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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청년정치를 거부한다
*본 기고문은 캠페인즈x정치학교 반전의 공동 기획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2022년 12월부터 2023년 5월까지, 약 반 년 동안 <정치학교 반전>의 첫 시즌을 함께했다. ‘한국정치의 반성과 비전을 말하자’는 반전의 제안에 반응하고 모여들 사람들이 궁금해서 문을 두드린 것이 시작이었고, 살아온 배경도 정당도 관심사도 제각각인 이들을 관통한 공통의 문제의식을 수 개월간 반복적으로 탐구하면서 우리가 발 딛고 서야 할 정치의 본질은 무엇인지 하나씩 다시 차근차근 세워보며 금새 6개월을 보냈다. 그간의 여정을 매듭짓는 ‘실천선언문’ 작성을 맡았던 나는 우리의 이름으로 어떤 반성과 다짐을 최종적으로 남겨둘 것인지 거듭 고민한 끝에 첫 번째 선언의 문장을 이렇게 썼다. “첫째, 지금까지의 청년정치를 거부합니다.” *사진=정치학교 반전 1기 수료식, 2023. 05. 20 우리가 ‘지금까지의 청년정치를 거부’하기로 결심한 이유 청년정치라는 말 자체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지난 선거에 왔던 청년정치 죽지도 않고 또 왔다 말해도 어색함 없을만큼 선거철마다 특히 자주 소환된다. 하지만 이 안에 ‘청년의 삶’도 함께 소환되어 왔을까? 이제껏 정치 기득권이 청년정치를 위치시킨 자리를 살펴보면 가늠할 수 있다. 나이가 어리고 젊으니 새롭고 신선해보이는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시켜 보정효과를 톡톡히 노리고 주로 2030세대에 해당하는 스윙보터의 표심을 가져오려 애쓰지만, 정작 필요한 권한과 자리 앞에서는 ‘젊으니까 다음 번에도 기회가 있다’며 후순번을 쥐어준다. 청년다운 패기로 정치 생태계를 바꿔줄 것을 주문하지만, ‘우리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라는 전제 조건은 차마 빼놓지를 못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솔깃한 제안에 응하는 청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청년 정치인들은 이 현실을 아주 모르지 않는다. 다만 애석한 건, 알면서도 스스로를 장식품 내지 들러리로 세우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점이다. 그렇게라도 열리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지 않으면 또 얼만큼의 시간을 기다리며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존 정치 생태계에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식으로 소모되었던 청년정치를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수동적인 위치에 세우는 일, 어느 쪽에 줄 서야 더 유리할지 골몰하는 일, 의사결정 과정에 마땅히 내야할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는 일, 부당함과 불합리함을 관행으로 여기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일을 거부하지 않고서 새로운 정치를 말한다는 건 모순이다. 시민들이 ‘청년정치’에 실망하면서도 거듭 기대를 걸어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너무 많은 걸 손에 쥐어버린 이들은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말과 행동, 결단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아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믿기에 약간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청년정치가 복원해야 할 기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본질은 ‘젊은 나이로의 교체’가 아닌 ‘세계관의 교체’ 그렇다면 청년정치의 주체가 되겠다고 나선 우리는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얼만큼 제대로 준비하고 있을까? <정치학교 반전> 졸업 이후 몇몇 동료들과 그동안의 고민과 논의를 숙성시켜 실체가 있는 행동으로 전환해나가기 위한 그룹을 만들었다. 첫 모임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일곱가지 원칙을 정했다. 만장일치로 채택된 첫 번째 원칙은 “나이가 아닌 감각과 대안으로 승부한다” 였다.  그동안 청년정치인들이 자주 쓰던 핵심 구호는 ‘나이가 어린/젊은 사람에게도 기회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일견 필요한 주장이다. 제21대 국회에서 2030대 의원은 2.4%에 불과하다. 지방의회의 경우 약 10%에 해당하지만, 30%에 달하는 청년세대 유권자를 대변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수치다. 하지만 ‘청년정치는 다르다’고 말하려는 이들이라면, 젊음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젊음을 바탕에 둔 대안과 방향은 어떻게 다른지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5-10년 뒤에 거대한 현실의 문제로 닥칠 디지털 전환, 기후위기, 외교-안보위협, 지역소멸 등과 이로 인해 생겨날 새로운 유형의 불평등을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문제로써 어떻게 유능하게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청년정치인이 주류에 설 수 있도록 하는 힘의 본질은 ‘젊은 나이로의 교체’가 아닌 ‘세계관의 교체’에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과거 선배세대의 성공 사례만을 답습하거나 관성적 사고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가 가장 잘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문법으로 이 다음을 상상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시민들에게 유효한 미래는 이 뱡향이라고 설득하고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지금껏 청년정치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그룹 단위에서 이러한 논의가 제대로 깊이있게 전개된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본질을 잃은 기득권 정치를 비판하기 전에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미지=정치의 본질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 가치-비전 수립 및 미래 의제 우선순위 세우기 (2023. 10~) 청년 정치인들만의 개인기로 돌파 가능할까 그렇지만 동력을 잃은 청년정치의 현주소의 책임을 과연 청년 정치인 개개인에게 오롯이 돌릴 수 있을까. 분명 그간의 청년정치가 보여준 행보엔 아쉬운 지점이 많지만, 동시에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앞선 제안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정치 영역에서는 꽤 높은 수준의 역량과 자질이 요구된다. 충분한 훈련의 기회와 준비의 공간이 필요한 이유다. 흔히 청년정치의 비교 사례로 언급되는 유럽의 어느 젊은 총리나 국회의원들 역시 반짝 탄생하지 않았다. 10대 시절부터 정당 내외에서 꾸준하게 훈련하고 실력을 쌓을 여건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요 정당에서는 이런 당내 인재 양성 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청년정치를 그저 소모하고 있으니 ‘정치학교 반전’과 같은 기획이 정당 바깥에서 생겨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렇듯 준비운동을 할 여건은 하나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출전하기 위한 장벽은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다. 출마를 위한 각종 제반비용은 물론이고 유권자와의 연결이나 당 내외 네트워크까지, 청년 정치인은 이미 완벽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할 수 밖에 없다. 기울기를 임의로라도 조정하고 그나마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어떻게든 당내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의 신임을 받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개인의 신념과 비전을 펼치기 쉽지 않은 이유다. 이런 고질적인 시스템과 구조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청년 정치인 개개인만을 비판할 수는 없다.  더 이상 망가진 정치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어서 뭐라도 직접 해보겠다고 나선 친구,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수 번을 다짐한 것들이 때때로 꺾이고 무너지고 길을 잃기도 하면서 실망하는 날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존재와 가지고 싶은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끝내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손쉽게 밀려나고 지워졌던 우리 세대의 이름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세우고, 유효한 힘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구조적 문제와 현실의 한계를 지적하되 비판자의 위치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선명히 제시하며, 근거있는 희망을 품고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해나가자.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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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망했습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세요.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2월 첫째 주 by. 🍊산디 1. 우리가 끝내야 하는 싸움 🦜지난 월요일 레터에서 소개드린 것처럼,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한 성착취물 제작 툴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묘사한 이미지가 X에서 널리 퍼졌습니다. X가 포스트를 차단하기 전까지 걸린 시간은 17시간. 포스트는 4,500만 번 이상 조회되었습니다. 그렇게 테일러 스위프트는 X에서 검색되지 않도록 차단되어야 했습니다. MS는 이번 성착취물 제작에 활용된 생성형 AI 툴의 허점을 개선했다고 밝혔습니다. 미 상원은 관련 입법을 서두르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성착취물의 유통이 잠잠해졌을 뿐,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가 과연 디지털 성폭력을 잠재울 것이라 낙관하기도 어렵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딥페이크 기술의 ‘혁신’과 이를 이용해 여성을 ‘비인간화’한 사례는 숱하게 많았습니다. 반복되는 디지털 성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은 스스로를 지켜왔습니다. 기술과 법만으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끝내야 하는 싸움입니다. 2. AI: 당신은 사망했습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세요. AI의 쓸모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AI 행정 역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AI는 자주 틀립니다. 인도 하리아나 주정부는 노인 수당 지급 수령자를 판단하기 위해 알고리즘 시스템을 도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알고리즘은 수 천 명의 살아있는 사람을 ‘사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수 차례 관료를 찾아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해야 했죠. AI 행정의 피해 사례는 숱하게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이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례로,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법체계는 반증되지 않는 한 컴퓨터의 판단이 법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즉,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알고리즘의 오류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죠. 관료제 등장 이후 관료의 ‘영혼 없음’은 그것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이었습니다. 하지만 AI가 행정 곳곳에 도입되기 시작했을 때,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우리는 관료의 판단과 비판적 인식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AI 시대 행정의 기능과 책임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3. 열린 오픈AI 닫힘 오픈AI가 설립 단계부터 투명성을 강조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빅테크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멀지 않았던 그 때엔 누구든지 오픈AI에게 재무제표, 이해상충 규칙 등을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사업은 (비즈니스 측면에서) 전지구적 성공을 거뒀고, 오픈AI는 단연 시장의 선두입니다. 그리고 투명성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오픈AI는 내부 운영에 대한 문서를 제한적으로만 제공하는 것으로 기업 정책을 변경했습니다. 이제 이용자는 오픈AI가 어디에 투자하고 있으며, 누구와 협력 관계에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픈AI가 스리슬쩍 폐쇄적인 벽을 쌓아 올리는 무책임한 태도에 투자사와 협력 기관들은 쾌재를 부르며 기뻐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오픈AI는 좀 더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을 겁니다. 닫힌 오픈AI를 감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는 어떤 투명성이 필요할까요? 4. 미국과 미국 중에 고르기 AI 모델 뿐만 아니라 AI 개발에 필요한 기술 인프라를 소수의 빅테크가 장악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정책적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는 최근 인터뷰에서 선택지가 ‘미국 또는 미국’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MS의 오픈AI 지분 인수, 그리고 지난 오픈AI 드라마를 통해 드러난 MS와 오픈AI의 ‘긴밀한’ 관계로 인해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의 반독점 기구도 바빠졌습니다. 미국 FTC는 기업들 간 투자 및 파트너십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고, 영국 CMA 역시 MS와 오픈AI의 파트너십의 위험성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있습니다. AI 빅테크에 대한 반독점 규제가 어떤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외부 기관들의 감독과 기업의 준법활동은 혁신 생태계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독점은 소비자 후생 저해, 정치 권력과의 결탁 등 부작용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5. 탄광의 카나리아: 글로벌 데이터 하청과 노동조합 AI는 전지구적 하청 구조를 통해 개발됩니다. AI ‘학습’을 위해 기업은 데이터 라벨링 업무를 특정 기업 또는 크라우드 소싱 플랫폼에 하청을 주는 형태이죠. 이러한 형태의 ‘마이크로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구글은 아펜(Appen)이라는 호주의 크라우드 소싱 기업과 맺었던 하청 계약을 갑작스럽게 종료했습니다. 아펜의 노동자들은 구글의 생성형 AI 서비스 바드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습니다. 하지만 구글의 계약 종료 통보로 2천여 명의 노동자의 삶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AI를 도입하는 기업과 AI를 개발하는 기업 모두 ‘우선순위 조정’을 이유로 대량 해고를 밀어 붙이고 있습니다. 와중에 알파벳의 노조 AWU(Alphabet Workers Union)의 계약 해지 비판이 눈에 띕니다. 이들은 글로벌 데이터 하청 기업의 불안정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 탄광의 카나리아와 같다고 소리 높입니다. 우리에게 길항권력이 없다면, AI가 약속하는 생산성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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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팔리는 책보다는..." 속초 독립서점 운영자의 바람
[인터뷰] 속초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 운영자 최세연                                                                                                                                                                  -인터뷰어 및 정리 : 김민준 * '세상을 바꾸는 인터뷰' 시리즈는 기존 인터뷰들과 색다른 접근(인물, 이슈 등)을 통해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김민준(오마이뉴스 시민 기자)과 김재경(연구활동가)가 함께 약 2주에 한 번  오마이뉴스, 캠페인즈, 얼룩소, 브런치에 연재합니다.  '서울공화국'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시절을 살고 있다. 그만큼 수도권으로 모든 것이 몰려들고 지방에 있던 것들도 끌어당기는 형국이다. 자연스레 지방소멸 역시 모두의 고민으로 자리잡았다. 그런 와중에 다른 방식의 삶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당연히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 서울이 아니면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당연한 삶'에 질문하는 이들에게 주목하던 와중, 속초의 <완벽한 날들>이라는 북스테이를 알게 됐다. 몇 개의 언론 기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들 중 북스테이를 운영하는 부부가 NGO 활동가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이들이 어떤 활동을 했고 그것이 북스테이 운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궁금했는데,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속초 <완벽한 날들>로 찾아갔다. 지난 12일 오전, 1층 북카페에서 최세연씨를 만났다.  활동가로 살다가 북스테이 사장으로 전환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저는 그냥 '완벽한 날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최세연입니다'라고 보통 소개합니다. 속초에서 책방을 하는 건 지금 7년이 조금 넘었네요. 해가 넘어갔으니 이제 만 8년이 됐고요."- 북스테이의 이름을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 동명의 산문집에서 가져오셨다고요. 어쩌다가 그 이름을 선택하게 됐는지, 어느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궁금합니다."이 공간에 대한 설명이 먼저 필요할 것 같아요. 2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은 주로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고, 2층은 숙소잖아요. 이 공간의 성격을 명확하게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처음에 이 공간을 구성할 때는 단순히 상품으로서의 책이 판매되는 장소보다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표방했어요. 그래서 북토크나 강연, 낭독회, 전시회 같은 걸 많이 하고 있거든요.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에 한계를 두고 싶지 않아서 자유로운 이름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당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이라는 책이 서가에 꽂혀 있었고, 사람들이 이 공간을 시간과 공간이 같이 공존하는 곳으로 인식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출판사에 연락해서 허락을 받고 그 이름을 쓰게 됐습니다."- NGO 활동가 출신이라는 점이 독특한 이력이에요.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부천의 '아시아인권문화연대'라는 단체에서 이주민 관련 활동을 했습니다. 부천은 이주의 역사가 오래된 동네인데요, 고용허가제가 도입되기도 전인 1990년대에 산업연수생 제도로 외국인을 받아서 고용했던 공장들이 많았죠. 이주노동자들과 결혼 이주 여성들이 정착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성장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문제들이 생길 무렵에 제가 가서 그런 다양한 이슈들에 대처하는 활동을 했었습니다. 아내는 청소년 단체에서 일하다가 결혼하고 나서 속초로 내려왔죠."- 그렇다면 활동을 하시다가 결국 활동을 접으신 건데요, 특정한 계기가 있었을까요?"사실 속초는 제 고향인데요, 단체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대학원에서 NGO에 관해 공부하고 있었어요. 처음에 속초에 내려온 건 고향에서 가족의 일을 돕게 돼서였고, 그 시점에 아이가 태어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수도권보다는 소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떠나오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다가 여러 가지 사정상 내려오게 됐네요."- 북스테이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도 궁금해요.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가 2008년~2009년 그때였는데 그즈음에 서울에 이런 식의 서점들이 몇 개 있었어요. 길담 서원, 책방 이음, 레드북스가 대표적이죠. 그 공간의 매력을 느껴서 그걸 소재로 논문을 쓰던 시기였어요. 그곳에서는 늘 세미나나 모임, 저자 초청 북토크 등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런 지점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활동가로 살다가 그만두고 집안일을 돕던 시기에 아내가 그런 공간을 꾸리는 일을 지금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했어요."- 활동가로 살다가 북스테이를 운영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저는 그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요. 두 가지 일 모두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활동가로 살았을 때는 이주민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과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그걸 실제로 구현해내는 시도를 했어요.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보면 책방을 운영하는 것도 비슷해요. 주류적인 관점에서는 포착하기 어렵지만 놓치지 말아야 하는 영역들이 있는데, 그걸 책을 통해서 목소리를 내고 관련 활동을 해서 환기를 시키는 거죠. 여기서 아주 작게,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달까요?"  - 그러면 활동을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봐도 되겠군요. "그렇죠. 현장에 몸담고 있었을 때 쌓았던 감 같은 것들도 있고, 활동하면서 느꼈던 한계나 저 스스로 느꼈던 문제점들도 되돌아보죠. 하고자 하는 건 비슷하지만 방식을 바꾸고 싶을 때, 과거의 경험이 토대가 되니까 가능한 것 같네요. 이 공간이 그저 커피나 빵을 파는 공간일 뿐이라면 그런 경험들이 별것 아니겠지만, 그때 당시의 저의 경력이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지금은 장사를 하는 거기도 하잖아요. 내 사업을 하는 차원으로 넘어가면 내가 해봤던 일이 아닌 일을 해본다는 점에서 고민이 되는 점은 없었나요? "이미 본업을 갖고 있으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는 방식으로 참여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차원인 건데, 물론 저는 그렇게 딱 구분을 하고 있진 않아요. 경제적인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벌어야 하고, 그렇지만 돈만 벌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아예 발길을 끊고 외면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 지역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일에 적극적인 것 같아요. 어쨌든 고향이다 보니 속초라는 공간에 애정이 더 있으시겠네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다면.  "저는 속초에 정착하게 되지 않았더라도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목소리를 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지금 제 세대의 활동가들이 많이 줄고 있고, 특히 지방은 더 줄고 있거든요. 자기가 사는 동네에 관심을 두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그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시도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껴요. 지방의 경우 특히 그런 분들이 목소리를 내려고 할 때 옆에서 같이 하고 배워 나가는 과정이 있어야 그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거든요.부천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40대 초반의 분들이 허리 세대를 맡고 있었는데, 저희 세대로 넘어오면서 운동의 방식도 많이 바뀌었고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워지고 있어요. 그래서 속초로 이사 왔을 때도 지역 문제에 대해 목소리 내는 분들을 열심히 찾아봤어요, 이전부터 같이 힘을 보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부채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본인의 생계도 뒤로 하고 열심히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계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손을 보태고자 했던 겁니다."점차 명확해지는 공간의 색깔, 와야 할 이유가 분명한 이들이 오는 게 좋아 - SNS에 보이는 문구를 보면 '뚝심'이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유명인사나 작가에 기대거나 유행을 좇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 있는 책", "큰 서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은 제외", "기득권의 목소리나 베스트셀러를 반복해서 전달하지 않는 것") 분명 유행이나 흐름을 통해서도 시대정신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텐데, 이런 방향으로 가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일이 어렵진 않았나요?"그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요. 주류적인 것이라고 해서 옳은 건 아니니까,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가치를 책을 통해서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계시고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더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런 책들을 모두 취급할 순 없지만, 최선을 다해서 소개하는 것이 서점원인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이슈는 처음 서점 문을 열 때부터 계속 논의되던 이슈고, 최근에는 기후위기, 비거니즘 관련 책들이 계속 많아지고 있어요. 결국, 잘 팔리는 책보다는 우리가 꼭 읽어야 하는 책 위주로 같이 읽으려고 하는 거죠."- 사실 사회적인 발언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도 업이 활동가라면 자연스러운데, 어쨌거나 소규모 공간과 자본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책방 사장'의 정체성으로 '소비자'를 만나야 하는 상황에서는 조금 걱정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특정한 프레임으로 이 공간을 가둬두는 시선에 대해선 우려하진 않으시나요?"오히려 더 잘됐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곳에 오는 손님을 먼저 규정을 한 번 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으로부터 이곳이 좋은 공간으로 기억될 수는 없고, 또 그런 욕심도 전혀 없거든요. 모든 사람이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사러 여기 올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공간을 구성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는 건 또 아니에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본인의 관심사가 겹쳐서 반가워하는 사람들, 평소에 읽지 못한 분야의 책을 만나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계속 접하고 있거든요. 혹은 '한강 작가의 소설을 찾고 싶다'고 생각해서 왔는데 다른 색다른 책을 알게 됐을 수도 있고요. 그런 전반적인 경험들이 이 공간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특정한 시선에 갇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꼭 손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번 규정을 하고 손님들을 만나 보니까 어떻던가요?"7년의 초반에는 공간의 색깔이 지금만큼 짙지는 않았어요. 여러 가지 디저트들도 팔고 책도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것들을 입고해보기도 했었거든요. 근데 그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공간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까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의 성격도 명확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여기를 와야 할 이유가 명확하게 있는 분들이 찾아 와주시면 저는 너무 좋죠(웃음)."-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꽤 오래됐는데요, 그런 와중에 작은 책방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방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여기서 하는 모든 일이 사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인 건 맞아요. 여기서 독서 모임도 여는데, 저희 모두 '이 모임 안 했으면 이 책 끝까지 안 읽었을 것 같다', '독서 모임 안 했으면 1년에 이만큼 책 안 읽었다' 이러거든요.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를 동네의 작은 서점이 직접 해결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고는 있어요. 결국, 꾸준히 활동해야 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기구독 서비스도 하는 중입니다. 반응이 좋나요?"계속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기간이 끝나면 연장하고 또 연장하는 방식으로요. 그런데 사실 책은 취향이잖아요? 드라마도 아무리 누가 재밌다고 한들 다른 사람은 재미가 없을 수 있잖아요.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소설, 에세이를 골라서 보내드리기도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의 책도 골고루 큐레이션하다 보니 재미없을 수 있는 책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또 받아서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이 공간이 오래 남았으면 한다면서 책을 사고 공간을 방문하신다고 말씀하기도 해요.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하죠. 프렌차이즈 카페에 갈 때 '이 카페가 우리 동네에 계속 오래 남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마음으로 가진 않잖아요? 여기 오는 분들은 그런 감정을 가져주시니 과분하게 감사드린 마음입니다." - 책방을 계속 운영하게 만드는 마음가짐이 궁금해요. "그냥 열심히, 잘 하려고 노력해요. 책방이라는 공간은 신경을 조금이라도 안 쓰면 티가 많이 나거든요. 주인인 저뿐만 아니라 오시는 분들한테도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구성이 허술하고 신간이 별로 없으면, '이 책방은 지금 서가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해요. 사회적인 이슈에 빠르게 대처하는지 아닌지 역시 책방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죠."- 공간을 열심히, 잘 꾸려 나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일단 열심히 출근하는 게 중요합니다(웃음). 책은 책대로, 기획은 기획대로 꾸준하게 해나가야 하는 것도 중요한데요, 하필이면 이름이 '완벽한 날들'이니까 마치 여기가 완벽한 공간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 수도 있고… 이 책방에 오는 길이 편하지도 않은데 공간에 별다른 게 없으면 실망할 수밖에 없죠. 카페는 카페대로, 숙소는 숙소대로, 북토크는 북토크대로 완벽하게 준비하자는 생각을 늘 해요."  - 기획은 어떻게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여기서 지내면서 필요할 것 같은 일들을 그때그때 도모해요. 예전에는 다양한 걸 많이 해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진 못하고, 꼭 해야 하는 것들 위주로만 하고 있어요. 지원사업도 지금 한림대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것만 하고 있어요, 그렇게 지원금을 받으면 대부분 강사료로 드리는데요, 복잡하게 서류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아요.예전에 일할 때는 결과보고할 때 개요부터 줄줄이 다 써야 하고 성과도 명확해야 했거든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원사업을 하거나 단체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기가 어렵잖아요. 지금 기획을 할 때는 당장의 성과보다는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지를 먼저 따져요, 인문학 서적을 주로 다루는 공간에서 정량적인 평가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요."-  이 공간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나요?"프랑스의 셰익스피어 같은 서점은 어떤 유명한 작가가 와서 글을 쓴 곳이라거나 하는 등으로 기억이 되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도 아닐뿐더러, 속초에 이미 유명한 서점들이 많아서 저희가 막 '속초를 대표하는 서점!' 이렇게 홍보하기도 어렵죠(웃음). 거창한 기억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고요, 지역에 소박하게 계속 존재했고, 적은 수의 손님과 모임 참석자들이 찾아왔지만 그래도 꾸준히 책을 통한 만남이 이루어졌던 공간이면 될 것 같아요. 유명하진 않지만 필요한 일을 계속했던 서점으로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장, 단기적인 계획은 어떻게 될까요?"다른 서점과 도서관, 관련 기관과 함께 우리가 책으로 지역에서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을 의논하고 있어요. 올해는 그걸 본격적으로 해나갈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많이 못 읽고 있다 보니 좀 더 많이 읽고 싶네요. 독서 모임을 하나 정도만 더 해볼까 싶기도 해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는 프로젝트를 기획해나가고자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계획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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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본업과 부업 사이 경계인, 프리랜서
[6411의 목소리] 본업과 부업 사이 경계인, 프리랜서 (2024-02-05) 안나(가명)|교통방송 리포터 2023년 설날 경부고속도로에 고향을 찾는 차량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연합뉴스 새벽 5시30분 알람이 울린다. 씻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나는 지방의 한 교통방송 리포터다. 이른 아침 방송국으로 가는 나에게 택시기사님이 넌지시 묻는다. “방송국에서 근무하세요? 멋진 일 하시네요. 저도 애청자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답하며 웃어 보인다. 아침 7시 방송국 도착. 7시15분 방송을 시작으로 15분·30분·45분. 매시간 15분 간격으로 교통정보와 기상정보를 전달한다. 낮 1시를 전후해 저녁 근무자와 교대하고 퇴근한다. 매달 새롭게 작성되는 근무표에 따라 휴무를 제외하고 한달에 20일을 출근해 꼬박 6시간가량을 근무한다. 휴무는 주말과 휴일 상관없이 근무표에 따른다. 주기적으로 바뀌는 방송국 지침도 늘 체크해야 한다. 이를테면, 업무 교대에 관한 지침과 기상정보에 추가할 내용, 방송 마무리 멘트 관련 지시사항 같은 것들이다. 광고 이렇게 한달 일해서 손에 쥐는 급여는 130만원에서 150만원 사이. 최저임금 수준이다. 2013년 입사 때나 문화체육관광부가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며 계약서를 쓰도록 한 2017년이나 그리고 2024년 지금이나 금액 수준은 큰 변함이 없다. 교통방송 리포터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더 있다. 입사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정보 방송 말고 다른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맡아 진행할 기회가 생겼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송했지만 출연료는 없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어차피 근무시간 중 추가로 방송하는 것이니 별도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는 회사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다. 한번은 리포터 근무 기준과 방송 출연료 기준이 알고 싶어 요청했다. ‘등급별로 큰 차이가 없으니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문체부가 마련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면서 추가로 방송할 경우 출연료를 따로 받게 되었지만, 교통 리포터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경우는 드물기에, 임금 총액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광고 광고 1년에 두차례 방송 개편을 앞두고 계약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임금 협상은 없다. 방송 경력이 반영되지도 않는다. 방송 1개월차도, 20년차도 출연료는 동일하다. 열심히 해서 경력을 쌓아 더 나은 방송인이 되어도 처우가 더 나아지지 않는 현실은 2~3년차 리포터들의 퇴사율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교통방송 리포터 대다수는 여성이다. 그래서 결혼과 임신은 권고 퇴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10년 남짓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결혼 뒤 출산하고 방송국에 복귀한 리포터는 단 한명뿐이다. 당시 출산으로 인해 자리를 비우게 될 리포터의 업무를 다른 리포터 10명이 대신하겠다고 회사를 설득해, 겨우 퇴사 아닌 한달 출산휴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후로 그런 요청이 다시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었고, 결혼하고 임신한 리포터는 퇴사 권고에 울면서 방송국을 떠났다. 그렇게 결혼과 임신 뒤 퇴사는 자연스러운 수순이 됐다. 광고 방송국 정규직 직원들은 말한다. 잠깐 와서 방송하고 돈 벌 수 있어 좋겠다고. 하지만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동일한 출연료를 받고, 결혼하고 출산하면 퇴사 권유가 이어지고, 퇴직금도 정년 보장도 없는 하루살이 인생임을 안다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실시간 교통정보 방송 덕분에 지·정체 구간을 피해 목적지에 도착했다거나, 일하기 수월하다는 각종 업무 차량 기사님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면 보람도 느끼고 기쁘다. 하지만, 교통방송의 핵심 업무인 교통정보 전달을 담당하는 리포터로서의 존중도, 최소한의 권리도, 정당한 대가도 없는 프리랜서로서의 만족은 또 다른 문제다. 좋아하는 ‘일’과 ‘생계’ 사이의 고민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리포터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해 다른 일을 병행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랜서는 경계인이다. 본업과 부업의 경계, 소속과 독립의 경계, 자유와 계약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한다. 경계인으로서가 아닌 직업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나의 ‘직업’을 진정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나의 ‘일’은 사랑하지만, 나의 ‘직업’을 사랑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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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재일동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6411의 목소리] 재일동포는 ‘투명인간’이 아닙니다 (2022-06-08) 공경순 | 재일동포 3세 한국·일본·미국에서 펼쳐지는 재일동포 4대의 가족사를 다룬 드라마 파친코.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 3세입니다. 일본에서 나서 자랐지만 민족교육을 받아 제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제 성격의 일부를 만든 것은 민족교육에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민족학교에서는 차별을 별로 못 느끼고 컸습니다. 제가 일본 사회에서 크게 차별을 느꼈던 때는 다 커서 어른으로 살아가게 되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벌써 20년도 지난 이야기여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걸림돌이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난 건데, 사회 초년생 때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집 계약을 할 수 없어 회사에서 빌려줬습니다. 그때 저는 “그래, 안 빌려준다면 빌려주는 길을 꼭 찾아올 거야”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낙담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되게 하는 길을 찾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빌린 건 아니니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네요. 그렇지만 굴하는 모습만은 보여주기 싫었던 그 시절이 기억납니다. 광고 제가 한국에 온 지 11년이 흘렀습니다. 한국에 오면 차별이 없을 거라는 기대를 살짝 했지요. 저는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니깐요.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제가 한국에 넘어온 11년 전에는 아직은 거소신고증을 갖고 생활을 해야 하는 등 여러 면에서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그 흔한 네이버 아이디 등록도 힘들었고, 핸드폰도 남편 명의로 개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몇년이 흘러 거소신고증이 ‘주민등록증’으로 바뀐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생성되면 이제 나는 이 나라에서 내국인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일부 편해진 면도 있었으나 외국인 취급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외국인이 나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습니다. 요새 대포통장 때문에 법이 강화된 건 이해하는데 은행에 가면 저희는 늘 외국인으로 분류가 됩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줘도 전산에 외국인으로 뜹니다.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외국인인 셈입니다. 그런데 다문화가정 혜택에서는 제외됩니다. 어린이집 대기를 걸 때도 다문화가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내국인으로 대기 줄을 섭니다. 왜냐고요? 그냥 법을 따랐을 뿐이라고 답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외국인도 내국인도 아닌 법의 중간에 낀 ‘투명인간’이 된 것입니다. 광고 광고 작년에 제 명의 집을 매도할 일이 있었는데 내국인이 필요한 서류를 다 준비했으나 매도하는 날이 되니 세무서에서 세무 관련 서류를 떼오라고 하더군요. 부동산 계약용 인감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세무 관련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세무서에 달려갔는데 그 서류를 떼는 데 2~3일 걸린다고 했습니다. 계약이 엎어질 수도 있는 큰 문제였습니다. 세무서 직원에게 빌고 빌었더니 다행히 빨리 대처해줘 그날 매도를 무사히 할 수 있었으나,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재일동포는 법 사이에 낀 투명인간이구나’라고 다시금 느꼈습니다. 재일동포 사회는 커뮤니티 사회입니다. 힘든 일이 많은 속에서도 작은 동네 안에서 서로 돕고 살았지요. 저는 그런 환경이 그리워설까요, 김포지역 한 봉사 모임에서 2018년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 중인데요, 소외계층 분들에게 힘이 되는 글귀를 써드린 액자를 드리거나 사랑의 글귀를 담은 머그컵을 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경기도지사 표창도 받아보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이런 큰 상을 받게 될 줄 생각도 못 했지요. 광고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지금 이제는 외롭지도 않고 내 편이 많아서 든든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법 안에서는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일본에서 조선사람으로서 꿋꿋이 살아왔는데, 한국에 와보니 ‘내 나라는 어디일까?’ 헤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그냥 포기해버리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평생 외국인도 아닌, 내국인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려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를 가든 늘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슬프기도 합니다. ‘재일동포’라는 존재가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에 오래 살았지만 한국 국적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 왜 그들은 국적을 바꾸지 않을까요? 재일동포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일제강점기의 아픔입니다. 제가 캘리그라피를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재일동포 공경순’이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캘리그라피 글귀에도 재일동포에 관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자주 담습니다. 수십년이 지나도 조국을 잊지 않고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재일동포를 더 알리고 싶고 한국 사회에서 더불어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그런 ‘끼인’ 존재가 아닌, 저희 재일동포를 알아주세요. 저희도 같은 민족입니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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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마지막 비상구, 기후정치
‘기후선거’, ‘기후정치’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기후운동 진영은 2020년 21대 총선과 2022년 20대 대선에서 각각 ‘기후총선’과 ‘기후대선’을 주창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후이슈는 선거이슈로 부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유야 많겠지만 ‘위성정당’ 논란과 거대 양당의 ‘정권심판’ 프레임 속에서 기후이슈는 장식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끔 언론에 소개되는 다른 나라의 ‘기후투표’ 사례가 부럽기도 하고,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기후위기 시대와 동떨어진 대한민국의 고착된 정치 질서에 냉소를 보내기도 합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재난, 올해 22대 총선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니, 녹색전환을 위한 어떤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는 것 못지않게 현실의 정치 지형과 사회운동의 역량 그리고 국민 여론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1월 22일, 방대한 샘플을 통해 발표된 <기후위기 인식 설문조사>(녹색전환연구소,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 공동 주관, 17개 시도별로 1,000명씩 총 17,000명)를 통해 기후투표의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겠습니다. 전체 응답자 중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당에게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응답이 60%가 넘게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평소 지지 정당과 다르더라도’, 그런 의견 분포가 확인됐다는 점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리고 기후정보 인지가 높고 기후위기에 민감하게 느끼면서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할 의향이 있는 ‘기후유권자’가 33%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국민 1/3 정도가 기후유권자로 볼 수 있습니다. 공동 주관 기관의 연구자들은 이 숫자가 투표장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는 합니다만, 기후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들이 상당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 중 ‘이번 총선에서 후보 공약 중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를 묻는 다른 질문에 대해서 기후이슈는 경제, 복지, 정치 이슈 등에 비해 응답 비중이 낮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아래 표처럼 기후유권자로 호명되는 집단에서도 비슷한 비중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33%와 60%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강조하듯이, 이번 설문조사는 단순히 기후이슈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별, 계층별, 연령별, 지역별, 정치성향별, 가치지향별 등 차이와 특성을 파악하여 기후총선 캠페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겠습니다.  자료: 녹색전환연구소 외, <기후위기 인식 설문조사>(2024.1.22., 프레스센터) 그럼에도 몇 가지 의문이 듭니다. ‘기후투표 → 기후국회 → 기후정치 → 기후대응’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기후유권자의 사표를 방지할 수 있을까요? 현행 선거제도와 정당체계가 기후선거에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소수 진보정당을 포함해 다양한 정당의 원내 진출이 어려워서 거대 양당체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사 제3당이 새롭게 등장하더라도, 21대 국회와 달리 기후국회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너무 비관적인가요?). 기후이슈가 정책공약집에 있다고 해서 총선이슈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후유권자는 누구일까요? 기후의제가 무엇인지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대중교통(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자원 재활용 강화 등에 대한 찬성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은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탄소세 도입에 대해서도 국민들 사이에서 일정한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RE100(재생에너지)과 CFE(무탄소에너지)를 가르는 쟁점은 원자력에 대한 입장 차이입니다. 원자력 찬성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친원전-탈원전’ 논란이 정당 지지(여당-야당)와 어느 정도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원자력과 관련해서 기후유권자를 규정하는 판단은 다분히 자의적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습니다. 셋째, 누구나 기후위기를 말합니다. 그만큼 보편적인 이슈이지만, 핵심 쟁점은 당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책임 논쟁은 주로 선진국과 개도국·빈국 사이에 발생하지만, 계급·계층별로도 다루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자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온실가스의 직·간접적 배출량이 달라집니다. 기후위기의 취약성도 마찬가지이고, 적응 역량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탄소 불평등 때문에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원칙과 방향에 대해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적·지역적·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에너지, 산업, 교통, 건물, 농축수산, 폐기물, 흡수원 등 여러 부문의 정책 수단들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 등을 적극 반영해야 합니다. 경제, 복지, 노동 등 모든 정책에서 좌·우의 관점이 있는 것처럼, 기후정책에서도 정치적 균열을 인정하고 공론화를 충분하게 하는 태도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현재 주요 정당 간 선거 경쟁의 모습은 이런 (잠재적) 갈등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대한민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최소한 40%(2018년 대비)를 감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2025년에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상향하여 유엔에 제출해야 합니다. 아래 표는 국제적 맥락을 고려해 2030년을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정치 일정입니다. 2023년까지 과거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초기 시간표에서 많은 것을 놓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을 정도로 시간에 쫓겨서는 안 되겠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자료: 이정필, “다가오는 총선, ‘기후선거’ 가능할까”, 프레시안(2024.1.16.) 기후 의제를 단순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고 복잡하게 꼬아서, 이 글이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기후유권자입니까? 기후유권자는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까요? 기후유권자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4월 10일이 지난 어느 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겠지요.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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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총선, 기후정의운동의 핵심 요구로 ‘공공재생에너지’를 제안한다.
“지옥문이 열렸다” 지난 해 유엔기후정상회의에서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한 말입니다. 과학자들은 전지구 온실가스 배출이 다시 증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도 지속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파리협정에서 정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막자는 목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도 경고합니다. 이런 말과 숫자로는 실감이 나질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폭염, 가뭄, 산불, 홍수, 태풍, 한파 등 기후재난이 속출하고, 그 속에서 가족을 잃고 삶을 송두리째 뽑힌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현실입니다. ‘기후우울’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위기 속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절박하게 묻게 됩니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천명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발표를 했지만, 기후위기에서 벗어날 만큼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력 부문만 보더라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아직 10%도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OECD 국가들 중에서 꼴지 그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 윤석열 정부는 핵발전을 줄여간다는 지구적 흐름에 역행하면서, 오히려 재생에너지 확대 비중을 낮추고 있습니다. 줄어든 재생에너지 목표마저도 국가가 직접 나서기 보다는 민간 기업들이 알아서 하라고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기업들에게 돈벌이 수단으로 내주기 위해서 빼둔 것입니다.   한국 기후정의운동, 성장하고 있다 전지구 기후운동과 비슷하게, 한국의 기후운동은 2019년 9월 21일, 전국 각지에서 7천 5백명이 모이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통해서 대중운동으로 면모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전까지 전문가와 활동가를 중심으로 기후위기를 경고하고 정부 대책을 촉구하고 협의하는 거버넌스를 통해서 활동해왔다면, 이때부터는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 모아서 그들의 목소리를 묶어 내는 활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 환경운동을 지지하는 시민 뿐만 아니라, 인권, 페미니즘, 평화, 반빈곤 등의 여러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행진이 되었습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재난으로 한동안 대규모 집회와 행진이 불가능해진 상황 속에서, 기후운동은 더욱 과감해지고 또한 대중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기후위기를 우려하는 시민들은 위기를 악화시키는 ‘기후 범죄의 현장’을 쫒아가 직접행동을 벌이고 경찰에게 연행되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정부의 비민주적인 탄소중립위원회를 비판하면서 그린워싱을 고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위선적인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이 아니라 기후정의와 체제전환을 주장하는 기후정의운동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기후정의의 깃발을 앞세우고, 재작년(2022년) 9월 24일에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서울시청 광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기후부정의에 저항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작년, 거리의 3만명은 기후정의를 위해 무엇을 요구했나  2023년 기후정의운동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사건은 923 기후정의행진일 것입니다. 4월 세종에서 4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기 위해, 멈춰!”라고 외친 ‘기후정의파업’도 빼놓기ㅏ 아쉽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전국 각지에서 3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울 시청 앞 대로에 모인 923 기후정의행진을 넘어서기는 힘들 것입니다. 거대한 무리를 지은 사람들은 기후정의를 외치며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그리고 석유기업 SK와 같은 기후악당 앞으로 행진을 했습니다.  기후정의운동은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함께 불평등을 함께 살핍니다. 전세계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50%를 배출한다는 사실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도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불평등도 기후위기도 나몰라 하고, 더 많은 돈을 버는데만 온통 관심에 쏠린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기후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기후정의행진은 단순히 온실가슬 감축하라고만 주장하지 않습니다. 정부에게 죽지 않고 안전하게 살 권리, 탈화석연료와 공공재생에너지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 공공교통 확충과 이동권 보장, 신공항과 국립개발 개발 등의 생태학살 중단, 대기업과 부유층의 책임 부담과 민주주의를 요구했습니다(5대 핵심 요구는 아래 글상자 참조). 이 요구는 600 여개의 단체와 2천명이 넘는 추진위원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목소리였습니다.   1) 기후재난으로 죽지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2) 핵발전과 화석연료로부터 공공 재생에너지로,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하라 3) 철도민영화를 중단하고 공공교통 확충하여, 모두의 이동권을 보장하라 4)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신공항과 국립공원 개발 사업 중단하라 5) 대기업과 부유층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4월 총선, 기후정치의 희망을 만들 수 있을까  서울 거리 위를 3만명이 기후정의를 외치며 행진을 해도, 기득권 보수 양당 정치는 기후위기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 힘은 찾을 수도 없는 문서에 3대 위기의 하나로 기후위기를 적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 무슨 정책을 내놓고 있는지 듣지 못했습니다. 민주당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매번 기후운동에 참여했던 변호사로 정치 신인을 수혈하지만, 기후 문제로 윤석열 정부와 여당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무엇을 위해서 쓸지 알 길이 없는 정치권력 장악을 위해서만 맹렬히 다투고 있습니다.  4월 총선에서 기후정치를 싹트기 위해서, 애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자리 걱정, 집 걱정 때문에 기후 걱정은 뒤로 밀린다고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자리, 집, 기후 걱정이 서로 경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요? 기후정치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으로 현재와 미래의 삶을 위협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기업과 자본의 이윤 추구가 아니라, 지구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기후정치가 필요합니다. 작년 3만 명의 사람들이 함께 외친 공동의 요구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못된 해결책이 기후정치에 자리잡아서는 안된다 안타깝게도 기후정치의 이름을 걸면서도, 불평등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유층과 대기업에게 책임을 묻기 보다는 기본권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까지 부담을 요구하는 기후정책들(전반적 전기요금 인상과 탄소세 등)이 제시되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빌미로 에너지 민영화로 귀결될 만한 정책(전력 판매 자유화 등)을 내놓기도 합니다. 또 온실가스 배출 기업들을 처벌하기 보다는 횡재 이익을 안기고 있는 정책(배출권 거래제)을 오히려 강화하자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런 정책들과 제안들은 기후정의에 반하는 ‘잘못된 해결책’입니다. 총선에서 이런 정책들이 기후정치에 자리잡아서는 곤란합니다.  정치인들이 기후 이야기를 언급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기후정치를 하고 있다 아니다를 가늠하려는 단순한 판단을 넘어서야 합니다. 권력투쟁에만 몰두하고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는 기득권 보수 야당의 정치인들이 때대로 기후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잘못된 해결책’을 추진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며, 4대강 사업을 추진하고 핵발전을 확대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펼쳐져야 할 기후정치는 달라야 합니다.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을 추진하는 동시에, 기후위기에 가장 큰 책임을 가진 부유층과 대기업들을 규제하고 그들에게 전환 비용을 부담케 하며, 모든 사람들이 기후위기 속에서도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기후정치라야 의미가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민영화에 맞서는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을 요구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가장 핵심적 과제입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낮지만, 그나마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대부분을 민간 기업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2021년 현재, 발전시장에 참여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대략 10%만이 발전공기업이 소유, 운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현재까지 발전사업허가를 얻는 해상풍력 발전단지 77개 중 70개가 민간 기업, 특히 해외의 기업과 자본의 것입니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와중에, 재생에너지 민영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국가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별다른 투자를 하고 있지 않고,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서는 그나마의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적 투자도 줄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후위기 시대, 국가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코로나 재난 때 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 국가가 직접 나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합니다. 대규모 공적 투자에 기반하여 발전공기업 및 지자체와 사회적경제 조직이 ‘공공협력’을 통해서 재생에너지를 직접 개발하여 소유하고 운영해야 합니다. 민간 기업들이 이윤이 날지를 따져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게 놔두면 신속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불가능합니다. 최대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서 무분별한 재생에너지 개발로 지역 주민들과의 저항이 끊이질 않아, 오히려 신속한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높은 이자율의 자금을 동원하여 금융 자본의 배만 불려주고 거기에 더해 이윤까지 챙겨려는 민간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업은 전력요금의 인상만 야기할 것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을 물어서, 부유층과 대기업들에게 과세하자 노동조합, 기후환경단체, 진보정당들은 작년부터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신속하게 감축하여 기후를 보호하고, 시민들의 필수적인 에너지(전력) 이용을 기본권을 보장하며, 지역 곳곳에서 난개발로 이어지는 재생에너지 사업이 생태/인권적 개발로 이어지도록 하고, 무엇보다도 석탄발전소 폐쇄로 인해서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들에게 녹색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입니다. 국가가 대규모 재정 투자를 통해서 통합된 발전공기업을 통해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 600GW 규모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추가 설치해야 하는데, 이때 연간 20조원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한전도 엄청난 적자인데, 국가의 대규모 재정 투자가 어찌 가능한 일지 물을 수 있습니다. 고소득에 기반하여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부유층과 이윤을 위한 생산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대기업에게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율을 누진적으로 높여서,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복지 확대를 위한 소득의 재분배 정책만 아니라, 기후보호를 위한 정책이기도 합니다. 이는 단순히 재생에너지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는 차원만 아니라, 부유층들의 과잉 소득을 줄여서 과시적 소비 지출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차원도 포함됩니다. 이는 토마 피케티 같은 국제적인 경제학자들의 제안이기도 합니다.  공공재생에너지로, 기후정의에 부합하는 총선 정책을 요구하자 4월 총선,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하는데 어떤 정당과 정치인이 적합할 것인가 판단하는 리트머스가 필요하다면, 그들이 ‘공공재생에너지’를 정책과 공약으로 내세우는지 판단하면 됩니다. 노동조합, 기후환경단체 그리고 진보정당들은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을 알리고, 시민들의 지지를 모아갈 예정입니다.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다음의 보고서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http://m.ppip.or.kr/board_MRhQ99/68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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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변화] 내가 돈도 안되는 정치학 대학원을 나왔던 이유
[함께 변화]프로젝트는 우리의 더 나은 일상을 위해 더 나은 정치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보통 이런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되면, 저는 프로젝트의 필요성(당위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즉, 저는 이번 글에서 '왜 정치가 필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해요. 이 주제는 평소 제가 쓰는 글들처럼 다소 딱딱하게, 이론 중심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가볍게 '내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친구와 이야기하듯 풀어내고자 합니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 발명가, 기자, 그리고.. 여러분들의 어릴적 꿈은 무엇인가요? 대통령? 운동 선수? 다양하게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발명가'가 꿈이었습니다. 당시 위인전 중 '에디슨'의 이야기를 보고, 와 나도 발명을 멋지게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고 생각했거든요. 한참 과학상자로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중학생 때는 과고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발명가의 꿈을 그만두고 평범하게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고등학생때는 꿈이 기자였어요. 저는 여전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중학생~고등학생을 거치면서 저는 제 어머니께 논술을 배우면서 기자라는 직업이 여론 형성을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꿈 역시 고3때 접게 되었는데, 당시 교내에 있던 논문쓰기 대회에서 언론의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글을 쓰던 중 신문 기자가 생각보다 '제약'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프레이밍 이론 / 게이트키핑 이론).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언제나 제 멋대로 사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했거든요. 글을 회사와 독자 눈치를 보며 써야 한다니! 제 성격에 맞지 않았어요. 대학교도 적당히 점수 맞춰서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이렇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은 가슴 속에 묻어두나 했죠. 그러다가 지금은 사라진 '크리에이터 클럽'이라는 곳에서 활동할 기회를 얻었는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묻어두었던 '사회를 바꾸는 꿈'을 다시 실현하자고 동기 부여가 되었고, 정치학을 복수전공 했습니다. 그리고 졸업이 다가오며 제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죠. '돈'이 안되는 정치학 대학원에 들어간 이유 건국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진로를 고민하면서 교수님들과 진로 상담을 했어요. 대부분 대학생들이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던 시절, 교수님들은 '국내에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일을 할 거라면, 국내 정치학 대학원부터 진학해 봐라'라는 공통된 조언을 해주셨어요. 저 역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바꿔야 할 지 모르겠기 때문에 공부를 조금 더 해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약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연세대 정치학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그래서, 따지고 보면 돈이 되는지 안되는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정치학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저희 아버지는 공대 박사 출신이신데, 문과 대학원이 일반적으로 랩에 소속되지 않고 돈도 평균적으로 얼마 받지 못한다는 걸 모르셔서 충격받기도 하셨어요. 동료 연구자들도 다들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혹은 저처럼 가정의 지원을 받으며 생활하고 연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충 생각해봐도 경제학과, 통계학과, 경영학과 같은 학과에 비해 돈이 안될 건 알았지만, 대학원 생활 중이나 대학원 졸업 후나 꽤 막막하다는 건 들어와서 더 체감했어요. 오죽하면 제 지도 교수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정치학 때려치우고 먹고 살기 위해선 다른 과 공부 빨리 하는 게 낫다'라고 하실 정도로, 정치학은 돈이 되기 어려운 학문이에요.  그래서, 후회하냐고요? 아니요. 저는 대학원에 들어온 덕분에, 그 짧은 2년의 시간동안 정말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어요. 강제로 많은 논문을 읽고, 간단한 연구들을 진행하면서 국제정치는 물론 국내정치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머리에 그릴 수 있게 됐죠. 예를 들어, 독재 정권보다 민주주의 정부가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게 됐어요. 경제 제재를 그렇게 많이 받아도 북한이 핵을 왜 포기하지 못하는지 알게 됐어요. 한국이 왜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는지 알게 됐어요. 이런 지식들도 중요했지만, 제게는 사회 문제를 분석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제일 중요해요.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신념을 최소 20년을 넘게 관철해왔고, 그 길이 자연스럽게 '정치학'으로 연결됐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정치, 그래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해? 그렇게 졸업한 정치학 대학원생이 봤을 때, 정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냐구요? 제 대답은 '그렇다'에요. 물론 정치학과 정치는 조금 달라요. 하지만 정치학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인용하는 이스턴의 정치 개념인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 '은 그 정의부터 결국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을 뜻해요. 여기에서 '권위적'이라는 말이 어려우실 수 있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위는 '선거'등으로 발현되는 국민의 힘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캠페인즈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소수자의 권리, 동물권, AI, 교사들의 인권, 저출생 문제 등 다양한 문제에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포함되어 있어요. 우리는 이 문제들을 정치 - 선거를 통해 뽑힌 공직자들이 여론과 전문성을 고려해 법을 만들고, 그 법과 제도를 실행하고 - 하는 방법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어요. [함께 변화]프로젝트를 포함하여, 캠페이너들의 여러 활동들이 진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해요. 여러분들도 다른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무엇보다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자 '시스템'인 '정치'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채식주의자 없는 <채식주의자>
사진 : <채식주의자> 저자 한강, 출판 창비, 2022.03.28. 발행 아무도 자신을 인간으로 존중해주지 않아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는,   그래서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존재하려하는 한 여자의 슬픈 이야기 <채식주의자>는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책이다.  지금의 나와 우리가 인간답게 잘 살아있는지를 돌이켜보게 만드는 역작이다.  주인공 영혜는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맞고, 맞는 것을 가족들로부터 방관당하면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며 자라온다. ‘자신에게 관여를 하지도 않고, 자신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다’는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도 주체로서 존중받았을 리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기를 못 먹는 것은 차치하고 이상한 꿈 때문에 수개월 잠 못 이루고, 날로 여위어간다면 이유가 궁금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고생하는 것이 못내 가슴 아프고 염려되는 마음에, 왜 그런 꿈을 꾸는지 싸워도 보고, 화도 내보고, 병원도 데려가면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법 하다. 하지만 영혜의 남편은 영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깊이 알거나 관여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방치하다가 본인 삶에 폐를 끼치자 그때서야 친정에 알리는 방식으로 조치를 취한다.  때리던 아빠, 각자 살 길을 찾으며 숨죽이던 가족들, 남편, 그리고 그런 삶을 그냥, 살아낸 영혜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본인을 수없이 죽이고, 죽이는 것을 방관해온 것이다. 그렇게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죽어있는 삶을 살던 영혜는 아버지가 강아지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먹으면서 인간이라는 동물의 동물(짐승)적인 모습, 본인 내면의 폭력성을 자각한다. 그리고 누군가를 다치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부엌의 칼을 내심, 두려워한다.  그 후 남편의 삶속에 붙어있는 부속물처럼, 가정부처럼 여느 날을 보내다 일순간 도마 위의 칼이 밀리듯, 주위의 모든 것들이 밀려나간다. 그리고 꿈을 꾸기 시작한다. 사람을 죽이고 동물을 죽여서 맛있게 먹는 피 웅덩이에 비친 짐승같은, 괴물같은, 인간답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영혜는 마지막 남은 인간성을 붙든채 인간으로서의 본인을 상실하고 짐승이 되는 것을 거부하며 처절하게, 고기먹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이 영혜의 삶에 깊이 관여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채식주의자로 비추어진다. 영혜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채식주의자’ 라는 제목 자체가 아무도 이해하려들지 않는 삶, 관여해주지 않는 고립된 삶, 인간으로서, 주체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영혜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영혜를 채식주의자라 칭한다. 하지만 영혜는 단 한번도 본인을 채식주의자라 칭한 적이 없다. 그저 “저는 고기 안 먹어요.” 단호하게 말했을 뿐이다.  영혜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채식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먹기를 지양하는 것일 뿐이다. 꿈속의 날고기를 씹어 먹던 짐승이, 그 얼굴이 자신이었다는 두려움 가운데, 그런 짐승이 되기를 처절하게 거부하는 와중인 것이다.  그래서 ‘저는 고기 안 먹어요.’ 라는 영혜의 말이 ‘저는 고기를 먹던 꿈속의 그 얼굴, 그 짐승, 그 괴물이 아니에요’ 라는 말처럼 들렸고, 고기를 먹지 않는 것 너머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리려는 노력조차 해주지 않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책의 제목, <채식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무도 인간으로서 대해주지 않아 괴물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자신을, 인간이라는 일말의 자각으로 간신히 붙들고 있는 영혜의 입에, 아버지는 사정없이 고기를 밀어 넣는다. 그 후 자살을 시도하는 영혜의 모습이 마치 ‘나는 이제 인간으로서의 나를 상실해버렸다’, ‘나는 이제 그 짐승이 되어버렸다’ 울부짖으며 인간으로서의 나를 죽이는 동시에 인간으로서, 죽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후 1장 말미에 “...그러면 안돼?” 라며 뜯어먹은 동박새가 손아귀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인간으로서의 존재의식,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놓아버리고, 겉은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영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사진: Unsplash의Melanie Wasser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있나 사진 : 늑대무리 속에서 양육되다 구출된 인도소년 디나(Dina Sanichar) 나는 영혜가 꾸는 꿈이 ‘무언가로 존재하려는 욕구의 분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늑대무리 속에서 살아온 인도소년 디나는 평생 늑대의 생활양식을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 환경이 그 사람을 인간으로 대해주고 존중해주어 스스로를 인간이라는 존재로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비로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영혜는 오랜 기간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런 영혜가 끝내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여도 좋으니, 어떤 존재로서, 유의미하게 실존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꾸만 꿈꾸게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혜가 인간도 무엇도 아닌 존재라는 점에서 성적매력을 느꼈던 형부, 그런 형부로 하여금 온몸에 꽃이 그려지고, 식물로서 교합하고, 식물로 존재하는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서 영혜는 더 이상 그런 꿈을 꾸지 않게 된다. 인간이 아닌, 낯익지만 낯선, 꿈속의 얼굴을 “이제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하지 않을 거예요.” 라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영혜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기에 식물로 존재하기를 택하고, 완전한 식물이 되어간다. 영혜의 경우 극단으로 치달은 사례이긴 하지만, 영혜처럼 인간으로서 존중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잘 존재하지 못해 무너져내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곤 하지 않나.  물건 값을 계산해주는 기계 대하듯, 사람을 대하지는 않았나,  눈인사는 하고 지냈나, 크고 작은 일상 속에서 나는 얼마나 사람들을 인간으로 대우하면서 살아왔는가를 돌이켜보며, 부디 내가 수많은 '영혜'를 만드는데 일조하지 않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잘 살아있나 마음속으로 죽음을 체험함으로써, 다시 말해 자신을 극단적으로 죽음을 향해 기투함으로써, 죽음의 완전한 실존론적 가능성을 비로소 자기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여 견디어 내는 것이다…죽음에로의 선구란, 가장 독자적이고 가장 극단적 존재 가능을 이해할 가능성이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일상적 현존재는, 죽음에로의 선구를 통해, 세인-자기로부터 벗어날뿐더러 현존재의 가능한 전체 존재를 확보함으로써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 앞에 직면할 단서를 마련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죽음에 이르는 본래적 존재 : 선구 [先驅, Vorlaufen, Anticipation]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해제), 2004., 이선일) 영혜의 형부와 언니는 영혜의 모습을 보면서 하이데거가 말했던 ‘죽음에로의 선구' 를 한다.  형부는 스스로의 목숨을 쓰레기처럼 내던져버리려 했던 영혜를 보면서 일순간 무척이나 지치고, 버텨온 삶이 넌더리나고, 본인의 삶을 담아온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어진다. 십 여년 간의 작업이 그가 알았던, 혹은 안다고 믿었던 어떤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그렇게, 그런 식으로 앞으로를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에 깊은 슬럼프에 빠진다. 성실을 천성으로 여기며 인내로 꽁꽁 뭉쳐진 삶을 살아온 언니도 하혈을 하는 자기 모습과 자살을 시도하던 영혜의 모습을 겹쳐보며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단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음을, 다만 견뎌왔을 뿐임을 자각한다. 그래서 살 시간이 기한 없이 남아있음을 알고도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다. 형부도, 언니도, 영혜를 통해서 죽음을 간접 체험한 뒤 내가 없이 죽어있던 삶을 자각한다. 그리고 그런 삶에 회의를 느껴 슬럼프에 빠지거나, 자살을 시도하려 산에 오른다. 앞으로도 그런 존재로, 그런 식으로, 견디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워진 것이다.   자살하러 올라간 산길의 끝에서 언니는 자신의 목숨을 받아줄 나무를 찾지 못한다.  완강하고 삼엄하게 온몸으로 버티고 서 있는 나무들, 박명 속 일제히 푸른 불길처럼 일어서던 나무들로부터 무서우리 만큼 서늘한 생명의 말을 듣는다. 그것이 부디 생명의 말이었기를, 언니는 앞으로 인간으로서, 나로서, 잘 존재하는 삶을 살기를, 그런 결말이기를 바라면서 책을 덮었다. 사진: Unsplash의todd kent 내 삶에 내가 잘, 살아있나?  ‘그렇다’고 명쾌하게 답할 수 없어서 새로운 삶을 찾아나서게 된 것 같다.  당신은 어떠한가? 인간답게, 당신답게 잘, 살아 있나? 당신다운 삶을 응원하고 당신답지 못했던 순간을 위로하고 싶다.   오늘도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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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AI와 AI 윤리
가깝고도 먼 AI와 AI 윤리 by. 🤔어쪈 AI 윤리는 AI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로 글을 여는 이유는 둘 사이의 거리를 주제삼아 이야기해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AI 윤리 레터’에서조차 정의한 적이 없을 정도로 AI 윤리는 무어라 명확히 개념잡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다른 곳에서부터 표현을 빌려오곤 합니다. 과학기술의 윤리적·법적·사회적 함의와 영향에 대한 연구를 의미하는 ELSI(Ethical, Legal, and Social Implications)가 바로 그것입니다. ELSI는 1990년대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된 연구과제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의 유전정보를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될 때 벌어질 일들에 대한 우려가 컸던 탓에,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예산 중 일부를 ELSI에 배정한 것이죠. 대표적인 연구주제 몇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험, 채용, 사법, 교육 등의 영역에서의 공정한 유전정보 활용 방안 낙인 효과와 같은 특정 개인 및 집단에 대한 유전정보의 사회심리학적 영향 재생산권, 치료 및 진료권과 관련 의사결정에 미치는 파급력 이후 ELSI는 미국의 나노기술 이니셔티브에서 한 분과를 차지하는 등 인간 게놈 프로젝트 이후에도, 또 생명윤리 외 분야에서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최신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에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고, 더 나아가 관련 정책 설계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최근에는 RRI(Responsible Research and Innovation)라고 불리는 보다 사회에 책임있는 방식으로 연구개발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론적 프레임워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취지하에 유의미한 성과를 낸 연구 분야지만, ELSI에도 숱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ELSI가 결국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같은 특정 분야의 과학기술 이니셔티브에 종속된 과제였다는 점입니다. ELSI 연구자들이 프로젝트에 속한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입장이 되어 비판적 사고나 적극적 대안 제시 보다는 기술 개발의 정당화에 기여했다는 것이죠. 이를 두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ELSI-화 (ELSI-fication) 되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ELSI를 둘러싼 논의는 AI 윤리 레터를 비롯한 AI 윤리라는 범주 아래 이뤄지는 여러 활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AI 윤리는 AI 기술 개발에 보다 적극적이고 비판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AI 윤리가 하나의 분야로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기술 개발 주체가 ‘AI 윤리 전문가’에게 관련 문제 해결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 윤리는 단순히 AI 기술이 야기하는 윤리적·법적·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한 후에야 연락을 받고 도착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뒷처리 담당반이 아닙니다. 한편 AI 윤리라는 이름 아래 기술의 발전 방향과 이를 주도하는 기업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대신 수용하고, 나아가 AI 하이프를 더욱 부풀리는 경우 역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AI 윤리 레터에서 다룬 바 있는 ‘AI 하이프 뉴스 체크리스트’를 기억하시나요? 누군가가 AI 윤리 전문가를 자청하며 AI 하이프 뉴스를 퍼나르고 있다면, 한번쯤은 그의 ‘AI 윤리’를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AI 윤리와 AI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을 살펴봅시다. AI 윤리와 AI 사이엔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AI에 대한 AI 윤리의 개입과 거리두기는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AI 윤리는 AI를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 🦜같이 읽어도 좋을 글 찾아라! AI HYPE 뉴스 (2023-07-17) AI 적정작명기술 (2023-07-24) AI가 당신의 글을 좋은 데 쓸 거예요.  by. 🎶소소 AI 윤리 레터의 글을 AI 학습 데이터로 판매한다면 얼마가 적당할까요? 아, 온라인에 공개된 글이므로 이미 AI 학습에 활용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최근 저는 AI 기업이 저작물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뻔뻔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지난 브리프의 '뉴욕타임스 소송에 대한 오픈AI 입장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레터에서는 오픈AI가 입장문에서 주장하는 바가 합당한지 조금 더 살펴보았습니다. 이 소송의 결과가 AI 업계와 창작자 생태계에 미칠 영향력이 작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저작권자와 AI 사업자가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 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오픈AI의 주장은 전 세계의 저작권자와 AI 기업의 논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1. 우리는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AI를 만든다. AI 학습은 공정 이용이다. 저작권법에서의 공정 이용은 특정 조건에서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도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일반적으로 문화 및 관련 산업의 발전을 위한 비평, 뉴스 보도, 교육, 학술 연구 등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AI 학습의 공정 이용 여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 대립이 있으며, 아직 직접적으로 판단한 국내외 법원의 판례는 없습니다. 오픈AI는 AI 훈련이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AI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쳐 일상의 삶을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공정 이용 취지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AI는 저작물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 빈도수, 구문 패턴 등 통계적 정보를 새로운 형태로 변환한다는 점 역시 참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는 AI 기업이 저작권자의 허가나 대가 지급 없이 언론사의 자산인 저작물을 활용하고, 대체품을 생산하여 이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도 공정 이용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한편, 오픈AI의 서비스 약관은 챗GPT의 생성물로 다른 모델을 학습시키는 것을 금지합니다. 타인의 저작물을 AI 학습에 쓰는 것은 공정이용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AI 생성물을 다른 회사의 AI를 학습시키는 것은 사용하는 것은 막는 꼴입니다. 내로남불이랄까요. 2. 뉴욕타임스 사례는 드물게 발생한 오류이며, 심지어 의도적인 오용의 결과다. 뉴욕타임스가 소송에 제출한 챗GPT 응답은 거의 기사 원문을 복사한 것처럼 유사합니다. AI 모델이 학습한 원데이터를 그대로 뱉어내는 ‘역류(Regurgitation)’ 현상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아마 사람이 ‘표절’한 기사를 자신이 쓴 것처럼 돈을 받고 팔았다면 단번에 저작권 침해가 되었을 겁니다. 오픈AI는 이 현상은 의도하지 않은 ‘기술적 오류’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오류의 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이미 최소화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원데이터의 표절에 가까운 생성물이 얼마나 자주,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는 지에 대한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오픈AI는 뉴욕타임스가 주장하는 저작권 침해가 챗GPT를 악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뉴욕타임스가 기사의 원문 노출을 유도하는 프롬프트 입력해 챗GPT가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만약 뉴욕타임스가 특정 상황에서 문제 가능성을 찾았다면, 일반 사용자도 동일한 상황에서 문제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때로는 오류의 발견이 시스템의 결함을 찾고 고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IT 기업은 시스템 오류를 찾기 위해 의도적인 Red teaming 을 진행하기도 하죠. 그런데 오픈AI는 시스템의 오류를 사용자의 오용으로 치부하며 책임을 돌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AI 기업의 저작물 무단 사용 소송이 줄을 잇고 있지만 아직 저작권자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없었습니다. 이 소송에서 오픈AI가 승소한다면, AI 모델 학습이 공정 이용으로 법적 지지를 얻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AI 연구자나 기업은 법적 문제 없이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더 좋은 성능의 AI를 만들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편 저작권자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겠죠. 지난해 말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저작권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취지의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를 발간했습니다. 안내서는 저작권자와 생성형AI 사업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다룹니다. 그러나 주요 쟁점인 ‘저작물의 AI 학습 활용’에 대해서는 기존 저작권법을 읊는 정도로 서술합니다. 도리어 국내 AI 기업의 발전을 막는 족쇄가 된다는 우려만 일으키고 있습니다. 정부가 AI 기술의 건전한 혁신을 지원하고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을 모색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보입니다 🦜같이 읽어도 좋을 글 한 명의 사임과 한 명의 퇴출 그리고 복귀? (2023-11-20) 창작자 생태계 상상하기: 스태빌리티 AI 집단소송 기각에 부치는 글 (2023-11-15)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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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내 장애인 학대 사건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을 규탄한다!
차별행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결로 인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 - 피해자의 목소리는 지우고 가해자의 항변만을 인정한 ‘기울어진 판결’ - 장애인들이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결실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정’ - 수많은 미신고시설과 종교시설 내외 장애인 학대 사건에 또 한 번 ‘면죄부를 준 판단’  2024년 1월 31일 (수) 오전 10시, 지적장애인 사찰노예사건 반인권적 대법원 판결 공동대책위원회(전국장애인부모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대법원 앞에서 ‘사찰 내 장애인 학대사건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지적장애인 피해자 A 씨는 30여 년간 절에서 당한 학대 사실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장애인 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오직 단순폭행죄로 약식명령 벌금 500만 원을 내렸다. 단 500만 원으로 세상에 묻힐 뻔하였던 이 사건은 피해자 가족과 장애인단체의 노력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한 것을 넘어 강제근로 및 명의도용까지 한 사실을 밝혀내 검찰이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1심과 2심에서는 가해자에 대해 각각 1년과 8개월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피해자가 학대를 당한 세월에 비하면 반의반도, 또 반도 안 되는 세월이지만 적어도 원심 재판부에서는 피해자가 한 육체노동이 ‘울력’의 정도를 넘어섰다는 사실, 즉 피해자가 무늬만 스님이었고 실질적으로는 노예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30여 년 동안 당한 학대 사실을 모두 부정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2년 동안 12회에 걸쳐 폭행 당한 사실을 ‘일상적인 수준’으로 축소시켰을 뿐 아니라 당사자 동의 없이 주지스님이 명의도용한 사실을 법원이 모두 인지하고서도 가해자의 행위를 오히려 장애인차별금지법 취지와 부합한다며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평등을 실현할 법원의 책무를 저버린 판단을 내렸다. ✔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임한결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대법원이 내린 최악의 판결, 법 어디에도 장애인 차별 판단 시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없어” 임한결 변호사는 “대법원이 가해자의 서면만 읽고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법률 해석에 관한 최고사법기관으로서 대법원의 판례는 사실상 구속력이 발생하는데 이번 판결은 한 사건에 대한 단순한 오판을 넘어서 장애인들이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에서 차별행위를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 부당한 취급할 때만 성립된다고 본 점을 이번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는 차별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법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지 않고 장애인 차별과 관련된 차별구제조치나 손해배상, 국가인권위원회 차별판단 모두 이 요건을 들지 않는다”며 근거 없이 해석을 내린 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했다. 이어서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장애인 차별을 피하기 위해 비장애인도 똑같이 불리하게 대하면 된다. 장애인을 한 대 때리고, 옆에 있는 비장애인도 한 대 때리면 차별이 아닌 것이냐”며 “적어도 수익적 행위가 아닌 침익적 행위에 대해서는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취급했는지 여부를 따지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 재판장(권영준 대법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본인이 소수종교를 믿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소수자를 잘 대변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며 “피해자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판단했던 원심의 사실관계를 대체 무슨 근거로 대법관이 해석한 것이냐. 일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12차례 폭행을 행사하고, 당사자와 상의도 없이 명의 도용하여 부동산을 매입하고, 1심 선고가 나기도 전에 법인으로 사찰 소유권을 이전하여 집행을 회피한 사람에 대해 자애로운 은덕이라도 베푼 것처럼 봐준 셈”이라고 밝혔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백선영 활동가 , “이 사건은 명백하게 장애를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한 차별행위, 끝까지 묵인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 백선영 활동가는 “대법원에서 생각하는 착취와 차별의 정의가 무엇이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묻고 싶다”며 “피해자가 일이 느리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피고인 마음대로 피해자 명의를 도용하였는데 비장애인 스님이었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명백하게 장애를 이유로 한 학대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적장애인이 ‘가스라이팅’형 범죄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대법관은 더욱 인지할 필요가 있다”강조했다.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법 체계가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파했다. 이어 “우리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차별과 착취의 문제는 삶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사건은 피해자 한 사람의 개별 사안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어떤 발달장애인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끝까지 묵인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법무법인 디라이트 공익인권센터 김강원 부센터장, “조계종, 유사 학대 사례에 대한 전수조사 요청했으나 묵묵부답,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삶과 권리를 억누르고 있지 않은지 성찰 필요해” 김강원 부센터장은 “대법원의 판결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판시를 보면 가해자인 피고인의 입장만 고려할 뿐 가장 중요한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시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판결 어디에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폭력과 학대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없었으며 이리저리 재단하고 해석하며 판단하는 대상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행위를 ‘보호’라고 주장하는데 그가 돌봄서비스와 보호의무를 제대로 제공했겠는가, 만약 복지시설, 거주시설에서 이런 행위가 발생했다면 그 시설은 어떻게 평가받았겠는가”라며 “종교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데리고 복지시설처럼 기능하는 것은 신고하지 않고 복지사업을 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위법소지가 있고 관할 관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으니 인권침해가 일어날 소지가 높으며 이 사건처럼 오랜 세월동안 묻혀져 있을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꼬집었다. 김 부센터장은 “이 사건 고발 당시 조계종 측에 유사사례가 없는지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직접 종단 사무소를 찾아가서까지 했지만 종단 측은 묵묵부답했으며 이번 판결이 선고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에 유감을 표하며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장애인차별금지법을 휴지조각으로 전락시킨 법 해석이다. 장애인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여행도 시켜주면 해당 사건의 행위들이 무죄가 된다는 장애감수성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 “장애인권옹호자들이 가열차게 싸우고, 자신의 삶을 내던지며 쟁취하고자 했던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라는 가치를 하나의 판결로 무너뜨려” 조인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장애인의 권리보장, 차별과 학대 근절이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의 입법취지를 형혜화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력착취의 사전적 의미는 생산수단의 사유자가 노동자를 노동시간 이상으로 일을 시켜 성과를 취득하는 일”이라며 “피해자가 한 노동은 가해자가 사찰은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건축공사도 가해자가 세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피해자가 한 노동의 성과는 모두 가해자의 이익으로 돌아갔다”고 강조했다. 또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철저히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무시했다”며 “사전에 피해자는 스님이 되기 어렵다는 점, 그럼에도 원한다면 노전스님으로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점, 다른 사찰에서는 노전스님에게 보수를 지급하나 우리는 줄 수 없다는 점, 그럼에도 무보수로 고된 노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피해자가 이해할만큼 설명하고 이를 피해자의 자유의사로 승인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판결의 판단기준, 장애인에 대한 관점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두에 반한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며 “이러한 판결이 다른 장애인차별사건에서 그대로 답습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문석영 활동가, “누구나 일을 하면 월급을 받아야 하고 장애인도 노동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문석영 활동가는 “절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당사자가 일한 만큼의 월급과 같을 수 있냐”고 말하며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정당한 월급을 받았다면 먹고 자는 비용 뿐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모아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장애인의 노동을 그저 의미 없는 일, 도와주는 일로 치부하지 않고 더 이상 장애인의 보편적인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노태호 소장, “장애인 학대사건이 가진 특수성을 법원에서 경각심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 노태호 소장은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학대 사건은 수사단계에서부터 진술의 신빙성 등을 인정받기 어려워 기소 자체가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는 장애 특성으로 인해 유의미한 증거를 수집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런데도 단 500만 원으로 세상에 묻힐 뻔하였던 이 사건은 피해자 가족과 우리 연구소 등 장애인단체의 노력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한 것을 넘어 강제근로 및 명의도용까지 한 사실을 밝혀내 검찰이 기소하기에 이르렀다”며 지난했던 소송과정을 밝혔다. 이어 “지적장애인을 돌보아 준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수급비를 갈취하고, 장애인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명의를 도용하여 범행에 이용하는 등의 일들은 연구소에서 수없이 개입해온 다른 장애인 학대 사건의 본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어 온 수많은 미신고 시설과 기도원 등 종교시설 내외 장애인 학대 사건에도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를 역행하는 대법원의 판결에 매우 분노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법리를 잘못 해석적용한 점에 대하여 파기환송심에서 적극적으로 다툴 것임을 알린다. 나아가, 장애인 학대사건이 가진 특수성을 법원에서 경각심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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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변화] 한국 정치에 대한 소시민적 고찰
정치? 잘 몰라요 😐 정치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시절, ‘정치’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양복 입은 어른들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청소년이었던 당시 뉴스에서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몸싸움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국회의원은 맨날 싸운다는 인상이 있었죠.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미덥지 않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크게 슬프지는 않았어요. 그들이 열심히 싸우는 것이 제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정권이 바뀐다’라는 것의 의미부터 체감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쓰는 예산부터 달라졌으니까요. 그리고 대학 입시를 겪으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제게 주어지는 기회가 좁아질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그때는 투표권이 없다는 것이 억울한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투표권을 갖게 된 해에 세월호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래서 투표를 잘해야 해”라는 정도의 후회(혹은 불평)로 그 일을 뒤로할 수 있을까요? 어른들이 뽑아놓은 대통령이 참사 앞에서 취한 태도는 경악을 넘어 공포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사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사회의 여러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멀게만 느껴지던 정치가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치 이야기 안 좋아합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온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조사부터 쉽지 않았고 생각보다 바뀌는 것이 없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갔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게 아니지만 수학여행이 사라졌고, 그 배에 탔던 게 잘못이 아님에도 생존자들은 고통스러웠습니다. 만천하에 무능력을 드러낸 정권은 탄핵당하고 다시 한번 정권이 바뀌었지만, 곧 여러 지도자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쉴 새 없이 분노가 찾아왔습니다. 실망하기도 지쳐서 잠시 모든 관심을 거두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비슷한 이유로 정치를 멀리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자꾸만 제 삶에 끼어드는 정치의 영향 때문에 마냥 무관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실망하는 일도 의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명시한 것인데, 주인이 자기 것을 잘 살피지 않으면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요. 세월호 참사에서 느꼈던 부채감을 떠올리며 다시 뉴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눈 비비고 다시 들여다본 정치권은 여전히 싸움판이었지만요. 서로 상대의 부족한 점을 공격하기에 바빴고 중요한 사회 문제는 매번 싸움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젠더 이슈나 계층 이슈로 여론이 갈라지고,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국가원수가 되는 이변까지 보고 나니 문제는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가 너무 많은 게 문제 😵‍💫 무엇이 왜 문제인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한국 정치의 문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정치 양극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러자 제 경험의 굴곡마다 이게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을 갈라 싸우는 정치인들의 모습,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실감하던 크고 작은 변화들, 끝없는 논쟁에 지쳐 정치와 멀어지는 마음마저 모두 말입니다.  어떤 정치인의 부조리함에 대해 기사가 나면 댓글에는 그의 소속 정당에 대한 비난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 정당’이라서 문제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다른 당 정치인의 기사를 봐도 정당 거부감을 바탕으로 원색적인 비난이 난무하죠. 편이 갈라져 서로 비난하고 싸우는 동안 정작 중요한 사회 문제는 곪아가는데도 말입니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진행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특정 이슈를 제외하고 이념에 따른 의견 차이보다 정당에 대한 의견 차이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정책보다 정당이 차이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슈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 진영 구도로 갈라져 대립하는 일이 많고 우리 편이 하는 말이 맞다는 식으로 싸움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싸우는 게 일이 된 정치인들의 모습 때문에 모든 정당의 이미지는 다수 국민에게 확실한 호감보다는 확실한 비호감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한국 정당정치의 가장 중요한 해결 과제에 대해서 전체 답변자의 약 25%가 ‘거대 양당 중심의 대결 정치적 정치 구도’를 꼽았습니다.  정치양극화 시대 한국 민주주의 발전 방안 연구_발제 (2023.02.27) 한국형 정치 양극화 특징: 그만 좀 싸워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정치 양극화 현상이 문제가 되었지만, 한국은 좀 더 특징적인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가 대표적인 특징인데요.  <한국의 정치 양극화가 가진 특징 13가지> 1. 극단적 당파성에 따른 무책임한 정당정치 2. 정당 내 파벌 양극화 3. 정책이나 이념적 차이보다 권력 이슈로 갈등하는 정치 4. 공존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혐오의 정치 5. 법안 폭증과 과도한 입법 경쟁 6. 대통령 의제가 갖는 과도한 지배력 7. 대표되지 않는 사회 갈등 8. 정당의 낮은 자율성 9. 열정적 지지자와 반대자가 지배하는 정치 10. 소수 지배의 강화 11. 여론 동원 정치의 심화 12. 양극화된 양당제의 출현 13. 추종과 혐오의 팬덤 정치 국회미래연구원 박상훈 연구위원이 집약한 한국의 정치 양극화 특징은 13가지입니다. 목록만 보면 다소 중복되는 것 같은 항목도 보이는데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열된 단어만 봐도 다소 경쟁적입니다. 사회 문제 해결보다는 권력 쟁취에 목적을 둔 경쟁으로 정치가 오염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의 정치 양극화: 유형론적 특징 13가지 (2023.07.03) 선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권한은 매우 큽니다. 선거 한 번에 정세가 크게 바뀌기도 하죠. 힘겨루기에서 진 정당은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인식 때문에 선거는 표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이 됩니다. 정치를 전쟁처럼 이끌다 보니 분열과 혐오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은 원래 국민을 대표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겨서라도 정권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혐오 정치, 팬덤 정치 등이 힘을 얻는 데 좋은 수단이 되어 갈등에 불을 지핍니다. 진흙탕 싸움을 보며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 고민하다 보니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고른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윤광일 한국 정당 학회장은 정치의 양극화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자신과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보는 타자화(othering)와 이들을 싫어하고 불신하는 혐오(aversion), 그리고 심지어는 이들을 도덕적으로 사악한 사람들로 보는 경향인 도덕화(moralization) 현상이 강해 종교 분파 간 갈등과 유사한 분파주의(sectarianism) 특징을 보인다.”  증오 불러내는 정치 양극화, 왜 갈수록 독해질까 (2022.04.24)  다 싸웠니? 이제 할 일을 하자 🤫 여러 학자, 전문가가 정치 양극화 해결을 위한 방안을 내놓았는데요. 문제에 대한 진단처럼 해결 방안도 비슷한 맥락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개별 기사와 논문에 따라 조금씩 관점이 다르지만 제가 이해한 요점은 ‘정치의 본래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기원으로 이야기되는 ‘아고라’의 기능은 ‘공론장’이었습니다. 토론과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논외의 것으로 비난하지 않는 것은 토론의 기본입니다. 물론 여러 주장을 가지고 치열하게 다투게 되겠지만 지금처럼은 안 됩니다.  정치 양극화를 ‘싸우는 정치’로 정의하고 그 대안을 ‘싸우지 않는 정치’로 설정하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다. 정치에서는 싸움 그 자체가 아니라 싸움의 방법이 중요하다. 그런 방법 가운데 정치 양극화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해결할 수 없게 만들고, 합의 쟁점으로 다뤄질 문제도 많은데 모든 정치 쟁점을 적대적 싸움의 쟁점이 되게 함으로써 사회를 분열시키고 시민을 사납게 만드는 유해한 싸움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정치 양극화는 싸워서가 아니라 잘못 싸워서 나타나는 문제다. 양극화된 정치,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_국회미래연구원 (2020.12.31)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다소 생경하지만 원래 정치는 갈등을 해소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달해 왔습니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대화해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의견을 모아 결정한 것을 잘 수행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론으로는 쉽고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만 싸우고 할 일을 해야겠죠? 당면한 과제가 너무나 많으니까요. "그놈이 그놈"이라는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며 외면하지 않기 위해 개인적으로도 노력해 보려 합니다. 화낼 일이 많아서 ‘사나운 시민’으로만 머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시간만 지나버리면 수많은 죽음 앞에 또다시 미안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뉴스를 읽고 글을 씁니다. 스스로에게 “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라고 하면서요. 시민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할 수 있는 게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좋은 정치인을 뽑는 게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선거 이후의 국민들 역할이 훨씬 중요합니다.
​[6411의 목소리] “저 옥천으로 가요”…괜찮은 귀촌 일자리까지, 운이 좋았다
[6411의 목소리] “저 옥천으로 가요”…괜찮은 귀촌 일자리까지, 운이 좋았다  (2022-12-18) 이다현 | 옥천군 마을공동체지원센터 팀장 충북 옥천군 이원면 장화리 손모내기 축제에 나온 어르신들. 필자 제공 “저 옥천으로 이주해요.” 이 말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6년 전 서울에 직장을 잡을 때부터 지역살이를 생각했다. 평생을 대도시에서 살았으니 한적한 곳에서도 살아보겠다는 정도였다. 그러다 지역에서 이런저런 활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설렜다. 그래, 지역소멸시대라는데 나 하나라도 지역으로 가자. 그렇게 나의 지역 이주 프로젝트에 시동이 걸렸다. 광고 전국 모든 지역을 후보지로 놓고 물색을 시작했다. 기준은 내가 참여할 만한 청년정책이 있는지와 교통, 접근성, 환경 등이었다. 그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 충북 옥천을 최종 점찍었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오래 살았던 대전과 가까워 안정감이 있었다. 게다가 시민사회 활동이 활발한 곳이라니 나 같은 초짜 외지인도 슬쩍 끼어 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였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 일자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채용공고를 뒤지다 곧 좌절했다. 내가 해왔던 일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기술, 운전, 제조업 쪽으로 최저임금 수준의 단기계약직이 대부분이었다. 요즘 여성들도 굴삭기나 지게차 자격증 딴다는데 지금이라도 도전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기술 배워야 먹고산다던 어른들 말씀이 갑자기 사무쳤다. 광고 광고 약 석달을 그렇게 지내고 현재 나의 직장을 발견했다. 마을공동체지원센터라고, 행정이 지원하는 공동체 사업에 주민이 참여하도록 돕는 중간지원조직이었다. 마을공동체는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이고, 주민 활동을 지원하면서 지역을 두루 살피는 데도 도움 될 것 같았다. 그동안의 자괴감을 얼른 추스르고 진심을 담아 이력서를 썼다. 면접 뒤 약 2주 만에 나는 드디어 옥천군민이 되었다. 이곳 중간지원조직 업무는 도시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중간’은 행정과 민간의 사이라는 의미다. 옥천군 마을공동체 사업에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돕고, 주민 활동을 지원한다. 이 ‘지원’에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포함되어 있다. 공동체 활동을 계획하고, 관련한 서류 준비를 돕는다. 행사가 있으면 홍보물도 만들어 참여자를 모으고 손뼉 치며 흥을 돋운다. 갑자기 행사 진행자(MC)가 되기도 한다. 모든 어르신을 어머님, 아버님으로 부르며 우리 사업에 재미와 보람을 느끼시도록 응원해드리는 것도 역할 중 하나다. 광고 문제는 컴퓨터다. 대부분 70~80대 이장님들이 마을 사업을 이끄는데, 관련한 컴퓨터 작업이 내가 봐도 보통 일이 아니다. 첨부해야 할 서류는 어찌나 많은지, 서류 때문에 일 못 하겠다는 협박(?)도 이따금 터져 나온다. 커피 타드리며 불만도 들어주고, 조금만 더 해보자고 설득한다. 정 안 되면 노트북 들고 옆에 앉아서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는다. 영수증을 붙이고 정리하는 게 우리 같은 중간지원조직의 연말 풍경 중 하나이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어르신들은 종종 나를 공무원으로 아신다. 중간지원조직 직원이라고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도 고개를 갸웃하신다. 이제는 나름 방법을 써서 ‘준공무원’이라 소개한다. 그러면 젊은 처자가 좋은 직장 다닌다고 대견스러워하신다. 진짜 공무원은 아니지만 어르신 말씀대로 좋은 일자리라 생각한다. 대체로 업무시간이 정해져 있고, 육체적인 노동강도도 세지 않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월급은 웬만한 도시 수준인데, 생활비는 그만큼 들지 않는다. 현재 사는 볕 좋은 18평형 아파트 월세가 45만원인데, 군에서 청년 월세지원금으로 월 10만원을 지원해준다. 확실히 서울에서 살 때보다 공간적, 시간적으로 여유를 느낀다. 지역살이에서 가장 기대한 바이기도 하다. 나는 운 좋게도 괜찮은 일자리를 잡아 고민하던 지역이주를 실현할 수 있었다. 여기 직원 가운데 나처럼 일을 계기로 옥천에 온 분이 5명, 도시로 나갔다가 유턴한 청년이 2명이다. 지역소멸 위기에서 일자리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는 매우 한정적이다. 갑자기 조직이 문을 닫을 수도 있다. 결국, 처음 마주했던 일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생계를 위한 일뿐 아니라 재밌게 살기 위한 활동도 계획 중이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일과 활동의 중간에서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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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끝내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기사 1 정부는 '참사의 진상 규명이 이미 이뤄졌고, 조사위원회 권한이 너무 크다. 따라서 특별법은 필요하지도 않고, 시행돼서도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대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보상을 확대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거부권 행사 이유:  1. 서울경찰청장을 포함해 관련자 23명을 재판에 넘기는 등, 특별법의 목적인 참사 진상 규명이 이미 이뤄졌다고 밝혔습니다. 2. 조사위원회의 권한이 너무 커서 국민 기본권과 사법·행정부 기능 등이 침해 3. 조사위 구성에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움  4. 국가 예산 낭비가 우려 국민의 힘은 입법 폭주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유가족들과 야당은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 반응이 나누어지고 있는 것이 목격되어 업로드하게 되었습니다.  특별법 거부권은 부당합니다. 1. 꼬리 자르기 식 처벌은 절대로 진상규명으로 볼 수 없습니다.  2.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지, 보상금 및 돈이 아닙니다. 특히, 유가족들이 보상금을 받을 경우, 정부가 '돈으로 유가족들을 입막음'할 우려가 높습니다.  3. 외국 언론들도 정부의 책임을 조명했으며, 특히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는 외국인들도 사망했습니다. 특히, 이번 참사로 가장 많은 자국민을 잃은 이란 (5명)은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핼러윈) 행사 관리를 했어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유일하게 이란 유가족들과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이란 유가족들은 한국 정부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비탄에 빠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4. 특별법을 반대한다면 처음부터 진상규명을 하는 태도와 자세를 보였어야합니다.  특별법 거부권은 정당합니다.  1. 국가유공자들과 군필들도 제대로 된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유가족'이라고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은 부당합니다.  2. 정부는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  저는 특별법 통과에 찬성하는 입장으로, 국가유공자, 군필 생계 문제는 이번 참사와는 별개라고 반박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미 국민의 힘이 현실적으로 특별법을 막는 이유는 입법 폭주가 이유가 아니라, '대통령과 관계자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유가족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관련 기사 시사IN의 기자는 특별권에 거부권을 행사할 이유가 없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1. ‘국론을 분열’시키고 ‘재난을 정쟁화’시켰던 것은 특별법이 아니다. 그 특별법에 반대했던 정부·여당 쪽이었다.' 2.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헌법에 반하거나 현저히 불합리하여 공익에 반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 대통령 거부권은 법안이 자신의 국정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3. '국민의 생명권과 안전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사건에 대해 국가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광범위한 책임을 규명하고 진상규명을 하고자 하는 것은 헌법상 국가의 책무에 비춰 너무나 당연하다. 법률안을 거부하여 진상규명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것,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그 교훈을 역행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책임을 면하고자 재난을 정쟁화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함부로 거부권 행사를 주장하고 있다.'  추가 관련 기사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2년, 국민의 힘 측에서 실언이 계속 나오자,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도리의 문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게 국민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정치의 세태인데 지나치게 극렬지지층한테 어필을 하면서 그렇게 어필을 해야 살아남는 구조'라며 국민의 힘이 유족들에 대한 배려보다 지지층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더 신경쓴다고 우려했습니다.  또한,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이 기사 마지막에서 한 말은 끝까지 국민의 힘이 버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밀리면 끝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유가족들하고의 어떤 관계도 일종의 권력투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굉장히 방어적이고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은 느낌."  특별법 거부권은 정당합니다.  1. 국가유공자들과 군필들도 제대로 된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유가족'이라고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은 부당합니다.  2. 정부는 모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  여기서 특별법에 저는 모두가 찬성한다고 생각하기에, 여러분은 인터넷에서 나오는 반대 의견 및 '유가족들이 떼를 쓴다', '목소리만 크면 다 되는 줄 아냐'라는 의견에 어떻게 반박하시겠습니까?
10.29 이태원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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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인 거 아는데 여유가 없어요 - 공화주의를 위한 기본적인 물질 보장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에서는 우리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공화’에 대한 개념이 중요하지만, 민주에 비해 공화를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화‘. 창작그룹 ’성찰과성장‘은 [처음 만나는 공화주의] 연재를 통해 ’공화주의‘에 대해 쉽게 풀어보고자 한다. 민주적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강조된다. ▲적극적인 시민 참여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을 통한 민주적 평등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4편에서는 민주적 공화주의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기본적인 물질적 보장’에 대해 탐구해본다. 고상한 일에 시간 쓸 여유 평일 내내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30대 직장인 조 씨가 있다. 그에게 공동선을 위해 “구청에서 정책 토론회가 열리는 데 같이 가볼래요?”라고 제안했다. 과연 조 씨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런 고상한 일에 시간 낼 여유가 어디 있느냐는 표정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주중에 퇴근하고 들어오면 밤 9시예요. 그나마 주말은 오롯이 저를 위해 쓰고 싶고요. 남는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게임을 하며 쉬고 싶어요.” 성찰과성장은 '공화주의'에 대한 관심이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새로운 경제체제 구상에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생계를 위해 온종일 일하고 주말에는 휴식을 원하는 사람에게 더 나은 사회(공동선)를 위해 논의하고 고민해보자는 권유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로서는 이러한 제안이 현실과 동떨어진 무의미한 외침으로 여겨질 수 있다. 생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공동선에 대한 고민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생계 걱정이 해소되어야만,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체를 위한 고민을 할 여유가 생긴다. ▲ 생계 노동에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도 공동선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까? Ⓒ성찰과성장 실제로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나 주민자치회 참여자를 보면 상대적으로 개인 시간이 많은 가정주부나 은퇴한 장년이 많으며 생활 전선에 있는 청년이나 중년 남성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전국 960개 주민자치회 위원의 평균 연령은 58세이며, 20대 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자치회는 839개, 무려 87%(!)에 이른다. (2021 이은주 의원) 지난 23년 11월, 한국은행은 우리나라가 경제 침체 국면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우리의 삶은 항상 힘들었던 것 같지만, 질적, 양적 데이터는 우리나라의 엄청난 성장을 입증했다(2021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그런데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이제 경제 ‘둔화’를 넘어 경제 ‘침체’에 들어섰다고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23년 3분기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소득 5분위 기준 1분위(하위 20%)의 소득은 전년동기대비 감소하였으며, 2~3분위의 소득은 증가하였으나 소득증가율이 물가 상승률(3.1%)을 밑돌았다. 이는 가계소득 하위 60%의 실질소득이 감소하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1분위의 가계소득은 112.2만 원, 가계지출은 123.7만 원으로 적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1분위의 적자상태는 국가통계포털에서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2003년부터 매년 보이는 현상이다. 이는 하위 20%가 생계를 위해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상위 40%의 실질소득은 증가했는데 이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물가에 연동되어 지급되는 연금 수혜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 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다양한 계층의 만남이 필요하다. Ⓒ성찰과성장 공화주의는 공허한 이상이 아니다. 우리 삶에 맞닿을 때 공동체의 운영 원칙으로서 힘이 생긴다. 이 원칙을 현실화시키는 힘은 다양한 계층 간의 만남과 대화에서 나온다. 이러한 계층은 기득권층 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해 일상에서 분투하는 직장인, 자영업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장애인, 여성, 노인, 아동, 이민자, 저소득층까지 다양하다. 다양한 계층이 어떻게 만날 수 있냐고? 방법은 간단하다. 이들이 만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적 여건을 만들어 주면 된다. 하지만 재정적 부담이 덜한 부유층과 달리 소시민에게는 재정적 지원이 필수다. 구성원이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재정적 자원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들에게 경제적 여유를 통해 시간적 여유까지 함께 제공함으로써, 공동선을 향한 참여와 이바지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적 노동을 인정하는 참여소득 그리고 그 너머를 상상하며 사회 기여를 위한 시간과 재정적 여유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참여소득’이다. 기본소득이 모든 이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하여 사회적 최저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라면, 참여소득은 교육 참여, 봉사, 돌봄, 직업 훈련과 같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1990년대 영국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Anthony Barnes Atkinson)이 처음 제안한 참여소득은 사회적 기여와 의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비록 금액적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참여소득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공동선을 위한 회의 참여 시 지급되는 회의참석비(예: 청년네트워크, 주민자치회, 참여예산위원)이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업자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월 30만 원 정도의 ‘훈련 장려금’과 훈련비가 지급된다.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가정에는 최대 20만 원의 가정양육수당과 최대 70만 원의 부모급여가 제공된다. 사회적 기업・마을기업・사회적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에 대한 각종 지원금, 일반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공공일자리도 역시 참여소득의 일환이다. 참여소득 제도는 시민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공동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간과 재정적 여유를 부분적으로나마 제공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 단계에서 참여소득은 여전히 보조적인 수입원에 불과하다. 마치 봉사활동을 하고 소정의 교통비를 받는 것과 유사하다. 현재의 참여소득제도는 결함도 가지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대부분의 참여소득이 중앙정부와 지자체 관료의 행정력에 의해 결정된다. 시민과 공론을 통해 함께 결정한 소득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참여소득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지 논란도 있고, 또한 참여소득의 존폐가 전적으로 행정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문제도 있다. ▲ 부유층과 빈곤층의 투표 참여 의향은 3배에 달한다. Ⓒ성찰과성장 2018년 한겨레 신문의 지방선거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상황에 따른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 간 투표 의향 차이를 살펴보니 최대 3배 격차를 보였다. 이는 경제적 여유가 정치 참여도에 영향을 미침을 시사한다. 해당 조사는 투표율 향상의 장애물로 주거 불안정성과 경제적 불평등을 지목했다. 경제적 여건이 열악할수록 선거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지역 사회 내 네트워크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17대부터 21대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한 손낙구는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를 통해 부유한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높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소득 양극화는 공화주의에 큰 걸림돌이지만 문제는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모두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계층 간 이동의 가능성, 즉 ‘사다리’의 격차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소득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만능열쇠 같은 답을 내놓긴 어렵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소득의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개인의 소득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소득 보장 체계의 마련할 수 있다면 한층 더 공화주의에 다가설 수 있다. ▲ 각자도생 사회에도 희망은 있다. Ⓒ성찰과성장 과도한 경쟁, 불안정한 노동 시장, 예고된 장기 경제 불황, 우리는 대한민국이 민주적이지도, 공화적이지도 않은 각자도생 사회로 무너지는 걸 경험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노동 시장의 변혁을 몸소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 침체와 함께 고용 축소라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에 유지되던 일자리도 점차 불안정한 형태, 예를 들어 하청 노동이나 플랫폼 기반 노동으로 전환되는 추세다. 개인이 가계 경제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현재 구조를 넘어, 기존 복지 제도 외에도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노동에 대한 인정이 필요한 때다. 사회 참여에 대한 소득 보장은 개인을 넘어, 공화주의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임을 잊지 말자.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배달해 드립니다" - 창작그룹 성찰과성장글 작성 ・ 편집 : 김설, 박배민, 신동주(성찰과성장.com) 참고 자료 이상준, “한국은 이미 참여소득 강국, 그러나…”, 프레시안, 2020.12.02. 이상민, “2023년 윤 정부 재정위기…‘눈 떠보니 후진국’”, 한겨레, 23. 11. 5. 정의정책연구소, “참여소득, 기본소득으로의 단계인가 사회적 경제의 실현인가”, 2020. 12. 01. 이은주, 전국 주민자치회 현황 전수 조사, 2021 통계청, ‘2023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2023
AI 교과서는 우리 아이 데이터 채굴기?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1월 다섯째 주 by.🤖아침 1. 생성 AI 선거는 이미 시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목소리를 모방한 로보콜(ARS 전화)이 미국 뉴햄프셔주 유권자들에게 민주당 예비선거에 참여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 검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미국의 한 스타트업은 민주당 경선 후보 딘 필립스의 말투를 모방한 챗봇을 오픈AI API로 개발하다가 오픈AI로부터 계정을 차단당했습니다. 올해 전 세계 76개국에서 선거가 시행됩니다. 생성AI 붐 이후 민주주의 절차가 마주한 가장 큰 시험대입니다. 우리는 AI를 활용한 오정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사진: Element5 Digital / Unsplash 2. 성착취물 + 저작권 침해 = 생성 AI 산업의 악몽 성착취 이미지를 생성해 공유하는 텔레그램 커뮤니티에 테일러 스위프트를 묘사한 이미지가 등장했고, 이 이미지가 트위터에서 널리 퍼졌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챗지피티가 저작물인 기사 내용을 그대로 뱉는다며 오픈AI에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최근 보도에서는 이미지 생성 툴 미드저니를 이용해 만든 조커, 마리오 등 명백한 저작권 침해 사례를 선보였습니다. 성착취물 등에 의한 인격권 침해와 유명 캐릭터 등의 지식재산권 침해는 생성 AI 기술의 현존하는 해악이자, AI 업계가 지닌 막대한 리스크입니다. 업체들은 서비스 이용약관, 입/출력단에서의 필터링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3. AI 교과서는 우리 아이 데이터 채굴기? 교육부가 속도 내어 추진하는 AI 디지털 교과서. 2025년부터 도입 예정입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학생이 배우고 교사가 지도한 기록은 교과서 출판사, 에듀테크 업체 등 사교육 업체에 제공될 예정입니다. 참여 업체 입장에서는 학생과 교육 활동에 관한 귀한 자료를 손쉽게 얻는 셈인데요. 과정의 투명성, 이해관계자 참여 측면에서는 매우 미흡해 보입니다. 국민일보 기사 인용입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의견 수렴은 아예 건너 뛴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기 초) 학생·학부모 동의 절차는 있을 것’이라며 ‘동의하지 않는 학생 수업을 어떻게 할지는 검토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림: Clarote & AI4Media / Better Images of AI / User/Chimera / CC-BY 4.0 4. AI 번역/첨삭기 사용 금지, 이유는 데이터 유출 해외 대형 출판사들이 판권 계약시 “AI 번역 금지”를 요구한다는 보도입니다. 명목은 ‘오역 방지’지만, AI 번역기에 입력한 원문 데이터를 제삼자가 수집할까 우려한다는 관측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AI 번역기를 실무에 활용하고 있는 번역가 및 업체 입장에서는 AI 번역 금지 요구가 생산성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해외/국내 출판사, AI 번역 서비스, 번역가의 권익이 맞물려 한층 복잡해진 구도입니다. 논문 편집 보조/첨삭 서비스를 통해 미발표 원고가 AI 학습자료로 포획되기도 합니다. 작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기밀 유출을 우려하여 지원서/제안서 피어리뷰에 AI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5. 데이터 크롤링을 마다하지 않는 우익 매체들 영미권 언론매체 웹사이트에 AI 데이터 수집 거부 조치가 속속들이 시행되는 가운데, 유독 우익 매체는 크롤링 거부 설정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LLM 학습데이터에 우파 성향을 강화하기 위한 음모일까요? 그렇다고 보기에는 그냥 거부 설정을 까먹고 안 한 경우도 있다고 해요. 지금부터 새로 수집되는 언어 데이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가 아무래도 훨씬 많아서, 큰 영향을 준다고 보기 힘들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고요. 하지만 데이터를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 웹사이트 크롤링 정책을 명시하는 robots.txt 파일은 콘텐츠 소유자에게 커다란 딜레마를 안겨주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경쟁사의 사이트맵을 베껴 AI로 유사한 컨텐츠를 만든 뒤 트래픽을 가로채는 “SEO 도둑질”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6. 이스라엘군의 ‘대량 살인 공장’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에 ‘집단학살 방지’를 명령한 지금, AI 시스템을 활용해 살상 표적을 선정하는 이스라엘의 “대량 살인 공장”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군이 사실상 가자 지구 전체를 전장으로 간주하는 상황에서, 표적을 추천하는 합소라(’복음’) 시스템은 폭격을 빠르게, 쉼 없이 지속하는 데 기여하는 ‘집단학살 AI 기술’입니다. 데이터 기반 폭격이라고 해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가자 폭격의 초점은 “정확도보다 피해 규모”라고 한 데서 드러나듯, 지금 가자의 상황은 ‘정밀하고 국제법을 준수하는’ 기술이라는 명목에서 ‘산업적 규모로 살상을 효율화하는’ 기술로의 태세 전환을 드러낸다고 루시 수크만 교수는 지적합니다.  🦜함께 읽어도 좋을 내용 인공지능이 만드는 모두의 딥페이크 뉴욕타임스 소송에 대한 오픈AI 입장문 (2024-01-15) 이번 주 학급 분위기 평점 3.6점 (2023-06-05) 오픈AI: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2023-10-11) 내년으로 들고 갈 질문 (2023-12-06)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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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문제 해결의 삼위일체, 연구활동가
이 행사에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 나선 분들의 연구계획 발표(연구 버전의 데모데이)가 예정돼 있고, 이 발제문은 사회 문제 해결에 있어 연구활동가와 정책 연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를 다루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 나선 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연구활동가들의 문제 해결 플랫폼이자, 민간 싱크탱크 LAB2050에서 일하고 있는 윤형중입니다.  먼저 연구활동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이오트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액티브 리서치’(active research)로 개념화하듯, LAB2050은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를 ‘연구와 현장의 경계를 넘나들며 해법을 모색하고 실행을 도모하는 주체’로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감이 안 잡힐 수 있는데요. 그림을 하나 소개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개선되거나 해결되는 과정엔 반드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연구, 활동, 공론화입니다. 어떻게 이리 단정적으로 말하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입니다. 모든 문제의 개선 과정엔 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윤상 나이오트 대표께서 사례로 제시한 가습기 살균제의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원인 미상의 소아 폐질환 환자들이 매년 봄마다 응급실로 왔고 그 중 다수가 사망하는 사례가 되풀이되자 소아과 의사들이 연구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발견하고 바로 연구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의 문제에선 지난한 활동과 공론화 이후에 연구가 시작됩니다. 연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대안을 도출해 내더라도 그걸 현실에 적용하기까지 또 다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가습기 살균제를 팔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제조 기업들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법률적 근거와 정책을 만들기도 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기업이 소비자의 안전에 각별한 책임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두고도 여러 반박과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에 논쟁을 벌여야 했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게 중요한 문제라고 알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안의 경우엔 피해자들과 유가족들과 연대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그 역할을 했고, 정치권도 뒤늦게나마 나서서 진상 조사를 진행하고,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어떤가요? 분명 이 과정엔 연구도 있고, 활동도 있었으며 공론화도 있었습니다.   베버리지 리포트와 연구활동가   현대 복지국가 수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베버리지 리포트 역시 사전과 사후에 오랜 기간 연구와 활동, 공론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윌리엄 베버리지가 젊은 시절인 1909년, 베아트리스 웹의 빈곤 연구 조사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고, 그가 베버리지 리포트를 낸 시기는 1942년이었죠. 베아트리스 웹이 주도적으로 활동한 영국의 싱크탱크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는 단순히 연구자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현장 조사를 중시하는 연구자들의 모임이었고, 베아트리스 웹은 직접 현장노동자의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어 조사를 하곤 했죠. 베아트리스가 1909년 발간한 소수파 보고서(minority report)의 핵심 내용이 1942년 베버리지 리포트에 담기기까지, 또 베버리지 리포트에 대한 논쟁의 결과 전쟁 영웅인 처칠의 보수당 정부가 실각하고 노동당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역동적인 공론화와 정책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불평등과 기후위기 뿐 아니라, 현안인 전세사기와 보육과 요양의 문제, 가계부채와 연금과 의료 분야의 누적된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는 과정엔 활동과 연구, 공론화가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문제의 해결 과정엔 ‘학계의 체계적인 연구가 개입한 적이 없었다’, ‘시민단체의 조직적인 활동이 없었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적이 없었다’ 등의 문제 제기 말이죠. 사안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 적도 있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연구와 활동, 공론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세 가지는 문제 해결 과정에 빠지지 않는 한 묶음과 같기 때문이죠. 이 글을 쓰기 위해선 컴퓨터인 하드웨어와 워드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가 다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눈 밝은 분들은 조금 전 제기한 의문들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셨을텐데요. 바로 연구와 활동, 공론화를 주로 담당하는 세 주체입니다.   그 세 주체는 바로 연구자, 활동가, 공론자입니다. 연구자들이 속한 분야는 학계이고, 활동가들이 모인 진지는 시민단체, 비영리단체 등의 시민사회입니다. 공론자는 과거 기성 언론매체들에서 최근 소셜미디어, 개인 블로그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엔서 등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서로 단절된 학계와 시민사회, 미디어   그렇다면 이 세 주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을까요? 각 영역이 워낙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요. 제가 이 세상의 학계, 시민사회, 미디어가 ‘총체적인 실패’라고 단정할 만큼 무모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세 가지 요소인 연구, 활동, 공론화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요. 각 영역 간 교류가 부족하고, 심지어는 영역 내에서도 단절과 분절의 양상이 심각합니다. 또한, 연구, 활동, 공론화의 공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연구자, 활동가, 공론자의 재정적 기반이 취약하고요. 취약한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선 해당 영역 내에서 주류의 문법을 따라야 하는데요. 현재 각 영역의 주류 문법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와 활동, 공론화의 연계와 협업이 아니죠.  그래서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를 주목했습니다. 연구활동가란 LAB2050이 2018년 서울시 청년허브로부터 위탁 받아 수행한 <아시아 다음세대 연구자 교류・협력 플랫폼 구축방안 연구>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한 개념입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니고요. 서구 학계에서 제시된 activist research라는 개념의 주체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비슷한 표현으론 현장 기반 연구자, 실천지식 연구자 등이 있습니다. 사실 표현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연구와 활동, 공론화의 연계와 협업을 촉진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 정도 설명을 들으면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연구도, 활동도, 공론화도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세 가지를 모두 잘 해야 하는가라는 오해 말이죠. 이 세 가지에 모두 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단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 가지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단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미 각 영역엔 그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구자, 활동하는 의제를 체계화하고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아내려는 활동가,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는 보도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저널리스트들이 바로 그런 연구활동가들이죠. 문제는 이들이 각 영역에서 온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며 때로는 외롭게 활동과 연구, 공론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결국 연구활동가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세 가지를 조화롭게 연계하는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액션 리서치를 위한 세 가지 제언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에 나선 분들은 이미 활동과 공론화를 염두에 둔 연구활동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 가지 제언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는 연구와 활동, 공론화를 하나의 일체로 본다면 연구의 끝은 활동과 공론화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연구의 사전 사후와 중간중간에도 활동과 공론화는 무시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하나의 연구를 기획해 시작한 이후에 보고서나 논문이 완성되면 내가 할 일이 끝났다고 여길 수 있는데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액션 리서치)의 목적은 논문 출간이 아닌, 사회 문제 해결이었잖아요. 따라서 연구 결과물이 나오면 그때부터 활동과 공론화는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후속 연구의 주제들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둘째는 문제에 대한 분석만큼 대안에 대한 심도 있는 모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들이 사회 문제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심도 있게 하는 반면에 대안을 단편적으로 모색하는데 그칩니다. 물론 연구가 대개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대안 모색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 연구의 주제가 ‘문제의 원인에 대한 가설’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안을 제대로 모색하려면 ‘문제의 원인에 대한 가설 검증’만큼 대안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다각도로 모색하고 분석하고, 검증해야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라면 대안에 대한 모색도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의 연구로 어렵다면, 후속 연구를 통해 대안을 제대로 모색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셋째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안 중에 가장 강력한 수단이 정책이니, 너무 당연한 얘기일 수 있는데요. 현실에선 우리 정치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정책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예산과 법규의 창의적 조합’인 정책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에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던 정책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고요. 대안으로서의 정책도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가 정책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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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디자인할 때 - 바람과 돌고래가 함께 있다면
※이 글은 글쓴이가 계획하고 있는 <해양공간관리계획 수립 과정의 정책 네트워크 분석: 해상풍력과 해양생태 관점의 충돌 요인과 제도 개선 방향>이라는 제목의 연구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1. 들어가며  해양공간계획은 해양공간을 이용할 때 미리 용도구역을 지정해 활용 주체 간의 갈등을 예방하고 해양생태영향을 줄여 지속가능하게 관리하자는 취지의 제도입니다. 저는 우리 인간이 용도구역을 지정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 제도가 '바다를 디자인'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에 해양공간계획이 도입된 것은 해외선진국에 비해서는 꽤 늦은 시점인 2018년부터입니다. 그런데 탄소중립을 위해 해상풍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전세계적인 주류가 되면서 2020년 한국도 탄소중립 선언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해상풍력으로 인한 해양공간 활용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에 있고, '반드시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상풍력 확대가 기존의 해양공간 활용 수요와 잘 조율되면서도 해양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지 않을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제도로서 해양공간계획이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1차적으로 수립된 우리나라의 해양공간계획을 살펴보면, 제도의 본래 취지와 달리 해양공간용도지정 이후에도 갈등이 지속되고 해양생태 보호 기능이 약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대정해상풍력 사업 추진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의 사례입니다. 이 지역은 제주 인근에서만 사는 멸종위기 보호종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로 알려져있는데, 2021년 제주 해양공간관리계획 수립 당시 에너지개발구역으로 지정돼 논란이 되었으며, 2024년 현재에도 해상풍력 사업 시행에 대해 지역주민과 해양생태보호단체의 반대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제 연구에서는 이 제주의 사례를 통해 해양공간계획 제도의 현황을 분석하고, 해양공간 이용 수요가 높아지는 탄소중립 시기에 해양공간관리계획 제도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바다를 디자인하려고 했는데, 하필 바람이 좋은 곳에 돌고래가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상황을 조정해서 바다를 잘 디자인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려고 합니다.    2. 기존의 연구들 2.1 핵심 이론과 키워드  (1) 해양공간계획 해양공간계획 제도가 일찍이 시행되어 강화 단계에 있는 해외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2018년 <해양공간계획 및 관리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어 비교적 초기 시행 단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국내 해양공간계획 적용 사례연구 및 사회적영향연구가 아직 부족한 상태이며, 제도가 당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관리 측면에서 사례 연구 확대, 혹은 경제·사회·환경 측면의 영향을 평가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황규원, 장아름, 이문숙, 2021)  (2) 정책 네트워크 이론  정책 네트워크는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여러 행위자들의 특성과 행위자간의 상호작용 및 구조(연계구조 혹은 관계구조라고도 표현됨.)에 따라 정책이 형성/변화되는 것을 설명하는 모형입니다. 정책 네트워크의 구성 요소와 하위 개념에 대하여는 여러 학자가 다양한 관점을 제안하고 있는데, 한국에서의 정책 네트워크 논의는 주로 ‘행위자’, ‘(행위자간) 상호작용’ 그리고 ‘(행위자간) 구조’라는 큰 틀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연경, 2015) 다만, 고길곤(2006)은 네트워크의 세 요소를 단순화하거나 은유적인 분석에 그치는 것을 경계하면서, 보다 다양한 층위와 관점에서 분석할 것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정책 네트워크가 지닌 복잡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사회연결망 이론을 활용함으로서 정책 네트워크 분석의 유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2.2 해양공간계획 형성과정에 대한 정책 네트워크 이론의 적용 한국의 해양공간계획 연구는 아직 정책 행위자나 이해관계자에 대한 연구가 많이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 있습니다. 해양공간계획은, 특히 한국에서 여러 이해관계자간의 조정을 목표에 두고 있는 제도이며, 9개의 구분을 두어 용도구역을 획정해야하는 만큼, 적어도 9개 분야의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도록 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주무부처인 해수부, 관리계획 수립 주체인 지방자치단체, 관련 기관 등 다양한 공공부문 행위자도 공식적으로 참여해야합니다. 따라서 다양한 정책 행위자간 상호작용과 구조를 분석하는 정책네트워크 모형을 적용한다면, 본 사례에 대한 참여자를 파악하고 그 관계에 대한 이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제주의 해양공간관리계획의 정책 형성 과정을 중심으로 정책 네트워크를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3. 연구의 구성 제주 대정 사례를 정책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에너지 개발이라는 해양공간이용 수요를 지지하는 행위자와 해양생태 보호라는 가치를 지지하는 행위자간의 비대칭적인 위계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전자와 후자에 해당하는 행위자가 각각 누구였는지, 행위자간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을 보였는지에 대해 파악하려고 합니다.  3.1 정책 네트워크 모형의 적용 (1)  행위자  ‘행위자’의 경우, 크게 공공부문 행위자와 민간부문 행위자로 구별될 수 있고 공공부문의 행위자가 민간부문의 행위자보다 권한이나 자원이 큰 편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공공부문 행위자는 주무부처인 해수부와 지자체인 제주특별자치도, 관계 기관입니다. 민간 부문 행위자는 ‘지역 협의회’에 참여한 8개 분야의 기업•단체,  공청회에 참여했던 기업•단체•개인(주민) 등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행위자를 분야별로도 나눠 각 행위자의 입장을 파악하고자 합니다. ‘분야’는 먼저 한국의 해양공간계획에서 9개의 ‘용도구역’으로 대변할 수 있는 분야들과 정부 및 공공부문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각 분야의 행위자가 ‘에너지 개발’과 ‘해양생태 보호’ 각각에 대해 취하는 입장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분야의 입장을 파악하기 보다는 중요한 행위자, 예를 들어 해양생태단체나 지역주민, 에너지개발사와 지자체 등을 중점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의 접근을 취하려고 합니다. 그밖에도 지역 협의회나 지역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각 행위자의 수나 구성비, 각 행위자들이 지역협의회, 공청회, 지역 위원회 중 어떤 제도를 통해 참여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함으로서 행위자간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상호작용 및 구조  ‘상호작용’의 경우, 여러 연구에서 행위자간의 갈등관계와 협력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이 연구에서도 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구조’의 경우, 행위자간의 상호작용 방식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는데, 이 연구에서는 행위자간의 자원 분배 양상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는 ‘권력구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원이란 행위자가 갖는 권한이나, 정책 과정에서의 참여 기회 등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보다 깊이 있고 체계적인 접근을 위해 고길곤(2007)이 제안한 사회연결망 이론의 적용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이 이론에서는 중요 참여자가 누구인지 찾기 위해 결선(tie)나 방향성이라는 기준들을 사용하고 있고, 하위그룹이 존재했는지와 그 그룹들의 응집력 등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참여자의 속성이라 할 수 있는 지리적 접근성, 조직의 규모나 역사 등이 참여자의 구조적 특징을 결정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3.2 연구 데이터 및 수집 방법  이 연구에서는 당시 해양공간관리계획 당시의 연혁과 정책 행위자를 파악함으로써, 여러 정책 결정을 위한 각 단계와 단계별 행위자, 그리고 각 행위자들의 상호작용 및 구조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문헌조사를 통해 기초적인 정보를 수집한 뒤 문헌조사로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들은 실제 정책 과정의 행위자들을 인터뷰하여 파악하고자 합니다.  인터뷰에 있어서는 중요 행위자가 누구인지 찾고 탐색 범위를 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스노우볼링(snowballing)’ 기법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4. 연구결과 4.1 연구 Prototype 진행 상황과 연구 계획 연구 프로토타입 진행을 위해서 기초적인 문헌 자료 수집과 인터뷰 질문지 작성, 그리고 1인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다만 연구방법론과 인터뷰 질문지 구성, 연구 윤리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판단해 실제 인터뷰를 진행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첫 번째 인터뷰이는 대략적으로 선정해 좁히고 있습니다. 이 연구 시작 전후에 사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이미 습득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도움을 주신 분들께 먼저 인터뷰를 요청할 예정입니다. (당시 직접 이해당사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관계 기관’에 해당하는 경우 등)  4.2 예상 연구 결과 (1)  행위자  공공부문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의 해양공간관리 계획 수립과정에서 지자체인 제주특별자치도는 이해관계자 참여 및 조정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자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제주도는 해양생태 가치보다는 에너지 개발을 더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을 것이라 보이는데,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ㄱ) 대정 지역은 공간계획 수립 전에도 약 10년 가까이 해상풍력개발이 추진되었던 곳으로 지자체는 경로의존적으로 에너지 개발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  (ㄴ) 대정 앞바다가 남방큰돌고래 서식지라고 알려져있기는 하지만,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돼있던 것은 아니라는 점, (ㄷ) ‘2030 CFI(Carbon Free Island) 제주’라는 도 차원의 정책 목표가 에너지 개발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민간부문 - 환경 NGO  수립 과정에 있어, 민간 부문도 참여하는 절차는 ‘지역 협의회’, ‘공청회’, ‘지역위원회’ 등 크게 세 가지인데, 지역 협의회에 환경NGO는 상대적으로 소수가 참여했으며, 남방큰돌고래 관련 활동을 하는 NGO는 지역협의회에는 위원으로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성격의 돌고래보호단체들은 공청회가 최초로 참여 가능했던 공식적 제도입니다.  지역 위원회는 공청회 등 이해관계자 참여과정에서 제기됐던 사안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의사결정하는 기관인데, 주로 지자체 공무원이나 학계가 참여했고, 환경 NGO나 다른 부문의 민간 이해관계자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행위자간 상호작용 및 구조 해양생태 가치를 주장하는 행위자- 주로 남방큰돌고래 보호단체들은 대체로 지자체 등 공공부문과 갈등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공청회에 참여한 지역 주민의 경우에도 해양생태 가치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공청회에서는 갈등 양상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제주 지역의 생태보호구역 확대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공청회의 주요 쟁점으로 꼽힌 것도 대정 지역 에너지개발구역 지정 여부였습니다.  지역협의회에 참여했던 행위자들을 ‘에너지 개발’ 지지자와 ‘해양생태’ 지지자로 크게 분류할 경우, 대체로 전자의 비중이 높은 편이며, 남방큰돌고래 보호단체는 공청회와 비공식적인 형태의 참여(주로 캠페인이나 성명 내는 등의 활동)가 가능했습니다.  또한 지자체, 즉 공공부문의 주도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지역 협의체는 민간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 가능한 기구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의 비중이 약 30%로 가장 높았으며(27인 중8인), 나머지 70%의 위원 자리를 최대 8가지 분야의 이해관계자가 나눠가지는 형태로 구성됩니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공공부문이 중립적 존재가 아닐 경우, 즉 특정 가치에 무게 중심을 싣고 있을 경우 다른 가치들이 상대적으로 과소 평가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실제 제주 사례에서는 총 4차례의 협의회가 개최됐는데, 최초의 두 차례에는 27인의 위원 중 20인 정도가 참여했고 비교적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했으나, 마지막 두 차례에서는 해수부와 지자체, 공단 등 사업 수행 기관만이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즉 지역 협의회 활동을 통해 이해관계자와의 대화가 양적으로 많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특히 환경단체 대표는 제1차 협의회에만 참석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생태 가치의 투입은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공청회나 지역위원회의 경우에도 공공부문의 영향력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청회에서 주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이 지정 토론자로 참석했고, 공청회에서 민간 참여자들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습니다.  또한 공청회 등에서 수 차례 언급된 ‘환경 생태계 관리구역 확대 지정’  등을 심의하기 위해 지역 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지역 위원회는 시도지사가 위원장이 돼, 주로 제주도나 관계기관 공무원, 위촉직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것으로 보여, 심의 위원회도 지자체 주도성이 높은 편에 속합니다. 또한 대정 지역을 에너지개발구역으로 지정할지 여부가 공청회에서 주 쟁점으로 제기되었음에도 지역 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4.3 연구의 의의  제주 대정 사례를 정책 네트워크 측면에서 분석했을 때, 제도적으로는 해양생태 가치를 지지하는 행위자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는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계획 수립 이전부터 대정 앞바다에 대한 해상풍력 개발에 대한 비판이 10년 가까이 존재했고, 공청회 에서 환경·생태 보호가 주요 쟁점으로 제기되었다는 점을 미뤄볼 때, 해양생태 보호라는 가치는 실제 그 요청에 비해 정책 과정에서 과소 투입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협의회의 구조와 운영 방식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행 해양공간관리계획은 이해관계 조정 및 갈등 예방 기능을 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분야의 행위자 간 경쟁과 갈등을 높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정책 결정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공공부문이 해양생태 보호 관점보다  에너지 개발 등 다른 관점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해양생태 보호 관점을 지지하는 행위자의 참여 기회와 영향력은 제한돼 있다면, 공공부문과 협력 관계보다는 갈등 관계를 갖는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게다가 대정 앞바다를 둘러싼 논쟁은 이미 10년 가까이 이뤄져 온 것이기 때문에 지자체와 해양생태보호 진영은 정책 형성 초기 단계 때부터 이미 상호 신뢰가 낮고 대립적인 관계로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완화하고 본래 제도가 의도했던 ‘이해관계자간의 조정과 갈등 예방, 나아가 생태 보호와 지속가능한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려면 지자체에게 주어졌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자체의 맥락에서 경로의존성을 갖기 보다는 중립적 관점에서 지역 협의회 등의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지역 협의회 제도의 개선 방향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구조와 운영 방식은 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주도성이 강하고 이해관계자와의 대화 시간이 부족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참여자들과의 신뢰를 형성하기 어렵고 갈등 구조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대화를 더욱 어렵게 합니다. 따라서 협의 제도에 참여하게 하는 이해관계자의 수와 종류를 더 확보하거나 대화 시간이나 빈도를 높이는 등 제도의 개선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5. 결론 5.1 제언 에너지개발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탄소중립 시대에, 제주 대정 사례와 같은 방식으로 제도가 운영된다면, 유사한 문제에 지속적으로 봉착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도의 운영방식을 개선하고 지자체의 중립적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해양공간계획의 이해관계 조정 및 해양생태 보전이라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지자체의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지역 협의회 등의 제도가 실제 이해관계자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5.2 후속연구  대정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정책 형성 과정에서 약한 자원을 가진 것으로 보였던 해양생태보호 단체와 일부 지역주민의 자원과 영향력이 정책 집행 과정에서는 상대적으로 커진 것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2021년 대정 앞바다가 에너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의 반발이 높고 민원이 잦다는 이유로 2024년까지도 에너지개발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현상은 정책 행위자의 위상, 나아가 정책 네트워크의 양상이 변화했음을 시사합니다.  고길곤(2006)이 지적했듯이, ‘정책네트워크는 단순히 정책 형성이나 결정 뿐만 아니라 정책집행이나 서비스 전달체계에 있어서 다수의 참여자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연구들을 포괄’합니다. 따라서  해양공간계획이 수립 이후 집행 등의 과정에서 정책네트워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그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정책 과정에서 정책 네트워크가 변화함에 따라 정책의 효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이연경(2015), 정책유형별 정책네크워크 분석 -’전통시장 시설현대화 사업’과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정책학회보 제 24권 2호  고길곤(2006), 정책네트워크 연구의 유용성과 사회연결망 이론 활용 방법의 고찰, 행정논총(제45권1호) 황규원, 장아름, 이문숙(2021), 해양공간계획 연구동향 분석 연구: 토픽 모델링을 중심으로,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Marine Environment & Society 제주특별자치도·해양수산부(2021), 제주특별자치도 해양공간관리계획
친환경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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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 Research :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0. 들어가기에 앞서 본 발제문은 나이오트가 제안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Active Research)와 나이오트가 그리는 새로운 연구생태계에 대한 제언 및 스케치입니다. 지면 및 발표시간의 관계상 밑그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Active Research Journal와 나이오트의 활동을 통해 이야기 나눌 예정입니다. 1. 서론 : 왜 사회문제 해결에 연구가 필요한가? "내가 고통스러웠던 건 범죄의 잔혹성을 봐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죄책감과 무력감 때문이었다.”- <나는 텔레그램 n번방에 있었다>, 한겨레 오연서 기자 기고문. Esquire. 2020년 4월 17일 2020년. 경악할만한 사건 앞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을 때에, 본래 패션잡지인 에스콰이어 지에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해 주요하게 보도했던 한겨레 오연서 기자님의 기고문이 올라왔습니다. 처음 제보를 받은 순간부터 피해자와 긴밀히 연락했던 긴박한 상황들에 대한 소회를 기록한 그 기고문에는 사회문제 해결의 일선에 서 있는 기자를 비롯한 여러 체인지메이커들이 실제 마주할 감정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그 감정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력감’이었습니다. 무력감. Helplessness로 번역되는 이 단어에 대해 네이버 지식백과는 ‘영아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때 반드시 양육자와 같은 타인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생존과 모든 욕구를 완전히 타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듯이, 거대한 사회문제 앞에서 그것을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겠고 개개인 한 두 명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알게 될 때에 느끼는 감정. 사실 이 감정은 사회문제 해결에 진심을 가졌던 모두가 한번쯤은 느꼈을, 어쩌면 항상 지니고 다니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는, 사회문제 앞에서 이러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 것일까요. VUCA :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 현대사회를 나타내는 주요한 용어로 사용되는 VUCA는 급변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줄인 말입니다. 1990년대 미국 육군대학원에서 군사용어로 사용되던 이 단어가 사회 전반에 확대되게 된 데에는 그만큼 사회의 변화가 급격해지면서 국가안보 뿐만 아니라 사회일반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VUCA라는 특성에 대해서는 보통 2가지 축을 가지고 설명하는데요. 하나는 ‘현재의 문제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행동 했을 때에 내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가’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이 두 가지 축 앞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우리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과 그 이상으로 ‘우리의 행동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기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 그것이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의 실체이지 않을까요.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이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 ‘연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결국 문제상황에 대한 이해와 나의 행동에 대한 이해 모두 각각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연구가 가지는 선입견 때문인데요. 연구는 ‘현장성이 없고’, ‘느리고’, ‘탁상공론만 반복한다’는 것이죠. 사실 이러한 선입견에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연구의 대부분은 ‘이미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그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연구 자체가 추구하는 ‘학문적 엄밀성’으로 인함일텐데요. 과학적 사실에 입각한 지식을 도출하고자 하다보니 연구의 자료를 설정함에 있어 의견이 가라앉고 사실이 확실해진 과거의 자료를 보다 선호하게 되고, 이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지금껏 축적되어 온 전문지식을 활용하면서 그 내용이 점점 난해해지기도 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구 없는 사회문제 해결’은 가능한 것일까요? 연구에는 그 자체로 기록과 축적, 사유라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구를 하지 않고 사회문제의 해결에 뛰어드는 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에 대한 정보와 지형에 대한 정보, 그리고 아군의 전략전술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눈 앞의 적들만을 상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구를 통해 우리는 앞선 세대의 지식과 연결되고, 또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죠. 결국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현장에서는 “현장의 문제해결에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그리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현상에 맞추어 대응할 수 있는”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연구’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 수 있을까요? 2. Agile Research : 문제해결을 위해 빠르고 민첩하게 연구하기 사실 사회문제의 해결에 앞서 이러한 VUCA에 발빠르게 대처한 영역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비즈니스 영역’인데요. 앞서 이야기한 VUCA의 성격이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고객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났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고객들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비즈니스 영역에 있어서 새롭게 풀리지 않는 고객의 문제는 곧 그들의 ‘사업기회’라는 것을 의미했죠. 이러한 새로운 사업기회를 잡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시도 중 하나는 ‘애자일(Agile)’이라는 방식입니다. 애자일(Agile)이란 단어는 사전적 의미로 ‘민첩한’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일종의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인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01년 17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선언’이라는 성명서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는데요.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설명 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간단하게는 “프로세스를 짧게 가져가면서 결과물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사이클을 반복해서 변화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신 분들은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서 프로젝트 본연의 목적보다 프로젝트 계약서의 요구사항만을 충족하기에 급급했던 기억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도 같은 상황들을 마주했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특히 고객들의 요구가 빠르게 변하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정작 오랜 시간에 걸쳐 제품을 개발했는데 그 제품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상황들을 마주합니다. 이에 따라 제품 자체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는 엄격함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니즈에 대응하는 방법론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개발된 방법론이 애자일 방법론(Agile Methodology)입니다. 애자일 방법론 상에서는 큰 프로젝트의 요구사항들을 여러 단계로 쪼개어서 빠르게 개발하고 테스트하면서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프로젝트의 목적(비전)에 맞춰 방향성을 조정할 수 있고, 동시에 테스트 과정에서의 피드백을 빠르게 반영하여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죠. 현재의 애자일 방법론은 소프트웨어 개발에 있어서도 일대 혁신을 가져다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민첩하게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스타트업(Startup)들의 등장과 스타트업 생태계의 산업 혁신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VUCA로 대표되는 사회적 난제들을 해결하는 연구방법론에 있어서도 이러한 애자일(Agile)한 접근 방식을 사용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연구프로세스 자체보다 진정한 ‘연구협업’이 일어날 수 있다면, 논문화 자체보다 문제해결에의 기여에 초점이 맞춰진 연구를 할 수 있다면, 현장과 연구자가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춰 협업할 수 있다면, 연구계획 자체보다 연구를 통해 해결할 가치에 초점을 맞춰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는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요? 저희는 그런 연구를 적극적 연구, Active Research라고 이름 짓고 사회문제별로 연구공동체를 조성하면서 정말로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목표를 가진, 빠르고 뾰족한 연구들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2. Active Research란 무엇인가? (Ver 1.0) 저희가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인 Active Research의 경우, 기존의 연구라는 관점만으로 해석하기에 분명하게 다른 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적극적 연구, 즉 Active Research라고 명명하고 그에 대한 특징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아직 스케치단계이고, 보다 구체적인 원칙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는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 고민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Ver 1.0 정도의 내용으로 봐주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저희가 지금까지 정리해본 Active Research는 아래와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문제해결 지향 먼저 Active Research는 먼저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라는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확한 지향과, 그 지향의 중심이 생각이나 글이 아닌 현장의 변화에 있다는 것은 기존 연구와 분명하게 다른 점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Active Researcher들은 아래와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특정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 및 ’진정성‘을 연구의 동력으로 삼는다. Active Researcher들이 가지고 있는 공적 의식(Public Mind)은 연구의 동력이 되는 동시에 전혀 새로운 형태의 연구를 가져가게 합니다. 연구의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과 진정성은 그 모든 난관들을 넘게 해주고 연구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북극성‘과 같은 요소입니다. 이들은 ’장기적 관점‘으로 연구를 수행한다. Active Researcher들이 풀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다양한 층위의 연구가 연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연구를 설계함에 있어 단회적인 연구설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연구계획을 가지고 연속적인 연구를 수행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지식인’의 유산을 계승합니다. Active Researcher들은 학문공동체의 엄밀성과 연구윤리를 중시하며 기존 학계의 단단하고 깊이 있는 학술문화를 존중합니다. 기존 학계의 연구유산을 계승하며 앞선 연구자들의 선행연구들을 토대로 연구를 수행하고, 과학적 사고와 기준에 따라 연구의 스탠다드를 맞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2) 혁신성 사회적 난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기존의 방식이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유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tive Research의 주요한 특징은 혁신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제중심으로 연구하면서 간학문적이고 융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필요한 과감한 연구도전이 이루어집니다. 이 모든 것은 실패를 학습의 일환으로 여기는 문화에서 기인합니다. 이들은 ’주제중심‘으로 학습하고 연구합니다. 이들의 목표는 사회문제의 해결이기 때문에 해당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자료와 정보, 지식들을 주제중심으로 습득합니다. 모든 문제들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필연적으로 ’다학문적‘ 속성을 가지고 있고, 주제를 중심으로 필요한 지식들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데에 능숙합니다. 이들은 ’도전적인 연구‘를 하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새롭고 도전적인 방식의 연구가 요구되며, 이들은 이러한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가질 수 있는 위험성을 인지하며 도전적인 방법론과 연구방식을 차용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빠르게 실패하고 학습하면서’ 성장합니다. 동시에 이들은 연구의 ’실패‘를 서로 격려하며 보다 나은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학습‘을 중시합니다. 연구 하나하나의 성패여부보다 연구들을 통해 문제해결을 향해 얼마나 ‘성장’했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따라 연구계획을 바꾸는 데에 주저하지 않고, 그에 맞는 지식과 툴들을 적극적으로 학습합니다. (3) 협력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 명의 뛰어난 연구자가 뛰어난 연구물을 낸다고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Active Research를 지향하는 연구자들은 서로의 연구과정과 연구자료를 공유하며 함께 연구를 수행해나가는 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동시에 연구와 현장, 대중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사회가 함께 연구를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돕습니다. 이들은 ’협력‘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풀고자 하는 사회문제는 한명의 영웅이 모든 문제의 원인과 내용을 파악하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들은 기꺼이 자신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하고자 하는 이들을 환영하고, 이들과 연구교류와 데이터 공유, 상호학습을 하고자 하며 여러 협력 연구를 통한 문제해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현장성 있는 연구‘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이들의 목표는 결국 ’사회문제해결을 통한 현장의 변화‘이기 때문에 이들의 연구는 결국 사회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과 현실 그 자체를 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현장의 당사자 및 현장전문가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며 현장의 1차 데이터를 토대로 연구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연구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들의 연구는 결국 사회문제의 본질과 원인, 그리고 대안을 통찰하는 데에 있지만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과 지지, 그리고 행동이 요구되어집니다. 이들은 대중의 언어로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대중들과의 소통을 통해 이러한 연구를 확산시키며 또 대중적인 방식으로 연구를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3. Active Research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Active Research라는 연구방식은 기존의 연구와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측면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계에서 Active Research를 수행하기에는 다소 다른 기준들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Active Research를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이번 발제문에서는 스케치만 그려봅니다. (1) 연구자들의 공동체 먼저는 Active Research의 방향성에 공감하고 이를 지지해줄 수 있는 연구공동체가 필요합니다. Active Research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체득하고, 이미 Active Research를 수행하고 계셨던 연구자들이 그 길을 보여주고 또 함께 Active Research를 진행해나간다면 그 공간이 연구자들이 안전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Active Research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Active Research가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필요합니다. Active Research의 특성이 잘 구분되고, 그 관점으로 어떻게 연구를 바라볼 수 있는지, 더 나아가 Active Research가 가능할 수 있는 연구 프로세스에 대한 개발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Active Research의 관점으로 닮아갈만한 기존 연구와 연구자에 대한 발굴이 필요합니다. 이미 누군가는 사회문제해결을 위해 Active Research의 방식으로 연구를 해온 연구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Active Researcher로 호명하고, 이들이 축적해온 연구의 유산을 Active Research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또 이들과 함께 그러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역별로 함께 연구해나갈 연구공동체를 꾸려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직 연구를 모르지만 Active Researcher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과 이미 연구를 하고 또 배우고 있는 사람들 중에 Active Research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주기적으로 Active Research에 맞는 활동들을 수행하면서 그 서사를 단단하게 세워나가는 것. 이러한 활동들이 Active Research의 주체가 되는 연구자를 길러내는 연구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활동들이 되어 줄 것입니다. (2) 연구자들을 담아낼 공간 Active Research가 가능하기 위해서 연구자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의 개념은 그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서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 전반을 의미합니다. 기존의 연구공간과 연구 프로세스는 Active Research에 있어서 보수적으로 반응하기 쉽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연구자 개개인을 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중장기적인 연구를 지향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에, 연구자들이 긴 호흡으로 연구자료들과 연구과정들을 아카이빙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나 같은 방향성을 가진 연구자들의 경우, 서로의 연구과정을 공유하면서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연구를 실제 해낼 수 있는 단계별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Active Research의 특성상 장기간의 주제를 가지고 도전적인 연구를 하게 되기 때문에, 모험적인 활동들을 수행하는 데에 연구를 지탱해 줄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자금에 대한 지원이나 연구계획에 대한 펀딩, 연구도전들에 대한 피드백과 코칭 등을 받을 수 있는 여러 환경들의 조성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각 문제별, 주제별로 함께 연구를 축적하고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회문제의 해결’이라는 지향을 가지게 되는 연구의 특성상, 한 두 연구자의 특출난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각 주제별, 영역별 연구자들이 서로의 기여를 보장하는 선에서 연구자료와 연구과정들을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함께 연구를 해나갈 수 있는 협업의 환경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은 어떠한 연구 ‘플랫폼’의 형태를 가질 것이며 그 플랫폼 내에서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의 연구물을 정리하고 작성하고 교류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3) 연구자들 주변의 지지공동체 마지막으로 Active Research에서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는 연구자들의 연구가 실제 사회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지지공동체의 존재입니다. 연구자들의 연구를 지지하고 응원할 뿐만 아니라, 현장과 대중의 시선으로 연구에 적극적으로 피드백하고 더 나아가 연구를 활용해서 실제 사회문제 해결에 적용함으로서 사회문제를 실제로 해결해나가는 공동체의 존재가 연구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연구자들이 연구해내는 결과물을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 포맷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논문구조는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정리된 지식을 담기에는 적합하지만, 관련 자료들을 검색하고 필요한 지식들을 얻고 대중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 어렵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연구에 흥미를 가지는 대중들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고 또 필요한 지식들이 적절하게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지식 포맷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구물에 대해서 대중들과 함께 토론하고 피드백을 나눌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학회 중심으로 학자들만의 전유물로 지식이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당사자들과 관심을 갖게 되는 전문가 및 일반 대중들이 자유롭게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고 피드백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이 공론장을 통해 연구자들 또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연구에 피드백을 반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나아가 사회에 임팩트를 내는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지지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마치 아티스트에게 팬들이 있듯이 연구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과정에서 필요한 지원과 지지를 해주고 더 나아가 연구와 현장을 잇는 가교역할을 해줄 수 있는 연구지지자들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지지공동체의 존재는 연구자가 연구를 계속해서 수행하는 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해당 연구의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동시에 연구가 실제 사회문제의 해결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에너지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4. 결론 : Active Research의 시작을 선언합니다. 저희는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Active Research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 중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인 <연구원정>에 참여하신 분들이 발표를 진행하게 되는데요. (1) 연구원정 연구원정(Research Fellowship)은 24주 사회문제해결형 연구자 부트캠프입니다. 총 6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구원정 프로그램은 처음 ‘연구주제설정’부터 시작해서 실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계획서 작성 까지의 전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연구원정의 개발 자체가 Active Research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Active Research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중에, 결국 이 연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연구 프로세스 자체가 사회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를 실제로 수행해보기 위해 저희는 기존의 연구를 수행하는 프로세스와 대학원 과정 자체에 대한 해킹을 진행하고, 이 내용을 문제정의 및 문제해결프로세스와 접목시켜서 24주 과정의 연구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 자체가 사회문제해결에 진심인 사람들이 연구를 배울 수 있는 부트캠프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베타테스트를 거친 끝에 현재 기후위기 4기, 공공문제 1기, 교육문제 1기가 진행이 완료된 상황입니다. (다음 기수는 2월 중에 모집 예정입니다.) 연구원정 모집 페이지 (클릭!) 연구원정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배경의 대원들을 만나고 함께 연구를 수행하면서, Active Research에 대한 실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Active Research의 방향성은 연구연차를 막론하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과 함께 연구원정을 부트캠프 형태로 운영하면서, 사회문제해결의 진심을 보전하면서 연구역량을 길러가는 연구환경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았죠.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저희는 2월 중에 ARC(Active Researcher Crew)라고 불리는 사회문제해결형 연구 커뮤니티를 런칭할 예정입니다. ARC는 영역별 문제의 해결에 진심인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서 연구를 훈련하고 실제 수행하면서 연구 결과를 만들어내는 온라인 커뮤니티 프로그램입니다. 앞선 연구원정 프로그램이 연구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교육과 연구계획서 완성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라면, ARC는 실제 연구를 빠르고 뾰족하게 수행하면서 여러 연구자들과의 협력과 교류를 통해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커뮤니티가 될 예정입니다. ARC에 대해서도 조만간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2)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 네, 긴 이야기를 돌고돌아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에 도달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24주 내내 함께 진행한 대원분들의 연구주제가 너무도 반짝였기에 그 문제해결에 대한 바이브를 더 많은 분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구요. 다음으로는 이 반짝반짝한 연구주제들이 실제 연구로까지 이어지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지속적으로 연구에 대해 지지해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지지공동체’의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컨퍼런스를 통해 연구계획을 선언하는 대원들을 지지해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지지자들을 찾고자 하구요. 동시에 연구자분들에게도 이번 컨퍼런스가 계속해서 이 연구들을 수행해나가실 수 있는 큰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기술과 기업가정신을 통해 산업을 혁신하는 기업들인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데모데이Demoday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창업 3년 이내의 극초기 기업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발표하는 행사이지요. 사실 이때까지 창업가들은 이렇다 할 뚜렷한 실적을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MVP(Minimum Viable Product)라는 파일럿 결과물과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가지고 사업의 가능성을 설득하고, 투자자들은 기업의 현재 자산과 수익이 아닌, 창업가의 역량과 사업계획의 잠재성을 중심으로 투자를 집행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토스, 배달의민족과 같은 산업을 혁신하는 기업들이 초기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사업계획을 실현해서 산업을 혁신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Active Research 또한 스타트업 생태계 못지않게 큰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생태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이 6명의 반짝반짝한, 가슴 뛰는 연구 만큼이나 수백, 수천가지의 문제들이 꼭 연구할 연구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연구자 및 예비연구자분들도 언제든 함께 해주시길 기다리겠구요.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이 분들의 연구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 가져주시고, 사회문제들의 해결과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면역체계”를 구축하는 그 날까지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Bennett, N., & Lemoine, J. (2014). What VUCA really means for you. Harvard business review, 92(1/2). 오연서. "나는 텔레그램 N번방에 있었다." Esquire. 2020년 4월 17일자. https://www.esquirekorea.co.kr...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선언. (2001). https://agilemanifesto.org/iso... "무력감". 네이버 위키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 애자일(Agile)이란 무엇인가, https://m.post.naver.com/viewe...
제3지대 정당, 어떻게 봐야 할까?
캠페인즈 미디어를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빠띠 캠페인즈를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 너무나 반갑습니다! 22대 총선까지 앞으로 두 달 남짓이 남았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여러분이 기대하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승리하길 바라는 정당이나 당선되길 바라는 정치인이 있으신가요?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무당층이라면, 혹시 제3지대 소식에 관심을 두고 계신가요?  제3지대의 가능성은 매 총선 때마다 화제였습니다. 유권자들은 제3지대에 기대를 품었다 양당으로 회귀하길 반복해왔어요. 22대 총선은 제3지대 바람이 돌아올 순서입니다.  그 열망에 응답하듯, 이미 다수의 진영이 제3지대 야영장의 텐트를 펼쳤죠. 캠페인즈에서 그 야영장의 풍경은 어떤지 정리해보고, 그 앞에서 유권자인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얘기해보려 합니다. 제3지대 야영장 훑어보기 이번에 새로 세워진 텐트는 현 시점에서 3개입니다. 개혁신당, 개혁미래당, 새로운선택입니다. 개혁신당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 대표가 창당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출신 양향자 의원이 창당한 한국의희망과 합당했습니다. 개혁미래당 더불어민주당 탈당파 중심입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새로운미래와 이원욱 의원 등의 미래대연합이 공동창당했습니다. 새로운선택 더불어민주당 출신 금태섭 전 의원이 창당했습니다. 류호정 전 의원이 이끄는 정의당 내 그룹 세번째권력이 합류했습니다.  이들이 이번 총선에서 유의미한 규모로 자리잡으려면 하나의 빅텐트로 뭉쳐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빅텐트 만들기는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우선 각 세력 중심 인물의 출신 정당을 보면 알 수 있듯, 정치적 성향의 차이가 있습니다. 세 정당 모두 중도를 표방하긴 하지만 페미니즘 등 특정 의제를 두고는 노선이 크게 다르죠. 다들 합당의 가능성은 보고 있지만, 절차와 형식을 두고 계산이 복잡합니다. 한 정당에 흡수 합당되어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죠.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당을 공동 창당하기도 까다롭습니다. 각 세력의 지지층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죠. 역사로 보는 제3지대 성공조건 제3지대 아영장의 모두가 공유하는 고민은 두 가지입니다. 1) 빅텐트로 합칠 것인가, 2) 어떻게 정치권에 뿌리내릴 것인가.  제3지대 흥망성쇠의 역사를 살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겠죠. 지금까지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되는 제3정당은 통일국민당, 자유민주연합, 국민의당입니다.  통일국민당: 재벌의 정치사업 1992년 14대 총선에서 31석을 얻었습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창당했습니다. 정주영은 1992년 통일국민당 대선 후보로 나서 16.3%의 득표율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정주영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당은 빠르게 몰락했습니다. 은퇴 사유는 대통령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인한 검찰 수사였습니다.  통일국민당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정주영의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소속 의원들은 그가 가진 가능성만을 보고 모였기 때문에 이념이나 유대감을 공유하지 않았죠. 즉 정주영 없는 통일국민당은 존속 이유가 없었고, 대다수의 의원들은 탈당 후 당시 여당이던 민주자유당에 입당했습니다. 자유민주연합: 지역을 쥔 캐스팅보트 1996년 15대 총선에서 50석을 얻었습니다. 민주자유당을 탈당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창당했습니다.  김종필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만든 캐스팅보트를 쥐어왔습니다. 3당 합당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DJP 연합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켰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는 최초이자 마지막인 연립 정부를 구성했어요. 이러한 영향력은 튼튼한 지역 기반 덕분에 발휘됐습니다. 충청 기반의 자민련이 지역정치 구도를 비호남권(영남+충청)과 호남권으로 재편하며 정계가 크게 바뀌었죠. 그 결과 지역주의는 더욱 강화됐습니다. 국민의당: ‘새정치’에 대한 기대 2016년 20대 총선에서 38석을 얻었습니다. 2012년부터 ‘새정치’를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 의원이 창당했습니다. 국민의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2016년 호남 지역구 28개 중 23개에서 국민의당 후보가 당선됐죠. 호남의 젊은 세대가 호남을 ‘잡힌 물고기’ 취급하며 홀대하는 민주당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모호한 정치적 입장으로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졌고, 내부 분열도 심해졌습니다. 결국 창당 2년 만에 해산하고 보수정당 계열의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이 됐습니다. 2020년 안철수 의원은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다시 국민의당을 창당하지만, 2022년 대선 국면에서 국민의힘과 합당했습니다. 세 가지 성공 사례의 공통점은 대선 주자급 인물과 탄탄한 지역 기반입니다.  특히 중심 인물들의 특성을 통해 제3지대에 걸린 기대의 성격을 분석해볼 수 있는데요. 정주영과 안철수는 정치 입문 전부터 대중적 인기가 높았습니다. 정치 경력의 부재는 기성 정치에 냉소적인 대중들에게 외려 매력으로 작용했어요. ‘그놈이 그놈’인 정치판에 완전히 새로운 판을 깔아줄 참신한 영웅으로서 부상한 겁니다. 정치혐오를 등에 업고 성장한 측면이 있죠. 김종필은 탄탄한 정치 경력과 강력한 지역 기반을 융합시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지역 기반의 중요성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는 말 그대로, 지역이 전략적으로 사용하기 유리한 지지층이란 것이고, 둘째는 꼭 지역이 아니더라도, 확실하게 지목할 수 있는 타겟이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건들은 제3정당이 지속되지 못한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중심 인물이 이탈하자마자 정당 조직이 무너졌죠. 지역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지역 기반도 빠르게 약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인물과 지역은 제3정당 부상의 조건일진 몰라도 지속의 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제3지대, 어떻게 바라볼까 과거 사례들에 비추어 지금의 제3지대를 살펴보면 어떤가요? 핵심 텐트로 불리는 개혁신당과 개혁미래당에는 각각 이준석, 이낙연이라는 인지도 높은 인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어요. 지역을 놓고 보면, 개혁신당은 대구를 중심으로 당원 모집을 하고 있습니다. 개혁미래당은 호남을 노릴 가능성이 높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제3지대의 성공 여부는 무엇보다 새로운 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에 걸려 있습니다. ‘새정치’를 한다는 세력이 기성 정치와 똑같아 보인다면 전혀 매력적이지 않겠죠. 또한 정치 구도 개편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합의가 필요합니다. 당장 확실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여기에 나서 줄 안정적인 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면 불확실한 제3지대는 선택지에서 제외될 테니까요. 유권자들은 이미 숱한 실패를 목격했어요. 제3지대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진 상황입니다. 제3지대가 기회를 얻으려면 ‘어차피 오래 못 가고 거대양당과 합당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야 합니다. 이제는 부상과 지속의 가능성을 동시에 증명해야죠. 이에 제3지대 세력이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해답은 ‘합리성’과 ‘원칙’입니다. 기존의 이념 중심 정치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정치를 추구하고, 정치의 원칙에서 벗어난 양당과 달리 공정한 태도를 보여주겠다는 건데요. 중도·무당층을 노린 전략으로 해석됩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4%가 ‘제3지대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고 답했고, 그중 무당층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제3지대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몇 가지 질문을 준비해봤어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한국 정치가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요? 제3지대의 출현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나요? 제3지대 세력들과 거대양당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제3지대가 모두 손잡고 ‘빅텐트’를 이룬다면, 부상과 지속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까요? 참여자들 간 노선 합의는 지지층을 모으는 데 긍정적일까요, 부정적일까요?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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