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다가 죽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꽤 넓게 공유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이를 좀 구분해서 보자면 냉소하고 비아냥대기 위해 ‘놀다가 죽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긴 한데, 놀다가 죽은 건데 너무 정치적으로 몰아가는 거 아닌가’라는 의문을 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인식에는 헬로윈 축제가 주최가 없는 ‘사적인 행사’이기에 국가의 책임이 옅고, 참사 현장에서도 경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근거를 들어 이런 논리를 반박하는 건 어렵지 않다. 당장 참사 당일 관료들의 대응 실패와 시스템 부재에 대한 보도들이 연일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 및 서울경찰청와 용산경찰서, 서울교통공사, 보건복지부 및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참사를 예방하지도 발빠르게 대응하지도 못한 채 피해를 만들고 키웠다. 반대로 과거의 헬로윈 축제 당시 안전통제를 비롯해 참사 3시간 전 시민들에 의한 자발적 통제가 일어났던 사례는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적인 죽음’이라는 프레임을 극복하는 데는 이런 논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세월호 참사가 ‘공적인’ 문제란 것은 사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수학여행은 학교(국가를 상징하기도 하는)의 공식 행사이고,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가해와 피해가 너무나 선명했다. 선장과 선원, 진도 VTS와 해경, 나아가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가해자였다.
반면 이태원 참사(10.29 참사라는 용어는 개인적으로 아직 유보적)는 다르다. 직접적인 수준에서의 폭력, 즉 직접적인 가해와 피해만이 가시화된 채 다른 것들은 불투명하고 뒤엉켜 있다. 그날 그 현장에 있던 ‘놀러갔던 사람들’이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얽혀 있는 걸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 시선에서 보면, 서로 (자발적으로) 밀집해서 깔려죽었다는 아주 가시적인 사실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로 인해 국가나 관료, 정부나 시스템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문제들은 비가시화된다. 가령,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경찰이 통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경찰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정부가 강제하거나 주최한 것이 아닌데 대체 정부와 참사는 무슨 상관일까?” 라는 질문은 정부의 책임과 시스템 부재의 문제를 가려버린다.
즉, 왜 정부와 관료가 가해자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세월호와 비교해 덜 선명한 참사인 것이다. 또한 언어가 없다. 언어 없이 애도를 가장한 침묵을 강제한 정부도 그 원인이고, 진영화된 구도로 빨려들어가지 않으려 할수록 혹은 거기에 빨려들어갈수록, 언어가 없는 것이다. 이 참사가 대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언어/상징이 없다. 그런 맥락들로 인해 ‘사적인 죽음’으로 이해하는 프레임이 작동하기 쉬운 것이다.
내겐 결국 재현이나 운동의 문제로 귀결된다. 세월호 참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투명하고 모호하고 구조적 문제가 비가시화된 상황에서, 어떤 언어와 상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이 참사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 (좌절스럽게도 ‘놀다가 죽었다’가 현재로선 가장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이 참사를 설명하고 그려낼 언어/상징과 정치적 상상력(진영구도에 갇히지 않을)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책임자 처벌이나 정권퇴진론을 넘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를 두텁게 하는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
코멘트
3제 주위에서도 '정부와 무관한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더라구요. 이제부터 이런 논의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는게 중요합니다. '어떻게'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행위의 목적에 구분하지 않고 사람들이 안전할 수 있어야 누구나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다 죽는건 안되고 다른 것을 하다가 죽는건 허용된다는 논리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네요. 설령 놀다가도 죽으면, 죽게 놔두면 안되는 것이지요....
"정부의 책임과 시스템의 부재의 문제"가 핵심이라는데 동의합니다.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하 언어/상징이 없다고 하시지만, 점점 드러나는 구체적인 정황들은 그 빈공간을 점점 채워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를 묶어낼 언어와 상징들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
"결국 재현이나 운동의 문제"라는 말씀이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겠지요.
"책임자 처벌이나 정권퇴진론을 넘어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를 두텁게 하는 실천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겠네요. 책임자 처벌 요구는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아, 무엇에 책임이 있고,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와 같이 이루어져야겠네요. 정권퇴진론으로 이태원 참사 대응이 환원되지 않길 바라야 할 것 같구요. 정권퇴진이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를 두텁게 하는 실천 중 하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세월호의 경험은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테니.. 정권퇴진론과 구별되는 대응과 담론들을 항상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