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고공농성 한 달, 노동자 고용에 대한 책임을 묻다 (2024-02-19)
박정혜│금속노조 구미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
소현숙 조직2부장과 필자(오른쪽)가 공장 철거를 막기 위해 고공농성하는 모습. ♣️필자 제공
내 나이 27살이던 2011년 2월28일, 친구 추천으로 처음으로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일본 기업 닛토덴코의 100% 자회사로 엘시디(LCD) 핵심 부품인 편광판을 만드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란 회사였다. 구미국가산업단지 안 공장에서 방진복, 방진화에 후드까지 쓰고 캄캄한 암막에서 형광등 하나에 의지해 얇은 필름을 검사해 불량을 찾는 검사원으로 열심히 일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점심과 휴게시간 제외하고 10시간씩 일했다. 시간당 900매를 못 채우면 쉬는 시간까지 쪼개 수량을 맞춰야 했다. 3조 2교대로 4일 일하고 2일 쉬어야 했지만, 바쁘다 보니 대부분 5일 근무하고 하루 쉬는 구조였다. 팔다리, 어깨, 허리 안 아픈 곳이 없었고, 연차도 마음껏 쓸 수 없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안정적인 삶을 원했던 내게 힘들지만 고마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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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 엘지(LG)디스플레이 구조조정으로 우리 회사도 같이 힘들어졌다. 2019년과 2020년 두번 희망퇴직으로 500여명이었던 직원은 57명으로 줄었다. 그렇게 57명이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2년을 열심히 일했다. 회사는 흑자를 냈고 성과금까지 들어왔다. 2022년 회사는 희망퇴직했던 사원들까지 다시 불러들이며 100명이 넘는 사원을 채용했다. 희망퇴직했던 사람 중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숙련된 사람들이니 회사는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함께 힘을 모아 몇개월 만에 이뤄낸 일이었다.
그런데 2022년 10월 공장에 불이 나 공장동이 전소됐다. 기다려달라던 회사는 한달 만에 문자로 공장 청산을 통보했다. 그 한달 동안 일본 본사는 또 다른 100% 국내 자회사인 한국니토옵티칼(평택)에서 대체 생산할 수 있도록 준비했고, 이후 신규 인력도 30명 채용했다. 두 회사(사업장)는 납품처만 다를 뿐 동일한 설비, 원재료로 같은 제품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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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문자 한통으로 청산을 통보하고 희망퇴직을 받는 태도에 너무 화가 났다. ‘그냥 불났으니까 위로금 줄게, 나가. 우리 지금 너희에게 최대한 인심 쓰는 거야. 이거라도 받고 떨어져.’
회사의 소모품 같은 대우에 투쟁이 시작됐다. 1년 넘게 투쟁하면서 많은 사실을 알았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외국투자기업으로 2003년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하면서 토지 50년 무상임대와 법인세, 취득세 감면 등 온갖 혜택을 누렸고, 18년간 7조7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가운데 원재료와 상품 매입비 등으로 6조원 넘게 본사로 흘러갔고, 이와 별도로 로열티와 배당으로 2천억원가량이 본사에 지급됐다. 그런 회사가 공장 철거를 방해한다면서 전셋집에 가압류를 걸고, 공장에 단전·단수를 자행하며 철거하겠다고 매일같이 찾아와서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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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에 관해 열어두고 대화로 해결하자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회사는 일방적인 청산 통보 뒤 지금까지 모든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다른 곳 책임은 없을까. 구미시는 고공농성에 들어가자마자 공장 철거를 승인했고, 고용노동부는 교섭을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서도록 하기는커녕 방관적인 태도만 보인다. 법원은 2023년 8월 회사가 제기한 가압류를 충분한 입증도 없이 곧바로 받아들였고, 공장철거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노조 사무실 철거까지 허용했다. 회사는 화재보험금 1300억원까지 다 챙겨 도망치려 하는데 그 누구도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노동자는 권리도 없고 존중받을 가치도 없는 걸까? 1월8일 소현숙 지회 조직2부장과 함께 공장 철거를 막기 위해 옥상에 올라왔다. 공장 재건, 고용승계 쟁취를 외쳤다. 재건이 어려우면 평택공장에서 고용을 승계하라는 게 우리의 요구다. 온몸으로 공장 철거를 거부하고 고용승계가 되는 날 내려가겠다고 다짐했다. 정부는 특혜만 누리다 도망치는 외투기업 먹튀 문제를 모르는 척하고 있다. 누군가는 반드시 외투기업의 노동자 고용 등의 책임 문제를 물어야 한다.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한달이 넘었다. 2월16일 법원이 예고한 강제집행을 막기 위해 전국에서 1천여명의 노동자가 모였다. 우리의 목소리는 구미시를 넘어 전국에 퍼져나갔다. 강제집행은 막았지만, 그들은 또다시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범한 노동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장을 지키고, 우리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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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는 한겨레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캠페인즈에도 게재됩니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코멘트
2회사는 노동자의 권리를 아주 쉽게 강탈할 수 있지만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고공농성을 펼쳐야 하는 사회. 이런 사회가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요? 높은 곳에서 위태로운 농성을 해야만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있다면 그 권리가 충분히 보장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일들을 보면 한국이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말은 다 거짓말 같습니다. 한국은 '노동자로 일하기 힘든 나라'인 것 같네요.
노동자들의 권리 수호를 위해 할수있는 것들을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