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이대로면 마루노동자는 사라집니다

2024.07.29

219
3
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이대로면 마루노동자는 사라집니다 (2024-07-29)

유희원 | 여성 마루노동자

본드를 바르고 마루를 시공하고 있다. 필자 제공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40대 여성 마루 노동자입니다. 남편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빚이 생겨, 일한 만큼 벌 수 있고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마루 시공을 배워 남편과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마루 노동자의 임금은 일당이 아닌 평떼기(작업량만큼 받는 수수료)이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마루 시공을 한 지는 6년, 보양 작업까지 치면 한 10년 됐습니다. 보양은 시공한 마루가 상하지 않게 종이로 덮는 작업입니다. 실내 공사 중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게 마루와 도배입니다. 도배와 달리 마루는 건설업 127개 직종 중 직종 코드도 학원도 없고, 현장을 따라다니며 배워야 합니다. 재단하고, 문틀을 자르고, 게링(바닥 평탄화 작업), 스킬(집 모양대로 자르는 작업) 등 전 과정을 배우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기계를 쓰는 힘든 일은 남편이 하고, 저는 각도기로 자르고, 망치로 마루를 끼우는 일 등을 합니다.

시간이 지나 일이 손에 익으니 조금씩 돈도 벌게 됐으나, 갈수록 현장의 열악한 상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 불편한 것은 화장실입니다. 작업자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불결하기 짝이 없습니다. 손을 씻을 곳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리 때는 출근을 못 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한국마루노동조합이 생겨 화장실 문제 개선을 요구해 예전보다 나아졌다곤 하지만, 현장마다 상황은 천차만별입니다. 얼마 전에 간 현장에서는 건설사 직원이 “화장실이 미흡해 작업하는 세대에 똥이 많이 있을 것”이라며 “감안하고 일하라”고 했습니다. 건설사는 노동자들이 사용할 화장실을 작업자 수에 따라 적정하게 설치하고, 현장 노동자의 최소한의 인권을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광고

마루를 시공하려면 바닥에 아무것도 없어야 하는데, 앞 공정에서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와 싸놓은 똥까지 있습니다. 청소 인부를 보내달라고 관리자에게 부탁하지만 안 오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마루 노동자는 일한 만큼 임금을 받기 때문에 시간이 금입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남편과 함께 오물을 치우고 일을 시작합니다. 바닥을 스크래퍼(바닥 제거 공구)로 긁어내고 빗자루로 쓸어 박스에 담습니다. 청소를 해놨는데 다른 공정이 들어와서 더럽혀놓으면 또다시 청소를 해야 합니다. 무보수 노동을 2배로 하는 셈이죠. 방진마스크도 회사에서 지급하지 않아 직접 사서 써야 합니다.

점심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간식을 사 와 현장에서 먹는데 햇빛 사이로 먼지가 뿌옇게 날립니다. 온종일 미세먼지에 노출돼 있으니, 나중에 치매나 폐암이 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겨울에는 옷으로 꽁꽁 싸매고 있어 그나마 괜찮지만, 여름에는 땀에 먼지가 섞여 피부병에 시달립니다. 잘 때마다 피가 날 정도로 긁습니다.

마루를 시공하려면 본드와 경화제를 통에 붓고 잘 섞어 헤라(본드 바르는 도구)로 바릅니다. 냄새가 지독합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고 본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비 오는 날은 창문을 닫고 작업하라고 하니 어지러울 때도 많습니다. 표지에는 친환경이라고 적혀 있지만 정말 건강에 문제가 없을지 걱정됩니다. 여성 노동자 중에는 손가락이 휘거나 방아쇠 증후군으로 수술까지 하신 분도 계십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과 낮은 임금, 장시간 노동 탓에 젊은 사람들은 마루 시공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도 적정 임금과 분업화가 되어 있는 타일을 배우려 하지, 마루 일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건설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주기 위한 퇴직공제금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편과 똑같이 출근한 저의 퇴직공제금을 확인해 보니 남편의 3분의 1도 안 되더군요. 싸우지 않으면 퇴직공제금 적립을 못 받는 이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마루 시공자는 근로자입니다. 평떼기라는 임금 구조와 작업 기간이 한달밖에 안 된다는 이유로 종속성이 떨어진다며, 고용노동부는 마루 시공자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고 4대 보험도 가입하고 퇴직공제금도 적립되고 있는데 왜 마루 시공자를 근로기준법에서 제외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숙련된 작업자들은 골병들어 하나둘 현장에서 떠나고 있습니다. 평균 연령 55살인 이들이 사라지면 과연 누가 마루를 시공할 수 있을까요? 마루 시공자가 기능공으로 인정받아 법의 보호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공유하기

이슈

새 이슈 제안

구독자 47명

건설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한국과 해외가 매우 다르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본 것 같은데 개선될 기미가 보이진 않네요. 본문에서 언급해주신 마루 노동자의 사례를 비롯해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들이 여전히 많은데요.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기준을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임금에 대한 대가가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의 일이 온전히 인정받고, 앞뒤 과정에서의 그림자 노동에 대한 인식도 함께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그날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캠페인

투표

토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