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기후위기의 마지막 비상구, 기후정치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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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기후선거’, ‘기후정치’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기후운동 진영은 2020년 21대 총선과 2022년 20대 대선에서 각각 ‘기후총선’과 ‘기후대선’을 주창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기후이슈는 선거이슈로 부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유야 많겠지만 ‘위성정당’ 논란과 거대 양당의 ‘정권심판’ 프레임 속에서 기후이슈는 장식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끔 언론에 소개되는 다른 나라의 ‘기후투표’ 사례가 부럽기도 하고,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기후위기 시대와 동떨어진 대한민국의 고착된 정치 질서에 냉소를 보내기도 합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재난, 올해 22대 총선에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니, 녹색전환을 위한 어떤 계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는 것 못지않게 현실의 정치 지형과 사회운동의 역량 그리고 국민 여론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1월 22일, 방대한 샘플을 통해 발표된 <기후위기 인식 설문조사>(녹색전환연구소,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 공동 주관, 17개 시도별로 1,000명씩 총 17,000명)를 통해 기후투표의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겠습니다.

전체 응답자 중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당에게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응답이 60%가 넘게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평소 정치적 견해가 다르더라도, 평소 지지 정당과 다르더라도’, 그런 의견 분포가 확인됐다는 점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리고 기후정보 인지가 높고 기후위기에 민감하게 느끼면서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할 의향이 있는 ‘기후유권자’가 33%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국민 1/3 정도가 기후유권자로 볼 수 있습니다. 공동 주관 기관의 연구자들은 이 숫자가 투표장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는 합니다만, 기후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들이 상당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응답자 중 ‘이번 총선에서 후보 공약 중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를 묻는 다른 질문에 대해서 기후이슈는 경제, 복지, 정치 이슈 등에 비해 응답 비중이 낮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아래 표처럼 기후유권자로 호명되는 집단에서도 비슷한 비중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33%와 60%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강조하듯이, 이번 설문조사는 단순히 기후이슈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별, 계층별, 연령별, 지역별, 정치성향별, 가치지향별 등 차이와 특성을 파악하여 기후총선 캠페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겠습니다. 

자료: 녹색전환연구소 외, <기후위기 인식 설문조사>(2024.1.22., 프레스센터)

그럼에도 몇 가지 의문이 듭니다. ‘기후투표 → 기후국회 → 기후정치 → 기후대응’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기후유권자의 사표를 방지할 수 있을까요? 현행 선거제도와 정당체계가 기후선거에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소수 진보정당을 포함해 다양한 정당의 원내 진출이 어려워서 거대 양당체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사 제3당이 새롭게 등장하더라도, 21대 국회와 달리 기후국회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너무 비관적인가요?). 기후이슈가 정책공약집에 있다고 해서 총선이슈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후유권자는 누구일까요? 기후의제가 무엇인지에 따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 대중교통(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자원 재활용 강화 등에 대한 찬성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은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탄소세 도입에 대해서도 국민들 사이에서 일정한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RE100(재생에너지)과 CFE(무탄소에너지)를 가르는 쟁점은 원자력에 대한 입장 차이입니다. 원자력 찬성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친원전-탈원전’ 논란이 정당 지지(여당-야당)와 어느 정도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원자력과 관련해서 기후유권자를 규정하는 판단은 다분히 자의적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습니다.

셋째, 누구나 기후위기를 말합니다. 그만큼 보편적인 이슈이지만, 핵심 쟁점은 당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책임 논쟁은 주로 선진국과 개도국·빈국 사이에 발생하지만, 계급·계층별로도 다루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자산과 소득 수준에 따라 온실가스의 직·간접적 배출량이 달라집니다. 기후위기의 취약성도 마찬가지이고, 적응 역량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탄소 불평등 때문에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원칙과 방향에 대해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적·지역적·부문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에너지, 산업, 교통, 건물, 농축수산, 폐기물, 흡수원 등 여러 부문의 정책 수단들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 등을 적극 반영해야 합니다. 경제, 복지, 노동 등 모든 정책에서 좌·우의 관점이 있는 것처럼, 기후정책에서도 정치적 균열을 인정하고 공론화를 충분하게 하는 태도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현재 주요 정당 간 선거 경쟁의 모습은 이런 (잠재적) 갈등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대한민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최소한 40%(2018년 대비)를 감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2025년에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상향하여 유엔에 제출해야 합니다. 아래 표는 국제적 맥락을 고려해 2030년을 향하는 길목에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정치 일정입니다. 2023년까지 과거를 되돌아보면, 우리는 초기 시간표에서 많은 것을 놓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을 정도로 시간에 쫓겨서는 안 되겠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자료: 이정필, “다가오는 총선, ‘기후선거’ 가능할까”, 프레시안(2024.1.16.)

기후 의제를 단순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고 복잡하게 꼬아서, 이 글이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기후유권자입니까? 기후유권자는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까요? 기후유권자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4월 10일이 지난 어느 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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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의 선거 전후로 기후위기가 대두되어야 한다는 여러 운동과 움직임을 관찰해왔는데요. 흔히 말하는 '주류'에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본문에서 분석하신대로 정파싸움에 밀리기도 하고 아직은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을 문제라고 보여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 저출생 관련 문제에 대한 대응과 비교해보면 하는데요. 인구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연구와 보도가 이어서 나오자 여야 할 것 없이 기존보다 파격적인 정책을 '자주'갖고 나옵니다.(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체감대로라면 기후위기 관련된 정책도 이정도로 발에 불떨어진 것 처럼 여겨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너무 천하태평인 것 같에요. 기후위기 의제를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정파 싸움으로 보기 때문일지 궁금해집니다.

'기후정치'라는 방향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하겠다는 말은 쉽게 하겠지만.. 실질적인 정책 구체화 및 제도화까지 이어지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내용들을 하나씩 고려해가며 전략을 짜고 진전을 이뤄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후이슈가 정책공약집에 있다고 해서 총선이슈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이라는 말씀이 슬프게 다가옵니다.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음에도 그저 불조심 표어 뽑아내 듯 고민없는 공약들만 보이는 듯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letzte generation의 운동을 자주 들여다보는데요, 여전히 그들의 메세지보다 행동에 주목하며 거칠게 대하는 국가와 시민들의 태도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우울감은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 때문도 있지만 이 심각성을 '모두'가 느끼고 있지 않음에서 오는 것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가 난해한 부분인거 같습니다.
최근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의제로 준비하고 있는 전기요금 인상건도 공론화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울 거 같아요.

기후 유권자가 핵심이라는 뉴스를 보았는데요,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당시에는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볼 수 있었네요. 기후에 대한 관심과 걱정이 정말 투표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해봅니다!

저도 얼마전에 기후 위기 대응 공약이 맘에 드는 곳에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60%라는 기사를 봤어요. 정말 반가웠는데요. 이 글을 덕분에 냉정하게 살펴보게 됐습니다. '기후유권자'들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 이슈 관심 있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