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함께 기억] 세월호 참사를 적극적으로 기억하는 방법 - 함께, 기억 OT 후기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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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사회에 관심이 많은 프리랜서

4월 16일을 기억하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0. 세월호 참사가 언제였더라..?

우리가 평소에 기억하고 다니는 날은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공휴일이나 기념일, 그리고 사람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날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나 삼일절, 빼빼로데이 같은 날이나 부모님의 생신, 내 생일, 애인 혹은 배우자와의 중요한 기념일들은 때론 일부러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각자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기억에 잘 남는다.

사실 나에게 ‘세월호 참사’는 충격이 컸던 사건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크게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다. 참사가 발생한 2014년에는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이 된 상태였고, 단원고와 연결점이 없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부모인 상태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캠페인즈의 [함께, 기억]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는 세월호 참사가 4월에 발생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무슨 달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도 모르는 사람이 왜 [함께, 기억]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됐는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서 국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때는 가만히 있으라더니, 가만히 있어도 될 때는 대피하라는 재난 문자를 보내는 ‘문자 사고’와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백명이 넘게 길거리에서 죽음을 당하는 ‘이태원 참사’는 모두 2023년인 작년에 발생했다. 10년 전과 1년 전이 나아진게 크게 없다는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그리고 무엇을 해야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기억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함께, 기억]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게 됐다.

1. 세월호 참사를 함께 잘 기억하려면

3월 14일 목요일 저녁 7시30분, 노무현시민센터 1층에서 진행된 [함께, 기억]오리엔테이션은 우선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됐다. 빠띠는 ‘열린 기술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이라고 한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왜 빠띠는 (열린)기술이 필요하다고 하고, 플랫폼 형태를 띄고 있는가?

과학(디지털) 기술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긍정적 도움을 많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 기술은 언제나 장점과 단점이 모두 존재한다. 인터넷의 특성상 정보가 쉽고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가짜 뉴스가 판치고, 때로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보의 홍수에 파묻힌다. 또한 사람들은 디지털 공간에서 익명성의 방패 뒤에 숨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바쁘다. 하지만 가짜뉴스만큼 좋은 글 역시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으며, 오프라인 공간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의견을 주고받고, 서명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뜻을 모을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년 역시 디지털 공간이기에 더 오래,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기억할 수 있다. 빠띠에서 연속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 함께OO’시리즈를 통해 주제별로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의미 있는 활동을 ‘함께’해나갈 수 있다. 참사와 관련해서는 각자 왜, 어떻게 참사를 기억하는지부터, 참사와 관련된 유가족들의 깊은 이야기도 공유할 수 있고,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글들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이나 ‘세월호참사 10주기 영화’등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받을 수 있다. 이런 컨텐츠들은 또 다른 디지털 공간인 SNS, 메신저, 언론 등을 타고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함께 잘 기억하기에 빠띠, 캠페인즈라는 디지털 공간이 적합한 이유들이다.

2. 세월호 참사 피해자는 내 친구, 내 자녀, 내가 가르치는 학생.

빠띠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 후, 본격적으로 [함께, 기억] 프로젝트의 구체적 참여 방법 안내와 참여자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선, 세월호 참사 10주기와 관련한 글이라면, 정해진 양식에 따라 어떤 글이든 써도 상관이 없다. 소소하지만 원고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참여자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인상깊었는데, 우선 참여자들의 연령대가 상당히 다양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학생부터 세월호 때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였던 사람, 나이가 더 많은 노인 분까지 넓은 연령대의 참가자분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오셨다. 이보다 더 인상깊었던 건 어떻게든 참가자분들이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비슷한 나이대였던 참가자, 자녀가 있어 당시 피해자와 유가족에 이입이 더 잘 된다는 참가자, 주기적으로 안산에 가서 추모하고 오려고 하는 참가자, 현직 교사라서 학생들과 함께 참사를 기억한다는 참가자까지. 나이와 배경이 모두 다른 참가자들이 세월호 참사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연결되어 있다. 유가족, 안산 사람, 고등학생이었던 사람, 고등학생이 될 사람 등.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참사의 정의를 찾아보면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고 한다. 사회적 참사는 사회적으로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라는 뜻인데, 세월호 사건이 사회적 참사가 된 이유는 사회에 있는 모두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자기소개 시간에 느꼈다. 우리 혹은 우리 주변에 누군가가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었음을 알기에, 유가족과 피해 학생들의 슬픔과 한을 공감할 수 있기에, 세월호 참사가 비참하고 끔찍한 일임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다.


3. 10년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하기 – 최성용 청년연구자 강의

참가자들의 자기소개에 이어서, 최성용 청년연구자님의 ‘10년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말하기’라는 제목의 강의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단순히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고 하는 걸 넘어,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강의 내용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들을 간단히 옮겨오면 다음과 같다.


- 세월호 참사를 소극적으로 단순히 기억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어떻게 기억할지 고민해야

연구자님의 강의의 핵심 주장을 한 줄로 압축하면 ‘세월호 참사를 적극적으로 기억하자’이다. 강의를 듣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적극적으로 기억하자’는 말이 쉽게 감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기억하기’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극적으로 기억하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OT 강의 자료에 있던 소극적으로 기억하기 / 적극적으로 기억하기 설명 자료.

‘소극적으로 기억하기’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면서 가장 많이 쓰인 문구 중 하나인 ‘기억하겠습니다’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겠지만, ‘소극적으로 기억하기’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소극적으로 기억하기는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참사를 망각시키는 정부 등의 압력에 저항하여 참사를 제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군사 정권 시절부터, 대구 참사,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강도는 시대나 참사마다 다르지만 국가가 참사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는 지속되어왔다. 세월호 참사에 집중해보면, 세월호 추모 공원이 제대로 지어지지 못하게 하거나, 최근들어선 총선 이후에 방영되는 세월호 10주기 다큐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4월 방영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제작까지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런 압력에 대항해 참사를 잊지 않고, 참사를 제도화하겠다는 소극적 기억 역시 참사를 기억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적극적으로 기억하기’는 ‘소극적으로 기억하기’의 단순히 잊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무엇을, 어떻게’기억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최성용 청년연구자는 참사를 소극적으로만 기억할 경우, 기억이 제도화되게 되면서 경직되고 의미가 줄어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기억하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억의 제도화의 대표적인 예시로 박물관을 이야기해주셔서 더 와닿았는데, 중요한 역사를 박물관에 기념하고 전시하여 제도화하는 순간, 잊혀지지는 않더라도 뭔가 더 딱딱한 느낌이 들고 재미가 없다. 우리가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참사로부터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억의 제도화가 아니라 기억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기억의 사회화를 위해 대표적으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안전’과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다.

 - 함께 만들어 가는 ‘안전’과 ‘세월호’의 의미.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이후, 사람들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의견에 대부분 공감하였다. 하지만 그 ‘안전’의 범위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당시에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어른들은 결과적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지 못해 대구 지하철 참사,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들을 만들어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께서 ‘안전’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게 쉽지 않은 작업임을 이태원 참사의 예시를 통해 설명해주었다. 당시 경찰 인력을 마약수사에 많이 배치한 것도 일종의 ‘안전’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폴리스라인 등 거리 안전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해 참사가 발생하였다. 이처럼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신중하게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

또한, 최성용 청년연구자님은 ‘세월호’의 의미는 포괄적이고 유동적임을 설명해주셨다.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단순히 세월호 참사 순간, 피해 학생들에게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해 열리는 세월호 집회, 유가족들의 운동, 4월 16일에 맞춰 노란리본을 달고 기억하는 시민들까지 포함한다. 즉, 사회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더 넓고, 지속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세월호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기억해 나가고, 그 기억을 토대로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느냐에 따라 세월호 참사의 의미는 바뀔 수 있다. 이번 ‘함께, 기억’을 포함한 시민들의 노력이 세월호를 단순히 아팠던 참사를 넘어, 반성하고 성장하는 토대로 바꿀 수 있길 바란다.   

이슈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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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사회를 함께 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세월호의 의미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게 새롭네요.

기억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