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
“참사 당일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단 10분을 요구하고 싶어요.”
모 신문 편집국 내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회고를 했을 때 나온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회부 사건팀 부팀장(vice·바이스)이 전했고, 이 말을 직접한 사람은 그의 후배 기자였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소속 기자들은 가장 먼저 현장에 뛰어드는 편집국 구성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각 언론사에서 가장 연차 어린 기자들이 배치되는 부서이기도 합니다. 그가 10분을 요구한 이유는, 취재 현장으로 나가기 전 함께 재난보도준칙을 읽고 왜 우리는 이 취재를 해야 하는가를 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난보도준칙은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9월, 한국신문협회·한국방송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국내 대표적인 언론현업인단체가 모여 만든 일종의 취재·보도 가이드라인입니다. 언론인 스스로 필요하다고, 지켜야한다고 정해놓은 규범이므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취재 전 다같이 재난보도준칙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태원 참사 초반에 드러났던 보도문제, 즉 혼란스러운 초기 상황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무차별적인 취재 경쟁을 벌이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현장에 배치된 기자들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가이드라인대로 행동하기는 무척 어렵고, 특히 연차 어린 기자들이 배치된다면 이들이 처음 경험하는 현장에서 가이드라인대로 취재하고 보도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재난보도 상황에서 작동하는 문제적 ‘보도관행’
그런 점에서 우리는, 뉴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적 '관행'이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경희(2019)는 세월호 참사 당시 기자들이 반복한 ‘잘못된 관행’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물론 기자 개개인의 문제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뉴스를 만드는 일은 여러 가지 선택지를 선택하는 상황, 즉 갈등구조 속 반복되는 선택행위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특히 재난사고의 경우,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어떤 소재에 주목하고 어떤 취재원을 만날 것인지, 사회적 참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정부와 국회 등에서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면 또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사안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갈등구조는 깊어지고, 언론인·언론사·언론조직 등이 어떤 관행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해당 연구 결과, 재난현장 취재과정에서 4가지, 보도과정에서 5가지의 갈등구조와 그 속에서 선택된 관행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취재과정에서는 △‘재난 현장’과 ‘정부 발표’ 사이 △‘피해자 인권’과 ‘뉴스거리’ 사이 △‘현장 자율 취재’와 ‘본사(데스크) 지시 취재’ 사이 △‘타사와의 취재 경쟁’과 ‘타사와의 협력 취재’ 사이에서 기자들은 갈등합니다. 그 속에서 △정부 발표는 신뢰하지만 피해자는 비신뢰하는 관행 △피해자 인권보다는 뉴스거리, 특히 영상 중심으로 취재하면서 비윤리적 취재를 하게 되는 관행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데스크의 지시를 일단은 따르는 톱다운 방식의 취재 관행 △비협력적 취재 관행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보도과정에서는 △‘현장 보고’와 ‘정부 발표’ 사이 △‘피해자 중심 보도’와 ‘권력자 중심 보도’ 사이 △‘핵심 사실 보도’와 ‘기계적 중립 보도’ 사이 △‘정확한 보도’와 ‘신속한 보도’ 사이 △‘선정적 구성’과 ‘절제된 구성’ 사이에서의 갈등구조가 드러납니다. 세월호 보도에서 대부분의 데스크는 △현장 보고보다 정부 발표를 보도하기를 선택했고 △피해자의 요구나 주장보다는 권력자의 행보나 언행을 보도했으며 △재난사고의 원인과 재난 대응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밝혀내는 보도보다는 이것이 정부나 행정 관리자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되는 것을 고려하여 ‘중립성’이라는 저널리즘 원칙을 따라 보도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매체 환경의 영향으로 △신속한 보도와 △선정적 구성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행들은 한국 저널리즘의 고유한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뉴스거리를 정부나 공권력의 발표에 의존해온 방식, 타사와 협업 취재보다는 기자 개인기를 통한 특종과 단독에 더 집중하는 문화, 정파성에 대한 두려움과 중립성 신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사회 비판 보도를 정파적 보도로 여기고, 정파적 보도는 편파적이고 중립적이지 못한 보도라고 해석하는 관점), 속보와 같은 정보의 빠른 전달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보는 관점 등이 중첩되어 참사·재난보도에서의 문제 상황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위험커뮤니케이션 상황 하에서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 ‘전문가’와 위험을 인지해야 할 ‘대중’ 사이를 언론이 잘 매개해야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러한 취재관행은 개선될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적 질문 : 언론은 무엇인가요?
재난 상황에서 제대로 보도해줄 언론을 기대하는 우리들은, 언론이 이런 문제적 보도관행을 갖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며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더 근본적으로, 언론 존재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은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것들을 기대하나요? 일반 시민들·대중들에게 언론은 무엇인가요? 기대가 좌절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언론과 언론인들이 생각하는 언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하지만 기자들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역할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2022년 열린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다시 본 재난보도준칙’이라는 토론회에서 한 기자가 이같이 말했습니다.
“(재난보도)준칙 제13조에 유언비어 방지 부분(모든 정보는 출처를 공개하고 실명으로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확인되지 않거나 불확실한 정보는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유언비어의 발생이나 확산을 막아야 한다)이 있는데 이 대전제에 반대할 기자는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현장에서 나의 일이 됐을 때 솔직히 장담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당시 마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든가 연예인이 있어서 사람들이 몰렸다는 목격담이 있었는데, 수사기관 등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 이런 내용을 일체 전하면 안 되는 건가란 생각을 했다. 왜냐면 당시 현장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내용을 전하는 게 현장성을 지키는 제1의 기준일 수도 있는 것이라 그렇다면 어디까지 현장을 전해야 하는 건가 고민이 들었다.”
‘현장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제1의 기준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것은 상황마다, 시기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현장 정보 전달’을 언론의 역할 1순위에 놓게 되면 언론의 또 다른 역할들은 2순위, 3순위로 밀리게 됩니다.
떠올려봅시다. OO일보 사회부 사건팀 소속 신입 기자는 2022년 10월 29일 왜 해밀톤 호텔로 갔어야 할까요? (1)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시, 그 중심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사고’가 무엇이고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취재하여 알리기 위해서일까요? (2) 들어보니 엄청난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고’이고 그렇다면 이는 대중의 주목과 관심을 끌 수 있는 뉴스거리이니 취재해야하는 것일까요? (3) 벌어진 ‘사고’에 대해 공권력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사고’를 ‘사회재난’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기 위해서일까요? 대체 그는 왜 거기로 가야했을까요?
언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기자·언론사의 취재·보도 과정 또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과정이라고 본다면, 언론의 취재 과정과 목적은, 커뮤니케이션 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관점을 그대로 적용해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사건사고를 알리기 위해서 취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커뮤니케이션을 ‘정해진 양의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전달모델·transmission). 이는 기본적으로 미디어(언론)에 대해서, 정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과정, 즉 정보와 거리와 사람을 통제control하는 과정으로 바라봅니다. 이것이 이태원 참사에서의 보도 문제를 일으킨 원인인 것은 아니지만, 이런 관점으로 언론의 역할을 바라본다면 분명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2) 대중이 궁금해 하는 뉴스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취재해야 한다는 개념은 어떨까요.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을 ‘주의를 끄는 것’으로 생각합니다(공시모델·publicity). 즉, 언론(매스미디어)은 대중의 눈길을 끌고, 감성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언론은 후술할 ‘규범 이론’의 적용을 받는 편이므로 공시모델로 완벽히 설명되진 않지만, 단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관점(전달모델)보다는 가치중립적인 면모를 띄며, 우리가 미디어(언론)에 대해 ‘이들은 광고주에게 대중의 주목(attention)을 팔아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고 설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3) 언론, 저널리즘은 일반적으로 위의 관점보다는 ‘규범 이론’으로 설명됩니다. 규범 이론이란, 언론의 이상적인 구조와 운영 방법은 무엇인지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가치와 원칙을 정하고 – 예를 들면 ‘언론 운영을 규제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미디어에 대한 직접 규제는 정당하다’, ‘정부 규제도 언론 자유도 모두 필요하다’와 같은 내용 – 이런 것들과 연관해서 언론의 책무가 정해집니다. 1920년대 미국에서 정부 규제를 요구하는 압력이 늘어나면서, 미디어 경영자들은 규제를 정부에 맡기기 보다는 공중의 필요에 맡기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언론에 감시견 역할이 부여되고, 언론이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부Fourth Estate로 그려지게 됩니다.
이태원 참사와 미디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이 두 가지에 어떠한 직접적 연관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론인 스스로와 언론사가 이태원 참사를 포함한 취재 현장에 ‘왜’, ‘무엇을 취재하기 위해’ 가야하는지 생각할 때 필요한 근본적 사상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언론의 역할을 떠올리고 그들을 분석하고 평가할 때 쓰일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현장에서 느낀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기자의 다짐은 언론을 정보 전달자로 한정하는 관점입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를 전달함으로서 사회 다양한 요소를 통제하는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어떤 의미를 쥐어줄 것인가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설명하는 또 다른 관점이 있습니다. 뉴스가 전달되거나 제공된다는 인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공동체에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즉 어떤 의미를 생성해내며, 공동체가 공통으로 갖게 되는 행동이나 공유하게 되는 신념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는 관점입니다. 오늘 읽었던 뉴스가 나에게 어떤 정보를 주었는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많은 한국 사람들이 출근길에서 뉴스를 읽는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행동인지,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일련의 보도행태에서 우리는 어떤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는지 같은 것을 고민하는 것입니다(의례적 관점·a ritual view of communication).
기자가 고민으로 언급한 것처럼, 참사 초기 ‘마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목격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MBC에서는 뉴스특보를 진행하던 도중 ‘단순 압사 사고가 아니라 약이 돌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 인터뷰를 그대로 내보내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 목격담을 전하는 것이 부적절했던 이유는, 해당 현장에서 나온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실제로 현장에서 이런 목격담이 떠돌았던 것 자체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태원 참사를 구성하게 될 여러 의미에 대해서 깊이 숙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사가 발생했던 이태원이라는 지역을 떠올려볼 때, 이태원이 한국 사회에 의미해 온 장소성이 있습니다. 박상은(2023)은 이태원 참사가 어떻게 의미 구성이 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왜 이태원 핼러윈 축제는 관리의 대상이 아니었는지(즉, 안전 대책이 설계되지 못했던 행사였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2010년대 들어 이태원의 지역 성격이 바뀌는 상황에서 도시계획은 여기에 발맞추지 못했고, 덩달아 이태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이 작용하면서 핼러윈 축제는 지자체의 관리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장소성은 참사 이전부터 작동해왔다는 점입니다. 이국적이고 자유로운 공간, 그러나 위험하고 문란한 공간이라는 사회적 시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며 참사의 의미를 왜곡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태원 참사를 어떠한 의미로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여기서 한국 언론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 언론이 이것까지 염두에 두었다면 ‘마약 목격담을 전달해야 한다’는 감각을 가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재난과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을 구성하기
결국 우리는 재난과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까지 떠안게 되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서 남아있는 진상규명은 무엇이고,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 필요한데 말입니다. 그러나 울리히 벡(Beck, 1986)이 <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에서 말한 대로, 문명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겪을 위험은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계속 커질 것이라면, 위험과 대중 사이를 매개할 언론이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하는지 고민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이 아주 새롭게 이뤄져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만들었다는 재난보도준칙을 다시 봅시다. 내로라하는 언론인들이 만들었다는 이 가이드라인엔 이미 해답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일례로 제8조(통제지역 취재) ‘병원, 피난처, 수사기관 등 출입을 통제하는 곳에서의 취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관계기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는 조항이나, 제18조(피해자 보호)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등의 규정이 있습니다. 새로운 뉴스거리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캐물으며 공격적으로 취재하는 기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혼란이나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재난으로부터 공동체를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이 또한 기자의 역할이자 참사에 어울리는 저널리즘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