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6411의 목소리] 휴일도 주야간도 없다…연예인 매니저는 ‘고생’이 당연할까

2024.07.08

153
3
노회찬재단은 6411 버스 속의 사람들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함께 비를 맞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겠습니다.

휴일도 주야간도 없다…연예인 매니저는 ‘고생’이 당연할까 (2024-07-08)

서강빈(가명) | 연예인 매니저


게티이미지뱅크


“고생 많으셨어요.” “매일 저희를 위해 고생해주셔서 감사해요.” 연예인 매니저는 항상 인사를 받는다, 고생했다고. 이건 인사치레가 아니다. 사실이 그러하다. 매니저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노동강도가 높고 그 ‘고생’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직종이다. 나는 그 ‘고생’스러운 연예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대학을 졸업하고 지인의 소개로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매니저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연예인도 보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했고,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인재’로 키워주겠다는 회사의 말을 믿고 매니저 업무를 시작했다. 그 ‘인재’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매니저의 업무는 아티스트 관리와 스케줄 조율, 스케줄 동행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업무 영역은 아주 광범위해진다. 이를테면 ‘아티스트 관리’라는 범주 내에는 이미지 관리, 에스엔에스(SNS) 모니터링, 아티스트 요청 사항 취합 및 보고, 멘탈 관리, 팬 관리 등이 포함되고, ‘스케줄 조율’에는 아티스트의 스케줄은 물론 회사 임원 스케줄링과 신인 오디션 스케줄링, 제작 스태프 스케줄링을 취합해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눈떠서 잠이 들 때까지의 시간이 업무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일을 아티스트의 스케줄에 맞춰 소화하다 보면 업무 강도가 살인적이라 느껴질 때도 있다. 한번은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새벽 2~3시에 일어나 출근을 한 적이 있다. 촬영은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 이어졌고 다음 날 스케줄을 위해 인근 숙소에서 3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방송국으로 가서 다음 스케줄을 진행했다. 그렇게 24시간 근무에 이어 다음 날까지 근무를 해야 했지만, 별도의 휴가 없이 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일해야 했다. 휴일도 없고, 주말도 없고, 주야간도 없으며 24시간 아무 때나 걸려오는 전화는 모두 받아야 하는 것이 매니저의 일이다.

광고

매니저로 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친구들과의 관계는 끊어지다시피 했고, 오랜 기간 만나오던 애인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불규칙한 수면 패턴과 불균형한 식사로 인한 건강과 체력 문제였다. 업무 특성상 밤낮없이 일정을 소화해내야 하고 식사 시간도 일정치 않아 소화기 계통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부족한 잠 때문에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로 이어질 뻔한 일도 잦아졌다. 다행히 사고는 피했지만, 일이 공포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매니저는 과중한 노동이 당연한 듯 여겨지는 직종임에도 급여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다. 업계에 정해진 급여 기준이 없어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으로 책정되고, 시간외 근무수당이나 휴일 야간 근무수당은 없다. 드물게 유류비나 식대마저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 회사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일을 하면 할수록 급여가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또한 업계에 관행처럼 남아 있는 ‘열정 페이’와 저연차 매니저의 고생은 당연한 일로 여기는 ‘오래된 인식’은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든다.

최근 들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변화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예전보다 분명 좋아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가령 매니저와 아티스트의 일상을 다루는 한 티브이(TV)프로그램을 통해 매니저라는 직업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회사마다 중구난방이던 노동 환경과 구조가 일정 부분 평준화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의 경우이고 그 밖엔 여전히 살인적인 업무 강도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매니저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얼마 전부터 보직이 바뀌면서 그나마 처우와 근무 환경이 나아졌다. 나의 부서이동으로 자연스레 막내 매니저가 사라진 회사에서는 또다시 ‘열정적으로 일할 매니저’를 찾고 있다. 매니저라 쓰고 ‘고생’이라 말하는 그 자리에 또 누가 오게 될까. 누가 오더라도 소모품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노회찬재단  후원하기 http://hcroh.org/suppo

'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공유하기

이슈

새 이슈 제안

구독자 46명

이전에도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서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가 부각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엔 MBC의 '전지적 참견 시점'이 흥행하면서 연예인의 매니저가 화제의 대상이 된 것 같은데요. 물론 프로그램의 연출과 편집이 있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보고 있으면 이른 아침부터 연예인보다 빨리 일어나서 식사, 의상 등을 준비하고, 운전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단한 일상의 반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현실은 더 팍팍하군요. 매니지먼트 역시 한국의 문화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하나의 요소였다는 걸 사회가 인식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해나가면 좋겠습니다.

화려해보일수록 그 이면을 자세히 보기 어렵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연예인들이 몇억씩 정산 받았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매니저들이 그 노동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
다는 말은 들은적이 없는 것 같네요.

응원합니다.

캠페인

투표

토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