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행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결로 인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중대한 위기에 처했다.
- 피해자의 목소리는 지우고 가해자의 항변만을 인정한 ‘기울어진 판결’
- 장애인들이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결실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정’
- 수많은 미신고시설과 종교시설 내외 장애인 학대 사건에 또 한 번 ‘면죄부를 준 판단’
2024년 1월 31일 (수) 오전 10시, 지적장애인 사찰노예사건 반인권적 대법원 판결 공동대책위원회(전국장애인부모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대법원 앞에서 ‘사찰 내 장애인 학대사건에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지적장애인 피해자 A 씨는 30여 년간 절에서 당한 학대 사실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장애인 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오직 단순폭행죄로 약식명령 벌금 500만 원을 내렸다. 단 500만 원으로 세상에 묻힐 뻔하였던 이 사건은 피해자 가족과 장애인단체의 노력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한 것을 넘어 강제근로 및 명의도용까지 한 사실을 밝혀내 검찰이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1심과 2심에서는 가해자에 대해 각각 1년과 8개월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피해자가 학대를 당한 세월에 비하면 반의반도, 또 반도 안 되는 세월이지만 적어도 원심 재판부에서는 피해자가 한 육체노동이 ‘울력’의 정도를 넘어섰다는 사실, 즉 피해자가 무늬만 스님이었고 실질적으로는 노예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30여 년 동안 당한 학대 사실을 모두 부정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2년 동안 12회에 걸쳐 폭행 당한 사실을 ‘일상적인 수준’으로 축소시켰을 뿐 아니라 당사자 동의 없이 주지스님이 명의도용한 사실을 법원이 모두 인지하고서도 가해자의 행위를 오히려 장애인차별금지법 취지와 부합한다며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평등을 실현할 법원의 책무를 저버린 판단을 내렸다.
✔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임한결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대법원이 내린 최악의 판결, 법 어디에도 장애인 차별 판단 시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없어”
- 임한결 변호사는 “대법원이 가해자의 서면만 읽고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법률 해석에 관한 최고사법기관으로서 대법원의 판례는 사실상 구속력이 발생하는데 이번 판결은 한 사건에 대한 단순한 오판을 넘어서 장애인들이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결정”이라고 말했다.
- 그러면서 이번 판결에서 차별행위를 ‘비장애인과 비교하여 ’ 부당한 취급할 때만 성립된다고 본 점을 이번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구체적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는 차별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비장애인과 비교’하라는 말은 법 처음부터 끝까지 존재하지 않고 장애인 차별과 관련된 차별구제조치나 손해배상, 국가인권위원회 차별판단 모두 이 요건을 들지 않는다”며 근거 없이 해석을 내린 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했다.
- 이어서 “대법원의 논리대로라면 장애인 차별을 피하기 위해 비장애인도 똑같이 불리하게 대하면 된다. 장애인을 한 대 때리고, 옆에 있는 비장애인도 한 대 때리면 차별이 아닌 것이냐”며 “적어도 수익적 행위가 아닌 침익적 행위에 대해서는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취급했는지 여부를 따지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 마지막으로 “이 사건 재판장(권영준 대법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본인이 소수종교를 믿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소수자를 잘 대변하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했지만 그저 말뿐이었다”며 “피해자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판단했던 원심의 사실관계를 대체 무슨 근거로 대법관이 해석한 것이냐. 일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12차례 폭행을 행사하고, 당사자와 상의도 없이 명의 도용하여 부동산을 매입하고, 1심 선고가 나기도 전에 법인으로 사찰 소유권을 이전하여 집행을 회피한 사람에 대해 자애로운 은덕이라도 베푼 것처럼 봐준 셈”이라고 밝혔다.
✔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백선영 활동가 , “이 사건은 명백하게 장애를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한 차별행위, 끝까지 묵인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
- 백선영 활동가는 “대법원에서 생각하는 착취와 차별의 정의가 무엇이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묻고 싶다”며 “피해자가 일이 느리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피고인 마음대로 피해자 명의를 도용하였는데 비장애인 스님이었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는 명백하게 장애를 이유로 한 학대 사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적장애인이 ‘가스라이팅’형 범죄피해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대법관은 더욱 인지할 필요가 있다”강조했다. 더 나아가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사법 체계가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파했다.
- 이어 “우리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차별과 착취의 문제는 삶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사건은 피해자 한 사람의 개별 사안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어떤 발달장애인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끝까지 묵인하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법무법인 디라이트 공익인권센터 김강원 부센터장, “조계종, 유사 학대 사례에 대한 전수조사 요청했으나 묵묵부답, 시대에 맞지 않는 전통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삶과 권리를 억누르고 있지 않은지 성찰 필요해”
- 김강원 부센터장은 “대법원의 판결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판시를 보면 가해자인 피고인의 입장만 고려할 뿐 가장 중요한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시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판결 어디에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폭력과 학대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없었으며 이리저리 재단하고 해석하며 판단하는 대상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 아울러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행위를 ‘보호’라고 주장하는데 그가 돌봄서비스와 보호의무를 제대로 제공했겠는가, 만약 복지시설, 거주시설에서 이런 행위가 발생했다면 그 시설은 어떻게 평가받았겠는가”라며 “종교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데리고 복지시설처럼 기능하는 것은 신고하지 않고 복지사업을 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위법소지가 있고 관할 관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으니 인권침해가 일어날 소지가 높으며 이 사건처럼 오랜 세월동안 묻혀져 있을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꼬집었다.
- 김 부센터장은 “이 사건 고발 당시 조계종 측에 유사사례가 없는지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직접 종단 사무소를 찾아가서까지 했지만 종단 측은 묵묵부답했으며 이번 판결이 선고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에 유감을 표하며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장애인차별금지법을 휴지조각으로 전락시킨 법 해석이다. 장애인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여행도 시켜주면 해당 사건의 행위들이 무죄가 된다는 장애감수성에 깊은 유감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 “장애인권옹호자들이 가열차게 싸우고, 자신의 삶을 내던지며 쟁취하고자 했던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라는 가치를 하나의 판결로 무너뜨려”
- 조인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장애인의 권리보장, 차별과 학대 근절이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의 입법취지를 형혜화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력착취의 사전적 의미는 생산수단의 사유자가 노동자를 노동시간 이상으로 일을 시켜 성과를 취득하는 일”이라며 “피해자가 한 노동은 가해자가 사찰은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건축공사도 가해자가 세운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피해자가 한 노동의 성과는 모두 가해자의 이익으로 돌아갔다”고 강조했다.
- 또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철저히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무시했다”며 “사전에 피해자는 스님이 되기 어렵다는 점, 그럼에도 원한다면 노전스님으로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점, 다른 사찰에서는 노전스님에게 보수를 지급하나 우리는 줄 수 없다는 점, 그럼에도 무보수로 고된 노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피해자가 이해할만큼 설명하고 이를 피해자의 자유의사로 승인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마지막으로 “이번 판결의 판단기준, 장애인에 대한 관점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두에 반한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며 “이러한 판결이 다른 장애인차별사건에서 그대로 답습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문석영 활동가, “누구나 일을 하면 월급을 받아야 하고 장애인도 노동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어”
- 문석영 활동가는 “절에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당사자가 일한 만큼의 월급과 같을 수 있냐”고 말하며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정당한 월급을 받았다면 먹고 자는 비용 뿐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모아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어 “장애인의 노동을 그저 의미 없는 일, 도와주는 일로 치부하지 않고 더 이상 장애인의 보편적인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노태호 소장, “장애인 학대사건이 가진 특수성을 법원에서 경각심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
- 노태호 소장은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학대 사건은 수사단계에서부터 진술의 신빙성 등을 인정받기 어려워 기소 자체가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타인에게 쉽게 의존하는 장애 특성으로 인해 유의미한 증거를 수집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런데도 단 500만 원으로 세상에 묻힐 뻔하였던 이 사건은 피해자 가족과 우리 연구소 등 장애인단체의 노력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한 것을 넘어 강제근로 및 명의도용까지 한 사실을 밝혀내 검찰이 기소하기에 이르렀다”며 지난했던 소송과정을 밝혔다.
- 이어 “지적장애인을 돌보아 준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수급비를 갈취하고, 장애인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명의를 도용하여 범행에 이용하는 등의 일들은 연구소에서 수없이 개입해온 다른 장애인 학대 사건의 본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어 온 수많은 미신고 시설과 기도원 등 종교시설 내외 장애인 학대 사건에도 면죄부를 준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를 역행하는 대법원의 판결에 매우 분노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법리를 잘못 해석적용한 점에 대하여 파기환송심에서 적극적으로 다툴 것임을 알린다. 나아가, 장애인 학대사건이 가진 특수성을 법원에서 경각심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멘트
7국민 참여 재판이 시급히 도입해야 할 이유입니다.
판검사 개인의 판단을 운에 맡기듯 하는 건 불합리하다.
사찰에서 30여년간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충격입니다.
지지합니다. 앞으로 어떤 대응이 이뤄질지 알림을 받고 싶네요.
이런 일이 있었군요... 절에 가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데 그런 곳에서 이런 차별과 학대가 일어나고 있었다니 충격적입니다. 정말 세상 곳곳에 차별과 학대가 있군요. 세상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합니다. 저도 관심 갖고 지켜볼게요.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네요. 덕분에 관심 가지고 지켜보게 됩니다.
믿음의 공간에서 학대라니, 믿고 싶지 않은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