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 참사] 우리에게 참사의 언어가 없다.

202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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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호기심 가득 독일어문학•사회복지 학부생 &.&

10.29 이태원참사가 내게 남긴 것

작년 10월에도 그랬듯, 올해도 이맘때쯤이 되면 마음이 뒤숭숭하다. 이렇다, 저렇다, 표현할 단어가 없어 ‘뒤숭숭하다’로 퉁-쳐버릴 때마저도 쓰라리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매번 들었지만, 너무 크게 다가올까 두려워 찜 목록에만 담아둔 지 오래. 10.29 이태원참사 2주기를 맞아 드디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 - 많은 내 또래 친구들이 그랬듯 - 나는 수많은 전화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을 덧붙였다. 그들의 추측은 실로 타당했다. 참사 당일, 나도 이태원에 가려고 했다.

29일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 침대에 누워 각종 SNS를 확인했다. 현장의 사진들이 빼곡했다. 사진들을 처음 마주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익숙지 않은 ‘압사 사고’라는 단어와 이해하기 힘든 사진들이 합쳐져 혼란스러웠다. 쏟아지는 사진들을 계속 보다 보니 이해하기 두려웠다. 이해하면 무서울 것 같아 황급히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들로 대체하거나 스크롤을 내려 사진보다는 글을 확인했다. 나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혹은 나와 인연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새도록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새로고침할수록 늘어만 가는 사망자 수를 계속해서 확인했다. 궁금증일까? 왜 사람들이 다치는지 궁금한 상태인가? 무서움이 많은 내가 자꾸만 소식을 찾아보는 이유가 뭘까?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궁금함에서 시작된 행동이 아니었다.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족들이 잠들어 너무도 고요한 내 방에서, 심장 소리가 빨라지고 커지는 걸 느꼈다. 혹시 지인이 있을까, 수많은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오지 않는 사람들에겐 전화를 걸었다. 허망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당일, 코로나 방역에서 벗어난 첫 축제, 10월의 마지막 날, 바람이 선선해 밖에 나가기 좋은 날. 그들은 나였고, 내 친구였고, 내 가족이었고, 내 이웃이었다.

서울신문 '“세월호로 친구 잃었는데 또···” 이태원역 앞 포스트잇에 못다 한 마지막 인사'(2022.11.09.)

그 이후 나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지하철과 버스를 타지 못했다. 조금만 붐벼도 숨이 막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출퇴근 시간에 이동이 필요하다면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했다. 여유가 된다면 붐비는 시간을 피해 미리 장소에 도착했다. 축제, 페스티벌, 대회, 콘서트 등 사람들이 밀집할 만한 곳은 절대 가지 않았다. 나에게도 10.29 이태원참사는 후유증이 있었다. 내가 피해자도 아닌데.... 어쩌면 나도 피해자일 수도 있겠다... 나도 참사의 생존자였다.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피해자가 어떤 모습이라고 상상하는가? 피해자들은 숨고 가리고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피해자다움. 재판에서는 자신이 피해자임을 호소하고 입증해야 한다. 이때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피해자로서 인정을 받는다. 피해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일 경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재판에서는 사회가 원하는 피해자다움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은, 성범죄에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에 대한 비판이 늘면서 ‘피해자다움’과 ‘가해자다움’의 의미가 변하거나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오랫동안 법원은 성범죄 피해자를 정형화된 틀에 가뒀다. 그들이 생각하는 피해자는 1) 피해를 본 이후 가해자와 최대한 접촉을 피하거나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진정한’ 피해자라면 2) 분노·좌절·무기력·두려움·공포 등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으로 3) 일상생활이 마비되어 관계가 단절된 상태여야 한다. 피해자는 그래야 한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이 다를 텐데, 피해자가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모습을 보이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대학교에서 마지막 학기를 다니는 중이다. 내 주변엔 꽤 쉽게, 전세사기 피해자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죄의식에 고통을 겪는다. 뉴스에 나오는 피해자들도,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에 나오는 피해자들도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표현된다. 때론 피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기도 한다. “네가 잘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피해자들은 그렇게 사회가 종용하는 피해자의 틀에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그 틀에 벗어나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피해자들이 된다. ‘보상금 때문이지’ ‘정부한테 뭐 하나라도 더 달라고 하는 거지’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으려는 것 좀 봐’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쉿’ 묵음을 강요한다.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정치적인 언어로 쉽게 축소된다. 그들에게는 ‘흐느끼는 것’만으로 애도하길 바란다. 조용하게 잠재운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는, 피해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는 2차 가해를 양산한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귀 기울일 사람이 몇이나 되며 들어줄 노력은 하는가?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말 속엔 ‘피해자다운’ 목소리를 내라고 강요하고 있지 않는가?

피해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분명하다. 사회가 만들어낸 피해자다움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 피해자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 정형화된 피해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또 다른 피해를 경험한다.

이에 피해자는 겉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피해를 겪을 수 있다. 이들 또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을 것이다. 마치 나처럼. 10·29 이태원참사는 이전에 일어났던 참사들과는 ‘다르다’라는 평을 받는다. 혹자는, 이는 참사가 아닌 단순 ‘사고’라고 하기도 한다. 다름의 가장 큰 원인은 피해자들의 핼러윈 파티 참여 동기에 있다. ‘자발적’으로 ‘놀러 나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이 강요된다. 참사의 경험은 속으로 삭혀야 하며, 유가족들은 목소리를 낮춰 흐느껴야 하고, 애도조차 조용하고 간단하게 진행해야 한다.

서울신문 '“세월호로 친구 잃었는데 또···” 이태원역 앞 포스트잇에 못다 한 마지막 인사'(2022.11.09.)

아직도 많은 이들은 이태원참사가 일어난 시기에 자신이 이태원에 있었음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한다. 실제로 이태원참사 당시 이태원에 있었던 내 친구는 “이태원에서 생긴 트라우마는 네가 감당해야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런 말들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라는 말을 줄여 만든 ‘누칼협’은 지극히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조어로, 이태원참사 당시에도 많은 이들이 사용했다.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렵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은 때때로 개인 안에서 부딪힌다. 피해를 겪고 있는 내 내면과 그 피해는 너의 책임이니 침묵을 강요하는 환경 사이에서. 외부에서 정의 내린 피해와 내가 겪은 피해 사이에서. 결국 자신이 피해자이지만 스스로가 피해자가 아님을 종용하게 된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를 보고, 때론 2차 가해로 나타난다. 그렇게 피해자는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언어가 없는 피해자들

나는 종종 내 경험이 부정’당하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일방적으로 ‘당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사회적인 차별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예컨대 나의 경우 나서길 좋아하는 여성으로서 불쾌한 경험이 잦았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사회적인 차별로 드러났다. 반면 가장 가까운 친구와 애인과 가족과 얘기할 때도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내 경험은 ‘내가 고깝게 생각해서’ ‘내가 피해의식이 있어서’로 치부된다. 나의 피해 경험은 곧 사적이고 무의미한 일이 된다. 내가 별나서, 로 축소된다.

한때 나도 적극적으로 내 경험을 설득하고자 했다. 여전히 그런 충동이 든다. 어필하고 강조하며 상대의 이해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못해 ‘그래, 그렇구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찝찝하면서도 ‘이 정도면 됐지’하고 안도의 숨을 쉬며 넘어갔다. 하지만 대화 끝에 언제나 나는 지쳐있었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 실은 공감할 노력도 없는 사람을 앞에 두고 - 나는 혼자서 뻘짓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받아낸 공감(처럼 보이는 것)에 아주 작은 위로를 받는다. 그 위로는 곧 사라지지만.

주류 집단에 목소리를 던지지만, 사방이 가로 막힌 네모 밖에 있는 challengers. 찰스 틸리의 the Polity Model에서 착안했다.

상대가 나에게 가지는 ‘피해자로서의 기대’에서 내가 벗어난다면, 나의 경험과 목소리는 사라진다. 튕겨 나간다. 매번 도전하지만, 큰 벽에 가로막힌다. 그렇게 나도 곧 무너질 듯한 공허함을 느낀다.

그런 경험이 있는가? 무언갈 말하고 싶은데 정확한 의미를 담은 단어가 없는 경험. 나는 빈번히 그런 상황과 마주한다. 내 감정과 내 경험을 이야기할 단어가 없다. 언어가 없다. 길게 늘어뜨려 놓고 기존에 알던 단어를 조합해도 명쾌하게 정의할 언어가 없다. 일 생활에서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로는 내 경험을 표현하기 어렵다. 언어가 없으니,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기득권들의 언어로 나를 담아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게 10.29 이태원참사는, 언어가 없어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것이다. “놀다가 죽었다”라는 기득권 혹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되는 세상에선 내 감정을 가시화할 수가 없다.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어 설득하고자 하지만 또다시 실패했다. 지칭할 단어가 없어서.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 피해자로서 행동양식이 정해져만 있는 것 같은 사회에서, 광의적인 차원의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까? 그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보전될 수 있을까? 그들에게 그들이 오롯이 느낀 것을 말할 언어가 있을까? 우리에게 참사의 언어가 없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작가가 집필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삼는다. 학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관념적이면서도 울림 있게 담아내며, 한 시대에 이루어졌던 학살이 동시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연결됨을 보여준다.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에 대해 “이별을 고하지도, 행하지도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하며 “애도를 멈추지 않고, 결코 끝내지 않겠다는 결의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16살, 중학교 3학년 당시 세월호참사가 일어났다. 나와는 불과 2년 차이 나는 언니·오빠들이었다. 나는 당해 수학여행이 취소됐다. 그리고 또다시 내 나이 24살에 이태원참사가 일어났다. 내 나이 또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군복무를 하던 일부 청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내 남자 동기들이 떠올랐고 2살 터울의 남동생이 떠올랐다. 여러 차례 사회적인 참사 앞에 나는 두려움만 남게 되었다. 혹시 내가 그러지 않을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다치지 않을까. 그렇게 나도 숨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꺼내지 않았다. 나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저 두려움에 떨 뿐이다.

최근 영화 <벌새>를 다시 감상했다. 영화는 성수대교 붕괴참사로 인해 친구를 잃은 중학생인 은희를 다뤘다. 당시 20대이면서 잠실에 살던 우리 엄마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그 시절 그 큰 다리가 무너질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성수대교 붕괴 이후 은희의 삶을 보여주진 않지만 우리는 상상할 수 있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 내가 그랬듯,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은희도 같은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갔을 것이다. 살아냈을 것이다. 영화 속 은희의 마음을 나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 은희는 지금의 나였다. 이태원참사로 혼란을 겪었던 내게 은희는 위로를 건넸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조용하면서도 우울한 무드를 갖고 있다. 참사를 겪은 동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 한편에 비슷한 무드를 갖고 있지 않을까? 여러 차례 참사를 겪은 내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시대의 참사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개인의 삶에 자연스레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강요되고 억압되는 현실에 마치 영향이 없던 것처럼 살아간다.


영화 <벌새>의 주인공 은희는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은희에게 상처 준 모든 것들처럼, 혹의 수술 자국은 영원히 남는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는 ‘은희’만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이들이 ‘은희’에 본인의 이름을 대입하는 것에서, 동시대에 하나의 참사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책 <작별하지 않는다> 영화 <벌새>, 나는 이것이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개인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우리에겐 개별적이고 사적인 감정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으고 모아 스스로 이름을 붙여 가시화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 있음을, 어떤 감정을 느낌을 실체화하는 것의 힘을 나는 굳게 믿어본다. 그러기 위해 나는 “애도를 멈추지 않고, 결코 끝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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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ldus 비회원

애도를 멈추지 않겠다는 결의에 공감하고, 또 응원합니다. 참사 이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은 '남의 슬픔을 깎아내리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표현할 언어를 찾아 나서야 할 만큼 가늠하기 어려운 슬픔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슬픔을 인정하지 않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애초에 인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요.) 같이 꾸준히 슬퍼하겠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더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