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하니'와 '김어준의 뉴스공장' 뒤에 숨겨진 것
이전 글에서 필자는, 뉴진스 하니의 국정감사 출석을 다룬 언론보도를 다루면서, ‘왜 하니가 거기 있어야 했나’라는 질문에 우리 모두가 답하지 않으면 또다시 국정감사를 둘러싼 문제는 반복된다고 언급했다. 이것은 국정감사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게 쥐여진 하나의 중요 권한으로서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관련있다. 즉, 국가기관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고 있느냐 못하고 있느냐를 우리 모두 감시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나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와는 조금 다르게, 국정감사에 대해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바로, 국정감사를 수행하는 주체로서 국회와, 이를 그대로 기사로 받아써낸다는 가정 하에 언론이, 어떠한 공모를 통해 우리에게 특정 사실을 주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소 뜬금 없지만, 필자는 저널리즘 연구자로서 ‘김어준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를 수행 중이다. ‘김어준 저널리즘’을 둘러싸고 흔히 공정성 시비가 있는데, 이것이 어떠한 맥락에서 ‘공정성 시비’가 되는지 살펴보고 있다. 즉, <김어준의 뉴스공장> 내용이 편파적이냐 그렇지 않느냐는 둘째치고 ‘그것은 불공정하다’라는 담론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관심 갖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김어준 씨가 TBS에서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시작한 2016년부터 2024년 최근까지 관련 기사를 두루 살펴보니, ‘<뉴스공장> 프로그램은 문제적’이라는 담론이 주로 국회 국정감사 시즌에 생산된다는 점이었다. 2016년 9월 프로그램 편성 이후, 그해 국정감사에서 곧바로로 TBS가 거론됐다. (국정감사는 9~10월 통상 진행된다.) 당시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TBS가 시사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뉴스공장>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특정 프로그램을 거론한 것은 아니었으나, 당시 <뉴스공장>에서 다루던 아이템을 지적하며 그것이 ‘교통방송’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TBS의 기능을 문제 삼았다기보다는, 김어준 씨가 <나는 꼼수다> 시절부터 보수 진영 비판을 주로 다뤄왔고, <뉴스공장>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다뤘기 때문에 미리 지적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슷한 문제제기는 그 다음해 국정감사에도 또 등장했다. 2017년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당시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이 TBS를 지적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2016년과 2017년 사이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있었기 때문에, 언론 보도를 두고 ‘특정 언론사는 편파적이다’라는 담론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보수 언론을 포함한 많은 언론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서의 실정을 보도했다. 이는 <뉴스공장>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뉴스공장>을 통해 새롭게 나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시기 동안 보수 언론에서 <뉴스공장>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날 세우지 않았다. 그러다 2017년 국회 국정감사 시즌이 되자 또다시 TBS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던 것이다. <뉴스공장>이 실제로 편파적이거나 문제가 있으니 지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 어떤 것을 다루고, 부각하고, 선전할 것인지는 선택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국정감사라는 도마에 오르지 않는다.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각 의원실 마다 스스로를 부각시킬 만한 이슈를 준비하고, 그것을 국정감사장에서 언급하며, 그 국정감사장이 화제가 되면 될수록 언론 보도에 많이 오르내리고, 기사화가 많이 되면 일반 국민, 대중, 독자들에게 더 많이 도달한다. 당시 박대출 의원실이나 최명길 의원실에서는 TBS 방송사에 대한 문제제기를, 그 해의 자신들이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제기할 이슈 중 하나로 정한 것이다. 탄핵 기간 사그라들었던 <뉴스공장> 편파성 담론이 국정감사 기간이 되자 다시금 수면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국정감사 기간 한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인 것처럼 부각된다. 앞서 ‘공모를 통한 특정 사실 주입’을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당시 국민의당이 2017년 국정감사에서 TBS를 집중 공격한 것은 <뉴스공장>에서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대표를 비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뉴스공장>은 그해 4월부터 ‘안철수 혼밥’, ‘철수당’ 등의 발언으로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법정제재를 받은 바 있다. 즉,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무엇을 이야기할지는 이런 방식으로 선택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진실 레짐(regime of truth)’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사회이론가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말한 개념으로, 사회에는, 한 사회가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기준이자, ‘진실’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종의 체계가 있다는 점을 일러주는 개념이다. 진실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체제·제도(Regime)를 진실 레짐이라 하는데, 이는 단순히 진실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권력관계와 제도들 속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어떤 지식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특정한 절차나 제도(예를 들어 학술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든지)를 거쳐야 하며, 특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예를 들어 전문가, 학자)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권력분립의 원리, 대의제의 원리 등에서 출발한 국정감사는 의회가 정부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현재는 국정감사가 이 제도의 취지인 행정부에 대한 통제, 권력 감시, 공공적 차원에서의 제도 개선 등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비판이 많지만,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한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국정감사가 일부 정치인들이 특정 담론을 유포하는 통로가 되고 특정 진실을 만들어가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사회의 공익을 위해 쓰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부분 언론에 달려있다. 언론이 국회를 감시할 수 있는 여러 기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를 지켜볼 떄는 일종의 메타인지가 필요하다. 단순히 정부가 제대로 일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그 감시의 과정 자체를 다시 한번 성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뉴진스 하니가 출석한 올해의 국정감사나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겨냥했던 과거의 국정감사나, 결국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정감사가 만들어내는 ‘이슈’의 이면에는 항상 누군가의 의도가 숨어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언론의 행태 역시 우리가 감시해야 할 대상이다. 국정감사는 감시의 도구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감시의 과정 자체도 우리의 감시를 필요로 한다. 참고문헌 금준경. (2016, 10, 13).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불법? 법이 문제다. 미디어오늘. 배정철. (2017, 10, 15). 국민의당이 국감서 tbs ‘김어준 뉴스공장’ 집중 공격하는 사연은. 한국경제. 주원진. (2017, 10, 13). [국감] "TBS 김어준 프로그램은 불법"…이효성 방통위장 뒤늦게 인정. TV조선.
·
1
·
뉴진스 하니 국정감사, 원래 뭐하는 곳이게요?
앞으로 2024년 국정감사하면 ‘하니’가 떠오를 것이다. 그만큼 아이돌 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의 국회 출석과 증언은 화제였다. 최정상 아이돌 그룹 멤버의 국회 출석은 드문 일이기도 하고, 여기엔 ‘하이브’와 ‘어도어(또는 민희진)’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뉴진스는 K-POP 산업 대기업 ‘하이브’의 자회사, ‘어도어’ 소속 아이돌 그룹인데, 하이브와 어도어는 경영권·프로듀싱 권한 등으로 갈등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9월 뉴진스는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하이브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게 되는데, 하니는 그에 대한 증언을 하러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자, 하니가 국정감사장에서 “회사에서 저희(뉴진스)를 싫어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 것이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한국어 공부 더 열심히 해서 나오겠다”고 한 것 외에 무엇이 기억에 남는가? 일단 애초에 하니가 출석한 국정감사장이 무엇을 다루는 내용인지 기억에 남는가? 국정감사 내용을 언론을 통해 전달 받는 우리는, 언론에서 거의 그런 바를 다룬 적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월 15일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최저임금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한 날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고용노동정책이나 관련된 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자위원(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3자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노사 간 이익 및 권리 분쟁에 대한 조정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으로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조직이다. 이들 기관을 둘러싼 아주 구체적인 최근의 쟁점은 다 알 수 없지만, 기관소개 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는 예측 가능하다.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 쿠팡을 포함한 심야 배송 노동자의 과로사 등에 대한 기사가 끊임 없이 나오고, 매년 최저임금을 정해야 하는 7~8월이면 노동계와 사용자 측의 대립도 이어진다. 최근에는 경사노위에서 정년 연장을 두고 노사 간 합의를 도출해 내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외에 유연근로제, 교원의 유급 노조활동 보장 등도 이 기관에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정감사는 이들 기관에 대해 감사하는 자리이다. 국정감사 자체가 국정전반에 관해 실시하는 정기 감사이다. 국회에 있는 각 위원회, 예를 들어 하니가 출석한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소관 피감기관(환경노동위원회는 고용노동부, 환경부 등을 전담)을, 또 다른 위원회에서는 그들이 담당하는 피감기관을 상대로 감사를 벌인다(예를 들면 기획재정위원회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을 담당). 그렇다면 그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이들 피감기관에 대해서 무엇을 감사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국정감사 관련 소식을 여전히 언론을 통해 전달 받는다. 그런데 그날 ‘하니’나 ‘김주영(기존 뉴진스 프로듀싱을 하던 민희진 전 대표를 제치고 최근 어도어 대표로 임명됨)’을 제외하고 환노위 국정감사를 다룬 기사를 찾아보니 거의 없었다. 있어도 ‘답변하는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 ‘인사말하는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 ‘넥타이 고쳐매는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같은 사진 기사일 뿐이다.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올해 들어 노동자 5명이 숨진 한화오션에 대한 노동당국의 미흡한 조치를 지적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하니를 다룬 기사에 비하면 한 줌일 뿐이다. 2020년 기준, 전체 기자직 종사자는 대략 3만여명으로 추산되고, 그중에서 5%가 국회에 등록돼 있다고 한다. 국회 출입기자가 1,700명정도 된다는 이야기인데, 국회라는 공간에 300명의 개별 헌법기관(국회의원 개개인은 헌법기관이다) 있다고 하나 그렇더라도 이는 굉장히 많은 숫자이다. 청와대는 200여 명(2020년 기준), 검찰 기자실 또한 200여 명(2019년 기준) 정도 된다. 물론 이름만 걸어둔 이들도 있겠지만, 국회를 출입하는 저 많은 수의 기자들이 모두 다 뉴진스 하니 기사만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딘가 의아하다. 국정감사는 하이브에 대한 감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국가의 일을 적법하고 적정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따져보기 위해 매년 특정한 기간 내에 국회가 실시하는 감시·감시 제도인데 말이다. 뉴진스 하니를 부른 것은 ‘직장 내 괴롭힘’ 사안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중앙부처의 국정 수행에 대해서는 국민 그 누구도 적절하게 평가하지 못했다. 언론에서 이를 다루기 보다는 뉴진스 하니의 “한국말 공부”를 다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언론이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국회를 제대로 감시했다는 의미도 아니고, 국정감사 대상이 된 피감기관의 국정감사 대응에 대해 감시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그날 국회에서 있었던 일 중 논란이 될 만한 일을 몇 자 적어 포털에 송고하기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블로거나 인플루언서가 맛집이나 팝업스토어에 다녀온 후기를 포털이나 SNS에 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부실한 국정감사는 오랫동안 지적받아왔다. 자주 지적되었던 것이 형식적인 자료제출 요구, (그와 반대로) 피감기관의 자료미제출, 피감기관 과다로 인한 부실국감, 무리한 증인신청이나 꼭 필요한 증인의 미출석, 질의 시간 부족 등이었다. 이것은 국정감사라는 제도가 민주화 이후 4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오면서 누적된 문제적 시스템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데 언론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 문제가 지속되는 것만큼이나 언론이 국정감사를 다루는 방식도 늘 똑같기 때문이다. 매년 화젯거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뉴스에 오르내리고, 그렇게 두 달 정도 정신 없이 지나가면 국정감사가 끝나있다. 뉴진스 하니의 국정감사 출석을 다룬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물론 화제가 될 만하다. 그런데 ‘하니가 무슨 말을 했나’에 그치기 보다는 ‘왜 하니가 거기 있어야 했나’로 우리 모두가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은 많은 방향의 답을 요구한다. 왜 환노위원장은 같은 당 의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뉴진스 하니를 증인으로 불렀을까. 국회 국정감사는 무엇을 하는 곳이기에 하니가 그곳에 있어야 했을까? 하니의 발언이 국회가 법을 만들고 행정·사법 등 다른 권력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일이었을까? 물론 하니도 아이돌 노동자라고 한다면, 아이돌 노동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은 어떤 의미일까. 하니가 거기 있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동안 우리는 어떤 것을 모르고 지나갔나. 언론도, 뉴스를 보는 우리도, 국정감사의 주체인 국회와 피감기관도, 모두가 여기에 답을 해야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에도 또 반복된다. 참고문헌 김경래의 최강시사. (2019, 11, 12). [김경래의 최강시사] KBS보도국장 “수신료 받고 그것밖에 못해?” 비판에 답해야. KBS. 노지민. (2020, 5, 14). 출입기자 1700명 시대, ‘국회 기자’의 오늘. 미디어오늘. 신성용. (2019). 현행 국정감사제도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성균관법학, 31(2), 61-111. 조재길. (2020, 1, 13). [월요전망대] 17일 열리는 금통위…'금리인하' 소수의견 몇 명 나올까. 한국경제.
·
6
·
[이태원 참사]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
“참사 당일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단 10분을 요구하고 싶어요.”   모 신문 편집국 내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회고를 했을 때 나온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회부 사건팀 부팀장(vice·바이스)이 전했고, 이 말을 직접한 사람은 그의 후배 기자였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소속 기자들은 가장 먼저 현장에 뛰어드는 편집국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각 언론사에서 가장 연차 어린 기자들이 배치되는 부서이기도 합니다. 그가 10분을 요구한 이유는, 취재 현장으로 나가기 전 함께 재난보도준칙을 읽고 왜 우리는 이 취재를 해야 하는가를 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난보도준칙은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9월,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국내 대표적인 언론현업인단체가 모여 만든 일종의 취재·보도 가이드라인입니다. 언론인 스스로 필요하다고, 지켜야한다고 정해놓은 규범이므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취재 전 다같이 재난보도준칙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태원 참사 초반에 드러났던 보도문제, 즉 혼란스러운 초기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무차별적인 취재 경쟁을 벌이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현장에 배치된 기자들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가이드라인대로 행동하기는 무척 어렵고, 특히 연차 어린 기자들이 배치된다면 이들이 처음 경험하는 현장에서 가이드라인대로 취재하고 보도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재난보도 상황에서 작동하는 문제적 ‘보도관행’ 그런 점에서 우리는, 뉴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적 '관행'이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경희(2019)는 세월호 참사 당시 기자들이 반복한 ‘잘못된 관행’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물론 기자 개개인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뉴스를 만드는 일은 여러 가지 선택지를 선택하는 상황, 즉 갈등구조 속 반복되는 선택행위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특히 재난사고의 경우,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어떤 소재에 주목하고 어떤 취재원을 만날 것인지, 사회적 참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정부와 국회 등에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면 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사안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갈등구조는 깊어지고, 언론인·언론사·언론조직 등이 어떤 관행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해당 연구 결과, 재난현장 취재과정에서 4가지, 보도과정에서 5가지의 갈등구조와 그 속에서 선택된 관행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취재과정에서는 △‘재난 현장’과 ‘정부 발표’ 사이 △‘피해자 인권’과 ‘뉴스거리’ 사이 △‘현장 자율 취재’와 ‘본사(데스크) 지시 취재’ 사이 △‘타사와의 취재 경쟁’과 ‘타사와의 협력 취재’ 사이에서 기자들은 갈등합니다. 그 속에서 △정부 발표는 신뢰하지만 피해자는 비신뢰하는 관행 △피해자 인권보다는 뉴스거리, 특히 영상 중심으로 취재하면서 비윤리적 취재를 하게 되는 관행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데스크의 지시를 일단은 따르는 톱다운 방식의 취재 관행 △비협력적 취재 관행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보도과정에서는 △‘현장 보고’와 ‘정부 발표’ 사이 △‘피해자 중심 보도’와 ‘권력자 중심 보도’ 사이 △‘핵심 사실 보도’와 ‘기계적 중립 보도’ 사이 △‘정확한 보도’와 ‘신속한 보도’ 사이 △‘선정적 구성’과 ‘절제된 구성’ 사이에서의 갈등구조가 드러납니다. 세월호 보도에서 대부분의 데스크는 △현장 보고보다 정부 발표를 보도하기를 선택했고 △피해자의 요구나 주장보다는 권력자의 행보나 언행을 보도했으며 △재난사고의 원인과 재난 대응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밝혀내는 보도보다는 이것이 정부나 행정 관리자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되는 것을 고려하여 ‘중립성’이라는 저널리즘 원칙을 따라 보도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매체 환경의 영향으로 △신속한 보도와 △선정적 구성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행들은 한국 저널리즘의 고유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뉴스거리를 정부나 공권력의 발표에 의존해온 방식, 타사와 협업 취재보다는 기자 개인기를 통한 특종과 단독에 더 집중하는 문화, 정파성에 대한 두려움과 중립성 신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사회 비판 보도를 정파적 보도로 여기고, 정파적 보도는 편파적이고 중립적이지 못한 보도라고 해석하는 관점), 속보와 같은 정보의 빠른 전달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보는 관점 등이 중첩되어 참사·재난보도에서의 문제 상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위험커뮤니케이션 상황 하에서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 ‘전문가’와 위험을 인지해야 할 ‘대중’ 사이를 언론이 잘 매개해야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러한 취재관행은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적 질문 : 언론은 무엇인가요? 재난 상황에서 제대로 보도해줄 언론을 기대하는 우리들은, 언론이 이런 문제적 보도관행을 갖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며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더 근본적으로, 언론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은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것들을 기대하나요? 일반 시민들·대중들에게 언론은 무엇인가요? 기대가 좌절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언론과 언론인들이 생각하는 언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지만 기자들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역할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2022년 열린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다시 본 재난보도준칙’이라는 토론회에서 한 기자가 이같이 말했습니다.   “(재난보도)준칙 제13조에 유언비어 방지 부분(모든 정보는 출처를 공개하고 실명으로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확인되지 않거나 불확실한 정보는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유언비어의 발생이나 확산을 막아야 한다)이 있는데 이 대전제에 반대할 기자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현장에서 나의 일이 됐을 때 솔직히 장담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당시 마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든가 연예인이 있어서 사람들이 몰렸다는 목격담이 있었는데, 수사기관 등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 이런 내용을 일체 전하면 안 되는 건가란 생각을 했다. 왜냐면 당시 현장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내용을 전하는 게 현장성을 지키는 제1의 기준일 수도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어디까지 현장을 전해야 하는 건가 고민이 들었다.”   ‘현장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제1의 기준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것은 상황마다, 시기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현장 정보 전달’을 언론의 역할 1순위에 놓게 되면 언론의 또 다른 역할들은 2순위, 3순위로 밀리게 됩니다.   떠올려봅시다. OO일보 사회부 사건팀 소속 신입 기자는 2022년 10월 29일 왜 해밀톤 호텔로 갔어야 할까요? (1)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시, 그 중심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사고’가 무엇이고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취재하여 알리기 위해서일까요? (2) 들어보니 엄청난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이고 그렇다면 이는 대중의 주목과 관심을 끌 수 있는 뉴스거리이니 취재해야하는 것일까요? (3) 벌어진 ‘사고’에 대해 공권력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사고’를 ‘사회재난’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기 위해서일까요? 대체 그는 왜 거기로 가야했을까요?   언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기자·언론사의 취재·보도 과정 또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과정이라고 본다면, 언론의 취재 과정과 목적은,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관점을 그대로 적용해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사건사고를 알리기 위해서 취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커뮤니케이션을 ‘정해진 양의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전달모델·transmission). 이는 기본적으로 미디어(언론)에 대해서, 정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과정, 즉 정보와 거리와 사람을 통제control하는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이것이 이태원 참사에서의 보도 문제를 일으킨 원인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관점으로 언론의 역할을 바라본다면 분명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2) 대중이 궁금해 하는 뉴스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취재해야 한다는 개념은 어떨까요.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주의를 끄는 것’으로 생각합니다(공시모델·publicity). 즉, 언론(매스미디어)은 대중의 눈길을 끌고, 감성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언론은 후술할 ‘규범 이론’의 적용을 받는 편이므로 공시모델로 완벽히 설명되진 않지만, 단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관점(전달모델)보다는 가치중립적인 면모를 띄며, 우리가 미디어(언론)에 대해 ‘이들은 광고주에게 대중의 주목(attention)을 팔아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고 설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3) 언론, 저널리즘은 일반적으로 위의 관점보다는 ‘규범 이론’으로 설명됩니다. 규범 이론이란, 언론의 이상적인 구조와 운영 방법은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가치와 원칙을 정하고 – 예를 들면 ‘언론 운영을 규제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미디어에 대한 직접 규제는 정당하다’, ‘정부 규제도 언론 자유도 모두 필요하다’와 같은 내용 – 이런 것들과 연관해서 언론의 책무가 정해집니다. 1920년대 미국에서 정부 규제를 요구하는 압력이 늘어나면서, 미디어 경영자들은 규제를 정부에 맡기기 보다는 공중의 필요에 맡기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언론에 감시견 역할이 부여되고, 언론이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부Fourth Estate로 그려지게 됩니다.   이태원 참사와 미디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이 두 가지에 어떠한 직접적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론인 스스로와 언론사가 이태원 참사를 포함한 취재 현장에 ‘왜’, ‘무엇을 취재하기 위해’ 가야하는지 생각할 때 필요한 근본적 사상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언론의 역할을 떠올리고 그들을 분석하고 평가할 때 쓰일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현장에서 느낀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기자의 다짐은 언론을 정보 전달자로 한정하는 관점입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를 전달함으로서 사회 다양한 요소를 통제하는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쥐어줄 것인가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설명하는 또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뉴스가 전달되거나 제공된다는 인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공동체에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즉 어떤 의미를 생성해내며, 공동체가 공통으로 갖게 되는 행동이나 공유하게 되는 신념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는 관점입니다. 오늘 읽었던 뉴스가 나에게 어떤 정보를 주었는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많은 한국 사람들이 출근길에서 뉴스를 읽는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행동인지,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일련의 보도행태에서 우리는 어떤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는지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입니다(의례적 관점·a ritual view of communication).   기자가 고민으로 언급한 것처럼, 참사 초기 ‘마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목격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MBC에서는 뉴스특보를 진행하던 도중 ‘단순 압사 사고가 아니라 약이 돌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 인터뷰를 그대로 내보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목격담을 전하는 것이 부적절했던 이유는, 해당 현장에서 나온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실제로 현장에서 이런 목격담이 떠돌았던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태원 참사를 구성하게 될 여러 의미에 대해서 깊이 숙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했던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떠올려볼 때, 이태원이 한국 사회에 의미해 온 장소성이 있습니다. 박상은(2023)은 이태원 참사가 어떻게 의미 구성이 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왜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었는지(즉, 안전 대책이 설계되지 못했던 행사였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2010년대 들어 이태원의 지역 성격이 바뀌는 상황에서 도시계획은 여기에 발맞추지 못했고, 덩달아 이태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이 작용하면서 핼러윈 축제는 지자체의 관리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장소성은 참사 이전부터 작동해왔다는 점입니다. 이국적이고 자유로운 공간, 그러나 위험하고 문란한 공간이라는 사회적 시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며 참사의 의미를 왜곡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태원 참사를 어떠한 의미로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여기서 한국 언론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 언론이 이것까지 염두에 두었다면 ‘마약 목격담을 전달해야 한다’는 감각을 가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재난과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을 구성하기 결국 우리는 재난과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서 남아있는 진상규명은 무엇이고,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 필요한데 말입니다. 그러나 울리히 벡(Beck, 1986)이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에서 말한 대로, 문명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겪을 위험은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계속 커질 것이라면, 위험과 대중 사이를 매개할 언론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하는지 고민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이 아주 새롭게 이뤄져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들었다는 재난보도준칙을 다시 봅시다. 내로라하는 언론인들이 만들었다는 이 가이드라인엔 이미 해답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일례로 제8조(통제지역 취재) ‘병원, 피난처, 수사기관 등 출입을 통제하는 곳에서의 취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관계기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는 조항이나, 제18조(피해자 보호)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등의 규정이 있습니다. 새로운 뉴스거리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캐물으며 공격적으로 취재하는 기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혼란이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재난으로부터 공동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이 또한 기자의 역할이자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
2
·
사이버 렉카 해결방안③ : 표현의 자유 다시 생각하기
서니조의 ‘사이버 렉카 해결방안' ① 수익 창출 중지 ② 젠더 기반 폭력 근절 ③ 표현의 자유 다시 생각하기 유튜버 쯔양의 과거를 사이버렉카 유튜버 ‘구제역’에 건넨 것으로 알려진 변호사A. 그는 모 경제일간지에서 기자로도 일했습니다. (변호사A는 폭행 및 협박 등 혐의를 받는 쯔양 전 연인의 법률 대리인이었고 이때문에 쯔양의 사생활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변호사A는 또 다른 사이버렉카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에서 지난달 10일 이 사건을 처음 공론화 한 이후 자신이 일하는 언론사를 통해 <유명인의 과거를 폭로한다면...명예훼손 성립할까[최우석 기자의 로이슈]>라는 글을 썼습니다. (현재는 삭제됐습니다.) 그는 쯔양을 둘러싼 논란을 언급하면서 “이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될까”라는 말을 꺼낸뒤 정보통신망법 상으로는 처벌되기 어렵지만 형법 상으로는 처벌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다만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고, 표현된 사실에 공익성이 있다면 언론사가 아니더라도 그 표현은 보호가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표현’ 그 자체를 옹호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헌법을 인용하며 ‘표현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명인의 과거를 폭로하는 행위는 일종의 ‘표현’=그것은 모든 국민의 자유]라는 굉장히 단순한 등식을 만들어냅니다. 폭로 대상이 누구인지, 폭로 내용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표현의 자유’의 영역인지는 다를 수 있는데 말입니다. 누구로부터의 ‘표현의 자유’인가? 현재는 천부적 인권으로 여겨지는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 freedom of expression)는 여느 사회적 가치, 사회적 권리처럼 ‘쟁취된 것’ 입니다. ‘천부적’이라는 표현은 실제로 하늘에서 무언가 뚝 떨어졌다는 설명이 아닙니다. 왕이나 종교의 지배가 당연하던 전근대·근대 사회에서, 인간 개개인은 왕권이나 종교도 뛰어넘는 존재에게서 특정 권리를 부여 받았으므로,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 행사는 당연하지 않다는 저항의 도구로 해당 표현이 쓰인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투쟁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모국이었던 영국에서 자유주의 사상가들로부터 시작되었고 또 활발히 전개됐습니다. ‘사상의 자유 시장’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한 것으로 유명한 1644년 영국 존 밀턴(John Milton)의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에서, 그는 당시 ‘출판 허가제(일종의 검열)’를 비판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외쳤습니다.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도록 하라”는 유명한 문구도 여기서 나옵니다. 17세기 영국은 정치적(왕당파vs의회파)·종교적(영국국교회vs가톨릭vs청교도) 갈등으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밀턴(의회파이자 청교도)의 저술이 반대 쪽에 의해 고발 당하자 밀턴은 이 글을 썼습니다. (다만 밀턴은 이를 자유주의적으로 접근했다기보다 신학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빌려준 것은 책을 읽고 양심의 명령에 따라 선과 악을 선택하라는 의미’라며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으나 표현의 자유는 곧바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오히려 권력층, 지식인층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고 이는 이웃나라인 영국의 지배층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근대적 보수주의자로 알려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1790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에서 프랑스 혁명이 급진적이란 이유로 비판했습니다.  대조적으로 영국의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1791년 발표한 <인권 Rights of Man>에서 이를 반박하며 프랑스 혁명을 옹호했는데, 그는 국가 반역자로서 유죄판결을 받게 됩니다. 당시 “뚱뚱하고 부유하고 명성 있는 사람들”(지배계층을 묘사하는 표현)은 프랑스 혁명을 옹호한 페인에 대해 “차가운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묘사돼 있습니다(John Keane, 1995). 이후 19세기 초 유행한 공리주의에서는 소수 지배계급보다 다수의 피지배계급이 향유할 몫을 늘리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고, 공리주의 이후 빛을 발한 자유주의에서는(19세기 후반) 자유 토론 그 자체를 통해 우리는 진리(truth)를 알 수 있다는 믿음으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게 됩니다. 어찌되었든 ‘표현의 자유’란 그 시작부터 발전 과정 내내 국가(또는 권력)의 개인(또는 일반 시민) 규제에 대한 투쟁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의 전제정치가 낳은 달갑지 않은 자식”인 셈입니다(John Keane, 1995). 표현을 엄격히 통제하며 억압하고자 했던 국가들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된 개념이 ‘표현의 자유’라는 것입니다. 국가만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 정치권력, 국가만은 아니었습니다. 시드니 대학교 정치학 교수 존 킨(John Keane)은 민주주의에 대한 창의적 사고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언론과 민주주의 The Media and Democracy>(1991)에서 언론·출판의 자유(표현의 자유)가 시장으로부터 위협 당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이념이 발생한 근대 초기에는 전제 정치에 대한 교정 수단으로 시장 경쟁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당시 시장에선 소규모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당시 인쇄업은 영세민의 직업이었습니다) 당연히 탈중심적이었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지킬 핵심 요소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인쇄, 출판, 언론 영역은 대기업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고, 존 킨은 이미 당시 언론 재벌이었던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등을 포함하여 시장자유주의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언론 및 커뮤니케이션 산업에서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했습니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공공이익 중심으로 규정되어 온 정보 개념을 사적 전유가 가능한 상품 개념 중심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시장이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를 제약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커뮤니케이션의 자유와 무제한의 시장자유 사이에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 의견 시장에서 개인적 선택의 자유라는 시장자유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기업담화의 특권을 정당화하며 나아가 시민보다 투자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개인적 선택의 자유란 거대기업(king-sized business)이 어떤 것을 듣거나 읽고 보는 데 관계되는 사람들의 선택행위를 조직하고 결정하기 위해 심지어는 검열하기 위해 행사하는 권력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 같은 책, 번역본(1995), 116p 게다가 ‘표현의 자유’는 자신이 위협 당하기도 하지만, 특정 대상을 위협하는 위치에 서기도 합니다. 젠더·섹슈얼리티 등을 연구하는 매튜 홀(Matthew Hall)과 제프 헌(Jeff Hearn)은 <리벤지 포르노 Revenge Pornography>(2017)에서 “언론 자유와 성적 해방이라는 형태의 자유주의가 포르노그래피를 주류로 이끄는 현상”의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포르노그래피를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여성은 종속적이고 남성은 힘을 가진 지배자의 모습으로 위치하는 경향을” 만드는 것이라 본다면,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자유주의가 포르노그래피를 주류화, 즉 젠더 차별을 주류화 시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권력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만들어진 ‘표현의 자유’가 20세기에 와서는 “여성에게 미칠 수 있는 잠재적 해악을 고려하지 않는” 데에 쓰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80년,  앤드리아 드워킨(Andrea Dworkin)과 캐서린 맥키넌(Catharine MacKinnon)과 같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반포르노그래피 조례를 제안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습니다. 근거는 수정헌법 제1조였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조례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미국 역사학자 조안 호프(Joan Hoff)는 <For Adult Users Only : The Dilemma of Violent Pornography(성인 전용: 폭력적 포르노그래피의 딜레마)>(1989)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페미니스트와 자유옹호론자들 간의 이러한 의견 충돌(포르노그래피를 제재하는 데에 대한 의견 불일치)은 드라마틱하고 법적으로 해결이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가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말과 달리 행동은 그렇지 않으며(여성들은 성과 관련한 문제에서 완전한 자유 표현을 경험할 수 없다고 조안 호프는 말했습니다)’, 또한 “반포르노그래피 조례가 다루려고 하는 여성에 대한 해악에 전혀 대응하지 않기 때문(wholly unresponsive to the very problem of harm against women)”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주장의 맥락 파악해야 사이버렉카 문제가 공론화 되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관심을 보였습니다. 해당 사태 이후, 온라인상 악의적 명예훼손에 따른 수익은 몰수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조인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비슷한 내용에 더해 명예훼손 형량을 높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조승환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 등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법안 통과는 낙관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중요합니다. 표현의 자유는 공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히 토론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근간이 된다는 데서 민주적 지배의 핵심 수단이며, 당연히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이자 필수 요소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표현은 모든 표현이 아니며,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주요 요소인만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이유도 민주주의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문재완, 2011). 사이버렉카 문제를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 보호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복잡한 과제’로 본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오남용하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을 틀에 박힌 이분법 안에서 사용하기보다는 좀 더 맥락에 맞게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이버렉카 문제는 표현의 자유 vs 개인의 사생활 보호 구도가 아닙니다. ‘주목(attention)을 상품화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나쁜 주목, 비공익적 주목을 걸러낼 것인가’, ‘공익적 주목과 비공익적 주목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등에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2013)에서 여성주의 시선으로 인권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모든 인간이 인권을 갖는다는 근대적 인권 개념의 보편주의는, 진보적인 동시에 문제적인 사유 방식이다. (중략) ‘강자의 인권’일 경우에도 진보적 가치가 될 수 있을까? (중략) 인권 개념의 보편성은 사회적 약자에게 적용될 때만 ‘인권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중략) 즉, 표현의 자유는 아무 때나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규범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저항일 때만 권리로 존중될 수 있다.” 김정재, & 왕준열. (2024, July 16). “쯔양 협박” ’난교 파티’…날뛰는 “사이버레커” 규제 법안 나올까. 중앙일보.  박상혁, 서어리. (2024, July 19). ‘구제역’에 쯔양 과거 제보한 변호사, ‘사이버렉카, 명예훼손 어렵다’ 기사 썼다. 프레시안. 전상욱.  (2024, July 31). [세평] 사이버렉카가 끼치는 사회적 영향. 대전일보.  조동현. (2024, August 3). 사이버 레커 수익 몰수한다...‘쯔양법’ 잇따라 발의 [국회 방청석]. 매경이코노미.  문재완. (2011).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 청자(聽者) 중심의 표현의 자유 이론을 위한 시론 ―. 세계헌법연구, 17(2), 85-110. 정희진. (2013).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Delegard, Kirsten. "Minneapolis Anti-pornography Ordinance." MNopedia, Minnesota Historical Society. (accessed August 9, 2024). Hall, M., & Hearn, J. (2017). Revenge Pornography: Gender, Sexuality and Motivations (1st ed.). Routledge.  Keane, J. (1991). The Media and Democracy. Polity Press.
공론장
·
6
·
사이버 렉카 해결방안② : 젠더 기반 폭력 근절
서니조의 ‘사이버 렉카 해결방안' ① 수익 창출 중지 ② 젠더 기반 폭력 근절 ③ 표현의 자유 다시 생각하기 유튜브가 사이버 렉카 채널의 수익 창출을 중지한 데 이어, 검찰이 지난 23일 유튜버 ‘구제역’, ‘주작감별사’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 오늘(26일) 구속 여부가 결정됩니다. 이들이 쯔양을 협박한 빌미가 된 쯔양의 과거를 유출한 변호사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사이버 렉카 문제가 법적 판단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럴 때에 중요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끝까지 쥐고 있는 것입니다. 구속영장 발부가 되든 이들이 실형을 받든 그것은 법 위반에 대한 판단일 뿐 문제 해결의 종착지는 아닙니다. 이들의 수익을 빼앗고 법적으로 단죄하는 것은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일이라면, 사이버 렉카의 행동 원리를 파악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이 예방책에 가까울 것입니다. 주목은 조회수를 낳고 조회수는 돈을 낳습니다. (사이버 렉카의 행동 프로세스: [주목과 관심 끌기] → [조회수 높이기] → [수익 얻기].) 그렇다면 ‘주목’을 낳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국 사회 사이버 렉카 문제를 대표하는 두 사건에서 공통점을 찾아봅시다. BJ잼미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 렉카와 쯔양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렉카, 둘 모두 일종의 ‘폭로’가 ‘렉카’의 재료로 쓰였습니다. (한국 사이버 렉카 대표 사건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 시스템 ‘빅카인즈’에 ‘사이버 렉카’를 검색해보면 해당 단어는 2020년 이후 언론에서 널리 쓰이게 되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이버 렉카’ 관련 보도량은 세 번 급격히 늘어납니다. 2022년 2월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 BJ잼미의 극단적 선택 이후, 2024년 상반기 유튜버 ‘탈덕수용소’의 신상 확보 이후, 그리고 2024년 7월 현재입니다. ‘탈덕수용소’의 경우 두 사건과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으므로 논의의 명확성을 위해 BJ잼미, 쯔양 두 사건의 공통점에 집중하겠습니다.) 사이버 렉카는 무엇을 폭로하는가 BJ잼미의 경우 ‘페미니스트 폭로’에 시달렸습니다. 2019년 인터넷 방송 중 BJ잼미가 한 행동을 두고 ‘남성 비하’라는 의견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돌자 사이버 렉카 유튜브 ‘뻑가’가 이를 다루며 그를 저격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BJ잼미가 ‘집게손가락’ 손 모양을 했다거나, 여성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잘못도 아니거니와,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것을 교묘하게 편집”했으나 뻑가의 구독자들은 “온라인 폭력에 동조”했습니다. 특정 단어, 손 모양을 ‘남성혐오’라고 지목하거나 페미니스트가 문제라는 주장은 음모론에 가깝습니다. 혐오표현이라는 정의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특정 정치인이나 안티 페미니즘 진영에서 소수의 사례를 페미니스트의 상징인 것처럼 부각시킨 결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쯔양의 경우 ‘유흥업소 폭로’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구제역은 “쯔양 소속사의 A 변호사로부터 쯔양이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과거를 알게 됐”고 “듣자마자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 유혹이 생겼다”고 말했습니다. 유흥업소 근무의 경우, 쯔양 전 연인이 강요했고 수입 또한 갈취했다고 알려집니다.  사실 유흥업소든 비슷한 다른 장소나 공간이 되었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여성의 것이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에서 폭력, 매매, 협상의 대상”(정희진, 2013)이 됩니다. 이 모든 폭력-착취-협박-약탈 과정을 총체적으로 “4중의 착취”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나 사실의 이면이 어떠했든 사이버 렉카에게는 ‘여성이 폭로 당하면 위험한 것’이었고 쯔양을 협박할 도구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사회학자로 미디어와 현대 문화에 대해 연구한 존 톰슨(John B. Thompson)은 <Political Scandal: Power and Visibility in the Media Age 정치 스캔들: 미디어 시대의 권력과 가시성>(2000)에서 폭로의 한 형태인 ‘스캔들(scandal)’에 대해 기술하면서 스캔들이란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코드를 위반한 행위가 공개되어 광범위한 비난을 받는 현상”으로 정의했습니다. 물론 이때 톰슨이 주목한 스캔들은 공적 인물이나 권력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를 거꾸로 생각해본다면 ‘무엇이 스캔들로 폭로되느냐’를 살펴보는 것이 ‘해당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적 코드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두 사건이 폭로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한국 사회 젠더 규범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젠더 규범이란 사회가 특정 성별에 기대하고 규정하는 행동, 태도, 역할을 말하는데, 전통적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으로 이분법적 구조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젠더 규범은 강력한 형태의 권력으로 작용하며(미셸 푸코는 권력이 미시적으로 - 즉, 일상이나 삶 속에서 -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정 성별의 행동을 규제하거나, 사회적·직업적 역할을 제한해 왔습니다. 2023년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UNDP)’에서 발표한 ‘젠더규범지수’(Gender Social Norms Index·GSNI)에서 한국은 75개국 중 38위를 기록했습니다. 정치, 교육, 경제, 신체적 영역에서의 젠더 인식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지수로, 성평등을 결과적 수치(청소년 출산율, 성별 고등학교 진학률 등)가 아닌 인식과 편견의 차원으로 평가합니다. 중간 정도의 순위를 받았다는 점보다 눈에 띄는 점은, 한국이 2010년 조사 이래 젠더 편견이 없는 이들 비중이 줄어든 11개국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후퇴가 칠레 다음으로 큰 나라입니다. 젠더 기반 폭로는 폭력이다 사이버 렉카를 전수조사하면 더욱 정확하겠지만, 이로서 특정 사이버 렉카는 성불평등에 기반해 폭로, 지적, 공격, 괴롭힘을 이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이버 렉카의 경우, 젠더 규범을 기반으로 주목을 끌고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평판을 끌어내린다는 점에서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graphy·’불법 촬영물’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와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쯔양 또한 리벤지 포르노 협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매튜 홀(Matthew Hall)과 제프 헌(Jeff Hearn)은 <Revenge Pornography 리벤지 포르노>에서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의 90퍼센트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리벤지 포르노는 젠더에 기반한 폭력,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그리고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라는 방대한 영역의 일부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이버 렉카와 불법 촬영물이라니. 물론 둘은 공통점도,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이버 렉카가 젠더 규범을 어겼다는 이유를 들어 여성에 대한 폭로를 주된 소재로 삼는 경우(흔히 ‘여성혐오’ 사이버 렉카) 그것은 젠더 폭력에도 해당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여 용납 가능한 복수인 것처럼 만드는 일과, 여성을 통제하는 이중잣대를 규범이고 도덕인 양 하여 이를 이슈로 만들고 금전화 하는 일은 얼마나 다른가요? 이런 관점에서 젠더 기반 폭로는 폭력이며, 이를 폭력으로 인정하고 사회가 함께 젠더 폭력을 근절시켜 나가려 할 때 사이버 렉카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덧붙여, 언론의 변화 또한 필요합니다. 언론은 젠더 폭력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대신 여성을 향한 젠더 기반 괴롭힘·성차별적 문화와 이에 대한 백래시성 반발 사이의 논쟁을 ‘젠더 갈등’으로만 치환하고 갈등을 부추겨 왔습니다. 언론은 본래 갈등을 주요 자원으로 합니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언론에서 젠더 관련 뉴스는 주변화된 소재였다는 점, 언론이 가부장적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 - 2019년 미투 운동 보도의 심층·후속 보도가 지속되지 못한 원인으로 여성기자들은 상위 간부급 인력 구성이 50대 이상 중년 엘리트 남성 중심이라는 점을 꼽은 바 있습니다 - 등이 더해지면서 젠더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한국 사회와 언론의 젠더 인식 개선 모두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김다은. (2022, March 22). ‘사이버 레커’ 유튜버와 언론, 비극과 혐오로 돈을 번다. 시사IN.  김신현경. (2023, December 9). 여성 개발 정도가 높고, 성별 격차가 크며, 젠더 편견이 강한 나라:한국. 한국일보.  이수정. (2024, July 24). ’쯔양 사태’부터 ’나락보관소’까지[사이버레커 논란②]. 뉴시스.  이혜미. (2022, February 19). [허스토리] ’사이버 렉카’에 끌려 다니는 한국. 한국일보.  정윤경·공성윤. (2024, July 17). [단독 인터뷰] ‘쯔양 협박’ 의혹 구제역 “내 월수익 1억, 몇천만원에 연연할 이유 없다.” 시사저널. 국회미래연구원. (2023). 국제 지수로 본 한국 젠더 관계의 성격. 김세은, & 홍남희. (2019). 미투 운동(#Metoo) 보도를 통해 본 한국 저널리즘 관행과 언론사 조직 문화. 미디어, 젠더 & 문화, 34(1), 39-88. 홍남희. (2022). 소셜 미디어 시대 여론 극화와 상품으로서의 젠더 뉴스 : 디지털 저널리즘 생태계의 ‘독성화’ 논의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113, 249-278. Hall, M., & Hearn, J. (2017). Revenge Pornography: Gender, Sexuality and Motivations (1st ed.). Routledge.  Thompson, J. B. (2000). Political Scandal: Power and Visability in the Media Age. Wiley.
디지털 플랫폼
·
3
·
사이버 렉카 해결방안① : 수익 창출 중지
서니조의 ‘사이버 렉카 해결방안' ① 수익 창출 중지 ② 젠더 기반 폭력 근절 ③ 표현의 자유 다시 생각하기 유튜브가 유튜버 ‘쯔양’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 유튜버 ‘구제역’, ‘카라큘라’, ‘전국진’ 채널의 수익 창출을 중지했습니다. 구제역, 카라큘라, 전국진은 쯔양의 과거 사생활 폭로를 미끼로 그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서로 논의하고, 실제로 쯔양에게 접근해 돈을 요구한 정황이 알려졌습니다. 유튜브 관계자는 이들이 “크리에이터의 책임에 관한 정책을 위반”해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 참여가 정지됐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실제로 유튜브 이용 가이드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유튜브 정책’ 내용 중엔 크리에이터가 유튜브 안팎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크리에이터의 책임으로 명시한 내용이 있습니다. 유튜브가 이런 가이드라인을 실제로 적용해, 문제의 유튜버들이 유튜브로 수익을 내지 못하도록 만든 사례인 것입니다. 사이버 렉카의 적 ‘수익 중단’ 유튜브가 취한 ‘수익 중단’이라는 제재는 사이버 렉카(cyber wreck-car)의 프로세스 체인(process chain) 중 하나를 끊는 것입니다. 사이버 렉카의 행동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주목과 관심 끌기] → [조회수 높이기] → [수익 얻기].  사이버 렉카는 간단히 말해 이슈를 쫓아다니는 이들 입니다. 이들은 왜 이슈를 쫓아다닐까요? 돈 때문입니다. 주목을 끌거나 조회수를 높이는 것에 관심있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그것 자체가 돈이 됩니다. 미국의 학자·저술가인 마이클 골드하버(Michael H. Goldhaber)가 말한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개념을 되짚어 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그 작동원리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에 예민합니다. 광고비 때문입니다. 시청률은 해당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광고 효과를 높이려는 광고주들은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을 찾습니다. 또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의 광고 비용이 더 비쌉니다. 시청률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즉,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것 자체가 돈이 되는 세상입니다. 주목 경제라는 개념은 단순히 ‘사람은 돈이 된다’는 설명에 그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목(attention)이 제한된 자원(an intrinsically scarce resource)’이라는 점입니다.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주목은 중요 자원이 됩니다. 골드하버가 말한 방식대로 설명한다면, 당신이 캠페인즈에서 이 글을 읽고 있다는 것은 사이버 렉카를 다룬 시사프로그램이나 학술지 논문이 아닌 이 글에 당신의 주목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시간을 더 써서 시사프로그램도, 논문도 다 볼 수 있겠지만 시간은 물론 주목 또한 제한돼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디지털 환경에선 시사프로그램이나 논문 말고도 그외 각종 여러분의 주목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네이버, 유튜브, 넷플릭스와 경쟁해야 합니다. 이때 콘텐츠 제작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값싸고 유해한 것이 바로 선정적· 폭력적이며, 타인과 외부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부추기고, 사실을 왜곡하여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입니다. 어떻게든 주목 경쟁에서 살아남아 든든한 조회수, 구독자수를 가지게 되면 이를 바탕으로 광고를 붙이거나 후원을 받아 돈을 벌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유튜브가 할 수 있는 주요한 제재가 수익 창출 중단인 것입니다. 사이버 렉카 문제는 플랫폼이 나선다고 다 해결되진 않지만, 플랫폼이 나서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플랫폼은 콘텐츠가 생산·유통·소비되는 각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주체이면서, 그중에서도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최종 창구이기 때문에 더욱 더 높은 책임성이 요구됩니다.  유튜브는 2017년 8월 일명 ‘노란 딱지(yellow dollar sign)’ 정책을 도입하여 문제적 영상에 대해 수익 창출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욕설, 폭력적이거나 충격적인 콘텐츠, 혐오 또는 증오성 콘텐츠 등이 수익 제한된다고 가이드라인에 명시돼 있습니다.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사이버 렉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플랫폼도 거대한 사이버 렉카라면? 사실 유튜브가 지금까지 선제적으로 사이버 렉카 문제에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2022년 2월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였던 BJ잼미의 극단적 선택에 특정 사이버 렉카의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뒤로 별다른 조치는 없었고, ‘가로세로연구소’라는 유튜브 채널 또한 유명인의 사생활을 폭로하거나 사고 현장을 찾아가 충격적 영상을 전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는 지적이 계속됐으나 2022년 1월 1주일 간 다른 이유로 영상 업로드 중단 조치를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연예인들을 저격하는 방식으로 이슈를 만드는 사이버 렉카들의 경우에도, 최근 ‘탈덕수용소’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유튜브의 모회사 구글(정확히는 유튜브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 Inc.)의 자회사 구글)이 이들에 대한 신원 확인을 거부하면서 한국 연예인과 기획사에서 제대로 법적대응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유튜브가 나서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돈 때문일 것입니다. 유튜브가 ‘노란 딱지’를 도입한 것은 2017년 ‘애드포칼립스(Adpocalypse)’ 이후입니다. 광고를 뜻하는 ‘ad’와 세계의 종말을 뜻하는 ‘apocalypse’의 합성어인 이 표현은, 주요 광고주들이 유튜브에서 대거 광고를 빼냈던 일련의 사건들을 말합니다.  2017년 3월, 미국의 통신 회사인 AT&T와 Verizon, 제약 회사인 GSK, 펩시, 월마트, 존슨앤존슨 등이 유튜브에서 광고를 철수하게 됩니다. 이들의 광고가 테러리즘이나 증오를 부추기는 동영상에 게재된 데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이때 구글은 광고주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광고를 집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광고주 친화적 콘텐츠를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노란 딱지’를 도입하게 됩니다. [주목과 관심 끌기] → [조회수 높이기] → [수익 얻기] 라는 사슬에서 유튜브도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 전체를 하나의 거대 플랫폼이라고 본다면 ‘유튜브’도 이 사회에 입점해있는 하나의 채널일 뿐입니다. 유튜브의 프로세스 체인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있다면, 사회라는 플랫폼 속 책임자가 이 연결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사이버 레카 개인에게는 해당 사안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고 콘텐츠로 얻은 이익을 전부 회수하는 것이 대처방안이 될 수 있고, 유튜브에 대해서는 콘텐츠 관리 책임을 물어 벌금을 부과하거나(독일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법 집행 개선을 위한 법률(NetzDG)’의 사례) 광고주와 협력하여 또 다른 애드포칼립스 국면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경을 뛰어넘는 플랫폼인 유튜브를 제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거대 사이버 렉카가 될 수도 있는 유튜브에 어떤 제재가 필요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2019년 노란 딱지가 정쟁으로 소비되고 만 적이 있습니다. ‘보수 유튜버에만 노란 딱지를 붙인다’는 이야기를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주장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사이버 렉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만큼, 이를 정쟁으로 소비하기 보다는 돈·광고비와 조회수의 기형적 공생관계에 대해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주목으로 돈을 버는 행위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사이버 렉카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의 클릭베이트(Clickbait), 낚시성 기사는 사이버 렉카와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슈로 돈을 버는 일이 지금 우리 사회에 얼마나 해로운지, 사회 전반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우리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고나린. (2024, July 17). 사이버렉카 ‘혐오 비즈니스’…유튜브는 수수방관? 한겨레. 금준경. (2022, February 10). 독일법 있으면 ‘사이버렉카’ 유튜버 잡을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 남해인, & 신은빈. (2024, July 15). ’쯔양 사태’로 드러난 “사이버 레커” 민낯…처벌 “벌금 몇백만 원.” 뉴스1. 박재영. (2024, June 28). 유튜버 한탕주의 가짜뉴스 뿌리 뽑겠다. 매일경제. 이가혁. (2019, October 24). [팩트체크] “유튜브 노란 딱지” 보수 유튜버만 죽인다? JTBC.  이선명. (2024, July 3). [단독] BTS·뉴진스 조롱 확산에도 하이브 법적대응 연거푸 ‘물거품.’ 스포츠경향. Goldhaber, M. H. (1997). The attention economy and the Net. First Monday. Solon, O. (2017, March 25). Google’s bad week: YouTube loses millions as advertising row reaches US. The Guardian.
디지털 플랫폼
·
7
·
이진숙, 김홍일,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누구여야 할까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에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지명해 논란입니다. 방통위원장 임명에는 국회 동의가 필수는 아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다면 이진숙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 들어 임명된 세 번째 방통위원장이 됩니다. 첫 번째 방통위원장 이동관, 두 번째 방통위원장 김홍일, 현재 지명된 이진숙까지. 세 사람 모두 방통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것 자체만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언론현업단체·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렀는데요. 이 과정에서 최대 논란은 이들의 정치적 편향성과 정권 취향에 맞춘 방송·언론 관련 행보가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앞의 두 위원장은 ‘예상된다’가 아닌 ‘벌어졌다’는 표현이 맞겠지요.) 이명박 정부에서 홍보수석, 대변인 등을 지내며 언론(방송)을 시찰하고 방송 인사 개입,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등을 진행하여 ‘언론장악 기술자’로 불린 이동관 씨. 방송통신 이력이 전무하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으로 윤 대통령의 신뢰를 받아 국민권익위원장이 되었다 권력의 필요에 따라 방통위원장 자리까지 들어찬 김홍일 씨. 거기에 이명박 정권 당시 MBC 내에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이진숙 씨는 MBC 기자 출신으로 MB정권에서 임명한 김재철 MBC 사장 휘하에서 MBC 홍보국장 겸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이러한 활동 때문에 MBC 기자회에서 제명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문제적 MBC 보도의 책임자였으며 언론계를 떠난 이후엔 직업 정치인으로 살아온 이진숙 씨까지. 이들의 과거 행보를 보면 노조와 시민사회가 무엇을 막고자 하는지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윤 정부 방통위원장들의 문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이 지명합니다. (상임위원 5인 중 위원장 포함 2명을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이들을 임명할 때 위와 같은 논란에 대해서 해명하거나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은 각 후보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았습니다. - 이동관 : 이동관 후보자는 언론계에서 오래 근무한 중진으로 이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인간관계·리더십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의 방송통신 분야 국정과제를 추진할 적임자 - 김홍일 : 방송통신위원회는 각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안이 산적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공명정대한 업무처리가 필요한 시점으로 김홍일 후보자는 업무처리, 법과 원칙에서의 확고한 소신 등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감각으로 방통위 중립과 독립성 지켜낼 인사 - 이진숙 : 이진숙 후보자는 이라크전 당시 최초의 여성 종군기자로 활약하는 등 언론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경영인으로서도 관리능력과 소통 능력을 고루 갖췄다, 언론계에서 쌓은 경험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방통위 운영을 정상화하고 미디어의 공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해 방송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적임자 이동관 위원장, 이진숙 후보자를 설명하기 위해 꺼낸 “언론계에서의 경험”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동관 위원장의 경우 동아일보 논설위원 시절 한나라당 집권을 위한 칼럼을 썼고 이진숙 후보자도 앞선 언급한 것처럼 MBC 내 간부급 인사가 되면서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에 나선 노조를 탄압하고 김재철 사장을 옹호했습니다. 1991년 걸프전, 2003년 이라크전에서 종군기자 활동을 한 바는 사실이나 이후 MBC 파업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내외부에서 ‘기자 이진숙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는 기자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동관 위원장이 “다양한 인간관계”, 즉 개인적 인연을 이용해 자신의 농지법 위반 사실(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부동산 투기 파문이 확산되던 상황)을 밝히려던 국민일보에 기사를 내보내지 말라는 청탁을 한 바도 있습니다. 이진숙 후보자가 정권에 협력한 대가로 간 대전MBC 사장이라는 자리에서는, 직원 임금은 체불하면서 사장 스스로는 특별 성과급을 받는 일도 있었으니 “경영인으로서 관리능력”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김홍일 위원장에 대한 “공명정대”, “균형 감각” 같은 표현 또한 그가 검사 시절 BBK 사건을 봐주기 수사했다는 의혹이나,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 등을 보았을 때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균형’이나 ‘공명정대’, 이진숙 후보자를 설명하는 “미디어의 공정성” 같은 표현들은 사용할 때마다 ‘조작적 정의’를 내려야 하는 매우 가변적인 개념에 가깝습니다. 공정성(fairness)이라는 표현을 언론에 요구되거나 언론이 따라야 한다고 여겨지는 ‘윤리규범’으로서의 개념으로 국한해 보겠습니다. 이때의 공정성은 매우 주관적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A의 의견 5, B의 의견 5, 이렇게 5:5를 맞춘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정성의 핵심은 ‘누구에게 공정할 것인가(fair to whom)’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보도엔 그를 취재하고 작성한 기자, 그 보도가 담고 있는 이해관계자들(크게는 고발자와 피고발자가 있을 것이고, 그 보도를 만들어준 여러 다양한 취재원들도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 보도를 읽을 시민들, 그 보도를 내보내 줄 언론사와 그 언론사와 관계된 수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연루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보도가 ‘누구에게 공정한가’하는 사실은 개개인마다 다르게 평가하게 됩니다. 누구에게는 공정하다고 느낀 보도가 다른 누구에는 불공정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정성이란 없게 됩니다. 이렇게나 주관적인 개념인 ‘공정’을, 납득 가능한 설명도 정의도 없이 근거의 최일선에 내세운다면? 합리적 대화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안적 사실이라고요? 그것은 거짓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실의 이 설명들은 거의 모두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입니다.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란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인파를 두고 벌어진 논란에서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언급한 단어로, 그가 사용하면서 언론학계의 주요 화두가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언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인원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인원보다 적다는 기사가 나오자,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현장 참석 인원, 교통 이용 데이터 등을 들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목격한 취임식’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거짓이라는 비판을 받자 이번엔 켈리앤 콘웨이 선임고문이 NBC <Meet the Press>에 출연해 “대변인은 그냥 ‘대안적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는 기상천외한 해명(?)을 하게 됩니다. <원문> Chuck Todd(해당 프로그램 진행자, NBC 저널리스트): You did not answer the question of why the president asked the White House press secretary to come out in front of the podium for the first time and utter a falsehood? Why did he do that? It undermines the credibility of the entire White House press office on day one. Kellyanne Conway: Don't be so overly dramatic about it, Chuck. What-- You're saying it's a falsehood. And they're giving Sean Spicer, our press secretary, gave alternative facts to that. But the point remains– Chuck Todd: Wait a minute. Alternative facts? Alternative facts? Four of the five facts he uttered, the one thing he got right was Zeke Miller. Four of the five facts he uttered were just not true. Look, alternative facts are not facts. They're falsehoods. <번역> 척 토드: 당신은 왜 대통령이 백악관 대변인에게 처음으로 단상 앞에 나와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는지 답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이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첫날부터 백악관 대변인실 전체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켈리앤 콘웨이: 그렇게 과하게 반응하지 마세요, 척. 당신은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그저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점은– 척 토드: 잠깐만요. 대안적 사실이라고요? 대안적 사실? 그가 말한 다섯 가지 사실 중 네 가지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브리핑 내용 중 Zeke Miller라는 저널리스트와 관련한 부분만이 사실이라는 의미). 보세요, 대안적 사실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이에요. 허울 좋게 ‘대안적 사실’이라고 표현한 것이지 그냥… 거짓말입니다. 이 표현은 이후 언론학에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시대의 특징으로 언급되거나, 언론의 객관성이나 진실성, 신뢰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주는 표현으로 해석되거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해프닝을 강조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방통위원장 후보자들을 설명하는 대통령실의 표현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안적 사실이란 표현은 너무 잘 포장해준 단어 같기도 합니다. 비슷한 함의를 가진 다른 표현도 있는데, 이는 나중에 또 언급할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성착취·스팸 문자, 모두 방통위 소관인데… 덧붙이고 싶은 점은, 이들이 방송(비판적 언론)을 건드릴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보니 방통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며 방통위는 무엇을 해야하느냐는 일종의 ‘전문성의 영역’에 대한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방송 공정성이 합리적 논쟁도 없이 빼앗기고, 미디어 공공성 또한 축소될 위기 속에 한가한 소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자리의 본래 목적, 즉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방통위법 제1조)이 무엇이며 방송과 통신의 융합환경에서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것인지 또한 계속해서 뒤로 미루기에는 우리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디지털 성착취 및 온라인 성착취 범죄물 등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역할, 불법 스팸 문자 차단을 위한 정책적 추진, AI가 만든 허위조작정보 대응을 위해 해외기구와 국제적 연대 및 대응, 글로벌 OTT에 대한 책임 강화와 이들의 요금 인상 등에 대한 대처 등이 모두 방송통신위원회 소관입니다. 우리는 이런 논의를 언제 제대로 해보게 될까요. 대안적 사실에 밀려나는 고민이 너무나 많습니다. 강성원. (2016, June 3). 이진숙 대전MBC 사장, 성과급 챙기고 직원 임금체불. 미디어오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mod=news&act=articleView&idxno=130335 김현빈. (2023, July 29). 이동관 새 방통위원장 지명... 尹 “공영방송 대수술” 두고 대치 정국 불가피.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72814530002847?did=NA 박석호. (2024, July 4). 환경부장관 김완섭·방통위원장 이진숙·금융위원장 김병환 지명. 부산일보.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4070415120387972 배경환. (2023, December 6). 尹, 방통위원장에 김홍일 지명… “궂은 일 마다하지 않겠다”(종합). 아시아경제. https://view.asiae.co.kr/article/2023120610262120673 안경숙. (2007, July 11). 보수신문, 어느 쪽이냐에 따라 잣대 바뀌어. 미디어오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873 안재승. (2012, March 14). [편집국에서] ‘기자 이진숙’으로 돌아오라.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523495.html 정준기. (2024, July 4). 환경부 김완섭·금융위 김병환·방통위 이진숙… 尹, 총선 후 개각 신호탄.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70410350004405?did=NA 주재현. (2023, July 28). 尹, 방통위원장에 이동관 지명.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9SB2EPR78/GE0201 현일훈, & 김기정. (2023, December 6). [단독] 尹, 김홍일 방통위원장 오늘 지명…"하루도 비울 수 없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2659#home NBC News (Director). (2017, January 23). Kellyanne Conway: Press Secretary Sean Spicer Gave “Alternative Facts” | Meet The Press | NBC News [Video recording]. https://youtu.be/VSrEEDQgFc8?si=mbPh4Gyr27niD893&t=92 Sinderbrand, R. (2017, January 23). How Kellyanne Conway ushered in the era of ‘alternative facts.’ Washington Post.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the-fix/wp/2017/01/22/how-kellyanne-conway-ushered-in-the-era-of-alternative-facts/
언론 공공성
·
5
·
허위정보라고 다 똑같은 허위정보가 아니니까
안전한 디지털 공간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 허위정보의 통로이자 제작자인 ‘디지털 기술’ “코로나 바이러스가 폐로 가기 전까지 목에서 4일간 머문답니다. 이때 기침이 나오고 아프니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셔주고 소금물이나 식초로 가글을 해주면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하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모두들 비슷한 메시지를 받은 적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친척 단체대화방에서 이 글을 봤다. 평소에도 어디서 퍼온 듯한 각종 건강 정보나 보이스피싱 주의사항이 공유되곤 하는데, 그런 차원의 ‘복붙’ 공유로 받아들였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당시 이 정보를 믿었던 한 교회에서는 예배 전 소금물 분무기를 사용해 입 안을 소독, 이것이 오히려 바이러스를 공기 중에 퍼트리는 바람에 집단 감염이 되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엔 소금이 바이러스를 죽인다는 낭설이 널리 퍼져있었다. 디지털 기술이 허위정보를 널리 퍼트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에서 나타난 사례였다.  디지털 기술은 허위정보를 더 빨리, 더 멀리 확산시키는 일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허위정보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딥페이크(deepfake)’다. 딥페이크는 컴퓨터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을 의미하는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fake)’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을 이용해서 만든 사람 이미지(사진, 오디오, 비디오 등)와 그 기술을 총체적으로 일컫는다.  ‘만들어낸’ 이미지란 의미가 강한데, 특히 사람의 얼굴이나 특정 신체 부위에 이미지를 합성해 실제처럼 보이게 만든다. 최근 논란이 된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에서 쓰인 그 기술이다. 해당 사건 피의자는 대학 동문 등 여성의 졸업사진 또는 SNS에 올라온 사진을,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성범죄물으로 만들어 소지하고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 사건으로 제작·유포된 디지털성범죄물은 각각 100여건·1700여건, 확인된 피해자만 61명으로 확인된다.   공존하는 장단점, 문제와 해결방안도 복잡 여느 기술이 그러하듯 디지털 기술 또한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는 셈이다. 디지털 기술(컴퓨터 기술)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보다 쉽고 빠른 계산과 논리 전개를 기대했고, 그 위에 인터넷과 네트워크 기술이 얹혔을 때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커뮤니케이션과 상호작용을 기대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사용되면 될수록 다양한 문제가 발견되었다. 인터넷과 네트워크상에 수많은 개인정보가 수집되고 저장되면서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와 감시, 개인정보 유출 등이 일어났고 사이버 환경에서 가능한 해킹, 피싱, 랜섬웨어, 스팸메일 등 다양한 형태의 사이버 범죄도 증가했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괴롭힘이나 폭력 또한 온라인에서 그대로 재현되었고, 온라인에의 과도한 의존은 디지털 중독과 정신 건강 문제로도 이어졌다. 위에서 언급한 허위정보와 사이버 범죄물의 손쉬운 확산도 대표적인 디지털 기술의 악영향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디지털 기술로 인해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방책,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없다. 위에서 언급한 두 사례만 해도 디지털 기술의 존재가 두 허위정보의 제작 및 확산을 악화시켰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근본 문제 원인으로 볼 만한 것은 수도 없이 많으며 당연히 제시할 수 있는 해결방안 또한 다양하다.  미디어의 역할, 사회적 인식 변화 모두 필요 먼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의 허위정보 유통, 이른바 ‘인포데믹(Infodemic·‘정보(information)’와 ‘전염병(epidemic)’의 합성어)’은 크게 다섯 가지 특징을 보인다(이완수, 2021). 1) 건강과 관련된 이슈에 집중되어 불안과 공포가 더욱 커보인다는 점 2) 그러다 보니 공포 심리를 타고 비이성적 과열 양상을 낳는다는 점 3) 그러한 양상이 소셜미디어(뉴미디어)와 전통미디어 모두에 의해 확산된다는 점 4) 동일한 정보에 반복 노출되다 보니 부정적 정서가 물결처럼 파장을 일으킨다는 점(물결 효과·ripple effects) 5) 오히려 정보가 과잉돼 정보 진위 여부를 더욱 알기 어렵다는 점 등이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사회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라는 존재다. 미지의 영역이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고, 결국 허위정보 확산을 더욱 부추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확한 사실인지, 또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일일 것이다. 이는 정부, 언론, 시민사회 모두의 역할이다. 특히 인포데믹 상황에서 전통미디어와 뉴미디어 모두 허위정보 확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통미디어의 경우 코로나19 발생에 대해 보도 과열 양상을 보이거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묘사나 표현을 사용하여 사람들로부터 과도한 위험 감정을 이끌어냈다(김경희, 2020; 김태종, 2020). 소셜미디어의 경우, 현재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정보를 소비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허위정보 확산의 핵심 매개체가 된다. 전통미디어의 보도 양상 수정, 소셜미디어의 플랫폼으로서의 책임 제고가 해결책으로 뒤따른다. 딥페이크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물의 경우 더욱 근본적인 문제, 즉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주 원인이다. 딥페이크 성범죄물은 ‘기술매개 성폭력’이라는 표현으로 정의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여성 대상의 성적 공격 행위를 뜻하는 이 용어에는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사건, 버닝썬 사건, 성관계 불법촬영, 카카오톡 또는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이용한 성희롱 등이 포함된다(김애라, 2024).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 부족 또한 따라붙는 문제다. 디지털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미비하고, 이를 취재·보도해서 문제를 공론화해야 할 언론의 문제 인식 수준 또한 낮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을 MBC 단독 보도 이전부터 보도한 독립언론 ‘셜록’의 기자는 처음 제보를 받게 됐을 때 든 생각을 묻는 인터뷰 질문에 “굉장히 질 나쁜 범죄지만, n번방 사건과 같은 충격을 주는 사건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단순히 사건만 보도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봤다”라고 답했다(물론 이후 반전되는 대답을 했다! 글을 끝까지 봐달라!).  기존 저널리즘에서 말하는 ‘뉴스 가치(news value)’ - 흔히 영향성, 시의성, 근접성, 일탈성, 희소성, 화제성 등등 - 가 떨어지는 아이템이라고 보았다는 의미이다. ‘그다지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와 같은 시각이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물 제작과 유포의 핵심 원인이자, 사회적 문제라고 정의되기 조차 힘든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다양한 영역에서의 변화 - 법, 제도, 교육, 문화 등 – 가 동반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중요한 점은 셜록의 기자가 이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건을 취재하고, 셜록 내외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이 바뀌게 됐다. 셜록 고문 변호사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단순히 파급력을 기준으로 사건을 바라봐선 안 된다고 조언해줬다. 딥페이크 사건은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남성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중략) 내가 처음 가졌던 생각, 딥페이크 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 자체가 사건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었다.” 마지막 문장은 우리 사회 전반에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당신에게 ‘디지털 안전’이란 무엇인가요? 디지털 생태계의 안전은 복잡한 사회 문제만큼이나 단순하게 성취되지 않는다. 간단하게 스위치 하나 눌러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별 사안마다 문제 원인을 뜯어보고 각각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 바라는 ‘디지털 생태계에서의 안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의하는 것이라고 본다.  안전의 반대말을 위험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디지털 세계를 살아가면서 무엇으로부터 위험을 느끼는가? 현대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위험사회’를 제시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위험이란 것은 갑자기 발생하지 않고 사회의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찰적인 근대성’을 제시했는데, 쉽게 말해서 대중들이 더 많이 말하자는 주장이다. 기존 근대에선 국가와 전문가가 위험을 포함한 모든 제도를 독점하고 대비했다면, 성찰적 근대에서는 시민들이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공론의 장을 만들어 사회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그러면서 벡은 ‘하위 정치(sub-politics)’의 필요성, 사회 운동을 통한 일반 공중의 조직화 등을 구체적 예로 들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은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조심스럽게 올린다고 한 적 있다.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쉽게 추적될까봐 그러하다는 설명과 함께. 또 어느 날 누군가는 자신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잘 안 걸어둔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유튜브 섬네일에 아주 큰 글씨로 과도한 표현이 쓰여 있으면 눌러보지 않는다고 했다. 다들 이러저러한 디지털 세계에서의 위험을 체감하고 있는 듯 했다. 당신이 원하는 디지털 생태계에서의 안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디지털 세계를 바라는가?   김경희. (2020, 2, 13). 한국 언론 ‘코로나19’ 보도 어땠나···“과장·추측성·생중계식 보도 안 돼”.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8127.html 김애라. (2024). 2024 한국여성학회 춘계학술대회 : 기술매개성폭력의 ‘실질적’ 피해와 그 의미. 참조 <한겨레21>.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681.html 김태종. (2020). 뉴스 빅데이터를 활용한 코로나19 언론보도 분석: 토픽모델링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20권 5호, 457-466. 윤수현. (2024, 5, 30).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MBC ‘단독’ 이전에 셜록이 있었다. <미디어오늘>.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332 이완수. (2021). 코로나 19 “인포데믹” 현상에 대한 이론적 고찰: 커뮤니케이션학과 행동과학의 통합 적용. <커뮤니케이션 이론>, 17권 3호, 306-375. 안전한 디지털 공간을 바라는 캠페이너들의 이야기를 모읍니다
공론장
·
7
·
할머니를 뉴스에서 더 많이 보고 싶다
캠페인즈팀 영상을 통해 직접 캠페이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A신문 2023년 9월 14일 목요일 특집면에 아흔살 신달막 할머니가 등장했다. 서울 가는 기차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효율성’의 피해자였다. 할머니가 사는 곳은 평균 나이 80살, 주민 67가구가 사는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2리. 이 마을 주변엔 기차역 두 곳이 있었는데, 2021년 8월 하루 한 번씩 이 역에 오던 용산행 무궁화호가 사라졌다. 이에 대해 한국철도공사는 ‘적자 노선이라 운영 효율성이 낮다’는 근거를 댔다. 고속열차(KTX) 수혜 지역이 확대 되면서 수요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장거리 무궁화호를 없애(‘효율화’라고 표현한다) 영업 손익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KTX가 서는 역으로 가서 환승한 뒤 서울 가란 뜻이다. 그런데 이게 말은 쉽지 고령의 시골 마을 주민들이 따르기엔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서울서 있던 남편 제사나 아들 생일, 병원 방문 등의 일상을 빼앗겼다.   B신문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6면 머리기사로 ‘SRT’ 감축 불편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내용이 실렸다. SRT는 공기업 ‘주식회사 SR’이 운영하는 열차(SR Train)로,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철도들을 운영하고 있다. B신문 해당 기사는 SRT가 운행을 감축했는데 불편하다는 시민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내용이다. B신문은 누구를 취재해서 이런 기사를 썼을까? 자세한 편집국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기사에 나온 바로는 철도노조(전국철도노동조합의 준말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산하의 철도산업 노동조합이다)와 국토교통부를 ‘불편 없음’의 근거로 삼은 모양이다. B신문은 [철도노조는 시민 불편에 대해 취합된 게 없다고 했고, 국토부도 “이달 1일 시행해 데이터를 뽑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시민 불편의 실체가 아직까지는 구체적이지 않은 셈이다.]라고 썼다.   어느 지역에선 선택할 수 있는 SRT 좌석이 줄어든다. 그런데 B신문 기사처럼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말 없을까? B신문에 언급된 줄어든다는 노선은 경부선 SRT 열차다. SRT는 기존에 경부선·호남선에서만 운영되고 있었는데 지난 9월 1일부터 SR이 경전·전라·동해선으로 노선을 확대했다. 그러나 열차 수는 정해져 있어서 3개 노선을 추가하는 만큼 기존 2개 노선에서 운행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경전·전라·동해선이 신설된 만큼 진주·여수·포항 쪽 주민들은 서울 강남권으로 바로 가기에 편리해졌다. 그러나 경부선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선택권은 줄어들었다. 자신들의 선택권이 줄어들었다는 데에 대해 모를 수도 있고, 수서행 고속철도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주민이 적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와 국토교통부의 취합된 불편 없음, 취합된 데이터 없음을 가지고 불편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고, 언론은 진정 말할 수 있는가?   A신문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A신문과 B신문 둘 다 이러한 기사 유형을 대표하는 기사로 봐주면 좋겠다. A신문은 시골 마을에 사는 여성 노인 주민의 사례를 들어 철도의 공공성에 대해 일깨운다. 사실 SRT 감축과 사라진 용산행 무궁화호는 큰 관련성이 있다. 둘은 분명 ‘열차’이고 철도가 깔린 지역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공공성 높은 대중교통인데, 운영 주체가 다르다. 무궁화호는 한국철도공사가, SRT는 SR이 운영한다. SR은 2011년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고속철도 운영 민간 개방’ 기조 이후 설립된 회사다. 당시 이를 철도 민영화 첫 단추로 보는 우려가 컸는데 이러한 걱정의 시선은 여전하다. SR은 흑자가 나는 고속철도, SRT만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자체가 흑자가 나는 이른바 알짜배기 노선이다. 수서행 고속철도 운영을 떼어준 한국철도공사는, 수익 성적에서 SR과 차이가 난다. SR은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2021년 외에 모두 흑자를 냈지만 한국철도공사는 계속해서 적자다.   흑자가 예상되는 SRT를 떼어준 한국철도공사는, 적자가 나는 걸 보면서 무궁화호 운행을 줄인다. 무궁화호 운행 감소는 오봉2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철도공사는 무궁화호 운행을 전체적으로 줄여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예정이다. 한국철도공사의 경우 KTX에서 흑자가 나고 무궁화호와 새마을호에서는 적자가 난다. 한국철도공사와 SR이 별도의 회사로 운영됨에 따라 중복 비용이 발생하고, 한국철도공사의 적자가 눈에 띄면서 이용 수요는 적지만 국민의 철도 공공성 보장을 위해선 필요한 이른바 ‘적자노선’을 자꾸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SRT 감축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철도노조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수서행 KTX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와 SR로 쪼개진 철도 운영에 대해 제동을 거는 장치로 볼 수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철도 운영으로 왜 국민들은 열차를 가지고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하는가?   노동조합과 정부에서 취재 그치지 말아야 언론 신뢰를 말하는 공간에서 열차 이야기가 길었다. B신문의 경우처럼 정부나,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결사체가 있는 이들의 말에서 취재와 보도가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조합의 경우 기울어진 한국 언론 지형에서 가장 많이 소외받고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야 했던 집단 중 하나다. 이들을 취재하지 말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노동조합과 정부에서 시민 불편의 목소리를 찾아다닌 것이 의아하다는 뜻이다. 언론은 그동안 누구에 의해서도 대표되지 않았고 보호받지 않았던 시민들을 더 많이 찾아다녀야 한다. 흔히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를 ‘뉴스의 정치적 편향성’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때 한국 언론이 정치적 편향성을 다 같이 벗어나자고 결의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 뒤에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공정성, 균형성, 중립 등인가? 아니다.   언론 신뢰는 언론이 공공성 회복으로 보도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고, 그에 따라 취재원과 수용자를 철저히 재설정 하는 것과 관련 있다. 영미권 커뮤니케이션 학자 셋이 저널리즘의 위기를 진단하고 개혁 또는 혁명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하는 책 <저널리즘 선언(오월의봄)>에서, 학자들은 저널리즘이 스스로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포용성 △사회정의 △코스모폴리타니즘cosmopolitanism이라는 대안적 규범을 수용하라고 조언한다. 언론계에서 흔히 인용되는 정확성, 진실성, 책임성, 독립성, 투명성, 객관성, 균등성, 기계적 중립 등은 규범적 상상 속에서 존재할 뿐 우리의 생각처럼 명확하지도,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지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의의도 없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주류 언론에서 규범처럼 지켜왔던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받았던 사람들을 포함하는 저널리즘(포용성), 지면에 싣기 적합한 뉴스가 아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뉴스를 우선하는 저널리즘(사회정의), 낯설거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겨온 장소에서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호기심을 갖는 저널리즘(코스모폴리타니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덧붙여 취재원으로도 독자·소비자로도 여기지 않았던 수용자들과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 수용자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야 하며, 수용자의 뉴스 관련 의례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그런 지점에서 B신문 기사는 우리나라 언론에서 보기 쉬운 평범한 기사이다. 기자들이 자주 찾아가고 기자들을 자주 상대하는 조직들은, 마련해 둔 ‘홍보실’이 있고 기자들은 그들을 상대해 취재하고 기사를 쓴다. 그렇기 때문에 B라는 언론사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저런 부류의 기사엔 공공성에서 소외된 시민의 불편이 없다. 실제로 불편함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류 언론에서 규범처럼 써왔던 취재원이 아닌, 소외돼 왔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정말 불편함이 없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   한계를 핑계로 저널리즘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정파를 핑계로 신뢰를 포기하시겠습니까? 이런 대안을 내놓으면 시간 부족, 인력 부족 이야기가 따라붙는다. 뉴미디어 환경에서 경쟁에 내몰려 있고, 올드미디어라고 하더라도 마감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편집국 인원수가 몇천몇만 명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철도노조 파업 기사 하나를 쓴다고 파업으로 인한 시민 불편을 밖에 나가서 계속해서 인터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라고 한다면 벌써 저널리즘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아닐까? 언론 신뢰를 포기하겠다면 지금처럼 쓰면 된다. 그러면 변화할 수 없다.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은 더욱 커져야 하고(정치가 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에 의존하는 보도 행태 또한 계속된다. 그렇게 대중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 정치적 편향을 포함한 언론의 권력 편향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사실 현재의 언론은 시민에게서 신뢰받지 않더라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 운영비가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민 후원이나 구독료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언론사의 경우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언론은 몇 없는 데다 최근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둘러싼 논의를 볼 때 다수 시민이 ‘신뢰할 만한 언론 키우기’에 관심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시민들은 언론이 편향돼 있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이 뉴스를 선택할 때 편향된 상태로 고르기도 한다. 언론은 시민을, 시민은 언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인 걸까? 그러나 그런 우울한 시대로 정의하고 좌절하고 마는 것이 이 글의 목표는 아닐뿐더러, 시민으로서 우리의 역할도 아니다.   P.S. A신문의 해당 특집면은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다. A신문이 너무나 뛰어나서 쓸 수 있었던 기사는 아니었던 점을 말해두고 싶다. 다만 우리는 이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 공공성을 지켜내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A신문과 노동조합이 신달막 할머니를 포함한 오봉2리의 사정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 목소리를 곁에서 듣던 철도노동자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특집면 기사에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언론 공공성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