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잔인하고 자극적인 것은 틀렸다?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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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분야에 오지랖 넓은 사회연구자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을 통한 재현이 가진 정치적 한계에 대해서는 수잔 손택의 논의가 유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 논의가 짚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 보곤 했다. 그 시작은 서경식이 헨미 요의 소설을 두고 ’육박주의‘라고 규정한 대목을 읽으면서였다. 아무리 말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말하기란, 잔인한 현실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내며 눈앞에 들이미는 것외에 다른 방도가 있는가? 당신이 외면하는 현실은 이러하다고, 가감없이 노골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재현의 한 방식일 수는 없는가?

일전에 발표한 원고에 이런 문제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태원 참사 직후부터 했던 얘기이지만 자세히 상술해서 공적 자리에서 언급한 건 처음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업로드된 수많은 영상과 사진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비난을 가했다. 자극적인 장면을 아무런 검열없이 버젓이 올리고, 또 그걸 그대로 받아 내보내는 언론의 보도들, 수익을 올리려고 그 영상들을 활용하는 유튜버들… 하지만 그걸 비판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을까?

누군가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사진과 영상을 내려야 한다고들 말했다. 그러나 참사는 혐오와 부정에 둘러싸여 포위되어 있었고, 그렇다면 오히려, 당신들이 ‘놀다가 죽었다’며 남 일처럼 여기는 장면이 바로 이것이라고, 이 모습을 보고도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냐고 물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나아가, 사진과 영상을 비난할수록 참사 현장을 지켜본 이들에게서 목소리를 박탈하는 것 아니었을까. 나는 당시 거의 모든 영상을 다 찾아봤다. 그런 내게도 참사의 장면들은 비현실적이고 불가해한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하고 묻기 이전에, 이게 대채 무슨 일이지? 싶은 장면들. 사람들이 뒤엉켜 있고, 사람들을 운반해 아스팔트 이곳저곳에서 CPR을 하고 있고, 그런 와중에 클럽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노랫소리들, 참사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들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 역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겪는 상황을 설명할 언어가 없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언어라곤 그저 카메라를 들어 참사의 순간을 담아 SNS에 업로드하는 것밖에 없지 않았을까. 사실 그 영상과 사진들은 말을 잃은 사람들의 절박한 언어 아니었을까.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보를 찾아 헤매다 보니 지금 내 인스타 계정에는 들여다 보는 게 무서울 정도로 온갖 쇼츠와 사진들이 가득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SNS는 심리전이 벌어지는 뜨거운 전장이 되었던 바있다. 현대의 심리전의 주체는 국가와 군대이며, 이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심리전 전술이 수행된다. 지금 심리전 역량에서조차도 이스라엘이 압도적이다. 애초에 팔레스타인은 ‘국가’조차 아닌 상태이고, 정규군과 게릴라군 사이에서 심리전 역량의 격차는 명백하다. 이스라엘은 외신 기자들을 전장에 동행시키며 옆에서 늘상 인터뷰를 하고, 자신들의 관점을 마치 ‘현장의 이야기’인 것처럼 주조해내고 있다. 한국 언론은 이스라엘 대변인의 브리핑을 장면을 담은 영상을 수도 없이 내보내지만, 하마스든 파타든 팔레스타인 측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온 몸으로 겪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는 것 이외에 과연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근대의 국민국가 체제와 국제법 체계 하에서, 전쟁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치르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근대 전쟁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로 시민들의 열정과 지지를 지목한 바있다. 근대 전쟁의 성격은 총력전이고, 총력전은 전 국민적 역량과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니만큼 시민들의 여론과 정서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핵심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류 최대의 총력전이었던 세계 2차대전에서 본격적인 심리전이 등장해, 적의 사기를 빼앗는 동시에 아군과 시민들의 지지를 구하고자 했다. 이스라엘은 정확히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은? 국가기구도 아니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민간인들의 목소리를 심리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재현의 권력’을 박탈당한 존재들의 비명소리일 뿐이다.

극단적인 대항폭력은 보통 재현 권력의 비대칭성에서 온다. 일상적으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저질러온 테러와 학살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 현실. 역설적으로 하마스의 ‘충격적인 공격’만이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는 목소리였다. (왜 전태일을 비롯해 열사들이 분신을 하고, 대학생들이 미문화원에 방화를 했겠나?) 그렇다면 과연 근본적으로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사람들 수백명이 죽어야 그제서야 관심을 기울이는, 바로 나와 당신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간 가해자들 아닌가.

사람들이 죽고 있다. 이것만큼 명백한 문제가 없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과연 지금 당신에게는 들리고 있는가. 들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목소리가 미약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당신이 그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가. 사진과 영상이 아무리 잔인하고 자극적인들 지금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준들 과연 바뀔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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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절규를 듣지 않은 우리의 책임이라는 부분이 생각에서 지워지지 않네요. 잔인한, 선정적인 방식의 정보 확산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같이 살펴야 상황을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 검열,언론 검열 중국과 한국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극을 줘서 시련을 받고 자라야한다
= 고결한 철학

동감합니다. '자극적인 재현의 문제'는 말 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가? 말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가?'라 먼저 질문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분들에게는 그 자극적인 재현이 긴박한 절규일 수 있기에..
SNS에서 참사나 전쟁, 분쟁의 자극적이고 잔인한 사진들을 퍼지면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게 돼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읽고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참혹한 현장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절박한 방법중에 하나가 되는군요..
잔인한 행위는 타인에게 고통이나 상처를 주는 것으로, 다른 삶의 존중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자극적인 것은 건강하지 못한 또는 부적절한 행동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틀렸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