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이태원 참사] 참사 앞에서… 정치의 역할은 무엇인가?

202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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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일찍 잠이 들었다. 핸드폰을 침실 밖에다 뒀기 때문에 알람이나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확인한 핸드폰에는 수십 통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긴급사고, 교통통제, 인명사고, 접근자제… 불길한 마음에 서둘러 포털에 들어가 뉴스를 확인했고 동거인에게 소리 지르듯 외쳤다.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나 봐!" 축제를 즐기러 갔던 사람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보호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정치

 우리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약칭 재난안전법)은 '다중운집인파사고' 등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하고 있으며(제3조 1항 나목),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제4조 제1항).

 이태원 참사는 정치가 법률을 통해 스스로 규정해놓은 일을 그대로만, 제대로만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반드시 막아야만 했던 참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꼴을 볼 수 없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직후 현장에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충분히 배치되어 있었느냐는 질문에 “경찰이나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라고 말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국가는 왜 존재하며, 우리의 안전은 어떻게 지켜야 하나.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핼러윈 축제에 관한 대책 회의가 있던 날에 회의 참석을 부구청장에게 떠넘기고, 용산구에서 열린 바자회와 야유회에 참석한 것이 드러났다. 이전에는 구청장이 주재해서 경찰, 소방, 인근 상인들과 대책을 논의하던 회의였다. 참사 당일에도 다른 지역의 초청을 받아 방문했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고 집안 제사 때문에 간 것이었음이 들통났다. 그런데도 구청은 메뉴얼대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고 항변했다. 심지어 핼러윈 축제는 “축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라는 기괴한 답변을 내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가 스스로 마련한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경찰력 투입 기준을 묻는 말에 불쑥 끼어들어 영어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가 있다면 굉장히 많은 경찰 인력을 투입해야겠죠”라고 농담을 던졌다. 농담을 말이다! 현장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그렇지 않나요?”라고 재차 말하며, 자신의 유머를 받아주지 않는 것에 짜증을 내는 듯했다. 한 외신 칼럼은 “총리의 무신경한 유머가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얼마나 존중 없이 대해지는지 (보여준다)”라고 썼다.

 

무능력과 무책임에 면죄부는 없다

 2024년 9월 30일, 법원은 1심에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 대해 금고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안일한 인식으로 대비에 소홀했고 결국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702일째… 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첫 재판이었다.

 하지만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똑같은 재판부였지만 판결이 달랐던 이유는, 용산구청이 안전관리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판결대로라면 앞으로 우리는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곳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우리 헌법과 재난안전법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1심에서 무죄를 받은 것이 정치의 무능력과 무책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참사 앞에서… 책임을 느낀다

 얼마 전 치러진 ‘서울세계불꽃축제’ 현장에는 경찰이며 구청이며 다 나와서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수고하고 잘하는 일이다. 그래! 2년 전에도, 2년 전에도 반드시 이렇게 해야 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2022년의 여름, 나는 지방선거에 출마했고 용산구 지방의원에 도전했다. “필요할 때 곁에 있는 의원, 소중한 것을 지키는 의원이 되겠다”라는 것이 선거 슬로건이었고, 선거운동의 처음과 마지막에 ‘땡땡거리’라고 불리는 백빈건널목 기찻길에서 안전을 지키는 역무원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비록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출마했던 곳에서 일어난 참담하고 비통한 희생 앞에 일편의 책임을 느낀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반드시 막아야 했던 일을 막지 못해 죄스럽다. 의원이 되었다면 구청의 미흡한 준비를 지적해서 참사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회한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그때마다 한 번 더, 돌아가신 분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갖고, 다치신 분들의 온전한 회복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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