어의 경우 청인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를 단순히 손으로 옮긴 게 아닙니다. 한국 수어가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제2 법정 공용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수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언어체계이자 문화입니다. 다만 청인들의 음성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 언어'인 것이죠. (농인은 수어로 생각하고 꿈도 꿉니다.) 청인이 음성이나 문자 대신 갑자기 손을 사용해 소통해야 한다면 무척 낯설겠죠? 즉, 농인들에게 ‘한국어’는 노력해서 배워야 하는 낯선 개념의 제2외국어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 공용 수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어와 영어가 다른 것처럼 한국 수어와 미국 수어도 완전히 다른 언어입니다. 이름에 손 수(手)자가 들어갔지만, 손의 움직임은 수어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가령 똑같은 손 제스쳐를 취해도 얼굴로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수어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AI 이야기를 하는 레터에서 왠 수어 이야기냐고요? 작년 2월, 신경다양성을 주제로 한 워크샵에서 한국계 수어 아티스트인 크리스틴 선 킴 (Christine Sun Kim)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발표 이후 질의응답 순서 때 제가 했던 질문이 생각납니다. "농인 커뮤니티는 LLM(거대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한 AI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당시 챗GPT의 등장으로 챗봇들이 막 화제가 되기 시작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답을 듣지는 못했는데요. 각종 거대 언어 모델들이 앞다퉈 상상을 초월하는 성과를 이루는 걸 목격한 지난 1년이었지만, 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답보 상태인 것 같습니다. 일단 Deaf community, sign language, AI 등의 키워드로 구글 검색을 해봐도 주류 언론사는 물론 일반 블로그 포함, 흥미로운 글이 몇 없습니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관심도 적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는 뜻일 텐데요. 제가 위에 나열한 수어의 특징들이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수어를 비디오로 캡쳐한 후 LLM을 통해 문자 언어로 번역해 내는 과정에 대한 몇몇 연구 결과가 존재하지만, 프로토타입 수준으로 아직 상용화와는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수어는 청인 입장에서 보면 ‘비언어’에 속하는 많은 요소 (손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 필요할 경우 바디 랭귀지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이죠. 더구나 국가마다 다른 수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데이터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웹상의 데이터들을 긁어모아 활용하는 거대 언어 모델의 특성상 영어 외 언어가 상대적으로 소외 될 수밖에 없죠. 언어 중에도 소수에 속하는 전세계 300여 개의 수어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기술적 어려움과는 별개로, 챗봇 사용에 대한 농인 커뮤니티 내부의 우려가 존재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LLM을 기반으로 하는 챗봇 사용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 측면에서 농인들에게 분명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지만,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기술에 의존할 수록 수어 사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죠. 농인 커뮤니티에게 수어는 단순 소통의 수단을 넘어 그들 고유의 문화와 인권 투쟁의 역사를 포함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 세계 대부분 농인 커뮤니티가 오랜 기간 사회적응이라는 목적하에 청인의 언어를 강요 받은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인데요. 챗봇 사용 및 도입을 ‘생존을 위한 필수 역량’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분위기가 보편화될 수록, 조금 다른 맥락에서 과거 획일화의 역사가 반복되는 건 아닐까요? 구글의 AI 윤리 리서쳐였던 팀닛 게브루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상에 흩어져있는 텍스트들을 학습한 거대언어모델은 자연스럽게 특권층의 언어를 대표합니다. 생업이 바쁘다거나 장애 등의 이유로 온라인보다 현실 세계에 더 많이 속해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온라인상에 흔적이 적고, 그 결과로 학습에서 배제되기 때문이죠. 오늘 저의 레터는 농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달했지만, 챗GPT와 같은 거대 언어 모델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기술 발전의 뒤편에서 소실되는 다양성에 대해 계속 예의주시하며 그에 대한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 그건 우리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소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갈수록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AI 모델이 어떤 식으로 개발되는지, 그 과정에서 가치판단이 필요할 때 누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우리는 더욱 높은 투명성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스케일이 커진다면 지능이 등장할까? [Part. 1] by 🧙‍♂️텍스 🧙‍♂️ 안녕하세요. AI 윤리 레터에 필진으로 새로 합류한 텍스(Tex) 입니다. 인공지능 연구자로 컴퓨터 비전과 기계학습을 주로 연구하고 있고,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근 10여 년 인공지능 발전을 지켜본 연구자로 요즘 분위기는 참 새삼스럽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도 미디어는 시끄러웠지만 사회에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챗GPT와 Stable Diffusion의 등장 이후로 인공지능에 대한 분위기가 크게 바뀐 것이 느껴집니다. 과거 인공지능 커뮤니티는 엄청 개방적인 연구 커뮤니티였습니다. 인터넷상의 인공지능 논문은 원래부터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고 실험을 위한 데이터와 코드 또한 공개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공지능 커뮤니티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학술대회에서 다루는 주제 또한 상업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로 편중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AI 윤리 레터의 공간을 빌어 연구자 혹은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인공지능 분야의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대규모의 모델, 데이터, 그리고 컴퓨터 자원이 있다면 범용 인공지능에 이를 수 있다는 ‘오픈AI의 스케일에 대한 믿음’은 어느 순간 법칙처럼 미디어에 회자됩니다. 이러한 가설에 기반 해서 많은 이야기가 돌아다닙니다. 인공지능 학계에서 스케일에 대한 믿음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살펴보고 이후 최근 동향에 대해 분석해 보려고 합니다. 글이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그 ‘믿음’이 생긴 과정을 서술하고 이후 관련 이야기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겠습니다. 이미 실패했던 스케일 업 (Scale up) 대규모 인공신경망 모델이 등장하기에 앞서 태초에 대규모 데이터가 있었습니다. 스탠포드의 페이페이 리 교수는 2009년 이미지넷 데이터셋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이미지넷 챌린지를 시작했습니다. 이미지넷 챌린지는 총 1,281,167개의 학습 이미지 이용해서 1,000개의 물체 범주를 예측하는 물체 인식 알고리즘을 만드는 대회였습니다. 2011년까지는 기존 연구자들은 인간의 눈에서 영감을 얻은 알고리즘을 고도화시켜 가며 물체 인식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 혜성처럼 등장한 AlexNet은 기존 기법을 사용한 2등과의 압도적인 차이로 1등을 달성했습니다. AlexNet은 당시 기준으론 굉장히 거대한 모델이었습니다. 신경망의 매개변수(parameters) 개수만 해도 6,230만 개 (62.3M)였고, 파일 크기로 환산하면 237.7 MB에 이르렀습니다. AlexNet 연구진은 CPU 대비 훨씬 빠른 행렬 연산 속도를 자랑했던 엔비디아 GPU 2개를 사용해 AlexNet 학습을 진행했습니다. AlexNet이 엔비디아 GPU에서 학습되었다는 사실이 엔비디아의 현 모습을 절반 정도는 설명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아마 암호화폐가 설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2년 AlexNet이 이미지넷 챌린지 1위를 한 이후 인공신경망은 ‘딥러닝’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합니다. AlexNet은 7개의 인공신경망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후 등장한 연구들은 레이어를 더욱 깊게 쌓아가며 높은 성능을 달성하였고, ‘사람보다 나은’ 성능을 달성하기에 이릅니다. 사람을 넘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물체 인식 알고리즘은 ‘약한 인공지능’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1,202개의 레이어까지 쌓아본 연구는 더 많은 레이어가 언제나 좋은 성능을 이끄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후 ‘딥’하게 레이어를 쌓는 연구는 주춤하게 되었고, 그 대신 인공신경망 구조를 탐색하고 다른 학습 기법을 연구하는 쪽으로 관심이 옮겨가게 됩니다. 어찌 보면 이미 모델의 스케일업은 한번 실패했었습니다. 약한 인공지능을 모으면 범용 인공지능이 될 수 있을까? 2014~2016년에 이르러 딥러닝 알고리즘은 기존에 풀지 못하던 많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구글 번역에 탑재된 기계번역 알고리즘의 성능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물체 인식의 성능은 사람의 성능을 넘게 되었으며, 2016년에서는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예상치 못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는 특정 작업만 수행하는 ‘약한 인공지능’으로 여겨졌습니다. 이후 생각의 확장은 자연스럽습니다. 여러 작업을 동시에 잘 푸는 알고리즘을 만들면 그것이 ‘강한’ 인공지능이 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죠. 학계에서는 이를 다중 작업 학습 (multi-task learning) 이라 불렀습니다. 이 패러다임의 가장 유명한 사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이고 또 하나는 오픈AI의 GPT입니다. 초기의 오토파일럿은 자율주행을 위한 여러 인식 문제를 하나의 인공신경망으로 풀었습니다. 과거 테슬라 오토파일럿을 이끌었던 안드레 카파시 (페이페이 리 교수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는 오토파일럿에서 사용하는 다중 작업이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발표 자료에 나와 있듯, 자율주행을 위한 작업의 종류는 사전에 정의가 되어 있습니다. 한편 오픈AI의 GPT는 테슬라의 오토파일럿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GPT는 ‘언어로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작업’이라는 관점으로 언어 모델에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임의의 언어로 작업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요즘 챗GPT에게 입력하는 프롬프트가 바로 이러한 임의의 언어로 정의된 작업의 한 예입니다. 이를 통해 인터넷의 수많은 텍스트 데이터를 모두 학습 데이터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오픈AI는 GPT를 구성하는 인공신경망의 크기와 데이터 규모를 조금씩 키워나갔습니다. 인공신경망의 크기를 살펴보면, GPT1(117M)은 446MB, GPT2(1.5B)는 5.6GB 그리고 대망의 GPT3(175B)는 651.9GB(!)에 이르렀습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왜 오픈AI가 스케일을 키우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75B보다 더 큰 모델을 학습시키면 파란색 선을 상회하는 성능에 이르지 않겠느냐는 기대였겠죠. 그런데 그다음으로 나온 것은 더 큰 텍스트 모델이 아니라 텍스트와 이미지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멀티모달 (multi-modal) 형태의 GPT4였습니다. 모델 스케일을 더욱더 키우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데이터의 스케일을 키워줘야 합니다. AlexNet 등장 이전에 대규모 데이터셋인 이미지넷이 존재했던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만약 GPT3를 위해 인터넷에 공개된 모든 텍스트를 이미 사용했다면, 데이터셋을 더 키우기 위해 남은 선택지는 ‘다른 형태의 데이터’를 추가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다루는 멀티모달 데이터의 종류는 앞으로도 계속 범위를 확장해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데이터 스케일을 키우기 위한 가장 쉬운 해법이기 때문이죠.  GPT4 기술보고서에는 모델 크기와 데이터 규모, 컴퓨팅 자원 중 어느 것도 공개되지 않았기에 스케일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단서는 있습니다. 바로 저자 숫자입니다. 2018년 GPT1은 4명, 2019년 GPT2는 6명인데 2020년 GPT3 논문의 저자 숫자는 31명으로 급격히 늘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GPT4 테크니컬 리포트에서는 거의 전사 직원이 아닐까 싶은 280명(!)이 됩니다. 자본을 대규모로 투자해 이룬 GPT4는 과거의 인공지능 연구와 비교한다면 보다 범용 인공지능에 가까워졌다는 표현을 조심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챗GPT 서비스에서 보이는 GPT의 모습은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조만간 해결된다는 환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우리는 스케일업을 통해 범용 인공지능을 구현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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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유권자 네트워크 - 지겨운 절망을 넘어, 내일을 위한 투표를!
저는 전세사기 피해자입니다. 또한, 청년 유권자이기도 합니다. 올 1분기 저는 줄곧 답답하고 우울했습니다. 좁게는 전세사기 문제해결에 별 뜻이 없어보이는 정부와 정치권 때문이기도 했지만, 넓게는 선거가 다가오는데 정작 청년은 배제되고 있다는 인상 때문이었습니다. 응원하던 청년 정치인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공천에서 떨어졌구요. 나이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에서 빛과 소금같은 역할을 해온 예비후보들도 응원했는데, 대부분은 정식 후보로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2030보다 60대 이상이 더 많은 첫번째 선거라고 하고, 청년정치인이 역대 최저 인원만 국회에 입성할 것이 유력한데요. 그만큼 저와 같은 청년 유권자들은 누가 내 마음, 우리 세대를 대변해 목소리를 내줄지 도무지 가망이 보이지 않아 답답합니다.  그럼에도 정치가 할 수 있는 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 때문에 도무지 가만히 있을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청년 당사자들과 함께 힘을 합쳐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모였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이태원참사 유가족,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을 지켜봐온 해병대 예비역, 서이초 사건을 겪은 예비교사, R&D 예산 삭감을 걱정하는 이공계 대학생 등이 모여 2030 유권자 네트워크를 만들고 전국 대학가에 대자보를 붙여서 투표하자, 목소리 내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선거가 권력과 명예의 발판이겠지만, 일상의 안전을 빼앗기고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는 유일하게 외칠수 있는 창구일 겁니다. 우리 모두 지겨운 절망을 넘어, 내일을 위해 투표합시다! 2030 유권자 네트워크를 제안 취지문 지금의 무능한 정치는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전세사기로 전 재산을 잃은 청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희생당한 청년, 급류에서 구명조끼도 없이 수색작업을 하다 사망한 해병대도 청년, 빵을 만들다 기계에 끼어 죽은 노동자도 청년, 교실에서 생을 포기한 교사도 모두 청년입니다. 청년들의 죽음 앞에 책임있는 자들은 방관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청년의 죽음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총선이 2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치권은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청년들의 죽음 앞에 책임있는 반성과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약속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총선에서 청년은 실종되었습니다. 선거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없고, 관심 가는 뉴스도 없습니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정치를 모르지 않습니다.  어느 세대보다도 더 높은 투표율이 증명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치의 무능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무당층’이 되길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치’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현실을 바꿀 수단이 정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 전에는 청년의 나라를 만들겠다더니 당선 후 온갖 지원책을 없애고, 예산을 축소한 것도 정치였습니다.  R&D 예산 삭감으로 젊은 연구자들과 나라의 미래를 팔아먹은 것도 정치였고, 선거철이 되니 “장학금 주겠다”며 손 내미는 뻔뻔함도 정치입니다.  대한민국 정치가 이정도 수준은 아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슬픔과 좌절을 딛고 일어나 싸웁시다. 우리의 무기는 투표와 참여입니다. 지금의 현실에 실망한 청년의 목소리를 모아 총선에 대응합시다. 윤석열 정권의 2030 세대 피해자들이 동 세대 청년들에게 각자도생을 멈추고, 함께 지금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호소합니다.  윤석열 정권의 가장 큰 피해자인 청년들은 함께 힘을 모아 대한민국이라는 지옥을 바꿔낼 것입니다. 지겨운 절망을 넘어, 내일을 위해 투표합시다.  2024년 3월 28일 2030 유권자네트워크 참가자 일동 /// P.S.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에서 여러 대학에 붙은 인증샷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대학에서, 여러 학생 분들이 함께해주고 있고 기사도 나오고 있네요.  [기사모음] <3월 21일> [한겨레] “내일을 위해 투표”…동생 숨진 이태원 골목에서 대자보 쓰다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33306.html  [경향신문] “다녀왔다는 이 말, 왜 못 듣게 된 건지…이날이 잊히지 않도록 투표해 주세요”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212237055#c2b  [뉴시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지겨운 절망을 넘어 내일을 위해 투표합시다" [뉴시스Pic]https://news.zum.com/articles/89512221  [오마이뉴스] "지겨운 절망을 넘어서 내일에 투표" 이태원 골목에서 쓰여진 공개대자보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_w.aspx?CNTN_CD=A0003012839  [경향신문] (논설) 언니의 대자보https://m.khan.co.kr/opinion/yeojeok/article/202403211852001    <3월 24일>  [경향신문] 청년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치…바꿔주세요 (1면)https://www.khan.co.kr/politics/election/article/202403242032015  [경향신문] “지겨운 절망을 넘기 위해 ‘대자보’를 붙입니다”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241738001#c2b    <3월 25일> [경향신문] (사설) 청년 없는 총선, “죽음 내몰지 말라”는 대자보 응답하라https://m.khan.co.kr/opinion/editorial/article/202403251933001#c2b    <3월 27일>  [경향신문] 과학 꿈 다시 펼칠 수 있게, 가장 쉬운 방법은 투표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272149035  [중도일보] KAIST 물리학과 채동주 씨 "걱정 없이 과학기술 연구할 수 있는 세상, 가장 쉽고 빠른 방법 투표“https://m.joongdo.co.kr/view.php?key=20240327010008832  [디트news24] “과학 꿈꾸는 세상 위해 투표하자” 카이스트에 걸린 대자보https://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768997  <3월 28일> [한겨레] ‘투표’ 대자보에 화답 대자보…“나도 그 물살에 휩쓸릴 수 있었다” (10면)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34087.html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ㅏhttps://omn.kr/2810k
전태일재단-조선일보 노동시장 이중구조 공동기획, 한석호 소명서
전태일재단-조선일보 노동시장 이중구조 공동기획, 한석호 소명서 - 2024년 3월 26일, 전태일재단 전 사무총장 한석호   소명에 들어가며   3월5일 조선일보 창간 104주년 특집호 1면 탑 “12 대 88, 쪼개진 노동시장을 바꿔야 한다”부터 3월22일 “‘나눔과 상생’ 전태일 정신… 이제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할 차례”까지 10회차 특집은 전태일재단 이름을 앞에 걸고 진행한 기획입니다. 사안 성격상, 공동기획에 앞서 재단 안팎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이사회에서 승인하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회는 과정과 절차의 책임을 물어 한석호 사무총장 사퇴 권고를 의결했습니다. 수용했습니다.   마무리와 짐 정리로 출근하는 길, 해방촌 위 남산자락 개나리가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눈을 찬찬히 돌렸습니다. 산수유도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다시 눈을 돌렸습니다. 뽀리뱅이, 지칭개, 원추리, 망초 등 내 친구들이 곧 꽃 피울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 했습니다. 무릎 구부리고 봤습니다. 누구도 잘 보려 하지 않고 짓밟히기만 하는 보도블록 틈새의 개미자리가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나의 영원한 친구들, 고마워. 일 다 정리하고 힘내서 너희와 어깨동무하러 곧 산으로 들로 찾아갈게, 인사하며 환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사회적 파장과 충격을 예상했습니다. 보수와 진보, 노와 사를 북극과 적도의 환경과 거리만큼 가른 대한민국입니다. 편부터 따지고, 한 몸통의 다른 쪽 날개를 청산 대상으로 삼는 진영논리의 나라입니다. 관중까지 검투사에 이입되어 상대진영을 죽이려 덤비는 살벌한 검투장정치의 대한민국입니다. 지지 후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빠가 아들을 때리고 형제자매가 의절한 뒤 SNS에 자랑하기도 하는 삭막한 진영의 나라입니다. 그 험악한 풍토에서 대표적 진보단체 전태일재단과 대표적 보수매체 조선일보의 공동기획은 상상 이상의 파장과 충격을 불렀습니다.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에 응한 이유를 소명하겠습니다.   1. 전태일을 국민의 바다에서 맘껏 헤엄치게 해야 한다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아동노동의 시절, 장시간노동에 배곯는 열서너 살 여공들에게 버스비 30원을 털어 풀빵을 사주고 평화시장에서 쌍문동 판잣집까지 13키로를 허청허청 걷고 뛰다 야간통금에 걸려 파출소에서 쪼그려 잔 따스한 청년 전태일, 실 먼지 풀풀 날리는 공장에서 폐병에 걸려 피 토하는 미싱사를 돕다 근로기준법에 눈뜬 각성한 청년노동자 전태일,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시다·미싱사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려 동료 재단사를 모아 바보회·삼동회를 만들고 진정서 써서 노동청에 청원하고 설문지 돌려 기자에게 배포하고 대자보를 붙이며 집회를 개최한 불굴의 전태일, 150년 전 뉴래너크공장의 실험으로 사회적경제의 아버지가 된 로버트 오언처럼 노동의 처우를 개선하려 노·사가 상생하며 시장에서 제품으로 인정받고 세금도 제대로 납부하는 모범업체 태일피복을 구상한 뒤 창업자금을 마련코자 눈 한쪽을 팔려던 창의적·헌신적 기획자 전태일,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기도한 독실한 기독교인 전태일,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를 우선 생각한 아름다운 전태일의 진면목, 낮은 곳에 임한 전태일의 사랑과 나눔과 연대와 실천의 정신이 국민의 바다로 두루두루 퍼져 나가는 희망의 꿈을 꾸었습니다.   다들 말합니다. 전태일을 노조만의 전태일로 가져가면 안 된다, 전태일을 진영에 가둬도 안 된다. 그 말 듣고 그렇게 하려고 하면 화들짝 놀랍니다. 누구하고는 안 된다, 어떤 매체하고는 안 된다, 어떤 정부하고는 안 된다, 진영의 그물망 안에 머물라 합니다. 추상적 사고는 진영 너머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현실은 진영을 벗어나지 말라 만류합니다. 전태일로 국한된 현상이 아닙니다. 같은 정책도 이 정부면 찬성 저 정부면 반대하는 현상, 같은 대안도 기업의 제안이냐 노조의 제안이냐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뒤집는 현상, 같은 논조 기사도 이 매체면 용인 저 매체면 비난하는 현상, 대한민국을 옥죄는 극단의 진영논리가 만든 현상입니다. 그물망이 빽빽하고 억세져 가기만 하는 진영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전태일과 전태일정신도 진영 그물망을 넘나들 수 없었습니다.   전쟁 폐허에서 국내총생산 세계 10위대 3만불 시대를 일궈낸 나라, 세계 청년이 선망하는 나라, 앞으로 계속 도약해야 할 대한민국은 진보와 중도와 보수가 함께 만들었고 노와 사와 각계각층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보수 국민, 중도 국민, 진보 국민, 함께 만들었고 또 함께 만들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새는 좌·우·꼬리 날개에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국가와 국민인 몸통은 훨훨 비상할 수 없습니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전태일과 전태일정신이 대한민국 구석구석 살아 숨 쉬게 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습니다. 노조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진영의 그물망으로도 불가능합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의 논리와 토론하고 설득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전태일과 진영 너머 국민이 손잡게 하고 싶었습니다. 진영 너머 국민이 전태일을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습니다. 꼭, 꼭 그렇게 만들어, 위로만 향하는 대한민국의 시각점을 아래로 향하게 해서 나눔과 연대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게 하고 싶었습니다. 진보·중도·보수 가릴 것 없이 전태일과 어울려서 함께 만들어가는 대한민국 재설계 기획을 간절하게 꿈꾸고 있었습니다. 공동기획에 응한 이유입니다.   2.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더 방치하면 나라가 절단 난다는 마음, 절박했습니다 3만불의 나라입니다. 하나의 계급이라는 노동이 8만불, 9만불, 10만불, 11만불로도 부족하다면서 계속 오르려고만 하는 상위 노동과 2만불, 3만불에 머물면서 허덕이는 하위 노동으로 분단됐습니다. 상층 노동과 하층 노동의 격차가 5배에서 6배까지 벌어졌습니다. 노동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재벌의 일상과 달리, 노동의 일상은 상층과 하층이 서로 매일 바라보며 비교합니다. 그 상황에서 30여년에 걸쳐 누적되며 고착된 노동의 분단은 임금 격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층 노동과 하층 노동의 얼굴과 피부색, 음식과 의복과 차량 종류까지 갈라놓았습니다. 육아, 교육, 결혼, 출산, 휴식, 여행, 건강, 노후까지 일생의 모든 삶을 갈라놓았습니다. 하층 노동이 상층 노동과의 격차를 매일 느끼며 평생 안고 갑니다. 재벌과의 격차 때문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목격하고 비교되는 노동의 격차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자존심 상해합니다. 사태가 그렇게 심각한데 문제 해결의 주체인 노·사·정은 저마다 상대방 탓만 하면서 먼 산 불구경입니다. 평등주의가 태생 철학인 진보도 소홀합니다. 온정주의가 태생 철학인 보수도 소홀합니다.   10년 전부터였습니다. 노동의 분단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노조 바깥의 더 어려운 노동과 손잡는 사회연대전략을 노동운동 전면에 띄웠습니다. 대한민국 소득 기준, 상층에 진입한 조합원이 기금을 조성해 노조 바깥의 하위 노동을 지원하자 주장했습니다. 하위 임금은 두텁게 올리고 상위 임금은 얇게 올리는 하후상박 임금연대를 주장했습니다. 당시 노동운동 주류는 기업만 양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10만불 상위 노동은 2만불 하위 노동에 양보하면 안 된다 했습니다. 재벌 일가의 주식과 배당금을 포함해, 잘 나가는 아이돌·연예인·체육인 등이 밀집한 최상위1%의 소득을 0으로 만드는 양보를 해도 노동의 격차를 줄일 수 없는데, 다음상위9%의 주축인 상층 노동은 양보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상태에서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운동의 역린을 건드린 이단이었습니다. 숱한 비난과 욕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사회연대기금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에서 징계성 공개사과까지 했습니다.   무릎 꺾지 않았습니다. 성과가 나왔습니다. 징계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노총 공공부문 5개 산별 노사의 공공상생연대기금, 금융 노사의 금융산업공익재단, 사무금융 노사의 우분투재단이 잇달아 출범했습니다. 금속노조·보건의료노조·화섬식품노조 등은 사회연대기금을 적립해 노조 바깥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지하철노조는 청년 고용을 늘리려고 조합원 1인당 1천만원 양보라는 파격의 고용연대를 실행했습니다. 현대차 노사는 하청 기본급을 원청보다 더 인상하는 하후상박 임금연대를 실험했습니다.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회, 제화산업 노사 상생협의회가 출범했습니다. 따스하고 시원한 사회연대의 바람이 노·사 현장에 확산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상생임금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민주노총은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사회적 파장이 있었습니다. 노조 바깥 노동의 처우 개선이라는 일념으로 돌멩이 맞았습니다. 논쟁 없던 상생임금위원회는 호봉·직무급 임금체계는 이중화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점, 노사정 각각 부분적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이중구조 문제의 종합적 분석과 종합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 그러면서 순서대로 하나하나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합의하고, 마쳤습니다.   사회가 감당할 만큼의 적절한 경쟁은 대한민국의 활력입니다. 경쟁의 한계치를 넘으면 경쟁 도피 현상이 벌어집니다. 1차와 2차 노동시장 격차가 미국보다 더 심각한 대한민국 이중화는 한계치를 훌쩍 넘었습니다. 청년이 경쟁에서 도피합니다. 충격적 저출산의 핵심 원인입니다. 아이와 부모를 피폐하게 만들면서 한계치를 넘은 교육경쟁의 근저에도 노동시장 이중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이중화는 유럽처럼 1차 노동시장 괜찮은 일자리와 2차 노동시장 기초일자리 간 격차를 개선해야 하는 난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이중화는 유럽과 달리 2차 노동시장 일자리를 나쁜 노동으로 인식하며 기피하는 현상도 풀어야 하는 난제입니다. 모두가 머리 맞대고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20년에서 30년 걸리는 난제입니다. 그래도 꼭 해야 합니다. 미래세대가 더 크게 고통당하는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현재가 있기까지, 노사정과 사회 구성원 각각 공7 과3의 역할을 했습니다. 이중화는 정치의 산업전략, 기업의 경영전략, 노조의 임금전략 등에서 각각의 과3이 뒤엉켜 만든 합작품입니다. 보수·중도·진보 정치도 더 책임지고, 기업도 노조도 사회적 책임을 더 나누어야 풀 수 있습니다. 이중화는 노·사 측면만으로는 풀 수 없습니다. 노·노와 사·사, 노·상, 세대, 남녀, 생산자와 소비자 갈등까지 얽힌 난제입니다. 울타리 외부와의 갈등이 필수적 요소인 단결만으로도 풀 수 없습니다. 울타리 너머와의 협력을 무한대로 넓힐 수 있는 연대의 가치도 필요합니다. 시각점을 위가 아닌 아래에 둔 전태일정신이 절실합니다.   청춘 다 바친 민주노총에서 사회연대기금 주장을 이유로 징계당할 때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소득을 재벌과 아이돌과 스포츠인 등 최상위1%가 14.7퍼센트(14.7배) 점유하고, 상층 노동이 주 구성원인 다음상위9%가 31.8퍼센트(3.53배) 점유하고, 중위40%는 37,5퍼센트(0.93), 하위50%는 16퍼센트(0.32) 점유하는 황당한 불평등의 나라입니다. 그러한 사태를 20~30년에 걸쳐 최상위1%는 10퍼센트로, 다음상위9%는 20퍼센트로 낮춰, 아래 국민 90%의 점유율을 높이자는 주장에 대해, 공산당 위세가 서슬 퍼런 중국조차 임금은 정부가 강제로 삭감할 수 없는 것인데, 소득 점유율 낮추자는 주장을 임금 삭감이라 왜곡하면서 노동 분단 문제를 회피하는 민주노총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최저임금위의 올해 최저임금 논의에서 공익위원의 9920원 제안이 1만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9860원을 결정하게 만든 민주노총의 몽니를 지켜보며 무척 슬펐습니다. 회계 공시를 거부할 경우 조합원에게 미칠 불이익 연간 3~5만원 세액공제는 아까워 공시를 수용한 민주노총이 매몰차게 걷어찬 그 시급 60원은 연간으로 계산하면 150,480원입니다. 최저임금 노동자에게 그 금액은 상층 노동과 비교하면 50만원 60만원 가치가 있는 소중한 피땀입니다. 민주노총에 절망했습니다. 그만 멈추고 싶었습니다.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낮은 곳의 노동을 품고 실천하고 나누고 구상하다 온몸 던져 산화한 전태일의 불에 타 절규하는 아픈 손을 차마 놓을 수 없었습니다. 사회연대전략을 민주노총이 거부해도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 지부, 보건의료노조, 부산교통공사노조 등으로 확산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노총은 임금인상분 중 1.5%를 사회연대기금으로 조성하자고 했습니다. 사회연대는 제3노조로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사회연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노사에 희망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동의 상하 분단과 격차는 노동 당사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노동 가족의 삶의 모습도 서로 다른 격차로 쪼갰습니다. 천진한 아이의 이유식과 밥과 간식, 옷과 신발, 학용품과 장난감, 놀이터와 여행경험까지 쪼개 버렸습니다. 그 가족의 가슴앓이와 한탄을 켜켜이 쌓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비애감에 젖어 들게 하는 노동시장 이중화 문제를 대한민국 전면에 띄우고 싶었습니다. 관련 당사자가 모두 머리 맞대고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한국판 베버리지보고서를 만들어 사회적 대타협을 하는 대한민국 노·사·정과 대한민국 보수·중도·진보를 간절하게 희망했습니다.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에 응한 이유입니다.   3. 기초노동의 애환, 그리고 전태일과 이소선의 삶을 떠올렸습니다 따듯한 찬성과 응원이 답지했고, 성마른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글에 못 담을 욕설도 묵묵히 감수하겠습니다.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향해 던지는 돌팔매입니다. 과거 한때, 조중동 폐간의 언소주 회원으로 조선일보 폐간 피켓도 들어 봤기에, 어떤 심정이고 어떤 생각일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전태일은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오로지 어린 여공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일념만으로 물불 가리지 않다 산화한 전태일입니다. 공동기획에 응했을 것입니다. 진영과 매체를 가리지 않았던 전태일입니다.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존경 표현을 사용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당시에는 박정희 정부 관제언론이던 경향신문 기자에 매달려 “골방에서 하루 16시간 노동” 기사를 싣도록 했고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문제를 사회화했습니다. 재단사 친구 최종인은 손목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그 기사가 나온 관제신문을 대량으로 사서 평화시장 곳곳에 뿌렸습니다.   아들 대신 41년간 낮은 곳에 임하다 아들 곁으로 떠난 이소선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안팎의 성마른 비난을 무릅쓰고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민주노총 그물망을 걷어내고 한국노총을 품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껏 전태일재단과의 연대를 거부하는 일부 흐름이 민주노총 안팎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강퍅한 진영논리에 강한 심적 압박을 받고 숙고하기는 했겠지만, 아들처럼 제안을 받았을 것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선일보와의 공동기획 제안에 응했냐, 물어 왔습니다. 조선일보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태일재단에 공동기획을 제안한 것 같냐, 물어 오기도 했습니다. 보수로 전향했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숱하게 천명했듯, 안정적 임금인상도, 고용안정도, 기업복지도, 노조 보호도 없는 2차 노동시장의 기초노동과 어울리며 기획하고 조직하고 지원하고 개선하는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41년 전 어느 한밤, 건설노동자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 고위 공무원을 꿈꾸던 대학생의 눈물을 쏟아내게 해서 운동의 삶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만든 전태일의 절반이라도 채우다 죽는 것이 목표입니다. 노동시장 이중화와 기초노동의 처우를 개선할 수만 있다면, 진영과 노사의 그물망에 개의치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진보 외투를 벗은 이유입니다. 조선일보에서 “변화를 만드는 것은 강력한 투쟁도, 시장 논리도, 자본가나 정부만의 몫도 아니다” 했습니다. 강력한 투쟁과 시장 논리를 같은 반열로 엮어 놓았습니다. 노조 투쟁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조선일보가 말입니다. “‘나눔과 상생’ 전태일 정신… 이제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할 차례”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노조로 한정하지 않은 채, 전태일 정신을 사회와 기업이 응답해야 한다, 했습니다. 조선일보에서 말입니다. 가슴이 벅찼습니다. 전태일과 함께 평화시장 어린 여공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감옥에도 갔고 아내와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봉제업에 복귀해 큰돈을 벌다가 어느 날 불현듯 이렇게 계속 돈 벌면 전태일 친구로서 전태일 이름에 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업을 접은 전태일 친구 최종인은 살아생전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나올 줄 상상도 못 했다며 기뻐했습니다.   전태일재단도 조선일보도 노조도 기업도 정당도 손가락입니다. 전태일과 이소선도 손가락입니다. 달은 노동과 국민의 삶이고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입니다. 누구도 전태일의 열 손가락 가운데 한 손가락만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전태일재단은 종합적으로, 민주노총·한국노총·제3노조는 각자 방식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보수·중도·진보도 제 방식대로, 각계각층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단 분신은 빼고, 실천과 나눔과 상생 등등 전태일의 열 손가락 가운데 마음에 드는 손가락을 알아서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나에게 무릎 굽히지 않겠습니다. 기초노동의 눈물을 닦을 수만 있다면, 무릎 꿇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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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연속기고] 4.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자 진짜 지옥이 시작됐다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2023년 2월 28일,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남긴 말입니다. 그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습니다. 피해자들의 죽음, 절규, 투쟁으로 2023년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제대로 된 피해 구제와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피해 소식이 터져나오고, 기존 피해자들은 빚으로 빚을 돌려막거나 빚을 더 내서 피해주택을 떠안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4·10 총선을 앞둔 지금도 제대로 된 피해 구제 공약과 대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이에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직접 호소하고자 합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공약과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관련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답해주세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만든 다가구 주택, 정부가 책임져라 우리는 다가구 주택 전세사기 피해자들입니다. 다가구주택은 어느날 갑자기 땅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1990년 정부 지침 시행으로 생겨난 주거 형태입니다. 다가구 주택은 단독주택과 같은 기준으로 관리되지만 등기 구분이 되지 않고 1주택임에도 19명의 임차인과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괴기스러운 형태로 방치되었습니다.(주택 내 가구수 2~19가구로 제한) 그럼에도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법과 행정시스템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습니다.다가구 주택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평범하지만 어느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부터 취업 후까지 아끼고 참으며 악착 같이 저축해서 모은 돈 5천만 원에 1억 원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구했습니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리고 안정적인 거주 공간에서 다음 미래를 꿈꾸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전세사기라는 절망이 미래를 빼앗고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그의 임대인은 대전에서 무자본으로 다가구 주택을 건축하고 공인중개사와 합심한 전세사기 일당이었습니다. 이러한 청년이 무수히 많습니다. 특히 대전은 1인 가구와 다가구 주택의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전세사기 피해자의 80% 이상이 20∼30대로 대학생·사회초년생·신혼부부에 해당합니다. 전세사기는 한 명의 청년이 아닌 수많은 청년 세대의 미래를 빼앗는 사회적 재난입니다.정부는 이와 관련해 분명한 과실과 책임이 있습니다. 각 지역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대책위원회에서 추산하기로 대전과 경산의 다가구 전세사기 피해주택 수는 고작 350채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피해를 입은 사람은 3300명이 넘습니다. 주택 하나에 10배에 가까운 피해자를 양산하는 다가구 주택, 정말 문제가 없습니까?건축물대장 및 등기부등본에서 열람할 수 있는 확정일자 부여일, 임차물 사용의 대가로서 지급되는 금전, 그 밖의 물건을 의미하는 차임과 보증금 내역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임대인의 동의 없이는 계약 체결 전 임차 보증금의 합계를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열람 가능 서류도 법적인 효력이 없고 정보의 진위 여부도 여전히 불투명합니다.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어도 길거리로 내몰려형사 고소, 내용 증명, 임차권 등기까지. 처음 들어보는 법적 절차를 간신히 끝내고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다가구 주택 전세사기 피해자는 여전히 일상을 꿈꾸기 어렵습니다.다가구 주택의 특성상 선순위 세입자가 이의를 신청할 경우 경매 유예가 어렵고, 주택 규모를 고려했을 때 우선 매수권을 통한 셀프 낙찰 자체도 쉽지 않아 기본적인 대책부터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다가구 주택 피해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고작 전세대출 빚을 또 다시 빚으로 해결하라는 것뿐입니다. 다가구 주택 피해자들은 피해주택이 경매에 노출되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보증금을 하나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길거리로 쫓겨나게 됩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경매가 진행되어 집단 퇴거해야 하는 다가구주택 피해자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민생을 위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지옥 속에 살아가는 국민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발생 원인은 피해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다가구 주택을 비롯하여 전세사기가 발생하기 쉬운 토양을 만들어낸 것은 분명히 정부입니다. 지난 정부의 잘못이라는 변명은 이제 그만 듣고 싶습니다. 어느 정부에서 시작해서 부동산 대책이 어떻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전세사기가 발생했다, 그런 핑계와 회피는 그만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정부에서 시작이 되었든 잘못된 부분을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바른 방향으로 바로 잡고자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잘못된 정책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오로지 국민이고, 청년이고, 이들의 미래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합의를 운운하며 피해자 구제를 반대하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실 건설업체를 구제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습니까? 아니면 애초에 사회적 합의는 여당의 승인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다가구 주택 피해자들이 주거의 안정을 누리고 보증금의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전세사기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합니다.총선에서 어떤 당이 승리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어떠하고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강구할 그런 정치인과 대통령이 필요할 뿐입니다. 전세사기 피해 구제방안과 현실적인 예방책, 시급히 마련하여야 합니다.이에, 우리는 정부와 여당에 대해 아래와 같이 엄중히 요구합니다.하나, 다가구 주택 관리에 부실했던 법과 시스템을 인정하고 사과하라!하나, 전세사기 특별법의 사각지대인 다가구 주택에 대한 지원책을 적극 마련하라!하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대전대책위원회 장선훈, 조원희 -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으며, 캠페인즈에도 중복게재하고 있습니다.
주거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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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1편 '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와 이어 지는 콘텐츠 입니다. 위인설관(爲人設官) : 사람을 위해 벼슬 자리를 일부러 만듦. 3월 15일 주주총회의 안건,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 유한양행은 지난 2월 14일,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냈다. 한 개 안건이 논란이 됐다. 정관 변경 건이었다. 현재 유한양행 정관 33조 2항을 변경한다는 것이다. 기존 정관 제33조 2항에는 “이사회 결의로 이사 중에서,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이를 “이사회 결의로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무, 상무를 선임할 수 있다.”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회장과 부회장직 신설이었다. 이는 곧 이사회에서 결정만 하면, 회장, 부회장을 선임할 수 있다는 말이다. 28년 전에 없어진 회장직을 다시 살리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고, 이것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직전 회장은 연만희 유한양행 고문이었고, 당시엔 정관에 회장・부회장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28년이 지나서 다시 기한조차 명시되지 않은 회장?부회장직 신설하는 저의에 대한 의문 속에서, 이는 수년 간 착실하게 준비된 된 것이라는 목소리기 나왔다. 그 시작은 2022년, 유일링 고(故)유일한 박사 손녀의 유한재단 이사 퇴출이었다. 쫓겨난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유은영), 견제와 균형 붕괴의 초석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은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이자,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1969년 친아들을 유한양행 경영으로부터 손 떼게 했으며,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겼다.  자식들에게 유한양행 주식을 1주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주식을 통한 경영권 소유를 방지했다. 또한, 모든 주식을 교육기금에 기부하며 자식들은 이 기금 관리에만 힘쓰게 했다. 이 기금은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며, 그의 자식들은 이곳 경영에만 참여할 수 있다.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 유한양행 대주주라는 점에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은 유한양행 결정에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다.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는 이유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선 유한재단 이사진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사결정은 그들 몫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 1월 유일링 이사는 유한재단 이사로 재선임 되지 않았다. 임기 만료가 이유였다. 당시 유일링 이사를 포함해 4명의 임기가 종료 시점이었지만, 유일링 이사만 재선임되지 않았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스스로를 기업가가 아닌 교육자라고 말했던 만큼, 유한재단은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차원에서 그의 유일한 손녀인 유일링 이사가 이사직에 재선임되지 않은 건 당시 큰 논란이었다. 또한,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그의 후손이 유한재단에 남아야 한다는 시각이 강했다. 당시 유한재단 이사진들은 “유일링 이사가 미국에 있어서 재단 업무를 보기 어렵다" 고 말했다. 해임된 유한재단의 이시진은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현재 유한재단 이사진 중 유한양행 전・현직 관계자는 5명 이상이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이정희(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 송두영(전 유한양행 재무팀 이사), 김성섭(전 유한크로록스 대표이사・사장), 정수길(전 쉬랑프라우 대표이사・사장). 유한크로록스는 유한양행의 가족회사이며, 쉬랑프라우는 유한양행의 합작 회사다. 유한재단 이사진이 전, 현직 유한양행 관계자와 가족회사, 합작회사 인원들로 채워졌다는 면에서 고(故)유일한 박사가 말했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무너진 것과 진배없다. 유한양행 경영진과 이사회를 견제하기 위해선, 대주주가 견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대주주인 유한재단에 유한양행과의 특수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5조 5항에서는 공익 법인의 현역 이사진 중 특수관계인을 5분의 1 이상 둘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단을 통한 기업 지배 방지를 위해서다. 특수관계인인 유일링 이사가 2022년 축출되고, 유한양행 관계자로 채워졌다. 유한재단의 유한양행 견제 능력에 의문이 드는 이유다. 한편, 유일링 이사는 유한학원 이사진에서도 해임될 뻔했다. 2023년의 일이다. 당시, 유한학원 이사진 중 유한공고 이사진들이 막아줘서 가까스로 이사직을 유지한 바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 지우기 논란과 이사진의 기업 사유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유한양행 임직원  “유일한 박사님은 경영과 소유를 분리했고, 사회환원을 말했다.”  “회장 부회장 직제 신설로, 기업 사유화 안 돼" 주주 소집 공지가 올라온 2월 14일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서는 유한양행 직원들의 게시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현 경영진들이 유한양행을 사유화하려고 한다는 비판이었다. 직원들은 유한양행 경영진의 비리와 경영 판단 오류, 이정희 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의 채용 비리와 부하 직원 전 부인과 재혼하는 등 도덕성 문제들을 알리고, 부디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반대 투표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한양행 임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12년 8개월이다. 남성은 13년 9개월, 여성은 9년 7개월이다. 이는 국내 제약 바이오사 평균 근속연수가 5.25년인 것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또한, 국내 200대 기업 평균 근속연수인 9.45년보다도 높은 수치다. 근속연수 측면에서 직원들의 애사심이 높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또한, 트럭시위는 전체 임직원 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300명이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이루어진 시위였다. 540만 원가량을 모아서 진행한 시위다. 높은 근속연수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시위까지 벌인다는 면에서, 유한양행 직원들이 회장・부회장직 신설에 큰 우려를 하고 있고, 큰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한양행 주주총회, 95% 찬성으로 회장・부회장직 신설 통과 3월 15일 열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직접 한국에 방문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오늘 하고 싶은 말은 할아버지의 뜻과 정신이야말로 회사가 나아가야 할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모든 건 이를 따라 얼마나 정직하고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도움이 되는가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의 반대 의사 표명에도 의결권 행사자 68% 중 95%의 찬성으로 모든 안건은 원안대로 통과됐다. 회장, 부회장직이 신설되고, 이사회는 회장과 부회장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회장, 부회장에 누가 임명되느냐가 벌써 주목받고 있다. 이정희와 조욱제 이사 모두 자신들은 “안 한다. 명예를 건다.”고 말했다. 회장을 안 할 거면, 이사회 의장은 왜 계속 하나.  “이미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장은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으로 총 6년 임기를 마치고, 돌연 기타비상무이사로 등재해 3년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 전문경영인 6년 이후 회사를 떠나는 것이 관행인 가운데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3월 15일 주주총회에서 또다시 3년 연임을 안건으로 올려 통과시켰다. 합계 12년을 이사회 의장 자리에 있는 셈이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유한양행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이미 일감 몰아주기와 채용비리가 있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이사・사장이 자기 아들을 유한양행 관계사에 취업 압력을 넣었고, 또한, 유한양행 주력 제품 판매 대리점 대표의 아들을 유한양행 2022년 공채에 뽑으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었다. 해당 내용은 국민신문고에 접수되어 드러났지만, 조욱제 대표는 “지시한 바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반면, 압력을 받았다는 A씨는 “조 대표의 압력이 없었다면, 학점 2점대 사람을 뽑지도 않는다.”고 반박했다. 유한양행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유력 병원장이나 정부 관계자 자녀, 기관장 자녀 등이 채용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며 “대주주인 유한재단이 ‘경영과 소유를 분리한다’는 원칙으로 주주권 행사를 사실상 하지 않는 바람에 경영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모습에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대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 ‘유한을 사랑하는 시민사회 인사 대표'들은 “유한양행은 국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기업 문화의 상징”이라며 “(유한양행 경영진은) 유일한 박사의 창립 이념과 기업가 정신을 잊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람을 신뢰한 고(故)유일한 박사 고(故)유일한 박사는 “한 사람을 믿고 영입하면 그 사람과 거의 일생 동안 함께 일할 생각을 가지는 편이었다.” “그래서 창업 시기의 직원들이 20년, 30년 오랫동안 유한양행을 지키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정희 현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은 1978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15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조욱제 현 유한양행 대표는 1987년에 유한양행에 입사했고, 2021년에  대표이사・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정희 의장은 45년 동안 유한양행에 재직했고, 조욱제 대표는 37년간 재직했다. 모두 신입부터 시작해 전문경영인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구축했던, 체제의 증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더더욱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들고 추구했던 정신을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의혹들과 경영 행태 어디에 유일한 정신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생명은 신용이다.”** 라고 말했다. 현 이정희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 대표는 직원들에게 신용을 잃었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립성이다. 이사회 독립성은 경영진을 객관적으로 감시 할 수 있는가다. 독립성 없는 지배구조는 한 두 사람이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만든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만든 유한양행의 지배구조는 경영과 소유의 분리했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했다. 한두 사람의 결정으로 기업이 움직이고,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국내 최초로 종업원주주제를 채택한 것도, 국민에게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공개를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기업의 주인은 누구이냐는 물음에, 고(故)유일한 박사의 답변은 “국민과 종업원”이었다. 이 체제를 위해 균형과 견제를 제도화한 것이, 그의 유산이다. 이 유산을 유지를 위해 그에 걸맞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했고, 그 때문에 자식에게도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 것이다. Ⓒ 한량,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유한양행 본사 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선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라,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현재 유한양행 이사진의 행동은 위인설관(爲人設官)이다. 당장 필요도 없는 회장과 부회장직을 추후 필요하니까 만든다는 논리는 오히려 의심만 키울 뿐이다. 오히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유한양행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위관택인(爲官擇人) 해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로고로 버드나무를 택했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모진 행태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끈질기고, 무성하게 대성하기 바란다는 뜻이 담겨있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이 정말 무성하게 대성했으면 좋겠다. Ⓒ 한량, 유한대학교 내에 있던 버드나무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289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김윤섭, 최상후/ 유한양행) p.23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 위관택인(爲官擇人) : 관직을 위하여 인재를 택함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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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 창업 이야기, 유일한 정신에 대해
국내 ‘유일한 정신’ 지난 3월 15일, 유한양행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렸다. 여느 때보다 이목이 쏠렸다. 직원들은 주주총회 안건에 반발해 트럭시위를 벌였고, 유한양행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미국에서 직접와서 주주총회 안건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주주총회는 주식회사가 1년에 한 번 주주들에게 회사 주요 사항들을 의결하고,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자리다. 배당금, 이사회 이사 선임, 최고경영자(CEO) 선임 등 주요 사항들을 결정한다. 금번 주주총회에서는 유한양행 정관변경이 핵심이었다. 이 정관 변경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었던, 경영과 소유의 분리 원칙을 위반하는 초석이라는 의심이 나온다. 유한양행 직원들의 주주총회 반대 트럭시위에는 “유일한 박사님께서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 일가족 그 누구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으셨다.”고 쓰여있었다. 유한양행 이사진이 그 뜻을 파괴하고, 필요도 없는 사람을 임명하기 위해 직책을 만들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한양행, 창업자의 뜻을 계승하기에 존경받는 기업 유한양행은 고(故)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제약회사다. 22022년 기준 매출액 약 1조 8천 억원, 영업이익 약 360억 원으로 국내 제약회사 1위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제약회사 부문에 20년 연속 1위로 선정됐다. 유한양행이 존경받는 이유는 국내 1위 제약회사여서가 아니다. 창업자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계승하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경영 철학은 이익이 아닌, 사회에 있었다. 때문에 그를 사회사업가라고 부른다. 고(故)유일한 박사와 같은 뜻은 현재까지도 국내에 전혀 없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생전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라며 “이윤의 추구는 기업 성장을 위한 필수 선행조건이지만 기업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자신의 신념과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신념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교육기금에 기부한 것으로 실천했다. 그는 생전 재산 중 양복 세 벌과 구두 두 켤레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1963년 9월에는 연세대학교에 1만 2천 주를 기부했고, 5천 주는 보건장학회에 기부했다.**  또한, “유한양행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발전을 위한 기금에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대로 14만 941주의 주식은 교육기금에 기부됐으며, 현재는 ‘유한재단’과 ‘학교법인 유한학원’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교육에 힘쓴 이유는,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실제 그는 생전 자신을 경영인보다 교육가라고 말했다. “그가 외국으로 나가서 입국할 때 출입국 신청서 직업란에는 언제나 ‘Educator(교육자)’라는 영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세 학교는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을 통해 교육, 장학,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있다. 유한재단은 목적 사업비 90%가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에서 나온다. 유한재단은 2022년 유한양행 주식 배당금으로 총 43억 8천 4백 5십 9만 7천 원을 받았고, 배당금으로 장학사업과 사회복지사업, 교육사업, 재해구호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유한대학교 전경 Ⓒ 한량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은 개인 것이 아니라, 종업원과 국민의 것" 장학사업에만 몰두했다면, 고(故)유일한 박사가 여전히 존경받고, 직원들이 나서서 트럭시위까지 벌이 진 않을 것이다. 그는 유한양행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과 종업원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한양행의 첫  주식상장 시에 이를 실천했다. 유한양행은 주식상장으로 “창업 이래 10년간 이어져 온 기업의 개인 경영이 막을 내리고 새롭게 법인체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한국 상황에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가장 획기적인 건 주식상장의 가격과 배분에 있었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 주주제'를 실시했다. 종업원 주주제란, 종업원이 회사 주식을 특별한 목적이나 방법으로 소유하는 제도를 말한다. 종업원의 애사심을 증진이 주목적이었고, 최근에는 근로자의 재산형성으로 촉진제의 하나로 인식된다. 실제 국내 대기업은 종업원에게 회사 주식을 상여금으로 주기도 한다. 고(故)유일한 박사는 ‘종업원 주주제’를 통해, 회사 주인이 개인이 아님을 말했다. 이를 위해 “종업원들에게도 액면가 10퍼센트 정도의 가격으로 주식을 골고루 분배해주었다.”** 주주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인식된다. 그 차원에서 보더라도, 회사 주식을 종업원들에게 값싸게 분배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한 개인이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종업원 주주들과 함께 경영한다는 의미다. 한편, 고(故)유일한 박사는 국민 역시 싼 값에 유한양행 주식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주식상장 당시 시장가의 7분의 1 수준으로 주식 가격을 책정했다. 연만희 전 유한양행 고문은 고(故)유일한 박사와 주식 가격 책정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연만희 고문은 유일한 박사가 당시 주식 가격을 100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는 당시 시장 가격인 600~7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이라며 만류했다. 그러자 유일한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큰소리로) 내가 돈 벌려고 주식을 상장하는 줄 알아요? 상장하는 이유는 유한이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것이기도 하기에 공개하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겁니까? 당장 여기서 나가시오.”*** 유한양행 주식 상장은 당시 우리나라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에도 합리적으로 경영되고, 민주적으로 경영된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사회는 어디를 보아도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에 유일한 가사는 이러한 사회 풍조에 도전하기라도 하듯 유한양행이 합리적으로 경영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식 공개를 결정"**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가 정치권의 불법자금을 지원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고, 그에 따라 강력한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또한, 세무조사에서 장부가 너무 깨끗하고, 세금을 정직하게 낸 것만 증명되어 모범 납세자로 도리어 상을 받은 건 더욱 유명하다. 현재 유한양행의 주요 대주주로는 유한재단, 국민연금, 유한양행, 유한학원이 있다. 유한재단 15.7%, 국민연금 10.1%, 유한양행 8.5%, 유한학원 7.7%이다. 회사가 개인 소유와 사익 추구의 도구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체계화하기 위해 고(故)유일한 박사는 일가족이 유한양행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했고, 이를 위해 유한양행 주식 단 1주도 자식들에게 남기지 않았다. 1969년에는 자신의 큰아들마저도 유한양행에서 내보냈다. 현재도 유한양행 이사진 중 그의 후손은 없다. 경영권도 전문경영인에게 양도했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국내에서 드문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 기업 소유와 경영의 분리 강조, 전문경영인체제 도입 유일한 박사는 제 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조권순 당시 전무에게 넘겼다. 회사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념을 완성한 것이다. 출처 : ⟪나라 사랑의 참 기업인⟫ (유한양행/ 1995) p.335 고(故)유일한 박사는 제44대 주주총회에서 회사 경영권을 당시 전무였던 조권순에게 양도했다. 이때부터 회사 내부에서 승진을 거듭해 사장직에 오르는 건 유한양행의 관행이 됐다. 또한, 그 임기조차 3년 중임제로 최대 6년까지만 할 수 있다. 그렇게 임기를 마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는 게 관행이었다. 그것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을 이어가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고(故)유일한 박사의 유산을 사유화하는 유한양행 이사진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은 기업이 개인의 사익 추구 도구가 아니며, 기업의 이익이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시스템 마련이 고(故)유일한 박사의 업적이다. 이 업적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정반대되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었다는 점이 그가 존경받는 이유다. 경영과 소유의 분리는 우리나라 지배구조에서 더욱 보기 드물다. 오히려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더욱 강하다. 정치권 역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비합리적” 이라며 소유와 경영의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이런데, 독재정권 당시 모든 걸 추진했던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고(故)유일한 박사의 뜻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3월 15일에 진행된 유한양행 주주총회를 자세히 살펴보며, 유일한 정신이 어떻게 무너져 갔는지 살펴볼 것이다. *2편 '창업자의 뜻을 지우는, 유한양행 이사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 ⟪위대한 선각자 유일한 박사⟫ (김윤섭, 최상후/ (주)유한양행) p.23, 25 ** ⟪유일한 평전⟫ (조성기/ 작은씨앗/ 2005) p.237, 308, 309, 312, 314 *** ⟪유일한을 기억하다⟫ (민석기/ 중앙북스/ 2015) p.44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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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혁신당 돌풍의 이유 총정리
26일 조국혁신당이 선거 비용 마련을 위해 만든 ‘파란 불꽃 펀드’에 54분 만에 200억 원이 모였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 투표에서 지지율 2위(27.7%)에 올라섰습니다. (국민의미래는 29.8%로 1위, 더불어민주연합은 20.1%로 3위) 이대로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투표로 이어진다면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로 14석 이상 확보할 수 있는 건데요. 총선 판세를 뒤흔들고 있는 ‘조국혁신당 돌풍’.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볼까요? 조국혁신당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3월 3일 창당한 신생 정당입니다. 조국혁신당은 ‘검찰독재정권 조기 종식’을 목표로 내세웠습니다. 조국 당 대표는 문재인 정권 때 끝내지 못한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국혁신당에는 문재인 정부 때 중용됐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좌천된 ‘반윤석열’ 검사들이 연이어 합류했습니다. 최근 조국혁신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당시 검찰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시하며 공수처에 윤 대통령을 고발했습니다. 조국 사태 조국 대표는 2019년 8월 법무부 장관에 취임했지만, 자녀 입시 비리 논란이 불거져 취임 35일 만에 사퇴했습니다. 조국 대표는 조국혁신당 창당대회에서 “지난 5년간 무간지옥”에 갇혀있었다며 과도한 검찰 수사를 비판했습니다. 조국 대표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는 2022년 1월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확정받았고 작년 9월 가석방됐습니다. 조국 대표는 지난 2월 8일 항소심에서 자녀 입시 비리,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을 무마시킨 혐의 등으로 징역 2년, 추징금 600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누가 지지하는 거야? 조국혁신당의 지지층은 ‘진보’, ‘친문·호남‘, ‘4050 세대’라는 뚜렷한 특징을 보입니다. 기존 민주당 지지층이 쪼개져 조국혁신당으로 옮겨갔다는 분석이 주류입니다.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지난달 29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지역구 선거 지지율은 33%인 반면, 민주당 위성정당(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선거 지지율은 23%에 그쳤습니다. 이 간극은 조국혁신당의 지지율(9%)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조국혁신당으로 옮겨간 민주당 지지층 ✅ ‘더 센 것’을 원하는 강성 지지층 조국혁신당은 창당 모토부터 ‘윤석열 정부 심판’, ‘검찰독재정권 종식’을 강하게 내세웠습니다.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원하는 강성 지지층이 중도층 표심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민주당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조국혁신당에 이끌렸다는 겁니다. ✅ 이재명 대표에 실망한 지지층 조국혁신당 돌풍은 “이재명의 민주당을 향한 경고”라는 말도 나옵니다. 최근 민주당의 ‘비명횡사’ 공천 파동에 실망한 민주당 지지층이 조국혁신당으로 돌아섰다는 건데요. 특히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인 호남 지역에서 이런 현상이 강하게 관측됩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찍은 사람 중 이번 비례대표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을 찍겠다는 응답은 40%, 더불어민주연합을 찍겠다는 응답은 36%입니다. ✅ 더불어민주연합이 불만인 지지층 진보당과 연대하는 데 비판적인 민주당 전통 지지층이 민주당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대신 조국혁신당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연합의 일부 의석은 진보당과 새진보연합, 시민사회 세력에 배정됩니다. 일부 지지층 사이에서 통합진보당 계열에 대한 이념적 거부감, 의석이 온전히 민주당 몫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불만이 표출됐다는 겁니다. 민주당과 사이는 어때? 🙂 서로 협력할 수 있어 조국혁신당은 창당부터 민주당과 협력 관계임을 밝혔습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1대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민주당과 지역구 후보 경쟁을 피하고자 비례대표 후보만 냈습니다. 민주당 주류도 초기에 조국혁신당을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조국혁신당이 정권심판론을 강조하면 민주당의 지역구 선거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인데요.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은 조국혁신당 창당대회에 참석했습니다. 😐 (민주당) 너무 커지면 위험한데… 하지만 이후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거세져 민주당 위성정당의 지지율을 넘어서자, 민주당은 ‘몰빵론’을 외치며 조국혁신당을 견제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조국혁신당과 별개로 민주당이 독자적인 1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의 중도층 확장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민생과 경제로 의제를 전환해야 하는데, 조국혁신당이 내세우는 검찰과 언론 문제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겁니다. 조국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엮여 다시 ‘방탄 프레임’이 만들어지는 것도 민주당의 걱정입니다. 조국 대표는 현재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선 이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되면 당선이 되어도 의원직을 상실합니다. 🤨 총선 끝나면 합당할까? 총선 후 합당 가능성에 대해선 일단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모두 선을 긋고 있습니다. 중도층까지 흡수해 제1당이 돼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선 조국혁신당의 강경한 색깔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조국혁신당은 윤석열 정권 조기 종식을 위해 민주당 밖에서 더 진보적인 정당을 만들어가겠다는 입장입니다. 조국혁신당의 상당수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에 참여했던 친문 계열인 만큼, 총선이 끝나면 야권 내 ‘친명 민주당’과 ‘친문 조국혁신당’의 경쟁이 본격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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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고민하는 활동가들 여기여기 붙어라 👍
지난 2월 25일, 노동에 관심이 많은 활동가 두 명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시민단체 활동가 여섯 명을 초대했습니다! 망원의 성미산알루(무료로 공간을 내어주신 사장님 감사합니다🙏) 에 모여 '노동'과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3시간 내내 이어진 성토대회에 허덕이며 녹취록을 풀었습니다😂 한달동안 울고 웃으며 이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정리해보았는데요, 일부를 캠페인즈에도 소개합니다!  이 글에서는 볼 수 없는 기획의도와 기록 전문 한 눈에 확인하기👀 모든 구성원의 대화는 알록달록한 가명으로 기록했습니다. 🍎함께 하고 싶은 빨강 씨🍋 쎄한 노랑 씨 🍊 뻗치기 중인 주황 씨 🥦 어쩌구한 초록 씨 🫐 내려놓은 파랑 씨🥑 지켜보는 남색 씨🍇 날아가고 싶은 보라 씨 🤔 각 단체의 의사소통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파랑 | 저희 단체는 얼마 전 급성장했어요. 그래서 요즘 과도기인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팀장회의에서 사업이 결정이 되는 편이에요. 저희는 거기서 나온 결정에 맞춰 실무를 하고요. 저희 팀은 팀장님이 그래도 대표님에게 사업의 목적을 계속 묻고 그래서 결국 방향성을 알아내주셔요.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실무를 시작하기 전에 이 사업의 의미를 팀원들과 같이 얘기해서 만들어가고 시작하시죠. 하지만 조직에는 그렇지 않은 팀이 더 많아요. 그냥 팀장회의의 결정을 100% 수용해서 시작하죠. 그래서 방향성에 대한 맥락이 잘 공유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 단체는 규모도 큰 편이고 팀도 많이 나눠져 있어서 일단 자기 팀에서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거예요. 그러면 팀들끼리 집행하는 활동과 결정에 차이가 생기기도 해요. 예를 들어 이 팀에서 내보낸 콘텐츠는 A 입장인데, 다른 팀 콘텐츠에서는 그거랑 미묘하게 다른 의견의 B 입장으로 나온다든지… 그럴 때 조정을 하는 시간이 있긴 한데, 그 조정 자리에 누가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죠.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조직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은 거예요. 🍋노랑 | ’파랑‘의 팀은 관련한 문제를 인식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직에 이야기 해보았나요? 🫐파랑 | 네. 운이 좋게도 제가 속한 팀이 조직의 상황을 꽤나 예민하게 보고, 그래서 문제 제기를 자주 하는 편이에요. 조직에서 ‘저 팀 무섭다’ 이런 얘기를 좀 듣기도 해요. (모두 야유) ‘이걸 왜 하느냐’고 질문을 하면 그게 되게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나봐요. 조직 내에서도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 설명 못하면 안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한 참여형 사업들인 경우가 많잖아요. 내부조차 설득이 안 되는데 어떻게 진행할 수 있냐는 기본적인 질문이죠. 그래서 계속 점검하는 건데 그냥 ‘무섭다’고 피드백이 오니까 위축되기도 해요. 특히나 팀장 회의에서는 대표를 견제하는 사람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팀장들 중에 결정에 의문을 가지거나 점검하는 사람이 없어요. 내부에서 관련해서 문제 제기를 한 동료들이야 많았죠. ‘방향성을 잘 모르겠으니 더 설명해달라’ 라고 말하는 사람들, 물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그 사람들은 이미 지쳐서 나가 떨어졌어요. 문제 제기했던 사람들만 자꾸 떠나게 돼요. 그런 사람들이 계속 못 남아 있게 만드는, 튕겨나가버리는 그런 조직 분위기가 있죠. 계속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그냥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게 계속 반복이 되니까 되게 감정의 고립이 쌓이네요. 그래서 제가 하고자 했던 일이 거버넌스를 만드는 거였어요. 개인이 얘기하게 하지 말고 논의 거버넌스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있어요. 🍎빨강 | 문제 제기를 자꾸 면담으로 풀려고 하는 것에 불편함이 있어요. 그 자리는 문서화 하는 시간도 아니고 하니까 변화와 책임이 부재하죠. 그래서 열린 회의자리에서 다시 한번 얘기를 꺼내기도 해요. 그럼 이런 말을 하면서 다시 면담으로 또 빼는 거죠. “왜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얘기해요? 이런 식으로 풀지 말고 나한테 면담 먼저 요청해야 되지 않나요?” 여러 명 있는 자리에서 몰리게 되는 상황에 대한 기피감이 있는 것 같아요. 🍊주황 | 그럴수록 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집단행동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활동가로서 꼭 더 열린 자리에서 말하라고 제안하고 싶어요. 면담으로만 해결하면서 그렇게 계속 정보를 리더들만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그 리더만 활동가들의 얘기를 다 알고, 활동가들 사이의 칸막이를 높이는 거잖아요. 여기서 나온 대화들이 어디까지 정확히 책임져지고 실행될 건지를 흐리는 거잖아요. ‘여기서 다 얘기했으니까 끝이야’라는 명분만 쌓아가거나… 저는 여기서 꼭 정치활동이 개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끼리 이런 얘기들을 나누고, 우리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끔 해야 되는 거죠. 우리들의 목소리를 더 분명히 하는 전략들을 좀 더 짜야 되지 않을까요? 모두 결정 단위에 대한 견제기구가 딱히 없는 것처럼 보이네요. 그럼 활동가 스스로 견제해야 될 것 같은데요. 사업도 좀 안 해버리고 이러면서, 진짜 이 운영진들이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고 그걸 통해 투쟁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일단 기본원칙이죠. 이 문제의식을 좀 명확히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구체적인 사례도 정립하고. 🍎빨강 | 우리가 다 같이 모여서 문제 제기한 경험과 사례, 선례… 뭐가 없으니까 매번 개인 의견으로 몰리고, 개인 면담으로 빼고… 사실 저 그래서 면담 왕이에요. (웃음) 이게 처음 한두 번 반복될 때는 맨날 면담 자리에서 울었는데 이젠 울지도 않게 되더군요. 🍋노랑 | 너무 공감해요. 면담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이게 의미있게 문제 제기로 흘러가느냐, 그냥 개인의 투정으로 흘러가느냐가 결정되잖아요. 면담 상대가 어떤 감수성을 가졌는지, 어떤 리더십을 가졌는지에 따라서도 조직 소통방법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죠. 솔직히 이건 조직한테도 손해같거든요. 시민단체는 규모가 조금이나마 커지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작은 단위인 팀 소통으로 전환하는데, 운영진들이 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주황 | 의식은 같이 갖고 있지만 문제 제기에 동참하지 않는 동료들의 경우, 그 문제 제기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는 않나요? 어쨌든 조직에 맞서는 거니까. 🍎빨강 | 그런 것도 조금 있어요. 우리는 운영진이 되게 권위적이고 몰아치는 타입이기도 해서요. 그런 자리가 사실상 너무 부담스럽고 어려운 동료들도 많은 거죠. 사실 운영진, 리더들한테 면담 요청 오면 개인 활동가들은 당연히 너무 부담되죠. 특히 연차가 적을수록 더더욱.이번에 퇴사하시는 분들이 사실 제일 많이 총대를 메고 제일 많이 얘기했던 사람이거든요. 끝내 퇴사하시는 걸 보고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라는 반성이 저뿐만 아니라 동료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어요. 그리고 다른 팀에서 문제 제기를 할 때 쉽게 개입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기도 하죠. 워낙 따로 움직여서. 이게 늘 개개인의 문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연대가 어려운 것 같아요. 🍊주황 | 반박할 수 있는 데이터들을 계속 쌓으면서 이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계속 조직 내에 살아있게끔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그때도 이랬지’ 하면서 사라진 문제가 되지 않고 해결을 위한 노력이 기억되게 하는. 우리도 오랫동안 혼자 싸우다가 퇴사하신 분처럼 되면 안 되잖아요. 이제 또 하나의 선례가 쌓여버렸으니까 ‘우리 이 꼴 나기 전에 한번 제대로 다시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여러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랑 |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주적 같은 존재, 뭐 사람이든 권력이든 제도든, 그런 상대가 있잖아요. 그것과의 싸움에 몰입하다 보면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아니 자잘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되기 쉬운 투쟁들이 엄청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의 외침이 조직의 외부활동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고 혼자 자기검열하는 게 커지기도 하고요. 대부분 이 조직의 활동에 지지해서 들어오는 활동가들이 많으니까. 그런 생각들이 계속 우리를 옥죄지 않나 생각해요. 🤐지금의 노동, 괜찮으신가요? 🥦초록 | 이 단체는 개인 활동가들이 느끼고 있는 책임감이 너무 높아요. 동료들의 평균치가 높으니까 내가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감각들이 막 생기거든요. 밤, 주말에 일하는 거 너무 기본이고요, 주중 근무시간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냥 막 아무때나 업무 메신저가 울려요. 그거에 대해 무시하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요. 언제 올려도 바로 소통이 되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조직 분위기가 살짝 있는 것 같아요. 🍋노랑 | 사실 조직이 막 개인의 책임감을 강요하지 않는 건 맞아요. 그런데 또 활동가가 눈치 받지 않고 오롯이 자기만의 선택으로 과로를 하냐? 그건 당연히! 아니거든요. 가끔 운영진이 반복되는 과로를 개인의 몫으로 말하곤 하는데, 그걸 멈추게 하는 것도 조직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방관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도 책임이죠. 제가 일하는 곳이 그래도 꽤 오래된 조직이거든요. 그런데 ‘빨강’이 말씀하신 것처럼 규정이 정말 많이 없어요. 특히 개인 활동가의 안전한 노동 환경에 대한 건 거의 없어요.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야만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죠. 규정을 만드는 과정 속에 있다보면 사실 이걸 필요로 하는 동료들이 되게 많았구나 느끼게 돼요. 그런데도 한번도 제안된 적이 없었던 거예요. 이유를 여쭤봤는데 놀라운 답들을 주셨어요. ’이 단체를 믿으니까.’ 저 또한 이 단체를 너무나 믿지만요, 지금 정말 위험한 상황인 것 같아요. 이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버틸 만한 힘이 안 생긴다는 답도 들었는데요. 생각보다 ‘이유가 있겠지’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경우들이 엄청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다른 팀과의 소통이 조금 어려운 조직인데요. 개개인에게는 팀 문화가 곧 조직 그 자체로 느껴지게 돼요. 그렇게 조직에서 놓치는 것들이 생기는 거죠. 팀 안에서 괴로운 점이 생기면 풀 곳이 딱히 없거든요. 저는 문제 제기를 했을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대답 2개를 다 들었어요. ‘조직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선택이네요.’ '원래 이 판은 그렇게 굴러가요.’ 저는 이 말처럼 시민단체의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제가 또 주섬주섬 개인적인 경험을 꺼내요. 그렇게 ‘원래‘처럼 비영리단체가 굴러가다가 누군가 상처를 받은 사례들이요. 분명 이 조직에서도 있었지만 외면해온 사례들이기도 하겠죠. 당신들이 조직을 너무 안전하다고 믿고 이상적으로 생각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을, 심지어 내 경험까지 끌고 와서 설득해야 하는거죠. 나도 이 조직을 리더들만큼 아껴서 하는 제안이라는 걸 증명하는 행위를 굳이 해야 하는, 저한테는 가장 상처받는 순간들이죠. 🥦초록 | 그냥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하나의 마을이에요. 진짜 신뢰도 200%의 마을. 그게 부담스럽거나 아니면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 사람들은 그냥 하나둘씩 나가는 거죠. 🍊주황 | 그렇게 믿음으로만 가면은 결국 어떤 사건이 터져버리고, 그 후에야 ‘우리가 믿음으로 갔던 게 이렇게나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구나를 알게 되면 상처받고 조직이 와해되고 이렇게 가는 길이잖아요. 뭔가 그렇게 되기 전에 뭔가 하는 게 진짜 중요할 것 같긴 하네요. 진짜 개선과제 많을 것 같은 조직인데요. 조직에 일체화되어 있지 않은 동료가 좀 많이 필요해 보이네요. 활동가로서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정말 과로해선 안 돼요. 하다 죽어요. 진짜요. 근데 “조급해하지 마” 또는 “너 지금 잘하고 있고 당연히 이만큼 하는 게 너무 당연해”라고 말할 수 있는 상급자가 아마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러면 스스로라도 그 메타 상급자를 머릿속에 만들어가지고 얘기를 자기한테 해줘야 되거든요. 아니면 친구들끼리 얘기를 하면서 계속 그거를 실제로 안정시키는 작업들이 필요하고. ‘활동가’라는 어떤 사명감 때문에 과로가 부채질 되는 경향이 있단 말이에요. 좋은 중간 관리자를 만나면 이 얘기를 해줄 테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생각하면서 가야 해요. 이 기준선이 자꾸 높아지는 건 결국 조직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좀 이런 말 통하는 동료를 계속 찾아보는 게 되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해요. 표준의 기준선을 높이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되네’라는 말, 되게 무서운 말이네요. 개별 활동가가 다 투쟁의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말고, 말 좀 통할 만한 동료들을 계속 찾아야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진단이 내려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요즘 고민이 무엇인가요? 🍎빨강 | 요즘 상황이 상황인지라... 같이 일을 하면서 “우리 저기로 나아갑시다”여야 되는데 “망하지만 말자”라고 얘기하며 넘어가는 순간이 많아요. 배에 물이 막 들어오는데도, “괜찮아, 손으로 막아! 배 아직 안 가라앉았어!“ 🍋노랑 | 활동가들은 자기자신을 일반적인 노동자라고 감각하지 않는 점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린 의미있는 일 하고 있으니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정 중 하나니까!’ 이런 사명감으로 과로와 이 이상한 체계들을 용서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시민단체가 겪는 외부 상황도 안 좋은 시기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주황 | 어떤 조직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의 변화가 잘 일어나야 해요. 밖으로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민단체는 특히나 이 얘기가 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에서 우리도 계속 배우고 생각이 바뀌고, 우리의 문화에 대한 자아성찰이 계속 이루어져야 외부활동에도 좋은 작용이 되며 이어지기 마련인데, 왜 우리는 늘 이에 대한 고민과 토론을 제일 뒷순위에 둘까요. 서로를 믿는다는 이유로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는가… 이런 생각들과… 조직의 장기적인 플랜을 생각했을 때 너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으면 일부러 시간을 배정해서 ‘이건 우리 챙기고 갈게요’라고 할 수 있는 판단이라고 보거든요. 그거는 나는 당연히 이 업무 영역에서 포함시켜서 당연히 기본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일의 영역은 판단하기에 따라 되게 다르고 ‘일을 어디까지는 하지 말자’도 사실 우리가 결정 내리기 마련인데 그 결정에서 늘 얘가 뒷전인 지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리더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생기죠. 🍎빨강 | 뭐랄까… 동료를 잃는 거 너무 슬프지 않아요? 나는 함께 마음을 나눈 사람들 떠나는 게 제일 속상해요. 🍊주황 | 이제 앞으로 장기적으로 동료를 안 잃기 위해서 행동해야지요. 그래서 꼭 지속가능성 있는 활동을 하길 바랍니다. 저도 지금 견디는 중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런 것에 좀 능한 것 같습니다. 저는 진짜 잘 쉬는 사람인 것 같아요. 활동가 버튼이라는 거, 끄면 또 꺼지더라고요. 이렇게 ’멈추는 것까지도 내 활동이다‘ 생각해요. 선언이야, 선언. 지금 내가 잘 먹고 잘 쉬는 것도 내 활동의 일환이다. 그래서 안식월 제도 같은 게 진짜 필요한 것 같아요. 일부러 고의적으로라도 활동을 끄도록. 🍎빨강 | 최근에 그런 말을 들었어요. 안식월이 대부분 3년차 이상부터 생기잖아요. 물론 개개별의 휴식의 목적도 있지만, 3년차면은 중간관리자이거나 조직에서 그만큼 중요한 실무 위치에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이 한달동안 부재해도 조직이 굴러갈 수 있는 연습을 하는 목적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노랑 | 너무 중요하네요. 저는 그만큼 연차가 안 쌓였는데도 이미 낸 휴가를 반납해야 했던 날들이 많았는데… 우리 조직 그 연습 너무 필요해요. 🍇보라 | 저는 일하면서 그런 질문을 못 던져봤던 것 같아요. ‘이거 왜 해야 되지?’ 나조차 꺼낼 수 없는 질문이었다는 게 좀 오늘 느꼈던 점이에요. 위에서 내려오면 그냥 했던 거지. ‘이걸 왜 해야 되고 우리가 뭘 위해서 이걸 하고 있지’가 안 잡혀 있기도 하고요. 저는 요즘은 고민했던 게 계약직과 정규직으로 일하는 차이예요. 왜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 전환을 해줘야 되는지 이런 게 몸으로 납득이 되는 게 있었어요. 🍋노랑 | 조직이 비정규직 다루는, 특히 시민단체가 비정규직 활동가 다루는 태도는 진짜 너무 별로인 것 같아요. 그냥 일손 부족할 때 막 불렀다가 프로젝트 끝나자마자 손절, 이런 느낌이죠. 🍇보라 | 사업 목적에 대한 납득이 없으면 ‘여기서 뭘 배울 수 있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그럼 내가 여기에 계속 있어도 되는가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조직이 명확히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는 게 너무 필요하다고 느껴요. 내가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지의 확고함과 조직이 나아가고자 하는 거를 맞춰나가고 싶은데 조직의 방향성이 없으니 이조차 어려워요. 그게 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뭔가 기획해서 제안을 역으로 하면 될 것 같긴 한데 그조차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인가에 대한 판단이 없어요. 그러니까 일을 벌려도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이런 것도 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내 의견을 반영해 줄 수 있는 회의 공간이 있으면 얘기를 하겠는데, 역량 발휘하고 싶은 욕구와 나의 위치가 일치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들어요. 저는 곧 계약이 만료되고, 조직에 변화를 만들고 싶어도 계약직이라는 신분이 뭔가 도전하기에 좀 어려운 거죠. 🫢우리의 활동이 건강하게 지속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주황 | 조직문화 진단을 의무화했으면 좋겠어요. 이행하지 않으면 패널티를 받는다든지 벌금을 내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성희롱 예방교육을 직장 의무교육에 포함하듯이 조직 문화에 대한 것도 의무교육으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노랑 | 동료들과 얘기를 많이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더라도 당장 옆에 있는 동료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나랑 같은 고민을 누군가 하고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괜히 힘이 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하나의 투쟁으로, 변화의 움직임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서로에 대한 돌봄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고요. 그래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네요. 조직에 대한 고민을 하고 그 대안을 찾아 요구하는 것은 저한테 그 다음 단계로 느껴져요. 🍇보라 | 동료와 친구 사이 이런 균형도 되게 어려운 주제인 것 같아요. 동료와 친해질 수 있는가. 어디까지 얘기할 수 있는가. 🍋노랑 | 저한테는 그것도 진짜 최대 고민이었어요. 일에 대한 어려움이 사적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되게 쉽잖아요. 이걸 오픈할 정도의 관계가 되어야 결국 그 모든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록 | 저는 교육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완전 필요해요. 내가 이 조직을 위해서 배워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 역량을 채워줄 수 있는 교육이 또는 기회가 제공 됐으면 하는 게 있어요. 뭔가 나랑 같이 나아지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도 같이 받고요. 🫐파랑 | 전 노조가 생기면 좋겠어요. 요즘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물어요. “너네 노조 있어? 어떻게 운영돼?” 아까 ‘동료와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는 동료랑은 친구 안 하거든요. (웃음) 저는 동료는 어디까지나 동료라고 생각을 해요. 일터에서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건 친구가 아닌 동료끼리만 할 수 있는 얘기잖아요. 제가 자주 조직 관련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같은 불만이 있는 동료들이 저를 찾아오더라고요. 그렇게 뭔가 미묘한 네트워크 같은 게 생겨요. 이 네트워크를 조금 더 공식적인 기구로 만드는 것을 최대 목표로 가지고 있어요. 일단은 노조 관련 스터디부터 시작을 할까 해요. 동료들과 노동에 대해서 같이 비슷한 감각을 깨우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 단체는 뭔가 끈끈함이 있는 조직은 아니라서 결국 모든 것이 자기 선택으로 치부되거든요. 그게 사실은 다 조직의 고도의 전략으로 짜여있는 느낌이 좀 들어가지고요. 한 활동가가 혼자 인사팀을 만나러 가거나 조직에 무언가를 얘기하거나 할 때 외롭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일단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형식적으로라도 그리고 최소한이라도 그런 면담에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던가… 그런 점이 체계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주황 | 현재 사측과 투쟁 중인 00단체도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 한 달 전부터 교육을 공부했대요. 자꾸 이런 조직 이야기가 후순위로 밀리고 그러다 보니까 바깥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들이 계속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오늘 집담회 같은 시도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디자인할 사람 필요하면 디자이너 채용하고 개발할 사람 필요하면 개발자 채용하는 것처럼, 사실상 시민단체에도 HR 전문가가 좀 더 많이 자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대부분 ‘내가 당장 필요하니까 내가 해당 역량 쌓아서 해결한다‘ 이렇게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여요. 그리고 그런 전문가들이 있으려면 자본이 필요한데 그것도 어렵기도 하고… 하여튼 이런 노동 환경이 좀 당연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글에서는 볼 수 없는 기획의도와 기록 전문 한 눈에 확인하기👀
노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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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세월호 참사를 적극적으로 기억하는 방법 - 함께, 기억 OT 후기
0. 세월호 참사가 언제였더라..? 우리가 평소에 기억하고 다니는 날은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공휴일이나 기념일, 그리고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날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나 삼일절, 빼빼로데이 같은 날이나 부모님의 생신, 내 생일, 애인 혹은 배우자와의 중요한 기념일들은 때론 일부러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각자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기억에 잘 남는다. 사실 나에게 ‘세월호 참사’는 충격이 컸던 사건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크게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참사가 발생한 2014년에는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이 된 상태였고, 단원고와 연결점이 없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부모인 상태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캠페인즈의 [함께, 기억]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는 세월호 참사가 4월에 발생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무슨 달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도 모르는 사람이 왜 [함께, 기억]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됐는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서 국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때는 ‘가만히 있으라’더니, 가만히 있어도 될 때는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를 보내는 ‘문자 사고’와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백명이 넘게 길거리에서 죽음을 당하는 ‘이태원 참사’는 모두 2023년인 작년에 발생했다. 10년 전과 1년 전이 나아진게 크게 없다는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그리고 무엇을 해야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기억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함께, 기억]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게 됐다. 1. 세월호 참사를 함께 잘 기억하려면 3월 14일 목요일 저녁 7시30분, 노무현시민센터 1층에서 진행된 [함께, 기억]오리엔테이션은 우선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됐다. 빠띠는 ‘열린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이라고 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왜 빠띠는 (열린)기술이 필요하다고 하고, 플랫폼 형태를 띄고 있는가? 과학(디지털) 기술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긍정적 도움을 많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 기술은 언제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존재한다. 인터넷의 특성상 정보가 쉽고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가짜 뉴스가 판치고, 때로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보의 홍수에 파묻힌다. 또한 사람들은 디지털 공간에서 익명성의 방패 뒤에 숨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바쁘다. 하지만 가짜뉴스만큼 좋은 글 역시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으며, 오프라인 공간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의견을 주고받고, 서명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뜻을 모을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년 역시 디지털 공간이기에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기억할 수 있다. 빠띠에서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함께OO’시리즈를 통해 주제별로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함께’해나갈 수 있다. 참사와 관련해서는 각자 왜, 어떻게 참사를 기억하는지부터, 참사와 관련된 유가족들의 깊은 이야기도 공유할 수 있고,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글들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이나 ‘세월호참사 10주기 영화’등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받을 수 있다. 이런 컨텐츠들은 또 다른 디지털 공간인 SNS, 메신저, 언론 등을 타고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함께 잘 기억하기에 빠띠, 캠페인즈라는 디지털 공간이 적합한 이유들이다. 2. 세월호 참사 피해자는 내 친구, 내 자녀, 내가 가르치는 학생. 빠띠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 후, 본격적으로 [함께, 기억] 프로젝트의 구체적 참여 방법 안내와 참여자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선, 세월호 참사 10주기와 관련한 글이라면, 정해진 양식에 따라 어떤 글이든 써도 상관이 없다. 소소하지만 원고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참여자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인상깊었는데, 우선 참여자들의 연령대가 상당히 다양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학생부터 세월호 때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던 사람, 나이가 더 많은 노인 분까지 넓은 연령대의 참가자분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오셨다. 이보다 더 인상깊었던 건 어떻게든 참가자분들이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비슷한 나이대였던 참가자, 자녀가 있어 당시 피해자와 유가족에 이입이 더 잘 된다는 참가자, 주기적으로 안산에 가서 추모하고 오려고 하는 참가자, 현직 교사라서 학생들과 함께 참사를 기억한다는 참가자까지. 나이와 배경이 모두 다른 참가자들이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연결되어 있다. 유가족, 안산 사람, 고등학생이었던 사람, 고등학생이 될 사람 등.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참사의 정의를 찾아보면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한다. 사회적 참사는 사회적으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는 뜻인데, 세월호 사건이 사회적 참사가 된 이유는 사회에 있는 모두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자기소개 시간에 느꼈다. 우리 혹은 우리 주변에 누군가가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었음을 알기에, 유가족과 피해 학생들의 슬픔과 한을 공감할 수 있기에, 세월호 참사가 비참하고 끔찍한 일임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다. 3. 10년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하기 – 최성용 청년연구자 강의 참가자들의 자기소개에 이어서, 최성용 청년연구자님의 ‘10년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하기’라는 제목의 강의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고 하는 걸 넘어,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강의 내용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간단히 옮겨오면 다음과 같다. - 세월호 참사를 소극적으로 단순히 기억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어떻게 기억할지 고민해야 연구자님의 강의의 핵심 주장을 한 줄로 압축하면 ‘세월호 참사를 적극적으로 기억하자’이다. 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적극적으로 기억하자’는 말이 쉽게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기억하기’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극적으로 기억하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소극적으로 기억하기’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면서 가장 많이 쓰인 문구 중 하나인 ‘기억하겠습니다’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겠지만, ‘소극적으로 기억하기’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소극적으로 기억하기는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참사를 망각시키는 정부 등의 압력에 저항하여 참사를 제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군사 정권 시절부터, 대구 참사,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강도는 시대나 참사마다 다르지만 국가가 참사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는 지속되어왔다. 세월호 참사에 집중해보면, 세월호 추모 공원이 제대로 지어지지 못하게 하거나, 최근들어선 총선 이후에 방영되는 세월호 10주기 다큐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4월 방영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제작까지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런 압력에 대항해 참사를 잊지 않고, 참사를 제도화하겠다는 소극적 기억 역시 참사를 기억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기억하기’는 ‘소극적으로 기억하기’의 단순히 잊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무엇을, 어떻게’기억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성용 청년연구자는 참사를 소극적으로만 기억할 경우, 기억이 제도화되게 되면서 경직되고 의미가 줄어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기억하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억의 제도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박물관을 이야기해주셔서 더 와닿았는데, 중요한 역사를 박물관에 기념하고 전시하여 제도화하는 순간, 잊혀지지는 않더라도 뭔가 더 딱딱한 느낌이 들고 재미가 없다. 우리가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참사로부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억의 제도화가 아니라 기억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기억의 사회화를 위해 대표적으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안전’과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다.  - 함께 만들어 가는 ‘안전’과 ‘세월호’의 의미.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사람들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의견에 대부분 공감하였다. 하지만 그 ‘안전’의 범위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당시에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어른들은 결과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해 대구 지하철 참사,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들을 만들어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께서 ‘안전’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게 쉽지 않은 작업임을 이태원 참사의 예시를 통해 설명해주었다. 당시 경찰 인력을 마약수사에 많이 배치한 것도 일종의 ‘안전’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폴리스라인 등 거리 안전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 참사가 발생하였다. 이처럼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또한, 최성용 청년연구자님은 ‘세월호’의 의미는 포괄적이고 유동적임을 설명해주셨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단순히 세월호 참사 순간, 피해 학생들에게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해 열리는 세월호 집회, 유가족들의 운동, 4월 16일에 맞춰 노란리본을 달고 기억하는 시민들까지 포함한다. 즉, 사회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더 넓고, 지속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세월호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기억해 나가고, 그 기억을 토대로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느냐에 따라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바뀔 수 있다. 이번 ‘함께, 기억’을 포함한 시민들의 노력이 세월호를 단순히 아팠던 참사를 넘어, 반성하고 성장하는 토대로 바꿀 수 있길 바란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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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록을 기록하다, 다큐 <그레이존>
2024년 3월 22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다큐 <그레이존>(주현숙 감독) 상영회가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10층에서 열렸다. ‘4.16재단’과 ‘사랑의 열매’의 지원을 받아 캠페인즈가 주관한 이 상영회에서는 "함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모인 캠페이너들 및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모여 영화를 감상하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기자란 무엇인가 세월호 다큐 <그레이존>은 흑백 사이 모호하게 연결된 기자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는 언론에게 화살이 몰렸던 사건이다. 상황이 어떠한지 언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현장의 팩트를 명확히 전달했어야 했던 언론이 우왕좌왕했던 것을 우린 기억한다. 세월호 침몰이란 속보로 심장을 철렁이게 했다가, 모두 구조되었다는 엉성한 안심을 주다가, 다시 침몰이라는 절망을 던졌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피해자 마음보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위해 몰래 혹은 억지로라도 카메라를 무기처럼 들이밀었다. 결국 2차 가해자가 되어 버린 뒤, 그들이 만난 것은 유가족들로부터 오는 강력한 불신의 벽, 그리고 섣불리 정부 눈치를 봐 버린 자신의 무능, 이도 저도 할 수 없던 무기력이었다. 그들은 취재의 사명이 있었으나, 바다 너머를 볼 수 없었고, 해경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유가족 제보보다 정부의 ‘구조하고 있다’는 말을 믿었다. 의심할 수 없었던 자신에 실망하고, 아비규환의 현장에 절망했던 기자들. 자신을 기자라 말하기조차 어려웠던 순간. 메타적으로 보기 영화는 기자들의 참회록으로 보인다. 기자들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돌려, 자신을 카메라 앞에 두고 그날을 고통스럽게 떠올려 본다. 그들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동시에 관객은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고민하게 된다. 기자들은 10년이 지난 이제야 당시 상황을 떨어져서 가늠해보고, 어디서 단추를 잘못 끼웠는지 반추한다. 유가족들이 보고 온 현장(“구조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요!”)을 기자들이 서울 보도국에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면서, 그리고 정부가 말한 ‘세월호 승객들을 구하는 중’이란 빈말을 전하면서, 진실과는 한참 어긋나 버렸다. 배 안에서 ‘당신들을 구하고 있으니 가만히 기다리라’는 방송과 ‘정부가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으니, 가만히 기다리라’는 언론은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 그럼에도 기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제 3자의 눈으로 직접 본 유일한 목격자이다. 2차 가해자이자 2차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던 현장을, 자신들의 고백을 통해 가까스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세월호의 진실을 기자들의 입장에서 되묻는다. ‘참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2024년의 우리는 10년 전 참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려 한다. 그런 가운데,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나 자신은 유족도, 현장 기자도 아닌, 같은 나라의 국민이지만 달리 보면 행성처럼 동떨어진 일반 시민에 불과한데, 이 기억과 기록을 어떻게 끄집어내고 드러내야 하는가, 고. 감히 나의 펜 끝을 세월호 참사에 댈 수 있는가, 고. 하지만 그래야만 한다. 회색지대에 선 자들은 어쩌면 당시의 기자들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정 팩트인가, 우리가 보는 세계는 진도 팽목항의 어디쯤인가, 우리 역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보다 ‘왜’를 물어야 한다. 왜 비슷한 참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가. 왜 진실은 아직도 정치적인 이유로 가려지거나 전달되지 못하는가. 나는 왜 기록하는가. 그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누구나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도, 유가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재(人災)로 인한 참사의 희생자는, 구해질 수도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담으려는 노력이다. 기억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는 일이다. 우리가 보려는 것은 단지 10년 전이 아니라 지금이고 10년 후이고, 30년 후이다. <그레이존> 안에서 자주 악몽에 시달린다는 한 기자의 말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수십 번이고 같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세월호 선실에 앉아 있다. 죽은 이들 사이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과연 지금 어디에 있을까.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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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나의 퇴직공제금은 누가 가로채 갔나?
 나의 퇴직공제금은 누가 가로채 갔나? (2023-10-29) 최우영 | 권리찾기유니온 마루지부장 ‘전국 아파트 마루시공 불법하도급 명단발표 및 폐지투쟁 돌입 기자회견’이 지난 4월11일 오후 정의당과 권리찾기유니온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실내에 마룻바닥을 시공하는 노동자다. 7년 전 일을 시작할 때는 열심히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기에 죽어라 일만 했다. 하루 평균 14시간 마루를 시공하느라 온몸 관절이 골병들어 신음하는데, 받는 돈은 일하는 시간으로 환산하니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일당이 아닌 시공하는 만큼 돈을 받는 평단가 구조에서 전국 각지를 돌며 일하느라 식비, 숙박비까지 부담해야 하니 주 80시간, 90시간 노동할 수밖에 없다. 주 52시간을 지키면 최저임금도 안 되기에 장시간 일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시공 전 바닥 기초작업, 청소, 짐 치우기 등 무보수 노동시간도 많았다. 왜 이 일을 시작했나, 자괴감 속에 하루하루 버티던 중 일본에서 일했던 작업자를 만났다. 일본은 하루 일당 30만원에,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하루 시공 평수를 8평으로 제한한다고 했다. 미국, 유럽에서도 마루 시공자가 전문기술자로 존중받는다는 말도 들었다. 나는 왜 존중받지 못할까. 마루 현장의 실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부터 부산에서 파주까지 5개월 동안 현장을 돌며 많은 시공자와 대화하며 하나씩 문제를 알게 됐다. 광고 건설 현장에서 마루 회사는 실내건축 면허가 없는 불법 하도급업체 ‘오야지’로 불리는 중간관리자에게 노무관리를 맡기고, 오야지는 노동자를 고용해서 마루를 시공한다. 임금 지급은 세가지 방식이 있다. 먼저, 마루 회사에서 4대 보험을 공제하고 마루 노동자에게 임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하는 경우다. 두번째는 마루 회사와 불법 하도급업체가 6 대 4 비율로 임금을 나누어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때 마루 회사 지급분은 정상적인 근로소득으로 신고하지만, 나머지는 3.3% 세율이 적용되는 사업소득으로 신고한다. 세번째는 불법 하도급업체가 전액 지급하는 방식인데, 이때 임금 전부를 사업소득으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루 회사가 직접 고용할 때 지켜야 하는 근로기준법, 4대 보험 가입 등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광고 광고 임금은 20년째 ‘1평 시공 1만원’이다. 건설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주기 위한 퇴직공제금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건설사나 마루 회사는 공사를 시작하면 퇴직공제금으로 노동자 1인당 하루 3000~6500원을 건설공제회에 적립해야 하는데, 한달을 일했는데 한두주만 적립해주거나 아예 하루도 적립해주지 않는 현장도 있었다. 공사비에 포함된 나의 퇴직공제금은 누가 가로챈 것일까? 부당한 마루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 2022년 6월 대구에서 뜻 맞는 동료들과 만나 회의하고 규약을 만들어 한국마루노동조합 설립 신고필증까지 받았다. 기자회견, 간담회, 국회 방문, 노동청 고발, 국토교통부 고발 등 정신없이 달렸다. 일과 노동운동을 병행하니 가정생활은 엉망이 되었고 생계 때문에 떠나는 동료들이 생겨 2명만 남았다. 광고 그러던 중 올해 3월 같은 현장에서 일하던 동료가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금요일에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먼저 숙소로 들어간 뒤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뉴스로만 보던 과로사가 내 옆에서 일어나다니. 결혼도 안 하고 부산에 노부모를 모시고 일만 하던 49살 동료는 산재 인정도, 어떤 사과도 못 받고 떠나갔다. 알려지지 않은 동료들의 죽음이 소문처럼 들려왔다. 나는 일자리를 잃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지난 9월 체불 임금 사건 조사 때 마루 회사 대표는 노동청 근로감독관 앞에서 대놓고 노조원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조합원들에게 백지 근로계약서를 사진 찍게 하고 일한 일수를 기록하게 한다. 그리고 퇴직금이 적립되고 있는지 건설공제회에 확인하고 만약 누락돼 있으면 전국 노동청에 진정을 넣는다. 하지만 건설공제회는 강제수사권이 없다며 공제금 적립 감시에 손을 놓고 있고, 불법 하도급을 없애겠다던 국토교통부는 검찰에 가보라고 한다. 그 결과 지금도 마루 공사 현장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임금 체불이 여전하고, 불법 하도급과 백지 근로계약서 관행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 투쟁을 보면서 같은 처지의 타일 노동자들도 노조를 만들겠다고 한다. 우린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기도한다. 다시 현장에서 마루를 시공할 그날이 오기를.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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