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회문제해결형 연구훈련플랫폼 NAOITH의 "2024 연구원정 LAUNCH Conference"에서 발표될 내용을 발제문의 형태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행사에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 나선 분들의 연구계획 발표(연구 버전의 데모데이)가 예정돼 있고, 이 발제문은 사회 문제 해결에 있어 연구활동가와 정책 연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를 다루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에 나선 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연구활동가들의 문제 해결 플랫폼이자, 민간 싱크탱크 LAB2050에서 일하고 있는 윤형중입니다.
먼저 연구활동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이오트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액티브 리서치’(active research)로 개념화하듯, LAB2050은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를 ‘연구와 현장의 경계를 넘나들며 해법을 모색하고 실행을 도모하는 주체’로 개념화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감이 안 잡힐 수 있는데요. 그림을 하나 소개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개선되거나 해결되는 과정엔 반드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연구, 활동, 공론화입니다. 어떻게 이리 단정적으로 말하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입니다. 모든 문제의 개선 과정엔 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윤상 나이오트 대표께서 사례로 제시한 가습기 살균제의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원인 미상의 소아 폐질환 환자들이 매년 봄마다 응급실로 왔고 그 중 다수가 사망하는 사례가 되풀이되자 소아과 의사들이 연구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발견하고 바로 연구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당수의 문제에선 지난한 활동과 공론화 이후에 연구가 시작됩니다. 연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대안을 도출해 내더라도 그걸 현실에 적용하기까지 또 다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가습기 살균제를 팔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제조 기업들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법률적 근거와 정책을 만들기도 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기업이 소비자의 안전에 각별한 책임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두고도 여러 반박과 다른 해석이 나오기 때문에 논쟁을 벌여야 했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게 중요한 문제라고 알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안의 경우엔 피해자들과 유가족들과 연대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그 역할을 했고, 정치권도 뒤늦게나마 나서서 진상 조사를 진행하고,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어떤가요? 분명 이 과정엔 연구도 있고, 활동도 있었으며 공론화도 있었습니다.
베버리지 리포트와 연구활동가
현대 복지국가 수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베버리지 리포트 역시 사전과 사후에 오랜 기간 연구와 활동, 공론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윌리엄 베버리지가 젊은 시절인 1909년, 베아트리스 웹의 빈곤 연구 조사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고, 그가 베버리지 리포트를 낸 시기는 1942년이었죠. 베아트리스 웹이 주도적으로 활동한 영국의 싱크탱크 페이비언협회(Fabian Society)는 단순히 연구자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현장 조사를 중시하는 연구자들의 모임이었고, 베아트리스 웹은 직접 현장노동자의 노동 현장으로 뛰어들어 조사를 하곤 했죠. 베아트리스가 1909년 발간한 소수파 보고서(minority report)의 핵심 내용이 1942년 베버리지 리포트에 담기기까지, 또 베버리지 리포트에 대한 논쟁의 결과 전쟁 영웅인 처칠의 보수당 정부가 실각하고 노동당 정부가 탄생하기까지 역동적인 공론화와 정책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불평등과 기후위기 뿐 아니라, 현안인 전세사기와 보육과 요양의 문제, 가계부채와 연금과 의료 분야의 누적된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는 과정엔 활동과 연구, 공론화가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문제의 해결 과정엔 ‘학계의 체계적인 연구가 개입한 적이 없었다’, ‘시민단체의 조직적인 활동이 없었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조명한 적이 없었다’ 등의 문제 제기 말이죠. 사안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 적도 있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연구와 활동, 공론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세 가지는 문제 해결 과정에 빠지지 않는 한 묶음과 같기 때문이죠. 이 글을 쓰기 위해선 컴퓨터인 하드웨어와 워드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가 다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눈 밝은 분들은 조금 전 제기한 의문들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셨을텐데요. 바로 연구와 활동, 공론화를 주로 담당하는 세 주체입니다.
그 세 주체는 바로 연구자, 활동가, 공론자입니다. 연구자들이 속한 분야는 학계이고, 활동가들이 모인 진지는 시민단체, 비영리단체 등의 시민사회입니다. 공론자는 과거 기성 언론매체들에서 최근 소셜미디어, 개인 블로그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엔서 등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서로 단절된 학계와 시민사회, 미디어
그렇다면 이 세 주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을까요? 각 영역이 워낙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요. 제가 이 세상의 학계, 시민사회, 미디어가 ‘총체적인 실패’라고 단정할 만큼 무모하진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는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세 가지 요소인 연구, 활동, 공론화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요. 각 영역 간 교류가 부족하고, 심지어는 영역 내에서도 단절과 분절의 양상이 심각합니다. 또한, 연구, 활동, 공론화의 공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연구자, 활동가, 공론자의 재정적 기반이 취약하고요. 취약한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선 해당 영역 내에서 주류의 문법을 따라야 하는데요. 현재 각 영역의 주류 문법은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와 활동, 공론화의 연계와 협업이 아니죠.
그래서 ‘연구활동가’(activist researcher)를 주목했습니다. 연구활동가란 LAB2050이 2018년 서울시 청년허브로부터 위탁 받아 수행한 <아시아 다음세대 연구자 교류・협력 플랫폼 구축방안 연구>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한 개념입니다. 새로운 개념은 아니고요. 서구 학계에서 제시된 activist research라는 개념의 주체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비슷한 표현으론 현장 기반 연구자, 실천지식 연구자 등이 있습니다. 사실 표현은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연구와 활동, 공론화의 연계와 협업을 촉진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 정도 설명을 들으면 이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연구도, 활동도, 공론화도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세 가지를 모두 잘 해야 하는가라는 오해 말이죠. 이 세 가지에 모두 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단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세 가지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단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미 각 영역엔 그런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구자, 활동하는 의제를 체계화하고 연구를 통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아내려는 활동가,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는 보도가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저널리스트들이 바로 그런 연구활동가들이죠. 문제는 이들이 각 영역에서 온당한 인정을 받지 못하며 때로는 외롭게 활동과 연구, 공론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결국 연구활동가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세 가지를 조화롭게 연계하는 삼위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액션 리서치를 위한 세 가지 제언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에 나선 분들은 이미 활동과 공론화를 염두에 둔 연구활동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 가지 제언을 드리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첫째는 연구와 활동, 공론화를 하나의 일체로 본다면 연구의 끝은 활동과 공론화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연구의 사전 사후와 중간중간에도 활동과 공론화는 무시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하나의 연구를 기획해 시작한 이후에 보고서나 논문이 완성되면 내가 할 일이 끝났다고 여길 수 있는데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액션 리서치)의 목적은 논문 출간이 아닌, 사회 문제 해결이었잖아요. 따라서 연구 결과물이 나오면 그때부터 활동과 공론화는 더욱 활발해져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후속 연구의 주제들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둘째는 문제에 대한 분석만큼 대안에 대한 심도 있는 모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들이 사회 문제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심도 있게 하는 반면에 대안을 단편적으로 모색하는데 그칩니다. 물론 연구가 대개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대안 모색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 연구의 주제가 ‘문제의 원인에 대한 가설’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안을 제대로 모색하려면 ‘문제의 원인에 대한 가설 검증’만큼 대안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다각도로 모색하고 분석하고, 검증해야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라면 대안에 대한 모색도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의 연구로 어렵다면, 후속 연구를 통해 대안을 제대로 모색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셋째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안 중에 가장 강력한 수단이 정책이니, 너무 당연한 얘기일 수 있는데요. 현실에선 우리 정치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정책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예산과 법규의 창의적 조합’인 정책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에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던 정책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하고요. 대안으로서의 정책도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가 정책으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코멘트
5경쟁구도가 삶속에 뿌리내린 관계에서 연결고리를 만들어 협업을 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그럼에도 이같은 시도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합니다
사회문제 해결의 3요소로 “연구, 활동, 공론화"로 요약해주시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의하면서 제 나름대로 문장을 써보자면 활동과 공론화 없는 연구는 찻잔 속의 공허한 지적 유희가 되기 쉬울 것 같고, 연구와 공론화 없는 활동은 찻잔 속의 맹목적인 개구리가 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연구와와 활동 없는 공론화는 성립하기도 어렵겠지만 성립한다면 알맹이 없는 껍데기로서의 정부의 자기정당화 제도화일 것 같습니다. (두개씩만 있는 것도 조합해 보고 싶은데 길어질까봐 요까지만.. ^^;;)
연구-활동-공론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1] “연구와 활동, 공론화를 하나의 일체로 본다면 연구의 끝은 활동과 공론화의 시작”이다.
[2] “문제에 대한 분석만큼 대안에 대한 심도 있는 모색이 이뤄져야 한다”
[3] “정책이 중요하다”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제언 주신 것에 동의하게 됩니다.
연구자와 활동가, 시민들, 정치인들이 만나 공론을 형성해 나가는 다양한 층위의 공론장 행사 혹은 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당 공론을 정책으로 번역하고 실질적인 제도화를 마련해 나가는 정치적 조건을 마련하고 거버넌스 제도를 마련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연구가 끝나면 끝인 게 아니라 활동과 공론화의 시작이 되어야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