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언스플래쉬
1979년 벌어진 12·12 군사반란 당일의 9시간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 500만을 돌파했습니다. 서울의 봄’을 보고 분노를 느낀 관객들의 ‘심박수 챌린지’가 유행하는 등 핫이슈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요(출처 한겨레).
누구나 아는 역사이지만 아무도 몰랐던 혹은 잊혀지고 숨겨졌던 역사의 이면을 연기파 배우들과 드라마틱한 전개로 드러내며 ‘12.12 군사반란’에 대한 관심을 다시 촉구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중심으로 한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 세력이 당시 대통령인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을 납치한 것을 시작으로 일으킨 쿠데타입니다.
하나회 핵심 지휘관들은 11월 중순부터 정승화 총장을 제거하고 군부를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동조 세력을 규합했으며, 대통령 재가 없이 먼저 참모총장을 납치한 후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총장의 연행 및 조사를 재가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군 통수권을 장악하여 최규하 대통령의 사후 재가를 기어코 받아냈습니다.(출처 위키백과).
저도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최전방 공수부대까지 반란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하나회’라는 사조직으로 뭉쳐 상관의 명령에 불종하는 군인들의 카르텔이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쿠데타를 막을 기회도 10번이나 있었지만 어이없는 판단과 실책으로 나라가 전복 되었다는 것에 허탈함도 느꼈습니다.
영화를 보고 찾아본 반란군에 맞선 진압군들의 영화보다 비극적인 현실도 더욱 먹먹함을 더했습니다. 정우성이 열연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은 가택 연금을 당했고,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두 달여만에 충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도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의문사하여 82년 1월 낙동강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일가족에 풍파가 미쳤습니다.
이성민이 연기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18계급 강등된 이등병으로 강제 예편 당하는 굴욕과 함께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았고, 정만식이 연기한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강제 예편되는 것도 모자라 1989년에는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출처 엑스포츠 뉴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어린 친구들이 하는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당연히 정우성이 이길 줄 알았어!”. 단죄하지 않은 역사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지 알고 있으니 더욱 씁쓸해졌습니다.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대화였습니다. 여전히 영화를 보고 우리가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시원하지 못한 현실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11월 17일 메가박스 시사회장에서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영화를 통해서나마 부끄러움을 주고 싶었어요"라고 제작 소회를 밝혔습니다(출처 YTN).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요? 부끄러움은 여전히 우리만의 몫일까요?
코멘트
6서울의 봄 영화는 아직 관람하지 못 했지만, 글 마지막 부분에 어떤 관람객이 ‘정우성이 이길 줄 알았다’고 했다는 문장에 벌써 콧잔등이 시큰합니다. 영화 밖 현실에서는 더 의문스럽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사실도요..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부디 영화를 통해서라도 부끄러움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