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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이태원과 세월호, 같은가 다른가?
이태원을 세월호로 만들지 말라고 한다.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에서 언제나 소수의견으로 살아온 입장에서 보자면 참 이상한 용법이다. 이태원과 세월호를 의미화하는 게 각기 다르니 언어에 어긋남이 발생한다.
가령 이태원을 세월호로 만들지 말라는 사람들은 ‘세월호’를 정쟁화되고 불순해진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민주당의 정권교체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와 그 운동이 가진 모습의 아주 협소한 부분만을 과잉대표하게 만든다. 대책위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긴장과 논쟁이 존재했고, 유가족들도 운동이 도구화되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태원 참사를 아직 덜 오염된 비정치적인 사안으로 본다는 점에서도 참사의 의미를 협소하게 고정하려 한다.
그 반대편에서 이태원과 세월호가 단순하게 동일하다고 하는 이들은 일종의 거울상에 해당한다. 정권퇴진 및 교체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두 참사의 의미를 정권의 문제로 아주 협소하게 규정하는 것이며, 유가족이나 참사에 슬퍼하는 사람들의 여러 얼굴을 주변화한다. 이는 보통 참사를 과도하게 ‘정치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권교체의 의미만을 부여한 채 다른 모든 정치적 의미를 제거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냉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참사를 탈정치화한다.
나는 이태원과 세월호는 각론에서 다르지만 총론적으로는 같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로 세월호 참사와는 다르다. 하지만 같기도 한데, 진영론의 정치 사이에 갇혀 있다는 점이 첫 번째 공통점이다.
나는 여기서 연역주의적 사고를 본다. 말하자면 다들 이미 ‘정답’이 있어서 그 정답을 적용하는 것으로 사안을 해석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지적으로 게으른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이런 연역주의적 사고는 정답을 강요함으로써 ‘질문’을 봉쇄한다. 모든 새로운 사안은 새롭기에 질문을 요한다. 과거의 사안과 완전하게 동일한 새로운 사안이란 건 없다. 다만 참조할 수 있을 뿐, 황망한 참사에 응답하는 태도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익숙한 세계를 박살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 익숙한 세계에 갇혀 있었기에 우리는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이므로.
이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사고다. 정치의 의미의 폭을 협소하게 만들어 그들이 지배하는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에 태클을 걸기 때문이다. 참사의 의미가 정권교체로 환원되어야 하는 것 혹은 참사의 의미가 정권교체 투쟁으로 나아가선 안 된다는 것, 둘 모두 정권교체의 문제로 참사의 의미를 고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론적으로 참사를 ‘탈정치화’하는 것이며, 그러한 탈정치화의 정치를 깨부수는 질문이야말로 더욱 정치적인 것이다.
나는 ‘국가’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리고 국가의 문제에 대한 ‘집단기억’이라는 점에서 세월호와 이태원이 연속선상에 있다고 본다. 우선 국가는 다시 한 번 ‘배신’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국가와 정부가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를 상징적으로 대리 혹은 재현하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국가인 것은 아니다. 보수진영이 ‘참사를 못 막은 건 문재인 정권 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서’라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 놓았는데, 윤석열 정부의 직접적 책임을 전제한다면 역설적이게도 그 궤변은 옳다.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서 시스템 부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부가 오더라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참사’에서 문제인 정부는 유능했지만 어떤 경우엔 무책임하고 무능했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가 겪는 폭력과 죽음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더군다나 집단기억의 문제가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십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90년대의 여러 참사들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장면이나 원인이 겹쳐지기도 하니, 보수진영이 세월호와 이태원을 다르다고 윽박지르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두 참사를 부각하면서 다른 약자들의 죽음에는 무관심한 민주진영에게도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여러 죽음들을 간에 위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사회적 죽음들이 각각의 성격과 맥락을 간직하면서도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국가의 구조적 배신이 그것이다. 세월호와 이태원 사이에, 2016년 5월에 강남역과 구의역에서 사람이 죽었고 2022년 9월과 10월에 신당역과 평택SPL 공장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외에도 즐비한 죽음들은 모두가 다 참사이며,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게 중요한 것들이다. 하물며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코로나19의 상처가 이태원 참사를 짓누르고 있다.
나는 참사의 의미를 좁게 규정하려 하는 모든 담론들에 반대한다. 참사는 그런 의미에서 (명단 공개에 찬동한 사람들의 폭력적 언어를 빌리자면) ‘공공재’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질문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공동의 경험이자 지적 자원이 되어야 한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이태원 참사는 ‘퀴어들의 참사’이기도 하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 시기의 이슈화된 혹은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죽음들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태원과 세월호의 관계에 대한 진영론적인 말들은 다 거짓말들이다.
2022.11.3 [이태원 참사] ‘상주’ 없는 애도 기간
2022.11.7 [이태원 참사] 상징과 언어가 없는 참사
2022.11.9 [이태원 참사]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가? - 참사의 명명법, 그리고 미디어의 보도 원칙
2022.11.23 [이태원 참사] 일상과 함께 가는 애도
2022.11.24 [이태원 참사] 이태원과 세월호, 같은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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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일상과 함께 가는 애도
슬픔과 애도의 시간이 ‘일상’과 구분된다고 믿는 것도 이분법적인 사고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상실의 중력이 없는 일상의 시간으로 얼른 복귀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매년 기념일이 되면 잠깐 일상에서 과거로 돌아가기를 허락받으면서, 다시 산 사람의 평온한 일상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에서 트라우마는 사라져야 할 병리적 증상이다. 고통스런 과거가 갑작스럽게 찾아와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고, 그 방문은 어무나 우연한 것이라 통제되기 힘들다. 그러니 트라우마는 치료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슬픔이 표백된 평온한 일상으로 얼른 돌아가도록, 어떤 트라우마적 바이러스도 틈입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애도와 일상을 구분짓는 것은 이상한 시간 개념이다. 슬픔에 젖는 것은 예외적 시간이고 일탈이라 재빠르게 일상이라는 정상적 시간대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이런 이분법이 현실과도 맞지 않으며, 무엇보다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은 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이것은 상실의 본질이다. 그러니 과거의 평온한 일상으로도 당연히 돌아갈 수 없다. 상실은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부재를 의미한다. 상실과 그로 인한 애도는 일상 밖의 예외상태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천천히 잦아들고 나아지겠지만 가끔씩 떠오르고, 슬프지만 동시에 미소지을 수 있는 때도 찾아온다. 상실된 것은 다시 채워지지 않지만 대신 삶은 그보다 풍부하기에 상실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다.
아마 유물론적으로 얘기한다면 애도와 일상의 이분법은 노동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상실에도 불구하고 생을 이어가기 위해 선택한 기억과 망각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애도를 위해 온전하게 자신의 시간과 애너지를 쏟을 수 있는 아주 잠깐의 예외적 시간을 용납받은 다음, 다시 생활을 위해 일하고 돌보며 살아야 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더해 타인의 슬픔과 애도를 수용하고 지지하는 데 인내심이 없는 사회의 각박함도 한몫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사회가 그보단 더 성숙할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혐오와 부인의 담론이 기승을 부리지만 그래도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상에서 드문드문 상실이 다시 떠오를 때면 그 곁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런 시간을 허용할 줄 아는, 침묵과 포옹이 따스한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아는 사람들 말이다.
상실로부터 해방될 수는 없지만 상실을 대처하며 일상을 회복해가는 과정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아직 희생자가 확실해지지도 않은, 그러니까 사람이 아직 죽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가의 애도를 표한 정부의 방식은 얼른 다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종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퇴진이 추모다’를 외치는 이들은 슬픔을 시간을 전혀 허용하지 않은 채 그것을 분노의 땔감으로 전용하면서, 사실상 ‘퇴진만이 추모다’가 되도록 애도의 방식을 독점하려 한다. 그 모든 것들에 말문이 막힌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상실을 마주하고 그것을 자기 일상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시간을 허용받을 수 있을까?
2022.11.3 [이태원 참사] ‘상주’ 없는 애도 기간
2022.11.7 [이태원 참사] 상징과 언어가 없는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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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가? - 참사의 명명법, 그리고 미디어의 보도 원칙
이태원 참사 혹은 10.29 참사. 참사의 명명에 대한 논쟁이 인다. 나는 이태원 참사라는 쪽에 무게를 싣고 싶다. 자세하게 찾아보지 못했고 오피셜한 글을 쓰려면 논의들을 좀 봐야겠지만, 크게 1) 지역에 대한 편견과 낙인, 혐오가 생길 수 있으며, 2) 사고장소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불안과 공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사실 1)의 근거가 이태원 참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다. 당장 이태원이나 용산 주민이 참사의 직접적인 대상이라고 단언하긴 힘들다. 피해자에 외국인들도 있는 마당에, 가령 ‘태안 기름유출 참사’라는 명명이 지역에 대한 낙인으로 이어진 것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예단은 섣부르다.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관계일 것이다. 태안이라든지 혹은 안산(세월호), 광주(5.18) 등에 대한 낙인과 혐오 담론은 그 지역에 대한 인식이 권력관계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지방이라거나 시골이라거나 가난한 지역이라는 등의 인식과 결부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한복판의, 그것도 인파로 북적북적한 ‘힙한’ 동네가 기존에 혐오 담론의 대상이 된 지역과 동일하다고 말하긴 어려워 보인다. 2016년의 ‘강남역 살인사건’이란 명명이 강남역 일대를 우범지역으로 만들지 못했던 것처럼.
더 중요한 문제는 2)이다. 트라우마와 치유라는 담론이 너무 기능적인 또는 개인적인 수준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우려가 든다. 생존자들의 참사 기억이 부각되어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것은 문제적이다. 하지만 ‘망각’이 치유는 아니다.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중립화’라는 언어가 가진 문제와 유사하게, 이태원이라는 장소성을 제거한 10.29 참사 역시 참사를 추상화하고 중립화하는 뉘앙스를 지닌다.
역사적으로 달력을 통해 매해 기념일을 제정하는 관행은 근대국가가 집단기억을 형성해 ‘네이션’을 구성하려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물론 저항 기억 역시 달력에 기반해 매해마다 기억을 기념한다. 하지만 그 저항 기역은 추상적 날짜가 아니라 장소성과 강하게 결부된다. 국가는 5.18이나 4.3이라고 명명(기억의 제도화, 국가의 공식기억화)하지만, 5월이 되면 광주의 어른들은 구도청 일대로 나가 시름시름 앓고, 4월이 되면 제주는 마을마다 같은 날 제사를 지내왔다(마을 사람들을 한 데 모아 한꺼번에 학살했으므로). 추상적인 날짜에는 담기지 않는 장소성의 구체적 감각이란 게 있는 것이다. 장소에 기반한 구체적 감각은 지역이 공유하는 집단기억으로 이어지며, 그 기억으로부터 저항 운동이 생겨난다.
그렇기에 이태원이 놓인 장소성을 놓쳐선 안 된다. 그곳이 미군기지 옆에 놓인 동네였기에 상업이 발달하고 외국인들이 찾는 장소가 될 수 있었고, 그러면서 다양한 역사적 사연과 아픔들이 이태원에 녹아들어 있다. 나아가 기독교 세력이 헬로윈 축제를 문란하다고 낙인 찍고 서양문화라고 비난하는 데는, 이태원이 퀴어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라는 점과 떼어놓을 수 없다. 156명의 사망자는 모두 이성애자일까? 모두 ‘한국인’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장소성의 구체적인 맥락들과 결부될 때, 이태원 참사의 의미는 더 풍부해질 수 있다. 또한 참사로부터 생겨나는 운동들 역시 장소에 기반한 집단 기억과 풍부한 맥락에 기반해 더 많은 상상력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장소 연구, 기억 연구들이 장소와 기억이 얼마나 강하게 결부된 것인지 오랫동안 지적해왔음을 강조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소를 호명하지 않음으로써 기억을 옅고 흐리게 만드는 것은 ‘고통’을 축소하려는 의도와 연결된다. 하지만 과연 고통을 느끼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 특히나 이태원 참사를 ‘놀다가 죽었다’며 ‘사적인 죽음’으로 이해하고, 참사의 원인을 희생자와 생존자에게 전가하며, 마치 참사를 ‘남의 일’인양 생각하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서, 참사를 중립화, 추상화하는 방식의 언어는 오히려 망각과 부인에 일조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참사 현장의 영상과 사진을 공유하거나 보여주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는 좀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고 트라우마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재현의 윤리 문제에서도 자극적인 사진과 영상을 활용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잘 감각하기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비현실적인 참사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없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가라앉는 배의 모습 하나만으로도 ‘이해’가 가능하지만, 압사 사고는 정말로 상상하기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참사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이태원 참사에는 참사의 사회적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나 상징이 없다.
(나는 참사 초기에 현장의 영상과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따봉 받으려는 관종으로 보여서.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겪은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이다. 언어가 될 수 없는 참담한 광경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었던 말은 영상과 사진이었다.)
이는 온갖 부인 담론이 팽배해지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애도를 강요하지 마라거나 놀다가 죽었다는 식의 위악의 담론이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참사와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말한다는 것은, 즉 듣기를 거부하는 자들이 듣지 않을 수 없도록 말한다는 것은, 그들이 도저히 지나칠 수 없도록 참사의 참상을 눈앞에 들이대는 것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가 자극적인 보도를 해서 안 된다는 데에 동의하지만, 진실을 알리고 눈 감으려는 사람들까지도 듣게 하려면 참사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도 필요하다. 미디어의 보도와 재현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좀 더 복잡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겐 ‘고통’이 필요하다. 아프지 않으면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기억’한다. 목격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타인의 고통과 죽음에 응답하려는 책임감을 느끼고 타인과 연루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연루와 책임의 태도를 취하는 방식도 속도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어떤 목격자들은 ‘방관자’이다. 그들은 자신과 타인의 죽음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감각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날 그 현장에 있던 생존자와 목격자들은 죄책감이나 미안함을 갖는다.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감각이며 자책으로 이어지기 쉽다. 나는 그들이 자책하며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를 위해선 생존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느끼는 미안함과 죄책감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이 자신이 참사에 강하게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미 고통스럽고 그 고통으로 인해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안함’은 그런 의미에서 응답책임을 가능케 하는 연루의 감각 그 자체다. 그렇다면 과연 ‘방관자’들을 그 고통에서 면제시키는 것은 옳은 일일까?
캠페인즈에 관련 이슈로 '투표' 10·29 참사와 이태원 참사,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가 개설되어 있으니 투표하고 댓글로 토론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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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상징과 언어가 없는 참사
‘놀다가 죽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꽤 넓게 공유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이를 좀 구분해서 보자면 냉소하고 비아냥대기 위해 ‘놀다가 죽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긴 한데, 놀다가 죽은 건데 너무 정치적으로 몰아가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인식에는 헬로윈 축제가 주최가 없는 ‘사적인 행사’이기에 국가의 책임이 옅고, 참사 현장에서도 경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근거를 들어 이런 논리를 반박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당장 참사 당일 관료들의 대응 실패와 시스템 부재에 대한 보도들이 연일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및 서울경찰청와 용산경찰서, 서울교통공사, 보건복지부 및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참사를 예방하지도 발빠르게 대응하지도 못한 채 피해를 만들고 키웠다. 반대로 과거의 헬로윈 축제 당시 안전통제를 비롯해 참사 3시간 전 시민들에 의한 자발적 통제가 일어났던 사례는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적인 죽음’이라는 프레임을 극복하는 데는 이런 논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세월호 참사가 ‘공적인’ 문제란 것은 사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수학여행은 학교(국가를 상징하기도 하는)의 공식 행사이고,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가해와 피해가 너무나 선명했다. 선장과 선원, 진도 VTS와 해경, 나아가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가해자였다.
반면 이태원 참사(10.29 참사라는 용어는 개인적으로 아직 유보적)는 다르다. 직접적인 수준에서의 폭력, 즉 직접적인 가해와 피해만이 가시화된 채 다른 것들은 불투명하고 뒤엉켜 있다. 그날 그 현장에 있던 ‘놀러갔던 사람들’이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얽혀 있는 걸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 시선에서 보면, 서로 (자발적으로) 밀집해서 깔려죽었다는 아주 가시적인 사실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로 인해 국가나 관료, 정부나 시스템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문제들은 비가시화된다. 가령,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경찰이 통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경찰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정부가 강제하거나 주최한 것이 아닌데 대체 정부와 참사는 무슨 상관일까?” 라는 질문은 정부의 책임과 시스템 부재의 문제를 가려버린다.
즉, 왜 정부와 관료가 가해자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세월호와 비교해 덜 선명한 참사인 것이다. 또한 언어가 없다. 언어 없이 애도를 가장한 침묵을 강제한 정부도 그 원인이고, 진영화된 구도로 빨려들어가지 않으려 할수록 혹은 거기에 빨려들어갈수록, 언어가 없는 것이다. 이 참사가 대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언어/상징이 없다. 그런 맥락들로 인해 ‘사적인 죽음’으로 이해하는 프레임이 작동하기 쉬운 것이다.
내겐 결국 재현이나 운동의 문제로 귀결된다. 세월호 참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투명하고 모호하고 구조적 문제가 비가시화된 상황에서, 어떤 언어와 상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이 참사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좌절스럽게도 ‘놀다가 죽었다’가 현재로선 가장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이 참사를 설명하고 그려낼 언어/상징과 정치적 상상력(진영구도에 갇히지 않을)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책임자 처벌이나 정권퇴진론을 넘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를 두텁게 하는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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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상주’ 없는 애도 기간
사회적 죽음은 사회적이고 상징적인 차원의 애도를 필요로 한다. 윤석열 정권이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한 것은 말하자면 국가가 일종의 ‘사회적 상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모두가 시름과 비통함에 빠져 있을 때 애도의 말들을 할 수 있도록 분향소도 차리면서 상주가 되기를 자처했다.
문제는 빈소에 상주가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다. 근조 리본을 거꾸로 달도록 하고, 희생자를 사망자로 재난을 사고로 칭한다. 애도기간을 선포해 상주가 되겠다고 했지만 어디에도 상주가 보이질 않는다. 상주를 붙잡고 울든 화내든 해야 하는데 상주가 없다. 애도를 선포했지만 애도가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선례를 찾으려 하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한 뒤 재빨리 시신을 화장해 부검조차 못하게 했다. 영화 <1987>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가족조차 시신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뼛가루로 남은 상태로 만나야 했다.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는 “종철아 할 말이 없데이” 라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당시 국가는 사회적 애도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애도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며 애도를 불가능하게 한 윤석열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문제가 나온다. 가해자가 상주가 될 수 있는가? 국가가 가해자인데 어떻게 상주를 자처할 수 있나?
그런 의미에서 긴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과거 천안함 사건 당시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조사가 끝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고 직후 애도기간이 선포됐다. 여전히 조사할 것들, 질문할 것들 투성이다. 왜 경찰 인원 배치가 추가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11건의 신고에도 왜 제대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지, 경찰 지휘부와 행정안전부는 왜 사태를 늦게 인지했는지, 중상자 이송이 왜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등…
그외에도 여러 정황과 문제들이 보도되고 있다. 관료와 행정의 작동방식과 무책임의 문제, 개신교 세력들의 문제 등 짚어야 할 질문들도 적지 않다. 근본적으로는 국가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이런 모든 질문들을 통해 이뤄지는 애도는 긴 과정이 될 것이다.
문제는 정권의 수법이다. 국가애도기간은 자연스레 ‘왜 애도를 강요하느냐’는 반발을 낳는다. 나는 이것을 ‘위악의 심성’이라고 말하는 편인데, 이는 강요되는 도덕에 대한 ‘솔직한’ 반발감에 기인한다. 위악의 심성은 도덕과 선함을 말하는 것을 ‘위선’이라고 하며 차라리 솔직해지자고 제안한다. 자신들의 ‘솔직함’이 더 도덕적 우위라고 믿는다. (나는 이런 함정에서 도덕을 구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곁가지 얘기이니 패스.)
하지만 적어도 이번의 경우에 ‘강요’는 유가족도 시민사회도 아닌 국가가 한 것이었다. 애도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면서 애도기간을 선포했고, 문화예술인들이 비판하듯 많은 문화행사들이 취소되기에 이르렀다. 문화예술만큼 애도와 직결되는 것이 없음에도 ‘애도’라는 명분으로 거의 입을 틀어막았다. 즉, 공허한 애도를 강요한 것은 윤 정부다. ‘왜 애도를 강요하느냐’는 반발은 국가를, 윤 정부를 향해야 한다.
그러나 이 위악의 심성은 내일까지인 국가애도기간이 끝나면 그 방향이 뒤틀릴 가능성이 높다. 국가가 선포한 침묵을 강요하는 애도의 기간이 끝나면, 그제서야 진정한 의미에서 애도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그러면 앞으로 애도를 말하는 사람들(유가족, 생존자, 지지하는 시민들…)을 향해 ‘애도를 강요하지 말라’고 하게 될 것이다. 내일이 지나면 윤 정부가 피워놓은 불길이 국가가 아니라 그 반대방향, ‘사회’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가애도기간이 가진 예상되는 효과에 더해, 정부는 장례비 및 위로금 지급과 각종 세금 혜택 지원을 발빠르게 진행할 것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의 데자뷰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고,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국가 대상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같은 맥락에서 ‘돈 요구’라는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담론정치의 문제와 관련해 두 가지 정도를 얘기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애도의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다. 애도를 강요하지 말라는 위악의 심성도 매끄럽고 균질적인 것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애도되지 못한 ‘양가감정’이 있다. 이건 세대가 공유하는 어떤 집단 감각이기도 하다. 헬로윈 참사를 겪은 세대는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세대이고, 마우나리조트 참사가 터지고 대학 OT를 가지 못한 세대이며, 코로나19로 대학 캠퍼스를 밟지 못한 세대다. 이들에겐 재난과 그로 인한 거대한 비극 앞에서 자신들의 ‘작은’ 상실와 슬픔, 아쉬움들이 적지 않다. 배 안에 갇혀 사람이 죽었는데 놀러 가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정말 나쁜 놈들인 것이다. 국가애도기간이라는 말로 이런 모든 상실과 양가감정까지 다 막아버렸으니.) 그러니, 세월호 이후 또 다시 거대한 비극 앞에서 이제는 좀 더 넓은 애도의 담론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위악’의 심성을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각자의 일상에서는 그들이 지닌 상실도 품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다른 하나는 (대부분 청년들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태원 파출소 경찰들이 반발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국가애도기간에 대한 반발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애도’라는 글자에 집중에 윤 정부에서 시민들로 그 대상이 옮겨가는 담론의 뒤틀림 대신, ‘국가’에 방점을 찍고서 국가애도기간-이태원 파출소로 이어지는 국가의 무책임과 책임전가를 문제 삼는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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