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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하지 않는 살인... 이 죽음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13화]
[지난 이야기]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상사 때문에 괴롭다고 대성통곡하던 동생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출퇴근 기록이 찍힌 교통카드 내역을 언니의 이메일로 보내놓고서. 그것은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꼭 진실을 밝혀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언니 장향미(45) 씨는 동생의 죽음이 “동생의 문제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언니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향미 씨는 동생이 떠나고 나서 세 달 동안 동생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동생의 과로자살은 회사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회사는 과로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향미 씨는 제일 먼저 증거보전신청을 하고 회사에 동생의 출퇴근 기록과 업무일지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기록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증거보전신청 소송에서 향미 씨가 이기자, 그제야 기한 직전, 그것도 출근 기록이 아니라 동생의 컴퓨터 로그 기록(시스템 접속 기록)을 A4용지에 인쇄해서 보내왔다. 모두 966장이었다. ‘엿 먹으라’는 걸로밖에 읽히지 않았다. 컴퓨터 로그 기록으로는 출퇴근 시간을 파악할 수 없었다. 업무일지는 대부분 가린 채 제출했고, 면담 기록지와 야근식대와 같은 청구내역은 아예 제출하지 않았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회사가 가해자인데, 증거를 모두 가해자가 가지고 있다. ‘순순히’ 줄 리가 없다. 그렇다 해도 회사의 태도는 예상보다 더 괘씸했다. 인터뷰 내내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던 향미 씨 목소리가 화가 난 듯 점점 커졌다. “정말 웃긴 게, (회사가) 출퇴근 시간을 기록할 의무가 없어요. 회사가 당당한 것도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에요. 이 회사가 2016년에 근로감독을 받은 적이 있더라고요. 동생이 떠난 뒤에도 또 똑같은 문제가 있었고요. 세 번이나 고발당했는데 처벌받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노동법은 안 지켜도 되는 거예요.” 향미 씨는 2018년 4월 대책위와 함께 피켓시위를 시작했고, 기자회견을 열어 동생의 억울한 죽음과 과로자살 문제를 알렸다. “제가 정의감에 불타서가 아니라요, 동생이 너무 억울하게 죽었잖아요. (동생이) 왜 죽었는지 꼭 밝혀야 제가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언론에 나오고, 대책위와 매일같이 회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자, 회사는 그제야 동생의 과로죽음을 인정했다. 피켓을 든 지 네 달 만에, 동생이 떠난 지 반년이 지난 2018년 7월에야 회사는 공식사과를 했다. ‘면피용’ 사과조차 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는 걸 알지만, 회사의 공식사과는 별 의미가 없었다. 대표는 ‘재발방지’ 같은 단어를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사과문을 읽었다. 방송에서 보던 모습, 확신에 차서 리더십을 보여주고 싶어하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네 달 동안 피켓시위를 하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막상 대표의 공식사과에도 향미 씨는 무덤덤했다. “그런다고 동생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공식사과가 있은 후 다섯 달이 지난 2018년 12월,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신청을 위한 자료를 유가족이 직접 모아야 했다.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이 산재 피해 증거를 수집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07년에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 때문이다. 산재법에 따르면 증명책임은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있다. 그러나 업무와 관련된 증거자료는 사용자에게 있다. 2013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걸 사용자가 입증하도록 한국의 산재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들을 제출하지 않았고, 향미 씨는 회사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거절당했다. 동생의 유품을 받을 때도 직원들이 아무도 없는 휴일에, 건물 바깥에서 건네받아야 했다. 정보는 차단돼 있었고 접근조차 어려웠다. 증거를 직접 수집해 과로죽음을 입증해야 하는 건 가족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가족들이 속상해할까봐 피해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들, 죽을 만큼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던 일들을 남은 가족들은 들어야 했다. 듣고 싶어도 못 듣는 경우도 많았다. 증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다. 증언 대신 비난이 더 많았다. 다른 과로자살 사건에서는, 입증책임 때문에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입증책임은 “말도 안 되는 잔인한 원칙”이지만 향미 씨는 증거를 모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생의 죽음은 묻힐 것이었다. 그 과정은 “엄청난 2차가해”라고, 향미 씨는 인터뷰 도중 거듭 얘기했다. “산재 신청하려고 하면 ‘돈 때문에 한다’고 (욕해요). 맞아요. 산재는 생존이 걸린 문제거든요. 그런데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명예예요. 지금도 사람들은, 누가 자살했다고 하면 ‘나약해서 죽었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아는데, 가족의 죽음을 모욕적으로 얘기하는 걸 들으면 너무 큰 상처가 돼요. ‘그렇게 될 때까지 가족들은 왜 몰랐냐’는 것도 상처죠. 가족들한테 말 안 하면 모를 수 있어요. 과로자살은 구조적인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예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요.” 향미 씨는 “운이 좋아” 다른 유가족에 비해 덜 어렵게 증거를 모을 수 있다고 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출퇴근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교통카드 내역을 향미 씨 이메일로 보내뒀다. 또 퇴근 후에 집에서 일하느라 동생의 노트북에 업무 관련 기록이 남아 있던 덕에, 산재신청에 필요한 자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퇴사한 동료 서른 명이 증언을 해줬고, 대책위가 크게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도 ‘운이 좋다’는 말을 쓸 수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향미 씨는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었고, 승인도 받을 수 있었다. “어려움을 뚫고” 산재 신청을 해도 승인률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운이 좋았다. 2022년 경찰청 자살 통계를 보면,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사람은 1년에 404명으로 전체 자살사건의 3%다. 그 중에서 재해보상을 신청한 사람은 36%, 신청한 사람 중 산재 승인을 받는 것은 52%뿐이다. 전문가들은 업무상 문제로 자살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경찰청 통계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향미 씨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동생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렇게 은폐되는 과로자살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산재 신청 이후 승인되기까지는 10개월이 걸렸다. 긴 시간이었지만, 끝내 승인됐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과로와 직장 내 괴롭힘의 증거들이 적지 않았고, 회사도 공식사과를 한 뒤였다. 무엇보다 과로자살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었고, 대책위와 연대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동생이 떠난 뒤 산재 신청을 하면서 향미 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도록 일하는지, 일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이하 유가족모임)에 함께하면서, 유가족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가까이서 지켜봤다. 유가족모임은 과로죽음 유가족들이 산재법을 공부하고 심리치료 등을 함께하면서 2017년 만들어졌다. 유가족들의 산재 신청 과정을 지원할 뿐 아니라, 과로죽음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동생이 일했던 2년 반의 시간을 쫓다 보니, 동생을 죽인 건 회사였고 그 뒤에는 법과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과로죽음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들이 바뀌지 않는 한 회사는 바뀔 리가 없고, 이 죽음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향미 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과, 한국, 일본, 대만 세 나라의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만든 KWA(Karoshi Watch in Asia) 네트워크 모임에 참여하면서, ANROEV(아시아산재및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에도 참가해 과로사 문제를 공유하고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는 ‘과로사 방지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1988년 ‘과로사 110번 전국네트워크’가 상담전화 110번을 개통해 유가족 상담을 시작하면서 과로사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이후 30년 가까이 지난 2014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과로사 방지법)이 제정됐다. 법이 생겼다고 일본에서 과로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법률로 정의 내리고 과로사 방지대책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자, 과로죽음이 개인의 문제라는 국민들의 인식도 바뀌어갔다. 한국에는 과로사에 대한 정의가 없고, 따라서 관련 통계도 없다. 일 때문에 죽었다는 걸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입증을 한다 해도 산재 승인을 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들도 그대로였고, 동생의 죽음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 대표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그 덕분에 노동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포괄임금제로 계약하고 임금을 체불하는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게 드러났다. 그래도 처벌받지 않는다. 일하다 죽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만 잠깐 안타까워할 뿐, 사람 죽이는 제도와 구조는 그대로다. “법에 걸려도 처벌받지 않잖아요. 그럼 그걸 누가 지켜요? 기업 입장에서는 (법을 어기는 게) 훨씬 유리한데. 그러니까 노동법은 그냥, 그냥 만들어진 법이지 진짜로 지키라고 만든 법은 아닌 거죠. 몇 년 전부터 과로사 방지법 제정한다고 하는데, 뭐 근로기준법이라도 잘 지키면 좋겠어요. 이거라도 지키면 과로가 왜 생기겠습니까?” 일본의 ‘과로사 110번 전국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시작된 과로사 금지법 제정 운동은, 실제로 그 결실을 맺기까지 30년 가까이 걸렸다. 거기에는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오랜 노력이 있다는 걸, 포기하지 않고 연대했기에 ‘결국’ 제정됐다는 걸 향미 씨는 안다. 향미 씨는 유가족모임과 함께 2021년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를 썼다. 산재 사망이 왜 생겨났는지를 밝히고 유가족을 위해 산재 과정과 필요한 자료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더는 과로죽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유가족들의 바람을 담았다. 해외의 관련 서적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2019년 ANROEV 컨퍼런스에서 만난 대만직업안전보건연대의 황이링 씨에게 <과로지도(過勞之島)>를 선물로 받고, 그 자리에서 이 책을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향미 씨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업무 때문에 종종 번역을 해왔다. 책은 <과로의 섬 – 죽도록 일하는 사회의 위험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2021년 국내에 출간됐다. 향미 씨는 ‘옮긴이 후기’에서 책을 번역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대만의 직장 과로 문제가 한국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두 나라의 과로 문제는 소름 끼칠 만큼 똑같았다. (…) 한국과 꼭 닮은 대만의 과로사 실태를 다룬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한국 사회의 과로사 문제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는 한노보연 ‘업무 관련 정신질환 연구모임’ 회원으로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를 알리기 위해 활동했고, 지금도 유가족모임과 KWA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향미 씨는 동생의 죽음에 대해 표면적으로나마 회사의 사과를 받았고, 그 어렵다는 ‘업무관련 자살’로 산재 승인도 받았다. 어찌 보면 동생의 과로자살은 끝난 사건이고, 향미 씨가 유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향미 씨와 부모님은 괜찮아지지 않았다. 동생의 억울한 죽음, 그 빈자리를 어떻게 해도 메울 수 없다는 공허와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뉴스에서 과로사, 과로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향미 씨는 2018년으로 되돌아갔고, 그 고통이, 그 분노와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져 동생의 죽음을 또 겪는 것만 같았다. 동생의 과로자살이라는 사건이 마무리될 수 있으려면, 다시는 누군가가 일 때문에 죽는 일이 없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사실 향미 씨는 산재와 관련한 자료들을 다시 꺼내보는 것조차 힘들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런 향미 씨가 이렇게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KWA 모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것. “제 동생이 그렇게 죽은 다음에도 똑같은 문제가 매년 반복이 되는 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제 경우만 해결이 된다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에요. 똑같은 사건이 나오면, (동생이 세상을 떠난) 그때 그 시간으로 저도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지, 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저는 보이잖아요. 그게 다시 재생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저도 이걸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저도 그 시간을 상기하기 싫은데, 사회가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는 거잖아요.” 향미 씨도 부모님도, 절대 ‘괜찮아지는 일은 아닌’ 일을 겪었다. 아마도 평생을 괜찮아졌다고, 또 해결됐다고 말할 수 없는 삶을 그냥저냥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다만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그래서 과로자살이라는 소식을 어디에서도 듣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그것이 과로죽음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바라는 가장 최소한의 해결이다. <끝> 취재 정윤영 르포작가 freakss@naver.com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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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에 “벌써 퇴근했냐”… 회사가 동생을 살해했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12화]
한 세계가 사라졌다.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던 막내이자, 고양이 루시와 루니의 다정한 집사. 언니를 잘 따르던 착한 동생. 누구와도 잘 지내던 둥글둥글한 사람. 예쁜 걸 모으고 꾸미는 걸 좋아하던 사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꿈꾸며 모든 순간 성실했고, 무엇이든 열심이던 그런 사람. 민순이라는 귀한 세계가 어느 날 사라졌다. 고작 서른여섯의 나이였다. “내 앞날이 너무 깜깜해서 그냥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민순 씨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민순이라는 세상이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왜 사라져야만 했는지 물음으로써, 그 세계의 무게를 잊지 않음으로써, 사라진 세계는 여기 남아 있다. 장향미(45) 씨는 그날을 기억한다. 2017년 12월의 첫 주말, 이른 아침이었다. 동생은 그날도 야근을 하고 아침에 들어왔다. 야근은 거의 매일 있었고, 밤샘 근무를 하고 아침 일찍 집에 오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생은 꽤 지쳐 보였다. 그런 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떼굴떼굴 구르면서 펑펑”.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향미 씨는 동생을 진정시켜봤지만, 터진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상사 때문에 괴롭다고 동생은 대성통곡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매일 야근을 하는 걸 보고 일이 많은 줄은, 그래서 힘든 줄은 알고 있었다. 향미 씨는 회사라는 데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향미 씨 자신도 유명 게임업체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즈음 그 회사에서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향미 씨와 부모님은 동생에게 퇴사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자주 하고는 했다. 그래도 동생이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착하디 착한 동생이 그렇게 우는 걸 보니 향미 씨는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바로 관할 노동지청에 회사를 신고하고 근로감독을 요청했다. 노동부에서 연락이 온 건 일주일 뒤였다. 그 사이 동생은 과중한 업무와 상사의 비상식적인 업무 질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탈진해가고 있었다. 향미 씨가 받은 답변은, 올해 근로감독 일정은 모두 끝났으니 내년 2월에 다른 신고업체와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근로감독을 요청해도 안 하겠다는데, 그런 노동부에 더 할 말이 없었다. 향미 씨는 몇 개월 전 회사 앞에서 팸플릿을 받은 게 생각났다. 향미 씨 회사의 과로사 문제를 고발했던 시민단체에서 나눠준 홍보물이었다. 내년까지 근로감독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시민단체에 연락을 취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는 동생의 출퇴근 기록과, 같이 고발할 수 있는 동료들을 모아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줬다. 동생은 곤란해했다. 동료를 모으기도 어려울 것 같고, 출퇴근 기록도 없다고 했다. 향미 씨는 그게 좀 이상했다. “출입카드가 있잖아요. 그걸 찍고 들어가는데, 그 기록을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게 돼 있대요. 취업규칙도 없고요.” 회사를 고발하는 일에 나설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동생은 같이 고발할 동료들을 모으는 건 좀 힘들겠다면서도, 자기 혼자서라도 회사를 고발할 거라는 얘기를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동생은 부모님의 걱정에도 회사를 고발하려는 이유를 말했다. “(동생) 자신은 여태껏 그렇게 회사를 다녔지만, 자기 후배들, 지금 입사한 20대 초반의 신입들은 이제 이런 거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신고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어요. 엄마가 훌륭하다, 열심히 해보라고 얘기를 했고요.” 2018년 새해가 밝은 지 사흘째 되는 날.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경찰이 왔다. 집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조사가 끝나면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의 조사라는 게,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가족들과 불화가 있었는지 물었고, 남자친구가 있는지, 금전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물었다. 향미 씨는 경찰에게 동생이 회사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했는데, 경찰은 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정신이 멍했다. 이틀 전 동생과 말다툼을 했는데, 그게 동생과의 마지막이었다. 향미 씨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시민단체 활동가가 달려왔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변호사, 노무사도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라는 이름으로 함께 왔다. 회사 사람들도 빈소를 찾아왔다. 가장 먼저 인사팀에서 왔다. 인사팀 직원들은 일손을 돕겠다며 빈소를 떠나지 않았고, 빈소에서 오고 가는 말들을 주의 깊게 들었다. 회사 대표도 조문을 왔다. 유족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목인사만 하고 바로 떠났다. 동생의 상사였던 본부장과 팀장도 조문을 왔다. 두 사람이 동생을 괴롭힌 상사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인터뷰 도중 향미 씨는 두 사람 얘기를 하면서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팀 사람들 있는 데서 물어봤어요. 일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본부장이, 우리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일을 하지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아니라는 식으로 답을 했어요. 오히려, 제 동생하고 면담을 했는데 집에 일이 있어서 힘들어했던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출퇴근 시간을 기록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인사팀 직원이 대신 대답을 했어요. 우리 회사는 자율적인 업무를 존중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고요.” 향미 씨는 빈소에 온 동료들, 동생과 잘 지내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모두 받아뒀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동료들을 만나고 다녔다. 동생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서른 명 정도 만났고, 대부분 이미 퇴사한 사람들이었다. 동료들은 ‘회사 다니면서 우울감을 느꼈다’고 말했고, ‘아침에 일어날 때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향미 씨는 동생의 죽음이 “동생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과로와 괴롭힘, 압박과 무기력, 우울과 탈진. 동생의 죽음은 문제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과로죽음’이었다. 과로로 인한 죽음에는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과로사뿐 아니라, 과로자살도 포함된다. 동생은 2015년 5월, 한 유명 온라인 교육업체 디자인팀에 입사했다. 전에도 IT업체 디자이너로 일을 해왔던 터라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업계 1위로 창업 6년 만에 매출 4000억을 달성했고, 직원 수가 불과 10명에서 1200명으로 엄청나게 성장하던 곳이었다. 회사를 설명하는 ‘신화와 기적’이라는 수식어 뒤에는 직원들의 “뼈를 갈아 넣는” 희생이 있었고, 그만큼 노동강도가 높기로 악명이 높았다. 동생은 첫 출근을 앞두고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입사 4일째 새벽 4시에 퇴근을 했고, 그때부터 매일 야근이었다. 근로계약서 자체가 야근을 기반으로 작성됐다. 계약 연장근로만 매달 69시간에 야간근로 29시간. 주 5일 근무로 계산하면, 매일 3시간씩 더 일하고 매일 1시간씩 야근을 해야 하는 계약이었다. 실제로는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일했다. 계약서에 적힌 시간을 항상 초과했다. 포괄임금제(근로시간과 상관없이 일정액의 수당이 포함된 월 급여를 지급하는 임금계약)라 시간외근로 수당도 없었다. 힘들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버티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았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된다는 얘기를 꺼낼 수가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만 ‘미친 사람’이 되니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전할 때마다 향미 씨의 입에서는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야근이 엄청 심했어요. 새벽에 들어오고, 아예 밤을 새우고 안 들어온 날도 있었고요. 퇴근해서도 업무 연락이 왔어요. 밤 12시에, 벌써 퇴근했냐고, 아침까지 확인하라고….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 하도 그러니까 ‘(나보고 회사를) 나가라는 건가?’ 그렇게 느낄 만큼 일을 많이 줬던 것 같아요.” 동생의 업무는 웹디자인. 기획이 생기면 디자인이 따라다녔다. 프로젝트가 없어지거나 기획이 바뀔 때마다 디자인도 함께 바뀌었고, 그 기획이라는 것도 수시로 바뀌었다.기획회의 때마다 디자인 시안을 ‘플랜A’부터 ‘플랜D’까지 만들었다. ‘까일(반려당할) 걸’ 알지만 아무렇게나 만들 수는 없었다. 밤을 새워 완성도를 높여 시안을 제출한다고 끝이 아니다. 그 과정은 본부장이나 대표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됐다.동생은 통상적인 디자이너 업무만 한 게 아니었다. 웹기획부터 상품 디자인 프로젝트, 팀관리 업무까지 수행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이 됐다. 업무시간이랄 게 따로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기획에 따라 ‘초치기’로 일이 생겼다 엎어졌고, 일은 ‘컨펌(confirm, 승인)’을 받아야 끝이 났다. ‘자율출퇴근’이라는 말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컨펌을 받지 못하면 퇴근할 수 없다. 상사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결과물은 몇 번이나 까이고, 디자이너는 질책을 받는다. 동생이 ‘이런 거’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던 ‘무한 대기와 컨펌 까이기’는 장시간 노동을 넘어 끝이 없는 무한노동이었다. 일이 아니라 벌을 받는 것 같아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밤새 일하고 무한정 컨펌을 기다리느라, 동생의 시간은 동생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그의 저서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서 말했다.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일상이 자기파괴적으로 변하고, 인간이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라고.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시지에 동생은 “완전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회사 일 말고 뭘 할 수가 없어요. 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친구들도 이해를 잘 못했죠. 점점 고립되는 상황이었고, (일이) 자기 생활을 다 잠식해간다고 했어요. 집에 오면 방에 틀어박혀서 잠만 잤어요. 누구랑 말할 기운도 없어 보였어요.특히 월요일이 오는 걸 되게 불안해했어요. 일요일에는 저녁도 안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잠을 못 잤어요. 입사하고 살이 엄청 많이 빠졌는데, 점심시간에 밥 안 먹고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대요.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아요.” 주말 역시 회사의 것이었다. 온라인 교육업체인 회사는 수강생들의 시험 일정이 있는 주말이면, 수험생에게 홍보물을 나눠주는 응원이벤트에 참여하도록 했다. 말은 ‘자발적’이라지만, 인사평가에 20%나 반영이 되는 ‘업무’였다. 야근하고 새벽에 들어온 날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팀장은 업무와 상관없는 책을 읽어오라고 하고, 채식을 하는 동생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했다. 동생이 상사에게 어떤 말들을 들어왔고 어떤 요구를 받았는지, 괴롭힘은 업무일지에도 잘 드러났다. 업무일지가 아니라 반성문에 가까웠다. “머릿속에 온통 브랜드 생각뿐입니다. 지치지 않고 제대로 된 아웃풋(성과)을 내겠습니다.”"엉망으로 작업을 진행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다시는 이런 결과가 없도록 더욱노력하겠습니다.”“오늘 또 한 번 배우고 부끄러운 하루였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라도 발전된 아웃풋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생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시키는 일을 다 했고, 무슨 일이든 허투루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책임감이 강했고 스스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것도, 또 ‘아픈 사람’인 것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상사의 지시에 동생은 늘 “넵넵. 알겠습니다.”로 답했고, 살인적인 업무량과 업무지시를 가장한 괴롭힘에도 “웃으면서 어떻게든” 일을 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야근을 해도” 일은 줄지 않았다. 쉬고 싶었다. 완치 진단을 받은 우울증이 도졌다. 공황장애까지 나타나 두 번이나 휴직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2017년 9월, 이번에도 휴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퇴사하겠다고 하자, 그제야 한 달간 쉴 수 있게 됐다. “소모품처럼 쓰이는 것” 같다던 동생은 휴직 내내 방에만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쉬는 날이면 여행을 다니고 전시회에 가는 걸 좋아하던 동생이었다. 휴직기간 동안 동생이 회사 때문에 못했던 걸 했으면 했는데, 동생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향미 씨가 집에만 있는 동생을 데리고 ‘호캉스’(호텔+바캉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내는 휴가)를 하루 다녀온 게 전부였다. 동생이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만든 호텔이었고, 동생은 오랜만에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한 달을 쉬고 오자 일은 몇 배로 더 늘었다. 브랜딩 업무에, SNS에 올라가는 카드뉴스만 일주일에 서너 개. 상사는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며 카드뉴스를 매일 바꾸라고 요구했다. 팀에서 하는 업무들을 사실상 동생 혼자 맡아 했고, 몰아치는 업무에 동생은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했다. 동료들은, 동생이 맡은 업무가 적어도 서너 명이 해야 할 분량의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더 심해졌다. 시간이 없어 병원에 가기도 어려웠다. 예약하고도 제때 못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동생은 병원에 가지 못했고, 폭음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동생은 집 앞 편의점에서 몰래 술을 마시고 들어오기도 했다. 술로 괴로움을 잊으려 했다는 걸, 폭음이 우울증의 한 증상이라는 걸, 과로 때문에 우울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향미 씨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고 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알지 못할 일이었다. 술로, 약으로 달래가며 일해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벌을 받는 것 같은 ‘무한노동’은 여전했고, 본부장에게 “이렇게 할 거면 왜 시간을 줘야 하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처음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던 날, 동생은 그게 그렇게 억울했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게 동생 죽음의 ‘방아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던 향미 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본부장이 잠 좀 자라고, 그래야 맑은 정신으로 일하지 않겠냐고 했대요. 거기서 폭발한 거예요. 저는 마음에도 급소가 있는 것 같아요. 급소를 맞았다면 즉사할 수 있다고 봐요. 급소가 아니더라도 상처를 계속 입으면 과다출혈로 죽기도 하잖아요.동생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자살하는 사람들도 죽는 거 두려워한다고. 그런데 그것보다 내일 아침이 오는 게 더 두렵기 때문에 죽는 거라고요. 저는 동생이 정말 죽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상황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동생은 부모님이나 저를 정말 아끼고 사랑했고요,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정말 노력했던 것도 저는 알거든요. 살고 싶은 의지가 더 강한 애였어요.” 동생은 세상을 떠났다. 출퇴근 기록이 찍힌 교통카드 내역을 언니의 이메일로 보내놓고서. 그것은 무엇이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꼭 진실을 밝혀달라는 동생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언니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 다음 이야기 <처벌하지 않는 살인… 이 죽음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으로 이어집니다.취재 정윤영 르포작가 freakss@naver.com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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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 군사주의에 저항하다.
 *이 글은 피스모모의 대안언론 '더슬래시 Theslash.online' 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가 지역마다 잇따르고 있습니다. 2010년 10월 5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로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이 뜨겁게 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짠 듯이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24년 충남과 서울은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되었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다른 조례와 통합하는 보다 손쉬운 방식을 통해 폐지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조례가 지방자치단체 단위로 제정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너무 ‘조직적’입니다. 우기택(2016)은 한국에서 인권이 “과잉 정치화”되었다고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딱 그런 느낌이지 않나요? 학생인권조례가 무엇이길래 전국적으로 제정운동이 불붙었다가 폐지 시도 역시 전국적으로 동시에 시도되는 걸까요?  국가발전을 위해 개인을 소비하지 않는 교육  한국에서 학교 교육은 힘이 셉니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분명 권리이고, 한국의 헌법 제31조 ①항에도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며, 권리로 명시하고 있지만, 우리가 만나는 교육은 모~두다 ‘의무교육’이거든요.의무취학제도에 따라 국가가 배정한 학교에 다니고, 국가/교육청이 발령한 교사에게 교육받을 의무를 가집니다. 요컨대 학교 교육은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 영역으로 많은 부분의 결정권을 국가/공급자가 가지는 반면, 학생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중략)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국민교육헌장 중에서     지금은 역사속으로 잊혀진 <국민교육헌장>은 교육이 얼마나 국가주의적인 지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가 발전을 위해 개인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쓰여져야 한다는 일종의 ‘서약문’입니다. 국민교육헌장을 학생들에게 매일 암송하게 강제했던 역사에서도 이것이 실제로 서약의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에게 소비되는 개인, 소비되는 교육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1978년 6월 27일,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특히 독재체제를 합리화시키고 있는 국가주의적 교육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의 <우리의 교육지표>가 발표되었습니다. 정의롭고 정의로운 사회, 한마디로 인간다운 사회는 아직도 우리 현실에서 한갓 꿈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바로 잡고 그것을 개선할 힘을 기르는 일이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을 교육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역시 이 사회에서는 우리 교육자들의 꿈에 머물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마구 누르고, 자손대대로 물려줄 강산을 돈을 위해 함부로 오염시키는 풍조가 만연한 가운데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존중하는 교육은 나날이 찾아보기 어려워 가고 있다. (중략) 학원의 인간화와 민주화의 첫걸음으로 교육자 자신이 인간적 양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적 정열로써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배워야 한다.- 우리의 교육지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중에서   <우리의 교육지표>에는 지금으로 보면 사회혁신에 참여하는 민주시민교육, 생태교육, 교사와 학생이 함께 배우는 교육공동체 그리고 구성주의적 교육철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 내용이 발표된 후, 서명자 11명은 <우리의 교육지표>가 발표된 그날로 중앙정보부로 연행되고 대표자인 송기숙 전남대교수는 7월 4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긴급조치 9호. 독재에 반하는 집회, 시위, 언론, 출판, 청원, 공연에 대해 탄압하고 영장심사도 없이 구속할 수 있게 한, 이를 위한 병력출동도 가능하게 한 유신헌법의 조치였습니다. 교육을 바꾸려는 시도, 국가에게 통제당하고 소비되지 않겠다는 선언은 독재정권과 중앙정보부, 경찰, 군대의 폭력으로 저지되어 왔습니다.  단 하나의 목표를 거부하는 학생인권조례  세월이 많이 흘러 사회가 민주화되었고, 국가발전을 위해 의무를 다하라는 말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럼 교육은 바뀌었을까요? 글쎄요. 변화한 것이 있지만 여전히 교육은 국가발전의 중요한 영역으로 이야기됩니다. 국가를 먹여살리고 더 많은 경제성장을 위해 모든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또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개인의 삶의 성공에도 중요하기에 또 모든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을 초기,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교문지도’였습니다. 교문 앞에 학생들을 일렬로 세우고 머리길이와 복장을 검사하고 통제하는 것을 학생인권조례가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몸,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신체적 자유를 침해하고 통제하는 군사주의적 문화를 학교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에 학생인권조례는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지금도 머리를 기르고 옷을 다양하게 입으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논리가 강력합니다. 세계아동권리선언과 학생인권조례에서 금지하고 있는 ‘과도한 학습’, 동의하지 않은 강제 보충수업 등에 대해서도, 학생이 싫어해도 강제로 시키는 것이 학생을 위하는 일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만연합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되고 이틀 뒤에 서울의 한 중학교가 두발단속을 공문으로 계획까지 만들어 실시했던 사례도 있었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당사자의 의사도, 권리도, 방법의 정당성도 제대로 검토되지 않습니다.  제1조(목적)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근거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제3조(학생인권의 보장 원칙) ① 이 조례에서 규정하는 학생인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며, 교육과 학예를 비롯한 모든 학교생활에서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② 학생의 인권은 이 조례에 열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시되어서는 아니 된다. - 서울학생인권조례(폐지조례공포 2024.7.4., 효력정지 결정 2024쿠1003 2024.7.23.) 놀랍게도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에게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한 최초의 법입니다. 교육이 목표만을 향해 질주하는 폭력적인 과정이 아니며, 학생이 학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인해 제한받고 침해받은 권리들이 정당한 것인지 질문하고 검토하는 체계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굳이 학생인권조례로 다시 명시할 필요가 없어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는 것에 왜 그렇게 오래걸렸을까요?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내가 참여할 활동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왜 학생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을까요? 어린이와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정치영역은 왜 이토록이나 빈약할까요? 왜 여전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제1과제는 배움인걸까요?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배우는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도, 결정 권한이 제약되는 사람에게도 인권과 행복, 자유와 참여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지시와 통제,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한 침묵과 희생을 강요하는 교육 체제를 거부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정하고 혐오와 적대를 재생산하는 학교 교육의 군사주의에 저항해왔습니다.  폐지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지키고 학생인권법을 제정하는 움직임에 함께 해주세요, 부디.    참고문헌 우기택(2016). 지방자치단체 인권 관련 정책의 과제. 지방자치법연구, 49(16).              /진냥인권적인 학교를 원하는 교사이자, 누구나 폭력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꿈을 꾸는 활동가이다. 경기 학생인권조례 제정 직후 청소년인권운동을 접했는데,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에는 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궁금해서 학생인권조례를 추진 중인 지역을 마구 돌아다니며 토론회에 참가하고 자료를 모아 읽기 시작했다. 이후에 대구와 경남에서의 학생인권조례 운동에 참여하였다. 모두 아직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이다. 올해 <학교를 바꾼 인권 선언 – 학생인권조례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공저해서 출판했고 학생인권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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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미스코리아의 자질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10월 첫째 주by 🍊산디 1. 미스코리아의 자질 처음 이미지를 보았을 때 허위정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로 인한 피해가 명백히 존재하고, 형사 수사와 소송이 진행 중이며, 이를 예방하기 위한 입법까지 이루어지는 와중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참담합니다. 미스코리아는 도대체 어떤 여성을 선발하는 자리입니까? 성범죄 목적으로 활용되는 기술마저도 밝게 웃으며 괜찮다고 이야기해주는 아름다움을 기대했던 건가요? 주최측은 사과와 함께 “인공지능(AI) 기술이 영화, 광고, 교육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세태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질문을 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런 취지의 질문이었다면 🦜AI 윤리 레터가 매 주 쏟아내는 질문들을 활용하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 더 읽어보기- 산업화하는 딥페이크 성착취물(2024-08-26)- 딥페이크 성착취물 논의, 어디로 흘러가는가(2024-09-02)- 사진 내리기 말고 할 수 있는 일: AI 기업에 요구하기(2024-09-04)- 정말로 대안이 없을까?(2024-09-11) 2. 떠나는 리더십, ‘비영리단체’ 오픈AI는 없다 오픈AI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미라 무라티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회사를 떠납니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무라티는 샘 올트먼 축출 당시 임시 CEO를 맡으며 그의 복귀를 지지한 것으로 유명하죠. 동영상 생성 모델 ‘소라’의 학습 데이터를 묻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며 바이럴을 탔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탈 소식에 회사 직원들은 ‘WTF(이게 뭐야!)’ 이모지를 공유했다고 하네요. 미라 무라티의 이탈은 오픈AI가 수익 사업체로 개편하고 샘 올트먼에게 7%의 지분 제공하기 위한 투자금 유치 마무리 단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7%의 지분의 경제적 가치는 105억 달러로 추정됩니다. 오픈AI는 창립과 함께 비영리단체로서의 기업 구조를 자신들의 신뢰가능성을 입증하는 증거로 언급해 왔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투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2019년에는 영리부문을 만들더니, 이제는 투자자의 이익 상한선을 ‘소급적으로’ 폐지하면서 비영리 사업에 들어가던 돈까지 영리적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입니다. 이로써 재정적 이익보다 인류의 이익을 앞세우겠다는 창립 당시 비전은 사라진 듯 하네요. 3. AI 디지털교과서, 왜 비판을 막나요? 내년부터 초등 3~4학년, 중1, 고1 영어, 수학, 정보 과목에 도입된다는 AI 디지털교과서. 그 중 정보, 수학 과목 AI디지털교과서 발행사의 다수가 검정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검정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는 5개월 여 간 현장 적합성 검토를 거치게 됩니다. 언론 보도는 수십억을 투자하였으나 검정에 탈락하면서 내년 심사를 기약해야 하는 기업들의 처지에 집중합니다. 기업들이 교육부를 믿고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리게 되었다는 것이죠. 소수의 기업이 먼저 교과서 사업에 진출하는 데 대한 독과점 우려도 함께 제시합니다. 기업의 투자와 무관하게 교과서의 품질은 타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AI 디지털교과서의 필요성과 품질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요? 서울시교육청은 전교조의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중단 촉구’ 주장이 중앙정부 확인 결과 허위임이 확인되었다며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책 비판과 ‘허위’의 경계를 구분지을 수 있을까요. 자녀가 초중고교생인 학부모를 대상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해 물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1/3은 AI 디지털교과서를 ‘들어본적도 없다’고 답했습니다.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비판적 토론은 더욱 장려되어야 합니다. 진위를 밝히는 것은 토론이지 입막음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형사 소송은 반론을 막는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일까요. 4. AI 오용과 개발자의 책임 이전 🦜레터에서 소개드렸던 것처럼, 지난 8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AI 규제 법안인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최첨단 인공지능 모델을 위한 혁신법(SB 1047)'을 통과시켰습니다. 주지사 승인 단계만을 남겨둔 상태입니다. 개발자에게는 AI 모델 전 생애주기동안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주의(reasonable care)’를 담은 프로토콜을 서면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주 법무장관이 그 원본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할 의무가 부여됩니다. 이외에도 필요 시 모델을 중단할 수 있는 ‘킬 스위치’ 기능 개발, 모델의 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조치 의무 등이 ‘개발자’에게 부과됩니다. 해당 법안은 개발자를 수범자로 합니다. '개발자(developer)'란 특정 모델의 초기 훈련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충분한 양의 컴퓨팅 파워와 비용을 사용하여 모델을 훈련하거나, 기존 모델 또는 파생 모델을 파인튜닝(fine-tuning)하는 데 있어 법이 정한 양보다 더 많은 컴퓨팅 파워와 비용을 사용한 자를 뜻합니다. 개발자가 개발한 모델뿐만 아니라 이를 토대로 파생된 모델 또한 개발자의 책임 범위에 포함됩니다. 이는 AI 모델을 복사하여, 파인튜닝이 아닌, 사후적인 수정 훈련을 가한 파생 모델(derivative)로 인해 위험이 발생했어도 최초 AI 모델의 개발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입니다. AI가 매개된 위험 발생 시 책임소재를 묻기 어려운 ‘책임 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다른 한편 이러한 입법 움직임이 연구자,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AI 모델 개발을 저해할 것이라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법이 정한 기준 즉, 1억 달러 이상의 연산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개발자는 오픈AI와 같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 같네요. 🦜더 읽어보기- 초지능 AI 규제 법안과 AI 하이프의 상관관계 (2024-09-02)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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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 OT 후기
들어가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의 한 골목, 우리는 또 다시 많은 이웃을 잃었다. 그런데 이 참사엔 다양한 이름들이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이태원참사, 10.29 참사, 핼러윈 참사, 이태원 압사 사고 등. 이름을 붙인 이들마다의 참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참사를 상상하는 방식이 다르다. 10.29 이태원참사 2주기를 맞아, 나는 어떻게 참사를 상상하는지 떠올려보았다. 20대 초반이었던 나에게 그날은, 놀아야 하는 날이었다. 마스크와 인원수 제한, 운영시간 축소 등 다양한 방역 지침으로 내 3년의 대학 생활은 날아갔다. 흔히들 간다던 MT도, 친구들과 떠나는 우정 여행도, 미루고 또 미루고 또 미뤘다. 그리고 드디어 방역 지침 대부분이 권고 사항으로 축소되었다. 때마침 중간고사도 3일 전인 26일에 끝났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친구들이랑 놀아야 했다. 오랜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이미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피드엔 이태원 구석구석에서 행복해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한가득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날 이태원에 갈 준비를 마쳤다. “야 오늘 이태원 사람 X많아 ㅋㅋㅋㅋ” 먼저 가 있던 친구들에게 메시지가 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곳도 마땅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방향을 틀어 근처 용산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김없이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계속해서 넘긴다. 그리고 곧 수많은 메시지가 쏟아졌다. 주로 나의 위치를 묻는 내용들이었다. 모두가 자는 불 꺼진 우리 집에 나는 거실에 혼자 나와 티비를 본다. 실시간으로 뉴스가 보도된다.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면서 나도 내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이태원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건다. 나는 그날 이후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을 쉽게 가지 못한다. 출퇴근 시간엔 아빠에게 부탁해 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고, 여력이 없을 땐 택시로 움직였다. 피치 못 하게 대중교통을 타야 한다면 시간대를 피해 미리 가거나 늦게 갔다. 옆 사람과의 간격이 점차 가까워지면 극도로 불안해졌다.  이상했다. 나는 그 장소에 있지도 않았는데.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을까? 나와 같이 아픈 마음을 갖고 있을까? 아파하는 게 맞는 걸까? 비판이 두려워 앞장서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2주기가 가까워지니 맞닥뜨릴 용기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캠페인즈에서 진행하는 “이태원 참사,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요?”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 시작은 9월 11일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 함께 글을 쓴 사람들과 만나 소개와 소감을 나누고 ‘참사를 상상하는 방법에 관하여’ 강연을 들었다. 최성용 연구자의 강연 : 참사를 상상하는 방법에 관하여 참사를 ‘상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의 참사는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참사를 있는 그대로의 명확한 사실이나 사고로 파악한다. 이에 최성용 연구자는, 사람들이 참사를 상상하고 해석하는 것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사회가 참사를 상상하는 방식, 특히 이태원 참사를 상상하는 방식에 관해 설명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함께 나누었다. [위로부터 상상하기] 책임의 주체 혹은 책임의 목적 및 결과는 무엇인가? 국가적 재난이 생겼을 때, 우리는 늘 책임의 소재를 찾는다. 이태원 참사에도 같은 방식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의 사후 대처 방식에 대해 비판했다. 2022년 말에 진행되었던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사후 대처를 기준으로 장관의 부족함을 지적했다. 책임의 주체를 좇아 사후 대처의 과정과 결과만을 따졌다. 하지만 사전 대비가 아닌 사후 대처에만 집중한다면, 구조적인 문제를 놓치기 쉽다. 구조적인 문제는 사후 대처가 아닌, 사전 예방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찾을 가능성이 높다. 이 상황에서 책임의 주체를 찾는 것이 이후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예방하는 것보다 중요할까? 이 외에 다른 질문도 던질 수 있다. 법이 없는 경우, 다시 말해 불법이 아닌 경우에서는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고위 장관 개인과 관료 시스템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같은가? 국가와 경찰과 지자체의 책임은 같은가? 진상규명의 목적은 무엇인가? 법적 처벌을 위한 진상 규명을 해야 하는가? 정치적인, 혹은 사회적인 차원의 진상 규명은 무엇이 다를까? 국회 내에서 혹은 제도권 내에서 진상 규명이 철저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보상금의 관한 쟁점으로 참사를 축소한다면 어떤 문제가 있는가? 10월 31일 행정안전부는 보상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참사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보상금의 관점으로 축소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게 위로금 2,000만 원, 장례비 최대 1,5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구체적인 액수를 내걸었다. 이러한 축소의 결과는 부정적인 여론으로 즉각 나타났다. 이태원 참사에 세금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당시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했고, 용산 구청장 또한 축제가 아닌 ‘현상’으로 참사를 한정 지었다. 정부가 참사를 보상 액수로 제한하고 축소한 결과,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한 번 더 고통에 휩싸이고 고립되었다. 일방적으로 희생자들의 이름을 내걸었을 때, 무엇이 휘발되는가? 시민언론 민들레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을 게시했다. 희생자들을 그늘 속에 묻히게 하지 않겠다며 온전한 추모를 진행하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다른 인적 사항과 특징들 없이, 이름 자체만으로 진정한 애도를 할 수 있을까? 어떤 사연과 맥락을 가진 개별의 사람들인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이것을 통해 추모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참사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이태원 참사를 부르는 명칭은 지금까지도 제각각이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태원 ‘사고’라고 칭한다. 어떤 기준으로 참사와 사고를 구분할 수 있을까? 피해자가 적다면 사고인가? 참사가 되지 못한 사고들이 오히려 사각지대로 내던져지는 것이 아닐까? 한국심리학회 트라우마 학회 연구소에서는 이를 두고, 이태원을 제외하고 ‘10.29 참사’를 제안했다. 장소를 언급하는 순간, 그곳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다는 의미였다.  [아래로부터 상상하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유언비어와 사진들을 옮긴 것에 대해 비난할 수 있을까? 2차적 증언자로서의 언론들의 역할은 없었을까? 이태원 참사 직후, 갖가지 유언비어들과 이미지들이 여럿 생성되었다. 화재가 났다, 마약이 성행했다는 등. 하지만 이것이 악의를 담았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시 현장에서는 상황을 설명하려는 담론들이 유언비어의 형태로 퍼졌다. 목격자들이 상상 밖의 일을 마주했을 때, 오히려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해 사진을 나르거나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퍼뜨릴 수 있다. 문제는 그 이미지와 유언비어들을 보고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데 활용한 다른 시민들이나 언론들이다.  녹사평 시민분향소에 있던 포스트잇들의 언어는 어디로 갔을까? 참사 이후 녹사평역에 시민분향소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2월 5일, 서울 시청 앞에 시민분향소가 설치되었다. 각기 다른 장소에 붙인 포스트잇들의 메시지는 꽤나 다르다는 걸 볼 수 있다. 예컨대 녹사평역에서는 희생자들과 자신의 유대관계를 언급하며 자신의 슬픔과 애도를 표현하는 메시지들이 많았다. 반면 서울 시청의 분향소에는 주로 특별법 제정이나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의 내용들이 대다수였다. 결국 참사에 대한 애도로부터 정치적 언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제한 채로 정치적 언어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정치적 언어가 되지 못한 채 골목에 붙어있던 수많은 포스트잇에 담긴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또 다른 피해자는 누구일까? 오후 10시, 참사 발생 골목 및 그 근처에서 사용된 핸드폰 내역을 보면, 약 1만 4천 명 정도가 골목 주위에 밀집되어 있었다. 이태원 전체로 보았을 때엔 약 3만 5천 명 정도가 밀집했다. 이 숫자는 내국인만 조사했기에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더 큰 숫자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실제 공적으로 출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피해자는 극소수다. 유가족가족주의적 애도는 한국 사회 운동의 전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슬픔을 드러내는 것을 억압하고 슬픔을 축소했던 우리의 현대사들을 볼 수 있다. 최근까지도 국가는 유가족들의 상실과 슬픔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는 유가족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참사가 일어나자마자 팽목항으로 달려가, 당시에 무수히 생성되던 오보들을 적극적으로 정정했다. 그들은 유가족인 동시에 자신의 가족들이 배 안에 갇혀있는 걸 지켜봐야 했던 목격자이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는 실제 축제에 함께 참여하여 가족들을 잃기도 했다. 공적 출연의 동기가 부재한 생존자좁은 의미에서 159명의 희생자가 있고, 196명의 부상자가 있다. 이 부상자를 생존자라고 보았을 때, 트라우마가 없고 공적으로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와 관련된 활동의 동기를 느끼지 못하는 생존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피해자의 한 모습이다. 부상자/목격자/구조자 등, 결국 참사에 연루된 수많은 피해자가 어디에 위치해 있었냐에 따라, 그들은 각각 다르게 감각한다. 죄책감이나 트라우마 등으로 그들을 대변할 수 없다. 또한 외국인/이주민/성소수자들 등은 공적 출연을 꺼리기도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우리는 들을 수 없다. 이태원 지역의 식당 종업원이태원 지역의 상인들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다. 참사 당일, 사실상 고용주가 아니라 대부분 종업원이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참사 이후 많은 종업원이 일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이 또한 피해자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이태원에서 놀다가 죽었다’ 이태원의 장소성은? 많은 이들이 참사가 아닌 ‘사고’로 명명한다. 놀다가 죽었다, 는 단순한 언어로 표현했다. 이는 풍기문란통제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풍기문란통제는 과거 일본에서서 사회통제의 한 방식이었다. 조선을 식민지화하며 이 통제방식이 그대로 조선에 작동하게 된다. 국가는 그들의 기준으로 ‘문란함’을 규정했고, 제도 혹은 장치로서 사회를 통제했다. 하지만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했기에 문란함의 기준은 모호했다. 이에 따라 법을 집행하는 사람 혹은 행정기구가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은 해방 이후에 기지촌이 되는 이태원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후 매년 언론들은 이태원을 풍기문란한 곳으로 재현했고, 이태원은 ‘위험한 곳’으로 자리 잡았다. 나가며 10.29 이태원참사의 2주기가 가까워지고 있다. 1주기엔 어떻게 보냈는지 다시금 떠올렸다.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이태원에 방문하기도 두려웠다. 활동가들이 올린 글들을 보며 ‘내가 언제쯤 이전처럼 이태원에 갈 수 있을까’ 떠올렸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났다. 이제 나는 차츰 마주할 용기가 생겼나 보다. 이태원참사와 관련된 메시지들을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바라본다.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10.29 이태원참사의 현장에 있지 않은 나는, 거짓말처럼 현장의 두려움을 아직까지도 느낀다. 마치 내가 생생히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느낀다. 혹시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어딜가든 두리번거리며 쉽게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눈물이 고이고 함께하지 못함에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이번 강연을 들으며 ‘나도 피해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각자의 위치에서 동일하지 않지만 개별적인 두려움으로 피해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부상자로서, 목격자로서, 유가족으로서, 이웃으로서, 구조자로서, 나와 같은 또 다른 목격자로서.  정부는 참사에 대한 애도를 축소하였고,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 한편 각각의 두려움을 겪은 사람들의 개별적인 경험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목소리를 왜곡하거나 무시하진 않았을까? 혹은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언어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다가오는 2주기까지 광의적인 피해자들의 감정과 목소리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10.29 이태원참사에 대해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고 나누며 온 마음으로 추모하는 2주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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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프랑스 총선과 선거동맹, 어떤 결과를 낳았나
프랑스에서 선거동맹은 선거마다 일상적으로 진행된다. 선거동맹의 스펙트럼도 좌파 동맹에서부터 중도, 우파 동맹까지 다양하다. 결선투표제로 진행되는 프랑스 선거에서 기본적으로 각 정당은 1차 투표를 앞두고 선거동맹을 결성한 뒤, 1차 투표에서 각자 경쟁하고 결선 투표인 2차 투표에서 후보 단일화, 동맹 후보 지지 등의 동맹이 발휘된다. 특히 연립정부를 구성해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총선의 경우 매번 선거동맹이 결성된다.  2022년 재선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도 선거동맹의 도움을 받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4월 대선 2차 결선투표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 후보 마린 르펜(Marine Le Pen)을 제치고 당선됐다. 극우가 득세하는 유럽 여러 국가와 같이 프랑스조차 국가원수가 극우주의자가 될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프랑스 좌파와 중도 진영은 극우주의자 대신 중도를 자처한 보수 전통주의자 마크롱을 선택했다. 프랑스의 '공화전선 또는 공화주의 연대'(Front Républicain, 극우 세력의 집권 저지를 위해 우파와 좌파가 이념적 차이를 넘어 전략적 선거동맹을 맺는 경우)가 발휘된 것이다. 대선 1차 투표에서 탈락한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장뤼크 멜랑숑(Jean-Luc Mélenchon)과 녹색당(EÉLV) 야닉 자도(Yannick Jadot)를 비롯한 좌파, 중도 후보들은 2차 투표에서 르펜 당선을 막기 위해 마크롱을 지지해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그 결과 빈 용지를 낸 기권표가 200만 표, 무효표가 80만 표 이상 나왔지만, 마크롱은 500만 표차 이상으로 르펜을 이겼다. 대통령 재선 당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6월 의회를 해산했다. 유럽의회 선거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였다. 임기 7년 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 어느 때보다 저조했고, 극우는 점점 더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자신은 원내대표로 남고 28세 젊은 남성 조르당 바르델라(Jordan Bardella)를 당대표로 세운 르펜의 국민연합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31.1%를 득표하며 프랑스에 할당된 유럽의회 의석 총 81석 중 30석을 차지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정당인 르네상스(Renaissance)는 13석(14.6%)으로 국민연합의 반도 못 미치는 의석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의회를 해산하고 3주 후 조기 총선을 통해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총선을 치른 마크롱이 받은 1차 선거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지난 6월 30일, 국민의회 총 577석을 두고 열린 총선 1차 투표에서 국민연합 후보 37명이 50% 이상 득표율을 확보해 2차 투표에 가지 않고 최종 당선됐다. 녹색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 공산당, 사회당 등의 좌파 진보 정당들이 맺은 선거동맹 신인민전선(NFP)은 1차 투표에서 당선 확정된 후보가 32명이었다. 마크롱이 주도한 선거동맹인 앙상블(Ensemble)은 단 2명에 불과했다. 2차 투표가 진행되는 501개 지역구 중 국민연합 후보는 444명에 달했다. 신인민전선 후보 414명보다 많고, 앙상블 후보 321명보다 100명 이상 많은 수였다. 1차 투표가 끝나자 국민연합은 230~280석을 예상했다. 제1야당이 되어 최연소 극우 총리를 배출할 것을 꿈꾸고 있었다. 르펜은 "의회 과반을 넘겨 바르델라가 총리가 될 수 있도록 국민연합에 표를 몰아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프랑스 공화전선은 다시 한번 발휘됐다. 1차 투표에서 12.5% 이상을 득표해 2차 투표에 진출한 신인민전선 후보와 중도 진영 후보 218명 이상이 국민연합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선거구에서 2차 투표 후보직을 사퇴하고 앙상블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의 앙상블은 2차 투표에서 극적으로 148석을 이겨 총 150석을 차지했다. 2차 투표 결과 국민연합이 얻은 총 의석은 125석이었다. 총선의 승리는 178석을 차지한 신인민전선이었다. 녹색당은 신인민전선 선거동맹을 통해 28명으로 역대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신인민전선을 주도한 굴복하지않은프랑스의 멜랑숑 대표는 의회 내 좌파 진영을 끌어모아 193석으로 제1야당을 꾸렸다. 여소야대, 동거정부가 또다시 탄생할 수 있게 됐다. 신인민전선은 7월 중순, 37세 경제학자이자 파리 이달고 시장 행정부의 재무국장을 지낸 루시 카스테트(Lucie Castets)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며칠 간의 힘든 협상 끝에 굴복하지않은프랑스, 사회당, 녹색당, 공산당 대표들이 카스테트를 총리 후보로 정하는 데 사인했다. 녹색당 대표이자 신인민전선의 대표 중 한 사람인 마린 톤들리에(Marine Tondelier)는 "루시 카스테트는 최고의 총리 후보이며, 플랜 B는 없다"고 말했다.카스테트의 진보적인 재정 정책과 사회개혁안은 좌파 정당 당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부유세를 인상하고, 누진세 구간 확대뿐만 공공서비스 민영화 반대, 간호사와 교사 고용 확대 등 공공 부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개선,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과 같은 생태정책도 포함했다. 한 보도에 따르면, 마크롱은 "신인민전선의 총리가 집권하면, 그들은 내가 했던 연금 개혁을 폐지하고, 월 순 최저임금을 현행 1400유로에서 1600유로로 인상할 것이며, 결국 금융 시장은 패닉에 빠지고 프랑스는 급락할 것이다"고 했다.지난 8월 말 마크롱 대통령은 제도적 안정에 위협이 된다며 제1야당이 제안한 총리 후보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그리고 9월 초, 총선 두 달 만에 공화당 소속 73세 보수 정치인 미셸 바르니에(Michel Barnier)를 총리로 임명했다. 바르니에는 평소에도 프랑스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증세를 하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해 왔다. 동성혼을 반대하고 임신중지권도 반대한 인물이다.한편, 총리 임명을 강행한 마크롱과 르펜 사이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바르니에 총리 임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르펜은 "나는 마크롱의 인사 관리자가 아니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우리는 국정 운영의 훼방꾼이 되고 싶지 않다"라며 신인민전선과는 다르게 즉각적인 내각 불신임에 대해서는 반대했고, "바르니에 총리는 불법 이민 문제와 관련해 우리 당과 같은 입장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암묵적인 동의를 표했다. 최근 몇 년간 바르니에는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과 이민자의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총리로 임명된 지 2주 후, 바르니에 총리는 39명의 장·차관 리스트를 마크롱에게 제출했다. 7명의 마크롱주의자(macronist)와 3명의 공화당 출신이 포함된 주요 보수 인사들로 구성된 리스트였다. 지난 9월 21일 바르니에는 정부 구성을 발표하며 새 내각을 출범했다. 내년 예산안 작업을 담당할 경제재정부산업부 장관으로 르네상스 소속의 33세 앙투안 아르망(Antoine Armand)이 임명됐다. 그는 2017년 마크롱의 대선 캠프에서 일하다가 2022년 총선에서 초선으로 당선된 후 올해 총선에서 재선된 바 있다.신인민전선은 총리 후보가 거부된 지난 8월 말부터 매주 주말 반 마크롱 시위를 주도하며, 대통령 탄핵 카드를 내놓고 있다. 바르니에 내각이 발표되자 굴복하지않는프랑스의 멜랑숑 대표는 "합법적이지도, 미래도 없는 정부를 가능한 빨리 정리하자"고 호소했다. 녹색당 톤들리에 대표는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식민주의가 의심되는 자가 내무부 장관이 되었다. 바다도, 숲도, 집도 얘기하지 않는 생태를 모르는 자가 환경부 장관이 됐다"며 새 내각을 비판했다.톤들리에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비극이다. 이 정부와 시간 낭비를 멈추고 다음 정부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총리와 내각 불신임, 대통령 탄핵 등 제1여당인 신인민전선이 추진하려는 것도 국민연합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뜨거웠던 여름이 끝났다. 2012년 단 2석이었던 국민연합이 12년 후 126석이 되었다는 사실(*EXD 소속 에디 카스테르만(Eddy Casterman)이 당선 이후 RN으로 당을 옮겨 RN 의석이 총 125석 에서 1석 늘어남)은 여름밤의 악몽이길 바라나 말 그대로 현실이다. "국민연합을 공화전선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아르망 신임 경제재정부 장관의 상식적인 말에 모욕을 느낀다고 논평을 내는 국민연합, 그런 국민연합의 눈치를 보며 장관을 나무라고 르펜에 전화를 걸어 안심을 시키는 바르니에 총리, 바르니에와 비례대표제를 두고 딜을 하고 르펜. 극우와 동거하는 프랑스 정치가 나아갈 길 중 어느 하나 쉬운 길이 없다. 거기다 기후위기로 가을이 없어지고 어둡고 축축하고 긴 유럽의 겨울이 이어질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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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 착한 낙인, 나쁜 낙인, 피해자를 괴롭히는 낙인
1. 착한 낙인, 나쁜 낙인, 피해자를 괴롭히는 낙인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를 읽고  스티그마 효과에 대해 알고 있는가. 과거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 행위, 모습으로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그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속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낙인이라는 키워드는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과 같은 미디어매체에서 거론되지는 않아도 하나의 클리셰처럼 사용되는 요소다. 한 아이의 행실과 평판에 대해 나쁜 소문이 돌고, 그 아이가 사회구성원으로 함께하지 못하고 겉돌게 되다가, 실제로는 나쁜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탈선을 하게 되는 이야기, 혹은 탈선을 하려는 순간에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금 사회구성원이 되는 이야기.  그렇다면 나쁜 낙인만 존재하는가. 착한 낙인은 존재하지 않는가. 아니, 착한 낙인이라고 표현하니까 말이 조금 이상해져서 단어를 풀어보겠다. 집단을 옹호하기 위해 일괄적으로 묶은 좋은 말이 오히려 거북한 시선을 만들거나, 집단 내부에서도 그 표현을 거부하는 경우가 생기지는 않는가.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에 ‘A와 같이 노는 학생들은 전부 착해.’라는 말을 듣는 걸 정말 싫어했다. 나는 지나가는 학생들을 속여보자고 복도 중앙에 돈이랑 유사하게 생긴 상품권을 뿌려놓고 구석에 숨어서 구경을 하던 아이들이었고 학교 뒤뜰에 있는 벌집에 신발주머니를 던지는 학생이었는데. 학원을 몰래 빠져나와 PC방에 가던 아이였고, 새벽에 기숙사 담벼락을 타고 나와 당구 치러 가던 학생이었는데.  나는 그 말을 싫어했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착한 무리의 착한 학생’이라는 꼬리표는 끊임없이 따라왔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소개할 때 이렇게 이야기한다. 개처럼 살고 개처럼 행동한다고, 입이 꽤 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 말조심하는 편이라고. 나는 내게 찍힌 좋은(사실은 좋아 보이는) 낙인을 부정하기 위해 오히려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과연 모두가 그럴 수 있을까.  이태원에는 뿌리 깊은 낙인이 박혀있다. 문란한 이들이 모이는 장소, 질 나쁜 외국인들이나 모이는 장소, 마약의 근원지, 한국 에이즈 발원지. 사실 이는 이태원이라는 지역의 문화 특성을 나쁘게 재해석한 이야기다. 이태원은 서울시 관광특구 1호였다. 다양한 외국인들이 모일 수 있도록 국가단위로 유도를 했던 관광지였고, 실제로 이를 기반으로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발전했다. 다양한 이들이 모이는 만큼 밤문화도 발전했고 클럽, 술, 음식 문화와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같이 섞이면서 다문화 사회, 성소수자 문화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에 대한 국가 단위, 언론 단위의 낙인이었다. 2010년대 후반 이후로 heterosexism(이성애적 차별주의)이 심화되는데 국가, 언론이 박차를 가했다는 이야기다. 한국 에이즈 문제의 중심지는 이태원이며 성소수자들이 이태원에 모이게 되면서 사회에 문제가 될법한 물건들을 가져오고 범죄를 조장한다. 개신교 기반의 단체는 이런 불분명한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기사를 꾸준히 올리며 지역을 압박했고, 결과적으로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태원에 가서 논다는 사실 자체를 타인에게 말하기 껄끄러운 사회가 되었다.  내가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태원을 향한 사회의 시선과 그들의 문화에 대해 지리멸렬하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도 이와 접점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의 장애, 차별부터 성소수자, 사회적 약자, 피해자들의 이야기라는 진주를 ‘낙인’이라는 실로 꿰어내고 공감이 아닌 대답을 찾는 응답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공감이 아닌 응답으로 대화를 이어간다는 방식은 근래에 보이는 고통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는 책 치고는 특별한 전개 방식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책에서는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대전제를 세우며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을 공감한다는 말은 이제 인터넷 냉소주의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표현이 되었다. 당사자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 고통을 안다고 감히 네가 고통을 아는 체하냐. 이제는 모두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학자로서 이성으로 접근한다. 고통 받는 이들과 고통 주는 사회 문화, 그리고 미래를 향한 고민.  세월호 사건 당시 자신을 ‘인터넷 냉소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던진 돌이 무엇인지 기억하는가? ‘그 학생들은 놀러가다 사고가 나서 죽은 건데 어째서 국가가 나서서 그들을 지원해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형태를 한 돌이었다.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한 것이다. 당시 이런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도 큰 지탄을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인륜적으로 아이들에게 던질 말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로부터 수년의 시간이 지났고 피해자의 집단이 바뀌었다. 이태원에서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번에는 많은 이들이, 과거 학생들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지탄하던 사람들까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냉소주의가 2010년도 중반에 비해 크게 심화된 점도 있었고 사회 분위기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서는 과거부터 뿌리 깊게 박힌 낙인이 있었다.  이태원에 놀러간 이들은 문란한 이들, 인터넷문화를 대표하는 베타메일과는 다른 알파메일들,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성소수자들과 다문화 가정들, 모든 혐오가 과거부터 쌓여온 낙인의 한 획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돌은 많았다. 그들을 향한 추모탑이 세워질 때 옆에 혐오로 돌탑을 세워도 될 만큼 많았다. 그리고 이런 혐오를 막기 위해 무분별하게 던져진 긍정의 키워드는 그들의 투석 행위를 가속시켰다. ‘그들은 문란하지 않고 문화를 즐기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었다.’ 이 착한 낙인을 찍으려는 시도는 사건 당시 구급차 인근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던 이들의 영상과 더불어 큰 파급력을 일으켰고 인터넷 냉소주의자들은 피해자를, 더 나아가 잠재적 피해자를 모두 비웃었다. 놀러가서 죽은 게 뭐가 자랑이냐고, 이제는 놀러가서 죽어놓고, 사건이 난 이후 다른 곳에서 춤추다가 집에 가놓고서는 보상금까지 타려고 하냐고.  국가, 언론이 찍은 나쁜 낙인과 피해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고통에 잘못 공감한 –혹은 척한- 이들의 착한 낙인 덕분에 피해자들은 입을 열기를 포기했다. 수년간 반복해서 찍어온 이 깊은 낙인을 피해자 한 명의 입으로는 지워낼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이 낙인을 지울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이 낙인을 계속 찍고 있을까. 선한 낙인과 나쁜 낙인은 구별할 수 있는 것일까. 잠재적 피해자, 2차, 3차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사회로 나올 수 있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확실한 것은 지금은 저자의 방식이 가장 정답에 가깝다는 점이다. 고통을 향한 공감이 아닌 응답으로.  올해 초, 오랜만에 중학교 시절 후배를 만났다. 성년이 된 이후로 쭉 군 생활을 했다보니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전역하면서 다시 경기도로 오게 되었으니 예전처럼 자주 보고 지내자는 의미에서의 연락이었다. 오랜만에 본 후배는 예전보다 조금 어두운 얼굴이었다. 조금의 고민이 있고, 조금의 압박감이 있고, 조금의 불안함이 있는 그런 얼굴. 그 후로 우리는 두어 번 더 커피를 마시며 회포를 풀었고, 후배는 긴 고민 끝에 내게 커밍아웃했다. 그때 나는 우리 사이에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는 듯 무덤덤하게 반응했고(그렇게 했다고 믿고 싶다), 이 몇 번 내가 먼저 연락했으니 다음에는 언제든 네 쪽에서 먼저 연락하라는 말을 꺼냈다. 상관없으니 다음에 또 놀자고.  이후로 후배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누나와 다시 연락하고 친밀한 관계가 되면서 그를 향한 집안의 분위기를 어렴풋하게 느끼고는 있다. 나와 연락을 한 이후에 집을 나가 자취하고 있다던가, 집안에서 붕 떠버린 위치에 있다던가.  나는 아직도 그가 내게 연락을 먼저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저녁 커피나 한잔 하자고 부르기를 바라고 있다. 안타깝지만 내가 그를 기다려도 사회는 그를 기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그들을 향한 시선도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으니까.  참사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어떤 사회가 만들어져야 할까. 그들이 말할 수 있는 장소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일단 내 후배를 위한 시선이 둥글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 후배를 위한 시선도 둥글어지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시선도 둥글어지고, 축제 문화에 대한 시선도 둥글어지고,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둥글어지고….  첫 책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라는 책을 가져와봤다. 다음 서평으로 계획 중인 도서는 <<인싸를 죽여라>>다. 2010년도 중반 온라인 극우주의와 혐오, 조롱, 인터넷 냉소주의에 대한 이야기. 최대한 좌, 우 정치적인 이야기는 배제하고 돌을 던지는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와 사람들에 대해 풀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사진은 참사 당시 SNS 상에서 가장 많이 보였던 해밀턴 호텔 옆 골목을 찍어봤다. 당시 이 자리에 있었던, 혹은 이 자리의 바깥 거리에 있었던 피해자들 중 목소리를 내고 싶음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지금 이 황량한 골목은 얼마나 변해있을까. 사진을 찍으며 상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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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열풍…무기로 평화를 살 수 있다는 당신에게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만약 당신이 얻는 이익이 알고보니 누군가를 해쳐서 얻는 것이라면? 내 이익을 위해 보이지 않는 이들이 고통 받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대체로 다수의 사람들은 꺼림칙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K-방산’ 한국산 무기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수출 계약이 확대되고 있다. 전장과 학살의 장소에서 쓰일지 모르는 무기들이 거래되고, 분쟁지역 현장에서 버젓이 한글이 써져있는 무기들이 발견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한국을 세계 4대 방산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올해 수출액 200억 달러를 달성하겠다며 대대적인 방위산업 진흥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신성장·원천기술'로 평가받는 방위산업의 또다른 이름은 누군가의 죽음과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죽음의 시장이다.   무기산업의 호황 그 이면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전쟁으로 위기에 처해있지만 ‘K-방산’만큼은 순항 중이다. 윤석열 정부는 방위산업을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하여 경남과 대전 등에 ‘방산 혁신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권역별·거점국 진출 전략을 세분화하는 등 수출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무기 산업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전쟁이 발발하고 세계가 더 위험해질수록 무기 산업은 호황을 맞아왔다. 각국은 폭력을 끝내기 위한 노력이 아닌 군사비를 높이고 더 많은 무기를 소유하는 일에 몰두하는 중이다. 2021년 73억 달러(약 9조 739억 원)였던 국내 무기 수출액은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173억 달러(약 23조 86억 원)로 상승했다. 지난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제2회 방산수출전략회의>에서 방위산업을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우방국과 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산업”이라고 말했다. 정말 무기로 평화를 살 수 있을까?  문제는 한국이 무기를 수출한 국가 중 다수(74%)가 분쟁 중이거나 독재 및 인권 탄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예멘 내전 곳곳에서 한국산 무기가 발견되었으며, 미얀마 민주화 시위, 스리랑카 반정부 시위, 최근 방글라데시 반정부 시위까지 정부가 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국내산 최루탄이 쓰였다.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약 5년 반 동안 한국이 수출한 최루탄은 473만여 발이었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향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이 1년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2023년 10월 이후 최소 128만 달러(약 16억 6천만 원)의 무기(총기, 탄약, 부품 등)를 수출한 것이 알려졌다. 세계에서 열 번째로 무기를 많이 파는 한국 정부가 전쟁과 분쟁의 공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최소한 인권 침해가 우려되는 국가와 분쟁 중인 국가에는 무기 수출을 금지하자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관세청은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의 무기류 수출입 통계를 비공개 처리했다. 지난 8월 유엔 무역통계에서 대한민국 무기류(총·포탄 등) 정보 공개 역시 제한되었다. 전쟁없는세상이 UN Comtrade에 질의한 결과 해당 통계는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HS코드93(무기)에서 HS코드99(비할당)로 변경되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관세청은 무기 수출 통계를 공개해 온 것이 ‘행정상 착오’였고 비공개 처리는 ‘국익 침해 우려’에 따른 적법한 조치라고 둘러댔지만, 과도한 감시 견제일 뿐이다. 현재 무기 수출입 통계는 열람이 제한되어 있다.  강한 국군, 국민과 함께?  <사진=대한민국 정부>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 또한 고조되는 상황이다. 지난 5월부터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지금 위기의 원인이 된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자제 요청 없이 9.19 군사합의 전면 무력화, 군사분계선 인근에서의 군사훈련 실시, 대북 확성기 방송 전면 재개 등의 조치만 취하고 있다. 대화채널은 중단되고, 강대강 대치만 이어지며 접경지역 인근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부터 남한 민간단체가 살포한 대북 전단은 총 49회에 달하며, 9월 북한이 날린 오물 풍선도 10회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제한이나 규제는 이야기하지 않은 채 “선을 넘었다고 판단될 경우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책만 고수하고 있다. 위기를 관리하고 무력 충돌을 예방하기에도 부족한 이때, 제76회 국군의 날 시가행진<강한 국군, 국민과 함께>가 개최된다. 오는 10월 1일, 숭례문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진행되는 이 행진에는 탱크와 장갑차, 각종 미사일과 군사 장비들이 등장하여 대규모 병력과 함께 행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방부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안보 축제의 장’도 마련할 계획이라 밝히며 국군의 날을 임시공휴일로 추진했다. 강한 국군, 강력한 군사력이 시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 북한을 향한 억제력 과시가 목적인 시가행진을 위해 도심에 무기가 대거 등장하고 경찰 및 소방 인력이 다수 배치된다는 사실은 달갑지 않다. 남북 관계에서 시급한 건 억제가 아닌 대화채널 복원이기 때문이다. 무기 장사 중단하라! STOP KADEX   <사진=KADEX2024> 시가행진 다음 날인 10월 2일부터 6일까지 5일간, 충남 계룡대에서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 전시회(KADEX)가 열린다. 육군협회가 주최하는 이 전시회에는 경남 창원, 대전 등을 비롯한 국내 지자체와, 국내 외 방산업체 300곳 이상이 참여할 예정이다. 참가 업체 중 세계 1위 무기 회사인 록히드 마틴은 다목적 전투기 F-35 등 주요 무기체계를 이스라엘에 수출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사프란은 이스라엘군에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사용하는 장비 등을 공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쟁지역에서 무기가 발견된 국내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위아, LIG넥스원 등을 비롯해 우크라이나에 탄약/포탄 우회 지원 의혹을 받았던 풍산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회에 세계 곳곳의 기반 시설을 파괴하고 생명을 앗아갔을 무기들이 상품처럼 전시될 예정이다.     무기 박람회에서는 실제로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개 방산 및 군 관계자들이 모이는 교류의 장이 된다. 이 비윤리적인 시장에 시민의 소중한 세금이 쓰이고 있는 점, 매해 방위산업전시회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점이 문제다. 2년에 한 번 개최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전시회(KADEX)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이순신방위산업전(YIDEX) △국제치안산업대전(KPEX) 등이 열릴 예정이다. 행사 개최 지역도 경기, 충남, 경남, 부산 등 다양하다. 더 많은 방위산업체가 박람회에 참가하여 무기 거래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결과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힘의 논리는 긴장과 갈등을 야기시킬 뿐이다. 특히 매년 증가하는 연합군사훈련 등 전쟁 연습, 무력 과시는 한반도 일대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전쟁 위기를 가중한다.  만약 무기가 거래되지 않는 세상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전쟁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평화는 강한 무기와 군사력으로 살 수 없고, 무기거래가 되려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반복시킨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평화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군비를 축소하고 대화와 협력과 같은 평화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덱스저항행동은 지난 2013년부터 무기 거래 이슈를 기후위기 등 다양한 의제와 연결하는 활동을 해왔으며, 9월 말 무기박람회저항행동으로 출범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기나 에어쇼가 아닙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활동한 데에 이어 올해도 무기박람회 저항행동을 이어간다. 무기 산업의 비윤리성 비판하고, K-방산의 책임성에 대해 반문하며,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무기박람회 폐지를 촉구할 계획이다. 곧 개최될 대한민국 국제방위산업전시회(KADEX) 대응을 시작으로 무기 거래 중단, 무기박람회 폐지를 위한 활동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저항행동에 함께하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분쟁, 집단학살에 가슴 아파하고 뭐라도 하고자 고민하는 이들을 기다린다. 무기박람회가 사라진 사회를 상상하며 무기 거래의 비윤리성 규탄에 목소리 높일 때 비로소 전쟁과 폭력이 사라진, 시민이 안전한 세상에 가까워질 것이다. 무기 거래가 이루어지는 죽음의 시장 KADEX를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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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홍빈 구조비만… 외교부 “몽블랑 조난, 소송 안해” [대한민국 '생존비' 청구소]
한국인 등반가 두 명이 죽었다. 높이 4800m를 넘는 알프스산맥의 최고봉, 프랑스 몽블랑을 등반하다 조난당했다. 지난 10일의 일이다. 프랑스 샤모니 산악구조대(PGHM)는 구조 헬기를 띄워 이들 시신을 수습했다. 이틀 전(8일)엔 한국인 두 명으로 구성된 다른 등반팀을 헬기에 태워 구조하기도 했다. 이 사고를 보면, 떠오르는 소송이 있다. ‘김홍빈 원정대’의 구조비용 책임을 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원정대에 제기한 소송. 고(故) 김홍빈 대장은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으로 유명하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 2021년 7월 19일,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하던 중 실종됐다. 하지만 약 10개월 뒤인 2022년 5월 31일, 대한민국 정부는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대원 3명, 촬영감독 2명 총 6명(광주광역시산악연맹 포함)을 상대로 약 6800만 원의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걸었다. 최초의 기록을 만들고 하산하던 도중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비용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김홍빈 대장을 살리지도 못한 실패한 구조작전 비용은, 생사의 고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원정대원들에게 고스란히 지워졌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불과 21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1심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했다. 하지만 정부는 1심 법원의 판결대로 약 3600만 원을 돌려받는 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구조비용 약 6800만 원을 전부 받아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7월 다시 항소했다. 최근 2심도 ‘김홍빈 원정대’의 완패로 끝났다. 지난 24일 2심 법원은 김홍빈 대장을 구조하는 데 든 비용 전체(약 6800만 원)를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가 갚아야 한다고 봤다.(관련기사 : <김홍빈 구조비 소송 2심 완패… “7천만원 전액 갚아라”>) 그렇다면 이번 ‘몽블랑 조난 사고’에도 정부의 소송은 예고된 일인 걸까. 김홍빈 구조비용 청구 소송처럼. 기자는 지난 24일 외교부에 질의했다. 몽블랑 조난 사고에 대해서도 구조비용 청구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주프랑스대사관이 지난 27일 답변을 보내왔다. “모든 비용은 주재국 정부(프랑스)의 부담으로 구조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외교부는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 없습니다.” 몽블랑 조난 사고에 대해서는 소송 계획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사실 이러한 외교부의 대응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와 달리, 개인에게 구조비용 책임을 지우지 않으니까. 하지만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구조비 청구 소송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외교부가 직접 증명한 꼴이 아닌가. 왜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에는 그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었을까. 기자가 만났던 재외국민 보호 분야의 전문가도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구조헬기 띄운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니까, 한국 정부는 (김홍빈 원정대에) 구상권 청구를 하고… 매우 지혜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 가장 훌륭한 모습은 외교력으로 해결해내는 것이죠. 휴머니티를 서로 공감하는 두 나라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문현철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김홍빈 대장이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지 3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구조비 책임을 원정대에게 돌리려는 정부의 소송은 지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 소송의 끝은 언제가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김홍빈 대장에게 훈장을 주고 현충원에 그의 위패를 봉안한 대한민국. 그리고 김홍빈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들어간 비용 수천만 원을 내놓으라며 소송을 건 대한민국. 두 얼굴의 대한민국은 모순의 가면 뒤에 숨어 있다. 개인이 성취한 명예는 나눠 갖고, 비용의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하는 모순 말이다. 몽블랑 사고에서는 발휘될 수 있었던 지혜로운 외교적 해결이, 왜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에는 이뤄지지 못했을까. “매우 지혜롭지 못한” 소송을 여기서 멈추는 것으로, 대한민국은 그 의문에 대답해야 한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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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계절의 실종, 미래를 보다
계절의 실종, 미래를 보다 (2024-09-30) 김백산 | 기후소송 원고 2022년 8월 서울 강남역 일대 침수 당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더는 차로 갈 수 없다고 해서 같이 탔던 승객들과 내려서 걸어가고 있다. 사진 촬영 직후에 배수구에 빠져서 팔과 손을 크게 다쳤다. 필자 제공 2년 전 여름 서울에 하루 만에 400㎜ 가까이 폭우가 내렸을 때 강남역 일대는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 부근을 지나다 도로 침수를 막기 위해 열어둔 배수구 구멍에 빠졌다. 몸에 상처가 많이 났고, 휴대폰도 망가졌다. 폭우에 뚜껑이 열린 맨홀 때문에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은 분도 계셨다. 기후위기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재난으로 닥칠 수 있고 정말 위험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기후변화로 수십년 내에 전세계의 식량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 남짓이고 사료용 곡물을 포함한 곡물 자급률은 20% 이하로,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권이다. 한국은 밀, 옥수수, 콩으로 만든 가공식품 소비가 급증하면서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 됐다. 더군다나 육류 소비가 늘어나 사료용 곡물 수입도 확대되고 있다. 조천호 박사는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며칠 전 식당에 갔더니 뜨거워진 바닷물 때문에 ‘가을 전어’를 들여놓을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커피 원두의 재배 환경이 점점 악화하여 커피 가격이 오르고 있고, 심지어 2080년에는 원두 자체가 멸종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 원두를 개발하고 있는데, 미래의 커피에는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번 추석에 배추 한포기에 2만원, 시금치 한단에 만원에 파는 곳도 있었다. 광고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미래일까? 기후재난과 식량 안보 위기 등 기후위기와 우리 청년세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 지금 겪고 있는 기후위기는 이미 수십년 동안 내뿜은 온실가스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성장하면서 알게 모르게 기후변화에 기여했다. 편하자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텀블러를 외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개인이 아무리 탄소 저감을 위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거대 기업이나 국가 단위의 탄소배출을 상쇄할 만큼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에서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0년 이후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탄소배출 저감 정책이 미비하다는 것을 최고 사법기관 중 하나인 헌법재판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헌재 결정이 내려졌다고 기후위기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정부의 탄소 저감 정책이 미비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니 국회는 더욱 강력한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해야 하고,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도 개선해야 한다.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었습니다.” 위헌소송 청구인인 한제아님은 헌법재판소 공개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추석 폭염에 모두 놀라고 있지만 나중에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아열대기후 속 한국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계절의 실종은 잦은 재난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삶이 훨씬 더 가혹해질 수 있다. 오염을 제거하는 데는 비용이 따른다. 바다에는 인류가 버린 쓰레기와 미세플라스틱이 가득하고, 우리가 먹는 모든 해산물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있다. 탄소배출도 마찬가지다. 탄소배출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을 넘어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당장에 즉각적인 성과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어렵다. 이 보장되지 않는 노력을 오랜 기간 지속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에 나오듯이 “현재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불충분하면 그만큼 미래의 부담이 가중된다. 이것은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의 중요한 특성이다.” 과거 무분별하게 배출된 온실가스로 현재 이미 심각한 기후변화를 겪고 있는 것에 대하여, 청년으로서 미래를 바라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하고 싶다. 기후대응을 위한 법과 정책의 개선을 위하여 나도 이번 기후소송에 참여했다. 그러나 부족함을 느끼며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크게는 제도 개선에서, 작게는 일상생활의 실천까지.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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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 독점 반대, 공동체 회복 찬성
대가 없이 주어진 대기를 파괴한 인류 대기는 인류 모두의 공공재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할 때부터 조건 없이 주어졌다. 이 대기는 인류 생존에 필수 자원이다. 비단 인류만이 아니라 지구 상의 모든 동∙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다. 그 차원에서 대기 문제는 지구 상 모든 생물의 공통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인간을 제외한 동물과 식물은 잘못이 없다. 그들은 시스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존재들이지, 인간처럼 시스템을 변형시키고 망가트리는 존재가 아니다. 인류는 농경지 개간을 시작으로 점차 지구의 지형을 변형시켰고, 더 많은 생산과 소비라는 이념을 더해 지구 착취를 가속화했다.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는 상쇄분 이상으로 배출됐고, 계속 대기 속에 남아 지구 온난화를 일으켰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산화탄소는 배출되고 있으며, 내가 글을 쓰는 지금도, 이 글이 올라가는 플랫폼도 모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이 글을 클릭해서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건, 우리 모두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기후위기 등 환경 문제를 공동체 문제라고 하는 이유다. 모두가 파괴했으니,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커먼즈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로 해보려고 한다. 커먼즈에 대한 두 가지 개인적 정의 커먼즈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국내에서 커먼즈는 다야한 형태로 번역된다. ‘공유, 공유지, 공동자원’ 등등등 다양하다. 모든 번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으니, ‘커먼즈'라고 쓰겠다. 대략적인 의미는 인류가 공통으로 소유하거나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두 가지로 정의한다. 첫째, 인류에게 대가 없이 주어진 것. 예를 들면 환경, 자연, 자원, 토지, 대기, 물 등이다.  둘째 인류가 함께 만들어 낸 것. 예를 들면 디지털 플랫폼, 지식 등이다. 인류에게 조건없이 주어진 자연과 환경이 커먼즈라는 것에 대해서는 반론이 크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인류가 함께 만들어 낸 것이 커먼즈라는 것과 그 예시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은 더욱 그렇다.  디지털 플랫폼의 예는 메타, 유튜브, 구글, 네이버 등이다. 이들이 커먼즈라니. 나는 그냥 썼을 뿐인데. 의아할 것이다. 이들이 커먼즈인 이유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데이터를 생성했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들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플랫폼 확장에는 데이터가 필수다. 어떤 플랫폼이든 이용자가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이용자가 데이터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는 이용자가 플랫폼을 접속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게시물을 올리는 등 모든 행위를 할 때 만들어진다. 이용자가 곧 데이터 생산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규모 플랫폼의 경우 데이터 생산 직군이 따로 없다. 물론 소규모 플랫폼의 경우 직원들이 직접 이용자가 되어 데이터를 생성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형 디지털 플랫폼은 데이터 생산직군이 없다. 소비자가 다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플랫폼은 플랫폼과 이용자가 함께 만든 것이다. ‘인류가 함께 만들어 낸 것' 이라는 관점에서 디지털 플랫폼이 커먼즈인 이유다. 커먼즈를 독점하는 거대 기업 자원과 이익은 내것이지만, 문제는 모두의 것이다 문제는 거대 플랫폼 소유 기업이 이런 인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단 플랫폼만이 아니라, 천연자원, 토지, 농지를 독점하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 대부분이 그렇다. 플랫폼의 데이터도, 본인들이 자원을 채취하는 땅과 숲, 바다도 모두 본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정 기업만 자원을 채굴하고, 데이터나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그렇다. 이런 말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피해를 외부화하기 때문이다. 농지를 끊임없이 태우고 개간하며 발생한 이산화탄소, 그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는 그 지역에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문제가 된다.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빨대로 음료수를 마시듯 제한된 통로만 배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뿜어진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로 흩어지고 대기로 올라가 기후변화를 강화한다.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가짜뉴스, 딥페이크, 정보유출 등 문제는 그 플랫폼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이 피해는 벌금을 냈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벌금이 대가라고 할 수도 없다. 벌금 냈다고 개별 피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는 전형적인 피해의 외부화다. 문제를 외부화하는 한, 독점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인류 출현부터 주어진 환경은 인류 모두의 것이고, 인류가 함께 만들어 낸 것 역시 인류 모두의 것이다. 즉, 인류 공동체의 것이지, 특정 집단의 것이 아니다. 후자의 경우 최소 그 플랫폼을 이용하고, 데이터를 생성한 사람들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부 다국적 기업은 그것이 특정한 집단이나 소유주의 것인것 마냥 말하며 ‘독점'하고 있다. 만약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고, 모든 이익과 피해를 고스란히 가져간다면 납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함께 만들어 낸 것(혹은 모두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것)을 이용해 이익은 사유화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공동체에게 전가하고 있다. 독점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다. 또다른 이유, 공동체를 해치기 때문 커먼즈의 독점이 정당화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공동체를 해치기 때문이다. 일부 거대 다국적 기업이 자원을 통제하는 한, 그것을 이용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소수 사람들의 방향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 정책에 변화에 따라 플랫폼 이용자의 사용자 경험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독점하는 한 사람들은 이끌려 갈 수밖에 없다. 독점이 강화되면, 이익은 사유화되기 마련이며, 이익은 분배는 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적게 분배된 이익을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나눠가져야 한다. 1이라는 이익을 ‘0.1, 0.01, 0.0001, 0.000001’의 형태로 쪼개고 쪼개서 나눠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배고픔이 더 많은 음식을 찾듯, 이렇게 적은 분배는 남보다 내가 더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정당화한다. 함께 살자가 아니라, 내가 먼저 살고보자가 되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 지는 건 당연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공동체는 쪼개지고 파편화된다. 이렇게 파편화 된 상황에서 기후위기 같은 공동체의 문제가 눈에 들어올리 없다. 공동체가 함께 움직일리도 없다. 당장 내 눈 앞의 문제가 큰데, 그 너머의 문제가 보일리 없다. 공동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정부의 태도다. 정부가 독점을 막고, 사회에 공동체의 중요성과 함께 해결하자는 메시지와 시그널을 계속 보내야 한다. 정부가 사회에 어떤 시그널을 보내고, 그 시그널에 맞는 행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정서도 분명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이 아니라, 협렵하고, 함께하는 정책을 만들고 시행해야 한다. 남을 위하는 노동을 하는 돌봉 노동 종사자에게 더 큰 보상을 주고, 자연을 가꾸고, 환경을 보호하는 녹색 일자리를 만들고 보상하고, 더 나아가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소중한 것임을 알려줘야 한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공동체가 아닌 독점과 경쟁을 부추기는 기업에게는 더 큰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이런 모습으로 정부가 공동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물론 이에 대해 개인들도 정부에 공동체 가치 확산에 대한 요구를 해야 하며, 그 개개인 자체도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공감해야 할 것이다. 내가 공감하고 인식하지 않는데, 공동체에 대해 말할 수 있을리가 없다. 독점에 반대하고, 공동체에 찬성해야 한다 그레타 툰베리는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서 언제 어디서나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대중교통 안에서, 그 모든 곳에서 시끄럽게 떠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자칫 너무나도 당연해서 그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개개인이 함께 모여 떠들어 대야 할 이슈 중 하나가 ‘독점' 이라고 생각한다. 자원의 독점, 플랫폼의 독점, 지식 재산권의 독점 등 다양한 형태의 독점에 대해 반대하고, 그 문제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문제임을 말하고, 그 문제와 방안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해야 한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떠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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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 경연에 등장한 비건식🥗 근데 이제 사시미를 곁들인…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3 공기가 긴 여름 내내 머금던 물기를 털어냈는지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습니다. 눈에 띄게 쾌청해진 하늘에 바뀐 계절을 실감하다가도 다시 일상을 지낼 때는 그 흐름을 매 순간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달라진 바람과 온도에 둘러싸여 살지만, 오히려 늘 함께하기에 변화를 금방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는 듯해요. 우리 몸을 감싸는 옷차림, 낮과 밤의 길이처럼 일상을 구성하는 꽤 큰 요소가 휙휙 바뀌었는데도요. 이번 기사들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본인과 먼 이야기라고 여겼을 주제도 사실은 모두가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느끼며 읽게 되는 기사들입니다. 첫 번째 기사에서는 상속세 문제를 다룹니다. 일부만 해당하는 주제 같지만, 사실 사회 불평등 구조를 모양 짓는다는 데에서 모두가 연결된 문제죠. 두 번째 기사인 자영업 리포트에서는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중 23.5%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이 처한 문제상황을 살필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비건 지향인이 쓴 <흑백요리사> 리뷰인데요. 비건 요리를 향한 시선을, 더 나아가서는 비건과 연결된 여러 사안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여름이 가긴 가는 거냐며 해가 갈수록 심하게 불평해 대는데, 결국 가을이 오긴 왔습니다.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거나 해결책이 요원해 보이는 문제도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긴 할 텐데요. 기사 속 주제가 나중에 어떤 모습일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상상해 보며 기사를 읽어볼까요? 이거야말로 꺼진 뉴스에 불씨를 다시 지피는 방법이니까요.☺️ 1. 사건과 구조: 물려받을 재산, 있습니까? 다가온 ‘대상속의 시대’ "정액으로 정해져 있는 공제액 일부를 상향 조정하는 것은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 가능한 일이다. (중략) 문제는 이를 위한 명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상속세는 중산층이 내면 부당한 세금’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는다는 것이다." ✍🏻 김동인 기자, <시사IN> ⓒ시사IN 조남진 상속세를 다루는 기사는 차고 넘칩니다. 대부분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와 비교하고, 상속세 인하가 필요한 이유를 설득하죠. 인하론의 대표적인 근거로는 아파트값 인상으로 상속세 부과 대상이 대폭 늘었다는 점이 제시됩니다. 겨우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이 ‘부자들의 전유물인 상속세’를 내는 건 이상하다는 거죠. 정치권도 이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는데요. 예컨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상속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세금이 중산층을 어렵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기사는 보편적인 문법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는 기사겠죠. 이번에 소개하는 <시사IN> 기사가 그렇습니다. 김동인 기자는 묻습니다. 정말로 현재 상속세 부과 대상들을 중산층이라고 볼 수 있는가? 사실 ‘서울 아파트’ 값으로 여겨지는 ‘10억 원’ 이상 순자산 가구는 전체 가구의 10.3% 수준입니다. 정치권이 말하는 중산층은, 실제로는 중산층이 아닌 상류층에 가까운 집단인 거죠. 더 나아가 기사는 양극화의 관점에서 상속세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상속받는 이들과 상속받을 게 없는 이들 사이에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의 ‘중산층세’ 프레임부터 양극화 문제까지. 기사의 홍수 속에서 ‘한 끗 다른 관점’을 찾아 헤매는 독자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2. 연재·기획: "오늘 맥주 한병 팔았다"…서울대생 아지트 '녹두호프'의 몰락 [창간기획, 자영업 리포트] "그가 폐업도 하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폐업은 공짜가 아니다. “건물주에게 폐업 얘기를 꺼냈더니 가게를 원상 복구하고 나가라더군. 주변에 물어보니 최소한 800만원은 나갈 거래. 그 돈이 어디 있어?”" ✍🏻 박진석, 조현숙, 하준호, 전민구, 김현동 기자, <중앙일보> ⓒ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성공하면 대박, 망하면 쪽박인 자영업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서민 갑부에 나오는 자영업자 성공 신화를 자주 보았기 때문일까요? 자영업자의 실패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 조용한 몰락을 중앙일보 창간기획 <2024 자영업 리포트>가 주목합니다. 기사는 자영업자 51명을 찾아가 각자가 처한 어려움을 먼저 듣습니다. 하루 매출이 맥주 한 병에 불과한 가게, 배달 플랫폼 수수료에 분노하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과잉 경쟁에 밀려난 원조 스터디 카페의 이야기에 자영업자의 현실이 낱낱이 담겨있습니다. 자영업자는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최저임금이나 수수료 상한제 같은 큰 이슈부터 야간 돌봄 확대, 주차시설 설치 같은 생활 밀착형 요구까지 다양합니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주점 휘가로에서 일하는 김태수(62) 씨는 정부의 국군의 날(10월 1일) 임시공휴일 지정에 불만을 토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휴일이 길어지면 밖으로 나가지만 절대 집 주변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자영업자만 죽어나는 선심성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죠. 단순히 기금 규모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25조 원 소상공인 종합대책’은 복잡한 현실을 해결하긴 역부족입니다. 고된 하루, 사람들은 타인의 노동으로 치유받아 다시 일어설 힘을 찾습니다. 직접 요리를 할 힘조차 없을 때, 돈을 내고 먹는 따뜻한 한 끼는 큰 위안이 됩니다.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자영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소득의 추락, 과잉 경쟁과 과잉 노동, 원가 급등과 부채 상승이 자영업자를 옥죄고 있죠. 정치권의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에 사회가 함께 공감하는 일이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요? 후속 보도까지 예정된 기획 첫 기사는 아래 링크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3. 오피니언: '흑백요리사'에 나온 혁명적 메뉴, 재료 알면 더 놀랄걸요 "대체육이나 비건 사시미와 같은 요리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고기에 길들여진 입맛을 거부하고 동물권, 환경 등을 이유로 채식을 지향하려는 이들에게는 '가짜 고기'는 간절할 것이다. 이렇게라도 동물을 덜 죽일 수 있다면 이야말로 밥상 혁명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비건 요리에 가짜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부당하다. 가짜가 아니라 진짜다." ✍🏻 이현우,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갈무리 “나야, 들기름”.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를 아시나요? 시청하지 않더라도 SNS 피드에 뜨는 영상으로나마 프로그램을 접한 분들이 많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흑백요리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답게 화려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광활한 세트장과 식기구가 잘 갖춰진 조리대, 그리고 화려한 등장 효과에 놀라는 참가자 모습을 자주 비춥니다. <흑백요리사>가 대형 스케일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연출 방법은 동물을 전시하는 것입니다. 거대 수조를 심사위원 뒤로 옮겨 와 경연 주제를 발표하고, 수많은 동물을 앞에 나열해 놓고서 출연진들이 발 빠르게 그를 가져가 조리하도록 구성해 긴박함을 연출합니다. 제작진에게는 동물이 회차의 주제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소재가, 참가자에게는 요리의 재료이자 다음 경연 진출을 결정짓는 무기가 되는 것이죠. 이런 장면을 보면, 정말 많은 동물이 매 순간 살상된다는 사실이 온 살갗으로 느껴집니다. 시청자들에게는 이런 장면들이 어떻게 다가올까요? 조리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저 요리가 어떤 맛이 날지 궁금하다, 더 나아가서는 직접 먹어봐야겠다는 결심까지. 동물이 ‘음식’으로서 식생활의 기반이라는 의식이 더욱 견고해지지는 않을까요? ‘육식문화‘가 크게 기여하고 있는 식량부족과 기후위기는 인지하기 어려워지고요. 이런 <흑백요리사>에서 비건 음식이 등장했습니다. 프로그램에는 비건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남정석 셰프가 출연하고, ‘셀럽의 셰프’라는 닉네임을 가진 요리사는 채소로 ‘비건 사시미’를 만듭니다. 다른 요리사들은 비건 사시미를 맛보고 싶다며 큰 관심을 보입니다. 시청자 반응도 비슷합니다. 비건 사시미를 궁금해하고, 시도해 보고 싶어 하는 평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없이도 재미를 이끌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이 흥미가 앞서 언급한 동물권과는 약간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관심은 동물과의 유사성, 즉, ‘특정한 맛과 식감의 재현 가능성’에 쏠려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예를 들어, 비건 사시미를 맛봤을 때 사람들이 비트로 참치를 얼마나 훌륭히 ‘흉내’ 냈을지를 살핀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기사에서는 음식에 담긴 과정이 다르다면, 그 자체만으로 특정 요리의 모방이 아닌 독립적인 요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순서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동물 소비가 없었다면 우리는 채소를 셀 수 없이 많은 형태로 재편집해 다양한 맛과 식감을 이미 즐기고 있었을 수도 있죠. 또한 가끔은 모순적인 방법으로라도 우리가 믿는 선과 공존을 실현할 수도 있는 법이고요. (실은 저는 이걸 모순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라도’ 실천하려는 행위로 바라보긴 합니다.) 독자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독자님의 확장된 감상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기사를 실어 보냅니다.    뉴스 보러 가기🔥 에디터가 남긴 편지 1.  안녕하세요, 독자님. 레터를 쓸 때 제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건 독자님들 인데요. 이번 호를 쓰는 동안에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레터를 읽고 있는 당신은 왜 폴라리스를, 그리고 언론과 기사를 저버리지 않을까.” 사실 기사를 꾸준히 읽는다는 건 꽤 지난한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언론에서 ‘좋은 기사’를 찾고 읽길 멈추지 않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2.   사실 저는 ‘절식’을 선언한 적이 있어요. 음식을 끊은 건 아니고, 기사를 잠시 끊었어요. 기자를 꿈 꾸는 사람이 기사를 안 읽는다니! 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때는 지면을 가득 채운 비극을 감당하는 게 버거웠던 것 같아요. 예컨대 상쾌하게 추석 명절을 보낸 후 신문을 들추면 ‘추석 일가족 참변’ 같은 헤드라인이 보이잖아요. 산재, 딥페이크, 이하전쟁, 선감학원… 매일 매일 슬픈 일이 벌어지는데, 세상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죠. ‘여야가 정쟁에 몰두하느라 개정안 입법이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또 누군가가 범죄 피해를 당했다.’ 이런 레퍼토리의 기사가 익숙해져 버린 시대니까요.  3.  물론 이제는 ‘절식’하지 않습니다. 대신 폴라리스 독자님들과 함께 읽을 기사를 찾아 헤매요. 비극을 외면하진 않겠다고 생각할 때, 한국 언론에 문제점이 차고 넘치는 줄 알면서도 냉소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 저는 최승자 시를 떠올려요. <20년 후에, 지芝에게>에서 시인은 어린아이인 지芝에게 말합니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화자는 자신이 몰락하는 21세기의 어느 날을 예감하면서도 20년 뒤 성인이 될 지芝의 빛나는 시작을 빌어주죠.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하고요.  최승자 시를 잘 알진 못하지만 <20년 후에, 지芝에게>가 최승자 시 중 무척 예외적인 시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극단의 자기부정’, ‘절망적 호소’ 같은 구절로 수식되는 시인이잖아요. 당장 <20년 후에, 지에게>에서 몇 장을 넘기면 이런 문장이 발견되죠.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단지 최승자의 시집에 비극이 가득하다는 이유로 - 그리고 그것이 세상의 진실이라는 이유로 - 저는 멋대로 그녀의 시집을 기사와 동일시 해버리곤 합니다. 그러고선 공포스러운 세상에서도 읽고 쓰길 멈추지 못하는 마음 가장자리에, 어른이 된 지芝가 살아갈 세상이 아름답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주 자의적인 해석이지만요. 시의 마지막 연에 이를 때쯤이면 이런 마음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지금 어린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시대가 너무 가혹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어른인 나는 이 시대를 열심히 보고 기록해야겠다.’ 조금 거창한 마음이지요? 4.  시간이 흘러 또다시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옵니다. 어느새 제가 폴라리스에 합류한 지도 2년이 되어 가고요. 아마 지금 쓰는 글이 제 마지막 에디터레터가 될 것 같아요. 폴라리스를 떠나게 되었거든요. 그렇지만 폴라리스를 향한 애정과, 독자님들께 소개할 기사를 찾던 ‘거창한 마음’은 이 자리에 오래오래 남겨둘 생각이에요. 20년 후, 지芝가 살게 될 가을의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비는 마음 말이에요. 그동안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폴라리스의 항해도 기대해 주세요!  2024. 09. 30.에디터 만쥬🌰 드림 만든 사람들: 만쥬🌰, 해안🌊, 모래🏖️, 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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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검은물’ 사건 뭉개기… 셜록이 경찰을 고소했다 <블랙워터 게이트 5>
‘검은물’ 고발 사건에 경찰의 ‘검은 제안’이 등장했다. “사건 각하로 종결할 테니까, 저한테 다시 고발장을 주세요. 그래서 다시 (사건을) 시작하는 걸로 좀 하시면 어때요?(…) (경찰) 내부 점검에 걸려요. 제대로 정상적으로 수사가 완벽히 안 됐다고.”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지난해 9월, 불량 상수도관 납품업체 임직원과 공무원 등 사이에 있었던 ‘검은 유착’을 밝히기 위해 형사고발에 나섰다. 사건을 담당한 수사기관은 강남경찰서.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9개월이나 지나 ‘고발 취하’를 유도했다. “다른 사람한테는 얘기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사건은 그의 말대로 각하 처리됐다. 그러나 검찰도 이 같은 처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검찰은 사건 재수사를 요청했다. 셜록과 서 변호사는 ‘고발 취하’를 유도하며 1년째 ‘사건 뭉개기’를 하고 있는 A 경위를 직무유기 혐의로 직접 고소했다. ‘검은물’ 사건의 시작은 시흥 은계지구였다. 경기 시흥시 은계 공공주택지구에서는 2018년 4월부터 수돗물에 이물질이 나온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조사 결과, 이물질의 정체는 상수도관 내부에 코팅된 플라스틱 계열의 물질(액상에폭시 등)이었다.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지난해 7월 은계지구 아파트 단지의 ‘검은물’ 사태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문제의 상수도관을 납품한 회사는 이미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업체였다. 공정위는 2020년 3월, 13개의 상수도관 업체가 사전에 담합해 서로 합의된 기준에 따라 이윤을 배분한 사실을 밝혀냈다. 문제의 상수도관 업체들이 사전에 납품기관에 부정한 청탁을 한 정황도 포착됐다.(관련기사 : <식당서 만나 ‘검은 약속’… 1300억 나눠먹은 그들의 수법>) 하지만 공정위의 발표 이후로도, 담합 업체와 공공기관 등 수요기관의 임직원 및 공무원들 중 아무도 부정청탁 문제로 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 없었다. 더 이상의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고, 징계나 처벌로 이어지지도 않은 상황. 이에 셜록과 서 변호사는 상수도관 업체 임직원을 사기 혐의로, 그리고 이들의 부정한 청탁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공공기관 임직원 및 공무원들을 뇌물 혐의로 형사 고발했던 것이다.(관련기사 : <[액션] ‘검은물’에 숨은 검은 의혹… 셜록이 검찰에 고발>) 고발로부터 약 9개월이 지난 올해 6월 20일. 고발인 서성민 변호사는 강남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소속 수사관 A 경위의 전화를 받았다. A경위는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이 사건 (수사를) 계속 진행하기를 희망하냐“고 물었다. 서 변호사는 “(고발 사건을) 끝까지 가는 건 여지 없는 일이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A 경위는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이 안 된다”면서, “사건을 각하로 종결할 테니 고발장을 다시 접수해줄 수 있냐“고 제안했다. “제가 이 사건을 큰 뜻을 품고 한번 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해 가지고 정상적으로 진행은 안 돼요. 그래서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이거를 일단은 다시 저한테 고발장을 한 번 더 주세요.” 약 9개월 동안 고발인 조사가 한 차례 진행됐을 뿐,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와서 굳이 재고발을 해달라는 ‘수상한’ 제안. A 경위는 이유를 묻는 서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사 기일이 너무 장기화됐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경찰) 내부적으로 점검을 하거든요. (…) 변호사님, 진짜 내가 사정 좀 드릴게요. 이게 다른 생각이나 이런 건 아니고, 좀 도와주세요. 일단 도와주시고. 제가 오죽하면 이렇게 얘기하겠어요. 저도 너무 어이가 없고, 죄송하고….“ A 경위는 더 놀랄 만한 발언을 이어서 했다. “다른 것(사건)들도 다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를 하는데요. 변호사님한테 내가 솔직히 말씀드리니까, 다른 사람한테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믿고 얘기하는 겁니다. 내부 점검에 걸리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겁니다.” 여러 고발인에게 고발 취하나 재고발 접수를 요청하고 있다는 자백에 가까운 고백.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은 더 놀라웠다. 이번에는 문제를 강남경찰서 전체로 확대시켰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수사관들도 그래요. 강남(경찰서)은. (고발인들에게) 부탁해가지고 다시 (고발장) 접수받아서, 기일을 다시 잡아서 (사건을 다시) 시작할 겁니다.” 강남경찰서 내 다른 수사관들도 자신과 같이 고발인들에게 ‘고발 취하’를 요청하고 있다는 폭로. A 경위는 고발 취하 날짜까지 정해줬다. “(함께 고발한) 진실탐사그룹 셜록한테도 협조를 (부탁)해주시고… 오늘 중으로 고발 취하장 있잖아요, 팩스로도 보내주셔도 돼요. (경찰 내부) 점검이 다음주라서….” 셜록과 서성민 변호사는 고발 취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고발 취하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강남경찰서는 지난 6월 28일 ‘검은물’ 고발 사건을 각하 처분하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공정위의 조사 결과와 제재 사실을 근거로 한 고발이었음에도, “고발인의 추측만을 근거로” 고발했다는 어이없는 명분을 내세웠다. “고발인의 추측만을 근거로 본건 고발을 한 것으로 파악되기에 수사를 개시할 만한 구체적인 사유가 충분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불송치 통지서) 각하 처분 이후 서 변호사는 다시 고발장을 접수하기 위해 A 경위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 8월 초부터 약 2주 동안 15번의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결국 A 경위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사이, 오히려 검찰에서 사건을 다시 끄집어올렸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검사 선현숙)은 지난 8월 강남경찰서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강남경찰서로 넘어갔다. 경찰 내부 점검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고발인에게 고발 취하를 요청한 A 경위. 그의 입장은 무엇일까. 기자는 지난 4일 강남경찰서를 찾아 그를 직접 만났다. “기자가 오해하고 있는 생각대로였다면, 애초에 (고발인에게) 전화 안 했습니다. 당연히 전화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각하 쳐버리면 됩니다. 그게 더 깔끔해요. (…)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죠. 한번 (경찰 입장을) 역으로 생각해주십시오.“ 셜록과 서 변호사가 고발장을 접수한 게 지난해 9월. 그동안 수사는 얼마나 진행된 걸까. “(고발인을 통해) 자료 받은 걸로 공정위 쪽에 저희가 확인을 해봤고요, 그 상황에서 이제 각하를 한 거예요. (…) (고발장이 재접수되면) 실질적으로 (사건을) 거의 다시 시작할 거예요.” 경찰 수사관이 고발인에게 고발 취하와 재고발을 요청하는 게 상식적인 일일까. 경찰 출신 손병호 변호사(법무법인 현)는 단호하게 지적했다. “염치없는 요청입니다. (내부적으로) 장기사건 점검 때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하는 부탁이잖아요. (…) 그야말로 행정 편의주의적인, 수사관 개인의 편의를 위한 요청이잖아요. (…) 각하는, 수사할 만한 사건이 되지 않는다 판단해서 수사하지 않고 끝낸다는 개념입니다. (고발로부터) 9개월 정도 있다가 (사건을) 각하하는 건 상당히 잘못된 겁니다.” 기자는 강남경찰서의 반론을 듣고자 시도했다. 지난 20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강남서에 서면질의서를 넣었다. 전화 연결도 시도했다. 기자는 지난 19일부터 27일까지 A경위가 소속된 지능범죄수사팀 과장(언론대응 담당)에게 총 9차례 전화를 시도했다. 27일엔 지능범죄수사팀 소속 담당자를 통해 “과장님의 회신을 부탁드린다”는 메모도 남겼다. 하지만 전화 연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고발인 서성민 변호사는 A 경위의 행위가 시사하는 현재 경찰의 문제점을 이렇게 짚었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고발인의 이의신청권이 사라지면서, 경찰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수사를 끝내도 고발인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수사하고 싶다는 둥 핑계를 대며 고발 취하를 유도하고, ‘(사건을) 불송치할 테니 재고발 해달라’는 제안까지 이른 것은 현재 경찰의 범죄수사가 총체적인 난국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셜록과 서 변호사는 30일 A 경위를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방검찰청에 형사고소했다. 또 A 경위에 대한 수사관 기피(교체) 신청을 진행해 ‘검은물’ 고발 사건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끝까지 감시할 예정이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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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지난 2년의 시간, 당신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나는 평소에 서울시청 앞 광장을 자주 지나다닌다. 서점을 갈 때나 청계천을 걸을 때, 성당에 갈 때도 산책할 겸 탁 트여있는 광장을 한 바퀴 빙 둘러서 가곤 한다. 지난 시간, 그곳에 참사 합동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인터뷰를 이유로 참사 유가족 분들과 생존자 분들을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그래서 분향소 앞을 지날 때면 언젠가 만났던 분들이 계신지, 그들이 나의 얼굴을 잘 기억 못하실지언정 인사라도 드릴까하여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보라색 옷을 입은 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보는 건 버릇이 됐었다.  그런데, 하나 솔직하게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그렇게나 많이 분향소 앞을 지나갔는데, 단 한 번도 분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영정이 마련되지 않은 분향소에서 분향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많은 영정 사진들이 놓여있는 분향소는 똑바로 마주보기가 어려웠다. 그 앞을 지날 때면 고개가 자동적으로 푹 숙여졌고 땅만 보면서 걸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분향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들었다. 마주하기 힘들면 길을 돌아갔으면 될 것인데, 그건 또 싫었다.   영정 앞에 꽃 한 송이를 못 올리고 향로에 향을 한번 못 피웠지만. 나는 그 앞을 지나고 싶었다. 대신 그때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곤 했다. 영정들 앞을 지날 땐 일부러 걸음을 늦추었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위한 기도를 했다. 형식을 제대로 못 갖추었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아직도 이런 나의 행동과 감정을 세분화해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다. 그저 그 앞에선 자꾸 눈물이 나곤 했고,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태원 참사, 우리는 잊지 않았다  지난 5월 초,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순간, 내 입에선 “드디어...” 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머릿속에선 유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참사 이후 약 1년 6개월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그들은 지금 어떤 마음이실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참사가 발생한 날부터 내가 언론을 통해 보았거나 직, 간접적으로 보고 느낀 것을 다시 떠올려봤다. 참사 당일의 그 충격적인 장면, 수많은 희생자들,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눈물, 울분과 분노, 고통, 기나긴 투쟁의 시간. 정부 기관과 정치권에서 벌어진 공방까지. 이 기억들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참사에 대한 감정을 한번쯤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참사를 주제로 글을 하나 썼었다. 그리고 글벗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 자리에 모인 날, 우리는 참사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누군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글을 읽었는데 그 날의 기억이 나는 바람에 눈물이 나서 힘들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남 일 같지 않고 아직까지 가슴이 먹힌다고 했다. 누군가는 생각에 잠겨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년 반 가량 지난 시점이었지만, 모두가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참사가 벌어진 뒤 처음 뉴스를 보았던 그 순간을. 잠 못 들고 밤새 TV만 지켜본 그 순간을. 그때 자신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도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했다. 잠시 희미해져 있었을 뿐이지, 다들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내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지인의 일이 아니었을지라도. 우리가 가진 슬픔의 무게가 그때나 지금이나 동등하게 무거움을 확인했다.  우리 뿐 일까. 다른 이들은 어떨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동안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 어떻게 슬픔을 달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혹여 사는 것이 바빠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레 기억이 희미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도 어쩌면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사회의 시선에 대하여   나는 일 때문에 뉴스 기사를 많이 읽는다. 그리고 기사를 읽고 나서 항상 밑에 달린 댓글을 훑어본다. 이것을 보면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기도 하니까.  처음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즈음, 기사마다 애도, 추모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매섭고 차가운 비난과 혐오가 섞인 악성 댓글의 비중만 더 높아져갔다.  ‘남의 나라 귀신놀이가 뭐가 좋다고..’ ‘놀다 죽었는데 왜’ (댓글들을 다들 많이 접해보았을 테니, 이 정도까지만 적겠다. 댓글을 굳이 그대로 다 옮겨 적고 싶지 않다.)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향해 쏟아지는 조롱과 희롱 섞인 말들은 읽는 나조차 괴롭게 했다. 청춘들이 핼로윈을 즐기러 간 것이 나쁜 것인가. 나도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친구들과 이태원에서 핼로윈 파티를 즐긴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고가 발생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땐 괜찮았는데 이 날은 왜 그랬을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문제가 뭐였는지에 대해서 악플 쓰기 전에 생각은 해 보았을까.  유족을 향한 악성댓글도 마찬가지였다. 아픈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말이 너무 많았다. 이들의 움직임을 정치적 행동이라 단정 지으며 비난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유족들이 왜 국회에 가고,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긴 시간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알까. 그들의 눈을 마주 보고 심정을 이해하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 사회 일부가 너무 냉담하고 매정하다고 느낀다. 아픈 가슴에 자꾸 비수를 꽂는 것. ‘남의 일이고 내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참사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항상 유족들은 목소리를 높여왔다. 슬픔과 울분, 고통이 담긴 목소리. 외면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외쳐왔던 목소리들. 이 목소리들은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나와 당신이 좀 더 안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소리와 우리가 전혀 관계없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내 일이 아니다, 내가 알 바 아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한다. 모두 같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부디 이들을 향한 폭력적인 시선들은 거두어주시면 좋겠다.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 첫발 뗀 특조위에게 바란다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9월 23일 출범했다. 글을 쓰는 바로 오늘이다. ‘지각 출범’이라는 딱지 붙어 버린 늦고도 아주 늦은 출범이다. 지난 5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공포된 지 30일 째인 6월 20일까지 특조위 구성이 끝났어야 했는데, 넉 달이란 시간을 넘겼다. 이것도 유족의 간곡한 호소문이 전달된 후에야 진행되었다. 왜 항상 그들을 끝까지 내몰고 나서야 일이 추진되는 것일까. 국가의 의무가 무엇인지, 이들에게 갖추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특조위원들과 유가족들의 만남이 있었다고 한다. 기사를 통해 전해진 이야기를 보니, 일부 유족들은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 눈물에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 담겨있었겠나.  1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특조위가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라는 숙제를 잘 해내주기를 바란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원이 풀릴 수 있도록 하겠다.” 고 송기춘 위원장이 말했다.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기를 바란다. 글을 마무리하며  시간이라는 것은 참 빠르게 지나간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됐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참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잊혀 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억은 잠시 희미해졌을 뿐이지 지워지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이 글을 쓰면서 유족들의 모습이 많이 생각났다. 고립되고 외면당하면서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힘겨웠을지, 어떤 마음으로 버티어 왔을지 생각해 보니 글을 쓰는 내내 눈물이 났다. 그들에게 너무 외로워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바로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곁에서 많이 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사실이니까.  또, 나는 처음에 자기 고백을 했는데, 글을 써 내려가면서 계속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조만간 ‘별들의 집’을 찾을 예정이다. 그곳에서 빚진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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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여러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10.29 이태원 참사에 어떻게 연대하고 있나요?
여러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10.29 이태원 참사에 어떻게 연대하고 계신가요?    근 몇 년간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노동자의 이야기와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다는 소식 그리고 높아져만 가는 2030 청년세대의 자살률 등 이전보다 부쩍 늘어난 부고 소식에 뉴스를 보다가 한숨만 푹 내쉬었던 시간이 늘었다. 기득권 정치는 권력을 취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 때문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과 삶을 거부했다. 이렇게 우리는 희망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간이 지속 될수록 타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보다는 나의 일상이 얼마나 힘들고 벅찬지에 대해 이해하기도 어려운 순간이 늘어난다. 그렇게 내 일상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는 순간이 쌓이면 사람과 사람사이 끈끈한 연대가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찾기보다 내 안으로만 파고들기 쉬운 환경과 일상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 2년간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시작해 녹사평역, 시청역을 거쳐 현재 부림빌딩의 별들의 집으로 가기까지 연대의 시간을 보내며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갈수록 세상살이가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랑하는 것들이 늘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더불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연대하는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1) 첫 만남   참사가 발생한 2022년 10월 29일 하루 뒤인 30일부터 일주일간 국가 애도기간이 선포되었다. 영정 없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가 설치 되었다. 그 일주일동안 국가는 유가족이 모이는 것을 방해했고, 그에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모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입에 참사가 아닌 사고로, 희생자가 아닌 사망자로 오르내리게 만들어 사회적 참사의 본질을 흐리고 의미를 압축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국가가 나서서 자행한 일주일이었다. 이렇게는 둘 수 없어서 2022년 12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모이고 녹사평역에 영정이 있는 '진짜' 분향소를 함께 만들었다.   분향소 설치 이전에 필요했던 과정은 희생자들의 영정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영정 만들기는 분향소 설치 전날 매우 늦은 밤에 진행되었는데, 그때 영정 속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과 처음 마주했다. 액자에 희생자의 사진을, 사진이 없는 희생자의 액자에는 국화꽃 사진을 넣었다. 나는 주로 검은 리본을 둘러 고정하는 일을 담당했는데, 영정을 만드는 마지막 단계의 일이었다. 영정 안에 들어가는 사진 밑단에는 희생자의 생년월일이 있다. 영정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리본을 두르면서 희생자 대부분이 나와 또래라는 것과 희생자 대부분의 시간이 2022년 10월 29일-31일 사이에 멈춰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액자 속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저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와 슬픔, 미안함을 삭히면서 영정을 완성했다.   바로 다음날이 되어 분향소 설치를 시작했다. 손이 찢어지게 시린 날이었는데 나무토막 하나, 영정이 올라가는 단 하나, 하다못해 주변에 쓰레기 청소까지 우리같은 시민들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는 분향소였다. 꽤 긴 시간 추위를 이겨가며 분향소가 완성되었고 영정을 올려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정은 이미 분향소를 만들기 전에 녹사평역 인근 실내 장소에 도착해있었다. 유가족분들이 희생자의 영정을 분향소에 올리기 전에 영정 정리가 다시 필요해서 일을 돕고 있었는데, 처음 뵙는 한 분이 장소로 들어오셨다. 희생자들의 영정이 모여있던 곳이라 처음보는 사람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여서 짧은 침묵이 있었다. 처음 뵙는 그 분은 '제가 유가족인데요. 사진을 바꿔야 해서 왔어요.'라고 말씀해주셨고 그때 10.29 이태원 참사의 유가족분들을 처음 만났다. '생각해보니 영정이 여기 모여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텐데. 자신을 유가족이라고 소개하는 그 순간에 그 분의 마음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짧았던 경계심이 풀리며 뒤늦게 진한 죄송스러움과 함께 밀려왔다.   그날 저녁, 해가 저물고 녹사평역 분향소에 영정이 올라갔다. 유가족분들은 영정 속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분향소에 내려놓고 울음을 토하시며 외치셨다.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하라고, 우리 가족들 대통령 당신에게 한 표 던졌다고, 그러니 국민의 선택에 책임을 다하라고 외치셨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선명하다. 그 순간에 영정 정리 때부터 참아온 눈물이 뒤늦게 몰려와서 나도 같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한겨레 '49재를 앞두고 영정사진이 놓였다, 이제야...[만리재사진첩]'(2022.12.14.)   2) 홍삼캔디 두알 오마이뉴스 '시민분향소... 159명 얼굴과 마주하니 "마음 더 흔들려"'(2023.02.04.)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시청역 분향소로 이전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천막처럼 보이는 것'만 봐도 경찰이 따라 붙어 무엇이냐고 묻기도 했고, 뉴스에서는 기습설치라며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국가가 책임져 추모 공간을 마련하고 성역없이 진상규명을 진행하면 되었을 텐데. 무튼 어렵게 시청역으로 이전해 자리를 잡고 시청역 분향소에서 지킴이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의 본질을 흐리려는 방해 세력과 화면에서만 보던 유명 정치인도 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사람들은 혼자 분향소를 찾아오신 이름 모를 시민분들이었다. 어떤 사연이 있으신지 한참을 울고 계셨던 분, 1시간이 넘도록 분향소에 머물러 기도하시는 분, 보태 쓰라며 지폐를 쥐어주고 가시는 분들(이렇게 받은 돈은 전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후원금으로 송금됩니다), 주변에서 뛰어 놀다가 분향소로 와서 여기가 어떤 곳이냐고 물었던 어린 아이들까지. 분향소에서 1-2시간만 있다 보면 분향소가 단순히 추모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분향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회적 참사를 알려내고 추모하고, 서로에게 위로와 안부를 전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기억에 남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어 그 분의 이야기를 전해보려고 한다.   시청역 분향소에서 노란 조끼를 입고 분향소 지킴이를 하고 있었다. 분향소 바닥에 떨어져있던 국화 이파리들, 자잘한 쓰레기를 줍고 향이 있던 곳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청소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뒤에 할아버지가 오신 기척도 못 느꼈다. 향 가루를 쓸고 뒤를 돌아보니 계시는 할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할아버지께서 추모의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분향소의 가장자리로 가있었다. 할아버지는 가만히 자리에서 영정을 천천히 보시더니 그 자리에서 큰 절을 두 번 하셨다. 다리가 불편하신 것 같아 도와드릴까도 싶었지만 할아버지가 추모하려는 시간과 방식을 굳이 나서서 방해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애써 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절을 하시고 일어나 모자를 벗어 나에게도 인사를 해주셨고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로 답변 드렸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뭔가를 한참 뒤적거리셨다. 그러고는 오셔서 홍삼캔디 두알을 손에 쥐어주며 '춥지?' 한마디 묻고는 사라지셨다. 날이 흐렸지만 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분향소에 서있으면서 할아버지가 춥냐고 물어봐주셨던 질문을 여러 번 곱씹었다. 그냥 지나가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춥지?'하고 물어보셨던 질문이 외롭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질문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여기 있어서 고맙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홍삼캔디를 좋아하지 않아서 먹지는 못했지만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 안쪽 주머니에 행운의 부적처럼 항상 넣어두고 지금도 가지고 다닌다. 받았던 홍삼캔디 두알을 보면서 '오늘도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함께하는 사람들이 어디든 있겠구나.'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순간이 일상에 자리 잡게 되었다.   3) 낮은 곳으로   '연대 :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책임짐. 한 덩어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윤이형 작가의 소설 [붕대 감기]에서 연대는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상처받을 준비가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의 시선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보는 것,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내 안으로 옮겨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요즘 가방에 귀여운 키링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사람들의 가방에 달린 키링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그 안에서 노란색 리본과 보라색 리본을 만나면 정말 반갑다. 가방에 리본을 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이름 모를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순간에 리본을 달고 있는 사람과 은밀히 연대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낮은 곳으로'는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는 구절이 유명한 이정하 시인의 시다. 읽다보니 내가 나를 비워내 당신의 무엇이든 담길 수 있도록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우리가 서있을 더 낮은 곳은 어딜까.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되려 거부하면서 유가족분들이 삭발을 하던 순간일까? 아니면 길가에서 눈과 비를 맞으며 오체투지와 천막 농성, 단식을 하던 그 순간일까? 생각해보니 더 낮은 곳은 따로 없었던 것 같다. 유가족분들과 시민들은 국가의 부재를 서로의 존재로, 두터운 연대로 채워왔으니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이곳이 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2년간 서로를 위해 마음을 비워내고 가방에 리본을 달아보고 분향소로 향했던 발걸음이 쌓이고 쌓여 함께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달려왔다. 더 넓고 넓게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고자 노력해왔던 시간이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연대 하고 있는지 묻고 싶고,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과 어떤 형태의 연대도 괜찮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늘 하루는 안녕한지, 긴긴 시간 춥지는 않았는지 안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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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0. 어쩌면 우리는 너를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0. 어쩌면 우리는 너를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2019년 10월 25일 밤, 속칭 대구패밀리라 부르는 글쓰기 모임 지인들과 동성로에서 만났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할로윈 같은 행사가 있으면 다들 어렴풋하게 알고 준비를 할 법도 한데 모두 이쪽으로는 연이 없는지 아무 생각 없이 현대백화점 앞에 모였고,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인파에 혀를 내둘렀다. 동성로 말고 안지랑에서 곱창에 소주나 먹자. 지나가는 간호사 좀비와 정장 드라큘라를 본 형님은 인파에 휩쓸리지 않게 구석으로 우리를 끌고 가고선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눈치를 보였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지랑에서 곱창에, 평화시장서 치킨에, 거리를 걸으면서 맥주에, 그렇게 술을 마시고, 숙취에 괴로워하고…. 출근한 월요일, 후배 여럿이 지난밤 축제 거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붐비는 클럽과 아리따운 여성들, 그리고 사람으로 가득한 위험한 거리. 지난밤 그들의 추억과 별개로 과도한 인파에 위험했다는 뉴스가 잠깐 올라왔다 내려가고는 했다. 우린 그때도 사고의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었다. 2022년 10월 28일, 부대에서 할로윈 행사 참여의 위험성에 대한 공문을 내렸고 젊은 간부들의 과도한 행사 참여를 금하기 위해 위수지역을 철저히 지키라는 추가 공문이 내려왔다. 내 근무지는 대구에서 서산으로 바뀌었고, 서산 부대는 서울의 접경지라 그런지 이런 이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도 우리 부대는 코로나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고. 이미 이십 대의 끝자락, 스무 살 초반에도 즐기지 않았던 축제를 이 나이가 돼서 즐길 이유도 없었고 당시 비상대기도 공교롭게 나였다. 사고 전일, 그리고 당일까지도 나는 부대를 지키고 있었고 이 축제를 즐기는 이전 부대의 후배들, 그리고 새 부대의 후배들과 간간히 연락을 하며 축제의 열기를 대신 느꼈다. 29일, 사고가 발생했고 어제까지 우스갯소리로 연락하던 후배들은 이제 살아있는지, 다친 곳은 없는지, 그 장소에 있었는지 찾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가끔 저널리즘에 관련된 책을 읽는다. 한때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리고 뉴스와 정치, 한 사람의 발언이 무겁게 소비되는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제는 알아야 하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인용저널리즘에 대한 레포트를 써서 대학에 제출한 적이 있었다. 한참 대선으로 국가가 뜨거웠던 시절, 유튜브의 아무개 씨, 정치평론가 아무개 씨의 목소리를 “ ”(따옴표)로 대신해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말도 다소 올드한 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따옴표 저널리즘보다도, 아마 ‘릴스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사회가 되었기에. 이태원 참사는 사실상 릴스 저널리즘의 대표 격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사건이었다. 뉴스에서는 부족한 현장 상황 정보의 공백을 느끼고 있었고, 이런 정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릴스,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끌어다가 TV에서 생중계를 했다. 그리고 SNS 익명의 목소리라는 거대한 방패 아래에 무분별한 혐오와 공격의 메시지는 덤으로 내보냈고. 영상에선 참사 사고의 사망자들, 부상자들의 모습이 모자이크 없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TV 앞의 많은 시청자들이 이 사고의 정신적 피해자가 되었다. 그 후에 있던 ‘누군가 밀었다’, ‘누군가가 범인이다’와 같은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의 남발부터 사건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이를 정치의 더러운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자칭 사회평론가들의 발언까지. 과연 언론은 참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과연 이게 21세기의 저널리즘일까. 그날 언론의 현실에 대한 참담함을 느꼈다. 언론이 무분별한 메시지를 보내는 당시 부대에서는 사고자가 있지는 않은지, 다른 부대 후배 중 사고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조사를 해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의 SNS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용산에서 놀고 있음, 동성로에서 술 마시는 중, 여기는 서울 어디 클럽. 후배들의 소식은 속속들이 발견되었고 한숨을 돌린 우리는 릴스를 우연히 넘기다 다른 영상들을 보게 되었다. 사고 현장에서 CPR을 하면서 제발 찍지 말라고 소리 지르는 소방관, 인근에서 춤추는 주취객, 사람들을 빨리 대피시키기 위해 차 위에서 인원을 인솔하는 어떤 젊은 사람, 그리고 번쩍이는 인근 클럽과 술집…. 나는 이 사고를 떠올릴 때마다 대구 부대에서 친하게 지냈던 한 후배를 떠올린다. 이성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때로는 과음, 지각으로 개인적인 행실에 대해서는 지적을 받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람 좋고 일에 몰두하는 후배. 누구보다 일을 잘하고 싶어 하면서 선배들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연차가 차면서 책임감도 보이는 후배. 그 후배는 할로윈이면 거리로 나가 이 문화를 즐기고는 했다. 그리고 그 주 주말이 끝난 월요일이면 전날의 열기를 하나의 무용담처럼 풀어내기도 했다. 나는 그 후배가 처음에는 싫었다. 너무 가벼워 보이는 남자여서, 책임감이 부족해 보이는 남자여서, 언제라도 일을 대충 할 것만 같은 인상의 남자여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다. 그는 멋진 남자였고 멋진 군인이었다. 유쾌한 사람이었고 친절한 후배였다. 나는 그의 당당함을 부러워했고 그와 같이 퍽 즐거운 군 생활을 보냈다. 나는 아직도 이 참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 그리고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가 너를 잃었을지도 몰라. 이런 행사는 문란한 행사고 평소 행실이 나쁜 사람들이 가서 당한 일인데 무슨 문제냐? 이런 이야기를 SNS에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린 멋진 후배이자 유쾌한 동생, 그리고 진짜 군인 하나를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사라진다면 인간적인 슬픔, 비통함, 그리고 대단한 인재 하나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타까웠을 거라고. 그 후배와는 이제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대구를 떠난 지 벌써 3년이 흘렀고 그 친구도 내가 전역한다고 말한 전후로 전역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지금쯤이면 전역하고 사회인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디서든 그 후배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후배가 앞으로도 이런 축제에 계속 참여할 거라는 점도 알고 있고. 그렇기에 앞으로는 이런 축제에 안전을, 모두에게 행복한 장소가 되기를 빌며 살뿐이다. 2025년의 나는 할로윈 축제 기간에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때는 새로운 일을 시작한 후라고 생각한다. 군대도, 코로나도, 행사에서 논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없는 나는 늦은 나이여도 거리에 몸을 던질까. 아니, 아마도 집에서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그때는 슬픈 이야기보다는 기쁜 이야기를, 할로윈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거리의 행복한 이야기를 쓰며 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해당 글은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정리를 시작하는 글이다. 평소 서평을 꾸준히 써왔기에 이번에도 서평 3편을 통해 이태원 참사의 기억을 되짚고 간단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 되짚기, 서평을 통해 나아가기, 또다른 내일을 보낼 나, 모든 일들을 시작하기 위해 최근 이태원에 다녀왔다. 1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보이는 표지판, 여기가 사실 모든 기억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다녀온 이태원은 조금 쓸쓸한 곳이었다. 서평과 모든 글이 끝날 때면 아마 2주기가 돌아오지 않을까. 그때는 이 쓸쓸함에 방점을 찍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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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조직은 어떻게 돈을 버나요?
‍ ‍ ‍ 공익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은밀한 질문 ‍ 저는 비영리 조직이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공익 활동을 본업으로 삼고, 더 큰 ‘소셜 임팩트’를 만들고자 하는 분들을 돕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 비영리 조직이라고 하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을 텐데요. 일반적으로 내 주변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환경 보호 활동을 함께하거나, 시민들에게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등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익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민간단체, 사단법인, 재단법인, 사회적협동조합 등 국내 비영리 조직의 수는 2만 개가 넘고, 종사자 수는 약 148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외계층을 돕는 복지사업, 환경 보호를 위한 봉사활동, 시민의 인식을 개선하는 캠페인 등 공익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비영리 조직이 이윤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공익 활동을 지속하는지 궁금해합니다. 특히, 비영리 활동을 생계유지를 위한 ‘업(業)’으로 삼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고요. 오늘은 이런 비영리 조직을 시작하려는 분들이 은밀하게, 가장 자주 묻는 질문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바로 ‘비영리 조직은 어떻게 돈을 버나요?’입니다. ‍ 돈 벌어도 되나요? 비영리(Nonprofit)라는 오해 ‍ 많은 사람이 공익 활동을 숭고한 선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돈 이야기를 하면 왠지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 같아 조심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점잖게 ‘비영리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자원 조달’이라고 표현하는데요.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직설적으로 ‘비영리 조직이 돈을 버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궁금한 이유는 ‘비영리(Nonprofit)’라는 표현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경제활동으로 얻은 이익을 소유자 혹은 주주에게 배분할 수 있는 영리 기업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함인데요. 비영리 조직에서 발생한 이익은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거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비영리 조직은 영리 기업처럼 ‘수익(Benefit)’을 만들 수 있으나, 비용을 제한 ‘이익(Profit)’을 이해관계자에게 배당할 수 없습니다. 발생한 이익은 조직을 설립할 때 정관에 기재한 공익 목적에 맞게만 사용해야 하죠. 쉽게 말해 월급은 받을 수 있으나 배당은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영리 조직은 근본적으로 이익 창출이 최종 목적이 될 수 없는 조직입니다. 사업으로 만들어낸 이익은 반드시 각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법률적으로 규정하고 있죠. 하지만 이익 창출이 없다면 비영리의 공익 활동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근본적인 사회혁신을 만들고, 더 큰 소셜 임팩트를 창출하며, 장기간 지속 가능한 변화를 만들려면 필연적으로 비영리 조직은 돈을 잘 벌어야 합니다. ‍ ‍ 비영리 조직이 돈 잘 버는 네 가지 방법 ‍ 그렇다면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단순히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비영리 조직에 주어진 특수한 여건을 고려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 전략을 세우는 것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비영리 회계 관점이 아닌 비영리 조직이 실질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나아가 각 방법에서 비영리 조직이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지 저의 의견도 더해보겠습니다. 기부 모금: 개인 및 기업 대상 기부금품 모집하기 지원/배분사업: 정부/민간 공모사업 지원하기 위탁용역사업: 정부/민간 공익사업 위탁 수행하기 수익사업: 제품 판매 및 서비스 제공하여 수익 창출하기 ‍ ① 비영리만이 할 수 있는 ‘기부 모금’ ‍기부는 개인이나 기업이 자발적으로 금전, 물품, 혹은 서비스를 비영리 조직에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부자는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대가를 받지 않으며, 기부금은 공익 목적을 위해 사용됩니다. 따라서 비영리 조직은 판매와 같이 상응하는 가치의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면 안 되고, 공익 목적의 기부금은 반드시 투명한 회계 관리와 관련 제한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비영리 조직만 기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하여 개인과 기업에게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는 ‘공익법인/단체(구 지정기부금단체)’가 될 수 있는 것은 비영리 조직뿐입니다. 이때 공익법인은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인증처럼 기획재정부에 별도 신청하여 지정받고, 지속적으로 국세청의 관리를 받아야 합니다. 위와 같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할 수 있는 공익법인이 되는 것은 비영리 조직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개인에게는 세액 공제를, 기업에게는 법인세 공제와 지방세 감면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공익 목적에 공감하는 일부는 세제 혜택이 없어도 후원을 하겠지만, ‘기부 모금’이라는 시장에서 의미 있는 수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공익법인/단체’의 자격은 갖춰야 할 최소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 조직의 기부 모금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요? 최근 누구나데이터 김자유 대표님께서 “너(잠재후원자), 내 동료가 되어라!” 아티클에서 ‘잠재후원자 관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최근 기부 모금 시장에서는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수용하고, 고객관계관리(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를 접목한 전략이 유효한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팬덤 기부, 자선 아이템 판매 등 새로운 모금 방법도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고요. ‍하지만 저는 모금 전략과 방법에 앞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우리 조직에서 다루는 사회문제와 솔루션,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지지자는 기부 모금에 적합한가요?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들이 많지만, 모든 문제가 대중들의 인지적 공감을 얻기 수월한 것은 아닙니다. ‍ 그 근거로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기빙 코리아 2022’ 보고서는 2021년 국내 개인 기부의 7개 분야별 관심도를 ‘자선단체 > 해외구호 > 지역사회 > 의료 > 교육 > 문화예술’ 순으로 분석한 바 있는데요. 이를 통해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비영리 조직은 자선 활동을 하는 비영리 조직보다 상대적으로 개인 기부자 대상 모금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차원 더 깊게 살펴보면 세대별 기부 참여율, 기부 금액, 선호하는 기부 방식 등 기부 모금 시작에 앞서 고려할 요소가 더 많습니다. 이는 일시 후원과 정기 후원 중 어떤 형태가 우리의 지지자에게 바람직한지, 앞으로 개인과 기업 중에서 어떤 대상을 중점으로 기부 모금을 진행할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비영리 조직도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시장’과 ‘제품’ 그리고 ‘고객’에 대해 더욱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영리 조직에서 기부 모금을 기획하고 계신다면, 아래 질문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사회문제(시장):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대중의 인지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시장인가? 솔루션(제품): 우리가 만드는 솔루션은 지지자에게 지속적인 효능감을 제공할 수 있는가? 지지자(고객): 우리의 지지자는 어떤 행동경제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 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한 기부 모금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고 있는 비영리스타트업으로 사단법인 뉴웨이즈(이하 뉴웨이즈)를 꼽을 수 있습니다. 2021년에 등장한 뉴웨이즈는 정기 후원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안정적인 조직 운영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는데요. 아래 소개글로 뉴웨이즈의 ‘시장’과 ‘제품’, ‘고객’에 대해 유추해보겠습니다.‍ 사단법인 뉴웨이즈는 만 39세 이하 젊은 정치인(젊치인)의 도전과 성장을 돕는 정치 에이전시로, 정치 산업 내에서 의사 결정권자의 다양성을 높이고, 젊은 세대가 정치에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 조직입니다. 이를 위해 누구나 자기 경쟁력을 가지고 의제나 지역의 문제 해결 경험을 쌓아 지지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인재 성장 시스템을 만듭니다. ‍뉴웨이즈는 ‘정치 산업의 다양성 부족’이라는 사회문제(시장)에서 ‘인재 성장 시스템’이라는 솔루션(제품)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뉴웨이즈의 지지자(고객)들은 정치권에서 일하거나, 정치에 높은 관심을 가진 고관여자일 확률이 높겠죠. ‍정치 산업과 정치 고관여자의 특징은 후원 문법에 상대적으로 친숙하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정당과 정치인을 향한 지지자 후원이 활발히 이뤄져 왔기 때문입니다. 한편, 뉴웨이즈의 솔루션은 온라인 서비스로 개발 과정과 정량적 임팩트를 지지자들에게 정기적으로 공유하며 함께 사회변화를 만드는 효능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뉴웨이즈의 정기 후원자 모금이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뉴웨이즈의 공익 활동이 이에 적합한 시장과 제품, 고객을 갖춘 비즈니스 모델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뉴웨이즈의 탁월한 사회문제 해결 역량과 임팩트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겠지만요. ‍‍ ② 주도적으로 공익 활동을 제안하는 ‘배분/지원사업’ ‍비영리 조직이 돈을 벌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비영리 조직 대상 배분/지원사업에 지원하는 것입니다. 자원을 제공받아 공익 활동을 직접 수행하는 비영리 조직 입장에서 배분사업과 지원사업은 사실상 차이가 없어 함께 설명해 드립니다. 배분/지원사업은 정부, 공공기관, 또는 민간 재단이 비영리 조직이 공익 활동을 실행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인데요. 비영리 조직이 스스로 사업을 계획하여 제안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가지고 공익 활동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배분/지원사업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공익 목적과 취지에 적합한 비영리 조직을 선정하는 공모 형태로 진행됩니다. 자금제공자(Funder)가 포괄적인 사회문제나 정책 목표를 제시하면, 비영리 조직이 이에 부합하는 사업을 제안하는 방식인데요. 예를 들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복지사업’을, 환경부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사업’을, 문화예술진흥원에서는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공모하는 것이죠. 일련의 선발 절차를 거쳐 선정된 비영리 조직은 제안한 공익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사업비와 수행 인력의 인건비를 지원받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종료되면 지원금의 사용 내역을 보고하고, 사업 성과를 평가받아야 합니다. 이때 사업 결과 보고 과업은 공모 주체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아무래도 국민의 세금이나 대중의 기부금으로 조성된 기금의 공모사업은 사업비 사용이나 사후 정산에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민간 재단을 중심으로 배분/지원사업에서 새로운 변화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사업 성과 중심에서 조직 성장 중심으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는 벤처 투자 기법을 활용하여 비영리 조직의 성장을 돕는 벤처 필란트로피(Venture Philanthropy)로 아래와 같이 전통적인 배분/지원사업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비재정적 지원: 조직 성장을 위한 교육, 컨설팅, 사무공간 등 비재정적 지원 제공 유연한 지원: 사업비 제한 규정 완화 및 사업 중도 변경(Pivot) 허용 중장기 지원: 다년간 지속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연속 지원 ‍‍ 대표적인 국내 사례로 아산나눔재단의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사업은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와 관계없이 스타트업의 관점과 방법론으로 소셜 임팩트를 확장할 수 있는 초기 소규모 비영리 조직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조직이 스타트업 전략을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멘토링과 사업 자문을 제공하고, 공익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면 중도에 사업 및 예산 사용 계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죠. 또한, 최대 4년 연속 지원하여 중장기적 관점에서 비영리 조직의 성장을 돕고 있습니다. ‍ ‍그 외에도 다양한 민간 재단에서 혁신적인 비영리 조직의 성장을 돕는 지원사업 파이프라인을 함께 만들고 있는데요. 이를 마치 스타트업의 시리즈 투자처럼 활용하여 비영리 조직을 성장시킨 사례도 있습니다. 2020년 서울NPO지원센터를 시작으로, 2021년  아름다운재단과 다음세대재단, 2022년 루트임팩트, 2023년 아산나눔재단의 지원사업에 순차적으로 선정된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이하 다시입다연구소)’인데요. 이 과정에서 ‘옷장 속 입지 않고 잠들어 있는 21%의 옷을 교환하는 파티’라는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이제는 전국 단위로 의류교환 및 수선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처럼 비영리 조직은 우리 조직의 활동 영역과 성장 단계에 맞는 배분/지원사업을 리스트업하고 꾸준히 문을 두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독창적이고 효과적인 공익 활동을 기획하는 역량도 중요하지만, 우리 조직이 만들어 내는 사업 성과나 사회적 가치를 홍보하는 역량이 매우 중요한데요. 아직 공익 활동의 성과를 뽐내는 것을 쑥스러워하시거나, 사업 성과를 정량화된 데이터로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 ‍하지만 배분/지원사업의 기금제공자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근거에 기반하여 우리 공익 활동의 성과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다시입다연구소는 중고의류교환 행사의 누적 참가자 수, 누적 교환 물품 수, 참가자 인식 변화 설문응답 등 다방면으로 임팩트 데이터를 수집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팀도 처음부터 임팩트 측정 및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인 성과지표 개발과 데이터 정합성 향상을 위한 꾸준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죠. ③ 공공 서비스와 기업 사회공헌을 대신 수행하는 ‘위탁용역사업’ ‍위탁용역사업은 정부나 지자체, 공공기관, 기업 등이 비영리 조직에 특정한 과제를 맡겨 수행하는 것입니다. 정부와 민간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배분/지원사업과 비슷한데요. 차이점은 공공서비스 제공, 학술연구, 공공 교육, 전시 및 행사, 지역사회 개발 등 특정 과업이 지정되어 있고, 발주 기관이 정한 목표와 지침에 따라 공익 활동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많은 OO구 종합복지관, OO시 청년센터 등 지자체 공공시설의 관리 및 운영을 비영리 조직에 위탁하고 있습니다. 기업도 임직원 자원봉사, 지역사회 교육사업, 환경보호활동 등 사회공헌 사업을 위해 전문성 있는 비영리 조직과 파트너십을 맺고 위탁 운영하기도 하죠. 이런 위탁용역사업은 제도와 관습에 따라 비영리 조직을 수탁사 자격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영리 조직이 공익 활동에 전문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 보장된 공익성으로 사회적 신뢰를 갖췄기 때문인데요. 공익 활동 영역에서 영리 기업보다 비영리 조직이 우위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비영리 조직의 입장에서 위탁용역 사업은 정부와 지자체, 기업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을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대중 혹은 사용자 그룹과의 연결이 수월합니다. 그리고 조직의 고정적인 인건비 재원을 확보하여 안정적으로 공익 활동을 펼칠 기회가 될 수 있죠. 위탁용역사업으로 공익 활동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영리스타트업 사례로 ‘사단법인 니트생활자(이하 니트생활자)’와 ‘사회적협동조합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이하 지소행)’ 두 조직을 소개합니다.‍ ‍ 2019년 작은 프로젝트로 시작했던 니트생활자는 무업기간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는 청년들이 연결되는 다양한 커뮤니티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고립/은둔 청년 이슈가 대두하기 전부터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ning) 상태의 청년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주고, 이들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2023년까지 다양한 배분/지원사업을 경험하며 청년 이슈에 대한 전문성 향상과 조직 성장을 이뤄냈고, 이를 기반으로 2024년에는 ‘인천청년공간 유유기지 강화’의 운영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지역으로의 사업 확장의 시작점이 되었고, 염원했던 무업청년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하는 기회였습니다.‍ ‍‍ 지소행은 종이팩과 커피박 등 재활용률이 낮은 카페 자원을 수거하여 자원순환 활동을 중심으로 시민과 함께 환경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소행도 2021년 서촌 카페들을 돌며 종이팩을 수거하는 봉사활동에서 시작했는데요.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카페 자원 수거사업을 시작하면서 서울시 중구, 성동구, 마포구, 은평구 등 지자체와 차례로 커피박 수거 위탁용역을 체결하여 안정적인 수익 구조와 사회적 가치 창출 기반을 동시에 마련한  케이스입니다. 위 두 사례는 사용자의 경제적 능력이나 지불 동기가 부족하여 영리 비즈니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를 비영리 조직의 공익 활동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각각 청년경제활동인구 감소와 저조한 카페자원 재활용률이라는 사회문제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낮추고자 하는 지자체가 지불 주체가 되고, 비영리 조직은 효과적으로 공익 활동을 수행하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죠. ‍한편, 사업비 규모가 큰 위탁용역사업은 위탁사 선정에서 수탁사의 조직 역량을 중요하게 평가하여 아직 사업수행 경험과 조직원 전문성이 부족한 초기 비영리 조직이 도전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요. 어느 정도 유관 경력과 네트워크를 마련한 뒤에 도전해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저는 위탁용역사업이 비영리 조직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공익 활동 운영의 기반이 되는 동시에 해당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죠. 위탁용역사업 또한 공익 활동이다 보니 자체적으로 공익 활동을 별도 기획하여 운영하는 것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입니다. 영리 스타트업이 당장의 수익이 되는 외주용역에 치중하다, 자체 제품 개발에 소홀해지는 것과 비슷하죠. 따라서 위탁용역사업으로 우리 조직의 사업 역량과 신뢰를 향상시켰다면, 그 이점을 잘 활용하여 독립적인 활동을 위한 역량과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훗날 외부 자원 없이도 단단하고 지속 가능한 공익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조직원의 역량 향상과 기부 모금이나 수익 사업 등 수익원 발굴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 ④ 직접 영리 활동으로 버는 ‘수익사업’ ‍마지막 수익사업은 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죠. 앞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수익사업의 이익을 공익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재투자한다면, 비영리 조직도 영리 기업과 다르지 않게 대부분의 수익사업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무관청 신고, 이사회 승인 등 일련의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요.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익 창출로 경제적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소셜벤처, 스타트업 등 영리 기업보다 비영리 조직은 시장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습니다. 조직원의 동기 부여가 상대적으로 불리하여 인재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미래 이익 배당이나 지분을 담보로 하는 투자 유치가 불가능하니 신규 사업 및 사업 확장을 위한 재원 조달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제도적으로 이런 불리한 지형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공익 목적으로 사용할 수익에 대한 법인세 감면, 재산세, 취득세 등 지방세 감면, 공익 목적 서비스 매출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정부조달 우선구매 등 비영리 조직만을 위한 제도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죠. 또한, 사업 특성에 따라 비영리 조직만의 높은 공익성을 소비자에게 전략적으로 소구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직접 영리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다른 방법으로 얻은 수익에 비해 그 사용이 자유롭습니다. 기부금은 기부금품법에 따른 사용 제한이 있고, 배분/지원사원이나 위탁용역사업은 그 나름의 사업비 사용 규정이 마련입니다. 때문에 비영리스타트업 ‘사단법인 피치마켓(이하 피치마켓)’처럼 조직의 공익 활동을 잘 수행하기 위해 수익사업을 주 수익사업으로 선택한 사례도 있습니다. ‍2014년부터 시작한 피치마켓은 발달 장애인이나 경계성 지능인과 같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쉬운 글 콘텐츠를 제작하는데요. 설립 초기의 장애인 복지 관련 배분/지원사업으로는 인건비를 전체 사업비의 15%밖에 사용할 수 없는 제한 규정이 있어 쉬운 글 콘텐츠 연구 개발을 위해 사업비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 이처럼 장애인의 일회성 문화활동 지원은 가능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느린 학습자의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쉬운 글 콘텐츠 연구 개발은 불가능한 배분/지원사업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피치마켓이 선택한 것이 바로 수익사업이었습니다. 쉬운 글 도서나 월간지, 특수교사를 위한 교육자료를 판매하는 수익사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습니다. 피치마켓은 비영리 조직이 수익사업으로 수익 창출과 동시에 공익 활동을 수행하는 이상적인 ‘사회적기업’ 모델로 볼 수 있는데요. 비영리 조직도 인증 요건을 갖추면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습니다. 피치마켓 또한 사회적기업 인증을 취득하기도 했죠. 저는 영리 기업보다 비영리 조직이 사회적기업 모델에 적합한 법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자 유치나 큰 규모의 이익 배당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적기업 비즈니스 모델은 비영리 조직의 제도적 혜택을 활용했을 때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부 모금사업, 배분/지원사업 등 다른 방법과 혼합하여 조직의 자원 조달 방법을 다원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팩트 비즈니스와 사회적기업을 새롭게 시작하시려는 분들이라면 법인격으로서 비영리를 고려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 ‍ 우리는 돈 잘 버는 비영리 조직이 필요합니다. ‍ 긴 글을 읽으며 비영리 조직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적합한 법인격이 아니라는 것은 실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비영리 조직이 공익 활동을 지속할 좋은 기회와 방법들도 존재한다는 희망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새롭게 시작하는 비영리 조직이라면 ‘배분/지원사업 → 기부 모금 → 위탁용역사업 → 수익사업’의 순서로 시도해 보기를 권합니다. 우선, 공익 활동 아이디어를 검증하기 위해 배분/지원사업의 자금과 교육을 활용하여 시행착오를 줄이고, 우리 공익 활동의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여 적합한 기부 모금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축적한 전문성과 공익 활동 경험을 기반으로 위탁용역사업에 지원하여 조금 더 큰 규모의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비영리 조직이 자체적인 수익사업으로 얻은 기금으로 더 독립적이고 혁신적인 공익 활동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위치를 목표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비영리 조직에 만능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은 없습니다. 공익 활동의 특성과 주어진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벌기 위한 특수 여건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비영리 회계와 관련 규정을 잘 숙지해야 컴플라이언스 리스크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고, 비영리를 지원하는 공공/민간의 자원과 제도적 혜택을 잘 알아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돈 잘 버는 방법을 고민하는 비영리 조직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희망합니다. 비영리 조직이 돈을 잘 벌어서 더 큰 사회혁신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 비영리 조직에 도전하는 사람도 늘어날 테니까요. 비영리를 꿈꾸는 사람이 늘면 유관한 자원과 혜택도 함께 늘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비영리 조직이 확장되는 선순환이 우리가 꿈꾸는 더 나은 세상에 한 걸음 가깝게 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 ‍ 글 | 나민수 ‍ 비영리 조직이 선한 일을 잘하게 돕는 '비영리 액셀러레이터'이자, 벤처 투자 기법으로 임팩트 기부를 돕는 '벤처 필란트로피스트'입니다. 아산나눔재단에서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사업을 담당하며 스타트업 성장 전략과 근거 기반의 임팩트 커뮤니케이션으로 비영리 조직이 효과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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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심"이 그래서 뭔데요?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이 그래서 뭔데요? by 🥨채원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는 말이죠. “인간 중심의 AI” — 언뜻 봤을 때 좋아보이긴 하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에서는 인간 중심의 AI라는 개념 자체가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하나의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새롭게 등장하여 아직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웠다고도 볼 수 있고요. 이런 경우, 일단 이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분석하면 조금 더 명확하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방식을 사용하여, 학계에서 쓰이는 인간 중심의 AI라는 개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되는지 알아본 연구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같이 읽어보려고 가져온 ‘인간 중심의 인공지능에서 무엇이 인간 중심적인가?: 연구 지형 지도‘라는 제목의 논문입니다. 해당 논문은 2023년에 CHI (Conference on Human Factors in Computing Systems)라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의 학술대회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저자들은 ‘인간 중심의 AI’ 혹은 ‘인간 중심의 머신러닝’을 키워드로 하는 (논문 작성 당시 2022년 7월 기준) 이천여편의 논문 중, 몇 단계의 필터링을 걸쳐 최종적으로 431편의 논문을 분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 중심의 AI라는 개념이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저자들이 분석한 논문을 기반으로 만든 지도를 같이 살펴볼까요? 여기서 색깔은 각각의중심 주제를, 크기는 해당 주제에 속하는 논문의 비율을 보여줍니다. 오른쪽 하단의 가장 큰 파란색 원에서 보여주듯이, 인간 중심의 AI 연구 중 절반 정도는 인간 중심의 접근방식을 사용한 디자인 혹은 평가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였습니다. 여기서 인간 중심의 접근도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부 연구는 AI가 사용되는 시스템이 사용자 (안무가나 방사선 전문가, 임산부 등)를 염두해 둔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해당 AI를 ‘인간 중심적’이라고 일컫습니다. 이 외에도 왼쪽 하단의 녹색 부분이 나타내는 설명 가능하고 이해 가능한 AI 연구가 20% 정도, 왼쪽 상단의 분홍색으로 표현된 AI와 인간이 같은 팀으로 협력하는 시나리오의 연구가 20%정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오른쪽 상단의 다양한 노란색 원들은 공정성이나 편향 등을 연구하는 등 다양한 접근 방법의 윤리적 AI 연구를 나타냅니다. 저자들이 논문을 작성했던 2022년 여름에서 2년 이상 지난 지금 이러한 주제의 연구는 훨씬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지금도 이와 같은 비율로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헌 분석은 인간 중심의 AI라는 분야 안에 얼마나 다양한 주제가 공존하는지 보여줍니다. 여전히 알쏭달쏭한 인간 중심의 AI라는 개념이지만, 앞으로는 해당 키워드를 들었을 때 이 지도를 떠올리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좀 더 명확하게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 특정 기술이 ‘인간 중심적’이라고 할 때, 누군가는 그저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했다는 의미로 쓰기도 하고 누군가는 인간과 AI가 같이 무언가 한다는 의미로, 혹은 AI를 둘러싼 윤리, 법리, 신뢰의 문제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는 것을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저자들은 인간 중심의 AI라는 단어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제공합니다. 인간 중심의 인공 지능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간 사용자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지원하는 동시에 데이터의 기본 가치, 편견, 한계, 데이터 수집 및 알고리즘의 윤리를 공개하여 윤리적이고 상호 작용적이며 논쟁 가능한 사용을 촉진합니다.” (Capel & Brereton, 2023, 13쪽) 독자분들은 이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글을 읽기 전에 어렴풋이 갖고 있던 생각과 비슷한가요? 앞으로도 제가 재밌게 읽은 논문을 종종 가져와보도록 할게요! 지적장애인과 AI 기술의 바람직한 관계는? by 🤖아침 나와 AI 기술의 관계도 복잡한데, 지적장애인과 기술의 관계라니요. 장애인 당사자도, 관련 전문가도 아닌 입장에서 상당히 막막했지만 지난 여름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열린 공익활동 모임에서 이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지적장애인 아들을 둔 모임장님이 제시한 목표는 "인공지능 시대에 지적장애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도움을 구하고, 시작하는 것". 기술의 희망찬 약속을 의식적으로 경계해온 저로서는 처음에 다소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임에서는 폭넓은 관점을 다루며 기술이 장애인의 삶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부터 오히려 소외를 강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편하게 논의했는데요. 그럼에도 기술 비판적인 이야기를 꺼낼 때면 문득 작동하는 자기검열, 장애인과 AI의 긍정적 전망에 내가 뭐라고 찬물을 끼얹나 싶은 마음을 다스려야 했습니다. 불확실한 마음을 다스리고 갈피를 잡기 위해서 관련 자료를 함께 찾아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는 최근 AI 기술과 지적장애에 연관되는 사례를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시각 접근성을 개선하는 서비스나, 수어를 인식하는 컴퓨터 비전 기술, 언어 장애인을 위한 개인화된 음성 인식, 신체/인지 장애를 보조하는 외골격 로봇 등 각종 보조 기술을 테크 기업이 즐겨 홍보한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의외였습니다. 지적장애와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례 중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발달장애 진단 및 돌봄을 돕는 AI 모델이나 지적장애인 교육을 위한 맞춤형 챗봇 정도였습니다. 이같은 사례들은 주로 장애인을 기술의 혜택을 받는 수동적 수혜자로 상정하고 있어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기술 수혜자보다 사용자로서 장애인 당사자의 삶과 기술이 연결되는 경험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거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 결과물로 (경도)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AI 워크숍을 설계하고 진행해보게 되었습니다. 10월 8일에 모임 과정과 결과를 (모임장님이) 공유하는 오프라인 행사가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들러주세요. 보다 자세한 기록도 별도의 글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 소식- 당신 옆의 공.공.공. (2024-10-08)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AI 윤리와 가이드라인 (2024-10-21, 온라인) 국립중앙도서관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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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추비 췍!
업추비 췍! - '먹기'만 하는 업무추진비 2024.09.25. 구독자님, 지난해 띠모가 열심히 정리했던 업무추진비 기억하시나요? 대전 지방의회 업무추진비 내역을 점검해 3차례에 걸쳐 보냈었는데요. 이번에는 디트뉴스24와 시민과 함께 대전 자치단체장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점검했어요. 지난번과 동일하게 업무추진비 내역을 점검하고, 의심 가는 내역은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한번 더 점검했어요.  그리고 점검 기준은 청탁금지법과 지방자치단체회계에 관한 훈령을 확인했고요. 기간은2022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예요. 업무추진비는 어떤 경우에 사용하면 안 되는 거야? <지방자치단체 회계관리에 관한 훈령>에서 업무추진비 사용 제한하는 항목이 있는데요. 내용을 함께 살펴볼게요. (1) 법정공휴일 및 토ᆞ일요일은 사용(2) 관련 근무지와 무관한 지역(3) 비정상시간대(23시 ~ 다음날 6시)(4) 사용자의 자택 근처(5) 주류판매를 주 목적으로 하는 업종에서 사용 그리고 '간담회 등 접대비'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인 1회당 4만원 이하 범위에서 집행해야 한답니다. 훈령에서는 4만원, 청탁금지법은 3만원이에요(현재는 5만원 이하)위에서 언급한 시간, 장소에서 사용하려면 업무 관련성이 입증되는 객관적인 증빙 서류가 있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어요. 만약 다른 지역에서도 사용하려면 출장 명령서 등의 증빙 서류가 있어야 하고, 4만원 이상 사용하려면 추가 집행 이유가 담긴 증빙 서류가 있어야 해요. 우선 대전시청과 대전 동구청은 의심 내역이 없었어요. 이장우 시장은 과거 업무추진비 집행품의 과정에서 공문서 위조한 내용으로 처벌 받은 적이 있어요. 현재 공개 기준으로는 훈령과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보여요. 대전 동구청은 지난해 동구의회에서 업무추진비 내역을 점검 한 바 있어요. 동구청장의 사용내역에서도 특이점을 찾을 수는 없었어요. 다만 잘못 사용한 내역이 없어보일지라도 이것이 잘 사용하고 있다라고만 판단하기에는 어려워요. 공개 내역은 한정 되어 있고, 영수증 내역을 건 수 마다 확인 하기도 어렵거든요. 나중에 업무추진비 내역을 보시다가 이상한 점이 있다면 띠모에게 한번 알려주세요!그럼 이제 남은 4개 구청장의 사용내역을 살펴볼까요? 1) 대덕구청 먼저 대덕구청장 사용 내역이에요.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한 건은 1건이에요. 한번 살펴보면요. <대덕구청장 업무추진비 주말 사용 사례> 띠모는 어떤 부분에서 의심 했을까요? 사용한 2022년 7월 9일은 토요일이에요. 토요일은 지방자치단체회계에 관한 훈령에 따르면 사용이 제한되고 있죠. 그래서 해당 내역에 대한 공식적인 증빙자료를 요청했어요. 최충규 대덕구청장의 주간 행사 계획이에요. 7월 9일 토요일, 대덕구청장의 공식 일정은 오후 1시부터 시작이에요. 오전은 별 다른 계획이 없는데, 어떻게 이른 아침 의전 수행을 했다고 하는 걸까요? 이에 대한 소명을 요청했어요.  그리고 대덕구청장은 다른 자치단체장들에 비해 주말 사용이 월등히 높아요. 물론 공식적인 증빙자료만 있다면 사용을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업무와 사안 등에 사용하는 것이 맞아보여요.  2) 서구청 서구청 업무추진비 법령과 훈령 위반 의심 내역이이에요. 서구청은 공개부터 부실했는데요. 한번 볼까요? <서구청장 업무추진비 사용시간 미기재 및 식사 가액 위반 사례> 서철모 서구청장 업무추진비 공개 내역 중 의심 내역을 가져왔어요. 무언가 빠져 있죠? 2022년 7월 서구청장 임기 시작일부터 사용 시간을 전부 공개하고 있지 않아요. 시간 공개도 필수에요. 훈령에서 23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사용을 제한하고 있죠? 이 시간대를 제한하는 이유는 업무 연관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거예요. 밤 11시부터 다음날 6시에 어떤 업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이러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을 공개하는 것은 필수죠. 그리고 언론사 간담회에서 1인당 3만원 이상의 식사를 한 것을 확인 했어요. 청탁금지법에서 1인당 식사 가액은 3만원 이하로 사용하게끔 되어 있죠? 해당 공개 내역이 맞다면 명백히 법령 위반 사안이죠. 그리고 올해 1월 서구청장은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요. 4번을 살펴보면 출장지에서 1인당 식사금액(훈령 4만원, 청탁금지법 3만원)기준을 훌쩍 넘겨 사용했어요. 출장이라고 해서 해당 금액을 넘겨서 사용 하는 것은 안 되죠. 해당 내역들에 대해 소명을 요청했어요. 3) 유성구청 이번에는 유성구청 업무추진비 법령과 훈령 위반 의심 내역이이에요. 한번 살펴보면요. <유성구청장 업무추진비 사용 시간 위반 및 식사 가액 위반 사례> 정용래 유성구청장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서 언론사 관계자 등과의 식사에서 1인당 3만원을 초과한 내역을 확인 했어요. 1번과 4번 내역인데요. 둘 다 3만원이 넘었죠? 그리고 23시를 넘어 결제한 내역도 확인 했는데요. 23시 33분, 23시 7분으로 두 건의 내역을 확인 했어요. 결제한 시간이 23시를 조금 넘었다고도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늦게 결제 할 수 밖에 없었던 증빙 서류 등이 필요하겠죠. 위 내역에 대한 소명도 요청했어요. 4) 중구청 드디어 마지막 중구청이에요. 중구청도 법령 및 훈령 위반 의심 내역이 있었는데요. <중구청장 업무추진비 식사 가액 위반 사례> 중구청은 지난 4월 재보궐선거로 당선된 김제선 청장의 사용 내역만을 살펴봤어요. 그 전인 김광신 청장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이 됐었죠. 내역을 살펴보면요.1, 2, 4번의 경우 해당 식당은 1인당 3만원 금액을 맞추기 어려운 식당으로 확인 했어요. 1인당 약 4만원에 가까운 식당에서 3만원으로 어떻게 식사를 했는지 확인이 필요해요. 그리고 3번의 경우 언론사 간담회로 1인당 3만원 넘게 사용한 것을 확인 했어요. 지난 지방의회 점검 때도 그렇고 왜 계속해서 이 3만원 초과금액이 등장하는 걸까요?부패 우려가 있는 식사 대접의 경우 더 꼼곰히 사용하고 공개하는 것이 맞아요. 경각심도 필요하고요. 많은 건수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부분이에요. 그래도 좀... 잘 공개하고 있는 곳이 있을까? 그래도 잘 공개하고 있는 곳이 어디 있을지 띠모가 한번 더 찾아 봤어요. 먼저 대전지역에서는 대전시의회와 대덕구의회와 동구의회에요. <대전시의회 부서별 업무추진비 공개 사례> 대전시의회는 각 담당과별로도 공개를 꾸준히 하고 있어요. 각 부서별로도 공개를 하고 있는 점은 다른 의회와는 차별점이라고 보여요. <대덕구의회 업무추진비 주소지 공개 사례> 대덕구의회 업무추진비 공개내역인데요. 원구성과는 별개로 사용 장소의 주소지도 공개하고 있어요. 주소지를 공개하게 되면, 보다 정확한 위치, 자택과의 거리 등을 찾기 쉬워지겠죠?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어요. 집행 목적이 의정활동 보좌 직원격려로 일관되게 계속해서 부실해요. 집행 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돼요. <동구의회 업무추진비 주소지 공개 사례> 위 내역은 동구의회 업무추진비 공개내역이에요. 동구의회도 사용장소의 소재지를 적고 있죠. 그리고 같은 목적으로 사용했더라도 '해당 장소 외 1곳' 으로 적지 않은 것도 투명한 공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집행목적도 비교적 구체적이죠? <서울 관악구청장 업무추진비 집행장소 상세주소지 공개 사례> 서울 관악구청 업무추진비 공개 내역이에요. 차이가 보이나요? 결제 방법도 제로페이, 카드 결제 등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있고요. 집행 장소도 사용한 장소의 주소도 상세하게 적고 있어요. 집행 목적도 비교적 상세하고요. 이정도 수준으로라도 공개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가 될 거 같아요.점검 이후 각 구청에 소명자료를 받고 정리 중에 있어요. 정리 결과는 나중에 변화 된 내용까지 한번에 공유할게요!오늘은 다시 업무추진비 내역을 점검 해봤는데요. 업무추진비가 금액적으로 크지는 않을 지라도, 단체장들 연봉과 비교해보면 비슷하거나 많아요. 그만큼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되는 돈이에요. 앞으로 자치단체, 지방의회, 출자, 출연기관 업무추진비가 제대로 사용되고 투명하게 공개되는지 계속 함께 지켜봐요. . . 여러분이 살고있는 지역에서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이 업무추진비를 어떻게 쓰고 있나요? 각 자치단체 또는 지방의회 홈페이지에 전부 공개되어 있으니, 여러분도 한번 확인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글은 뉴스레터로 발행된 지난 띠모크라시의 일부입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띠모크라시 모아보기🧡 띠모크라시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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