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 단체에 동물 학대… 이 모순에 경악을 감출 수 없네요.

난기류가 1979년부터 2020년 사이에 55%나 증가했네요. 지상에서 뿜어내는 탄소배출, 기후변화로 인한 여파도 이젠 무시할 수 없고 그로 인한 비행기 사고도 증가할 것 같아요.

웃음에도 알맹이가 있어야하는데 최근에 나오는 숏츠/릴스에서 나오는 유머콘텐츠는 우습고 남는 게 없어요. 현 시대 개그에 대해 이경규씨가 잘 지적한 것 같아요.

락 없는 락페, 재즈 없는 재페라면 명칭을 음악뷔페로 불러야하지 않을까요.

2016년 10월 23일 자 기사입니다. 퇴근 후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보스토크 창간호를 샀는데, 창간호 주제가 ‘페미니즘: 반격하는 여성들’ 이더군요. 

기사를 가져온 이유는 이야기를 넘겨보다 일민미술관 큐레이터였던 함영준씨를 통해 느낀 바를 적어보고자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그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고 그가 150여 명의 여성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음을 알았습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기사 작성일 기준) 1년 전 동아일보 칼럼에서 페미니즘 옹호 칼럼도 남겼다는 것인데요. 평소에도페미니스트라고 자처했다는 말에 남성에게 페미니즘을 쥐어주면 되려 악용할 우려도 있음에 두렵더라고요.. 조심해야한다 늘 긴장하듯 지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멤돌았습니다.

서울대 집단성범죄 사건 BBC 버닝썬 다큐 공개

그냥 힘이 빠져요. 이 기사들을 읽으면요.. 남성들이 여성을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잖아요. 여전히 피해자는 고통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가해자는 컴백 준비를 하는 게 너무 어처구니 없구, 경찰과 검찰은 눈치보느라 수사도 제대로 안하는 듯하고요.. 가해자가 떵떵거리기 쉬운, 범죄국가가 되어만 가는 거 같아요.

경직된 구조가 경찰 내에 심한 거 같아요. 오히려 수사를 진행해야할 곳이 방해만 하는 거 같단 인식이
강해서 미디어에서 경찰의 이미지가 답답하다는 인식으로 다가오는 거 같아요.

올해 1월 29일에 작성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코멘트를 쓰는 2호선 신도림가는 지하철은 아침에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데요. 어딜가나 사람들도 많은 이유가 기업과 인프라가 서울 및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어서겠죠.. 스트레스가 가중되면 균열과 파열이 일어나듯, 지금이 그 전조가 현재진행형인 것 같네요.

. “발달장애나 지적장애는 몸이 불편하지는 않으니까 솔직히 ‘그냥 다른 미용실 가면 안 되나’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소통하기가 힘드니까 여간 눈치를 보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내 몸만 알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장애도 다 다르더라.” 이곳의 목표는 하나다. 손님이 누구든 이곳에서만은 ‘편하게’ 쉬다 가는 것. 그래서 미용실 이름이 ‘휴(休)’다.

제차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사용한 걸 보니 기술의 기저엔 신뢰와 윤리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 기사라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 의견이 분분하고 해결해야할 관문도 많습니다..

결혼, 육아, 학업, 취직 그리고 노년 부양… 이 모든 것이 결국 돈이 (많이) 있어야 장기플랜을 세울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기사처럼 다가옵니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물가는 치솟고 양극화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네요.
먼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Pool이 상류층에 국한된 어린이들 사이에서 가난이라는 단어를 체감하지 못하고 공감마저 할 수 없으면 어쩌나, 그들이 ~사자 직업을 가졌을 때 극빈한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떤 조처를 취할 것인가 걱정이네요..

저출생과 기후위기도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결국 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책에서도 최상류층은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민갈 것이지만 지구에 남은 다수는 줄어든느 자원을 가지고 아득바득 살아갈 것이란 생각에 암담해지기도 하고요.. 성장과 개발 경쟁담론에서 벗어나 우리가 감각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청년들이 서울에서 자가를 마련할 기회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거 같네요. 주식이나 코인이 대박나거나 사업이 대박나거나 로또에 당첨되거나 하지 않는 한.. 스스로 노력조차도 가닿을 수 없는 집값 상승과 전세 사기까지 맞물리니 불안은 가속화될 거 같아요.

인스타그래머블 인증샷을 남기는 사이 지역민들의 피해도 덩달아 남기고 갔군요.

구미에 갔을 적에 박정희로 라는 이름이 적혀있고, 상모동에는 박정희 새마을운동기념관이 있다는 걸 보며 아직도 모자란가 싶었어요.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이들을 정작 기억하는 이들이 없다는 건, 국가가 국민을 외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하는 것인지요.

검경이 손놓고 피해자가 움직여야하고 가해자들은 활개치는 일 언제까지 반복해야되나요.

어떻게든 주머니를 착취하려는 시도의 애플을 보는 것 같아요. 어제 오늘 일만도 아니죠.

흐음… 석연치 않은 부분이 한 두곳이 아닌 거 같아요. 안전불감증이 심각해진 거 같은데, 학교 측에서는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에게 안전을 위해 조처를 취해야할 것 같네요.

피식대학 사과문을 보면서 농담도 권력일 수 있다는 지인의 말이 생각났어요. 위계는 일방적으로 기울어지는 구도인데 이번에 피식대학 메이드인 경상도 영양편은 유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위계 폭력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노인,여성,지역,자영업자를 혐오한 이들(30대/남성/수도권/300만 구독자) -피식대학에 나온 이들 중에서 수도권 출생자는 거의 없겠지만- 이 수도권 중심으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지역을 비교하는 것을 넘어 비하까지 하는 건 무례하다고 보여지구요.

코미디언들은 타인에게 웃음을 주기 이전에 사회의 부조리 특히 강자에 의한 약자의 고통을 헤아리는 감수성과 이해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블랙코미디나 수준 높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면 높은 사회적 이해도가 깔려있음을 알 수 있는데, 약자 입장에선 유쾌함을, 강자에겐 마냥 웃어 넘길 수 없는 지점을 건드리는 뼈 있는 농담은 코미디언들의 권위가 되고 선망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식대학의 개그는 전형적인 일진 놀이나 다름 없습니다. 재미 없지요. 가해자 입장에서 피해자를 조롱하는 폭력이지요. 지역민들의 말투를 어설프게 흉내내는 것도 모자라 노인과 여성들을 비하하는 표현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저 흉내만 내면 웃기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접근한 게으른 콘텐츠임을 드러낸 셈입니다.

개그는 약자 조롱이 아니라 강자를 향한 비판이 전제로 깔려야한다고 봅니다. 강자에게 빌붙으며 구독자가 떨어져나갈 것을 두려워해서 유튜브에, 지역에 직접 찾아가 반성하지 않고 사과문으로 도피하려는 행위는 게으름을 답습하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최저 시급만으로는 도저히 점심 한 끼 먹기가 벅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