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간호사에게 존엄한 돌봄을 기대하려면

202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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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간호사에게 존엄한 돌봄을 기대하려면 (2024-08-05)

신이령(가명) | 간호사

지난 2월27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나의 간호사 인생은 10년 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첫 직장은 서울 대형 병원으로 산부인과에 지원했다.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암 환자가 대부분인 부인과 여성 암 병동에 배치돼 수많은 임종을 함께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1년간 생리가 나오지 않았다. 동기들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 신규 간호사가 겪는 일종의 증후군이었다. 시간이 지나 생리를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화장실을 갈 짬이 없어서 때로는 바지에 피를 흘려가며 일했다. 일이 너무 많아서 부끄러워할 겨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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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난 현재 지방 공공병원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 나와 내 동료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발암물질로 지정한 교대근무를 하면서, 수많은 감염병에 노출되어 있지만 여전히 휴식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 자주 끼니를 거르며 일한다. 너무 오래 서 있어서 생기는 하지정맥류나 화장실을 가지 못해 생기는 방광염, 불규칙적 생활로 생기는 위염이나 불면증, 환자를 옮기다 생기는 근골격계 질환은 흔한 직업병이다. 환자의 치매나 섬망 증상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생긴다. 우리는 폭행, 폭언, 성희롱에 너무 쉽게 노출된다. 하지만 아파도 선뜻 쉬기가 어렵다. 간호사는 여유 인력이 없어서 누군가 병가에 들어가면 다른 간호사가 쉬는 날을 반납하고 나와야 한다. 우리 간호사들은 서로서로 대체해 가며 일한다.

현 의료보험 시스템은 일부 질병군의 포괄수가제(미리 정해진 일정액의 진료비를 지불)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의료행위에 대해 행위별 수가제(의료 서비스별로 수가를 정하여 진료비를 지불)를 채택하고 있다. 나도 근무마다 환자에게 사용한 재료대나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를 전산에 입력하는 작업을 한다. 간호 행위에 대한 수가는 거의 산정되지 않아 수익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병원 입장에서는 간호사의 노동보다는 자판기 커피가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할지도 모른다. 간호사는 많을수록 적자가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최소 인력이 있는 것이 당연시된다. 간호대학의 증원으로 매년 간호사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아프고 소진된 간호사는 언제든지 소모품처럼 대체된다. 베테랑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로 대체된다면 병원 입장에서는 인력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이득이다. 그래서 현장은 바뀌지 않고 연차가 있는 간호사는 병원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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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병원은 비용 문제로 정규직 의사 또한 충분히 뽑지 않기에, 정규직 의사의 업무가 비정규직 의사인 전공의(인턴과 레지던트)에게 온다. 과로에 시달리는 인턴과 레지던트의 업무는 다시 간호사에게 온다. 임상병리사의 일도, 방사선사의 일도 인력 부족을 이유로 때로는 간호사에게 온다. 간호사는 병동에서 환자를 돌봐야 하지만 약물 운반이나 검체 이송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호사의 일이 넘치면 간호사의 일은 다시 간병인이나 보호자에게로 간다. 나는 매일 환자와 보호자에게 “저희 같은 일반 병동 간호사는 많으면 20명 넘는 환자를 담당하고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도와드릴 순 없어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꼭 상주하셔야 해요”라며 양해를 구한다.

나는 여유가 있다면 한번이라도 더 환자에게 다가가 ‘직접 간호’ 시간을 늘린다. 직접 간호란 환자와 직접 접촉하며 이루어지는 간호를 말한다. 간접 간호는 환자와 직접 접촉하지 않지만, 투약 준비, 처방 확인, 기록 등 전산 업무로 근무시간 내에 해야 하는 일들이다. 직접 간호 시간이 늘어나면 환자를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기에 환자 상태 변화를 빠르게 알 수 있고, 보호자나 간병인에게 위임했던 업무를 직접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환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쉽게 말할 수 있다. 치료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가능하다. 나는 병원에서 가장 약자인 환자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순간은 의료인이 따뜻하게 설명하고 반응하며 눈을 맞춰주는 때라고 믿는다. 인간 대 인간으로 나누는 따뜻한 접촉이 사람들에게 위안이 된다면 간호사는 미래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이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게 태어나 일시적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가 최후에는 다시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당신은 언젠가 간호사와 만날 것이다. 나는 당신이 브이아이피(VIP) 병동이나 1인실에 있지 않더라도 존엄한 돌봄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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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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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해서 거부권이 행사되었던 시점에도 그렇고, 의사들의 집단휴진 시점에도 그렇고 간호사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는데 실질적 개선안이 나오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글처럼 현장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들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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