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맞는비 포럼]'시민정치지성'으로 '마지노선 민주주의'넘어야
박창규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
노회찬의원은 노동 존중, 민생 살리기, 부정부패척결, 재벌개혁, 사법개혁, 검찰개혁, 정치개혁 등 수많은 정치·사회·경제 의제를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정치의제로 만들었다. 그 과정은 통렬하기도 했고 유쾌하기도 했으며, 많은 이들로부터 "노회찬의 정치가 사회경제 약자들을 대변하는 정치 공론장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바라봤던 세상은 '노동이 존중받는 선진복지국가'였고, 그가 발 딛고 있길 원했던 정치 현장은 '6411번 버스 첫차를 타고 일터로 출근하는 투명인간들의 손에 닿는 정치'였다. 노회찬재단은 그러한 '노회찬정치'의 정신을 '6411정신'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것을 잇는 노회찬정치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노회찬재단 주최로 매월 열리는 '함께맞는비 포럼'은 6411정신을 통해 한국정치의 주요한 사회개혁 의제를 다루는 공론장으로서 기획되었다. '함께맞는비 포럼'이 국민들에게 노회찬정치의 실천동기가 되길 기대한다. 필자
지난 2월 20일 저녁 올해 첫 '함께맞는비 포럼'이 '6411정신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노회찬재단에서 열렸다. 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노회찬의원의 6411정신을 통해 한국정치의 현실을 깊이 있게 다시 성찰해보자'는 의도로 주제를 정했다.
4월 10일 총선을 앞둔 2월은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공천과 출마선언, 공약발표 등으로 정신없이 바쁜 시기이다. 노회찬의원도 2016년 4월 총선을 두 달여 앞둔 2월 1일에 새벽기차를 타고 창원으로 가서 창원성산구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한 후 두 번의 예선을 거쳐 본선을 치르는 대장정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바쁜 때일수록 '내가 왜 정치를 하는지', '왜 출마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40년 가까이 경과하며 형성된 한국정치의 양당체제가 '불평등 심화'와 '기후 위기' 대응에 무기력한 낡은 체제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을 비도덕적이고 비정치적으로 사사롭게 행사하는 정권과 관료집단을 견제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거대양당의 정치적 갈등은 주권자인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과 거리가 멀고 극성팬들을 앞세운 정치적 소란만을 재생산하고 있다. 그 결과 정치는 국민들에게 그저 예능 프로그램이나 스포츠 경기와 같은 '구경거리'일뿐 관여하거나 참여해야 할 '삶의 일부분'이 아닌 것이 되었다.
▲ 6411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프레시안
다가올 총선에 뛰어든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런 '양당체제의 철창'을 부수고, 국민의 삶의 일부가 되는 정치를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때에 노회찬재단의 '함께맞는비 포럼'이 '6411정신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논의의 장을 연 것이다.
노회찬의원은 양당체제의 정치에서 배제되어온 사회경제적 현안과 정치적 개혁과제들을 정치의 장(場)으로 가져와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여론을 모으고, 또 양당의 정치적 갈등에 개입해 제3의 시선에서 문제 해결을 촉진했다. "만 명에게만 평등한 사법부"의 개혁을 촉구했고, '삼성X파일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해 정-경-언이 유착된 부정부패의 척결을 온몸으로 외쳤다. 무소불위한 검찰권을 개혁하고자 앞장섰고, 신용카드사들과의 전쟁을 선포해 중소자영업자들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이끌어냈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주도했다. 또,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촉진했다. 이런 노회찬정치는 샤츠슈나이더의 표현을 빌리자면 '갈등의 사회화' 정치이고, 노회찬 자신이 남긴 말대로 "투명인간들의 손에 닿는 정치"이자 '6411정신'이 담긴 정치였다.
이번 '함께맞는비 포럼'에서 '6411정신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발표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노회찬정치와 6411정신을 상기시키며 '정치의 인문성'을 강조했다. 김윤철 교수는 "정치란 '문명' 공동체(polis)의 유지와 재생산을 통해 '나와 우리'의 삶과 해방을 위한 '실천'"이라고 정의했으며, 민주주의 위기의 핵심적 의미는 "주권자 지위의 훼손과 약화"인데 그 원인은 "정치의 왜곡과 실종에 의한 주권자들 '삶'의 방치, 갈등의 사유화에 따른 강자독식"이며, 그 결과 "주권자들이 '과잉주체'가 되어 숨 쉬며 자신의 마음으로 살 수 없는 처지, 反 해방의 현실/(자기) 억압의 현실"에 놓이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또한, 김윤철 교수는 "민주주의의 핵심 본질인 '민'의 물질적 자원배분 결정권 신장의 문제는 방치하고, 형식과 절차 지키기에만 열을 올리다가 결국 민주주의의 파탄을 겪게 된다는 의미"로 한국 정치는 '마지노선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즉, 김윤철 교수가 강조한 '정치의 인문성'은 정치가 주권자인 국민들의 삶을 돌보는 가운데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서사(narrative)를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의 인문성'은 정치의 본질이자 정치인들이 체화해야 할 기본 소양이다.
한국사회의 경제불평등은 갈수록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20년 넘게 반복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뿐만 아니라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같이 충격적인 일이 발생할 때마다 빈곤층의 절대적 어려움과 사회보장의 허술함이 지적되었지만 여전히 이런 사회적 갈등 현안에 대한 정치의 효능감은 발휘되지 않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이야기되지만 정작 그것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정치는 경제성장과 기업부담을 운운하며 대응책 마련에 주저주저하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
왜 한국정치는 이런 모습일까? 답을 찾기 위해 '정치의 인문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정당과 정치인이 평소에 '말로만' 존경한다고 말하는 주권자들의 정치참여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이날 '함께맞는비 포럼'의 토론자로 참석한 이동익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국장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노동운동세력이 '6411 정신'이 호명하고 있는 계급 이하의 존재들과 소외된 노동의 보호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대표성'을 강화해야 하고 여성, 청년, 성소수자, 장애인, 불평등, 돌봄, 공공성, 직장 내 민주주의, 성차별, 노동안전과 건강 등 사업장 범위를 넘어선 문제를 노동조합 내부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샤츠슈나이더가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보편적 이념들뿐만 아니라 평등과 공존, 모두에게 동등한 법의 보호, 정의,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이주의 자유, 언론 및 결사의 자유, 시민권과 관련된 이념들은 갈등을 사회화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고 말한 것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극성팬들의 정치적 소란을 넘어 노동계급이 '정치의 인문성'을 강화시키고 국민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윤민섭 춘천시의원이 "주민들의 삶의 공간인 지역에서 6411정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책과 실천을 통해 정치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정치의 인문성’을 실현하는 주민들의 정치적 관심과 참여를 더 잘 촉진할 수 있음을 예감케 해준다.
한편, 이영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선임연구원이 '정치의 인문성'을 담보할 진보정치의 역할에 대해서 "'6411 정신'은 진보정치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며 "누구나 공감하고 지지받을 수 있는 진보정치, 그들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누구와 함께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지지를 쌓아가는 '탄탄한 기본기'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4월 총선을 앞둔 정당과 정치인들이 앞으로의 정치에서 한국정치를 '마지노선 민주주의'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는 '정치의 인문성' 실천을 통해 주권자들인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노동 부문과 지역에서 촉진해야 한다. 진보정치를 자처하는 정당일수록 더욱 더 그렇게 해야 한다.
이날 포럼의 발표자였던 김윤철 교수는 한국정치가 마지노선 민주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민정치지성의 발현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시민정치지성'의 핵심은 "첫째, 기성 정치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압력과 도전이 없으면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둘째, 그 압력과 도전이 제 정치세력의 혁신 경쟁을 촉발하도록 작용해야 한다. 셋째, 그 혁신경쟁의 결과는 특정 정치세력의 선거 승패에 머무는 게 아니라, 시민주권의 증진에 기여해야 한다. 넷째, 시민주권은 투표권 행사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자원의 배분에 관한 정책결정권의 행사를 통해 구현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구체적으로 "△특정 개인과 집단의 행태에 속지 않고 '구조'를 읽기! △삶의 현실, 특히 (교섭)권력을 갖고 있지 못한 다수 보통사람들의 현실을 읽기! △옳음의 강변이 아닌, 좋음의 실현이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보기!"를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노회찬 의원의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을 소개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내일 새벽에도 6411번 버스는 정해진 시각에 출발합니다. 수많은 투명인간들이 여전히 피곤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아직 우리는 없었습니다…."
* 노회찬재단 주최로 매월 열리는 ‘함께맞는비 포럼’은 모든 국민들에게 열려있는 공론의 장입니다. 상반기에 준비된 △ 자영업과 경제불평등(3월) △ 청년노동과 산업재해(4월) △ 농업·농촌·농민과 기후위기(5월) 주제의 사회현안 논의에 많은 분들의 참여와 토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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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맞는 비 포럼' 원고는 프레시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코멘트
3현재 총선판을 보면 정말 한숨만 나오는데요. 내가 왜 정치하는가를 다시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의제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안보이네요. 민주주의 자체를 고민하게 되는 선거 같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6411번 버스를 언급하던 그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여전히 6411번 버스 속 노동자들은 현실 정치에서 외면받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네요. 국회의원 등 현실 정치 구성원이 모두 노동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당사자로만 구성되지 않는다는 게 해결과제이면서 해결할 수 없는 한계 같기도 합니다. 오히려 국회의 구성을 바꾸는 것보다 시민들의 힘을 조직하고, 그 힘이 국회의 구성원들의 의사결정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형식과 절차 지키기에만 열을 올리다가 결국 민주주의의 파탄을 겪게 된다는 말이 인상 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