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경고성 계엄’이라는 말의 의도

202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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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 오지랖 넓은 사회연구자

출처: MBC뉴스 캡쳐


상황이 흘러가는 모양새가 요상하다. 정부여당은 12월 4일 국힘 의총과 당정대 회담을 통해 탄핵 반대로 명백하게 가닥을 잡았다. 일부 언론들은 윤이 하야도 고민하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지만, 고민의 과정이야 어떻든 뻔뻔하게 밀고나가는 걸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한동훈은 계속 탈당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내란 모의의 주범이 어느 선까지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국방부 차관도 계엄을 언론을 통해 알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국무위원들이 사의를 제출했고, 김용현은 면직으로 처리되었다. 어디까지 얼마나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명확한 것은 김용현이 해임이 아닌 면직으로 처리되었다는 것, 그리고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이 그 어떤 ‘손해’도 보지 않겠다며 땡깡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지금 정부여당은 ’경고성 계엄‘이었다며 비상계엄 선포의 의미값을 축소하고 있다. 한밤중에 두시간 반만에 국회 본회의 가결이 이뤄졌으니, 정말 꿈이라도 꾼 것처럼 잠깐의 소동 후 평화로운 일상에 안착한 듯 느껴지기도 한다. 비상계엄이 워낙 비현실적인 일이라 그 의미를 사소하게 만드는 정부여당의 논리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상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거부감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스탠리 코언의 ’함축적 부인‘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사회심리적 기제로서 ‘부인’에 관한 코언의 연구에 따르면, ‘부인’은 사실적/해석적/함축적 부인이라는 세 가지로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실적 부인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고, 해석적 부인은 ‘실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사실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함축적 부인’은 문제가 되는 사실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가령 ’부정부패는 흔한 일이고 이 정도면 엄청 약한 편이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즉, 정부여당은 함축적 부인을 통해 비상계엄을 마치 꿈처럼 없던 일로 만들고 싶어한다. 이 사태가 사소한 일로 치부되고, 탄핵을 요구하는 야당을 싸잡아 정쟁과 분란을 일으키는 집단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저 통상의 여러 정치적 사안이 쟁점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것도 아닌 계엄과 쿠데타가 쟁점이라는 점이다. 이걸 사소한 문제로 만들고 국민적 피로도를 높이려는 전략은 현재로서는 분명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모레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200석을 넘기지 못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는 출구가 없는 강대강 대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치가 장기화되면 야당의 요구를 정쟁과 분란으로 만들어 피로도를 높이는 전략은 설득력을 가질 공산이 크다. 다시 말하자면, 통상의 정치 이슈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한 번 선포된 계엄이 다시 선포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더욱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 다음번엔 곤봉으로, 실탄으로 국회와 시민들을 짓밟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설마 그러겠냐고 반문하기엔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현실이 이미 벌어졌다.

그래서 비상계엄이라는 비현실적 현실에 대한 현실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득해지는 현실감각을 붙잡아야 한다. 나아가 위기 상황에서 집단적 사고에 빠져버린 여당이라는 집단을 흔들어 탄핵 찬성에 표를 던지도록 하려면, 여론을 통해 강력하게 압박해야 한다. 7일 토요일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는가가 그래서 중요하다.


12월 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탄핵 추진 범국민 촛불문화제가 열렸다.(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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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마치 '작은 실수' 정도로 축소하려는 시도가 정말 충격적입니다. '함축적 부인'을 통한 분석이 정확하네요. 책임지지 않으려는 권력자들의 뻔뻔함과 이를 용인하는 여당의 행태를 보면서, 시민의 힘으로 이들을 제대로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득해지는 현실 감각을 붙잡자는 말이 정신을 차리게 해 감사하네요. 여당이 움직일 수 있도록 시민들이 계속 긴장하고 주시하며 움직여야겠다는 걸 다시 새깁니다.

'경고성 계엄'이라는 말은 정부가 비상계엄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느낌이에요. 사실 비상계엄은 정말 심각한 일이지만, 이를 사소한 문제로 축소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런 말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여론이 중요한 순간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