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전세사기 피해자 연속기고] 5. 아파트 보증금 못 받는다니... 날벼락 같은 전세 사기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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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더 안전한 살 곳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

"나라는 제대로 된 대책도 없고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 

2023년 2월 28일, 첫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가 남긴 말입니다. 그 후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졌습니다. 피해자들의 죽음, 절규, 투쟁으로 2023년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제대로 된 피해 구제와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방치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전국 곳곳에서 새로운 피해 소식이 터져나오고, 기존 피해자들은 빚으로 빚을 돌려막거나 빚을 더 내서 피해주택을 떠안고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4·10 총선을 앞둔 지금도 제대로 된 피해 구제 공약과 대책은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직접 호소하고자 합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피해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공약과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 관련 릴레이 기고를 진행합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전국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답해주세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4. 3. 26.(화) 전북특별자치도 전세사기 피해자 공동간담회 현장 사진

▲ 2024. 3. 26.(화) 전북특별자치도 전세사기 피해자 공동간담회 현장 사진

안녕하십니까. 저는 나무를 만지고 디자인하는 인테리어 목수 김섭입니다. 전라북도 군산시 소재의 산북 하나리움 시티 전세사기(공공임대아파트 신탁사기)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어떤 정치인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 아니다", "개인 간에 발생한 문제이니까 국가가 책임질 수 없다"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며 대한민국이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세사기, 정말 개인 간의 분쟁이고 "나만 아니면 되는" 문제일까요? 물론 저 역시 30대, 40대로 들어서면서 세상과 적절히 타협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어느샌가 타인의 고통을 가깝게 생각하지 못했고 애써 무시한 적도 많습니다. 이런 저를 돌이켜보면 누군가에게는 전세사기 문제도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아니라는 점을 절실히 호소하고 싶습니다. 전세사기 문제는 우리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고, 어떤 특정 사람만의 피해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조금이나마 공감하실 수 있도록 제가 겪었던 피해일지를 낱낱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결혼 후 생애 첫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전 돈을 좀 더 모으자는 생각에 임대아파트를 알아보았습니다. 월세 보증금 2000만 원에 월 임대료 30만 원짜리 임대아파트(민간분양 공공임대)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한 1년 정도는 아무런 문제 없이 좋은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꿈을 꾸며 성실히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파트 공고문이 붙었습니다. 월세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없어 주민들끼리 대책회의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날벼락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회의에 참석해보니 제가 한 순간에 "대항력이 없는 불법거주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당시 주민들이 꾸린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법률적인 지식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고자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습니다.

알고보니 최초 임대사업자(공공지원 민간임대아파트(구, 뉴스테이))는 임대 의무기간 5년 중 4년을 이행하다가, 임대 의무기간 1년을 남겨두고긴 자본금 없는 다수의 민간건설사가 군산 하나리움 시티 2차아파트를 승계했습니다. 이후 이들 건설사들은 신탁사에 해당 주택을 수탁했습니다.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임대인과 신탁사 간의 신탁조항을 맺은 부동산 담보신탁 계약서라는 게 있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심지어 분양사무실에서 중개인 역할을 하는 컨설팅 업체는 자세한 정보를 고지해주지 않았습니다. 

업체가 설명한 내용은 임대인이 공실을 담보로 신탁사에 잠시 소유권을 넘겼고, 공실이 다 채워지고 임대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확보되면 곧 소유권을 원상회복시킬 것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는 수탁자인 신탁사의 동의가 있어야만 정상적인 임대차 계약이 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는 임대인이 신탁을 등기할 때 제출하는 서류인 신탁원부에 명시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즉, 저는 신탁사의 동의 없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것이므로 그 계약은 무효이고 불법 거주자 신세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서, 지식이 부족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스스로를 책망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군산시 법률공단에 자문을 구해봐도 모른다고 합니다. 신탁원부도 처음 들어봤다고 합니다. 법무사,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도 생소하다고 합니다. 법조인들도 모르는 것들을 일반 서민이 어떻게 미리 알고 피할 수 있었을까요?

군산산북 하나리움아파트 비상대책위원회의 피켓 행진 사진

▲ 군산산북 하나리움아파트 비상대책위원회의 피켓 행진 사진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의 임대아파트에 다섯 곳의 건설사가 있는데, 피해자들이 건설사와 소송을 벌이고, 채권기관, 주택도시보증공사, K신탁사와 M신탁사, 국토교통부와의 지리멸렬한 투쟁까지... 이제는 너무 지치고 힘이 듭니다. 그만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제 삶이 너무 피폐해졌고 생업, 가정생활, 대인관계까지 지장이 생겼습니다.

그나마 저는 월세 세입자입니다. 정말 다 내려놓고 월세 보증금이 차감될 때까지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고 버티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그만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아파트에는 전세 세입자도 있습니다. 고금리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생활이 빠듯하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함께 피해를 입은 주민 분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신탁사기 때문에 기초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되어 지원을 못 받으시게 된 분,
홀어머니를 모시고 야간에도 일을 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분,
다친 다리를 이끌고 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60대 어머니,
최근에 출산을 한 신혼부부까지 모든 사연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중 한 분의 눈물 어린 사연을 대신 전합니다.

"현재 모아놓은 돈, 전 재산이 보증금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사도 가지 못하고, 하자 투성이 아파트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습니다. 제 명의로 계약했는데, 제가 결혼하면서 타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남은 가족들은 아직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소지를 이전했다가 어떤 문제가 또 생길지 몰라서 세대주로 남아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엄마는 다른 주소지에 등록이 되어 있어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또, 집이 언제 공매로 넘어갈지 몰라 매일이 힘듭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 군산 하나리움 시티 피해자 전보경씨

저희는 3년을 싸운 끝에 겨우 국토교통부로부터 공매중지 유권해석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동아줄입니다. 그러나 유권해석은 말 그대로 해석이고 법률에 명시된 사항은 아니기에 대항력 없는 피해자들은 소송에서 여전히 불리한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부디 이 문제에 정부와 국회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주시길 바랍니다. 

전국 곳곳에서 이 문제를 "남일"이 아니라고 여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진다면 무너지고 병든 우리나라도 조금은 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마지막 한 명의 피해자라도 원상회복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싸우고자 합니다.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북대책위 김섭, 전보경 님 -


※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가 전국 각지의 피해자들의 사연을 접수받아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으며, 캠페인즈에도 중복게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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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겪으신 경험을 상세히 공유해주시니, '전세사기'라는 네 글자로만 접할 때보다 사안을 더 입체적이고 깊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대항력 없는 불법거주자'가 된다니 두려운 일이네요. 이런 일을 마치 '복불복'처럼 겪게 되고, 개개인이 헤쳐나가야 한다는 게 말도 안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