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2024년 국정감사하면 ‘하니’가 떠오를 것이다. 그만큼 아이돌 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의 국회 출석과 증언은 화제였다. 최정상 아이돌 그룹 멤버의 국회 출석은 드문 일이기도 하고, 여기엔 ‘하이브’와 ‘어도어(또는 민희진)’ 사이의 첨예한 갈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뉴진스는 K-POP 산업 대기업 ‘하이브’의 자회사, ‘어도어’ 소속 아이돌 그룹인데, 하이브와 어도어는 경영권·프로듀싱 권한 등으로 갈등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9월 뉴진스는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하이브 내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게 되는데, 하니는 그에 대한 증언을 하러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자, 하니가 국정감사장에서 “회사에서 저희(뉴진스)를 싫어한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 것이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한국어 공부 더 열심히 해서 나오겠다”고 한 것 외에 무엇이 기억에 남는가? 일단 애초에 하니가 출석한 국정감사장이 무엇을 다루는 내용인지 기억에 남는가? 국정감사 내용을 언론을 통해 전달 받는 우리는, 언론에서 거의 그런 바를 다룬 적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월 15일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최저임금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실시한 날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고용노동정책이나 관련된 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자위원(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3자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노사 간 이익 및 권리 분쟁에 대한 조정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으로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조직이다. 이들 기관을 둘러싼 아주 구체적인 최근의 쟁점은 다 알 수 없지만, 기관소개 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는 예측 가능하다.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 쿠팡을 포함한 심야 배송 노동자의 과로사 등에 대한 기사가 끊임 없이 나오고, 매년 최저임금을 정해야 하는 7~8월이면 노동계와 사용자 측의 대립도 이어진다. 최근에는 경사노위에서 정년 연장을 두고 노사 간 합의를 도출해 내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그외에 유연근로제, 교원의 유급 노조활동 보장 등도 이 기관에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정감사는 이들 기관에 대해 감사하는 자리이다. 국정감사 자체가 국정전반에 관해 실시하는 정기 감사이다. 국회에 있는 각 위원회, 예를 들어 하니가 출석한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소관 피감기관(환경노동위원회는 고용노동부, 환경부 등을 전담)을, 또 다른 위원회에서는 그들이 담당하는 피감기관을 상대로 감사를 벌인다(예를 들면 기획재정위원회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을 담당).
그렇다면 그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이들 피감기관에 대해서 무엇을 감사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국정감사 관련 소식을 여전히 언론을 통해 전달 받는다. 그런데 그날 ‘하니’나 ‘김주영(기존 뉴진스 프로듀싱을 하던 민희진 전 대표를 제치고 최근 어도어 대표로 임명됨)’을 제외하고 환노위 국정감사를 다룬 기사를 찾아보니 거의 없었다. 있어도 ‘답변하는 권기섭 경사노위 위원장’, ‘인사말하는 이인재 최저임금위원장’, ‘넥타이 고쳐매는 김태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같은 사진 기사일 뿐이다.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올해 들어 노동자 5명이 숨진 한화오션에 대한 노동당국의 미흡한 조치를 지적하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하니를 다룬 기사에 비하면 한 줌일 뿐이다.
2020년 기준, 전체 기자직 종사자는 대략 3만여명으로 추산되고, 그중에서 5%가 국회에 등록돼 있다고 한다. 국회 출입기자가 1,700명정도 된다는 이야기인데, 국회라는 공간에 300명의 개별 헌법기관(국회의원 개개인은 헌법기관이다) 있다고 하나 그렇더라도 이는 굉장히 많은 숫자이다. 청와대는 200여 명(2020년 기준), 검찰 기자실 또한 200여 명(2019년 기준) 정도 된다. 물론 이름만 걸어둔 이들도 있겠지만, 국회를 출입하는 저 많은 수의 기자들이 모두 다 뉴진스 하니 기사만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딘가 의아하다. 국정감사는 하이브에 대한 감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국가의 일을 적법하고 적정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따져보기 위해 매년 특정한 기간 내에 국회가 실시하는 감시·감시 제도인데 말이다.
뉴진스 하니를 부른 것은 ‘직장 내 괴롭힘’ 사안에 대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중앙부처의 국정 수행에 대해서는 국민 그 누구도 적절하게 평가하지 못했다. 언론에서 이를 다루기 보다는 뉴진스 하니의 “한국말 공부”를 다뤘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언론이 국정감사를 실시하는 국회를 제대로 감시했다는 의미도 아니고, 국정감사 대상이 된 피감기관의 국정감사 대응에 대해 감시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그날 국회에서 있었던 일 중 논란이 될 만한 일을 몇 자 적어 포털에 송고하기만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블로거나 인플루언서가 맛집이나 팝업스토어에 다녀온 후기를 포털이나 SNS에 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부실한 국정감사는 오랫동안 지적받아왔다. 자주 지적되었던 것이 형식적인 자료제출 요구, (그와 반대로) 피감기관의 자료미제출, 피감기관 과다로 인한 부실국감, 무리한 증인신청이나 꼭 필요한 증인의 미출석, 질의 시간 부족 등이었다. 이것은 국정감사라는 제도가 민주화 이후 40년 가까이 유지되어 오면서 누적된 문제적 시스템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데 언론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 문제가 지속되는 것만큼이나 언론이 국정감사를 다루는 방식도 늘 똑같기 때문이다. 매년 화젯거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뉴스에 오르내리고, 그렇게 두 달 정도 정신 없이 지나가면 국정감사가 끝나있다.
뉴진스 하니의 국정감사 출석을 다룬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물론 화제가 될 만하다. 그런데 ‘하니가 무슨 말을 했나’에 그치기 보다는 ‘왜 하니가 거기 있어야 했나’로 우리 모두가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은 많은 방향의 답을 요구한다. 왜 환노위원장은 같은 당 의원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뉴진스 하니를 증인으로 불렀을까. 국회 국정감사는 무엇을 하는 곳이기에 하니가 그곳에 있어야 했을까? 하니의 발언이 국회가 법을 만들고 행정·사법 등 다른 권력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일이었을까? 물론 하니도 아이돌 노동자라고 한다면, 아이돌 노동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은 어떤 의미일까. 하니가 거기 있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동안 우리는 어떤 것을 모르고 지나갔나. 언론도, 뉴스를 보는 우리도, 국정감사의 주체인 국회와 피감기관도, 모두가 여기에 답을 해야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에도 또 반복된다.
참고문헌
김경래의 최강시사. (2019, 11, 12). [김경래의 최강시사] KBS보도국장 “수신료 받고 그것밖에 못해?” 비판에 답해야. KBS.
노지민. (2020, 5, 14). 출입기자 1700명 시대, ‘국회 기자’의 오늘. 미디어오늘.
신성용. (2019). 현행 국정감사제도의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성균관법학, 31(2), 61-111.
조재길. (2020, 1, 13). [월요전망대] 17일 열리는 금통위…'금리인하' 소수의견 몇 명 나올까.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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