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한국형 <노동4.0>, 진정한 노동개혁을 위하여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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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명준

노동4.0. 솔직히 말해 우리의 입장에서는 아직 언감생심인 개념이다. <노동4.0>이라는 표현은 독일에서 나왔다. 독일의 산업계가 미국의 IT기업들이 주도하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맞아 자신들의 위기의식을 <산업4.0>이라는 개념에 담아 주창하며 현실의 한계를 타개해 나갈 것을 천명하자, 독일의 노동계가 이를 받아 그에 더하여 산업4.0뿐 아니라 노동4.0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나서면서 생긴, 하나의 시대전환의 키워드이면서 개혁 프로그램이면서 또 사회적으로 합의된 방안이 바로 노동4.0이다.

노동4.0의 독일어는 <Arbeiten(아르바이텐)4.0>이다. 아르바이텐은 동사로 ‘일하다’라는 말도 되고 동명사로 ‘일하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노동이라고 다소 딱딱하게 번역할 수도 있지만, 원어 그대로 ‘일하기’라고 칭한다면, 그 뉘앙스는 어쩌면 더 살려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확산이 형성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에 맞추어 일의 사회적 존재방식, 일자리의 구성요소들을 새롭게 정비하자는 취지와 방안을 담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노동력의 거래를 매개하는 방식 – 대표적으로 고용 - 의 변화까지 포괄할 여지가 있다. 한마디로 디지털 시대에 맞게 대대적으로 노동개혁을 하자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모든 나라들에서 심도 깊은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추동하고 있다. 문제는 무엇을(what), 어떻게(how to), 어디로(where to) 바꾸어갈 것이냐에 있다. 여기에는 한 사회에서 노동이 존재하는 방식과 관련한 기본적인 사회계약을 어느 정도로 유지해 가면서, 새로운 환경에 맞는 요소를 어떻게 새롭게 도입할 것인가가 합의되어야 한다. 합의를 누가(who) 주도하느냐도 전환의 중요한 관건이다.

독일의 아르바이텐4.0은 우리로서는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발전된 사회적 파트너쉽(Sozialpartnerschaft)을 형성, 구가하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시도이다. 특히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폭넓고 체계적인 사회적 소통을 활성화시켜 간 것이 인상적이다. 먼저는 녹서(green book)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1-2년의 시간을 요했다. 이후 백서(white book)라는 이름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사회적 소통의 노력을 기울였다. 다 합쳐서 약 3년의 시간을 들여 미래에 우리가 일자리에서 받아들여야 할 변화는 무엇이고 우리가 여전히 유지해 가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소통을 전개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독일의 노동4.0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미 녹서와 백서 모두 출간이 되어 전세계인들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해당 내용을 보면, 독일인들은 디지털시대를 맞이하면서 미래에 일하기와 관련하여 기본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가치에 대해 5가지로 정립했다. 그것에 기초해 미래의 좋은 일자리가 지향해야 할 8가지의 기본적인 준칙들을 정립했는데, 그것은 독일의 노사관계, 노동시장제도, 사회복지제도 상의 일정한 변형과 재구조화를 천명한 것들로 구성되었다. 예컨대, 산별단체교섭이나 공동결정제 등의 방안들은 새시대에도 유지, 계승되어야 할 것이라고 규정되었고, 여타 직업훈련과 관련한 측면에서는 새로운 쇄신안들이 담겨졌다.

 

‘넘사벽’인 독일식 노동개혁 시도와 한국에의 함의

필자가 서두에서 독일의 노동4.0이 우리에게 언감생심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 내용과 방식 모두를 놓고 한 말이다. 앞서 언급한 <노동4.0 백서>를 살펴보면, 노동1.0이 노동조합의 탄생, 노동2.0이 복지국가의 탄생, 노동3.0이 공동결정의 정립으로 이해가 되고 있고, 그것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바로 노동4.0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노동조합, 복지국가, 공동결정 모두 우리 사회의 일자리들의 상당수에서는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다. 과연 노동1.0에서 3.0까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라에서 노동4.0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무조건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술발전이나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도 ‘따라잡기’가 가능했듯이, 사회시스템, 특히 노동시스템의 재구조화도 새로운 모멘텀을 맞이하여 제대로 설계를 하고 타당한 정치의 배에 실어 간다면 도약의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걸림돌은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 되어야 할 지에 대해, 그것을 위해 어떤 것을 쉽게 합의할 수 있고 어떤 것을 오랜 논쟁을 거쳐 정돈해야 할 지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데에 있다.

노동4.0에 대한 담론은 한국에서 이미 굉장히 빨리 수입되고 소비되어 이제는 솔직히 거의 폐기되어진 듯한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실상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그저 머리 속에서 외국에서 만든 사고와 행동을 파악하고 마치 그것을 우리가 다 이룬 듯이 행동하는 데에, 혹은 우리가 하기엔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마는 데에 익숙하다. 후에 재차 그것을 꺼내어 무언가를 이야기하자고 하면 이미 낡은 것처럼 사고되기도 한다.

 

한국형 노동4.0의 설계와 노동개혁의 방향성

현재 우리의 노동시장은 이중화를 넘어 심지어 삼중화되어가고 있어 보인다. 종래의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고임금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향유하는 근로자들이 1차 노동시장을 이룬다면, 중소기업의 정규직이더라도 임금상승의 기회가 낮은 곳들, 또 여타 기간제, 파견근로 등 고용불안이 전제가 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2차 노동시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지금 디지털 기술의 적용을 매개로 고용이 아닌 형태를 취하면서 노동력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플랫폼 노동 등의 영역은 말하자면 3차 노동시장으로 별도로 범주화해도 무리가 아니다. 1, 2차까지 그래도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력의 댓가로 임금을 받았다면, 이들은 임금이 아니라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수수료 노동자들(fee workers)'이다. 그들의 경우 노동에 결부된 사회적 시민권은 사실상 발가벗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노동개혁은 한국 노동시장의 이 삼분된 세계를 새롭게 통합시켜 낼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 그것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고 하단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하며, 우리의 노동인구가 지속가능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노동조건을 제공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노동이 역할을 하는 혁신의 전략 역시 그 안에 오롯이 담겨져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개혁의 기본은 일터 민주주의와 일터혁신의 동시적 신장에 있다. 우리의 노사관계는 주로 분배를 위한 과정에서만 작동을 하고 있고 생산에의 노동의 참여기회에 대한 제도적 기반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분배와 관련한 단위도 개별기업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 끊임없이 일터대결주의(workplace antagonism)의 함정에 빠지곤 한다.

노동시장 전반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임금체계 – 필자는 이를 ’사회적 직무급‘이라고 칭한다 – 를 만들고 그것을 위한 분배교섭을 효율화시켜 초기업 수준에서 도모하고, 일터에서는 노동자들의 민주적 이해대표 체계를 꼼꼼히 정비해서 협력과 참여를 촉진시켜 결국 일터혁신을 일상화하는 방안을 보편화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다. 이는 사실 일터대결주의를 극복한 독일식 방법이기도 하다.

개혁의 길이 무엇이 되어야 할 지에 관해 사회적 소통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그것을 정돈해 필요한 방안을 마련해서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작업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매진할 것을 결단할 정부가 필요하고, 그 리더쉽 하에서 한국형 노동4.0의 길을 그려 지속가능한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귀납적인 길은 어떨까

현실 정치에서는 또 다시 노동개혁이 화두로 부상해 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우리에게 노동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전문가들 몇 사람이 부실한 안을 만들고 정부 부처가 그것을 받아 정책을 추구하다가 사회 일각에서 강한 반대가 일면서 대통령이 그것을 부정해 버리는 식의 방식은 그 내용과 과정 모두에서 이미 실패한 것이다. 어쩌면 과연 노동개혁에 대한 진정성 자체가 있기나 했나 싶은 실망스런 모습이다.

과거에도 쉽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도모한 한국판 뉴딜 역시 경제관료들 주도로 만들어진 정책패키지였고,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아무런 사회적 지지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이른바 9.15합의는 어쩌면 개혁의 모양새와 내용을 더 갖춘 면이 있지만, 그 역시 의제의 편향적 입법화를 시도하면서 정권의 종말을 부추기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의 현대사에서 성공한 노동개혁은 좀처럼 찾기 어렵고 그만큼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이다.

노동개혁이 어려운 것은 한방에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필자는 귀납적 방법이 오히려 현실적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지역을 단위로 해서 민의들을 모으고 그것을 집약해서 작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면서 청사진의 퍼즐조각들을 맞추어 가는 것이다. 독일에서 노동4.0 녹서를 만들려 했던 시도에 적극적으로 주목한다면 충분히 이러한 기획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날 광주형 일자리와 같은 사회적 소타협의 경험은 그러한 류의 방안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수용가능한 조건의 일자리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새롭게 인구구조와 세대적 요구의 변화와 차이를 반영해 일하는 사람들이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디자인. 그것은 전환기 민주주의의 역량이 발휘되고 고양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것을 위해 누군가는 깃발을 들고 첫 단추를 끼고 나서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 어디에서 그러한 울림이 시작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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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개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은 순간들이 많은데요. 정부가 이야기 하는 노동개혁도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탄압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비전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이 녹서와 백서를 만들며 노동 4.0을 정리한 과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다양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노동개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실상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채 그저 머리 속에서 외국에서 만든 사고와 행동을 파악하고 마치 그것을 우리가 다 이룬 듯이 행동하는 데에, 혹은 우리가 하기엔 불가능하다고 단정짓고 마는 데에 익숙하다. 후에 재차 그것을 꺼내어 무언가를 이야기하자고 하면 이미 낡은 것처럼 사고되기도 한다.

기본소득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논의, 시험 기회를 매번 놓치고 다시 원점에서 토론하는 수준인것 같아요. 뭘 제대로 평가하려면, 일단 죽이되든 밥이되든 해봐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지레 겁먹고 손실 비용만 따지는것 같아요. 그래서 타이밍도 놓치고. 시간은 흐르는데 말이죠.

한참동안 상당부분 겹치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업로드 하려고 보니, 연구위원님의 글이 올라와 있네요. 심지어 제목도 비슷합니다. ^^;;
"한국판 ‘노동 4.0’,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제 글 밑에 연구위원님 글,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무엇보다 "한국형 노동4.0의 길을 그려 지속가능한 미래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추진해 가야"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