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저는 14년째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입니다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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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저는 14년째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입니다 (2022-10-19)

이레(가명) | 가족돌봄 청년

게티이미지뱅크


아침 7시, 눈을 뜨자마자 엄마의 소변으로 가득 찬 주머니를 비운다. 혼자서는 발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엄마가 밤새 욕창이 생겼을까 서둘러 자세를 바꿔준다. 엄마의 몸을 이쪽저쪽으로 잡아당겨서 정렬을 맞춰 앉혀주면 온몸에 땀이 흐른다.

8시가 되면 엄마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죽과 반찬을 꺼내 떠먹여드리고 나면 활동지원사가 온다. 10시, 내가 먹을 아침을 챙겨서 부랴부랴 집을 나온다. 곧 지나갈 오전 시간이 아까워 다급하게 학교 도서관을 찾아 과제와 논문 작성 등을 한다.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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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 위해 일단 책상에 앉으면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함이 몰려온다. 밤늦게까지 엄마가 잠들지 못하거나 중간에 깨는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7일을 쉬는 날 없이 엄마를 돌보다 보면 충분히 잠잘 수 없기에 피로가 쌓이고, 이렇게 누적된 피로는 공부하거나 무언가에 집중해야 할 때 방해가 된다.

할 일을 꾸역꾸역 마치고 늦은 오후 시장에 들러 감자, 호박, 버섯 등 반찬거리를 산다. 시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은 50~60대 가정주부다. 그들을 마주할 때마다 정신없이 살면서 꾹꾹 눌러놓았던 불안함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다른 애들처럼 공부하거나 일해야 할 시간에 여기서 뭘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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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활동지원사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귀가하면 엄마 돌보기가 다시 시작된다. 종일 공부와 과제를 하며 지친 몸을 씻고 쉬고 싶지만, 엄마 기저귀를 챙기고 자세를 바꿔가면서 자정까지 바삐 움직여야 한다. 엄마가 잠들면 그제야 나도 누울 수 있다.

2009년 9월, 내가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엄마는 사고로 경추 3, 4번이 손상돼 사지가 마비됐다.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여러 재활병원을 전전했다. 재활병원 특성상 3~6개월이 지나면 더는 입원할 수 없어 2012년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사고 전 몸이 성치 않아 사회생활이 어려운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졌던 엄마의 강인한 모습은 사라졌고, 몸도 마음도 약해졌다. 그렇게 엄마의 손과 발이 돼 지내온 지 10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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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병원에서 본 간호사 선생님들은 그야말로 백의의 천사였다. 수많은 간호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들을 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간호학과에 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그렇게 평일에는 공부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병원에서 엄마를 병간호하며 운 좋게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동기들처럼 대학병원 정규직 간호사로 취업도 했다. 최대한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으며 일과 돌봄을 병행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전문 간병인이 아닌 가정주부들이 대부분인 활동지원사는 밤 근무가 어려웠고,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활동보조 시간에도 한계가 있었다.

현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에서는 혼자 대소변 처리가 어려운 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의 활동보조 급여를 제공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직계가족 등 보호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허용된 시간은 하루 7시간 남짓이었다. 현실적으로 평균 8시간을 근무하는 직장생활은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도저히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입사를 포기했다. 그때부터 엄마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파트타임 잡을 찾기 시작했고, 중간에 일을 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경력을 쌓는 것과는 거리가 먼 잠깐 용돈벌이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가 아프고 난 이후 내 삶의 모든 선택과 결정의 1순위는 엄마 돌봄이었다. 학업과 취업, 진로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대학 동기들은 이미 6~7년차 어엿한 간호사로 자리잡고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결혼, 출산 등 인생의 과업들을 차근차근 밟고 있는 것 같다. 사는 데 있어 점점 친구들과 거리가 멀어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친구들을 만나 간병 스트레스를 털어놔도 온전히 이해받기란 쉽지 않았다. 그럴수록 고독감과 외로움은 더욱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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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긴 간병 이후 이 세상에 오롯이 나만 남겨진 삶은 어떨까? 해방감과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갈까? 마음껏 꿈꾸고 도전하며 시행착오도 거친다는 청년기를 엄마 간병으로 흘려보내는 지금의 상황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를 돌보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걸까. 이 기나긴 터널의 끝에 힘들었지만 특별했고 의미 있었던 순간으로 기억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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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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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또래이신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쓰이며 읽었습니다. 현실에 대한 불안함도 공감합니다.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가 가족들의 돌봄을 너무나 당연하게 상정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빈틈이 만든 상황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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