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AI가 저널리즘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신문을 찾지 않은지 오래입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포털에 검색해서 기사를 봅니다. 언론도 그에 맞춰 기사를 썼습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이목을 끌고 클릭하게 합니다. 첫 문단엔 결론을 씁니다. 그래야 빨리 소비하고 나갈 수 있으니까요. 결론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기사를 쭉쭉 내려 댓글을 봤습니다. 친절하게 기사 요약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댓글 여론이 안 좋으면 안 좋은 기사, 좋으면 좋은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에 좋아요가 많이 눌리면, 많은 사람이 공감하니 그것이 사실인 듯 생각한 경우도 많았죠. 때론 그걸 그대로 믿었습니다. 첫문단과 댓글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네, 제 이야기입니다. 대학교 1학년 즈음까지 제 모습이었습니다. 과거는 생략하고, 2학년부터는 주로 신문을 읽었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엔 늘 그날 신문이 있었습니다. 근로장학생들이 주로 아침에 비치했는데, 도서관에 일찍 간 날에는 제가 신문을 받아서 비치한 적도 있었습니다. 보수, 진보, 경제 주로 3개 신문을 읽었습니다. 그래야 왜곡과 가짜뉴스를 걸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외 포털 기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지 않았습니다. 이건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 기사를 봤습니다. 뉴욕타임스 1면 기사였습니다. MS의 AI 빙과 기자의 대화입니다.¹ https://www.nytimes.com/2023/0... 섬뜩했습니다. AI에 자아가 있다는 느낌이었달까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아를 가진 AI가 기사를 쓴다면? 왜곡이 많아질까? 기사의 질이 좋아질까? 팩트만 있을까? AI가 기사를 쓴다면 기자의 역할은 뭘까? 언론사의 역할은? 기자가 필요할까? 언론사가 필요해질까? 저널리즘이 필요해질까?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현재는 어떤지, AI와 저널리즘은 뭘지. AI에 저널리즘을 맡겨도 될지, 시민으로서 저널리즘 바라보는 시각은 어때야 하는지. AI는 어떤 글을 쓰나? 국내외 언론사에서 이미 AI로 기사를 씁니다. 연합뉴스의 경우 2020년부터 날씨 관련 기사는 AI가 씁니다.² 올해 2월에는 맨즈헬스에서 ‘달리기 기록 단축 팁'³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습니다. 이 역시 AI가 쓴 기사입니다. 날씨처럼 단신이 아니라 꽤 긴 기사입니다. AI가 썼다고 말하지 않으면 믿지 않을 정도로 쓰여졌습니다. 날씨 정보부터 건강 정보까지, AI는 이미 활용되고 있습니다. AI의 수준은 변호사 시험과 의사 시험을 통과할 수준이고, 글쓰기 실력도 문학 공모전에 당선될 정도 입니다.⁴ 글도 잘 쓰고, 변호사, 의사 시험을 통과할 정도의 지식과 실력을 갖췄다면 팩트를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도 AI에 넘겨줘도 되는거 아닐까요?  기사는 팩트를 전달하는 것인데, 이미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언론사에 대한 신뢰도 높지 않고, 사실을 과장 혹은 축소하며 쏟아내는 건 이미 현대 언론이 저널리즘 하에 하고 있던 거 아닌가요? 차라리 더 많은 지식을 탐구한 AI의 팩트가 더 신빙성 있는거 아닐까요? AI 작품은 압축된 JPEG 파일입니다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요즘 가장 핫한 Chat GPT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흥미로운 칼럼이 있습니다. 미국의 SF 소설가 테드 창이 뉴요커에 쓴 칼럼입니다.⁵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Chat GPT는 웹 상의 흐릿한 JPEG 파일”이라고. 참고로 그는 아이비리그 대학인 브라운 대학교에서 물리학,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Chat GPT는 수많은 정보를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요약한다는 건 걸러진다는 의미죠. 전체를 통으로 말하고, 보여주는 게 아니라 요약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왜곡이 발생합니다. 마치 JPEG 파일을 그냥 보면 괜찮지만, 확대하면 깨져있는 것처럼요. 문제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점입니다.   Chat GPT 답변도 그렇습니다. 그럴싸합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게 팩트인지 아닌지 헷갈립니다. 내가 정확히 알지 않으면 Chat GPT의 답변이 정답처럼 보입니다. 가령 이런 거죠. 달에 처음 간 사람은 누구인가요? 닐 암스트롱인가요? 루이 암스트롱인가요? 어떤 암스트롱일까요? 현직 대통령 이름, 훈민정음 창제자, 조선 건국자, 지난 월드컵 우승국 등 너무나도 선명한 팩트가 아닌, 어정쩡한 팩트는 위험합니다. 가짜뉴스가 위험한 이유와 동일합니다. 선동도 쉽고, 왜곡도 쉽죠. 만약 언론이 이걸 그대로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이 아닌데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면? 그걸 그대로 내보낸다면? 이런 AI로만 기사를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CNet AI로 쓴 기사 77개 몰래 발행, 한 달만에 오류 41개 발견 사실입니다. 미국의 정보통신 전문 매체 씨넷(CNet)은 구독자 몰래 77개의 AI 자동생성 기사를 썼습니다.⁶ 문제는 오류가 있었다는 점, 그 오류를 한 달 동안 몰랐다는 점입니다. 해당 매체는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수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⁷ 한편, 오류에는 일반 경제 기자라면 틀리지 않을 복리 이자 등 기본적인 계산 오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⁸ 그들 말로는 사람 편집자의 검토를 거쳤다고 하는데, 검토한 것 치고 너무나 기본적인 것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는 게 눈에 띕니다. 이유야 어쨌든, 현재까지 AI에 기대 기사가 발행되는 건 여러 혼란을 더욱 야기할 것 같습니다. 몽클레어 주립 대학교 교수는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 잘 보도된 기사와 가짜 뉴스 구분이 어려워질 것이고, AI가 그것을 확산시킬 것”⁹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저는 이 보도를 보고 한편으로 사람이 더욱 중요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략히 말하면, 기사 발행 순서는 이렇습니다. 기자의 취재, 기사 작성, 데스크 검토, 발행. 실상은 이보다 복잡할 겁니다. 앞서 씨넷의 기사는 기사 작성부터 데스크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어떻게 되는지 보여줍니다. AI가 무분별하게 기사를 쓰는 걸 사람이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다면, 세상엔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가 훨씬 많아질 것 같습니다. 혼란도 가중되고요. 물론 AI를 잘 활용하면 좋은 도구가 될 겁니다. 기자가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독자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측면에서 활용한다면요.¹⁰ 인간이 편리하려고 만든건데, 일도 편하게 해야죠. 하지만, 전 여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AI의 역할은 여기까지 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에 저널리즘을 맡겨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AI에 저널리즘이 없기 때문입니다. AI와 저널리즘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미래엔 AI로 인해 단순 노동직은 없어질 것이라 말합니다. 그 중에 저널리즘도 있습니다.¹¹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널리즘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저널리즘이 아닌 게 사라질 것이라고. 저는 저널리즘의 본질은 진실, 윤리,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에 대한 책임과 윤리 의식, 사람을 위한 마음이 담겨야 한다고요. 한 기자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니라면, 저널리즘이 될 수 없다.(If something did not come from a human mind, it is not journalism)”¹²라고. 동의합니다. 저 역시 진짜 저널리즘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토대 위에 이루어진 취재와 기사가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취재를 하지 못하는 AI는 이 일을 하지 못합니다.  현재 AI 모델은 학습한 내용 중 가장 높은 확률의 답을 내놓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확률의 책임과 가장 높은 확률의 윤리, 가장 높은 확률의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어떤 기사를 낼 것이냐, 말 것이냐 이 모든 것의 결정은 결국 사람이 내리는 것이고, 그 결정에는 진실과 윤리, 책임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또 그런 취재를 거쳐 나온 기사를 시민들이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반문도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현대에 그런 저널리즘이 있나? 라고. 고개가 숙여집니다. 떠오르는 오보와 비판 받아야 할 기자들과 언론사의 모습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레기란 용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은 사람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외에 정말 열심히 발로 뛰며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더 포스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 워터게이트 고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가 주연으로 나옵니다. 기사를 발표하면 언론사가 없어지고 큰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워터게이트 사건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언론의 진실에 대한 책임과 윤리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하나의 보도로 인해 신문사가 없어질지도 모르지만, 국민이 마땅히 알아야 할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을 전할 책임이 언론에 있다는 교훈을 생각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또한, 그런 진실에 갈증을 느끼고, 갈망하고, 응원하는 시민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진실을 갈망하고, 옳음을 추구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언론과 사회, 개인들이 있어야 진짜 저널리즘도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우리 사회가 그런 언론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에 대한 책임과 윤리를 느끼지 못하는 AI에 저널리즘은 없지만, 시민 사회가 그런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면, AI가 곧 저널리즘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10개를 쓸 때, AI는 100개, 1,000개도 쓸 수 있는데, 항상 옳은 소수의 목소리는 다수에게 묻히는 걸 너무 많이 봤으니까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조금 더 AI와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치며 앞서 초반에 제 과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 역시도 기사를 쉽게 소비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게 제게 먹혔던 이유는, 제가 기사를 제대로 보지 않고, 사실인지 아닌지 묻지 않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어렵게 소비한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기자도 아니고, 저널리즘을 전공하지도, 탐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잘 쓴 기사, 탄탄한 취재의 기사는 마땅한 응원을 보냅니다. 그런 기사들이 세상을 떠들석하게 하고, 옳은 방향으로 끌고 가고, 그런 방향으로 가도록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이게 맞는 걸까요? 라면서. 그렇게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공론거리를 만들어, 우리 사회를 옳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으로 그런 좋은 기사들이 나오게 하려면 시민이 물어야 합니다. 이 기사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이냐고, 이 기사를 이렇게 쓰는 게 마땅한 것이었는지, 최선이었는지, 왜 안 쓰는지를 말이죠. 진실도, 책임도, 윤리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Chat GPT가 처음 나오고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논할 때,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한다는 글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더 정확한 답변을 준다고요. AI와 저널리즘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며,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기사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나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저널리즘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AI가 저널리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노동 4.0과 미래를 위한 민주주의
 한국 사회는 얼마나 건강하고, 튼튼한 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을까? 건강한 사회에 대한 개념이 다양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사회 구성원의 의지가 많이 반영되어 운영되고, 그 결과로서 번영하는 사회라고 본다. 번영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풍요와 풍요를 누리는 사회 구성원이 많은 상태이다. 경제적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 혜택을 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회는 튼튼한 경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튼튼한 경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경제 시스템 또는 생산을 구성하는 3요소를 토지, 자본, 노동이라고 한다. 농업사회에서는 토지의 중요성이 매우 컸으나, 산업사회로 오면서 토지는 자본의 일부가 되면서 자본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그리고 현대 사회로 오면서 ‘지식’이라는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식은 과학기술이면서 이를 체화하고 있는 주체인 인재(지식노동자)이거나 숙련된 노동력은 의미한다. 미래는 지식 노동이 중요해지고, 이러한 3 또는 4요소가 조합되어 작동할 때 경제는 번영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그럼 한국 사회는 이러한 경제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을까?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 전략은 추격 경제이다. 미약한 자본을 키우고 자본의 역할을 강화하는 과정이었다. 국가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에서 농업과 농민을 희생시켜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고 관치 금융으로 자본 축적을 도왔다. 결국 우리는 몇 개의 글로벌 대기업이 이끄는 경제 발전을 달성하였고, 이는 한편으로 불균등 성장과 혜택, 즉 양극화라는 사회 문제를 가져왔다. 역사의 후발 주자로서 피하기 어려운 한계였다.  문제는 산업사회에서 디지털 사회 또는 4차산업혁명 사회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문제점이 극복되지 못하고 악화될 수 있다는데 있다. 한때 우리 사회는 4차산업혁명이 화두, 키워드였다. 두려움의 키워드이면서 기회의 키워드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4차산업혁명 화두는 또 한 번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냈다. 4차산업혁명은 독일의 산업(Industry) 4.0에 기원을 두고 있다. 주로 자본의 입장에서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경제 시스템을 전환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을 다루고 있다.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을 지능화(스마트 팩토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능화라는 것은 자동화, 즉 노동력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실업에 대한 위기 의식이 커졌다. 그러나 실업에 대한 개인적 위기 의식은 커졌지만, 사회적으로 노동, 일자리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4차산업혁명(산업 4.0)에 대한 책이 백여권이 넘게 출판되는 동안 ‘노동 4.0’에 대한 책은 필자의 책 1권뿐이었다. 심각한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숙련된 노동력 감소의 문제와 독일의 제조 경쟁력을 위협하는 미국 주도의 디지털화에 대응하여 독일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 ‘산업 4.0’이다. 기업, 자본의 주도로 추진되는 생산의 자동화의 고도화라는 산업 4.0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노동의 개혁, 변화가 동시에 수반되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독일 정부는 산업 4.0 시대에 노동 정책을 새롭게 수립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그 방법은 사회적 논의였다.  독일 정부는 “노동 4.0 녹서”를 통해 산업 4.0을 통해 변화할 미래 노동에 대해 논의해야 할 사항들을 전 국민적 토론 주제로 상정했다. ‘노동 4.0 녹서’에는 산업 4.0의 차원에서 미래의 동향을 디지털화, 글로벌화, 노동 인구 구조의 변화,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정의하고, 독일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과제들을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질문의 형태로 제시했다. (1) 모두를 위한 일자리 마련이 가능할 것인가? (2) 인생 주기에 따라 노동 형태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3) 노동과 임금 체계와 관련된 사회 안전망은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4) 숙련 노동의 미래와 훈련 체계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5) ‘좋은 노동’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6) 고용 문화는 어떻게 조성돼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2015년 4월부터 2016년 말까지 2년에 걸쳐 독일 내 사회 각계각층을 아우르는 열띤 토론이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이 토론에는 노동계뿐만 아니라 기업, 협회, 학계 전문가, 일반 시민이 참여했다. 시민들과의 대화를 이끌기 위해 '미래'라는 명칭의 영화 시리즈를 독일 전역의 18개 도시의 극장에서 상영하고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디지털화되어가는 사회적 변동 속에서 '좋은 노동'이라고 하는 이상은 어떻게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도전에 직면하여 각자의 생각을 나누면서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미래 디지털 시대에 과연 ‘좋은 노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좋은 노동이 가능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어떠한 일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사항과 합의점, 더 논의가 필요한 사항들을 정리하여 노동 4.0 백서에 담았다.  노동 4.0 백서에서 주목하는 가장 큰 화두는 ‘노동의 유연화’다. 산업 4.0, 디지털 전환이 가져오는 가장 큰 변화도 ‘노동의 유연화’다. 노동 시간의 유연화, 노동 장소의 유연화는 노동자에게 새로운 기회임과 동시에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특히 주목한 위기는 노동의 양극화다. 새로운 능력을 갖춘 노동자에게는 고소득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많은 노동자들은 새로운 기술, 자동화에 의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 저숙련 노동자들이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인 플랫폼 노동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전망하기도 했다. 독일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플랫폼 노동의 문제는 이미 독일에서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인지되고, 논의된 예견된 미래였다. 늘어난 생산성에 맞추어 노동 시간을 줄여 고용을 유지하고, 새로운 생산 방식(스마트 팩토리)에 맞춰 산업계와 노동계가 협력하여 새로운 기술 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이 논의되었다. 노동 시간의 단축, 노동시간 계좌를 통한 생애 주기별 노동 시간의 조정 등에 대한 대책이 제안되고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이 외에 디지털 시대의 전문인력,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교육 등 산업 4.0의 성공을 위한 한 축으로서 노동의 역할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나아가 디지털화 되어가는 사회구조 속에서 노동의 수준을 높게 유지하기 위한 생산이익의 분배, 플랫폼형 대기업들의 이윤에 대한 세금 부과 문제, 공공재와 서비스의 현대적 인프라 구축 등 거시 경제적인 차원에서 틀을 만들고, 그에 따라 노동정책을 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을 긴밀히 연결하는 노력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노동 4.0’의 최종 목표는 국민 100%의 근로라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많은 노동 정책이 제안되고, 정치권에서 입법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독일의 상황이 한국과 같지 않기 때문에 독일 정책이 한국에도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배울 점은 노동 정책의 수립에 노동자만이 아니라 시민, 국민이 함께 합의를 해나가면서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노동 시간에 대한 합의 과정을 보면 한국의 상황은 여전히 일방 통행이다. 산업의 파트너인 노동은 없고, 여전히 자본과 정치권의 일방 통행이다. 주 52시간 노동 정책에서 순식간에 주 69시간, 2주 최대 80.5시간 노동 정책이 강요된다. 그러면서 ‘디지털에 가장 앞선 나라’, ‘디지털 전환’이 논의된다. 선출된 권력이 무엇을 국민에게서 위임받았고, 무엇을 국민이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도나 문화는 여전히 개도국 수준이다.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는 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 정책의 결정 과장에서 여전히 소외되어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결정할 때 가능하다. 특히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닥칠 문제를 인지하고, 서로 일방적인 주장만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보하고 노력해야 할 부분을 찾아서 더 나은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안을 결정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독일의 민주주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노동의 이상향을 찾아 가고 있다. ‘노동 4.0 백서’ 서문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하루 8시간·주 36시간의 노동, 근무 조건의 개선 및 보장, 아동 노동의 금지. 이런 사항들이 미래의 노동이 지향할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이상향은 완전히 다르다. 시원한 바닷가에 편안히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일하는 창의적 지식 노동자, 혹은 컴퓨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원하는 작업 스케줄을 짜는 생산직 노동자 등이 현재 우리의 이상향이다.”    독일의 이상향이 우리의 이상향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접근 방식은 정반대다. 변화된 시대에는 변화된 방식이 필요하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산업 시대의 사고 방식으로는 전환에 성공할 수 없다. 디지털 시대의 맞는 노동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한 산업계와 노동계의 대화, 사회적 대화를 통하여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하는 이유이다.  
ChatGPT 시대의 노동 4.0
2023년 3월 말경 골드만삭스는 전세계 일자리 약 3억개가 ChatGPT와 같은 생성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 직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직업 군에서 수행하는 작업의 평균 25%가 생성인공지능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25%를 상회하는 직업 군 14개를 분류하면 그 중 13개 직업 군이 3차와 4차산업(quaternary activities)에 속한다. 4차산업은 연구개발, 교육, 콘텐츠, 컨설팅, IT 산업 등 지식산업을 뜻한다. 1차산업과 2차산업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와중에 3차산업과 4차산업 일자리 다수가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으로 대체가능하다고 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기술로 노동효율성이 높아짐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드는 기술실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쟁이 존재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의 발달로 인한 기술실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에 의한 기술실업? 인공지능과 인공지능을 탑재한 스마트 로봇이 기존 일자리에 변화를 가져올 것임은 틀림없다. 예를 들어 완전한 자율주행자동차 기술이 등장한다면 우리나라에서만 관련 일자리 100만 여개가 영향을 받는다. 버스, 트럭, 택시 운전사의 일자리 다수가 사라질 것이다. 줄어든 일자리 100만여 개는 전기 자율주행자동차 제조•정비와 관련된 일자리 감소는 산입하지 않은 숫자다. Chat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은 사무와 행정, 콜센터 분야 등에서만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다. 법무와 연구개발, 번역 등의 일자리도 줄일 것으로 보인다. 오픈에이아이(OpenAI)와 펜실베니아 연구원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미국을 기준으로 19% 일자리가 수행하는 작업 50% 이상이 ChatGPT에 의해 자동화 가능할 것으로 분석했다. 나머지 80%의 일자리의 경우 10% 이상의 작업이 자동화 가능하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전 산업분야의 일자리가 골고루 자동화 가능한데, 임금이 높은 분야 일자리의 업무 자동화 가능성이 다소 높았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골드만삭스의 연구결과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 따른 기술실업에 대한 경고는 2013년 옥스포드 마틴스쿨의 프레이와 오스본의 ‘노동의 미래’ 논문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을 기준으로 47%의 일자리가 인공지능과 스마트로봇에 의해 대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미국을 기준으로 인공지능 등에 의해 일자리 대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는 이유는, 미국이 산업별 직업에서 수행해야 하는 작업을 상세하게 분류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직업은 다수의 작업을 수행한다. 해당 작업을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고, 이를 기준으로 해당 직업의 자동화 위험을 분석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골드만삭스 등의 연구도 이러한 기반에서 수행되었다. 인공지능으로 대체가능한 작업의 비율이 낮다면 그 일자리의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높아진 효율성으로 창의적인 작업의 비율을 높이는데 그칠 것이다. 대체가능 작업비율이 높다면 창의적 작업의 비율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일자리 자체도 자동화할 것이다. 노동자 1만 명당 로봇의 대수를 의미하는 로봇밀도가 한국사회의 경우 2021년 기준 1,000대를 달성하여 전세계 1위였다. 경쟁국인 독일과 일본은 각 3위와 4위로 우리의 대략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비추어보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4차산업 일자리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3차산업의 일자리는 빠른 속도로 자동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혁신 = 더 많은 일자리? 앞에서 언급한 프레이 등의 연구는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탔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는 미국보다 심각했다. 그런데 프레이 등의 연구가 발표되고 10년이 지났으나, 기술실업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일자리는 사라졌으나, IT 분야 등에서의 일자리도 늘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혁신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기존 일자리는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공지능의 지지부진한 발달도 있었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 이후, 이코노미스트는 ‘일자리는 인공지능에 의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 듯(Your job is probably safe from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긴 제목의 글을 게재하여 우리를 안심시킨다. IT 기술은 명목 경제성장에 눈에 띄는 기여를 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포함한 이해관계자의 사실적 힘에 의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늦춰졌으며, 역사적으로 보아도 일자리가 사라지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실제 이코노미스트가 인용한 OECD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의 경우 과거 10년 동안 평균 실업률이 절반으로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 실업률은 2.9%로 10년 전인 2013년의 3.1%보다 줄었다. 참고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실업률은 3.7%로 OECD 국가 중 5번째로 낮다. 실업률만 본다면 한국사회에서는 기술실업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전환의 시대 ChatGPT와 같은 언어 인공지능에 주목하는 이유는 빅뱅 파괴(Big Bang Disruption)의 기술 채택  곡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과거 기술 채택이 장기간에 걸쳐 정규분포의 형태를 보이는 데 반해, 최근 빅뱅 파괴 기술은 상어 지느러미 형태를 보인다. 상어 지느러미 패턴이란 단기간 내에 특정 기술이나 상품을 채택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을 때 나타난다. 전화기 보급대수가 1억대를 넘기는 데 75년이 걸렸다. ChatGPT의 경우 사용자 1억명에 도달하는 데 단 2개월만 걸려, 상어 지느러미 형태의 패턴을 보인다. ChatGPT는 빅뱅 파괴 기술이다. ChatGPT가 빅뱅 파괴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언어를 처리하고 생산하는 인공지능으로서 꽤 쓸만한 성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ChatGPT와 같은 언어 인공지능을 거대언어모델이라 한다. 규모가 매우 큰 언어 분야의 인공지능이란 뜻이다. 그런데 거대언어모델에 ChatGPT만 있는 게 아니다. 도표와 소리를 해석하는 거대언어모델, 의료나 금융 등 분야에 특화된 언어 거대언어모델, 오픈소스 거대언어모델 등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오픈소스 거대언어모델은 다양한 활용과 개발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거대언어모델과 로봇을 연결하는 시도도 활발하다. 로봇이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사람의 지시에 따라 작동할 것이다. 인간의 노동과 활동의 다수가 언어를 기반으로 하며, 지적 활동과 결과의 다수도 언어다. ChatGPT가 역사시대 이후 가장 빠른 확산속도를 보인 것과, 다수의 거대언어모델이 백가쟁명 식으로 경쟁하는 이유다. 급격한 기술의 발달과 빅뱅 파괴의 기술 채택은 노동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도 그렇지만 기업도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심리적 위안을 주지만, ChatGPT와 같은 빅뱅 파괴 기술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지금 우리 인류는 산업사회 이후를 기점으로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역사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단이나 전망이 처음은 아니다. 제레미 리프킨은 1995년 ‘노동의 종말’에서 급진적 주장을 폈고, 2013년 프레이 등의 주장은 그 연장선상에 있으며, 2016년 WEF가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전세계에 수백만개의 일자리 감소할 것이라 내세운 주장은 그 바톤을 이어 받은 것이다. 언어 인공지능을 포함한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달과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기술실업의 가능성은 높으나, 여전히 불확실성은 존재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조심스런 진단에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기후변화의 가속화와 이로 인해 에너지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기후변화로 제품을 생산할 수 없어서 생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면 안 되기 때문에 생산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류의 제품 생산과 서비스 공급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은 지 오래다. 지구 생태계가 지속가능하려면, 인류의 전통적인 일자리는 지속가능해서는 안된다.   노동 4.0에 비추어 본 전환적 개혁 노동 4.0(Arbeit 4.0)은 독일의 4차산업혁명에 대응한 노동정책이다. 독일은 사회적시장경제를 택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의 자유시장경제와는 대조적인 민주국가 경제 시스템의 하나로, 사회복지와 일자리 안정화 등 사회 공동체의 가치에 상대적 비중을 둔다. 독일은 디지털전환 시대에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4차산업혁명을 기획했다. 제조업 분야의 디지털 전환인 4차산업혁명은 일자리와 국가 복지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독일은 노동 4.0, 직업교육 및 훈련 4.0, 복지국가 4.0 등의 정책 시리즈를 내놓았다.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미래변화에 대응한 독일의 호들갑은 시의성 있고 현명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사회는 노동제도와 관련하여 거대언어모델 등이 가져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의 노동 4.0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을까? 참조는 할 수 있겠으나, 단순 모방은 어렵다. 노동 4.0는 독일의 사회적시장경제와 연결되어 있고, 사회적시장경제는 독일의 “거시경제적 특징과 미시경제적 특징”이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조하자면 역사적 맥락과 독일 시민의 내러티브가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단순 모방이 아니라 전환적 재해석이 필요하다. 거대언어모델은 3차산업과 4차산업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4차산업 일자리는 지식산업으로, 거대언어모델은 지식생산성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이는 지식반감기를 단축시킬 것이다. 지식반감기란 지식의 반이 더 좋은 지식 등으로 대체되는 데 걸린 시간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반감기는 6년에 불과하다. 앞으로 이는 더욱 단축될 것이다. 지식반감기에 대응하여 한국사회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주기적으로 집중적인 학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이를 지원해야 하고, 노동 유연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노동 유연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독일정도로 줄어야 한다. 정부는 주기적 집중교육을 위한 나노 학위 체계 준비, 학비 지원 등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거대언어모델은 직장의 업무 수행 풍경을 바꿀 것이다. 단순 암기력과 단순 기획력이 업무능력이 아니라 거대언어모델에 질문할 수 있는 힘, 비판적 사고, 발산적 사고가 업무능력이 될 것이다. 이들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게으름, 선량함과 정직함을 갖춘 인력을 중시해야 한다. 조직 내부의 사일로 현상에서 벗어나야 하며, 직장이 곧 공부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적자원 채용기준이 바뀌어야 하며, 사용자의 통찰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개개인의 내러티브 변화도 필요하다.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파이어족의 내러티브를 버려야 한다. 명품소비 1위라는 천박한 빈곤함의 내러티브에서 탈피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의 일이 공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평생교육 문화와 태도를 정착해야 한다. 선량함과 정직함에 더 높은 개인적 가치를 두어야 한다. 정부, 기업, 가정과 개인의 전환적 개혁을 위해서는, 높은 곳에 올라 세계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의 변화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가짜 진영 논리가 만들어 낸 그물을 벗겨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를 억누른 역사적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 시험에서 승자는 괴물이 되고, 패자는 루저가 되는 교육 시스템과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서 우리 시민사회가 둥근 탁자에 모여 담담하고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이 어렵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사회가 보인 대동정신과 위기극복의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하는 꿈을 꿔야 한다. 
[결과보고서] 있지만 없는, 학교 내 인권 이야기
지난 4월, <들썩들썩떠들썩> 네 번째 이야기. ‘있지만 없는, 학교 내 인권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학생인권 조례 제정 이후 10여 년의 흐름, 학생인권과 관련하여 오해가 있는 지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학교 내 구성원들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공론장에서 학생의 인권에 대해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결과보고서를 통해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왜 이번 공론장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공론장 운영 전반의 과정, 공론장에 참가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관련 주제로 공론장을 운영할 계획이 있으시다면, 이번 공론장을 운영하며 경험한 것을 토대로 개선점과 참고하실 수 있는 내용도 보실 수 있습니다. 빠띠의 ‘들썩들썩떠들썩’은 또 새로운 주제와 형식으로 여러분을 찾아뵐 예정입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모여서 디지털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나누는 ‘좋은 사회적 대화의 모델’을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결과보고서 자세히 보기 ?  [결과영상] 학생인권 조례 폐지, 정말 교권을 지키는 방법일까?
범람하는 친환경 인증마크, 진짜 '그린'일까?
친환경과 그린워싱 사이에서 헤매던 시민들이 빠띠의 '시민 공익데이터 실험실 1기 그린이지Green easy' 라는 이름 아래 모였습니다. 두 달 동안 함께 데이터를 발굴하고이슈, 시각화, 평가지표·가이드 이렇게 총 3팀으로 나뉘어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직접 모색해보았는데요.아래는 이슈팀에서 '그린워싱 인증마크'를 주제로 5월 23일 '함께 그린 공론장'에서 나누게 될 발제문입니다.일상 속에서 소비할 때 비슷한 고민을 가졌던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도 댓글로 더해주세요. 범람하는 친환경 인증마크, 진짜 '그린'일까? 내가 사용하는 제품에서 친환경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된 인증마크를 유심히 본 적 있나요?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일반 소비자들도 제품을 구입할 때 '친환경 마크' 유무를 눈여겨 보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바람을 타고 일상의 매대에선 식품, 화장품, 의류, 생활용품 등 영역을 막론하고 친환경 마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장의 제품은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이미지와 단어를 사용합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인증마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검색하는 것만으로도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지만 매일 소비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겐 꽤 수고가 필요한 일입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보는 친환경 마크는 우리나라 환경부가 부여하는 녹색마크가 있습니다. '환경 표지 제도', '환경 성적 표지 제도', '탄소발자국 인증 마크', '에너지 절약 마크 및 GR 마크' 로 나누어 부여하고 있으며 각 마크마다 엄격한 심사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화장품과 같은 특정 제품군은 국내 친환경 마크보다 생소한 해외 인증마크를 부착해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해외 선진국에서 인증을 받았다고 하면 다른 제품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는 국가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연구소, 사단법인, 협회 등 독립적 기관에서 친환경과 비건 관련 인증을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화장품에 비건 관련 인증 마크를 많이 표시하는데 문제는, 인증마크가 무조건적인 친환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 '우리나라와 환경이 다른 해외에서 받은 인증마크와 국내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지리적, 환경적 조건이 다른 것은 차치하고, 인증 전과정을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 소비자들에게 친환경 정보가 적절히 제공되는 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제품의 전성분이 아니라 일부 성분으로 해외 인증 마크를 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꼼꼼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친환경 제품군 가운데서 소비자들이 가장 깐깐하게 보는 제품군은 '생리대'입니다. 생리대는 장시간 여성의 몸에 직접 닿는 제품이기에 무엇보다 '성분'이 제품 구매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런 이유로 시중에서 판매중인 대부분의 생리용품 제품포장에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친환경임을 인증하는 인증마크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케미컬뉴스에서 작성한 기사에 따르면 '국내 생리용품에서는 주로 해외 공인 인증마크인 'OCS', 'SGS', 'FDA', '더마테스트', '에코서트' 등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증마크는 불분명한 민간기관에서 받은 것도 포함되어 있어 소비자가 어떤 의미와 신뢰도를 확보하여 부착되었는지 알기 어려울뿐더러, 제품 효능이 과장되어 표현될 우려가 큽니다. (참고기사: [생리대 인증마크] 해외 인증마크와 국내의 허술한 관리) 이렇듯 비건 인증을 포함한 범람하는 해외 인증마크의 문제는 인증마크가 부착된 제품이 무의식적으로 더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외 인증마크가 국내 인증마크보다 일부 더 엄격한 기준으로 부여되는 경우, 까다롭게 친환경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반가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일반 소비자들에겐 해석해야 할 정보 데이터중 하나입니다. 분명한 개념과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쏟아내는 각종 인증마크는 오히려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진선미 국회의원은 "인증마크들 때문에 터무니없이 제품 가격이 비싸지거나 효능에 관해 소비자들이 오해해선 안 될 것"이라며 "식약처에서 범람하는 인증마크와 관련해 현황을 파악하고 적어도 소비자들에게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등 관련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진짜 녹색을 소비 할 권리 일반 소비자의 일상 소비영역에서 제품의 생산, 유통의 전 과정을 알아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인증마크의 해석방법을 소비자의 문제의식에만 기대는 것이 아니라, 공공이 나서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면 그린워싱으로 인한 피해와 오인을 방지하고 더 유의미한 소비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친환경 인증마크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가 필요합니다. 독일 환경부 사이트 (https://www.siegelklarheit.de/siegelverzeichnis#/sort:rating_desc)에 접속해 보면, 인증 라벨이 어떤 과정으로 받았는지 '신용도', '환경 친화성', '사회적 호환성'의 기준으로 나눠 평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크를 보고 원료에 대한 표기인지, 제품의 제작 과정인지, 배출 과정인지 정도를 인지한다면 소비 선택의 영향을 미치는 주요 정보는 획득하는 셈입니다.  친환경 제품 소비에 인증 마크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기업의 친환경 활동에 응원을 보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물건을 살 때 인증 마크가 있는 제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친환경 제품이라는 인식은 이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자와 기업 모두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건강한 소비 행위를 지향합니다. 여기에는 소비자의 주체적 판단뿐만 아니라 기업의 정확한 정보제공과 공공의 감시 역할이 요구됩니다.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서 공공은 명확한 기준 제시, 외부 인증을 통한 신뢰성 확보, 위반 활동에 대한 처벌로 이어지는 체계를 통해 기업을 감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린워싱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데이터와 이를 인증하는 제도를 마련하도록 기업과 정부에 요구하고, 그것이 수용될 때 소비자는 '진짜 녹색을 소비 할 권리'를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린워싱에 대응할 우리의 그린가이드
친환경과 그린워싱 사이에서 헤매던 시민들이 빠띠의 '시민 공익데이터 실험실 1기 그린이지Green easy' 라는 이름 아래 모였습니다. 두 달 동안 함께 데이터를 발굴하고이슈 팀, 시각화 팀, 평가지표·가이드 팀 총 3팀으로 나뉘어 문제 해결 방법을 직접 모색해보았는데요.아래는 평가지표·가이드팀에서 '그린가이드'를 주제로 5월 23일 '함께 그린 공론장'에서 나누게 될 발제문입니다.일상 속에서 소비할 때 비슷한 고민을 가졌던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도 댓글로 더해주세요. '그린이지'가 그린가이드를 만들게 된 이유 2021년 스타벅스는 50주년을 기념하여 선착순으로 한정판 다회용 컵을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친환경을 내세운 캠페인이었지만, 다회용 컵의 소재가 플라스틱이라는 점에서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같은 해 이니스프리는 ‘페이퍼 보틀(종이 용기)’ 화장품을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겉면의 종이 포장재 안쪽에 플라스틱 용기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소비자들은 격분했습니다. 연이어 발생한 두 번의 논란 이후 그린워싱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기업들의 그린워싱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수많은 그린워싱 사례가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의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변한 것이 있었을까요? 그린이지 팀이 선정한 공동 문제는 “그린워싱, 여전히 너무 어렵고 복잡해!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였습니다. 소비자들의 경각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기업들의 그린워싱도 더욱 교묘해졌습니다. 결국 소비자가 친환경 제품을 선택할 때마다 느끼는 혼란은 그대로였습니다. 다양한 그린워싱 사례들을 알면 알수록 오히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소비해야 하는 거지?’ 하는 답답함만 늘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기후 위기와 폐기물 문제는 빠르게 심각해졌습니다. 그린워싱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정부는 이미 2017년부터 ‘환경성 표시·광고 관리제도에 관한 고시’라는 행정규칙에 근거하여 부당한 환경성 표시 광고를 제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령들을 안다고 해서 소비자가 친환경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행 제도가 명백한 거짓과 기만은 막을 수 있겠지만, ‘친환경은 아니지만 거짓말도 딱히 아닌’ 회색지대의 제품들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직접 판단해야 합니다. 이 회색 영역의 제품들은 이미 친환경 제품으로 인식되어 소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는 무엇보다도 소비자 스스로가 친환경 소비를 위한 기준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정 마케팅 문구가 그린워싱이냐 아니냐는 기업의 마케터라면 몰라도 소비자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궁금한 것은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소비해야 친환경적인지’일 것입니다. 그린이지 팀은 누구나 친환경 소비의 기준을 얻을 수 있는 가이드를 제작하고자 했고, 그 결과물이 이번 발제에서 소개하는 그린가이드입니다. 그린가이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린가이드는 제품을 소비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일종의 체크리스트입니다. 일곱 개의 유형과 그 아래의 세부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비자는 각각의 질문을 바탕으로 제품을 검토해 보면서 소비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판단에 도움이 되도록 각 질문과 관련된 사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품 소비의 직접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자원 순환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만한 지점들은 부록 형태의 ‘팁’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린워싱을 부담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밝고 말랑말랑한 톤으로 작성했다는 점 역시 그린가이드의 특징입니다. 그린가이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을까요? 그린가이드의 시작은 데이터였습니다. 그린이지 프로젝트 초반부터 저희는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매장을 뒤지며 그린워싱 의심 제품들의 데이터를 하나하나 수집했습니다. 몇 주에 걸친 조사 끝에 제품을 접하게 된 경로, 친환경 마케팅 문구, 환경 인증 마크 이미지 등등의 정보들로 구성된 ‘소비자’ 관점의 데이터가 완성되었습니다.  데이터가 만들어졌으니, 이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할 차례였습니다. 저희는 시민들에게 ‘친환경 소비의 기준을 얻게 되었다’는 사용자 경험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에 적합한 결과물의 형태를 고민했고,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소비 생활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제작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이후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검토하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마케팅 패턴이 몇 가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케팅에 사용된 키워드들을 바탕으로 각각의 패턴들을 7개의 유형으로 묶었고, 유형별로 구체적인 질문들을 제작했습니다. 이어서 사례 추가, 팩트 체크, 팁 추가 등의 과정을 거쳤고, 마침내 모두의 친환경 소비를 위한 그린가이드가 완성되었습니다.   시민 모두의 ‘그린이지’를 위해 누구나 쉽게 친환경 소비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린이지 팀의 목표였습니다. 어디까지를 그린워싱으로 볼 것인지는 매우 주관적인 문제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명백한 그린워싱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명백한 친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그린워싱 문제를 다른 이에게만 맡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그린워싱과 친환경 소비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린가이드가 소비자 각자의 기준을 세울 때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기대합니다. 개개인이 친환경의 기준을 직접 판단하고 이를 삶에 적용할 때, 개별 소비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구매자가 아니라 자원순환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것입니다. 저희의 팀 이름인 ‘그린이지’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린워싱이 아닌 진짜 그린을 바라는 마음과, 누구나 그린워싱을 쉽게(easy!)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죠. 그린가이드가 시민 모두의 ‘그린이지’를 이뤄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무엇이 ‘그린’인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그린워싱이 복잡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시민이 ‘그린이지’해진다면, 세상에 있는 그린워싱들을 ‘진짜그린’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린가이드는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돌봄노동자'의 꿈과 한숨
저는 2018년도부터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몇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습니다. 저를 “아줌마”라고 부르거나, 같이 사는 다 큰 아들방 청소에 온 가족이 쓰는 넓은 화장실 청소까지 다 해야했고, 김장철에는 어르신 집이 사랑방이어서 동네분들이 파, 배추, 무 등을 배달을 시켜 일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힘든 와중에 어르신이 병원에 장기입원을 하셔서 센터를 바꿨는데 거기서는 명절을 앞두고 만두를 300개씩 빚고 ‘4층 빌라의 베란다 바깥 유리창을 닦아달라’고 요구하는 등 파출부인지 요양보호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저희는 센터에 하소연을 하지만 센터는 어르신이 센터를 옮길까 봐 어르신 편에서만 얘기하고, 요양보호사의 업무태도를 문제 삼아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해오기 일쑤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초장기였던 때에는 확진자의 동선을 다 공개했습니다. 이때, 저는 동선을 보니 시간대는 딱 겹치진 않았지만 마트에 갔던 것이 염려가 되어 ‘예방차원에서 하루 쉬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아예 관두라고 하면서 ‘왜 지침을 어기고 그렇게 돌아다니냐’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를 범죄자처럼 몰아갔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요양보호사라고 이렇게 막말을 하고 막 대해도 되는 건지. 태어나서 처음 당해보는 수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일한 어르신 댁은 몇 달 일한 후에 반지하에서 2층 빌라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 간 집의 화장실이 2개였습니다. 가족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제가 청소를 못하겠다고 하니 어르신이 마음에 안 들어하면서 그만뒀으면 하여 그 댁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재가센터입니다. 센터장은 저에게 한 번도 문자나 전화를 하지 않았고, 다른 곳을 연계해달라고 해도 복지사는 어쩔 수 없다는 곤란한 얘기만 반복했습니다.  노인장기요양제도는 올해로 15년째 국가주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크게는 시설과 재가로 나뉘는데 그 중 재가요양이 거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기요양은 국가재정을 가지고 운영함에도 99% 민간이 운영하기 때문에 돈벌이로 전락이 된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재가요양은 센터마다 시급이 다르고, 요양보호사에 대한 처우도 각기 다릅니다. 재가 방문요양의 가장 큰 어려움은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것입니다. 센터와 근로계약을 맺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임에도 어르신 또는 그 가족의 사정으로 일이 중단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어르신이 병원에 단기 또는 장기입원을 한다거나, 요양원에 갑자기 입소한다거나, 돌아가신다거나 심지어 요양보호사와 안 맞다고 교체를 요구하시거나 (생각보다 이런 사유가 더 많습니다) 등등 요양보호사 당사자의 사정이 아닌 일로 출근길에 일을 가지 말라는 문자통보를 받거나 ‘내일부터 어르신 댁에 안 나와도 된다’고 통보를 받는 등 하루 아침에 해고 또는 일이 중단되는 경우가 아주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근로기준법에 있는 휴업수당 70% 지급은 방문요양보호사들에게는 꿈같은 일이고, 월 60시간을 채우지 못해 그 달은 4대보험이며, 퇴직금과 장기근속장려금을 못 받는 불이익이 발생합니다. 특히, 코로나 확진시 시설의 장기요양종사자들은 모두 유급처리가 되는 반면 재가요양은 전혀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일이 끊기고 무급처리가 되는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르신이 확진되거나 그 가족이 확진되어 출근을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는데요. 길게는 한 달 반을 못나가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답변은 ‘코로나로 인해 출근을 못한 경우는 천재지변이기 때문에 휴업수당을 받을 수 없다’였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디서 보상을 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단에서 부여하는 만3년 근속자에게 주는 장기근속장려금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공단에서는 요양보호사들이 센터를 자주 옮겨 안정적인 케어를 위해 해당 수당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복지부와 공단에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센터를 자주 옮기고 싶어 옮기나요? 퇴직금을 받을 즈음 10개월, 11개월이 되면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잘리게 만들고, 어르신의 사정으로 일이 중단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과연 한 센터에서 3년을 채우기가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장기근속장려금을 3년으로 유지하려거든 센터를 옮겨도 근속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근속수당의 기준을 만 1년으로 낮춰야 합니다.    또한 월60시간 이하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합니다. 현재도 59시간 또는 59.5시간으로 근로계약을 맺는 센터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4대 보험 적용도, 퇴직금도 장기근속장려금도 자격이 되지 않습니다. 관공서 유급휴일의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근로계약상 근로를 하는 요일임에도 빨간날이 끼면 센터에서는 일을 빼버립니다. 그럴 경우 시급처리를 해달라고 해도 센터에서는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줄 의무가 없다’고 하고,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휴일수당을 주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관공서 유급휴일은 급여의 손실 없이 쉼을 보장받자는 게 도입취지인데 방문요양은 오히려 임금이 줄고 근속수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다 나아가 어르신 입장에서는 돌봄을 받을 권리도 빼앗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최저시급으로 돌봄노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두, 세 번째 어르신 댁으로 근무지를 이동하는 교통비도 모두 자부담이고, 점심값이 아까워 싼 커피로 떼우기도 합니다. 최저시급이 아니라 돌봄노동에 맞는 임금이 책정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전문케어 인력입니다. 특히 재가요양은 1:1케어를 하면서 여러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하며,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을 케어하기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긴장감도 항상 가지고 있는 직업입니다. 앞서 얘기한 불안정한 고용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재가요양의 시급은 대폭 인상되어야 합니다. 최근 통합돌봄케어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누구든 나이가 들어도 내가 살던 집에서 케어를 받고 생을 마감하길 바랄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재가요양보호사들의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전문성을 더욱 키워 더 이상 ‘허드렛일 하는 사람, 호칭을 아무렇게나 불러도 되는 사람, 아무도 보지않기 때문에 성희롱을 막 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모두 함께 이런 내용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1)돌봄은 필수적인 요소임에도 돌봄을 왜 노동으로 인식하지 않을까요? 2)왜 돌봄노동자들을 학력이 짧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경향을 보일까요? 3)돌봄노동의 인식이 변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4)장기요양보험료를 납부하는 당사자인 국민들은 왜 이 문제에 관심이 없을까요?
소비자의 주관에 맡겨진 판단: 친환경 vs 그린워싱
친환경과 그린워싱 사이에서 헤매던 시민들이 빠띠의 '시민 공익데이터 실험실 1기 그린이지Green easy' 라는 이름 아래 모였습니다. 두 달 동안 함께 데이터를 발굴하고 이슈, 시각화, 평가지표·가이드 이렇게 총 3팀으로 나뉘어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직접 모색해보았는데요.아래는 이슈팀에서 '그린워싱 용어'를 주제로 5월 23일 '함께 그린 공론장'에서 나누게 될 발제문입니다.일상 속에서 소비할 때 비슷한 고민을 가졌던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도 댓글로 더해주세요. 진정한 친환경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소비자들 친환경이라는 대세는 당신의 소비도 바꾸었습니다. 이제 자연에서 유래하여 몸에 해가 없다는 물건을 사용하고, 값이 더 비싸도 친환경 유기농 먹거리를 선택합니다. 당신은 수고스럽지만 무색페트병을 다른 플라스틱과 구분하고 깨끗하게 씻은 후 라벨도 제거해서 압착 상태로 분리배출합니다. 이렇게 배출된 페트병은 특별히 섬유로 활용돼 옷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만들어진 옷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버려지는 것이 일상입니다. 환경을 위한 선택이 진정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린워싱에 대한 경계는 나의 소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소비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컨슈머리쿠스(Homo-consumericus)라는 말처럼 소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현대 인간이 일상에서 친환경 행동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분야로 ‘소비’를 지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2021년 KB 트렌드 보고서, 10명 중 5명 소비 선택- 55.6%) 원래 쓰던 제품을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는 방법은 삶의 양식을 크게 바꾸지 않아도 되어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녹색소비라는 쉬운 단계부터 시작해서 근본적인 삶의 변화로 나아가고자 하지만, 가장 쉽다는 녹색소비조차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제대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대로는 지속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일상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했던 소비자들의 요구와 전 세계적인 ESG흐름에 발맞추고자 했던 기업의 전략이 맞아떨어져 친환경 관련 산업규모가 점점 커지고 그에 따라 무분별한 용어 사용량도 크게 늘었기 때문인데요, 이번 데이터 실험실에 참여하면서 특히 눈에 띄었던 표현들을 아래에 소개합니다. ⓒ 시민 공익데이터 실험실 1기 '그린이지' 시각화팀 제로플라스틱, 無무독성, 100% 생분해와 같이 '모 아니면 도'식의 표현부터 착한 성분, 자연친화와 같이 모호하고 포괄적인 표현까지 너무 많은 용어들이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너무나 쉽게 쓰이고 있었습니다. 환경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무공해차 통합누리집에서 환경부는 전기차 등을 '무'공해차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표현이 극단적인 이유는 제도가 친환경인지 아닌지만 구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친환경, 저탄소 등의 기준을 통과한 제품에만 인증을 주고 탄소발자국, 물발자국 등의 자세한 수치가 적힌 환경성적표지는 권장사항입니다. 그렇기에 친환경 인증 제품은 간혹 보여도 구체적인 수치가 표시된 제품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이렇게 생긴 환경성적표지, 일상에서 본 적 있으신가요? ⓒ www.greenproduct.go.kr/) ‘친환경 소비’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린워싱 여부와 친환경 여부를 이분법적으로 판별하기보다는 등급을 매기고 단계를 나눠서 작은 실천으로 시작해 우리 삶의 전반을 점검해볼 수 있도록 방향성이 담긴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등급제의 좋은 예로, 별 네 개로 표시하는 녹색건축인증제, 닭의 사육환경을 네 유형으로 나타내는 난각표시제, 다섯 등급으로 나뉘는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제가 있습니다. 다양한 품목에 등급제를 일괄 적용하기 어렵다면 환경표지 인증사유 일곱 가지(자원순환성 향상, 에너지 절약, 지구환경오염 감소, 지역 환경오염 감소, 유해 물질 감소, 생활 환경오염 감소, 소음·진동 감소)를 참고해서 개발·생산·유통·순환(폐기)에 이르는 제품의 생애주기 별로 각각 별을 얻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대포장된 유기농 해외 생산 제품이 있다고 했을 때 이 제품은 개발·생산 단계에서 별 2개를 얻지만 수송 과정에서 탄소발자국이 생겨 유통 단계의 별을 얻을 수 없고 포장지에 재활용 용이성 등급에 따라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되어 있다면 순환 단계의 별도 못 받을 것입니다. 방향성이 담긴 제도는 우리가 선형적으로 소비하는 한 완전한 친환경 소비는 없다는 것을 알려줄 것입니다. 석유 기반으로 쌓아올려 익숙해진 삶의 양식을 얼마나 바꿀 것인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변화의 의지에 따라 그린워싱과 친환경의 정의는 유동적이며 주관적이고 또한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할 것입니다. 2024년에 환경표지 인증이 만료되는 생분해 제품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습니다. 매립은 사라지고 소각을 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100% 생분해’라는 말도 ‘생분해가 친환경’이라는 말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6년부터 수도권에서 종량제 봉투에 담긴 생활폐기물을 선별이나 소각 없이 매립하는 행위가 금지되고 수도권 이외 지역에선 2030년부터 직매립 금지) 그렇기에 완전한 친환경 소비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어떤 삶이 더 나을지 고민하며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에도 부족한 지금의 기후위기에서 의심만 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개인의 실천을 넘어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더 빠르게 변하라고 목소리 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의 그린워싱 여부만큼 변화의 속도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너도나도 지금은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 필환경의 시대가 더욱 빠르게 오지 않을까요.
대기업들의 탄소중립 선언 속 ‘그린워싱’을 찾아보자!
포스코는 한국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다. 포스코의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7,849만 톤으로 국가 전체 배출량의 11.6%에 달했다. 포스코 다음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포스코와 같은 철강회사인 현대제철로 배출량은 2,849만 톤이었다. 삼성전자(1,449만 톤), 시멘트회사 쌍용씨앤이(1,061만 톤), 정유회사 에쓰오일(977만 톤)이 뒤를 이었다. 철강, 전자, 시멘트, 정유사를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을 포함한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20개 기업의 배출량은 2021년 기준 국가 배출량의 33.8%였다. 그리고 상위 20개 기업의 배출량 비중은 2017년 29%, 2018년 29.6%, 2019년 31%, 2020년 32.2%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  탄소중립 선언한 대기업들,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줄여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 탄소중립을 선언한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하고 있다. 최근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50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2021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보다 5.9% 증가했다. 50개 기업 중 2018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 기업과 감소한 기업은 각각 25개씩이었다.  상위 10개 기업 중에서는 쌍용씨앤지와 SK에너지를 제외한 8개 기업 모두 배출량이 늘었다. 포스코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보다 7.3%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34.5% 급증했고, 현대제철(26.5%), 현대오일뱅크(21.5%), 롯데케미칼(20.0%) 등도 20%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크게 늘었다. 한국 정부는 지난 4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전에 수립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대비해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률을 14.5%에서 11.4%로 축소했다. 산업계의 요구로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여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기업들, 지속가능경영? 탄소 감축률 줄여달라고 ‘로비’ 정부는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이행 수단 부족 등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서 산업부문 감축률을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바이오납사 부족, 수소혼소기술 상용화 지연으로 석유화학 감축 곤란 등 이행 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탄소비용 증가를 고려하면 정부 정책의 탈탄소화 지연으로 인해 국내 산업 경쟁력이 악화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석유화학업종의 주요 기업들은 최소 23%에서 최대 50%에 달하는 자체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석유화학기업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SK이노베이션이 2019년 대비 51%, 한화솔루션은 2018년 대비 35%, 금호석유화학 2018년 대비 23%, 롯데케미칼 2019년 대비 25% 감축 등이다.  포스코와 삼성전자, 현대차, 두산, 한국전력 등 주요 기업 대부분도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 목표와 계획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을 통해 발표해왔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늘고 있고, 산업계라는 이름으로 정부에 감축률을 줄여달라고 ‘로비’를 해왔던 셈이다. 석탄발전·석유단지·산업폐기물매립장이 ‘친환경’? ⓒ 2021 포스코에너지 기업시민보고서 6p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환경경영을 의심하게 되는 사례들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 1위인 포스코는 강원도 삼척에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친환경’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온실가스 배출량 5위인 에쓰오일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샤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그린’컴플렉스라는 이름의 산업폐기물매립장을 포함하는 산업단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산업폐기물매립장만 따로 인·허가를 받기가 어려워지면서 그린이라는 이름을 붙인 산업단지와 패키지로 추진하는 모양새다.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친환경 위장술)은 친환경을 뜻하는 ‘Green’과 세탁을 뜻하는 ‘White washing’의 합성어로, 기업이 실제로는 친환경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를 포괄한다. 그린워싱은 2007년 테라초이스(TerraChoice)가 발표한 ‘그린워싱의 6가지 죄악들’ 보고서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린워싱이 학술적으로 검증된 개념은 아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나 요건, 명확한 정의는 부재하다.  ‘그린워싱’이란 무엇인가 ⓒ 한국ESG기준원, KCGS Report(2023.3.) 11p 이런 상황에서 ESG가 기업 경영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ESG 관련 금융상품이 생겨나면서 다양한 형태의 그린워싱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ESG기준원이 지난 3월 발표한 ‘그린워싱 유형별 사례 분석’을 보면, 그린워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① 조치 또는 누락에 의해 기업의 공시자료 또는 금융상품의 특성/목적이 기업의 근본적인 지속가능성 위험(risk)과 영향(impact)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 관행② 상품이나 용역의 환경적 속성 또는 효능에 관한 상품 표시·광고·홍보가 허위 혹은 과장되어, 단지 친환경적 이미지만으로 경제적 이익을 보는 것③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등 거짓으로 기업 이미지를 각색하는 행위 ④ 기업의 제품, 목표, 정책이 환경 친화적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기 위한 광고 또는 마케팅의 한 형태 또한 여러 선행연구에서 ‘부적절한 라벨링’을 공통적으로 그린워싱으로 규정하는 만큼 라벨링 실시 주체와 라벨링의 대상, 그린워싱으로 인한 피해 당사자, 세 기준을 토대로 그린워싱의 세부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그린워싱 유형은 ① 제품과 관련된 수준에 국한된, 협의의 그린워싱 ② 투자자를 오도하는 선택적 정보공개 ③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보공개 조작,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협의의 그린워싱, 선택적 정보, 정보공개 조작까지 협의의 그린워싱은 기업이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제품의 친환경성을 내세웠으나 이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다. 팜유 기반 오일에 ‘녹색’을 붙인 이탈리아 국영석유기업 에니(Eni), 새롭게 런칭한 컬렉션을 친환경이라고 홍보한 H&M 등을 들 수 있다. 바이오연료, LNG 등 친환경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분야의 경우 그린워싱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투자자를 오도하는 선택적 정보공개는 금융투자 상품 혹은 채권 관련해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거나 명확한 근거 없이 ESG, 친환경, 지속가능성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다. 녹색으로 라벨링 된 채권에 대한 시장의 감시는 점차 강화되는 추세이고, 각국 금융당국은 ESG 금융상품을 출시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정비하고 있다.  기업 가치를 향상시키기 위한 정보공개 조작은 그린워싱으로 인한 부적절한 라벨링의 대상이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기업 자체에 해당하는 경우다. 세부 목표나 전략이 수립되지 않은 채 탄소중립을 선언하거나 탈석탄 선언을 했음에도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 그린워싱 사례 16.8배 폭증…시정명령은 0.08% 국내 그린워싱 사례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에 부당 환경성 표시·광고로 적발한 건수는 4,558건이었다. 2021년에 272건에서 16.8배나 폭증했다. 현행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에 따르면 제조업자와 제조판매업자, 판매자 등은 제품의 환경성과 관련해 소비자를 속이거나 소비자가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거짓‧과장‧기만 광고를 할 수 없다.  4,558건 가운데 대부분은 문구와 목욕 완구, 물티슈와 같은 생활용품이었다. 그린워싱의 유형 중 대부분이 협의의 그린워싱인 경우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린워싱으로 적발 후 시정조치(시정명령)가 내려진 건 단 4건(0.08%)뿐이고, 나머지 4,554건은 행정지도에 그쳤다는 점이다.  탄소중립 이름 붙인 윤활유·원유·LNG에 행정조치는 제각각 ⓒ SK루브리컨츠의 탄소중립윤활유 환경부는 ‘탄소중립 윤활유’를 판매한다고 광고한 SK루브리컨츠에 광고를 수정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광고가 탄소중립 효과를 과장해 소비자에게 환경적 효과를 오인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정부가 탄소중립 화석연료 광고를 행정 제재한 첫 사례다. 반면 SK에너지의 경우는 환경부가 조사한 시작한 지난해 9월 말 이전에 판매가 중단돼 행정처분을 면했다.  탄소중립 원유를 구입했다고 광고한 GS칼텍스와 탄소중립 LNG를 수입했다고 광고한 포스코에는 시정명령 대신 행정지도를 받았다. 환경성을 과장하긴 했지만, 제품에 대한 광고가 아닌 경영활동 홍보이기 때문에 행정처분이 어렵다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기업 광고는 제품보다는 경영전략 및 기업 이미지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환경부는 “기업의 단순 부주의로 인한 표시·광고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교육·인식개선을 우선으로 고려하여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 그린워싱 위반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과태료를 신설하고 감시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하고, 환경표지인증제도를 홍보하는 등 친환경제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미국·EU, 기후공시 의무화·그린워싱 광고 금지 추진 주요 국가들은 탄소중립, 친환경과 같은 표현을 인증 등 검증을 거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기후공시’를 표준화하고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친환경 표시 지침(Green Claim Directive)을 제정해 소비자들에게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입증되지 않은 친환경 광고를 금지하고 소비자를 오도하는 불공정한 관행을 없애겠다고 예고했다. 개정된 지침에 따르면 친환경 인증 라벨 등을 통해 입증할 수 없는 경우 ‘기후중립’, ‘탄소중립’, ’탄소상쇄‘ 등의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은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중심으로 기후공시를 표준화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고, EU는 지난해 11월 비재무공시 표준안을 공개한 바 있다. 기업이 환경과 관련한 정보공개 방식을 확정하고, 이를 모든 기업에 적용하도록 해 기업 활동의 적절성, 내용의 구체성, 타당성, 현실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도 기업의 비재무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글로벌 흐름에는 뒤쳐진 편이다. 한국은 2025년부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기업만을 대상으로 비재무공시의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TCFD로 그린워싱을 찾을 수 있을까 기업이 기후위기와 관련한 자신들의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하는 기후공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이 공개하는 비재무공시 자료 등을 통해 기업들의 그린워싱을 찾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TCFD(Task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이하 TCFD)는 기업이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보 공개를 규정하는 기후변화재무공시이다. TCFD는 국제적 금융위기에 따른 국제협력적 대응과 대처를 위해 각 국가의 중앙은행과 감독기구 등이 모인 단체인 금융안전위원회(FSB)에 의해 지난 2017년 제시되었다. TCFD가 이전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환경경영과 구분되는 특징은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사용량과 같은 단순한 정보 이상의 자료를 요구한다는 데 있다.  대기업들의 탄소중립이나 RE100 선언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이 제대로 행동하고 있는지 감시하기는 쉽지 않다. TCFD 공시의 빠른 제도화와 함께 기후활동가와 시민들이 기업들의 그린워싱을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때마침 녹색전환연구소가 지난 5월 9일부터 TCFD보고서를 함께 읽는 강좌를 열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길 바란다. 이 글은 프레시안에도 게재됩니다.
제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무엇이 문제인가?
인공지능 시대의 기본소득(?)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 좀 더 특유하게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의 현재 상태와 전망을 보면서 일자리 감소와 소멸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기계가 인간을 보조하고 강화하는 게 아니라 “대신”한다고 보면 일자리 감소와 소멸은 필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딥마인드(DeepMind)의 공동창업자인 무스타파 술레이만(Mustafa Suleyman)이 한 경고는 이런 우려의 최신 판본이라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 인공지능의 도래로 일자리가 자동화될 지식 부문 노동자들을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술레이만의 이런 경고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람들이 많이 드는 게 지난 3월 말에 나온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이다. 골드만삭스의 분석가들은 인공지능의 새로운 물결이 전 세계 고용 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어 3억 개의 전일제 일자리를 자동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주목받는 게 기본소득이다.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은 고용 노동과 무관하게 지급되는 소득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일자리가 없을 가능성이 큰 시대에 적합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하나는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지만 새로 생기는 일자리도 있으며, 전체적으로 기술 변화로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길게 보아 산업혁명 이후 이른바 경제 성장에 의해 일자리, 즉 고용노동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 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전망도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에도 그럴 것인가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경제 성장이 계속해서 이루어질 것인가? 혹은 이런 식의 경제 성장을 계속해야 하는가? 다른 하나의 반론은 기본소득과 같은 해결책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를 표명하는 것인데, 현대 사회에서 일자리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소득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 실현의 통로이자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뒷받침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에 근거한다. 따라서 어떻게 하든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일자리의 소멸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을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자리 보장” 혹은 그린뉴딜의 일자리 창출 같은 정책 대안은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단 인간에게 노동이란 무엇인가 혹은 현대 사회에서 고용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따라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해두기로 하자.     과연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우리에게 가져오고 있는 충격과 전망은 사실 일자리 문제에 국한해서 검토할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 가지 전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포함한 생태적 전환, 사회 체제 자체의 전환, 그리고 인공지능의 발전 속에서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 전환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들은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미국의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멈포드는 “기계가 우리의 물리적 환경 속에서 만들어낸 거대한 물질적 대체(displacements)는 장기적으로 아마 그것이 우리의 문화에 정신적으로 기여한 것보다 덜 중요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기술 변화와 발전의 산물이 단순히 우리 삶에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이 이른바 기술 결정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의 잠언은 “기계의 신화”에서 벗어나 기술의 변화를 경제적 변화 및 사회적 변화와 함께 바라보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권력 비판에 근거해야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하고 발전하고 있는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인공지능에 대해 인간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를 훌쩍 넘어서는 것들이다. 전기 에너지, 희토류를 비롯한 물리적 자원, 필요한 노동, 데이터 추출 및 데이터 집합, 필요한 자본과 제도 등으로 이루어진 인공지능은 하나의 체제이다. 이 체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 터잡고 있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인공지능 체제를 이렇게 볼 경우 오늘날 인공지능은 이윤 추구의 자본주의 및 불평등한 권력 관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이런 이해에 근거해서 노동 혹은 일자리 문제를 살펴보면 한편에서는 기존의 일자리가 자동화되면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원 채취와 데이터 정리 같은 일을 하는 힘들고 위험하고 지루한 불안정 노동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노동의 변화 및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있는 셈이다. 자동화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 혹은 직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리고 힘들고 위험하고 지루한 노동을 어떻게 축소하거나 분배할 것인가? 공유부와 기본소득 인공지능을 포함한 디지털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게 된 것이 공유지(commons)와 공유부(common wealth)이다. 사유 재산도 공적 소유도 아닌 공유지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공유부는 자연의 선물 혹은 모두가 함께 만든 것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만 귀속되지 않는 부이다. 디지털 자본주의의 토대인 데이터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공유지와 공유부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이다. 현재 데이터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인간의 여러 활동의 산물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이를 말 그대로 채굴하고 결합해서 빅데이터로 구성하고 타겟팅 사업에 활용해서 이윤을 올리고 있다. 이른바 인공지능의 발전 혹은 개선은 바로 이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윤의 원천 가운데 하나가 데이터임에도 데이터를 생산 혹은 생성한 사람들에게는 거의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물론 이때 데이터는 데이터 집합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생산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데이터는 모두의 것, 즉 공유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모두의 것을 일부 사적 자본이 포획해서 이윤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이유로 “제2의 인클로저” 혹은 “새로운 인클로저”라는 고발이 등장했다. 게다가 현대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거의 언제나 공적 자금과 기구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아이폰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기술이 미국 정부, 특히 국방부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 혁신 기술을 응용했다는 점은 이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기술 혁신의 과정과 그 결과물도 사실은 공공의 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성과는 거의 대부분 사적 자본이 가져가는 게 현실이다. 기본소득은 이런 부정의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연적인 것이든 인공적인 것이든 공유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며, 이는 모두에게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는 게 기본소득의 발상이다. 이는 사회 정의의 문제이다. 이는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기본소득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 그리고 그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해법에 대한 모색은 정의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위기의 원인과 책임의 문제를 해명하지 않고는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전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기술 발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에 대한 착취적, 억압적 권력 관계의 산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와 돌봄위기를 비롯한 수많은 위기도 고립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원칙에 근거한 기본소득은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단단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의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린워싱에 대한 경계는 자칫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시스템 중 하나에 불과한 건 아닐까-하는 고민글.
본 글은 주제에 대한 글쓴이의 공부 과정에서 생긴 의문을 고민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목적으로 쓰인 글입니다. 고민의 글이기 때문에 혼잣말 형식으로 진행되며, 따라서 높임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글쓴이는 본 주제와 관련해 지식이 사실상 없어서 캠페인즈와 관련 논문 및 뉴스 등을 통해 주제를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혹여 잘못 알고 있는 게 보이면 날카로운 지적을 받고 싶습니다. (후첨, 정말 중구난방의 글입니다.) 마지막으로, 본 글은 2023년 5월 23일 화요일 오후 7시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1층에서 열릴 예정인 [그린워싱을 넘어, 함께 그린 공론장]에 참가신청서를 내고선 참가신청이 받아들였졌으리라 설레발치며 쓰는 글입니다. (갈 수 있겠지...?)  그린워싱(Green Washing)이란 "환경, 사회, 지배구조 측면에서 기업 경영활동이 한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ESG(Environmental-Social-Governance)"에 시민들의 공감이 형성되어, 그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려는 기업이 정당성 압력에 대한 순응 전략(compliance strategy)의 일환으로" 자사의 ESG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는 과정에서 "지속가능성 보고서의 정보공시 같은 커뮤니케이션 내용이 실체와 일치하지 않고 괴리를 일으키면서 친환경적인 기업 이미지로 세탁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를 또다른 말로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이라고도 한다. (윤태일, 2022).  조금 다르지만 관련된 내용으로, "정당성 압력에 대응하여 기업이 앞다투어 ESG 경영을 채택함으로써 그것이 제도로 정착되고 그 결과 ESG 활동에 대한 기업 정보공시의 내용이 대부분 비슷해지는 동형화(isomorphism) 현상"도 있다. (윤태일, 2022).  ESG는 비단 환경에 대한 의무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린워싱'은 주로 환경에 대한 윤리적 의무와 관련된다.   또한 그린워싱은 "과열된 친환경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패러다임으로부터 초래한 소비자 기만의 문제"로, "이러한 그린워싱 행태는 소비자에게 혼란을 야기하여 윤리적 소비를 방해하고 친환경 제품의 신뢰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친환경 시장 및 기업의 왜곡을 유발함으로써 관련 산업의 성장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그린워싱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더욱 오염시키고 파괴하며,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혼란을 야기하고 친환경적인 기업과 시장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 (이자림, 2022).  비록, "그린워싱은 검증된 개념이나 학술적으로 오랜 기간 연구되어 온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판단의 요건이나 기준점이 없"지만, "그린워싱 분야에서 가장 선제적인 연구와 조사 결과를 지속적으로 보고서에 발간하여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캐나다의 친환경 마케팅, 컨설팅 회사로, 현재는 미국 유엘(UL)이 인수한 글로벌 친환경 기업인 테라초이스(TerraChoice)사의 연구 자료"가 "그린워싱의 7가지 죄악들(The Seven Sins of Greenwashing)으로 2007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그린워싱관련 보고서와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이자림, 2022). 그 분류는 아래와 같다. (이자림, 2022)   1. 상충효과 감추기 (Sin of the Hidden Trade-off) 2. 증거 불충분 (Sin of No Proof) 3. 모호함 (Sin of Vagueness) 4. 관련성 없는 주장 (Sin of Irrelevance) 5. 거짓말 (Sin of Fibbing) 6. 유해상품 정당화 (Sin of Lesser of Two Evils) 7. 부적절한 인증라벨 (Sin of Worshiping False Labels)  위의 일곱 가지 방법으로 기업이 그린워싱을 시도하니, '윤리적 소비'를 하고자 하는 시민은 기업이 친환경을 주장할 때 저 일곱 가지 기준을 가지고 기업이 그린워싱을 시도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며 감시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유럽의회(EU)는 2023년 5월 11일(현지시각) '그린 클레임(Green Claims) 지침'을 표결에 부쳐 채택했다. "그린 클레임은 그린워싱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업이 환경 관련 주장과 라벨을 입증하고 검증하도록 요구하는 규칙이다." (https://www.impacton.net/news/...) 해당 기사에 따르면, "유럽 집행위원회는 2020년 친환경제품 조사를 통해 EU기업의 친환경 주장 중 절반 이상이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40%는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발표하고 그린 클레임 지침을 제시했다. ... 그린 클레임 지침의 협상안은 기업의 환경 주장이 ▲탄소상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 ▲제품의 일부에만 적용되는데 전체 제품으로 주장하는 경우 ▲내구성에 대한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경우와 같이 소비자가 오해할 수 있는 정보를 담은 관행을 모두 금지한다. 지침은 특히 탄소상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주장을 엄격히 제한한다. 의회는 그 이유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소상쇄보다 탄소제거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며 기업들이 실질적인 탄소 감축 노력과 책임감을 더 강화해 나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위 인용에서 '탄소상쇄'나 '탄소제거'는 본 주제의 논의에서 핵심 키워드다. 관련해서, '탄소'와 '탄소 중립'에 대한 정리는 이선우 캠페이너님이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다. 정리해주신 글을 직접 인용하자면 '탄소 중립'이란, "이산화탄소로 대표되는 이 온실가스의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 가스는 삼림이나 바다를 통해 흡수되거나 다양한 과학 기술을 통해 포집, 저장, 활용해서 실질적인 배출량을 영(0, zero)으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환경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수준에서 더 나쁘게 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이선우, 2023).   이러한 '탄소 중립'의 실현을 위해 탄소 배출의 '가해자'로 여겨지는 '기업'을 감시하고, 그들의 정당성을 위해 친환경적 경영활동을 하라는 요구가 ESG고, 이런 ESG를 위하다가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도 친환경적인 것처럼 지어내는 걸 '그린워싱'이라 부를 수 있고, 그린워싱이 적발된 기업에 대해 재제나 불매 등을 가하는 것이 기후정의를 위한 시민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자림(2022)은 패션 산업이 대표적인 환경오염 유발 산업으로 주목된다면서 "공공기관 및 정부로부터 법적 처벌 가능 여부를 기준으로 견제와 규제적 측면으로 유형을 나누"어 그린워싱을 저지른 기업에 대한 견제와 규제의 가능성을 연구했는데, "연구결과, ●언론 견제를 통한 비판은 근본적인 그린워싱 문제점이 해결되는 경우가 미비하였고, 반면에 ●고발 캠페인 및 불매운동과 같은 소비자의 적극적인 견제는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났으며,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강한 법적 규제는 그린워싱 개선에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여기까지가 그린워싱과 탄소 상쇄, 탄소 제거, 탄소 중립에 대한 글쓴이의 이해의 토대다. 그런데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열에 아홉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겪게 된다.  여기 절벽이 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계속 저 절벽으로 떠밀려 떨어지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그것이 문제로 인식되자 마음씨 좋은 동네 주민들은 저마다 돈을 모아서 조치를 했는데, A마을의 주민들은 추락지점에 긴급의료센터와 구급차를 배치하자고 주장한 반면, B마을의 주민들은 절벽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다시는 누구도 추락하지 않게 하자고 주장했다.  여기서 A마을의 행태가 곧 현실 사회에서 사회복지제도가 맡고 있는 역할이 아니냐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해야할 복지 담론이 되려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곧 무엇보다도 약자를 대변해주어야 할 복지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도구가 된 것이 아니냐는 고민이다. 그래서 사회복지학에서 사회학으로 전공을 옮기는 학생들이 옛날에는 여럿 있었다고 한다.  위 고민을 그린워싱과 그를 감시하는 시민들의 '윤리'에 덧씌워보자.   환경오염의 주범인 기업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환경공해를 외면하면서까지 기업활동을 하는데, 단순히 '최대한 친환경적인 경영'을 해내라고 주문하고 그것을 감시하는 건, 결과적으론 기업의 환경공해를 줄이기는 해도 근절시키지는 못하는 것 아닌가? 애초 우리 세대의 목표가 '탄소 제거'가 되어야 한다면, 기업에게 줄이라고 명할 것이 아니라 아예 배출하지 말라고 명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른바 '녹색 자본주의'라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은 결국 또 한 번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도구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지만 저런 고민은 현실성이 없는 고민으로 보인다. "아예 기업을 와해시키지 왜? 기업 없이 뭘 소비하고, 소득은 어떻게 벌건데?"라고 반박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차라리 장윤석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의 주장처럼 "재생하고, 회복하고, 돌보고, 살리는 경제" 즉, "실전 탄소중립"을 위한 일자리를 기업이 직접 창출해내라고 주문하는 건.... 그건 또 아닌가.  여기서 환경오염의 주체를 기업을 넘어 국가 단위로 생각하면 고민은 더더욱 깊어진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국가나 사람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례해서 기후위기의 피해를 입거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후위기의 책임이 가장 작은 가난한 나라의 사회적 약자들이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고 있거나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처럼 기후위기의 피해가 사회적으로 더 취약한 국가와 집단, 개인에게 집중되고 장기적으로 기후위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의 책임이 공정하게 배분되지 않으면서 기후위기는 다양한 형태의 기후불의를 야기하고 있다."(홍덕화, 2020).   위 인용문처럼, 국내에서도 복잡한 기후위기의 가해자-피해자 관계가 국외로 시선을 돌리면 더더욱 복잡해진다. 홍덕화(2020)에 따르면, "국가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차이를 추정하는 기준이 하나가 아니다. 예컨대 , 특정 시점에서의 온실가스 배출량과  1인당 배출량, 누적 배출량  중 어느 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 수준이 달라진다. ... 특정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정하는 방식도 논란거리다. 상품의 수출입에 따른 탄소 유출(carbon leakage)이 핵심적인 쟁점이다. ... 영토를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하는 것은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분리를 반영하지 못한다."(홍덕화, 2020).  여기에 더해 한 국가 안에서도 1) 배출을 많이 한 세대와 그 세대로 인해 책임을 지게 된 세대가 다르다는 점, 2) 세대를 무시하더라도 배출의 책임이 큰 기업과 일반 시민들의 구분이 다르다는 점, 3) 비단 배출의 책임 뿐 아니라 기후위기의 재난에 대한 취약성이 한 국가 안에서도 다르게 분배된 점 등. 점점 더 복잡해진다.   게다가 기후정의는 생물다양성 손실을 경계해야 한다.   최진우 외(2022)에 따르면, "최근 기후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생태기능과 생태계서비스를 이용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인 자연기반해법(Nature based Solutions, 이하 NbS)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국제 환경단체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이 2021년 10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와 일부 대기업은 NbS의 일환으로 대규모 나무심기와 같은 사업에 투자하면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림 식재를 늘려 자연숲과 야생동물의 서식처를 파괴하고, 산업형 임업, 화석연료 추출, 자연자원 착취 사업 등을 계속 확장하는 모순을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NbS는 탄소배출 문제의 원천적 해결과 생물다양성 손실의 근본적 조치를 차단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NbS는 탄소와 자연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 신뢰할 수 없는 시장 메커니즘과 기업의 그린워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NbS는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묻지 않고 자연을 해결책으로 도구화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제기하였다."(최진우 외, 2022) 주제에 대한 글쓴이의 이해도가 낮아 글이 정말 매끄럽지 못하다. 뚜렷한 주제조차 없다. 정말 많이 부족한 글이다. 그린워싱에 대한 경계가 자칫 자본주의의 또 다른 위기관리 도구에 불과하게 되는 건 아닌지- 그에 따라 그린워싱에 대한 경계는 자칫 시민들에게 기후정의를 실현시키고 있다는 '착각'을 주입하는 건 아닌지- 그런 고민을 체계적으로 전개해보고 싶었으나 능력 부족으로 이런 글을 쓰게 됐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이나, 전체 내용이 바르게 업로드 되지 않고 자꾸 일부 내용이 짤려서 올려지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글의 수준은 별볼일 없을지라도 나름 긴 시간 투자했는데...  1. [자연기반해법(NbS)에 대한 기후정의 관점에서의 비판적 고찰]; 최진우, 김혜린, 2022. 2. [기후불평등에서 체제 전환으로 : 기후정의 담론의 확장과 전환 담론의 급진화]; 홍덕화, 2020 3. [기업은 ESG를 통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하는가? 질적 면담을 통한 실무자 인식의 탐색]; 윤태일, 2022 4. [패션산업의 그린워싱(Greenwashing)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제안 - 견제적 측면과 규제적 측면 중심으로]; 이자림, 2022. 5. 그외 링크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노동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산업 및 경제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며, 필요한 정보를 바로바로 찾아보고 원격으로 교육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산업현장에서는 사람 손을 거쳐 작업해야 하는 것들이 점점 자동화되고 있으며, AI를 통해 글을 작성하기도 하며, '미드 저니'(Midjourney)를 사용해 그린 그림이 미술전에서 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전에는 물리적인 자원과 노동력이 중요한 생산요소였다면, 지금은 데이터와 정보가 중요한 생산요소가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개인들은 더욱 편리하고 개인화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경제와 산업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나고 있지만 일부 산업은 자동화와 로봇화로 인해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새로운 역량을 습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좋은 노동과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요?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사회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는 2016년 1월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개념이며, 인공 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입니다.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실재와 가상이 통합돼 사물을 자동적, 지능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가상 물리 시스템의 구축이 기대되는 산업상의 변화를 뜻한다고 정의됩니다.  기술의 발전이 가지고 올 편의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판단됩니다. 원격진료, 자율주행, 인공지능, 로봇과 연결되는 스마트홈... 그러나 AI, 로봇의 발전으로 사라지는 일자리가 생기고 있으며, 디지털 세상에서의 개인의 정보나 윤리적 문제가 더 빈번히 발생되겠죠.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과 연관된 공학,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정보통신 분야의 일자리는 증가할 수 있지만 기술 분야의 고부가가치적인 일자리만 남게 될 경우 사회 양극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변화들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과 부담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부담감 속에서도 디지털을 사용하여 효율적으로 일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 하만의 커넥티드카 기술이 접목된 미래 자동차의 콘셉트 이미지. 사진 제공=하만인터내셔널 언택트 시대 이후 디지털 격차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변화는 조금 더 빠르게 일상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비대면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고 장 보기, 원격회의 등 일상에서 디지털이 필수 요소가 되어버렸죠. 하지만 인터넷 접근성의 차이가 크게 벌어져,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이나 국가의 빈곤층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나 기술 접근성이 낮은 지역, 계층들이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제 디지털 격차로 인한 정보의 비대칭은 불편함을 넘어 불평등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일자리를 구할 때도 일자리를 유지할 때도 우리에겐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른 정보를 확인하고 우리 조직의 일자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할지 이야기 나눠야 할 때도 정보를 수집해야 하며, 구성원간의 정보 격차를 최대한 줄여야 더 나은 결정을 위한 토론이 가능합니다. 또한 새로운 역량을 습득해야 하기 위해 어떤 데이터를 어디서 수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도 필요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이러한 정보를 수집하기도하지만 공유할수 있는 주체이기도합니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2 디지털정보격차 보고서 디지털은 정보 격차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는 도구입니다. 디지털을 통해 나가는 많은 정보들이 개인에게 골고루 온전하게 다가가지 않는다면 격차가 될 것이고, 소득의 차이, 지역, 연령과 관계없이 개개인들에게 골고루 분포되어 전달된다면 격차를 없애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개인의 노력 외에도 정책적인 디지털 교육의 강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원, 일자리 안정성을 위한 정책 등의 조치를 통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일자리 창출과 디지털 불평등 해소를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전통적인 노동 형태와 조직 구조, 업무 방식 등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시기에 좋은 노동과 안전한 일자리를 만들기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예능 속 부당노동행위, 이대로 괜찮을까요?
tvN <서진이네>는 <윤식당> 시리즈에서 이사로 활약한 이서진이 사장으로 승진하여 해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장사에 진심인 이 사장을 필두로 정 이사, 박 부장, 최 인턴, 김 인턴까지 5명이 나름의 직급 체계를 갖추고 가게를 운영하는 컨셉입니다. 2화에서 PD가 “지금 노조 결성이 코앞이에요”라고 하자 (과몰입한) 이 사장은 “서진이네에 노조는 용납할 수 없어”, “노조가 결성된다 싶으면 얘를 임원으로 올릴거야”라고 말 합니다. “임원은 노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한 단체 및 연합단체입니다.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근로자를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단체인 만큼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습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구체적으로는 대표이사, 이사회, 본부장 등 사업의 경영담당자를 비롯하여 근로자의 인사, 급여, 후생, 노무관리 등 근로조건 결정 또는 업무상 명령이나 지휘・감독을 하는 등의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로부터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자, 근로자에 대한 인사, 급여, 징계, 감사, 노무관리 등 근로관계 결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사용자의 근로관계에 대한 계획과 방침에 관한 기밀사항 업무를 취급할 권한이 있는 자 등을 의미합니다. (고용노동부, 2022 집단적 노사관계 업무 매뉴얼, 29-30쪽)  한편, 우리 노동조합법 제81조에서는 사용자가 할 수 없는 행위로 불이익 취급,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 개입, 단체교섭 거부 등의 ‘부당노동행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나온 것과 같이 ‘승진’을 통해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볼 것인지 판단 기준을 제시한 사례가 있습니다. 사용자가 근로자의 노동조합활동을 혐오하거나 노동조합활동을 방해하려는 의사로 노동조합의 간부이거나 노동조합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근로자를 승진시켜 조합원 자격을 잃게 한 경우에는 노동조합활동을 하는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서 부당노동행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인바, 이 경우에 근로자의 승진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의 여부는 승진의 시기와 조합활동과의 관련성, 업무상 필요성, 능력의 적격성과 인선의 합리성 등의 유무와 당해 근로자의 승진이 조합활동에 미치는 영향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대법원 1992. 10. 27., 선고, 92누9418, 판결)  앞서 본 것과 같이 <서진이네>의 사용자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을 용납할 수 없고, 노동조합이 생긴다면 직원을 승진시키겠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서진이네>에서 직원의 노동조합 결성과 관련하여 사장이 직원을 승진시켰다면, 그 승진은 부당노동행위 의사에 따른 승진,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려는 취지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예능을 예능으로 보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스쳐간 10초의 방송 그 이상의 고민을 주는 지점인만큼 한 번은 짚어보고 싶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부정하는 내용까지도 예능으로 수용해야 할까요?  현행법상 금지되는 행위의 구체적인 방법을 발언하고 방송하는 것이 세계를 선도하는 K-콘텐츠의 내용이어도 괜찮을까요?
한국판 ‘노동 4.0’,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챗GPT’ 열풍입니다. 인간이 일자리를 빼앗기고, 허위조작정보를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심지어는 AI의 통제 아래 놓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반면 AI의 도움에 힘입어 인간이 새로운 차원의 일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AI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기 위한 AI 관련 윤리의 정립, 법과 제도의 도입은 늦어지고 있습니다. 챗GPT의 등장으로 인한 구체적인 사회변화의 맹아들을 살펴보고, 대응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적으로 논의 할 필요가 있지만, 이 글은 AI보다 좀더 넓은 범위에서 디지털 기술의 혁신에 따른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재인식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챗GPT로 인해 한층 앞당겨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전부터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고립된 비대면 상황에서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소통과 협업의 급속한 진전을 확인했습니다. ‘4차산업혁명’, ‘산업4.0’ 등의 이름으로 수년간 그 이야기되고 있던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실제로 진행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 변화는 AI뿐만 아니라 로봇, 플랫폼, 사물인터넷, 스마트 팩토리, 빅데이터, 공유경제, 자동화 등 각기 다르면서도 겹치거나 연결된 단어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 변화의 장면들 이제 식당에 가면 키오스크와 로봇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테이블에 앉아 키오스크로 메뉴를 고르고 결제하여 주문을 하면 로봇이 음식을 가져다 줍니다. 식당에서 사람을 대면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카페에서 키오스크로 커피를 주문하면 바리스타 로봇이 커피를 내리고, 배달 로봇이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로봇이 치킨을 튀기고 떡볶이를 만듭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위기 등 악조건 속에서 인건비라도 줄여보고자 로봇을 반기는 자영업자들의 인터뷰가 쏟아져 나옵니다. 대형마트 또한 키오스크를 도입하고 있는데 지난 5년간 1만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MBC, 2023.2.7) 2023년 기준 최저임금이 월 200만원이 넘었는데, 키오스크 월 대여비는 5만원이라고 하니 바꾸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겨질 상황입니다. 소자영업자와 노동자의 구조적으로 강제된 생존 대립 구도 속에서 소자영업 영역에서의 일자리가 사라져 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화이트 칼라의 노동 형태 또한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일은 반드시 사무실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더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집이나 카페에서 ‘줌zoom’이나 ‘구글 미트'를 활용하여 화상회의를 하고, ‘슬랙’이나 ‘잔디' 등의 업무 소통 툴을 활용하여 일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구글 캘린더로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여 확인하고, 구글의 문서, 시트, 슬라이드 등을 활용하여 일을 하고, 구글 드라이브 등의 웹드라이브에 문서를 저장해두고 어디서든 꺼내 작업하는 모습은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노트북이 앞에 있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것을 확인하며 일을 하고, 심지어는 운동을 하다가도 스마트워치로 급한 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이런 비대면 노동의 확산에서 시간과 장소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연성이 가장 큰 장점으로 여겨지고, 노동자의 만족과 생산성 향상이 기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집중력 저하, 동료와의 소통 역량 약화, 사회적 고립 가능성의 증대와 같은 우려를 하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노동의 변화는 어느쪽에 가까울까요? 이미 놀랄 정도로 변했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욱 급변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생성형 AI를 활용한 노동의 급격한 변화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셈입니다. 변화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노동을 잘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은 이제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빠르게 적응 할 수 있는지에 따라 생겨나는 ‘디지털 격차'에 의해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재교육되는 노동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업장, 공장의 변화는 더욱 놀랍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는 무인운반차 로봇이 택배 물품을 나르고, 분류로봇 ‘소팅봇'이 물건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쿠팡은 전 과정에서 자동화 기술을 도입해 노동력과 시간을 1/3로 줄였다고 합니다. 이미 AI와 로봇이 상당부분 사람을 대신하고 있는 셈입니다. 네이버 쇼핑과 협업하는 물류업체 파스코의 작업장에는 사람이 다니는 길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CJ대한통운, 롯데쇼핑 역시 이미 자동화 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계가 인간에 비해 정확도가 높고 속도도 더 빠르고 드는 비용도 적기 때문에 이는 효율도 높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MBC, 2023.2.7) SF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 AI와 로봇에 의해 자동으로 돌아가는 작업장이 실현되고 있는 중입니다. 경제ㆍ산업의 급속한 디지털화/자동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플랫폼 경제의 확산은 이미 많은 분들이 인식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배달의 민족’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면 빠른 시간 안에 배달 노동자가 음식을 가져다 줍니다. 배민 안의 ‘비마트’로 주문하면 슈퍼에 가지 않고서도 생활 물품들을 빠르게 받을 수 있습니다. 비마트에 원하는 물건이 없다면 쿠팡을 통해 장을 보면 ‘로켓배송'으로 물건을 빠르게 받을 수 있습니다. 일이 너무 많아 청소 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면 청소 도우미 서비스 앱에서 사람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플랫폼을 통해 법률상담도 받고, 약을 배달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일들이 플랫폼의 매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플랫폼 경제의 발전은 플랫폼 노동의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배달의 민족 등 배달 플랫폼을 통해 배달 노동을 수행하는 라이더 노동자들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플랫폼 노동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앱으로 택시를 부르거나, 법률 자문, 집청소 등 다양한 다양한 노동이 플랫폼 노동이 될 수 있고 또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플랫폼 노동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대도시에 인구가 극도로 몰려 있는 한국 상황과 결합되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고용하는 사람과 일을 하는 사람이 조건에 따라 매칭으로 연결됐다 흩어지는 형태로 일을 하며, 이는 전통적인 회사 개념에 들어맞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입니다. 적재적소에서 원하는만큼 일 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회 안전망의 보호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우려가 훨씬 큽니다.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프레카리아트들은 긱 워크, 즉 단기적인 계약을 맺고 수행하는 일회성 노동, 플랫폼 노동이라는 이름의 불안정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엇이며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요? 택배를 분류하는 쿠팡의 소팅봇(쿠팡 뉴스룸) 독일의 대응, ‘산업 4.0’과 ‘노동 4.0’ 앞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회변화가 급격하게 진행중이고, 대응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함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이를테면 플랫폼을 소유하고 있는 최상위 계층이 부를 독점하게 될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계층이 그 다음 계층이 되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적 안전망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불안정 노동을 하는 프레카리아트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지어 프레카리아트조차 될 수 없는 사람들은 실업 상태에 놓일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일자리의 총량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더욱 심할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인간의 노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시급합니다. 일자리의 양도 중요하지만, AI가 핵심적인 일을 맡고, 사람은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점, 즉 노동의 질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화가 이루어지는 시대를 ‘4차산업혁명', ‘산업 4.0’ 등의 용어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은 지구적인 디지털화, 고도의 자동화에 대응하는 국가적 전략 차원의 연구 및 사회적 대화 프로젝트로 ‘산업 4.0’를 추진해 왔습니다. ‘산업 4.0’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제조업의 완전 자동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산업 정책입니다. ‘노동 4.0’은 그 논의의 결과로 제시된 것입니다. ‘노동 4.0’을 도출하기 위한 핵심 질문은 ‘디지털 기술에 따른 사회변화 속에서 모든 국민의 노동, 좋은 노동은 어떻게 가능한가?’입니다. 우리도 같은 질문에 누가 어떻게 대답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독일은 2012년에 ‘2020 액션 플랜’을 발표하며 ‘산업 4.0’을 제시했습니다. 목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전 국가 차원의 스마트 팩토리 구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5년,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을 정부, 기업, 연구소, 민관학 공동으로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표준화-참조 체계 구축, 연구와 혁신, 네트워크 시스템의 보안, 법적 체계, 노동-직업 교육” 5개의 워킹 그룹이 구성되었습니다. 이는 ‘산업 4.0’이 기업 중심을 넘어 정부-기업-노동의 사회적 차원으로 논의하고 진행하게 되었고, 사회 정책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논의를 통해 먼저 <노동 4.0 녹서>를 내놓고 미래의 노동에 대한 국민 토론 주제 상정하여 사회적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노동 4.0’의 목적은 디지털 시대의 ‘좋은 노동’의 의미와 조건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기업, 협회, 학계, 노동계, 일반 시민 등이 2년간 논의하여 그 결과물로 <노동 4.0 백서>를 발간했습니다. ‘산업 4.0’과 ‘노동 4.0’은 동시에 추진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이명호, 2018 20~22p.)   사회적 논의의 결과로서의 <노동 4.0 백서>는 ‘양질의 노동’을 달성하기 위해 ① ‘양질의 노동’을 달성하기 위한 소득과 사회안전망 확보, ② 안정적이고 직업적 상승이 가능한 ‘양질의 노동’ 기회 제공, ③ 생애단계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표준의 인정, ④ 노동의 질 유지, ⑤ 공동결정, 참여, 기업문화 논의라는 다섯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표에 따라 사회적 대화 및 연구를 거쳐 ① 실업보험에서 고용보험으로의 전환, ② 유연하지만 자기주도적인 근로 시간, ③ 서비스 부분에서 양질의 근로조건 확보, ④ 산업안전보건 4.0을 위한 접근법 마련, ⑤ 근로자 정보보호기준의 강화, ⑥ 공동결정과 참여의 지속과 사회적 파트너십에 기반한 전환, ⑦ 자영업자를 위한 사회적 보호의 증진, ⑧ 미래지향적 복지국가의 구축이라는 여덟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합니다.(제제, 2023) 독일에서의 ‘노동 4.0’ 사회적 논의의 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가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우리도 그 내용을 참조하며 사회적 논의를 해야만 한다는 점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 혁신에 따른 산업의 재구조화, INDUSTRY 4.0(pixabay) 한국판 ‘노동 4.0’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소위 ‘디지털 기술에 의한 혁신’은 창조적이고도 효율적인 경제 성장의 장미빛 미래를 그리는 관점과, 기술에 의한 인간의 일자리 상실 및 종속이라는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관점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정한 디지털 기술 존재 자체로는 대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디지털 기술은 자연·인간과 관련하여 누가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비윤리적이거나 사회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챗GPT의 등장에 따라 ‘AI 윤리'를 제도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AI의 윤리'가 아니라 ‘AI와 관련한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해서일 것입니다.   한국사회에 지구적인 디지털 기술 혁신과 관련한 대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디지털 기술 혁신이 ‘경제성장을 위한 신성장 동력 발굴'을 목표로 기업과 산업, 정부와 전문가 중심으로 기업간의 경쟁이나 국가간의 경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시민의 권리와 민주주의보다는 자본의 이윤이나 국가의 통제 논리에 따라 발전 방향을 결정하고 그 성과를 특정 주체가 독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기술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기술을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특정 주체가 독점적인 이윤과 통제를 추구한다는 점이 위험한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새로운 산업 체제의 구축은 국가와 자본이 아닌 시민·노동자·사회적 소수자 등, 시민사회 차원의 다양한 주체의 대응이 없다면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하고 고착화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4차산업혁명, 산업 4.0등의 표현은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다고, 옳거나 틀렸다고 판단할 수 있도록 고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 갈래의 가능성을 지닌 디지털 기술에 의한 사회변화의 총체적인 흐름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묘사한 여러 장면들은 우리가 이미 그러한 변화의 한 복판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달리고 정부는 일부 지원하고 있는데, 시민사회는 우왕좌왕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독일에서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도출 된 ‘노동 4.0’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부, 기업, 학계, 노동계, 시민 등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연구, 토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정책 방안을 도출하는 대응 전략을, 한국사회의 버전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혁신에 따른 한국사회에서의 변화 양상에 대한 탐구, 그에 따르는 민주주의와 노동 차원에서의 문제점의 인식,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의 변형 및 제도화 대안 마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현 시대에 적합한 디지털 민주주의의 실현 등 다양한 이슈에 관한 국가 차원의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는 공론장과 거버넌스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글 : 람시 /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캠페인즈팀 / ramsci@parti.coop <노동 4.0>의 상세한 내용은 ‘독일의 '노동 4.0'을 알고 계신가요?’에서 찾아보실 수 있고, 훨씬 더 상세한 내용은 <노동 4.0 백서(요약 번역본)>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에 관한 노동 4.0에서의 논의는 ‘노동 4.0이 예측한 플랫폼 기업의 이윤 독식'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의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적 대응의 최근 사례는 ‘비가 내리는 어린이날 연휴, 배민라이더의 파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노동 4.0>의 한국적 함의를 담은 또 다른 글은 '한국형 , 진정한 노동개혁을 위하여'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시민들’에 의한 ‘공론장’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디지털 공론장을 만드는 집단지성과 인공지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빠띠의 블로그, 홈페이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한국형 <노동4.0>, 진정한 노동개혁을 위하여
노동4.0. 솔직히 말해 우리의 입장에서는 아직 언감생심인 개념이다. <노동4.0>이라는 표현은 독일에서 나왔다. 독일의 산업계가 미국의 IT기업들이 주도하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맞아 자신들의 위기의식을 <산업4.0>이라는 개념에 담아 주창하며 현실의 한계를 타개해 나갈 것을 천명하자, 독일의 노동계가 이를 받아 그에 더하여 산업4.0뿐 아니라 노동4.0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서면서 생긴, 하나의 시대전환의 키워드이면서 개혁 프로그램이면서 또 사회적으로 합의된 방안이 바로 노동4.0이다. 노동4.0의 독일어는 <Arbeiten(아르바이텐)4.0>이다. 아르바이텐은 동사로 ‘일하다’라는 말도 되고 동명사로 ‘일하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노동이라고 다소 딱딱하게 번역할 수도 있지만, 원어 그대로 ‘일하기’라고 칭한다면, 그 뉘앙스는 어쩌면 더 살려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확산이 형성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 맞추어 일의 사회적 존재방식, 일자리의 구성요소들을 새롭게 정비하자는 취지와 방안을 담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노동력의 거래를 매개하는 방식 – 대표적으로 고용 - 의 변화까지 포괄할 여지가 있다. 한마디로 디지털 시대에 맞게 대대적으로 노동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모든 나라들에서 심도 깊은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추동하고 있다. 문제는 무엇을(what), 어떻게(how to), 어디로(where to) 바꾸어갈 것이냐에 있다. 여기에는 한 사회에서 노동이 존재하는 방식과 관련한 기본적인 사회계약을 어느 정도로 유지해 가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는 요소를 어떻게 새롭게 도입할 것인가가 합의되어야 한다. 합의를 누가(who) 주도하느냐도 전환의 중요한 관건이다. 독일의 아르바이텐4.0은 우리로서는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된 사회적 파트너쉽(Sozialpartnerschaft)을 형성, 구가하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시도이다. 특히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폭넓고 체계적인 사회적 소통을 활성화시켜 간 것이 인상적이다. 먼저는 녹서(green book)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1-2년의 시간을 요했다. 이후 백서(white book)라는 이름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사회적 소통의 노력을 기울였다. 다 합쳐서 약 3년의 시간을 들여 미래에 우리가 일자리에서 받아들여야 할 변화는 무엇이고 우리가 여전히 유지해 가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소통을 전개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독일의 노동4.0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미 녹서와 백서 모두 출간이 되어 전세계인들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당 내용을 보면, 독일인들은 디지털시대를 맞이하면서 미래에 일하기와 관련하여 기본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가치에 대해 5가지로 정립했다. 그것에 기초해 미래의 좋은 일자리가 지향해야 할 8가지의 기본적인 준칙들을 정립했는데, 그것은 독일의 노사관계, 노동시장제도, 사회복지제도 상의 일정한 변형과 재구조화를 천명한 것들로 구성되었다. 예컨대, 산별단체교섭이나 공동결정제 등의 방안들은 새시대에도 유지, 계승되어야 할 것이라고 규정되었고, 여타 직업훈련과 관련한 측면에서는 새로운 쇄신안들이 담겨졌다.   ‘넘사벽’인 독일식 노동개혁 시도와 한국에의 함의 필자가 서두에서 독일의 노동4.0이 우리에게 언감생심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내용과 방식 모두를 놓고 한 말이다. 앞서 언급한 <노동4.0 백서>를 살펴보면, 노동1.0이 노동조합의 탄생, 노동2.0이 복지국가의 탄생, 노동3.0이 공동결정의 정립으로 이해가 되고 있고, 그것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노동4.0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노동조합, 복지국가, 공동결정 모두 우리 사회의 일자리들의 상당수에서는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과연 노동1.0에서 3.0까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라에서 노동4.0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무조건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술발전이나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도 ‘따라잡기’가 가능했듯이, 사회시스템, 특히 노동시스템의 재구조화도 새로운 모멘텀을 맞이하여 제대로 설계를 하고 타당한 정치의 배에 실어 간다면 도약의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걸림돌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해, 그것을 위해 어떤 것을 쉽게 합의할 수 있고 어떤 것을 오랜 논쟁을 거쳐 정돈해야 할 지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데에 있다. 노동4.0에 대한 담론은 한국에서 이미 굉장히 빨리 수입되고 소비되어 이제는 솔직히 거의 폐기되어진 듯한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실상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그저 머리 속에서 외국에서 만든 사고와 행동을 파악하고 마치 그것을 우리가 다 이룬 듯이 행동하는 데에, 혹은 우리가 하기엔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마는 데에 익숙하다. 후에 재차 그것을 꺼내어 무언가를 이야기하자고 하면 이미 낡은 것처럼 사고되기도 한다.   한국형 노동4.0의 설계와 노동개혁의 방향성 현재 우리의 노동시장은 이중화를 넘어 심지어 삼중화되어가고 있어 보인다. 종래의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고임금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향유하는 근로자들이 1차 노동시장을 이룬다면, 중소기업의 정규직이더라도 임금상승의 기회가 낮은 곳들, 또 여타 기간제, 파견근로 등 고용불안이 전제가 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2차 노동시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지금 디지털 기술의 적용을 매개로 고용이 아닌 형태를 취하면서 노동력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플랫폼 노동 등의 영역은 말하자면 3차 노동시장으로 별도로 범주화해도 무리가 아니다. 1, 2차까지 그래도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력의 댓가로 임금을 받았다면, 이들은 임금이 아니라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수수료 노동자들(fee workers)'이다. 그들의 경우 노동에 결부된 사회적 시민권은 사실상 발가벗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노동개혁은 한국 노동시장의 이 삼분된 세계를 새롭게 통합시켜 낼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 그것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하단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하며, 우리의 노동인구가 지속가능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조건을 제공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노동이 역할을 하는 혁신의 전략 역시 그 안에 오롯이 담겨져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개혁의 기본은 일터 민주주의와 일터혁신의 동시적 신장에 있다. 우리의 노사관계는 주로 분배를 위한 과정에서만 작동을 하고 있고 생산에의 노동의 참여기회에 대한 제도적 기반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분배와 관련한 단위도 개별기업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끊임없이 일터대결주의(workplace antagonism)의 함정에 빠지곤 한다. 노동시장 전반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임금체계 – 필자는 이를 ’사회적 직무급‘이라고 칭한다 – 를 만들고 그것을 위한 분배교섭을 효율화시켜 초기업 수준에서 도모하고, 일터에서는 노동자들의 민주적 이해대표 체계를 꼼꼼히 정비해서 협력과 참여를 촉진시켜 결국 일터혁신을 일상화하는 방안을 보편화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이는 사실 일터대결주의를 극복한 독일식 방법이기도 하다. 개혁의 길이 무엇이 되어야 할 지에 관해 사회적 소통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그것을 정돈해 필요한 방안을 마련해서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작업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매진할 것을 결단할 정부가 필요하고, 그 리더쉽 하에서 한국형 노동4.0의 길을 그려 지속가능한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귀납적인 길은 어떨까 현실 정치에서는 또 다시 노동개혁이 화두로 부상해 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우리에게 노동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전문가들 몇 사람이 부실한 안을 만들고 정부 부처가 그것을 받아 정책을 추구하다가 사회 일각에서 강한 반대가 일면서 대통령이 그것을 부정해 버리는 식의 방식은 그 내용과 과정 모두에서 이미 실패한 것이다. 어쩌면 과연 노동개혁에 대한 진정성 자체가 있기나 했나 싶은 실망스런 모습이다. 과거에도 쉽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도모한 한국판 뉴딜 역시 경제관료들 주도로 만들어진 정책패키지였고,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아무런 사회적 지지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이른바 9.15합의는 어쩌면 개혁의 모양새와 내용을 더 갖춘 면이 있지만, 그 역시 의제의 편향적 입법화를 시도하면서 정권의 종말을 부추기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의 현대사에서 성공한 노동개혁은 좀처럼 찾기 어렵고 그만큼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이다. 노동개혁이 어려운 것은 한방에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귀납적 방법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지역을 단위로 해서 민의들을 모으고 그것을 집약해서 작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면서 청사진의 퍼즐조각들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독일에서 노동4.0 녹서를 만들려 했던 시도에 적극적으로 주목한다면 충분히 이러한 기획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날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사회적 소타협의 경험은 그러한 류의 방안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수용가능한 조건의 일자리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새롭게 인구구조와 세대적 요구의 변화와 차이를 반영해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디자인. 그것은 전환기 민주주의의 역량이 발휘되고 고양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깃발을 들고 첫 단추를 끼고 나서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 어디에서 그러한 울림이 시작될 수 있을까?    
‘더 나은 공론장’을 위해 행동강령 및 운영 정책을 보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캠페인즈팀입니다. 항상 캠페인즈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양한 캠페이너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더 나은 공론장이 될 수 있도록 캠페인즈 행동강령 및 운영 정책을 보완했습니다. 이번 보완의 배경과 내용을 캠페이너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더 나은 공론장을 함께 만들기 위한 약속을 담았습니다. 더 나은 공론장을 함께 만들기 위한 약속을 추가했습니다. 사회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 사회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캠페인즈는 다양한 이슈들과 관련된 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여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구현하는 ‘디지털 시민광장’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캠페이너가 캠페인즈를 통해 ‘내 활동의 중심지’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여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구현하는 ‘시민활동 생태계’가 꾸려지길 바랍니다. 또한 혐오와 차별의 확산 속에서도 서로를 존중하며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캠페인즈는 서로 존중하며 의견을 나누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연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약속에 추가했습니다. 캠페이너는 시민들의 집단 지성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으며, 함께 ‘디지털 시민 광장’을 만들어 갑니다. 캠페이너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의제를 확산하는 ‘내 활동의 중심지’를 만들어 갑니다. 그리고 서로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여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시민활동 생태계’를 만들어 갑니다. 캠페이너는 혐오와 차별 없는 더 나은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대를 만들어 갑니다. 캠페이너는 캠페인즈를 더 나은 공론장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를 존중하며 토론하여 문화를 형성해 나가며, 규칙을 만들어 갑니다. 존중과 배려를 담아 댓글 규칙을 개정합니다. 캠페이너가 함께 하는 약속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규칙도 추가했습니다. 더 나은 공론장을 위해서는 토론을 하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존중과 배려의 출발점은 ‘말’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의견이나 토론을 나누는 댓글에서 높임말·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새로운 규칙으로 추가됩니다. 새로운 규칙에 따라 댓글에서의 반말·평어 사용은 제한됩니다. 반말·평어로 작성된 댓글은 운영 정책에 따라 사전 공지 없이 삭제 또는 가림처리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공론장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함께 토론하기 위해 댓글에서 높임말·경어를 사용해주세요!? 더 나은 공론장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즈 운영자의 책임을 명시합니다.  혐오와 차별이 없는 더 나은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캠페인즈 운영자가 조금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자 행동강령에 책임을 명시하였습니다. 캠페인즈팀은 이번 행동강령 및 운영정책의 보완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운영을 펼칠 예정입니다. 댓글에서의 높임말·경어 사용을 시작으로 캠페인즈만의 문화를 만들고, 혐오와 차별이 없는 더 나은 공론장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캠페인즈팀은 더 나은 공론장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지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개발하고, 도입해 나가고자 합니다. 기술을 통해 캠페인즈를 더 나은 공론장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반영하기 위해 기술의 개발과 도입도 캠페인즈 운영자의 책임에 명시했습니다. 앞으로 캠페인즈에 도입될 더 나은 공론장을 위한 기능들도 기대해주세요.? 행동강령 및 운영정책 위반이 발견 될 경우 신고해 주세요.  기존 행동강령과 운영 정책에선 규칙 혹은 운영 정책 위반 사례 발견시 이메일을 통한 신고만 가능했습니다. 기존 방식인 이메일(contact@campaigns.do)을 통한 신고와 함께 신고 기능을 활용해 캠페인즈팀에 위반 사례를 알릴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디지털 시민 광장’ 캠페인즈는 공론장의 참여자이자 수호자인 캠페이너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입니다. 더 나은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행동강령, 운영 정책을 위반한 사례가 발견될 경우 캠페이너 여러분의 적극적인 신고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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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발언을 어떻게 처벌할까?
나는 이전에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에 대한 혐오발언을 정리하고 여덟 가지 종류로 나눴다. (캠페인즈<전장연 시위를 보는 시선들_혐오란 무엇인가>) 자료를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혐오발언의 상당수가 정치인들의 발언을 근거로 삼거나 발언의 힘을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나무위키가 그러했다). 일상에서의 혐오발언은 잠시 뒤로 하고 정치인이나 공무원 같은 공인이나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예인, 종교인 등이 이런 소리를 계속 하면 이를 규제/처벌할 수는 없을까?  혐오발언에서 자유로운 나라, 사회, 개인은 없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혐오발언을 하지 않더라고 우리는 나도 모르게 혐오발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차피 고칠 수 없으니 그냥 살자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 이런 인간들 때문에라도 공인이나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혐오발언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 흔히 말하는 경각심이라는 것이다. 또 도널드 트럼프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이 힘을 얻기 위해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교육이나 교화를 행함과 동시에, 엄격한 처벌을 통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흔히 이야기하는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논리를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혐오가 무엇인가에 대해 법적인 정의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나라가 많은 상태에서 혐오발언을 처벌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혐오가 무엇인가에 대해 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관을 중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느끼기에 “저거 좀 심하다”, “너무했네” 하는 것들이 혐오발언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이다. 일관성이 있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없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 건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돼지머리를 사다가 이슬람 신도들 앞에 전시하는 행위를 했다. 이걸 보고 많은 사람들은 왜 저렇게 까지 하냐고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에서 개신교 관련 방송사가 만든 영상물을 한번 틀어보자. 그러면 이슬람교는 이런 저런 이유로 문제가 많은 종교이며 이슬람교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한다는 영상물이 심심치 않게 제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개신교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권력자를 비판하거나 풍자할 때 그들의 성행위나 성기, 외모 등을 과장해 표현하며 조롱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인 경우는 더더욱)이건 처벌을 해야 할까? 그 사람의 행위나 판단이 아니라 외모를 비하한 것이니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으나) 일각에서는 그런 행위가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움츠려들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을 보고 위아래로 훑으며 뭘 입었는지 스캔을 하는 행위는 혐오일까 아닐까? 길을 지나가는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면서 느끼하고 불쾌한 눈빛을 보내는 행위는 혐오일까 아닐까? 나는 이전에 글을 통해 혐오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리한 적이 있다. (캠페인즈<전장연 시위를 보는 시선들_혐오란 무엇인가>)  혐오란 “다수자와 구별되는 속성을 지닌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이들의 특성, 지위에 토대를 두고 이루어지는 비하적인 관념을 옹호, 증진, 확산하거나, 이들을 비방, 비하, 모욕, 멸시, 낙인찍기, 위협, 공격하는 표현을 하고 이것을 정당화하는 생각”이며, 혐오의 구성 요소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대상: 다수와 구별되는 속성을 지닌 특정 집단  2) 관념: 그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3) 표현: 말, 글, 행동을 통한 표현  4) 효과: 표현을 통해 이루어지는 부정적인 결과 혐오를 강화시키는 요소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혐오표현리포트」, 2019, p.49~p.56 요약)   1)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의 지위: 사회적 지위, 집단내 지위, 청중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   2) 혐오표현의 맥락: 대상 집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존재, 대상 집단에 대한 법·제도 장치, 언론지형, 정치지역, 혐오표현이나 폭력의 발생 빈도, 대항표현과 대항역량의 확보   3) 혐오표현의 범위: 공개성, 조직성, 계획성, 반복성·지속성   4) 혐오표현의 매체: 매체의 공신력, 매체의 영향력, 복제와 유포의 용이성   5) 혐오표현의 의도와 효과 이번에는 이 정리에 이어서 혐오발언을 어떻게 규제 혹은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혐오발언,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어떤 나라는 혐오발언 자체를 처벌하기도 하고(대표적으로 독일) 어떤 나라는 혐오발언을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 기존의 다른 범죄를 가지고 처벌하기도 한다(대표적으로 일본). 무엇이 되었건 해외에서 혐오발언을 금지하는 수많은 법률을 보면 “타인의 권리나 존엄성, 신체적 안전을 해치는 것”과 “공공의 질서 혹은 국가 안보를 해치는 것”에 해당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모두 혐오발언이 가져오는 눈에 보이는 해악에 대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당장 어떤 행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을 처벌하거나 규제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위에 말한 눈에 보이는 해악들은 모두 그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 속에서 탄생한다. 일본에는 건상자(健常者, 켄죠-샤)라는 말이 있다. ‘건강하고 정상인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게 비장애인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놀이공원 같은 곳에 가면 ‘건상자이신 분은 할인 적용이 안 됩니다’나 ‘장애가 없으신 분’ 같은 문구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말을 계속 사용하고 이런 말이 널리 허용되는 사회 분위기는 개인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부지불식간에 장애인을 건강하지 않고 정상이 아닌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이 문화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법적인 처벌은 처벌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교육의 수단이기도 하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다. 법이 모든 도덕적 가치를 다 반영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바꿔 생각해보면 처벌을 동반하는 법적 규제는 그 사회가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처벌을 동반한 법적 규제는 우리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그 방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혐오발언에 대한 처벌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혐오발언의 법적 처벌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금지가 정답인가? 자유롭게 토론하고 생각하며 더 나은 발언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하지 않는가? 법적인 금지로 개인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보다 혐오발언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을 지속해 모두가 혐오발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더 교육적이고 민주주의적이지 않을까? 처벌은 악용될 소지가 너무 많지 않나?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자율적인 개인이 구성한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혐오발언에 대한 법적인 금지가 이를 해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혐오표현/혐오발언은 위에서 말했듯이 특정 집단의 특성이나 지위에 대한 비하적인 관념에 기반하고 있다. 혐오표현이나 혐오발언에 대해 혐오 관념을 강하게 가진 이들을 공론장으로 데리고 와서 그들의 발언을 들어보자고 하는 것은 결국 이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혐오표현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자유시장경제라는 생각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공정’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나는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공론장으로 데려오는 것에 반대한다. 혐오에 대한 정의가 애매한데 이를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냐는말에 대해서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충분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혐오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다는 말은 혐오표현/혐오발언이 무엇인지에 대해 각잡고 제대로 논의해 보자는 주장의 근거는 될 수 있지만 그것을 금지하자는 말의 근거는 될 수 없다. 우리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대해 처벌하고 있다. 훼손되고 모욕되는 명예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명예훼손과 모욕에 대한 처벌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공적인 발언을 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혐오표현에 대한 처벌도 마찬가지다. 어떤 한 종류의 혐오표현이 금지되는 것은 그와 연결된/비슷한 다른 혐오표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조심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자신의 발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더 건강하고 거대한 표현의 자유를 촉진하는 것이 아닐까? 또 혐오발언에 대한 법적인 금지가 민주주의적 가치를 해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로불편러나 꼰대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 혹은 타인이 하고 싶은 말을 국가가 나서서 못하게 한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지껄이는 그 자유는 어떤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당신은 그 발언을 어떤 상황에서 하고 있는가?  마치며 2023년 5월 3일 수요일 오전 9시 30분, 서울시청사 시청사 8층 간담회장1에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위원회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위 원 장 : 윤기찬 (법무법인 케이디에이치 변호사)  부위원장 : 김영윤 (국민통합연대 시민사회활동가)  위     원 : 장지호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 위     원 : 함인경 (법률사무소 강함 대표변호사) 위     원 : 문재원 (DL건설) 위     원 : 박규빈 ((주)지역도시건축사사무소 리플래폼) 위     원 : 송경택 (서울시의원) 위     원 : 박유진 (서울시의원) 위     원 : 박상혁 (서울시의원) 위     원 : 허훈 (서울시의원) 위     원 : 정상훈 (서울시 행정국장) 위     원 : 임춘근 (서울시 균형발전기획관) 이 회의에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와 CTS라는 개신교 단체에서 주관하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가 동시에 서울 광장 사용을 신고했는데 무엇을 받아들일 것이냐를 놓고 회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사용 신고 수리에 반대하며 이런 말들이 나왔다. (이하 회의 속기록 에서 발췌) 이 행사(작년의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셨던 분들과 그 주변에 그 인근에서 바로 옆에서 이를 반대하는 또 시위가 또 대규모로 있으셨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 시민들의 그 의견이 다르셔서 뭐 표출하셨던 상황들인데, 이게 논란이 있다는 거죠, 이거 자체가. 그리고 또 서울시민의 광장이라는 게,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그 공공성이 되게 강해야 된다는 커야 된다는 거죠, 판단 기준에 있어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렇게 논란이 있고 서로 문제가 있다고 그러면, 이 앞으로도 이런 뭐 퀴어축제라든지, 사실은 이런 뭐 문제가 있는 축제들은 저희 위원회에서 걸러내야 될 것 같고요. 시민의 자유를 이야기를 하고 문화생활, 공익행사 뭐 이런 문화를, ‘소수성에 대한 문화를 인정하고 가자.’ 그러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또 피해를 보는 서울시민들이 많은 부분들이 있어요. 그 여러분들이 뭐 저는 이거 이 행사가 사실상 3∼4일로 끝나지만, 전과 후의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게 큰 범위로 계속 가다 보면 더 많은 피해들을 시민들이 입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조금 뭐 다른 뭐 이태원이나, 뭐 다른 이런 작은 집단에서 시작하다가 서울시, 마치 이게 뭐 대한민국 자체가 이 성소수자들을 인정하는 문화로 하면서 서울시가 받아 들이면서, 이거 저는 개인적으로는 참 이게 그 청소년에 뭐 건전, 아니 그니까 ‘바르게 커야 되는 이런 성 문화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참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좋지 않다.’라고 생각하고, 인근을 이용하고 있는 서울시민의 교통이라든지, 정작 정말 이 광장을 이용하고 싶은 시민들에게는, 굉장히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그며칠이라도. 그래서 저는 이런 문화가, 이런 문화를 그들은 문화라고 이야기하지만, 이거를 서울시 입장에서, 뭐 ‘단 며칠이라도 땡큐하다.’라고 진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민으로서 굉장히 불편한 상황이고, 단 며칠이지만 이거를 축제로 인정을 해줘야 되나에 대한 고민이 있는 상황에서 저는 반대 입장이고, 지금 상황에서 뭐 이 두 가지가 붙었을때, 딱 봐도 ‘문화의 다양성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정말 청소년 정서 회복을 위해서 이 축제를 하겠다’라고 했을 때, 어느 손을 들어야 되는지는, 그냥 이 청소년·청년을위한 회복콘서트, 서울퀴어문화, 성 문화잖아요. 갈등 유발을 어디가 더 할 것인가, 공공이기 때문에. 그러면 퀴어축제는 아까 ‘작년에 축제가 열렸을 때, 반대시위도 열렸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갈등을 유발할 요소가 어디가 더 있나. 그리고 이 이쪽 청소년·청년은 갈등을 유발할 것인가, 안 유발할 것인가를 봤을 때, 전혀 유발할 사유가 없죠. 정확히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전부 ‘〇〇〇위원’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장일치인지 다수결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냥 “다수가 ‘예’라고” 했다는게 회의록의 전부다. 심지어 어떤 발언들 밑에는 “다수가 웃었다”는 불필요한 정보까지 기재되어 있다. 그 이전의 회의들에는 이런 회의록도 없다. 그냥 수리/불수리만 나와 있다. 이태원 추모공간을 불수리한 결정에 대해서도 회의록이 없다. 서울광장에 임시로 스케이트장을 만드는 의견을 수리한 결정에 대해서도 회의록이 없다. 이번 달만, 그것도 이렇게 불성실하고 불충분한 회의록을 공개한 것은 왜일까? 악의적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공개 방식도 내용도, 이렇게 불쾌하고 악의적인 회의록은 살면서 처음 본다. 공론을 빙자한 혐오의 장은 처벌되어야 한다. 
상징성을 가지게 된 ‘지방청년’이라는 단어
지방소멸, 지역 청년일자리 부족, 청년세대 인구 감소 및 수도권 쏠림 현상 등 많은 단어들이 위기를 조성하고 있으나 정작 지역 속 청년들의 목소리는 반영 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방청년’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상징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무엇이 문제고 어디부터 풀어나가야할까. 한국의 지역 내 총생산 규모는 수도권이 1,017조원(52.5%), 비수도권이 919조원(47.5%)을 차지해 수도권이 전국 지역내총생산의 과반을 점하고 있음. 단순히 경제적 규모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고용상황도 격차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비수도권 청년고용률은 39.3%로 수도권 청년고용률은 44.9%에 비해 5.3%나 낮다. 시/도 지역별로 구분해보면 수도권(서울51%, 인천48%, 경기47.3%)과 비교해 영남권(부산40.5%, 대구42.7%, 경북41.1%, 경남37.8%, 울산38.9%)과 호남권(전북39.1%, 전남39.3%, 광주37.3%)의 청년고용률이 큰 차이로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흔히 ‘이중구조’ 혹은 ‘분절적 노동시장’으로 표현되는데, 기업규모, 고용형태에 따른 격차가 전반적으로 벌어져 있는 것이다. 대기업(500인 이상) 대비 중소기업(500인 미만) 평균임금 비중은 1980년 96.0%에서 꾸준히 하락해 2020년 기준 58.8%까지 낮아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 인구이동에서 2030의 비중이 47.1% 차지 (20대 25.3%, 30대 21.8%)하고 있으며, 특히 '시도간 인구이동'에 있어 전입사유로 '직업'(일자리)을 선택한 비중은 34.5%로 일자리를 이유로 한 시도간 인구이동 비중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국적인 인구감소 속에서도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입 순이동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역 특수성을 반영한 고용서비스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청년유니온은 지역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청년 지역일자리 실태조사>와 <지방소멸 시대의 청년세대 지역격차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를 진행했다. 비수도권 응답자 중 지역 내 '일자리 충분정도'에 대해 비수도권 청년 78.9% ' 불충분하다' 응답했다. 성별별로는 비수도권 남성 청년 71.7% - 여성 청년 84.1%로 '불충분하다'의 응답격차가 나타났으며, 수도권 이동 계획을 묻는 질문에 비수도권 청년 여성 47.6%, 남성 38.3%이 ‘예“라고 응답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수도권으로 상경한 청년의 경우 상경이유에 대해 '다양하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32.1%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원하는 교육을 받기 위해(직업훈련, 기타 교양 교육 등)'가 22.2%로 그 뒤를 이었다. 또한 취업 준비 과정에서 겪은 직업훈련 기관이나 교육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직업 훈련 기관 접근성 질문에 대해 훈련기관은 있으나 이용하지 않는다의 답변이 40.1%로 가장 많았고, 찾기 어렵다 23.9%, 찾을 수 있으나 거리가 너무 멀다 21.8%, 들어본 적 없다 11.3% 순이었다. 응답자중 45.7%가 접근성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훈련기관은 있으나 이용하지 않는다‘ 답변의 이유에 대해서는 실용적이지 않고, 수도권에 비해 퀄리티가 낮다 등이 있었다. 이는 접근성뿐만 아니라 교육의 퀄리티나 다양성을 높이는 등 훈련기관이 실제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한편, 비수도권 청년에게 수도권 이주 계획 혹은 의사를 묻는 질문에 43.7%가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수도권으로 이동할 의사가 없다’를 선택한 응답자 중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12.5%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이유로는 수도권의 높은 물가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고(46.3%), 수도권 생활의 적응에 대한 두려움이 (16.3%) 다음을 이었다. 그 외엔 단순히 이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현재 큰 불편함이 없다는 답변 등이 있었다. 결국 이주할 의사가 없다는 응답자들도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 만족해서라기 보단, 수도권 생활에 대한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실태조사와 질적연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에 나서고 있는 참여자들이 강한 수도권으로의 이주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구직 과정에서의 경험과 판단은 다양하고 더 많은 수의 일자리가 모여 있는 수도권으로의 이주를 고민하게 하면서, 지역 청년을 지역으로부터 빠져나가게 하고, 결국 이것이 지역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유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업 전반을 두고 이야기 하는게 필요하겠지만, 구직시기부터 시작되는 지역이탈. 교육 격차에 우선 주목해보았다. 청년 실업률 및 장기실업률의 효과성이 나온 ‘적극적 노동시작 정책’의 지출 규모를 늘릴 필요가 있다. 한국은 OECD국가 내에서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지출이 적은 국가에 속한다. 2019년 기준 OECD 국가별 GDP대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지출 비율을 보면 한국은 GDP 대비 0.37%로 OECD 평균인 0.72%의 절반수준에 머물러 있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중에서도 고용개선 효과성이 큰 고용서비스 정책과 직업훈련 정책의 경우에도 지출 규모가 매우 낮은 상황이다. GDP대비 고용서비스 지출규모는 0.04%로 OECD 평균인 0.12%의 1/3수준으로 낮으며, 직업훈련 지출규모는 0.07%로 OECD평균인 0.10%의 2/3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비수도권 청년이 지역에서 정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지역 내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의 창출과 직업다양성의 확보가 가장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함께 주목해야할 것은 양질의 직업훈련과 고용서비스가 지역 특성에 맞게 이뤄질 필요성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존에 추진되고 있는 ‘상생형 일자리’의 확대, 산업변화에 조응하는 지역 직업훈련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혁신, 고용서비스와 관련된 인력 확충 등 중앙정부 차원의 직접일자리 정책, 고용서비스 및 직업훈련 정책과 더불어 해당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년일자리 정책의 효과성에 대해 전반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에 따른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과제들이 있으나 먼저 중앙정부 차원의 직접일자리 정책, 고용서비스, 직업훈련 정책과 해당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년일자리 정책의 효과성에 대해 주목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진입시기부터 이뤄지는 지역 이탈, 그리고 ‘일자리’를 이유로 한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은 살고 있던 지역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협당하는 것이다, 그 현실의 중심에 있는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이주하지 않더라도 동일한 정책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수도권으로의 이주가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EBS가 청소노동자를 해고했습니다
며칠 전 누군가 청소노동자에게 피로회복제 두 박스를 선물하는 모습을 봤다. 노동자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힘내세요”라고 응원한 사람은 정규직 노동자였다. 몇 분 뒤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간부가 노동자들을 찾아왔다. 그는 회사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노조 성명서를 최근 발표했고, 예정된 노사교섭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참을 노동자들과 함께했다. EBS(한국교육방송공사) 청소노동자 이야기다. 이 노동자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투쟁’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러 나오는 시간에 청소노동자들은 로비에 모여 피켓을 든다. 피켓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내가 쓸고 닦은 EBS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일방적으로 인원감축하는 EBS 규탄한다.” “노예계약 요구하는 EBS 규탄한다.” “미화노동자도 사람이다.” 구호가 정확히 알려주듯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EBS는 5월 들어 청소용역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청소노동자 TO를 27명에서 24명으로 3명 줄였다. 그런데 3명 전부 노동조합 간부다. 게다가 평일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말 특근을 아예 없앴는데, 이로 인해 임금이 50만원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해고, 노동강도 강화, 일방적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 누구의 밥줄이 끊길 줄 모르는 상황에서 각자도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EBS 노동자들은 용기 있게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그리고 해고된 동료와 함께 ‘투쟁’하는 길을 결심했다. 노동자들이 단단하게 뭉쳤고(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EBS분회), 정규직 노조가 함께하고(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미디어 전문 언론들이 꾸준히 이 사태를 보도하고 있는 만큼 청소노동자들이 결국 웃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가 며칠 만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면 이 사태는 ‘원청이 주도하는 구조조정-노동개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EBS 사측이 전형적으로 악덕-원청의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EBS는 재정 위기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제작비와 제작인력을 줄이고 있고, 청소용역비도 이런 맥락에서 줄였다. 회사의 논리는 대략 이런 식이다. 우리 회사는 오래 전부터 재정 압박을 받아왔다. →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상황을 맞았고, 전사적으로 비용절감을 해야 한다. → 고통분담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 청소노동자들 요구를 받아들이면 비용절감 기조가 흔들린다. 굉장히 익숙한 주장과 논리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모든 회사, 모든 원청이 이렇게 선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하게도 이런 선동의 효과를 정확히 안다. EBS의 주장은 고통분담을 해야 할 정규직 노동자 일부 또는 다수에게 이렇게 다가간다. ‘회사가 망해가는데 청소노조가 떼를 쓴다.’ 회사는 또 이런 여론을 명분 삼아 구조조정을 강행할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 덕성여대의 모습이다. 2022년 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자 학교는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2022~2026년에 걸쳐 TO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 청소용역비 예산을 증액할 수 없다는 것이 학교 입장이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자 학교는 이렇게 주장했다. ‘모두가 고통분담을 하고 있는데 청소노동자들이 특혜를 바라며 억지농성을 하고 있다.’ 학교는 담화문에 달린 댓글, 게시판에 올라온 노조 비난 글을 명분으로 노동조합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올해 2월 졸업식 때 청소노동자들이 세 시간 동안 길바닥에 드러누워서야 대화가 시작됐고, 일 년이 넘은 갈등이 끝났다.  나는 EBS가 악덕-원청의 전철을 밟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EBS가 보인 모습은 전형적이다. EBS는 다른 공공기관들이 일정 수준에서 진행한 정규직화를 계속 미뤄왔다. EBS는 다른 기업이 그런 것처럼 청소노동자들을 ‘비용’으로만 다뤘다. EBS는 노동부의 용역노동자 보호지침을 위반했다. EBS는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조합과 어떠한 협의조차 하지 않은 채 구조조정-노동개악을 추진했다. EBS는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표적해고에 “용역업체가 한 일”이라며 뒤로 숨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EBS가 왜 충북 청주에 사무실이 있는 직원수 25명의 청소용역업체와 계약했는지, 왜 청소노동자들부터 해고하고 임금을 삭감하는지, 원청이 친 사고인데 왜 원청이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경험적으로 그리고 상식적으로 나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결국 현장에 복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EBS 청소노동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갈지다.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이 EBS의 예산 운용과 경영방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대응하면 좋겠다. 함께 EBS의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고민하면 좋겠다.  나는 EBS의 구성원들이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고, 그렇게 해야 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검색사이트에 ‘EBS+청소노동자’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그간 EBS가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이들의 투쟁을 다룬 뉴스리포트와 다큐멘터리가 결과창을 가득 채운다. 이중 다큐멘터리 <세상을 잇는 다큐 it> 시리즈인 <휴게실,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편은 대학, 빌딩, 옥외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휴게실에 주목한 내용이다. EBS의 이 다큐멘터리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에는 이례적으로 제작진의 당부가 적혀 있다. 촬영하는 동안 청소노동자들은 행여 들킬세라 그림자처럼 움직여야 했습니다. 얼굴이 알려지면 일자리를 잃을까 봐 인터뷰를 하면서도 신분을 감춰야 했습니다. 취재진을 따라다니는 감시의 눈길도 있었습니다.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도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방송이 나간 후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제작진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바로 EBS 로비에서 말이다. 노동자들은 해고됐고 불이익을 당했다. 경제위기의 시대, 많은 기업과 원청이 청소·보안 노동자들부터 수를 줄인다. EBS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EBS 문제가 어떻게 정리될지 더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토론을 시작하면 좋겠다. 나는 청소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토론이 노동자 전체의 권리를 끌어올리는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청소노동을 왜 외주화해야 하는가. 직접고용하면 안 되는가.청소노동자들의 노동은 왜 저임금이어야 하나.청소노동자의 휴게실은 왜 발밑에 있어야 하나.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에는 왜 창문이 없나.청소노동자들을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는’ 존재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청소노동자들은 왜 다른 구성원들이 출근하기 전 새벽 5~6시에 출근해야 하는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필요성과 국가의 역할
전장연 시위가 사회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국장애인연대는"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여 출근길에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전장연이란 단체는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한다."며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 반면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전장연의 시위를 긍정적으로 봐라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론은 전장연 시위를 어떻게 봐라보고 있을까요? kbs여론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의 시민들은 장애인 이동권의 시위에는 공감하지만 출퇴근시위에는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올바른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주는 것일겁니다. 월간 <유레카>시사읽기에 따르면 장애인 이동권은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기가 힘이 든다고 합니다. 실제로 휠체어 장애인 분들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률은 26.5%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두번째로는 서울시 지하철의 경우 정치권에서 1역사 1동선(출구부터 동선까지 휠체어 리프트없이 엘리베이터로만 이용가능하게 하는 것)을 약속했지만 2022년 예산안에 따르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예산자체가 아얘 빠졌다고 합니다. 지역 간 이동에도 제약이 있는 상황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특별 교통수단을 관리하는 아동지원센터가 나뉘어져있기 때문에 이를 통합할 수 있는 '광역이동지원센터'를 의무 설치하는 내용이 담겨져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합니다. 우선 유명무실한 법 제도부터 보완, 강화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또 장애인이동권 보장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예산권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또 장애인분과 꾸준한 소통을 통해 불편한 점을 바로 바로 수용하여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장애인을 위한 정책기구를 만들어내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 나라일까요? 누구나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고 있을까요? 최근 장애인의 이동권 시위에 대한 반대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왜 장애인분들이 시위에 참여하는지 목소리를 듣고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국가의 역할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