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함께 기억]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록을 기록하다, 다큐 <그레이존>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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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빛이 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

4월 16일을 기억하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큐<그레이존>(주현숙 감독) 상영회, 영화를 소개하는 캠페이너 제이(사진/백아인)

2024년 3월 22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다큐 <그레이존>(주현숙 감독) 상영회가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10층에서 열렸다. ‘4.16재단’과 ‘사랑의 열매’의 지원을 받아 캠페인즈가 주관한 이 상영회에서는 "함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 모인 캠페이너들 및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모여 영화를 감상하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기자란 무엇인가

세월호 다큐 <그레이존>은 흑백 사이 모호하게 연결된 기자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는 언론에게 화살이 몰렸던 사건이다. 상황이 어떠한지 언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현장의 팩트를 명확히 전달했어야 했던 언론이 우왕좌왕했던 것을 우린 기억한다. 세월호 침몰이란 속보로 심장을 철렁이게 했다가, 모두 구조되었다는 엉성한 안심을 주다가, 다시 침몰이라는 절망을 던졌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피해자 마음보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위해 몰래 혹은 억지로라도 카메라를 무기처럼 들이밀었다. 결국 2차 가해자가 되어 버린 뒤, 그들이 만난 것은 유가족들로부터 오는 강력한 불신의 벽, 그리고 섣불리 정부 눈치를 봐 버린 자신의 무능, 이도 저도 할 수 없던 무기력이었다.

그들은 취재의 사명이 있었으나, 바다 너머를 볼 수 없었고, 해경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유가족 제보보다 정부의 ‘구조하고 있다’는 말을 믿었다. 의심할 수 없었던 자신에 실망하고, 아비규환의 현장에 절망했던 기자들. 자신을 기자라 말하기조차 어려웠던 순간.


메타적으로 보기

영화는 기자들의 참회록으로 보인다. 기자들은 들고 있던 카메라를 돌려, 자신을 카메라 앞에 두고 그날을 고통스럽게 떠올려 본다. 그들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동시에 관객은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고민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다큐 <그레이존>의 한 장면(사진/캠페인즈 제공)

기자들은 10년이 지난 이제야 당시 상황을 떨어져서 가늠해보고, 어디서 단추를 잘못 끼웠는지 반추한다. 유가족들이 보고 온 현장(“구조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요!”)을 기자들이 서울 보도국에 명확히 전달하지 못하면서, 그리고 정부가 말한 ‘세월호 승객들을 구하는 중’이란 빈말을 전하면서, 진실과는 한참 어긋나 버렸다. 배 안에서 ‘당신들을 구하고 있으니 가만히 기다리라’는 방송과 ‘정부가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으니, 가만히 기다리라’는 언론은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

그럼에도 기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제 3자의 눈으로 직접 본 유일한 목격자이다. 2차 가해자이자 2차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들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던 현장을, 자신들의 고백을 통해 가까스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세월호의 진실을 기자들의 입장에서 되묻는다. ‘참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다큐 <그레이존>의 한 장면 (사진/백아인)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2024년의 우리는 10년 전 참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려 한다. 그런 가운데,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나 자신은 유족도, 현장 기자도 아닌, 같은 나라의 국민이지만 달리 보면 행성처럼 동떨어진 일반 시민에 불과한데, 이 기억과 기록을 어떻게 끄집어내고 드러내야 하는가, 고. 감히 나의 펜 끝을 세월호 참사에 댈 수 있는가, 고. 하지만 그래야만 한다. 회색지대에 선 자들은 어쩌면 당시의 기자들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무엇이 진정 팩트인가, 우리가 보는 세계는 진도 팽목항의 어디쯤인가, 우리 역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무엇보다 ‘왜’를 물어야 한다. 왜 비슷한 참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가. 왜 진실은 아직도 정치적인 이유로 가려지거나 전달되지 못하는가. 나는 왜 기록하는가. 그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누구나 참사의 희생자가 될 수도, 유가족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재(人災)로 인한 참사의 희생자는, 구해질 수도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담으려는 노력이다. 기억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는 일이다. 우리가 보려는 것은 단지 10년 전이 아니라 지금이고 10년 후이고, 30년 후이다. <그레이존> 안에서 자주 악몽에 시달린다는 한 기자의 말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수십 번이고 같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세월호 선실에 앉아 있다. 죽은 이들 사이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과연 지금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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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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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의 사명이 있었으나, 바다 너머를 볼 수 없었고, 해경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유가족 제보보다 정부의 ‘구조하고 있다’는 말을 믿었다. 의심할 수 없었던 자신에 실망하고, 아비규환의 현장에 절망했던 기자들. 자신을 기자라 말하기조차 어려웠던 순간.“ 이 문장이 마음에 남습니다. 사명으로 다가섰어도 정부와 시민 사이 가교역할을 하지 못하고 어긋나버린 채 가해자가 되기도 한 언론의 모습에서 그들의 책임감과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의심하는 태도가 나란히 공존할 수 있는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도 공동체상영에서 함께 영화를 봤는데요,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장 영상을 오랜만에 보니 정말 울컥하고 힘들더라구요. 그리고 기자들이 (여전히 비판은 유효하겠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이런 트라우마가 있기도 하구나라는 걸 이야기를 통해 들을 기회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