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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또 다른 시작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21대 국회에서 이들의 권익을 최전선에서 외친 정치인은 장혜영 의원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당당하게 내걸었고, 차별금지법 등 가장 민감한 법안들을 망설임 없이 추진했습니다. 초선 의원의 4년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정의당은 안에선 흔들렸고 밖에선 밀려났습니다. 장혜영은 격랑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가 외치던 책임과 혁신은, 이제 스스로에게 돌아왔습니다. ‘총선 0석’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국회 밖에서 책임과 혁신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첫 단추는 확장입니다. 장혜영은 ‘소수를 대변한다’고 평가되는 그의 정치가 실은 보편의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지난 25일, 선거 후에도 남아있는 장혜영 의원의 마포 지역사무소를 찾았습니다. 또 다른 시작 앞에서 정치인 장혜영의 4년을 돌아봤습니다. 활동가에서 정치인으로, 장혜영의 국회 4년 앞으로 국회에서 남은 한 달을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요? 21대 국회의 양심과 책임을 위한 10대 과제를 선정해서 입법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해나갈 계획입니다. 꼭 한 가지 힘주어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임신중지 보완입법인데요. 총선 다음날인 4월 11일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 불합치를 판결하고 국회에 보완 입법을 지시한 지 4년이 되는 날이었어요.2020년 12월 31일까지 보완 입법을 하라고 했는데 하지 않았죠. 대한민국의 의료 체계와 보건 체계가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할 지 규정이 필요한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요. 병원마다 천차만별이죠. 수술을 해 주는 병원인지도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수술 가능 기간과 가격도 다 달라서 한마디로 무법지대거든요. 임신 중지에 관련된 보안 입법은 반드시 21대 안에서 맺어야 해요. 지난 4년간의 입법활동을 돌아보면, 가장 뿌듯했던 일과 아쉬운 일은 무엇인가요? 그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 (웃음) 아쉬운 일이 뿌듯한 일보다 많았어요. 탈시설지원법을 통과시키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워요.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하고도 맞닿아 있는 내용인데, 의제가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그 의제를 이야기하는 주체 자체가 정치적 탄압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이 상황을 막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껴요.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정치는 3점 슛을 넣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탈시설지원법이 3점 슛이었죠. 국회의원을 오랫동안 준비한 정치인이 아니잖아요. 많은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국회의원이 됐죠. 삶에서 마주한 장애인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법과 제도를 발견했고, 그래서 정치를 한 번 해보기로 했어요. 정치 전체를 바라보는 식견이나 큰 흐름 속에서 역할을 찾기보다는 제가 알고 있는 영역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들어왔어요.지금은 한 세트, 시즌을 이기지 않으면 3점 슛을 넣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요. 세트의 룰을 이해했다면, 진작 권력 그 자체에 도전하고 투쟁하는 일을 했다면 무언가 달랐을까…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커요.(21대 국회 활동은) 제가 바라보는 정치적인 세계가 의제에서 정치 그 자체로 확장되는 시간이었어요. 지금의 정치 환경에선 논리와 근거와 진정성이 의제를 관철하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걸 느꼈어요. 어떻게 하면 정치 세력으로서 시민들에게 인정받을지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죠. ‘대중 정치인’이라는 속성을 갖춰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요. ‘장혜영’ 하면 특정 의제와 소수자에게만 먹힌다는 이미지가 있죠. 확장을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장혜영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와 연결할 수 있을까요? 제가 받는 가장 큰 오해가 ‘소수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는 거예요. 물론 구체적인 소수자 운동이나 단체와 연대해 온 사안이 많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취약함이라는 주제는 정말 보편적이에요. 우리 사회가 무너지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지난 24일이 탈시설 장애인연대 2주년이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은 2만 8천 명 정도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시민이 마음속에 시설을 가지고 살아요. 지금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늙고 병들고 연약해지면 마음속으로 시설로 들어갈 준비를 하죠.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든 적절하게 도움을 받으면 자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탈시설 장애인연대가 우리 사회에 가르쳐주고 도와주면 좋겠다, 우리 사회도 자립하기 위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기념식에서 말씀드렸는데요.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경쟁 사회를 구축했고 그걸 통해서 경제적으로 발전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참혹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어요. 어떻게 취약한 존재로 오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장애인, 노인, 성소수자는 그 고민을 먼저 한 사람들이에요. 저는 이 지혜가 보편화되기 위한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추구해 온 가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는 과정이 우리 사회가 이 가치를 소화해 내는 과정과 연결된다는 강한 확신이 있어요. 첫 지역구 출마였습니다. 지역구 활동에서 말씀하신 확장 전략의 프로토타입을 시험해 보셨나요? 가장 염두에 두었던 건 사람들에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의 마포 정치에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경청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거든요. 일단 만나주지를 않고, 물어봐도 답이 없고, 서울시나 정청래 의원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지역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았어요. 적어도 이 사람은 주민을 존중하는 정치인이라고 신뢰를 쌓아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느꼈어요.상암동에 계시는 분들이 일산에 대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요. 과거에 개발에 대한 약속이 있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길게 보면 난지도 때부터 공공과의 악연이 깊은 거예요. 그래서 공공, 상생 이런 단어가 싫은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인터뷰를 하면 그런 단어를 쓰잖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지역 맘카페에서 저희 사무실을 찾아오셔서 주민들이 그런 말은 싫어한다고 조언해주신 거예요.사람들이 진보정당에 대해서 갖는 편견이 있잖아요. 어떤 사안에 대해서 분명히 이런 입장일 거라고요. 저도 지역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거죠.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엄청나게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소각장 문제도 처음에는 님비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지만, 들어보니까 순환 경제와 이어갈 수 있는 문제였죠. 이제는 아파트 동별로 주민 간담회를 하면 주민 입에서 생산자 규제 얘기가 나오거든요. 지역에서 변화의 잠재력을 많이 느꼈어요. 원외 정의당, 어디로 가나 확실히 진보정당은 교조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죠. 그게 정의당이 고전한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고요. 정의당의 실패에 대한 의원님의 진단은 무엇인가요? 정치적 비전에 대한 당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요. 어떻게 권력을 얻을지를 두고 노선이 갈리죠.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으니 어쨌든 민주당하고 연합할지, 아무리 어렵더라도 독자적 진보정당으로 양당 체제를 견제할지요.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 토론을 하는 순간 당이 깨진다는 두려움이 많았어요. 끝까지 그 얘기를 하지 못한 채로 총선을 치렀어요. 재창당을 천명한 시점에서 노선 토론을 해야 했다고 생각해요.조국혁신당이 주장하는 민주당 견인이 정의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시민들이 있죠. 그래서 정의당에 표를 줬지만 정의당이 그 역할을 할 생각이 없다고 느끼신 것도 사실이에요. 독자적 진보정당 노선과 병립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주제일 수밖에 없어요. 현재 정의당 안에서 관련된 논의가 진행되고 있나요?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된 후에 본격적으로 반성과 평가가 이뤄질 예정이에요. 그 과정에서 제가 잊지 않으려고 하는 건 평론가적인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 거예요. 당에서 제가 국회의원으로서 참여한 판단과 그 근거를 망각하고 이랬어야 된다, 저랬어야 된다 하지 말아야죠. 그러려면 저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일단은 임기를 잘 마쳐야 할 것 같네요. 평론가적 비판이요. 일명 내부총질과 정말 필요한 비판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말 몇 마디보다는 그 사람의 당내 행보에서 형성되는 신뢰의 크기라고 생각해요.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다당제의 실현’, ‘정치 양극화 방지’라는 미션은 정의당이 아닌 제3정당에서도 수행 가능하다고 여겨지는데요. 그럼에도 정의당이 그 역할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22대 총선 결과지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아닌 정당이 있다고 해서 양극화가 아니라는 평가는 동의하지 않아요. 결국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자장 안에 있는 정당 아니면 위성정당이고, 무소속으로 당선된 의원은 아무도 없어요. 양당에 흡수되지 않은 표를 가지고 당선된 의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국회가 22대 국회죠. 그 어느 때보다 양극화된 방식의 국회가 구성됐어요.다당제 정치가 필요한 이유는 시민을 닮은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이렇게나 다원화된 사회의 국회에 두 가지 목소리밖에 없다면 과연 이 사회의 수많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조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양당의 이해관계를 견디면서 낼 수 있는 세력이 과연 있는지가 가장 걱정이에요. 그 목소리의 명맥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게 정의당에게 주어진 어려운 과제입니다. 앞으로의 정의당이 윗세대로부터 계승해야 할 것과 보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계승해야 할 것은 꿈이에요. 나머지는 다 다시 만들어야 하고요. 정의로운 복지국가로 요약되는 명확한 비전이 있었죠. 성장을 하고, 그 결실을 분배를 통해 나누자는 메커니즘이었는데요. 이제는 테두리가 하나 더 생겼어요. 생태 한계선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준이에요. 이 꿈을 어떻게, 누구와, 무슨 돈으로 할 지는 처음부터 고민해야죠. 정의당에 남기로 결정하셨죠. 분명 큰 정당에서 제안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많이 있었죠. 사람마다 선택이 다를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기득권은 현재의 세계가 유지됨으로 인해서 힘을 얻어요. 제가 원하는 변화가 이 세계가 유지되어서는 이뤄질 수 없다면 균열을 강화하는 쪽에 힘을 더하는 게 맞죠.예를 들면 장애인 시설 유지의 큰 이해관계자는 종교와 복지 사업체들이에요. 한국전쟁 이후 돌봄의 수요를 가정과 국가가 감당할 수가 없었을 때 종교를 필두로 한 복지법인들이 생겨났어요. 이들을 국가가 지원했고, 이제는 그 카르텔이 시설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이거든요. 지역사회의 정치와 경제와 연결되어서 촘촘한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시설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다른 사회를 조직해 내는 길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르겠어요. 같이 사는 공동체를 위해 그렇다면 현실의 한계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역설적으로 지금 기득권 정치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봐요. 교회나 사회복지 법인만큼 조직된 다른 정치적 공동체를 만들어 내지 못한 거잖아요. 양당의 구조에 균열을 내려면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를 만드는 과제를 결국 수행해야 하는 거죠. 정의당이 달성하지 못한 과제기도 해요.선거 후 녹색정의당에 대한 비판과 걱정이 쏟아졌는데, 그중 좋았던 칼럼의 키워드가 민중의 발명이에요. 마치 유권자 집단이 이미 있는 것처럼 상정하잖아요. 2030 여성,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이렇게 얘기하지만 사실 그 유권자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이 환상은 아니었을까? 조직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이 사람들을 묶어내고 정치적인 힘을 발휘해 나갈 존재로 만들려면 아예 민중을 발명해야 하는 걸지도 몰라요. 이게 정의당의 다음 과제라고 생각해요. 그 지점에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성공했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이준석 대표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때 20대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는 걸 보고 섬뜩한 느낌을 받았어요. 한국 사회를 불태워서 그 에너지로 이 사람은 상승하겠구나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죠.이준석 정치 10년에 한국 사회가 뭐가 나아졌는지 생각해 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데, 뭐가 나빠졌는지 얘기하면 두 가지는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어요. 2030 여성, 특히 페미니스트 혹은 페미니스트로 패싱되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심해졌고 전장연으로 대표되는 장애인권운동에 대한 탄압과 혐오도 더 심해졌다는 거예요. 이준석이 권력을 얻었기 때문에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준석이 권력을 얻은 덕분에 사회가 나아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의정활동 중 다양한 이익단체를 만나셨을 텐데, 현재의 시민사회 조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민주당발 위성정당에 흐린 눈을 하는 시민사회를 보면서 완벽히 세속화되었다고 느꼈죠. 시민사회는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건강한 견제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시민사회 안에서 이야기해 왔던 많은 가치에 대해 눈 감아가면서 자신의 행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하는 세태가 된 것에 대해 굉장히 실망하고 있어요.일단 위성정당이라는 플랫폼 자체를 시민사회 인사들의 국회 등용문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해요.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는 양당이 아닌 소수정당들에게 공간을 주겠다는 거였어요. 위성정당은 시민사회가 함께 얘기해 왔던 다당제 연합정치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였어요. 21대 총선에서는 사람들이 적어도 부끄러워했거든요. 22대 때는 그렇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시민사회를 넘어서서 민주노총과 민변에도 해당되는 얘기고, 그 조직들도 지금 이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를 두고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알고 있어요. 2030은 공동체라는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죠. 정당과 시민사회 차원에서 관련해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고 나서 지역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싶어요. 좋은 정당과 강한 정당이라는 두 축을 놓고 보면, 강한 정당을 만든 다음 좋은 정당이 되자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렵더라도 좋은 정당을 만든 다음 강해지는 경로를 구상하고 있거든요. 좋은 정당은 공동체 구성원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조직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당원을 동원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당원의 안부를 묻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어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소홀했고요.저도 동생을 데리고 나와서 살면서 처음으로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취약함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도움을 주고받을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것이고, 저는 그걸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이거든요.선거에서 발견한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의 필요와 결합해 나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수도 있고요. 지역의 이해관계를 거울처럼 대변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가치에 비추어서 보는 노력이 필요해요. 즐겁게 느껴지는 일입니다.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결심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자주 지치고 피곤한 스타일인데, 그만큼 치고 올라오는 것도 빨라요. 자주 좌절하고 자주 다시 일어섭니다. 굳이 일어서는 이유는 살고 싶은 삶이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사랑하는 사람과 둘 다 인간답게 살려면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아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는 한 그럴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죠.진보정당이 필요하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도 이보다 더 나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주 좌절해도 좋으니 빨리 일어날 수 있게 주변에 좋은 동료를 만들자고 당부드리고 싶어요.코로나와 함께 임기를 시작했는데요. 출마 선언하면서 “우리는 다시 같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었어요. 코로나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라도 뉴스를 읽다가 지쳐버릴까봐서!
뉴스를 읽다가 지쳐버릴까봐 쓰는 글 by. 🍊산디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대한 MBC의 [집중취재]가 눈에 띄어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AI 윤리 레터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있는 이슈이지요. 이주호 교육부총리가 “우려를 충분히 잘 제어하면서 진행하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한 정책이기도 합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시행되는 AI 정책입니다. 무엇을 보호해야 하며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한 분야죠. [집중취재]라고 하여 그간 미진했던 논의들을 살펴보는 보도일거라 기대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빛나는 미래가 성큼 다가온 듯한 교실이 그려졌을 뿐, 학생들의 정보인권과 AI 디지털 교과서가 미칠 영향은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지면을 빌려 다루기도 했습니다만,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따져 물어야 할 질문이 참 많습니다. UNESCO의 <인공지능과 교육-정책입안자를 위한 지침>은 마침 교육 분야에 AI를 적용할 때 어떤 질문들을 따져보아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친절히 안내합니다. 학습 데이터를 윤리적으로 수집 및 활용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학교, 학생, 교사가 데이터 수집을 거부하거나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의 처리 결과를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기업과 공공기관은 어떤 윤리적 의무를 지는가? 학생들의 일시적인 흥미, 감정과 학습 과정의 복잡성을 고려했을 때 인공지능은 어떠해야 하는가? 사진: Unsplash의Good Good Good AI 디지털 교과서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교사, 기업 관계자 분들이 위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설령 나름의 해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공유되어야 마땅합니다. 만약 답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면, 그 과정 또한 공유되어야 합니다. 질문과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입니다. 많은 언론 보도는 AI가 가져올 경쾌한 미래를 그리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정부나 기업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전하거나, 기술의 장점만을 부각하여 전하는 보도는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숱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보도가 AI 디지털 교과서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제 역할을 해낸 보도에 더 많은 조명이 비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다룬 보도들 중 일부입니다. 국민일보는 교과서의 데이터가 엄밀히는 사교육업체에게 제공되며, 교육청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고, 의견수렴이 미진함을 지적합니다. 교과서 이용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의 수업을 어떻게 할 지는 검토해보지 않았다”는 교육부 관계자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경향신문은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알고리즘 편향을 비롯해 AI 사용 시 발생하는 윤리적 쟁점을 충분히 다루지 않은 채 ‘속도전’을 치르고 있음을 비판했습니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대한 7명의 교사의 의견을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IT 조선은 AI 디지털 교과서가 클라우드 컴퓨팅 보안인증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장애, 다문화, 기초학력 등 학생들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한 보편적 학습설계도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임을 지적합니다. [집중취재] 보도가 있었던 바로 다음날, MBC 역시 AI 디지털 교과서가 문해력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문제의식을 안고 해당 이슈에 접근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가 소개해드리지 못한 보도도 많구요. 그러니 한국 언론인들은 문제의식이 없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언론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과 보도 구성의 논리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AI와 같은 기술을 다루기 위한 내부적인 가이드라인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AI 보도 가이드라인을 논의하게 된다면 🦜AI 윤리 레터가 제시했던 ☑️ AI 하이프 뉴스 체크리스트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퓰리처 재단이 ‘인공지능을 취재하는 언론인을 위한 스포트라이트 시리즈’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언론 또한 AI를 공개, 조사, 설명하는 책임을 집니다. 비단 AI 디지털 교과서뿐만 아니라 기술 정책 이슈를 다루는 과정이 보다 풍성한 물음으로 가득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글 AI 교과서는 우리 아이 데이터 채굴기?(2024-01-29) 외부인의 'AI 디지털교과서' 단상(2024-02-21) 우주 정복과 영생의 꿈은 TBC! by. 💂죠셉 오늘 레터는 작년 여름 무렵부터 테크 커뮤니티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화제의 단어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바로 TESCREAL (‘테스크리얼')인데요. 저희 레터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AI 윤리학자인 팀닛 게브루와 에밀 토레스가 처음 만들고 홍보해 온 이 단어는 Transhumanism (초인간주의), Extropianism (무한생명주의), Singularitarianism (특이점주의), Cosmism (우주론), Rationalism (합리론), Effective Altruism (효과적 이타주의), Long-termism (장기주의)라는 일곱 개의 이념을 통칭합니다. (*💂 각 개념을 설명/이해하는 게 오늘 레터의 목적은 아니니 링크 첨부로 대신합니다.) AI 윤리의 관점에서 TESCREAL이 흥미로운 이유는, 테크 업계의 거물들이 AI에 대해 취해온 입장에 대해 중요한 문제 하나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들은 특이점과 초지능의 등장으로 인한 인류 멸망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열정적으로 발언하면서 정작 AI의 편향성과 환경문제와 같은 ‘당장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걸까요? 게브루/토레스는 일론 머스크와 샘 올트먼을 비롯한 테크-유토피아 주의자 중 상당수가 사상적으로 TESCREAL 진영에 속해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이에 대한 흥미로운 대답을 내놨습니다. 이렇게 설명해 볼게요.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은 기계와의 결합을 통해 강화(enhanced)된 영생을 얻고, 수 조명의 ‘디지털 시민'들이 살 수 있는 가상 세계의 시민으로 살게 될 것이며, 나아가 우주 전체를 식민화(colonise)시켜 그곳을 무대로 무한히 뻗어나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여러분께선 어떻게 받아들이실 것 같나요? 예상하셨겠지만 위 내용은 게브루/토레스에 의해 ‘TESCREAL 주의자들’로 언급된 사람들이 그리는 미래의 축약본입니다. SF 소설 혹은 음모론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래전부터 아주 많은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밝혀온 바 있죠. 인물 별로 조금씩 편차는 있지만, 머스크와 올트먼 뿐만 아니라 ‘초지능(super-intelligence)' 내러티브의 창시자인 닉 보스트롬, 그리고 ‘라이프 3.0’으로 명성으로 막스 테그마크 등이 지속해서 밝혀온 입장과도 접점이 있습니다. 범용 인공 지능 (AGI) 이들이 그리는 미래의 중심에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범용 인공 지능)이 있습니다. AGI는 일반적으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지적인 업무도 수행할 수 있는 AI’로 정의됩니다. ‘범용'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그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할 것이므로 오픈AI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업계의 ‘성배'와 같죠. 요즘 밈처럼 사용되는 ‘특이점'은 바로 AGI가 ‘초지능’의 수준에 이르러 인류에게 폭발적 지적 혁명을 가져오는 시점을 뜻합니다. 앞서 언급된 영생을 얻는 신인류, 가상 세계, 우주로의 진출 등 지금 인류의 지능으로는 불가능한 목표도 초지능의 출현과 함께 가능해진다는 것이죠. 게브루/토레스의 지적에 따르면 TESCREAL 주의자들은 위와 같은 초지능의 출현을 필연으로 상정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정도 지적 수준을 갖춘 AI가 만약 인간의 가치 및 세계관과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까? 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서 아젠다를 선점하고 있다는 것이죠. 같은 ‘AI safety’를 이야기하지만 실상 바라보고 있는 곳은 현재가 아닌 먼 미래인 샘입니다. 이게 왜 문제라는 걸까요? 일단 AGI라는 목표 설정 자체의 문제가 있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은 AGI에 대한 ‘믿음'을 ‘필연’처럼 홍보하며 회사의 가치를 올리려는 시도도 문제지만, 게브루/토레스는 그 개발 과정에 있어 제대로 된 테스트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활용 가능한 케이스가 무한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해 안전을 위한 검증이 필요한 경우의 수도 무한하다는 의미겠죠. 같은 맥락에서 AGI에 대한 이들의 비젼은 ‘과학적'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신적 영역을 목표로 할 게 아니라, 일단 테스트 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유한한, 한정된 범위의 업무만을 수행하는 ‘좁은 (Narrow) AI’ 개발을 우선으로 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들의 종말론적 비전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놓치게 한다는 지적입니다. 대표적으로 AI 모델을 구축하고 가동하기 위해 소비되는 막대한 에너지와 환경 문제가 언급되는데요. TESCREAL의 핵심 인물 격으로 지목된 닉 보스트롬과의 그간 주장을 요약한 다음 부분을 살펴보면 TESCREAL의 마지막 두 축인 ‘효과적 이타주의’와 ‘롱터미즘'이 그들의 비전에 어떤 사상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TESCREAL 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한계가 없는 지성’을 만들기 위해 투입되는 막대한 자원과 같은 환경문제도 AGI라는 유토피아의 가능성 앞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보스트롬을 인용하자면 단기간의 ‘대규모 인간 학살마저도 우주로 나아갈 인간의 거대하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생각하면 인류를 위한 작은 한 걸음'일 뿐이기 때문’이다." (*💂 효과적 이타주의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다수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롱터미즘도 마찬가지로 공리주의 관점에서 우리는 먼 미래의 신인류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요. 이렇게 둘을 포개면 현재의 인류가 손해를 보더라도 먼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할 당위성이 만들어집니다.) To infinity... and beyond? 지속 가능성과 기술 윤리를 '거짓말'로 규정하며 '유일한 가치는 무한한 성장뿐이다'라고 외쳤던 실리콘 밸리의 거물, 마크 엔드리슨의 테크-유토피아 선언문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AI를 발판 삼아 영생과 우주라는 무한의 세계로 향하는 TESCREAL의 지향점은 그들의 논리적 귀결로서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 이야기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오늘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기술을 선도하는 리더들이고, 실제로 그 미래에 초석이 될 사업을 조금씩 현실화 시켜나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추신: 사실 게브루/토레스가 발표한 내용의 핵심은 TESCREAL의 뿌리에 우생학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우생학은 아우슈비츠 학살의 당위성을 나치에게 제공한 문제적 사상이자 유사 과학이죠. 그 사상적 뿌리로 인해 알고리즘이 가진 인종 차별과 소외 그룹에 대한 차별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 또한 지적됐지만 지면상 생략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글 AGI vs. 현실 (🦜AI 윤리 레터 2023-05-29)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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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오늘도 무사히, 나는 퇴근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나는 퇴근하고 싶습니다” (2022-07-27) 백재민 건설노동자 서울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긴 20일 오후 건설노동자들이 서울 강동구 한 건설현장에서 일과를 마치고 찬물로 땀을 씻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새벽 6시. 일출과 함께 하늘 빛깔이 불그스름할 즈음, 작업복을 챙겨 입고 인력사무소로 향할 때면 참새들만이 무던한 하루의 시작을 반겨준다. 새벽 댓바람부터 인력사무소 입구는 사무소장의 ‘간택’을 기다리는 막일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막일을 하려면 먼저 인력사무소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품삯은 인력사무소가 원금인 10만원의 20%를 떼어간 뒤 나머지 7만~8만원 정도를 받는다. 내가 사는 경북 포항은 다른 지역들보다 임금이 적은 편이다. 인력사무소장은 ‘쓸 만한’ 사람들을 선택해 추린다. 여기서 ‘쓸 만한’ 사람들이란, 장기근속할 것 같은, 힘 좀 쓸 것 같은 사람을 뜻한다. 새벽부터 사무소장의 간택을 기다리던 사람 중에는 선택을 받지 못해 허탕만 치고 돌아가는 이들도 많다. 그들 중에는 힘없는 노인이 많다. 광고 현장 형태는 제각각인데, 내가 작업했던 현장은 제철소나 항만 같은 곳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면, 간단한 작업 지시를 받고 바로 작업을 개시한다. 고된 노동이 두렵다가도 작업을 시작하면 몸이 어느덧 적응한다. 그렇게 작업을 하다 보면 같은 그룹 안에서도 서열이 나뉜다. 인력사무소에 일을 맡긴 사쪽은 관리직 직원을 끼워넣어 일용직들을 감독하게 한다. 그러면 일용직들은 관리직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깐깐한 관리직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그날은 두배로 고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일용직 사이에서도 ‘짬밥’에 따라 서열이 생긴다. 막일을 오랫동안, 꾸준히 했을수록 에이스 대접을 받는다. 다양하고 위험한 작업을 오랫동안 섭렵해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인정받는 것이다. 정오쯤, 점심시간이 찾아오면 또 다른 하청업체에서 조리한 도시락을 일용직들의 손에 쥐여준다. 그러면 너 나 할 거 없이 땅바닥에 둥그러니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다. 수많은 노동자가 길거리나 땅바닥에서 식사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관리직들은 식당에서 식사하니, 일용직들만이 남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식사를 한다. 작업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점심시간이야말로 막일꾼들의 세계가 계급사회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광고 광고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작업을 재개하면 너 나 할 거 없이 다들 늘어진다. 그 시간이 되면 관리직들은 눈치 봐가며 일용직들에게 휴식 시간을 준다. 그때 연장 쥔 손으로 땀을 닦아가며 마시는 물은 천상의 맛이다. 그 뒤 작업을 정리하고, 오후 4시쯤 일이 끝나면 먼지를 털어내고 관리직들 몰래 함께 담배를 태운다. 이때는 알 수 없는 ‘동료애’가 싹트며, 노동의 참맛을 함께 나눈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고된 노동을 하루이틀 함께 하다 보면 처음 만난 동료들과도 가까워지게 된다. 함께 일했던 이들은 용돈벌이 삼아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막일을 자신의 ‘생업’으로 삼은 사람들이었다. 정규직들이 싫어하는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배정받아 일하다 보면 부러지고 깨지는 부상은 물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는 이들도 생겨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부상과 죽음을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현장에 투입되기 전에 안전교육을 받게 돼 있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산재보험이 있긴 하지만, 일용직이라는 이유로 급여가 깎이기도 하고 그마저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광고 나의 부친 역시 막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부친은 얼마 전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인력사무소와 원청이 산재 책임을 부친 개인에게 떠넘겼고, 혈혈단신으로 살아가는 부친은 졸지에 생존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또 어느 날은 인력사무소에 나가보니 함께 일하던 정씨 아재가 보이지 않았다. 주말 빼고선 매일같이 인력사무소로 나오던 정씨 아재였다. “정씨 아재가 안 보이네요. 무슨 일 있습니까?” 하고 다른 아재들에게 물으니, 잠시 침묵 뒤 기가 차는 답변이 돌아왔다. “항만에서 화물 싣다가 죽어버렸다….” “회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하고 재차 물었지만, 아재들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일용직 막일꾼의 삶은 생존과 온전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 삶이다. 공휴일이든 주말이든 쉬지 않고 일하지만, 과로사는 물론 언제 어디서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만연하다. 출근하면서도 ‘오늘은 무사히 퇴근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이유다. 점심 뒤 현장 한 귀퉁이에서 20~30분 눈 붙이는 짧은 시간, 휴게실 푹신한 소파에서 ‘단잠’을 자는 몽환을 꿈꾼다. 우리의 작업 현장이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현장이 되기를….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안녕을 생각하는 작업 현장, 아직은 먼 미래일까.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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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부의 표결을 환영한다!
2024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부의의 건'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링크)특별법 개정안이 당장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은 아니지만, 다음 본회의에서는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찬반 의결을 하게 된다.  관련하여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는 입장을 발표했다. (원문) [성명]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부의 표결 환영21대 국회,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반드시 처리하라! 1. 오늘(5/2)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대안) (이하 특별법 개정안)본회의 부의의 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1대 국회 종료가 가까워지면서, 특별법 개정안이 폐기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과 불안에 잠 못 이루던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특별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직회부된지 65일 만이다. 특별법 개정안은 작년 12월 27일 국회 국토위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국민의힘의 반대로 지난 2달 동안 법사위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해, 결국 지난 2월 27일 국토위에서 본회의 부의 요구안을 처리했다. 법 개정이 공전을 거듭하는 사이 특별법 제정당시 6개월마다 보완입법을 추진한다는 약속은 11개월째 지켜지지 않으면서 피해자들이 느끼는 고통과 절망의 무게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전국의 피해자들은 전세대출이자를 내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면서도 1인시위, 집회, 문자 행동, 기자회견 등을 통해 특별법 개정을 촉구해왔다. 그러나 아직 특별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과 표결이라는 큰 산이 남아있다. 2. 더불어민주당은 이달말 21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를 개최해 전세사기특별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한날 한시가 급하다. 21대 국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만큼, 하루 빨리 본회의 일정을 확정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오늘 특별법 개정안의 본회의 부의의 건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민생 회복에 책임있는 정부 여당이자,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의 매서운 심판을 받은 정당이 최우선 민생 과제인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법안을 반대하며 특별법 개정을 가로막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태다. 피해자와 시민사회는 민생을 외면하는 국민의힘의 오만함을 강하게 규탄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민의힘이 특별법 개정안에 합의하지 않더라도 벼랑끝에 내몰려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피해자들을 위해 특별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에 부치도록 해야 한다.3.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부의 표결에 대해 환영하며, 21대 국회가 반드시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해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란다. 당장 경공매와 명도소송 기일을 앞둔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는 비정하고 잔인한 21대 국회로 남지 않길 당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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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난 윤석열-이재명, 결과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첫 회담을 진행했습니다. 윤 대통령 취임 2년 만이죠. 회담은 지난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공개로 열렸고, 의제와 시간 제한은 없었습니다. 회담은 135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이번 회담이 윤석열 정부의 전환점이 될 거라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총선에서 민주당이 175석을 거머쥐었기 때문입니다. 남은 3년의 임기 동안 야당의 협조 없이는 정부가 원하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습니다. 영수회담 내용과 평가를 정리해봤어요. 영수회담 추진 배경 *영수회담: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의 회담 이재명 대표는 2022년 8월 당 대표 선출 직후 계속해서 영수회담을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범죄 피의자’와 면담할 수 없다며 거부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회담을 제안한 것은 이번 총선 직후가 처음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일방적인 국정 운영이 총선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기에, 소통과 협치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총선 후 윤 대통령의 행보는 지난 담소 참고) 회담 시작을 앞두고 기자들이 퇴장하기 직전, 이재명 대표는 15분간 대통령에 대한 요구사항을 담은 공개 발언을 진행했습니다. 비공개 회담은 발언 내용에 대해 윤 대통령이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회담 내용은 합의문 없이 양측이 각자 발표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의 제안과 윤 대통령의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 전국민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1인당 25만원) 최근 민주당이 내세우는 제1정책입니다. 여당과 정부는 무분별한 현금 지원이라며 반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상황에선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수용 불가를 시사했습니다. ✅ 의료 개혁 양측이 유일하게 합의를 본 의제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공개발언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의대 증원은 민주당이 예전부터 주장해온 사안입니다. 증원의 필요성은 두 사람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증원 규모 등 세부 사항까지 논의되진 못했습니다. 정부는 매년 1000~2000명을 증원해야 필수·지역 의료를 살릴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한편 이 대표는 지난 2월 적정 증원 규모는 400~500명 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안에 대해선 과도한 숫자를 부른 뒤 애초 목표인 500명 전후로 타협해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정치쇼’가 아니길 바란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습니다. ✅ 이태원 참사 특별법 이재명 대표는 그간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유감이라며 이태원 특별법을 적극 수용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건 조사와 유족 지원 같은 특별법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법안에 법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민간조사위원회(조사위)에서 영장청구권을 갖는 조항을 문제삼은 겁니다. 국민의힘에서도 줄곧 ‘독소 조항’으로 꼽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틀린 지적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조사위가 갖는 권한은 영장청구권이 아닌 ‘영장청구 의뢰권’입니다. 조사위는 참사 진상규명 중 필요한 자료 제출이 거부될 경우, 검사장이나 공수처장에게 제출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습니다. 영장 청구는 결국 검찰이나 공수처가 결정합니다. ➡️ 어제(1일) 결국 영장청구 의뢰권을 삭제하기로 여야가 합의했습니다. 이외에도 특조위 구성 방식 등 일부 조항이 수정됐습니다. 수정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오늘(2일) 본회의에서 처리됩니다. ✅ 국민연금 개혁 연금 개혁안에 대한 정부여당의 적극적인 처리를 요구했습니다. 개혁안은 최근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에서 마련된 것으로, 일명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입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내고, 수급도 더 받자는 겁니다. 윤 대통령은 22대 국회에서 논의하자는 입장입니다. 연금특위 개혁안은 국민의힘은 반대, 민주당은 선호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국회에서의 의견차도 심합니다. 한 달밖에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서 통과되긴 어렵습니다. ✅ R&D 예산 복원 정부에서 삭감한 R&D 예산을 추경을 통해 복원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내년 예산에 R&D 예산 증액을 반영할 계획이며, 추경을 통해 복원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외에도 채 상병 특검법 처리와 대통령 가족 의혹 정리, 일본과의 외교문제가 언급됐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답변은 없었습니다. 끝나고 반응은 어때? 대통령실은 성공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야구로 표현하자면 ‘퀄리티 스타트’”라며 협치에 시동을 걸었다고 발표했는데요. 반면 이재명 대표는 소통의 첫 장은 열었으나, “답답하고 아쉬웠다”며 실망감을 내비쳤습니다. 🙆 만남 자체가 성과야 일단 만남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서로를 국정 운영 파트너로 인정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해석입니다. 윤 대통령은 영수회담 제안으로 불통 이미지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었고, 이재명 대표는 8번의 회담 제안 끝에 회담을 성사시킨 것으로 입지를 다지게 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합의된 게 너무 없어 보여주기식 회담에 그쳤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대표는 일방통보하듯 의제를 쏟아냈고, 대통령도 기존 입장을 고수해 접점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번 회담에 올라온 의제들은 2년간 여야가 강하게 대치해온 사안입니다. 그만큼 윤 대통령이 얼마나 유연하게 화답하는지가 향후 여야 협치를 가를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윤 대통령이 거의 모든 사안에서 기존 입장을 유지했기에 민주당은 여권을 향한 공세를 쉽게 높일 수 있었습니다. 민주당의 ‘일방적 밀어붙이기’로 보일 부담을 덜어낸 것입니다. 당장 5월 임시국회에서 이태원 탐사 특별법, 채상병 특검법 , 전세사기 특별법 등을 처리할 예정입니다. 🤷 다음에 언제 만날지도 미지수야 양측은 다시 만나길 기약했지만 그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각자 할 말만 하는 회담이 반복된다면 효용이 떨어집니다. 향후 협치 방식에 대한 신경전도 오갔습니다. 대통령실은 여야정(여당야당정부)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대통령실이 주도하고, 야당이 협조하는 형태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국회를 활용하자고 답했습니다. 국회에선 민주당이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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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과 기억교실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 세월호참사 10주기를 기억하기 위해, 4월 16일 오후 3시 안산 단원고 인근의 화랑유원지에서 세월호 기억식이 열렸다. 세월호 희생자 250명의 이름을 부르는 호명식을 시작으로, 304명 희생자에 대한 묵념과 추도사, 97년생 동갑내기의 기억편지, 기억 영상과 시 낭독, 노래 공연과 416합창단과 시민합창단의 합창 공연 등으로 이루어졌다.   세월호를 기억식이 거행되는 사이에 불현듯 사이렌이 울렸다. 안산에서는 매년 4월 16일 오후 4시 16시에 이렇게 사이렌이 울린다고 한다. 416을 기억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 짧은 사이렌과 묵념의 순간에 416 세월호참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사이렌 같은 사건이란 생각이 스쳤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우리들의 요구>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 건설 이행하라!  세월호참사 및 그 이후 발생한 국가폭력에 대해 국가책임 인정하고 사과하라! 대통령은 세월호참사 지우기 중단하라! 정부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권고 이행하라! 정부는 세월호참사 기억/추모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하라! 세월호참사 대통령 기록물, 국정원, 군 등 정부 기록물 모두 공개하라! 부재했던 재난 컨트롤타워, 피해자 사찰했던 정부기관, 국가책임자 처벌하라! 대통령은 진상규명 추가 조치, 성역 없는 추가 조사 이행하라!     (세월호 참사 102주기 기억식 팜플렛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국가폭력 및 사찰, 대통령이 사라진 시간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불러세운다. 기억은 사진첩에 끼워지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다음번 또다른 희생이 생겨나지 않기 위해, 다음번 재난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막기 위해 필요한 순간이다.  우리는 사이렌을 계속 울려야 한다.  왜냐하면 팽목항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세월호도 어디에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참사를 기억하는 것은 이태원참사 등 다른 참사와도 맥이 통하고, 419 민주화운동과도 맥이 통한다. 세월호참사에 대한 기억은 사회적 기억으로서 의미가 깊다. 또한 세월호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은, 이 사회 어른들이 무엇을 잃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재난참사 이후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를 설계하기 위해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 잘못된 조치를 한 것이 아니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책임자들에게 어떻게 사법적, 사회적 책임을 물을 것인지는 여전히 남은 과제다.’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2014~2023년의 기록 <520번의 금요일> 중에서) 단원고 416 기억교실 기억식이 끝나고 근처에 10년 전 희생자였던 단원고 2학년 교실을 보존해 놓은 기억교실을 찾았다. 가는 길에 문 닫을까 걱정되어 택시를 탔다. 안산 택시들이 팽목항과 안산을 오가며 피해자 가족을 도왔다는 게 생각나 물어보니, 기사님은 쓰라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누구라도 그랬을 거라고. 그러면서 기억식에 대통령은 왔던가요? 하고 물었다. 대통령은 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기억교실 건물을 둘러싼 울타리에 걸린 “10년, 당신들을 기억하는 마음은 변함 없습니다.” 라는 플랜카드가 보였고, 노란 바람개비가 바람을 맞고 있었다.  기억교실에는 남자반 여자반으로 2, 3 층으로 나뉘어 있는 교실들을 만날 수 있었다. 노란 등받이와 방석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의 자리를 한눈에 알 수 있었는데, 반 전체에 서너 자리를 빼곤 모두 노란 자리로 뒤덮여 있어 가슴이 턱 막혀왔다. 교무실 역시 희생자 선생님들의 사진과 평소 쓰던 출석부 학생기록 수첩 등이 남아 있었다. 안내하던 한 여자분이 간곡히 말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한 아이의 이름이라도 기억해 주세요.”  그제야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애썼다. 지금 살아 있었다면 27살의 청춘으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있었을 아이들. 나는 기억교실 안에서 부표처럼 떠 있었다. 한 책상 위에 낙서로 적혀 있는 글귀를 보았다.   단 한번 뿐 인생을 낭비하지 말자.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의 키워드는 ‘기억’ 뿐만이 아니었다. 기억과 약속, 그리고 책임이었다. 기억은 힘이 세다, 는 말처럼, 기억이 약속을 만들고, 약속을 통해 책임을 일구어 나가는 과정이 이제 10년을 맞이한 셈이다. 아직 이루지 못한 진실규명과 책임 처벌, 앞으로를 대비한 관련 법률과 제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인재(人災).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회적 참사.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들. 그것을 해낼 수 있어야지만 이 기억식의 의미는 뚜렷해질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노란 리본은 반짝거리고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아직 더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뜨겁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4.16 세월호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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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계화 시대의 AI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4월 다섯째 주 by 🧙‍♂️텍스 1. 원격 계산원과 키오스크 글로벌 아웃소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형태로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원격 계산원을 도입하여 오프라인에서 아웃소싱한 뉴욕 레스토랑의 사례를 다루었습니다. 그동안 🦜AI 윤리 레터에서 다루었던 온라인 아웃소싱에서 한 발 더 나간 모습이네요. 가게 소재지인 뉴욕 퀸스의 롱아일랜드 시티 최저임금은 시간당 $15인 반면, 필리핀에 거주 중인 원격 계산원은 $3의 임금을 받습니다. 최저 임금 관련 법률이 주에 물리적으로 위치한 사람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가능한 임금 차별이죠. 리처드 볼드윈의 저서 Globotics Upheaval (2019)에서는 세계화와 로보틱스의 결합을 globotics (globalization + robotics)로 정의하고 세계화가 단순히 재화와 상품의 교환에서 벗어나서 원격이주(telemigration)의 형태로 확장되어 간다는 예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원격 계산원의 사례도 위와 같은 원격이주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을 듯하네요. 원격 계산원은 줌의 가상 접객원(virtual receptionist) 플랫폼 기반으로 구현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CNBC의 2021년 기사에 따르면, 줌은 코로나-19 이후 줌을 통한 화상회의 수요가 줄어들 것을 대비하면서 가상 접객원 기능을 이미 준비해 두었다고 하네요. 가상 접객원 시스템의 특성상 목적에 부합하는 데이터 취득이 용이하기 때문에 미래에는 가상 아바타와 거대언어모델을 조합한 알고리즘으로 아웃소싱 업무 자체도 완전히 대체되지 않을까 조심히 예측해 봅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언어 때문인지 제3국으로의 아웃소싱보다는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노동 대체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종업원 고용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및 로봇에 크게 투자가 몰리고 있는 사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 테이블 오더 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티오더는 최근 300억 규모의 추가 투자를 받았습니다. 더 읽어보기 강화학습이 강화하는 역사 (2024-04-24) "세계 최초 윤리적 데이터 회사"는 어떤 모습일까? (2023-08-07) 2. 탈세계화 시대의 플랫폼 1: 틱톡(Tik Tok) 금지 법안 통과 최근 미국 의회 하원(4월 21일)과 상원(4월 23일)은 조건부 틱톡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 지분을 1년 내에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틱톡을 금지한다는 법안입니다. 이 법안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의 경제적 지원을 위한 법안과 함께 통과하였습니다. 틱톡은 이에 즉각 반발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틱톡은 위헌적 금지(unconstitutional ban)라면서 미국에 미국 내 데이터의 안전과 외부로부터의 악의적인 영향 및 조작을 막기 위해서 데이터 거버넌스에 많은 투자를 진행해 왔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양당 대다수 의원의 동의 입장과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틱톡 금지가 메타에게 큰 이득을 줄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네요. 논쟁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20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트럼프 정부는 중국 정부가 틱톡의 데이터를 훔쳐볼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미국계가 50% 이상의 지분을 갖는 틱톡글로벌을 세우는 골자로 대략적인 합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나면서 관련 이슈는 마무리되지 못한 채 바이든 정부의 몫으로 넘어갔습니다. 데이터 거버넌스의 해결을 위해 틱톡은 2022년 3월 중국 서버의 데이터를 모두 미국 내 오라클 클라우드로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데이터에 중국 엔지니어가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2022년 6월 보도되면서 논란은 이어졌고, 미국 의회는 2022년 12월 정부 기관의 기기에서 틱톡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틱톡은 지분구조의 변화가 데이터 거버넌스와 안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며, 외부 개입이 없는 데이터 거버넌스를 위한 지속적인 투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틱톡이 어떤 기술과 방법을 동원하든, 중국 공산당이 틱톡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설득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더 읽어보기 틱톡을 금지하라! (2023-05-22) 3. 탈세계화 시대의 플랫폼 2: 일본 라인(Line) 지분 매각 권고 라인 메신저 운영사 라인야후의 지분구조 일본 정부가 라인 메신저를 운영하는 라인야후에 네이버 지분 매각을 권고했습니다. 틱톡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플랫폼 산업’이 실제로는 특정 국가의 통치권을 벗어날 순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라인 메신저는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9600만 명에 달하는 일본 내 1위 메신저로, 한국의 카카오톡과 유사한 위상을 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개인 간의 메신저를 넘어서 정부에서도 라인을 사용할 정도죠. 일부 집단에서는 일본의 주요 메신저를 한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작년 10월 한국 네이버 클라우드를 통해서 일본 라인의 해킹이 있었고, 이로 인해 라인 이용자, 거래처, 네이버 직원 등의 51만 건의 개인 정보 유출이 있었습니다. 일본 총무성은 이에 대한 사고 재발 방지의 일환으로 라인야후에게 두 차례 행정지도를 내렸으며, 여기에는 보안 거버넌스 개선방안을 위한 네이버에 대한 업무 위탁 및 네이버와의 자본관계 재검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인 메신저 사례는 플랫폼과 국가 안보 문제가 결합했다는 점에서 틱톡의 사례와 결을 같이 합니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했죠. 거대언어모델 개발과 활용을 주도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각 지역의 선도 기업들은 자국에서 소버린 (sovereign) AI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도 소버린 AI를 주창하면서 한국 고유 거대언어모델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죠. 시대의 조류가 탈세계화라면, 네이버에도 국가 내부를 향하는 소버린 AI를 넘는 담론 아이디어가 있어야 라인의 지분을 지키기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소식 LG AI연구원 AI 윤리 분야 정책 연구 직원 채용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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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의 AI
더 나은 AI를 위한 상상 by. 💂죠셉 어떤 계기로 <AI 윤리 레터>를 구독하게 되셨나요? 원래 AI와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고 계셨을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2022년 11월 출시된 챗GPT 이후로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챗GPT와 같은 챗봇들은 ‘LLM(거대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작동하는데요. 이후 클로드(Claude), 제미나이(Gemini)등 LLM 챗봇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요즘 미디어에서 언급되는 ‘AI’는 사실상 ‘LLM’과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LLM이 현재 AI 산업을 이끌어가는 패러다임인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LLM은 인간 뇌의 작동 방식을 모방한 신경망(Neural network)을 바탕으로 하고, 이 신경망 기술이 인공지능이라는 목표에 이르기 위한 여러 방법론 중 하나란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LLM은(=하위개념) AI지만(=상위개념) 그 반대는 불완전한 설명이라는 것이죠. 오늘 레터에서는 이게 왜 윤리 이슈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인지 짧게 다뤄보도록 할게요. 뉴로..심볼릭..? AI와 LLM을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경향은 얼마 전 발행된 스탠포드 HAI의 연간 리포트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요. 그 와중에 흥미로운 단락이 하나 등장합니다. (185페이지). 바로 뉴로 심볼릭 AI (Neuro-symbolic AI, 이하 ‘뉴로 심볼릭’)라는 개념인데요. 안 그래도 복잡한데 이건 또 뭐냐? 하실 것 같아 AI 역사의 맥락 속에서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AI 연구가 하나의 학문으로서 정립된 것은 1956년. 이 당시 주류 패러다임은 기호주의(symbolism)로서, 세계의 지식을 기호로 바꿔 컴퓨터에 계산하는 규칙 기반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음. 반면 현재 신경망 기술의 기원이 된 건 1957년 프랑크 로젠블랫(Frank Rosenblatt)이 발표한 퍼셉트론(Perceptron) 논문. 이 때부터 이 계열의 연구에는 연결주의(connectionism)라는 이름이 붙었음. 이후 AI 연구가 몇 차례 호황기와 부침을 겪는 오랜 기간 동안 주류의 위치를 차지해 온 건 기호주의. 그러나 떨어지는 효율성과 수익화 문제 등을 극복하지 못하며 1990년대 들어 산업 전체가 침체기에 빠짐. 2010년에 이르러 데이터셋과 반도체 성능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대세가 전환됨. 2012년, AI의 이미지 분류 정확도를 평가하는 이미지넷 (ImageNet)대회에서 제프리 힌튼 연구팀의 알고리즘인 ‘알렉스넷’이 획기적인 성과를 증명. 이때부터 신경망을 바탕으로 하는 딥러닝은 승승장구해 지금의 주류 패러다임이 되기에 이름. 뉴로 심볼릭은 이름처럼 신경망(neuro)과 기호주의(symbolic)를 혼합한 형태. 현재 AI 기술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조금씩 언급되며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 (*AI 역사에 대해 더 읽고 싶으시다면 첫 책으로 케이드 매츠의 <AI 메이커스>를 추천드립니다.) 신경망, 기호주의에 대한 설명과 함께 미래 AI 생태계에 대한 흥미로운 예측을 들려주는 카톨린 욘커 교수 (영상: The Royal Institution 유튜브 채널)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자가 학습하는 딥 러닝 기술은 스케일과 성능의 측면에서는 월등하지만, ‘블랙박스’로 대표되는 설명 불가능성의 취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 결과물의 정확도를 올릴 수 있지만 투입할 수 있는 데이터는 유한하며, 그에 따르는 환경 문제도 계속 지적되고 있죠. 반면 인간이 입력해 둔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를 재현하는 기호주의 계열 AI의 대표적 장점은 명시적인 법칙과 규칙을 알고리즘에 반영하기가 훨씬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에게 익숙한 AI 윤리 문제(할루시네이션, 편향, 상식 부족 등)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정확히 특정해 낼 수 있습니다. AI에게 인간의 상식과 도덕관 등을 주입하는 연구에서 이 기술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죠. (TED 강의로 화제가 된 최예진 교수의 연구가 좋은 예시입니다.) 뉴로 심볼릭은 오랫동안 경쟁해온 두 패러다임의 장점을 취해 성능과 설명 가능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은’ AI? 현재 AI 그 자체처럼 여겨지는 딥러닝 또한 기나긴 AI 흥망성쇠 역사의 일부라는 사실은 향후 5년, 10년 이후의 전망을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뉴로 심볼릭이라는 가능성은 앞으로 어떤 기술주에 투자해야 할지(?)에 대한 안목뿐만 아니라 AI 윤리의 쟁점들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가령 더 투명하고 설명 가능한 AI의 필요성에 대해 저희 레터에서도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는데요. 스케일의 LLM과 투명한 심볼릭, 혹은 그 혼합체의 다양한 모델들이 서로를 보완,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형태의 AI 생태계가 실현된다면 어떨까요? 저희 레터에서 다뤄 온 시급한 이슈들도 AI 기술 자체의 난제라기 보다는 LLM이라는 한 패러다임이 가졌던 한계점으로 기억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블랙박스의 한계, 혹은 AI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기술 발전으로 인한 ‘불가피함’이라 누군가 말할 때, 뉴로 심볼릭은 (아직 대중화까지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 ‘더 나은 AI’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강화학습이 강화하는 역사 by. 🥨채원 지난주, 무언가를 자세히 살펴 본다는 뜻의 영어 단어 ‘delve’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챗GPT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챗GPT에 자주 등장한다고 이미 널리 알려진 단어 중 하나였습니다. Y Combinator의 공동 창립자인 폴 그레이엄은 이를 X (구 트위터) 에 ‘누군가가 나에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콜드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거기에 단어 ‘delve’가 쓰였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며, 해당 단어가 챗GPT 등장 이후 사용 빈도가 크게 증가했다는 그래프를 첨부하였습니다. 해당 사건을 다룬 가디언지 기사에서는 ‘delve’라는 단어가 아프리카의 웹, 특히 나이지리아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아프리카는 챗GPT를 비롯한 많은 언어 모델의 학습 데이터를 외주로 생산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 레터에서 케냐의 노동자들이 한시간에 2불이 채 되지 않는 임금을 받으며 챗GPT를 학습시킨 케냐 노동자들에 대한 TIME지의 심층 취재를 공유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챗GPT의 답변에 챗GPT의 학습 데이터를 생성하는 아프리카 화자들의 언어습관을 반영되었다는 것은, 기존의 언어모델의 문제로 제기되는 편향의 문제를 넘어선 사회경제적, 역사적 문제점을 시사합니다. RLHF 인간 피드백을 통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with Human Feedback, RLHF)은 거대언어모델 (LLM)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챗GPT를 비롯한 LLM을 학습 시키는 방법론 중 하나인 RLHF는 인간의 피드백을 명시적으로 학습에 포함시킴으로서, 학습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출력을 생성하는 것과 더불어 인간이 보기에 더 나은 출력을 생성하도록 돕습니다.  인간의 명시적인 선호도는 일명 선호데이터를 생성하여 학습에 추가하는 식으로 반영됩니다. 선호 데이터는 대개 서로 다른 LLM이 생성한 답변들과, 이들 중 채점자 (annotator)가 더 나은 답변으로 판단한 선호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 나은 답변이라는 것은 방식에 따라 정확도나 자연스러움 등 다양한 기준으로 정의됩니다. 수만건의 답변을 비교하여 판단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대개 크라우드소싱이나 외주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오픈AI의 WebGPT모델에 사용된 선호 데이터셋은 19,578개의 비교 데이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해당 데이터는 프리랜서로 고용된 56명이 생성했는데, 특히 이 중 다섯명이 데이터셋의 절반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즉, 이들 다섯명이 대략 데이터셋 전체의 10%씩을 각각 생성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다섯명의 판단이 해당 데이터셋의 추이를 결정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논문은 이들의 인구구성학적인 정보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이 다섯명의 채점자 편향 (annotator bias)이 데이터셋에 반영될 소지가 있을 것입니다. 편향의 문제를 넘어서 폴 그래햄의 트윗으로 다시 돌아가서 살펴보면, 챗GPT로 생성한 메일은 인간이 작성한 메일보다 가치가 없다는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작성자를 판단하는 근거는 해당 메일에 포함된 ‘delve’라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만약 해당 메일이 챗GPT가 아닌 아프리카의 영어 화자에 의해 쓰인 메일이라면 어떨까요? 해당 화자는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본인의 언어 습관이 AI를 학습하는 데에 반영되었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비영어권 화자의 영작문이 생성 AI 툴에 의해 표절로 판별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글을 전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함께 AI 윤리 레터를 발간하는 🤖아침이 비판한 것처럼, 이러한 데이터 편향은 AI 개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남반구의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하는 문제와 더불어, 이를 근거로 남반구의 영어 화자들의 언어를 'AI 텍스트'로 저평가하는 이중착취의 문제입니다. 나아가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다양한 남반구의 국가들에 영어 화자가 많은 것이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식민지화되었던 역사 때문이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미 다양한 형태로 착취되고 있는 사람들이 또다시 AI를 개발하는 데 저임금 노동으로 동원되고, AI가 가져올 혜택에서는 소외되면서, 이를 근거로 이루어질 수 있는 언어문화적 차별에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는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차별의 역사가 AI라는 새로운 매개를 통해 구태의연하게 반복되고 또 강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같이 보면 좋은 글 🗺️ 생성형 AI 지도  교수님, 정말 제가 직접 썼습니다..! 💬 댓글 (💂죠셉) 영어로 쓰는 게 업인 제 직장에서도 언제부턴가 ‘delve into’가 하나의 밈이 된지라 더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어 결과물에 비슷한 경향성이 존재할지도 궁금해지고요! (🧙‍♂️텍스) 요새 인공지능 분야 논문을 읽다보면 예전과 다르게 ‘showcase’ 동사가 자주 쓰이는데 챗GPT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가란 생각이 스쳐 지나가네요!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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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나는 지역에서 혁명을 꿈꾼다
나는 지역에서 혁명을 꿈꾼다 (2024-04-28) 조혁민 | 두루미책방 대표 지난달 22~23일 열린 ‘국제회관 디아이티(DIT·Do It Together) 워크숍’에서 지역민들과 함께 새로 이사한 국제회관 공간에 들어갈 책장을 만들었다. 필자 제공 2008년 12월 말, 나는 이웃으로부터 폐기물처리장에 있는 재활용선별장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하루 8시간 주 6일 근무에 급여는 120만원. 2009년 1월2일 첫 출근을 했다. 컨베이어 벨트로 지나가는 재활용 폐기물 가운데, 정해진 재활용품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캔을 선별해내는 일을 맡았다. 충남의 제일 끝자락 금산은 인구 5만의 작은 지역이다. 공기가 맑고, 별이 잘 보이는 이곳에 사는 청년은 농사가 아닌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버지 서재에 꽂혀 있던 ‘체 게바라 평전’(실천문학사, 2005)을 읽으며 혁명가를 꿈꾸었다. 혁명적인 삶,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기 위해 모부님과 나는 대안학교를 찾았다. 그러다 금산간디학교 고등과정 비인가 대안학교를 알게 되었다. 형과 나는 차례로 학교에 입학했다.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학교에 다니며 사랑과 자발성을 기반으로 한 여러 종류의 공동체 실험을 경험했다. 일주일에 한번 학교 구성원들과의 전체회의로 약속과 규칙을 결정하고 소외된 의견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다양한 시선과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내 삶의 혁명을 시작했다. 광고 내가 바라본 금산은 도시만큼이나 다양한 사람과 가치가 충돌하는 곳이었다. 이주민들, 특히 비인가 대안학교 졸업생에 대한 지역민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늘 곧 떠날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그런데도 나는 금산이라는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계속했다. 친구들과 함께 글을 쓰고 공부했으며 연극, 버스킹, 축제와 같은 문화 행사를 기획하며 삶을 꾸려갔다. 하지만 주변의 여러 청년은 밥벌이 때문에 지역을 떠나야 했다. 지역에서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밥벌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8년 12월, 졸업생 청년들과 간디학교 선생님이 모여 청년문화예술협동조합 들락날락(들락날락협동조합)을 세웠다. 들락날락협동조합을 세우고 처음 맡은 일은 축제 기획이었다. 금빛시장 상인들과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지역 축제 ‘금산월장’을 열었다. 이를 통해 많은 주민을 만나게 됐다. 상인들과 매주 회의를 했고, 축제 참여자들에게 설문해 문제점을 고쳐나갔다. 축제가 매회 진행될수록 우리를 바라보던 지역민의 시선은 불신에서 믿음으로 변해갔다.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며 문화예술 활동을 하며 먹고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역에서의 정주를 상상했다. 우리는 금산 지역민이 되어가고 있었다. 광고 광고 금산은 각종 인프라가 현저히 부족하다. 나와 또래 청년들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머무를 수 있는 공간도 충분치 않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금산 청년들의 아지트가 된 두루미책방이다. 책방에서는 우리가 원하고 지역민이 원하는 프로그램이 열린다. 다수가 원하는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소수가 원하더라도 지역과 우리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청년과 청소년의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광고 서울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이야기, 시와 소설을 읽는 낭독회, 주로 대도시에서 열리는 음악 공연,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과 철학 강의, 여성의 이야기와 여성의 글쓰기, 지역에서 쉼을 얻어 갈 수 있는 북스테이 프로그램 등 사람을 모으고, 그들을 잇고, 엮어내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지역에서 산다고 해서 문화적 욕구가 없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문화예술을 찾아 나선다. 도시에 가서 강연을 듣고 콘서트를 다닌다. 당연히 수도권 사람들보다 더 큰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지역 삶의 지속가능성을 점점 잃게 된다. 그렇기에 작은 지역에서의 문화예술 활동이 중요하며 나와 같은 문화예술가들의 밥벌이 실험은 큰 의미가 된다. 코로나로 잠시 읍 단위 거점이 아닌 면 단위 거점으로 활동을 진행해오다 올해 다시 새로운 실험을 위해 금빛시장에 있는 낡은 건물인 국제회관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을 진행하며 지역에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부딪히는 여러 가치를 받아들이고, 때론 싸우며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역을 상상한다. 이 실험의 끝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계속해서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며 더 다양한 가치들을 지역에 정착시키려 한다. 더 많은 청년이 지역에서의 삶을 실험하고 자신의 욕구를 실현해나갈 기회의 장을 만들어가고 싶다. 우리의 실험은 우리의 삶을 넘어 사회와 지역의 혁명이 될 것이다. 나는 지역에서 혁명을 꿈꾼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rt/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새 이슈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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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거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꿋꿋하게 함께 살자_캠페인즈 이야기 모임’
사회적협동조합 빠띠는 우리가 쾌적하게 살아갈 권리를 꿋꿋하게 지켜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꿋꿋 프로젝트 ‘포기하지마, 집!’을 기획하고 그 피날레로 꿋꿋하데이(DAY)를 진행했어요. 캠페인즈는 ‘꿋꿋하게 함께 살자 프로젝트’와 ‘이야기 모임’으로 참여했는데요. 4월 20일,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3층에서 이야기 모임, 공론장까지 관심 분야에 따라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습니다. 각자의 고민을 짊어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한 것만으로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꿋꿋하게 잘 지내다가 굿굿한 집을 지키기 위해’ 만났던 시간이었달까요.🤭 아쉽게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이야기 모임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전해드릴게요! “주거불평등을 심판하고 주거권에 투표하자!”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에서 활동하는 박효주 팀장은 참여연대 활동 중에서도 주거권과 관련한 부분을 자세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주거 문제가 심화되는 것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라고 지적하며, '총선주거권연대'를 꾸린 배경과 문제의식을 설명했어요. 세계 불평등 연구소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해요. 한국의 경우 소득 수준이 악화되는 것이 극명하게 보이고 있고 특히 반지하 문제, 공공임대 사업 예산 삭감 등 산적한 문제에 더해 전세사기, 깡통전세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도 국가적 조치가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참여연대는 주거권과 관련해 정책요구안 발표, 공약평가, 정책대응, 관련 기고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요. 캠페인즈에서도 참여연대의 캠페인을 자주 만날 수 있지요. 주거 정책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청소년, 이주민 등 주거 지원/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22대 국회 기간에도 참여연대는 정책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주거 불평등이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참여연대의 활동에 관심 가지고 연대해 주세요.😃 “주거 국가책임으로 주거안정 실현하자!”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주원 정책위원은 ‘정당별 주거공약 평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 주었습니다. 발표에 앞서 “민주사회에서 ‘선거’는 ‘선’을 넘는 정치행위이자 ‘국가 미래’의 방향을 국민이 선택하는 이벤트”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의제에 에너지가 집중되었기 때문에 그 외 어떤 의제정책도 관심을 받기 어려웠다고 평가하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각 정당의 주거 정책의 주요 내용과 현실에 비추어 아쉬운 지점을 짚어주어서, 혼자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정당별 정책방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이주원 정책위원은 한국 주거 문제에 대해 “주거를 국가가 책임지는 방안으로 주거안정을 실현”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국가 및 지방정부의 공공주택 공급 의무화, 저비용 주택 공급으로 주거복지를 실현하고, 주거안정과 자산형성을 위한 에셋브릿지를 구축하는 등 여러 방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지자체 주도로 맞춤형 주거 정책이 필요하며 전세자금 사기 피해라는 사회적 재난에 대해서도 국가 차원의 더 적극적인 대응, 피해자 차원에서 더 효율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전했습니다.💪 “주거취약계층의 주거권, 함께 해결하자!” 사단법인 나눔과미래 전효래 사무국장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주거권’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기본권이지만, 취약계층의 주거권은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고시원, 반지하, 쪽방, 노숙인 시설, 컨테이너 등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을 ‘비적정주택’이라고 해요. 국토교통부의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 실태 조사’ 결과, 2022년 기준 전국에  44만 3,126가구의 비적정주택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최근 5년간 7만 3,625가구 증가한 수치인데요.😤 현금 지원의 경우 현재는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정부에서 주거 급여를 지원하는데, 상한선을 두고 지급하다 보니 쪽방이나 고시원의 임대료도 이에 맞춰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금이 민간 임대업자의 배를 불리는 방향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죠. 전효래 사무국장은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주거급여 현실화, 공공임대주택 공급 물량 확보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어요. 지역사회의 정치학을 안정화하는 것 등 다각적이고 통합적으로 주거권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했습니다. 특히,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대’이며 주거 정책이 취약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입자 권리를 보장하는 집을 꿈꾸자!” 민달팽이유니온 소속으로 세입자의 권리 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가원 활동가는 비혼 여성의 부동산 경험을 인터뷰했던 이야기로 발제를 시작했습니다. 집에 하자가 있어도 전혀 보수를 하지 않는 집주인 때문에 고생했던 사례가 많았다고 하네요. 청년들이 겪는 대표적인 주거 문제는 주거비인데, 비싸다는 것에 더해 빚을 져야만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청년세대의 문제는 쉽게 키워드로 패싱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끌세대’라는 말이 화제가 되며 젊은 세대의 주택소유가 많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30대의 주택소유자는 최근 크게 감소하는 등 현실과 인식의 괴리가 있죠. 청년주거를 지원하는 정책이지만 사실상 청년에게 빚을 지게끔 유도하는 ‘정책의 역진성’에 대해서도 설명했어요. 과도한 대출은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 보증금을 중간에서 보증해줄 수 있는 기관의 존재, 열악한 환경의 집을 임대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끝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가 아닐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언제든지 민달팽이유니온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함께 살기 위한 분투!” 전세사기 피해자 전국대책위 이철빈 공동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로서 1년 동안 분투하다보니 요즘은 본업보다 대책위 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엄격한 피해자 인정 요건에도 불구하고 1만 5천명이 넘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집계되었습니다. 이중 70% 이상이 청년층이므로, 앞으로 얼마나 피해자들이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전세사기 피해로 어려움을 겪다가 세상을 떠난 삶들도 7명 정도이나, 알려지지 않은 사례들도 있을 것이라고 해요.  피해자들이 대책위를 꾸려 직접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는 정부의 대책이 너무도 미흡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되었는데, 국가기관의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전세사기 피해 소식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정치권에서 관련 법안을 내놓긴 했지만, 급하게 진행하다보니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않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희생자들의 합동 추모제 이후 구성된 대책위는 특별법 제정까지 43일간 38건 이상의 활동 진행했습니다. 이철빈님은 현재 시행되는 특별법은 피해자 인정 기준도 너무나 까다롭고 구제 정책도 ‘빚에 빚을 얹는’ 방향이기 때문에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법안심사소위 개최에 앞서 대책귀는 삭발식까지 진행했다고…😢 보증금 회수 방안과 주택 자체의 하자에 대해 구제받을 수 있는 방안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고, 국회 본회의에 회부되어 안건 지정을 목전에 둔 상황이라고 해요.  이철빈 공동위원장은은 끝으로 '주거 사다리'라는 환상을 벗어나 현실적으로 주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논의가 범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함께 고민하니까, 조금은 덜 두려워요 혼자서는 집 구하는 것도, 주거 정책을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죠. 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도 함께 하니까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발제가 끝난 뒤에는 참여자들이 소감을 나누고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주거권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의견과 “앞으로 더 관심가지고 공부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한 명의 영웅이 나타나서 해결할 수 없으니 더 많은 개인이 모여서 힘을 합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는 참여자분의 말씀에 현장에 있던 여러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부동산이라는 주제가 아무래도 쉽지 않고 복잡하다보니,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기 힘든 분야”라는 것을 고려하면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세입자로 살아가는 데에 느끼는 불안감과 피로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공감했습니다. “우리가 주거 문제에서 해방이 될 수 있을까? 해방이 어렵다면 주거 관련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나누어 주신 참여자분도 있었는데요. 주거 문제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단체나 기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주거권을 당연히 누려야하는 권리로 만들어 가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 “탁상공론에 머물러 있는 주거 정책에 실질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누었습니다. “왜곡된 주거/금융 지원 정책”에 대해 “대출금 지원이 집값을 떠받치고, 세입자는 본적도 없는 돈을 빚져서 살 곳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체감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건축법에 위반되는 주택, 공간을 쪼개서 만든 매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이철빈 공동위원장이 답변했는데요. 현행법상 불법 건축물 자체는 불법이지만 그 주택으로 임대차 계약을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불법 주택으로 수익을 올리는 임대인들에게 패널티를 부과하거나 계약을 원천 차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어요. 실제 전세사기 피해자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이 분들의 문제를 양지화해서 도움을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눠준 발제자들은 공통적으로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입법 등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자 목소리를 보태달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나눈 개선방안과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국가도 있”고, “시간이 걸리지만 분명 변화하고 있다”고 말이죠.  “활동가들은 주거불안에 대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정책과 활동에 반영하려고 노력한다”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공론장에서 많이 발언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뿔뿔이 흩어진 개인은 정보와 시간에 한계가 있지만, 함께하면 보다 꿋꿋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꿋꿋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더 많은 활동은 함께 살자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진행될 꿋꿋 프로젝트는 디지털 시민광장 캠페인즈에서 글과 활동을 확인하실 수 있고, 모임은 디지털 시민 멤버십 시티즌패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주거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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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자본주의가 환경 파괴를 가리는 꼼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자본주의 폐해를 지적 토마스 모어(Thomas More)는 15~16세기 영국의 정치인이다. 그의 저작 ⟪유토피아(Utopia)⟫는 현대의 기본소득, 공유경제, 6시간 노동의 원형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유토피아는 그 모든 게 이루어지고 있는 섬이다. 책은 라파엘이라는 인물로 ‘유토피아'를 설명한다. 라파엘은 유토피아에 머물다 섬 밖 사람들에게 유토피아를 알리고 싶어 섬을 나온 인물이다. 유토피아를 묘사한 그림에서도 유토피아를 설명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설명에 따르면, 유토피아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정반대 삶을 산다.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소유하고, 심지어 기존 것을 버리는 것과 반대로, 유토피아는 생산을 줄이고, 공유하고, 수리하며 오래 사용한다. 단편적으로 유토피아 사람들은 집을 후대에 물려주고, 후손들은 집을 수리해 수명을 최대한 연장한다.1) 6시간 노동도 여기서 나온다. 신규 생산에 시간을 쓰지 않고, 필요한 것만 수리하면 되기에 6시간 노동만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 사치가 아닌, 필요를 위한 노동만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6시간도 “안락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초과 생산”1) 하는 시간이다. 반면, 라파엘이 방문한 산업화된 영국은 전혀 달랐다. 사치품 생산에 과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었고, 생산 수단을 소수가 독점해 부의 분배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자본주의의 폐해였다. 라파엘은 “건강한 사회의 필수적 조건이 재산의 균등한 분배임이 명백하나, 자본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며, 각자의 능력에 따라 차지할 수 있다면, 이는 그러한 자산이 아무리 많다 해도 반드시 소수의 수중에 들어가며, 그렇지 못한 다수는 가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1)고 말했다. 또한,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것은 이 비참한 빈곤에 따르는 가장 부조리하고 사치스러운 취미이며, 하인, 직공, 심지어 농업 노동자까지도 사실상 모든 사회 계급이 옷과 음식을 무모하게 낭비하고 있다.”1)라고 지적한다. 부의 분배가 없고, 재산에 상관없이 필요 없는 물건의 생산과 소비를 추종하는 게 토마스 모어가 본 자본주의의 일상이었다. 한편,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생존을 위해 도둑이 되기도 했다. 기본소득 개념이 나온 대목이다. “도둑에게 사형 대신 생계 수단을 지급해야 한다” 기본소득의 원형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최소한의 생계 보장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기본소득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라파엘이 도둑질로 사형당한 사람 20명을 본 뒤, 함께 있던 신부에게 한 말에서 나온다. “도둑을 사형으로 다루는 건 공정하지도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처벌로는 너무 가혹하고 억제책으로는 매우 비효과적입니다.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훔치는 거라면, 아무리 엄벌을 가해도 절도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가공할 처벌 대신, 모든 사람에게 생계 수단을 마련해 주어, 아무도 처음에 도둑이 되고, 다음에 시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1) 사형당한 도둑들은 농장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해도 물건을 살 정도의 급여를 받지 못했다. 필수품을 살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의 결과가 도둑질이었다. 살고자 하는 본능과 생존욕, 도둑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토마스 모어는 생존을 위한 수단 제공이 사회문제를 막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현대 기본소득의 원형이다. 발전된 기본소득, 일자리 소멸의 대안 토마스 모어가 제시한 개념은 시간이 지나며 발전했다. 발전사가 다채로워 일일이 언급하기 어렵다. 현대에는 AI, 로봇,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와 소득원 소멸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논의됐으며, 대표적으로 김종인, 이재명, 조정훈 등 전현직 국회의원이 다뤘다. 기본소득의 불을 지핀 건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었다. 그 대국으로 인간이 더이상 AI를 이길 수 없다는 게 증명됐다. 그전까지 바둑은 AI가 인간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여겨지던 영역이었다. 그의 역투가 안타까워 보인 이유다. 인류 최강의 쎈돌인 그의 흑돌과 백돌은, 알파고가 그려 놓은 기보를 따라 그릴 뿐이었다. 알파고는 이세돌이 만든 집을 무너트렸고, 쎈돌은 그렇게 부서졌다. 그의 돌은 알파고를 딱 한 번밖에 무너트리지 못했다. 대국 후, 이세돌은 “알파고가 이렇게 완벽하게 둘 줄 몰랐다"고 인정했다. 알파고의 아버지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CEO)도 “알파고가 이렇게 창의적일지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국내 프로 바둑 기사들도 알파고의 착수를 창의롭다고 인정했다. 이세돌의 패배가 충격적이었던 건 AI는 절대 인간을 바둑에서 이길 수 없다는 신념과 아름다운 기보가 창의적인 예술이라는 신념이 깨졌기 때문이었다. 실제 대국의 기보를 예술로 보기도 한다. 이세돌도 “바둑은 예술이었지만, 알파고 등장으로 더이상 그렇지 않게 됐다"며 돌을 놓았다. 이후, 문학상 받는 AI와 영상 제작 AI가 등장했고, 인간의 영역을 위협하고 있다. 생성형 AI와 로봇의 효율성과 효과성은 인간과 차원이 다르다. AI와 로봇은 잠을 자지 않고, 에너지 공급만 있다면 끊임없이 생산할 수 있다. 반면, 생산성에서 크게 뒤처지는 인간은 생산 노동에 참여해 소득을 창출할 기반이 없어져 소득이 없게 된다. 프랑스 경제학자 故 앙드레 고르츠는 책, ⟪경제이성비판⟫에서 “한 사회의 생산력은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더 적은 노동으로도 같은 양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어 노동의 양으로 임금이 결정되면 (임금이 점점 적어져) 사회구성원들이 삶을 지탱할 수 없다”며 그 대안으로 사회의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지만, 미국에서는 경제계에서 언급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오픈 AI의 샘 알트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등이다. 물론 주장과 언급은 다르지만, 경제계에서 나온다는 것도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또 그렇기에 더 중요한 논의를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을 말하는 경제인들 모든 경제인의 주장을 다룰 수 없기에, 오픈 AI의 CEO ‘샘 알트먼'의 행적만 보려고 한다. 샘 알트먼은 “로봇 등 첨단 기술이 기존 직업을 빠르게 대체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기본소득이 사람들에게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자유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오픈 AI 부임 전인 2018년, 사재 111억을 들여 설립한 비영리 조직 YC 리서치 랩에서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실험을 진행했었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시에서 100가구를 선정해 6개월에서 1년 동안 매달 1,000~2,000달러의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이는 당시 오클랜드시 최저임금으로 하루에 8시간, 20일 일한 수준이었다. AI와 로봇의 발전으로 기존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될 것이고, 그로 인해 인간이 자유시간을 더욱 누릴 것이라는 주장은 일말 타당해 보이고, 심지어 좋아 보인다.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기본소득의 원칙과 재원 기본소득의 원칙은 이렇다. ①현금으로 지급한다. ②개인에게 지급한다. ③보편적으로 지급한다. ④구직 노력 등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지급한다. ⑤정기적으로 지급한다.2) 원칙에 따라 현금을 조건 없이 모두에게 지급해야 하기에 막대한 현금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모든 재정의 원천은 세금이다. 만약 AI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한다면 인간은 더 이상 세금을 낼 수 없게 된다. 기본소득 도입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소득원이 없는데 세금을 어떻게 내고, 세금이 안 걷히는데 어떻게 기본소득을 주냐는 것이다. 샘 알트먼, 국가적 펀드와 토지세 주장 샘 알트먼은 국가형 펀드와 토지세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가형 펀드는 미국 내 기업에게 매년 시가 총액의 2.5%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토지세는 토지를 보유한 개인과 기업에게 2.5%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걸 재원으로 국가형 펀드를 만들고, 만 18세 이상 국민들이 배당금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한 2021년 당시, 미국 기업의 시가 총액은 50조 달러였다. 샘 알트먼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10년 내 2배로 증가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렇게 되면 10년 뒤 미국 내 기업 가치는 160조 달러에 달하고, 2.5%의 세금을 걷으면 만 18세 이상 미국 성인 2억 5,000만 명에게 1만 3,500달러를 지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샘 알트먼의 주장은 배당 당사자를 만 18세 이상 성인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지급한다는 기본소득 원칙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의 분배 측면에서 하나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빌 게이츠, 로봇세 주장. 기본소득은 시기상조 빌 게이츠는 기본소득 자체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서 자신에게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페이지에, 한 유저가 “기본소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묻자 “훗날 국가들이 기본소득을 할 정도로 충분히 부유해질 수 있지만, 아직은 노인과 아동 교육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며 시기상조 임을 밝혔다. 반면, 그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미래에는 로봇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Quartz와의 인터뷰에서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한다면, 로봇을 사용하는 사용자에게 인간에게 부과한 만큼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일각에서는 빌 게이츠의 로봇세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원재, 데이터 기업으로부터 재원 마련 이원재의 주장도 생각해 볼만하다. 그는 데이터 기업에게 세금을 거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타와 구글 등 데이터 기업이 사용자가 만들어 주는 데이터를 통해 수익 활동을 벌이지만, 정작 생산자인 소비자에게는 이익이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데이터 기업의 고용이 낮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2) 그는 "데이터는 사용자의 노동 결과이므로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라며 “만약 데이터가 이익으로 전환됐다면 그 부를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며, 이것이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본소득제 논의에서 데이터 경제가 그 재원으로 논의되는 이유”라고 말한다.2) 또한, AI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인 개인의 생계 수단 확보 문제가 해결되면, AI가 그리는 사회 비전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2)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2017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우리는 기본소득 같은 아이디어를 모색해야 하며, 이는 모든 사람이 새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안전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 저커버그가 이원재의 주장대로 세금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AI 발전에 있어서 일자리 위협과 소득원 상실 문제가 사라진다면 AI 발전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렇게 보면 AI 분야 리더들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게 납득이 간다. 기본소득은 AI 발전 위험을 줄여주는 완충제이자, AI 발전을 더욱 가속화 할 발판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같은 주장을 두 팔 벌려 환영해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게 감춰둔 게 무엇인지 봐야 한다. 기본소득 주장에서 언급되지 않은 게 있다. 그건 바로 생산과 소비다. 생산과 소비에 문제는 기후위기 상황 속에서 기본소득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논의해야 할 주제다. 환경이 없다면, 기본소득이 말하는 자유 따윈 존재할 수 없다. 이 차원에서 기본소득은 생산을 유지하려는 도구일 뿐이다. 생산과 소비는 멈추지 않아야 한다 AI와 로봇은 생산의 혁신이다. 전에 없던 생산성을 보인다. 생산은 그간 인간의 영역이었다. 인간은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했고,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AI와 로봇 혁신은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치 않게 만들고, 그로인해 금전적 보상의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이다. 생산성이 아무리 높아져도, 소비가 없으면 공급과잉과 공황으로 번진다. 소비 없는 생산은 의미가 없다. 이는 경제가 멈추는 것을 의미하고, 자본주의 자체가 멈추는 걸 의미한다. 때문에 자본의 논리는 언제나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추구하고, 어느 하나가 멈추면 억지로라도 돌아가게 만든다. 자본시장에서 기본소득을 말하는 이유도, 생산을 뒷받침 할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서다. 생산과 소비를 움직일 윤활유 역할이다. AI와 로봇의 생산을 지속하기 위한 소비 재원일 뿐이다. 문제는 AI와 로봇이 만들어 낼 생산성 혁신과 경제 성장을 지구가 견딜 수 있느냐이다. 2022년, 생산과 소비에 지구 1.71개 사용 길지만 짧게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생태수용력(biocapacity)과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을 알아야 한다. 이는 현재 생활 방식 유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지구가 필요한지를 알게 해준다. 생태발자국이란, 인간이 소비하는 모든 자원을 생산하고, 폐기물을 흡수하는데 필요한 토지, 물 등 생태계의 면적을 측정한 값이다. 인간의 모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생태 면적을 계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흡수, 식량 재배, 어장, 방목장, 임산물, 건축 기반 시설 수용 등에 필요한 생태학적 공간을 모두 계산한다. 그리고 글로벌 헥타르(global hectares, 이하 gha)로 나타낸다. 생태수용력이란, 인간이 지구상에서 요구하는 것을 다시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용량이다. 현재 기술과 관리 관행을 고려해, 인구가 소비하는 자원을 제공하고 폐기물을 흡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생물학적으로 생산적인 육지와 바다의 양의 측정 값이다. 이역시 글로벌 헥타르(gha)로 나타낸다. 만약 생태발자국 값이 생태수용력 값보다 작다면, 이는 우리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생산과 소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그 값이 클 경우 우리는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생산하고 소비한다는 의미다. 위 지도는 각 나라별 <생태수용력-생태발자국> 값을 나타낸 것이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곳은 해당 나라의 생태수용력을 초과한 생산과 소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녹색은 생태수용력이 감당할 수준으로 생산과 소비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 값이 -를 기록하면, '생태적자'라고 한다. 붉은색 국가는 모두 생태적자국이다. 대부분의 선진국과 중국, 인도 등 인구가 많은 국가들이 생태수용력을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다. 참고로, 중동과 사하라 사막 부근에 위치한 나라가 붉은색으로 표시된 것은 그 나라 생산과 소비의 영향도 있지만, 애초 생태수용력(숲, 강 등)이 낮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전 세계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몇 개의 지구가 필요한지를 나타낸 것이다. 2022년 기준, 이미 1.71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생태적자는 1970년부터 시작됐다. 문제는 AI와 로봇은 이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그래프를 칠하기 위해 더 붉은 물감이 더 많이 필요해 질 것이다. 참고로 2022년 기준, 전 세계 사람들이 미국인 처럼 살려면 약 7.5개의 지구가 필요하고, 우리나라처럼 살려면 5.8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생산의 유토피아,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1932년 책,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발표했다. 책은 포드 자동차가 출시된 해인 1908년을 새로운 기원으로 삼은 미래를 그린다. 포드 자동차 창립자 ‘헨리 포드'는 생산 혁신을 이룬 인물로, 1918년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해, 자동차 한 대 생산 시간을 750분에서 93분으로 줄였다. 멋진 신세계는 포드주의를 채택한 영국을 배경으로, 더 빠르고 많은 생산을 추종한다. 심지어 인간마저 컨베이어 벨트에서 ‘생산'한다. 책에서는 34층이 저층으로 묘사되고, 난자 하나에 인간 한 명이 태어나는 게 아니라, 난자가 스스로 8개에서 96개까지 싹을 틔워 인간을 생산한다.4) 책은 그런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식 유토피아다. 물론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미래가 ⟪멋진 신세계⟫처럼 될리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책 초반부 내용이 거북하고, 잘 상상가지 않아 덮기도 했다. 소설이라도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책은 자본주의가 생산을 어디까지 중요시 여기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과연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인지,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멋진 신세계가 묘사하는 모습이 ‘혁신'이라면 나는 혁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AI와 로봇이 감당 못할 수준의 생산을 이뤄낸다면, 나는 엑셀을 밟기보다 기본소득을 주지 않음으로써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의 환경파괴를 가리는 꼼수일 뿐, 진짜 논의해야 할 건 따로 있다. 토마스 모어는 기본소득의 원 개념을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며 언급했다. 자본주의에서 불평등과 생존 위협이 발생하기 때문에 생계 수단을 마련해 줘서 문제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가 사치품을 생산하고, 사치품 생산과 소비에 과하게 집중하기에 자신을 위한 시간이 줄고, 환경도 파괴된다고 말했다. 이는 곧 생산과 소비의 추종이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경제 전체의 주요 목표는 사회의 필요가 허용하는 한, 각자를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켜 많은 자유 시간을 갖도록 하는 데 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각자는 각자의 마음을 계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1) 기본소득이 말하는 자유는 자본주의 하의 생산과 소비 이념을 넘어설 때 가능하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AI 발전으로 사람들이 노동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얻고,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AI가 편리한 세상을 만들지도 모른다. 노동시간이 줄지도 모른다. Chat GPT 등장만으로 업무 효율성이 좋아졌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결국은 더 많은 무언가를 생산하는 걸로 연결될 뿐이다. 그것이 끝나고서야 우리는 내 시간을 가질 뿐이다. 그마저도 외부에 무엇이 있나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속에 무엇이 올라왔나’를 보는 것으로 소비된다. 혁신으로 시간을 얻고 그 시간을 더 많은 영상 시청과 제작, 더 빠른 인터넷, 더 편리한 자료 서치에 사용할 뿐이라면, 그게 진짜 자유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유튜브 영상을 더 많이, 더 생동감 있게 보고, 더 생동감 있게 게임하고, 더 빨리 자료를 찾는 게 자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필요를 위한 생산과 소비는 분명히 필요하다. 자연이 허용하는 만큼의 자연스러운 성장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생산과 소비는 자연의 허용치를 넘었고, 자연을 고갈시키며 용량을 더욱 줄이고 있다. 경제계가 말하는 기본소득이 도입된다 한들, 그때는 깨끗한 공기를 마실 자유와 산과 바다 등 자연을 누릴 자유를 박탈 당한 뒤일 것이다. 때문에 생산과 소비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본소득은 나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건 기본소득 도입과 재원 마련 방안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 시스템에 기반한 성장의 추종을 언제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어떻게 필요를 위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 것인지, 필요(needs)와 욕구(desire)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생산과 소비를 멈췄을 때 피해를 받을 사람들의 피해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자연을 회복시키는 도구로 쓸 수는 없을지 등을 고민하며, 생산과 소비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해야 한다. 토마스 모어가 말한 자유는 사치로운 생활과 이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과 소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다. 기본소득의 원형이 말하는 자유가 이것이라면, 현대의 논의 역시 생산과 소비에 얽매이지 않는 삶과 방식, 시스템을 논의해야 한다. ※ 참고 자료 1) ⟪유토피아⟫ (토마스 모어/ 범우사/ 2000) p.36~37, 44, 77~78, 96~101 2) ⟪소득의 미래⟫ (이원재/ 어크로스/ 2019) p.337, 340~341, 349~351, 369 3) ⟪성장 없는 번영⟫ (팀 잭슨/ 착한책가게/ 2015) p.30 4)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러/ 문예출판사/ 2018) p.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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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정] 벌목으로 인한 탄소흡수원 감소를 기업의 탄소배출량 보고에 반영할 수 있는가?
나의 문제의식의 시작은 2016년 제주 제2공항 건설과 비자림도로 확포장 공사부터 시작되었다. 2016년 당시 대한민국은 어느 곳에서도 기후변화가 체감되는 해였다. 1년 중 어느 달의 기온도 평년 기온보다 낮은 달이 없었고, 1월 한파와 폭설 이후엔 이상 고온과 이상 저온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5월의 서울은 아열대 기후에서나 볼 법한 폭염이 찾아왔고, 위도가 한참 아래인 홍콩보다도 더워졌다. 환경에 큰 관심이 없던 시민도 일상에서 체감되는 날씨에 의문을 가지고 날씨 뉴스를 보는 해였다. 기후로부터 체감하는 위기를 시민들이 느끼고, 정부도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탄소흡수원을 확충하여 온실가스 저감을 목적으로 하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2010년 4월부터 첫 시행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몇 안 되는 탄소흡수원인 숲을 공항 건설을 위해 벌목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이러니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나무가 생장, 물질대사, 토지이용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고 포집하기 때문에, 벌목하고 땅을 개발하는 것은 잠재된 탄소흡수원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무의 탄소흡수는 적어도 삼십년 이상 초등교육에서 다뤄진 일반 상식이기 때문이다. 벌목의 목적과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벌목의 목적을 ‘산림 경영을 위한 벌기령 벌목’과 ’토지이용 전환을 위한 벌목‘ 두 가지로 나눠보았다. 산림 경영을 위한 벌기령 벌목 벌기령 단축에 따라 산림 이산화탄소 흡수량 증가한다는 논문이 있다. 나무의 생장으로 인한 탄소 포집을 증가하기 위해 벌기령을 계획하지만, 오래된 나무의 탄소흡수력에 대한 연구는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으며, 서로 반박하는 연구가 상당 수 발표되어 추가로 연구가 필요하다. 잎과 수관 규모에서의 생산성에 대한 이해가 발전했음에도 개별 나무 규모에서의 생산성의 본질에 대한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나무의 크기와 수령이 증가함에 따라 절대적인 나무 질량 성장률(즉, 탄소 축적)이 감소하는지,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또는 증가하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경험적 평가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403종의 열대 및 온대 나무 종에 대한 전 세계 분석을 통해 대부분의 종에서 나무 크기에 따라 질량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잎 수준 및 수관 수준의 생산성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크기가 커질수록 개별 나무의 성장이 증가하는 명백한 역설은 각각 잎 면적 단위당 생산성 감소를 능가하는 나무의 총 잎 면적의 증가와 다른 요인 중에서도 연령과 관련된 개체 밀도 감소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N.L. Stephenson, 나무 크기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나무 탄소축적률, Nature 507(2014)) 토지이용 전환을 위한 벌목 우리나라 제도에서 환경영향평가를 시행하고 있으며, 탄소배출량 관리를 위해 사업장에서 탄소배출량을 산정하고 있다. 제주도의 비자림 벌목으로 인한 도로 확장의 경우 도로로 토지를 전환하기 때문에 나무와 토지의 탄소흡수량이 저감되며 도로이동오염원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발생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도로 확포장을 위한 비자림 벌목 시에는 생태계의 영향을 평가하는 환경영향평가가 시행되었으나 토지이용 전환과 벌목으로 향후 탄소흡수량이 감소될 것에 대한 고려는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러한 토지이용 전환 및 벌목으로 탄소흡수 잠재량이 감소가 예상될 경우 탄소배출량 보고에 반영되어 배출량 산정의 엄밀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구 방향 탄소배출량 산정 시 토지이용 전환 및 벌목은 LULUCF 분야로 구분되는데, 이 분야는 배출량 산정 분야 중 유일하게 흡수량이 배출량을 초과하는 분야이다. 탄소배출량 보고 시 배출량을 산정하기 위해 3가지 scope으로 분류하여 산정하는 방식이 있다. 스코프 1 : 회사가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자원에서 직접 배출되는 온실가스 스코프 2: 기억이 구입하거나 다른 경로를 통해 경계 안으로 들어와 소비한 전기와 열에 의한 온실가스 간접 배출 스코프3: 기업의 경영활동의 결과이지만, 기업이 소유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시설이나 활동으로부터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 토지이용 및 벌목으로 인한 기업의 탄소배출량은 scope1,2,3 중 어떤 분야로 구분하는 것이 적합할까? 잘린 나무는 기업의 관리 자원이 아니다. 토지 전용과 벌목으로 인해 탄소흡수량이 감축되는 것은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배출량이 아니며, 발생하지 않은 일을 예상한 전망이다.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였을 때 scope3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한계 벌기령 단축을 통한 탄소흡수량 증가한다는 가설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탄소흡수 감소 전망량 산정 시에도 나무에 대한 제한된 경험으로 인한 산정방법의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탄소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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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끝, 국정쇄신 시작?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참패 수습에 나서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인사들을 교체하고, 취임 후 처음으로 이재명 대표에게 회담을 제안했는데요. 참모들에겐 소통을 강조하는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계와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합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총선 후 윤 대통령의 행보와, 앞으로 놓인 과제를 정리해봤습니다. 지난 2년 간의 윤석열 대통령 주요 행보·논란 ✅ 정책 추진에 난항 : 유치원·어린이집 통합(유보통합), 주64시간제, 의대 증원 확대 등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반대 여론이 커지면서 정책 유보 ✅ 여소야대 국회에서 9차례의 거부권 행사 : 양곡관리법을 시작으로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3, 김건희·대장동 특검법, 이태원참사특별법 등 야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법안 거부 ✅ 인사 논란 : 18명의 장관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없이 임명 강행, 그중 일부가 중도 낙마 ✅ 각종 참사에 관한 대응 논란 :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채상병 사망 사건 개입 의혹, 이종섭 전 국방장관 호주 대사 임명 ✅ 배우자 비리 논란 : 김건희 여사의 주가 조작 의혹,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한 침묵 ✅ 협치·소통에 관한 비판 : 취임 후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 거부,  취임 100일 기자회견 후 기자회견 중단, MBC 압수수색 및 MBC·KBS 인사 교체 총선 이후 어떻게 하고 있어?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 10명 중 1명은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었습니다. 윤 대통령(33.5도)에 대한 유권자들의 ‘감정 온도’(호감도) 역시 이재명 대표(43.1도), 조국 대표(41.7도), 이준석 대표(39.0도)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이번 총선이 윤 대통령에 대한 심판 성격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큽니다. 특히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이 불만을 표출합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윤 대통령이 여러 일로 지지층을 축소했다며 비판했고, 한동훈 전 국힘 비대위장도 윤 대통령의 오찬 제안을 거절하며 거리를 뒀습니다. 국민의힘과 보수 언론은 윤 대통령의 ‘불통’ 리더십을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50분’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60분 회의 중 50분 동안 혼자 말한다는 비판입니다. 이처럼 일방적인 국정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1️⃣ ‘비공개’ 사과 윤 대통령은 총선 이후 6일 만에 국무회의에서 직접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고 말했습니다. 물가 관리, 부동산 정상화 등의 정책 성과를 강조하고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출국, 김건희 여사 논란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정책 성과만 강조한 발언에 비판이 일자, 대통령실 관계자가 대통령이 비공개 회의에서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추가로 전했습니다. 지난 1일 의대 증원 대국민 담화와 비슷한 소통 오류가 반복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의 담화가 의대 증원 갈등의 해법 대신 증원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치중됐다고 비판받자, 성태윤 정책실장이 추가 설명에 나섰습니다. 2️⃣ 인사 교체 총선 이후 한덕수 총리와 이관섭 비서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 주요 인사들이 사의를 표했고, 윤 대통령이 수용했습니다. 그간 정부의 인사 논란이 많았던 만큼 새로운 인사 발탁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릅니다. 17일 TV조선과 YTN은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민주당 의원이, 비서실장으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두 명 모두 문재인 정부의 핵심 인사였던 만큼, 여당과 야당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인사 검토가 대통령실의 공식 라인이 아닌 비선 실세로부터 흘러나왔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여론을 떠보는 ‘아니면 말고’식 간보기 행태라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논란 끝에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홍철호 전 의원이 선정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직접 출입 기자단 앞에 나서 신임 인사들을 소개하고, 1년 5개월 만에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정 운영에서 소통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 다만 야당은 정진석 비서실장의 과거 막말 논란을 언급하며 협치에 부적절한 인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는 뭐야? 총선 후 윤 대통령의 입장 발표에서 야당과의 대화에 대한 메시지가 빠졌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이후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에게 첫 회담을 제안했고, 이재명 대표가 화답했습니다. 남은 3년간 지속될 여소야대 형국에서 야당의 협조 없이 국정을 운영하기 힘든 현실을 고려한 행보로 보입니다. 하지만 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은 벌써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내세우는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 지원금’을 두고 충돌이 있습니다. 이 대표는 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예산 편성이 회담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정부는 현금 지원과 추경에 부정적입니다. 일전에 윤 대통령은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은 나라를 망치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채상병 특검법과 전세사기 특별법도 회담에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민주당은 다음 달 채상병 특검법을 처리할 계획입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두고는 민주당 내에서도 입장이 갈립니다. 일부는 당장의 대화에선 조심스럽다고 말합니다. 23일 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회동이 열렸으나, 아직 의제와 일정을 합의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윤 대통령은 의제를 민생으로 좁히고, 만나서 소통 물꼬를 트는 데 의미를 두자는 기조입니다. 반면 민주당은 구체적인 의제와 국정 전반을 논의하자는 입장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그간의 국정 운영에 대한 사과와 거부권 행사 자제도 요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통령실은 불쾌한 기류를 내비쳤습니다. 민주당이 제시하는 의제에 윤 대통령이 얼마나 화답할지가 관건입니다. 채상병 특검법 통과 임박? 채상병 특검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통화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통령실 개입 정황이 한층 뚜렷해졌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5월 2일 본회의에 특검법을 처리할 계획입니다. 국민의힘은 특검 후보자를 야당이 추천하도록 한 조항이 부당하다며 특검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확률이 높지만, 국민의힘에서 8명이 찬성하면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이 가능합니다. 이미 안철수, 조경태 의원 등이 찬성 입장입니다. 개혁신당에서도 국민의힘이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 한 발짝 물러선 정부 정부가 올해 의대 입시 인원은 대학별 자율로 허용하고, 이후의 증원 규모는 재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초 정부가 발표했던 의사 증원 장기 계획(5년간 1만명 증원)도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단, 의료계의 ‘과학적이고 통일된 증원안’ 제시를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전공의 단체와 의협은 증원 전면 백지화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의대 교수들은 오늘부터 차례로 사직에 들어갑니다. 다음 주부터는 주 1회 중증, 응급을 제외한 모든 진료를 중단할 계획입니다. 국민의힘의 미래 국민의힘 낙선자 모임에서 총선 패배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수도권 후보들은 ‘야당 심판’ 전략을 지적하며, 전통적 지지층인 영남과 노년층만 바라봐선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통적 지지층이 1년에 30만씩 돌아가시고 계신다. 5년 뒤 150만 명이 돌아가신다.”라는 과격한 발언도 나왔습니다. 국민의힘 지지층이 인구학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참여자들은 3040을 공략하는 정책 없이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장덕진 교수(서울대 사회학과)는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되는 ‘연령 효과’와 젊은 시절의 경험이 정치 성향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코호트 효과’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학생운동 경험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6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보수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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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일자리 위협에 대응할 비장의 한 수
생성형AI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일자리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AI전문가 조코딩은 인터뷰에서 ‘AI가 인간의 분야를 하나 하나 점령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국제통화기금(IMF)는 2024년 1월 14일 ‘인공지능과 일의 미래’보고서에서 AI가 전세계적으로 사람의 일자리의 40%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전문가와 기관은, 구체적 수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죠. 사람들의 기술 실업이 대규모고 일어날 것을 막기 위해 장기적으로 기본소득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겠죠. 하지만 기본소득은 정책 특성상 추가적인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반대하는 사람이 많은 쟁점적인 제도로 도입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는 AI로 인한 일자리 문제에 대응할 현실적인 방법으로 ‘주 4일제’, 혹은 더 나아가면 빌 게이츠의 발언처럼 ‘주3일제’등 법정 노동 시간의 단축을 제안합니다. AI는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닌, ‘일’을 더 해주는 도구다. AI와 일자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AI가 일을 많이 해준다 →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이 드는 이유는, AI가 기업이 해야 할 일을 줄여주면 남은 일이 줄어들어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줄어들고,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줄어들면 기업에 필요한 인간이 줄어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래의 근로 환경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AI로 인해 해야 할 일이 줄어들었는데, 사람을 전부 그대로 고용하는 기업은 비합리적이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사람을 해고하는 것은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사회 전방위에서 해고가 이뤄진다면 노동자들의 저항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기업 입장에서 근로자들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근로자들의 총 근로 시간을 낮추는 겁니다. 간단한 식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기업이 목표로 하는 일의 양이 400이라고 가정했을 때, 기존의 경우 아래와 같습니다. 사람 10명 X 주5일 X 8만큼의 일 = 400 와 같은 형태로 기업이 운영됩니다. 여기에서 기입이 목표로 하는 일의 양이 400이고 AI가 80만큼의 일을 대신한다고 가정한 뒤 주5일제에 하는 일의 양이 그대로일 때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람 8명 X 주5일 X 8만큼의 일 = 320) + (AI가 하는 일 80) = 400 즉, 2명 만큼의 실업이 발생합니다. 위 상황에서 실업이 발생하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1) AI가 할 수 없는 일이 증가하여, 사람이 할 일이 늘어나면 됩니다. 위에서는 AI가 할 수 없는 일이 80 증가하면 되겠죠. 하지만 AI가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흐름을 볼 때 일반적으로 발생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2) 사람이 일하는 날짜나 시간을 줄입니다. 똑같이 식으로 나타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사람 10명 X 주4일 X 8만큼의 일 = 320) + (AI가 하는 일 80) = 400또는(사람 10명 X 주5일 X 6.4만큼의 일 = 320) + (AI가 하는 일 80) = 400 이렇게 하면, 사람을 해고하지 않아도 됩니다. AI가 하는 일이 늘어난다면, 이에 맞추어 노동 일수를 주3일제로 줄이거나, 날마다 법정노동시간을 줄이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도 주4일제를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것보다 AI를 써서 더 적은 돈을 쓰고 사람을 해고하는 게 더 이익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주4일제 등의 노동 시간 단축을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지 않으면 제대로 실행되기 어렵습니다. 또한, 근로 시간을 단축시키는건 어디까지나 기술실업을 ‘지연’시키는 것이지, 고용을 늘리는 방법은 아닙니다. 기술 발전에 맞추어 진행해야 할, 고용 증가를 위한 정책은 따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위에 작성한 내용의 경우, AI의 도입 비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즉, 기업이 AI를 도입함에 따라 드는 비용을 충당하려면 사람의 월급에서 깎거나 근로 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인력 감축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근로 시간 단축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단축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고용을 유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기술 발전과 주4일제에 대한 논의 그렇다면 주4일제를 비롯하여 노동 시간 단축은 만능일까요?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관련하여, 기존에 기술 발전과 노동 시간에 대해 다룬 연구들을 살펴봤습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보고서에 소개된 이규철의 연구에 따르면, 1993년 독일은 생산성은 높이고 그에 따른 비용은 줄이는 산업합리화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 이 현상으로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은 노동자 감축을 추진했지만 노조의 반대에 부딪쳐 노동자들과 협상을 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주4일제를 시행하여 고용은 유지되었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소득 감소를 추진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임지영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 프랑스에서도 주4일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는 1998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노동시간을 주35시간으로 축소하였고, 이는 임금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보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에 맞춰 불완전 고용조건을 확대 적용하였고, 정부는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눈감아주며 결과적으로 불완전고용률 증가와 실업률 증가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런 실패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노동 사회의 대안으로 프랑스에서는 주4일제 도입을 재논의하고 있는 것이죠. 이외에도, 주4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김은별 연구자와 이승윤 교수의 논문에서는 **주4일제의 도입 배경 중 하나로 ‘실업 및 저성장 문제 해결’**을 꼽았습니다. 대량 실업을 구조적으로 막음과 동시에,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교육받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주4일제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연구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연구한 결과, 주4일제가 기업의 생산성을 낮출 가능성은 적으면서도 노동자의 일과 삶의 균형을 보장한다고 밝히며 주4일제 도입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주4일제 연구들에서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은, 충분한 논의 없이 주4일제를 도입하면 불완전고용 증가, 임금 감소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주4.5일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나,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면 주4일제를 도입할 수 있게 하여 기업에 따라 선택적으로 유연하게 근로시간을 조정하게 할 수 있는 방안 등. AI로 인해 발생할 실업에 대비할 수 있는 근로시간 단축 정책은 다양하게 고려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주4일제 도입의 한계와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어떤 방식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을 실행하여 AI발전으로 인해 가속화될 실업 증가를 막을지 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는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많은 편의를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전을 함께 겪으며 자란 세대로서 덕분에 공부도 더 편하게 하고, 지도도 더 편하게 보고, 게임도 더 재밌게 하고, 최근 AI로 정말 많은 업무시간 단축까지 이뤘거든요. 이왕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우리가 일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면, 다같이 일은 덜 하고, 더 많이 쉬면서 돈도 벌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4일제와 같은 사회제도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더 빠르게 이루어져 사람이 AI 발전의 장점은 누리고 단점은 최소화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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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와 테무의 초저가엔 기후위기가 빠졌다
기후위기와 고물가 밥상은 물가 체험현장이다. 식생활은 기본 욕구이기에 물가 상승을 바로 체감할 수 있다. 식자재 가격이 연일 상승하면서 고물가를 체감중이다. 양배추는 한 포기에 5,000원을 넘었고, 도매가격도 2배 올랐다. 고물가에 차라리 “직접 키워 먹겠다”는 아우성이 나온다. 식자재 물가 상승 이유는 기후위기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내리지 않아서, 생산량이 줄고, 공급량이 감소해 가격이 오른 것이다. 이는 세계적 추세로, 심지어 ‘기후 플레이션'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기후 변화로 농작물 생산량이 감소해 물가가 치솟는 걸 말한다. 네이처지에는 “2035년이면 기후 플레이션으로 인해 식품 물가는 최대 3.5%, 전체 물가는 1.2% 증가할 수 있다"는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기후위기 대처 없이 고물가 대책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기후위기와 경제성장의 디커플링 기후위기를 벗어나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대표적으로 이산화탄소(CO2) 배출 감소가 있다. 기업과 정부가 가장 집중하는 부분이다. 탄소 중립과 2050 Net Zero 달성, Scope 1, 2, 3 배출량 측정도 CO2 배출 감소가 목적이다.  문제는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CO2 배출도 함께 증가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CO2 배출은 동조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물러날 수 없듯, 경제성장도 물러날 수 없다. 때문에 경제성장과 CO2 배출 감소를 동시에 이루는 건 대부분 선진국과 기업의 꿈이다.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이라는 용어가 있다. 물리학 용어로, 서로 영향을 주던 변수의 연결이 끊어지는 걸 말한다. 기후위기가 커지면서 산업계에도 쓰이고 있다. 경제 성장을 이루며, CO2 배출 감소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루어진 적은 없다. 오히려 요원해 보인다. 위 사진은 GDP 성장과 CO2 배출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대한민국, 호주와 뉴질랜드 등 선진국 그룹은 GDP 성장과 CO2 배출이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반면, 중국, 인도, 아프리카 대륙, 라틴 아메리카 대륙,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개발도상국 그룹은 GDP와 CO2 배출이 동조하는 걸 볼 수 있다. 사진만 보면 선진국 그룹이 디커플링을 이룬 듯 보인다. 착각이다.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생산 단계에서 측정한다. 선진국 그룹 배출량이 줄어든 건 생산 공장을 개발도상국,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에 이전했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세우고 생산하며 탄소 배출량을 개발도상국에 떠넘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국 경제가 성장하며 CO2 배출이 줄었다고 하는 건 오류다. “환경오염을 줄이면서 경제 성장도 이루었다고 선진국이 자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류'다. 선진국의 환경오염이 개선된 것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의한 결과가 아니며, 자원 채굴과 쓰레기 처리 등 경제 발전에 따라오게 마련인 부정적 영향의 적지 않은 부분을 글로벌 사우스라는 외부로 떠넘긴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1) 현재의 생산자 단계의 측정법을 소비 단계 측정법으로 바꾼다면, 선진국은 디커플링을 입에 담을 수 없다. 오히려 개발도상국의 탄소 배출량은 감소하고, 선진국의 배출량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진국이 누리는 풍요로운 삶을 위해 개발도상국이 희생하고 있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이런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선, 생산보다 소비에 초점을 두고, 제품 1개 생산에 얼마나 많은 물질이 소비되지도 봐야한다. 물질 발자국으로 보면 경제성장과 디커플링 되지 않았다 물질 발자국(Material Footprint)이란, 특정 국가의 자원에 대한 최종적인 소비가 국제적 자원 추출에서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기 위한 지표으로, 바이오매스, 화석 연료, 금속 광석 및 비금속 광석 물질발자국의 합계다. 예를 들어 금 3.75g을 얻기 만들기 위해선, 3.75g만큼의 땅만 파면되는 게 아니다. 광산을 부수고, 깨며 그중 일부만 추출하는 것이다. 실제 금 3.75g을 얻기 위해 소비된 자원은 54만 배에 달하는 2,025kg이다.2)  두 개 그래프를 보면 GDP가 증가하는 동시에, 물질발자국도 동시에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 해당 그래프를 국가별로 살펴보면 아래 그래프가 나온다. 조금 오래된 논문이긴 하지만, 내용은 유효할 것이다. 해당 그래프는 1990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별 물질 발자국을 추적한 논문인 ⟪The material footprint of nations⟫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래프를 보면, GDP와 MF(물질 발자국)가 동조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물질 발자국 차원에서 보면 선진국이 말하는 디커플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제품 생산은 전 세계적의 자원 소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CO2 배출은 당연하다. CO2 배출만 봐서도 안 된다. 태양광 에너지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였다고 해도,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지구 어딘가에서 광산을 깨부수고 있다면 그건 환경 오염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환경 오염을 CO2 배출로만 한정해도, 약 30년 간 CO2 배출이 줄어든 건, 세 번 뿐이다. 모두 경기 침체와 연관됐다. 세 번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세번의 사례는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 2009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다. 이중 경제성장과 환경 파괴의 분리, 녹색 성장, 지구를 보호하려는 의도적 행동으로 감소한 사례는 없다.3) 오히려 경제의 엔진인 생산과 소비에 제동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경기가 침체하자 우리는 본적 없던 맑은 하늘을 마주했다. 코로나 19 팬데믹 당시, 인도에선 30년 만에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고, 국내엔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이 목격됐다. 마스크를 잠시 내려 들이마신 공기는 상쾌했고, 사람들은 열광하며 저마다 사진을 찍고 올렸다. “많은 사람이 공기가 깨끗해진 것은 다들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이유는 소비경제가 멈춘 것이었다. 공장이 문을 닫았다. 비행기가 운항되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또는 쓰기 위해 매일 하던 통근이 중단되었다. 이것이 바로 본질을 꿰뚫은 듯 분명해진 소비의 딜레마였다. 우리 경제의 동력은 소비지만, 소비는 탄소 배출의 동력이다. 이 관계가 너무나도 견고해서, 기후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둘 중 하나의 성장을 다른 하나의 성장 지표로 삼았다.”3)  경제 성장 지표인 GDP는 생산과 소비로 측정된다. GDP 성장을 위해선 작년보다 더 생산하고, 소비해야 한다. 생산량 증가는 자원 소비의 증가이고, 제품 소비량 증가는 곧 그만큼의 제품이 버려졌다는 의미다. 경기 침체기의 CO2 배출 감소는 생산과 소비 자체를 줄여야 CO2 배출 감소를 이룰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문제는 경기침체와 고물가에 “물건을 더 적게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저렴한 물건을 구매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유롭게 원하는 물건을 구매한다”3)는 점이다. 고물가는 더 싼 제품을 소비하게 이끈다 기후위기로 인한 고물가를 벗어나기 위해선, 생산과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 문제는 고물가가 저품질 제품의 생산과 소비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기업도 이러한 소비자 심리를 자극해 끌어모은다. 최근 급성장 중인 중국 이커머스 기업인 ‘알리 익스프레스(Ali Express, 이하 알리)’와 ‘테무(Temu)’가 하는 일이다. 이들은 값싼 제품을 빨리 가져 가라며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국내를 잠식한 알리와 테무 알리와 테무는 모두 중국 이커머스 기업이다. 한국에서 서비스 런칭 후, 급격히 성장 중이다. 2024년 2월 기준 알리의 월 이용자 수는 818만 명(국내 2위)이고, 테무는 581만 명(국내 4위)이다. 테무가 2023년 7월에 한국 서비스를 런칭했다는 점에서, 그 성장세가 얼마나 급격하고, 한국 소비자가 열광하는지 알 수 있다. 두 개 기업은 국내 이커머스 1위 기업인 쿠팡(월 이용자 3,010만 명)을 위협하고 있다. 알리와 테무는 중국 제품을 직거래할 수 있게 해준다. 2023년 4/4분기 해외 직구 구매액은 1조 9,639억 원이었다. 2022년 4/4분기 대비 46.1% 증가한 수치다. 이중 중국 직구 구매액은 1조 656억 원으로 전년도 동분기 대비 161.1% 증가했다. 알리와 테무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졌다. 미국은 4,645억 원, 유럽연합은 1,765억 원이었다. 거래규모는 택배 물량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CJ 대한통운은 알리 물류를 독점하고 있다. 2023년 1분기에 350만 박스, 3분기에는 900만 박스를 처리했다. 4분기에는 중국 광군제(중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매출액 기준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 이벤트다) 영향으로 1,000만 박스를 처리했다.4) 2024년 알리의 택배 물량은 월 500~600만 박스, 테무 물량은 월 200~300만 박스로 전망된다.5) 초초초저가, 알리와 테무의 전략 알리와 테무가 급성장한 데는 초초초저가 전략이 있다. 테무는 ‘억만장자 처럼 쇼핑하기'를 내세우며, 신규 가입자에게 13만 원 상당의 쿠폰을 발급하는 등 저가 제품을 마음껏 사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제 테무 홈페이지에는 초초초저가 상품이 즐비하다. 아무리 골라 담아도 비싸지 않게 느껴진다. 알리의 경우 ‘천억 페스타'라고 하여 초저가 상품을 내세우고 있다. 천 억 페스타는 알리가 천 억의 손해를 보면서, 진행한다는 의미다. 두 기업 모두 적자를 감내하고, 싼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테무는 배송 한 건 당 7USD의 손해를 감내하고 있으며, 2023년 한 해에만 30억 달러의 손해를 손해를 봤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적자를 보더라도, 이용자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값싼 제품을 무료로 배송해주고 90일 내 무료 반품까지 해주는 이유다. 고물가 시대에 초저가 제품은 소비자 구매욕을 자극한다. 알리 천억 페스타 당시 딸기 한 팩에 750원, 계란 두 판에 1,000원이었다. 테무에서는 가습기가 원화로 1,500원에 판매됐고, 미국에서는 광고비에 560억 원을 쓰는 등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 테무는 국내 방송사와도 협업해 방송에서 PPL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알리와 테무를 이용하는 이유(중복투표)는 ①제품 가격이 저렴해서 (93.1%), ②다양한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서 (43.5%), ③득템하는 쇼핑 재미가 있어서 (33.8%), ④할인혜택이 많아서 (30.6%), ⑤국내 상품도 함께 구입가능해서 (10.3%), ⑥정품 같은 가품을 구입할 수 있어서 (8.9%)로 조사됐다. 가격 경쟁력이 압도적 1위다. 물론 불만사항도 많았다. 전체 사용자 중 80.9%는 불만이 있었다. 상위 3개 이유(중복투표)는 ①배송 지연 (59.5%) , ②낮은 품질 (49.6%), ③제품 불량 (36.6%)이었다.  이용 이유와 불만 사항에서 알 수 있는 건, 10개 중 1~2개만 성공해도 국내 이커머스보다 싸기 때문에 쓴다는 것이다. 8개를 버려도 2개 건지면 이득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향후 알리와 테무를 이용하겠다는 비율도 높다. ①의향 있다(56.6%) ②반반 (37%) ③의향 없음 (6.4%)으로 이용하겠다는 의견이 절반 이상이다. 인터넷에 테무 이용 후기를 검색하면 제품불량 후기가 쏟아진다. 구입한 제품이 아예 망가져서 오는 경우도 있다. 품질이 낮고, 망가져서 온다면 사용 몇 번 사용 해보지 못하고 버리게 된다. 제품이 튼튼한 건 그 자체로 환경에 이롭다. 오래 쓸 수 있고, 버려지지 않으며, 불필요한 소비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반면, 제품을 버리는 건 환경에 큰 피해다. 그 점에서 테무에서 판매되는 제품과 테무의 경영은 환경에 위협적이다. 한편 테무는 한발짝 더 나아간다. 개인적으론 믿을 수 없는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테무, “쓰던 제품 버리고 무료로 새제품 받아 가세요" 테무의 광고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이어버드는 버리세요. 지금 테무에서 무선 이어버드를 무료로 가져가세요. 작은 우주선 모양으로 아주 좋습니다. 사운드 품질도 정말 좋습니다. 운동할 때도 쉽게 빠지지 않아요. 세 가지 색상으로 원하는 색상을 고르세요. 지금 테무에서 무료로 받아가세요.” 제품 수명이 다해 교체하는 게 아닌, 새것을 위해 기존 것을 버리는 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환경을 짓밟는 행위다. 또한 불필요한 소비를 창출하는 행위다. 테무 판매 제품이 고품질이라면 모를까, 이용자 중 약 87%가 낮은 품질 (49.6%)과 제품 불량 (36.6%)을 불만사항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테무가 고품질 제품을 줄리없다고 생각한다. 기존 제품 고쳐쓰라고 광고해도 모자랄 판에, 쓰던 걸 버리라는 건 소비자에게 쓰레기를 만들라는 것과 다름 없다. 금 3.75g에 2,050kg의 물질이 소비된 걸 생각하면, 테무의 광고가 얼마나 많은 자연을 파괴하는 내용인지 생각할 수 있다. 테무의 광고가 무시무시한 이유다. 한편, 테무는 광고와 달리 환경 지속가능성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테무의 의심스러운 나무 심기 더구나 포집할 수 있다는 CO2의 양도 납득하기 어렵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나무 한 그루가 40년 동안 CO2 4톤을 흡수하는 게 정설이다.6) 기부한 나무 수로 따지면, 약 20년 간 최소 1,600만 톤의 CO2 흡수가 되어야 한다. Trees for the Future에서 CO2 계산 근거를 계속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또한, 2022년 9월에 정식 출시한 테무가 2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8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도 너무 큰 비약이 아닌가 싶다. 유한킴벌리는 40년 동안 5,700만 그루를 심었다 국내 대표 기업 사회공헌 사업으로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가 꼽힌다. 국내 최장수 사회공헌 사업으로, 2024년 40주년을 맞이했다. 40년 간 유한킴벌리가 심은 나무는 약 5,700만 그루다. 국내에 약 3,100만 그루, 북한 지역에 약 1,300만 그루, 몽골 지역에 약 1,280만 그루, 중국에 약 42만 그루를 심었다. 나무 심기에 참여한 사람은 약 40만 명이다.7) 유한킴벌리가 40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서 5,700만 그루를 심은데 반해, 테무는 2년도 채 되지 않아 800만 그루를 심었다고 말하고 있다. 결론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유한킴벌리가 게을렀거나, 테무가 엄청 빨랐거나. 개인적으론 유한킴벌가 게을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테무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테무의 문맥에서는 차이도 있다. 상단 설명에는 '심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하단에는 '기부했다'고 말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통계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테무의 나무 심기는 그린워싱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그린워싱의 7가지 죄악 그린워싱은 친환경이 아닌데, 친환경으로 포장하는 걸 말한다. 테라초이스(Terra Choice)는 ⟪그린워싱의 7가지 죄악:북미 소비 시장의 친환경 주장에 관한 연구⟫에서 그린워싱을 7가지로 분류했다. 7가지 분류는 이렇다. ①숨겨진 상충 효과 ②불충분한 증거 ③애매모호한 주장 ④관련성 없는 주장 ⑤유해상품 정당화 ⑥거짓말 ⑦허위 라벨 부착이다.8) 테무의 나무심기 공약은 ①숨겨진 상충 효과 ②불충분한 증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은 나무와 포집 양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또한, 소비 양산으로 만들어지는 환경 오염 역시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설령 테무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테무의 경영 전략은 나무 심기보다 더 빠르게 나무를 뽑는 전략이다. 지속가능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 곳에서 나무를 뽑고, 한 곳에 나무를 심었다고 자랑하는 건 그 자체로 그린워싱이다. 생산과 소비 메커니즘 자체는 어떤 친환경을 내세워도 지구를 갉아 먹는다. 나중엔 친환경 드릴로 땅을 파헤칠지도 모른다. 생산과 소비가 바뀌지 않는 한, 기후위기는 늦출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 멈추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가속화되고 고물가는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테무와 알리 같은 저가와 저품질 제품의 양산과 소비 매커니즘은 더욱 주목받고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비즈니스를 막기 위해선 생산과 소비개념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 21세기에 가장 주목해야 할 과제일지 모른다. 제 값을 안 치르면, 사채 이자가 붙는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지구진화 및 역학 센터 교수인 ‘호프 자런'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도록 해주는 마법 같은 기술은 없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21세기의 궁극적인 실험이 될 것이다. 덜 소비하고 더 많이 나누는 것은 우리 세대에게 던져진 가장 커다란 과제다.”9) 라고 말했다. 우리의 소비 품목은 다양해졌고, 방법은 편리하고 빨라졌다. 동시에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또 사용하는 방식은 점점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왔다. 무분별한 소비,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유행을 좇는 패스트패션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달려오는 당일배송 등이 이런 현상을 입증한다.”10) 쿠팡의 유산인 당일 배송은 이제 고정값이 됐다. 당일 배송하지 않는 유통사는 살아남기 어렵다. 알리와 테무 역시 국내에 물류 센터를 설립하고, 당일 배송을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경제효과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언론도 알리와 테무가 위협하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위험성만 경고하고, 환경 이슈는 다루고 있지 않다. 침체기의 경제 효과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환경을 파괴하고, 그 파괴로 침체가 더욱 커진다면 우리는 한발자국 물러나 그 위험성을 봐야 한다. 그것이 경제를 살리는 것인지 지구를 죽이는 것인지 따져야 한다. “죽은 행성에서는 어떤 비즈니스도 할 수 없다.” 비즈니스가 없으면 경제효과 창출도 어렵다. 기존 제품을 버려서까지 소비하라는 테무, 값싼 제품을 내세우며 구매를 유도하는 알리의 제품 구매가, 당장은 싸게 느껴지겠지만 이는 비용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 것이다. 당장 치르지 않은 비용은 사채 이자를 붙여 갚아야 한다. 그때가 되면, 지금 비싸다고 말하는 5,000원짜리 양배추가 몇 년 뒤 “정말 싸다"고 말하는 가격이 될지도 모른다.  이걸 막기 위해서는 우리는 당장 값싼 소비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을 멈추고, 값싼 소비와 성장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부디 싸다는 제품에 현혹되어 새로운 물품을 사기보단, 집에서 안쓰고 있던 물건을 다시 쓰는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다. 환경을 생각한다며 온라인 쇼핑몰에서 싼 에코백 여러 개를 구매해 쓰는 것 보단, 집에 있는 비닐봉지를 쓰는 게 훨씬 낫다. ※ 참고자료 1)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사이토 고헤이/ 다다서재/ 2020) p.35 2) ⟪좋아요는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기욤 피트롱/ 갈라파고스/ 2023) p.87 3) ⟪디컨슈머⟫ (J.B. 매키넌/ 문학동네/ 2023) p.41, 84, 87 4) ⟪CJ대한통운:택배 성장 추세로 북귀 전망⟫ (양지환/ 대신증권 리포트/ 2023.11.24) 5) ⟪한진:쿠팡 가고 알리&테무 온다⟫ (양지환/ 대신증권 리포트/ 2024.03.22) 6) ⟪빌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빌게이츠/ 김영사/ 2021) p.183 7)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40주년 백서⟫ (유한킴벌리/ 2024) 8) ⟪The sins of Greenwashing⟫ (Terra Chice/ 2010) 9)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김영사/ 2020) p.127 10) ⟪넷 포지티브⟫ (폴 폴먼, 앤드르 윈스턴/ 현대지성/ 2023) p.376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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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지켜보는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AI 윤리 뉴스 브리프 2024년 4월 넷째 주 by. 🎶소소 1. AI Index Report로 보는 AI 윤리 스탠퍼드 인간중심AI연구소가 발간하는 AI Index Report는 전세계 AI 주요 현황을 가늠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를 제공합니다. 최근 이 보고서를 인용한 한국 기술 수준이 이집트, UAE에 밀렸다는 보도가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우리나라 과기정통부는 보고서의 분석 대상에서 한국이 제외되었다는 항변과 함께 우리의 기술 수준이 얼마나 뛰어난 지에 대한 정책브리핑을 냈습니다. AI 연구가 영미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이런 소동도 벌어지는데요. 대학 순위 같은 지표에 우리가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고서에서 참고할 만한 AI의 사회적 영향과 관련된 지표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AI 사고 건수는 2013년 대비 2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AI 활용이 확대되고, 위험에 대한 인식도 같이 높아지며 신고 건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추측됩니다. AI 제품과 서비스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52%)뿐만 아니라 AI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66%)은 모두 작년 대비 증가했습니다. AI 규제도 전세계적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규제기관이 AI 시스템의 영향을 평가하고 위험을 완화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에 반해 아직 AI 모델의 위험 평가 지표는 표준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AI 모델의 위험이 정확히 평가되지 않으면 규제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보고서는 AI 모델의 개인정보보호, 투명성, 안전성, 공정성을 평가할 수 있는 최근 연구와 벤치마크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2. 오픈소스로 공개된 라마3 메타가 새로운 오픈소스 모델 라마3(Llama3)를 공개했습니다. 모델의 성능이 크게 향상되어 GPT-4 못지않다며 AI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요. 더 많은 사람이 사전 학습의 부담 없이 초거대AI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라마 모델을 기반으로 많은 서비스가 생겨나고 관련 연구도 활발해졌습니다. 오픈소스 모델은 누구나 어떤 목적으로든 활용할 수 있는 만큼 위험하게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메타는 AI 모델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종합적인 안전 조치를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용자의 질문(프롬프트)과 모델의 답변의 안전성을 감지하고 분류할 수 있도록하고 내외부 전문가 레드팀으로 모델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개선했다고 하는데요. 앞으로 라마3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게 될 개발진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메타는 책임있는 개발 가이드를 배포하며, 모델의 오픈소스화는 AI 생태계를 하나로 모으고 잠재적 위험을 완화하는 방법임을 강조했습니다. 한 편 라마3가 진정한 오픈소스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오픈소스의 정의에는 정보의 공개 여부뿐만 아니라 사용 권한의 범위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라마3는 모델 카드에서 모델 아키텍처, 매개변수, 여러 벤치마크 평가 결과를 함께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라마3의 사용 제한 조건은 라마2와 동일합니다. 출시일 기준 MAU(월간활성사용자)가 7억 명 이상인 서비스 사업자는 모델을 사용할 수 없고, 라마3의 생성 결과물로 다른 모델의 학습에 활용할 수 없으며, 모델 훈련 데이터도 15T라는 것 외에 공개된 것은 없습니다.  3. 영국, AI로 성착취물 생성만 해도 처벌 영국 정부가 당사자의 동의 없이 AI로 성적인 이미지나 영상을 만든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형법 개정안을 마련했습니다. 제작자는 이미지나 영상의 공유/유포와 관계없이 처벌됩니다. 물론 성착취물을 외부에 공유하는 경우에는 지난해 개정된 온라인안전법에 의거하여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됩니다. 앞으로 AI로 만든 사진이나 영상의 품질은 더 높아지고, 진위를 구분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미국 FBI는 AI로 생성한 성착취물 피해자가 증가하고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딥페이크로 합성한 영상물로 인한 디지털 성범죄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피해자 절반 이상이 10~20대 여성이라는 점이 매우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생성 AI를 이용한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막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예방책이 절실합니다. 더 읽어보기 생성 AI 성착취물 시장의 구조(2023-09-04) AI 분야의 젠더 격차(2024-02-21) 4. 데이터를 사모으는 어도비 어도비(Adobe)가 영상 생성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 분당 3달러에 비디오 데이터를 구입한다고 합니다. 이미지나 영상 데이터의 출처를 언급하지 못하고 있는 오픈AI와 달리 어도비는 ‘저작권 문제 없는 데이터’를 강조해 온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학습 데이터를 구매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더 읽어보기 데이터, 어떻게 팔아야 잘 판 걸까? ...팔아야 하는 걸까?(2024-03-25) 오픈AI를 곤란하게 하는 학습데이터(2024-03-18) 생성 AI와 저작권, 정산은 본질이 아니다(2023-07-10) 오늘 이야기 어떠셨나요?여러분의 유머와 용기, 따뜻함이 담긴 생각을 자유롭게 남겨주세요.남겨주신 의견은 추려내어 다음 AI 윤리 레터에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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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이야기] 청소년인권 관점의 교사가 되지 못했어요
청소년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십대 시절, 어린 건 이용해볼만한 소재였다. 나이주의와 청소년혐오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서도 그걸 이용하려고 했으니 어찌 보면 영악한 편이었다. 열일곱 살이니까, 뒤로 물러서도 괜찮겠지. 이럴 땐 하고 싶은 걸 내세워도 괜찮겠지. 좀 시무룩해지면 내 말 들어주겠지? 아방하게 굴면 뭐라고 못하겠지. 적어도 스물 셋 넘은 어른들은 아이에게 약해서 난 좀 더 무책임할 수 있었다. 나이주의를 공부한 반골 십대가 자기 편하자고 나이주의를 역이용한 셈이었다. 정작 청소년 인권 활동가 동료들 사이에선 누굴 어리다고 특별대우 해주는 건 없었다. 걔넨 나이주의에 찬성하지 않았고, 열넷이고 스물셋이고 우린 모두 대등한 "야"였으니까. 그땐 또 소심하고 여성적인 내 특징을 내세워 뒤로 숨었던 적 많았다. 그래도 어린 게 무기일 순 없었으니 조금 덜 바보인 척 했다. 그러더니 엉겁결에 20대가 되었다. 또 덜컥 2년 전엔 중고등학교의 교사가 되어버렸다. 십대를 '아이'라거나 계도의 대상으로 여기지 못한 형편 없는 교사 말이다. 지금도 친구들과 부모님, 스승들, 그리고 청소년이 연령에 따라서 달리 보이지 않는다. 뭔가 다르다면, 경험의 축적이 다를 것이다. 그들은 나처럼 능수능란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를 못하겠지만 단순 경험의 차이일 뿐. 다 같은 사람인지라. 결국 나이가 아니라 상황과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당위적으로는 '아이'나 '어른'의 딱지를 떼고 서로 사람 취급하는 게 존중일 것이다. 난 열아홉 살 때까지도 서너 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린 걸로 묻어가겠다는 게으른 심보였다. 이런 날 너무 매정하고 대등하게 대해준 어느 연장자 덕분에, 무안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후론 예전처럼 나이빨로 설렁설렁 지낼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제대로 존중받았고, 온전한 사람으로서 엄격하게 평가당했다. 자기가 미숙하다는 통념을 지닌 십대들이 교사인 나에게 어리광을 부릴 때가 잦았다. 그들은 사람으로 구실하는 대신 청소년의 역할에 머물렀다. 그렇다면 상대역인 내가 더 큰 '어른'으로 굴어줘야 짝이 맞아보였다. 상황이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형성해온 것이다. '애들'은 스스로 지혜로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돌봄을 받기만 하며 미래를 유예하는 위치에 머물게 되어 있었다. 뻔히 있는 길을 편하게 갈 수 없는 난 당시에도 사잇길을 찾아서 고생을 자처했다. 이들이 '교사-아이'의 역할에 의문을 품는 과정에 동행해보자고. 갇힌 틀에서 나오는 건 그들 자신의 의무이겠지만, 교사인 내가 망치질 정도는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배움을 위한 타인의 역할은 조력과 촉진일 것이라며. 난 그럴싸한 교사로서 이렇게나 실격이었다. 넓고 무거운 등으로 필요한 권위를 짊어질 수도 있었는데, 그건 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 난 교사 대 학생이 아닌 새로운 관계양식을 함께 맺어나가는 가르침만을 지향하고 있었다. 예전에 만난 연장자가 그랬던 것처럼, 대등하게 존중하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이 가르침은 어느 정도 실패했다. 관계는 상호 맺는 건데 나 혼자 선구자처럼 새로운 관계양식을 보여준다는 건 일방적이고 모순적이었으니까. 더구나 학교는 교사의 권위와 학생의 수동성으로 굴러가기에 그로부터 벗어나는 건 근본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상대에게 의아함만 선사한 듯했고, 그들은 틀을 깨고자 하는 의지와 당위가 없었다. 모범생같은 두 눈, 교사의 말을 들으면 좋은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 행동들... 그런 반응은 어느 정도 무력감을 불러일으켰다. 내 권위와 명령을 기다리는 어느 청소년들의 태도 앞에서 슬기로운 제3의 제안같은 걸 떠올리지 못했다. 내가 조각해온 존중의 형태를 낙관적으로 확산하고 싶었지만 교사로 지낸 기간 동안 희망을 다소 접었다. 그래도 존중에 대한 생각은 여전히 그대로다. 단지 나의 영향력은 좁은 곳에서 내밀하게 이뤄질 때야 온전할 수 있다고 다시금 확인했을 뿐이다. 이것은 조용하지만 강단 있는 내 뜻이, 여러 곳에서 자꾸만 접히는 것을 또 목격했던 실패 이야기다. 그래도 난...난, 다시 한번 내밀하고 찌릿한 소통을 찾으려고 한다. 내일도 나이가 많고 적은 이들의 눈을 보고 대화를 청하려고 한다.
교육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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