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2
[이태원 참사] 참사 앞에서…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날 일찍 잠이 들었다. 핸드폰을 침실 밖에다 뒀기 때문에 알람이나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한 핸드폰에는 수십 통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긴급사고, 교통통제, 인명사고, 접근자제… 불길한 마음에 서둘러 포털에 들어가 뉴스를 확인했고 동거인에게 소리 지르듯 외쳤다.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나 봐!" 축제를 즐기러 갔던 사람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보호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정치  우리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약칭 재난안전법)은 '다중운집인파사고' 등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하고 있으며(제3조 1항 나목),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제4조 제1항).  이태원 참사는 정치가 법률을 통해 스스로 규정해놓은 일을 그대로만, 제대로만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반드시 막아야만 했던 참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꼴을 볼 수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직후 현장에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충분히 배치되어 있었느냐는 질문에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며, 우리의 안전은 어떻게 지켜야 하나.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핼러윈 축제에 관한 대책 회의가 있던 날에 회의 참석을 부구청장에게 떠넘기고, 용산구에서 열린 바자회와 야유회에 참석한 것이 드러났다. 이전에는 구청장이 주재해서 경찰, 소방, 인근 상인들과 대책을 논의하던 회의였다. 참사 당일에도 다른 지역의 초청을 받아 방문했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고 집안 제사 때문에 간 것이었음이 들통났다. 그런데도 구청은 메뉴얼대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고 항변했다. 심지어 핼러윈 축제는 “축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라는 기괴한 답변을 내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가 스스로 마련한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경찰력 투입 기준을 묻는 말에 불쑥 끼어들어 영어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가 있다면 굉장히 많은 경찰 인력을 투입해야겠죠”라고 농담을 던졌다. 농담을 말이다! 현장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그렇지 않나요?”라고 재차 말하며, 자신의 유머를 받아주지 않는 것에 짜증을 내는 듯했다. 한 외신 칼럼은 “총리의 무신경한 유머가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얼마나 존중 없이 대해지는지 (보여준다)”라고 썼다.   무능력과 무책임에 면죄부는 없다  2024년 9월 30일, 법원은 1심에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해 금고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안일한 인식으로 대비에 소홀했고 결국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702일째…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첫 재판이었다.  하지만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똑같은 재판부였지만 판결이 달랐던 이유는, 용산구청이 안전관리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판결대로라면 앞으로 우리는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곳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우리 헌법과 재난안전법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것이 정치의 무능력과 무책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참사 앞에서… 책임을 느낀다  얼마 전 치러진 ‘서울세계불꽃축제’ 현장에는 경찰이며 구청이며 다 나와서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수고하고 잘하는 일이다. 그래! 2년 전에도, 2년 전에도 반드시 이렇게 해야 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2022년의 여름, 나는 지방선거에 출마했고 용산구 지방의원에 도전했다. “필요할 때 곁에 있는 의원, 소중한 것을 지키는 의원이 되겠다”라는 것이 선거 슬로건이었고, 선거운동의 처음과 마지막에 ‘땡땡거리’라고 불리는 백빈건널목 기찻길에서 안전을 지키는 역무원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비록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출마했던 곳에서 일어난 참담하고 비통한 희생 앞에 일편의 책임을 느낀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반드시 막아야 했던 일을 막지 못해 죄스럽다. 의원이 되었다면 구청의 미흡한 준비를 지적해서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때마다 한 번 더, 돌아가신 분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갖고, 다치신 분들의 온전한 회복을 빌 뿐이다.
·
<타인의 삶>을 보고 듣기만 해도 변화가 생긴다
극우에 열광한 구 동독 지역 사람들 최근 독일의 선거에서 특이한 결과가 나왔다. 구 동독 지역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가 큰 지지를 받은 것이다. 지역마다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호남과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양분화 된 결과는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독일 결과가 놀라운 건 왜 극우 정당이냐는 것.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구 서독 지역과 구 동독 지역의 경제적 격차가 여전히 심하다는 것. 물가와 임금 등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고, 그때문에 구 동독 지역 사람들은 서독 지역 사람들과 거리감을 느낀다는 것. 둘째, 난민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는 것. 메르켈 총리 당시 이백 만이 넘는 난민을 수용한 결과 구 동독 지역 사람들이 오히려 소외를 겪었고, 극단적으로 난민에게 터전을 뺏기는 지경까지 갔다는 것. 이에 대한 반감으로 “난민은 약탈자, 난민을 추방하자”고 외치는 AfD에 표를 줬다는 것이다. 양극단이 비단 독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독일 선거 결과는 외부적으로는 하나가 됐을지라도, 내부적으로는 하나가 되지 못한 독일의 현실을 보여준다. 남의 나라 선거 결과를 보면서, 서로가 극단적으로 달랐던 집단 간의 융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야기이기도 함을 다시 떠올렸다. 사실 우리나라야말로 정치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 수도권과 지방 갈등, 빈곤층과 중산층 갈등, 근로자와 고용주 갈등, 노인층과 젊은층의 갈등, 종교 갈등이 만연한 나라다. 개인적으로 요즘에는 ‘역사관 갈등'도 나타나는 것 같다. 이러한 갈등은 인식 정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올해 3월에 발표한 <2023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사회갈등에 대한 인식을 뚜렷하게 하고 있었다. 사회갈등 인식률을 높은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① 보수와 진보(82.9%), ② 빈곤층과 중상층 (76.1%), ③ 근로자와 고용주 (68.9%), ④ 개발과 환경보존 (61.4%), ⑤ 수도권과 지방 (56.8%), ⑥ 노인층과 젊은층(55.2%), ⑦ 종교 (42.3%), ⑧ 남녀(42.2%) 위 내용은 “갈등 정도가 어느 정도 심하다고 생각하는 지에 대해 ‘약간 심하다'와 ‘매우 심하다'는 응답자의 비율'이다. 특히 보수와 진보 등 정치 이념 갈등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또다른 통계에서는 이런 이념 갈등이 서로를 마주치지도 못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3년 12월에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조사 및 대응방안(X) - 공정성과 갈등 인식>에 따르면, 전체 조사 응답자 중 58.2%가 “정치 성향이 다른 이와 연애・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33%는 “정치 성향이 다른 친구・지인과 술자리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으며, 71.4%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함께 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한국, “나와 다르면 마주치기도 싫다" 통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마주치기도 싫다.” 이다. 우리니라 국민 중 절반 이상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앞서 “심각하다"고 답변한 갈등이 더욱 심화될 뿐이다. 이렇게 갈등만 심해서, 과연 우리가 직면한 불평등과 양극화,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정말 의문이 든다. 불평등, 양극화, 기후위기 모두 공동체 문제다. 공동체의 문제는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공동체가 없다는 게 통계가 보여주는 진실이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서로 마주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알아가야 한다. “이런 삶도 있구나, 저런 삶도 있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이, 저렇게 사는 사람이, 이런 삶에서는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혹은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구나.”를 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타인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타인의 삶>을 감청하는 사람들 과거 구 동독에는 이렇게 <타인의 삶>을 감청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가의 신념이 곧 자신의 신념인 비밀경찰들이다. 이들은 자국민들 삶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감청했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사상적 오류가 발견되면 곧바로 자택에 침입해 감옥으로 보냈다. 비즐러는 동독 비밀경찰로, 경찰대학에서 자신이 직접 심문한 사례를 들려주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무표정의 비즐러는 학생들에게 “최소 40시간 정도 잠을 재우지 않는 강도 높은 심문을 해야한다.” 라며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은 진술 내용이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일관되며, 분노하지도 않고, 오히려 슬퍼한다. 때문에 이런 결정적 증거를 잡았을 때가 더욱 강도를 높여야 할 때”라고 가르친다. 40시간을 재우지 않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나요?” 라는 학생의 질문에 “사상죄를 범하는 사람들은 악랄하다."리며 “여러분은 도청이란 작업에서 항상 사회주의의 적들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적들보다 더 악랄해 져야 한다는 의미다. 당에 대한 충성만이 가득한 비즐러에게, 그의 상관이자 친구인 ‘그루비츠'는 ‘햄프셔 장관'이 참관하는 연극에 가자고 한다. 햄프셔 장관은 일찍이 문화계를 ‘정화'했다고 평가받는 권력자다. 그루비츠의 권유로 간 극장에서 비즐러는 서독에서도 명성 높은 극작가 ‘드라이만'이 만들고, 그의 애인인 배우 ‘크리스타'가 주연을 맡은 연극을 관람한다. 연극을 보고 난 뒤, 비즐러는 ‘드라이만'이 의심스럽다며 감시가 필요하다고 그루비츠에게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감시를 자청한다. “예술로 사람이 변할 수 있다. 모두의 신념이 같을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낸 드라이만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햄프셔 장관은 이를 승낙하고, 그 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집 곳곳에 도청 장치를 설치.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도청한다. 친구들과의 대화, 생일 파티에서의 작은 말다툼, 애인 크리스타와의 육체 관계, 옆집 아줌마에게 한 “넥타이 좀 매주실래요?” 라는 말, 자신의 정신적 지주가 자신에게 한 말 등등 드라이만이 말하고 듣는 모든 것들은 감시되고, 도청되며, 기록된다. 당연히 드라이만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음악을 진정으로 들은 사람이, 과연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감청이 경청으로 비즐러는 자신의 부하와 교대하며 밤낮없이 드라이만을 감청한다. 그러던 어느날 드라이만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의 정신적 지주인 스승의 ‘자살' 소식이었다. 그의 스승은 문화계 명성이 높은 연출가였지만,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찍혀 더이성 연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드라이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스승의 죽음에 비참해진 드라이만은 피아노에 앉아 과거 소련의 레닌이 “이 음악을 계속 듣고 있으면 혁명을 완수할 수 없을 것.” 이라고 했던 베토벤 소나타 제 23번, ‘열정'을 연주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는 애인 크리스타에게 말한다. “이 음악을 진정으로 들은 사람이 과연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무표정 하던 비즐러에게 약간의 표정 변화가 나타난 순간이었다. 스승의 죽음으로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잃었던 드라이만은 피아노 연주 이후 다시 글쓰기에 전념한다. 그리고 그를 감청하던 비즐러도 감청의 내용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동독 정부가 숨기는 ‘자살자 수' 통계 발표에 대한 비밀 대화를 공동 작품 집필로 둔갑시키고, 서독 인사와의 불법 내통에 대해서도 “이번만 눈 감아주지.” 라며 넘어간다. 상관인 ‘그루비츠'에게도 “정황이 없는 것에 밤낮 허비하고 싶지 않다. 혼자서 하고 싶다.”며 허위로 보고한다. 비즐러에 대한 그루비츠의 의심은 점차 커지고, 증거를 잡아 오라는 상부의 압박도 거세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한 특단의 조치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에게 이루어지고, 그 중심에 있던 비즐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어떤 선택인지는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가 느낀 감정을 느끼는 것 표정처럼 감정도 없을 것 같은 비즐러는 감청을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 중간 비즐러는 아무도 없는 드라이만의 집에 혼자 들어간다. 이유는 없었다. 도청 설치와 내부 조사를 위한 긴박함과 긴장감이 없는 평온한 시간이었다. 비즐러는 거기서 시집 한 권을 가지고 나오고, 그 시집을 소파에서 누워 읽는다. 사랑에 대한 시였다. 영화에서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비즐러는 그 시를 읽으며 자신만의 사랑에 대한 상상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비즐러는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존경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동독이라는 감시환경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것인지를 깨달아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것도. 아마 이것이 그가 했던 어떤 선택의 이유일 것이다. 듣기만 해도 이해에 발을 디딜 수 있다 비즐러는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듣고 지켜봤다. 감청과 감시가 목적이었다 했을지라도, 그저 듣고 보는 행위만으로도 그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갔다. 비즐러의 그런 모습은 갈등이 심화되고, 나와 다른 사람은 마주치기 조차 싫다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그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이해의 시작이라는 것, 우리에게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과 공간에서만이라도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야한다는 것. 서로간의 경계를 명확히 그어놓고 서로의 입장만 계속해서 이야기 해서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내가 영화를 보고 가장 크게 느낀점이다. 개인적으론 이념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경계없이 모여 안전하다는 느낌아래 서로의 생각과 경험,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시민사회와 시민단체가 해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정치적 이념과 경제적 이득에 치우진 정부나 경제, NGO가 아니라 정말 우리가 직면한 공동체 문제에 주목하고,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기 위해 대화하자는 그런 시도 말이다. 그런 대화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를 회복하고, 공동체가 직면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광교를 사이에 둔 세 개의 국기 여담이지만 지난주 일요일(10월 6일) 서울 종각역 일근에서 세 개의 국기를 봤다. 종로타워빌딩 인근 광교를 사이에 두고 두 집단이 집회를 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국기가 펄력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였다. 각자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듣지는 않았다. 십중팔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전쟁에 관련된 것이리라. 광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이념과 생각으로 펄럭이는 국기들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참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풀려야 되는 갈등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갈등은 어딜가나 있다. 비극적인 건 그 피해를 아무 죄없는 사람들이 치른다는 것이다. 부디 잘 해결되어, 더이상 무분별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으면 좋겠다.
·
1
·
일광학원 소송 첫 재판,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습니다[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12화]
제목 그대로, ‘보복소송’을 건 일광학원과 싸우러 갑니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손해배상 금액만 3000만 원 규모의 소송입니다. 셜록은 지난 1월부터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법인 일광학원과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74)의 비리를 폭로한 공익제보자들이 5년째 겪는 불이익을 상세히 보도했습니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일광학원은 서울 성북구에 있는 우촌초등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입니다. 지난해 말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은 입을 모아 걱정했습니다. “기자님, 기사가 나가면 이규태 회장은 분명 기자님을 고소할 겁니다.” 괜한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보도 이후, 일광학원과 이규태 회장에게 편지(?) 세 통을 받았습니다. 3000만 원짜리 소장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난 4월 일광학원은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셜록이 “허위 보도”를 했다는 주장입니다.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정정보도문을 하나의 기사로 작성해 게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위자료 명목으로 3000만 원도 청구했습니다. 일광학원의 주장은 전혀 새롭지 않았습니다. 앞서 셜록에게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 있습니다. 민사소송 소장 접수 한 달 전, 일광학원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서를 냈습니다. 그때도 일광학원은 ▲3000만 원 손해배상 ▲기사의 열람·검색 차단 ▲정정보도문 게재를 요구했습니다. 1차 조정기일에는 일광학원 측이 출석하지 않았고, 2차 조정기일 결과 ‘조정 불성립’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이후 일광학원은 조정신청서 내용을 거의 그대로 ‘복사-붙여넣기’ 한 수준의 민사소송 소장을 법원에 접수했습니다. 그 소송의 첫 재판이 바로 오는 16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립니다. 일광학원은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자신들의 뜻대로 조정이 되지 않자, 같은 내용의 소송을 걸어 셜록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보복소송’입니다. 2019년 우촌초 공익제보자 6명이 스마트스쿨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한 뒤, 곧바로 이들을 향한 징계와 해고가 진행됐습니다. 그리고 일광학원과 이규태 회장은 보복성 소송과 고소・고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재단과 이 회장 측이 제기한 소송과 고소・고발은 20건이 넘습니다. 공익제보자들은 물론, 서울시교육청 감사관과 기자들까지 그 대상이 됐습니다. 사건은 대부분 불송치 되거나, 원고 측 패소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기자들과 교육청 감사관까지 고소・고발과 소송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 결과를 떠나 큰 메시지를 줍니다. ‘누구든 공익제보자들의 편을 들면 너희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장인 셈이죠. 그래서 누군가 공익제보자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혹시 나도 고소당하면 어떡하지?’ 하고 주저하고 망설이게 만들려는 의도 아닐까요? “보복소송은 공익제보자를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징계 시도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고, 공익제보자를 지원한 사람, 단체에게까지 제기되어 공익제보자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단절시키기 위한 방법으로도 활용되기에 시급히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참여연대 보도자료 ‘공익제보자 대상 보복소송 대책 마련 시급해’, 2024. 10. 3.) 이번 소송에서 셜록이 질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지난 4월 이규태 회장은 저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했습니다. 그 고소장은 일광학원과 이 회장 측이 보낸 세 번째 편지(?)였습니다. 물론, ‘허위 보도를 통해 이규태 회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그들의 주장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경찰의 ‘불송치’ 결정으로 종결됐습니다.(관련기사 : <이규태 회장은 셜록의 입을 막지 못했다>) 지난 8월에는 일광학원이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제기한 ‘임원취임승인취소’ 행정소송 2심이 선고됐습니다. ‘역시나’ 일광학원 측의 패소. 일광학원 이사회의 자격을 무효화한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서, 앞으로 서울시교육청에 의해 임시이사들이 파견될 예정입니다. 공익제보자 복직 등 우촌초 정상화의 가능성이 열린 셈입니다. 아직도 일광학원과 이규태 회장 측은 한마디의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한 셜록을 향해, 마치 앵무새처럼 “허위 보도”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결과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언론중재위 조정신청-형사고소-민사소송으로 연이어 끌고 가면서 상대를 괴롭히기 위한 수단으로 법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세상에 알렸다는 이유로 ‘보복소송’을 남발하는 행위는 멈춰야 합니다. 셜록은 주저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오는 16일, 셜록은 왓슨 여러분의 마음과 함께 법원으로 향하겠습니다. <일광학원, 보복소송 멈춰!> 챌린지로 셜록을 응원해주세요. <#일광학원, 보복소송 멈춰!> 챌린지 참여 방법 하나. 셜록을 응원하는 문구를 직접 작성하시거나, 아래 이미지를 다운받아서 인증샷을 찍어주세요.(문구 예시 : 일광학원, 보복소송 멈춰! / 우촌초 정상화하라 / 셜록을 응원합니다) 둘. #진실탐사그룹셜록 #셜록응원 #보복소송멈춰, 중 하나의 해시태그를 입력해주세요. 셋. 자신의 SNS 계정에 게시물을 올려주시면 끝!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1
·
AI 법이 없어 못하는 총력전(?)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10월 둘째 주by 🤔어쪈 1. 우리나라 AI 정책 소식 (1): 국가AI위원회 출범 세계 3대 AI 강국을 위한 국가 총력전. 지난 9월 26일 국가AI위원회 출범식에서 위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전쟁에 빗댄 표현으로 국가 AI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30명의 민간위원과 10여명의 정부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향후 정책과제로 구체화될 국가 AI전략을 수립 및 이행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미리 설정한 국가 AI전략의 정책방향은 4대 AI 플래그십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4번에 해당하는 <AI 안전·안보·글로벌 리더십 확보>는 다른 것에 비해 제목에서부터 여러 요소가 혼재된 모습입니다. 올해 11월 AI 안전연구소 설립, 연내 AI 기본법 제정을 언급하고 있으나 그 목적이 안전보다는 글로벌 AI 거버넌스 주도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시의성 있는무엇을 위한 3대 AI 강국인지, 애초에 3대 AI 강국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조차 부족한 청사진이 강제징집령처럼 느껴지는 건 저만 그럴까요? 심지어 각종 수사를 걷어내면 5년전 정부가 발표했던 <인공지능 국가전략>과도 내용이 대동소이한 점은 정책의 효과에도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앞으로 위원회에서 이 총력전의 목적과 수단이 무엇인지 명확히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2. 우리나라 AI 정책 소식 (2): AI 기본법 공청회 개최 정부가 AI를 위한 총력전을 발표한 후 언론의 시선은 국회로 쏠렸습니다. AI 기본법은 언제 만드냐는 지적입니다. 물론 올해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여러 의원이 각기 법안을 발의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간 주무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업무가 지체되었고, 발의안 대부분이 이전 국회에 제출된 내용을 재탕하여 최신 생성형 AI 기술이나 딥페이크 성착취물 등의 현안 반영이 필요해 아직 갈 길이 먼 상태입니다. 지난 9월 24일 국회에서 AI 기본법 공청회가 열린 배경입니다. 여당 국민의힘은 이전 레터에서 해당 법안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중심으로 다뤘던 정점식 의원안을 당론으로 정했습니다. 민주당은 아직 당론을 도출하진 못했으나 의원별 발의안 내용이 대동소이하기에 채택이 오래걸리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더해 공청회에서는 참여연대와 정보인권연구소 등의 시민단체가 준비한 이른바 시민사회안을 함께 논의했습니다. 국회 밖 재촉하는 목소리가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 공청회는 법안의 방점을 산업 진흥에 두고 일단 통과시킬 것인지, 위험 방지를 위한 안전 규제를 보완할 것인지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AI 기본법이 중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일부 의원은 기본법 제정이 정말 시급한지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시민사회안을 제출한 시민단체들은 이후 논평에서 정책입안자의 실질적인 AI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재하다며 이제부터라도 구체적인 쟁점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와중에 AI가 국가의 미래 30년을 좌우할 것이라는 정부가 3개월 남은 올해 안에 기본법이 통과되길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3. 캘리포니아 주지사: ‘규제는 필요하나, 이 법안은 아니다.’ 지난주 AI 윤리 레터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AI 규제 법안 SB1047을 재차 다룬 직후, 개빈 뉴섬(Gavin Newsom) 주지사의 거부권 행사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레터에서 지적했듯 AI 모델 개발자에게 해당 모델의 파생 모델이나 서비스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등 다소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죠. 실리콘밸리가 속한 곳이자 AI 상위 50개 기업 중 32개가 적을 둔 곳인만큼 단순 한개 주의 법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법안이었습니다. 뉴섬 주지사는 성명서를 통해 법안의 방향성과 AI 규제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아래와 같은 이유로 해당 법안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실질적인 위험성보다 비용과 계산 규모에 따라 대규모 모델에만 초점을 맞춰 규제를 도입하여 위험한 소규모 특화 모델을 간과할 수 있음 고위험 환경이나 중요한 의사결정, 민감 데이터 사용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대규모 시스템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함 이를 두고 벤처캐피탈을 비롯한 산업계의 로비가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뉴섬 주지사가 지난 한달여 간 주의회를 통과한 17개의 생성형 AI 규제 법안에 서명한 것을 보면 규제 여부보다 방식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보입니다. 그중에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들도 포함되어 있죠. 동시에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과학적 증거 기반의 생성형 AI 위험 분석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습니다. 보는 눈이 많아 늦지 않게 정책을 도출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
1
·
📰 '정상'을 향하여
꺼진뉴스 다시보자 vol. 14 가을이 깊어지면서,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스치는 거리를 걷다가 금방 지나가버릴 이 계절이 아쉬워 슬퍼지곤 합니다. 올해도 어느덧 100일 남짓 남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빠르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바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00일이란 시간은 여전히 의미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의미 있는 삶의 순간들 속에서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할 기사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는 응급실 대란을 데이터 저널리즘으로 심도 있게 구현한 경향신문의 기사입니다. 조선일보의 기획은 거대 플랫폼 기업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고요. 마지막은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요구하는 정신의학과 전문의의 인터뷰입니다.  짧은 가을의 끝자락에서, 남은 100여 일 동안 우리 사회가 마주한 문제들에 대해 잠시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폴라리스는 그런 여정에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1. 사건과 구조 : '응급실 대란'을 기록하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보면 환자들은 충북 청주에서 서울로, 강원 양구에서 강릉으로, 경남 함안에서 대구로 100km가 넘는 거리를 응급실을 찾아 이동했다. 겨우 응급실에 도착하더라도 수술에 불가해 큰 병원을 찾는 도중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 ✍🏻 황경상·이수민·권정혁 기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가짜뉴스입니다. 죽어 나가요? 어디에 죽어 나갑니까?" '방탄 총리'로 변신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대정부질문 중 한 말입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국민이 죽어 나간다는 야당의 지적이 가짜뉴스라고 맞받은 건데요. <경향신문>은 한덕수 총리의 '가짜뉴스' 발언을 '뉴스'로 반박했습니다. 의료 대란이 200일을 넘어선 가운데, 지난 2월 20일부터 지난달 24일까지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응급실 뺑뺑이' 사례 34건을 분석했습니다. 환자들이 응급실에 도착해 최초 처치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 이송 거절 평균 횟수,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한 사례 등을 지역별로 분석해 디지털 콘텐츠 소개했습니다. 환자 13명이 사망했고 이 중 3명은 10대 미만이었습니다. 이송 시간이나 거절 횟수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은 계산에서 제외했는데도 그렇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주장을 두고 '가짜뉴스'라고 밀어붙이는 정치인을 마주할 때마다 시민들은 주장의 진위를 궁금해합니다. 누구 말이 맞는지 당장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고르고 취재하는 게 언론인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기사였습니다. 최선의 방법이 어떨 때는 데이터가 되고, 또 어떨 때는 최대한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되겠죠. 이번에 <경향신문>이 선택한 방법은 데이터였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응급실 르포를 택할 때, 데이터를 선택한 방식이 신선해 폴라리스 식구분들께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뉴스 보러 가기 🔥 2. 연재·기획 : EU, 유튜브·틱톡 알고리즘도 조준 "최근에는 거대 플랫폼이 필요에 따라 알고리즘을 조작한 사례도 확인됐다. 지난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학자들이 알고리즘과 정치 편향성의 상관관계를 연구할 때, 메타(페이스북 모회사)는 의도적으로 양질의 신문 기사를 알고리즘이 더 많이 제공하도록 해 연구 결과를 왜곡시킨 사실이 밝혀졌다." ✍🏻 이해인 기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저작권 침해부터 마약 거래, 딥페이크 성 착취까지. 전 세계는 범죄와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구글·메타·아마존과 같은 거대 플랫폼은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기능하고 있죠. 지금껏 플랫폼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범죄 행위는 규제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의 <’범죄 방조자’ 거대 플랫폼> 시리즈는 거대 플랫폼의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다룬 기획입니다.  거대 플랫폼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었습니다. 삶에 재미를 더해주기도 했죠.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플랫폼의 세계에 묶어두고, 알고리즘을 통해 그 지배력을 강화해 왔습니다. 알고리즘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끊이질 않습니다. 유튜브 등 대표적 플랫폼 기업의 추천 알고리즘은 ‘비공개’로 운영돼 왔는데요. 유튜브는 이용자의 영상 시청 이력, 시청 시간, 검색 기록 등을 바탕으로 여러 영상 콘텐츠를 추천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변수들을 어떻게 조합해서 추천이 이뤄지는지, 구체적 작동 원리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최근 국제사회는 알고리즘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초대형 플랫폼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행위도 규제하기 시작했는데요. 플랫폼에 불법·유해 콘텐츠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시작한 거죠. EU는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불법 약물 거래·혐오 발언 조장 등 불법 콘텐츠 확산에 알고리즘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플랫폼이 야기하는 사회적 문제를 짚음으로써 그들이 다해야 할 법적·사회적 책임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이제껏 플랫폼은 ‘무정부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한국 정부도 거대 플랫폼을 규제해야 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배경입니다. 플랫폼의 무분별한 성장 뒤, 감춰진 책임을 바로잡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디지털 공간을 더 안전하고 공정한 공간으로 재편하기 위한 움직임을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3. 인터뷰 : "나를 사랑하자" 다짐 말라는 정신과 의사, 그 이유는 "무기력이 해결되면 다른 문제는 없었던 것처럼 치부되는데 사실 무기력이 나타났다는 건 '나 자신과의 관계'가 이미 훼손돼있다는 증거다. 한국은 굉장한 경쟁 사회라 무기력한 것도 싫지만 무기력하지 않게 돼 다시 경쟁을 하기도 싫은 것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는 다시 무기력감이 올라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치지만 때로는 질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는 걸 주목하지 않는다." ✍🏻 유지영, 이정민, <오마이뉴스> ⓒ 유노라이프 정신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져 갑니다. 자신의 증상과 의학적인 조치에 깊은 관심을 가진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저의 SNS 알고리즘에도 정신질환 당사자들의 자전적 이야기와, 전문의들의 콘텐츠가 자주 뜹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이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희망을 느끼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수많은 이에게 병을 유발하고 있단 생각에 씁쓸해집니다. 높아진 관심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이 묘하게 불쾌한데요. 일종의 ‘강박관념’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꼭 낫고야 말겠다는, 혹은 나의 질환이나 특성도 분명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기능임을 확인받고 싶다는 욕구가 느껴져요. ADHD로 사례를 들자면, 주의가 산만한 특성이 원시시대에는 유리한 기능이었을 것이라며 위로하는 콘텐츠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사람이 꼭 쓸모 있어야만 하나요? 정신과 전문의 설경인 씨의 ‘나를 사랑하자 다짐 말라’는 말은 이러한 시각을 향한 일침입니다. ‘비정상적’인 정신질환과 특성을 제거해 천편일률적인 ‘정상 상태’, ‘생산적 상태’로 조정시키는 것. 그것이 정신의학에 대한 관심의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사람이 좀 비생산적이고, 우울하고, 산만하고, 불안하고, 착각을 하고, 기분이 날뛰면 어떤가요? 정신질환에 대한 강박, 심지어는 나를 보듬어줘야만 한다는 강박 없이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설경인 씨의 요지입니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그것을 위해 우리가 손보아야 할 것은 개인일까요, 사회일까요? 우리 관심의 궁극적 목적은 아픈 채로도 살아가는 것이어야 하며, 그를 위해 사회를 성찰하고 바꾸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뉴스 보러 가기 🔥 에디터가 남긴 편지 정신과의 대목은 환절기입니다. 인간 뇌는 참 복잡하고 또 단순해서 계절이 바뀌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이번 주 폴라리스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가을인지 초겨울인지 헷갈릴 정도로 급격히 변해버린 날씨에 읽어보기 좋은 인터뷰라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한평생 우울보다 불안이 더 큰 고민이었는데요. 예컨대 이런 겁니다. '내 기사에 악성 댓글이 달린다'라는 건조한 사실에 걱정이라는 살이 붙으면서 '난 좋은 기자가 될 수 없고 앞으로도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악성 댓글의 영향으로 커리어를 마감하겠지 아 인생아' 이런 결론으로 흘러갑니다. 누군가는 비웃을 테지만,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걱정 인형’ 독자분들은 제 편지를 보면서 고개 끄덕이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걱정 인형들에게 도움이 될 기사를 발견해서 여러분께도 소개하고 싶어요. 에픽테토스가 "인간은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점 때문에 고통받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 그 자체보다 이를 확대해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통받는 듯 해요. 기사는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 편향’이 자주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인지 편향’이란 불안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단서를 확대해 인지하고 긍정적인 단서는 무시하는 현상을 뜻해요. 이때 걱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을 순간순간 알아차려야 한대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아는 게 먼저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자세한 방법은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걱정 인형들 필독입니다!) 내 마음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제대로 '인지'하는 데서 시작하는 듯합니다.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환자가 있다는 사실을 정치인이 인지하는 일, 거대 플랫폼이 국민과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입안자들이 인지하는 일, 현대 사회에서 정신질환이 그리 특수한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언론은 우리 사회가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내 마음의 근심과 걱정을 제대로 인지하는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 그래볼게요!)  2024. 10. 07.에디터 반달🌙 드림 만든 사람들: 반달🌙, 부기🐢, 푸릇🌿, 만쥬🌰  폴라리스 구독하기지난 폴라리스 읽기
·
1
·
[6411의 목소리] 아파트 경비의 3개월짜리 계약서
아파트 경비의 3개월짜리 계약서 (2024-10-07) 박영길(가명) | 아파트 경비노동자 현행 파견법은 수위·경비원의 업무를 포함해 32개 업종의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사진은 칼럼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경비 일을 기쁘고 즐겁게 하려면 어찌 됐든 민원이 발생할 만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누가 엘리베이터 안에 오물이 있다며 빨리 치우라고 성화를 낸다고 쳐요. 그러면, 사과부터 해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빨리 대처를 못 해 죄송합니다.” 내가 24시간 1분1초 간격으로 엘리베이터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지만, 입주민의 다그침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따지게 되면 잡음이 생겨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하기야 아무리 ‘평화롭게(?)’ 넘기려 해도 도가 지나친 ‘갑질’도 있어요. 이런 경우는 0.01%도 안 됩니다. 0.01%. 이런 사람들을 나는 속으로 ‘또라이’라고 여기는데, 내가 무슨 생활지도 교사도 아닌 터에 이런 경우는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경비 일을 14년째 하는 내 노하우입니다. 경비 나오는 사람들이 나처럼 뭔가를 실패한 경우가 많아요. 젊어서는 큰 기업에서 중장비 정비를 하면서 외국 가서 일하고 그랬습니다. 그때 번 돈으로 아파트도 샀어요. 보험 영업도 좀 했고요. 그러다 부동산중개업 한다고 아파트 팔고 사무실 열어 촐싹대다 망했어요. 지금은 그 아파트 값 엄청나게 올랐대요. 딸 결혼하는 데 좀 보태주고 남은 게 뭐 있나요. 벌어야 사는 나 같은 생계형이 경비의 80%고, 나머지는 연금이 나와도 직업을 가져야 몸이 풀린다는 사람들입니다. 다들 한 자락씩 한 사람들이고, 똑똑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살이라는 게 말단으로, 밑으로 갈수록 힘이 없는 처지가 되잖아요. 광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곧 잘리게 됐습니다. 3개월짜리 단기 계약이니까 “1주일 뒤에 계약이 끝납니다” 이러면 방법이 없는 겁니다. 이래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얼굴 붉히게 되는 상황도 일어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동료를 갈구기도 합니다.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관리소장에게 ‘갈굼을 당하면서도 나는 열심히 하고 있으며 무슨 일이라도 성심껏 하겠다’는 처절한 편지도 쓰고 그런다니까요. 이런 비슷한 상황은 나도 한두번 당한 적이 있어요. 한 10년 전에 민주노총에 있었다는 분이 전단지를 들고 내가 일하는 아파트로 찾아왔거든요. 경비들 권리를 찾자는 이야기에 동조해 나섰어요. 실태조사를 한다고 해서 경비들 설득하고, 모임 한다고 하면 전화 돌려서 오라고 하고 그랬어요. 젊어서부터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좀 있긴 있었어요. 그런데 이러다 보니 나도 피해를 조금 봤어요. 그때 내가 들어가려던 아파트에서 노동조합 한다고 겁을 먹고 나를 안 받았어요. 사실 그런 모임을 해도 나한테 경제적으로는 도움 되는 건 없잖아요. 하다못해 전화비도 들고. 그래도 한때는 한 30명까지 모였습니다. 노동자센터에서 밥도 사고 지원을 좀 했어요. 요새는 지원을 안 하니까 10명도 모이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공제를 좀 하자고 제안했어요. 한달에 1만원씩 내면 추석 때 선물도 나오고 급하면 소액 대출도 되고. 자기가 다 찾아가는 것인데도 안 하려고 해요. 내일모레면 경비 그만둘 수 있다고 안 한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서로 도움이 됐으면 하는 차원에서 조직하자는 것인데 안타깝습니다. 도움이라는 게 딴거 아닙니다. 우리 경비들이 초단기 계약이라 이직이 많은 직종이거든요. 직장 구할 때 소개해주고 그러면 좋잖아요. 나는 20명 정도 알선했어요. 그런데 뒷맛이 좋지 않을 때도 있어요. 모임에 나오라고 전화하면 잘 안 받고 협조를 좀 해주면 좋은데 인간관계가 참 그렇더라고요. 이전에 파견법이 없을 때는 한 아파트에서 오래 일을 했습니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3개월짜리 계약서는 없었습니다. 이거 때문에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자르고 동료들 간에 갈수록 안 좋아집니다. 모임에 함께 힘을 모아주면 좋을 텐데, 그것도 잘 안되고 그래요. 그래도 아침에 눈뜨면 좋습니다. 잠자고 일어나는 게 기적이잖아요. 아침 6시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6시 퇴근하는 24시간 맞교대로 250만원을 손에 쥐지만,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지 일해서 돈 버는 세상은 아닙니다. 건강해서 일하니까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잖아요. 입주민도 동료도 이렇게 만나는 것 자체가 즐겁고 기쁩니다. 잘 지내십시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노동X6411의 목소리X꿋꿋프로젝트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
1
·
술 때문에 19살 간이 녹았다? 당신들이 틀린 이유 [열아홉, 간이 녹았다 3화]
고등학교 3학년 김선우(가명) 씨는 반도체 공장으로 나갔다. 학교의 ‘1호 취업생’이었다.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스태츠칩팩코리아. 일터에는 화학물질이 가득했다. 그는 얇은 덴탈마스크와 방진복을 착용한 채 하루 9시간, 많게는 11시간 30분씩 작업장에 머물렀다. 24시간 가동되는 기계에 맞춰 생체리듬을 바꾸다 보면 밤낮이 바뀌기도 했다. 취업 14개월 만인 2021년 12월, 간이 녹아내렸다. 혼수상태에 빠졌다. 주치의는 ‘마지막 인사’를 하라며 가족들을 불렀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던 위독했던 상황. 겨우 만 열아홉이었다. 기적적으로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았다. 몸 밖으로 나온 선우 씨의 간은 형체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랜 잠에서 깨어났지만 더 큰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선우 씨는 2022년 9월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당시 김선우 씨의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이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상황입니다.”(스태츠칩팩코리아 측 의견서) 회사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을 지적했다. 이들이 근거로 제시한 건 ‘특수건강검진표’. 결과지에는 “절주 또는 금주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적혀 있었다. “제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는데요. 교수님이 ‘20대 초반이 술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이 정도로 간이 상하지 않는다고, 절대 안 상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회사가 그 얘기(음주습관 지적)를 하니까 너무 어이가 없더라고요.”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받는다. 선우 씨도 2021년 4월 특수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간 기능 검사, 빈혈 수치 등에서 이상 소견은 없었다. 다만, 음주력에 ‘주의’가 표기됐다. ‘일주일 1잔 하루 4잔’이라는 수치 때문. ‘주의’가 필요하다는 선우 씨의 음주 습관은 ‘1주 1회, 1회 소주 기준 0.5병’ 수준이었다.(관련기사 : <간이 녹아 사라진 ‘반도체 소년’… 회사는 “술 때문에”>) “결과지를 보면 혈청 지티피(ALT), 혈청 지오티(GOT), 감마지티피(γ-GTP) 모두 정상이어서 음주력은 있지만, 이로 인한 간에 영향은 없는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감마지피티는 음주로 인한 간 영향 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혈액검사 지표로, 이 수치가 정상이라는 것은 음주로 인한 간 영향은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송홍석 신천연합병원 내과 진료부장은, 선우 씨의 진료기록을 검토한 뒤 “알코올성 간질환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당시 간 기능 검사가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 이어 “음주가 원인이었으면 (진료기록상) ‘알코올성 간 질환’이라고 명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을 녹일 수 있는 또 다른 원인에는 독성간염이 있다. 이는 한약, 양약, 건강기능식품 등과 같은 약제를 복용하다가 발생하는 간 기능 손상을 말한다. 동아대학교병원 입원기록에 따르면, 선우 씨는 과도하게 약물을 복용한 이력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급성간염이 일어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점, 회사에 근무하고 1년이 지나 상기 질환이 발생한 시간적 선후 관계를 고려할 때 피재자(김선우)의 급성 간염을 동반한 독성 간 질환은 작업장에서 노출된 미상의 세척 용제에 의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됨.” 선우 씨 주치의는 사업장을 의심했다. 입사 및 업무 중 특수검진을 할 때 특이사항 없이 건강했던 점, 가족력도 없고, 바이러스 간염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는 점 등을 들어 외부 요인이 작용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라인에 있을 때는 서 있거나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거든요. 선우가 (2021년) 5월 말부터 의자에 앉아서 조는 걸 자주 봤어요. 제가 자주 깨워주기도 했는데, 그 뒤로 코피도 되게 자주 흘렸던 것 같고요.” 동료 이창민(가명) 씨는 선우 씨가 사경을 헤매고 있던 2022년 1월, 선우 씨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동일한 공정, 바로 옆 라인에서 근무했다. 선우 씨는 집에 돌아가면 쓰러지듯 잠들면서도, 내내 피로를 호소했다. 선우 씨는 반도체칩에 전자기판을 부착하는 칩 어태치(Chip Attach) 공정에 있었다. 4조 3교대 근무 형태. 6일 근무하고 이틀 쉬는 식이었다. 6일 중 하루 이상 연장 근무는 필수였다. 한 주에 약 51시간 30분을 일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한도인 ‘주 52시간’을 넘지 않게끔 맞춰진 시간이다. “역한 냄새. 약물이랑 아세톤 냄새가 나죠. 주유소보다는 조금 약한데, 맡으면 불쾌한 냄새예요. 퀴퀴한 냄새라고 해야 되나.” 선우 씨에게 주어진 건 방진복과 얇은 덴탈마스크, 천코팅장갑, 비닐장갑이었다. 입술 모양이 다 보이는 얇은 마스크를 뚫고 독한 냄새가 들어왔다. 기계에 묻은 화학물질을 씻어내다 보면 비닐 장갑이 찢어져 손이 젖기도 했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는 사업장에서 다루는 화학물질 정보가 공개돼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다루는 화학물질은 혼합물질을 포함해 모두 365가지. 이를 단일물질로 구분하면 111개에 달한다. 여기에는 구리, 주석, 은 등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도 포함된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반도체 공정 중 유해성이 낮은 후공정을 담당하고 있는 업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작업환경측정 결과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 결과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작업환경측정 제도의 한계가 있다. 사업장에서 다루는 모든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이뤄지지 않고, 일부 요인만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 점.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로 정해진 물질에 한해 노출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스태츠칩팩코리아에서 검사 대상이 된 화학물질은 111개 중 46개. 간 독성을 유발하는 물질 26개 중에서는 15개만 측정 대상이 됐다. 또한, 복합적으로 유해인자에 노출된 경우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의학적으로’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선우 씨는 4조 3교대로 근무했다. 야간작업은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동시에 다량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작업장에 노출돼 있었다. 야간작업, 또는 각각의 유해인자에 대한 개별 인과관계를 연구한 결과는 존재한다. 반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자료는 부족하다. 그 때문에 업무상질병 여부를 판단할 때, 복합적인 유해인자가 질병에 미칠 영향을 보다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도 있다.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해당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평균 근로시간 이상으로 장시간 근무하는 경우나, 작업강도가 높거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등에는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대법원 2017년 11월 14일 선고, 2016두1066) 근로복지공단이 ‘불승인’ 결정을 통보한 것은 지난 5월. 산재 신청으로부터 약 1년 8개월이 지난 때였다. ▲직업환경연구원 조사 결과, 독성 간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물질의 노출이 없었다 ▲작업환경측정 결과에서 측정대상 물질 유해인자 불검출 또는 검출한계 미만이었다 ▲사업장 측 진술상, 동일공정 근무자 중 유사 증상 발병자 또는 검진 결과 이상소견자는 발생한 적 없다는 점들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다만 판정위원 중 한 사람은 “작업 중 간독성 물질은 일부 있”었다면서도, “독성이나 노출량을 고려할 때 상병을 유발할 수준은 아닐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사업장) 조사하는 날 (연구원) 태도를 보고 마음의 준비는 했어요. 회사 설명만 듣고 ‘그렇군요’ 하고 넘어가고, 그걸 또 곧이곧대로 믿고. (저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래도 (판정위원) 만장일치로 불승인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진 못해서 충격 먹었어요. 전원(불승인)은 말이 안 되죠.”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데 있다. 대법원은 이를 고려해, ‘현재의 의학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업 관련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 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7년 8월 29일 선고, 2015두3867) 선우 씨는 녹아버린 간 때문에 그 원인을 명확히 알아낼 길이 사라졌다. 대신 평생토록 약값과 치료비가 따라다닌다. 그는 2022년 5월 회사를 퇴직해야 했다.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떠넘겼다는 죄책감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3년간 든 치료비와 약값만 약 2억 원. 평생 얼마나 더 들지는 알 수 없다. 앞서 선우 씨가 산재를 신청한 이유에는, 가족에게 짐 지운 돈 걱정을 줄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선우 씨는 지난 8월 행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취소를 구하겠다는 취지다.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힘들어요.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희망고문이 제일 힘들죠. 그래도 최대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이겨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아직은….” 생사의 고비를 넘기자 산재 승인의 벽을 넘어야 했다. 무엇이 선우 씨의 간을 녹게 했는지 누구보다 알고 싶은 사람은, 바로 선우 씨 자신이다. 음주 습관이나 가족력, 약물 과복용은 원인은 아니었다. 작업장에 대한 의심은 있지만, 복합요인에 대한 연구는 미흡하다. 산재 불인정의 근거로 제시된 역학조사 결과나 작업측정보고서 역시 한계가 지적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 번 더 고비를 넘겼다. 당시 주치의는 재이식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간 이식을 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 다행히 약물로 위기는 넘겼다. 다만 앞으로 몇 번의 위기를 더 넘겨야 할지, 또 몇 번의 재이식을 받아야 할지, 아니 재이식을 받을 수는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법원(판례)에서는 산재보상보험법에서 말하는 업무와 질병 간의 상당인과관계는 ‘의학적’ 인과관계가 아니고,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규범적’ 인과관계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왔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협소한 의학적 판단기준으로 산재불승인을 남발하여온 것이다.”(이종란 노무사, 2024년 7월 ‘산재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산재보험 개선 과제 토론회’ 자료집 중)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스태츠칩팩코리아의 반론을 듣고자 지난 8월 19일부터 약 30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지난 8월 30일 기자는 인사팀 관계자, 안전팀 관계자, 임원급 관계자와 번갈아 소통했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판단에 이견이 없다”, “당시 사내 공지로 헌혈 활동을 권하는 등 선우 씨를 도우려고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보도로 인해) 회사에 피해가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안전팀 관계자는 약 40분간 안전관리 방침에 대해 설명했지만, 이후 비보도를 요청했다. 스태츠칩팩코리아는 셜록의 보도 이후, 지난달 11일 내용증명을 보냈다. 앞선 보도에서 “허위사실을 포함하여 당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선우 씨에게 음주 때문에 질병이 발생한 것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없고, 본건 직원이 손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하는 용액도 역학조사 당시 ‘물’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작업환경측정 및 역학조사 결과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은 점, 매월 직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점, 사내 유사한 병명이 발생한 적도 없는 점”을 강조했다. 끝으로 “당사의 명예를 침해하는 위법한 보도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본건 기사를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2
·
잘 봐, 언니들 축구다!
‍ 학창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하다 은퇴한 후 경력단절을 경험한 위밋업스포츠의 신혜미 대표. 그녀는 은퇴한 여성 스포츠 선수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자 위밋업스포츠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신 대표는 단체 운동에서 단절되거나 소외된 이들에게 집중했습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나이, 성별, 능력, 신체 조건에 관계 없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위밋업스포츠는 경기 결과보다 함께 땀 흘리는 과정을 즐기고, 실패를 향한 두려움을 없애는 환경을 만들어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다정한 사회를 위해 도전하는 그녀의 이야기, 함께 살펴보시죠! ‍ 🏄 은퇴 여성 선수들의 두 번째 챕터 ‍ |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 흥행하면서 축구라는 스포츠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늘었을 것 같습니다. 변화를 체감하시나요? ‍확실히 체감해요. 프로그램 속 참가자들은 선수 출신이나 프로는 아니에요.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대중, 특히 여성에게 자신감을 줬던 것 같아요. 더 많은 여성이 “나도 저 정도는 해볼 수 있겠다”라고 느끼고 도전하게 됐죠. 또, <골 때리는 그녀들>은 팀이 주는 소속감, 응원하는 팀이 승리했을 때 느껴지는 연대감 등 팀 스포츠가 주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잖아요.  스포츠 하면 치열한 경쟁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경기를 함께하는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도 이 프로그램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 | 위밋업스포츠에서 개설한 프로그램에 신청하는 인원도 늘었나요? ‍네. 위밋업 초기의 취지는 여성과 단체 운동의 접점을 만드는 거였어요. 여성들에게 축구, 농구 등도 해볼 만한 운동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죠. 처음에는 일회성으로 체험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예 팀을 이뤄서 활동하려는 요구가 늘었고, 코치님을 모시고 싶다는 요청도 많아요. 여성들의 스포츠를 향한 관심과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 | 위밋업스포츠는 어떤 계기로 창업하셨어요? 저는 축구 선수로 활동하다 은퇴한 후, 결혼과 출산 과정에서 경력 단절을 경험했어요. 운동했던 경력으로 사회에 나가려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오로지 제 몫이었어요.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죠. 이런 부분에서 갈증을 크게 느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여러 교육을 들었어요. 당시 체육인재육성재단(현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여성 스포츠 리더 과정을 수료했죠. 그런데 강사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왜 여성 스포츠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굉장히 와 닿았던 한 마디였어요. “그러게, 왜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 우리나라 스포츠의 역사를 살펴보면,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 수 대비 메달 획득 비율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아요. 양궁, 배구, 스피드스케이팅 등 뛰어난 여성 선수들의 활약으로 이목을 이끈 종목도 많고요. 그런데 여성 코치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린 시절 자주 봤던 여성 선수들을 떠올려보면 지금 활동을 이어가는 선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죠. 축구 지소연, 유도 김민정 선수처럼 세계적으로 활약했던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왜 그럴까?라는 물음표를 갖고, 양수안나 공동 대표와 대한체육회의 은퇴진로지원센터에 찾아갔어요. 담당자들과 여성 선수가 은퇴 이후 지도자로 활동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지, 구조를 개선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이야기했죠. 그런데 저희의 고민이 하소연에서 끝나는 것 같더라고요.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큰 뜻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우리가 문제라고 여기는 걸 해결하고 하고 싶은 걸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은퇴한 여성 선수들이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 ‍ 🎲 돌아온 언니들, 되찾은 운동장 ‍ | 위밋업스포츠를 있게 한 대표 사업으로 ‘언니들 축구 대회’를 꼽으셨는데요. 이 행사를 기획한 배경은 무엇이었나요? ‍여성들이 나이가 들수록 축구에서 멀어지는 현실을 바꾸고 싶었어요. 남자 축구는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별 축구팀이 잘 조직되어 있고 조기 축구회도 활발한데, 여자 축구는 나이에 상관없이 1부, 2부로만 나뉘었죠. 이렇게 되면 50대나 60대 언니들은 실력과 구력을 갖추고 있어도 20대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뛰기는 어려워요. 아무리 오랫동안 축구를 해온 여성이라도, 체력에서 차이가 나면 경기에서 활약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스포츠에 참여하는 이유는 직접 경기를 뛰고 싶어서잖아요. 그런데 경기장 바깥에서 박수치고 물병 갖다 주는 역할만 하다 보니 50대 이상 언니들이 축구에서 다른 종목으로 떠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점이 정말 아쉬웠죠.‍ ‍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40대 이상의 여성만을 위한 ‘언니들 축구대회’를 개최했어요. 나이든 여성들도 주체적으로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었죠. 첫 대회에서는 총 6팀이 모였어요. 오랫동안 축구에서 멀어졌던 언니들이 다시 모여 팀을 이루고 경기에 나서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 | 언니들의 운동장을 되찾아주셨네요. ‍언니들이 경기에서 존중받고, 스포츠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더 활발하게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실력을 강조하는 대신, 나이가 많은 '최고 언니'가 팀을 이끄는 구조를 도입했죠. 경기 중 동점 상황에서는 필드에 남아 있는 선수들의 나이 합산으로 승부를 가리는 방식도 적용했는데요. 나이가 많은 언니들이 경기에서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어요. ‘연령 다양성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됐죠. 2018년 처음으로 개최한 대회가 지금까지 이어져, 지난 5월 6회차를 마무리했습니다. 최근에는 ‘동생들’이라 부르는 20~30대 여성들까지 포함해 축구 대회를 운영하고 있어요. 언니들과 동생들의 리그는 따로 진행하고요. 최근 대회에서는 동생들이 언니들의 경기를 보면서, 진심을 다해 응원을 보내는 모습이 인상 깊더라고요. 덕분에 언니들은 더 큰 자부심을 느끼며 필드를 누볐어요.(웃음)\‍ ‍ | 여성의 단체 운동 단절은 언제부터 시작되나요? 여성들이 단체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남성보다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요인은 운동을 통한 성취 경험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보다 운동장에서 뛰어놀 기회가 적고,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스포츠를 배우더라도 자연스럽게 관심도가 떨어지죠. 특히 운동을 잘하지 못하면 눈치를 보거나 남들과 비교하면서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아요. 저희는 이런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해요. 저희 프로그램에서는 경기 결과보다 운동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어요. 특히 초보자들도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초보 리그를 운영해 여성들이 스포츠에 쉽게 도전할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 | 위밋업스포츠는 생애 주기별 신체활동과 스포츠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소개하셨어요. ‘생애 주기별 신체활동’이란 무엇인가요? ‍생애주기별 신체활동은 연령대별 특성과 신체 능력에 적합한 운동 프로그램을 의미해요. 위밋업스포츠의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성인 여성, 시니어층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해요. 아동이나 유소년은 놀이형 프로그램을 통해 스포츠를 접하고, 성인 여성들은 축구, 배구, 농구 같은 팀 스포츠를 통해 팀워크와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했어요. 중장년 및 시니어층을 위해서는 안전하고 건강한 신체활동을 설계했죠. 이를 통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 ‍ ‍ ✊ 이제는 우리가 움직여야 할 시간 ‍ |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여러 사회 구성원의 스포츠 참여 확대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불러올까요? 좀 더 건강하고 다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스포츠는 단순한 신체 활동을 넘어 선의의 경쟁과 협력을 배우게 해요. 경쟁 속에서도 패배를 받아들이면서 서로에게 응원을 건넬 수 있죠.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하는 역할도 하고요.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스포츠에 접근할 수 있다면, 친절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 | 기억에 남는 참여자가 있으시다면, 관련 에피소드를 듣고 싶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어요. 한 분은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스텝을 전혀 밟지 못하셨어요.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계속 응원해 드렸어요. 몇 달 동안은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꾸준히 참여하시더니 결국 농구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셨죠. 그분은 학창 시절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 동안 운동장으로 뛰어나가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지금의 본인이라면 그들과 함께 뛰어나갔을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또 다른 분은 30대에 처음 운동을 시작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시작했더라면 국가대표가 되었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운동에 흥미를 느끼셨어요.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스포츠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실감합니다.‍ ‍ | 클래스를 이끄는 지도자는 어떻게 모집하나요? ‍단순히 스포츠 역량이 뛰어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위밋업스포츠의 철학과 비전에 공감하고 함께할 수 있는 은퇴 여성 선수를 찾는 데 중점을 둬요. 대부분의 지도자는 지인의 추천이나 네트워크를 통해 소개받아요. 이후 2~3회차의 미팅을 진행해 저희와 방향성이 맞는 분인지 꼼꼼히 확인합니다. ‍저희는 재능 기부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요. 지도자들이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독려합니다. 이를테면 ‘세계 소녀의 날’ 등의 행사에 참여해 무료 스포츠 클래스를 운영하는데요. 지도자들도 이와 같은 재능 기부 활동에 즐거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 세계 소녀의 날: 조혼, 교육 기회의 박탈, 성 착취 등으로 인해 세계 곳곳의 차별받는 소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UN이 제정한 날. ‍ | 별도의 지도자 양성 과정이 있나요?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요. 지도자는 필수적으로 성인지 감수성, 장애 인식, 스포츠 인권, 안전과 관련된 CPR 교육 등 다양한 필수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코칭 방법에 대한 교육을 수료해야 해요. 저희는 지도자들이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스포츠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들의 필요에 따라 스포츠 테이핑이나 시설 안전 교육 등도 전문가를 초빙해 진행하고 있죠. 코치들에게 지속적인 교육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 | 향후 목표나 계획을 들려주시겠어요?‍ 언젠가는 위밋업스포츠만의 체육관을 만들고 싶어요. 공간 제약이 너무 크다 보니 특정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맞춰야 하고, 다양한 수업을 제공하지 못하는 게 아쉽더라고요. 이런 지점을 해결할 수 있는 우리만의 체육관이 있었으면 해요.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사람이 나이, 성별, 능력과 관계없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여성, 이주민, 장애인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스포츠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또, 위밋업에 소속된 코치들과 함께 재능 기부를 진행할 예정인데요. 동남아시아처럼 여성의 스포츠 접근성이 낮은 국가를 방문하여, 그곳의 여성과 아이들에게도 스포츠의 즐거움을 전하고자 합니다. ‍ ‍‍| 도전을 망설이는 여성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1년 이상 웹사이트 눈팅만 하다가 오는 분들도 계세요. 할 수 있을지 수십 번 고민하고, 일정을 맞추다가 못 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저는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망설임 자체는 건강하고 좋은 신호니까요. 다만 주저하는 시간은 여기까지!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도전하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글 | 문지원 ‍ ‍ 식탁과 별개로 맛있는 간식이나 음료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바 테이블처럼, 테이블토크에서도 ‘뷰 테이블(View Table)’을 마련했어요. 사회혁신가의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살펴보고, 주제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콘텐츠를 엄선했답니다. 📖 <여자치고 잘 뛰네> - 로런 플렌시먼 도서, 312쪽 여성 장거리 달리기 챔피언의 회고록이자, 여성 스포츠를 위한 강력한 선언문입니다. 저자는 다섯 번의 대학 리그 우승, 두 번의 5000미터 미국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정상급 선수인데요. 이 책을 통해 여성 운동선수가 남성 중심의 스포츠 시스템 속에서 어떤 불합리함을 겪는지, 통계와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조명했습니다. 책 정보 보러가기 ‍‍ 🎥 <다큐인사이트 - 국가대표> 다큐, 43분 ‍스포츠의 판도를 바꾼 여성 스포츠인 5인의 통쾌한 이야기입니다. 배구 김연경 선수, 골프 박세리 선수, 축구 지소연 선수 등. 이들이 맞서 싸운 건 상대뿐 아니라 여성 선수를 향한 불합리한 시스템과 고정관념이었습니다. 동일 임금을 외치며 부당함에 목소리를 냈던 여성 선수들. 이들은 어떤 변화를 만들었고, 어떤 가능성을 향해 나아갈까요? 다큐 보러 가기‍ ‍ 🎥 <여인과 바다> 영화, 131분 1905년, 뉴욕의 이민자 가성에서 태어난 트루디 에덜리. 그녀는 여성 최초로 영국 해협을 수영으로 횡단했습니다. 이 영화는 가족과 코치들의 애정 어린 응원과 도움으로 사회의 편견을 깨고 올림픽 수영팀에 합류하는 과정을 그렸어요. 프랑스에서 영국까지, 34km에 달하는 해협을 헤엄쳐 건넌 그녀의 도전. 도전에 담긴 의미를 고민한 영화였습니다. 영화 정보 살펴보기 🌐 위밋업스포츠 웹사이트 ‍위밋업스포츠에서는 다양한 종목의 클래스가 열리고 있어요. 농구, 축구, 배드민턴 등 친숙한 운동부터, 패들 보드, 럭비, 프라디이빙 등 쉽게 도전하기 어려웠던 종목까지 준비돼 있죠. 레터를 읽고 ‘나도 한 번 도전해볼까?’하는 생각이 드셨다면, 클래스와 후기를 찬찬히 살펴보시는 걸 추천해요. ‍클래스 구경하기 ‍ ❗이 콘텐츠는 'Table Talk(테이블 토크)'의 기사를 가공하여 게재합니다.
·
1
·
[이태원 참사] 우리에게 참사의 언어가 없다.
10.29 이태원참사가 내게 남긴 것 작년 10월에도 그랬듯, 올해도 이맘때쯤이 되면 마음이 뒤숭숭하다. 이렇다, 저렇다, 표현할 단어가 없어 ‘뒤숭숭하다’로 퉁-쳐버릴 때마저도 쓰라리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매번 들었지만, 너무 크게 다가올까 두려워 찜 목록에만 담아둔 지 오래. 10.29 이태원참사 2주기를 맞아 드디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 - 많은 내 또래 친구들이 그랬듯 - 나는 수많은 전화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들의 추측은 실로 타당했다. 참사 당일, 나도 이태원에 가려고 했다. 29일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 침대에 누워 각종 SNS를 확인했다. 현장의 사진들이 빼곡했다. 사진들을 처음 마주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익숙지 않은 ‘압사 사고’라는 단어와 이해하기 힘든 사진들이 합쳐져 혼란스러웠다. 쏟아지는 사진들을 계속 보다 보니 이해하기 두려웠다. 이해하면 무서울 것 같아 황급히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들로 대체하거나 스크롤을 내려 사진보다는 글을 확인했다. 나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혹은 나와 인연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새도록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새로고침할수록 늘어만 가는 사망자 수를 계속해서 확인했다. 궁금증일까? 왜 사람들이 다치는지 궁금한 상태인가? 무서움이 많은 내가 자꾸만 소식을 찾아보는 이유가 뭘까?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궁금함에서 시작된 행동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족들이 잠들어 너무도 고요한 내 방에서, 심장 소리가 빨라지고 커지는 걸 느꼈다. 혹시 지인이 있을까, 수많은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오지 않는 사람들에겐 전화를 걸었다. 허망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당일, 코로나 방역에서 벗어난 첫 축제, 10월의 마지막 날, 바람이 선선해 밖에 나가기 좋은 날. 그들은 나였고, 내 친구였고, 내 가족이었고, 내 이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지하철과 버스를 타지 못했다. 조금만 붐벼도 숨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퇴근 시간에 이동이 필요하다면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했다. 여유가 된다면 붐비는 시간을 피해 미리 장소에 도착했다. 축제, 페스티벌, 대회, 콘서트 등 사람들이 밀집할 만한 곳은 절대 가지 않았다. 나에게도 10.29 이태원참사는 후유증이 있었다. 내가 피해자도 아닌데.... 어쩌면 나도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 나도 참사의 생존자였다.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피해자가 어떤 모습이라고 상상하는가? 피해자들은 숨고 가리고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피해자다움. 재판에서는 자신이 피해자임을 호소하고 입증해야 한다. 이때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피해자로서 인정을 받는다. 피해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경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재판에서는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다움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은, 성범죄에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에 대한 비판이 늘면서 ‘피해자다움’과 ‘가해자다움’의 의미가 변하거나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오랫동안 법원은 성범죄 피해자를 정형화된 틀에 가뒀다. 그들이 생각하는 피해자는 1) 피해를 본 이후 가해자와 최대한 접촉을 피하거나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진정한’ 피해자라면 2) 분노·좌절·무기력·두려움·공포 등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으로 3) 일상생활이 마비되어 관계가 단절된 상태여야 한다. 피해자는 그래야 한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이 다를 텐데, 피해자가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모습을 보이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는 중이다. 내 주변엔 꽤 쉽게, 전세사기 피해자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죄의식에 고통을 겪는다. 뉴스에 나오는 피해자들도,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에 나오는 피해자들도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표현된다. 때론 피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기도 한다. “네가 잘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피해자들은 그렇게 사회가 종용하는 피해자의 틀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그 틀에 벗어나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피해자들이 된다. ‘보상금 때문이지’ ‘정부한테 뭐 하나라도 더 달라고 하는 거지’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는 것 좀 봐’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쉿’ 묵음을 강요한다.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정치적인 언어로 쉽게 축소된다. 그들에게는 ‘흐느끼는 것’만으로 애도하길 바란다. 조용하게 잠재운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는, 피해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2차 가해를 양산한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귀 기울일 사람이 몇이나 되며 들어줄 노력은 하는가?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말 속엔 ‘피해자다운’ 목소리를 내라고 강요하고 있지 않는가? 피해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분명하다.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다움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 피해자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 정형화된 피해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또 다른 피해를 경험한다. 이에 피해자는 겉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피해를 겪을 수 있다. 이들 또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을 것이다. 마치 나처럼. 10·29 이태원참사는 이전에 일어났던 참사들과는 ‘다르다’라는 평을 받는다. 혹자는, 이는 참사가 아닌 단순 ‘사고’라고 하기도 한다. 다름의 가장 큰 원인은 피해자들의 핼러윈 파티 참여 동기에 있다. ‘자발적’으로 ‘놀러 나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이 강요된다. 참사의 경험은 속으로 삭혀야 하며, 유가족들은 목소리를 낮춰 흐느껴야 하고, 애도조차 조용하고 간단하게 진행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태원참사가 일어난 시기에 자신이 이태원에 있었음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한다. 실제로 이태원참사 당시 이태원에 있었던 내 친구는 “이태원에서 생긴 트라우마는 네가 감당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말들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라는 말을 줄여 만든 ‘누칼협’은 지극히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조어로, 이태원참사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사용했다.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렵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은 때때로 개인 안에서 부딪힌다. 피해를 겪고 있는 내 내면과 그 피해는 너의 책임이니 침묵을 강요하는 환경 사이에서. 외부에서 정의 내린 피해와 내가 겪은 피해 사이에서. 결국 자신이 피해자이지만 스스로가 피해자가 아님을 종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를 보고, 때론 2차 가해로 나타난다. 그렇게 피해자는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언어가 없는 피해자들 나는 종종 내 경험이 부정’당하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사회적인 차별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예컨대 나의 경우 나서길 좋아하는 여성으로서 불쾌한 경험이 잦았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사회적인 차별로 드러났다. 반면 가장 가까운 친구와 애인과 가족과 얘기할 때도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 경험은 ‘내가 고깝게 생각해서’ ‘내가 피해의식이 있어서’로 치부된다. 나의 피해 경험은 곧 사적이고 무의미한 일이 된다. 내가 별나서, 로 축소된다. 한때 나도 적극적으로 내 경험을 설득하고자 했다. 여전히 그런 충동이 든다. 어필하고 강조하며 상대의 이해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못해 ‘그래, 그렇구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찝찝하면서도 ‘이 정도면 됐지’하고 안도의 숨을 쉬며 넘어갔다. 하지만 대화 끝에 언제나 나는 지쳐있었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 실은 공감할 노력도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 나는 혼자서 뻘짓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받아낸 공감(처럼 보이는 것)에 아주 작은 위로를 받는다. 그 위로는 곧 사라지지만. 상대가 나에게 가지는 ‘피해자로서의 기대’에서 내가 벗어난다면, 나의 경험과 목소리는 사라진다. 튕겨 나간다. 매번 도전하지만, 큰 벽에 가로막힌다. 그렇게 나도 곧 무너질 듯한 공허함을 느낀다. 그런 경험이 있는가? 무언갈 말하고 싶은데 정확한 의미를 담은 단어가 없는 경험. 나는 빈번히 그런 상황과 마주한다. 내 감정과 내 경험을 이야기할 단어가 없다. 언어가 없다. 길게 늘어뜨려 놓고 기존에 알던 단어를 조합해도 명쾌하게 정의할 언어가 없다. 일 생활에서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로는 내 경험을 표현하기 어렵다. 언어가 없으니,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기득권들의 언어로 나를 담아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게 10.29 이태원참사는, 언어가 없어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것이다. “놀다가 죽었다”라는 기득권 혹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되는 세상에선 내 감정을 가시화할 수가 없다.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어 설득하고자 하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지칭할 단어가 없어서.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피해자로서 행동양식이 정해져만 있는 것 같은 사회에서, 광의적인 차원의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보전될 수 있을까? 그들에게 그들이 오롯이 느낀 것을 말할 언어가 있을까? 우리에게 참사의 언어가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작가가 집필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학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관념적이면서도 울림 있게 담아내며, 한 시대에 이루어졌던 학살이 동시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연결됨을 보여준다.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에 대해 “이별을 고하지도, 행하지도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하며 “애도를 멈추지 않고, 결코 끝내지 않겠다는 결의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16살, 중학교 3학년 당시 세월호참사가 일어났다. 나와는 불과 2년 차이 나는 언니·오빠들이었다. 나는 당해 수학여행이 취소됐다. 그리고 또다시 내 나이 24살에 이태원참사가 일어났다. 내 나이 또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군복무를 하던 일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내 남자 동기들이 떠올랐고 2살 터울의 남동생이 떠올랐다. 여러 차례 사회적인 참사 앞에 나는 두려움만 남게 되었다. 혹시 내가 그러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그렇게 나도 숨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꺼내지 않았다. 나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저 두려움에 떨 뿐이다. 최근 영화 <벌새>를 다시 감상했다. 영화는 성수대교 붕괴참사로 인해 친구를 잃은 중학생인 은희를 다뤘다. 당시 20대이면서 잠실에 살던 우리 엄마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그 시절 그 큰 다리가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성수대교 붕괴 이후 은희의 삶을 보여주진 않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 내가 그랬듯,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은희도 같은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갔을 것이다. 살아냈을 것이다. 영화 속 은희의 마음을 나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은희는 지금의 나였다. 이태원참사로 혼란을 겪었던 내게 은희는 위로를 건넸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용하면서도 우울한 무드를 갖고 있다. 참사를 겪은 동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한편에 비슷한 무드를 갖고 있지 않을까? 여러 차례 참사를 겪은 내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시대의 참사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개인의 삶에 자연스레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강요되고 억압되는 현실에 마치 영향이 없던 것처럼 살아간다. 영화는 ‘은희’만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이들이 ‘은희’에 본인의 이름을 대입하는 것에서, 동시대에 하나의 참사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책 <작별하지 않는다> 영화 <벌새>, 나는 이것이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개인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우리에겐 개별적이고 사적인 감정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으고 모아 스스로 이름을 붙여 가시화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 있음을, 어떤 감정을 느낌을 실체화하는 것의 힘을 나는 굳게 믿어본다. 그러기 위해 나는 “애도를 멈추지 않고, 결코 끝내지 않겠다”.
·
2
·
[이태원 참사] 2. 이제는 허상이 되어버린 ‘목소리가 큰 소수’
2. 이제는 허상이 되어버린 ‘목소리가 큰 소수’ <<인싸를 죽여라>>를 읽고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를 문화수도라고 자칭하던 시절, 그러니까 온갖 인터넷 밈과 유머 게시글을 양산하던 2010년도 초반에는 디시와 다른 커뮤니티 사이의 경계가 명확한 편이었다. 합성을 이용해 만든 재미있는 게시글(물론 그 와중에는 정치적이고 고인 모독 코드를 가진 게시글도 있었다)도 그들의 특이점이었지만 그보다 도드라지게 보이는 특징은 익명성, 반말, 루저를 자처하는 이용자들, 언더그라운드 성향이었다. 이런 특징은 당시 존재하던 네이버, 다음의 카페와 블로그, 이글루스, 루리웹같은 친목도모, 존댓말, 상호존중을 기본 규칙으로 세운 사이트와는 다소 거리가 먼 새로운 인터넷 문화이었으니 당연히 그만큼 이용자들을 향한 사회의 반발도 따라왔고. 실제로 언론에서는 꾸준히 디시의 이용자 성향과 게시글 특징에 대한 저격성 기사를 올렸다. 존중이 보이지 않는 인터넷 문화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법한 게시글에 대한 기사. 하지만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하던 유저들은 기사에 대해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 ‘그들은 목소리가 큰 소수일 뿐이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그렇지 않다.’ 이 말은 그 이후로 꾸준히 활용되는 문구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언제나 나오는 이야기, ‘목소리가 큰 소수’가 탄생한 것이다.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2020년도 초반, 이제 디시의 유저 코드는 디시만의 코드가 아니게 되었다. 언더그라운드 성향, 루저를 넘어서 베타를 자처하는 이용자들, 반말과 욕설, 비단 디시뿐 아니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전 트위터), 네이버 뉴스 댓글까지, 그들만의 저급한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모습은 어디를 가도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인터넷 이용자들의 평균적인 코드가 되었다. 우리는 이쯤에서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지금도 그들은 ‘목소리가 큰 소수’인가? 참사 피해자를 향해 돌을 던진 이들은 목소리가 큰 소수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 책은 미국의 2010년도 중반 인터넷 문화, 인터넷 내 대안 우파의 형성과 성장, 그리고 리버럴 성향의 캔슬컬처에 대한 전반적인 문화비평서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책을 가져온 이유는 내용이 한국의 과거 인터넷 문화와 비슷하고 오히려 지금은 이 책에 적힌 내용들보다 현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더욱 더 극단적인 성향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쪽 진영의 사상을 표방하는 사이트가 아니어도 전반적으로 보이는 성향들, 그러니까 베타를 자처하는 모습과 인터넷 냉소주의가 만연해졌음이 한국의 상황을 대입했을 때 특히 몸에 와닿게 해주는 책이기도 했고. 인터넷 냉소주의는 지금의 인터넷 문화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향한 무관심, 이를 넘어선 불행을 향해 보이는 조소, 익명성에 기댄 정제되지 않은 발언, 누칼협(누가 칼들고 협박해서 시켰냐는 말의 줄임말) 문화. 이런 인터넷 냉소주의는 언제나 사고의 순간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나고는 했다. ‘누가 그 장소에 가서 놀라고 했냐.’ ‘오늘 같은 날 이성 만나보자고 저런 동네에 모인 사람들이 잘못한 거 아니냐.’ ‘저기에 모인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문란한 사람들인데 잘 죽은 거 아니냐.’ 이 모든 말이 이태원 참사 피해자를 향해 다양한 커뮤니티의 수많은 익명이란 가면을 쓴 이용자들이 던진 말이었다. 사실 그들이 이런 돌을 던질 거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었다. 베타 성향을 자처하는 인터넷 이용자들 기준에서 그들은 알파에 가까운 인물들이었으니까, 언더그라운드와는 궤가 다른 파티 문화에 가까웠으니까, 그리고 사고 이후 일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만한 행동들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들이 보낸 분노의 방향성은 명백하게 잘못되었다. 분노한다면 죽은 이들이 아닌 살아서 문제가 될 행동을 한 이들에게 분노해야 하는데 죽은 이들도 살아있었다면 저런 행동을 했겠지, 하며 뭉뚱그려 분노한다니. 물론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고 선한 사람들이며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은 행동 때문에 돌을 맞을 이유도 없다.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으니 돌을 던져도 된다는 식의 행동은 올바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국가도, 사회도, 언론도, 이런 부분에 대해 메시지를 정제해달라는 목소리를 내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기는 어렵기에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그들은 선량한 동료시민이고 착한 이들이다.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무자비한 돌을 던지지 말라.’는 공감하는 척에 가까운 목소리 내기라는 방법을. 인터넷을 오래 하던 유저들도 최근에는 이런 냉소주의적 문화 흐름에 대해 피로하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오글거린다’는 말에 사람들이 낭만적으로 글을 쓰는 모습이 사라졌고, ‘설명충’이라는 말에 지식을 나누는 사람들이 사라졌고, ‘누칼협’이라는 말에 행동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이 사라졌고, ‘알빠인가?’라는 말에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사라졌고, ‘긁혔냐?’는 말에 타인을 변호하려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말. ‘목소리가 큰 소수’가 인터넷을 대표한다는 말은 이제는 옛 말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모든 익명의 유저들이 ‘목소리가 큰 소수’라는 허수아비에 숨어 돌을 던지는 시대가 되었다. 호남과 영남이 반목하는 시대가 끝나자 청년세대와 중장년세대가 반목하고, 남성과 여성이 반목하고, 알파와 베타가 반목하는 시대가 왔다. 지금 우리는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진정으로 목소리가 큰 소수가 존재하는지. 사실 우리는 목소리가 큰 소수라는 허울 뒤에 숨은 다수가 아닌지. 이 책을 읽고 간단하게 이런 해석을 내릴 수도 있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전반적인 우경화, 남성 커뮤니티의 대안 우파화. 하지만 나는 이런 단순한 결론은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24년 현재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우경화보다는 좌우 양극단으로 나뉘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한쪽 성별 중심의 커뮤니티뿐 아닌 이성이 혼재된 커뮤니티까지, 진영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인터넷 냉소주의가 넘쳐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이태원 참사 2주기, 나는 과거의 사고와 더불어 미래에 있을 사건들을 위해 이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내줬으면 한다. 착한 피해자들을 욕하지 말라는 말이 아닌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은 피해자들을 넘겨짚지 말라. 진짜 나쁜 인물들은 따로 있지 않은가.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자신을 향할지도 모르는 돌이 무서워 숨지 않게 그들에게 무분별한 돌을 던지지 말아 달라. 그리고 익명의 가면에 숨어 타인에게 돌을 던지는 인터넷 문화를 개선해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두 번째 서평으로는 <<인싸를 죽여라>>라는 인터넷 문화 비평서를 들고 와봤다. 사실 이 책은 독서 커뮤니티에서 꽤 좋은 호응을 받음에도 섣불리 손이 가지 않는 도서, 제목부터 표지까지 너무나도 인터넷 커뮤니티가 떠올라서 손이 가지 않는 도서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주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의 초월번역은 많은 이들이 칭찬할 정도기도 하고. 이번에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문화와 전반적인 인터넷 냉소주의에 대해 다뤄보려고 했다. 사실 쉬운 주제가 아니기도 했고 무엇보다 정치적인 색을 담고 싶지 않아서 목소리가 똑바로 담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에 관련된 서평에서는 최대한 정치적 목소리가 아닌 시민으로서의 목소리를 담고 싶었기에 최대한 중립을 잡으며 달렸다고 생각한다. 나도 꽤 오랜 시간 인터넷을 해왔고, 커뮤니티 활동을 해왔지만 최근 이런 냉소주의 문화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나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자칭 현실주의자들을 향한 회의감은 말로 이룰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이들이 나의 동료고 선배일까, 내 후배일까, 사회에서 만나는 또 다른 가면을 쓴 인물일까. 그런 고민이 들게 만드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나는 저런 인물이 되지 않아야지 다짐하며 늘 자세를 바로잡게 된다. 참사 2주기에는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면 좋겠다. 추모의 목소리만큼 문제가 되는 사회 문화, 피해자가 숨지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 그간 우리가 봐온 사고의 정리와 앞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미래를 향한 목소리.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시선을 보내주는 이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내가 띄운 작은 풍등도 다른 이들의 생각을 열어주는 하나의 별이 되기를 바라고. 이번에 가져온 사진은 SNS로 참사를 접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익숙하고 너무나 슬픈 구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해밀턴 호텔 골목을 반대편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참사 당시 많은 환자들이 이 거리에 누워있었고, 이들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소방관과 구급대원, 그리고 그 옆에 구경이 난 것처럼 서있는 사람들까지 당시 사진에는 수많은 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거리는 한산하고 조용하다. 이제는 정적만이 남은 거리를 찍고 싶다는 생각에 사람이 없는 시간대의 골목 앞 거리를 찍어봤다. 사고를 구경하는 이들, 다음에는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 대한 서평을 가져오려고 한다. 고통을 마치 구경거리처럼 전시하는 저널과 기자로서의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 그리고 이에 대한 개인적인 대답이 담긴 책인데 수많은 사건을 다뤘던 저자의 책이 아마 이 이태원 참사 2주기 서평의 마지막으로 가장 적절한 책이 아닐까 싶어 고르게 되었다. 가장 첫 이야기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당시 사고 상황에서 언론이 행했던 고통 전시회를 보고 회의감을 느끼고는 했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저자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앞으로 저널리즘은 어떻게 사고를 접근해야만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 책이 되면 좋겠다.
·
배달앱 시장, 기로에 서다②
배달앱의 이중가격제 문제가 불거지자 쿠팡이츠가 배민을 저격하며 선긋기를 시전하는데.. 과연 진정한 속내는 무엇인가. - 이전 편 보기-  쿠팡이츠가 저격한 것은 ‘배민배달’의 갑질 쿠팡이츠는 이중가격제 문제에 선을 그으며 배민이 저질렀던 불공정행위, 입점업체 피해를 은근하게 끌어올렸다. 이는 배민의  ‘배민배달’ 확대에 따른 수익 극대화 전략에 대한 저격이다.  배민의 ‘배민배달’과 ‘가게배달’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영역의 시장이다. 한 기업에서 두 시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배민 입장에서는 ‘배민배달’ 사용자가 많아야 매출이 오른다. 그래서 배민은 ‘배민배달’을 확장하기 위해 입점업체에게 온갖 갑질 등 불공정행위를 저질렀다. 배달의민족 어플 화면을 보면 ‘배민배달(배민1)’의 음식 카테고리를 보여주면서 이용자가 ‘배민배달’을 누르게끔 유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몇 차례 개편된 UI다.  배민배달을 본격 활성화하기 전에 배민은 초기에 입점업체에 배민배달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프로모션을 활용하는 등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어느정도 배민배달에 입점업체를 확보하자 배민은 중개수수료를 6.8%로 올리고, 이후 현재의 9.8%로 또 올렸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배민배달 입점에 동의하지 않은 가게도 대필서명을 하여 강제로 배민배달에 유치시키는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이후에 배민이 할 수 있는 해명은 ‘우리는 두 방식으로 운영하는데 쿠팡이츠가 혼동해서 여론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는 ‘배민배달의 수수료인상’과 ‘입점업체 갑질 문제’를 해명하진 않는다.  그리고 이제 배달의민족은 ‘최혜대우 요구’로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되었다.  ‘최혜대우’가 도대체 뭐길래 9월  29일, 공정위에서 배달의민족이 입점업체에 최혜대우를 강요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7월 시민사회단체가 배달의민족의 ‘자사우대’ 및 ‘최혜대우요구’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공정위 신고를 토대로 진행하는 것이다. (참여연대, 2024.07.23) 최혜대우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입점업체에게 자사에서 거래하는 상품, 서비스 가격등 거래조건을 다른 플랫폼이나 다른 유통경로 대비 동등하거나 더 유리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회사와의 거래 조건을 무조건 최고로 유리하게 하도록 입점업체에 요구하는 것이다. ‘최혜대우요구’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위법적 행위로 규제하는 기업행위 중 하나다. 시장지배력을 가진 거대 독점적 기업이 입점업체에 최혜대우를 요구하면 시정 독점력을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앱마다 수수료율이 다르기 때문에 입점업체는 음식가격을 앱마다 다르게 설정한다. 그러나 최혜대우를 요구하면서 다른 앱보다 불리하지 않게 설정할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가장 높은 수수료율 기준으로 음식가격이 적용되면서 외식가격이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배민을 저격한 쿠팡이츠도 사실 떳떳할 수 없다. 배민이 무료배달 정책을 시행한 것도, 무리하게 중개수수료를 인상하여 수익 극대화 전략을 세운 것도 쿠팡이츠의 불공정행위 및 시장 흔들기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2차 관전 포인트, ‘그거 경쟁업체가 먼저 했어요’ 배민의 물귀신 작전 공정위 조사가 돌입되자 배달의민족은 ‘최혜대우 요구는 지난해 8월 경쟁사가 먼저 시작했습니다’라며 입장을 냈다. 여기서 경쟁사는 쿠팡이츠다.  경쟁사(쿠팡이츠)는 멤버십 회원(와우 멤버십 회원) 주문에 대해 10% 할인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업주들로 하여금 타사 대비 메뉴가격이나 고객 배달비를 더 높게 책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고객 대상 쿠폰 등 자체 할인 역시 타사와 동일하게 맞추도록 했습니다. 이에 대해 당국의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당사는 올해 5월 배민 클럽 회원 대상 무료배달을 시작하면서 방어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아한형제들 뉴스룸,  2024.09.29) 배달의민족은 쿠팡이츠가 와우회원 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모션과 무료배달 정책을 시행하며 이용자를 확보하는 동안, 입점업체에게는 음식가격을 배민과 동일하게 맞출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배민의 주장은 어느정도 사실이다.  쿠팡이츠는 2022년 쿠팡이 흑자전환을 한 이후, 배달앱 시장 내에서 공격적으로 이용자를 확보하며 ‘요기요’를 제치고 배달앱 2위를 차지했다. 그 과정에서 쿠팡이츠가 입점업체에게 최혜대우 요구 및 경영 간섭을 했다는 제보는 심심찮게 들려왔다. 또한 쿠팡이츠는 무료배달정책으로 시장을 뒤흔들며 정작 쿠팡 와우 멤버십 회원 요금을 4,990원에서 7,890원으로 올렸다. 조삼모사를 시전한 것이다.  결국 최혜대우, 외식 물가 인상 등 이용자 피해가 시작된 것은 쿠팡이츠의 시장흔들기가 시초인 것이다.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된 배민 입장에서 ‘물귀신 작전’은 응당하다고 볼 수 있다.  갑질, 외식물가 상승에 피해 입은 이용자는 무슨 죄 이번 배민과 쿠팡이츠의 싸움에서 문제의 핵심은 거대 두 기업 모두 입점업체 점주들을 대상으로 최혜대우를 요구하는 등 ‘갑질’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과도한 수수료, 최혜대우 요구 등으로 시달리던 점주들은 결국 음식가격을 올리거나 이중가격제를 운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무료배달이라고 홍보했지만, ‘무료’는 없었다. 플랫폼 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입점업체에 중개수수료를 과도하게 부과하고, 각종 갑질을 저질렀다. 그 결과 자유경쟁 체제에서 두 기업이 경쟁을 하는데 소비자 가격이 올랐다. 입점업체, 소비자, 노동자(라이더) 등 대다수 이용자가 피해를 입고 있다.  두 기업이 무료배달 경쟁 비용을 입점업체에게 떠넘기는 동안 점주들은 거리로 나와 끝없이 호소했다. ‘생계가 아니라 생존이 위협받는 지경이다’, ‘팔아도 남는 게 없다, 제발 상생하자’며 수차례 상생협의를 요구했다. 배민의 공정위 조사가 본격 착수되면 배달앱 시장은 기로에 선다.  3차 관전 포인트는 부디 상생의 길이 되길 배민의 입장에 쿠팡이츠는 침묵 중이다. 쿠팡은 시장독점력을 공고히 하는데 노련한 기업이다. 최혜대우 요구의 칼날이 자사를 겨냥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과연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을까. 쿠팡이츠의 반응이 세 번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가장 현명한 것은, 이제라도 두 기업이 상생협의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입점업체와 갈등을 풀어나가며 기업이미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더이상 소비자, 점주, 기업 모두가 상생하는 방향을 모색하길 바란다. 
·
배달앱 시장, 기로에 서다①
*지난 토론글 <배달의민족 수수료인상과 물가상승>을 읽고 오시면 좋습니다.  최근 배달앱 시장이 시끌하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확보를 위한 기업경쟁 같은 건전한 내용이 아니다. 어떻게든 내가 살고 너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지경이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끼리 이렇게 노골적으로 서로를 저격하며 법적 다툼까지 예고하는 싸움은 여간 귀한 광경이 아니다. 이 흥미로운 거대 플랫폼기업의 싸움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시작은 ‘이중가격제’ 문제 배달앱 기업의 진흙탕 싸움은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등 대형 햄버거 프렌차이즈 가게부터 메가커피 등 카페 매장까지 배달앱 입점업체 가게에서 이중가격제를 운영하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시작이었다. 이중가격제는 매장에서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음식 가격과 배달앱에서 주문하는 음식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경우를 말한다. 1차 관전 포인트, 쿠팡이츠의 배민 저격 이렇게 외식 물가 상승, 이중가격제 등으로 배달앱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지자 쿠팡이츠가 선 긋기를 시전했다. 지난 9월 24일, 쿠팡은 뉴스룸 보도를 통해 “최근 매장용보다 배달용 메뉴 가격을 더 비싸게 받는 ‘이중가격제’는 특정 배달 업체에서 무료배달 비용을 외식업주에게 전가하고 수수료를 인상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당사 등 배달업체 전반의 문제인 것처럼 오인되고 있습니다”라고 발표했다.  (쿠팡 뉴스룸, 2024.09.24) 쿠팡은 기업 성장을 위해 모든 방해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행위에 거침이 없다. A사를 표시한 칸 색깔이 배달의민족 대표 컬러인 것은 과연 우연일까? 이중가격제 문제와 외식물가상승 등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로부터 열심히 선 긋기하는 쿠팡을 보고 솔직히 혀를 찼다.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 모든 일의 시초는 사실 쿠팡이츠이기 때문이다.  배민의 즉각 반박, ‘지속적 사실 왜곡 시 법적 대응 검토’ 예고 쿠팡이츠의 저격에 다음날 9/25, 배민은 ‘무료배달 비용은 플랫폼이 부담하고 있다’며 즉각 반박 입장을 냈다.  위 표에서 나오는 ‘업주 부담 배달비’와 ‘무료배달 비용’은 조금 헷갈릴 수 있다. 무료배달은 ‘배민배달’이고, 업주 부담 배달은 ‘가게배달’에 해당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배달의민족의 중개수수료 수익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배민은 ‘배민배달’과 ‘가게배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배민배달’은 중개, 라이더 배차까지 배달의민족에서 진행하고 중개 수수료를 건당 9.8% 부과한다. ‘가게배달’은 중개만 해주고, 음식배달은 점주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며 업주 부담 배달비는 2,900~3,300원 수준이다. 점주 입장에서는 음식 가격이 높으면 ‘가게배달’이 유리하고, 음식가격이 싸면 ‘배민배달’이 유리하다.  배민은 쿠팡이츠가 ‘베민배달’과 ‘가게배달’ 서비스를 혼동하여 배민이 마치 업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며 ‘사실 왜곡’이라고 단호하게 반박했다.  과연 정말 쿠팡이츠가 배민 배달 시스템을 ‘오해’한 걸까? 쿠팡이츠가 어떤 기업인가. 개인적으로 쿠팡이츠가 큰그림을 그린 것이라 생각한다. 분량상 2편에서 계속됩니다. 
·
1
·
[이태원 참사] 2주기에 던져보는 10.29 이태원 참사에 관한 질문들
사회적 참사의 발명 현재 통용되는 ‘사회적 참사’라는 단어는 한국사회에 자리잡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약칭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은 2017년에 제정되었는데 사회적 참사, 사회적 재난참사와 같은 용어는 이 법의 제정 전후로 한국사회에서 공유되기 시작했다. 여러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정리했던 것처럼,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는 사회적 참사라는 언어를 발명했다. 그 이전까지 재난이나 참사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사건이나 사고라고 명명하는 범주에 속했다면,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논쟁을 거치면서 ‘참사’는 보통의 사건도 아니고 교통‘사고’도 아닌 사건/사고 ‘그 이상의 사건/사고’를 지칭하는 언어가 되었다. 이에 따른 변화 중 하나는 재난참사를 사고-보상 프레임에 입각해 국가가 보상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자본에게 재난참사의 법적, 정치적, 경제적 책임을 추궁하는 관행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변화는 참사의 명명을 둘러싼 정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아리셀 참사와 같이 근래에 들어 사회적 참사라고 규정되는 사례들은 단순히 처음부터 참사였던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사회운동이 그것들에 사고나 사건이 아닌 참사라는 이름을 붙여 세월호 참사 이후 정착된 책임 추궁의 관행을 소환한 것이다. 요컨대 참사는 어떤 사건/사고를 해결해야 할 정치적 문제로 만들어내는 언어인 것이다. 그렇기에 가령 정부는  10.29 이태원 참사가 아닌 ‘이태원 사고’라고 불러 그 의미를 격하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어떤 연구자들은 이러한 참사라는 개념이 참사와 사고 사이의 위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내가 10.29 이태원 참사를 만나고 연구하면서 느낀 건, ‘사회적 참사’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세월호 참사라는 구체적인 경험이 아주 많이 묻어있다는 점, 그래서 사회적 참사에 대한 현재 한국사회의 이해에 근거해 이태원 참사를 해석하려 하면 뭔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사이의 유사성이나 연속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차이나 단절에 관해서는 잘 말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고작 1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의 영향력과 유산이 우리에게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10년이라는 단기간에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운동이 이뤄낸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성취를 이뤄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국 각지에서 노란리본을 제작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알리는 운동이 일어났고,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세월호 참사에 응답하는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세월호 이후 재난참사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 시작했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전까지 사회적 참사라고 인지되지 않던 많은 재난참사의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다시 호명했다. 여전히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멀리 나아가지 못했고 기억공간 조성은 정부가 방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가 촉발한 사회운동은 넓고 너른 품으로 그 세계를 확장해 왔다. 가장 먼저 길을 내어 멀리 나아간 세월호 참사는 다른 사회적 참사에 분명 귀중한 전범일 수밖에 없다. 풍기문란 통제의 오랜 역사 그러나 동시에 익숙한 관념을 깨뜨리는 데서 사람들의 생각이 발전한다. 세월호 참사가 만들어낸 길만으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사회적 애도에 온전히 도달하기 어렵다. 이태원 참사가 가진 차이는 이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놀다가 죽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놀다가 죽었다고 말했을까? 여기에 대해 ‘놀이’ 일체를 억압하는 사회라고 단정짓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핼러윈 축제 직전에 이태원에서 치러지는 지구촌 축제에는 안전 통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벚꽃 축제는 압사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통제가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도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놀러’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다가 죽었다”는 ‘놀이’ 일체가 아니라, 어떤 놀이인가를 질문하게 만든다. 이태원 참사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람들이 “놀다가 죽었다”고 말한 것들을 관찰해 보면, 거기에는 이런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곳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가서’ 놀다가 죽었다. 은연중에 사람들에게 이태원은 여전히 ‘위험한 곳’으로 상상된다. 이때의 위험은 이를테면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이나 그러한 사고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문란함’의 의미가 훨씬 강하다. 한 언론은 2020년 5월 이태원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사태를 두고 ‘이태원 게이클럽발 감염’이라고 헤드라인을 달아서 성소수자 혐오와 코로나19를 연결시켰다. “놀다가 죽었다”라는 말에 담긴 ‘위험’의 감각은 이런 종류의 것이다. 이 ‘위험’에 대한 감각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시기의 유산이며 지금도 <경범죄처벌법>과 같은 법제도, 그리고 특정 지역에 대한 경찰행정의 관행으로 남아있는 ‘풍기문란 통제’에 닿게 된다. 당대 지배권력의 시선은 선량한 풍속과 나쁜 풍속을 나누어, 미풍양속을 해치고 위협하는 문란한 풍속을 통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선량한 풍속과 문란한 풍속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있을 리 없다. 풍기문란 통제는 무척 자의적이고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 변화해 왔다. 한때는 봄날 꽃놀이나 크리스마스 축제도 ‘풍기문란’의 소지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다. 한국 사람들의 기억에 가장 잘 남아 있는 건 1970년대 유신 정권 시기 ‘장발 단속’이다. 유신 정권은 장발을 문란하고 불건전한 ‘미국 문화’라고 규정하면서 그 반대편에 있는 한국의 건전한 문화와 풍속을 장려했다. 그 구분은 물론 자의적인 것이었다. 핼러윈 문화는 1980년대 중반 당시 한국사회의 가장 대중적으로 퍼져 있던 하위문화이자 청년문화였던 ‘디스코 문화’의 영향 속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언론들은 핼러윈 시기에 ‘디스코텍’에서 핼러윈 파티를 열린다는 홍보성 기사들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디스코 열풍은 문란하고 위험한 청년문화의 하나였고, 이태원은 그러한 문화의 산실 역할을 했으니 처음부터 이태원은 핼러윈 문화와 아주 가까이 있었다. 이후로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이태원의 클럽이나 카페에서 핼러윈 파티가 매년 마다 열렸다. 하지만 이것은 특정 실내 공간에서 벌어지는 파티이지, 지역 일대 전체가 장이 되는 축제는 아니었다. 여러 기록들을 확인해 보면, 2011년에 이태원 지역 상인들이 거리에 무대를 설치하고 ‘이태원 핼러윈 축제’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태원 핼러윈은 그렇게 축제가 되어 매년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지역의 행정권력인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는 관변축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자발적으로 형성된 이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이것은 앞으로 이태원 참사 특조위가 행정 문서들을 발굴해서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한정된 자료들로는 온전히 파악하기 힘든데,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가설은 ‘풍기문란 통제’의 시선에서 이태원 일대를 바라보고 통제해왔던 행정적 관행의 연장선에서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바라보았고, 그래서 마약이나 각종 경범죄 단속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는 것이다. 2022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러했을 가능성이 높다. 핼러윈 축제는 2011년부터 시작되지만 용산구청은 이에 대한 안전통제를 의제화한 적이 없으며, 용산경찰서는 2017년부터 안전통제의 필요성을 내놓는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잘 시행됐을지, 그 안전이 생명의 안전인지 풍속의 안전인지는 더 분석해보아야 한다. 경찰이 아주 최소한의 안전통제(이것도 매우 불충분하다)를 했더라도, 아마 2020년 코로나19 집단감염 이후 다시 한번 풍속통제의 관행이 강화되면서 2022년 이태원 참사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용산구의 방역대책은 사실상 특정 지역의 풍기문란함에 대한 단속의 관행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1950년대부터 미군기지 옆 ‘기지촌’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던 이태원은 풍기문란한 문화의 온상이었다. 1970년대 미군철수를 막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기지촌 여성들을 문란한 몸과 마음을, 그리고 기지촌을 ‘정화’하고자 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수시로 성병 단속의 대상이 되어 모욕을 겪었고, 치사량의 페니실린을 맞아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국사회가 지키고자 한 것은 미군 남성들의 안전이었고, 기지촌이라는 게토 안에 여성들을 가두어 문란함으로부터 한국사회를 보호하고자 했다. 오늘날 용산에게 미군기지가 철수한 시대에도 이태원을 바라보는 행정적 관행과, 한국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과거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모른다 짧게는 세월호 참사로부터, 멀게는 한국근현대사의 국가폭력으로부터, 국가의 책임을 묻고 진실을 규명해 온 주체는 유가족이었다. 나는 이것을 ‘애도의 가족주의’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도 각종 산재사망사고와 재난사고에 대해 그것을 ‘사회적 참사’라고 부르며 국가와 자본의 부정의에 대항하는 운동의 주요행위자는 유가족이다. 유가족이 그러한 운동의 행위자이자 주체가 된 것은, 특히 국가폭력의 역사에서 지배권력은 ‘빨갱이’를 가족의 문제로 상상해왔기 때문이다. 빨갱이의 가족도 빨갱이라는 연좌제의 논리는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국가의 학살로 자식을 잃고 가족이 몰살당한 살아남은 유가족들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무에 더해 ‘빨갱이의 가족’이라는 낙인으로부터 명예를 회복해야만 했다. 그랬기에 유가족들은 처음에 ‘양민’학살을 문제삼았다. 국가가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민’은 여전히 어떤 피해자들을 ‘빨갱이’로 남겨놓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양민’은 ‘민간인’으로 대체되었다.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고 어떤 활동을 하든 국가가 민간인에게 학살을 자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초기에 유가족들은 자식들을 무고하고 모범적인 시민으로 그러내려 애썼다. 그것은 분명 “놀다가 죽었다”라는 인식에 방어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전략은 이후 수정되었는데, 가령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는 한국사회가 ‘문란하다’고 인식해 온 성소수자들도 함께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범시민이라고 해서 꼭 그 죽음이 더 억울한 것은 아니다. 저항해야 할 것은 “놀다가 죽었다”는 인식과 거기에 깃든 풍기문란 통제의 오랜 역사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이해하는데 '어린 학생들'의 죽음이라는 측면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은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의 차이 중 하나일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가진 특성은 ‘피해자’의 범주가 무척이나 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 주변 일대에만 당시 약 15,000명이 몰려 있었다. 당시 이태원 일대 전체로 본다면 35,000여 명이 운집해 있었다. 반면 정부가 파악한 (희생자 195명을 제외한) 유가족 및 피해자는 여러 기록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321명에 불과하다. 애도의 가족주의라는 제도화된 운동의 관행(레퍼토리)는 유가족들에게 목소리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그 외에 이태원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람들은 지금도 자신을 ‘피해자’라고 인지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리고 그들이 보고 겪고 느낀 이태원 참사는 유가족들(조차 당연히 의견이 획일적이지 않다)의 이해와 같지 않다. 참사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사건에서 각자가 놓여 있는 위치는 매우 달랐고, 그 위치에서 각자가 참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다양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잘 정리하고 조립하기보다는, 사회적 참사에 관한 기존에 확립된 서사와 이태원 참사에 대해 발언하는 피해자들 일부의 목소리만으로 이태원 참사의 서사를 쓰고 있다. 그러나 가령 유가족이 아닌 피해자들조차도 관점이 다르고 참사를 다르게 의미화한다. 목격자나 구조자들이 트라우마와 괴로움을 호소한다면, 희생자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158명의 부상자들은 트라우마와 피해를 강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참사의 체험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상인들도 이태원에 오래 거주했는지, 업종이 무엇인지 등에 따라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방식이 아주 다르다. 누군가는 빨리 잊혀지길 원하지만 누군가는 이태원 참사의 기억을 통해 이태원 상권이 다시 살아나는 길을 찾기를 원한다. 이태원 가게에서 일했던 직원들이나 이태원 주민들도 제각각 체험과 이해가 무척 다르다. 그러나 정형화된 피해자 상을 상상하는 한 이런 다른 모습들은 시야에 들어올 수 없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 여전히 아는 것이 너무나 없고,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들은 대다수가 아직도 공적으로 출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태원 참사는 너무나 쉽게 윤석열 정권의 문제로만 그 의미가 축소되고는 한다. 이태원 참사를 특정한 목적에 맞게 서사화하려는 시도는 참사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한 온전한 애도와 기억을 가로막는다. 이태원 참사 이후 오랫동안 포스트잇들이 해밀턴호텔 옆 골목을 지켰다. 그러나 이제 그 벽에는 클럽 홍보를 위한 게시판이 설치되었고, 참사의 애도와 기억을 말하는 포스트잇들이 붙을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지난 2023년 핼러윈 기간에 이태원은, 행정이 ’안전’을 강조하면서 단단한 폴리스라인이 좁은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골목을 반으로 갈라 놓았고, 축제를 즐기는 시민보다 경찰과 구청직원들이 더 많이 운집해 있었다. 음식점 상인들은 핼러윈 주말이 평상시보다 장사가 안 된다며, 경찰들이 저렇게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신분증 검사를 하는데 대체 누가 오겠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2주기는 어때야 할까? 그리고 2주기 이후에 이태원 참사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할까?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지 않는 한, 오랫동안 문란하고 위험한 땅으로 여겨져 왔던 이태원에 서린 기억은 다시 한 번 한국사회에 의해 버림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
2
·
[이태원 참사] 지역 사회에서 바라본 이태원 참사
지역 사회에서 바라본 이태원 참사-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기록단 활동을 중심으로 (23.04. ~ 23.11.) 기록단 ① 배경 - 이태원을 둘러싼 오랜 시선 질문을 던져 본다. 만약 이태원이 아니었다면, 일각의 반응이 달랐을까? 적어도 그 심한 정도가 덜하지 않았을까? 참사 이후 그날 이태원에 머무른 사람들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놀러 가서 죽은 것"이라며 그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돌리기 부지기수였고, 그런 모욕은 이태원을 둘러싼 오랜 시선에 기대 확산되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이태원은 이미 너무 위험하고 문란하고 이상한 동네다. 과거 기지촌이 형성된 이래로, 말 그대로 '퀴어'한 존재들이 모여들었으므로. 또한 펜데믹을 거치면서 강화된 성소수자 혐오부터 밀집 경험을 민페로 여기는 감각까지 헤아리면, 지금 이태원에 덧씌워진 편견은 몹시 복합적이다. ② 문제 – 불온한 이태원과 참사 피해 '안전'에 대한 요구는 자연스레 높아졌다. 압사가 발생한 골목을 두고, 왜 그 위험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데 실패했는지 사람들은 추궁한다. 나아가 일상에 도사린 문제들을 하나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 질문과 각성을 통해 사회는 나아지겠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다. 이태원이 불온하게 그려질수록 참사 피해 역시 그 불온함에 갇혀 해석되기 마련이다. 그날 이태원에 들렀던 사람들 대부분이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고, 같은 자리에서 생활을 이어 가는 주민들 또한 입을 열기를 주저한다. 와중에 빠르게 선포된 국가애도기간이 슬픔의 형식을 제한함으로써 참사에 관해 말할 기회는 일찍 닫히고 말았다. ③ 취지 – 이태원에 얽힌 마음을 듣기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그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국가도, 사회도, 타인도 신뢰할 수 없는 탓에 참사를 겪은 개인은 불안한 가운데 놓여 있다. 이태원에서 노는 발길은 한동안 줄었는데, 그건 주변 상권의 침체 그 이상을 뜻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서로를 확인하는 대신 낙인을 먼저 의식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누구든 이태원에서 다시 놀 수 있을 때 비로소 회복이나 해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작게나마 물꼬를 트기 위해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었다. 각자 품은 사연을 새기다 보면, 참사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지 않을까. 뒤집어 강조하면, 이태원에 얽힌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서야 참사는 영영 미지로 남는다. ④ 기획 – 지역에서 잘할 수 있는 작업 나의 경우, 언젠가 그런 고백을 들은 적 있다. “저에게 이태원은 마치 외국 어딘가 같아서 참사가 와닿지 않았어요.” 반면, 용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참사는 꽤 직관적이었다. 추모를 위해 이태원에 들른 지인이 있으면 한동안 가이드 겸 도슨트 역할이 되어 주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지역에서 보다 잘할 수 있는 작업이 있지 않을까. 기획의 방향도 그 위치를 고려해 정했다. 첫째, 제도 정치나 사법, 행정의 관점, 그리고 희생자 유가족 중심의 애도 그 바깥의 이야기를 발굴하자. 둘째, 오늘날 이태원을 표상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참사 경험을 조명하자. 셋째, 지역의 회복과 안전 사회에 대한 방안을 아래로부터 도출하자.  ⑤ 운영 - 마을 공동체 미디어의 역할 활동을 주관한 마을 미디어 용산FM은 주민들과 함께 방송을 만들어 왔다. 주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제작 전반에 참여하기를 도왔다. 기록단 운영 역시 다르지 않았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기록단은 이태원 일대를 답사하고 구술 기록 워크숍을 수강했다. 질문지 구성과 인터뷰이 섭외, 인터뷰 진행, 기사 작성 등 전 과정을 주도하면서 활동의 의미도 스스로 정립할 수 있었다. 여건이 되는 경우 기록단이 직접 카메라를 잡기도 했다. 과연 그 방식이 지역 사회의 아픔을 다루는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듣는 일만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 또한 중요하다. ⑥ 구성 –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기록단에는 일곱 명이 모였다. 기록 활동가부터 퇴직교사, 스타트업 대표, 사진작가, 대학원생, 디자이너, 다큐멘터리 감독까지. 인상 깊었던 건, 대부분 동네 버스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신청했다는 점이다. 녹사평, 이태원, 해방촌 등을 지나고 있었고, 이미 근방에 거주하거나 노동하고 있었다. 주로 개인적인 인연이 계기로 작용했을 뿐, 관련 활동을 해 본 경험도 드물었다. 그렇게 모인 마음들을 통해 참사에 관한 갈증이 얼마나 큰지 엿본다. 나중에 기사 원고를 적에는 형식을 통일하기보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제약을 최소화했다. 또한 기록단을 역으로 인터뷰해 처음 계획에 없었던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⑦ 죄책감 – 책임감으로 승화하지 못한 한편, 살아남은 사람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발 디딜 틈 없던 골목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 위험을 인지하고도 예방하지 않은 자신을 탓한다. 누군가 죽어 가는 줄도 모른 채 축제를 즐긴 사람은 그날 웃고 떠든 자신을 탓한다. 현장을 목격한 뒤 빠져나온 사람은 구조에 나서기 망설인 자신을 탓한다. 아비규환 속에서 CPR에 임한 사람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그리고 사람들. 또 한 번 반복된 참사 앞에 선 사람들은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죄책감을 책임감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만한 계기는 흔치 않다. 참사를 외면하는 식으로 고통을 떨쳐 내기도 쉽다. ⑧ 답답함 – 상실을 나눌 만한 장의 부재 답답함도 가득하다. 그날 사람들이 잃어버린 세계는 희생자들의 총합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 상실을 나눌 만한 장은 한참 모자라다. 모든 게 조심스러워 말을 꺼내기를 저어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함구하는 사람도 있다. 들어맞는 표현을 떠올리느라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기대와 다른 응답이 돌아올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참사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면 모두에게 치유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데, 정작 그 상처를 서로 내보일 수 있는 관계를 찾기란 참 어렵다. 그보다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조롱하고야 마는 풍경이 차라리 익숙하다. 그사이, 상처는 안으로 곪을 수밖에 없는 걸까.  2. 인터뷰 ① 섭외 – 이태원과 연결된 인터뷰이 김혜영, 신정임, 노호태, 신솔아, 심나연, 홍다예. 기록단은 아홉 명의 인터뷰이를 섭외했다. 혜영씨는 이태원 떠들썩한 복판에 사는 보영씨의 마음을, 정임씨는 매년 가족 단위로 핼러윈을 즐기던 민희씨와 원기씨의 마음을, 호태씨는 단골 칵테일 바를 운영하는 범조씨의 마음을, 솔아씨는 이태원 클럽씬에서 음악을 트는 DJ의 마음을, 나연씨와 다예씨는 드랙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샤인씨와 이태원에서 놀기 좋아하던 승연씨의 마음을, 보영씨는 다문화 공동체를 찾아온 모하메드씨의 마음을 각각 들었다. 과연 당신에게 이태원이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아래는 그 대답의 일부다. ② 윤보영 – 애증의 사정을 아는 주민들 이태원역 근방에는 클럽과 술집만 들어선 게 아니다.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산다. 보영씨는 이태원 대로변에 거주한다. 주말이 지나면, 거리에서 쓰레기와 널브러진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똥오줌까지도. 핼러윈 때는 항상 휴가를 사용해 일찍 귀가했다. 하지만 그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태원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의 공간은 내가 어떤 존재이든 포용해 줄 것만 같다. 그 애증의 사정을 아는 주민들은 희생자들에 대해 함부로 비난하지 못한다. 물론, 같은 주민이더라도 연령에 따라 거주 위치에 따라 가족 구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기억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③ 김원기/임민희 - 온 동네 잔치로서의 핼러윈 용산에서 나고 자란 원기씨에게 핼러윈의 의미는 남다르다. 어릴 적부터 용산 미군기지 장교들의 숙소였던 외인아파트 가까이에서 외국 문화를 접해 왔다. "Give me a chocolate!"를 외치며 이웃집을 방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편 민희씨에 따르면, 이태원의 핼러윈은 온 동네 잔치다. 주택가 곳곳 호박 장식과 사탕 바구니가 걸리고, 어린이집과 공원에서 행사가 열린다. 아이들은 가족 단위로 거리를 구경하며 다양한 세계를 익힌다. 그렇듯 이태원의 핼러윈은 고유하고 다채롭다. 클럽이나 술집에서만 기념하는 것도, 청년들만 즐기는 것도, 유흥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흔히 폄하되듯 ‘외국 귀신 놀이’에 불과하지 않다.  ④ 곽범조 – 매출이 보여주지 않는 회복 칵테일 바를 운영하는 범조씨의 경우, 이전만큼 손님들이 돌아오더라도 장사를 접을 참이다. 참사를 직접 겪은 충격뿐만 아니라 코로나 때부터 이어진 생계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말 그대로 방도가 없다. 그런 감각은 단기적인 지표로 포착되지 않는데, 마찬가지로 매출 중심으로 회복을 논한다면 많은 곤란을 놓치기 쉽다. 가령, 범조씨가 이태원에 자리 잡은 데에는 한 시절 자신이 즐겨 찾던 놀이터를 물려주고 싶은 바람도 있다. 지역의 특색이란 그렇게 재생산되기에, 회복도 그 역사에 대한 이해 위에서 가능하다. 다른 어디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이태원의 모습이 있다. ⑤ 선샤인 – 자유를 익히는 공간, 이태원 퀴어 아티스트 샤인씨에게 이태원은 선망의 공간이었다. 그 정제되지 않은 매력에 일찍이 빠졌다. 이태원에서는 상대방의 배경을 묻는 일이 드물다. 그저 “너 재밌다. 나랑 놀자”로 통한다. 옷차림에 대해서도 서로 신경 쓰지 않는다. 시상식에서처럼 입어도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그 개의치 않음을 통해 불특정 다수가 자신을 옹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속력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이태원에서는 편견을 드러내는 일이 훨씬 눈초리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이태원에 오기도 하지만, 이태원에서 자유를 익히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동안 학습된 편견을 점점 깨 나가는 것이다. ⑥ 정승연 – 핼러윈 코스튬을 통한 일탈 낯가림이 심한 승연씨에게 이태원의 핼러윈은 곧 일탈의 기회가 되었다. 캐릭터 분장이 부끄럽기도 잠시, 이태원에서만큼은 금세 자신감이 솟았다. 나중에는 낯선 이에게 먼저 다가갈 만큼 적극적이 되는데, 그건 아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덕분일 것이다. 평상시 이태원이 간직한 분위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범조씨는 강남과 이태원을 이렇게 비교했다. 강남은 퇴근 후 집에 들러서 다시 세팅하고 가는 곳이라면, 이태원은 그냥 바로 가도 상관없는 곳이라고. 승연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태원에서는 다른 어디에서보다 자기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틀에 박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⑦ DJ – 추모 방식의 또 다른 가능성 이태원에는 음악이 흐른다. 씬이 형성되어 있어 무수한 클럽에서 음악을 틀며 각기 다른 매력을 자랑한다. DJ H씨는 애정하는 클럽의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참사 이후 이태원에서는 ‘이태원 스트롱’이라는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보스턴 마라톤 참사 때 등장한 ‘보스턴 스트롱’이라는 구호를 본뜬 것이다.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면서 많은 공연과 전시가 중단되었지만, DJ들은 이전부터 예정된 파티를 그대로 진행했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건 그렇게도 가능하다. 이태원에서 계속 놀겠다는 다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⑧ 모하메드 – 한국어로 도착한 재난 문자 이태원 일대를 걷다 보면 다양한 음식점, 빅 사이즈 옷가게, 환전소 등이 눈에 띈다. 보영씨는 흔히 보이는 케밥집에 대한 호기심으로 외국인 인터뷰이 섭외를 희망했다. 외국인이라는 큰 범주 안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모하메드씨는 참사 소식을 접하고 깜짝 카메라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어로 도착한 재난 문자에 대한 아쉬움을 술회했다. 앞서 곽범조씨는 외국인 손님의 경우 내국인과 다르게 참사 한 달 뒤부터서야 발길이 끊겼다고 전했다. 외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인 지원이 보도되기도 했다. 과연 이태원의 외국인은 지금 이 순간 참사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을까. 3. 함의들 ① 골목 – 이토록 다양한 피해의 층위 참사가 발생한 골목은 외딴섬이 아니다. 누구든 쉽게 드나들 수 있고, 그만큼 쉽게 휘말릴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다. 지하철역 출구와도 인접해 있다. 따라서 희생자와 생존자, 구조자, 목격자 사이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밀집된 인파 속에서 어린 자녀의 손을 붙잡고 겨우 빠져 나왔던 원기씨와 민희씨 부부는 생각한다. 만약 그대로 떠밀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를 잃을 뻔한 상황에 아찔해지는 한편, 그날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생사가 걱정이다. 보영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도로 위에서 차량에 갇힌 채 현장에 노출되었던 보영씨는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나가고 바닥에 누워 있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② 당사자 – 참사의 영향 아래 놓인 사람 참사는 그날 이태원에 머무른 사람들을 관통한다. 나아가, 직간접적으로 소식을 접한 모두가 참사의 영향 아래 놓인다. 이태원의 핼러윈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DJ H씨는 일상에 도사리던 죽음을 체감하고, 모하메드씨는 분향소에 걸린 앳된 면면을 보며 미안해한다. 자신과 당신, 둘의 운명을 가른 데에는 한 끗 차이밖에 없으므로. '나' 역시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 공포가 새겨졌지만,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당사자를 폭넓게 상상해야 한다'는 정임씨의 뜻과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나연씨의 뜻은 그런 점에서 통한다. ③ 편견 - “왜냐면 내가 많이 변했거든요.” 모르는 영역은 곧잘 편견으로 채워진다. 특히 이태원과 핼러윈을 둘러싼 혐오는 참사를 해석하는 데 강력하게 작용한다. 일각에서는 "거길 왜 갔냐"라며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보영씨는 지적한다. 이태원과 핼러윈을 몸소 경험해 본 주민들은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거라고. 그런데 그만한 이해가 드물어 침묵에 잠기는 건 오히려 주민들 쪽이다. 누군가의 고통은 또 다시 가중된다는 점에서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기록단조차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만, 인터뷰를 통해 변화해 나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과연 바뀔지 묻는 질문에 혜영씨는 확신했다. "왜냐면 내가 많이 변했거든요." ④ 피해 – 그날 이후 잃어버린 무언가 이태원은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기에 회복을 고민해야 한다. 과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헤아려야 한다. 가령, 삼대 째 이태원에 거주하는 원기씨에게 핼러윈의 의미는 각별하다. 유년 시절부터 함께해 온 만큼 아득한 추억이 거기 쌓여 있다. 그 문화가 위태로워질수록 원기씨의 뿌리도 흔들린다. 또한 드랙퀸 활동을 하는 샤인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로서 샤인씨가 느끼는 연대감은 여기 모인 이방인들을 아우른다. 이태원의 위기를 두고, 샤인씨는 왠지 악착같다. 그렇듯 참사의 여파는 실존 깊숙이 미치고, 이태원의 침체는 지역 사회에 치명적이다. ⑤ 정치 – 양극화된 정치 현실 속 침묵  '정치적인 것'에 대한 경계심이 도드라졌다. 그런 이유로 인터뷰이 섭외에 실패하기도 했으며, 인터뷰이의 염려를 거듭 덜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그 반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보다 참사에 대해 입을 열 때 사람들이 지는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솔아씨는 양극화된 정치 현실에서 의견 표출이 얼마나 두려운지 공감한다. 나연씨는 거리마다 나부끼는 정당 형수막이 마치 기사 댓글 창 같다고 한 지인의 평을 떠올린다. 중간쯤에 있는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승연씨는 인터뷰 말미 한숨 쉬듯이 답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한 거니까 잘 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⑥ 애도 – 일상과 분리된 추모의 한계 일상과 추모는 분리되어야 하는 걸까. 추모는 꼭 무겁고 엄숙해야 할까. 한동안 영업을 중단했던 범조씨는 압사가 발생했던 골목 앞을 일부러 지나면서도 국화를 놓거나 포스트잇을 붙이지는 못한다. 일주일에 몇 번씩 이태원에서 약속을 잡던 승연씨는 '애도'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고백한다. 둘 다 안타까움이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더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게 있기 때문이다. 이에 DJ H씨는 고인의 마지막을 흥겹게 지키는 아프리카 장례를 예시로 든다. 보영씨는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떠올리며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울리는 하루를 상상한다. 솔아씨와 샤인씨는 이태원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를 제안한다. ⑦ 불신 – 사회를 향한 불신의 누적 물론 이런 의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참사 그 자체가 해결되어야 한다. DJ Seesea씨는 삶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음을 호소한다. 책임 있는 자의 적절한 사과나 반성이 뒤따른 적이 없기에, 개인적인 치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를 향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다. 한편, 대부분의 기록단이 이태원 참사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연상한다. 더불어 이듬해 이어진 오송 참사와 서이초 사건 등을 언급하며 무너진 신뢰에 대해 고심한다. 참사 당시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겼던 호태씨가 ‘믿음’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것도 비슷한 취지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 무수한 상처들이 아물지 않은 채로 나날이 누적되고 있다. ⑧ 지역 – 여전히 미지로 남은 이야기 기록단은 이미 지역에서 형성한 관계를 바탕으로 인터뷰이를 섭외했다. 물론, 여전히 미지로 남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같은 주민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연을 품고, 상인들 역시 업종에 따라 현재의 상황을 상이하게 겪는다. 외국인과 이주민의 생활도 천차만별이다. 청소년과 노인의 경우도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보영씨는 참사 직후 당근마켓 어플에 게시된 내용들을 기억한다. "슬프다", "미안하다",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 그리고 댓글로 자신의 상담 경험을 공유했다. 아쉽지만, 모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기록단 활동이 더 많은 연결을 위한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며 맺는다.  4. 고민들 ① 핼러윈 – 참사 일주기의 과잉된 반응들 참사 일주기를 앞두고 정부·지자체가 내놓은 핼러윈 대책은 문제적이다. "오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원기씨의 바람이 무색하게, 이태원 거리 곳곳에 배치된 경찰은 행인보다 그 숫자가 많아 보였다. 또한, 주요 길목마다 설치된 철제 펜스는 우측 통행을 강제했다. 걸음을 늦추다가는 서둘러 움직이라는 핀잔을 들었으니, 사람들과 눈을 맞추거나 대화를 나누기란 어려웠다. 과연 그런 통제만이 안전을 보장하는 걸까. 그토록 과잉된 조치는 위험을 관리하기보다 위화감을 조성할 뿐이다. 한편, 마포구에서는 ‘핼러윈 금지’ 현수막이 붙기도 했다. 놀이공원이나 식품 업계에서는 핼러윈 마케팅을 다른 방식으로 대체했다. ② 이야기 – 도무지 듣지 않고자 하는 사회 어떤 이야기는 수면 위로 넘실댄다. 반면, 어떤 이야기는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다. 익숙한 틀에 들어맞지 않는 목소리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누락되는데, 누군가의 삶도 그렇게 고립된다. 핼러윈 다음 날,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이태원 참사 일주기 추모 대회가 열렸다. 주현씨는 생존자로서 무대에 올랐지만, 그 자리를 지배하는 정서와 구호를 읽으며 많은 것을 덜어내야 했다. '참사'가 '참혹한 일'을 뜻한다면, 나에게는 온통 참혹한 일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참사를 설명하기 위해 갈피가 될 만한 조각들을 내보이는데, 그런 이야기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아니, 듣지 않고자 하는 힘이 사회에 만연하다. ③ 분향소 – 확인하고, 학습하고, 교감하는 분향소에서는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면전에 대고 훼방을 놓는 사람들은 꾸준히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헌화하는 행렬이 길었다. 언젠가 다국어로 적힌 홍보물이 설치되자 외국인의 관심이 늘었고, 어린이들은 항상 왕성한 호기심으로 보호자를 잡아끌었다. 그 앞에서 나는 이 참사에 대해 무어라 설명해야 했을까. 곳곳에 쓰인 '기억', '애도', '안전' 같은 단어를 두고도 금세 머릿속이 하얘졌다. 또한 분향소에는 전국 각지에서 추모객이 들렀다. 외딴섬 같은 그 공간에 연대하면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했다. 혹은 참사에 관해 확인하고 학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④ 기록 – 참사 피해를 기록할 때의 원칙 기록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근거한다. 녹취록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그 행간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몇 가지 태도를 유념했다. 가령 많은 피해가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피해가 고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나름의 방식으로 참사가 야기한 문제에 대응하기 마련이다. 또한, 그 피해가 아무리 클지언정 그것이 한 개인을 이루는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삶의 일부로서 어떤 맥락 위에 놓이는지 살펴야 한다. 이태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움직임과 문화에 주목해야 공평하되, 그 풍경을 마냥 아름답게 담는 게 정답은 아니다. 이태원 안에서조차 구역에 따라 그 분위기는 서로 다르다.
·
[이태원 참사]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
“참사 당일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단 10분을 요구하고 싶어요.”   모 신문 편집국 내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회고를 했을 때 나온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회부 사건팀 부팀장(vice·바이스)이 전했고, 이 말을 직접한 사람은 그의 후배 기자였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소속 기자들은 가장 먼저 현장에 뛰어드는 편집국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각 언론사에서 가장 연차 어린 기자들이 배치되는 부서이기도 합니다. 그가 10분을 요구한 이유는, 취재 현장으로 나가기 전 함께 재난보도준칙을 읽고 왜 우리는 이 취재를 해야 하는가를 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난보도준칙은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9월,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국내 대표적인 언론현업인단체가 모여 만든 일종의 취재·보도 가이드라인입니다. 언론인 스스로 필요하다고, 지켜야한다고 정해놓은 규범이므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취재 전 다같이 재난보도준칙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태원 참사 초반에 드러났던 보도문제, 즉 혼란스러운 초기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무차별적인 취재 경쟁을 벌이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현장에 배치된 기자들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가이드라인대로 행동하기는 무척 어렵고, 특히 연차 어린 기자들이 배치된다면 이들이 처음 경험하는 현장에서 가이드라인대로 취재하고 보도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재난보도 상황에서 작동하는 문제적 ‘보도관행’ 그런 점에서 우리는, 뉴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적 '관행'이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경희(2019)는 세월호 참사 당시 기자들이 반복한 ‘잘못된 관행’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물론 기자 개개인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뉴스를 만드는 일은 여러 가지 선택지를 선택하는 상황, 즉 갈등구조 속 반복되는 선택행위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특히 재난사고의 경우,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어떤 소재에 주목하고 어떤 취재원을 만날 것인지, 사회적 참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정부와 국회 등에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면 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사안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갈등구조는 깊어지고, 언론인·언론사·언론조직 등이 어떤 관행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해당 연구 결과, 재난현장 취재과정에서 4가지, 보도과정에서 5가지의 갈등구조와 그 속에서 선택된 관행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취재과정에서는 △‘재난 현장’과 ‘정부 발표’ 사이 △‘피해자 인권’과 ‘뉴스거리’ 사이 △‘현장 자율 취재’와 ‘본사(데스크) 지시 취재’ 사이 △‘타사와의 취재 경쟁’과 ‘타사와의 협력 취재’ 사이에서 기자들은 갈등합니다. 그 속에서 △정부 발표는 신뢰하지만 피해자는 비신뢰하는 관행 △피해자 인권보다는 뉴스거리, 특히 영상 중심으로 취재하면서 비윤리적 취재를 하게 되는 관행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데스크의 지시를 일단은 따르는 톱다운 방식의 취재 관행 △비협력적 취재 관행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보도과정에서는 △‘현장 보고’와 ‘정부 발표’ 사이 △‘피해자 중심 보도’와 ‘권력자 중심 보도’ 사이 △‘핵심 사실 보도’와 ‘기계적 중립 보도’ 사이 △‘정확한 보도’와 ‘신속한 보도’ 사이 △‘선정적 구성’과 ‘절제된 구성’ 사이에서의 갈등구조가 드러납니다. 세월호 보도에서 대부분의 데스크는 △현장 보고보다 정부 발표를 보도하기를 선택했고 △피해자의 요구나 주장보다는 권력자의 행보나 언행을 보도했으며 △재난사고의 원인과 재난 대응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밝혀내는 보도보다는 이것이 정부나 행정 관리자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되는 것을 고려하여 ‘중립성’이라는 저널리즘 원칙을 따라 보도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매체 환경의 영향으로 △신속한 보도와 △선정적 구성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행들은 한국 저널리즘의 고유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뉴스거리를 정부나 공권력의 발표에 의존해온 방식, 타사와 협업 취재보다는 기자 개인기를 통한 특종과 단독에 더 집중하는 문화, 정파성에 대한 두려움과 중립성 신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사회 비판 보도를 정파적 보도로 여기고, 정파적 보도는 편파적이고 중립적이지 못한 보도라고 해석하는 관점), 속보와 같은 정보의 빠른 전달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보는 관점 등이 중첩되어 참사·재난보도에서의 문제 상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위험커뮤니케이션 상황 하에서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 ‘전문가’와 위험을 인지해야 할 ‘대중’ 사이를 언론이 잘 매개해야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러한 취재관행은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적 질문 : 언론은 무엇인가요? 재난 상황에서 제대로 보도해줄 언론을 기대하는 우리들은, 언론이 이런 문제적 보도관행을 갖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며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더 근본적으로, 언론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은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것들을 기대하나요? 일반 시민들·대중들에게 언론은 무엇인가요? 기대가 좌절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언론과 언론인들이 생각하는 언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지만 기자들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역할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2022년 열린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다시 본 재난보도준칙’이라는 토론회에서 한 기자가 이같이 말했습니다.   “(재난보도)준칙 제13조에 유언비어 방지 부분(모든 정보는 출처를 공개하고 실명으로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확인되지 않거나 불확실한 정보는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유언비어의 발생이나 확산을 막아야 한다)이 있는데 이 대전제에 반대할 기자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현장에서 나의 일이 됐을 때 솔직히 장담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당시 마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든가 연예인이 있어서 사람들이 몰렸다는 목격담이 있었는데, 수사기관 등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 이런 내용을 일체 전하면 안 되는 건가란 생각을 했다. 왜냐면 당시 현장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내용을 전하는 게 현장성을 지키는 제1의 기준일 수도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어디까지 현장을 전해야 하는 건가 고민이 들었다.”   ‘현장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제1의 기준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것은 상황마다, 시기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현장 정보 전달’을 언론의 역할 1순위에 놓게 되면 언론의 또 다른 역할들은 2순위, 3순위로 밀리게 됩니다.   떠올려봅시다. OO일보 사회부 사건팀 소속 신입 기자는 2022년 10월 29일 왜 해밀톤 호텔로 갔어야 할까요? (1)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시, 그 중심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사고’가 무엇이고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취재하여 알리기 위해서일까요? (2) 들어보니 엄청난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이고 그렇다면 이는 대중의 주목과 관심을 끌 수 있는 뉴스거리이니 취재해야하는 것일까요? (3) 벌어진 ‘사고’에 대해 공권력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사고’를 ‘사회재난’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기 위해서일까요? 대체 그는 왜 거기로 가야했을까요?   언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기자·언론사의 취재·보도 과정 또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과정이라고 본다면, 언론의 취재 과정과 목적은,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관점을 그대로 적용해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사건사고를 알리기 위해서 취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커뮤니케이션을 ‘정해진 양의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전달모델·transmission). 이는 기본적으로 미디어(언론)에 대해서, 정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과정, 즉 정보와 거리와 사람을 통제control하는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이것이 이태원 참사에서의 보도 문제를 일으킨 원인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관점으로 언론의 역할을 바라본다면 분명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2) 대중이 궁금해 하는 뉴스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취재해야 한다는 개념은 어떨까요.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주의를 끄는 것’으로 생각합니다(공시모델·publicity). 즉, 언론(매스미디어)은 대중의 눈길을 끌고, 감성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언론은 후술할 ‘규범 이론’의 적용을 받는 편이므로 공시모델로 완벽히 설명되진 않지만, 단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관점(전달모델)보다는 가치중립적인 면모를 띄며, 우리가 미디어(언론)에 대해 ‘이들은 광고주에게 대중의 주목(attention)을 팔아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고 설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3) 언론, 저널리즘은 일반적으로 위의 관점보다는 ‘규범 이론’으로 설명됩니다. 규범 이론이란, 언론의 이상적인 구조와 운영 방법은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가치와 원칙을 정하고 – 예를 들면 ‘언론 운영을 규제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미디어에 대한 직접 규제는 정당하다’, ‘정부 규제도 언론 자유도 모두 필요하다’와 같은 내용 – 이런 것들과 연관해서 언론의 책무가 정해집니다. 1920년대 미국에서 정부 규제를 요구하는 압력이 늘어나면서, 미디어 경영자들은 규제를 정부에 맡기기 보다는 공중의 필요에 맡기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언론에 감시견 역할이 부여되고, 언론이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부Fourth Estate로 그려지게 됩니다.   이태원 참사와 미디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이 두 가지에 어떠한 직접적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론인 스스로와 언론사가 이태원 참사를 포함한 취재 현장에 ‘왜’, ‘무엇을 취재하기 위해’ 가야하는지 생각할 때 필요한 근본적 사상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언론의 역할을 떠올리고 그들을 분석하고 평가할 때 쓰일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현장에서 느낀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기자의 다짐은 언론을 정보 전달자로 한정하는 관점입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를 전달함으로서 사회 다양한 요소를 통제하는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쥐어줄 것인가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설명하는 또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뉴스가 전달되거나 제공된다는 인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공동체에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즉 어떤 의미를 생성해내며, 공동체가 공통으로 갖게 되는 행동이나 공유하게 되는 신념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는 관점입니다. 오늘 읽었던 뉴스가 나에게 어떤 정보를 주었는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많은 한국 사람들이 출근길에서 뉴스를 읽는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행동인지,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일련의 보도행태에서 우리는 어떤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는지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입니다(의례적 관점·a ritual view of communication).   기자가 고민으로 언급한 것처럼, 참사 초기 ‘마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목격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MBC에서는 뉴스특보를 진행하던 도중 ‘단순 압사 사고가 아니라 약이 돌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 인터뷰를 그대로 내보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목격담을 전하는 것이 부적절했던 이유는, 해당 현장에서 나온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실제로 현장에서 이런 목격담이 떠돌았던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태원 참사를 구성하게 될 여러 의미에 대해서 깊이 숙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했던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떠올려볼 때, 이태원이 한국 사회에 의미해 온 장소성이 있습니다. 박상은(2023)은 이태원 참사가 어떻게 의미 구성이 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왜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었는지(즉, 안전 대책이 설계되지 못했던 행사였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2010년대 들어 이태원의 지역 성격이 바뀌는 상황에서 도시계획은 여기에 발맞추지 못했고, 덩달아 이태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이 작용하면서 핼러윈 축제는 지자체의 관리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장소성은 참사 이전부터 작동해왔다는 점입니다. 이국적이고 자유로운 공간, 그러나 위험하고 문란한 공간이라는 사회적 시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며 참사의 의미를 왜곡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태원 참사를 어떠한 의미로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여기서 한국 언론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 언론이 이것까지 염두에 두었다면 ‘마약 목격담을 전달해야 한다’는 감각을 가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재난과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을 구성하기 결국 우리는 재난과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서 남아있는 진상규명은 무엇이고,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 필요한데 말입니다. 그러나 울리히 벡(Beck, 1986)이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에서 말한 대로, 문명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겪을 위험은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계속 커질 것이라면, 위험과 대중 사이를 매개할 언론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하는지 고민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이 아주 새롭게 이뤄져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들었다는 재난보도준칙을 다시 봅시다. 내로라하는 언론인들이 만들었다는 이 가이드라인엔 이미 해답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일례로 제8조(통제지역 취재) ‘병원, 피난처, 수사기관 등 출입을 통제하는 곳에서의 취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관계기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는 조항이나, 제18조(피해자 보호)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등의 규정이 있습니다. 새로운 뉴스거리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캐물으며 공격적으로 취재하는 기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혼란이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재난으로부터 공동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이 또한 기자의 역할이자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
2
·
성범죄·기후 정책 대신 AI?
처벌법 개정, 딥페이크 성범죄를 끝낼 수 있을까 by. 🧑‍🎓민기 👋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AI 윤리 레터 필진으로 합류한 🧑‍🎓민기라고 합니다. AI 기술과 국내 IT 정책을 중심으로 관점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일컫는 여러 용어가 있습니다. “허위영상물”(성범죄특별법) “성적 허위영상물” “불법합성물” “불법합성 성착취물”, 그리고 지인의 얼굴을 합성하여 제작한 “지인능욕”도 겹치는 범주로 볼 수 있습니다. 불법합성물 제작 방식은 딥페이크 방식 외에도 다양한 방향으로 발달했습니다. 아래에서는 용어의 인지도와 가독성을 고려해, “딥페이크 성착취물”이라는 용어로 통일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인 9월 26일, ‘딥페이크 성착취물 소지·시청 처벌법’(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기존에 유포목적으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한 것만 처벌하던 범위를 넓혀서, 유포목적이 아니더라도 제작 행위를 처벌하고 소지와 시청도 처벌하는 조항을 만든 것입니다. 이 법은 대통령의 공포 절차만 거치면 곧바로 시행됩니다. 이 날은 22대 국회가 열린 이후 두번째로 여야 합의를 통해 민생법안을 대규모 처리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시민사회와 여성단체는 속시원한 환영 입장을 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환영 뒤로 아쉬움을 얘기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곧장 한계를 맞닥뜨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법의 개정 흐름을 짚어봅시다. 2019년 말, N번방 사태가 전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하여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유포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2020년 3월 처음 성범죄특별법에 개설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2024년 5월에는 소위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이 드러나고 가해자가 검찰에 송치됩니다. 피해자 중 한 명과 추적단불꽃의 원은지 활동가가 가해자를 2년간 꾸준히 추적해 경찰에 넘긴 결과였습니다. 이와 함께 실제 딥페이크 성범죄 검거율은 46.8%(2022년, 같은 기간 사이버성폭력 검거율은 72.9%)에 그쳐, 딥페이크 성범죄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경찰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8월 말, 1,200명이 참여한 인천 모 대학의 대학생들을 타겟으로 한 딥페이크 성착취물 공유방이 폭로됩니다. 이어서, 1,300명이 참여한 70여 개 대학별 “능욕”방, 3,700명이 참여한 “링크 공유방” 등도 존재가 드러납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전세계 이용자 수 22만 명 규모의 텔레그램 봇(bot) 채널의 존재까지 알려지며, 이는 전국적 분노로 커졌습니다. 심지어 중·고교의 학생 및 교사, 군인도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딥페이크 성착취물 처벌법의 보완 필요성에 대해 급하게 논의하였고, 성범죄특별법 개정안이 쏟아졌습니다. 8월~9월 사이에 제안 이유에 “딥페이크”를 언급한 성범죄특별법 개정안만 21개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를 취합한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유포 목적”으로 제작한 경우만 처벌이 가능하던 부분을 삭제하고, 딥페이크 성착취물 소지·시청 또한 처벌할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한 것입니다. 또 촬영물을 이용한 협박·강요죄(성범죄특별법 제14조의3)에 “편집물”을 추가하였고,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이용한 협박·강요를 강력히 처벌할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 같은 날 개정되었습니다.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 실제로, 기존의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법은 “유포 목적”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포 목적이 없었다는 주장으로 가해자가 빠져나가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실제로 직장 동료들을 상대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한 남성이 반포 목적을 입증하기 어렵단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2020년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법 제정 당시 “유포 목적”을 조항에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책임을 지적했습니다. 반포 목적이 없어도 인격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에도, ‘단순 제작, 소지에는 법익침해가 없다’며 반포 목적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당시 그러한 주장을 했던 공직자들은 해명 요구에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걸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끝낼 수 있을까요. 이 과정에서 두 가지의 아쉬운 장면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알면서” 문구를 둘러싼 논쟁입니다. 9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소지·시청을 처벌하는 조항에 딥페이크 성착취물임을 “알면서” 했어야 처벌한다는 조건이 들어간 것입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를 열어본 것만으로 처벌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였고 결국 법사위원들은 “알면서” 조건을 추가한 안을 본회의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원칙적으로 과실범은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고의로 그와 같은 행위를 한 경우에 처벌한다”, “모든 성폭력 가해자는 몰랐다고 주장한다”라는 지적을 받았고, 이틀 후 본회의에서는 “알면서”가 다시 빠진 안이 올라와 통과되었습니다. 두번째는 소지·시청 처벌법과 함께 논의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한 다른 법안들입니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딥페이크 성범죄·디지털 성폭력 근절대책특위’는 23일 딥페이크 성범죄 개정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를 성인으로 확대, 피해영상 차단을 위한 경찰의 응급조치 조항 신설, 성범죄특별법의 ‘성적수치심’을 ‘성적불쾌감’으로 개정하는 내용을 신속히 통과시킬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 25일 역시, 위장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안을 추진하고 신속한 삭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 중 지난달 국회의 문턱을 넘은 안은 없었습니다. 특히, 경찰이 곧장 피해영상 차단을 요청하는 안은 경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고, 현행대로 방심위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아직도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국회와 정부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논의가 미숙한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사법제도가 피해자의 보호와 회복을 외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법이 통과된 뒤 27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155개의 여성단체 공동성명에서는, “여성폭력 사건이 발생해 공론화되고, 국민의 공분이 일어난 이후에야 국회가 움직여 법안과 대책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2018년 법조계 미투를 폭로했던 서지현 검사도 페이스북에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습니다. 글에서 서지현 검사는 “N번방 때 저 정도 법을 만들어놓고 ‘할 일 다했다’고 자축해놓고, 이번 역시 같은 모습”이라며 국회의 태도를 비판하였습니다. 또한 “2020년에 누락한 것의 수정에 불과”, “벌써 2-3년 전 내놓은 권고인데 (…) 단 한 개도 실현되지 않았다”며 국회의 늑장 대응을 질타하고 보다 많은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뒤에야 대책을 마련하는 국회와, 그런 국회의 반응만 바라보고 있는 사법부와 행정부의 반응은 느리기만 합니다. 성범죄가 주로 여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2022년 대선에서는 후보를 본딴 딥페이크 영상을 내세웠다가, 딥페이크 기술이 보편화되자 2년 만인 2024년 총선을 앞두고는 딥페이크를 활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해보입니다. 섣불리 기술에 해결을 떠넘기는 흐름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대응 예산이라며 허위조작 콘텐츠 탐지기술에 27억원, 허위영상물 탐지 소프트웨어 고도화에 5억원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미 딥페이크 피해를 겪은 피해자에게 탐지 기술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걸까요?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반성평등 정책을 철회하지 않는 정부를 보면, 오히려 “정부가 성범죄를 키웠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작 디지털성범죄 피해신고 등을 담당하는 온라인피해365센터의 예산은 20% 삭감되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제도적 미비점은 보완이 되었다지만, 사회인식의 전환은 이제 시작입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등의 요건을 “성적 수치심”이 아닌 "성적 불쾌감” 등으로 개정하고, 성범죄 사법절차의 초점을 피해자의 회복과 보호에 맞춰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직도 “무고하더라도 딥페이크 시청으로 조사·처벌받을 수 있다”는 가짜뉴스가 버젓이 퍼지고 있습니다. 딥페이크 피의자의 83%가 10대라는 통계는 그런 사회구성원들, 특히 남성 주도 사회가 그런 형태로 성범죄 해결 노력을 적대시하고 책임을 외면해 왔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학습한 결과일 것입니다. 책임있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내가 성범죄 책임을 뒤집어 쓸 것이라는 가짜뉴스를 퍼뜨릴 시간에, 오히려 우리는 어떻게 책임을 다할 것인가를 논해야 하는 때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딥페이크 성범죄는 엄연한 범죄라는 것입니다. 가해자는 숨을 수 없고, 응당한 책임을 질 것입니다. 더 녹기 전에 by. 💂죠셉 지난주 소풍 벤처스와 카카오 임팩트가 주관한 <2024 클라이밋 테크 스타트업 써밋>에 다녀왔습니다. 2박 3일의 기간 동안 기후 문제에 진심인 시민 단체, 씽크 탱크, 스타트업과 이들을 지원하는 VC들 그리고 여러 비영리 재단의 관계자분들과 함께했는데요. 기후 테크와 AI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행사였던 만큼, 이 분야의 기술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여러 오피니언 리더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볼 수 있었습니다. 기후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방면에서 어떤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지 배울 수 있어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참석한 세션들에서 거대언어모델(LLM) 일변도인 현재 AI 산업의 몇 가지 경향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효율'과 ‘스케일'.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를 AI가 풀어줄 것이라는 주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들이죠. AI를 통한 기후 문제 해결의 맥락에서도 비슷한 주장들이 보였고, AI 윤리 관점에서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세탁기의 아이러니 AI 전문 저널리스트 캐런 하오 (Karen Hao)는 얼마 전 The Atlantic에 기고한 "AI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선"이라는 글을 통해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표방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AI 하이프를 이용해 엑손모빌(ExxonMobil)과 셸(Shell)과 같은 화석 연료 회사들과 더 많은 사업을 성사시켰음을 고발했습니다. 해당 클라이언트들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론은 ‘효율’의 증진입니다. 더 성능 좋은 AI를 탑재함으로써 기계가 화석 연료 추출에 필요한 작업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죠. 실현될 수만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번 써밋의 기조연설자였던 한양대학교 이상욱 교수가 세탁기의 예시를 통해 지적했듯, 이는 전체 생산량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만 유효한 주장이기 때문이죠. 과거 세탁기의 발명은 가사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손쉬운 세탁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더 자주 옷을 세탁하게 되어 노동의 총량은 유지된 사례가 있습니다. 시간 대비 더 효율적인 드릴 작업이 가능해진 석유회사의 기계는 총생산량의 증가를 향해 더 바쁘게 작동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변화가 환경에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요? 작은 것이 아름답다? AI 산업에서 스케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이번 써밋에서도 더 많은 GPU 확보의 필요성과 데이터 센터를 가동하기 위한 에너지의 확보 등이 뜨거운 화두 중 하나였는데요. 더 큰 모델, 더 큰 데이터셋, 더 많은 GPU의 확보가 더 나은 성능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현재 업계에서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종종 지적되는 AI의 부정확성, 설명 불가능성 등 복잡한 윤리 이슈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의 지팡이 같은 믿음이기도 하죠. 프랑스의 국립 과학 기술 연구 기관인 Inria의 리서치 디렉터 가엘 바로코(Gael Varoquaux)와 알렉산드라 사샤 루치오니(Alexandra Sasha Luccioni), 메레디스 휘테커(Meredith Whittaker)가 몇 주 전 발표한 논문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2012년 알렉스넷의 성공을 기점으로 AI 업계의 상식이 된 ‘스케일의 신화’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수확 체감의 법칙 (생산에 필요한 요소 중 다른 요소들은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생산요소가 증가할 때 단위당 한계 생산량은 줄어드는 현상) 등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스케일의 신화를 해부하는데요. 특히 이미지 인식 등 집중을 요구하는 특정 작업의 경우 작은 모델의 성능이 오히려 큰 모델을 능가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지적이 눈에 띕니다. 수행해야 하는 작업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모델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AGI(=모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일반 인공지능) 하이프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흥미롭습니다. 다목적을 수행하며 계속 거대해지는 소수의 AI모델에만 의존하는 지금이 환경에도 최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가며 기후와 AI. 하나만 이야기해도 어려운 주제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가늠하기도 힘든 거대 복잡계인지 새삼 느낍니다. 한 개인의 지능과 지혜를 아득히 뛰어넘는 이러한 복잡계를 대함에 있어 AI라는 도구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실제로 많은 영역에서 도움이 되겠죠. 그런데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지구 온난화 등의 난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AI를 이야기할 때 눈여겨봐야 하는 점은 현재의 논의가 대부분 상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캐런 하오가 현 상황을 논평하는 멋진 한 줄을 썼습니다. “생성형 AI 패러다임에선 불확실성이 확실성을 이긴다. 추측이 현실을 지배하며, 과학은 믿음으로 유예된다.” 흔히 의사 결정 과정의 중요한 요소로 ‘되돌릴 수 있는지(reversible)’ 여부를 이야기합니다. 되돌릴 수 있는 문제라면 빨리 시도해 보고 돌이켜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되돌릴 수 없는 문제라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기후 문제는 명백히 후자입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자원의 투입으로 더 효율적이고, 거대해진 AI가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럼 어쩌라는 거냐? 물어보신다면 저에게도 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수십억 인구의 일상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의 스케일에 비해 현재 AI 패러다임은 극소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 미래 예측 메카니즘의 핵심은 기술 뒤에 늘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불확실한 추측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소외당하고, 혹은 어떤 담론이 득세, 혹은 배제당하는지를 날카롭게 질문해야 합니다. 일단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고민에 동참해야겠죠. 이번 써밋 또한 당장의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feedback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
1
·
[이태원 참사] 언론은 어떻게 해야 했고, 또 어떻게 해야 하나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이태원 참사'를 마주했다. 이후 계속 이태원 참사를 취재했고, 이제 곧 2주기다. 그사이 여러 일이 일어났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통과되었고, 최근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리고 참사의 책임자들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누구는 유죄를 받았고, 무죄가 나오기도 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진상규명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사회적 참사는 복잡다단하다. 단순히 '특정 개인을 책임지게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러 공공기관의 기형적 관행과 사람들의 욕망, 그리고 비효율적 시스템이 얽혀 있다. 언론은 이를 밝혀내야 한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완벽하지 않다. 특조위가 규명해내지 못할 수도 있는 부분을 언론은 보완해야 한다.  나는 지난 몇달 간 '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기획기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태원 참사의 10가지 진상규명 과제를 골랐고, 이를 규명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썼다. 10가지 과제를 뽑기 위해, 또 이를 특조위가 조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증명하기 위해 국회 국정조사, 수사, 재판 자료를 훑었다. 별도로 확보한 여러 영상과 사진, 문서 등도 검토했다.  취재를 하며 생각했다. "나에겐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그리고 후회했다. "언론은 왜 이런 자료들을 모아놓지 않았고, 또 보도하지 않았을까."  특히나 아쉬웠던 부분은 참사 당시 모습을 담은 영상의 부족이었다. 나는 여러 자료를 통해, 참사 직후 경찰의 현장 교통통제 실패가 구조지연을 야기했고, 이로 인해 피해 규모가 더 커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가져왔고, 기사를 썼다. (관련 기사 : [이태원 참사 미규명 진실] ⑥ '교통 통제 실패' 그리고 놓쳐버린 골든타임) 하지만 기사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래서, 구조가 빨랐다면 '누구를 살릴 수 있었는지'였다. 나는 그것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희생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영상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참사 직후 언론보다 빨랐던 것은 시민의 휴대전화였다. 여러 시민은 자신이 찍은 모습들을 SNS에 올렸고, 소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곧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참혹한 영상은 삭제돼야 한다는 여론과 정책적 결정이 있었다. 이로 인해 언론은 더 이상 SNS의 영상을 수집하거나 보도하는 걸 금기시해야 했다. 그 결과, 현재 찾을 수 있는 참사 관련 SNS 영상은 매우 한정적이다.  확인해 보니, 참사 현장 영상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것은 기이하게도 미국 언론이었다. 해당 언론은 이태원 참사 직후, 매우 적극적으로 시민들이 촬영한 영상을 수집했다. 그 결과, 미국에서 지난해 <CRUSH>라는 다큐멘터리가 개봉했다.  참사 현장 영상은 삭제돼야 하고, 수면 아래 묻혀야 한다는 것. 참사 직후,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상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한 지금 시점에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의 판단을 후회한다.  우리는 희생자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버티다 죽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희생자들의 사망 진단서에는 "30일 오전 12시 00분 사망 (추정)", "29일 오후 10시 15분 사망 (추정)"이라고만 적혀 있다. 만약, 참사 당일현장 영상이 대량 수집돼 있었다면, 그래서 여러 각도에서 참사 골목의 상황을 시간대별로 분석해볼 수 있었다면, 어떨까. 난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유가족은 요새도 SNS를 돌아다니고, 또 여러 방송사에 문의하며 영상 하나라도 더 얻으려고 노력 중이다. 앞서 설명한 미국 언론에도 연락해 '제발 시민들이 찍은 참사 당일 영상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현장에 도착한 11시 20분은 이미 골든타임이 지난 후였다"고. 난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11시 20분 이후에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희생자가 있었고, 그 모습이 어렴풋이나마 담긴 영상이 있는 상상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민 장관의 저 말을 반박할 수단이 없다, 지금은.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오히려 언론은 그런 영상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보도했어야 하지 않았나, 이름부터 참혹한 참사를 왜 참혹하게 보도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러지 않기로 한 약속이 과연 진상규명에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는가.  앞서 설명했듯, 현장 영상의 사례는 일부분일 뿐이다. 결국 우리 사회와 언론은 어떤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과연, 사회적 참사의 해결에 도움이 보도는 무엇인가? 또 그것의 불편함을 우리는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는가? 
·
처벌하지 않는 살인... 이 죽음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13화]
[지난 이야기]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상사 때문에 괴롭다고 대성통곡하던 동생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출퇴근 기록이 찍힌 교통카드 내역을 언니의 이메일로 보내놓고서. 그것은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꼭 진실을 밝혀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었다. 언니 장향미(45) 씨는 동생의 죽음이 “동생의 문제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언니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향미 씨는 동생이 떠나고 나서 세 달 동안 동생의 동료들을 만나면서, 동생의 과로자살은 회사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회사는 과로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향미 씨는 제일 먼저 증거보전신청을 하고 회사에 동생의 출퇴근 기록과 업무일지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기록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증거보전신청 소송에서 향미 씨가 이기자, 그제야 기한 직전, 그것도 출근 기록이 아니라 동생의 컴퓨터 로그 기록(시스템 접속 기록)을 A4용지에 인쇄해서 보내왔다. 모두 966장이었다. ‘엿 먹으라’는 걸로밖에 읽히지 않았다. 컴퓨터 로그 기록으로는 출퇴근 시간을 파악할 수 없었다. 업무일지는 대부분 가린 채 제출했고, 면담 기록지와 야근식대와 같은 청구내역은 아예 제출하지 않았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다. 회사가 가해자인데, 증거를 모두 가해자가 가지고 있다. ‘순순히’ 줄 리가 없다. 그렇다 해도 회사의 태도는 예상보다 더 괘씸했다. 인터뷰 내내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던 향미 씨 목소리가 화가 난 듯 점점 커졌다. “정말 웃긴 게, (회사가) 출퇴근 시간을 기록할 의무가 없어요. 회사가 당당한 것도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에요. 이 회사가 2016년에 근로감독을 받은 적이 있더라고요. 동생이 떠난 뒤에도 또 똑같은 문제가 있었고요. 세 번이나 고발당했는데 처벌받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노동법은 안 지켜도 되는 거예요.” 향미 씨는 2018년 4월 대책위와 함께 피켓시위를 시작했고, 기자회견을 열어 동생의 억울한 죽음과 과로자살 문제를 알렸다. “제가 정의감에 불타서가 아니라요, 동생이 너무 억울하게 죽었잖아요. (동생이) 왜 죽었는지 꼭 밝혀야 제가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과로자살이라는 말이 언론에 나오고, 대책위와 매일같이 회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자, 회사는 그제야 동생의 과로죽음을 인정했다. 피켓을 든 지 네 달 만에, 동생이 떠난 지 반년이 지난 2018년 7월에야 회사는 공식사과를 했다. ‘면피용’ 사과조차 하지 않는 회사가 많다는 걸 알지만, 회사의 공식사과는 별 의미가 없었다. 대표는 ‘재발방지’ 같은 단어를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사과문을 읽었다. 방송에서 보던 모습, 확신에 차서 리더십을 보여주고 싶어하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네 달 동안 피켓시위를 하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막상 대표의 공식사과에도 향미 씨는 무덤덤했다. “그런다고 동생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공식사과가 있은 후 다섯 달이 지난 2018년 12월,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신청을 위한 자료를 유가족이 직접 모아야 했다.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이 산재 피해 증거를 수집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07년에 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 때문이다. 산재법에 따르면 증명책임은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는 노동자에게 있다. 그러나 업무와 관련된 증거자료는 사용자에게 있다. 2013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걸 사용자가 입증하도록 한국의 산재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회사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들을 제출하지 않았고, 향미 씨는 회사 건물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거절당했다. 동생의 유품을 받을 때도 직원들이 아무도 없는 휴일에, 건물 바깥에서 건네받아야 했다. 정보는 차단돼 있었고 접근조차 어려웠다. 증거를 직접 수집해 과로죽음을 입증해야 하는 건 가족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가족들이 속상해할까봐 피해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들, 죽을 만큼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던 일들을 남은 가족들은 들어야 했다. 듣고 싶어도 못 듣는 경우도 많았다. 증언을 해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다. 증언 대신 비난이 더 많았다. 다른 과로자살 사건에서는, 입증책임 때문에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입증책임은 “말도 안 되는 잔인한 원칙”이지만 향미 씨는 증거를 모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동생의 죽음은 묻힐 것이었다. 그 과정은 “엄청난 2차가해”라고, 향미 씨는 인터뷰 도중 거듭 얘기했다. “산재 신청하려고 하면 ‘돈 때문에 한다’고 (욕해요). 맞아요. 산재는 생존이 걸린 문제거든요. 그런데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사실 명예예요. 지금도 사람들은, 누가 자살했다고 하면 ‘나약해서 죽었다’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아는데, 가족의 죽음을 모욕적으로 얘기하는 걸 들으면 너무 큰 상처가 돼요. ‘그렇게 될 때까지 가족들은 왜 몰랐냐’는 것도 상처죠. 가족들한테 말 안 하면 모를 수 있어요. 과로자살은 구조적인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예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요.” 향미 씨는 “운이 좋아” 다른 유가족에 비해 덜 어렵게 증거를 모을 수 있다고 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 출퇴근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교통카드 내역을 향미 씨 이메일로 보내뒀다. 또 퇴근 후에 집에서 일하느라 동생의 노트북에 업무 관련 기록이 남아 있던 덕에, 산재신청에 필요한 자료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퇴사한 동료 서른 명이 증언을 해줬고, 대책위가 크게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에도 ‘운이 좋다’는 말을 쓸 수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향미 씨는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었고, 승인도 받을 수 있었다. “어려움을 뚫고” 산재 신청을 해도 승인률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운이 좋았다. 2022년 경찰청 자살 통계를 보면,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한 사람은 1년에 404명으로 전체 자살사건의 3%다. 그 중에서 재해보상을 신청한 사람은 36%, 신청한 사람 중 산재 승인을 받는 것은 52%뿐이다. 전문가들은 업무상 문제로 자살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경찰청 통계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향미 씨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동생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렇게 은폐되는 과로자살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산재 신청 이후 승인되기까지는 10개월이 걸렸다. 긴 시간이었지만, 끝내 승인됐다는 결과가 중요했다. 과로와 직장 내 괴롭힘의 증거들이 적지 않았고, 회사도 공식사과를 한 뒤였다. 무엇보다 과로자살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었고, 대책위와 연대하는 많은 시민들이 있었다. 동생이 떠난 뒤 산재 신청을 하면서 향미 씨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도록 일하는지, 일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이하 유가족모임)에 함께하면서, 유가족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가까이서 지켜봤다. 유가족모임은 과로죽음 유가족들이 산재법을 공부하고 심리치료 등을 함께하면서 2017년 만들어졌다. 유가족들의 산재 신청 과정을 지원할 뿐 아니라, 과로죽음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동생이 일했던 2년 반의 시간을 쫓다 보니, 동생을 죽인 건 회사였고 그 뒤에는 법과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과로죽음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들이 바뀌지 않는 한 회사는 바뀔 리가 없고, 이 죽음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향미 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한노보연)과, 한국, 일본, 대만 세 나라의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만든 KWA(Karoshi Watch in Asia) 네트워크 모임에 참여하면서, ANROEV(아시아산재및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에도 참가해 과로사 문제를 공유하고 알리는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는 ‘과로사 방지법’이 있다는 걸 알았다. 1988년 ‘과로사 110번 전국네트워크’가 상담전화 110번을 개통해 유가족 상담을 시작하면서 과로사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이후 30년 가까이 지난 2014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과로사 방지법)이 제정됐다. 법이 생겼다고 일본에서 과로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법률로 정의 내리고 과로사 방지대책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자, 과로죽음이 개인의 문제라는 국민들의 인식도 바뀌어갔다. 한국에는 과로사에 대한 정의가 없고, 따라서 관련 통계도 없다. 일 때문에 죽었다는 걸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입증을 한다 해도 산재 승인을 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제도들도 그대로였고, 동생의 죽음에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회사 대표는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그 덕분에 노동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포괄임금제로 계약하고 임금을 체불하는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게 드러났다. 그래도 처벌받지 않는다. 일하다 죽은 사람이 생기면 그때만 잠깐 안타까워할 뿐, 사람 죽이는 제도와 구조는 그대로다. “법에 걸려도 처벌받지 않잖아요. 그럼 그걸 누가 지켜요? 기업 입장에서는 (법을 어기는 게) 훨씬 유리한데. 그러니까 노동법은 그냥, 그냥 만들어진 법이지 진짜로 지키라고 만든 법은 아닌 거죠. 몇 년 전부터 과로사 방지법 제정한다고 하는데, 뭐 근로기준법이라도 잘 지키면 좋겠어요. 이거라도 지키면 과로가 왜 생기겠습니까?” 일본의 ‘과로사 110번 전국네트워크’라는 단체에서 시작된 과로사 금지법 제정 운동은, 실제로 그 결실을 맺기까지 30년 가까이 걸렸다. 거기에는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오랜 노력이 있다는 걸, 포기하지 않고 연대했기에 ‘결국’ 제정됐다는 걸 향미 씨는 안다. 향미 씨는 유가족모임과 함께 2021년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를 썼다. 산재 사망이 왜 생겨났는지를 밝히고 유가족을 위해 산재 과정과 필요한 자료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더는 과로죽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유가족들의 바람을 담았다. 해외의 관련 서적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2019년 ANROEV 컨퍼런스에서 만난 대만직업안전보건연대의 황이링 씨에게 <과로지도(過勞之島)>를 선물로 받고, 그 자리에서 이 책을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향미 씨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업무 때문에 종종 번역을 해왔다. 책은 <과로의 섬 – 죽도록 일하는 사회의 위험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2021년 국내에 출간됐다. 향미 씨는 ‘옮긴이 후기’에서 책을 번역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대만의 직장 과로 문제가 한국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두 나라의 과로 문제는 소름 끼칠 만큼 똑같았다. (…) 한국과 꼭 닮은 대만의 과로사 실태를 다룬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한국 사회의 과로사 문제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싶었다.” 그는 한노보연 ‘업무 관련 정신질환 연구모임’ 회원으로 직장 내 정신건강 문제를 알리기 위해 활동했고, 지금도 유가족모임과 KWA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향미 씨는 동생의 죽음에 대해 표면적으로나마 회사의 사과를 받았고, 그 어렵다는 ‘업무관련 자살’로 산재 승인도 받았다. 어찌 보면 동생의 과로자살은 끝난 사건이고, 향미 씨가 유가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향미 씨와 부모님은 괜찮아지지 않았다. 동생의 억울한 죽음, 그 빈자리를 어떻게 해도 메울 수 없다는 공허와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뉴스에서 과로사, 과로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향미 씨는 2018년으로 되돌아갔고, 그 고통이, 그 분노와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져 동생의 죽음을 또 겪는 것만 같았다. 동생의 과로자살이라는 사건이 마무리될 수 있으려면, 다시는 누군가가 일 때문에 죽는 일이 없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사실 향미 씨는 산재와 관련한 자료들을 다시 꺼내보는 것조차 힘들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런 향미 씨가 이렇게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KWA 모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것. “제 동생이 그렇게 죽은 다음에도 똑같은 문제가 매년 반복이 되는 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제 경우만 해결이 된다고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에요. 똑같은 사건이 나오면, (동생이 세상을 떠난) 그때 그 시간으로 저도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유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지, 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저는 보이잖아요. 그게 다시 재생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저도 이걸 해결하고 싶은 거예요. 저도 그 시간을 상기하기 싫은데, 사회가 계속해서 상기시켜주는 거잖아요.” 향미 씨도 부모님도, 절대 ‘괜찮아지는 일은 아닌’ 일을 겪었다. 아마도 평생을 괜찮아졌다고, 또 해결됐다고 말할 수 없는 삶을 그냥저냥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다만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그래서 과로자살이라는 소식을 어디에서도 듣지 않았으면 할 뿐이다. 그것이 과로죽음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바라는 가장 최소한의 해결이다. <끝> 취재 정윤영 르포작가 freakss@naver.com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2
·
밤 12시에 “벌써 퇴근했냐”… 회사가 동생을 살해했다 [회사에 괴물이 산다 12화]
한 세계가 사라졌다.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던 막내이자, 고양이 루시와 루니의 다정한 집사. 언니를 잘 따르던 착한 동생. 누구와도 잘 지내던 둥글둥글한 사람. 예쁜 걸 모으고 꾸미는 걸 좋아하던 사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꿈꾸며 모든 순간 성실했고, 무엇이든 열심이던 그런 사람. 민순이라는 귀한 세계가 어느 날 사라졌다. 고작 서른여섯의 나이였다. “내 앞날이 너무 깜깜해서 그냥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민순 씨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민순이라는 세상이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왜 사라져야만 했는지 물음으로써, 그 세계의 무게를 잊지 않음으로써, 사라진 세계는 여기 남아 있다. 장향미(45) 씨는 그날을 기억한다. 2017년 12월의 첫 주말, 이른 아침이었다. 동생은 그날도 야근을 하고 아침에 들어왔다. 야근은 거의 매일 있었고, 밤샘 근무를 하고 아침 일찍 집에 오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동생은 꽤 지쳐 보였다. 그런 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떼굴떼굴 구르면서 펑펑”.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향미 씨는 동생을 진정시켜봤지만, 터진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상사 때문에 괴롭다고 동생은 대성통곡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매일 야근을 하는 걸 보고 일이 많은 줄은, 그래서 힘든 줄은 알고 있었다. 향미 씨는 회사라는 데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향미 씨 자신도 유명 게임업체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즈음 그 회사에서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향미 씨와 부모님은 동생에게 퇴사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자주 하고는 했다. 그래도 동생이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착하디 착한 동생이 그렇게 우는 걸 보니 향미 씨는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바로 관할 노동지청에 회사를 신고하고 근로감독을 요청했다. 노동부에서 연락이 온 건 일주일 뒤였다. 그 사이 동생은 과중한 업무와 상사의 비상식적인 업무 질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탈진해가고 있었다. 향미 씨가 받은 답변은, 올해 근로감독 일정은 모두 끝났으니 내년 2월에 다른 신고업체와 ‘묶어서’ 근로감독을 나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근로감독을 요청해도 안 하겠다는데, 그런 노동부에 더 할 말이 없었다. 향미 씨는 몇 개월 전 회사 앞에서 팸플릿을 받은 게 생각났다. 향미 씨 회사의 과로사 문제를 고발했던 시민단체에서 나눠준 홍보물이었다. 내년까지 근로감독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시민단체에 연락을 취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는 동생의 출퇴근 기록과, 같이 고발할 수 있는 동료들을 모아보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줬다. 동생은 곤란해했다. 동료를 모으기도 어려울 것 같고, 출퇴근 기록도 없다고 했다. 향미 씨는 그게 좀 이상했다. “출입카드가 있잖아요. 그걸 찍고 들어가는데, 그 기록을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게 돼 있대요. 취업규칙도 없고요.” 회사를 고발하는 일에 나설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동생은 같이 고발할 동료들을 모으는 건 좀 힘들겠다면서도, 자기 혼자서라도 회사를 고발할 거라는 얘기를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동생은 부모님의 걱정에도 회사를 고발하려는 이유를 말했다. “(동생) 자신은 여태껏 그렇게 회사를 다녔지만, 자기 후배들, 지금 입사한 20대 초반의 신입들은 이제 이런 거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 마음으로 신고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어요. 엄마가 훌륭하다, 열심히 해보라고 얘기를 했고요.” 2018년 새해가 밝은 지 사흘째 되는 날. 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경찰이 왔다. 집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조사가 끝나면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의 조사라는 게,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가족들과 불화가 있었는지 물었고, 남자친구가 있는지, 금전적으로 문제가 있는지를 물었다. 향미 씨는 경찰에게 동생이 회사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했는데, 경찰은 그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정신이 멍했다. 이틀 전 동생과 말다툼을 했는데, 그게 동생과의 마지막이었다. 향미 씨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시민단체 활동가가 달려왔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와 변호사, 노무사도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라는 이름으로 함께 왔다. 회사 사람들도 빈소를 찾아왔다. 가장 먼저 인사팀에서 왔다. 인사팀 직원들은 일손을 돕겠다며 빈소를 떠나지 않았고, 빈소에서 오고 가는 말들을 주의 깊게 들었다. 회사 대표도 조문을 왔다. 유족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목인사만 하고 바로 떠났다. 동생의 상사였던 본부장과 팀장도 조문을 왔다. 두 사람이 동생을 괴롭힌 상사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인터뷰 도중 향미 씨는 두 사람 얘기를 하면서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팀 사람들 있는 데서 물어봤어요. 일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본부장이, 우리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일을 하지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아니라는 식으로 답을 했어요. 오히려, 제 동생하고 면담을 했는데 집에 일이 있어서 힘들어했던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출퇴근 시간을 기록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인사팀 직원이 대신 대답을 했어요. 우리 회사는 자율적인 업무를 존중하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고요.” 향미 씨는 빈소에 온 동료들, 동생과 잘 지내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모두 받아뒀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동료들을 만나고 다녔다. 동생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서른 명 정도 만났고, 대부분 이미 퇴사한 사람들이었다. 동료들은 ‘회사 다니면서 우울감을 느꼈다’고 말했고, ‘아침에 일어날 때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향미 씨는 동생의 죽음이 “동생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과로와 괴롭힘, 압박과 무기력, 우울과 탈진. 동생의 죽음은 문제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과로죽음’이었다. 과로로 인한 죽음에는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과로사뿐 아니라, 과로자살도 포함된다. 동생은 2015년 5월, 한 유명 온라인 교육업체 디자인팀에 입사했다. 전에도 IT업체 디자이너로 일을 해왔던 터라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업계 1위로 창업 6년 만에 매출 4000억을 달성했고, 직원 수가 불과 10명에서 1200명으로 엄청나게 성장하던 곳이었다. 회사를 설명하는 ‘신화와 기적’이라는 수식어 뒤에는 직원들의 “뼈를 갈아 넣는” 희생이 있었고, 그만큼 노동강도가 높기로 악명이 높았다. 동생은 첫 출근을 앞두고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입사 4일째 새벽 4시에 퇴근을 했고, 그때부터 매일 야근이었다. 근로계약서 자체가 야근을 기반으로 작성됐다. 계약 연장근로만 매달 69시간에 야간근로 29시간. 주 5일 근무로 계산하면, 매일 3시간씩 더 일하고 매일 1시간씩 야근을 해야 하는 계약이었다. 실제로는 주말에도, 퇴근 후에도 일했다. 계약서에 적힌 시간을 항상 초과했다. 포괄임금제(근로시간과 상관없이 일정액의 수당이 포함된 월 급여를 지급하는 임금계약)라 시간외근로 수당도 없었다. 힘들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버티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았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말도 안 된다는 얘기를 꺼낼 수가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만 ‘미친 사람’이 되니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전할 때마다 향미 씨의 입에서는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야근이 엄청 심했어요. 새벽에 들어오고, 아예 밤을 새우고 안 들어온 날도 있었고요. 퇴근해서도 업무 연락이 왔어요. 밤 12시에, 벌써 퇴근했냐고, 아침까지 확인하라고…. 이것도 해라, 저것도 해라, 하도 그러니까 ‘(나보고 회사를) 나가라는 건가?’ 그렇게 느낄 만큼 일을 많이 줬던 것 같아요.” 동생의 업무는 웹디자인. 기획이 생기면 디자인이 따라다녔다. 프로젝트가 없어지거나 기획이 바뀔 때마다 디자인도 함께 바뀌었고, 그 기획이라는 것도 수시로 바뀌었다.기획회의 때마다 디자인 시안을 ‘플랜A’부터 ‘플랜D’까지 만들었다. ‘까일(반려당할) 걸’ 알지만 아무렇게나 만들 수는 없었다. 밤을 새워 완성도를 높여 시안을 제출한다고 끝이 아니다. 그 과정은 본부장이나 대표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됐다.동생은 통상적인 디자이너 업무만 한 게 아니었다. 웹기획부터 상품 디자인 프로젝트, 팀관리 업무까지 수행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이 됐다. 업무시간이랄 게 따로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기획에 따라 ‘초치기’로 일이 생겼다 엎어졌고, 일은 ‘컨펌(confirm, 승인)’을 받아야 끝이 났다. ‘자율출퇴근’이라는 말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컨펌을 받지 못하면 퇴근할 수 없다. 상사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결과물은 몇 번이나 까이고, 디자이너는 질책을 받는다. 동생이 ‘이런 거’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던 ‘무한 대기와 컨펌 까이기’는 장시간 노동을 넘어 끝이 없는 무한노동이었다. 일이 아니라 벌을 받는 것 같아 “너덜너덜해지는 기분”이었다. 밤새 일하고 무한정 컨펌을 기다리느라, 동생의 시간은 동생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그의 저서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서 말했다.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일상이 자기파괴적으로 변하고, 인간이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라고. 친구들과 주고받은 메시지에 동생은 “완전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회사 일 말고 뭘 할 수가 없어요. 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친구들도 이해를 잘 못했죠. 점점 고립되는 상황이었고, (일이) 자기 생활을 다 잠식해간다고 했어요. 집에 오면 방에 틀어박혀서 잠만 잤어요. 누구랑 말할 기운도 없어 보였어요.특히 월요일이 오는 걸 되게 불안해했어요. 일요일에는 저녁도 안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잠을 못 잤어요. 입사하고 살이 엄청 많이 빠졌는데, 점심시간에 밥 안 먹고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대요.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아요.” 주말 역시 회사의 것이었다. 온라인 교육업체인 회사는 수강생들의 시험 일정이 있는 주말이면, 수험생에게 홍보물을 나눠주는 응원이벤트에 참여하도록 했다. 말은 ‘자발적’이라지만, 인사평가에 20%나 반영이 되는 ‘업무’였다. 야근하고 새벽에 들어온 날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와중에 팀장은 업무와 상관없는 책을 읽어오라고 하고, 채식을 하는 동생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했다. 동생이 상사에게 어떤 말들을 들어왔고 어떤 요구를 받았는지, 괴롭힘은 업무일지에도 잘 드러났다. 업무일지가 아니라 반성문에 가까웠다. “머릿속에 온통 브랜드 생각뿐입니다. 지치지 않고 제대로 된 아웃풋(성과)을 내겠습니다.”"엉망으로 작업을 진행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다시는 이런 결과가 없도록 더욱노력하겠습니다.”“오늘 또 한 번 배우고 부끄러운 하루였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라도 발전된 아웃풋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생은 성실한 사람이었다. 시키는 일을 다 했고, 무슨 일이든 허투루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책임감이 강했고 스스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것도, 또 ‘아픈 사람’인 것도,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상사의 지시에 동생은 늘 “넵넵. 알겠습니다.”로 답했고, 살인적인 업무량과 업무지시를 가장한 괴롭힘에도 “웃으면서 어떻게든” 일을 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야근을 해도” 일은 줄지 않았다. 쉬고 싶었다. 완치 진단을 받은 우울증이 도졌다. 공황장애까지 나타나 두 번이나 휴직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다. 2017년 9월, 이번에도 휴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퇴사하겠다고 하자, 그제야 한 달간 쉴 수 있게 됐다. “소모품처럼 쓰이는 것” 같다던 동생은 휴직 내내 방에만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쉬는 날이면 여행을 다니고 전시회에 가는 걸 좋아하던 동생이었다. 휴직기간 동안 동생이 회사 때문에 못했던 걸 했으면 했는데, 동생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향미 씨가 집에만 있는 동생을 데리고 ‘호캉스’(호텔+바캉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내는 휴가)를 하루 다녀온 게 전부였다. 동생이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만든 호텔이었고, 동생은 오랜만에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한 달을 쉬고 오자 일은 몇 배로 더 늘었다. 브랜딩 업무에, SNS에 올라가는 카드뉴스만 일주일에 서너 개. 상사는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며 카드뉴스를 매일 바꾸라고 요구했다. 팀에서 하는 업무들을 사실상 동생 혼자 맡아 했고, 몰아치는 업무에 동생은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했다. 동료들은, 동생이 맡은 업무가 적어도 서너 명이 해야 할 분량의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더 심해졌다. 시간이 없어 병원에 가기도 어려웠다. 예약하고도 제때 못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동생은 병원에 가지 못했고, 폭음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동생은 집 앞 편의점에서 몰래 술을 마시고 들어오기도 했다. 술로 괴로움을 잊으려 했다는 걸, 폭음이 우울증의 한 증상이라는 걸, 과로 때문에 우울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향미 씨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고 했다.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알지 못할 일이었다. 술로, 약으로 달래가며 일해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벌을 받는 것 같은 ‘무한노동’은 여전했고, 본부장에게 “이렇게 할 거면 왜 시간을 줘야 하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처음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던 날, 동생은 그게 그렇게 억울했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게 동생 죽음의 ‘방아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던 향미 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본부장이 잠 좀 자라고, 그래야 맑은 정신으로 일하지 않겠냐고 했대요. 거기서 폭발한 거예요. 저는 마음에도 급소가 있는 것 같아요. 급소를 맞았다면 즉사할 수 있다고 봐요. 급소가 아니더라도 상처를 계속 입으면 과다출혈로 죽기도 하잖아요.동생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자살하는 사람들도 죽는 거 두려워한다고. 그런데 그것보다 내일 아침이 오는 게 더 두렵기 때문에 죽는 거라고요. 저는 동생이 정말 죽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그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 상황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동생은 부모님이나 저를 정말 아끼고 사랑했고요,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정말 노력했던 것도 저는 알거든요. 살고 싶은 의지가 더 강한 애였어요.” 동생은 세상을 떠났다. 출퇴근 기록이 찍힌 교통카드 내역을 언니의 이메일로 보내놓고서. 그것은 무엇이 동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꼭 진실을 밝혀달라는 동생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언니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 다음 이야기 <처벌하지 않는 살인… 이 죽음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으로 이어집니다.취재 정윤영 르포작가 freakss@naver.com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이 콘텐츠는 진실탐사그룹 셜록과 동시 게재됩니다.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