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 참사] 지역 사회에서 바라본 이태원 참사

2024.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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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란 동네 용산에서 굴러다니는 중입니다.

지역 사회에서 바라본 이태원 참사
-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 기록단 활동을 중심으로 (23.04. ~ 23.11.)

  1. 기록단

① 배경 - 이태원을 둘러싼 오랜 시선

질문을 던져 본다. 만약 이태원이 아니었다면, 일각의 반응이 달랐을까? 적어도 그 심한 정도가 덜하지 않았을까? 참사 이후 그날 이태원에 머무른 사람들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놀러 가서 죽은 것"이라며 그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돌리기 부지기수였고, 그런 모욕은 이태원을 둘러싼 오랜 시선에 기대 확산되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이태원은 이미 너무 위험하고 문란하고 이상한 동네다. 과거 기지촌이 형성된 이래로, 말 그대로 '퀴어'한 존재들이 모여들었으므로. 또한 펜데믹을 거치면서 강화된 성소수자 혐오부터 밀집 경험을 민페로 여기는 감각까지 헤아리면, 지금 이태원에 덧씌워진 편견은 몹시 복합적이다.

② 문제 – 불온한 이태원과 참사 피해

'안전'에 대한 요구는 자연스레 높아졌다. 압사가 발생한 골목을 두고, 왜 그 위험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데 실패했는지 사람들은 추궁한다. 나아가 일상에 도사린 문제들을 하나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 질문과 각성을 통해 사회는 나아지겠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다. 이태원이 불온하게 그려질수록 참사 피해 역시 그 불온함에 갇혀 해석되기 마련이다. 그날 이태원에 들렀던 사람들 대부분이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고, 같은 자리에서 생활을 이어 가는 주민들 또한 입을 열기를 주저한다. 와중에 빠르게 선포된 국가애도기간이 슬픔의 형식을 제한함으로써 참사에 관해 말할 기회는 일찍 닫히고 말았다.

③ 취지 – 이태원에 얽힌 마음을 듣기

<다시 놀고 싶다, 이태원>은 그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국가도, 사회도, 타인도 신뢰할 수 없는 탓에 참사를 겪은 개인은 불안한 가운데 놓여 있다. 이태원에서 노는 발길은 한동안 줄었는데, 그건 주변 상권의 침체 그 이상을 뜻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서로를 확인하는 대신 낙인을 먼저 의식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누구든 이태원에서 다시 놀 수 있을 때 비로소 회복이나 해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작게나마 물꼬를 트기 위해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었다. 각자 품은 사연을 새기다 보면, 참사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지 않을까. 뒤집어 강조하면, 이태원에 얽힌 마음에 귀 기울이지 않고서야 참사는 영영 미지로 남는다.

④ 기획 – 지역에서 잘할 수 있는 작업

나의 경우, 언젠가 그런 고백을 들은 적 있다. “저에게 이태원은 마치 외국 어딘가 같아서 참사가 와닿지 않았어요.” 반면, 용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참사는 꽤 직관적이었다. 추모를 위해 이태원에 들른 지인이 있으면 한동안 가이드 겸 도슨트 역할이 되어 주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지역에서 보다 잘할 수 있는 작업이 있지 않을까. 기획의 방향도 그 위치를 고려해 정했다. 첫째, 제도 정치나 사법, 행정의 관점, 그리고 희생자 유가족 중심의 애도 그 바깥의 이야기를 발굴하자. 둘째, 오늘날 이태원을 표상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참사 경험을 조명하자. 셋째, 지역의 회복과 안전 사회에 대한 방안을 아래로부터 도출하자. 

⑤ 운영 - 마을 공동체 미디어의 역할

활동을 주관한 마을 미디어 용산FM은 주민들과 함께 방송을 만들어 왔다. 주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제작 전반에 참여하기를 도왔다. 기록단 운영 역시 다르지 않았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기록단은 이태원 일대를 답사하고 구술 기록 워크숍을 수강했다. 질문지 구성과 인터뷰이 섭외, 인터뷰 진행, 기사 작성 등 전 과정을 주도하면서 활동의 의미도 스스로 정립할 수 있었다. 여건이 되는 경우 기록단이 직접 카메라를 잡기도 했다. 과연 그 방식이 지역 사회의 아픔을 다루는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듣는 일만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을 길러내는 일 또한 중요하다.

⑥ 구성 –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기록단에는 일곱 명이 모였다. 기록 활동가부터 퇴직교사, 스타트업 대표, 사진작가, 대학원생, 디자이너, 다큐멘터리 감독까지. 인상 깊었던 건, 대부분 동네 버스 정류장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신청했다는 점이다. 녹사평, 이태원, 해방촌 등을 지나고 있었고, 이미 근방에 거주하거나 노동하고 있었다. 주로 개인적인 인연이 계기로 작용했을 뿐, 관련 활동을 해 본 경험도 드물었다. 그렇게 모인 마음들을 통해 참사에 관한 갈증이 얼마나 큰지 엿본다. 나중에 기사 원고를 적에는 형식을 통일하기보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제약을 최소화했다. 또한 기록단을 역으로 인터뷰해 처음 계획에 없었던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⑦ 죄책감 – 책임감으로 승화하지 못한

한편, 살아남은 사람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곤 한다. 발 디딜 틈 없던 골목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 위험을 인지하고도 예방하지 않은 자신을 탓한다. 누군가 죽어 가는 줄도 모른 채 축제를 즐긴 사람은 그날 웃고 떠든 자신을 탓한다. 현장을 목격한 뒤 빠져나온 사람은 구조에 나서기 망설인 자신을 탓한다. 아비규환 속에서 CPR에 임한 사람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그리고 사람들. 또 한 번 반복된 참사 앞에 선 사람들은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죄책감을 책임감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만한 계기는 흔치 않다. 참사를 외면하는 식으로 고통을 떨쳐 내기도 쉽다.

⑧ 답답함 – 상실을 나눌 만한 장의 부재

답답함도 가득하다. 그날 사람들이 잃어버린 세계는 희생자들의 총합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 상실을 나눌 만한 장은 한참 모자라다. 모든 게 조심스러워 말을 꺼내기를 저어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함구하는 사람도 있다. 들어맞는 표현을 떠올리느라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기대와 다른 응답이 돌아올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참사가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면 모두에게 치유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데, 정작 그 상처를 서로 내보일 수 있는 관계를 찾기란 참 어렵다. 그보다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조롱하고야 마는 풍경이 차라리 익숙하다. 그사이, 상처는 안으로 곪을 수밖에 없는 걸까. 

2. 인터뷰

① 섭외 – 이태원과 연결된 인터뷰이

김혜영, 신정임, 노호태, 신솔아, 심나연, 홍다예. 기록단은 아홉 명의 인터뷰이를 섭외했다. 혜영씨는 이태원 떠들썩한 복판에 사는 보영씨의 마음을, 정임씨는 매년 가족 단위로 핼러윈을 즐기던 민희씨와 원기씨의 마음을, 호태씨는 단골 칵테일 바를 운영하는 범조씨의 마음을, 솔아씨는 이태원 클럽씬에서 음악을 트는 DJ의 마음을, 나연씨와 다예씨는 드랙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샤인씨와 이태원에서 놀기 좋아하던 승연씨의 마음을, 보영씨는 다문화 공동체를 찾아온 모하메드씨의 마음을 각각 들었다. 과연 당신에게 이태원이란 어떤 의미인지, 참사 이후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기억해 왔는지. 아래는 그 대답의 일부다.

② 윤보영 – 애증의 사정을 아는 주민들

이태원역 근방에는 클럽과 술집만 들어선 게 아니다.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산다. 보영씨는 이태원 대로변에 거주한다. 주말이 지나면, 거리에서 쓰레기와 널브러진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똥오줌까지도. 핼러윈 때는 항상 휴가를 사용해 일찍 귀가했다. 하지만 그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이태원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의 공간은 내가 어떤 존재이든 포용해 줄 것만 같다. 그 애증의 사정을 아는 주민들은 희생자들에 대해 함부로 비난하지 못한다. 물론, 같은 주민이더라도 연령에 따라 거주 위치에 따라 가족 구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기억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③ 김원기/임민희 - 온 동네 잔치로서의 핼러윈

용산에서 나고 자란 원기씨에게 핼러윈의 의미는 남다르다. 어릴 적부터 용산 미군기지 장교들의 숙소였던 외인아파트 가까이에서 외국 문화를 접해 왔다. "Give me a chocolate!"를 외치며 이웃집을 방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편 민희씨에 따르면, 이태원의 핼러윈은 온 동네 잔치다. 주택가 곳곳 호박 장식과 사탕 바구니가 걸리고, 어린이집과 공원에서 행사가 열린다. 아이들은 가족 단위로 거리를 구경하며 다양한 세계를 익힌다. 그렇듯 이태원의 핼러윈은 고유하고 다채롭다. 클럽이나 술집에서만 기념하는 것도, 청년들만 즐기는 것도, 유흥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흔히 폄하되듯 ‘외국 귀신 놀이’에 불과하지 않다. 

④ 곽범조 – 매출이 보여주지 않는 회복

칵테일 바를 운영하는 범조씨의 경우, 이전만큼 손님들이 돌아오더라도 장사를 접을 참이다. 참사를 직접 겪은 충격뿐만 아니라 코로나 때부터 이어진 생계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말 그대로 방도가 없다. 그런 감각은 단기적인 지표로 포착되지 않는데, 마찬가지로 매출 중심으로 회복을 논한다면 많은 곤란을 놓치기 쉽다. 가령, 범조씨가 이태원에 자리 잡은 데에는 한 시절 자신이 즐겨 찾던 놀이터를 물려주고 싶은 바람도 있다. 지역의 특색이란 그렇게 재생산되기에, 회복도 그 역사에 대한 이해 위에서 가능하다. 다른 어디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이태원의 모습이 있다.

⑤ 선샤인 – 자유를 익히는 공간, 이태원

퀴어 아티스트 샤인씨에게 이태원은 선망의 공간이었다. 그 정제되지 않은 매력에 일찍이 빠졌다. 이태원에서는 상대방의 배경을 묻는 일이 드물다. 그저 “너 재밌다. 나랑 놀자”로 통한다. 옷차림에 대해서도 서로 신경 쓰지 않는다. 시상식에서처럼 입어도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그 개의치 않음을 통해 불특정 다수가 자신을 옹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속력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이태원에서는 편견을 드러내는 일이 훨씬 눈초리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이태원에 오기도 하지만, 이태원에서 자유를 익히기도 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동안 학습된 편견을 점점 깨 나가는 것이다.

⑥ 정승연 – 핼러윈 코스튬을 통한 일탈

낯가림이 심한 승연씨에게 이태원의 핼러윈은 곧 일탈의 기회가 되었다. 캐릭터 분장이 부끄럽기도 잠시, 이태원에서만큼은 금세 자신감이 솟았다. 나중에는 낯선 이에게 먼저 다가갈 만큼 적극적이 되는데, 그건 아마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덕분일 것이다. 평상시 이태원이 간직한 분위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범조씨는 강남과 이태원을 이렇게 비교했다. 강남은 퇴근 후 집에 들러서 다시 세팅하고 가는 곳이라면, 이태원은 그냥 바로 가도 상관없는 곳이라고. 승연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태원에서는 다른 어디에서보다 자기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틀에 박히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⑦ DJ – 추모 방식의 또 다른 가능성

이태원에는 음악이 흐른다. 씬이 형성되어 있어 무수한 클럽에서 음악을 틀며 각기 다른 매력을 자랑한다. DJ H씨는 애정하는 클럽의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참사 이후 이태원에서는 ‘이태원 스트롱’이라는 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보스턴 마라톤 참사 때 등장한 ‘보스턴 스트롱’이라는 구호를 본뜬 것이다.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면서 많은 공연과 전시가 중단되었지만, DJ들은 이전부터 예정된 파티를 그대로 진행했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음악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건 그렇게도 가능하다. 이태원에서 계속 놀겠다는 다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⑧ 모하메드 – 한국어로 도착한 재난 문자

이태원 일대를 걷다 보면 다양한 음식점, 빅 사이즈 옷가게, 환전소 등이 눈에 띈다. 보영씨는 흔히 보이는 케밥집에 대한 호기심으로 외국인 인터뷰이 섭외를 희망했다. 외국인이라는 큰 범주 안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모하메드씨는 참사 소식을 접하고 깜짝 카메라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어로 도착한 재난 문자에 대한 아쉬움을 술회했다. 앞서 곽범조씨는 외국인 손님의 경우 내국인과 다르게 참사 한 달 뒤부터서야 발길이 끊겼다고 전했다. 외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차별적인 지원이 보도되기도 했다. 과연 이태원의 외국인은 지금 이 순간 참사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을까.


3. 함의들

① 골목 – 이토록 다양한 피해의 층위

참사가 발생한 골목은 외딴섬이 아니다. 누구든 쉽게 드나들 수 있고, 그만큼 쉽게 휘말릴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다. 지하철역 출구와도 인접해 있다. 따라서 희생자와 생존자, 구조자, 목격자 사이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밀집된 인파 속에서 어린 자녀의 손을 붙잡고 겨우 빠져 나왔던 원기씨와 민희씨 부부는 생각한다. 만약 그대로 떠밀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를 잃을 뻔한 상황에 아찔해지는 한편, 그날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생사가 걱정이다. 보영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도로 위에서 차량에 갇힌 채 현장에 노출되었던 보영씨는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나가고 바닥에 누워 있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② 당사자 – 참사의 영향 아래 놓인 사람

참사는 그날 이태원에 머무른 사람들을 관통한다. 나아가, 직간접적으로 소식을 접한 모두가 참사의 영향 아래 놓인다. 이태원의 핼러윈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DJ H씨는 일상에 도사리던 죽음을 체감하고, 모하메드씨는 분향소에 걸린 앳된 면면을 보며 미안해한다. 자신과 당신, 둘의 운명을 가른 데에는 한 끗 차이밖에 없으므로. '나' 역시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 공포가 새겨졌지만,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당사자를 폭넓게 상상해야 한다'는 정임씨의 뜻과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나연씨의 뜻은 그런 점에서 통한다.

③ 편견 - “왜냐면 내가 많이 변했거든요.”

모르는 영역은 곧잘 편견으로 채워진다. 특히 이태원과 핼러윈을 둘러싼 혐오는 참사를 해석하는 데 강력하게 작용한다. 일각에서는 "거길 왜 갔냐"라며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보영씨는 지적한다. 이태원과 핼러윈을 몸소 경험해 본 주민들은 그렇게 말하지 못할 거라고. 그런데 그만한 이해가 드물어 침묵에 잠기는 건 오히려 주민들 쪽이다. 누군가의 고통은 또 다시 가중된다는 점에서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기록단조차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다만, 인터뷰를 통해 변화해 나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과연 바뀔지 묻는 질문에 혜영씨는 확신했다. "왜냐면 내가 많이 변했거든요."

④ 피해 – 그날 이후 잃어버린 무언가

이태원은 참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기에 회복을 고민해야 한다. 과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헤아려야 한다. 가령, 삼대 째 이태원에 거주하는 원기씨에게 핼러윈의 의미는 각별하다. 유년 시절부터 함께해 온 만큼 아득한 추억이 거기 쌓여 있다. 그 문화가 위태로워질수록 원기씨의 뿌리도 흔들린다. 또한 드랙퀸 활동을 하는 샤인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로서 샤인씨가 느끼는 연대감은 여기 모인 이방인들을 아우른다. 이태원의 위기를 두고, 샤인씨는 왠지 악착같다. 그렇듯 참사의 여파는 실존 깊숙이 미치고, 이태원의 침체는 지역 사회에 치명적이다.

⑤ 정치 – 양극화된 정치 현실 속 침묵 

'정치적인 것'에 대한 경계심이 도드라졌다. 그런 이유로 인터뷰이 섭외에 실패하기도 했으며, 인터뷰이의 염려를 거듭 덜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그 반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보다 참사에 대해 입을 열 때 사람들이 지는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솔아씨는 양극화된 정치 현실에서 의견 표출이 얼마나 두려운지 공감한다. 나연씨는 거리마다 나부끼는 정당 형수막이 마치 기사 댓글 창 같다고 한 지인의 평을 떠올린다. 중간쯤에 있는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승연씨는 인터뷰 말미 한숨 쉬듯이 답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한 거니까 잘 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⑥ 애도 – 일상과 분리된 추모의 한계

일상과 추모는 분리되어야 하는 걸까. 추모는 꼭 무겁고 엄숙해야 할까. 한동안 영업을 중단했던 범조씨는 압사가 발생했던 골목 앞을 일부러 지나면서도 국화를 놓거나 포스트잇을 붙이지는 못한다. 일주일에 몇 번씩 이태원에서 약속을 잡던 승연씨는 '애도'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고백한다. 둘 다 안타까움이 없어서가 아니다. 다만, 더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게 있기 때문이다. 이에 DJ H씨는 고인의 마지막을 흥겹게 지키는 아프리카 장례를 예시로 든다. 보영씨는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떠올리며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울리는 하루를 상상한다. 솔아씨와 샤인씨는 이태원에서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를 제안한다.

⑦ 불신 – 사회를 향한 불신의 누적

물론 이런 의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참사 그 자체가 해결되어야 한다. DJ Seesea씨는 삶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음을 호소한다. 책임 있는 자의 적절한 사과나 반성이 뒤따른 적이 없기에, 개인적인 치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회를 향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한다. 한편, 대부분의 기록단이 이태원 참사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연상한다. 더불어 이듬해 이어진 오송 참사와 서이초 사건 등을 언급하며 무너진 신뢰에 대해 고심한다. 참사 당시 이태원에서 핼러윈을 즐겼던 호태씨가 ‘믿음’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것도 비슷한 취지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 무수한 상처들이 아물지 않은 채로 나날이 누적되고 있다.

지역 – 여전히 미지로 남은 이야기

기록단은 이미 지역에서 형성한 관계를 바탕으로 인터뷰이를 섭외했다. 물론, 여전히 미지로 남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같은 주민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연을 품고, 상인들 역시 업종에 따라 현재의 상황을 상이하게 겪는다. 외국인과 이주민의 생활도 천차만별이다. 청소년과 노인의 경우도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보영씨는 참사 직후 당근마켓 어플에 게시된 내용들을 기억한다. "슬프다", "미안하다",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막막하다" 그리고 댓글로 자신의 상담 경험을 공유했다. 아쉽지만, 모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기록단 활동이 더 많은 연결을 위한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며 맺는다. 

4. 고민들

① 핼러윈 – 참사 일주기의 과잉된 반응들

참사 일주기를 앞두고 정부·지자체가 내놓은 핼러윈 대책은 문제적이다. "오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원기씨의 바람이 무색하게, 이태원 거리 곳곳에 배치된 경찰은 행인보다 그 숫자가 많아 보였다. 또한, 주요 길목마다 설치된 철제 펜스는 우측 통행을 강제했다. 걸음을 늦추다가는 서둘러 움직이라는 핀잔을 들었으니, 사람들과 눈을 맞추거나 대화를 나누기란 어려웠다. 과연 그런 통제만이 안전을 보장하는 걸까. 그토록 과잉된 조치는 위험을 관리하기보다 위화감을 조성할 뿐이다. 한편, 마포구에서는 ‘핼러윈 금지’ 현수막이 붙기도 했다. 놀이공원이나 식품 업계에서는 핼러윈 마케팅을 다른 방식으로 대체했다.

② 이야기 – 도무지 듣지 않고자 하는 사회

어떤 이야기는 수면 위로 넘실댄다. 반면, 어떤 이야기는 심해 속으로 가라앉는다. 익숙한 틀에 들어맞지 않는 목소리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누락되는데, 누군가의 삶도 그렇게 고립된다. 핼러윈 다음 날,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이태원 참사 일주기 추모 대회가 열렸다. 주현씨는 생존자로서 무대에 올랐지만, 그 자리를 지배하는 정서와 구호를 읽으며 많은 것을 덜어내야 했다. '참사'가 '참혹한 일'을 뜻한다면, 나에게는 온통 참혹한 일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참사를 설명하기 위해 갈피가 될 만한 조각들을 내보이는데, 그런 이야기는 도무지 들리지 않는다. 아니, 듣지 않고자 하는 힘이 사회에 만연하다.

③ 분향소 – 확인하고, 학습하고, 교감하는

분향소에서는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면전에 대고 훼방을 놓는 사람들은 꾸준히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헌화하는 행렬이 길었다. 언젠가 다국어로 적힌 홍보물이 설치되자 외국인의 관심이 늘었고, 어린이들은 항상 왕성한 호기심으로 보호자를 잡아끌었다. 그 앞에서 나는 이 참사에 대해 무어라 설명해야 했을까. 곳곳에 쓰인 '기억', '애도', '안전' 같은 단어를 두고도 금세 머릿속이 하얘졌다. 또한 분향소에는 전국 각지에서 추모객이 들렀다. 외딴섬 같은 그 공간에 연대하면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했다. 혹은 참사에 관해 확인하고 학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소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④ 기록 – 참사 피해를 기록할 때의 원칙

기록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근거한다. 녹취록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그 행간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몇 가지 태도를 유념했다. 가령 많은 피해가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피해가 고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 나름의 방식으로 참사가 야기한 문제에 대응하기 마련이다. 또한, 그 피해가 아무리 클지언정 그것이 한 개인을 이루는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삶의 일부로서 어떤 맥락 위에 놓이는지 살펴야 한다. 이태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움직임과 문화에 주목해야 공평하되, 그 풍경을 마냥 아름답게 담는 게 정답은 아니다. 이태원 안에서조차 구역에 따라 그 분위기는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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